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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2월 22일 토요일

성공하고 싶다면 야당을 존중하라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12-21일자 기사 '성공하고 싶다면 야당을 존중하라'를 퍼왔습니다.


[토요판] 커버스토리
보수가 보수에게|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

박 당선인 뒤엔 절반의 반대자
국민통합으로 가는 길은
야당에 먼저 손을 내미는 것

진정한 정치쇄신을 하려면
대통령 권한이 견제받아야 한다
입법·사법부가 제 역할 하고
공직사회는 공공성 회복해라
신뢰를 주면 국민은 기다려준다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

“박근혜 당선인이 야당에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한다.”‘합리적 보수주의자’인 윤여준(73) 전 환경부 장관의 주문이다. 뿌리부터 보수인 그는 이번 대선에서 민주통합당의 국민통합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으며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는 ‘파격’을 감행했다.보수주의자가 왜 문재인을 돕는지를 얘기한 그의 문재인 방송 찬조연설은 커다란 화제를 낳았다.윤 전 장관은 인터뷰 요청에 “이긴 쪽 얘기를 들어야지, 진 쪽 말을 들어서 무엇하겠느냐”고 거절했다. “오랜 경험과 지혜를 들려주는 것이 사회 원로의 의무가 아니냐”고 간곡하게 설득한 끝에 20일 오전 서울 마포 그의 사무실에서 마주앉을 수 있었다.-이번 대선 결과를 보면 세대간 지역간 균열이 심하다. 선거전 역시 보수와 진보 진영으로 나눠 치러졌다. 새 정부가 풀어야 할 갈등 요인이 매우 많아 보인다.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 것으로 보나?“선거가 막판에 보수 대 진보 양자대결로 가면서 이념대결로 다시 재편됐다. 이념갈등이 살아나서 다시 극한대결 양상이 벌어지면 국민들은 또 정치권을 통째로 불신하고 혐오해서 다른 데서 대안을 찾으려고 할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이 야당을 국정의 동반자로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다. 과거 대통령들은 선거기간에는 야당을 존중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아무도 안 지켰다. 그래서 실패했다. 박 당선인은 현실적으로도 이걸 안 지키면 국정을 원만하게 운영할 수가 없다. 절반의 반대자가 있고, 더구나 국회법이 고쳐져서 과거처럼 다수가 맘대로 (법안을) 처리할 수도 없다. 야당을 국정동반자로 인정하고 존중하면 야당도 극렬하게 저항할 수 없고 야당이 그렇게 하는 것을 국민이 용납하지도 않는다. 당선인이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한다.”-박 당선인도 성공하는 대통령이 되려는 생각이 강할 텐데 그러기 위해서는 국민통합 말고 또 무엇이 필요하겠는가?“중장기적으로는 정치쇄신을 해야 한다. 지금 내놓은 방안은 대통령 권력 약화인데, 이것은 근원적인 것은 아니다. 국내외적으로 위기가 상존하는 때는 지도자가 신속히 대처하는 것이 필요하다. 따라서 대통령 권한을 분산시키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대통령을 견제해서 균형을 이루느냐가 중요하다. 입법과 사법부가 제 역할을 하도록 하고, 언론 역시 마찬가지다. 또 무너진 국가의 공공성을 회복해야 한다. 공직사회의 공공성과 정치 중립성을 회복해서 관료의 효율성과 능률화를 이뤄내야 한다. 경제민주화와 민주주의의 기반인 중산층 회복도 중요한 과제다.이런 것을 임기 안에 다 해결할 수는 없더라도 문제의식을 가지고 하면 국민들이 참고 기다릴 것이다. 그런데 새 정부가 그런 일을 할 것이라는 신뢰가 무너지면 국민들은 오래 참지 않을 것이다. 이미 너무 많은 고통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

-과거 정부 사례를 보면 첫 인사가 매우 중요한데.“인사가 제일 중요하다. 일은 사람이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좌우된다. 그런데 엠비정부는 초대 내각과 대통령실을 자기와 친한 사람이나 아는 사람을 썼다. 그렇게 구성하는 바람에 거기서 민심의 반은 떠났다.”-대통령의 리더십도 중요하지 않나. 박 당선인은 소통에 문제있다는 지적이 많았는데.“박 당선인은 비대위 시절 얘기를 들어보면 비대위 결정이 올라간 뒤에 이유도 모른 채 완전히 뒤바뀌는 경우가 많았다고 하더라. 그래서 이럴 바엔 왜 비대위가 필요하느냐는 무력감을 많이 느꼈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렇게 유능한 측근이 있으면 자리를 주면 된다. 따로 비선을 만들어 했다가는 정말 재앙이 올 것이다.”인터뷰 도중 그의 휴대전화는 쉴 새 없이 울렸다. 가족과 친구, 지인 등이 그를 걱정하고 위로하는 전화였다. 그는 “누굴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해야 할 일을 했는데, 위로받을 게 뭐 있나. 이왕이면 내가 지지하는 사람이 됐더라면 좋기는 했겠지만, 이제 끝났으니 당선인이 잘해야 한다”고 말했다.-민주당은 앞으로 어떻게 될 것 같은가?“내부 사정은 잘 몰라도 선거에 졌으니 책임론이 나올 것이다. 이른바 친노라는 세력은 책임을 회피할 수 없을 것이다. 책임을 모면하려다가는 책임을 결국 지면서도 비겁하게 보이게 된다. 그러니 오히려 당당하게 책임을 지는 게 낫다.전당대회에서 재정비할 텐데 내가 보기에는 지금 저 모습으로 친노가 물러나고 다른 세력이 대신한다고 해서 국민이 신뢰하겠는가? 나는 어려울 거라고 본다. 한국 정치판에 지각변동이 올 것이다. 새누리당도 마찬가지다. 대통령은 박근혜 후보가 됐지만 이것이 새누리당에 대한 신뢰는 아니다. 이긴 쪽도 변화를 겪는 게 불가피하다.”-안철수 전 후보가 신당을 만들 것이라고 보나?“세력화를 안 하고 어떻게 정치를 하나. 관념세계에 있을 때는 정당을 안 만들고도 정치를 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 텐데 아마 두달간 겪으면서 그 판단이 얼마나 비현실적이었는지를 뼈저리게 깨달았을 것이다. 안 후보에 대한 상당한 지지는 아직도 살아 있다. 당선된 대통령이나 양당이 국민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면 급속하게 다시 에너지가 살아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안의 귀국이 빨라질 수도 있다고 본다. 현실정치권에 다른 대안이 없다. 다만 안 교수도 이번에 좋은 경험을 했으니 앞으로 다시 등장할 때는 다른 수준의 정치를 할 수 있어야 한다.”

김종철 기자 phillkim@hani.co.kr

2012년 11월 18일 일요일

‘인간도살장’의 세 가지 논리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11-17일자 기사 '‘인간도살장’의 세 가지 논리'를 퍼왔습니다.

 
2001년 1월 서울시내에 걸린 고문경찰 이근안의 현상수배 대자보를 시민들이 보고 있다. 한겨레 자료

김동춘의 폭력의 세기 vs 정의의 미래

고문, 권력이 원하는 목표 위해 사람을 철저히 파괴한 삼중의 폭력
박정희·전두환 때 고문 지시한 자, 묵인한 사법부, 왜곡 보도한 언론 대선 활개

“고통, 고문, 이런 고씨 돌림은 죽음의 단순한 그림자가 아니라, 죽음의 핵심 정수인 것입니다. 저 칠흑같이 어두웠던 일제 치하에서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고등계 형사들에 의해 불구자가 되고 목숨을 잃어가고 윤동주 시인이나 이육사처럼 옥사했던 이유가 이 참혹한 고문이었습니다.전기고문, 그것은 한마디로 불고문이었습니다. 외상을 남기지 않으면서 치명적으로 내상을 입히는 것이고 극도의 공포와 고통을 수반하는 고문입니다. 물고문과 불고문의 조화라 할까요. 물고문이 밑바닥이 닿지 않는 수렁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질식해가는 것이라면 불고문은 단근질해서 뜨거운 불인두로 지져서 바싹 말라 바스라뜨리고 돌을 말려서 불에 튀기는 그런 것입니다. 전기고문 그것은 핏줄을 뒤틀어놓고 신경을 팽팽하게 잡아당겨 마침내 마디마디 끊어버리는 것 같았습니다. 머리가 빠개질 듯한 통증이 오고 그 몰려오는 공포라니, 죽음의 그림자가 독수리처럼 날아와 파고드는 것처럼 아른거렸습니다.

”물·전기고문 판치는 저주의 세계

최근 개봉된 영화 (남영동 1985)의 토대인 김근태의 수기 (남영동)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김근태는 자신이 고문당한 남영동을 ‘인간도살장’, 독가스 대신 전기고문과 물고문이 설치는 나치 수용소였으며, 시간이 종국적으로 멈춰버린 저주의 세계,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도저히 알 수 없는 곳이라고 말했다.국어사전에서 고문(拷問)은 “죄를 진 혐의가 있는 자에게 자백을 강요하기 위해 육체적인 고통을 주며 신문함”이라고 말한다. 즉, 죽이는 것은 고문의 목표가 아니다. 피의자가 생명을 유지하며 극한의 고통을 느끼도록 만들어야 한다. 고문은 중세 유럽이나 과거 중국, 조선에서도 존재했는데, 조선시대에는 모반(謀反) 대역죄(大逆罪)인들의 죄를 추궁할 때 주로 사용되었다. 중세 독일에는 날카로운 쇠못을 촘촘히 박은 철의(鐵衣)를 피고문자에게 입혀 조여들게 하는 고문도 있었고,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라고 하여 나무 침대 위에 팔다리를 고정시켜 사지를 찢는 고문도 있었다. 전세계에서 사용된 고문의 종류는 대략 320여 종이라고 한다. 일제가 조선 독립운동가들을 심문할 때 사용한 고문은 이들 전세계 고문의 종합판이었다. 손가락 사이, 배꼽, 귀, 코, 입, 성기, 항문 등에 전선 전극을 갖다 대서 고통을 주는 전기고문, 추운 겨울에 옷을 벗겨놓고 찬물을 끼얹거나 거꾸로 매단 다음 얼굴을 수건으로 덮고 물이나 고춧가루를 끼얹는 물고문, 수갑을 채운 양손 사이에 무릎을 집어넣고 쇠파이프를 꽂아 대롱대롱 매달아놓는 통닭구이 고문, 손톱 뽑기 고문 등 우리의 상상력으로 떠올릴 수 있는 거의 모든 고문 방법이 사용되었다.박정희·전두환 시절 고문은 바로 일제 시기 고문의 후속편이자 확대판이었다. 그 방법 역시 김근태의 수기에 나온 것처럼 일제의 것과 거의 동일했으며, 그 시절 고문기술자들은 해방 직후 일제의 고등경찰로부터 고문 방법을 배운 선배들에게서 대대로 기술을 전수받았다. 잠 안 재우는 고문, 집단으로 주먹과 각목으로 사정없이 폭행하는 고문, 통닭구이 하듯 손과 발을 묶어 매달아 주전자로 얼굴에 물을 붓는 고문, 시멘트 바닥에 알몸으로 무릎 꿇게 하고 얼음물을 부어대는 고문, 알몸뚱이로 다리를 벌리게 한 다음 생식기를 줄로 때리는 고문, 다리 사이에 각목을 끼우고 구둣발로 짓이기는 고문, 볼펜으로 머리털을 감아 당기는 고문, 손가락 사이에 볼펜을 끼우고 짓이기는 고문…. 죽도, 대나무관, 5자 정도의 곤봉, 사람을 채찍질하기 위해 사용된 로프, 사람을 찌르기 위해 사용하는 우산 꼭지, 부젓가락, 사람의 몸을 밟아 뭉개기 위한 도구, 하복부에 찔러넣는 곤봉 등 이루 셀 수 없는 종류의 향연이 서빙고의 보안사 사무실, 남산의 중앙정보부(안기부), 남영동 경찰 대공분실 등에서 질펀하게 펼쳐졌다.아마 가장 극심한 경우는 1975년 인민혁명당 재건위 관계자들이 당한 고문이었을 것 같다. 당시 감옥에서 김지하가 이들에게 “고문 많이 당했습니까?” 물으니까 이후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하재완은 “말 마이소. 창자가 다 빠져나와버리고 부서져버리고 엉망입니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실제로 그는 탈장이 되어 한 손으로 항문으로 흘러나온 창자를 집어넣으며 재판을 받는, 정말 상상할 수 없는 일도 일어났다.

영화 <남영동 1985> 에 나오는 대공분실에서의 고문 장면.

개인이나 세력 향한 복수이고 화풀이

그런데 고문이 “자백을 받기 위해 심문”하는 것이라는 사전적 정의는 사실과 거리가 있다. 고문은 권력이 자신에게 대드는 저항자의 손발을 묶어놓은 다음 마음껏 화풀이하며 자신의 힘을 과시하고, 완전히 무력화된 상대방을 조롱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박정희 정권 시절 ‘유럽 거점 간첩 사건’의 피해자들은 다음과 같이 고문 사실을 기억한다.“조사실로 걸어가는데 수사관들이 주먹을 날리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보다 늦게 잡혔는데 그동안 어디에 숨어 있었느냐며 마구 때렸다. 조사실에서는 모○○이 내 구두를 벗겨 그 구두로 분풀이하듯이 때렸다. …물에 젖은 수건을 손과 발에 묶고 전깃줄에 엮어서 전기고문을 했다. 계속 고문을 하는데 살점이 모두 떨어지는 고통이었다. 옷을 벗기고 손과 발을 묶어서 다리 사이에 막대기를 끼워 대롱대롱 매달리게 하고는 물을 붓는 고문을 당하였다. 그 고문도 견디기 힘들었지만 옷 입은 사람 앞에 옷을 다 벗고 있는 것이 수치스럽고 모멸스러워 내가 짐승보다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서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발로 차는데 그때 맞은 후유증으로 지금도 왼쪽 허리 쪽이 시큰거린다.”즉, 폭력과 고문은 자신에게 대드는 개인이나 세력을 향한 복수이고 화풀이기도 하다. 특히 고문은 상대방을 완전히 감금하고 무장해제시킨 다음 자신만이 무기를 들고 일방적으로 폭력을 가하는 것이므로 가장 비열하고 심각한 불공정 게임이다. 고문은 유죄 사실, 반란세력의 전모를 파악해서 유죄를 입증한다는 특정한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다른 폭력이 그렇듯이 그 과정 자체가 목적이기도 하고, 그것을 통해 만들어질 권력자와 백성들 간의 관계 정립의 구상이기도 하다.그래서 폭력으로서 고문은 가장 야만적인 현상으로 보이지만, 사실 인간들의 세계에서만 나타날 수 있는 현상이기도 하다. TV (동물의 왕국)에서 사자가 도망가는 얼룩말을 잔인하게 물어뜯어 죽인 다음 유혈이 낭자한 주검 더미 위에서 걸쭉하게 잔치를 벌이는 것을 본 시청자는 그것을 ‘야만의 세계’라고 부른다. 그러나 핵무기를 떨어뜨려 수만 명의 육신을 그 자리에서 녹아내리게 만들고, 피폭자 수십만 명을 평생토록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은 사자가 날카로운 발톱으로 얼룩말의 목을 물어뜯어 죽이는 것 이상으로 야만적인 일이 아닌가? 그런데 정작 중요한 것은 후자의 폭력은 동물의 폭력과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점이다. 인간 사회의 폭력은 바로 권력 행사의 일환이며, 그것을 통해 상대방을 복종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동물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폭력을 사용하지만 일단 욕망이 충족되면 그 이상의 폭력을 가하지는 않는 데 비해, 인간은 자신의 욕망이 충족되거나 불안이 제거돼도 폭력을 계속 사용한다. 인간들이 대역죄인의 사지를 찢어서 죽이거나, 반역자를 처형한 다음 목을 잘라 네거리에 걸어놓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돌을 던지거나 침을 뱉게 만드는 것은 폭력 행사를 가시화함으로써 권력의 위세를 만천하에 선포하는 행위다. 인간은 정치적 목적을 이끌어내기 위해 폭력을 사용하고, 또 폭력을 통해 상대방이 완전히 굴복하는 것을 즐긴다.

이근안이 고문을 자행했던 치안본부 대공수사단 남영동분실. 1985년 김근태는 무려 22일 동안 이곳에서 고문을 당했다. 지금은 경찰청 인권보호센터로 쓰이고 있다. 한겨레 자료

저승사자 앞의 피라미처럼

조작간첩 사건의 희생자 신귀영은 “고문을 당할 때는 경찰관이 사람으로 안 보이고 작은 짐승을 잡아먹으려는 큰 짐승이자 저승사자로 보였다”고 증언한다. 김근태는 고문에 못 견뎌 “두 눈이 가려진 채 무릎으로 엉금엉금 기면서 항복한다고 용서해달라고 두 손으로 빌었다”고 그날의 악몽을 기억한다. 처참한 처지에 빠진 피의자는 때리지 말라고, 살려달라고, 원하는 대로 다 말하겠다고 싹싹 빈다. 인간은 미물보다 못한 존재가 되고 수사관은 거의 신의 경지에 오른다. 자신이 그렇게 완전히 무기력한 상태에 빠져 생명을 구걸하는 존재가 되는 경험을 가졌다는 것은 치욕 중의 치욕이다. 그래서 고문 피해자나 학살 현장의 생존자들은 누구에게도 이 부끄러운 경험을 말하려 하지 않는다.고문 현장은 바로 저승사자 앞의 피라미처럼 가쁜 숨을 헐떡이며 거의 처분에 몸을 맡긴 인간이 마주 선 적나라한 권력 현장이다. 즉, 고문은 평소의 생각과 신조를 의심과 처벌의 대상으로 삼거나 그것을 의도적으로 조작해 권력이 원하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중세적 방법의 폭력이고, 폭력에 굴복해 원하지 않는 말을 하거나 동료의 이름을 댄 피해자들에게 치욕과 수모를 가져다줘서 이들을 정신적으로 파괴해 주변 사람들과 관계를 단절시키는 이중적 폭력이며, 고문당한 사람들의 초췌한 얼굴, 절뚝거리는 발걸음, 망가진 신체를 목격하거나 소문을 들은 사람들이 그들의 신체를 그렇게 만들 수 있는 힘을 가진 권력을 두려워하고 그들에게 복종하도록 압박을 가하는 삼중의 폭력이다.집단학살이 사람을 그 자리에서 죽이는 것이라면 고문은 피해자들을 천천히 죽이는 것이다. 고문 피해자 중에는 김근태처럼 수십 년 동안 고통받다가 병에 걸려 원래 수명을 누리지 못하고 죽은 경우도 있지만, 고문 이후 1개월 혹은 1년 뒤는 죽는 경우도 있다. 이들은 살아 있는 동안 계속 고통에 신음하며 죽음의 공포에 시달린다.고문 현장의 ‘미시정치’는 바로 절대 권력의 행사와 절대 복종이다. 고문 이후의 ‘거시정치’는 서서히 죽어가는 피해자를 모든 사람들이 듣거나 보게 만들고, 이런 주변 사람들이 그 권력의 무서움을 깨닫고 움츠러들도록 한다. 수사관, 즉 고문자로 표상되는 권력은 바로 자신에게 저항하는 사람을 이렇게 완전히 굴복시키고 항복을 받아내 위세를 과시한다. 피의자가 폭력 앞에 굴종하는 것을 바라보는 권력자는 무한대의 자기만족을 느끼고, 자신의 권력이 영원히 계속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된다.

계속 향연을 즐기고 싶은 그들

김근태는 고문기술자 이근안을 ‘인간백정’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그 백정에게 칼을 휘두르라고 지시한 사람들은 지금 시퍼렇게 살아서 요직에 있고, 피해자가 아무리 고문을 호소해도 못 본 체하며 그에게 유죄를 선고한 판사들이 아직도 현직에 있거나 정치권, 재야 법조계에서 호의호식을 하고 있다. 그리고 고문당한 사실보다는 그들이 간첩이었다는 것을 대문짝만하게 보도했던 언론이 여전히 우리 사회의 1·2등 신문이다. 이제 그들은 고문이라는 방법을 사용할 수 없게 됐지만, 자신이 가진 권력 기반을 활용해 앞으로도 계속 향연을 즐기고 싶어 이번 대선에 총력을 다하고 있다.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2012년 9월 11일 화요일

허리 휘는 통신비의 비밀, 이제 방통위가 답하라


이글은 프레시안 2012-09-11일자 기사 '허리 휘는 통신비의 비밀, 이제 방통위가 답하라'를 퍼왔습니다.
[기고] 침묵하는 통신 규제 당국, 밝히라는 사법부

우리나라 이동통신 이용자 숫자는 5250만 명을 넘었다. 우리나라 인구가 5080만 명 정도이니까 이동통신이용자 수가 인구수를 넘는 셈이다. 이미 이동통신은 보편적 서비스가 되어 있는 셈이다. 이처럼 거의 모든 시민이 이용하고 있는 서비스일 뿐만 아니라 통신비가 가계소비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10년 기준으로 7%를 넘어섰다. 그만큼 이동통신비용은 가계의 큰 부담이 되고 있다. 이 부담이 간단치 않은 것은 소득이 낮은 계층이라 할지라도 통신비 비중은 소득이 높은 계층 못지않게 높다는 사실에서 잘 나타난다.

그런데 통신비 부담은 앞으로도 더 높아지면 높아졌지 낮아질 가능성은 거의 전무하다. 그 까닭은 소비자들의 이동통신서비스가 음성 중심의 2세대 서비스에서 점차 데이터 중심인 3세대, 4세대 서비스로 옮겨 가고 있을 뿐 아니라 3세대, 4세대 서비스의 가격은 2세대 서비스보다 훨씬 더 인상된 수준으로 책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이용자는 이미 3000만을 넘어섰으며, 그중에서 4세대 LTE 이용자 수도 지난달 말 1000만을 넘어섰다.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면 가격 대비 성능이 높아져서, 같은 성능이라면 가격을 낮추더라도 사업자에게 기술 혁신에 의한 이익이 보장되는 것이 정상이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이동통신요금은 2세대에서 3세대로 옮겨갈 때 무려 20%에서 25% 정도 수준까지 인상된 가격을 지불해야 하고, LTE 요금은 3세대 때의 소비패턴을 유지할 경우 다시 3세대보다 20%정도 인상된 가격을 지불해야 한다. 그러므로 가정에서 식구 한 명이 2세대에서 3세대, 3세대에서 4세대로 옮겨갈 경우 통신비 부담은 서비스전환자 1인당 20%에서 30%까지 증가할 것으로 추정된다. 물론 이것은 통신단말기 월별 분담가격을 제외한 것이다.

가격 경쟁이 실종된 한국의 이동통신시장


그런데 통신비 가격 논란이 벌어질 때마다 이동통신사업자나 통신 규제 당국, 그리고 많은 경우 언론조차 마치 우리나라의 이동통신요금이 시장에서 수요와 공급의 변동에 따라 변하는 것처럼 설명한다. 그러한 대표적인 예가 경쟁을 활성화함으로써 가격 인하를 유도해야지, 시장 외적인 개입으로 가격 변동을 요구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이동통신요금은 이제까지 단 한 번도 시장의 수급에 의해 가격이 결정된 적이 없다. 그 이유는 이 시장이 정상적인 경쟁이 이루어지는 시장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동통신시장은 공공자원이자 희소자원인 무선주파수를 할당받아야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원천적인 독과점시장이며, 그것조차 주파수 할당의 사업자 간 불균형 문제 때문에 정상적인 품질경쟁조차도 어렵게 된 "실패한 시장"이기 때문이다. 가장 최근에 발표된, 국책연구소인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의 2010년도 통신시장 경쟁 상황 평가에서도 이동통신시장은 "경쟁이 미흡한 시장"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있을 정도다.

이렇듯 시장의 실패가 일어난 시장이기 때문에 우리나라 이동통신시장에는 통신 규제 당국이 가격 결정에 개입한다. 그것이 바로 시장지배사업자인 1위 사업자의 가격을 인가하는 요금 인가 제도이다. 요금 인가제가 1위 사업자의 가격을 규제하는 제도라 하더라도 그 외의 사업자들이 1위 사업자의 인가요금보다 가격을 훨씬 낮추어 가격경쟁을 한다면 경쟁가격수준이 형성될 수는 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2위, 3위 사업자의 가격 수준 또한 1위 사업자의 인가 요금 수준과 거의 차이가 나지 않는다. 심지어 3년 전 스마트폰 요금제가 나왔을 때에는 아예 3개 이동통신사의 가격체계가 완전히 동일했다. 한마디로 우리의 이동통신시장은 가격 경쟁이 실종된 시장이며 사실상 통신 규제 당국의 요금 규제 가이드라인에 의해 가격 수준이 결정되는 시장인 셈이다.

ⓒ뉴시스

그렇다면 당연히 방송통신위원회가 어떻게 현재의 이동통신요금 수준을 "인가"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통신소비자들은 현재의 이동통신요금이 상당히 부담스러운 수준이라고 인식하고 있는 데 반해, 통신 규제 당국은 현재의 이동통신요금이 적정수준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그러니 이러한 인식의 괴리를 가져오는 요인이 무엇인지 확인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간 참여연대를 비롯해서 시민사회단체들이 방송통신위원회의 이동통신 요금 인가 관련 자료의 공개를 요구해 온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그간 방송통신위원회가 밝힌 것은 업체별 총괄원가 총액과 원가보상률 지표, 딱 두 가지뿐이었다. 그 외의 모든 관련 자료는 영업 비밀이라서 공개할 수 없다거나 아예 자료 자체가 없다는 답변만 반복했다. 그런 한편으로 방송통신위원회는 현재의 요금 수준을 인가했으면서도 "요금 인하 방안"을 강구한다는 자기모순적인 발언만 계속했다.

그런가 하면 작년에는 이동통신사업자들이 "자발적으로" 기본요금을 1000원 인하한다고 발표하면서 왜 인하가격이 1000원인지에 대해서도 아무런 이유를 밝히지도 않았다. 월 1000원은 가입자당 월평균 3% 정도 가격 인하 효과를 가져오는데, 앞서 설명했듯이 이미 스마트폰 요금은 이전 요금체계에서 20%에서 25%, 작년에 인가한 LTE 요금은 스마트폰 요금에서 다시 20% 정도 인상한 가격이므로 작년의 기본요금 1000원 인하에도 불구하고 요금은 오히려 대폭 증가하였다.

현재 요금이 적정수준? 방통위, 근거 밝혀야

지난주 참여연대가 제기한 '요금 인가와 관계된 회계자료 공개 요구' 관련 행정소송에 대한 법원의 판결은 바로 이러한 비합리적이고, 모순적이며, 심지어 수상쩍기까지 한 방송통신위원회의 요금 인가 내용에 대하여 투명성을 요구한 지극히 당연한 판결이었다.

법원은 판결문을 통해 "(이동통신서비스가) 국민의 삶에 필수적인 서비스에 해당하여공정하고 합리적인 가격에 제공되어야 함에도, 망 구축 등에 막대한 자본을 요하는 기간산업으로서 통신산업의 특성상 자연독점적 내지 과점적 시장에서 공급됨으로 인하여, 이에 따라 발생하는 시장 실패 등 부작용과 이에 대한 국민적 불신을 해소하고, 위와 같은 통신산업의 공공적 특성 등에 비추어 피고가 감독, 규제하고 있는 이동통신서비스 요금 결정 등에 관한 정보를 공개함으로써, 피고의 감독, 규제 권한 행사에 관한 투명성 및 정당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는 점 등을 고려"할 때 관련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고 판시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자료를 공개한다 하더라도, 그렇게 하여 사업자들의 초과이익 규모가 밝혀진다 하더라도 왜 그러한 수준을 통신 규제 당국이 "적정한 수준"의 요금이라고 평가하고 인가하였는지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을 것이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이제까지 통신요금과 관련된 회계자료를 공개한 적도 없지만 그러한 가격 수준이 왜 정당한 것인지에 대해서도 침묵으로 일관해 왔으며, 규제 당국도 존재 여부를 밝히지 않는 자료에 대해서 법원이 공개를 결정할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통신 규제 당국이 계속 유구무언으로 침묵만을 지킨다면, 밝혀진 자료를 토대로 현재 요금 수준의 정당성 여부를 시민사회가 따져서 공론화하는 수밖에 없다. 처음부터 시민-소비자를 위한 통신 규제 당국은 없었으니까.

 /전응휘 녹색소비자연대 상임이사

2012년 8월 28일 화요일

민주당 "안대희, 판결문 잉크도 마르기 전에..."


이글은 뷰스앤뉴스(Views&News) 2012-08-28일자 기사 '민주당 "안대희, 판결문 잉크도 마르기 전에..."'를 퍼왔습니
다.
"박근혜, 아무리 궁해도 도의 어기는 인사해도 되나"

민주통합당은 28일 안대희 전 대법관이 새누리당 정치쇄신특별위원장을 맡기로 한 것과 관련, "사법부 최고의 권위직인 대법관을 역임하고 이렇게 빨리 정치권으로 갈 수 있는지 모든 사법부가 망연자실해한다"고 거듭 비판했다. 

박지원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아무리 훌륭한 인물이라도 그 방법이 옳지 않으면 국민들로부터 용납되지 않는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우리는 왜 꼭 그런 인사밖에 하지 못하는지 새누리당의 박근혜 후보에 대해서도 심히 유감스럽다"며 "아무리 궁해도 이런 국민도의와 질서를 파괴하는 박 후보의 인사를 보며, 그가 대통령이 되면 이런 일이 다반사로 일어날 것 같다"고 비난했다. 

판사 출신 박범계 의원도 "안대희 전 대법관이 퇴임한지 불과 48일만에 판결문에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화려한 정치적 데뷔를 했다"며 "2천700명의 법관들과 2천200여명의 검사들은 과연 어떻게 생각할까? 그들이 수호하고자 하는 대한민국 사법정의와 정치적 중립성에 심대한 손상을 끼친 자괴감을 느낄만한 사건으로 생각할 것"이라고 가세했다. 

그는 "대한민국 최고법원의 대법관 직위를 안 전 대법관은 화려한 정치적 데뷔의 잉태를 위한 예비수단으로 쓴 것 아닌가"라며 "오로지 집권을 위해서라면 신망을 받는 인사를 불쏘시개로 사용하는 박근혜식 정치에도 깊은 연민의 정을 느낀다"고 비난했다.

박정엽 기자

2012년 8월 19일 일요일

대법관, 문제 있으면 ‘날려야’ 한다


이글은 한겨레21 2012-08-20일자 제924호 기사 '대법관, 문제 있으면 ‘날려야’ 한다'를 퍼왔습니다.
[이슈추적] 한국 사법부는 135명 대법관 후보자 중 1명 청문회 검증에서 낙마했지만미국은 160차례 중 36차례 걸러져김병화 대법관 후보 낙마 뒤 지명되는 후보자도 온정적 통과 대신 철저한 검증 필요해

» 대법관 후보자는 또 낙마해도 된다. 그러라고 있는 게 인사청문회 제도다. 촛불재판에 개입하고도 대법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신영철 대법관 이후로, 누구든 대법관이 될 수 있다는 착각을 깨줘야 한다. 대법원 대법정의 대법관 좌석. 연합

1968년 10월 조진만 대법원장이 65살로 정년 퇴임했다. 1961년 3대 대법원장으로 임명돼 6년 임기를 채우고 연임(4대) 중이었다. 조 대법원장 퇴임을 앞두고 대법원장 임명 제청을 위한 법관추천회의에서는 민복기 전 법무부 장관을 5대 대법원장으로 제청하기로 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그해 10월10일 국회에 임명 동의를 요청했다. 국회는 같은 달 15일 임명동의안을 가결했다.

닉슨, 세번이나 대법관 후보 지명으로 타격

같은 해 미국에서도 우리의 대법원장 격인 연방대법원장이 새로 지명됐지만 분위기는 달랐다. 공화당의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1953년 10월 대법원장에 임명한 얼 워런이 77살 고령과 건강 문제를 이유로 물러날 의사를 밝혔다. 민주당인 린든 존슨 대통령은 1968년 6월 자신의 친구이자 정치적 고문인 대법관 에이브 포타스를 후임 대법원장으로 지명했다. 진보 성향의 포타스는 앞서 1965년 8월 존슨 대통령에 의해 대법관에 임명됐다. 1968년은 대선이 있는 해였다. 물러나는 대통령이 대법원장을 임명하는 것을 두고 논란이 일었다. 포타스는 1968년 7월 상원 인사청문회를 거쳤지만 공화당 상원의원들과 보수적인 남부지역 민주당 상원의원들의 반대로 그해 10월 스스로 대법원장 후보직에서 물러났다. 포타스는 이듬해 5월 ‘2만달러 수표’ 스캔들로 대법관직마저 사임하게 된다.
1968년 11월 대통령에 당선된 공화당의 리처드 닉슨은 1969년 5월 보수 성향의 워런 버거를 대법원장으로 지명했고, 상원은 20여 일 뒤 이를 인준했다. 닉슨은 그해 8월 포타스의 빈자리에 연방항소법원 판사인 클레멘트 헤인스워스 주니어를 지명했지만 간단치 않은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검증 과정에서 헤인스워스가 연루된 윤리적 추문이 드러났다. 재정적 이해관계가 얽힌 재판에 참여했으며, 민권 관련 과거 판결에서는 노동과 사회적 약자 등에 대한 의심스런 시각이 확인됐다. 그해 11월 상원은 표결에 들어가 찬성 45표, 반대 55표로 인준을 부결시켰다.
당혹한 닉슨은 1970년 1월 연방항소법원 판사인 해럴드 카스웰을 다시 대법관 후보로 지명했다. 카스웰 역시 법정과 판결에서 흑인과 가난한 사람 등에게 보인 적대적 태도가 문제가 됐다. 대법관을 맡을 만한 능력이 없다는 불신도 따라붙었다. 석 달 뒤 상원은 카스웰마저 45 대 51로 연거푸 인준을 거부했다. 닉슨은 해리 블랙먼을 다시 지명했고, 상원은 인사청문 등을 거쳐 1970년 5월 인준 투표에 참여한 94명 전원 찬성으로 닉슨의 선택에 동의했다. 포타스가 물러난 지 1년 만이다. 세 번씩이나 대법관 후보자를 지명해야 했던 닉슨은 정치적 타격을 입었다.
문제가 있다면 대법원장 후보자든 대법관 후보자든 ‘낙마’하는 게 정상이다. 미국을 말하는 게 아니다. 우리나라 얘기다. 우리도 대법원장 내정자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한 적이 한 차례 있다. 1987년 민주화항쟁 뒤 사법부의 과거사 청산 압력이 커지던 1988년 6월, 당시 노태우 대통령은 정기승 대법원판사(대법관)를 새 대법원장(10대)으로 내정하고 국회에 임명동의안을 냈다. ‘새로운 대법원 구성’을 요구하며 법관들이 들고 일어선 ‘2차 사법파동’의 여파로 김용철 대법원장이 물러났기 때문이다. 대한변호사협회는 정기승 내정자가 전두환 군사정권 시절 시국사건에 간여하는 등 사법부 신뢰 회복에 적절치 않은 인물이라는 의견을 밝혔고, 변호사와 사법연수원생 수백 명도 임명동의안 철회를 요구했다. 여소야대였던 국회는 정기승 내정자의 임명동의안을 부결시키는 것으로 화답했다.

‘사법부 변화에 대한 두려움’이 낳은 균형

저축은행 브로커와의 부적절한 관계 등이 드러난 김병화(57·전 인천지검장) 대법관 후보자가 지난 7월26일 사퇴한 뒤 후임자 선정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형식은 자진 사퇴였지만 사실상 정치권과 언론의 검증 과정을 통과하지 못하고 밀려났다. 정기승 대법원장 내정자 낙마 뒤 무려 24년 만의 일이다. 언론들은 ‘대법관 후보 사상 첫 낙마’라는 제목을 뽑았다. ‘위장전입 대법관’을 줄줄이 배출해온 우리로서는 놀랄 일이었다. 1948년 8월 사법부가 구성된 이후로 이제까지 모두 135명의 대법관이 임명됐다. 김병화 후보자는 2000년 인사청문 제도가 도입된 뒤 첫 낙마자다. 2000년 이전에는 낙마자가 없었다. 135명이 임명되는 동안 단 1명만이 걸러졌다.
미국 의회조사국(CRS) 보고서(‘Supreme Court Nominations Not Confirmed, 1789~2007’ ‘Supreme Court Appointment Process’)를 보면, 미국은 1789년 이후로 지금까지 160차례(동일인 복수지명 포함)의 대법관·대법원장 지명이 있었다. 이 가운데 36차례(22.5%) 인준이 거부됐다. 이렇게 검증 과정 등에서 걸러진 후보자는 31명에 달한다. 상원 전체 표결로 부결된 것이 11차례, 표결 전에 대통령이 지명을 철회한 것이 11차례였다.
미국은 우리와 달리 대법원장·대법관 임기가 없는 종신제를 택하고 있다. 대법관이 사망하거나 탄핵되거나 스스로 물러나지만 않는다면 길게는 수십 년을 대법관으로 있을 수 있다. 현재 9명의 대법관 가운데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시절인 1986년 임명된 앤터닌 스캘리아(76)와 1988년 임명된 앤서니 케네디(76)가 각각 26년, 24년째 대법관을 맡고 있다. 종신직 대법원장을 포함한 대법관 9명의 성향에 따라 진보와 보수의 균형 혹은 불균형이 상당 기간 지속되기 마련이다. 대법관은 대통령이 지명한 뒤 상원의 동의를 얻어 임명하는데, 일반적으로 민주당 대통령은 진보 성향 대법원장·대법관을, 공화당 대통령은 보수 성향인 이들을 지명한다. 때로는 임명권자의 기대를 저버리며 보수에서 진보로, 혹은 그 반대로 ‘배신’을 하는 이도 나온다. 그렇더라도 새로 임명되는 대법관 1명에 따라 미국 사회 주요 의제의 향방이 결정될 수 있기 때문에, 상원에서는 상대당 지명자에 대한 철저한 검증으로 대응한다.
미 의회조사국 보고서(‘Supreme Court Appointment Process’)는 상원의 이런 태도를 ‘사법부 변화에 대한 두려움’으로 분석한다. “법리 판단의 변화에 대한 두려움”은 “해당 지명자로 인해 연방대법원의 이데올로기적 밸런스에 끼칠 영향”에서 기인한다는 것이다. 가장 뚜렷한 예가 레이건 대통령 시절에 있었다. 1987년 7월 레이건은 루이스 파월 대법관 후임으로 보수주의자인 로버트 보크를 지명했다. 파월은 진보와 보수가 4 대 4로 팽팽히 나뉜 연방대법원에서 중도, 즉 ‘스윙보터’(Swing Voter) 구실을 해왔다. 보크가 인준되면 연방대법원은 보수 쪽으로 확실히 기울 가능성이 컸다. 상원은 그의 보수성을 들어 그해 10월 42 대 58로 인준을 부결시켰다. 레이건은 보크가 낙마한 뒤 다시 더글러스 긴즈버그를 지명했지만, 그가 학생들과 마리화나를 피웠다는 사실이 일주일여 만에 드러났다. 긴즈버그는 인사청문회를 거치기도 전에 자진 사퇴했다. 결국 세 번째로 지명돼 인준을 통과한 앤서니 케네디는 때로는 진보, 때로는 보수의 태도를 견지하는 스윙보터 역할을 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대법원 구성 다양화 위해 진보, 여성 필요

확실한 양당제 정치 구도, 최고법관 종신제를 택하고 있는 미국의 정치·사법 상황을 한국 현실에 그대로 대입하는 것은 무리다. 자기들이 맡고 싶은 사건만 1년에 80~90건 정도 처리하는 연방대법원과, 한 해 3만6천 건(2011년 [사법연감])이 넘는 사건이 대법원에 접수되는 우리는 다르다. ‘철저한 검증’보다 ‘대법관 공백 아우성’이 더 크게 들리는 이유다.
그래도, 문제가 있으면 ‘날려야’ 한다. 인재풀의 한계를 말하고 ‘하찮은 하자’보다는 사건을 빠르게 처리하는 법적 전문성이 중요하다는 주장은, 미국에서 대법관을 저스티스(Justice)로 부르는 데 견주면 궤변에 가깝다.
김병화 후보자가 낙마하자, 김 후보자 못지않게 문제가 많았던 김창석·김신·고영한 대법관 후보자는 비교적 편안하게 대법관 자리를 꿰차게 됐다. 이전 대법관 후보자 검증과 달리 ‘과거 판결 분석’이 집중적으로 이뤄진 이번 인사청문회에서 김창석·고영한 대법관은 재벌 편향 판결이, 김신 대법관은 종교 편향성이 물의를 일으켰다.
대법원은 김병화 후보자의 낙마로 공석인 대법관 한 자리를 채우기 위한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를 다시 구성했다고 8월9일 밝혔다. 추천위 구성이 일부 바뀌기는 했지만, 권재진 법무부 장관 등 김 후보자를 추천했던 당연직·비당연직 추천위원 상당수가 추천위에 다시 포함됐다. 대법원은 검증을 더욱 충실하게 하려고 후보자 천거 기간을 종전 일주일 정도에서 2주로 늘렸다고 했다. 양승태 대법원장은 추천위 쪽에 “충분한 검증을 거친 후에 추천위원회 회의를 개최할 것을 요청했다”고 한다.
‘검찰 몫’이던 김병화 후보자의 뒤를 이어 또다시 현직 검찰이 올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것이 사법부 안팎의 중론이다. 진보 성향 대법관 5명을 이르던 ‘독수리 5형제’가 모두 퇴임한 뒤, 보수 일색으로 변한 대법원 구성의 다양화를 위해서라도 재야의 진보 인사나 여성에게 대법관 자리가 돌아가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미 의회조사국 보고서(‘Speed of Presidential and Senate Actions on Supreme Court Nominations, 1900~2010’)를 보면, 대법관 지명에서 상원 인준까지 걸리는 시간은 평균 111.5일(1981~2009)이다. 석 달 정도 충분히 시간을 갖는다는 얘기다. 미국은 우리처럼 최고 법관 4~5명이 한꺼번에 교체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오로지 후보자 1명을 두고 과거 판결과 가족 사항, 자산, 채무, 세금까지 탈탈 털어낸다. 연방수사국(FBI)까지 동원된다.

잘 뽑기 위한 짧은 공백은 괜찮다

우리 정치권에는 ‘한 번 낙마시켰으니 두 번째는 적당히 하자’는 온정주의가 있는 듯하다. 같은 자리에 지명된 고위직 후보자가 연달아 낙마한 경우는 2002년 김대중 정부 말기에 국무총리 후보로 올랐던 장상·장대환씨 정도밖에 없다. 대법관후보추천위 추천을 받아 양승태 대법원장이 제청한 새 후보자에게 또다시 ‘문제’가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문제가 있다면 계속 날려야 한다는, 그런 원칙과 기준을 세워야 한다. 헌법재판관도 마찬가지다. 헌법재판소는 9월에 재판관 4명이 퇴임한다. 1년 넘게 공석인 재판관 한 자리까지 포함하면 재판관 후보자 5명에 대한 검증을 한꺼번에 진행해야 한다. 전체 재판관 9명의 과반이 바뀌는 결정적 시기다.
‘대법관·재판관 공백’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짧은 공백 기간이 두려워 얼렁뚱땅 임명된 이들이 맡게 되는 사건이 앞으로 몇 십 년간 한국 사회의 방향을 결정짓기도 한다. 임기 6년에 견주면 검증 기간 몇 달은 아무것도 아니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2012년 3월 27일 화요일

김재호 무혐의 가닥…트위플 “위대한 법치국가!” 분노


이글은 뉴스페이스 2012-03-27일자 기사 '김재호 무혐의 가닥…트위플 “위대한 법치국가!” 분노'를 퍼왔습니다.
나경원-주진우도 무혐의 될듯…조기숙 “이게 공정사회냐”

기소청탁 의혹에 휩싸였던 나경원 전 새누리당 의원의 남편 김재호 서울 동부지법 부장판사가 무혐의 처분을 받을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의 3차례 출석요구에 응하지 않고 단 한번 서면 진술서를 제출한 김 판사에게 면죄부를 부여한 셈이다. 이에 트위터 상에서는 비판적인 시각을 담은 글들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박지원 민주통합당 최고위원(@jwp615)은 “김재호 판사 기소청탁 무혐의 처분키로? 법사위 저의 서면질의에 해외연수중으로 그 사건과 무관하다고 했던 답변서는 허위답변으로 무슨 죄? 이것도 나중에 생각해보니 한 것 같다하면 끝? 피고인에게도 같은 재판하실까? 경찰 검찰 사법부 존경해야 하나?”라는 글을 남겼다. 

조기숙 이화여대 교수(@leastory)는 “김재호는 끝내 경찰에 출석하지 않고 서면답변으로 기소청탁 무혐의를 받았다. 전직 대통령 위에 현직 판사가 군림하는 나라!”라며 “이게 공정한 사회인가요? 이래서 죽어라고 판검사 되려고 하는구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이디 ‘vina***’는 “3회 출석 불응에 서면조사로 끝내고 추가 수사계획도 없다는 건데 쌍차와 한진과 한-미 FTA 반대 시위와 강정을 때려잡던 광기는 어디로 가고 용서와 포용의 아이콘이 되었는지”라고 경찰을 비판했다. ‘happ****’는 “구럼비에서는 그렇게 위세 떨면서 창피한줄 아세요”라는 반응을 나타냈다. 

아울러 트위터 상에는 “판검사 아니면 사람취급 못 받는 세상”(inm****), “역시나 실망 시키지 않는 금과옥조”(ycs0***), “이젠 웃음도 안나온다”(hahah****), “반복되는 쇼는 이제 지겹다”(arkpe****), “뭐하러 수사한다고 호들갑!”(hellev****), “뭐 이런 경우가 있나? 예상대로군”(stupi****), “수사권 독립을 외치는 경찰의 용두사미 수사. 둘 다 부끄러운 줄이나 알까”(badro*******) 등의 반응들이 이어졌다. 

아이디 ‘jerryi****’는 “김재호 무혐의. 주진우 무혐의. 에브리바디 해피한 결론. 모두모두 행복하게 잘 살았답니다”라며 “여기가 무슨 사마귀 유치원이냐”고 일침을 놓았다. ‘ggag****’는 “기대를 저버리지않는 위대한 법치국가”라고 꼬집었다. 

경찰 “허위사실 공표나 명예훼손죄 적용하기 힘들어”

의 27일 보도에 따르면 서울지방경찰청은 “나 전 의원과 김 판사, 서울시장 선거 당시 나 후보 선대위 관계자들의 진술을 종합한 결과 나 전 의원이 ‘나는 꼼수다’의 기소청탁 폭로는 허위사실이라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배포하는 과정에서 허위사실 공표 의도나 목적이 없었다는 게 확인됐다”며 “허위사실 공표나 명예훼손죄를 적용하기 힘들어 보인다”고 밝혔다. 

이 신문은 “이같은 결론은 김 판사 등이 완강히 부인했던 기소청탁 사실 자체는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그것을 부인하며 나꼼수 관계자들을 고소한 데는 명예훼손 등의 의도는 없었다는 형식논리에 근거한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발단이 된 기소청탁 자체에 대한 판단은 아닌 것이다. 기소청탁은 현행법상 처벌 근거가 없는데다 법관징계법에 규정된 징계 시효도 지난 상태”라고 덧붙였다. 기소청탁 의혹을 최초로 제기한 주진우 기자 역시 무혐의 처리될 것으로 알려졌다. 는 “경찰은 이번 주 안에 나 전 의원과 김 판사, 주 기자 등 관계자들에 대해 모두 불기소 의견으로 사건을 마무리해 검찰에 송치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아울러 는 “김 판사와 김 판사에게서 부탁을 받은 박은정 인천지검 부천지청 검사의 서면 진술을 봤을 때 기소청탁이 있었다고 보이고, 나 전 의원이 보도자료 배포에 관여한 정황은 있다. 그러나 나 전 의원이 허위사실임을 알고도 고의적으로 보도자료를 내도록 지시했다는 증거가 없어 무혐의 의견으로 결론을 내렸다”는 경찰 관계자의 말을 전했다. 

에 따르면 김 판사가 25일 경찰에 제출한 서면진술서는 ‘박은정 검사는 공판부 검사일 때 알고 있었고 박 검사 실명과 진술서 내용이 공개된 후 생각해 보니 전화를 했던 것도 같으며 전화 했다면 인터넷에 올라온 글을 삭제하게 도와달라는 취지로 했을 것이라 짐작이 된다’는 취지의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김 판사는 경찰이 두 번이나 출석을 요구했지만 이에 불응했다. 이에 경찰은 26일까지 출석해줄 것을 재차 요구했지만 김 판사는 25일 서면진술서를 제출했다. 나 전 의원은 23일 서울지방경찰청에 출석해 조사를 받았다.

2012년 3월 21일 수요일

“김재호 국가법 무시 특권의식” 언론-트위플 비판 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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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출직 특별수사관이 맡아야”…경찰, 3차 불응시 ‘강제구인’

나경원 전 새누리당 의원의 남편 김재호 서울 동부지법 부장판사가 ‘기소청탁’ 의혹에도 불구하고 경찰의 출석요구에 계속 불응하자 이에 대한 언론들과 트위터리안들의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특히, 김 부장판사가 현직 판사의 신분이라는 점에서 이같은 비판은 더욱 가중되고 있는 분위기다. 

경찰은 ‘기소청탁’ 의혹과 관련, 김 부장판사에게 20일까지 출석하라고 요구했지만 김 부장판사는 이에 응하지 않았다. 이에 앞서 15일까지 출석하라는 경찰의 요구에도 김 부장판사는 불응했다. 는 “(김 부장판사 측이) 사전에 경찰 측에 '재판 일정이 있으니 못 나가겠다'고 알리지도 않았다”고 전했다. 

기소청탁 당사자로 김 부장판사를 지목한 박은정 인천지검 부천지청 검사도 출석에 응하고 있지 않지만, 김 부장판사의 경우 피고소인 신분이고 박 검사는 참고인 신분이다. 이 사건의 공소시효는 다음달 24일 까지다. 

일단, 경찰은 오는 26일까지 출석하라는 3차 출석통보를 한 상태다. 만약 이번에도 출석에 응하지 않을 경우, 경찰은 김 부장판사에 대한 강제구인에 나서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관할 법원의 체포영장을 발부받아야 하는 까닭에 강제구인이 이뤄질 수 있을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관련, 는 “김 판사에 대한 체포영장이 발부될 가능성은 낮다는게 주변 얘기”라며 “이렇게 되면 경찰은 피고소인에 대한 조사조차 못한 상황에서 사건을 검찰에 송치해야 한다. 판사, 검사간의 유착의혹이 담겨 있는 이 사건을 검찰서 시간만 조금 끌어주면 공소시효를 넘겨 사건을 합법적으로 종결시켜 버릴 수 여지도 있다”고 보도했다. 

“대법원, 사법부 신뢰추락 막고싶으면 김재호 방치해서는 안돼”

이와 관련, 은 “판검사라는 자신들의 신분을 이용해 수사에 협조를 안 하고 있다. 시민들에게 법 집행에 있어서 모범을 보여야 할 사람들인데 오히려 버티기로 일관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한 경찰 관계자의 말을 전했다. 

도 “경찰 관계자는 ‘시간을 끌어 경찰조사를 받지 않고 사건이 검찰로 넘어가길 바라는 것이 이들의 속셈일 것’이라며 ‘과연 검찰의 출석 요구에도 불응할지 두고 볼 일’이라고 비판했다”고 보도했다. 

는 21일 사회부 신광영 기자의 ‘기자수첩’을 통해 김 판사와 박 검사를 함께 비판했다. 신 기자는 “관행에 비춰보면 이들의 출석 거부가 이상할 건 없다. 판검사가 피고소인이나 참고인 신분으로 경찰에 소환된 전례는 거의 없다. 정확히 말하면 경찰이 판검사를 소환할 정도로 수사의 진도가 나간 적이 없다”고 지적했다. 

신 기자는 지난해 ‘도가니’ 사태 취재차 박 검사와 몇 차례 통화했던 경험을 소개하며 “그때의 당당함이 지금은 어디로 갔는지 박 검사에게 묻고 싶다”고 지적했다. 또한 “법집행 기관을 우습게 보는 김 판사 역시 법정에서 무슨 낯으로 법과 원칙을 논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이에 앞서 는 전날 사설을 통해 “검찰이 모든 경찰 수사에 대한 지휘권을 갖고 있다고 해서, 또 수사가 끝난 사건은 검찰의 기소를 거쳐 최종적으로 법원의 판단을 받는다고 해서 판사 검사가 경찰에 상전인 양 행세하며 경찰 수사를 거부해서는 안 된다”며 “그런 행동은 법체계를 무시하는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은 강한 어조로 김 판사를 비판했다. 

이 신문은 “법관은 법의 해석자인 동시에 불의의 심판자이며 공익의 대변자”라며 “법관이 개인적 이익을 위해 지위를 남용할 경우 법치는 뿌리째 흔들리게 된다. 더욱이 누구보다 법의 정신과 절차를 존중해야 할 법관이 수사기관의 적법한 출석 요구에 이유 없이 불응하는 것은 납득할 수 없는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한, 은 “(김 판사는) 나 전 의원이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만큼, 사건의 파장이 이대로 잦아들 것으로 생각하고 버티려는 심산으로 보인다. 경찰은 이런 김 판사의 의도에 휘말려서는 안된다”며 “대법원도 사법부의 신뢰 추락을 막고 싶다면 김 판사를 이대로 방치해서는 안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트위플 “법을 누구보다 앞장서 지켜야 할 사람이....”

YTN은 “법을 집행하는 판사와 법에 따라 수사하는 검사가 사실 규명을 위한 적법한 절차를 무시하는데 대해 일반인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고 보도했다.

이어 “자백 위주의 수사 관행은 틀림없이 문제가 있지만, 범죄가 저질러졌다고 믿을 만한 정황이 충분히 나왔기 때문에 피고소인의 사회적 지위와 관계 없이 빨리 출석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박경신 고대 법학전문 대학원 교수의 말을 전했다.

트위터 상에서도 “버티기 하는건가요???”(sungj****), “많이 쪽팔린가 봐요”(security******). “법을 누구보다도 앞장서 지켜야 할 사람이 어찌 저리 버티는가?”(mrpar*****), “국민을 모독하는 것이며, 스스로 국가법을 무시하는 처사”(sinb*****) 등 김 부장판사에 대한 비판적인 글들이 쏟아지고 있다. 

아이디 ‘1sk****’은 “특권의식!! 국민들이 허물어야 합니다. 이제 그런 시대는 아니잖아요???”라는 글을 올렸다. ‘sungtae*****’는 “사법부의 법무시에 대한 처벌은 국민이 선거로 뽑은 특별수사관이 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는 “서울경찰청 관계자는 21일 ‘나(경원) 전 의원에게 오늘 10시까지 경찰에 출석하라고 요구했지만 아무런 답변이 없었다’며 ‘오후에 나 전 의원에게 2차 출석요구서를 발송할 계획’이라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나 전 의원은 불출석 사유를 밝히거나 연기요청서를 경찰에 제출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2012년 2월 11일 토요일

[사설] 법관 길들이기용 ‘부러진 인사’, 판사들이 바로잡아야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02-10일자 사설 '[사설] 법관 길들이기용 ‘부러진 인사’, 판사들이 바로잡아야'를 퍼왔습니다.
페이스북에 이명박 대통령을 조롱하는 글을 올려 논란을 빚은 서기호 서울북부지법 판사가 결국 재임용에서 탈락했다. 대법원이 어제 발표한 연임 법관 113명의 명단 어디에도 서 판사의 이름은 보이지 않았다.
대법원이 밝힌 서 판사의 재임용 탈락 사유는 ‘근무성적이 현저히 불량해 판사로서 직무를 수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구실일 뿐임을 알 만한 사람은 안다. 진짜 탈락 사유는 ‘가카의 빅엿’ 등의 글로 ‘각하’를 욕보인 죄, 촛불재판에 불법개입한 신영철 대법관을 앞장서 규탄한 죄, 언론 인터뷰에서 영화 에 대해 “불편하지만 잘 만들었다”고 칭찬한 죄 등이다. 법원 수뇌부와 집권세력은 서 판사의 행동을 묵과하지 않고 재임용 탈락 조처로 철저히 보복했다.
서 판사 재임용 탈락은 다른 판사들에 대한 강력한 경고이기도 하다. 수뇌부의 눈밖에 벗어나는 ‘튀는 행동’을 하면 언제든지 서 판사와 똑같은 신세가 될 수 있다는 무서운 위협이다. 법관의 신분은 이제 ‘10년짜리 계약직 공무원’으로 전락해 버렸다. 서 판사의 재임용 탈락 조처에는 법원을 온통 온순하고 순치된 양떼들로 채우겠다는 법원 수뇌부의 강력한 의지가 깃들어 있다.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불신이 만연한 것은 사실 서 판사와 같은 판사들의 존재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정치권력의 눈치를 보는 판결, 힘없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이지 않는 오만함, 고압적이고 권위적인 재판 진행 등에 있다. 법정에서 재판 당사자들에게 막말을 하고 이들의 주장을 합리적 이유 없이 배척하는 일부 판사들이야말로 사법부 불신의 근원이다. 하지만 서 판사가 재판 과정에서 그런 모습을 보였다는 이야기는 들려오지 않는다. 오히려 주변사람들은 그가 “항상 소통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실천해온 법관”이라고 전한다. 그런데도 대법원은 사법 불신의 근원에 메스를 대기는커녕 ‘괘씸죄’에 걸린 판사를 내치는 일에만 골몰했다.
사법부의 물구나무선 풍경은 신영철 대법관과 서기호 판사의 엇갈린 운명에서도 극명히 확인된다. 법관의 독립성을 무시한채 촛불재판에 불법개입한 신 대법관은 꿋꿋이 살아남아 이번에 서 판사의 생사를 판가름하는 대법관회의의 일원으로까지 참여했다. 이런 역설적 비극이 바로 사법부가 처한 위기의 본질이다.
주목되는 것은 젊은 판사들의 인식과 행동이다. 재임용 제도가 법원의 정책에 순응하지 않는 판사, 윗사람들에게 도전적인 의견을 내는 법관들을 솎아내는 도구로 악용되는 한 재임용 탈락의 위협에서 자유로울 판사는 아무도 없다. 법관 재임용 문제는 단지 서기호 판사 한 명이 법복을 벗고 안 벗는 문제를 넘어선다. 판사들이 수긍할 수 있는 공정하고 합리적인 심사기준, 객관적이고 투명한 재임용 절차 마련은 사법부의 존망이 걸린 문제다. 지금처럼 원칙도 심사기준도 모호하기 짝이 없는 ‘부러진 인사’를 방치하는 한 사법부는 ‘부러진 신뢰’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2012년 2월 5일 일요일

사법 불신의 ‘인계철선’을 건드리다


이글은 한겨레21 [2012.02.06 제896호] 기사 ' 사법 불신의 ‘인계철선’을 건드리다'를 퍼왔습니다.
의 흥행 돌풍이 드러낸 사법 불신의 현실… 전관예우·유전무죄 등 신념화된 ‘불신’ 넘는 첩경은 국민과의 소통과 교감뿐


»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로비에 법원 마크 모양의 그림자가 비치고 있다. 영화 <부러진 화살>을 계기로 ‘사법 불신’의 그림자도 깊어지고 있다. <한겨레> 김태형

‘석궁 사건’을 다룬 영화 이 2012년 벽두, 사법부를 향해 활시위를 당겼다. 은 2007~2008년 석궁 사건의 ‘진실’을 캐는 기사를 여러 차례 내보냈다. 재판과 마찬가지로 기사에도 예단은 없어야 한다. 이번호에는 영화를 계기로 4년여 만에 다시 불거진 석궁 사건과 사법 불신을 둘러싼 여러 층위의 시각을 담았다. 법조계와 시민단체, 법대생들, 석궁 사건 당사자들의 주장이 난마처럼 얽힌다. 활은 시위를 떠났지만 과녁에는 아직 닿지 않았다. 확실한 것은 ‘과녁’은 하나가 아니라는 점이다._편집자
한국 사회에서 법원과 검찰은 불신의 대상이자 개혁의 대상이다. 더욱 앙상한 현실은, 그럼에도 우리 사회의 갈등을 깔때기처럼 수렴하고 최종적으로 해결하는(혹은 어떻게든 봉합해버리는) 통로가 법원과 검찰이라는 사실이다. 그쪽 동네 사람들은 깔때기 대신 스스로를 ‘수챗구멍’ ‘하수구’라고 칭하기도 한다. 뒤치다꺼리를 한다는 자조가 섞여 있지만, 최고 권력까지 빨아들이는 강력한 수챗구멍이자 하수구다.
판단하는 판사 vs ‘진실’ 안다는 당사자

2007년 1월15일, 교수 재임용 선고를 기대한 재판에서 패소한 김명호 교수(영화에서는 김경호)는 석궁을 들고 교수지위 확인소송 항소심 재판장인 박홍우 판사(영화에서는 박봉주)의 집을 찾아간다. 영화 도 이 지점에서 시작한다. 현직에 있는 한 고위 법관은 이 개봉하기 전 사석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건 판결을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을까 밤늦게까지 고민하고 고민한다. 그런데 이런 영화가 나오면 그동안 쌓아온 노력들이 한번에 와르르 무너지니 미칠 노릇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매미 날개처럼 가벼운 것들이 쌓이고 쌓이더니 결국 큰 거 한 방에 무너지는 상황이 될 수도 있겠다”고 했다. 서울 지역의 한 부장판사는 “사법부에 대한 불신은 자동반사적이다.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푸념했다. 사법부는 이 장애인 학교에서의 성폭행 사실을 다뤄 재수사와 관련자 처벌까지 이끌어낸 영화 처럼 되지 않을까 우려한다고 한다.
김 교수를 둘러싼 쟁점은 크게 세 가지다. 우선 성균관대 수학과 교수 재임용 탈락이 수학 입시문제 오류를 지적한 괘씸죄 때문인지 아니면 교수로서의 자질 부족 때문인지를 두고 다툰다. 영화는 이 부분을 ‘괘씸죄’로 판단하고 시작하지만 교수지위 확인소송의 쟁점과 실제 재판 과정을 자세히 다루지는 않는다. 둘째는 김 교수가 석궁을 의도적으로 발사했는지, 실제로 박 판사가 활을 맞았는지다. 마지막으로 “재판이 아니라 개판”이라는 김 교수의 주장처럼, 석궁 사건 재판 진행(특히 항소심)이 공정성을 잃지 않고 적절히 진행됐는지다. 101분짜리 영화의 대부분이 여기에 집중하고, 100만 명이 넘는 관람객 대부분은 이 부분에서 사법부에 공분한다. 이 환기한 문제의식이 단지 교수 구명운동이나 유무죄만을 다투는 걸로 끝나서는 안 된다. 은 사법 불신이라는 ‘인계철선’을 건드렸다.
“말 끊지 마세요.” “끝까지 들으세요.” “이게 재판입니까? 독재입니다.”(김경호 교수)
김 교수는 “당연히 법대로 합니다”라고 답했던 재판장과 끊임없이 싸워야 했다. 교수가 형사소송법의 법리보다는 자구와 조문에 ‘집착’했다는 비판도 있다. 법리는 법률 전문가나 법 기술자의 몫이다. 눈에 보이는 대로의 법 조문을 지키라는 시민의 요구를 거부할 명분은 없다. 영화 속 교수의 싸움은 증인·증거 신청이 필요 없다는 석궁 사건 항소심 재판장의 거듭된 ‘기각’ 결정에서 촉발됐다. 그 자리에서 판단할 수 있는 사안도 미루기를 반복한다. 증거조사는 기본적으로 ‘사실심’인 1심에서 이뤄진다. 항소심 역시 사실심이라는 틀 안에 있지만 재판 진행은 기본적으로 1심에서 드러나고 인정된 사실관계를 바탕으로 한다. 대법원 관계자는 “영화에서는 항소심만 잘라서 집중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재판은 3심제다. 재판에는 흐름이 있고 항소심에서 살펴볼 수 있는 사실관계의 범위라는 게 있다”고 했다. 와이셔츠의 혈흔 감정 신청을 기각하고 박홍우 부장판사를 다시 증인으로 세우지 않은 데는 영화에서 나오지 않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제출된 증거만을 가지고 판단하는 판사와 ‘진실’을 알고 있다는 당사자 사이의 좁힐 수 없는 간극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법관은 법과 양심에 따라 판단한다’고 하지만 유독 약한 고리가 있다. 재벌 등 대기업과 사학재단이다. 간혹 단호한 판결이나 의미 있는 판례가 나오기는 하지만 상급심에서 곧바로 뒤집히기 일쑤다. 수백억원대 횡령이나 배임을 저지르고도 대기업 회장들은 기껏해야 집행유예와 사회봉사 명령을 달고 나온다.
당시 항소심 재판장, “부끄럽지 않은 판결”
그러나 법관이 생각하는 이런 식의 ‘합리적 판단’은 사법 불신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지난해 윤아무개씨는 ‘사법부를 포기했다’. 민사소송 과정에서 재판부는 윤씨에게 입증책임을 요구했지만 정작 자신이 제출한 입증자료들을 모두 배척해버렸기 때문이다. 윤씨는 소송 상대방이 인정한 자료까지도 재판부가 부인한 것을 몹시 억울해했다. 그는 1심에 이어 항소심에서도 졌다. 그는 “1심에서 한번 죽이고 항소심에서 확인사살했다”는 격한 표현을 썼다. 그리고 “국민을 위한 사법기관이 아닌 행정기관에 불과하다”며 상고를 포기했다.
“재판의 본질은 법정에서 이루어지는 법관과 소송관계인 간의 적절한 의사소통입니다. 법관은 법정에서 성의를 다해 당사자의 목소리에 귀기울여야 함은 물론, 당사자의 주장과 입증을 어떻게,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는지까지 가감 없이 표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의사소통을 통하여 당사자를 적극 설득하고, 재판 결과를 예측 가능한 것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인간은 본래 불완전한 존재이며, 법관도 여기에서 예외일 수 없습니다. 법관 역시 소송관계인들과 원활한 소통을 통해 자신의 오류와 편견을 바로잡을 기회를 가져야 합니다.” 석궁 사건 석 달 뒤인 2007년 4월2일, 신임 법관 임명장 수여식에서 당시 이용훈 대법원장이 한 말이다. 석궁 사건 항소심 3차 공판이 열린 날이었다. 이 대법원장은 “국민의 법관에 대한 불신이 급기야 법관에 대한 물리적 테러까지 벌어지게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며 이같은 소통을 강조했다. 때늦은 반성일 수도, 아니면 새내기 법관들을 앞에 둔 의례적인 훈시였을 수도 있다. 대법원장의 ‘간곡한’ 요청이 있은 뒤에도 영화에 등장한 석궁 사건 항소심 재판부가 소송 당사자인 교수와의 소통에 얼마나 노력을 기울였는지는 의심스럽다. 실제 항소심 재판장을 맡았던 신태길 변호사는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동료 판사의 피해에 감정적으로 대응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 “‘합리’ 하나를 20년 넘게 추구했다. 부끄럽지 않은 판결”이라고 했다.
법관윤리강령은 ‘신속하고 능률적이면서도 충실한 재판’을 규정한다. 양립하기 힘든 조건들이지만 그 최대치를 법관에게 요구한다. 소송관계인에게 친절하고 정중하게 대할 것도 규정하고 있다. 대법원 설명에 따르면 “소송관계인과 일반 국민은 일차적으로 법정에서 법관의 재판 진행 태도를 보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법관의 불공정한 발언이나 태도만으로도 재판이 불공정하다는 의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니 조심하라는 취지다.
사법부의 약한 고리, 재벌과 사학재단
과거보다 많이 개선됐다고는 하지만 체감으로 느끼는 법정 현실은 다를 수 있다. “원심이 유죄를 선고했다고 하여 선입견을 갖고 검사의 증거신청은 입증 취지도 묻지 않고 받아주면서 변호인이 제출한 증거는 모두 필요 없다면서 배척하여 사실상 심리를 거부함.” 의 한 장면이 아니다. 서울지방변호사회에 제출된 ‘2011년 법관 평가’ 자료 가운데 하나다. 어느 변호사는 증거신청을 했다가 재판장으로부터 “피고 대리인, 지금 여유 있는 것 같은데 내가 참고 있다”는 핀잔을 듣기도 했다고 한다.
“사학재단과 사법부의 짜웅.” “이거 2천만원짜리 전화다.”(영화 속 박준 변호사)
‘법관은 법과 양심에 따라 판단한다’고 하지만 유독 약한 고리가 있다. 재벌 등 대기업과 사학재단이다. 간혹 단호한 판결이나 의미 있는 판례가 나오기는 하지만 상급심에서 곧바로 뒤집히기 일쑤다. 수백억원대 횡령이나 배임을 저지르고도 대기업 회장들은 기껏해야 집행유예와 사회봉사 명령을 달고 나온다. 판사들은 법과 양심 이외에 “한국 경제에 대한 기여”라는 모호한 단서를 든다. 시장 질서를 황폐하게 한 이들에 대한 ‘봐주기 판결’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비판에도 의연하다. 지난 1월19일 담철곤 오리온그룹 회장이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받고 풀려났다. 담 회장은 회삿돈으로 미술품을 사들이는 등 300억원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3년이 선고됐다. “피해액 변제, 향후 윤리경영과 사회공헌활동 다짐 등 개전의 정이 보인다”는 이유로 형이 줄었다. 1심에서 인정된 사실관계는 크게 달라진 게 없는데 법관의 판단만 달라진 셈이다.
사학비리도 마찬가지다. 비리재단은 잘못된 법과 교육관료, 사법부가 키웠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대법원은 2007년 판례를 바꿔 대표적 비리재단인 상지대 김문기 전 이사 쪽이 학교에 다시 발을 딛게 해주는 판결을 내놨다. 형식적 해임 절차 등을 근거로 사립학교에서 부당하게 해임된 이들의 손을 번번이 꺾어버린 것도 사법부였다. 김 교수가 교수지위 확인소송에서 패소한 것을 “사법부와 사학재단의 짜웅”으로 볼 수는 없다. 그렇다고 과거 사학재단 손을 숱하게 들어줬던 사법부에 대한 불신까지 국민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자가당착이다. 힘있고 돈 있는 사람들은 죄를 지어도 풀려난다는 ‘유전무죄’ 신화는 사법 불신을 떠받드는 기둥이 된다.
전관이나 로비가 통한다는 ‘불신’
또 다른 기둥은 전관예우와 법조 인맥이다. 에서 박준 변호사는 “초등학교 친구라 친하다”는 판사에게 배당된 사건을 맡기로 하고 착수금 500만원을 받는다. 잘만 되면 “2천만원”을 받을 수 있는 사건이었다. 돈 좀 있다는 사람들은 수사 단계에서는 검찰 출신 변호사를, 기소가 돼 재판이 시작되면 판사 출신 변호사를 선임하는 것이 기본이다. 경찰 단계 수사에서는 경찰 출신 변호사를 붙이기도 한다. 같은 건물이나 방에서 일했거나, 사법연수원 동기이거나, 고향이 같거나, 출신 대학은 물론 출신 초·중·고교까지 찾아서 엮는다. 검사는 검사가 알고, 판사는 판사가 잘 안다는, 그래서 조금이라도 더 유리한 판단을 받아낼 수 있다는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2010년 국정감사 자료를 보면, 2005년 이후 법원을 떠난 퇴직 판사 520명 가운데 절반이 넘는 273명이 로펌행을 택했다. 이 가운데 김앤장·광장·태평양 등 상위 10대 로펌으로 자리를 옮긴 판사는 168명이었다. 양질의 법률 서비스라는 측면에서 법관들의 로펌행을 무조건 나쁘다고 볼 수는 없다. 문제는 대형 로펌들이다 보니 일반인들보다는 대기업·재력가 등과 관련한 송무·자문 일을 주로 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최근에는 이용훈 대법원장, 이홍훈·박시환·김지형·김영란 대법관이 퇴임 뒤 변호사 개업이나 로펌행 대신 강단 등을 택하기는 했지만, 현직에서 물러난 고위 법관들이 거액을 받고 대형 로펌으로 옮겨가는 현상은 심각한 수준이다. 2005년 이후로 사법부 최고 수장인 대법원장을 포함해 퇴임 대법관 9명이 로펌에 들어갔다. 서울 서초동의 한 법조인은 “재판 결과를 뒤집는 식의 전관예우는 이제 없다”고 말했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전관이나 로비는 통한다’는 일반인들의 ‘사법 불신’은 도처에 만연하다. 지난 1월26일 대법원3부(주심 민일영 대법관)는 판검사에게 로비를 해 구속 피고인을 석방시켜주겠다고 속여 피고인 가족에게서 6억원을 가로챈 장아무개 변호사에게 징역 2년을 선고했다. 대법원은 “법조계 전반에 국민의 불신을 야기했다”고 설명했다. 불신 제공자는 누구일까.


» 영화 <부러진 화살>의 한 장면. 사법부는 “법관도 불완전한 존재”라는 점을 인정한다. 그러나 실제 재판에서 법관은 신과 같은 ‘전권’을 행사하는 경우가 많다.

“전치 3주에 징역 4년은 과했다”
“판단은 재판장이 합니다.”(박봉주 판사)
지난 1월19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 대법정. 대법관 13명 전원이 참석하는 전원합의체 선고가 있었다. 대법원장을 포함한 대법관 13명의 자리가 간만에 꽉 찼다. 국회 동의가 늦어져 대법관 자리 두 석이 한동안 공석이었는데, 최근 김용덕·박보영 대법관이 뒤늦게 자기 자리를 찾아갈 수 있었다. 대법관석을 정면에서 바라보고 오른쪽에서 네 번째, 신영철 대법관의 자리다. 대법관이 되기 전, 그러니까 서울중앙지법원장으로 있던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 사건의 재판을 맡은 판사들에게 압력을 행사한 사실이 드러났다. 어영부영 대법관 자리를 보전하기는 했지만 ‘법률과 양심에 따라 재판한다’는, 사법부 독립을 믿고자 하는 ‘소박한 기대’는 뿌리부터 흔들렸다. “재판을 윗사람이 지시하는 대로 하는군요?” 부장판사 출신으로 오래전부터 사법개혁을 주장해온 문흥수 변호사는 자신의 책 에서 신 대법관 사건 직후 사건 의뢰인으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다고 썼다. 법관의 신분은 법으로 보장된다. 권력에 흔들리지 말고 제대로 재판하라는 취지인데, 이는 재판에서 가장 중요한 공정성을 지키기 위해서다. 스스로 물러나지 않고 버틴 신 대법관을 내칠 뾰족한 방법은 없었다고 해도, 신 대법관 사건은 사법부가 사법부 스스로를 ‘징치’하는 데 한계가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피해자가 고법부장이었던 석궁 사건에서도 사법부는 사법부 스스로를 다루는 데 미숙함을 드러냈다는 것이 법조계 안팎의 중론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당시에는 아직 국민참여재판 제도가 시작되기 전이었다. 지금이었다면 국민참여재판으로 석궁 사건을 다뤘을 것이다. 사법부가 사법부를 판단하는 문제는 조심했어야 한다. 당시에도 좀더 세심하게 재판을 진행했어야 한다는 아쉬움이 있다”고 했다. 김 교수에게 확정된 징역 4년도 ‘감히’ 사법부를 공격한 데 대한 ‘보복’이라는 지적이 있다. 한 부장판사는 “사법 테러라는 점에서 사안이 심각하긴 하지만 전후 사정을 고려할 때 전치 3주에 징역을 4년이나 때린 것은 과하다고 볼 수도 있다”고 했다.
지난 1월26일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에게 벌금 3천만원을 선고한 김형두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집 앞으로 보수단체 회원들이 몰려가 “법복을 벗겨라”는 현수막을 들고 집으로 달걀을 던졌다. “국민 저항권 차원”이었다는 석궁도, 이념에 따른 달걀 세례도 옹호할 생각은 없다. 김일수 한국형사정책연구원장은 “이른바 ‘분노사회’에서 대중이 찾는 분노의 대상은 MB가 될 수도, 검찰이 될 수도 있다. 이번에는 사법부 차례”라고 했다. 그는 “사법부의 권위도 신성한 법전 속에서 세속의 차원으로 내려왔다고 봐야 한다. 공정성을 통해 국민을 설득하고 섬기지 않으면 권위를 확립하기 어렵게 됐다”며 “한 개인, 하나의 사건에서는 억울할 수 있겠지만 사법은 사회질서를 위해 빼놓을 수 없는 메커니즘이다. 한 단계 더 높은 단계로 고양시켜야 한다”고 했다.
김일수 한국형사정책연구원장은 “이른바 ‘분노사회’에서 대중이 찾는 분노의 대상은 MB가 될 수도, 검찰이 될 수도 있다. 이번에는 사법부 차례”라고 했다. 그는 “사법부의 권위도 신성한 법전 속에서 세속의 차원으로 내려왔다고 봐야 한다. 공정성을 통해 국민을 설득하고 섬기지 않으면 권위를 확립하기 어렵게 됐다”고 했다.
당신이 심판받기 원하는 방법으로 심판하라
법학전문대학원 설치, 법조일원화, 양형기준 마련, 지법-고법판사 이원화 등을 통해 사법개혁 요구에 응해온 대법원은 최근 전관예우를 막으려고 평생법관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은 결국 국민과의 소통, 교감의 문제 아니겠냐”고 말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1월27일 오후 법원행정처장 명의로 김형두 부장판사에 대한 보수단체 회원들의 집단행동 및 영화 과 관련한 공식 견해를 한데 묶어 발표했다. “법치주의와 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도전으로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재판 당사자가 재판장에게 가한 테러를 소재로 한 영화가 상영되고 있는 상황에서 일어난 이러한 사태는 재판의 독립을 심각하게 침해한다. 특히 해당 영화는 기본적으로 흥행을 염두에 둔 예술적 허구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사법 테러를 미화하고 근거 없는 사법 불신을 조장하는 것이어서 심히 유감스러운 일이다.” 영화에 대해 말하고 싶어도 차마 못하고 있었는데 뺨 때려줘서 고맙다는 꼴이다.
일본 법정영화 (2006)는 홍성수 숙명여대 법대 교수(인권법)의 말을 빌리면 “교과서 같은 영화”다. 억울한 피고인이 나오고 판사는 증거신청을 기각한다. 사법 피해자들이 등장하고 피고인의 주변인들은 어느덧 형소법 절차 전문가가 된다. 영화의 마지막은 이렇게 끝난다. “부디 당신이 심판받기를 원하는 그 방법으로 나를 심판해주시기를.”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2012년 1월 1일 일요일

최강욱 "김근태 유죄?…'검사는 사냥개', '판사는 괴물'"


이글은 오마이뉴스 2011-12-31일자 기사 '최강욱 "김근태 유죄?…'검사는 사냥개', '판사는 괴물'"'을 퍼왔습니다.
민주화 대부 김근태 영면에 페이스북 통해 검찰과 법원 통렬히 비판


▲ 최강욱 변호사(사진=페이스북)
고문 후유증으로 타계한 '민주화의 대부' 김근태 의장과 관련, 최강욱 변호사가 고문수사를 촉구하는 '김근태'의 호소를 외면한 채 고문경관을 처벌하기는커녕 공산주의자로 몰아간 검사와 유죄를 인정했던 판사 그리고 반성 없이 그들이 검사장과 대법관까지 오르게 한 검찰과 법원을 통렬히 비판했다.

국방부 검찰단 고등검찰부장을 역임한 최 변호사는 최근엔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의 피해자인 김종익 씨 변호인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그동안 사법부에 대해 쓴소리를 해왔다.

최강욱 변호사는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먼저 "영웅은 떠나 별이 되었다. 한 때 그의 동지였던 이들, 심상정과 박노해의 거처를 불지 않는다는 이유로 알몸상태에서 갖은 고문을 당했던 오늘의 '실세' 김문수와 이재오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할까?"라며 말문을 열었다.

그는 이어 "김근태의 영정 앞에 떳떳이 설 수 있을까? 변절에 대한 숱한 변명과 궤변을 이제는 진솔하게 마음속으로나마 사과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이는 고인과 함께 민주화운동을 펼쳤던 이들이 현재인 고인과 대척점에 있는 한나라당에 몸담고 있는 것을 비판한 것이다.

최 변호사는 특히 고문피해자인 '김근태'를 오히려 '빨갱이'로 기소하고 유죄판결을 내렸던 검사와 검찰 그리고 판사와 법원을 싸잡아 비난했다.

그는 "고문 피해를 밝히며 수사를 촉구하는 김근태의 호소를 애써 외면한 채 '그건 그것이고 이건 이것'이라며, 고문경관을 처벌하기는커녕 김근태를 속속들이 빨갛게 물든 공산주의자로 몰아갔던 정권의 개. 사냥개로서의 사명에 충실해 결국 검사의 별이라는 검사장으로 출세를 거듭한 검사 K씨"라고 실명을 거론하며 '정권의 사냥개'로 신랄하게 비난했다.

이어 "후일까지 '고문사실에 대하여는 피의자 김근태의 주장만이 있을 뿐 이를 뒷받침할 하등의 자료가 없었으며 관련 재판부에서도 이러한 피의자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음'을 변명한 대단한 K씨"라고 지적하며 "물론 이근안의 고문사실이 밝혀져 처벌받은 뒤까지 단 한 번도 반성하지 않은 대한민국 검찰"이라고 비판했다.

또 "법정에서 고문 사실을 호소하는 피고인 김근태의 진실을 철저히 외면하고, 그에게 유죄를 인정해 징역 7년을 선고한 판사 S씨. 그리하여 K씨가 변명하고 기댈 언덕을 만들어 준 괴물"이라며 "그토록 탁월한 '재판 능력'을 바탕으로 사법부의 요직을 섭렵하며 후일 대법관까지 지낸 사람"이라고 질타했다.

아울러 "과거사를 반성한다면서도 검찰의 잘못일 뿐 법원은 어쩔 수 없었다며 짐짓 헛기침만 날리는 대한민국 법원"이라고 일갈했다.

최 변호사는 "이들은, 이 조직은 김근태의 죽음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라는 질문을 던진 뒤 "설마 자신들의 '품위 넘치는 삶'과 김근태의 신산한 삶을 비교하며 안도감에 휩싸이진 않았겠지. 그저 덮이고 말았을 일을 굳이 밝혀내 자신들의 명예에 흠집을 낸 사람으로 김근태를 기억하진 않겠지. 그들이 누리는 달콤한 삶과 권력이 결국 김근태의 헌신과 희생을 딛고 이루어진 것이란 점을 부인하진 않겠지. 최소한의 도리를 아는 인간이라면, 설마 지금은 진심으로 천벌을 두려워하겠지"라고 자답했다.

그는 또 "자신을 알아 달라며, 출세한 자신에게 즉각적인 존경과 복종을 표현하라며 아랫사람을 을러대다 결국 억지 화해까지 만들어낸 변절자들은 지금도 자신의 삶이 김근태의 그것보다 나은 것이라 자위하며 가슴을 쓸어내리는 건 아니겠지. 심문을 했을 뿐 고문을 하지 않았으며, 예술의 경지에까지 승화시킨 기술로 빨갱이를 잡았을 뿐이라 간증하신다는 이근안 목사님도 김근태의 서거를 보며 이제 고통이 끝났다고 기꺼워하는 것은 아니겠지"라고 꼬집었다.

최 변호사는 그러면서 "제발, 그러지 않기를 바란다. 그것들이 사람이라면. 최소한 사람의 탈을 쓴 생물이라면"라고 간절히 바랬다.

그는 "다시 사마천의 탄식이 떠오르는 날이다. 묵은해는 이토록 안타까운 별을 하늘로 보내며 저물어간다"고 고인을 그리워하며 "그래서 나는 저기에 등장한 것들의 삶을 기억할 것이다. 절대 잊지 않고 지켜볼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탄식은 과연 천도(天道)라는 것은 있는 것인가? 착한 이가 곤경에 빠지는 것이 하늘의 도인가? 라는 것이다.

"하늘의 도(天道)는 사사롭지 않고 늘 착한 이와 함께 한다고 하는데, 백이와 숙제 같은 사람은 착한 사람인가? 그들은 행실이 그토록 고결해도 굶어죽었다. 공자는 자신의 제자들 가운데 진정 학문을 좋아하는 이는 안연이라 했지만, 안연은 자주 궁핍하여 굶주리다가 끝내 요절했다. … 극악무도한 도척은 날마다 무고한 이를 죽이고 사람의 간을 꺼내 먹었으며 무리 수천 명을 모아 포악방자하게 천하를 횡행했지만 끝내 천수를 다하고 죽었다. … 이른바 하늘의 도라고 하는 것은 과연 옳은가 그른가(是邪非邪)?"

최 변호사는 끝으로 "김근태 의장님. 이제 편히 쉬세요. 남은 일은 저희에게 맡기시고..."라고 영면을 기원했다.

한편, 최 변호사의 이 글에는 220명이 넘는 친구들이 추천했고, "멋진 글이어서 더 서럽군요"라는 등 30개가 넘는 공유 댓글이 달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로이슈](www.lawissue.co.kr)에도 실렸습니다. 

2011년 12월 25일 일요일

정봉주 유죄, 세계적 유례없는 엉터리 판결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1-12-23일자 기사 '정봉주 유죄, 세계적 유례없는 엉터리 판결'을 퍼왔습니다.
[기고] 박경신 고려대 교수 "진실 입증 못하면 유죄? 기독교인들 다 잡아갈 건가"

국가가 모든 걸 통제하고 개입할 필요는 없다. 상대성 이론은 국가개입 없이 발견되었고 아이폰은 국가지원 없이 잘 만들어졌다.
사법부가 모든 말의 진위 여부를 결정할 필요도 없다. 안기부 X파일 검사가 실제로 떡값을 받았는지 조선일보 사장이 장자연의 성상납을 받았는지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감염 가능성이 얼마나 높은지 등등 어떤 명제들은 과학적으로 현실적으로 확인이 불가능하다. 아마도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명제인 ‘신은 존재한가?’도 그 진위도 결정되지 않았지만 우리는 수천년을 잘 살아 왔다. 가장 신실한 기독교인들의 신실함은 이 질문에 대한 고민의 강도로 결정된다.
국가가 국민이 한 말이 허위라고 해서 잡아가두거나 국가가 독점하는 기타 강제력을 행사하려면 우선 그 말이 허위임이 입증되어야 한다.


▲ BBK 허위사실 유포 혐의 등으로 기소된 정봉주 전 민주당 의원이 22일 서울 대법원에서 열린 상고심 선고에서 징역1년을 선고받은 뒤 지지자들에게 소감을 밝히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이번 정봉주 전 의원의 유죄판결은 이 당연한 원리를 송두리째 무시한 판결이다. ‘BBK가 이명박 소유가 아니다’라는 입증이 없는 상황에서 정봉주 전 의원에게 ‘네 말이 진실이라고 입증하지 못했으니 유죄’라는 판결은 전세계적으로 그리고 우리나라 역사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판결이다.
대륙법과 영미법을 막론하고 어느 나라에서도 진실인지 입증하지 못한 명제의 책임을 그 말을 한 사람에게지우는 나라는 없다. 그런 논리라면 전세계의 기독교인들은 야훼의 존재를 입증하지 못한 죄로 모두 감옥에 가야 할 것이다. ‘확실한 증거가 없으면 입을 다물라’는 것인데 이런 규범하에서 문명이 어떻게 발전하고 사상이 어떻게 발전할 것인가. 노회찬 안기부 X파일 사건에서는 다행히도 우리 대법원이 정확하게 말했다. 

“안강민, 홍석현, 이학수가 법정에 출두해서 ‘우린 떡값을 주지도 받지도 않았다’고 증언이라도 하지 않는 이를 입증하지 못한 책임을 노회찬에게 지울 수 없다”고. 노회찬 대법원의 판결의 원리를 완전히 뒤집은 이번 이상훈의 판결은 우리나라 사법부의 수준이 얼마나 저열한지 선진국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우리가 얼마나 깊게 우리 속살을 도려내야 하는지 보여준 판결이다.
이상훈 대법관은 ‘BBK가 이명박 소유이다’라는 명제가 허위인지를 판시하지 않고 정봉주에게 유죄판결을 내렸다. 틀림없이 죄목은 허위사실공표인데 허위인지를 판시하기 전에 정봉주가 자신의 한 말의 근거가 없다고 유죄를 때렸다.
이렇게 하게 된 이유는 착시현상 때문이다. 형법 제307조제1항이 진실인 경우에도 명예훼손의 성립을 인정하기 때문에 진실이든 허위이든 어차피 유죄이니 기소죄목에서는 ‘허위’가 위법성 요건임에도 불구하고 진위여부를 판정하기도 전에 말한 사람이 얼마나 근거를 가지고 있었는지를 따진다. 피고가 한 말의 진위를 밝힐 생각은 안하고 ‘피고 너 그런 말할 자격있냐’를 묻게 되는 것이다.


▲ 22일 오전 정봉주 전 의원에 대한 판결이 나오자 그의 지지모임인 '정봉주와 미래권력들(미권스) 회원들이 대법원 앞에 모여 판결에 대해 성토하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이렇게 되어버리면 권력비리는 캘 수가 없다. 권력비리는 침묵과 어둠의 장막 속에서만 이루어진다. 이들은 이런 장막을 구매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장막을 뚫고 간신히 올라오는 단서들은 당연히 ‘충분한’ 증거가 되지 못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 단서들을 제시할 수 없다면 비리의 고발은 불가능하다.
장자연이 남긴 유언장과도 같은 문서, 안기부가 본의 아니게 남긴 X파일, 외국 과학자들과 언론이 광우병에 대해서 한 말, 네티즌들이 황우석의 테라토마 사진을 보고 제기한 의혹들이 바로 그러한 단서들인데 이 단서들을 국민들에게 공개하고 국민들의 의견을 묻는다고 해서 감옥에 가야 한다면 누가 비리 고발을 하겠는가. 정봉주도 BBK의 소유주에 대해서 알 수 있는 모든 방법들이 침묵의 장막으로 차단된 상황에서 어렵게 어렵게 얻어낸 단서들을 국민들과 공유한 것 뿐이다. 정봉주가 한 일은 자신이 얻을 수 있는 모든 정보들 중에서 BBK와 이명박 사이의 관계에 대한 정보들을 공개한 것 뿐이다.
지금 할 일은 두 가지이다. 첫째 전세계에서 유례가 없이 진실임에도 명예훼손 책임을 지우는 형법 제307조 제1항을 꼭 폐지해야 한다. 물론 이번 유죄조항은 선거법 조항이지만 명예훼손 논리를 대입하였음이 분명하다. 

둘째 사법개혁이다. 법관소환 제도만으로 불충분하다. 법관이든 검사이든 국민의 위임 범위 안에서 활동한다는 명제를 확실히 상기시켜줘야 한다. 국민은 누구에게도 국민의 말이 진실임이 입증되지 않았다고 해서 그 국민을 처벌할 권한을 준 적이 없다.

(박경신 고려대 교수가 블로그에 올린 글을 박 교수의 동의를 받아 게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