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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2월 4일 월요일

기독교는 하늘 뜻 땅에 이루려는 예수운동


이글은 대자보 2013-02-02일자 기사 '기독교는 하늘 뜻 땅에 이루려는 예수운동'을 퍼왔습니다.
[류상태의 주일편지] 한국 교회는 과연 예수님 편에 서 있는 것인가?

지난 주일 편지에서 기독교 영성에 대해 말씀드린 데 이어 오늘은 기독교가 갖는 운동성을 주제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인류 역사에 큰 아픔을 안긴 교리의 기독교를 넘어서고 영성의 기독교와 운동의 기독교가 갖는 귀한 가치와 신앙을 되찾는 일은 우리 한국 교회와 교우님들이 반드시 짊어져야 할 권리이자 사명입니다.

1.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우리는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를 드릴 때마다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고 기도합니다. 하늘의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도록 기도하고 살아가는 것, 저는 그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삶 전체로 가르쳐주신 복음의 원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는 지를 묻는 바리새인들에게 “하느님 나라가 오는 것을 눈으로 볼 수는 없다. 또 '보아라, 여기 있다.' 혹은 '저기 있다.'고 말할 수도 없다. 하느님 나라는 바로 너희 가운데 있다.”고 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7:20~21, 공동번역)

우리 기독교는 이웃들로부터 현실의 아픔과 모순을 외면하고 미래로 도피하는 나약한 종교라는 비판을 종종 받습니다. 심지어 우리 기독교를 반대하는 분들로부터 ‘개독교’라는 모욕적인 비난을 듣기도 합니다.

현실의 고통을 외면하며 미래로 도피하는 종교, 그것이 비록 현실 기독교의 한 단면임을 완전히 부인하기는 어렵지만, 그것은 결코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역사적으로 교회가 예수님의 가르침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발생한 오류의 결과였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율법의 가르침이 무엇인지 묻는 랍비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님이신 너희 하느님을 사랑하여라.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 가는 계명이고,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여라 한 둘째 계명도 이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이 두 계명이 모든 율법과 예언서의 골자이다.” (마태복음 22:37~40)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 이 둘은 하나이며 분리될 수 없다는 뜻이 되겠습니다. 이처럼 기독교 영성은 하나님과 우리와의 수직관계로만 끝나서는 아니 되며, 수평으로도 이어져 존재하는 모든 것과 새로운 관계를 맺어야 비로소 온전한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유감스럽게도 사회와 자연, 이웃들의 삶의 현장에는 별 관심 없이 오직 하나님과의 수직적 관계에만 몰두하는 교우님들이 계십니다. 그분들은 하나님만 생각하고 오직 믿음으로 사는 것이 영성 충만한 삶이라고 배워왔기에 순전한 마음으로 신앙생활과 교회공동체의 삶에 매진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성령충만한 신앙이 아니라 균형을 잃은 신앙입니다.

신앙생활과 사회생활, 이 둘은 반드시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만일 우리의 영성이 수평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수직적인 관계, 즉 하나님과의 관계에만 집중하면 교회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기는커녕 사회와 단절될 뿐 아니라 이웃으로부터 이기적인 집단이라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게 됩니다. 때로는 사회의 정의롭지 못한 구조에 의해 발생하는 억압과 폭력을 방관하거나 조장할 수도 있습니다.

가슴 아프게도, 우리 한국의 주류 교회들은 이런 일을 막거나 극복하지 못하고 조장해 온 측면이 있습니다. 자연이 파괴되고 사회가 고통을 받으며 생명이 소홀히 여겨지는 현실에 눈과 귀를 막고 자기 공동체의 확대에만 주된 관심을 보여온 일부 교회 지도자들의 처신은 이런 엇나간 영성의 단면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2. ‘하나님 사랑’은 반드시 ‘이웃 사랑’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하나님과 맺어진 관계가 심오할수록 하나님의 사람은 현실세계의 부조리를 견디지 못합니다. 기독교 영성은 우리가 발을 딛고 사는 이 세계를 하나님과 분리된 별개의 세계가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그분의 품이며 거룩한 몸으로 인식하기에, 진정한 기독교 영성은 일그러진 실존세계에 대해 아파하며 본래의 아름다움이 회복되도록 온갖 노력을 기울이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 영성이 초월성에 머물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를 현실세계에 이루기 위한 ‘하나님 나라 운동’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하나님 나라 운동의 중심에 서신 분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은총을 종교 조직 안에 가두고 독점하려는 당시 종교인들의 독선에 항거하고, 억압과 착취를 일삼는 왜곡된 사회 구조에 맞서 가난하고 억눌린 백성을 일으켜 세우고 해방시켜 주는 레지스탕스(저항) 운동이 예수 운동의 원형이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 나라 운동의 뿌리는 이미 서기전 8~9세기경부터 구약성서에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아모스와 호세아를 필두로 이사야와 예레미야, 에스겔 등으로 이어지는 선지자들의 예언은 기득권자에 항거하여 힘없는 백성들을 보호하고 그들을 고통스런 삶의 현장으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한 저항운동의 큰 줄기를 이루고 있습니다.

예언자 아모스는 당시 종교 권력자들과 그에 야합한 무리를 향해 이렇게 질타하였습니다. “너희의 순례절이 싫어 나는 얼굴을 돌린다. 축제 때마다 바치는 분향제 냄새가 역겹구나. 너희가 바치는 번제물과 곡식제물이 나는 조금도 달갑지 않다. 친교제물로 바치는 살진 제물은 보기도 싫다. 거들떠보기도 싫다. 그 시끄러운 노랫소리를 집어치워라. 거문고 가락도 귀찮다. 다만 정의를 강물처럼 흐르게 하여라. 서로 위하는 마음을 개울같이 넘쳐흐르게 하여라.” (아모스 5:21~24)

아모스의 예언은 수평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종교행위가 무의미할 뿐 아니라 오히려 사악한 위선에 지나지 않음을 여실히 폭로합니다. 실제 생활에서는 정의가 사라진지 오래되었고 억압과 착취를 버젓이 행하는 사람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가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예언자는 묻고 있습니다.

아모스의 사자후는 마치 성전에서 온갖 기물과 제물에 대한 상업적 독점권을 갖고 호사를 부리던 예루살렘 성전의 종교지도자들, 아니 종교 장사꾼을 질타하고 그들의 상을 뒤엎으신 우리 예수님의 격노를 연상케 합니다.

3. 예수님은 절대평화와 절대정의의 세계를 꿈꾸며 행동하셨습니다.

예언자 이사야는 모든 폭력과 억압의 가능성이 완벽하게 사라진 절대정의와 절대평화의 세계를 꿈꾸었습니다. “늑대가 새끼 양과 어울리고, 표범이 숫염소와 함께 뒹굴며, 새끼 사자와 송아지가 함께 풀을 뜯으리니 어린아이가 그들을 몰고 다니리라. 암소와 곰이 친구가 되어 그 새끼들이 함께 뒹굴고 사자가 소처럼 여물을 먹으리라. 젖먹이가 살무사의 굴에서 장난하고 젖뗀 어린아기가 독사의 굴에 겁 없이 손을 넣으리라. 나의 거룩한 산 어디를 가나 서로 해치거나 죽이는 일이 다시는 없으리라. 바다에 물이 넘실거리듯 땅에는 야훼를 아는 지식이 차고 넘치리라.” (이사야 11:6~9)

아, 놀랍습니다. 아, 위대합니다. 전율이 흐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양과 염소들이 사자와 표범을 물리치고 약자들만의 천국을 만들 것을 꿈꾸지 않았습니다. 양과 염소가 사자와 표범과 함께 뒹구는 상생과 평화의 세계를 꿈꾸고 있습니다. 암소와 곰이 친구가 되고, 어린 아기가 독사와 장난치며 함께 노는 세상이 온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나라라는 것입니다.

브루주아를 타도하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아니라, 돈이 사람을 지배하는 자본주의 천국이 아니라, 모든 생명이 함께 어깨동무하고 사는 하나님 나라 운동을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은 이미 이천육백여 년 전에 꿈꾸고 노래하며 행동으로 옮기고 있었습니다. 

온갖 어려움과 핍박을 견디며 수백 년을 이어온 이 예언자 운동은 우리 예수님에 의해 그 절정을 이룹니다. 복음서 기자는 예수님이 이사야의 하나님 나라 운동을 성취하기 위해 오신 분임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자기가 자라난 나자렛에 가셔서 안식일이 되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셨다. 그리고 성서를 읽으시려고 일어서서 이사야 예언서의 두루마리를 받아 들고 이러한 말씀이 적혀 있는 대목을 펴서 읽으셨다. ‘주님의 성령이 나에게 내리셨다. 주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으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 주께서 나를 보내시어 묶인 사람들에게는 해방을 알려주고 눈먼 사람들은 보게 하고, 억눌린 사람들에게는 자유를 주며 주님의 은총의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예수께서 두루마리를 말아서 시중들던 사람에게 되돌려주고 자리에 앉으시자 회당에 모였던 사람들의 눈이 모두 예수에게 쏠렸다. 예수께서는 ‘이 성서의 말씀이 오늘 너희가 들은 이 자리에서 이루어졌다.’ 하고 말씀하셨다.” (누가복음 4:16~21)

누가는 예수를 예언자 운동의 맥을 잇고 완성하기 위해 오신 분으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 고백에서는 현실의 고통을 외면하고 하늘 위로 도망가려는 현실도피 신앙의 근거를 조금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 예수님은 왜곡된 현실세계에서 정의와 평화, 행복이 숨쉬는 아름다운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기 위한 저항운동의 중심에 서계십니다. 이처럼 올바른 기독교 영성은 필연코 왜곡된 모든 것에 대한 저항으로 이어집니다. 

4. 우리 한국 교회는 과연 예수님 편에 서 있는 걸까요?

오늘날 한국의 주류 교회들, 특히 대형교회와 그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배반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깊이 돌아보아야 합니다. 고난받는 백성들의 삶의 자리는 외면한 채, 조찬기도회를 만들어 권력자의 안위와 번영을 빌어주는 일부 대형교회 목회자들이 우리 예수님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 저는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제 생각에 그들은 우리 예수님과 아무 상관도 없을뿐더러 상반된 길을 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행태를 보면 예수께서 종교지도자들에게 분노를 표출한 이유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성직자’라는 이름으로 신을 모독하고 백성들을 속일 뿐 아니라 기득권자 편에 붙어 제 잇속을 챙기는 ‘거룩한 장사꾼’들에 의해 우리 하나님과 예수님은 지난 이천년 동안 끊임없이 능멸을 받으셨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도 진정한 예수정신과 예수운동을 이어가는 선각자들은 남아 있습니다. 서구 자본주의 신학의 한계를 절감하고 민중의 모습으로 고난의 현장에 가계신 그리스도를 새롭게 발견하여 민중신학 이론으로 정립할 뿐 아니라 몸소 살아내신 안병무 박사님, 이 땅의 갈라진 현실을 참지 못하여 북으로 달려가 김일성의 목을 끌어안고 이제 제발 그만 싸우자고 외치신 문익환 목사님, 굶고 병든 이 땅의 백성들을 외면하지 못하여 그들의 삶의 자리로 달려가 함께 먹고 마신 허병섭 목사님 등은 진정한 예수사람이라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삶 전체로 보여주신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분들께 마음 깊이 경의를 표하며, 우리 교우님들도 예수님과 선각자들을 본받아 신앙과 삶의 조화를 이루며 행복하게 사시기를 기도합니다.

* 사이트 댓글이나 이메일로 질문이나 답글을 주시는 분께 일일이 답장을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질문 내용 중 필요하다고 느껴지는 부분은 따로 적어두었다가 주일 편지를 통해 의견을 드리겠습니다.

류상태

2013년 1월 29일 화요일

배타 교리 넘어서야 기독교 영성 회복할 수 있다


이글은 대자보 2013-01-27일자 기사 '배타 교리 넘어서야 기독교 영성 회복할 수 있다'를 퍼왔습니다.
[류상태의 주일편지] 기독교의 진정한 가치는 영성과 운동성에 있어

이천년 역사를 이어온 기독교의 맥을 크게 세 줄기로 나누면 ‘교리의 기독교’와 ‘영성의 기독교’ 그리고 ‘운동의 기독교’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이 세 줄기는 명확히 구분되는 것은 아니며 별개로 전해진 것도 아닙니다. 서로 얽히고설킨 채 시대에 따라 어느 한 쪽이 두드러지기도 하면서 긴장관계를 이루며 지금까지 이어져 왔습니다. 그중 인류사회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건 단연 교리의 기독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한국 교회 교우님들께 굳이 기독교를 세 줄기로 구분하여 말씀드리는 이유는, 인류 역사에 너무나 큰 아픔을 안긴 교리의 기독교를 넘어서고, 영성의 기독교와 운동의 기독교가 갖는 귀한 가치와 신앙을 한국 교회가 반드시 되찾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제가 “넘어서야 한다.”고 말씀드리는 ‘교리의 기독교’는 배타적인 교리와 그에 따른 독선으로 세상에 갈등을 일으켜온 기독교의 부정적인 가르침을 말하는 것이며, 기독교 교리 전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1. 교리는 배의 닻과 같습니다.

영국의 복음주의 신학자 존 스토트는 “교리란 배의 닻과 같다.”고 말했습니다. 닻이 강이나 바다의 모래바닥에 너무 깊이 박히면 배는 움직일 수 없게 되어 결국 고철덩어리가 되고 맙니다. 그렇다고 바닥에 든든히 고정하지 않으면 배는 이리저리 표류하게 됩니다. 교리도 그와 같다는 것입니다. 교리가 갖는 위험한 성격을 잘 짚어내면서도 교리 자체는 반드시 필요하다는 주장으로 우리 기독교인들이 잘 새겨들어야 할 말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기독교 교리가 교회와 회중에 끼친 영향력은 존 스토트가 지적한 양 극단의 위험을 피하며 조화를 이루었던 적이 별로 없었습니다. 조직이란 마치 생명체와 같아서 어느 단계에 이르면 스스로 생존하고 팽창하려는 욕구를 지니게 마련인데, 그 조직의 생리를 제어하지 못한 교회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방편으로 자주 교리를 무기로 삼아 그 구성원들을 옥죄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교회는 지난 역사를 통해 통제가 불가능할 정도로 비대해진 교회조직 자체의 생리와, 조직의 상층부에 자리한 사제계급, 그리고 이론적 기반을 마련하여 조직이 생장할 수 있도록 자료를 제공해준 신학자들에 의해 인류사회에 큰 아픔을 주었습니다. 존 스토트의 비유대로라면 닻이 바닥에 너무 깊이 박혀 배가 썩어가며 자신과 주변에 심각한 문제를 생산해낸 것입니다.

저는 이렇게 인류역사에 큰 슬픔을 안긴 ‘교리의 기독교’를 한국 교회와 교우님들이 반드시 극복하고 넘어서야 하며, 이 일에 실패한다면 우리 교회의 미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행히 교리 기독교의 본산지라고 할 수 있는 유럽에서는 르네상스 이후 활발한 학문적 논의와 영적 성찰을 거쳐 배타 교리의 함정에서 거의 벗어났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영국을 비롯한 유럽 기독교회의 일부, 근본주의가 횡행하는 미국, 그리고 미국 근본주의 신학의 영향을 압도적으로 받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강력한 교리 기독교가 교회를 지배하는 어둠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2. 기독교의 진정한 가치는 영성과 운동성에 있습니다.

그러면 기독교의 진정한 가치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많은 분들이 영성의 기독교를 주목하기에, 영성이란 무엇이며, 과연 기독교의 영성은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먼저 교우님들과 함께 생각해 보고, 운동의 기독교에 대해서는 다음에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기독교의 영성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부터 정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영성의 사전적 의미는 ‘신령한 품성이나 성질’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신령하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비가시적이면서 초월적인 어떤 현상을 말하는 것일까요?

많은 분들이 ‘영성’을 생각할 때 어떤 현상을 떠올립니다. 그래서 영성이 풍부한 사람은 기적을 행하거나 병을 고치기도 하고 신과 직접 대면하거나 대화를 주고받는 등의 초월적 능력을 체험하게 된다는 생각이 팽배합니다. 그러나 기적이나 병고침, 신과의 대화나 대면 등 겉으로 나타나는 현상은 영성의 결과일수는 있어도 그 자체를 영성과 동일시하는 것은 바람직한 이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어떤 ‘현상’에 집착하게 되면 진정한 영성을 이루는데 방해가 될 수 있습니다.

기독교 영성의 중심개념은 ‘초월자와의 관계성’입니다. 초월자란 실존자와 구분되며 실존자의 한계를 뛰어넘을 뿐 아니라 실존자의 상태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보다 상위의 존재나 우주의 법칙, 원리 등을 말합니다. 제가 초월자의 개념에 우주의 법칙이나 원리까지 포함시켜 교우님들이 불편을 느끼실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 교회도 하나님의 속성을 인격체 안에만 가두지 말고 초인격적 속성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다원화된 세계에서 이웃종교와의 원만한 대화가 불가능하며 필연적으로 갈등을 유발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속성을 인격체 안에서만 이해하려고 하면 우리 기독교회가 신관의 배타성으로 인해 역사적으로 가질 수밖에 없었던 독선과 한계에 계속 갇혀있게 됩니다.

3. ‘하나님은 누구이신가? (Who is God?)’라고만 묻지 말고 ‘하나님은 무엇인가? (What is God?)’라고도 물읍시다.  

신관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위해 어느 학자는 이런 제안을 하였습니다. “이제는 우리 주님에 대해서 ‘하나님은 누구이신가? (Who is God?)’라고만 묻지 말고 ‘하나님은 무엇인가? (What is God?)’라고도 물읍시다.”

만일 우리가 그의 제안대로 “하나님은 무엇인가?”라고도 묻는다면, 그분을 우주의 이(理)나 법(法), 또는 공(公)으로 이해하는 이웃종교와의 폭넓은 대화가 가능해질 것입니다. 하여 우리 기독교가 교리적으로 갖고 있던 독선과 배타로부터 빠르게 벗어나 지구마을의 아름다운 종교문화와도 어깨동무하며 평화로운 세상을 만드는데 크게 기여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혹 일부 교우님께서는 “하나님을 감히 ‘그것’이라고 폄하하다니, 신성모독이 아닌가?” 또는 “다른 종교를 긍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우상숭배가 아닌가?”하고 생각하실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이웃종교와 문화를 부정하고 ‘하나님은 인격’이라는 고정관념에 갇히는 것이 오히려 신성모독이고 우상숭배가 될 수 있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하나님은 인격이 아니라 ‘신격’이기 때문입니다. (우상숭배의 개념에 대해서도 재검토가 필요하며,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따로 지면을 할애하겠습니다. 이 주일편지는 올 한 해 동안 계속될 예정입니다.)

기독교 문화의 종주국이라고 할 수 있는 서양 속담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만일 말이 하나님을 믿었다면 하나님은 말격이 되었을 것이다.” 사람에게는 인격이 있고 동물에게도 동물에 맞는 격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격은 당연히 그에 걸맞는 하나님격 즉 초인격적인 ‘신격’이어야지 그분을 인격으로(만) 이해하려는 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 결례가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초인격적 속성으로 하나님을 새롭게 이해한다고 하여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지금까지 우리가 갇혀 있던 인식의 틀을 깨뜨리고 나와 더욱 깊고 풍요로운 기독교 영성으로 진보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일찍이 하나님의 궁극적 속성을 ‘존재라기보다는 지성’으로 파악한 중세 신비주의 신학자 마이스터 엑카르트가 도달했던 기독교 영성의 절정이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속성에 대한 이런 보다 깊고 넓은 이해는 이웃종교 및 동양사상과의 폭넓은 대화를 가능케 하여 심각한 종교간 갈등을 겪고 있는 21세기 우리 지구마을에 안정과 평화를 가져오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입니다. 또한 우리의 하늘 아버지께서 오늘날 당신의 자녀된 우리 기독교인들에게 요구하시는 절실한 명령으로 우리가 반드시 도달해야 할 한국 교회의 과제이며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4. 기독교의 영성은 ‘현상’이 아니라 ‘관계성’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신성의 궁극이 인격이건 인격을 뛰어넘는 초인격적인 그 무엇이건, 우리 기독교의 진정한 영성은 ‘현상’이 아니라 ‘관계성’으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점에서는 동일합니다. 쉽게 말하면 방언을 하고 기적을 하는 것이 영성이 아니라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는 것’이 진정한 영성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영성이 풍부하다”든가 “영성이 꽃피었다”는 말은 어떤 사람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어 그분(또는 그것)과 하나가 된 삶을 살아간다는 뜻이 됩니다.

그러면 기독교 영성이 한 인격체 안에서 발아할 때, 즉 어떤 사람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하나된 삶을 살아갈 때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까요?

기독교 영성이 가득 차 있는 사람은 세상을 하나님의 눈으로 보게 됩니다. 그러기에 세상에 존재하는 어느 것 하나라도 함부로 다루거나 해치지 않습니다. 돌뿌리 하나, 풀 한포기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사랑과 섭리의 손길이 담긴 것으로 보고 귀하게 여깁니다.

이처럼 기독교 영성이 발아하면 삶의 모든 영역으로 그 풍요로움이 흘러넘쳐 세상과 자연, 그리고 하나님께서 부여해주신 우리 인생을 깊이 사랑하며 존재하는 모든 것과 어울려 살아가게 됩니다.

기독교 영성이 발아하면 모든 사람을 하나님과 연결된 존재로 봅니다. 그리하여 환경이 어떻건 외모가 어떻건, 돈벌이나 학벌, 스펙이 어떻건 상관없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인격체’라는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 모든 사람을 귀히 여기며 존중합니다.

기독교 영성이 풍부한 사람은 세상을 진취적이며 적극적으로 살아낼 힘과 소망을 갖게 됩니다.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도록 기도하고 행동합니다. 그런 사람은 신과 하나로 합일되어 하나님의 눈으로 보고 하나님의 입으로 말하고 하나님의 마음으로 사물을 보고 대하기에, 세상에 기쁨과 평화를 심는 존재가 됩니다.

이렇게 영성이 꽃핀 사람에게는 배타적이거나 독선적인 교리가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성 프란치스코나 마이스터 에카르트를 비롯한 중세 신비주의자들, 이슬람교의 영성을 꽃피운 수피들, 천주교 사제이면서 인도에서 종교간 장벽을 자유롭게 넘나든 앤소니 드 멜로 신부 등은 한 인격체 안에서 영성이 발아할 때 그 인생이 얼마나 아름답고 풍요로우며, 개인의 인격을 넘어 분출하는 그 향기가 세상을 얼마나 아름답게 만드는지 보여준 산 증인들입니다.

우리 교우님들도 영성이 꽃피는 아름다운 신앙인이 되시기를 기도하며...

류상태

2013년 1월 2일 수요일

선거철 덩달아 뛴 기독교


이글은 뉴스앤조이(NEWSNJOY) 2012-12-31일자 기사 '선거철 덩달아 뛴 기독교'를 퍼왔습니다.
[2012년 교계 이슈 정리 12] 대선과 총선 판 흔든 굿판·신천지·십알단·김용민

(뉴스앤조이)가 2012년 한국교회 이슈들을 정리했습니다. 감리교 세습 방지법 통과,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예장합동)의 총회 파행 사태, 이단 문제, 분쟁 중인 교회 등 한국 교계에서 일어난 일들을 돌아봤습니다. - 편집자 주

▲ 2012년 총선과 대선을 거치며 기독교계 이슈들은 곧 사회적인 관심을 받으며 선거 정국을 흔들어 놓았다. 사진은 지난 11월 14일 열린 국가조찬기도회에 참석한 문재인·박근혜 후보. ⓒ뉴스앤조이 엄태현

2012년 '국회의원 총선거'와 '대통령 선거'를 거치며 기독교계 이슈들은 곧 사회적인 관심을 받으며 선거 정국을 흔들어놓았다. 12.19 대선에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에 대해 억대 굿판, 신천지 연루, 십알단(십자군 알바단) 불법 선거운동 등의 의혹이 불거졌다. 수많은 의혹에도 박 후보는 최종 득표율 51.6%를 얻어 48%를 얻은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를 누르고 제18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4.11 총선에서 '종북 좌파' 척결을 표방했던 기독자유민주당의 비례대표 당선은 실패했고, 한국교회의 부패를 비판한 김용민 피디(나는 꼼수다)의 발언은 막말 논란으로 왜곡 보도되면서 민주통합당 국회의원 후보로 나선 김 피디는 낙마하였다. 정권 교체의 목소리가 높았지만, 표심은 새누리당으로 쏠려 여당이 총 300석 중 152석의 과반수 의석을 차지했다.

유독 부정적 의혹 많았던 박근혜 후보

박근혜 후보는 대선 막바지에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을 우상화하는 탄신제와 정수장학회 문제 해결을 위해 1억대 굿을 했다는 의혹, 신천지 행사에 박 후보 측 인사가 참여한 일이 드러나 비판을 받았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는 정치적 중립을 지킨다고 했지만, 기자회견을 새누리당사에서 하는 등 편향적인 자세를 취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일 행각이 문제가 되자, 조용기 목사는 "조상의 과거는 묻지 말라"는 설교로 박근혜 후보를 두둔했다. 윤정훈 목사는 박근혜 후보 캠프에서 국정홍보대책위원회 총괄팀장 겸 SNS 미디어본부장을 맡아 활동하면서 SNS 불법 선거운동을 한 혐의로 선거관리위원회에 고발까지 당했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에 대해서는 복음주의 기독인들과 2012생명평화기독교행동이 안철수 무소속 후보와 단일화를 이룰 것을 촉구하는 선언을 했다.

▲ 지난 11월 14일 열린 박정희 전 대통령 탄신제에서 참석자들이 박 전 대통령을 '반신반인'으로 추앙하고, 박근혜 후보의 당선을 기원해 논란을 빚었다. 사진은 박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 영정 앞에서 절하고 있는 참배객들. ('뉴스타파' 34회 방송 갈무리)

박 후보의 억대 굿판 의혹은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나꼼수)가 원정 스님(원정맥연구소)의 주장을 12월 11일 방송하면서 확산됐다. 원정 스님이 박 후보가 정수장학회 문제 해결을 위해 1억 5000만 원짜리 굿판을 벌인 것을 초연 스님에게 들었다는 내용이다. 굿에 거액을 투자한 것보다 굿을 벌였다는 것 자체가 보수 기독교인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지난 11월 14일 열린 박정희 전 대통령 탄신제에서 참석자들이 박 대통령을 '반신반인'으로 추앙하고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의 당선을 기원한 것도 기독교인들을 자극하는 뉴스였다. 새누리당도 원정 스님과 나꼼수 팀을 허위 사실 유포 혐의로 고발하고, 보수 기독교의 민심을 잡으려 적극적으로 해명에 나섰다. 이에 나꼼수는 초연 스님이 굿한 것을 사실상 시인한 녹취록을 12월 16일 방송에서 공개해 새누리당의 고발을 무색하게 했다.

 
▲ 이경재 새누리당 기독교 대책 본부장이 2004년 9월 신천지 전국체전에 참석하여 축사하는 모습. (<교회와신앙> 동영상 갈무리)

개신교계 학자와 목회자들은 대부분 억대 굿판 의혹과 박정희 탄신제에 대해 비판하는 입장을 보였다. 이만열 명예교수(숙명여대 한국사학과·서울중앙교회 장로)는 "지도자로서 자기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거액을 들여 (굿으로) 기원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용납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국교회연합 대표회장 김요셉 목사는 "개인적으로 대통령이 되고자 나온 사람이 굿판에 엎드려 절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정의평화국장 이훈삼 목사는 "역사를 바로 세우고 유신을 청산해야 하는데 박정희·육영수를 숭모한다는 것은 기독교 신앙에 맞지 않다"고 주장했다. 정재영 교수(실천신대 종교사회학)는 "어떤 대통령이라도 왕처럼 여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이번 대선을 앞두고 신천지와 정치권의 연루 문제도 불거졌다. 새누리당 기독교 대책 본부장인 이경재 전 의원이 2004년 9월 18일 '제4회 신천지 전국체전'에 참석해 3만여 명의 신천지 신도들 앞에서 축사했다. 논란이 되자 이 본부장은 "당에서 행사에 가 보라고 하니까 간 것에 불과하다"고 해명했지만, 그가 국가조찬기도회와 새누리당 기독인회 모임 등을 주도했던 기독 정치인이자 장로였다는 점 때문에 논란은 식지 않았다. 신천지 수석장로 황길중 씨가 새누리당 내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황 씨는 "새누리당 상임고문으로 있으면서 박근혜 후보 캠프 행정자치조직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주장했고, 실제로는 지난 11월 24일 국민행복종교본부 자문위원으로 임명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황 씨는 이번 대선에서 신천지의 조직적인 개입은 부인했다. 하지만 그는 "지난 17대에서는 신천지 신도들을 당원으로 등록시키고 동원한 일이 있었다"고 말했다. (관련 기사 : 신천지의 정치 개입은 이미 오래전)

▲ 윤정훈 목사가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 후보에게 유리한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알바단을 운영한 현장이 지난 12월 13일 적발됐다. (tvN '백지연의 끝장토론' 영상 갈무리)

또한 대선에 임박해서 십알단 불법 선거운동 의혹도 터졌다. 십알단을 이끄는 사람으로 의심받아 온 윤정훈 목사가 불법 선거운동 혐의로 서울시선거관리위원회에 12월 13일 적발됐다. 윤 목사는 신고하지 않은 선거운동 사무실에서 직원 7명과 함께 박 후보에게는 유리하고 문재인 후보에게는 불리한 글을 올려 SNS 여론을 조작한 혐의를 받았고, 방송사 기자와 함께 현장을 급습한 선관위에 덜미를 잡혔다. 나꼼수가 공개한 녹취에 의하면 윤 목사가 "박근혜 수석보좌관이 찾아와 '박근혜가 크리스천은 아니지만 그나마 기독교를 보호해 줄 수 있는 사람 아니냐'며 도와 달라고 해서 도와주기로 했다"고 활동 배경을 밝혔고, SNS 조직에 "기독교 조직이 있다"고 말했다. 기독교가 정치권과 결탁해 여론을 조작한다는 십알단 의혹이 윤 목사의 발언을 통해 사실로 확인됐다.

개신교계, 여당 대선 후보 지지나 야권 단일화 촉구로 갈려

대선에서 교계는 여당 후보를 지지하거나, 야권 후보 단일화를 촉구하는 입장으로 나뉘었다. 일부 보수 개신교 단체와 목회자들이 박 후보를 지지했다. 한기총은 지난 9월 10일 박 후보가 한기총을 방문했을 때 홍재철 대표회장이 박 후보에게 "여기에서 확보할 수 있는 표가 300만 표"라고 말하며 박 후보 지원 의사를 밝힌 바 있다. 서경석 목사(선진화시민행동 상임대표)는 '종북 좌파 척결'을 목표로 하는 단체인 시민행동을 통해 박 후보를 지원할 의사를 밝힌 적이 있고, 변승우 목사(큰믿음교회)와 김홍도 목사(금란교회 원로)는 12월 16일 주일예배 설교에서 간접적으로 박 후보를 지지했다.
복음주의 기독인들, 2012생명평화기독교행동 목회자들은 야권 후보 단일화를 촉구했다. 복음주의 기독인들 300명은 18대 대선에 인애·공평·정직의 정치를 추진할 대통령이 선출되기를 바란다며, 정권 교체가 만능은 아니지만 새 역사의 희망이기에 야권 후보 단일화 실현을 요구한다고 11월 16일 밝혔다. (관련 기사 :복음주의자들, 야권 대선 후보 단일화 촉구) 2012생명평화기독교행동 목회자 1000명도 문재인·안철수 후보의 대선 승리와 정권 교체를 위한 단일화를 촉구하는 선언을 11월 21일 발표했다. 두 후보는 단일화를 성사하지는 못했지만, 안 후보가 후보직을 사퇴한 뒤 문 후보 지지 유세에 나섰다.

총선 당선 실패한 기독당, 김용민 피디 막말 논란 등 화제

▲ 김용민 피디는 4.11 총선에서막말 논란으로 곤혹을 겪었다. 김 피디의 발언은 금권 선거를 하거나 교회를 세습하는 일부 대형 교회를 향한 것이었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대선 이전에 치러진 4.11 총선에서는 김용민 피디 막말 논란, 기독자유민주당(기독당) 선거 참여 등이 이슈가 됐다. 김용민 피디는 지난 총선에서 민주통합당 국회의원 서울 노원갑 후보로 나왔는데, 막말 논란 때문에 곤혹을 치렀다. 목사 아들인 김 피디는 2004년 한 인터넷 방송에서 말한 '여성 비하, 노인 폄하' 발언이 확산되자 4월 4일 공개 사과했다. 이어 (조선일보)·(동아일보) 등은 '국민일보파업대부흥회'에서 김 피디가 조용기 목사 일가를 비판한 내용으로 발언한 것을 공개해 여성·노인에 이어 종교도 모독한다며 논란을 부추겼다. 김 후보의 발언은 금권 선거를 하거나 교회를 세습하는 일부 대형 교회를 향한 것이었다. 하지만 홍재철 한기총 대표회장, 김성광 목사, 수원명성교회 등은 김 피디를 비난했다.
교계 안팎의 보수 진영이 김 피디에게 집중포화를 퍼부은 것에 대한 비판도 이어졌다. 조국 서울대 교수와 이재정 전 통일부 장관은 보수 언론이 김 피디의 발언 기사를 키우는 것은 당시 정부의 민간인 사찰 사건을 묻으려는 공작이라고 지적했다. 지강유철 양화진문화원 선임연구원은 "일부 문제 많은 한국교회에 대한 김 후보의 비판을 (조선일보)는 마치 그가 하나님께 신성모독의 죄를 저지른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다"고 했다. 이어 그는 "이는 중대한 사실 왜곡일 뿐 아니라 교인들이 한국교회에 대한 비판과 하나님에 대한 비판조차 구분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전제로 대다수 양심적인 크리스천을 무시하고 바보 취급한 것"이라고 했다.
종북 좌파 척결을 표방했던 기독당은 2011년 9월 20일 출범해 기독사랑실천당과 지난 3월 15일 합당한 뒤 비례대표 후보 8명과 지역구 후보 3명을 등록하고 선거 활동을 했다. 기독당은 총선 당일 비례대표 의석에 필요한 최소 득표율 3%에 못 미친 1.2%(25만 7164표)의 지지를 받았다. 결국 비례대표 의석을 얻을 수 없었고, 득표율이 정당 등록 취소 요건인 2%에 미치지 못해 등록이 취소됐다. 한편 기독당 고문 전광훈 목사(사랑제일교회)는 지난 1월부터 경북과 부산 등지에서 가진 3차례 집회에서 기독당의 지지를 호소하고 참석자들에게 식사를 제공한 혐의로 지난 3월 6일 검찰에 고발되기도 했다.

▲ 기독당은 총선 당일 비례대표 의석에 필요한 최소 득표율 3%에 못 미친 1.2%의 지지를 받아 의석을 얻지 못했다. 사진은 기독당이 4.11 총선 투표 후 태블릿 PC로 개표 현황을 지켜보는 모습. ⓒ뉴스앤조이 구권효

임안섭 (lifeharmony)

2012년 9월 2일 일요일

중생 아픔 무관심해야 훌륭한 스님?


이글은 한겨레신문 조현기자 블로그 휴심정의 벗님글방 2012-08-31일자 기사 '중생 아픔 무관심해야 훌륭한 스님?'을 퍼왔습니다.

검정고무신 두켤레 사진 <한겨레> 자료

때로는 이웃의 시선에서 자신도 몰랐던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것은 평소에 자각하지 못했던 내 모습과 감추고 싶은 내 얼굴일 수도 있다. 그래서 나의 시선과 이웃의 시선을 열린 마음으로 정직하게 받아들여야만 한다.

내게는 이웃의 눈에서 우리 승가의 모습을 새삼스레 보게 된 두 가지의 기억이 있다. 한번은, 몇 년 전 내소사에서 주한 외국인 30여 명을 대상으로 2박3일 템플스테이를 진행해달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였다. 사중 대중스님들의 도움을 받아가며 외국인들과 새벽예불부터 잠자리에 들 때까지 경건하고 정성스럽게 때론 유쾌하게 하루하루를 보냈다. 모두가 더없이 아름다운 산중의 정취에 취하였고 일상의 수행에서도 모두가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행복해했다.

그런데 마지막날, 좋은 소감말 가운데 단 하나의 아쉬움을 밝혔다. “스님들이 너무 럭셔리해요.” 아니! 내소사의 스님들이 사치스럽다니, 대체 외국인의 눈에 스님들이 가진 그 무엇이 그토록 눈에 거슬렸을까? 이유는 의외로 간단했다. 절의 사무실과 모든 방에 있는 컴퓨터 그리고 휴대전화와 승용차를 가지고 있는 스님들의 모습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마침 그때 고맙게도 그 절에 고급차는 없었다) 그들의 말을 듣고 통역자를 포함한 우리 모두는 대략 난감하여 서로의 얼굴을 바라만 보았다.

지난 2005년 동남아시아 지진피해자들을 돕기 위해 탁발에 나선 조계종 총무원 승려들 사진 <한겨레> 자료

그랬다. 그때까지 그들의 눈에 비친 불교의 수행자는 세상을 떠난 고행자였다. 철저하게 현대문명과 거리를 두고 은둔하는 명상가의 모습이었다. 그들은 그렇게 우리들에게 극단적인 무소유와 청빈 속에서 ‘명상’하는 ‘은둔’의 ‘고행자’을 보고자했던 것이다.

그 이후, 나는 우리 주변의 사람들에게도 외국인들과 같은 생각과 정서를 가진 이웃들이 적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지금도 나는 생각한다. 과연 세속 사람들의 이런 생각은 옳은 것일까? 이런 수행자상은 누가 어떻게 만든 것인가? 그리고 이런 생각에 동의하고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붓다의 가르침의 정신에 맞는 것이고, 출가수행자의 본분의 전부이며, 이웃대중에게도 유익한 것인가?

또 하나의 기억은 1970년대 송광사 구산 방장 스님의 수행과 덕화에 감응하여 구도의 길을 걸었던 외국인 출가수행자들을 통해서이다. 그들 대부분은 서구의 문화권에서 매우 높은 교육을 받은 지성인이었으며, 자본과 성공의 세계를 추구하는 삶의 방식에 회의를 품어 진정한 인간의 길을 묻는 청년구도자였다.

얼마 전, 몇 년간 한국의 여러 절을 편력하면서 수행한 그들의 글을 우연히 접했다. 책장을 펼치기 전 많이 궁금했다. 그들의 눈에 비친 한국불교는 어떤 얼굴이었을까? “한국의 스님들은 무엇보다도 일상이 가난했고 소박하다. 한 톨의 밥도 함부로 버리는 일이 없다. 사소한 물건에도 공사의 구분이 엄격하다. 그리고 심성은 매우 착하고 부드럽다. 때로는 상식을 벗어나 기행을 하는 수행자도 보게 되는데, 그들 역시 알고 보면 순진하기 그지없다. 겸손하고 서로를 배려하며 맑고 단순하게 살아간다. 검정고무신에 누더기 옷을 입고 살아가지만 무엇보다도 여유롭고 당당하다. 마치 단아한 산과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렇지만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도 있다. 그것은 세상 사람들에게 거의 관심이 없는 그들의 태도이다.(보살행의 구제대비심의 모습이 느껴지지 않았다.) 한국의 대부분의 절은 시골에 있고, 그 절 아래에는 많은 마을이 있다. 그들의 살아가는 모습은 매우 가난하다. 먹고사는 일에 매우 힘들어 한다. 많은 가정이 빚에 시달리고 있고, 돈이 없어 아이들에게 높은 교육을 시키지 못한다. 그런데 내가 만난 한국스님들은 이들에게 거의 눈길을 주지 않았다. 마을사람들의 사는 모습을 화제로 삼지도 않았다. 참 많이 의아했다. 검소하고 맑은 심성을 가진 스님들이 힘겨운 마을사람들을 걱정하지 않는 것이 말이다.

지금 나는 외국인 수행자들의 정직한 시선에서 또 다른 우리들의 얼굴을 본다. 이웃에게 관심과 애정을 거두어버린 유아론적이고 소승적인 우리들의 얼굴을. 오늘 내 이웃에게 비친 ‘자족’과 ‘여유’에 갇혀 ‘방관자’로 남아 있는 한국불교의 오늘의 얼굴을.

다시, 청빈과 자족의 삶을 넘어 이웃을 향한 간절한 관심과 따뜻한 애정을 동시에 구족하고 실현해야 하는 지점에서, 문득 불교 너머 밖에 자꾸 시선이 간다. 보편의 진리가 불법이고 ‘나와 이웃’의 삶을 동시적으로 완성하는 사람이 보살이 아닌가? 그래서 나는 100년 전 이 땅에 온 엘리제 쉐핑(1880~1934)을 만났다.

개신교 선교사 서서평 사진 <한겨레> 자료

한국 이름이 서서평인 그녀의 행적을 살펴보면 그녀가 조선의 테레사라임을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 테레사 수녀(1910~97)보다 먼저 태어났고, 1930년 인도의 빈민가로 파견된 테레사보다 18년 앞선 1912년에 이 땅에 와서 사랑과 헌신으로 가난하고 고통받는 조선의 민중을 구원했으니 차라리 ‘조선의 엘리제 쉐핑’이라고 부르는 것이 맞겠다.

서서평은 독일에서 태어나 9살 때 미국으로 건너와 간호사로 지내던 중 개신교에 투신하게 된다. 그리고 조선에 선교사로 파견되어, 우리나라 여성운동의 산실인 부인조력회와 조선여성절제회, 조선간호부회, 여전도연합회 등의 창설과 함께 이 땅에 헌신하였다.

무엇보다도 서서평은 마음과 몸을 조선의 사람으로 살았다. 당시의 많은 선교사들이 조선을 미개한 나라로 여기고 우월적이며 계몽적인 입장에서 철저하게 미국인으로 살아간 것과는 정반대의 삶을 살았다. 그들은 몇 개의 호화 별장을 소유하고, 지리산 아래서 조선인들에게 등짐을 지워 물품을 남시루봉 정상부근에 지은 별장까지 나르게 하고, 그곳에서 호화 파티을 즐겼다. 그러나 서서평은 검정 남자 고무신을 신고, 옥양목 치마를 입고, 보리밥과 된장국을 먹으며 나환우와 걸인들과 함께 살았다.

서서평은 광주·전남 지역에서 헌신했다. 1930년 그곳은 45만 가구 220명 인구 가운데 88만 명이 굶주림에 시달렸고, 걸인은 11만 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는 1년에 100일 정도 나귀를 타고 병자와 여성을 돌보고 교육시켰다. 서서평의 일기에는 당시 조선의 참담한 삶이 역력하게 기록되어 있다. “한 달간 500명의 여성을 만났는데, 성한 사람은 하나도 없고 굶주리거나 병들어 앓고 있거나 소박맞아 쫓겨나거나 다른 고통을 앓고 있었다.”

서서평은 당시 ‘큰년이’ ‘작은년이’ ‘개똥어멈’으로 불린 이름도 없는 여성들에게 이름을 지어주고 불러주며 인간의 자존감을 세워주었다. 그는 나환우의 아들을 비롯해 14명의 고아를 양아들·딸로 삼아 키웠으며, 소박맞고 쫓겨난 38명의 미망인을 데려와 함께 살았다.
평등과 박애의 정신으로 사랑스럽지 못한 자를 사랑스런 존재로 만든 그는 1934년 자신의 주검마저 송두리째 병원에 기증하고 떠났다. 그에게 남겨진 것은 반쪽짜리 담요 한 장과 잡곡 한 바가지가 전부였다.

서서평, 그는 스스로 가난을 선택했다. 가난하게 살았지만 결핍을 느끼지 않았다. 소유에서 자유로웠다. 나아가 그는 가난의 자족에도 매이지 않았다. 아픈 사람과 함께 살며 아픔을 어루만졌다. 『금강경』이 어디 장경각에만 있겠는가? “마땅히 그 무엇에 붙들리지 말고 자비심을 행하라”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의 가르침이 서서평의 일생에서 생생하게 보여지는 것을. 그는 성공이 아닌 섬김의 삶에서 스스로를 낮추고 비웠다. 비움 속에서 나누고 나눔 속에서 비웠다. 대승의 길이 어디 『대방광불화엄경』에만 있으랴. 세상이 환상인 줄 알지만 삶과 역사를 만들어가고, 나와 네가 본래 없는 줄 알지만 나와 이웃이 교감하고 감동하는 삶을 엮어가며, 고통이 본래 없는 줄 알지만 무지와 욕탐으로 생긴 고통을 소멸하고자 하는 보살행이 조선의 사람 서서평에게 있지 않는가?

동안거 들어가는 선승들 사진 <한겨레> 자료

『유마경』은 이렇게 말한다. “보살은, 모든 것이 덧없는 줄 알지만 선행을 쌓는 일에 싫증을 내지 않는다. 모든 것이 괴로움인 줄 알지만 기꺼이 생사 가운데 들어간다. 열반이 적정한 줄 알지만 짐짓 궁극의 적멸에 안주하지 않는다. 세상을 벗어난 한적함을 알지만 몸과 마음으로 늘 노력하고 실천한다. 사람들로 왁자지껄한 장소를 찾지만 정작 번뇌와 혼돈을 훌쩍 넘는다. 무아인 줄 잘 알지만 사람들에 대한 자비심을 잃지 않는다.”

‘우리들의 세계’에 안주하고 자족하면 세상 사람들은 우리들을 ‘당신들만의 세계’로 밀어낸다. 그리고 서로가 낯설어진다. 서로에게 무관심해지고 자신의 속내를 감춘다. 단절과 고독과 고립의 세계가 만들어진다.

산중 수행자의 검정고무신과 서서평의 검정고무신, 이 두 개의 검정 고무신은 지금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법인 스님

법인 스님16세인 중학교 3학년 때 광주 향림사에서 천운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으며, 대흥사 수련원장을 맡아 '새벽숲길'이라는 주말 수련회를 시작하면서 오늘날 템플스테이의 기반을 마련했다. 실상사 화엄학림 학장과 (불교신문) 주필을 지냈으며, 현재 조계종 교육부장으로 승가 교육 진흥에 힘을 보태고 있다.
이메일 : abcd3698@hanmail.net     

2012년 8월 24일 금요일

“국민일보의 기자 해고, 기독교 신앙 위배”


이글은 미디어스 2012-08-24일자 기사 '“국민일보의 기자 해고, 기독교 신앙 위배”'를 퍼왔습니다.
기독교교회협의회 정의평화위원회, 국민일보 행태 비판

국민일보가 기자 4명을 해고하는 등 파업에 참여했던 구성원 13명에 대한 중징계를 내린 것에 대해, 기독교 내부에서도 거센 비판이 나오고 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정의평화위원회(위원장 이해학 목사)는 국민일보 중징계 사태와 관련해, 23일 서울 종로구 한국기독교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해고는 기독교 신앙에 위배되기에 어떤 이유로도 있어서는 안 된다”며 기독교 언론임에도 구성원들을 해고한 국민일보의 행태를 강하게 비난했다.
앞서 국민일보는 노사 합의에 따른 파업 종료에도 불구하고, 지난 20일 해고 1명, 권고사직 3명, 정직 5명, 감봉 4명 등 노조원 13명에 대한 징계를 확정해 통보했다. 국민일보는 특히, 파업을 주도했던 노조 지도부 뿐 아니라 일반 노조원에 대해서도 중징계를 내렸으며 이로 인해 파업 참가자의 15%에 해당하는 인원이 징계를 받게 됐다.

▲ 국민일보 지부와 언론개혁시민연대가 3월30일일 오전 11시 서울 광화문 프레스센터 앞에서 ‘국민일보 파업 100일 100인 지지선언 및 온국민응원단 출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미디어스

정의평화위원회는 먼저, 국민일보 사태와 관련해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경우에서 보듯이 현재 우리사회에서 해고는 살인과 같기 때문에 모든 기업이 해고를 강행한다 해도 기독교 복음을 운영 이념으로 고백하는 기독교 언론사는 결단코 해고만은 지양해야 한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이들은 그러면서도 “사 화합과 새 출발을 위해 우리는 원론적으로 징계에 반대하지만, 회사 경영상 어쩔 수 없이 꼭 해야 한다면 비기독교 언론사의 징계 범위를 넘어서지 말아야 하며 징계 대상이나 내용도 그야말로 상징적이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의평화위원회는 이 같은 입장에서 더 나아가 국민일보를 향해 “노사 화합의 큰 틀에서 새로운 미래를 만들고, 국민일보가 공익적 기독교 언론으로서 발전할 수 있는 중·장기 마스터플랜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아울러, 이번 징계를 단행한 인사위원장 최삼규 경영전략실장과 이승한 종교국장을 지목해 “국민일보 파업과 후유증의 중심과 요인이 되었다”며 두 사람의 사퇴를 촉구하기도 했다.
정의평화위원회는 마지막으로 “국민일보가 하루빨리 갈등을 접고 화합을 통한 새로운 출발을 단행함으로써 한국교회와 사회에 희망의 빛이 되기를 소원한다”며 “앞으로도 국민일보의 변화 과정을 주의 깊게 살펴 볼 것이며, 우리의 바람이 이루어질 때까지 기도하며 가능한 모든 행동을 다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교회들의 협의체인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에는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기독교대한감리회, 한국기독교장로회총회 등 10개 기독교 교단이 속해있으며, 이 가운데는 조용기 여의도순복음교회 원로목사가 총재를 맡고 있는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교단도 속해있다.

송선영 기자  |  sincerely@mediaus.co.kr

2012년 8월 14일 화요일

공관장 ‘식사기도’에 전도사도 반발…“기독교가 국교인가”


이글은 경향신문 201-08-14일자 기사 '공관장 ‘식사기도’에 전도사도 반발…“기독교가 국교인가”'를 퍼왔습니다.

박석범 휴스턴 총영사가 동포 간담회에서 식사 기도를 제안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13일 텍사스주 교포들과 한인 매체인 ‘미주데일리’에 따르면 박 총영사는 지난 10일 댈러스 지역 한인 단체장들과 저녁 식사를 겸한 간담회를 시작하면서 “기도를 하자”고 제의했다. 하지만 맥가이버 김(한국명 김성주)이란 신학생이 이의를 제기하면서 어색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사우스웨스턴 침례신학대(SWBTS)에 재학 중인 전도사라고 자신을 소개한 김씨는 “총영사님도 크리스천인 것 같아 너무 좋지만 개중에는 안 믿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면서 “이런 자리에서는 기도를 해도 되겠는지 먼저 의견을 물어보고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민주주의는 다수결의 방법이 맞을 수 있지만 하나님의 방법은 그렇지 않다”며 “100명 중에 99명이 기도하고 싶다고 해도 한 명이 원치 않으면 우리는 그 기도를 조금 기다려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댈러스 한국학교의 이사장 홍모씨는 “총영사께 기도하자고 내가 제의를 했다. 사실 미국에서는 모임에서 기도하는 게 습관적이다”라고 말했고, 박 총영사는 “나는 교회에 안 나가지만 여기 계신 분들의 대부분이 교회를 다니는 것 같고 홍 이사장님의 제안도 있고 해서 기도를 제안했다”고 해명했다.

더 반대 발언이 없자 댈러스 한국부녀회장인 송모씨가 기도를 올렸지만, 기도 전에 한 한인단체 고위 인사가 “기독교가 우리나라의 국교인가”라고 불쾌감을 표하며 자리를 뜬 것으로 전해졌다. 이 고위 인사는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교회 주최 행사도 아닌 공식 석상에서 공관장이 기도를 올리자고 해 깜짝 놀랐다. 이런 경우는 평생 처음”이라고 말했다. 

간담회에는 박 총영사 외에 중앙선관위에서 파견된 이웅재 재외선거 담당 영사가 배석했다. 정부 관계자는 “미국이든 한국이든 정교분리의 원칙상 공직자의 종교의식 제안은 법에 금지돼 있다”며 “다만 미국에선 교포 대부분이 개신교 신자라서 가끔 이런 일이 생긴다”고 말했다.

디지털뉴스팀

2012년 7월 10일 화요일

종교적 맹신 MB 닮은 대법관후보


이글은 프레스바이플 2012-07-09일자 기사 '종교적 맹신 MB 닮은 대법관후보'를 퍼왔습니다.
(긴급진단) 헌법을 위반한 기독교 편향 언행


국회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있는 김신(울산지방법원장) 대법관 후보자가 ‘기독교 편향’ 논란에 휩싸였다. 그가 법관으로서 여러 해 동안 기독교와 관련해서 공개적으로 한 발언과 행동은 헌법에 어긋난다는 것이 명백히 드러났다. 헌법 제20조는 “①모든 국민은 종교의 자유를 가진다 ②국교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라고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직 법관인 김 후보자가 국가의 최고위법인 헌법을 위반했다는 혐의를 받게 하는 언행의 구체적 내용이 무엇인지는 여러 매체를 통해 자세히 드러났다. (교회복음신문)에 따르면 그는 2010년 2월 자신이 회장으로 있던 부산기독인기관장회가 주최한 신년하례회에서 “부산의 성시화(聖市化)를 위해 기도하며 힘써나가자”고 말했다고 한다.
지난 4월에는 기독교계 사람들을 만난 자리에서 “울산에도 성시화 바람을 일으키기 위해 울산기독인기관장회 출범을 서두르자”고 촉구했다. 그리고 2011년 1월 부산지역에 있는 한 교회의 내부분열 과정에서 제기된 민사재판을 맡은 그는 “일반 법정에서는 사건을 다루기 창피해 심리하기 어렵다”면서 소법정으로 자리를 옮긴 뒤 원고와 피고 쪽에 ‘화해를 위한 기도’를 요구했으며, 기도가 끝나자 ‘아멘’이라고 화답했다고 한다.
김 후보자가 기독교적 편향을 넘어 자기 종교에 대한 ‘맹신’을 드러낸 것은 2002년이었다. 그는 그해에 출간한 에세이집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에 실은 글에서 2001년 1월 26일 인도의 구자라트주에서 2만여 명의 목숨을 앗아간 지진을 ‘하나님의 경고’라면서 이렇게 주장했다.
“이번에 지진이 발생한 구자라트주는 오리사주, 비하르주와 함께 주법으로 기독교 복음을 전파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계획하시는 것은 그 지진을 통해 복음의 문을 열어 더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시려는 것이 아닐까 생각을 해본다.”
김신 후보자의 기독교적 ‘맹신’은 여러 모로 이명박 대통령을 닮았다. 그는 서울시장 재직 시기이던 2004년 ‘수도 서울을 하나님께 봉헌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말한 바 있다. 김 후보자가 부산과 울산을 ‘성시화’하자고 주장한 것도 그 도시들을 ‘하나님께 바치자’는 뜻이다.
2011년 3월 이명박 대통령은 조찬기도회에 참석해서 목사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했다. 국가원수가 헌법에 규정된 ‘정교 분리’의 원칙을 어기고 공개석상에서 교직자의 부름에 따라 기독교적 의식을 치른 것이었다. 김신 후보자는 부산이라는 대도시에서 기독교기관장회라는 공직자 모임의 회장을 맡아 ‘성시화’에 앞장섰다. 부산 시민 가운데는 기독교인에 못지않게 불교를 비롯한 다른 종교를 믿는 이들도 많을텐데 그는 그 도시를 ‘배타적 신앙’의 본거지로 만드는 데 앞장선 것이었다.
인도의 지진 대참사에서 희생당한 사람들을 ‘하나님의 구원을 받기 위한 제물’로 여기는 김 후보자의 신앙은 오늘날 세계의 보수적 기독교권에 널리 번져 있는 ‘여호와만이 절대 유일의 신’이라는 믿음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부처가 가르친 ‘대자대비’, 공자의 ‘인(仁)’, 이슬람의 ‘사랑’도 근본적으로는 기독교 교리와 같은 맥락이다. 헌법 제11조는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 우리는 대통령의 종교적 편향이나 맹신이 국정에 어떤 파괴적 영향을 끼치는지를 2008년 2월 25일부터 오늘까지 4년 5개월 동안 명확히 볼 수 있었다.
우리는 대통령의 종교적 편향이나 맹신이 국정에 어떤 파괴적 영향을 끼치는지를 2008년 2월25일부터 오늘까지 4년5개월 동안 명확히 볼 수 있었다. 소망교회 장로인 이명박 대통령은 "현재의 정권은 도덕적으로 완벽하다"고 자랑한 바 있다. 그러나 그의 ‘기독교적 도덕성’은 지금 흙탕물을 뒤집어 쓰고 있다.
그의 친형인 이상득 전 의원이 거액의 정치자금을 불법적으로 받은 사실이 드러나서 구속될 위기에 처해 있고, 최측근인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 박희태 전 국회의장 등 18명이 법의 심판을 이미 받았거나 사법처리를 기다리고 있다. 역대 그 어느 정권에서도 현직 대통령의 측근과 친·인척이 이렇게 많이 실형이나 집행유예를 받은 적은 없었다. 그래서 이명박 정권은 ‘도덕적으로 가장 타락했다’는 평가를 받아야 마땅하다.
국정의 최고책임자는 이성과 양심에 따라 주권자인 국민에게 봉사해야 한다. 자기와 같은 종교를 믿는 사람들만 소중히 여기고 중용하는 것은 이성과 양심에 어긋나는 일이다. 종교는 자유와 평등과 사랑을 지향하는 신념체계이다. 분열과 편애는 반종교적 특성이다.
종교적 편향과 맹신이라는 면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뒤따르고 있는 김신 후보자는 ‘공직자의 종교적 중립 의무’를 지킬 수 있는 대법관이 되기 어렵다. 그렇게 특정 종교에 치우친 인물이 ‘법과 양심에 따라 재판’을 해야 하는 법관들 중에서도 최고위직인 대법관으로 임명된다면 가뜩이나 보수적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대법원이 심각한 문제를 하나 더 안게 될 것이다.

김종철 (언론인)  |  cckim999@naver.com

2012년 5월 12일 토요일

'한겨레' 공격나선 국민일보, '조 회장' 횡령 혐의 보도후 '개시'


이글은 미디어스 2012-05-11일자 기사 ''한겨레' 공격나선 국민일보, '조 회장' 횡령 혐의 보도후 '개시''를 퍼왔습니다.
특별취재팀 구성, 한겨레 지면 비판에 이어 기자 고소까지

“검찰이 회삿돈 수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조민제 국민일보 회장을 곧 불구속 기소할 방침인 것으로 확인됐다”는 (한겨레) 보도 이후, (국민일보)가 연일 지면을 통해 한겨레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회장의 횡령 혐의와 관련한 검찰 쪽 움직임을 보도한 한겨레 기자를 검찰에 고소하기도 했다.
한겨레는 지난 4월20일 (배임 이어 횡령까지…국민일보 회장 ‘궁지’) 기사를 통해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1부(부장 김영종)는 조 회장이 대표를 맡고 있는 디지웨이브의 회삿돈 수억원을 빼돌려 개인적으로 쓴 사실을 확인했다”며 “검찰은 2008년 11월 신문발전기금에서 지원받은 1억3천여만원을 조 회장이 전용한 혐의도 수사중이다. 검찰은 조 회장을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 조사한 뒤 이달 말이나 늦어도 5월 초에는 그를 횡령 혐의 등으로 불구속 기소할 방침”이라고 보도한 바 있다.


▲ 2012년 4월23일치 국민일보 보도 ⓒ국민일보

이 보도가 나간 뒤, 국민일보는 즉각 반발했다. 기사, 사설 등을 통해 해당 기사가 사실이 아님을 밝히면서 아예 특별취재팀을 꾸려 “한겨레가 기독교 공격, 폄훼에 앞장서고 있다”고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나섰다.
국민일보는 먼저, 4월23일치 (한겨레 보도 사실과 달라)는 기사를 통해 “한겨레신문의 지난 20일자 보도는 사실과 다른 것으로 밝혀졌다”며 한겨레 기사를 조목조목 반박했다.
국민일보는 그러면서 “한겨레의 이 같은 보도가 국민일보와 최고 경영진의 명예를 훼손할 악의적인 의도가 있다”며 필요한 법적 조치를 취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또, “그 동안 한겨레가 해고된 조상운 전 노조위원장 등의 일방적인 주장을 여과 없이 보도해 국민일보를 지속적으로 폄훼했다”며 강력 대응하겠다고도 밝혔다.
이날 사설을 통해서는 “(한겨레 기사는) 정확한 사실관계를 확인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편견을 갖고 판결을 주문하는 듯한 보도를 하다니, 언론이 이렇게까지 할 수 있는지 기가 막힐 따름”이라며 “악의적으로 제보한 사안에 대해 언론이 덩달아서 유죄를 확신하는 듯한 보도를 일삼는다면 형법상 무죄추정원칙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라며 강한 불만을 표했다.
아울러, 같은 날 (한겨레, 한국교회 만만한가?… 툭하면 공격·폄훼에 교계 공분) 기사에서는 더 나아가, 한겨레의 기독교 관련 보도 전반을 문제 삼았다. 이들은 “국내 일간지 중 한겨레만큼 한국교회에 대해 지속적으로 부정적 기사를 쏟아내는 언론은 드물다. 한겨레의 기독교 공격은 단순한 교회내의 문제를 보도하는 차원을 넘어선다”며 “한겨레는 기독교에 대한 편파적 시각을 갖고 기독교 때리기의 최선봉에 서 있다는 것이 교계의 일관된 목소리”라고 주장했다. 


▲ 2012년 4월23일치 국민일보 기사 ⓒ국민일보

검찰을 향한 불만도 드러냈다.
국민일보는 같은 날 (음해성 진정 확인단계서 언론에 유출… 검 수사 파행)을 통해서는 “검찰이 국민일보 조민제 회장에 대한 수사를 이례적으로 2년째 계속하면서 통상의 수사 절차 및 수사 관행에서 크게 벗어난 파행적인 수사를 하고 있다”며 “특히 수사 진행 사항과 미확정 혐의 내용이 특정 언론에 유출되고 있어 검찰 수사가 특정 세력에 의도된 방향으로 이뤄지는 게 아니냐는 지적을 받고 있다”고 불만을 표했다.
이 뿐 아니다.
국민일보는 4월24일 (한겨레, 기독교 비판기사 타 중앙지의 2~3배) 기사를 통해서는 한국교회언론회가 지난 2010년 한 해 동안 10대 중앙일간지의 각 종교별 보도내용을 분석한 결과를 전하며 “국내 일간신문 가운데 기독교에 대해 가장 비판적인 언론은 한겨레로 드러났다. 특히 한겨레는 교회비판을 넘어 아예 기독교에 대해 안티 수준의 보도태도를 보였다”고 밝혔다. 
지면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던걸까. 국민일보는 더 나아가 조민제 회장 관련 기사를 쓴 한겨레 기자를 고소했다.
해당 기사를 쓴 김태규 한겨레 기자는 (미디어스)와 통화에서 “어제(10일) 서울서부지검에서 연락이 와서 고소 사실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고소 이유는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으나, ‘허위사실을 통해 조민제 회장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게 국민일보 쪽의 고소 취지인 것으로 전해졌다. 김태규 기자는 이와 관련해 “일단은 무고죄로 맞고소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연일 계속되고 있는 국민일보의 한겨레 때리기에 대해, 한겨레 안수찬 기자는 4월25일 칼럼에서 성경 구절을 인용해 현 국민일보의 행보를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면서 하신 말씀이 누가복음(루가의 복음서) 23장에 있지요.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짓을 하는지 모릅니다.” 조(민제) 회장님은 지금 무슨 일을 하고 계시나요. 젊은 기자들을 무더기로 고소하고, 자신에 대한 검찰 수사를 비난하는 기사가 지면에 실리도록 방치하는 게, 빈자의 헌금으로 천막교회를 짓던 일의 본심이었나요. 그건 아니겠지요?
한편, 국민일보 파업 140일을 맞아 기독교인 1540명은 10일 성명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과 교회를 사랑하는 평범한 기독교인들로서, 한국 교회의 헌금으로 세워진 국민일보는 조용기 목사 일가에 의해 사유화될 수 없는 한국교회 공동의 자산임을 천명한다”며 “국민일보 문제는 언론개혁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교회개혁의 문제이며, 국민일보 노조를 넘어 한국 교회 전체가 공동으로 책임져야 할 문제”라고 밝혔다.
이들은 그러면서 국민일보 회사 쪽을 향해 “파업 중에 발생한 고소·고발을 즉시 취하하고, 이로 인해 고통 받았던 이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하라. 공정보도를 위한 완전한 편집권을 보장하여, 균형 있는 전달자로서의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하라”며 조민제 회장을 비롯한 조용기 가문은 국민일보에서 물러나라고 촉구했다.

송선영 기자  |  sincerely@mediaus.co.kr

2011년 12월 25일 일요일

정봉주 유죄, 세계적 유례없는 엉터리 판결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1-12-23일자 기사 '정봉주 유죄, 세계적 유례없는 엉터리 판결'을 퍼왔습니다.
[기고] 박경신 고려대 교수 "진실 입증 못하면 유죄? 기독교인들 다 잡아갈 건가"

국가가 모든 걸 통제하고 개입할 필요는 없다. 상대성 이론은 국가개입 없이 발견되었고 아이폰은 국가지원 없이 잘 만들어졌다.
사법부가 모든 말의 진위 여부를 결정할 필요도 없다. 안기부 X파일 검사가 실제로 떡값을 받았는지 조선일보 사장이 장자연의 성상납을 받았는지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감염 가능성이 얼마나 높은지 등등 어떤 명제들은 과학적으로 현실적으로 확인이 불가능하다. 아마도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명제인 ‘신은 존재한가?’도 그 진위도 결정되지 않았지만 우리는 수천년을 잘 살아 왔다. 가장 신실한 기독교인들의 신실함은 이 질문에 대한 고민의 강도로 결정된다.
국가가 국민이 한 말이 허위라고 해서 잡아가두거나 국가가 독점하는 기타 강제력을 행사하려면 우선 그 말이 허위임이 입증되어야 한다.


▲ BBK 허위사실 유포 혐의 등으로 기소된 정봉주 전 민주당 의원이 22일 서울 대법원에서 열린 상고심 선고에서 징역1년을 선고받은 뒤 지지자들에게 소감을 밝히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이번 정봉주 전 의원의 유죄판결은 이 당연한 원리를 송두리째 무시한 판결이다. ‘BBK가 이명박 소유가 아니다’라는 입증이 없는 상황에서 정봉주 전 의원에게 ‘네 말이 진실이라고 입증하지 못했으니 유죄’라는 판결은 전세계적으로 그리고 우리나라 역사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판결이다.
대륙법과 영미법을 막론하고 어느 나라에서도 진실인지 입증하지 못한 명제의 책임을 그 말을 한 사람에게지우는 나라는 없다. 그런 논리라면 전세계의 기독교인들은 야훼의 존재를 입증하지 못한 죄로 모두 감옥에 가야 할 것이다. ‘확실한 증거가 없으면 입을 다물라’는 것인데 이런 규범하에서 문명이 어떻게 발전하고 사상이 어떻게 발전할 것인가. 노회찬 안기부 X파일 사건에서는 다행히도 우리 대법원이 정확하게 말했다. 

“안강민, 홍석현, 이학수가 법정에 출두해서 ‘우린 떡값을 주지도 받지도 않았다’고 증언이라도 하지 않는 이를 입증하지 못한 책임을 노회찬에게 지울 수 없다”고. 노회찬 대법원의 판결의 원리를 완전히 뒤집은 이번 이상훈의 판결은 우리나라 사법부의 수준이 얼마나 저열한지 선진국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우리가 얼마나 깊게 우리 속살을 도려내야 하는지 보여준 판결이다.
이상훈 대법관은 ‘BBK가 이명박 소유이다’라는 명제가 허위인지를 판시하지 않고 정봉주에게 유죄판결을 내렸다. 틀림없이 죄목은 허위사실공표인데 허위인지를 판시하기 전에 정봉주가 자신의 한 말의 근거가 없다고 유죄를 때렸다.
이렇게 하게 된 이유는 착시현상 때문이다. 형법 제307조제1항이 진실인 경우에도 명예훼손의 성립을 인정하기 때문에 진실이든 허위이든 어차피 유죄이니 기소죄목에서는 ‘허위’가 위법성 요건임에도 불구하고 진위여부를 판정하기도 전에 말한 사람이 얼마나 근거를 가지고 있었는지를 따진다. 피고가 한 말의 진위를 밝힐 생각은 안하고 ‘피고 너 그런 말할 자격있냐’를 묻게 되는 것이다.


▲ 22일 오전 정봉주 전 의원에 대한 판결이 나오자 그의 지지모임인 '정봉주와 미래권력들(미권스) 회원들이 대법원 앞에 모여 판결에 대해 성토하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이렇게 되어버리면 권력비리는 캘 수가 없다. 권력비리는 침묵과 어둠의 장막 속에서만 이루어진다. 이들은 이런 장막을 구매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장막을 뚫고 간신히 올라오는 단서들은 당연히 ‘충분한’ 증거가 되지 못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 단서들을 제시할 수 없다면 비리의 고발은 불가능하다.
장자연이 남긴 유언장과도 같은 문서, 안기부가 본의 아니게 남긴 X파일, 외국 과학자들과 언론이 광우병에 대해서 한 말, 네티즌들이 황우석의 테라토마 사진을 보고 제기한 의혹들이 바로 그러한 단서들인데 이 단서들을 국민들에게 공개하고 국민들의 의견을 묻는다고 해서 감옥에 가야 한다면 누가 비리 고발을 하겠는가. 정봉주도 BBK의 소유주에 대해서 알 수 있는 모든 방법들이 침묵의 장막으로 차단된 상황에서 어렵게 어렵게 얻어낸 단서들을 국민들과 공유한 것 뿐이다. 정봉주가 한 일은 자신이 얻을 수 있는 모든 정보들 중에서 BBK와 이명박 사이의 관계에 대한 정보들을 공개한 것 뿐이다.
지금 할 일은 두 가지이다. 첫째 전세계에서 유례가 없이 진실임에도 명예훼손 책임을 지우는 형법 제307조 제1항을 꼭 폐지해야 한다. 물론 이번 유죄조항은 선거법 조항이지만 명예훼손 논리를 대입하였음이 분명하다. 

둘째 사법개혁이다. 법관소환 제도만으로 불충분하다. 법관이든 검사이든 국민의 위임 범위 안에서 활동한다는 명제를 확실히 상기시켜줘야 한다. 국민은 누구에게도 국민의 말이 진실임이 입증되지 않았다고 해서 그 국민을 처벌할 권한을 준 적이 없다.

(박경신 고려대 교수가 블로그에 올린 글을 박 교수의 동의를 받아 게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