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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9월 26일 수요일

기자 수백명이 못한 일을 작가 한 사람이…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09-25일자 기사 '기자 수백명이 못한 일을 작가 한 사람이…'를 퍼왔습니다.

성한표 언론인
[미디어 전망대]

‘기자 수백 명이 못한 일을 작가 한 사람이 해냈다.’ 쌍용자동차 사태를 다룬 작가 공지영씨의 르포르타주 (의자놀이)를 보면서 떠오른 생각이다. 한 직장에서 일했던 해고노동자와 가족들이 3년 동안 22명이나 목숨을 잃었는데, 서울 도심 대한문 앞에만 가면 천막 치고 노숙하던 그들을 언제든지 볼 수 있었는데, 내가 한 일은 무엇인가를 자문하기도 했다.지난 6월 중순 (한겨레) ‘미디어 전망대’에 글 한 줄을 남기긴 했다. 쌍용차 사태의 후속 보도에 소홀한 기자들을 나무라는 글이었다. 나도 기자 출신이니, 후배들을 닦달하기 전에 스스로 르포 같은 걸 쓰면 될 것이 아닌가 하는 반성도 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일 뿐, 잡다한 세상일에 매몰되어 쌍용차 일은 까맣게 잊어버렸을 때쯤 발간된 (의자놀이)가 내 마음을 뒤흔들었던 것이다.공 작가는 책이 나온 바로 그날(8월6일) (시비에스)(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에 나와 “언론이 하도 소설을 써서 (작가인) 내가 기사를 쓸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보수언론들이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을 마치 자기네들만 살려고 하는, 이기적인 노동귀족으로 몰아갔는데, 이 모든 것이 다 허구”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작가가 말하는 ‘소설’은 물론 일부 언론의 의도적인 왜곡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항상 그랬던 것처럼 쌍용차 노동자들의 파업에서도 우리는 용역과 경찰의 공격에 비해 노동자들의 저항이 더 과격하게 비치는 현장 사진을 자주 봤다. (의자놀이)는 왜 그런 사진이 찍힐까를 설명하고 있다. 현장에 있던 한 노동자의 증언을 인용한 대목이다. “경찰과 용역, 그리고 회사 관리자들이 한 조가 되어 (강철 볼트를 장전한) 새총을 쏘고 있었죠. 그런데 어느 순간 갑자기 그 사람들이 흩어져 숨더라고요. 왜 그러나 봤더니 잠시 후 방송 헬기가 날아왔어요. 경찰이 용역들에게 방송 헬기가 뜬다는 걸 알려준 거죠. 헬기가 가고 나니까 다시 총을 쏘더군요.” 그 방송사 카메라가 잡은 영상에는 (새총에 저항하던) 노동자들의 이상한(?) 몸짓만 담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가 가져온 사회적인 반향은 참으로 컸다. 쌍용차 사태를 파헤치는 국회 청문회가 열렸고, 종교계를 대표하는 33명이 모여 쌍용차 사태 해결을 위한 ‘100일 국민실천’을 제안하기도 했다. 청문회의 증언과 자료들을 통해 몇 가지 사실도 드러났다. 조현오 당시 경기경찰청장은 2009년 쌍용차 노사 협상 타결이 임박한 것을 알고도, 상부 지시까지 무시한 채, 권총형 전기충격기(테이저건) 등으로 중무장한 경찰특공대를 투입했으며, 중국 상하이차가 쌍용자동차에서 철수한 이유가 경영 위기가 아닌, 검찰의 기술 유출 수사 때문이었다는 것이 밝혀졌다.이런 사실들이 일부 언론에 크게 보도되는 성과를 거뒀지만, 청문회 묵살이라는 보수언론의 차단벽을 뚫고, 쌍용차 사태의 해결이라는 구체적인 결실을 맺기에는 역부족이다. 어떤 논설위원이 청문회의 실마리가 된 (의자놀이)를 칼럼으로 비아냥거릴 정도로 보수언론의 쌍용차 알레르기가 극심하다. 공지영씨는 “제발 저 같은 소설가는 꼭 다음에는 사랑 이야기를 쓸 수 있게 정치인들이나 언론인들이 (국정조사와 추적보도 등을) 많이 해주시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이제 기자들이 ‘기사’로 이어갈 차례다.

성한표 언론인

2012년 9월 15일 토요일

동아일보 횡설수설 ‘의자놀이’ 비판 왜?


이글은 미디어스 2012-09-14일자 기사 '동아일보 횡설수설 ‘의자놀이’ 비판 왜?'를 퍼왔습니다.
[인터뷰]쌍용차지부 기획실장 이창근에게 묻다

▲ 오늘자 동아일보 34면 '횡설수설'란

동아일보 오피니언란에 공지영의 (의자놀이)에 대한 비판 글이 등장했다. ‘횡설수설’란에 쓰여진 송평인 논설위원의 “의자놀이의 거짓말”이 그것이다. 그런데 글을 보면 말 그대로 횡설수설이다. 이 글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해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로서 현재 희망버스 대변인을 맡고 있는 이창근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기획실장에게 물어보았다.

 - 조중동에서 (의자놀이)에 대해 말한 적이 없는데 이례적으로 등장했다. 어째서라고 생각하나.

동아일보 논설위원이 왜 이런 글을 썼냐, 라고 물어봐야 할 상황인데, 나는 현재 국회에서 청문회가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새누리당에 대해 인기영합하기 위해 쓸데없는 짓을 벌이고 있다는 메시지를 주려고 하고 있다. 청문회가 진행되다 보면 재벌 총수들을 불러내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 보수층 입장에선 그것을 나쁜 선례라고 받아들일 것이다. 그들 입장에선 막아야 하는 상황이다. 그래서 다음 주 정도면 조중동 사설에서 청문회에 대해 언급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 ‘횡설수설’이 세 가지를 말했다. 이것들에 대해서 어떻게 받아들이나.

하나만 물어보자. 르포라는 게 정말로 해당 사건의 현장에 꼭 있었던 사람만 쓸 수 있는 것인가.

-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현장’이란 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에 대해 견해차가 생기기 때문이다. 가령 ‘횡설수설’은 공지영 작가가 파업 현장에 함께 있지 않았기에 쓸 자격이 없다 했지만, 그 파업현장을 기억하는 노동자들을 인터뷰하며 썼다면 그 장소가 ‘현장’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봐야 하지 않겠나. 가령 1930년대 사회주의자들에 대해서 쓴다면, 우리가 타임머신을 타지 않는 이상 그 상황 자체를 경험할 수는 없는 것인데, 어쨌든 재구성을 해서 쓰게 된다. 그때가 현장이 아니라 그 분들을 만나는 장소가 현장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파업 때 가보지 않았다고 말할 자격이 없다고 말하는 건 옳지 않다. 겪어보지 않았으니 모른다는 하나마나한 소리를 하지 말고, 만일 파업경험자들의 주장이 왜곡되어 있다면 그 사실을 논박하면 될 일이다.

 - 다음으로, 쌍용차 노동자의 22명 죽음 중 자살자는 12명 뿐이라는 얘기를 했다. 물론 22명 모두가 자살자는 아니며, 돌연사와 같은 상황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이런 얘기에 대해서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황당하다. 일단 12명이라 하더라도, 3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전체 2,646명 노동자 중에서 생긴 자살자라면 굉장히 높은 수치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입장에선 22명조차도 죽은 통계라는 거다. 나는 이 얘기도 국회 청문회에 대한 훈수라고 생각된다. 새누리당에게 이런 지점들을 공략하라고 조언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새누리당이나 보수언론 측에서 그렇게 얘기한다면, 우리는 우리대로 그렇다면 제대로 된 통계를 위해 해고자와 희망퇴직자들의 근황을 조사해 보자고 얘기하고 싶다. 끔찍하지만, 그러면 훨씬 더 심각한 결과가 나올 거라고 예측한다. 문제를 제대로 직시하려고 한다면 파헤쳐야 할 사안이다.

 - 세 번째 얘기는 부실회계 문제는 금융감독위원회 등의 조사로 문제가 없다는 결론이 났다는 것이다.

역시 청문회에서 나오게 될 얘기가 아닐까. 그 결론이 틀렸다는 것이 우리의 입장인데 결론이 났으니 받아들이라고 하는 것이 말이 되나. 근거를 가지고 해야 할 얘기다. 지금은 ‘횡설수설’에 나왔지만 청문회 진행되면서 사설이나 칼럼에서 쓸 때는 좀 더 말이 되는 얘기들을 했으면 좋겠다. 
어찌 보면 조중동이 (의자놀이)가 만들어내는 모든 현상에 침묵하는 가운데 동아일보가 이런 식으로라도 보도한 것은 고무적이다. 이창근 실장은 “동아랑 전쟁하면 대동아전쟁이 되는 건가”라고 농담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애써 사태를 외면하던 그들의 뒤늦은 관심을 보면서, 국회가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를 깨닫게 된다. 매체비평지 기자의 입장에서도 청문회가 지속되면서 나오게 될 ‘그들’의 사설과 칼럼이 기대되는 바다.

한윤형 기자  |  ahriman@mediaus.co.kr

2012년 8월 19일 일요일

운이 좋다면 피할 수 있을까, 쌍용을, 이 신자유주의를


이글은 한겨레21 2012-08-20일자 제924호 기사 '운이 좋다면 피할 수 있을까, 쌍용을, 이 신자유주의를'을 퍼왔습니다.
[표지이야기] 한여름날의 지옥 3년 뒤, 출소한 한상균 전 지부장과 (의자 놀이) 펴낸 소설가 공지영의 만남… 생사의 갈림길에서도 사랑한 현장으로 돌아갈, 마지막 희망이 필요하다

한 여름날의 지옥. 2009년 8월5일, 경기도 평택시 칠괴동 쌍용자동차 공장이 그랬다. 그 7개월 전 서울 용산 참사의 직간접적 원인이었던 경찰특공대를 태운 컨테이너가 공장 지붕 위에 상륙했다. 방패와 곤봉을 쥔 무장 특공대들의 시선은 당황한 노동자들을 토끼몰이하듯 좇았다. 마구잡이 구타. 공장 위를 맴돌던 헬기는 최루액을 비처럼 뿌려댔다. 사 쪽의 2646명 정리해고 계획을 막겠다며 76일째 옥쇄파업을 벌이던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조합원 600여 명을 진압하려는 작전이었다. 이날 조합원 100여 명과 경찰 34명이 다쳤다. 이미 열흘 넘게 전기와 물이 끊긴 공장 안에서 경찰·용역 대 조합원 간 충돌이 되풀이 되고 있었다. 그 다음날 한상균(51) 당시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장은 회사 쪽에 대화 재개를 요청했다. 이날 노사는 마지막까지 남은 정리해고 대상 조합원 974명 중 468명(48%)은 무급휴직 1년 뒤 생산물량에 따른 순환근무로 고용을 유지하고 나머지 52%는 희망퇴직을 하는 안에 합의했다. 그날 저녁 한 전 지부장은 조합원 한명 한명과 포옹하며 눈물의 작별 인사를 나눴다. 파업 종료 합의 뒤에도 국가와 회사는 ‘폭력시위’로 피해를 봤다며 손해배상 소송 따위를 제기하는 등 쌍용차 노조 집행부와 조합원들을 끈질기게 괴롭혔다. 가슴에 멍이 생긴 해고·무급휴직·희망퇴직자 2천여 명에겐 경제적 고통과 가정불화가 쓰나미처럼 밀어닥쳤다. 그 고통이 쌍용차 노동자·가족 22명의 목숨을 앗아갈지, 그땐 그 누구도 몰랐다.

» 한상균 전 지부장과 소설가 공지영

용산 이후 ‘도가니’로 빠져든 사회

지난 8월4일 밤 12시 한상균 전 지부장이 옥문을 나섰다. 노사 합의 뒤 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돼 대법원에서 3년형 판결을 받고 복역하다 만기 출소한 것이다. 옹근 3년이다. 그 사이 쌍용차의 경영 실적은 나아지고 있지만 복직된 조합원은 아무도 없다. 노사 합의문은 회사 쪽엔 휴지조각에 불과했다. 그 휴지 조각이 22명의 생명줄을 끊어놓았다.
한 전 지부장은 8월6일 오전 서울 대한문 앞 쌍용차 희생자 추모 분향소를 찾았다. 이미 말라버렸다 여긴 눈물샘이 금세 차올랐다. 그날 소설가 공지영(49)은 쌍용차 파업 전후 과정을 기록한 르포 (휴머니스트 펴냄)를 출간했다. 동료 노동자들을 하루아침에 산 자와 죽은 자로, 승자와 패자로 갈라놓은 쌍용차 정리해고 전후의 사태를, 사람 수보다 모자란 의자를 차지하려고 가족과 친구를 밀어내야 하는 ‘의자놀이’에 비유한 것이다. 8월6일 저녁, 서울 양천구 목동의 한 카페에서 한상균 전 쌍용차 지부장과 소설가 공지영이 마주 앉았다. 대화의 시작점은 다시 3년 전 평택 공장이었다.

공지영 작가(이하 공) 3년 전 우연히 뉴스를 통해 쌍용차 조합원들이 경찰에 진압당하는 장면을 봤다. 그때 ‘저 사람들 처음 싸우는 사람들 같다’고 생각했다. 30초가 안 되는 그 짧은 장면을 어떻게든 잊으려고 노력했지만, 실은 한 번도 잊지 않고 있었다. 늘 미안했다. 그렇지만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제발 빨리 문제가 해결되기를 바랐다. 그때 빚을 이제야 갚는 것 같다. 소설 를 쓰고 있는데 노무현 전 대통령이 돌아가시고 쌍용차 문제가 생겼다. 내가 예지 능력이 있는 건 아닌데, 용산 참사 이후 우리 사회가 점점 ‘도가니’로 빠져들더라.

한상균 전 지부장(이하 한) 3년 전 파업을 마무리할 당시엔 워낙 많은 생각이 파노라마처럼 스쳐갔다. 그걸 뭐라 말로 표현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래도 마지막 생각은, 살려고 투쟁하는 건데 그 투쟁 때문에 많은 가족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슬픔을 안길 순 없다는 것이었다. 그때 가장 큰 문제는 조합원들의 안전이었다. 공권력이 투입되면 수백 명이 사고를 당할 게 불 보듯 뻔했다. 그러나 정작 국민의 생명을 보호할 책임이 있는 국가는 ‘설마’ 하며 별다른 고민 없이 공권력으로 밀어붙인 거 같다.

서로를 미워하게 만드는 실체 없는 ‘유령’

공 를 쓰는 동안 특이한 경험을 했다. 쌍용차 문제에 대한 상황 파악은 금방 됐다. 그런데 집필을 시작하면 잠을 못 자는 거다. 빙의 같은 현상이었다. 잠을 못 잔 지 사흘째 되던 날 하품을 하는데, 그 순간 지금까지 하품조차 한 번 안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소름이 끼쳤다. 하품도 하지 않는 건 완벽한 초긴장, 병적인 상태다. 생각해보니 파업 끝나기 전 공장에 전기·물 공급 끊기고 경찰 헬기 뜨던 상황이 그랬을 거 같더라. 한 조합원한테 물어봤더니 그때 잠을 못 잔 조합원이 많았다는 거다. 조합원들이 그런 초각성 상태에서 공포까지 가중됐다면 정말 빨리 정신 상담을 받아야 했는데, 국가와 회사 쪽은 아무런 조처도 취하지 않고 있다.
잠을 잘 수 없을 거란 두려움으로 글을 쓰지 못하던 와중에 오래전 참석을 약속한 평택역 앞 거리 미사에 갔다. 미사 도중에 그렇게 눈물이 나더라. 한 조합원 아내한테 휴지를 좀 달라고 하니까 이 양반도 울고 있더라. 그날 조금 다른 생각이 들었다. 내가 무섭다고 안 쓰고 있을 때가 아니다, 쓰지 않을 거면 여기서 포기하고, 그게 아니면 잠 못 자도 쓰자고 생각했다. 그랬더니 약간 잠이 오더라.
한 자료를 통해 77일간의 파업 과정을 파악했다고 들었는데, 어느 부분에서 몰입이 됐는지 궁금하다. 쌍용차 사태는 다양한 시각에서 볼 수 있지 않나. 22명의 희생에 대한 동정일 수도 있고.
공 이게 단순히 노동계급의 이야기가 아니라 99.9%들의 일이구나, 내 자식이나 이 사회의 흥망성쇠가 쌍용차 문제 해결에 달렸구나 싶었다. 경영이 어려워져 노동자들이 ‘자구책이 있으니 한번 해보겠다’고 하는데도 사 쪽에서는 ‘시끄러워. 너희는 나가’라며 몰아냈다. 법대 교수들한테 그런 법이 어딨냐고 물어봤더니 ‘어쩔 수가 없다. 이게 신자유주의다’라고 하더라. 그때 이게 내 문제가 되겠구나 싶었다. 쌍용차 노동자들이 너무 힘들었을 것 같다. 노동자와 노동자를 서로 미워하게 만들지만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유령, 그 유령하고 싸워야 하니까 사람들이 돌지. 선생님한테 맞은 애들은 친해질 수 있지만 선생님이 시켜서 서로 따귀를 때린 애들은 친해질 수 없다. 상대방이 잘못한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도 말이다.
한 문제의 발단은 2005년 쌍용차를 인수한 중국 상하이자동차가 기술을 빼가는 ‘먹튀’ 경영을 한 것이다. (상하이차는 쌍용차 인수 때 약속한 투자 계획을 지키지 않다가 2009년 법정관리를 신청한다.) 언론 등이 이런 문제는 외면하고 노사 문제로만 몰아갔고, 공권력이 과도하게 개입했다. ‘유령’은 거기서부터 떠오른 것이다.
시민사회나 작가 단체들이 나선 건 ‘이게 내 자식이나 이웃의 문제다’라는 공분이 생겨서인 듯하다. 그런데 이런 (연대의) 싹이 자라기 전에 잘라야 한다고 여기는 집단이 있다. 양쪽 간 접점을 과연 어느 지점에서 만들지 힘겨루기 과정에 있는 것 아니겠나. 요즘 자본의 사병들이 공권력의 비호 아래 노동자들을 두들겨패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으니….
공 자료를 보니 쌍용차와 계약을 맺은 경비업체가 용역 1인당 하루에 24만7천원 정도를 지급했다고 신고했더라. 헬기 한 번 띄우는 데 600만원이 든다더라. 그런 돈으로 노동자를 고용하면 안 되나 싶었다. 경찰은 쌍용차 평택 공장에다 10년묵은 최루액 2천ℓ 이상을 부었고, 테이저건·고무탄 따위 온갖 무기를 시험했다.


하루아침에 빈민·빨갱이, 그리고 죽음

해외자본의 무책임과 부정, 정부의 방관, 무리한 공권력 투입, 삶을 벼랑 끝으로 내모는 정리해고, 산 자와 죽은 자로 나뉜 노-노 갈등과 공동체 붕괴, 무력화된 노사 합의…. 쌍용차 사태는 ‘운이 좋아야 피해갈 수 있는’ 우리 사회 문제의 집합체다. 내 일이 아니라고 안도하는 사이 2천 명의 노동자와 그 가족 가운데 22명이 죽어나갔다.
공 쌍용차 파업 노동자들이 너무 범생이였다. 별로 낮지 않은 월급을 받았고, 준법정신이 투철했다. 스스로 경찰과 대적하는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던 거지. 우린 학생운동 하며 경찰을 비난하기도 했는데, 이 사람들한테는 그런 상황이 범법인 거다. 게다가 평택이 보수적인 지역이고. 별걱정 없이 모범적으로 살던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빈민·빨갱이가 됐고, 죽음의 경험까지 덧붙여진 거다.
한 쌍용차는 다른 대공장보다 노사관계가 원만하게 유지돼왔던 사업장이다. 그러던 어느 날 인간 말살을 경험하니 모두 패닉에 빠질 수밖에 없다. 그러다 극단적인 선택으로 연결되고. 개인의 선택이지만 구조적으로 죽임을 당한 사회적 타살이다. 이런 부분에 대해 국가와 회사는 사과 한마디 하지 않았다.
공 진압 과정에서 공권력이 ‘너희 따위는 언제든지 죽일 수 있고 벌레만도 못해’라는 메시지를 준 것 같다. 특히 이명박 정부 들어 ‘돈 많은 놈이 나를 때리면 공권력이 나를 보호해주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불확실성이 더 커진 듯하다.
한 파업 와중에 ‘한상균은 파업 끝나면 민주노총으로 간다, 누구누구는 정치한다, 조합원들만 희생양이다’ 이런 헛소문들이 돌았을 때 상처를 많이 받았다. 개개인은 나약하다. 파업을 하며 그런 면들을 낱낱이 봤지만, 지난 3년간 그 기억을 싹 지웠다. 지우지 않으면 세상 보는 눈이 비뚤어져 내가 살지 못할 것 같았다. (파업 조합원들한테 폭력을 행사하고 회사 편을 든 사람들도) 우리 조합원인데 왜 용서를 못하겠는가. 생존을 빌미로 흔들었을 때, 누구라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렇게 몰고 가는 자본이 악랄한 것이다. 영혼을 짓밟는 일이다.
공 여러 자료를 보며 한 전 지부장에 대해 궁금했다. 이렇게 존경받는 지도부는 처음 본 것 같다. (2009년 6월26일 관리직·비해고 노조원 3천여 명의 공장 진입으로) 처음 (노-노) 충돌이 있었을 때 노조 지도부가 사 쪽 직원들과 맞서지 말라고 방침을 내린 건가, 아니면 파업 조합원들이 착해 쇠파이프를 못 든 건가?
한 같은 조합원들한테 폭력을 쓸 수 없다는 방침은 분명했다. 이를 조합원들에게 내부 방송으로도 알렸다.
공 적극적으로 폭력을 쓰지 못하게 했다는 건데, 그럼 어느 순간부터 조합원끼리 맞선 건가?
한 처음엔 서로 냉정을 찾을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그것을 무너뜨리는 역할을 용역들이 한 거다. 우리가 밀릴 수밖에 없는 입체적인 작전이 있었다. 그러다 노-노 간 우발적 충돌이 발생했고 감정이 격앙되게 된 것이다.
공 취재할 때 그 이야기를 듣고선 ‘싸우는데 가릴 게 뭐 있어’라고 생각했다. 파업 노동자들이 전기가 끊긴 도장공장 안에 있던 비상발전기를 자동차용 페인트가 굳지 않게 하는 데 썼다고 하더라.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와중에 회사 손해 걱정하게 생겼나. 전기 끊긴 도장공장의 불을 밝히는 데 비상발전기를 써야지, 그게 싸움을 이기자는 사람들이 할 일인가. 그렇게 울컥울컥하는 심정이 들다가도 결국 이런 것 때문에 이 사람들이 이기겠구나, 이 바보 같은 패자들이 결국은 그 바보스러움 때문에 다시 승자가 되겠구나 싶었다. 사람들한테 ‘올바르게 사는 것이 결코 손해가 아니다’라는 사실을 가르쳐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바보 같은 일이라고 불리는 것들이 오히려 사람들에겐 많은 걸 준다. 뉴스에서 보던 것이 전혀 사실이 아님을 알았을 때 사람들은 울컥한다. 그렇게 행동해줘서 조합원들에게 감사했다.

비상발전기로 도료 굳지 않게 한 사람들

한 해고자·희망퇴직자, 생사의 갈림길을 넘나드는 조합원일지라도 쌍용차가 망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사람을 못 봤다. 그만큼 애착을 가지고 있다. 쌍용차는 강소회사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는 곳이다. 활력을 찾아갈 수 있는 조건이 있는데, 경영진들이 이를 외면하면 안 된다. 차량 판매 캠페인 등 일터에 복귀할 수 있는 조건들을 찾을 수도 있다. (현재 쌍용차의 대주주인) 마힌드라 경영진은 그들이 강조해온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고 본다. 국내에서 한 단계 도약하려면 하루빨리 해고노동자에 대한 대책을 내놔야 한다.
한상균 전 지부장은 공지영 작가와 얘기를 마친 뒤 지하철을 타고 동료들이 있는 대한문으로 다시 향했다. 출소한 지 얼마 안 된 그에겐 휴대전화가 없다. 지하철 안 승객들이 저마다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광경도 낯설다. 진중한 말투에선 오랫동안 비워둔 아버지·남편·아들 자리에 대한 고민이 묻어났다. 3년이란 시간은 많은 걸 변하게 한다. 그러나 흐르는 시간만으론 쌍용차 노동자들의 비극을 막아낼 수 없다. 다시 평범한 삶을 살 수 있다는 희망, 잘못한 이들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희망, 그토록 원하던 공장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이 필요하다. 이제 의자놀이는 그만 두고, 비극의 강을 건널 희망의 징검돌을 놓는 일에 모두가 힘을 보태야 한다.

글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의자놀이)가 세상에 나오기까지…한 권 사면 4200원 후원

쌍용차 정리해고 과정 및 파업 전후 이야기를 담아낸 (의자놀이)는 쌍용차 문제 해결을 열망하는 이들의 재능 기부로 만들어졌다. 대표 집필자인 공지영 작가는 자신의 인세(책값의 10%)를, 편집·디자인·마케팅 등을 맡은 휴머니스트 쪽은 수익금 전액을 쌍용차 해고노동자 후원 기금으로 내놓기로 했다. 독자가 (의자놀이) 한 권을 사면, 4200원을 후원하게 된다. 제작 원가와 서점 마진 등 유통 비용을 뺀 저자 인세와 출판사 수익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책이 출간된 뒤, 일부 중소 서점들도 수익금을 후원 기금에 보태겠다는 뜻을 밝혔다. 잘못 표기된 법률 용어를 체크해주거나 인터넷에 서평을 올리는 등 책 제작과 홍보에 도움을 주려는 독자도 늘고 있다. 책 출간을 기념해 8월18일 저녁 7시 쌍용차 희생자 추모 분향소가 마련된 서울 대한문 앞에서 북콘서트‘들국화와 함께하는 공지영의 의자놀이’가 열린다.
공지영 작가는 그동안 공개된 쌍용차 관련 기록이나 기사·칼럼·인터뷰 등을 참고해 집필에 나섰다. 원문을 작성한 이들이 인용을 허락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공 작가가 쌍용차 사태 3년의 전 과정을 직접 현장 취재한 게 아닌데도 ‘르포르타주’의 형식을 취한 탓에 일부 논란이 일기도 했다.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대학장이 르포 작가 이선옥씨의 글을 인용해 2012년 4월26일치 (경향신문)에 기고한 ‘고통을 외면하는 사회는 불행하다’라는 칼럼의 재인용을 둘러싼 ‘표절’ 논란이 대표적이다. 공 작가가 직접 쓰지 않고 인용한 글인데도 출처를 책의 맨 뒤에 간략하게 언급해 다수의 독자들이 공 작가의 글로 오해할 수 있을뿐만 아니라, 1차 저작권자인 이선옥씨의 동의를 받지 않은 점 등은 잘못이라는 하종강·이선옥씨의 문제제기가 있었다. 이에 대해 출판사 휴머니스트 편집팀은 8월9일 (의자놀이) 공식 트위터 계정을 통해 “독자들에게 쌍용차 이야기를 더 울림 있게 전하고 싶어, 일부는 본문 중에 인용 출처를 밝히고, 일부는 책 뒤편에 인용 출처를 수록했고, 해당 칼럼 중 일부가 이선옥 작가 글의 재인용이라는 사실을 사전에 인지하지 못했다”며 “두 분의 요청에 따라 이후 출간되는 책에선 문제가 된 글을 삭제할 예정”이라고 해명했다.

2012년 8월 15일 수요일

밤새 끙끙거린 공지영 "나를 고소하라!"


이글은 오마이뉴스 2012-08-14일자 기사 '밤새 끙끙거린 공지영 "나를 고소하라!"'를 퍼왔습니다.
[게릴라칼럼] 22명의 죽음이 전하는 경고... 쌍용자동차이야기 (의자놀이)

별다를 것 없어 보이는 평범한 도심 한복판. 길을 가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목숨을 끊기 시작한다. 자기 손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높은 건물의 끝에서 아득한 허공을 향해 차례로 한 걸음을 더 내딛더니 비명도 없이 떨어진다. 마치 그 순간 삶과 죽음의 경계가 지워진 것처럼. 영화 (해프닝)은 이렇게 시작한다.

살고자 하는 욕망마저 거스르게 하는 알 수 없는 그 무엇, 그리고 마치 바람을 타고 퍼져가듯 곳곳에 드리워지는 죽음의 그림자. 영화가 주는 섬뜩함은 여기에서 비롯된다.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공지영 작가의 책 를 보며, 이 영화가 떠올랐다. 이번에도 누군가가 그들을 죽음으로 떠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작가 공지영의 눈으로 본 쌍용자동차 이야기

'공지영의 첫 르포르타주', 그러나 정작 작가는 머리말에서 '해고자들과 함께 아파했던 한 작가의 사실 에세이'로 봐달라고 말한다. 아마도 문학을 업으로 해온 작가에게 '르포르타주'라는 낯선 장르는 무척이나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숫자 하나의 표기에도 진땀이 흘렀다"고 털어놓는 작가의 말에서도 그런 부담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하지만 결국 그녀가 해냈다. 그 많은 언론인들, 학자들 그리고 노동 운동가들도 감히 하지 못했던 일을 소설가 공지영이 해낸 것이다. "그들이 겪은 일들이 너무 아파서 참으로 많은 밤을 끙끙거렸다"고 말하는 작가에게 진심어린 박수를 보낸다.

▲ <의자놀이> 공지영 작가는 이 책에 쌍용자동차의 77일간의 파업과 정리해고로 인해 22명이 죽음을 선택한 이야기를 담았다. ⓒ 휴머니스트

작가는 엉뚱하게도 '의자놀이'를 떠올렸다고 한다. 사람 수보다 한두 개쯤 적은 의자들을 사이에 두고 흥겹게 돌다가 신호가 떨어지면 서로의 엉덩이를 밀어내며 다퉈야 하는 그 놀이. 왜 하필 '의자놀이'였을까.

따지고 보면 우리가 알고 있는 놀이라는 것이 대개 그렇다. 상대를 밀어내야 하고, 그래서 누군가는 떨어져나가야 한다. 하지만 '의자놀이'는 규칙을 정하는 사람이 의자의 개수를 멋대로 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조금 다르다. 한두 개씩 줄여나갈 수도 있지만, 사람 수의 절반으로 뚝 잘라 버리거나 아예 한두 개만을 남겨둔 채 싸움을 붙일 수도 있다. 그만큼 규칙을 정하는 사람과 의자를 차지해야 하는 사람 사이의 권력 관계가 뚜렷하며, 의자의 수가 줄어들수록 살아남기 위한 다툼도 격해질 수밖에 없다. 작가가 쌍용자동차 사태를 들여다 보다 '의자놀이'를 떠올린 이유다. 그리고 "의자를 놓친 자들에게는 죽음을 부르는 그런 미친 놀이"는 그렇게 스물두 명의 목숨을 차례로 앗아갔다.

작가의 손을 잡아 끈 두 명의 죽음

2011년 겨울 어느 날, 작가는 가슴 아픈 소식을 접하게 된다.

2010년 4월 25일, 쌍용자동차에서 해고된 노동자(정확히는 무급휴직자) ㅇ씨에게 아내 ㅅ씨가 전화를 걸어왔다. 보고 싶으니 빨리 집으로 와달라는 것이었다. 77일간의 파업이 끝나고 무급휴직이 결정된 뒤 약 6개월이 지났을 무렵으로, ㅇ씨는 1년 뒤 복직시켜주겠다던 회사의 약속을 기다리며 일용직과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 사이 아내 ㅅ씨는 적금을 깨고, 보험을 해약하고, 차를 팔고, 아이들 돌 반지와 결혼 때 받은 목걸이까지 팔아가며 생활비를 끌어 모았다. 하지만 아내도 남편도 그리고 열일곱 열여섯 남매도 점점 말수가 줄어갔다. 남편은 술에 취해 들어오는 날이 많았고, 가끔 화장실에서 흐느끼기도 했다.

그날 아내 ㅅ씨의 전화를 받은 ㅇ씨는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다. 아내는 평소처럼 남편을 맞이했고, 남편은 옷을 갈아입으러 안방으로 들어갔다. 남매는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풍경이었다. 그때였다.

"(ㅅ씨는) 무심한 걸음걸이로 베란다로 다가가 문을 열고 그대로 앞으로 나갔다. 그녀의 몸은 허공에서 한 바퀴를 돌아 아파트 아래 콘크리트 바닥으로 떨어졌다. 삶과 죽음 사이, 아무리 평소에 자살을 연습했던 사람이라 해도 한순간쯤은 망설일 그 간격을 그녀는 풀쩍 뛰어넘었다. 마치 오래전부터 거기에 다른 방이 있었다는 듯 스스럼없는 몸짓이었다. 그래서 아이들도 베란다로 나가는 엄마를 빤히 보면서도 전혀 이상하게 생각하지 못했다. 그 아이들의 눈앞에서 엄마는 아무 망설임도 없이 몸을 날려버린 것이었다."  (의자놀이) 중  
  
그리고 다시 열 달이 지난 이듬해 2월 26일 아침, 남편 ㅇ씨도 딸에게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ㅇ씨가 남긴 통장 잔액은 4만 원, 그리고 한 달 뒤 150만 원의 카드빚 청구서가 고아가 된 두 남매에게 날아왔다.

그런 식으로 무려 스물두 명이 목숨을 잃었다. 2009년 4월 8일, 사측이 생산직 노동자의 절반에 달하는 2646명을 정리해고 하겠다고 발표하던 날, 벌써 몇 달 전에 강제 휴직을 당한 어느 비정규직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것이 첫 번째 죽음이었다.

그 뒤로 3년이 지난 2012년 3월 30일, 77일간의 파업 현장을 처음부터 함께 지키다 공장 지붕 위로 컨테이너를 타고 내려온 경찰특공대에 의해 끔찍하게 짓밟혔던 서른여섯의 젊은 노동자가 자신이 살던 임대아파트에서 뛰어내렸다. 유서 한 장 남기지 않은 채. 그것이 스물두 번째 죽음이었다.

대부분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지만, 몇몇은 심근경색이나 뇌출혈로 돌연사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 죽음 사이에는 차이가 없다. 그들 모두는 누군가에 의해 끊임없이 죽음으로 내몰렸기 때문이다.

죽음과 삶의 경계가 허물어져버린 사람들

▲ 공지영 작가가 지난 4월 19일 오후 서울 중구 대한문 앞 쌍용자동차 희생자 분향소 앞에서 열린 '함께 살자 100인 희망 지킴이' 발족 기자회견에 참석해 정리해고로 목숨을 잃은 22명의 노동자와 가족들의 아픔을 위로하며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문제 해결을 위해 단행본 책자를 만들겠다고 발표하고 있다. ⓒ 유성호

정신과의사 정혜신 박사가 평택으로 달려간 것도 이즈음이었다. 졸지에 부모를 잃은 두 남매의 이야기를 듣고 더는 견딜 수 없었다고 한다. 그대로 두었다가는 이 죽음의 행렬을 막을 수 없을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고, 그래서 심리치유센터 '와락'을 세워 해고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정혜신 박사를 만나고 나서야 그들은 비로소 입을 열기 시작했다. 몇몇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인용한 글들은 르포 작가인 이선옥 작가의 글을 책에 그대로 옮긴 것들이다. 

"남편은 소파에 있고 나는 안방에 있었는데, 내내 울다가 어느 순간 보니까 제가 옷장에서 남편 넥타이를 꺼내서 묶고 안방 쓰레기통을 뒤집어서 그 위에 올라가 목을 매고 있더라고요. 조금만 늦었으면 지금 이 자리엣 없었을 수도 있죠."
  
"8층 베란다가 어느 순간부터 높이감도 별로 없는 거 같고, 이렇게 봐도 죽을 거 같지 않고. 8층이라는 높이감이 예전보다 확 줄어든 거죠. 아래를 내려다보며 내가 여기서 뛰어내리면 나 걸러줄 나무도 없네...... 이런 생각도 들고."
  
"특히 술 먹으면 그래요. 지난번에 한번 술 먹고 몸에 휘발유랑 다 부은 적이 있었어요. 지금 내가 이렇게까지 살아야 되나 하는 생각이 자꾸 들고......"    (의자놀이) 중

이처럼 그들의 상처는 깊었다. 우리가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이라 쉽게 이야기하는 이 증상은 전쟁터에서 서로를 죽고 죽이는 현장에 서있었거나, 고문을 당한 사람들이 겪는 스트레스라고 한다. 정혜신 박사의 말을 빌리자면 "죽음과 삶의 경계가 허물어진", 다시 말해 이미 삶의 끈을 놓아버린 상태다. 게다가 '아무리 건강했던 사람도' 이를 비껴가기 어렵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 죽음의 그림자가 바람처럼 퍼져가고 있던 것이다.

르포르타주와 문학의 경계에서 되살린 진실들

이 책은 르포르타주와 문학의 경계에 놓여있다. 때로는 마치 소설처럼 지나간 어느 장면을 우리의 눈앞에 펼쳐 보이거나 누군가의 못 다한 말을 전해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르포르타주라는 이름에 걸맞게 사실 관계를 집요하게 파고들어 꼼짝없이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기도 한다.

작가는 쌍용자동차의 해외 매각과 법정관리 신청 그리고 구조조정으로 이어지는, 마치 미리 짜맞춘 듯한 시나리오에 이름을 올린 몇몇 회계법인들의 거짓에 가까운 감사보고서를 물고 늘어진다. 2007년 약 23억에 지나지 않던 건물의 손상차손(자산이 낡았기 때문에 미래에 그것을 팔았을 때 현재보다 헐값을 받게 되는 손해액을 의미)이 2008년에 무려 2000억 원으로 100배 가까이 늘어나는가 하면, 2008년 9월까지 980억 원이던 당기 순손실 역시 3개월 만에 7100억 원으로 치솟은 것은 오로지 이들 회계법인들의 감사보고서 탓이기 때문이다.

결국, 보고서에 적힌 숫자만으로 쌍용자동차는 한순간에 자기자본대비 600%에 달하는 부채에 허덕이며, 당기순손실만 7100억 원에 달하는 위태로운 기업이 돼버렸고, 그것이 2646명에 달하는 노동자를 내보내야 하는 이유였다.

쌍용자동차 노조와 금속노조 등은 이들 회계법인들을 '주식회사의 외부 감사에 관한 법률 위반 및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고발했지만, 검찰은 전혀 움직이지 않고 있다. 기가 막힐 노릇이다.

이러한 터무니없는 숫자들로 억울하게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은 해고무효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법원은 1심에서 사측의 손을 들어주었다. 정리해고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작가는 이렇게 적고 있다. 르포르타주와 문학의 경계에 서서.

"이 판결로 인해 오직 쌍용자동차가 인생의 전부였던, 세상에 의지할 사람이라고는 아무도 없는 노동자가 바람 찬 봄밤 23층에서 몸을 던졌다는 것을 그 분은 알까.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고 들리지도 않아서 더욱 잔인하고 조용한 사형선고였다는 걸."  (의자놀이) 중

세상이 몰랐던 이야기, 우리가 알아야 하는 이야기

▲ 지난 4월 18일 오전 서울 중구 대한문 앞에 마련된 쌍용자동차 희생자 분향소에서 김정우 금속노조 쌍용자동차 지부장과 해고노동자가 상복을 입고 2009년 정리해고 이후 숨진 동료와 가족들의 넋을 기리며 분향소를 지키고 있다. ⓒ 유성호

사측이 법정관리를 신청하자, 노조는 회사를 살리기 위한 나름의 자구책을 세운다. 우선, 작업 시간을 줄여 일자리를 나누겠다고 했고(물론, 임금은 형편없이 줄어든다), 또 비정규직을 위한 고용안정기금 12억 원을 노조가 내놓겠다고도 했다. 그리고 여기에 더해 자신들의 퇴직금을 담보로 1000억 원에 달하는 긴급자금·개발자금을 정부에 요구하겠다는 어려운 결심도 내놓았다. 이쯤 되면 노동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다 한 셈이다.

한 가지 더 있다. 결국 이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 공장 문을 닫아건 채 77일간의 파업에 들어갔을 때, 국가가 나서 물도 전기도 모두 끊어버린 그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먹지도 씻지도 못한 채 두려움에 떨면서도 노동자들은 비상용 발전기를 돌려 도장용 페인트가 굳지 않도록 애를 썼다.

'노조 이기주의'와 '공장을 점거한 빨갱이들'이라는 헤드라인에 묻혀있던 이야기들이다. 다 알고 있다고 여겨왔지만 실은 제대로 알지 못했던 진실들이 이 책에 담겨 있다.

최근 인터뷰에서 작가는 이런 말을 하기도 했다. 앞서의 회계법인들이 자신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길 바란다고, 그래서 그들의 거짓이 세상에 알려지길 바란다고. 작가는 그런 마음으로 이 책을 썼다. 우리가 이 책을 꼭 읽어야만 하는 이유들이다.

영화 (해프닝)에서 이어지던 죽음의 행렬은 자연이 보내는 경고였다. 자신의 욕심만을 좇는 오만한 인간에게 보내는 경고. 어쩌면 오늘 우리 곁에 짙게 드리워진 죽음의 그림자도 무언의 경고가 아닐까.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는 구조조정이 불러온 스물두 명의 죽음, 그리고 무분별한 도시재개발이 불러온 다섯 명의 철거민과 경찰관 한 명의 죽음. 그것은 더 이상 외면하지 말라는, 결국 당신과 당신의 가족들도 비껴갈 수 없을지 모른다는 경고일지 모른다.

주제 넘은 이야기지만, 부디 당신도 꼭 이 책을 사서 읽길 바란다. 지금 우리에겐 대선 주자의 생각을 읽는 일보다 나와 내 이웃이 처한 현실을 바로 보는 일이 훨씬 더 급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참고로, 이 책의 수익금 전부는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을 위해 쓰인다.

윤찬영(ilss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