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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3월 14일 목요일

한미 FTA는 현재 진행형


이글은 프레스바이플 2013-03-14일자 기사 '한미 FTA는 현재 진행형'을 퍼왔습니다.
[정태인 칼럼]

3월 15일이면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발효 1주년을 맞는다. 2006년 2월, 김현종 당시 통상교섭본부장이 미국에서 전격적으로 한미 FTA 협상 개시를 선언한 이래 참으로 많은 세월이 흘렀다. 이 엄청난 ‘결단’을 내렸던 노무현 대통령은 안타깝게도 고인이 되었고 이명박 전 대통령은 방미 ‘선물’로 더 많은 쇠고기 수입을 약속했다가 거대한 촛불의 파도를 맞았다.
아직 정부가 제대로 구성되지 않아선지, 아니면 너무나 초라한 성적 때문인지 박근혜 정부는 별다른 행사나 홍보를 하지 않고 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2007년 정부가 한 EU FTA까지 추진하면서 미국과 EU와 동시에 발효되는 경우 생산성 증가까지 고려하면 실질 GDP가 무려 7.61%나 추가 상승할 것이라고 대대적으로 홍보했던 것을 되돌아보면 가히 상전벽해라 할 만하다.
물론 관세청은 지난 1월, “한미 FTA 효과 등으로...(대미 수출이) 사상 최대 실적 경신, 전년 대비 4.1% 증가한 585억불 기록”이라는 자료를 언론에 뿌렸다. 한미 FTA가 발효되지 않았던 2011년 수출증가율 12.8%에서 3분의 1 토막이 났는데도 이런 문구를 뽑는 뇌구조는 어떻게 생긴 걸까.
또 관세청은 2012년 한국이 FTA를 맺은 나라들의 평균 수출 증가율이 2.1%라고 자랑했는데 최근 한국은행에 따르면 작년 전체 수출증가율은 3.8%였다. 한편 한EU FTA는 발효된 지 1년 6개월이 되었는데 작년의 EU 수출은 -11.4%라는 처참한 기록을 남겼다.
지금 한미 FTA나 한EU FTA가 우리나라의 수출에 나쁜 영향을 미쳤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매년 10%에서 20%에 이르던 한국의 수출증가율이 이렇게 낮아진 건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와 연이어 유럽 재정위기를 맞은 세계경제가 장기침체에 빠졌기 때문이다. 역사의 해석이란 게 언제나 그렇듯 작년의 한심한 기록도 양대 FTA 때문에 그나마 선전한 결과라고 강변해도, 그 반대라고 증명할 길 또한 신통치 않다.
문제는 한미 FTA가 이미 파산이 증명된 미국식 경제시스템을 한국에 도입하는 것이라는 데 있다. 2000년대 들어 미국의 FTA 전략은 ‘경쟁적 자유화’였고 그것은 미국과 FTA를 맺는 국가에서 미국의 시장을 여는 대신, 지적재산권, 서비스, 투자분야에서 상대국의 법과 제도를 미국식으로 바꾸는 것이었다. 하여 한미 FTA 협상 이래 우리의 관련법은 63개나 바뀌었다.
그러므로 우리의 관심은 수출입이 아니라 이런 법과 제도의 변화가 앞으로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에 있다. 불행하게도 우리 사회의 ‘미국화’는 이제 막 시작했을 뿐 이고 그 결과는 점점 더 증폭되어 나타날 것이다.
2007년부터 필자는 한미 FTA와 자발적 민영화가 결합될 경우 최악의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누누이 강조했다. 이명박 정부가 시도했던 인천공항 민영화, KTX 일부 구간 민영화, 그리고 가스공사 민영화를 새 정부가 계속 추진하고 여기에 미국자본이 참여할 경우(틀림없이 이들 공기업을 인수할 대기업은 미국 자본을 끌어들일 것이다), 그 때부터 저 악명 높은 투자자국가제소권(ISD)은 위력을 발휘하게 된다.
지금 진행 중인 론스타 소송은 우리의 미래를 그대로 보여준다. 한미 FTA가 발효된 상태가 아니라서 한-벨기에 투자협정에 근거를 두었지만 한 나라의 정책이 3명의 민간 통상전문가의 손에 좌자우지된다는 것이 그 본질이다(한미 FTA에 근거한다면 보복관세도 물릴 수 있게 된다). 즉 일단 규제가 완화되고 민영화되면 아무리 부작용이 심해도 다시 되돌아갈 길이 막혀 버리는 것이다.
제 아무리 많은 FTA가 발효된다 해도 수출은 작년보다 나아지지 않을 것이다. 노동분배율과 복지를 획기적으로 늘리지 않는 한, 경제성장률도 2% 안팎을 오갈 것이다. 대선 기간에 약속한 ‘맞춤형 복지’만으로도 재정은 턱없이 모자랄 것이다.
하여 박근혜 대통령은 40조에서 50조원에 이르는 거대 공기업에 눈을 돌릴지도 모른다. 공기업을 민영화해서 효율성을 높이고 그 돈으로 복지를 늘릴 수 있다는 데 어찌 솔깃하지 않겠는가. 2007년 대선 때 그의 공약이 “줄푸세”(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질서는 세운다)였다는 사실이 못내 불길하다. 7년이 지났어도 한미 FTA는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이 글은 PD저널에 기고된 글입니다.

정태인/새사연 원장
현 성공회대 겸임교수. 전 청와대 국민경제비서관, 한미FTA저지사업본부 본부장을 역임.

2013년 3월 7일 목요일

"박근혜의 새마을운동이냐, 박원순의 사회적경제냐"

이글은 프레시안 2013-03-07일자 기사 '"박근혜의 새마을운동이냐, 박원순의 사회적경제냐"'를 퍼왔습니다.
[열린인터뷰] 정태인 "박근혜식 '융합', 군대에서 창조 바라는 격"

하마터면 박근혜 대통령의 경제정책통이 될 뻔 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경제정책통 '후보'에 오를 뻔 했다.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정태인 원장.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경제가정교사이기도 했던 그는 지난 대선 당시엔 박근혜 후보 캠프 영입설이 돌 만큼 보수 진영도 주목하는 진보 경제학자다. 그가 지난 4일 (프레시안)이 주최한 '열린인터뷰'에 나와, 출범 일주일을 맞은 '박근혜 정부' 경제정책의 앞날을 점쳐보았다. 정 원장은 '박근혜 노믹스'에 대해 한마디로 '기대를 접으라'고 했다. 경제민주화, 복지공약을 펼치기에 대내외 경제 여건이 좋지 않고, 박 대통령도 의지가 부족하다는 것. 박근혜 정부가 복지 정책을 할 수 있는 방법이 딱 하나 있다고 했다. 바로 민영화다. 그는 복지 재원 마련을 명목으로 민영화를 한다면 국민의 저항도 높지 않을 거라며 '천기누설'도 했다. '반(反) FTA 전도사'답게 그는 "공공서비스가 민영화 될 경우 한미FTA 체제에서는 다시 되돌릴 수 없게 된다"며 "박근혜 정부에서 민영화만은 꼭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정 원장은 참여정부 시절에는 노 전 대통령의 FTA 정책에 반기를 들고 자리를 박차고 나왔고, MB정부 시절 촛불정국에선 거리를 활보하며 '반 FTA 전도사'로 이름을 날렸다. 기 세고 모진 별명만 있는 건 아니다. 정 원장에게는 언젠가부터 또 다른 별명이 붙었다. '착한 경제학자'다. 정 원장은 수년 전부터 협동과 연대를 원리로 하는 '사회적 경제'를 화두로 던지며 이제는 '협동조합 전도사'로 다시금 알려지고 있다. 그는 이날도 "시장에서는 실업자가 양산되고, 정부는 돈이 없는 상태에서 개인들 스스로가 살 길을 찾는 게 사회적 경제"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가 앞으로 30년간 사회적 경제를 10%로 늘리면 GDP가 1%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하는 한편, '월드컵정신'으로 협동조합을 꾸려 경제를 일으킬 것을 주장했다.서울 마포구 서교동 프레시안 강의실에서 열린 이날 인터뷰는 박인규 대표가 진행했다. 편집자주


▲ 정태인 새사연 원장 ⓒ프레시안(최형락)

"박정희의 '생물학적 2세' 박근혜, 아버지 업적 따라할 것"

프레시안 :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지 일주일 됐다. 박정희 대통령을 승계하는 생물학적 2세가 대통령이 됐다. 육군 참모총장을 많이 기용한다든지 스타일들이 아버지를 닮은 부분이 꽤 있는 것 같다. 대학 시절에 박정희 정권과 싸워온 사람으로서 박 대통령에 대한 느낌은 어떤가?

정태인 : 박정희 전 대통령이 숨진 게 1979년이었다. 제가 78학번인데, 대학교 1,2학년 때는 박정희, 말기는 전두환 대통령 시절이었다.

저는 글 쓰고 공부할 때, 박현채 선생 영향을 많이 받았다. 누구든 자기가 존경한 분을 따라가게 돼 있는데, 아마 박근혜 대통령이 존경하는 건 자신의 아버지일 것 같다. 아마 박 대통령이 앞으로 할 일은 박정희 대통령의 업적으로 알려진 것들을 찾아내서 수행하는 일일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이 5.16 쿠데타 이후 처음 한 일이 '깡패 잡기'였다. 그런데 지금은 조폭이 없다. 그래서 (유사한 박 대통령의 공약을) 찾아봤더니 '4대 사회악'이라고 만들어서 부르더라. 성폭력, 학교폭력, 불량식품, 가정폭력. 3개월 이내 본때를 보일 것이다.

두 번째가 새마을운동이다. 새마을운동은 "잘 살아보세"를 부르며 희망도 없고 술만 마시던 사람들을 희망 갖게 하고, 국민 동원하는 데 성공한 운동이다. 성공한 건 틀림없다. 제가 '사회적 경제' 개념을 공부하기 전에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서) 가장 평가할 건 새마을 운동이라고 생각했다. 근데 알고 보니, 새마을운동이 없앤 게 사회적 경제였다. 사회적 경제는 인류 탄생과 함께 늘 존재했다. 서로 돕는 게 사회적 경제다. 예전엔 식량을 공유하고 품앗이, 두레같은 조직이 마을마다 있었다. 해방기 이후는 조합의 천국이었다. 정부를 믿을 수 없던 시절이었으니까. 근데 새마을운동이 이걸 다 없애버렸다.

박 대통령이 '제2의 새마을운동'을 하겠다고 한다. (지난해 협동조합기본법이 통과하면서) 요즘 협동조합이 붐이다. 그런데 새마을운동을 하겠다는 건 위험한 발상이다. (조합에 대한) 자주적인 움직임을 중앙이 조직하면 이 붐은 사라질 것이다.

반면에 박원순 서울시장은 절대 직접 해결하려 들지 않는다. 사회적 경제를 이해하고 있다는 증거다. 박원순은 오랫동안 시민사회활동한 감이 있다. 조합은 직접 손을 대면 문제가 생긴다.

세 번째는 경부고속도로. 처음에는 이것과 비슷한 것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런데 오늘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가 사퇴를 하고, 박 대통령이 국민담화문 발표하면서 정치권에 대한 혐오를 불러일으키고 야당을 공격하는 것을 보고 알았다. '박근혜 대통령의 경부고속도로는 바로 미래창조과학부구나' 하고.

미래창조과학부가 내세운 게 '융합'이다. 이건 뭔가 연결되는 것이다. 도로간 연결이 아니라 이제는 산업간 연결이다. 근데 시작부터 걸리적거리게 하니 화를 내고 이런 게 아닌가. 새누리당 대표도 '통섭'을 말한 적이 있다. 그런데 통섭이라든지 융합이라든지 이런 개념들이 그 사람들 머릿속에서 이해가 됐을까 의문이다. 인수위 보고서를 보면, 표제는 좋다. 사회적 자본, 융합 얘기도 나오더라. 근데 내용은 관료들이 하던 것을 그대로 나열한 것이더라. 그래서 개념과 정책이 따로 노는 상태다. 국가가 개입할 부분과 놔둬야할 것을 구분해야 하는데 이걸 구분할 수 있을까 의문이다.

결론적으로, 첫 번째(깡패 잡기)는 잘 잡아들일 거고, 두 번째(새마을운동)도 잘 할 거고, 세 번째(미래창조과학부)는 성공할지 좀 의심스럽다.

"결국 수출에 목 매… 경제민주화 물 건너갈 것"

프레시안 : 보수 세력이 슬로건 만드는 데 실력이 있다. 생애맞춤형 복지, 경제민주화도 그렇고 많은 사람들이 관심가져서 그래서 대통령까지 됐다. 근데 지금 보니, (국정 과제에서) 복지 핵심도 경제민주화도 다 빠졌다. 어떻게 보나.

▲ 정태인 새사연 원장 ⓒ프레시안(최형락)

정태인 : 선거에서 이기려고 보편복지, 경제민주화 개념을 넣었을 거다. 저는 여기에 사회적경제도 넣는데, 이 세 가지가 없으면 경제가 살아날 수 없다. 수출은 아마 마이너스가 될 거다. 우리나라는 중국에 25%, 홍콩까지 치면 30%. 미국은 10.5%. 유럽, 일본 순으로 수출을 많이 한다. 또 우리가 중국을 통해서 수출하는 게 있다. 그러면 중국도 수출이 잘돼야 우리나라도 수출을 잘 할 수 있다. 그런데 미국·유럽·일본의 경제성장률이 다 0%~1%대에서 헤매니까 우리도 마이너스 될 수 있다.

만든 물건을 팔아야하는데, 사는 사람들은 돈이 없다. 임금 적게 주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노동생산성하고 임금이 거의 같은 속도로 늘어났는데, IMF 전후로 격차가 나기 시작했다. 일은 열심히 하고 생산성도 높아지는데 임금은 그 반만 늘어난다. 그래서 소비를 못 하니, 빚을 내서 사게 했다. 우리 가계 지출이 많은 이유가 이 때문이다. 신용카드 나눠주고 소비시키면서 생산성과 임금 격차분을 그렇게 메웠다. 그런데 지금은 가계부채가 워낙 심하니 빚을 내서 하는 사람 없다. 임금이 오르거나 소득재분배를 시켜야 한다. 그래서 보편복지, 경제민주화가 중요한 것이다.

중소기업이 지금처럼 하청 단가를 인하하면 생산성 올릴 수 없다. 중소기업이 생산성 못 높이면 임금도 낮을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에서 중소기업 종사자 비율이 88%를 차지한다. 중소기업 생산성을 높이려면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함부로 하게 하면 안 된다. 이걸 후퇴시킨다는 건 중소기업이 생산성 높여서 임금 올릴 수 있는 가능성을 없애는 것이다.

결국 남는 건 수출이다. 결국은 수출에 목을 매게 돼있다. 그래서 경제민주화는 물 건너 갈 것이다.

보편복지도 당연히 어렵다. 경제성장률이 2% 이하면 증세가 아닌 이상 보편복지를 하기가 힘들다.

"박근혜가 재벌 통제? 총수들 잡아 넣기만 하면…"

프레시안 : 박정희 전 대통령은 재벌에 휘둘리지 않았다고 하는 평이 있다. 박근혜 대통령도 강력한 통치력으로 재벌들 잘 이끌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있는 것 같다.

정태인 : 박정희 대통령이 재벌을 통제한 건 정부가 돈을 쥐고 있었기 때문이다. 초기에는 외국에서 차관을 배분하는 걸 정부가 했다. 그러니 재벌들이 잘 보일 수밖에 없었다. 또 금융산업이 국가 통제에 의해 움직였다. 당시 재벌들이 자본배분에 엄청난 투자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정부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아니면 재벌에 대한 군홧발로 눌렀다. 사실 이건 전두환 대통령이 제일 잘했다. 1979년 경제위기 위기 이후에 재벌들을 서빙고 대공분실로 불렀다. 그래서 딱 여섯 글자 물었다. '찍을래, 죽을래'. 굉장히 신속한 구조조정이었다. 당연히 지금은 그렇게 안 된다.

딱 하나 방법이 있다. 총수들을 법대로 집어 넣겠다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수출에 목매야 하는 대통령인데, 과연 이것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또 경제에 관한 참모들이 다 정부관료 출신들인데, 경제관료들은 이런 일을 상상하지 못한다. 사실 노무현이나 김대중이나 마찬가지이긴 한데, 새누리당이 과연 정치 자금을 안 받았을까?

프레시안 : 노동자 임금이 높아야 한다고 했는데, 임금을 높이거나 중소기업을 살리기 위해 박 대통령에게 제안하고 싶은 경제정책이 있다면?

정태인 : 작년에 이와 관련해서 <리셋 코리아>라는 책을 냈다. 최저임금 올리는 게 가장 쉬운 방법이다. 또 하나는 참여정부 때 도입한 EITC(근로장려세제; 일정소득 이하의 근로 소득자를 대상으로 소득에 비례한 세액공제액이 소득세액보다 많은 경우 그 차액을 환급해 주는 제도. 편집자주) 확대다. 노동자가 기초생활보장 대상에서 벗어나면 손해라고 생각하고 일을 안 할 수도 있다. 일한만큼 급료에 더 붙여주는 것이다. 한도가 800만 원까지인데 이걸 확대해서 부부합산해서 1200만 원 정도로 되게 하고, 최장 2년인데 3년까지로 하는 식으로 확대해야 한다. 가장 낮은 수준의 정치다.

그런데 정부가 모든 걸 할 수 없다. 노조가 커야 한다. 노동조합이 스스로 목소리 커지면 협상이든 투쟁이든 할 수 있다. 근데 우리나라는 노조 조직률이 너무 낮다. 스웨덴은 노조 조직률이 70%다. 그래서 선거에서 이기기도 한다. 우리는 민주노총 5%, 한국노총 5% 합쳐서 10%밖에 안 되니 노동 대표성도 약하고 힘이 약하다. 노조를 키우고 협상력을 강화해서 임금이 올라가면 내수도 늘어난다. 우리나라에 생경해서 안 된다고 하는데, 이런 생경한 것을 도입하는 게 바로 정치다. 국민들에게 '이거 안하면 전망 없다'는 걸 설득하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박근혜식 '융합', 군대에서 창조하라고 시키는 격"

프레시안 : 원로 경제전문가들은 우리나라 진보개혁세력이 분배개혁 얘기하는데 성장은 관심 없다고 한다. 그러면서 우리나라에서 성장하려면 수출이 답이 아니냐고 한다. 그리고 이 때문에 FTA가 중요하다고 하는데 어찌 생각하나.

정태인 : 그러니까 원로라는 거다. 옛날 생각하는 거다. 2008년 금융위기가 얼마나 큰 위기인지에 대해 감각이 없는 것 같다. 2008년은 1929년 대공황처럼 패닉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이번에는 1929년 경험이 있어 각국이 일제히 돈을 풀었기 때문에 패닉으로 들어가는 건 막았다. 대신 정부 부채가 늘어나고 일본형 장기침체에 돌입했다. 수출 늘리는 건 불가능하다.

전 세계에서 돈 갖고 있는 나라가 중동 다음이 동아시아다. 세계경제를 크게 나눠보면, 소비 늘려서 경제성장을 시킨 나라가 있다. 남유럽·미국·영국인데, 이들 국가들이 빈부격차가 다 심했다. 가계에 빚 줘서 소비를 늘렸다. 한마디로 '부채소비주도형'이다. 그리고 이들 국가에 수출을 하는 게 '수출주도형' 동아시아다. 그런데 부채소비주도형이 망했다. 그럼 수출주도형도 망하는 것이다. 현재 중국·한국·일본·대만이 쌓아두는 외환보유고가 4조 달러가 넘는다. 근데 갖고 있어봐야 아무소용 없다. 동아시아에 개발 안 된 데가 많다. 이런데 인프라 놓는 데 써야 한다. 이곳 내수 늘어나면 선진국들이 수출할 것 아닌가.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로 빈부격차 심한데, 가난한 사람들이 돈 없어서 소비 못하게 하는 걸 해결해야 한다. 다들 형편이 안 좋아지면 큰 소비는 줄이기 어려우니 동네 소비부터 줄이게 된다. 그럼 바로 자영업이 타격받는다. 작년에 고용률이 늘어났다고 하는데 대부분이 자영업이다. 그 다음이 20대 비정규직. 우리나라 실업률이 4%로 세계적으로 보면 낮은데 알보고면 위장 실업률이다. 실업률이 낮은 만큼 자영업자가 많다. 직장에서 실업급여를 제대로 못 받으니 생계형 자영업자가 많아진다. 이게 가계부채의 뇌관 건드릴 수 있다.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자영업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집값 떨어지고, 자영업 망하면 터질 가능성이 있다.

이명박 대통령 시절에는 운이 좋아서 폭탄이 안 터졌다. 천운이다. 세계금융위기가 안 터졌으면 하려던 대로 경제성장률 높이는 데만 치중해서 폭탄을 맞았을텐데, 세계경제 때문에 확장정책을 못쓴 게 경제 폭탄 막는 역할을 했다. 그렇게해서 이명박 대통령은 5년은 버텼는데, 다음 5년은 아마 버티기 힘들 것이다. 지금 박 대통령 정책을 봤을 때는 갑자기 수출이 늘어나지 않는 한 가계부채 폭탄은 터진다.

프레시안 : 박 대통령이 당선되고 나서 '절망자살'한 분이 많다. 노동자들의 자살, 노동자들이 어떻게 하면 편안하게 살 수 있을까, 박근혜 정부에서 뭔가 기대할 수 있을까.

정태인 : 인수위 안에 '노사정위원회'라는 게 있는데 내용이 없다. 노사정위가 국민의 정부 때 위기 극복할 때 효과를 발휘했다. 다음 참여정부 때도 노사정위를 활성화하려고 했는데 실패했다. 박 대통령 보니, 오히려 줄푸세의 '세', 법과 질서를 세우는 쪽으로 갈 것 같다.
사실 5년이면 긴 시간 아니다. 저는 지금까지 정책만 만들면서 살아왔다고 자부하는데, 이번에 <리셋코리아> 책 쓰면서도 많이 허술하다고 느꼈다. 그럼 다음 선거에 이긴다 하더라도 바로 적용할 수 있는 정책 만들 수 있느냐 하면 아니다. 우리에게는 5년이 남은 게 어쩌면 다행인지도 모른다. 시민운동, 노동운동 조직이 5년간 총력을 다해도 어려운 일이 많이 기다리고 있다. 세계가 다 어렵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가 베낄 모델이 없다. 박정희 시절에는 일본이 고도성장하고 미국이 도와주니 일본을 베끼면 될 일이었다. '융합'이라고 하는 건 근데 그야말로 창조적으로 잘해야 하는데, 기본적인 시민민주주의 가치 없이는 안 된다. 군대에서 창조하라고 해봐라. 잘 되나. 자기의 사고방식과 어울리지 않고 관료들이 얽어매놓은 상태에서, 기강 잡는다고 다 잘 될까.


▲ 정태인 새사연 원장 ⓒ프레시안(최형락)

"디테일 강한 박원순, '협동조합의 기적' 만들 것"

프레시안 : 협동조합 같은 사회적 경제에 관심 많다고 알고 있다. 사회적 경제가 우리나라 경제에 얼마나 도움된다고 보나

정태인 : 경제민주화는 사실 별 거 아니다. 경제에도 민주주의가 들어가는 게 경제민주주의다. 민주주의 요점은 1인 1표제다. 이건희도 나도 1표. 근데 왜 기업은 1인 1표가 안 되나. 기업은 1주 1표다. 주식을 많이 가질수록 더 많은 의사결정권 갖는다. 근데 우리나라 재벌 총수 일가가 대체로 1% 갖고 있다. 소액주주다. 근데 순환출자 통해 1주 50표를 행사한다. 1인 1표에 가깝게 하는 게 경제민주화다. 근데 협동조합은 자체가 1인 1표다. 얼마 냈건 간에 얼마나 일하건 간에 조합원은 다 1인 1표다. 이건 민주주의다. 만일 협동조합 비중이 커지면 그만큼 우리 경제 전체 민주주의는 커진다. 에밀리아 로마냐(이탈리아 북부에 있는 주. 편집자주)는 협동조합이 굉장히 많다. 대기업은 없다. 중소기업, 협동조합 구분 안 된다. 경제에서도 민주주의 관철된 상태다. 몬드라곤 협동조합(스페인 북부에 위치)은 재벌과 비슷하지만 1인 1표를 행사한다. 민주주의 재벌인 것이다.

앞서 얘기했듯 사회적 경제라고 하는 건 인류 역사와 함께했고, 위기를 맞이할 때마다 늘어난다. 협동조합은 경제민주주의뿐 아니라 정치적 민주주의 효과도 있다. 풀뿌리는 새누리가 갖고 있다. 동네 복덕방이나 요식업자들. 그런데 만일 생협이나 마을기업 있으면, 꼭 정치색이 왼쪽이 아니라 하더라도 민주주의 훈련이 돼있는 풀뿌리가 경제조직으로 있으면 굉장히 큰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이 2% 이하라고 했는데, 사회적 경제의 비중은 제로에 가깝다. 1%나 될까 싶다. 근데 사회적 경제가 많은 곳은 그 비중이 10% 정도다. 우리나라가 앞으로 30년간 사회적 경제를 10%로 늘리면 GDP가 1% 늘어난다. 지금 2% 늘어나기도 힘든데 어마어마한 것이다. 월드컵할 때 놀라운 협동정신 끓어오르는데 그런 기질이 매우 중요하다. 제가 보기엔 박원순 시장의 실험이 중요하다. 사회적 경제 역사에서 이렇게 대규모로 1000만 명을 대상으로 실험한 게 없다. 게다가 디테일에 굉장히 뛰어나서 하면 안 되는 일을 안 한다. 어쩌면 서울에서 상당히 많은 기업이 생존하고 모범을 보이고 그래서 네트워크를 이뤄서 한국에 협동조합이 자리잡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자마니(이탈리아 볼로냐 대학 교수)가 한국이 한강의 기적 이룬 것처럼 협동조합의 기적을 이룰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중국도 관심이 많다고 한다. 상하이 시장이 자마니한테 협동조합 어떻게 할 수 있냐고 했더니, 박원순을 수입하라고 하더라.

프레시안 : 원주가 우리나라에서는 협동조합이 굉장히 잘 된 도시인데, 비중이 0.36%라고 한다. 약간 비관적인 게, 협동조합이 신뢰나 민주주의적 협조가 필요한데 과연 될까하는 회의가 있다. 사회적 경제 활성화시키기 위해 뭐가 필요한가.

정태인 : 첫째도 마지막도 신뢰다. 조합원 사이의 신뢰,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소비자의 믿음 중요하다. 그게 깨지는 순간 협동조합 깨진다. 몬드라곤이나 에밀리아 로만도 그래서 힘들다고 생각했었다. 오랫동안 조그만 조직들이 신뢰에 입각해 정보 공유하는 시스템. 에밀리안은 수천 개 그룹이 모여 자동차를 만든다. 페라리, 람보르기니도 만든다. 이건 굉장히 오래간 쌓인 신뢰 없이는 안 된다.

우리나라도 사실 협동이 굉장히 잘 되는 나라다. 월드컵 때도 국가라는 정체성 하나로 뭉치고, 광장에서 구경하다가 휴지까지 싹 줍지 않나. 그런데 지난 30년, 특히 1995, 1996년 이후 경쟁 강조하고 아무도 2등 기억 않는다는 말도 안 되는 얘기도 나돌고, '부자 되세요' 카피가 나도는 분위기로 순식간에 바뀌었다. 그래서 제가 찾은 모델이 캐나다 '퀘벡모델'이다. 퀘벡 주 정부와 퀘벡시민운동 단체가 만나 경제 나쁘니 서로 경제정책 세웠다. 경제정책 수행을 사회적 경제, 사회적 기업이 만들어서 육아나 주택 등 사회적 서비스를 국가와 시민단체가 해결했다.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에 비해 센 게 시민사회다. 중국은 시민사회 없다. 일본은 튼튼한데 굉장히 낮은 수준의 지역공동체에만 틀어박혔다. 국가는 나몰라라 한다. 그래서 서울시 2,3년 사이가 중요하다고 본다. 상당히 성공할 것 같다. 우리나라가 '카피'도 잘 하니 퍼져나가면 10%까지 되지 않을까. '월드컵 정신'으로 말이다. 아마 그 과정에서 신뢰도 쌓일 거다.

프레시안 :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에서 원장직을 올해로 3년째 하고 있다고 들었다. 올해 새사연에서 하고자 하는 연구가 어떤 게 있나?

정태인 : 세 가지가 있다. 우선 한국의 불평등에 관한 것이다. 현재 불평등 관련 지표가 매끈하지 않다. 이걸 다듬고, 불평등을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찾아보려 한다. 또 하나는 아직 말씀 안 드렸는데, 서울시 종합계획을 세워보려고 한다. 국가정책만 만들 게 아니라, 서울도 장기 비전이 필요하다. 서울시도 (보수 진영에) 뺏기면 끝이다. 희망이 없다. 국가는 보수적으로 가니, 1/4인 서울이라도 올바른 정책 써서 바뀔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지자체가 할 수 있는 수단 갖고 어떻게 정책 만들 수 있을까를 고민하려 한다.

세 번째는 에버트 재단이라고, 독일 사민당파의 큰 재단이 전 세계에서 하는 프로젝트인 미래경제프로젝트가 있다. 아시아, 미국, 중남미, 유럽 내에서 각각 한 국가가 같이 하는데, 그 중 우리도 대상이 됐다. 에버트 재단하고 생태경제 관련 연구를 하려 한다. 이렇게 세 가지에 집중할 건데 문제는 돈이 없다.(웃음) 우리가 연구원이 10명인데 재야에서 제일 큰 연구원이다. 


/서어리 기자(정리)

2012년 5월 30일 수요일

"재벌개혁 만능론은 반민주적 행위"


이글은 프레시안 2012-05-30일자 기사 '"재벌개혁 만능론은 반민주적 행위"'를 퍼왔습니다.
[한국 경제 성격 논쟁] 정태인·이병천의 비판에 답한다

- 정태인·이병천의 비판에 답한다 이건희와 삼성그룹도 구별 못하나 정태인·이병천 등을 포함하는 많은 개혁진보 지식인들이 지금 우리나라에서 가장 시급한 과제는 경제민주화이고 그 경제민주화의 핵심은 재벌개혁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 시각에 따르면, 재벌개혁의 핵심 과제는 재벌그룹 계열사 간 순환출자와 같은 '왜곡된' 소유지배구조로 인위적으로 묶여 있는 대기업집단(재벌그룹)을 약화·해체시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계열사 간 출자총액의 제한과 계열분리 명령제를 도입해야 하고, 이렇게 하여 왜곡된 소유지배구조가 정상화된다면 비관련 다각화(문어발식 확장)와 계열사 간 상호 지원 같은 '왜곡된' 경영 역시 바로잡힌다고 한다.

경제민주화를 재벌개혁으로 협소화하지 말자

그러나 우선 생각해 볼 점은 경제민주화가 도대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개혁론자들은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을 거의 동일시한다. 그렇지만 재벌개혁은 경제민주화를 위해 이루어야 할 여러 과제 중 하나에 불과하다.

노동자 개인의 권익과 노동조합의 권리를 대폭 향상시키고, 또한 (독일의 공동결정제처럼) 종업원 대표자들의 회사 경영 참여를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것도 경제민주화이다. 소비자 협동조합의 설립을 지원하여 소비자 권익을 향상시키는 것, 그리고 소농·소기업들이 자율적으로 결성한 협동조합에 대한 정부의 제도적, 금전적 지원을 통해 그들의 경제적 힘을 향상시키는 것도 경제민주화이다. 전기와 철도·지하철, 버스, 우편, 수도처럼 모든 국민의 일상생활에 중요한 재화와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기업이나 혹은 그런 공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민간기업을 강력하게 규제하는 것도 경제민주화이다.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가 산업정책과 복지정책 등을 통하여 ('1원 1표'라는 반민주적인 원리에 기초하게 마련인) '시장'을 규제하여, 기업들이 가능한 한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위해, 즉 국민들의 이익에 맞도록 행동하도록 유도하는 것도 경제민주화의 중요한 부분이다. 또한 그 구조와 인맥상, 물가안정과 통화가치 유지 등 금융중심적 시각에서 경제문제를 파악하게 되어 있는 중앙은행(한국은행)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강화해서 중앙은행이 고용이나 성장처럼 일반 국민에게 더 중요한 문제에 주의를 기울이도록 하는 것도 경제민주화이다.

이렇듯 경제민주화를 위해 할 일이 여러 가지로 많은데도 개혁파의 경제민주화론은 이런 여타 요소들은 거의 무시하면서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를 거의 동의어로 쓸 정도로 재벌개혁(대기업집단의 약화와 해체)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있다.

재벌개혁 없이는 복지국가도 없다?

물론 개혁세력이 노동자 권익과 중소기업 역할 강화, 복지확대 등을 거론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재벌개혁이 선행되지 않고서는 이런 다른 정책들이 실현 불가능하다고 본다는 점이다. 마치 한국 경제가 태양계라면 재벌은 태양이고, 따라서 개혁을 통해 재벌이라는 '태양'을 밝게 하지 않으면, 그 주위를 돌고 있는 노동자와 중소기업, 복지 같은 '행성'들은 밝게 빛날 수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정태인은 이렇게 말한다.

"시장에서 이런 양극화를 방치한다면 제 아무리 복지에 돈을 쏟아 부어도 1980년대 중반에서 1990년대 중반의 분배 상황으로 돌아가는 것도 언감생심일 겁니다. … 재벌개혁, 경제민주화 없이 복지만 내세워서 우리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이병천 역시 말하기를,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라는 두 가지 시대정신이 새로 정립되는 상황에서 그 기본 관문(즉 일이 시작되는 출발점)은 "재벌개혁과 '삼성 동물원' 상황의 극복"이라고 한다. 즉 경제민주화(재벌개혁)와 복지국가를 각각의 독립된 병렬적 의제로 내세우되, '전자'(재벌개혁)를 '후자'(복지국가)에 앞서 선행하는 단계로 보고 있다. 특히 정태인은 참여연대와 민주노총 등과 함께 공동으로 '재벌개혁 시민연대'를 새로 구축하여 재벌개혁을 올해 대통령 선거의 핵심 의제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과연 먼저 재벌개혁이 제대로 되어야 그 이후 비로소 복지국가가 그 바탕 위에서 제대로 구축될 수 있는가?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먼저 재벌개혁과 복지국가 구축을 분리시켜 보는 데 문제가 많다. 많은 점에서 복지국가의 강화는 그 자체가 재벌개혁이기도 하다. 예컨대 복지국가의 필요조건인 누진 소득세 강화로 가장 큰 타격을 받는 것은 한국에서 가장 부유한 소득 계층인 재벌 가문들과 그 가신들이다. 또한 보편적 의료 복지와 노인 복지 역시 그 자체 강력한 재벌 개혁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제도들은 재벌계 보험회사들이 주도하는 보험업계의 이익을 축소하기 때문이다.

복지국가 운동 속에는 이렇듯 '여러 형태'의 재벌개혁이 이미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우리는 (공정거래법상) 출자총액제한과 순환출자 금지 같은 '특정 형태'의 재벌개혁(그것도 재벌가족이 아닌 대기업그룹 체제만을 규제·통제하는)만이 올바른 재벌개혁이라고 고집하는 것은 받아들이기 힘들다. 우리가 에서 "복지국가 따로, 경제민주화 따로 병행하는 것이 아니라, 보편적 복지국가를 향한 운동 그 자체가 경제민주화"라고 이야기했던 것은 바로 이런 맥락에서이다.

도리어 우리는 출자총액제한 강화를 통해 대기업집단을 약화 또는 해체시키게 되면 한국 최대 대기업들에 대한 주주자본주의의 영향력이 증폭되고, 그렇게 되면 친노동, 친중소기업적인 정책과 복지 정책을 발전시키는 것이 어려워진다고 본다.


▲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 ⓒ프레시안(손문상)

경제민주화를 더 큰 프레임에서 바라보자

조금 더 이론적으로 들어가자면, 경제민주화라는 말은 매우 추상적이어서 다양한 논자들에 의해 다양한 프레임으로 이해될 수 있다. 마르크스의 공산주의 역시 경제민주화론이다. 왜냐하면 노동계급이 다수인 사회에서 다수자 민주주의를 통해 집권한 인민주권(즉 민주주의)이 중앙집중 계획경제를 실시함으로써 다수자인 노동계급의 이익에 맞게 (즉 민주적으로) 경제를 운영하자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마르크스주의적 시각에서 보면 사유재산제를 폐지하고 중앙계획 경제를 하지 않는 한 경제민주화는 이루어질 수 없다. 따라서 이 시각에서 보자면 우리나라 개혁론자들이 주장하는 재벌개혁(즉주식시장의 힘을 빌린 재벌개혁)은 경제민주화가 아니며, 오히려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를 통한 노동자 착취'와 '시장의 무정부성' 같은 경제민주화의 핵심적 사안들로부터 주의를 분산시키는 반민주적 행위이다.

또한 무정부주의자들(아나키스트)의 주장 역시 그들 나름의 경제민주화론이다. 왜냐하면 자본주의 시장 경제와 국가권력을 해체하고 그것을 자율적 (협동조합) 공동체의 연대적 결사체로 대체함으로써 실질적인(즉 경제적인) 인민주권(즉 민주주의)을 실현하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김종철과 박승옥, 윤구병 같은 생태주의 공동체론자들은 도처에 자율적 협동조합을 건설함으로써 경제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런 시각에서 본다면, '국가 권력을 통한 재벌 통제'(예컨대 출자총액제한)는 강도(국가)더러 도둑(재벌) 잡으라는 것과 마찬가지로, 근본적으로 반민주적인 발상이다.

자유주의적 경제민주화냐, 비자유주의적 경제민주화냐

그렇다면 국가조직(특히 그 경제정책 담당조직들)과 대기업들, 즉 '자본주의 경제의 핵심 조직들'을 어떻게 하면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 즉 1원 1표가 아닌 1인 1표의 이상(理想)에 맞게 재편할 수 있는가?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 입장이 있을 수 있다. 하나는 정부조직(정부의 경제개입)과 대기업(대기업집단)을 가능하면 작게 만들자는 입장이다. 이것이 자유주의(liberalism)의철학인데, 여기서는 '합리적 (자유) 시장'의 원리가 가장 중요해진다. 이를 위해 정부는 되도록 적게 시장에 개입하는 것이 좋고(박정희식 관치경제의 해체), 또한 대기업 특히 대기업집단(재벌그룹)의 비중 역시 되도록이면 줄여서 적게 만들며(재벌해체 또는 축소), 그리고 작은 기업들(중소기업)들이 치열하게 경쟁하는 완전경쟁 상태(공정시장 원칙)를 만드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이렇듯 '완전경쟁 시장(공정시장) 자본주의'를 만들어야만 참된 '1인 1표 민주주의'가 실현될 수 있다고 보는 정치경제 사상을 자유주의적 민주주의(liberal democracy)라고 부른다. 그리고 한국의 개혁파 학자들은 이것을 진보적 자유주의라고 부른다.

그에 반해 우리는 경제적으로 큰 역할을 하는 정부(특히 큰 복지국가)와 대기업(대기업집단)이 경제적 민주주의의 달성을 위해 긴요하다고 생각하며, 그래야만 참된 경제민주화가 달성된다고 본다. 즉 우리 역시 경제적 민주주의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우리가 구상하는 경제민주화의 구체적 내용은 (진보적 자유주의의 틀에 머무르는) 우리나라 개혁론자들의 그것과 현격하게 다르다. 우리의 시각은 비자유주의(non-liberal)적 민주주의이며 유럽 사회민주주의에 훨씬 가깝다.

'착한 자본가' 만들기가 복지국가 만들기에 우선한다?

많은 개혁진보 지식인들이 경제민주화를 진보적 자유주의의 관점에서 바라보면서 스웨덴식 복지국가에 '앞서' 자유주의적 경제민주화가 선행해야 한다고 본다. 그런데 이런 사고방식은 한국 진보의 역사 속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1960-80년대에 그 사상적 기초가 형성된 한국 진보 세력의 정치경제학에는 박정희식 관치경제와 재벌그룹 체제로 상징되는 한국 자본주의는 '비정상적' 자본주의라는 관념이 깊게 뿌리 내리고 있다.

대표적인 명칭은 '천민' 자본주의(김상조)이다. 그리고 '식민지 반(半)' 자본주의(통합진보당 구당권파), 또는 '신식민지 국가독점' 자본주의(과거 이병천이 대표적 논자였다)로 불리기도 했다. 굳이 이런 형용사를 붙이는 이유는 한국 자본주의가 선진국 자본주의에 비해 왜곡되고 부도덕한 방식으로 성장해왔고, 따라서 이런 과거를 청산하지 않으면 한국 자본주의는 '정상적' 자본주의로 성장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한국이 '천민자본주의'라는 시각은 미국과 유럽 선진국들은 '귀족 자본주의'였고 '노블리스 오블리제 자본가들'이었다는 것을 전제한다. 그렇지만 장하준이 와 등에서 지적했듯이, 실제 미국과 유럽 자본주의의 역사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들 역시 부정부패와 반민주주의, 정부개입이 난무하는 천민적, 비정상적 방식으로 성장하였다.

따라서 우리는 정태인 등이 말하듯이 착한 자본가 단계, 즉 자유주의적 경제민주화(또는 '공정시장', '공정국가')가 제대로 되어야만 그 이후 비로소 그 바탕 위에서 본격적인 북유럽식 복지국가가 가능해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선진국 문턱까지 도달한 한국 경제의 발전 수준과 국민의 시민적 성숙도로 볼 때, 대한민국은 스웨덴식 복지국가로 곧장 나아갈 수 있다. 복지국가 5개년 계획을 세워 지금부터 차근차근 밀고 나간다면, 5-10년 뒤에는 지금의 미국, 그 다음엔 지금의 유럽 중위권 복지국가, 20-30년 뒤엔 지금의 스웨덴 복지국가 수준에 도달할 수 있다.

▲ 정승일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연구위원. ⓒ프레시안(최형락)

복지국가 운동이 전쟁이라면 재벌개혁은 전투

이렇듯 한국 사회가 지향해야 할 '잠정적 유토피아'(홍기빈 저, )로 스웨덴식 복지국가를 제시하는 우리의 관점에서 볼 때, 재벌개혁은 그 자체로서 목적이 될 수 없다. 재벌개혁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더 큰 목적, 즉 복지국가의 구축에 복무하는 수단, 그것도 여러 수단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

이런 의미에서, 재벌개혁 운동과 복지국가 운동은 동시에 '병렬적으로' 행해지면서 서로 '보완하는' 그런 것이 아니다. 재벌개혁 운동은 어디까지나 복지국가 운동이라는 더 큰 프레임 안에서 벌어지는 작은 부분이다. 말하자면, 복지국가 운동이 하나의 전쟁(war)이라면, 재벌개혁은 그 전쟁 속에서 벌어지는 하나의 전투(battle), 물론 중요한 전투이다. 중요한 것은 프레임(frame)이다. 재벌개혁이 복지국가 구축과 따로 떼어져 병렬화될 때, 그 운동은 궁극적인 큰 목적과 방향(즉 프레임)을 상실한 채 주주자본주의의 이해관계에 따라 진행될 것이다.

무릇 모든 개혁은 개선(改善)이 될 수도, 개악(改惡)이 될 수도 있다. 우리 역시 재벌개혁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현재 진보적 자유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재벌개혁은 - 투명성 강화 등 보편타당한 이야기들도 일부 있지만 - 본질적으로 월스트리트와연계된 주주자본주의를 더욱 강화하는 프레임 속에서 머무르고 있고, 따라서 대부분 국민의 이해관계에서 볼 때는 개선이 아니라 개악이다. '주주자본주의 원리에 따른 재벌개혁'은 수익성 및 주주이익 지상주의와 이에 따른 고용 없는 성장과 비정규직 양산, 인건비와 하청단가의 삭감, 청장년 실업과 빈곤층의 만연 등을 낳는다.

개악이 아닌 개선이 되려면, 재벌개혁을 통해 달성하려는 궁극적 목표가 무엇인지 분명히 해야 한다. 우리는 그것을 스웨덴식 복지국가로 본다. 물론 그런 복지국가에서도 소득재분배(이른바 2차 분배)를 통한 복지(즉 좁은 의미의 복지)는 만능이 아니다. 그곳에서도 왕성한 일자리 창출과 근로소득 창출을 통한 1차 소득분배(즉 원천소득 분배)는 결정적으로 중요하며 그 큰 부분은 대기업의 몫이어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복지국가 원리에 따르는 재벌개혁', 즉 진보적 자유주의가 아닌 새로운 프레임의 재벌개혁을 구상한다. 이에 대해서는 다른 글에서 더 구체적으로 쓸 예정이다.

'한국 경제 성격 논쟁'을 통해서 정태인 새로운 사회를 위한 연구원 원장, 이병천 강원대학교 교수 등의 집중 비판을 받은 (부키 펴냄)의 저자 장하준 케임브리지 대학 교수, 정승일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 이종태 기자가 답변을 보내왔습니다. 이들은 약 10회에 걸친 답변에서 새로운 문제 제기도 할 예정입니다.

애초 이 글은 영국에 있는 관계로 한국의 논쟁에 실시간으로 참여하기 어려운 장하준 교수의 제안으로 구상되었습니다. 장 교수가 주도한 수차례에 걸친 장시간의 화상 회의를 통해서 답변의 구체적인 내용이 마련되었고, 각자 나눠 쓴 초고를 역시 수차례의 첨삭을 통해서 조율해 최종 원고를 완성했습니다.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정승일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연구위원,이종태 기자

2012년 5월 29일 화요일

이건희와 삼성그룹도 구별 못하나


이글은 프레시안 2012-05-28일자 기사 '이건희와 삼성그룹도 구별 못하나'를 퍼왔습니다.
[한국 경제 성격 논쟁] 정태인·이병천의 비판에 답한다

우리가 이렇게 늦게 글을 쓰게 된 이유

우리 세 명이 지난 3월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라는 제목의 새 책을 세상에 내놓은 이후로 그 책에 대한 비판이 줄을 잇고 있다. 특히 (프레시안)의 지면을 통해 지난 한 달 동안 정태인 새사연 원장과 이병천 강원대 교수(이하 존칭 생략), 이 두 분이 5차례가 넘는 글을 연재하면서 우리의 견해를 비판하였다.

정태인이 5월 초 '장하준에게 보내는 공개편지' 형식을 통해 우리를 비판한 직후 우리는 그에 응답하는 글을 실으려 했다. 그렇지만 공교롭게도 그 직후 이병천 교수가 유사한 논지로 우리 책을 비판하는 서평을 계속해서 연재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두 분의 이야기를 다 들은 후 종합해서 응답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결론을 우리는 내렸다. 그로 인해 정태인과 이병천의 글에 대한 우리의 응답이 이렇게 늦어지게 되었다. 두 분과 독자들에게 죄송하게 생각한다.

우리는 앞으로 8~10회 정도에 걸쳐 우리의 두 책에 제기된 비판점 중에 재벌개혁과 주주자본주의,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 박정희 체제와 경제민주화, 노동통제와 비정규직문제, 산업정책과 추격·탈추격, FTA 등의 주제에 관하여 연속적으로 글을 실을 계획이다.

우리의 책이 왜 이렇게 많은 비판을 받을까?

우리의 새 책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이후 )는 2005년 발간된 와 마찬가지로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잘못된 정책 즉 신자유주의적 경제 정책에 대한 비판으로 가득하다. 그리고 우리는 그러한 정책의 배경에 있는 지식인들과 정치인들 즉 그런 신자유주의적 '시장개혁'을 '경제민주화'로, '진보적 자유주의'로 묘사하며 찬양했던 개혁진보파 인사들 역시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부키
우리는 두 책에서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진보 정부 또는 좌파 정부라고 생각하는 것은 - 보수 세력과 진보 세력 모두에 만연한 - 거대한 착각이라고 썼다. 그리고 최근 들어 일부 진보 인사들이 과거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추진했던 시장개혁을 2013년 체제 하에서 경제민주화의 이름으로 재추진해야 한다고 하는 것 역시 강하게 비판하였다. 하물며 우리는 (선택)의 맨 앞 장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명박 정부는 물론 김대중·노무현 정부도 기본적으로 모두 신자유주의 노선을 추진해 온 게 사실이에요. 시민들이 이런 측면을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못하고 '안티 이명박'이 노무현 시대로 회귀함을 의미한다면 정말 허무한 일 아닐까요? (...) 우파 신자유주의가 마음에 안 든다고 좌파 신자유주의로 가면서 이를 경제 민주화로 포장하는 일은 그만 했으면 좋겠어요. 이젠 정말 불판을 갈아야 합니다".

그렇지만 지금처럼 '닥치고 반MB, 닥치고 반새누리당'의 불길이 활활 타오르는 상황에서 우리처럼 '불판을 갈자'고 외치는 것은 무모함에 가깝다. 우리들에게 "박정희주의자", "재벌옹호론자"라는 욕설이 사방에서 빗발친다. "반MB 경제민주화 전선을 교란시킨다"는 비난도 쇄도한다.

물론 이렇듯 격렬한 욕설과 비난을 동반한 논쟁은 어느 정도 예상했던 바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개혁진보파를 자임하는 지식인들의 사고방식에조차 (진보적 자유주의의 이름으로 포장되어) 신자유주의 정치경제학의 요소들이 깊이 침투해 있는 경우, 치열하고 격렬한 논쟁은 어느 정도 불가피하다.

그렇지만 논쟁에서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야 한다. 정태인, 이병천처럼 대한민국을 이끌어가는 지식인들, 그것도 대표적인 진보적 지식인들마저 우리 책에 대해 거의 욕설에 가까운 곡해와 왜곡, 중상비방을 펼치는 것은 정말 당혹스럽다. 예컨대 정태인은 (시사인)(5월 4일자) 인터뷰에서, 우리가 새 책에서 재벌들이 '불법을 저지른 것 말고는 문제가 없는 것처럼 재벌 합리화론을 펼치고 있다'고 비난하였다.

뒤에서 더 자세히 말하겠지만, 이것은 명백한 왜곡이요 중상비방인데, 그밖에도 정태인과 이병천의 글에는 유사한 왜곡과 중상비방이 수없이 많다. 앞으로 우리는 그러한 왜곡과 중상비방에 대해 지적할 것이며, 또한 앞서 예로 든 '재벌 합리화론'과 같이 너무나 명백한 의도적 왜곡에 대해서는 공식적으로 사과를 요구할 작정이다.

개인·인물과 제도·정책의 차이를 구별하지 않는다

정태인과 이병천의 글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점이 있다. 바로 개인(인간)과 제도·정책을 구별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먼저 한국은행 독립성 문제에 대한 논란을 보자. 우리는 한국의 진보개혁 세력이 전통적으로 한국은행 독립성을 - 그리고 이를 통한 물가통제에 집중하는 통화정책을 - 옹호하면서 그에 반대해온 기획재정부(또는 재정경제부)를 비판해온 데 대하여 우리의 새 책에서 비판하였다.

그런데 정태인은 공개편지에서 기획재정부 관료들은 대부분 신자유주의에 물들었는데 반하여 한국은행 근무자들은 그렇지 않다고 우리를 반박하였다. 정태인 자신이 노무현 정부 시절에 청와대에 근무하면서 관료들을 경험해보니 그렇더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정태인은 따라서 한국은행 독립성 주장은 반신자유주의 즉 경제민주화에 부합한다고 결론 내린다.

그런데 정태인의 이러한 논법은 개인(인간)과 제도·정책을 구별하여 관찰하지 않는 것이다. 만약 정태인 식의 논법대로라면 신자유주의적인 인간들이 넘쳐나는 기획재정부는 해체 또는 약화시키는 것이 해법의 하나가 될 것이다. 아니면, 비신자유주의자들이 많은 한국은행 또는 (정태인이 말하는 방식의) 재벌규제 실무를 담당하는 공정거래위원회 같은 다른 정부조직의 위상을 획기적으로 강화해서 기획재정부의 위상을 떨어뜨리는 것이 해법이 될 것이다. 실제 정태인이 "100% 그의 의견에 동의한다"고 하는 김상조는 위와 비슷한 방식으로 모피아 권력을 해체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정태인은 신자유주의에 뿌리 깊이 감화된 관료들(개인들)이 유별나게 기획재정부에만 많다고 생각하는가? 그런 관료들은 외교통상부와 지식경제부(한미FTA 추진)에도, 교육과학부(교육 시장화 추진)에도 철철 넘쳐난다. 공정거래위원회(각종 규제완화 추진)와 노동부(노동권 약화 추진), 보건복지부(사회복지 축소 추진)에도 그런 신자유주의적 관료들은 넘쳐난다.

그렇다면 이런 부처들도 해체 내지 약화시켜야 하는 것이 아닌가? 게다가 이런 논법대로라면, 현재의 국회와 청와대(따라서 우리나라의 모든 국가기관) 역시 신자유주의적인 인물들이 대다수라는 이유로 그 권한과 위상을 해체 또는 약화시켜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이렇게 한다면, 원래 의도는 그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결과적으로 '작은 정부, 큰 시장'을 주장해온 밀턴 프리드먼과 하이에크 류의 신자유주의와 똑같은 정책 결론이 나오는 것이 아닌가?

신자유주의적 '인물'과 신자유주의적 '제도'의 차이를 구별하지 않는다

인물과 제도를 구별하지 않는 똑같은 문제점은 이병천의 글에서도 발견된다. 이병천은 "한국의 신자유주의는 개발 독재 유산 위에 서 있다"는 글에서, 한국에서 1990년대 초반부터 신자유주의를 추진해온 인물들은 대부분 과거 개발독재 시대에 권력의 정점에 있던 재벌계 인물들과 경제 관료들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그러면서 한국에서 신자유주의는 금융자본과 금융자산가들이 선두에 섰던 서구와는 달리 박정희 체제의 유산인 모피아 관료와 재벌계 인사들이 앞장서서 추진한 '잡종 신자유주의'라고 지적한다.

훌륭하면서도 올바른 지적이다. 그리고 우리는 단 한 번도 이 점을 부인한 적이 없다. 그런데 박정희 체제의 권력자들(모피아와 재벌)이 199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를 추진한 동일한 인물·개인들이라는 이병천식 논법을 따라가자면, 한국에서 신자유주의(즉 시장주의적 제도·정책)와 박정희 체제(즉 반시장주의적 제도·정책) 사이에는 별다른 '질적 차이'가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실제 이병천은 이것을 주장하고 있는 셈인데, 제도·정책의 관점에서 볼 때, 이는 도무지 납득하기 힘든 이야기이다.

이병천은 우리가 (쾌도난마 한국경제)와 (선택)에서 재벌을 신자유주의의 '피해자'인 양 엉터리로 묘사했다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우리로서는 어이가 없는 비판인데, 이 역시 이병천이 개인(재벌가족과 그 가신들)과 제도(법인기업으로서의 대기업과 대기업집단)를 구별하지 않기 때문에 생긴 심각한 곡해요 중상비방이다.

이병천은 이건희와 정몽구와 같은 재벌가문(인간·개인)과 그룹 체제(제도·정책)를 구별하지 않는다. 따라서 그는 우리가 재벌그룹(즉 대기업집단 체제)의 유용성과 정당성을 옹호한다는 점을 곡해하여, 마치 우리가 이건희·정몽구 회장과 같은 재벌 가문과 그 가신 그룹의 이해관계와 행위들(각종 불법행위들)까지 옹호하고 있는 양 착각한다.

요컨대, 정태인과 이병천은 박정희식 경제체제(반신자유주의적 제도·정책)와 그에 관련된 인물들(신자유주의적 모피아 경제관료들)을 구별하지 않고 인물의 문제를 제도의 문제로 바꿔버린다. 또한 대기업집단(주주자본주의 원리에 어긋나는)이라는 경제 제도를 재벌 가족들(주주자본주의에 적극 호응하여 사리사욕을 취하는)이라는 인물·개인들로부터 구별하지 않으며, 인물의 문제를 제도의 문제로 바꿔버린다. 그리고 또한 한국은행 독립성 여부에 관한 제도적·정책적 문제 역시 신자유주의적인 개인-인물들이 한국은행에 많으냐, 기획재정부에 많으냐의 문제로 바꿔버린다.

▲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 ⓒ프레시안(손문상)

영국에 사는 장하준은 한국의 구체적 문제에 대해 발언하지 말라?

정태인은 자신이 청와대에 근무하면서 한국의 구체적 상황을 경험해보니 재정경제부(기획재정부)에는 신자유주의자가 많은데 반해 한국은행에는 별로 그렇지 않더라고 말한 뒤, 외국(영국)에 살고 있는 장하준은 한국의 이런 구체적 현실을 잘 모르니 신중하게 발언하라고 경고한다.

그런데 한국에서 오래 살았다고 해서 한국을 더 잘 이해하는가? 한미FTA를 밀어붙인 정치인들과 관료들 대다수 역시 한국 땅에서 평생 발붙이고 살아온 사람들 아니던가? 게다가 자기가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는 식으로 논지를 펼친다면, 역사가들은 어떻게 자신이 직접 경험하지도 않은 과거 시대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발언할 수 있는 건가? 또한 그런 식으로 남을 비판한다면, 과거 청와대 비서관 시절 정태인이 자주 재벌들로부터 듣던 '기업경영 안 해본 사람은 기업 비판하지 말라'는 류의 비판과 뭐가 다른가?

그리고 정태인은 미국인 스티글리츠의 한국 경제 관련 발언을 금과옥조처럼 칭찬하곤 했는데, 설마 스티글리츠는 한국에 대해 제대로 알고(즉 구체적인 현실을 경험하고) 발언한다고 생각해서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결국 정태인은 한국의 구체적 현실을 경험하지 못한 외국인일지라도 자신과 견해가 일치하면 한국을 잘 이해한 것이고, 외국에 살기는 하지만 한국인이고 평생 한국경제를 연구해 온 장하준이 자신과 반대되는 견해를 표명하면 한국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한다고 격하하는 이율배반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게다가 영국에 있는 장하준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한국 땅에서 살고 있는 정승일과 이종태는 뭔가? 그들이 한국 땅에서 경험하고 체험하는 구체적 현실이 정태인의 그것에 비해 못하다고 생각하는가? 혹시 정태인의 그런 태도는 스티글리츠나 장하준처럼 외국 명문대학 교수의 말에는 경청하면서 그렇지 않은 정승일과 이종태는 무시하는 것은 아닌가? 그리고 그중에서도 자기와 견해가 일치하는 스티글리츠는 뭘 좀 아는 사람이고 장하준은 그렇지 않다는 건가?

마지막으로, 영국에 살고 있는 장하준은 그렇다고 해서 영국에 대해서만 발언해야 하는가? 장하준이 남미와 아프리카의 가난과 저발전에 대해 말하는 것 역시 구체적 현실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떠드는 헛소리라는 것인가? 그렇다면 (나쁜 사마리안)이나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같은 책의 내용 역시 모두 장하준이 직접 경험하지 못한 것들에 대한 신중치 못한 발언이라는 건가? 정태인이야말로 이런 유의 발언을 할 때는 더 신중하게 예의를 지킬 필요가 있다.

장하준·정승일·이종태가 함께 씀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정승일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연구위원,이종태 기자

2012년 5월 16일 수요일

‘침몰하는 진보’에… 스스로 올라탄 남자


이글은 경향신문 2012-05-15일자 기사 '‘침몰하는 진보’에… 스스로 올라탄 남자'를 퍼왔습니다.
ㆍ‘진보 시즌 2’ 운동 선언

진보적 경제학자인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의 정태인 원장(52·사진)이 지난 13일 통합진보당 당원으로 가입했다. 비례대표 부정선거 파문 이후 존립 위기를 맞은 진보정당에 스스로 발을 들여놓은 것이다. 

정 원장은 14일 경향신문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이렇게 놔두면 진보가 무너지겠다 싶었다. 진보정당의 기반이 남았을 때 혁신하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정 원장은 2007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투쟁을 위해 옛 민주노동당에 가입했다. 2008년엔 진보신당에 입당했지만, 2010년 지방선거 이후 당을 떠났다. 누리꾼들은 정 원장의 입당을 영화 의 주인공 레트 버틀러가 패색 짙은 남군에 가입한 것과 견주기도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 중앙위원회 폭력 사태 이후 입당했다. 이유가 있나.

“당 밖의 에너지가 당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제 ‘진보 시즌 1’을 마감해야 할 때다. 1980년대 운동의 힘으로 끌고 왔지만 한계에 왔다. ‘진보 시즌 2’가 시작돼야 한다.”

- 폭력 사태까지 불러온 통합진보당의 현주소를 어떻게 보나.

“비극이다. 갈 데까지 간 거다. 다수에 의해 결정하는 건 많은 사람들의 에너지를 끌어모으는 힘이 없다. 자유주의(국민참여당계)가 적극적으로 나선 것은 이런 경험을 못해봤기 때문이다. 민중민주계열(PD)은 소수화됐다. 민족해방계열(NL), 특히 경기동부와 광주·전남의 독선이 심각해졌다. 자신들의 생각이 옳다고 믿으니 그런 것이다. 민주주의와 동떨어진 태도다. 힘으로 관철하는 것은 조직이 커지면 유지되지 못하는 행동 양식이다.”

- 진보정당의 근원적인 문제는 무엇인가. ‘진보 시즌 1’에 대한 평가일 수도 있겠다.

“1980년대 운동 계파에 따라 만들어진 정파 구조가 분쟁의 근거가 됐다. 정파 간 토론이 활발해도 합의를 위한 게 아니라 다수결을 전제로 한 것이다. 민주주의가 아니라 투표 집중제다. 오로지 투표에서 이기는 걸 목적으로 한다. 조직 내 양극화만 심해졌다.”

- 그렇다면 ‘진보 시즌 2’에 대해 어떤 구상을 갖고 있나. 

“다수결은 민주주의에서 가장 나쁜 것이다. 되도록 합의하고 안될 때 다수결로 하는 거다. 숫자 대결로 가다보니 젊은이들은 진보정당을 구식, 구닥다리로 받아들인다. 새로운 감수성을 흡수하지 못한 결과다. 대대적인 학습이 필요하다.”

- 비상대책위가 출범했지만 갈등의 불씨는 여전하다. 폐쇄하는 게 낫다는 의견도 있다.

“어느 나라 정당도 이념적 선명성만을 내세워 성공한 사례가 없다. 분열에 대한 시민들의 생각은 준엄하다. 통합진보당은 갈등과 화해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념정당과 혁신적 대중정당은 대립적이지 않다. 앞으로 변화에 걸맞은 대중정당으로 거듭나야 한다.” 

- 당원 ‘정태인’은 ‘진보 시즌 2’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민주주의는 상대방을 인정하는 것이다. 가치와 존중이 우선이다. 젊은이들과 호흡하는 감수성을 배울 것이다.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정당, 젊고 대안을 내놓는 정당을 만드는 데 일조하고 싶다.”

구혜영 기자 koohy@kyunghyang.com

2012년 4월 21일 토요일

진보의 탈을 쓴 신자유주의자를 고발한다!


이글은 프레시안 2012-04-20일자 기사 '진보의 탈을 쓴 신자유주의자를 고발한다!'를 퍼왔습니다.
[나는 반론한다] 정태인의 서평에 답한다

4·11 총선 결과에 가장 활짝 웃었을 사람은 누구일까?

지난 4월 11일 19대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의회 권력을 수성했다. 이로써 민주통합당, 통합진보당이 목소리 높였던 재벌 개혁 추진이 힘을 받기가 어려워졌다. 설사 대선에서 야권 후보가 승리하더라도, 새로운 정부가 재벌 개혁을 추진할 때 새누리당이 큰 장애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나온 책 두 권이 눈에 띈다.

장하준, 정승일, 이종태의 대담을 엮은 (부키 펴냄)와 김상조의 (오마이북 펴냄).

장하준, 정승일, 이종태는 지난 2005년 펴낸 (부키 펴냄)에서 참여연대의 소액 주주 운동을 정면 비판했다. 이들은 '복지 국가'를 전면에 내세운 에서도 "재벌 개혁을 말하며 한국 경제를 주주 자본주의로 재편하려는 '시장 경제론자' 혹은 '경제 민주화론자'"를 겨냥했다.

이들이 이 책에서 비판하는 "시장 경제론자" 혹은 "경제 민주화론자"의 대표 주자가 바로 민주통합당의 재벌 개혁 정책을 만드는데 참여한 유종일, 홍종학 그리고 의 저자 김상조다. (이 중 홍종학은 민주통합당의 비례 대표로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이 지점에서 김상조의 가 눈에 띈다. 김상조는 이 책에서 지난 1990년대 중반부터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등이 중심이 되어 추진해온 소액 주주 운동을 비롯한 재벌 개혁 운동의 성과와 한계를 성찰하고, 좀 더 진전된 재벌 개혁 정책을 고민하고 있다.

이번 총선에서 민주통합당, 통합진보당을 비롯한 야권이 패배한 가장 큰 이유로 시민들의 고달픈 삶을 개선할 비전, 정책의 제시가 없었다는 점이 꼽힌다. 그렇다면 앞으로 여덟 달 후에 치러질 대통령 선거에서 진보 개혁 진영이 국민들의 사회 경제적 삶의 개선을 위해 제시할 미래 비전은 무엇일까?

진보 개혁 진영이 그간 제시한 프레임은 복지 국가론과 경제 민주화론이다. 장하준, 정승일, 이종태의 가 복지 국가론을 대변한다면, 김상조의 는 경제 민주화론을 대변한다. 물론 양자 간의 접점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양자 간에는 본질적인 견해 차이도 적지 않다.

앞으로 이 두 접근 간에는 치열한 논쟁이 진행될 것이며, 이 논쟁이 생산적으로 진행될수록 진보 개혁 진영의 미래 비전은 더 명확해지고 더 구체적으로 될 것이다. 따라서 양자 간의 견해 차이를 어설프게 봉합하는 것보다 양자 간의 견해 차이를 드러내고 공개적으로 논쟁하는 것이 더욱 바람직하다.

재벌 개혁 더 나아가 한국 경제의 미래를 둘러싼 이 두 진영 사이의 논쟁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되는 게 바람직할까? 지난 4월 13일 발행된 '프레시안 books' 86호에 실린 정태인 새로운 사회를 위한 연구원 원장의 서평을 놓고 의 공저자 정승일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이 반론을 보내왔다.

☞관련 기사 : 4월 11일, 회장님 얼굴에 웃음꽃 핀 까닭은? 저자가 자신의 책에 대한 서평을 놓고 다시 평을 한다는 것은 썩 내키지 않는 일이다. 더구나 서평을 쓴 사람이 완전히 다른 생각의 소유자도 아니고 많은 사안에서 입장을 함께 하는 사람인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부키 펴냄)의 공저자인 나, 장하준, 이종태 등 3명의 견해는 이미 420쪽에 달하는 그 책에서 밝혀 놓았다. 따라서 정태인의 서평을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는 우선 독자들의 현명한 판단에 맡기는 것이 도리일 것이다. 하지만 독자의 문제 제기에 성실한 답변을 하는 것 또한 저자의 책무라는 생각에서 이렇게 컴퓨터 앞에 앉았다.

첨예한 정치적 대립이 일상화되어 있고, 특히 올해처럼 총선과 대선을 두고 보수와 진보 사이에 '너는 틀렸고 나만 옳다' 식의 진영 논리, 흑백 논리가 판치는 세상에서 양쪽 모두의 견해를 비판하는 책을 내는 것은 무모한 일이다. 그럼에도 에서 우리 3명의 공저자는 보수와 진보 양쪽 모두의 논리를 비판했다.

그러나 더 정확히 말해서 우리가 에서 더 많은 비판을 가한 것은 이른바 진보 개혁 세력이었다. 왜냐하면 우리는 정치적으로 진보에 가깝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독자들을 위하여, 사이비 진보가 아닌 진짜 진보적인 정치경제학이 뭔지를 제시하려고 바로 이 책을 썼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의 맨 앞에서 우리는 '월가를 점령하라' 운동에서 세계 인류의 미래를 향한 희망을 본다고 썼다. 실제로 우리는 10년 전부터 신자유주의와 금융 자본주의, 주주 자본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해온 사람들이다. 2004년에는 '투기자본감시센터'의 설립에도 함께 참여했었다. 공저자 중 한 사람인 장하준은 최근 런던의 '점령하라' 운동가 앞에서 연설을 하기도 했었다.

이상하게 우리나라에서는 '점령하라' 운동이 왜곡되어 전개되었다. '1퍼센트에 맞서는 99퍼센트의 운동'이 투기적인 세계 금융 자본과 재테크 자본 시장에 대한 비판의 맥락에서 전개된 것이 아니라 반재벌 운동의 맥락에서 전개된 것이다. 마치 한국 경제는 금융 자본과 주식 자본과는 무관하며 오직 재벌과 이명박 정부만 타도하면 99퍼센트를 위한 세상이 도래할 것처럼 사람들은 말한다.


 ▲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장하준·정승일·이종태 지음, 부키 펴냄). ⓒ부키
그러나 우리는 에서 한국의 진보 개혁 세력이 주장하는 '반재벌'은 정치경제학적 견지에서 볼 때 "좌파 신자유주의"에 불과하다고, 그것을 '진보'라고 생각하는 것은 진보 진영의 거대한 '착각'이라고 썼다.

따라서 지난 해 12월 팀이 미국까지 날아가 '점령하라' 운동가와 함께 반재벌 운동을 선언한 것은 이런 착각이 만든 일종의 블랙 코미디였다. 주주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 세계 체제를 반대하는 운동의 한 복판으로 날아가 반재벌 담론으로 포장된 주주 자본주의와 좌파 신자유주의를 외쳐댔으니 말이다.

에서 우리가 가장 많이 분량을 할애한 부분이 좌파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둘러싼 논쟁 이래 우파 신자유주의 즉 오리지널 신자유주의가 잘못되었다는 것은 이젠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문제는 좌파 신자유주의인데, 현재 진보 개혁 세력의 정치경제학적 사고방식의 핵심에는 좌파 신자유주의가 뱀처럼 똬리를 틀고 들어서 있다. 그것은 반재벌론, 반모피아론, 반토건주의론, 반복지 공정·공평론 등 다양한 외피를 쓰고 나타나는데, 결국은 신고전파 주류 경제학을 정치경제학적 토대로 삼고 있다.

재벌 개혁 운동의 성공 비결 : 신자유주의와의 야합

정태인은 서평에서 "나는 김상조가 지난 10여 년간 해온 재벌 개혁 운동에 찬사를 보낸다. 구체적인 정책과 실천이라는 점에서 김상조가 해 온 일은 가히 경이롭다"고 썼다. 그리고 "거대 담론의 실패 경험을 되풀이하기보다는 구체적인 성공 경험을 축적함으로써 변화의 가능성에 대한 신뢰를 확립하고, 이를 통해 결코 과거로 돌아갈 수 없는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어낸다"는 (김상조가 대표로 있는) 경제개혁연대 창립 선언문을 극찬했다.

실제로 김상조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 한국의 진보 진영에게 결여된 것은 거대 담론이 아니라 작은 성공 경험들의 축적이다. 특히 재벌 개혁과 금융 개혁은 노동 대중과 시민 사회의 주도 하에 구체적 성공 경험을 축적할 수 있는, 그럼으로써 진보적 대안의 실현 가능성에 대한 믿음을 축적할 수 있는 과제다."

그런데, 정말로 진지하게 물어보자. 김대중, 노무현 정부 하에서 추진되었던 재벌 개혁과 금융 개혁이 과연 '진보적'이었던가? 그리고 그것이 과연 노동 대중과 시민 사회의 주도 하에 수행되었던가? 재벌 개혁과 금융 개혁은 한국의 최대 대기업과 은행, 종합금융회사, 증권사, 자산 운용사 등에 대한 개혁이었고 말하자면 '대자본'에 대한 개혁이었다.

그런데 '노동' 영역에서 벌어지는 정리 해고와 비정규직 양산 사태에 대응하기에도 급급할 정도로 취약했던 한국의 진보 진영이 언제부터 '대자본' 영역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주도'할 정도로 성숙했었나? 정태인은 특히 장하성이 참여연대에서 시작하고 김상조가 경제개혁연대에서 이어받은 재벌 개혁 운동이 "한 줌도 안 되는 지식인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그야말로 혁혁한 성과를 거뒀다"고 칭찬하는데, 과연 그랬던가?

진실은 이렇다. 지난 김대중, 노무현 정부 하에서 재벌 개혁과 금융 개혁처럼 철두철미하게 앵글로색슨 식으로, 즉 신자유주의적 방향으로 추진된 분야가 없다. 그리고 그 이유는 바로 그것을 주도한 것이 우리나라의 '노동 대중'과 '시민 사회'가 아니라 바로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 그리고 미국 재무부-월스트리트 복합체였기 때문이다.

시민 사회, 구체적으로는 참여연대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과 같은 시민단체들이 "구체적인 작은 성공 경험들의 축적 사례"를 유별나게 재벌 개혁과 금융 개혁 분야에서 달성하는 혁혁한 성과를 거둔 것은 바로 그 시민단체들이 요구한 재벌 개혁과 금융 개혁이 근본적으로 미국의 재무부-월스트리트 복합체의 요구와 서로 일치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정태인이 참여연대와 경제개혁연대의 "혁혁한 성과"라고 칭찬하는 사외 이사제와 집중 투표제, 증권 집단 소송제 등은 이미 1990년대 초반부터 미국 재무부-월스트리트 복합체의 공식적인 해외 전략 목표였다. IMF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들과 함께 골드만삭스와 스탠더드 앤 푸어스, 켈퍼스 같은 금융 자본과 펀드 자본의 적극적 후원을 받았던 덕택에, 재벌 개혁과 금융 개혁 분야에서 김상조와 참여연대(경제개혁연대), 경실련 등은 "구체적인 성공 경험을 축적함으로써 변화의 가능성에 대한 신뢰를 확립"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한국 경제에서는 "결코 과거로 돌아갈 수 없는 근본적인 변화"가 실제로 발생하였다. 즉, 주주 자본주의와 금융 자본주의가 한국 경제의 핵심 논리로 정착하게 되었고, 거대 재벌 기업 역시 주주 자본주의와 야합하여 주가 상승과 배당금 인상, 단기 수익과 현금 흐름(cash flow) 등을 중시하는 '글로벌 스탠더드 경영'(즉 월스트리트 자본주의)을 내재화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정태인은 마치 사외 이사제와 집중 투표제 같은 여러 재벌 개혁 조치들이 별 효과가 없었다는 듯이 말하는 김상조의 말에 동의를 표명하고 있다. 별 효과가 없었다고? KT&G를 보라. 월스트리트에서 한국으로 날아온 칼 아이칸이 KT&G에 대해 적대적 경영권 위협을 가했을 때 그가 동원한 제도적 무기들이 바로 집중 투표제 같은 '진보적' 재벌 개혁이었다. (이에 관한 자세한 설명은 를 보라.)

거대 담론은 없다 : 좌파 신자유주의자들의 궤변

1980년대의 한국 진보는 거대 담론이 판치는 곳이었다. 민족해방(NL)과 민중민주(PD), 민족민주(ND) 또는 사회주의 같은 용어를 일상어로 달고 살 정도였고 그래야만 요즘 말로 '개념 있는' 인물로 대접받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1980년대에 소련과 동유럽 공산주의 체제가 붕괴하면서 그 거대 담론의 시대는 순식간에 무너졌다.

그리하여 거대 담론 회피 풍조가 1990년대부터 한국 사회를 지배하였다. 경실련과 참여연대 같은 진보적 시민 단체는 그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창립되었다. 일상적 삶의 개선에 별 쓸모도 없는 거대 담론보다는 삶의 작은 개선과 개혁에 주력하자는 뜻에서였다. 그리고 거대 담론 기피증은 김상조가 주도하는 경제개혁연대의 창립 선언문에도 나와 있다. (그러나 뒤에서 보겠지만, 김상조는 한편으로 거대 담론을 배격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고전적 자유주의라는 거대 담론을 적극 옹호한다.)

그렇지만, 과연 이 모든 사조가 거대 담론과 무관했을까? 거대 담론 기피증이 한국과 세계의 진보 세력 내에서 만연한 1990년대는 동시에 신자유주의의 압도적 지배 시대이기도 했다. 특히 실리콘벨리와 월스트리트로 대표되는 미국 자본주의가 최고조의 번영을 누린 1990년대 말은 제 정신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도 신자유주의를 감히 반박할 수 없었다. 미국 자본주의는 곧 동시에 '글로벌 스탠더드'였다. 그런데 참여연대(경제개혁연대)와 경실련 등의 진보적(?) 시민 단체들이 최고의 전성기를 누린 시기 역시 바로 이 때였다. 이것이 과연 우연의 일치였을까?

한 가지 사례를 보자. 2011년 10월 박원순이 나경원에 맞서 서울시장에 출마했을 때의 일이다. 1997년 5월, 당시 참여연대를 이끌던 박원순이 공병호, 이명박, 좌승희 등과 함께 '경제 자유 찾기 모임'라는 신자유주의 정치 단체를 결성했었다는 전력이 서울시장 선거를 앞두고 신문에 보도되어 논란이 되었다.

경제 자유 찾기 모임은 창립 선언문에서 규제가 없는 완전한 자유 경쟁 시장의 창달을 표방하면서 "우리가 겪고 있는 경제·사회적 어려움의 근본적 원인은 경제적 자유의 속박에 있으며, 가장 잘하는 자에게 맡기는 경쟁 원칙을 사회 각계에 확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 박원순 측(우상호)은 이런 과거 전력이 문제로 떠오르자 "(90년대 말 당시에는) 국가 주도 경제 성장이 한계이 이르면서 규제 완화(경제적 자유주의)가 시대적 요청이었다"고 변명하였다. (☞관련 기사 : 한나라당 "박 후보, 月 생활비 1500만 원 어디서 마련했나!")

이러한 변명으로부터 우리는 두 가지 사실을 알 수 있다. 첫째, 김상조, 박원순 등에게서 발견되는 거대 담론 기피증의 배후에는 특정 거대 담론 즉 신자유주의가 압도적으로 지배하는 뼈아픈 현실이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둘째, 김상조, 박원순 등의 인물이 지금까지 이끌어온 한국의 진보적 시민 단체들은 신자유주의를 (그리고 주주 자본주의를) 용인하고 때로는 그것과 적극적으로 협력한 덕택에 "혁혁한 성과"를 거두며 성공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렇듯 신자유주의와 주주자본주의를 용인하고 때로는 적극적으로 그와 협력하는 진보를 우리는 "좌파 신자유주의"라고 부를 수 있으리라. 그리고 우리가 에서 지적했듯이, 좌파 신자유주의는 이른바 경제 민주화라는 외투를 쓰고 나타난다(유종일, 홍종학, 선대인). 때로는 진보적 자유주의(최태욱) 또는 진(眞) 자유주의(김대호)라는 외투를 쓰고 나타나기도 한다. 때로는 반토건주의 또는 반토지 소유주의(헨리 조지주의자)의 외양을 쓰기도 한다.

이처럼 다양한 외피를 쓴 좌파 신자유주의의 사고방식은 지금 이 순간에도 민주통합당의 박영선과 문재인, 이해찬과 김두관, 안희정과 송영길 같은 유력 정치인의 사고방식과 발언에서 자주 등장한다. 진보 정당을 자처하는 통합진보당의 이정희와 유시민과 같은 유력 정치인들 역시 예외가 아니다.

그래서 더욱 절망적이다. 지난 20년간 보수 진영의 우파 신자유주의와 진보 개혁 진영의 좌파 신자유주의가 번갈아가며 집권하면서 나라 살림과 서민 살림을 결딴냈다. 언제까지 이런 절망적인 악순환을 계속하겠다는 건가?

고전적 자유주의는 여전히 진보적인가?


이들 모든 좌파 신자유주의자의 공통점이 있다. 자신들이 옹호하는 것은 신(新)자유주의가 아니라 구(舊)자유주의(즉 고전적 자유주의)라는 것이다.

김상조는 (미들하우스 펴냄)와 (오마이북 펴냄)를 비롯한 여러 책과 발언을 통해 한국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사회 경제적 과제는 바로 '고전적 자유주의'의 실현이라고 말한다. 토지 불로 소득 과세와 종합부동산세 대폭 강화를 주장하는 헨리 조지주의자들 역시 고전적 자유주의자이다.

이들은 박정희식 '관치'와 재벌 체제로 대표되는 '중상주의' 체제를 넘어서 진보적 경제 개혁을 위해서 애덤 스미스, 존 스튜어트 밀, 헨리 조지 등으로 대표되는 고전적 자유주의의 정치경제학이 오늘날의 한국에서 여전히 필요하고 중요하다고 믿는다. 그런데 신자유주의의 교주인 시카고학파의 밀턴 프리드먼이 가장 격찬하는 것 역시 애덤 스미스와 존 스튜어트 밀의 고전적 자유주의이다.

장하준은 (이종태·황해선 옮김, 부키 펴냄)에서 오늘날 신자유주의 정치경제학을 오스트리아 학파(프리드리히 하이에크)와 신고전파 주류 경제학의 야합이라고 지적했다. 그리고 그러한 야합의 핵심 인물이 바로 밀턴 프리드먼과 로버트 루카스처럼 오늘날 경제학계의 주류를 이루는 시카고학파 경제학자들이다.

그리고 그 시카고학파 경제학의 전통 속에서 출현한 것이 바로 주주 자본주의론 등 현대적 금융 재무 이론이고, 바로 이것이 월스트리트 금융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를 정당화시키는 정치경제학적 이데올로기로서 역할을 한다. 실제로 신자유주의 역시 고전적 자유주의와 마찬가지로 중상주의(보호 무역과 금융 시장 보호)를 배격하고 자유 무역과 자유로운 금융 시장을 옹호한다.

밀턴 프리드먼이 인정하듯이 구자유주의와 신자유주의간에 본질적인 차이점은 없다. 그러나 김상조, 유종일, 정운찬 등은 "전 세계적 차원에서는 반동적인 시카고학파 경제학도 한국 경제 개혁의 관점에서 보면 진보적으로 활용될 수 있다"며 그 긍정성을 살리자고 말한다. 이런 주장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김상조는 모든 자본주의 경제 체제가 (1) 중상주의 단계, (2) 자유주의 단계, (3) 사회(민주)주의 단계 또는 복지 국가 단계의 3단계 발전 과정을 필연적으로 거쳐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한국 경제는 현재 중상주의(박정희 체제와 재벌 체제)를 넘어서는 자유주의 단계를 거쳐야 하며 따라서 자유주의적 개혁 과제(즉 재벌 개혁, 모피아 타파, 토건주의 타파 등의 경제 민주화의 과제)가 사회민주주의적인 복지 국가적 과제보다 논리적, 시간적으로 우선한다고 주장한다.

유종일, 정운찬, 김대호, 김동춘, 선대인 등 역시 이 점에 관한 한 김상조와 의견이 같다. 정태인 역시 큰 틀에서 비슷하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 점에서 본질적으로 의견이 다르다.

장하준은 (이순희 옮김, 부키 펴냄). , (김희정·안세민 옮김, 부키 펴냄) 등에서 18세기 영국(애덤 스미스가 에서 비판한 바로 그 영국)만이 아니라 모든 선진국이 19세기에도 그리고 20세기에도 중상주의적인 국가 개입 즉 적극적인 산업 육성 정책과 기술 정책을 활용하여 선진국으로의 도약에 성공했음을 보여준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도 프랑스, 오스트리아, 핀란드, 하물며 복지 국가 스웨덴 역시 이러한 '중상주의적' 정부 개입을 통해 선진 공업국으로 도약하였다. 따라서 3단계 역사 발전론은 그야말로 허구에 불과하다. 최근에 출간된 에릭 라이너트의 (김병화 옮김, 부키 펴냄) 역시 이 점을 풍부한 역사적 자료를 통해 분명하게 보여준다.

초지일관 시장주의자는 누구인가?

그리고 정태인은 우리의 책 의 내용이 앞뒤가 안 맞는 경우도 많이 있다고 비판했다. 예컨대 "강만수는 앞부분에서는 환율 방어에 나선 산업 정책의 화신이 되었다가 뒤에 가면 시장 개혁론자로, 그리하여 김상조와 같은 집단에 속하게 된다. 심지어 노무현 정부 개혁론자(즉, 나도 포함된다)들도 관료와 함께 주주 자본주의를 만들려고 노력한 사람들이 되어 버리기도 한다. 목숨 걸고 싸운 사람들이 실은 한편이었다니 이 얼마나 극적인가?"라고 지적한다.

맞다. 당연히 앞뒤가 안 맞는다. 그런데 그렇다면 우리가 강만수를 제대로 관찰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게 앞뒤가 안 맞는가? 그렇지 않다. 강만수 같은 모피아 관료들은 시장주의자이면서 동시에 경제 관료(모피아)로서 정부 개입에 나설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들의 행동이 앞뒤가 안 맞는다. 그에 반해 그들 모피아를 비판하는 초지일관된 시장주의자들이 바로 김상조와 이동걸 같은 진보적(?) 시장주의자들이다.

김상조, 이동걸 같은 반재벌론자들을 '시장주의자'라고 부르는데 반발하는 사람들이 많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 내에서 (김진표, 권오규 등의 모피아 블록에 맞서는) '진보 블록'을 형성하고 있던 이동걸 그리고 정태인 본인도 자신을 결코 반시장주의자라고 지칭하지 않았다.

당시 금융 개혁과 재벌 개혁에 관한 수많은 공개 국정 토론회에서 이동걸, 김우찬, 김선웅, 장하성을 비롯한 대다수 시장 개혁론자들은 스스로를 "진보도 아니고 보수도 아닌, 그냥 시장주의자"로 불러 달라고 요청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늘 일관된 시장주의의 입장에서 관치 금융을 비판하고, 재벌 개혁을 이야기했다.

물론 중상주의(관치와 재벌 체제)가 지배하며 따라서 고전적 자유주의가 여전히 역사적 과제라고 보는 관점에서는 시카고학파의 시장주의(신자유주의)조차도 '진보'의 정치경제학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장하준과 나는 이런 사고방식을 "좌파 신자유주의"라고 부른다.

누가 금리 인상 문제를 놓고 제2의 환란을 말했나?

정태인은 "예컨대 2008년 금리 논쟁에서 장하준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금리 인상에 반대하였지만 당시 인상론자들이 IMF의 요구처럼 두 자릿수로 올리자는 건 결코 아니었다. 내 기억으론 기껏해야 0.25퍼센트에서 0.5퍼센트 인상을 주장한 것이었다"고 비판했다. 그 말이 맞다.

2008년에 한국은행 총재 박승과 전성인, 김상조, 유종일 등의 경제 민주화론자들이 1998년의 IMF처럼 무려 30퍼센트 대의 초금리를 요구한 것은 결코 아니었으며 기껏해야 0.5퍼센트 인상을 요구한 것에 불과했다. 그런데, 그런 사소한 금리 인상을 하지 않는다고 강만수를 비판하면서 "그로 인해 곧 제2의 환란이 터질 것"이라고 침소봉대하며 난리법석을 떤 것이 누구였던가?

게다가 2009년 초에는 마치 한국의 외환 보유고가 곧 바닥날 것처럼 침소봉대하면서 또 다시 "제2의 환란이 터질 것"이라는 해프닝을 연출한 것이 누구였던가? 바로 경제 민주화론자들이었다. (누리꾼 경제 논객 미네르바를 둘러싼 웃지못할 해프닝도 바로 이런 맥락에서 발생하였다.)

게다가 정태인은 우리가 에서 경제 민주화론자들의 금리 인상론을 비판하면서 그 대안으로 제시한 금융 규제와 자본 통제에 대해서도 불편한 심기를 내비친다. 그는 "금리가 둔탁한 정책 수단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대안이 자본 통제라면 누구나 고개를 내두를 것이다. 갑자기 도입할 수 있다거나 미세 조정에 쓸 수 있는 정책 수단은 아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는 "동아시아가 공동의 환율 정책, 외환 보유고 관리 정책을 사용한다면 자본 통제도 수월하게 도입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그런데 정태인은 자본 통제(금융 규제)에 대해 많은 오해를 하고 있다. 첫째, 노무현 정부는 이미 2006년부터 은행권의 부동산 담보 대출에 엄격한 금융 규제를 가하고 있다. 이 역시 일종의 자본 통제이다. 게다가 세계 금융 위기의 여파로 한국 은행들이 2008년 말에 겪은 심각한 유동성 위기(해외 단기 차입 연장의 실패) 문제에 대처하고자 이명박 정부가 도입한 은행세(은행의 해외 단기 차입에 대해 부과하는 거래세) 역시 일종의 자본 통제이다.

이렇듯 자본 통제(금융 규제)는 노무현, 이명박 정부도 도입하여 금융 시장의 미세 조정에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이미 IMF조차 2007년 이후부터는 캐리 트레이드 등 핫머니의 이동에 대한 통제(자본 통제)가 필요하다는 점을 공공연하게 인정하고 있다. 그리고 이 점은 한국개발연구원(KDI)과 한국금융연구원 같은 보수적인 국책 연구소에서 주최하는 국제 세미나에서도 이미 수년 전부터 논의되고 있다.

오히려 자본 통제 논의에 무관심한 측은 진보 개혁적인 경제학자들이며 이들은 마치 재벌 금융만 규제하면 만사형통인 듯이 말한다. 게다가 정태인이 전제하듯이 모든 자본 통제가 반드시 한·중·일 등 동아시아 공동의 환율 정책과 외환 보유고 관리 공동 정책을 전제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 자본 통제도 있고 그렇지 않은 자본 통제도 있을 수 있다.

게다가 정태인은 마치 주주 자본주의 규제 역시 일국적으로 해서는 별 효과가 없으며 반드시 동아시아 국가들의 공조와 세계적인 금융 규제의 강화의 진행에 맞추어서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것 역시 이해하기 힘들다. 예컨대 주주 자본주의를 억제하는 차등 의결권 주식 제도는 이미 한국을 제외한 세계 모든 나라에 존재한다. 즉, 이미 국제 공조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리고 동아시아만 국한해서 보더라도, 일본 대기업에는 순환 출자가 존재한다. 그리고 전반적으로 기업 및 금융 관련 제도가 우리만큼 미국화되어 있지 않고 따라서 주주 자본주의가 우리만큼 심하지 않다. 더구나 타이완과 중국의 대다수 대기업은 공기업이다. 한국에서만 주주 자본주의와 금융 자본주의가 유별나게 심하다. 따라서 굳이 그 나라와 공조할 필요도 없이 바로 주주 자본주의를 억제하는 법률들을 만들 수 있다.

정태인이 불가능하다고 비판하는 황금주 제도는 대다수 선진국에서 공기업 민영화시에 정부의 비토권을 확보하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것마저 상법에서 금지하고 있다. 그 결과 KT와 KT&G가 저 모양이 되었다. 서울지하철 9호선의 요금인상 문제 역시 서울시가 황금주 제도를 도입하여 9호선 운영 회사의 이사회에서 비토권을 행사했다면 이렇게 제멋대로 요금을 인상한다 떼를 쓰지는 못했을 것이다.

있지도 않은 괴물을 만들었다고?

우리가 에서 헨리 조지주의자와 그들이 주장한 종합부동산세를 비판한 것을 놓고 정태인은 이렇게 비난했다.

"이런 논법이라면 중앙은행이 물가를 넘어 자산 가격 안정 등 전반적인 경제 안정을 떠맡아야 한다고 주장한 조지프 스티글리츠 역시 신자유주의자이며 주주 자본주의론자다. 중앙은행의 역할을 강조하면 보수주의자인데 거기다 자산 가격까지 떠맡으라니…. 말하자면 이들은 존재하지 않는 괴물을 만들어 놓고, 또 모두를 괴물로 만들어서 신나게 두드려 팬 것이다."

이 부분은 정태인이 우리의 견해를 왜곡해 평가한 부분이기에 답변을 안 할 수 없다.

먼저 "중앙은행(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이 물가 관리를 넘어 자산 가격 안정 등 전반적인 거시 경제의 안정도 떠맡아야 한다"고 말한 스티글리츠의 주장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이해해야 한다. 2008년 말 미국에서 금융 위기가 발생하자 가장 큰 논란이 된 것의 하나가 사태가 이 지경이 되는 동안 미국의 금융 감독 당국은 뭘 했느냐는 비판이었다.

그런데 미국에는 연방 차원에서만 열일곱 개의 금융 감독 기관이 존재한다. 시중 은행의 경우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연준), 통화감독청(OCC), 연방예금보험공사(FDIC) 등 5개 기관이 감독 업무를 분담했다. 하지만 세계 금융위기를 계기로 중앙은행 격인 연준이 컨트롤 타워로서의 제 역할을 못했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스티글리츠의 발언은 이러한 맥락에서 제기된 것이다.

물론 스티글리츠의 생각과는 반대로 오바마 정부는 연준 등 5개 기관을 총괄하는 금융안정감시위원회(FSOC)를 새로 설립했고 미국 재무부 장관이 그 의장을 맡도록 했다. 여러 기관들로 분권화된 미국의 금융 감독 시스템을 하나의 중앙 집중제로 새로이 일원화했다. 미국과는 달리 우리는 이미 1998년 금융(감독)위원회가 탄생하면서 물가 관리는 한국은행이 맡고 (금융) 자산 가격 관리는 금융위원회가 맡는 이중화된 체제가 성립되었다.

그런데 과연 정태인과 김상조, 정운찬 등 경제 민주화론자들이 주장하듯이 그리고 경실련과 참여연대의 학자들이 주장하듯이, 금융위원회의 권한을 축소하고 중앙은행(한국은행)에 자산 가격 관리 등 금융 감독 권한을 넘긴다고 해서 한국 경제가 그토록 '진보적'으로 민주화되고 더구나 금융 위기 발생(부동산 자산 가격 버블의 형성)을 원천적으로 막을 수 있다는 것인가?

우리는 별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며, 이 점은 본질적인 견해 차이이다.

재벌 계열사가 무너지면 한국 경제가 무너진다?

마지막으로 재벌 문제에 관한 흔한 오해를 지적하면서 글을 끝내기로 한다. 정태인은 "재벌 계열사 중 어느 하나라도 무너지면 한국 경제는 시스템 위기를 맞을 수 있다"고 말하면서 이러한 대마불사와 시스템 위기(대규모 경제 위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출자 총액 제한 제도와 순환 출자 금지 같은 조치들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것은 명백한 오해다. 1997년 이전처럼 재벌 계열사들의 부채 비율이 높고, 더구나 그 부채에 대해 계열사들이 상호 지급 보증을 할 때는 한 계열사의 부도가 다른 계열사의 부도를 일으켜 재벌 그룹이 통째로 부도나는 일이 있었다. 그리고 그 바람에 은행권 역시 큰 위기에 직면하였다.

그렇지만 김대중 정부는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계열사 간 지급 보증을 금지했고 대기업의 부채 비율을 현격하게 낮추도록 했다. 따라서 오늘날 재벌 계열사의 부채 비율은 미국 대기업보다 더 낮으며 더우나 계열사 간 지급 보증은 아예 없다. 그러므로 정태인이 염려하는 것과 같은 재벌 계열사 하나가 망한다고 해서 시스템 위기는 일어나지 않는다.

그리고 2008년 이후 세계 금융 위기 이후 주요 20개국(G20) 차원에서 논의된 "시스템적으로 중요한 금융 기관"에 대한 규제 이야기는 의 제1장과 제2장에서 이미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예컨대 은행 등 금융 기관에 대한 '동태적 바젤 규제'와 임직원 보너스 규제, 스톡옵션 규제 등이 그것이다. 그런데 이런 새로운 금융 규제들은 모두 금융 시장의 주주 자본주의 이익에 반한다.

그런데 김상조를 비롯한 한국의 경제 민주화론자들은 전 세계적인 금융 시장 규제와는 동떨어진 이야기에 더욱 큰 관심이 있다. 즉, 금융 기관들의 주주 자본주의와 단기 수익성 지상주의를 규제하는 것에는 별 관심이 없고 오로지 출자 총액 제한 제도와 순환 출자 금지 같은 재벌 규제와 재벌 금융 규제를 하면 된다는 것이다. 여전히 김상조 등은 헤지펀드와 사모펀드 규제, 신용파생상품 규제 같은 이야기들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재벌들만 규제하면 한국에서는 금융 위기가 재발하지 않을 것처럼 말한다.

그렇지만 우리가 에서 말한 것처럼, 그리고 다들 이미 직감하고 있는 것처럼, 한국에서 만일 앞으로 제2의 금융 위기가 발발한다면 그것은 재벌 그룹 계열사들의 위기 , 특히 그 금융 계열사들의 위기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은행들에서, 은행 대출(가계 대출)의 부실에서 시작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가계 대출 거품의 형성과 붕괴에는 (미국 월스트리트와 마찬가지로) 은행들의 주주 자본주의가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 은행권의 주주 자본주의화를 경제 민주화의 이름으로 밀어붙인 이들이야말로 앞으로 닥칠 제2의 금융 위기에 대해 도덕적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좌파 신자유주의자들의 대오각성을 촉구한다!


ⓒ프레시안

/정승일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