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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5월 5일 일요일

결혼 안하고 소득 없고 지메일 쓰면 종북?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3-05-04일자 기사 '결혼 안하고 소득 없고 지메일 쓰면 종북?'을 퍼왔습니다.
"보안수준이 높은 지메일, 비밀스럽게 메시지를 주고 받은 목적"… 이적단체 억지 수사 논란
박근혜 정부 초기 무리하게 공안 몰이를 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수년 전 결성돼 별 문제없이 활동을 하고 있는 청년단체가 공안당국의 타깃이 되고 있고 상식적으로 이해될 수 없는 대목을 들어 종북 인사로 낙인을 찍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 30일 서울지방경찰청 보안수사대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들어 청년 통일단체인 '6. 15 남북공동선언 실현을 위한 청년모임 소풍'(이하 소풍) 사무실과 단체 회원 10명의 압수수색을 진행하고 이준일 통합진보당 중랑구 위원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해 체포했다.
경찰은 소풍이 북한의 입장에 동조하는 이적단체로 판단하고 소풍의 회의자료와 강연록,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압수해 분석을 하고 있다.
특히 소풍의 회원인 신씨의 자택을 수색하면서 압수수색 사유로 들었던 대목 중에는 신씨가 미혼이라는 점을 들어 이적활동을 할 가능성이 높다고 명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영장에는 소풍단체 활동을 언급한 뒤 소풍 활동 때문에 결혼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명시돼 있다고 신씨는 전했다.
신씨(34)는 "3포세대로 일컬어지는 30대 젊은이들이 결혼을 못하는 것은 돈과 시간 부족 때문인데 결혼을 못한 것을 가지고 국가보안법에 억지로 꿰어 맞춰서 종북활동을 하고 있다는 보는 것은 심각한 인권침해에 해당된다"고 비판했다.
신씨는 "박근혜 정권이 출범한지 얼마되지 않아서 말기처럼 공안탄압을 하고 있는 게 아니냐"면서 "비단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다. 공안탄압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압수수색 당일 구속을 당했던 이준일 통합진보당 중랑구위원장의 구속 사유에서도 미혼이고 소득이 없어 언제든지 도주의 우려가 있다는 내용이 명시돼 있었다. 결국 이 위원장은 구속되고 이틀만인 2일 영장실질심사를 통해 영장이 기각됐다.
압수수색을 당했던 한 회원의 영장에는 또한 국내 포털 메일을 쓰지 않고 보안수준이 높은 지메일을 쓴다는 이유를 들어 '비밀스럽게 메시지를 주고 받은 목적이 있다'는 식의 표현도 들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소풍 단체의 변호를 맡은 설창일 변호사는 "사람이 결혼을 하지 않고 소득이 없는 것이 마치 무슨 잘못을 한  것처럼 하고 있다"면서 "압수수색과 구속을 하려고 무리하게 집행하다보니 이런 식의 악의적인 주장을 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경찰이 소풍에 대해 이적단체 구성 및 가입 혐의에 대한 공소시효가 막바지에 이르자 이적단체 조직 사건을 만들어 사법처리해 성과를 내려고 한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소풍은 지난 2004년 준비 모임을 시작해 단체를 결성해 회원을 두고 임시체제 조직 체계로 조직을 운영하고 지난 2006년 출범했다.
경찰은 이들의 결성시기를 지난 2006년으로 보고 있다. 이적단체 구성 혐의는 공소시효가 7년이기 때문에 경찰의 주장대로 하면 올해가 지나면 공소시효 때문에 사법처리를 할 수 없다. 소풍 측은 하지만 실질적인 단체 운영은 지난 2004년이기 때문에 경찰이 내세운 이적단체 구성 혐의는 공소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 그런데 경찰이 굳이 2006년으로 소풍의 출범 시점을 잡고 올해 공소시효가 끝나기 전에 무리하게 기소를 하려는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향후 재판 과정에서 공소시효에 대한 쟁점이 부각될 것으로 보이는 대목이다.


▲ 청년단체 소풍이 이적단체 구성 및 가입 혐의로 압수수색을 당했다. ⓒTV조선


또한 경찰은 소풍 단체를 이적단체로 의심하고 있지만 소풍의 강령에는 북한의 입장을 동조하는 게 아니라 남북이 합의했던 6. 15 공동선언과 10. 4 선언을 이행하자는 내용이 나와있을 뿐이다.
소풍 단체 관계자는 3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소풍의 강령에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하였다'라는 6. 15 공동선언에 대해 활동을 견지하기로 나와있다"고 말했다.
또한 10. 4 선언 중 "남과 북은 현 정전체제를 종식시키고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해 나가야 한다는데 인식을 같이하고 직접 관련된 3자 또는 4자 정상들이 한반도지역에서 만나 종전을 선언하는 문제를 추진하기 위해 협력해 나가기로 하였다"라는 조항을 들어 평화협정 체결을 주장했는데 북한의 입장을 동조한 것이라며 공안당국이 종북의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는 것이 소풍 측의 주장이다.
관계자는 "공안당국이 소풍 단체를 이적 단체로 급작스럽게 만들기 위해 무리한 수사를 벌이고 있다"며 "박근혜 대통령도 남북간 합의서를 존중할 의사가 있다고 하지 않았느냐"라고 비판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3월 27일 통일부와 외교부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우선 신뢰구축과 관련해서 남북한이 기존 합의를 존중하고 이에 기초해서 실천 가능한 합의부터 이행하는 것이 신뢰구축의 출발범"이라고 말한 바 있다.
설창일 변호사는 "남북관계에서 교류협력사업과 대북 공동사업은 이전 정부시절에서 허용된 범위였다. 정권이 바뀌더라도 처벌된 문제는 아니다"면서 "소풍은 남북이 합의한 6. 15 공동선언을 실천하기 위한 행동에서 벗어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재진 기자 |jinpress@mediatoday.co.kr  

2012년 11월 29일 목요일

박근혜, 유치원 여교사 결혼 사직 각서?


이글은 대자보 2012-11-28일자 기사 '박근혜, 유치원 여교사 결혼 사직 각서?'를 퍼왔습니다.
새누리당"박 후보 관련 없어", 박근혜 이사장 취임 후 유치원 인가 주장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의 슬로건인 '준비된 여성 대통령'이 역풍을 맞고 있다. 

유정아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 시민캠프 대변인은 27일 오전 브리핑을 통해서 "박근혜 후보는 준비된 여성대통령이라는 데 '그렇지 않다'"며 "1982년부터 90년 사이에 박근혜 대표는 육영재단 이사장직을 맡고 있었는데 재단에서 운영하는 유치원 여성교사들을 받을 때 ‘결혼하면 퇴사 한다.’라는 서약서를 받았다"고 말했다. 

유 대변인은 "여성 고용주가 여성 고용자들를 고용할 때 결혼하면 퇴사 한다는 서약서를 받은 것이고, 이것에 의해서 입사했던 많은 여성 교사들이 결혼과 함께 퇴사하거나 혹은 결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채 유치원을 다녔다"고 지적했다. 

논란이 확산되자, 새누리당 박선규 대변인은 MBC라디오 을 통해 "아마도 그 시절에 대한민국 전체적인 사회가 그랬다"라며 "이게 지금 몇 십년 전의 얘깁니까"라고 반박했다. 

▲ © 홈페이지

그러나 MBC 위드토론에서의 유정아 대변인과 조윤선 새누리당 대변인 간의 이 문제를 둘러싼 설전과 트위터 등에서 비판 여론이 확산되자, 박선규 대변인은 한 발 물러섰다. 박 대변인은 27일 오후 당사 브리핑에서 "어떤 경우건 '결혼하면 퇴사한다'는 각서를 받았다면 그것은 잘못된 일이다"라면서도 "박근혜 후보와는 관계 없는 일"이라고 의혹 확산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육영재단 어린이회관 유치원 홈페이지를 보면 박선규 대변인의 반박이 석연치 않은 대목이 쉽게 확인된다. 어린이회관 유치원 연혁(http://won.kizheim.kr/Core/data/wonFiles/52/bbs/2012/05/1337913113_20120525_3.jpg)에는 박근혜 후보가 1982년 10월 27일 이사장에 취임한 것으로 나와 있다. 유치원은 박 이사장 취임 이후인 1983년 3월 5일 14학급 설립인가를 받았다. 이후 1984년 2월 16일 제1회 졸업생 506명을 배출했다고 공식 기록되어 있다. 

새누리당 박선규 대변인의 해명은 기본 사실 관계조차 파악하지 않은 임기응변식 대응으로 읽힌다. 박 대변인은 어린이회관 측에 문의해 봤지만 당시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고 밝혔지만 정작 어린이회관 홈페이지 연혁에 박 이사장 취임 이후 유치원이 설립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박 대변인에 따르면 결혼 후 사직은 당시 관행이었고, 박 후보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하지만, 유치원 설립은 박 이사장 취임 후 벌어진 일이다. 이후 이 유치원에 채용된 여교사가 결혼하면 사직하겠다는 각서를 제출했기에 박 이사장의 책임이 없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박근혜 후보의 육영재단 이사장 재임 기간(1982~1990) 벌어진 유치원 여교사 결혼 사직 각서 논란은 언론의 보도와 트위터 등을 통해서 급격히 확산되고 있다. 박 후보 측이 어떤 해명을 하는가에 따라서 박 후보의 '준비된 여성 대통령' 슬로건은 적지 않은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 한국인터넷기자협회 대선공동취재단 

취재부

2012년 9월 1일 토요일

"결혼하면 성범죄 해결? 최연희·김형태는 미혼이었냐"


이글은 오마이뉴스 2012-08-31일자 기사 '"결혼하면 성범죄 해결? 최연희·김형태는 미혼이었냐"'를 퍼왔습니다.
황우여 '성범죄 대책으로 결혼 권장' 구설수... 민주당 "사퇴하라" 맹공

▲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가 최고위원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자료사진) ⓒ 유성호

민주통합당은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가 '성범죄 대책으로 결혼을 권장해야 한다'는 발언을 한 것에 대해 그의 사퇴를 촉구하고 나섰다. 

민주당 전국여성위는 31일 기자회견을 통해 "여성을 남성의 성적 충동 해소물쯤으로 생각하는 황우여 대표는 모든 여성들에게 사과하고 즉각 사퇴하라"고 목소리 높였다. 

황 대표는 지난 30일 최고위원회에서 "성범죄가 흉악화되는 것과 관련해 단기적으로 법령을 정비하고 예산을 뒷받침해 치안력을 확보하는 방안을 논의했지만 근본적으로는 인성교육 등 교육을 강화해야 하는 게 아닌가, 또 가정과 결혼을 보호하고 권장하는 사회환경도 만들어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한 바 있다. 이를 두고 성범죄 대책으로 결혼을 권장하는 것이냐는 논란이 확산된 것이다. 

유승희 전국여성위원장은 "결혼을 못해서 성범죄가 발생하고 성욕구가 해결이 안 되어 성범죄가 발생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성범죄 발생 원인을 왜곡하는 것"이라며 "또, 미혼남성을 잠재적 성범죄자로 낙인찍는 발언"이라고 힐난했다. 

그는 "박근혜 후보가 자기 당의 대표가 여성 비하·성 왜곡 발언을, 최고위라는 공식석상에서 했음에도 아무런 문제의식조차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 더 심각하다"라며 "박근혜 후보는 공식사과하고 황우여 대표는 즉각 사퇴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성위 소속 최민희 의원은 "여기자를 성추행한 최연희 의원, 제수 성폭행 사건의 김형태 의원이 다 미혼이었냐"며 "여당 대표의 척박한 인식을 규탄한다"고 날을 세웠다. 

김현 민주당 대변인도 이날 브리핑을 통해 "홍준표, 안상수 전 대표가 무수한 막말로 국민들을 피곤하게 한 것도 모자라 황우여 대표가 그 뒤를 잇겠다고 나선 것"이냐며 "이한구 원내대표가 '민주당이 묻지마 살인에 영향을 주었다'는 발언으로 국민의 반감을 사더니 당대표마저 어이없는 망언을 했다, 새누리당은 제발 말을 가려해서 국민의 귀를 피곤하게 하지 말라"고 꼬집었다. 

민주당의 맹공에 새누리당은 즉각 수습에 나섰다. "황 대표의 발언은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대책이 병행돼야 한다는 취지였다"는 것이다. 조윤선 새누리당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황 대표는 앞서 흉폭 사건 발생 초기에 경찰 인력을 두 배 이상 확보해야 선진국형 취안이라는 말을 했고 최근 당정협의회에서도 경찰력 확보를 얘기했다"면서 "성범죄 횡행으로 온 국민이 불안해하는데 거두절미한 채로 특정부분만 인용해 논란거리를 만드는 게 지금 시점에 공당이 할 일인가"라며 민주당에게 화살을 돌렸다.

조 대변인은 "성범죄를 막기 위해 정책개발이 우선이라는 야당의 지적에 동의한다, 황 대표의 발언이 그런 내용이었다"며 "민주당이 흉폭 범죄 해결을 위한 의지는 뒤로한 채 국민들에 진의를 왜곡하고, 화를 재촉하는 일은 중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주연(ld84)

2012년 8월 28일 화요일

갑작스런 결혼과 일본군 ‘자원입대’


이글은 프레스바이플 2012-08-28일자 기사 '갑작스런 결혼과 일본군 ‘자원입대’'를 퍼왔습니다.
(새 연재) 장준하는 누구인가 (2)

▲ 장준하.

장준하가 일본신학교 예과에 다니던 시절 도쿄에는 목사 박영출이 조선인 학생들을 위해 운영하던 ‘숭덕학사(崇德學舍)’가 있었다. 그곳은 ‘배일 민족정신을 고취하는 목회를 여는 장소’로 유명했다. 숭덕학사에 열심히 나가던 장준하는 거기서 평생 동지가 되는 게이오대 학생 김준엽(전 고려대 총장)을 만났다. 장준하는 숭덕학사의 교회위원이 되어 주일학교 선생으로서 동포 어린이들에게 찬송가와 동요를 가르치면서 조국의 역사에 눈을 뜨게 하려고 애썼다.
장준하의 신학생 생활은 한해 반 만에 끝났다. 1943년 들어 일본군이 태평양전쟁에서 미군의 거센 공격에 밀리자 일제가 10월 20일 조선인 대학생들을 상대로 ‘학도지원병제’를 공포한 뒤 11월 8일부터 문과계 대학, 전문학교, 고등학교 재학생 가운데 학도병에 지원하지 않은 학생들에게 징용영장을 발부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말로만 지원제일뿐 실제로는 강제징집제도였다. 장준하는 그해 11월 하순 짐을 꾸려 도쿄를 떠나 귀국했다. 그가 겨울방학이 되기도 전에 서둘러 고국으로 돌아온 것은 ‘요시찰인’이 되어 늘 일본 경찰의 감시를 받고 있던 아버지와 가족을 걱정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정주의 집으로 돌아간 장준하는 달포만인 1944년 1월 5일 김희숙과 결혼식을 올렸다. 독실한 천주교 신자로서 세례명이 ‘로자’인 김희숙은 장준하가 신안소학교에서 담임으로 가르치던 제자였다.
“김희숙의 어머니 노선삼(비리스다) 여사는 경건한 천주교 신자로서 주위의 존경을 받는 부인이었다. 부군 김준덕은 반일 사상가로서 중국으로 망명했는데 그 바람에 가세가 어려워져 하숙을 치면서 가계를 꾸려 나갔고 장준하와 김용묵이 신안소학교에서 교편을 잡는 동안 그 집에서 하숙을 하였던 것이다. (·····) 동경에 온 장준하는 3년간의 하숙생활에서 정이 든 고국 정주의 노선삼 여사에게 안부 편지를 보내곤 했다. 그 편지 겉봉에 쓰인 발신자 장준하의 주소를 보고 로자가 은사인 장준하에게 어머니를 대신하여 답장을 썼고 그로부터 두 사람 사이에 자연스레 편지가 오가게 된 것이다.”([장준하-민족주의자의 길], 83쪽)
도쿄에서 귀국하기 직전에 친한 벗들에게 ‘일본군에 자원입대하겠다’고 실토한 장준하의 갑작스런 결혼에는 이런 사연이 있었다.
장준하와 김용묵이 떠난 뒤 김희숙의 어머니는 다른 하숙객을 구할 수가 없어서 집안 형편은 훨씬 더 어려워졌다. 그래서 보성여학교에 다니던 김희숙은 학교를 중퇴할 수밖에 없었다. 그 무렵 일제는 조선의 처녀들을 징발해서 이른바 ‘정신대(위안부)’라는 이름으로 일본의 공장이나 전선으로 보내고 있었다. 반일 망명인사의 딸인 김희숙이 위안부로 끌려갈지도 모른다는 편지를 받은 장준하는 “나는 귀국하는 대로 로자를 먼저 안정시켜놓고 일본군에 가겠다”고 김용묵에게 말했다고 한다. 일제가 유부녀는 위안부로 징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장준하는 김희숙과 결혼한 지 2주 뒤인 1944년 1월 20일 일본군에 입대했다. 그때 신부의 나이는 16세였다.
장준하는 1971년에 초판을 낸  자신의 저서 (돌베개)(화다출판사)에 입대하던 날의 기억을 아래와 같이 기록했다. (이하부터의 인용문은 2012년에 출판사 세계사가 6쇄를 찍어낸 (돌베개)를 참조했음)
일본말 성경과 독일어 사전, 희랍어 성경과 사전, 이렇게 네 권을 든 학생모와 학생복 차림의 내가, 정주역에 닿았을 땐 아무도 내게 눈을 주는 사람이 없었다. (·····)
나에게는 만장도, ‘다스키’라는 멜빵도 그 ‘무운장구(武運長久)’의 띠도, 히노마루[일장기]의 머리끈도 아무것도 없었다.
그 전쟁 중의 물자난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시골에서 입영을 위해 ‘축하한다’는 플래카드들이 지방관청과 유지들로부터 마련되어 보내왔건만, 나는 그것을 몸에 한 번 대어보지도 않은 채, 몽땅 우리 집 아궁이 속에 넣어버렸다. (···) 정주역에서 평양행 발차 시간까지는 한 시간 반의 시간이 있었기에 역 대합실에서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자기 자식들의 입영 때문에 우울 한 그 지방의 유지들, 흐르는 눈물을 닦기에 정신 없는 아낙네들, 거의 술에 만취되어 이성을 잃은 듯한 학도지원병들, 이 틈을 놓칠세라 친일파다운 격려와 축하인사를 뿌리고 돌아다니는 가증스러운 얼굴들, 이들의 틈바구니에 끼어 홀로 고독을 즐기고 있던 내 귓전을 스치던 발차시간을 알리던 확성기 소리, 그리고 경의선 열차의 요란한 기적 소리, 이 모든 것들이 주마등같이 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돌베개], 17~18쪽)
평양 제42부대에 배치된 장준하는 ‘맨손으로 말똥을 치우고 말발굽을 닦 아내는 일을 강요당했다. 그곳에는 2백여명의 학도병들이 끌려와 있었다.
그때의 울분은 지필로 기록할 수가 없지만 함정에 빠진 젊은 사자들의 울 분과도 같이 처절한 것이었다. 몹시 추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비인간적 작 업을 계속하여온 우리들은 대부분 손발에 동상이 걸려 고생을 하였다. 물론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
밤이면 밤마다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부어오른 엄지손가락을 통해서 등골까 지 쑤시게 만들었다. 불침번을 서는 초년병 동료들이 나의 고통을 안타까워 해 주던 그 정성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때마다 나는 내 가슴속에 지닌 성경책을 꺼내어 몇 장씩을 읽어가며 아픔을 참아보았다.([돌베개], 10쪽)
많은 학도병들이 오후에 받는 교련을 피하려고 가족이 날마다 면회를 오게 하는가 하면, 어떤 부모들은 아들이 일선이 아니라 평양 근처의 부대에 남게하려고 일본군 고급장교들을 요정으로 초대해서 환대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장준하한테는 어머니와 아내가 한 번, 아버지가 한 번 면회를 왔을 뿐이었다.
동상이 악화된 엄지손가락 때문에 ‘뼛속을 후벼내는듯한 아픔’을 나흘 동안이나 참고 견디던 장준하는 닷새 째 되던 날 의무실을 찾아갔다. 의무관인 일본군 중위는 ‘마취제가 없으니 생으로 상처를 째야 한다’면서 엄지손가락에 알콜을 한두 번 문지르더니 그대로 메스를 갔다 댔다. 장준하는 의무관이 다섯 군데를 째는 동안 결연하게 고통을 참아냈다. ‘수술’을 마친 일본군 중위는 “야, 내 외과의사 생활 십여년에 너 같이 지독한 놈은 처음 본다. 장하긴 장하다. 독종이구나”라고 감탄했다고 한다.
장준하가 입영한 지 만 4주가 되던 날, 학도병 200여명 가운데 160여명이 중국 북부지방으로 파견된다는 소문이 병영 안에 퍼졌다. 거의 모든 학도병들이 평양이나 조선반도 안에 남으려고 갖은 공작을 하고 있었지만 장준하는 동상에 걸린 엄지손가락 때문에 중국의 전선으로 가지 못할까봐 걱정했다.
“내일 중지 파견 선발에만 끼면 나는 조국의 아들이 될 수 있으련만. 그 당시의 나의 절망 속에 일루의 희망은 내가 중경(중국 사천성에 있는 당시 중국의 수도)에 있는 우리 임시정부를 찾아갈 수 있으리라는 환상이 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하든 중국만 가면 일군을 탈출할 수 있고 탈출만 하면 임정에도 찾아갈 수 있으리라고만 믿어졌다.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중국군에라도 편입할 수 있을 것이다.”(앞의 책, 14쪽)
이튿날 아침 각개점호 시간에 소좌인 일본인 부대장이 학도병들을 점검하다가 손에 붕대를 감은 장준하를 보고 “그 팔은 어떻게 된 거야”라고 물었다. 그는 생손을 앓고 있다고 거짓말을 했다. 부대장이 ‘아픈 몸으로까지 떠날 필요는 없다’고 말하자 장준하는 “아닙니다. 이번에 꼭 동료들과 함께 보내주시기 바랍니다”라고 강하게 호소했다. 소좌는 “됐어, 그 원기가 장해!”라고 칭찬했다. 그렇게 해서 장준하는 평양 제42부대를 떠나게 되었다.
그는 며칠 전에 면회를 온 아내 김희숙에게 장차 자신의 계획을 은밀히 알려준 바 있었다. “중국에 가면 매주 주말마다 편지를 하마. 만약 그 편지의 끝이 성경 구절로 되어 있으면 그것이 마지막 받는 편지로 알아도 좋을 것이다. 당신이 그 성경 구절을 읽고 있을 땐 이미 나는 일군을 탈출하여 중국군 진영이나 우리 ‘임정’의 어느 곳으로 들어가 있을 것이다.”
장준하를 포함한 학도병 160여명을 태운 열차는 압록강을 건너고 만주를 지나 사흘 만에 중국 강소성의 서주에 도착했다. 그날이 2월 16일이었다. 그들은 30분쯤 행군해서 지금의 보충대 비슷한 대대 규모의 부대에 도착했다. 처음부터 일본군을 탈출하기 위한 계획을 세우고 있던 장준하는 ‘일본제국에 대한 적의를 가지고 행한 탈출이 아니라 부대의 지휘급 일인들의 불찰과 오만에 원인이 있는 탈출로 꾸미자’는 생각을 굳혔다.
어느 날 그런 계획에 딱 들어맞는 사건이 벌어졌다. 장준하가 저녁식사를 마치고 밥통을 취사장에 반납하고 있는데 일본인 상등병이 ‘이 더러온 반도놈아’라고 욕설을 퍼부으면서 이미 깨끗하게 씻은 밥통을 다시 씻어오라고 시비를 걸었다. 끓어오르는 분노를 갈아앉히면서 불침번을 서고 난 장준하는 ‘얼마쯤 인정을 가진 하사관’인 내무반장 우에다를 찾아가서 이렇게 ‘고백’했다. “나는 지금 불침번 교대를 마치고 들어오다가 발길을 돌려 탈출을 하려다 다시 마음을 돌려먹고 돌아왔습니다.” 일본인 상등병에게 당한 모욕을 차분하게 이야기하자 내무반장은 숨을 거칠게 물아쉬면서 장준하를 쳐다보았다.
장준하는 내무반장과 고참병들이 너무나도 친절하게 대하면서 지도해주어서 "내가 조선사람인 것을 의식하지 못했을 뿐더러 친형님들 틈새에 끼어 있는 것처럼 병영생활이 즐거웠다"고 말했다. 그는 탈출할 생각을 하다가 "반장님에게 인간적으로 죄를 짓는 것 같아 포기했으니 용서해달라"고 빌었다.
내무반장의 보고를 받은 중대장은 이튿날 아침 시간에 문제의 상등병에게 “너 같은 놈 때문에 황은(皇恩)에 감동하여 고등교육을 받고도 그 몸을 홍모(鴻毛)처럼 여겨 용약 군에 지원하여 온 많은 학도병들을 탈출시킨 것이야”라고 꾸짖으서 그를 사흘 동안 영창에 가두었다. 그날 밤 내무반장은 장준하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 걷자고 하면서 "아리가토오(고맙다)"를 연발했다. (계속)

김종철 (언론인)  |  cckim999@naver.com

2012년 6월 26일 화요일

“스티브 잡스만 보지말고 그를 키운 환경을 봐야”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06-25일자 기사 '“스티브 잡스만 보지말고 그를 키운 환경을 봐야”'를 퍼왔습니다.

  이공주 이화여대 약대 교수
결혼·육아로 현장 떠나는 여성
우리 사회가 관용에 인색한 탓
여성과학인 네트워크화 힘쓸것 

여성생명과학상 이공주 교수

“우리나라 과학이 발전하려면 텃밭을 넓혀야 합니다. 잘하는 사람 몇 명만으로 세계가 움직인다는 사고는 잘못된 것입니다. 노벨상 받을 사람이라고 키워 노벨상 받은 사람은 없습니다.”한국로레알과 유네스코가 주는 제11회 여성생명과학상 학술진흥상 수상자로 선정된 이공주(57·사진) 이화여대 약대 교수(대학원장)는 25일 “바둑에 여러 급수가 있듯이 과학기술도 다양해져야 한다”며 “스티브 잡스만 보지 말고 그가 잘할 수 있게 된 환경을 들여다봐야 한다”고 말했다. 여성생명과학상은 국내 여성 과학기술인 가운데 과학기술 발전에 기여한 사람에게 주는 상으로, 2002년 제정돼 해마다 수상자를 내고 있다. 이 교수는 프로테오믹스(단백질분석학)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로 암 전이나 스트레스 반응에 관여하는 단백질을 연구해 약물 후보물질을 개발하고 새로운 활성산소종 신호전달체계를 발견했다. 또 지난해부터 세계여성과학기술인네트워크(이누에스·INWES) 회장을 맡는 등 세계 여성 과학자들의 네트워크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이 교수는 이누에스 회장 3년 임기 동안 중동과 아프리카 여성 과학기술인들의 지역 네트워크를 활성화하는 데 힘을 쏟을 계획이다. 2005년 한국에서 열린 세계여성과학기술인대회(ICWES)를 준비하기 위해 케냐에서 열린 여성 과학기술인 지역모임에 참석했을 때 그들이 기아와 에이즈를 주제로 토론을 하는 것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 “사회적 차별, 육아 등 세계 여성 과학기술인들이 공동으로 부닥치는 문제는 비슷한 것 같지만 지역적으로 차이가 있습니다. 선진국이라는 선입견과 달리 오스트레일리아 엔지니어의 10%만이 여성이고, 이들의 절반은 무자녀, 나머지 대다수도 한 자녀뿐입니다. 반면 인도네시아나 말레이시아에서 여성 과학자 신분이면 하녀들이 몇 명씩 됩니다. 지역적 특성에 맞춘 여성 과학기술인들의 네트워크가 필요한 이유입니다.”이 교수는 “여성 과학기술인들이 결혼과 육아 문제로 연구 현장을 떠났다 돌아오지 못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관용을 베푸는 데 인색하고 유연하지 못해서”라며 “훈련과 교육이 잘돼 있는 사람들은 나이에 상관없이 훌륭한 연구성과를 내기 때문에 사회가 체계적으로 뒷받침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여성에 대한 차별과 편견은 이 교수에게 도전이자 기회가 됐다. 이화여대 약대 졸업 뒤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이 교수는 보건사회부(현 보건복지부)에서 일을 하고 싶었다. 당시 남자가 카이스트를 졸업하고 공무원을 지원하면 행정고시 합격에 준하는 3급을 줬지만 여성에게는 기회를 주지 않았다. 지도교수의 권유로 미국 스탠퍼드대로 유학을 떠난 그는 연구자로 인생의 향로를 바꿨다.이 교수는 “미국에서 박사후과정(포스닥) 때 출산을 했는데 지도교수의 배려와 남편의 도움으로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며 “연구생활 중 아이를 키우는 걸 부담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즐거운 쉬는 시간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아이에 대한 애정은 많이 들여다보기 때문에 생긴다. 남성에게도 생명, 아이를 더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면 남성이 변하고 사회가 바뀔 것”이라며 “스웨덴이 육아휴직을 1년4개월 주면서 남녀가 절반씩 쓰도록 한 취지를 알 것 같다”고 했다.미국에 남으라는 지도교수의 만류를 뿌리치고 귀국한 그에게 다가온 것은 여전한 차별이었다. 남편과 각각 다른 연구소에 지원했는데 남편은 선임연구원으로 뽑힌 반면 이 교수에게는 ‘박사후과정’을 거치라는 조건이 붙었다. 이 교수는 “어렵사리 한 연구소에 자리를 잡고 당시 원장님께 포스닥을 또 하라 한다는 불평을 털어놓자 ‘한국이 이만큼 잘하는 것은 누군가가 일한 것 때문이다. 한국을 우습게 보지 마라. 우습게 보면 그때부터 추락하는 것이다’라는 말씀을 해주셔서 큰 깨달음을 얻었다”며 “그동안의 연구성과나 여성 과학인 모임 활동도 혼자만의 힘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해낼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여성생명과학상 시상식은 26일 오전 서울 삼성동 그랜드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열린다.

이근영 선임기자, 사진 한국로레알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