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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2월 8일 금요일

[사설] ‘공약 파기’ 말바꾸기로 호도 말고 용서부터 구하라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3-02-07일자 사설 '[사설] ‘공약 파기’ 말바꾸기로 호도 말고 용서부터 구하라'를 퍼왔습니다.

원칙과 신뢰, 약속 이행….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을 설명할 때마다 늘 따라다니는 수식어다. 하지만 최근 나타나는 현상들은 이런 찬사에 의구심을 갖게 하기에 충분하다. 국민 대통합 약속과 어울리지 않는 인사들의 발탁, 야당 시절 자신이 도입에 앞장섰던 국회 인사청문회에 대한 폄하 발언에 더해 최근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잇따라 대선 공약을 수정하고 말바꾸기까지 하는데도 박 당선인은 미안한 표정조차 짓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논란을 빚고 있는 4대 중증질환의 건강보험 적용 범위와 관련해 “애초 선택진료비, 상급병실료, 간병비 등 ‘3대 비급여’는 국가 전액부담 공약에 포함되지 않았다”며 “따라서 공약을 수정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사실관계를 호도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도 아닌 박 당선인이 직접 자신의 입으로 약속한 바도 있다. 박 당선인은 지난해 12월10일 대선 후보 텔레비전 토론회에서 문재인 당시 민주통합당 후보가 “간병비·선택진료비를 다 보험급여로 전환하는데도 (공약대로) 1조5000억원으로 충당되는가”라고 질문하자 “네”라고 답변했다. 온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박 당선인이 약속한 사안을 두고 ‘애초 공약에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국민을 바보로 보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얘기다.3대 비급여 항목을 건강보험 급여 대상에서 제외한다면 4대 중증질환의 공약은 완전히 껍데기만 남는다. 항암치료제 몇 개를 보험료로 더 보장해주는 정도로는 공약이라고 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인수위의 방침은 공약 후퇴가 아니라 사실상 공약 폐기다. 조금 냉정하게 말하면 새누리당은 표를 얻기 위해 국민을 고의적으로 속였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박 당선인 쪽은 그동안 공약의 현실성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예산 문제를 꼼꼼히 따져 나온 결과”라고 강조해왔다. 하지만 실제 나타나는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4대 중증질환 100% 보장’ 공약이나 ‘모든 노인들에게 월 20만원씩의 기초연금 지원’ 공약 등 과대포장된 공약들의 거품이 여기저기서 빠지고 있는 것이다.상황이 이런데도 박 당선인이 인수위원들을 향해 “제가 약속하면 여러분은 지켜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공허하기 짝이 없다. 이런 지시를 내리기 전에 우선 자신이 무엇을 ‘약속’했는지부터 국민 앞에 명백히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지키기 어려운 공약인데도 했다면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해야 한다. 공약을 현실에 맞게 재조정하는 것은 그다음 일이다.

2013년 2월 1일 금요일

이충연 "MB 정권은 나를 용서할 수 없다"


이글은프레시안 2013-01-31일자 기사 '이충연 "MB 정권은 나를 용서할 수 없다"'를 퍼왔습니다.
[포토] 용산참사 구속자 이충연 씨 출소하던 날

용산 철거민 이충연 씨가 31일 안양교도소에서 출소했다. 2009년 용산철거민대책위원장이었던 그는 망루에 올라 경찰특공대와 대치하다 참사를 겪었다. 그때 아버지 이상림 씨와 동료 철거민 4명을 잃고 4년 동안 수감됐다. 안양교도소에서는 모친 전재숙 씨, 부인 정영신 씨가 그를 맞았다.

감격스런 상봉. 말보다 눈물이 앞섰다. 어머니와 아내는 차례로 이 씨를 안고 꽃다발을 안겼다. 이충연 씨는 환한 얼굴로 가족을 맞았지만 비교적 담담한 모습으로 눈물을 보이지는 않았다.

이어 열린 기자회견에서 그는 "오늘은 날씨가 따뜻하다. 4년 전 망루에 올랐을 때는 영하 10도를 밑도는 날씨였다"며 참사 당시의 악몽을 떠올렸다. 그는 "그날 아버지와 철거민 네 분을 잃었다. 그러나 4년이 지난 지금도 개발 지역에서 대책 없이 철거민들이 내쫓긴다. 또 다른 용산이 계속되고 있다"고 쓴소리를 내뱉었다.

이어 그는 "저 안(감옥)에서 이웃들의 삶을 돌아볼 수 있게 됐다"며 "내가 원해서 이렇게 살기 시작한 것은 아니지만 이제는 이웃을 살피면서 살겠다"고 말했다. 그는 또 "수많은 노동자들이 극단의 선택으로 삶을 마감한다"며 쌍용차 국정조사의 필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 31일 출소한 이충연 씨를 가족이 맞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이번 특별 사면에 대한 비판도 잊지 않았다. 그는 "저들이 권력으로 나를 석방했지만 나를 용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용서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다"라고 말해 대통령 측근용 특사의 구색 맞추기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이번 사면을 비꼬았다. 박근혜 당선인에 대해서도 후보 시절 했던 '용산참사 진상 규명' 약속을 지켜달라고 주문했다.

부인 정영신 씨는 "혼자 남편을 만나서 (남편을 잃은) 어머니들에게 죄송한 마음"이라고 말문을 연 뒤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만을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버텼다"고 지난 4년을 회고했다. 그는 이어 "다시는 이 나라에서 집이 없어서, 가진 게 없어서 쫓겨나고 죽음을 당하는 사람이 없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각오를 다졌다.

한편, 이 씨와 같이 구속된 철거민 중 4명도 이날 대구·순천·여주·춘천교도소에서 각각 출소했다. 이들은 이날 저녁 7시 서울 대한문 앞에서 집회를 연다. 다음 날인 1일에는 용산참사 희생자가 묻힌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을 참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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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멀리서 이충연 씨가 아내 정영신 씨를 향해 걸어오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 이충연 씨는 2009년 1월 수감돼 꼬박 4년을 옥살이했다. ⓒ프레시안(최형락)

▲ 아내 정영신 씨와 이충연 씨. ⓒ프레시안(최형락)

▲ 그는 박근혜 당선인이 용산참사 진상 규명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프레시안(최형락)

▲ 아내를 보고 있는 이충연 씨. 아내 정영신 씨는 '용산의 며느리'라 불리며 참사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활동가로 변신했다. 그는 이날 아내에게 미안함과 고마움을 전했다. ⓒ프레시안(최형락)

▲ 기자회견 내내 어머니 전재숙 씨가 아들 손을 꼭 잡고 있다. 평범하던 전재숙 씨는 아들이 감옥에 있는 4년 동안 투쟁 사업장을 돌며 연대 활동을 해왔다. ⓒ프레시안(최형락)

▲ 이들은 재개발 지역에서의 강제 퇴거 금지와 재개발 정책 개선 등을 요구했다. ⓒ프레시안(최형락)

▲ 31일 오전 경기도 안양교도소 앞에서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 안양교도소 정문에는 '꿈과 희망을 주는 교정'이라고 적힌 간판이 걸려 있다. 이충연 씨는 감옥에서 책과 신문을 읽으며 사회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됐다고 했다. "이제는 가족만을 위해 살 수 있는 시간은 아닌 것 같다"고 말하는 이충연 씨. 역설적이게도 그는 교도소에서 새로운 '꿈'과 '희망'을 가슴에 담고 나왔다. MB정권은 이렇게 평범했던 사람을 투사로 키웠다. ⓒ프레시안(최형락)

/최형락 기자

2013년 1월 7일 월요일

[사설] 국정 잘못하고도 뻔뻔하게 자찬하다니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3-01-06일자 사설 '[사설] 국정 잘못하고도 뻔뻔하게 자찬하다니'를 왔습니다.

이명박 정권 5년 동안 국민은 참 힘들었다. 양극화로 서민 생활의 고통이 가중되고 한반도는 냉전시대로 복귀하는 멍에를 쓰게 됐다. 국정운영에 대한 여론조사에서 부정적 평가가 압도적으로 나오는 데서도 확인된다. 지난 대선에서 여당 후보조차 민생에 실패한 정권이라며 대놓고 차별화를 했다. 부패·비리도 역대 정부에 비해 뒤지지 않았을 뿐 아니라 도덕적으로 바닥을 드러낸 점도 뼈아프다.청와대가 어제 이명박 정부의 국정 성과 자료집을 내 경제, 복지, 외교·안보 등 분야별로 자찬 일색의 성과를 나열했다고 한다. 국정 실패의 책임을 겸허히 반성하고 용서를 구해도 모자랄 판에 끝까지 오만과 불통의 자세를 보인 데 대해 분노와 함께 허탈감이 든다.가장 큰 성과로 경제분야에서 글로벌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개선된 소득분배 지표를 새 정부에 넘기게 된 점을 꼽았다고 한다. 2012년 11월 한국갤럽의 역대 대통령 5년차 3분기 평가에서 김대중 28%, 노무현 27%, 이명박 23%의 지지율로 조사됐고, 이명박 정부의 잘못한 분야로 경제를 앞서 꼽았는데 딴소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경제대통령을 내세운 이명박 정부에서 소득분배 지표가 악화됐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온갖 무리수를 두어가며 경기를 부양하고 양극화 심화를 무릅쓰고 성장에 주력했는데도 집권 기간 경제성장률은 5년 평균 2.9%로 낙제점에 머물렀다. 실패한 정권이라고 규정한 참여정부 때의 연평균 성장률 4.3%에 훨씬 못미친다.양극화가 극심해졌는데 친서민 복지 확대, 대·중소기업 동반성장, 전통시장 소상공인 지원 확대를 치적으로 내세운 것도 낯두껍다. 경제민주화가 화두로 등장한 것이 이명박 정부에서 복지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중소상공인들이 설 땅을 잃었기 때문이다.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4년 평균 3.5%로 참여정부 때의 2.9%보다 높아 가계의 실질소득은 저하됐다. 덕분에 가계 빚은 크게 늘고 전셋값 상승으로 집 없는 사람들의 고통은 더욱 심해졌다.북한붕괴론에 사로잡혀 시간이 우리 편이라던 이명박 정부 집권 기간 남북관계는 단절과 갈등 심화라는 후퇴를 경험했다. 북핵 협상의 동력이 사라졌고 6자회담도 아스라한 과거가 된 반면, 북한의 핵과 미사일 능력은 향상됐다. 그런데도 원칙에 기반한 대북 접근으로 북한이 개방노선을 따르지 않을 수 없게끔 변화를 유도했으며 상호주의에 기초한 올바른 남북관계로 전환됐다고 강변한다. 한반도의 시계를 시대착오적인 세월로 되돌려놓고 국민을 기만하고 있는 것이다. 기만에 대한 단죄는 실패보다 더 엄중하게 해야 한다.

2012년 11월 21일 수요일

전두환 '사면'과 '용서'는 정당한 것이었나?


이글은 미디어스 2012-11-20일자 기사 '전두환 '사면'과 '용서'는 정당한 것이었나?'를 퍼왔습니다.
[법으로 본 미디어]영화 '26년'으로 본 '사면'과 '용서'의 권리

때로는 따뜻하게 우리의 마음을 파고들어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고, 때로는 우리 사회의 부끄럽고 어두운 면모를 적나라하게 드러내어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만화가 강풀. 그의 만화 (26년)이 영화로 제작되어 11월 말 개봉을 앞두고 있다. 이 만화는 1980년 5·18로 인해 아버지, 어머니를 잃고 한스러운 세월을 보내야 했던 주인공들이 5.18의 주범인 전두환이 재판을 받고도 사면되자 힘을 모아 전두환에게 복수한다는 내용이다. 

▲ 11월 29일 개봉하는 영화 '26년' 포스터. 한혜진, 진구, 임슬옹, 배수빈, 이경영 등이 출연한다. 전두환 전 대통령 역할은 배우 장광이 맡았다.

우리는 만화 (26년)의 5·18항쟁이 뿐만 아니라 친일파, 제주 4·3 사건, 군부독재 등 청산해야 할 과거사가 유난히 많다. 그러나 청산을 제대로 논하기 전에 늘 ‘용서와 화해’라는 관용이 목소리가 우위를 점하며 과거사 청산은 매번 꼬리를 내리곤 했다. 만화 (26년)의 상황 또한 마찬가지였다.
만화 (26년) 주인공들의 울분을 치솟게 했던 사면은 국가원수가 자신의 권한으로 범죄인이 받은 형벌 전부 또는 일부를 면제하거나 형벌로 상실된 자격을 회복시켜 주는 행위를 의미한다. 우리의 경우도 사면으로 형 선고 효력을 상실시키는 경우, 형의 집행만을 감면시키는 경우, 복권하는 경우 등을 사면법에서 규정하고 있다.
범죄인에 자비를 베푸는 사면은 얼핏 ‘용서, 관용’이라는 선의의 실천으로 비쳐진다. 그러나 사면에는 ‘민주주의’를 심각하게 위협하는 요소가 존재한다. 군주국가시대 군주가 제왕적 특권을 행사하여 죄인에게 자비 베풀던 제도가 사면의 기원이다. 권력자가 백성에게 자비를 베푼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으로 보일 수 있으나 권력자가 마음 내키는 대로 행하는 시혜적 행위라는 점에서는 법치주의를 지향하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그다지 환영받을 수 없는 존재이다.  근대 시민혁명을 통해 일궈낸 민주주의는 ‘절대왕정’이라는 세습 독재 권력을 힘겹게 몰아낸 끝에 뿌리를 내릴 수 있었다. 그래서 1인에게 집중된 권력구조에서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 삼권으로 권력을 나누고 삼권이 서로 감시하고 통제하도록 했다.
복지국가를 이상 모델로 삼고 있는 현대국가에서는 위와 같은 엄격한 삼권 분립제도가 행정부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으나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는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범위 내에서 권한을 행사해야 한다는 한계는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그렇다면 사법부가 공정한 재판을 거쳐 피고인에게 내린 형벌을 행정부 또는 대통령이 함부로 면제하거나 감형하는 사면제도는 사법부의 결정을 뒤엎는 것과 마찬가지여서 민주주의 원리에 반할 소지가 많다. 이 때문에 외국에서는 한동안 사면제도 자체를 폐지한 적도 있다.
형사정책상 피고인이 충분한 반성을 하고 사회 일원으로 열심히 살아갈 것을 다짐했음에도 계속해서 피고인에게 형벌의 족쇄를 채워 두는 것은 정의롭지 못한 일일 수 있다. 게다가 우리나라처럼 지역, 이념, 계층 간 갈등으로 사회가 분열되어 있는 경우, 갈등을 봉합하고 한 국가, 한 민족의 일원이라는 일체감을 되살리기 위해서 사면제도가 필요한 때도 분명 존재한다. 이 때문에 오늘날 대부분의 국가에서 사면제도를 두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 아직도 많은 이들은 그를 '학살자'라고 부른다. 그러한 평가 이전에 그는 진정으로 사과하고 용서를 구한적이 없다. 그에 대한 사면은 정당한 것이었을까? ⓒ뉴스1

그러나 이러한 사면의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사면제도는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광복절을 비롯한 각종 경축일, 정권 교체 기념으로 대통령이 자주 사면 시행하는 우리와 달리 같은 대륙법계인 독일은 사면에 대해 매우 신중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독일은 지난 1945년부터 2005년까지 약 60년 동안 단 4차례만 사면을 단행했다.
선진 법치국가인 핀란드는 헌법에 “대통령은 특별한 경우 대법원에 자문해 사면해야 한다”는 조항을 뒀을 정도로 사면제도를 인정하되 행정부가 사법부의 결정권을 침해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특히 프랑스의 사면 제도는 눈여겨 볼만하다. 프랑스 또한 대통령의 사면권 행사를 엄격히 제한하고 있는데 특히 부정부패 공직자와 선거법 위반 사범, 테러와 정치적 차별을 저지른 사람, 15세 미만 미성년자를 때린 폭행범, 마약·밀수 사범, 불법낙태 사범 등과 같이 국가와 사회의 기본가치를 침해한 범법자들에 대해선 사면·복권이 원칙적으로 금지되어 있다.  이처럼 오늘날 사면 제도는 필요성이 인정되어 존치하고 있지만 권력분립이라는 민주주의 원리에 반하는 면이 있기 때문에 매우 제한적으로 실시되고 있는 형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사면법을 보면 사면절차가 대통령과 법무부장관, 검찰총장 등 전반적으로 행정부에서 주도하여 이루어지고 있는데 대통령이 이를 남용할 경우 이를 제한할 장치가 마련되어 있지 않다. 만화 (26년)의 상황처럼 대통령이 자의적으로 정치적인 사면권 행사할 때 이를 저지할 방법이 없는 셈이다. 이 때문에 내란죄의 범인으로서 수많은 국민의 목숨을 빼앗은 전두환과 같은 자가 너무도 쉽게 사면될 수 있는 것이다.
전두환을 비롯한 5·18 관련 당사자들을 법정에 세우는 일은 특별법을 별도로 제정해야 할 정도로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법조인, 재야인사, 국민들의 염원과 노력으로 겨우 이들을 역사의 심판대에 세울 수 있었고 마침내 사법부의 공정한 재판 아래 그들이 저지른 과거를 제대로 청산할 기회를 얻었다. 그런데 그들의 범죄, 그들의 과거를 제대로 청산하여 그들이 국민으로부터 불법적으로 취득한 재산을 환수하기도 전에 ‘화해와 용서’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들에 대한 법원 판결서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그들은 ‘용서’ 받았다. 그러나 묻고 싶다. 그들을 용서할 권리는 과연 누구에게 있는 것인가.
우리는 사면을 대통령의 특권쯤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헌법 1조 1항은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임을 선언하고 있다. 그러므로 민주주의원리에 반하는 대통령의 사면권 남용은 허용될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점을 인식하여 문민정부에서는 8차례, 국민의 정부에서는 6차례, 참여정부에서 7차례(2007년 기준)나 사면법 개정 논의가 있었으나 번번이 무산되었다.
무엇보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만화 (26년)의 전두환처럼 이러한 정치적 사면의 대상자들이 과연 사면 받을 자격이 있느냐 하는 것이다. 이들은 모두 국가와 사회의 기본가치를 침해한 자들로서 프랑스법에 의하면 사면 대상자에서 제외된다.
그러나 그에 앞서 정치적 사면을 받은 자들이 피해자가, 대통령이 자비를 베풀어야 할 만큼 스스로 잘못을 뉘우치고 용서를 구하였는가 하는 점이다.

▲ 송혜교가 주연을 맡았던 이정향 감독의 2011년작 '오늘', 너무 쉽게 용서해서 미안해...란 카피가 인상적이다.

송혜교 주연의 (오늘)이라는 영화를 보면, 진정한 ‘용서’는 용서하는 자, 용서받을 자 모두가 각자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 상대방을 향해 다가서려고 노력할 때 이루어진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부모가 아이의 잘못을 용서하는 장면을 상상해 보라. 용서는 용서받을 자가 스스로 철저하게 자신의 과오를 반성한 다음 용서할 사람에게 눈물로써 간절히 용서를 구해야 이루어지는 것이다.
‘용서’라는 이름으로 행해졌던 우리의 ‘사면’은 용서받을 자의 이러한 뉘우침과 반성이 있었는지, 그들을 진정으로 용서할 수 있는 유일한 권리자인 피해자에게 눈물로써 용서를 먼저 구한 적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용서받을 자로부터 철저한 반성도, 진심어린 호소도 없었던 과거사에 얽힌 사면을 반대한다.  

성춘일 변호사는 제51회 사법시험을 합격, 41기로 사법연수원을 수료하고 현재 서울 구로구 구로동에서 41기 동료 여성변호사들과 함께 설립한 합동법률사무소 여송에서 일하고 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사법위원회와 민생경제위원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청소년 문제에 관심이 많아 청소년폭력예방재단과 서울변협이 함께 하는 청소녀지킴이 변호사단 상담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성춘일 변호사 / 합동법률사무소 여송  |  mediaus@mediaus.co.kr

2011년 12월 31일 토요일

"이근안, 이래도 고문이 예술이고 애국이었나?"


이글은 프레시안 2011-12-30일자 기사 '"이근안, 이래도 고문이 예술이고 애국이었나?"'를 퍼왔습니다.
김근태의 용서와 이근안의 파렴치

26년간 떨리던 민주당 김근태 상임고문의 손이 침대아래로 '툭' 떨어지자, 병실 주변에는 여명보다 안개가 먼저 깔렸다. 30일 새벽 5시 30분 '세상의 양심'은 시리디시린 겨울을 넘기지 못하고, 64세의 지난한 삶을 놨다. 사인은 고문 후유증.

선대인 경제전략연구소장은 트위터(@kennedian3)에 "정녕 하나님은 있는 겁니까"라며 "평생 민주화와 정치 발전 위해 헌신했던 김근태 선생님은 고문 후유증으로 돌아가시고, 그를 고문했던 이근안은 목사로 변신해 고문은 예술이고 애국이었다고 떠들고 다니는 세상"이라고 한탄했다.

"신문도 하나의 예술이다"

김근태 상임고문과 이근안 전 경감의 악연은 26년 전 서울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에서 시작됐다. 김 상임고문은 민주화운동청년연합을 결성했다는 이유로 1985년 9월 4일 구속됐다. 그 후 그는 17일간 매일 5시간씩 이 전 경감에게 전기고문과 물고문을 받았다.

"고문을 할 때는 온 몸을 발가벗기고 눈을 가렸습니다. 그 다음에 고문대에 뉘면서 몸을 다섯 군데를 묶었습니다... 머리와 가슴, 사타구니에는 전기 고문이 잘 되게 하기 위해 물을 뿌리고, 발에는 전원을 연결시켰습니다. 처음엔 약하고 짧게, 점차 강하고 길게, 강약을 번갈아 가면서 전기 고문이 진행되는 동안 죽음의 그림자가 코앞에 다가왔습니다." (김근태 책 )

고문 트라우마는 '죽음의 그림자'처럼 평생 그를 따라다녔다. 그는 치과에 가는 것조차 꺼렸다고 한다. 의자에 반쯤 누운 채 얼굴을 가리는 순간, 바로 전기고문이 연상됐기 때문. 2001년 대선 경선 때 참모진은 물고문으로 얻은 비염과 축농증 때문에 전달력이 떨어진다며 수술을 권했다. 그렇게 수술대에 올라 마취를 하는 과정은 그를 다시 남영동 대공분실로 데려갔다. 수술 후 그는 "칠성판(고문대)에 다시 올라간 느낌이었다"고 했다.


▲ '고문 기술자' 이근안 ⓒ연합

하지만 '고문 기술자' 이근안의 기억은 다르다. 이 전 경감은 작년 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고문 행위가 "애국 행위"였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자신을 "신문(訊問) 기술자"로 지칭, "그런 의미에서 신문도 하나의 예술이다"라고 덧붙였다.

"(김근태 상임고문에게) 전기 고문을 한 건 사실이지만, 220볼트 전기를 쓴 게 아니고 면도기에 들어 있던 배터리를 썼다. 내가 취미 삼아 만든 모형 비행기 모터에서 'AA 건전지2개'를 가지고 겁을 준 것뿐... 몇 시간 전부터 '너 전기로 지질 거다'라고 겁을 준 다음에 전기 잘 통하라고 소금물 뿌린 발가락에 배터리를 갖다 대고 겁을 주니 지하조직 일체를 자백했다."

1985년 납북어부 김성한 씨 고문 혐의로 88년부터 수배를 받던 이 전 경감은 10년 10개월 만인 1999년 10월 검찰에 자수했다. 이미 김 상임고문 사건을 포함해 대부분의 사건이 도피생활 중 공소시효가 지난 상태였으나, '특정범죄가중처벌법 4조의2' 규정에 따라 7년 형을 선고 받았다.

자수는 했지만, '청룡봉사상'을 포함하여 재직 기간 중 모두 16차례의 표창을 받고 대공 분야에서는 "이근안 없으면 수사가 안 된다"는 말을 들었던 그는 '고문 기술자'라는 말이 억울했다. 그는 과의 인터뷰에서 "훈장을 타서 매달 10만 원씩 받을 수 있는 돈도 안 받았다"며 "내가 그 돈을 받기 위해서 애국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안중근 의사가 돈 받으려고 그랬나. 마찬가지다"라고 자신을 안중근 의사에 비유하기도 했다.

그런데 2010년 2월 7일 보건복지부 장관이었던 김 상임고문이 이 전 경감을 옥중면회 했다. 이 전 경감은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김 장관이 들어오자 정중히 고개를 숙이며 '지난 일은 죄송하게 됐다'며 고개를 숙이자 김 장관이 양팔을 벌려 포옹을 해왔다. 그리고는 '그게 어떻게 개인의 잘못이냐. 이 시대가 낳은 비극 아니냐'며 위로를 건네는 게 아닌가."

정작 면회를 마친 김 상임고문은 그날 "밤잠을 설쳤다"고 한다. 면회 2주 뒤 자신의 홈페이지에 "저 사죄는 사실일까?"라며 혼란스러워했다. 자신의 사타구니에까지 전기고문을 가했던 자였다.

작가 공지영 씨는 관련 일화 한편을 트위터(@congjee)에 소개했다.

"몇 년 전 뵈었을 때, 우연히 이근안을 만났다고. 그가 울며 잘못했다 용서해달라고 했을 때 너무 가식처럼 느껴져 도저히! 그를 용서할 수 없었다고. 그게 몇 달 후까지 자신을 괴롭힌다고. 나 너무 옹졸한가? 물으셨죠."

이 전 경감은 2006년 11월 출소해 '대한예수교장로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자신이 목회자로 입문한 건 "간첩죄로 잡아들인 애들이 후일 민주화 인사로 보상받는 걸 보고 울화가 치밀어 감옥에서, 믿을 수 있는 나라, 배신 없는 나라를 찾다 보니 하늘 나라를 찾게 되었다"라고 밝혔다.

"당신을 용서하는 마음을 갖고 이 자리에 왔다"

김근태는 애초 이근안을 만나야 할지 망설였고, 면회 사실 공개도 원치 않았다고 한다.

"언론에 알려지지 않기를 바랐던 것은 물론 이근안 씨를 만난 것이 정치적으로 해석되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만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내 마음이 정리되지 않고 혼란스러웠기 때문이다."

참회하겠다며 목사가 된 이의 마음은 미해결 사건으로 남을 것 같다. 김근태는 "당신을 용서하는 마음을 갖고 이 자리에 왔다"고 말했으나, 시대가 이근안을 용서했을지는 의문이다.



/이명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