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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3월 18일 월요일

고양이 구하다 죽은 소방관은 국립묘지 못 간다?


이글은 프레시안 2013-03-17일자 기사 '고양이 구하다 죽은 소방관은 국립묘지 못 간다?'를 퍼왔습니다.
[119가 필요한 소방관들 ③] 트라우마 심각…"노동권 보장해야"

불. 사람들이 소방관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올릴 단어다. 맞다. 소방관은 불을 끄는 사람이다. 다시 말해 매일 목숨 걸고 불과 싸우는 이들이다. 그러나 소방관이 하는 일은 화재 진압만이 아니다. 불뿐만 아니라 시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다른 요소들을 제거하는 것 또한 소방관의 몫이다. 예컨대 보행자를 위태롭게 할 수 있는 고층 건물의 얼음도 깨고, 가스 폭발 같은 사고가 발생해도 어김없이 출동한다. 이렇게 소방관은 시민들의 일상과 직결된 공무원이다. 하지만 소방관이 어떠한 삶을 사는지 잘 아는 시민들은 의외로 많지 않다. 소방관들의 안타까운 순직이 이어지고 처우가 획기적으로 개선되지 않는 현실도 이처럼 사람들의 관심권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것과 무관하다고 보기 어렵다. 이에 (프레시안)은 소방관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기획을 마련했다.

2001년 3월 4일 새벽 3시 48분. 눈이 내리고 있었다. 서울 서부소방서(현 은평소방서)대원들이 홍제동 가정집 화재 현장에 제일 먼저 도착했다. 소방관들은 20여분 동안 화마와 결사적으로 싸웠다. 누군가 '집 안에 사람이 있다'고 소리쳤다. 망설임은 없었다. 9명의 소방관이 집 안으로 들어갔다. 불을 먹고 물을 먹은 벽은 힘없이 주저앉았다. 9명의 소방관이 매몰됐고 이 중 6명이 숨졌다. 소방 역사상 최악의 참사로 기록된 날이었다. 순직한 소방관 중 고(故) 김철홍 소방관의 책상 유리판 밑에는 '어느 소방관의 기도'라는 시가 놓여 있었다고 한다.

어느 소방관의 기도

신이시여제가 부름을 받을 때에는아무리 뜨거운 화염 속에서도한 생명을 구할 수 있는 힘을 주소서

너무 늦기 전에어린아이를 감싸 안을 수 있게 하시고공포에 떠는 노인을 구하게 하소서

언제나 안전을 기할 수 있게 하시고가날픈 외침까지도 들을 수 있게 하소서신속하고 효과적으로 화재를 진압하게 하소서

저희 과업을 충실히 수행케 하시고제가 최선을 다할 수 있게 하시어저희 모든 이웃의 생명과 재산을보호하고 지키게 하여 주소서

그리고신의 뜻에 따라저의 목숨을 잃게 되면신의 은총으로저와 아내와 가족을 돌보아주소서

스모키 린(A.W. 'Smokey' Linn)이라는 소방관이 1958년 출간한 시다. 미국 소방관들이 즐겨 암송하는 시라고 한다.

▲ 지난달 13일 오후 경기도 포천시 포천장례식장 고(故) 윤영수 소방교의 빈소에서 조문객이 절하고 있다. 이날 오전 4시 15분께 포천시 가산면 금현리 플라스틱 공장에서 난 화재를 진압하던 가산 119소방센터 구급대원 윤 소방교가 숨졌다. ⓒ연합뉴스

소방관은 목숨을 거는 직업이다. 소방방재청에 따르면 한국에는 3만7826명, 일본에는 15만9354명의 소방관이 있다(2011년 기준). 2007년-2011년에 한 해 평균 한국에서는 7명, 일본에서는 11.2명의 소방관이 순직했다. 순직률(소방관 1만 명당 순직자 수)은 같은 기간에 일본이 0.7명, 한국이 1.85명이었다.

이처럼 한국의 소방관 순직률은 일본의 2.6배가 넘는다. 일본의 인구당 소방관 비율이 한국보다 훨씬 높고, 일본 자체가 상시적으로 지진 위험에 노출된 국가일 뿐만 아니라 2011년에만 동일본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 등으로 29명(다른 해 평균의 4배)의 소방관이 순직한 점을 감안하면, 한국 소방관의 순직률이 매우 심각한 수준임을 알 수 있다.

태풍이나 지진과 같은 재난에 상시적으로 시달리는 일본 소방관들의 순직율이 낮은 이유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분석할 수 있지만, 인구당 소방관 비율에서 일본이 한국을 압도하는 면도 빼놓을 수 없다. 한국에 비해 인력 사정에 여유가 있고, 이것이 사고 감소로 이어진 측면이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한국 소방관들이 직면한 현실은 일본과는 많이 다르다. 순직률이 높고 평균 수명은 매우 낮다. 한국 소방관의 평균 수명이 58.8세에 불과하다는 통계도 있다(2001년 기준, 당시 한국인 평균 수명은 76.5세). 이는 많은 소방관이 자조 섞인 '질 나쁜 농담'으로 자주 인용하는 사례다.

고양이 구하다 순직하면 국립묘지 못 간다?

홍제동 사건 당시 소방관의 하루 생명 수당이 1000원이 채 안 된다는 사실이 화제가 됐었다. 지금도 소방관들의 생명 수당은 한 달에 5만 원에 불과하다. 소방방재청이 낸 '2012년 소방방재 통계'에 따르면 2011년도 공상자는 355명이고 순직자는 8명이다. 최근 5년간 공상자는 1666명이고, 순직자는 35명이다. 연평균 7명이 순직하고 있는 상황이다.

▲ 소방관 공상 및 순직자 현황 ⓒ소방방재청

순직한 공무원들은 어떤 대우를 받고 있을까. 현행 '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제5조 제1항에는 "화재 진압, 인명 구조 및 구급 업무의 수행 또는 그 현장 상황을 가상한 실습 훈련 사망"이나 "상이등급 1급·2급·3급을 받고 사망한 사람"은 국립묘지에 안장될 수 있다. 그러나 상황은 녹록지 않다.

지난 2008년 강원도 인제군 상남면 주택 화재 진압을 위해 출동했다가 복귀하던 소방차가 옹벽을 들이받는 사고가 일어났다. 갑자기 나타난 물체(야생동물로 추정)를 피하려다 발생한 사고였다. 이 사고로 순직한 20년 경력의 고(故) 차주문 소방관에 대해 국가보훈처는 순직 인정과 국립묘지 안장을 거부했다. 경기도 이천의 한 공장에서 발생한 화재 현장에 출동했다가 고장 난 소방차(펌프카)를 수리하던 중 교통사고로 숨진 여주소방서 고(故) 최태순 소방관도 마찬가지로 국가보훈처로부터 국립묘지 안장을 거부당했다. 역시 순직 군경 지정을 거부당해 국립묘지 안장 자격도 받지 못했다. 이 두 사안 모두 화재 진압이나 인명 구조 등의 업무 수행과 거리가 멀다는 것이 이유였다.

이에 더해 강원도 속초시의 한 건물 3층에 고립된 고양이를 구조하다 로프가 끊어져 사망한 고(故) 김종현 소방관은 국가 유공자로 인정은 받았지만, 인명 구조 작업이 아니라는 이유로 국립묘지 안장을 거부당했다.

앞선 두 경우는 유가족들이 법정 싸움까지 한 끝에 국립묘지에 안장될 수 있었다. 하지만 고 김종현 소방관의 경우, 유가족이 현재 정부를 상대로 행정 소송을 진행 중이다. 김 소방관의 사례는 다른 소방관들에게도 충격적인 결과였다. 이 사건은 소방관들 사이에서 이른바 '고양이 소방관'으로 통하며,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소방관들 사이에서는 '고양이가 됐든 뭐가 됐든 신고가 들어오면 안 나갈 수 없는 상황인데 이런 논란이 생기는 것 자체가 서글프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 소방관들은 평상시에 각종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경기도소방본부

소방관 '트라우마' 빨간불…그럼에도 소방병원 하나 없어

지난해 11월 15일, 문상필 광주광역시의원이 광주시 소방본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광주시 소방본부 소속으로 건강검진을 받은 1089명의 소방관 중 무려 24%에 달하는 258명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우울증, 수면 장애를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고위험군은 40명이나 됐다.

이 같은 실태 조사에 앞서 2011년 5월 전후 한 달 사이에 전남본부 소속 소방관이 나무에 목을 매 스스로 목숨을 끊는 등 전남 지역 소방관 3명이 연쇄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해 충격을 줬다. 당시에도 소방관들의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과 같은 정신 질환이 원인으로 지목됐었다. 한 소방관은 "전국의 다른 시도도, 조금씩 미세한 차이는 있겠지만, 실태는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2009년 중앙소방학교가 현직 소방관 29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에서 27%가 '직접 경험한 가장 충격적인 일'로 '처참한 시신을 목격한 일'을 꼽았다. '자신의 생명이 위협받았던 경험', '사람이 죽어가는 모습을 본 일' 등이 그 뒤를 이었다. 소방관들이 겪는 일상적인 트라우마가 심각하다는 말이다. 그러나 소방관들에 대한 체계적인 치료를 담당하는 기관은 없다. 일부 소방본부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예방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지만 경찰병원이나 군병원과 같은 '소방병원' 하나 존재하지 않는 게 현실이다.

소방관의 근무 환경도 스트레스를 가중시키는 요인이다. 예컨대 구급차를 운전하는 경우 항상 사고 위험을 안고 살아야 한다. 소방발전협의회가 지난 1월 대통령직 인수위에 제출한 소방정책건의서에는 구급차의 교통사고 사례가 나와 있다.

일례로 2010년 3월 고속도로 교통사고 현장으로 긴급하게 출동하던 구조 버스가 신호를 무시하고 사거리를 통과하려 했다. 구조 버스는 다른 방향에서 오고 있던 차량에 사이렌을 울리고 교통 신호봉을 휘둘렀지만 결국 추돌 사고가 났다. 영업용 택시 4대가 연쇄 추돌한 사고였다.

이 사건은 일반 형사사건으로 분류돼 검찰에 송치됐다. 운전을 담당했던 소방관은 형사 합의를 보고, 반성문과 탄원서를 법원에 제출해 결국 기소 유예 처분을 받았다. 당연한 사건 처리지만, 이 과정에서 소방관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소방발전협의회는 "현행법의 내용은 긴급 차량의 경우 사고를 발생시키지 말고 빨리 가라는 것일 뿐, 일단 사고가 발생되면 면책이 없다. 소방차, 구급차, 경찰차 등 긴급 차량이 교통 법규를 다 지키는 준법 출동을 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일부 소방관들은 "구급차인데 왜 신호를 지키느냐"는 피해자 가족의 항의에 시달리기도 한다. 그러나 방법은 마땅치 않다. 소방관들은 생명이 걸려 있어 촌각을 다투는 상황과 교통사고의 위험 사이에서 불안해할 뿐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교통사고처리특례법에 "소방 및 경찰공무원이 소방기본법 및 경찰관직무집행법에 따른 긴급한 각종 출동 상황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교통사고에 대해 공소 제기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추가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방안에 대해, 현재 교통사고 관련 특례를 줄여가는 추세임을 감안하면 현실성이 없는 주장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이와 관련해 박해근 소방발전협의회장은 "지금 소방관은 사고가 나면 형사 처벌을 받을 수 있는데다 자체 징계까지 받아야 하는 2중 부담에 시달린다. 사고와 관련돼 면책을 주는 게 불가능하다면, 명백하게 소방관의 과실이 아닐 경우 자체 징계를 면해주는 방식으로 현행 제도를 바꾸는 것 역시 하나의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결국 문제는 노동 기본권…"직장협의회 구성 막지 말아야"

결국 근본 대책은 소방관들의 기본적 노동권을 보장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나 소방관은 노동 기본권을 지키기 위한 노조나 직장협의회가 없다. 경찰이나 군인이 노조를 결성하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유다. 헌법재판소는 소방 공무원의 전국공무원노조 가입 불허를 합헌으로 판단했다.

국제노동기구(ILO)가 2006년과 2007년, 2009년 세 차례에 걸쳐 소방관의 단결권을 보장하라고 한국 정부에 권고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정부 방침에는 변화가 없다. 그럼에도 소방 공무원들은 2008년 일부 일간지에 "소방 공무원 인권 사수를 위해 노동 단결권을 보장하라"는 내용의 의견 광고를 내 주목을 받기도 했다.

선진국의 경우 소방 공무원들도 단결권을 제한적으로나마 보장받고 있다. 미국에는 조합원 15만 명의 국제소방협회가 있다. 1873년에 결성된 전미소방기사연합(National Association of Fire Engineers)이 그 연원이다. 미국을 비롯한 상당수 서구 국가들의 소방 시스템이 민간 영역에서 발전해온 것을 감안하면 정책 결정 등에서 미국의 국제소방협회가 갖는 권위는 막강하다. 일본에는 한국의 소방발전협의회 등과 비슷한 임의단체인 전국소방직원협의회가 있다. 이들도 한국보다 사정이 낫다. 단체협약권이 일부 보장되는 일본의 공무원 노조, 혹은 공무원 직원 단체와 긴밀한 협의체 구성이 가능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프랑스 등 일부 유럽 국가에는 직장협의회보다 수준이 높은 소방관 노조가 있다.

박해근 소방발전협의회 회장은 "하위직 소방공무원에게 노동 기본권이 허용돼야 한다. 현재는 일상적인 고충 사항도 얘기하거나 건의할 수 있는 창구가 존재하지 않는다"며 "소방 업무의 특수성을 감안한다고 하더라도 근무 환경 개선, 업무 능률 향상, 일반적인 고충 처리 등을 소속 기관의 장과 협의해 소방 공무원의 권익을 보호하고 국민에 대한 봉사자로서 자긍심을 고취시킬 수 있도록 관련 법률 개정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정부 당국자 등은 국가 긴급 재난 등을 담당하는 소방관에게 단결권을 인정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한 소방 관계자는 "재난이 발생했는데 파업을 하는 정신 나간 소방관이 어디 있겠나. 정부에서 직장협의체 구성을 반대할 때 내는 전형적인 논리인데, 설득력이 없다"고 주장했다.


 /박세열 기자

2013년 1월 30일 수요일

사람 잡는 1인 승무제…공황장애 15배, 트라우마 8배


이글은 프레시안 2013-01-29일자 기사 '사람 잡는 1인 승무제…공황장애 15배, 트라우마 8배'를 퍼왔습니다.
[위기의 지하철 기관사 ②] 벼랑 끝 기관사…노동 환경 개선 시급

1월 19일, 서울 지하철 6호선 기관사 황아무개 씨가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가족에게 출근 인사를 하고 집을 나선 황 씨는 회사에 가는 대신 아파트 옥상에서 몸을 던졌다. 황 씨는 삶을 마감하기 얼마 전 가족에게는 "회사 가는 것이 힘들다"고, 동료들에게는 "차에 타는 것이 힘겹다"고 토로했다고 한다. 가족과 동료들은 '기관사를 천직으로 알고 15년간 성실히 일한 사람'으로 황 씨를 기억한다. 그런 황 씨가 변한 건 지난해 10월 사고를 겪으면서다. 한 승객의 가방이 황 씨가 운행하는 열차의출입문에 낀 사고였다. 다행히 승객이 크게 다치지는 않았지만 황 씨는 이 일로 회사에서 심하게 질책을 당했다. 이를 계기로 황 씨는 이전과 달리 강박증과 심한 우울증 증세를 보이고 공황장애로 힘들어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유족과 서울도시철도공사 노동조합은 이번 비극이 황 씨 개인의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기관사 한 사람이 모든 것을 책임지고 운행해야 하는 구조, 그리고 "기관사에게 모든 책임을 몰아 매도하는 조직 문화"가 비극의 배후에 있다는 주장이다.  수많은 기관사가 생전의 황 기관사와 마찬가지로 과도한 압박에 시달리고 있으며, 그런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비극은 계속될 것이라고 이들은 경고한다. 황 씨처럼 공황장애로 괴로워하다 스스로 삶을 마감한 기관사가 2012년 한 해에만 3명이나 있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이는 지하철 기관사의 노동 조건에 한정된 문제가 아니다. 수많은 시민의 안전과도 직결된 사안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시민의 발'을 안전 운행하기 위해 노심초사하는 기관사들의 고충에 눈감는다면, 지하철을 이용하는 시민들도 언제든 위험에 빠질 수 있다. 은 지하 터널을 누비는 지하철 기관사들의 현실을 짚는 기획을 마련했다.

위기의 지하철 기관사① "동료들 연이어 자살…이젠 나도 날 못 믿겠다" 지난해 3월 12일 공황장애를 앓던 서울도시철도공사 이아무개 기관사가 지하철 5호선 왕십리역에서 달리는 열차에 몸을 던져 자살한 사건이 벌어졌다. 당시 분향소를 방문했던 박원순 서울시장은 '서울시 지하철 최적근무위원회'를 설치해 근무 환경이 서울도시철도공사 직원들의 심리 상태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이를 바탕으로 근무 환경을 합리적으로 개선해나갈 것을 제안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9월 한림대학교 산학협력단 주용수 교수팀은 '서울특별시도시철도공사 정신 건강 실태 조사 및 개선 방안 연구'를 발표했다.

그러나 위원회가 이 연구 결과를 토대로 공식 권고안을 내기 전인 지난 19일, 황아무개 기관사가 또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이 발생했다. 이 단독 입수한 '서울시 도시철도 안전 운행을 위한 승무 방식 선택 시 고려해야 할 가이드라인 권고안' 초안은 주 교수팀의 연구 결과에 따른 후속 조치를 담고 있다. 이 안은 아직 정식 권고되지 않은 상황이다.

이 안에는 1994년 개통할 때부터 기관사만 승차하는 1인 승무 체계를 고수해 온 서울도시철도공사의 업무 행태의 문제점이 지적돼 있다. 이 안은 "특히 도시철도공사처럼 개통 당시 1인 승무 체계로 시작되었던 대구도시철도에서는 2003년 대규모 참사가 발생하였으며 이 원인 중 하나로 1인 승무 체계가 문제로 지적되었다. 최근에 와서 도시철도공사 기관사의 정신 건강 문제가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되었고 이 역시 같은 문제가 원인인 것으로 적시되고 있다"고 권고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이 안은 "수천 명 승객의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기관사의 정신 건강 문제는 사회적으로도 매우 위험한 일이다. 이 점을 고려할 때 1인 승무 체계가 노동자와 이용자의 안전을 책임질 수 있는 형태로 운영되어야 하며 이를 위한 적정 가이드라인이 제공되어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다.

이 안은 "물리적 조건 8가지와 인적 조건 2가지가 모두 만족되지 않으면 서울시 도시철도에서는 1인 승무 체계 운영을 재고해야 한다"고 밝혔다. 물리적 조건 8가지는 △ATO(자동열차운전장치) 시스템 이상의 기술 지원 △혼잡률 150% 이하(전동차 1량에 승객 140명 이하) △1인 이상의 역무원 상시 배치 △8량 이하의 전동차 운영 △자동 운전 및 자동 방송 △지상 구간이 10% 이하일 경우 △사고 시 기관사 외에 관제에서 방송·안내 책임 분담 △스크린도어 전체 설치이고, 인적 조건 2가지는 △승무 및 휴식 시간 보장 △건강 장애 호소자 승무 배제다.

정식으로 제안된 권고안은 아니지만, 현재 서울도시철도 운행 상황은 이 안이 제시하는 조건에 대부분 미달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 2008년 2월 18일 대구지하철 참사 5주기를 맞아 중앙로역에 마련된 분향소에 시민들의 헌화가 이어지고 있다. 대구지하철에서는 2003년 대규모 참사가 발생했는데, 피해 규모를 키운 원인 중 하나로 1인 승무 체계가 지적되기도 했다. ⓒ뉴시스

트라우마 유병률 일반인의 8배, 공황장애는 무려 15배


이 권고안의 배경이 된 주 교수팀의 연구는 2012년 6월 29일부터 7월 8일까지 서울도시철도공사 전 직원 중 4075명(64.01%)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이 연구 결과에 따르면 운전 직군은 보상 문제를 제외한 모든 영역에서 직무 스트레스가 높게 나타나 '스트레스 고위험군'으로 분류됐다. 특히 서울도시철도공사가 운영하는 운전 직군의 9조 5교대 방식에 따른 스트레스 강도는 다른 직군보다 매우 높게 나타났다.

특히 이 조사에서 "자신이나 타인의 죽음, 심각한 상해, 또는 신체적 안녕에 위협을 가져다주는 사건을 경험하거나 목격한 경우의 충격적 경험 이후 발생한 스트레스"인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 PTSD, 일명 트라우마)'와 관련해 외상 경험이 있는 사람은 338명(8.3%)으로 나타났고 이 중 업무와 관련이 있는 사람은 209명(5.1%)으로 나타났다. 외상 경험이 있는 사람들 중에서 PTSD 증상자는 164명(48.5%)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본 연구는 단면적인 평가라는 제한점이 있기 때문에 사고 직후 발생할 수 있는 급성 스트레스 반응이나 장기적인 추적 조사가 이루어지기 힘들므로 사고 후 발생할 수 있는 PTSD 영향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서는 각 시기별로 적절히 개입할 수 있는 추적 연구가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설문을 통해 나타난 사람보다 훨씬 많은 이가 위험에 노출돼 있다는 것이다.

▲ 지하철 기관사가 어둠 속에서 운전을 하고 있다. ⓒ프레시안(박세열)

지하에서 나쁜 공기 마시며 사고까지 책임져야 하는 기관사는 슈퍼맨?

가톨릭대학교 성모병원 이강숙 교수팀이 2007년 9월 발표한 '도시철도공사 기관사 정신 보건 임시 건강진단 최종 보고서'를 보면 상황은 더 심각하다.

현업 4급 이하 전체 기관사 961명을 대상으로 한 이 조사에서 우울증의 경우 평생 유병률(일정한 지역 혹은 집단 구성원 중에서 환자가 발생하는 비율)이 3.0%로 나타났다. 국민 평균(2.6%)보다 높은 수치다. 황 기관사를 죽음으로 몰고 간 주요 원인으로 추정되는 공황장애의 경우 기관사들의 평생 유병률은 1.5%다. 일반 인구 집단에서 보고되는 0.1%의 15배에 달한다. 공황장애 관련 1년 유병률은 0.7%로 전 국민 유병률의 7배에 이르렀다. 강박장애의 경우 평생 유병률이 1.8%, 1년 유병률이 1.5%로 전 국민 유병률과 비교했을 때 3배가량 높은 수치를 보이고 있다.

사고 경험에 관한 설문 응답자 827명 중 사고 경험자는 265명(32%), 사고 무경험자는 562명(68%)이었다. 전체 기관사의 40.3%가 승객과 갈등 상황을 경험했고, 62.2%가 중압감으로 인해 운전을 회피하고 싶은 마음이 든 적이 있었다. 비상벨로 인해 심리적 부담을 느낀 경험이 있는 사람은 75.2%였다.

자신의 실수나 기계 문제로 인해 사고가 날 뻔한 경험이 있는 사람은 31.2%였으며, 이 중 7%는 이로 인해 징계를 받은 경험이 있었다. 동료의 사상 사고 경험 소식에도 47.8%의 기관사가 불안이나 '가슴 떨림'을 경험했다. 중압감 때문에 운전을 회피하고 싶은 생각을 항상 한다는 기관사 28명(3.4%) 중 사고 경험이 있는 기관사는 12명, 사고 경험이 없는 기관사는 16명이었다. 모든 사고 경험이 곧바로 PTSD로 이어진다고 가정할 수는 없지만, 이 연구 결과에 따르면 PTSD로 인한 지하철 기관사의 '1년 유병률'은 일반 인구 집단의 8배에 달한다.

이 보고서는 "기관사들이 운전을 하는 공간은 주로 지하 공간으로, 심리적 폐쇄감이 상당하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좋지 않은 공기질의 영향은 간접적으로 심리적 폐쇄감을 유발할 수 있다. 지하 공간 자체에 민감한 사람들에게 공황장애 등이 유발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또한 "기관사들은 운전뿐 아니라 출입문 개폐 등의 작업을 주로 하게 되는데, 특히 출퇴근 시간 때는 이를 둘러싼 승객과의 마찰이 있을 수 있다. (…) 운행 중 운전 외에 관여해야 하는 '운전처와 송수신' 등 복잡한 운전 상황, 승객들이 누르는 비상벨에 대처해야 하는 상황 등, 실제 운전 외에 기관사가 처리해야 하는 복잡한 상황이 상당히 많이 주어진다. 일상적인 상황에서 별 문제가 되지 않는 작업 조건들이라도 어떤 이례적 상황에 놓이게 되면 상당한 스트레스를 유발할 수 있게 된다"고 지적했다.

지하철 기관사가 각종 정신 질환에 시달린다는 사실은 이처럼 여러 연구 결과가 뒷받침해 준다. 직업과 관련해 발생한 정신 질환의 경우 직업병으로 승인 받기도 어렵고, 막상 승인을 받아도 효과적인 치료를 받는 경우가 드물다는 것도 문제다. 치료 후에도 체계적인 작업 복귀 프로그램은 전무하다. 결국 모든 사고에 대해 책임지고 그 후유증을 감당하는 것은 기관사 자신의 몫으로 여겨지는 게 현실이다.

"한 달 동안 악몽"…"운전 중에 누군가 옆에 있었으면"

2007년 9월 가톨릭대 연구팀이 발표한 보고서와 2012년 9월 한림대 연구팀이 발표한 보고서에는 익명의 기관사들을 대상으로 한 심층 면접 내용이 실려 있다.

이 중 가톨릭대 연구팀 보고서에는 기관사들의 다음과 같은 호소가 담겨 있다.

"어떤 때는 기차에서 뛰어내리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기도 해요. 꽉 막힌 공간에 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내 자신을 어찌할 수 없는 그런 상태를 경험한 적도 있어요. 그럴 땐 나름대로 방법을 만들죠. 사진이지만 파란 하늘을 본다거나, 다른 생각을 하려고 노력하는 거죠. 매일 그러는 건 아니에요. 몸 상태가 나쁘거나 하면 이런 느낌이 더 심해지는 것 같아요."

"서울메트로는 지상 공간이 있잖아요. 근데 우리는 100% 지하 공간이에요. 3시간 넘게 지하에서 운전해 봐요. 집중을 하면 오히려 미쳐 버립니다. 승객에 대한 부담감이요? 있죠. 그런데 대구지하철 (참사) 있고 나서 더 심해졌어요."

"운전 중에 누군가 옆에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자주 들어요. 운전 중에 어떤 때는 동료 기관사가 아는 체를 하거든요. 그러면 앞으로 태우죠. 옆에 누군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막 편안해져요."

"OO역에서 사상 사고가 났어요. 부딪히는 소리가 그렇게 크게 들릴지 몰랐어요. 그 순간 머릿속이 까매져요. 뭘 해야 될지 아무 생각도 안 나요. 그날 운전도 다 끝내고 집에 있는데 자꾸 그 장면이 떠오르고, 두렵고 무섭더라고요. 한 달 동안 거의 매일 악몽에 시달렸어요."

"병원엔 안 가봤어요. 그냥 이겨낼 수 있을 것 같더라고요. 처음엔 몰랐는데, 일주일쯤 있다가 그 역을 지나는데, 머리가 삐쭉 서는 느낌이 들어요. 갑자기 가슴이 쿵쾅쿵쾅하는데, 미치겠더라고요. 몇 번 그런 적이 있어, 병원에 가볼까 생각도 했는데, 항상 그런 게 아니라… 피곤할 때 더 느낀다고."

"병원에 가봤죠. 의사한테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는 얘기를 들었어요. 약물 치료도 받았고요. 치료 받으면서도 다 잊히는 건 아니더라고요. 신경이 날카로워졌어요. 집에서 부부 싸움도 자주 하고, 애도 귀찮고, 내가 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럴 땐 무섭더라고요."

이 보고서는 "사상 사고 후의 심리 상태는 그 순간의 상태도 문제가 되고, 이후 지속적인 운전을 계속한다면 2차 안전사고의 문제도 우려되었다. 또한 2차 사고에 대한 파악, 그리고 이를 경험한 기관사들에게도 일정한 심리 상담이 필요하다고 판단된다"고 지적했다.

한림대 연구팀의 보고서에도 다음과 같은 기관사 심층 면접 내용이 실려 있다.

"저희 도시철도에 설치된 스크린도어만 10000개예요. 하루에 1%만 고장이 나도 100개니까 계속 그것과 관련된 전화가 걸려옵니다. 그러다 보니 5시에서 7시 사이에 있는 휴식 시간에도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초과근무를 합니다. 회사 측에서는 그러면 다른 시간에 대신 쉬라고는 하는데, 문서상으로나 쉬는 시간이지 사실상 쉬지 못한다고 보면 됩니다."

"제발 눈 가리고 아웅 식의 봉사 활동 같은 것은 이제 없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저희처럼 교대 근무를 하는 사람들은 봉사 활동을 가려면 야간 근무가 끝나고 가야 됩니다. 그러다 보니 2시간 일하고 8시간 봉사 활동을 한 것처럼 받아오는 일도 많습니다."

"하도 시민들에게 욕을 많이 듣다보니 이제는 대인 기피증이 생길 지경입니다. 거기에 시민들이 제기하는 민원 중에는 저희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문제도 많은데 본사 측에서는 알아서 해결하란 식입니다."

"계속 참아야 돼요. 생리적인 것도 참고, 힘들어도 참아야 되고. 업무 중 힘든 것은 시민과 만나는 것, 불량도 있고요, 출퇴근 시간을 맞추는 것, 생리적인 것을 참는 것, 환경도, 어두운 곳에서 계속 불빛이 왔다 갔다 하는 것, 소음도 있고요. 졸립고요, 그래도 참아야 돼요. 첫차를 타게 되면, '6시 15분에 출근하려면 몇 시에 일어나야 하겠다' 하고 잠을 자면 중간에 몇 번 깨는 거죠. 시계 보고, 시계 보고. 차 타러 갈 때도, 타러 갈 때가 되었나? 되었나? 급할 때, 가장 단순하지만 가장 힘든 것 같아요. 야근할 때 저는 저녁을 안 먹거든요. 약간 가스가 차서, 한번 고생을 하게 되면…."

"환경 자체가 터널 근무이므로 안 좋습니다. 터널에서 근무하면서 환경이 나쁘다고 느낀 게 먼지가 기름기에 찌든 먼지입니다. 그런 먼지인 줄은 몰랐어요.환경 측정은 역사만 해요."


 /박세열 기자

2012년 12월 6일 목요일

구사대 동원 트라우마, 유성기업 노동자 자살


이글은 프레시안 2012-12-05일자 기사 '구사대 동원 트라우마, 유성기업 노동자 자살'을 퍼왔습니다.
직장 폐쇄 이후 노동자 70% 우울증…"제2의 자살 나올 수도"

반(半)강제노역과 구사대 동원으로 우울증에 시달려왔던 유성기업 아산공장 노동자가 4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유성기업 아산공장의 유 모(50) 씨는 이날 오후 2시40분께 경기도 평택시의 한 아파트 자신의 방에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유 씨는 직장폐쇄로 공장에 고립된 상태에서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구사대로 동원돼 동료를 진압하다가 우울증을 겪어 지난 8월 산재 승인을 받은 바 있다. (☞ 관련 기사 : 구사대 동원된 노동자 우울증 산재 인정) 

지난 30여 년간 유성기업에서 일해 온 유 씨는 지난해 5월 금속노조 유성기업지회를 탈퇴하는 조건으로 직장폐쇄 11일 만에 공장에 복귀했다. 

그러나 복귀한 뒤 사측은 공장 밖의 금속노조 조합원과의 접촉을 막기 위해 공장 현관문을 걸어 잠갔다. 유 씨는 공장 바닥에서 스티로폼을 깔고 자는 반(半) 감금상태에서 51일 동안 단 이틀을 제외하고 장시간 노동에 시달렸다.

유성기업은 또한 작업 중에 유 씨에게 쇠파이프와 삼각대를 나눠주며 금속노조 조합원과 대치하는 '구사대' 활동을 강요했다. 유 씨는 "오랫동안 함께 일한 동료들이라 마스크나 수건으로 얼굴을 가려도 누군지 알아볼 수 있었다"며 "공장 복귀에 대한 후회와 자괴감, 나를 구사대로 동원한 회사에 대한 배신감에 시달렸다"고 증언한 바 있다.

복귀 이후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려온 그는 회사와 자택에서 총 5차례 자살을 시도한 바 있으며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유족으로는 아내와 딸 두 명, 아들 한 명이 있다.

공격적인 직장폐쇄 이후 유성기업에서 우울증을 앓는 노동자는 유 씨뿐만이 아니다. 유성기업지회 관계자는 "지난 8월 심리치료를 한 결과 지회 조합원 150여 명 중에 70%가 매우 심각하게 우울하다고 답했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조합원 중에 잠을 설치거나 용역 깡패들이 폭행하는 꿈을 꾸거나, 잠꼬대에서도 욕설을 한다는 가족들의 증언이 있다"며 "제 2의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했다.

민주노총은 5일 논평을 통해 "유 씨를 죽음으로 내몬 것은 강제노동과 다름없는 노역을 시키며 동료에게 폭력을 행사하라고 강요했던 유성기업"이라며 "5년 집권 내내 노조에 대한 병적 적대감을 드러내며 노조파괴를 선동했던 정부 책임자 또한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비판했다.

한편, 홍종인 금속노조 유성기업 아산지회장은 지난 10월 21일부터 △노조 파괴 사측 책임자 처벌 및 교섭 성사 △해고자 복직 △제2노조 해산 등을 내걸고 유성기업 정문 앞 굴다리에서 무기한 고공농성에 돌입한 상태다.


 /김윤나영 기자

2012년 8월 2일 목요일

‘사고 트라우마’ 코레일 직원 1300명 중 1명만 치료


이글은 경향신문 2012-08-02일자 기사 '‘사고 트라우마’ 코레일 직원 1300명 중 1명만 치료'를 퍼왔습니다.

ㆍ코레일, 소속장 면담 거쳐 심리치료 대상 37명 선발

열차 사상사고를 겪은 기관사들이 심각한 정신적 후유증을 겪고 있다는 보도(경향신문 7월9일자 1·3면 보도)에 따라 코레일이 직원들에 대한 심리치료 대책을 발표했다.

코레일은 전체 2만5000여명의 직원 중 소속 부서장 면담을 통해 37명을 뽑아 심리치료를 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치료 대상자 중 정작 최근 5년간 사상사고를 경험한 직원은 단 1명에 불과했다. 코레일은 2007년부터 올해 6월까지 5년6개월 동안 사상사고를 경험한 직원(기관사·철도반원·차장·역무원)이 1306명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승객 투신 사고를 겪은 기관사뿐 아니라 사체를 처리한 직원도 포함된 숫자다.

하지만 코레일은 이들 사상사고 경험자에게 체계적인 심리치료 대책은 마련하지 않았다. 대신 코레일은 6월12일과 24일 각 소속 부서장에게 공문을 보내 전 직원을 면담하고 심리치료가 필요한 직원을 파악해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이런 방법으로 선발된 심리치료 대상은 37명에 불과했다.

이들 중 본인이 치료를 원한 직원은 15명, 부서장이 치료가 필요하다고 추천한 직원은 22명이다. 또 업무상 스트레스를 이유로 선정된 사람은 7명에 불과했다. 

치료 대상자 중 사상사고를 경험한 직원은 단 1명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코레일 측은 이 직원도 사상사고와 직접 상관없는 이유로 스트레스를 호소해 치료대상으로 선정됐다고 설명했다. 코레일은 심리치료 대상자를 정신과 전문의들에게 의뢰, 개별상담을 진행하고 정신과 치료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비공개로 치료를 지원키로 했다.

하지만 전문가가 아닌 부서장 면담을 통해 정신과 치료 대상자를 선정한 것이 적절했느냐는 논란이 있다.

철도노조 관계자는 “심리상담에 필요한 전문적 지식이 없는 현장사업소 관리자들에게 전문의도 어려운 개별면담을 시켜 심리치료 대상을 골라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정신과 전문의가 사상사고 유경험자들을 전수면담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대 의과대학 정신과학교실 정도언 교수는 “비전문가가 전문가의 역할을 대신할 수는 없는 일이다. 심리치료가 필요한 직원들을 전문가가 선정토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부서장 면담이 제대로 이뤄졌는지도 문제다.

코레일 소속의 한 기관사는 “소속 사업소 소장과 면담을 한 적이 없다. 현장 관리자들에게 소장이 ‘문제 있는 직원이 있느냐’고 물어본 정도인 것으로 안다”며 “혹시 면담을 했다고 하더라도 상사인 소장에게 정신적 문제를 솔직히 털어놓기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코레일 관계자는 “사상사고를 경험했다고 모두 우울증이나 공황장애 등 정신질환으로 이어지는 게 아니므로 치료 대상자 선정에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본인이 심리치료를 원한다면 해줘야겠지만 사상사고 경험자 1306명 중 한 사람도 사상사고 스트레스를 이유로 심리치료를 신청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남지원 기자 somnia@kyunghyang.com

2012년 4월 26일 목요일

광우병 위험 10만마리 중 1마리만 샘플 검사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2-04-26일자 기사 '광우병 위험 10만마리 중 1마리만 샘플 검사'를 퍼왔습니다.
[아침신문 솎아보기] 위험 확실해질 때까지 기다려라? 러시안 룰렛 게임하나

24일 미국에서 광우병 소가 발견됐다고 밝혔음에도 우리 정부와 농림수산식품부가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수입중단 조치는커녕 그보다 이전 단계인 검역 중단 조치조차 당장 하지 않겠다고 밝혀 논란을 빚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2008년 "미국에서 BSE가 발생했을 때는 수입을 전면 금지하겠다"고 했던 말을 뒤집었다는 비난이 거세다. 

자국민의 안전과 주권국가로서 검역주권을 놓고 미국과 다투어야 할 농식품부가, "한국이 수입한 미국산 쇠고기는 이번에 발생한 BSE와 직접적인 관련성이 없다"며 미국 축산대기업과 미국 정부의 대변인을 자처하고 있어 이해할 수 없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다음은 전국단위종합일간지 4월25일자 1면 머리기사 제목들이다.

경향신문 국민일보 동아일보 서울신문 세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한국일보

미국 농무부는 24일(현지시각) 성명에서 “캘리포니아주 중부지방 목장에서 사육된 젖소 중 소 해면상뇌증(BSE), 즉 ‘광우병’에 걸린 개체가 나왔다”고 밝혔다. 이에 우리 정부는 24일 기자간담회에서 “미국에서 제공한 정보가 극히 제한적이라고 판단해 통상 마찰을 예방하기 위해 미국 측에 상세한 자료를 요청했으며, 조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미국산 쇠고기 반입이 중단되는 일은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미국산 쇠고기의 검역이나 수입 중단을 위해선 “국민 건강에 심각한 위협이 있다는 ‘과학적 근거’가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가 즉각 ‘검역 또는 수입 중단 조치’를 내리지 않은 것에 대해 일부 시민단체와 야당은 강하게 반발하며 당장 수입 중단 조치를 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미국의 쇠고기 검사비율은 0.1% 미만인데 이런 검사 비율에서 광우병 발생이 확인됐다면 얼마나 많은 소가 광우병에 걸렸는지 알 수 없다”는 우려다. 

광우병 광풍 재발? 

정부에 대한 국민의 감시와 비판 기능을 두고 ‘혼돈’과 ‘특정 세력의 선동’으로 치환하는 프레임이 또다시 작동됐다. 조선일보는 광우병 쇠고기 수입과 협상에 대한 국민의 주권 주장에 대해 ‘광우병 광풍(狂風)’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최종결론을 지켜봐야 한다는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정부는 국내에 유통되는 미국산 쇠고기는 안전하다고 주장하”는데도 “국민들은 2008년 ‘광우병 광풍(狂風)’의 기억을 떠올리며 불안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앙은 2008년 광우병 사태를 언급하며 “막연한 불안은 공포와 혼돈을 불렀다”며 “이번에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부터 혼돈의 씨앗이 자라고 있다”고 보도했다. 또 “정부가 미국과 맺은 협정은 허술했다”고 인정하면서도 이에 대한 국민의 합리적인 의심과 주권·건강권 주장에 대해 “일부 세력의 왜곡과 과장”이라며 “‘미국산’이기에 반미 감정을 자극했다”고 주장했다. 


▲ 조선일보 26일자 2면

조선과 중앙 등은 이번에 미국에서 확인된 광우병은 위험이 낮다며 그 이유를 강조하고 나섰다. 우선 이번에 미국에서 확인된 광우병은 “감염성 낮은 ‘비정형성’일 가능성이 크다”는 미 농무부의 말을 인용하며, 비정형적 광우병의 경우 유전적 요인 등 개별적 요인으로 발생하며 감염 가능성이 낮다고 설명했다. 

또 광우병에 걸린 소는 젖소인데 우리나라에서 젖소를 식용으로 수입하지 않고 있고, 미국산 육우(젖소의 수컷)는 한국에 수입되지만 육우는 젖소와 완전히 분리돼 사육되므로 광우병에 감염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농식품부의 설명을 전했다. 

이와 함께 “우유나 치즈를 통한 광우병 감염 가능성은 없다”는 전문가 의견과, 감염된 소의 나이가 30개월이 넘었으나 우리나라에는 30개월 초과 소의 수입이 금지돼 있다는 점을 위험이 낮은 근거로 들었다.


▲ 동아일보 26일자 3면

하지만 보수언론은 정부가 2008년 “추가 발병되면 수입을 중단한다”고 했던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크게 문제 삼지 않는 분위기다.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견되면 ①즉각 수입을 중단하겠다.②이미 수입된 쇠고기를 전수조사하겠다.③검역단을 파견해 현지실사에 참여하겠다. ④학교 및 군대 급식을 중지하겠다.”

2008년 5월 8일 정부가 일간지 광고에서 약속한 내용이다. 당시 한승수 국무총리 담화에도 이 같은 내용이 포함됐다. 그러나 25일 정부는 미국에서 광우병이 추가 발생했음에도 즉각적인 검역·수입 중단 조치를 할 수 없다고 밝혔다. 정보가 부족하고 통상 마찰이 우려된다는 이유에서다. 

정부가 ‘혼란의 재연’을 걱정한다며 댄 이유는, 수입 중단을 했다가 재개할 경우 미국화 협상도 다시 해야 하고 국회 심의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 중앙일보 26일자 1면

중앙은 이 같은 정부의 입장을 대변하는 듯한 제스처를 취하면서도 지엽적으로는 “검역 중단으로 일단 문을 틀어막고, 국민에게 설명할 시간을 벌 수도 있다”든지, “인력이 달리고 통관이 지체되지만 당분간은 전수 검사라도 하겠다는 의지를 밝히는 것도 필요하다”고 정부에 충고하고 나섰다. 그만큼 관련 우려와 여론이 비합리적이고 터무니없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광우병 쇠고기 수입 논쟁과 관련해서는 식품 안전의 문제뿐 아니라 정부에 대한 신뢰의 문제와 사회적 소통의 문제도 주요하게 얽혀 있다. 수십만 명의 국민이 연일 거리로 쏟아져 나와 항의할 만큼 그토록 불안해하는데도 정부는 당시 국민을 ‘정부 반동 세력’, ‘배후 세력의 선동’이라는 시각으로 진압하고 ‘불통(不通)’의 태도를 내내 취했기 때문이다. 

광우병의 원인에 대한 확정적인 정보가 없는 상황에서 사전 예방 조치로 검역을 중단해 유통 자체를 중단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상당하다. 전문가들은 보다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미국의 발표가 자세하지 않다면 우리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 안전조치를 해야 한다는 얘기다. 또 정부에 대한 소비자 불신이 여전히 큰 상태를 무시해선 안 된다는 입장이다. 

국민의 건강보다 미국과의 통상마찰이 더 염려하는 정부의 태도는 그야말로 주객이 전도된 모습으로 비춰진다. 정부는 미국과의 통상마찰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이 얼마나 심각한지, 광우병의 위험성과 국민의 불안과 불신으로 인해 발생하는 비용보다 큰 것인지 국민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 한겨레 26일자 1면

광우병 위험 정말 무시해도 될 수준일까…대중 상대로 러시안 룰렛 게임하는 미국 정부그렇다면 일부 언론의 보도처럼 비정형성 광우병에 걸린 소를 먹으면 사람도 광우병에 걸리지 않을까? 이는 아직 확실하게 규명되지 않은 사항이다. 인간에게 옮겨지는 종류의 광우병인지는 검증되지 않았다는 견해와, 비정형성 광우병도 인체 감염력이 있다는 의견이 공존하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서 안전조치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상식에 가까울 것이다. 또한 일본에서 비정형 광우병이 30개월 미만 소에서도 나타났던 두 건의 사례가 존재하기도 한다. 

광우병에 걸린 소를 먹으면 사람도 인간 광우병에 감염될 수 있다. 인간 광우병이 심각한 질병인 이유는 현재까지 이를 치료할 방법이 없으며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하면 평균 6개월 만에 사망하기 때문이다. 인간 광우병이 처음 보고된 것은 1996년 영국에서다. 그만큼 인간 광우병은 오래된 질병이 아니며 이와 관련해 의학적으로 밝혀지지 않은 부분도 많은 질병이라는 얘기다. 첫 발견 이후 세계적으로 인간광우병으로 사망한 사례는 현재까지 약 200명이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변형 프리온이 원인물질로 꼽히고 있으며, 이 물질은 열에 강해 끓여도 파괴되지 않는다. 게다가 매우 적은 양으로도 감염을 일으킬 수 있다. 변형 프리온의 경우 0.001g만 소에게 주입해도 광우병에 걸린다는 사실이 실험을 통해 확인되기도 했다. 

더욱이 우리나라 사람들의 경우 광우병에 걸린 소를 먹었을 때 감염될 위험이 더 크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변형 프리온이 많이 발견되는 소의 내장이나 골수 등 광우병 특정 위험물질(SRM)을 먹는 식습관이 있기 때문이다. 

또 논란이 있긴 하지만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아시아계 사람들은 인간광우병에 더취약하다는 유전자형(M/M형)을 가진 사람들의 비율이 유럽 등보다 더 많다는 견해도 있다. 한겨레가 이를 보도했다. 


▲ 한겨레 26일자 2면

만약 이번에 광우병 발병이 확인된 암소가 샘플로 채택되지 않았다면 동물 사료로 유통됐을 가능성도 있다. 미국은 현재 고위험군 소에 대해 매년 4만마리씩 광우병 샘플 검사를 하고 있는데 10만 마리 중 1마리를 검사하는 비율에 지나지 않는다. 

뉴욕의 소비자단체인 ‘뉴요커스’의 과학자 마이클 핸슨도 “(미국)농무부가 대중의 건강을 대상으로 러시안룰렛 게임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미국 정부가 이번 광우병 소 발견으로 가장 우려하는 것은 수출이다. 은 “일본, 한국과 같은 대규모 미국산 쇠고기 수입 국가가 일시적 중단을 선언하는 것이 이번 사태의 가장 큰 위협요소가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미국은 2003년 첫 광우병 발생 이후 쇠고기 수출액이 30억 달러나 줄어들었으며 이를 회복하는 데 8년이 걸렸다. 

일부 대형 유통업체 즉각 미국산 쇠고기 유통 중단


▲ 경향신문 26일자 3면

정부보다도 국민의 마음을 먼저 제대로 읽고 발빠르게 대처한 것은 유통업체였다. 이날 롯데마트 등 대형 유통업체는 미국산 쇠고기 판매를 잠정 중단했다. 롯데마트 홍보팀 관계자는 “새벽 6시에 기사를 보고 마트 문을 열기 전 미국산 쇠고기를 모두 수거했다”고 말했다. 

롯데마트와 롯데백화점에서는 “지금까지 수입된 제품은 정상적인 검역을 받았기 때문에 문제는 없다”면서도 “소비자들이 불안해하기 때문에 당분간 판매를 보류한다”고 밝혔다. 한편 홈플러스는 이날 오전 10시 30분부터 미국산 쇠고기를 전 매장에서 철수 조처했으나 저녁 7시부터 판매를 재개했다. 이마트는 “정부의 지침 등을 지켜보며 판매 지속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현대백화점과 신세계백화점은 본디 미국산 쇠고기를 취급하지 않고 있다.

수입쇠고기 추적하겠다던 정부, 거짓말이었나


▲ 경향 2면

정부가 “광우병 등 이상이 있는 쇠고기는 계산대에서 걸러내겠다”면서 2010년 도입한 ‘수입 쇠고기 유통이력관리시스템’이 무용지물인 것으로 지적됐다. 수입 쇠고기의 유통경로를 관리·추적하는 국내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감사원 관계자는 “2011년 11~12월 ‘수입 농식물 유통관리실태’ 감사 결과 쇠고기 유통이력관리시스템의 매출·매입 내역이 불일치하거나 아예 기록이 누락돼 부실 운영되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25일 밝혔다.

박새미 기자 | psm@mediatoday.co.kr 

2011년 12월 31일 토요일

"이근안, 이래도 고문이 예술이고 애국이었나?"


이글은 프레시안 2011-12-30일자 기사 '"이근안, 이래도 고문이 예술이고 애국이었나?"'를 퍼왔습니다.
김근태의 용서와 이근안의 파렴치

26년간 떨리던 민주당 김근태 상임고문의 손이 침대아래로 '툭' 떨어지자, 병실 주변에는 여명보다 안개가 먼저 깔렸다. 30일 새벽 5시 30분 '세상의 양심'은 시리디시린 겨울을 넘기지 못하고, 64세의 지난한 삶을 놨다. 사인은 고문 후유증.

선대인 경제전략연구소장은 트위터(@kennedian3)에 "정녕 하나님은 있는 겁니까"라며 "평생 민주화와 정치 발전 위해 헌신했던 김근태 선생님은 고문 후유증으로 돌아가시고, 그를 고문했던 이근안은 목사로 변신해 고문은 예술이고 애국이었다고 떠들고 다니는 세상"이라고 한탄했다.

"신문도 하나의 예술이다"

김근태 상임고문과 이근안 전 경감의 악연은 26년 전 서울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에서 시작됐다. 김 상임고문은 민주화운동청년연합을 결성했다는 이유로 1985년 9월 4일 구속됐다. 그 후 그는 17일간 매일 5시간씩 이 전 경감에게 전기고문과 물고문을 받았다.

"고문을 할 때는 온 몸을 발가벗기고 눈을 가렸습니다. 그 다음에 고문대에 뉘면서 몸을 다섯 군데를 묶었습니다... 머리와 가슴, 사타구니에는 전기 고문이 잘 되게 하기 위해 물을 뿌리고, 발에는 전원을 연결시켰습니다. 처음엔 약하고 짧게, 점차 강하고 길게, 강약을 번갈아 가면서 전기 고문이 진행되는 동안 죽음의 그림자가 코앞에 다가왔습니다." (김근태 책 )

고문 트라우마는 '죽음의 그림자'처럼 평생 그를 따라다녔다. 그는 치과에 가는 것조차 꺼렸다고 한다. 의자에 반쯤 누운 채 얼굴을 가리는 순간, 바로 전기고문이 연상됐기 때문. 2001년 대선 경선 때 참모진은 물고문으로 얻은 비염과 축농증 때문에 전달력이 떨어진다며 수술을 권했다. 그렇게 수술대에 올라 마취를 하는 과정은 그를 다시 남영동 대공분실로 데려갔다. 수술 후 그는 "칠성판(고문대)에 다시 올라간 느낌이었다"고 했다.


▲ '고문 기술자' 이근안 ⓒ연합

하지만 '고문 기술자' 이근안의 기억은 다르다. 이 전 경감은 작년 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고문 행위가 "애국 행위"였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자신을 "신문(訊問) 기술자"로 지칭, "그런 의미에서 신문도 하나의 예술이다"라고 덧붙였다.

"(김근태 상임고문에게) 전기 고문을 한 건 사실이지만, 220볼트 전기를 쓴 게 아니고 면도기에 들어 있던 배터리를 썼다. 내가 취미 삼아 만든 모형 비행기 모터에서 'AA 건전지2개'를 가지고 겁을 준 것뿐... 몇 시간 전부터 '너 전기로 지질 거다'라고 겁을 준 다음에 전기 잘 통하라고 소금물 뿌린 발가락에 배터리를 갖다 대고 겁을 주니 지하조직 일체를 자백했다."

1985년 납북어부 김성한 씨 고문 혐의로 88년부터 수배를 받던 이 전 경감은 10년 10개월 만인 1999년 10월 검찰에 자수했다. 이미 김 상임고문 사건을 포함해 대부분의 사건이 도피생활 중 공소시효가 지난 상태였으나, '특정범죄가중처벌법 4조의2' 규정에 따라 7년 형을 선고 받았다.

자수는 했지만, '청룡봉사상'을 포함하여 재직 기간 중 모두 16차례의 표창을 받고 대공 분야에서는 "이근안 없으면 수사가 안 된다"는 말을 들었던 그는 '고문 기술자'라는 말이 억울했다. 그는 과의 인터뷰에서 "훈장을 타서 매달 10만 원씩 받을 수 있는 돈도 안 받았다"며 "내가 그 돈을 받기 위해서 애국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안중근 의사가 돈 받으려고 그랬나. 마찬가지다"라고 자신을 안중근 의사에 비유하기도 했다.

그런데 2010년 2월 7일 보건복지부 장관이었던 김 상임고문이 이 전 경감을 옥중면회 했다. 이 전 경감은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김 장관이 들어오자 정중히 고개를 숙이며 '지난 일은 죄송하게 됐다'며 고개를 숙이자 김 장관이 양팔을 벌려 포옹을 해왔다. 그리고는 '그게 어떻게 개인의 잘못이냐. 이 시대가 낳은 비극 아니냐'며 위로를 건네는 게 아닌가."

정작 면회를 마친 김 상임고문은 그날 "밤잠을 설쳤다"고 한다. 면회 2주 뒤 자신의 홈페이지에 "저 사죄는 사실일까?"라며 혼란스러워했다. 자신의 사타구니에까지 전기고문을 가했던 자였다.

작가 공지영 씨는 관련 일화 한편을 트위터(@congjee)에 소개했다.

"몇 년 전 뵈었을 때, 우연히 이근안을 만났다고. 그가 울며 잘못했다 용서해달라고 했을 때 너무 가식처럼 느껴져 도저히! 그를 용서할 수 없었다고. 그게 몇 달 후까지 자신을 괴롭힌다고. 나 너무 옹졸한가? 물으셨죠."

이 전 경감은 2006년 11월 출소해 '대한예수교장로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자신이 목회자로 입문한 건 "간첩죄로 잡아들인 애들이 후일 민주화 인사로 보상받는 걸 보고 울화가 치밀어 감옥에서, 믿을 수 있는 나라, 배신 없는 나라를 찾다 보니 하늘 나라를 찾게 되었다"라고 밝혔다.

"당신을 용서하는 마음을 갖고 이 자리에 왔다"

김근태는 애초 이근안을 만나야 할지 망설였고, 면회 사실 공개도 원치 않았다고 한다.

"언론에 알려지지 않기를 바랐던 것은 물론 이근안 씨를 만난 것이 정치적으로 해석되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만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내 마음이 정리되지 않고 혼란스러웠기 때문이다."

참회하겠다며 목사가 된 이의 마음은 미해결 사건으로 남을 것 같다. 김근태는 "당신을 용서하는 마음을 갖고 이 자리에 왔다"고 말했으나, 시대가 이근안을 용서했을지는 의문이다.



/이명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