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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2월 8일 금요일

자살한 기관사의 마지막 기록, "미친 듯이 지적 확인"


이글은 프레시안 2013-02-08일자 기사 '자살한 기관사의 마지막 기록, "미친 듯이 지적 확인"'을 퍼왔습니다.
[위기의 지하철 기관사 ④] 4분 때문에 인생이 바뀐 어느 기관사 이야기

(프레시안)은 '위기의 지하철 기관사' 기획을 통해 기관사의 근무 환경 등을 들여다보고 있다. 이번에는사고를 낸 기관사의 심리 상태를 상세히 다루고자 한다. 지난해에 발생한 '오산대역' 사고는 기관사가 느끼는 압박감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유족 등의 2차 피해 가능성 때문에 기사에서 실명은 생략했다. (편집자)


돌이킬 수 없는 4분,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다

1년여 전인 지난해 1월 15일 오후 7시 46분, 경부선 오산대역 하행선에서 지하철 1호선 열차가 역을 지나쳐 운행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전 역에서 예정 시간보다 1분 늦게 출발한 이 전동차 기관사는 가속 운전을 했고, 승강장을 지나치는 실수를 했다. 함께 탄 열차 승무원이 비상 제동을 걸었다. 정차 위치에서 312미터 나간 지점에서, 전동차는 멈췄다.

  
▲ 지하철 기관사들은 '사고'에 민감하다. 사고 전에도, 사고 후에도 '감정 노동'에 시달린다. ⓒ연합뉴스

기관사는 퇴행(후진)을 해야 했다. 왜 지나쳤을까. 아픈 아이의 건강에 대해 걱정을 하기는 했었다. 기관사는 순간의 실수에 당황했다. 게다가 예정된 시간에 맞춰야 했기 때문에 속도를 냈다. 퇴행 시 규정 속도(시속 25킬로미터)를 넘겨 시속 29킬로미터를 찍자 함께 탄 승무원이 다시 비상 제동을 걸었다. 33미터 정도 퇴행한 후였다.

시간이 없었다. 당황한 기관사는 다시 퇴행을 했고 속도 표시판은 시속 46킬로미터를 찍었다. 정차 위치를 다시 지나쳤다. 다시 전방으로 이동해 간신히 승강장에 멈췄다. 승객을 내리고 태운 후 전동차가 움직였다. 예정 시간보다 4분 늦었다. 인명 피해는 없었으나 언론은 이 실수를 크게 보도했다. 한 유력 신문은 "이번에도 기관사 '딴 생각'…코레일, 또 역주행"이라는 제목을 뽑았다. ‎그 책임은 고스란히 기관사에게 쏠렸다.

사고 당일 있었던 승무적합성 검사를 보면 해당 기관사는 음주, 질병, 휴양 관계에서 모두 양호하다는 판정을 받았고, 7시간 수면을 취한 상태였다. 건강하던 이 기관사는, 이 4분 때문에 남은 생을 괴로워하다 지난해 6월 23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어지는 지탄, 중징계, 그리고…

  
▲ 기관사는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날, 자신의 상태에 대해 어지러운 자필 글씨로 써 내려갔다. ⓒ프레시안(박세열)

지하철은 앞뒤 몇 분 간격으로 직렬 운행된다. 뒤에서 오는 열차와 앞에 가는 열차 사이에서 끼여 4분을 허비한 기관사의 마음도 앞뒤로 폐쇄될 수밖에 없다.

(프레시안)은 5일 이 기관사의 유품들과 사고 관련 자료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자료를 보여준 철도노조관계자는 "일본에서는 열차가 3~4분 지연돼 마음이 조급해진 기관사가 속도를 내다가 곡선 구간에서 탈선하는 사고도 있었다"며 "오산대역 사고 때도 몇 분의 시간을 회복하기 위해 무리하게 빠른 속도로 퇴행을 했다. 결국 그것이 징계의 주요 사유가 된 것"이라고 씁쓸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사고를 낸 기관사는 이후 죄책감에 시달렸다. 다음날 중징계가 내려졌다. 43일간 독방에서 고등학생이 영어 단어를 외울 때 숙제로 '깜지'를 쓰듯 철도 운전 규정을 필사해 검사를 받았고, 복도 청소도 해야 했다. 이전에는 사실상 사문화됐던 징계 방법인 '기관사 인증 재심의'까지 거쳐야 됐다. 일종의 기관사 면허 시험인 인증 심의를 다시 받는다는 것은, 대학생이 중학교 입학 시험을 다시 치러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철도노조 관계자는 "징계로 인증 심의를 다시 받게 한 전례는 없었다. 굉장히 굴욕적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기관사는 그해 2월 28일 업무에 복귀했지만, 조울증에 시달렸다. 동료 기관사들은 당시 이 기관사가 "어느 날은 '난 이제 운전을 할 수 없어'라고 좌절하다가, 그다음 날에는 '난 운전이 천직이야'라고 자신만만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고 전했다.

결국 이 기관사는 감봉 처분을 받고 전직을 요청해야 했다. 그는 '차량 검수'로 전직을 요청하면서 그해 6월 22일, 삐뚤빼뚤한 자필로 '고충신청서'를 힘겹게 작성했다. 그날 이 기관사와 승무사업소장의 면담 내용은 고스란히 기록돼 있다. 그는 그날 소장과 담당 팀장에게 "감사하다"고 인사한 후 귀가했다. 다음 날, 그는 자신의 아파트 옆 동에 올라가 투신했다. 

자살한 기관사가 남긴 기록…"미친 듯이 지적 확인" 

이 일이 있은 후 철도공사 노사는 징계 개선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그와 별개로 이 기관사가 남긴 기록은 사고를 겪은 기관사의 심리 상태를 잘 드러내준다. '안전 규정'을 필사하는 굴욕을 당하고 조울증에 시달리면서도, 그는 마음을 다잡기 위해 필사적으로 수첩에 메모를 했다. 자신에게 '호통'을 치는 형식을 취한 모습도 확인된다.

이 기관사는 "잊지 말자 오산대역 사고(잡념)"라고 큼지막한 메모를 했다. 수첩 곳곳에 "지적 확인(기자 : 기관사가 운전을 할 때 일일이 손으로 계기판 신호등 등을 가리키면서 신호 상황, 작동 상황 등을 점검하는 일) 환호 응답의 생활화", "자신을 보호하고 업무상 오류를 최소화하기 위하여"라고 적었다.

그는 특히 "지적 확인"을 수차례 반복해 적었다. "큰소리로 팔을 곧게 펴고 정확히 발음한다", "미친 듯이 지적 확인, 틀리면 바로 기립 집무, 창문 개방", "위규 운전은 엄벌에 처함", "비상(제동)을 아까워하지 말라", "이 모든 것을 지적 확인으로 막을 수 있는데 왜 안 하려고 하느냐. 정년까지 무사히 가려면 지적 확인은 필수, 규정에 입각한 조치는 꼭 필수, 위규 운전(조치는) 최악(최대의) 벌(중징계)이다"라고 자신에게 처절하게 말을 걸었다.

오산대역 퇴행 시 속도 조절을 하지 못한 것을 떠올린 듯 "임의 퇴행하면 죽는다 (명심) X된다(절대 퇴행 금지)"라는 식으로 속어를 사용하기도 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사고 발생 과정과 문제점을 끊임없이 복기하며, 그날의 '악몽'을 되새기는 작업이었다. "지적 확인만이 살길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꼭 꼭 (지루함)" 이라는 글귀도 보인다.

기관사들은 수도 없이 사고를 겪는다. 지난 4일 부산 지하철에서 우울증에 시달리던 한 20대 여성이 맞은편에서 들어오는 전동차 앞으로 뛰어드는 일도 일어났다. 다행히도 그 여성이 곧바로 선로 사이 기둥에 숨어 목숨을 건졌다는 사실이 신문 사회면 '단신'으로 처리됐다. 그러나 눈앞에서 뛰어드는 여성을 본 기관사에 대한 소식은 그 단신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한 기관사는 "자살하기 위해 눈앞에 뛰어드는 사람과 눈이 마주친 적이 있다는 기관사들도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오늘 사고를 겪고 내일 운행 걱정을 하는 기관사의 마음은 아플 수밖에 없다.

  
▲ 기관사가 남긴 수첩의 일부. ⓒ프레시안(박세열)

/박세열 기자

2013년 1월 30일 수요일

사람 잡는 1인 승무제…공황장애 15배, 트라우마 8배


이글은 프레시안 2013-01-29일자 기사 '사람 잡는 1인 승무제…공황장애 15배, 트라우마 8배'를 퍼왔습니다.
[위기의 지하철 기관사 ②] 벼랑 끝 기관사…노동 환경 개선 시급

1월 19일, 서울 지하철 6호선 기관사 황아무개 씨가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가족에게 출근 인사를 하고 집을 나선 황 씨는 회사에 가는 대신 아파트 옥상에서 몸을 던졌다. 황 씨는 삶을 마감하기 얼마 전 가족에게는 "회사 가는 것이 힘들다"고, 동료들에게는 "차에 타는 것이 힘겹다"고 토로했다고 한다. 가족과 동료들은 '기관사를 천직으로 알고 15년간 성실히 일한 사람'으로 황 씨를 기억한다. 그런 황 씨가 변한 건 지난해 10월 사고를 겪으면서다. 한 승객의 가방이 황 씨가 운행하는 열차의출입문에 낀 사고였다. 다행히 승객이 크게 다치지는 않았지만 황 씨는 이 일로 회사에서 심하게 질책을 당했다. 이를 계기로 황 씨는 이전과 달리 강박증과 심한 우울증 증세를 보이고 공황장애로 힘들어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유족과 서울도시철도공사 노동조합은 이번 비극이 황 씨 개인의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기관사 한 사람이 모든 것을 책임지고 운행해야 하는 구조, 그리고 "기관사에게 모든 책임을 몰아 매도하는 조직 문화"가 비극의 배후에 있다는 주장이다.  수많은 기관사가 생전의 황 기관사와 마찬가지로 과도한 압박에 시달리고 있으며, 그런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비극은 계속될 것이라고 이들은 경고한다. 황 씨처럼 공황장애로 괴로워하다 스스로 삶을 마감한 기관사가 2012년 한 해에만 3명이나 있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이는 지하철 기관사의 노동 조건에 한정된 문제가 아니다. 수많은 시민의 안전과도 직결된 사안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시민의 발'을 안전 운행하기 위해 노심초사하는 기관사들의 고충에 눈감는다면, 지하철을 이용하는 시민들도 언제든 위험에 빠질 수 있다. 은 지하 터널을 누비는 지하철 기관사들의 현실을 짚는 기획을 마련했다.

위기의 지하철 기관사① "동료들 연이어 자살…이젠 나도 날 못 믿겠다" 지난해 3월 12일 공황장애를 앓던 서울도시철도공사 이아무개 기관사가 지하철 5호선 왕십리역에서 달리는 열차에 몸을 던져 자살한 사건이 벌어졌다. 당시 분향소를 방문했던 박원순 서울시장은 '서울시 지하철 최적근무위원회'를 설치해 근무 환경이 서울도시철도공사 직원들의 심리 상태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이를 바탕으로 근무 환경을 합리적으로 개선해나갈 것을 제안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9월 한림대학교 산학협력단 주용수 교수팀은 '서울특별시도시철도공사 정신 건강 실태 조사 및 개선 방안 연구'를 발표했다.

그러나 위원회가 이 연구 결과를 토대로 공식 권고안을 내기 전인 지난 19일, 황아무개 기관사가 또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이 발생했다. 이 단독 입수한 '서울시 도시철도 안전 운행을 위한 승무 방식 선택 시 고려해야 할 가이드라인 권고안' 초안은 주 교수팀의 연구 결과에 따른 후속 조치를 담고 있다. 이 안은 아직 정식 권고되지 않은 상황이다.

이 안에는 1994년 개통할 때부터 기관사만 승차하는 1인 승무 체계를 고수해 온 서울도시철도공사의 업무 행태의 문제점이 지적돼 있다. 이 안은 "특히 도시철도공사처럼 개통 당시 1인 승무 체계로 시작되었던 대구도시철도에서는 2003년 대규모 참사가 발생하였으며 이 원인 중 하나로 1인 승무 체계가 문제로 지적되었다. 최근에 와서 도시철도공사 기관사의 정신 건강 문제가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되었고 이 역시 같은 문제가 원인인 것으로 적시되고 있다"고 권고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이 안은 "수천 명 승객의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기관사의 정신 건강 문제는 사회적으로도 매우 위험한 일이다. 이 점을 고려할 때 1인 승무 체계가 노동자와 이용자의 안전을 책임질 수 있는 형태로 운영되어야 하며 이를 위한 적정 가이드라인이 제공되어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다.

이 안은 "물리적 조건 8가지와 인적 조건 2가지가 모두 만족되지 않으면 서울시 도시철도에서는 1인 승무 체계 운영을 재고해야 한다"고 밝혔다. 물리적 조건 8가지는 △ATO(자동열차운전장치) 시스템 이상의 기술 지원 △혼잡률 150% 이하(전동차 1량에 승객 140명 이하) △1인 이상의 역무원 상시 배치 △8량 이하의 전동차 운영 △자동 운전 및 자동 방송 △지상 구간이 10% 이하일 경우 △사고 시 기관사 외에 관제에서 방송·안내 책임 분담 △스크린도어 전체 설치이고, 인적 조건 2가지는 △승무 및 휴식 시간 보장 △건강 장애 호소자 승무 배제다.

정식으로 제안된 권고안은 아니지만, 현재 서울도시철도 운행 상황은 이 안이 제시하는 조건에 대부분 미달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 2008년 2월 18일 대구지하철 참사 5주기를 맞아 중앙로역에 마련된 분향소에 시민들의 헌화가 이어지고 있다. 대구지하철에서는 2003년 대규모 참사가 발생했는데, 피해 규모를 키운 원인 중 하나로 1인 승무 체계가 지적되기도 했다. ⓒ뉴시스

트라우마 유병률 일반인의 8배, 공황장애는 무려 15배


이 권고안의 배경이 된 주 교수팀의 연구는 2012년 6월 29일부터 7월 8일까지 서울도시철도공사 전 직원 중 4075명(64.01%)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이 연구 결과에 따르면 운전 직군은 보상 문제를 제외한 모든 영역에서 직무 스트레스가 높게 나타나 '스트레스 고위험군'으로 분류됐다. 특히 서울도시철도공사가 운영하는 운전 직군의 9조 5교대 방식에 따른 스트레스 강도는 다른 직군보다 매우 높게 나타났다.

특히 이 조사에서 "자신이나 타인의 죽음, 심각한 상해, 또는 신체적 안녕에 위협을 가져다주는 사건을 경험하거나 목격한 경우의 충격적 경험 이후 발생한 스트레스"인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 PTSD, 일명 트라우마)'와 관련해 외상 경험이 있는 사람은 338명(8.3%)으로 나타났고 이 중 업무와 관련이 있는 사람은 209명(5.1%)으로 나타났다. 외상 경험이 있는 사람들 중에서 PTSD 증상자는 164명(48.5%)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본 연구는 단면적인 평가라는 제한점이 있기 때문에 사고 직후 발생할 수 있는 급성 스트레스 반응이나 장기적인 추적 조사가 이루어지기 힘들므로 사고 후 발생할 수 있는 PTSD 영향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서는 각 시기별로 적절히 개입할 수 있는 추적 연구가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설문을 통해 나타난 사람보다 훨씬 많은 이가 위험에 노출돼 있다는 것이다.

▲ 지하철 기관사가 어둠 속에서 운전을 하고 있다. ⓒ프레시안(박세열)

지하에서 나쁜 공기 마시며 사고까지 책임져야 하는 기관사는 슈퍼맨?

가톨릭대학교 성모병원 이강숙 교수팀이 2007년 9월 발표한 '도시철도공사 기관사 정신 보건 임시 건강진단 최종 보고서'를 보면 상황은 더 심각하다.

현업 4급 이하 전체 기관사 961명을 대상으로 한 이 조사에서 우울증의 경우 평생 유병률(일정한 지역 혹은 집단 구성원 중에서 환자가 발생하는 비율)이 3.0%로 나타났다. 국민 평균(2.6%)보다 높은 수치다. 황 기관사를 죽음으로 몰고 간 주요 원인으로 추정되는 공황장애의 경우 기관사들의 평생 유병률은 1.5%다. 일반 인구 집단에서 보고되는 0.1%의 15배에 달한다. 공황장애 관련 1년 유병률은 0.7%로 전 국민 유병률의 7배에 이르렀다. 강박장애의 경우 평생 유병률이 1.8%, 1년 유병률이 1.5%로 전 국민 유병률과 비교했을 때 3배가량 높은 수치를 보이고 있다.

사고 경험에 관한 설문 응답자 827명 중 사고 경험자는 265명(32%), 사고 무경험자는 562명(68%)이었다. 전체 기관사의 40.3%가 승객과 갈등 상황을 경험했고, 62.2%가 중압감으로 인해 운전을 회피하고 싶은 마음이 든 적이 있었다. 비상벨로 인해 심리적 부담을 느낀 경험이 있는 사람은 75.2%였다.

자신의 실수나 기계 문제로 인해 사고가 날 뻔한 경험이 있는 사람은 31.2%였으며, 이 중 7%는 이로 인해 징계를 받은 경험이 있었다. 동료의 사상 사고 경험 소식에도 47.8%의 기관사가 불안이나 '가슴 떨림'을 경험했다. 중압감 때문에 운전을 회피하고 싶은 생각을 항상 한다는 기관사 28명(3.4%) 중 사고 경험이 있는 기관사는 12명, 사고 경험이 없는 기관사는 16명이었다. 모든 사고 경험이 곧바로 PTSD로 이어진다고 가정할 수는 없지만, 이 연구 결과에 따르면 PTSD로 인한 지하철 기관사의 '1년 유병률'은 일반 인구 집단의 8배에 달한다.

이 보고서는 "기관사들이 운전을 하는 공간은 주로 지하 공간으로, 심리적 폐쇄감이 상당하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좋지 않은 공기질의 영향은 간접적으로 심리적 폐쇄감을 유발할 수 있다. 지하 공간 자체에 민감한 사람들에게 공황장애 등이 유발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또한 "기관사들은 운전뿐 아니라 출입문 개폐 등의 작업을 주로 하게 되는데, 특히 출퇴근 시간 때는 이를 둘러싼 승객과의 마찰이 있을 수 있다. (…) 운행 중 운전 외에 관여해야 하는 '운전처와 송수신' 등 복잡한 운전 상황, 승객들이 누르는 비상벨에 대처해야 하는 상황 등, 실제 운전 외에 기관사가 처리해야 하는 복잡한 상황이 상당히 많이 주어진다. 일상적인 상황에서 별 문제가 되지 않는 작업 조건들이라도 어떤 이례적 상황에 놓이게 되면 상당한 스트레스를 유발할 수 있게 된다"고 지적했다.

지하철 기관사가 각종 정신 질환에 시달린다는 사실은 이처럼 여러 연구 결과가 뒷받침해 준다. 직업과 관련해 발생한 정신 질환의 경우 직업병으로 승인 받기도 어렵고, 막상 승인을 받아도 효과적인 치료를 받는 경우가 드물다는 것도 문제다. 치료 후에도 체계적인 작업 복귀 프로그램은 전무하다. 결국 모든 사고에 대해 책임지고 그 후유증을 감당하는 것은 기관사 자신의 몫으로 여겨지는 게 현실이다.

"한 달 동안 악몽"…"운전 중에 누군가 옆에 있었으면"

2007년 9월 가톨릭대 연구팀이 발표한 보고서와 2012년 9월 한림대 연구팀이 발표한 보고서에는 익명의 기관사들을 대상으로 한 심층 면접 내용이 실려 있다.

이 중 가톨릭대 연구팀 보고서에는 기관사들의 다음과 같은 호소가 담겨 있다.

"어떤 때는 기차에서 뛰어내리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기도 해요. 꽉 막힌 공간에 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내 자신을 어찌할 수 없는 그런 상태를 경험한 적도 있어요. 그럴 땐 나름대로 방법을 만들죠. 사진이지만 파란 하늘을 본다거나, 다른 생각을 하려고 노력하는 거죠. 매일 그러는 건 아니에요. 몸 상태가 나쁘거나 하면 이런 느낌이 더 심해지는 것 같아요."

"서울메트로는 지상 공간이 있잖아요. 근데 우리는 100% 지하 공간이에요. 3시간 넘게 지하에서 운전해 봐요. 집중을 하면 오히려 미쳐 버립니다. 승객에 대한 부담감이요? 있죠. 그런데 대구지하철 (참사) 있고 나서 더 심해졌어요."

"운전 중에 누군가 옆에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자주 들어요. 운전 중에 어떤 때는 동료 기관사가 아는 체를 하거든요. 그러면 앞으로 태우죠. 옆에 누군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막 편안해져요."

"OO역에서 사상 사고가 났어요. 부딪히는 소리가 그렇게 크게 들릴지 몰랐어요. 그 순간 머릿속이 까매져요. 뭘 해야 될지 아무 생각도 안 나요. 그날 운전도 다 끝내고 집에 있는데 자꾸 그 장면이 떠오르고, 두렵고 무섭더라고요. 한 달 동안 거의 매일 악몽에 시달렸어요."

"병원엔 안 가봤어요. 그냥 이겨낼 수 있을 것 같더라고요. 처음엔 몰랐는데, 일주일쯤 있다가 그 역을 지나는데, 머리가 삐쭉 서는 느낌이 들어요. 갑자기 가슴이 쿵쾅쿵쾅하는데, 미치겠더라고요. 몇 번 그런 적이 있어, 병원에 가볼까 생각도 했는데, 항상 그런 게 아니라… 피곤할 때 더 느낀다고."

"병원에 가봤죠. 의사한테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는 얘기를 들었어요. 약물 치료도 받았고요. 치료 받으면서도 다 잊히는 건 아니더라고요. 신경이 날카로워졌어요. 집에서 부부 싸움도 자주 하고, 애도 귀찮고, 내가 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럴 땐 무섭더라고요."

이 보고서는 "사상 사고 후의 심리 상태는 그 순간의 상태도 문제가 되고, 이후 지속적인 운전을 계속한다면 2차 안전사고의 문제도 우려되었다. 또한 2차 사고에 대한 파악, 그리고 이를 경험한 기관사들에게도 일정한 심리 상담이 필요하다고 판단된다"고 지적했다.

한림대 연구팀의 보고서에도 다음과 같은 기관사 심층 면접 내용이 실려 있다.

"저희 도시철도에 설치된 스크린도어만 10000개예요. 하루에 1%만 고장이 나도 100개니까 계속 그것과 관련된 전화가 걸려옵니다. 그러다 보니 5시에서 7시 사이에 있는 휴식 시간에도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초과근무를 합니다. 회사 측에서는 그러면 다른 시간에 대신 쉬라고는 하는데, 문서상으로나 쉬는 시간이지 사실상 쉬지 못한다고 보면 됩니다."

"제발 눈 가리고 아웅 식의 봉사 활동 같은 것은 이제 없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저희처럼 교대 근무를 하는 사람들은 봉사 활동을 가려면 야간 근무가 끝나고 가야 됩니다. 그러다 보니 2시간 일하고 8시간 봉사 활동을 한 것처럼 받아오는 일도 많습니다."

"하도 시민들에게 욕을 많이 듣다보니 이제는 대인 기피증이 생길 지경입니다. 거기에 시민들이 제기하는 민원 중에는 저희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문제도 많은데 본사 측에서는 알아서 해결하란 식입니다."

"계속 참아야 돼요. 생리적인 것도 참고, 힘들어도 참아야 되고. 업무 중 힘든 것은 시민과 만나는 것, 불량도 있고요, 출퇴근 시간을 맞추는 것, 생리적인 것을 참는 것, 환경도, 어두운 곳에서 계속 불빛이 왔다 갔다 하는 것, 소음도 있고요. 졸립고요, 그래도 참아야 돼요. 첫차를 타게 되면, '6시 15분에 출근하려면 몇 시에 일어나야 하겠다' 하고 잠을 자면 중간에 몇 번 깨는 거죠. 시계 보고, 시계 보고. 차 타러 갈 때도, 타러 갈 때가 되었나? 되었나? 급할 때, 가장 단순하지만 가장 힘든 것 같아요. 야근할 때 저는 저녁을 안 먹거든요. 약간 가스가 차서, 한번 고생을 하게 되면…."

"환경 자체가 터널 근무이므로 안 좋습니다. 터널에서 근무하면서 환경이 나쁘다고 느낀 게 먼지가 기름기에 찌든 먼지입니다. 그런 먼지인 줄은 몰랐어요.환경 측정은 역사만 해요."


 /박세열 기자

2013년 1월 29일 화요일

"동료들 연이어 자살…이젠 나도 날 못 믿겠다"


이글은 프레시안 2013-01-28일자 기사 '"동료들 연이어 자살…이젠 나도 날 못 믿겠다"'를 퍼왔습니다.
[위기의 지하철 기관사 ① - 운전실 동승 취재] 사람 잡는 '1인 승무제

1월 19일, 서울 지하철 6호선 기관사 황아무개 씨가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가족에게 출근 인사를 하고 집을 나선 황 씨는 회사에 가는 대신 아파트 옥상에서 몸을 던졌다. 황 씨는 삶을 마감하기 얼마 전 가족에게는 "회사 가는 것이 힘들다"고, 동료들에게는 "차에 타는 것이 힘겹다"고 토로했다고 한다. 가족과 동료들은 '기관사를 천직으로 알고 15년간 성실히 일한 사람'으로 황 씨를 기억한다. 그런 황 씨가 변한 건 지난해 10월 사고를 겪으면서다. 한 승객의 가방이 황 씨가 운행하는 열차의출입문에 낀 사고였다. 다행히 승객이 크게 다치지는 않았지만 황 씨는 이 일로 회사에서 심하게 질책을 당했다. 이를 계기로 황 씨는 이전과 달리 강박증과 심한 우울증 증세를 보이고 공황장애로 힘들어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유족과 서울도시철도공사 노동조합은 이번 비극이 황 씨 개인의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기관사 한 사람이 모든 것을 책임지고 운행해야 하는 구조, 그리고 "기관사에게 모든 책임을 몰아 매도하는 조직 문화"가 비극의 배후에 있다는 주장이다.  수많은 기관사가 생전의 황 기관사와 마찬가지로 과도한 압박에 시달리고 있으며, 그런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비극은 계속될 것이라고 이들은 경고한다. 황 씨처럼 공황장애로 괴로워하다 스스로 삶을 마감한 기관사가 2012년 한 해에만 3명이나 있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이는 지하철 기관사의 노동 조건에 한정된 문제가 아니다. 수많은 시민의 안전과도 직결된 사안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시민의 발'을 안전 운행하기 위해 노심초사하는 기관사들의 고충에 눈감는다면, 지하철을 이용하는 시민들도 언제든 위험에 빠질 수 있다. (프레시안)은 지하 터널을 누비는 지하철 기관사들의 현실을 짚는 기획을 마련했다. 그 첫 번째는 고(故) 황 기관사가 일한 지하철 6호선의 운전실 동승 취재다. 취재에 협조해준 기관사가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기에 기관사의 실명, 취재 당일 운행 노선 등은 밝히지 않는다. (편집자)

"기관사는 사람이 치여 죽은 자리를 다 안다"

"기관사는요, 사람이 치여 죽은 자리를 다 알아요. 매일 그 자리를 지나가는 거죠. 방금 OO역 지났는데, 여기에서도 사고가 있었죠. 기관사가 운전실 밖으로 나갔는데, 선배(기관사)가 치였어요. 돌아가셨죠. 이를테면 이 역에 잊기 힘든 기억이 생긴 거예요."

좁고 검은 터널이 이어졌다. 서울시민 수백만 명이 매일 이 터널을 달린다. 퇴근길 6호선의 운행을 책임지는 기관사 박철민 씨(가명)가 '마스콘'(주제어기, Master Controller)을 쥔 채 기자에게 말했다. 박 씨의 가슴에는 검은색 '근조' 리본이 달려 있었다. 그의 얼굴에 푸르고 흰 터널 벽 형광등이 환등기 영상처럼 지나갔다.

낮인지 밤인지, 시계를 보지 않고서는 모른다고 한다. 새벽 '주박지'에서 첫차가 나갈 때, 사람들이 우산을 들고 타면 '지금 비가 오는구나' 생각한다고 박 씨는 설명했다. 박 씨는 이날 오후 5시쯤 출근했다. '야간 근무'다. 기자는 6호선의 한 역에서 박 씨가 운행하는 지하철 운전실에 동승했다. 직장인들이 잠시나마 지하철 승객이 되는 퇴근 시간대였다.

"외로울 것 같다고요? 그런 생각은 하면 안 돼요.(웃음) 노선이 길잖아요. 처음에는 저도 앉아서 쓸데없이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했는데, 지금은 그런 생각, 안 하려고 합니다."

열차가 눈앞에 뻗어 있는 좁고 검은 구멍을 가르면 쉭쉭 소리가 터널 벽과 차체 사이를 빠져나와 귀를 때렸다. 선로 이음새 위를 덜컹거리고 지나갈 때마다 차체는 카랑카랑 소리를 내며 파르르 떨었다. 운전실은 한 평도 안 되는 좁은 공간(2.68㎡, 약 0.81평).전조등도 켜지 않고, 터널 벽 형광등과 붉고 푸른 계기판 불빛에 의존하며 박 씨는 능숙하게 고갯짓을 하고 손짓을 했다.

출발한 뒤 제한 속도를 지키며 3~4분 남짓 달리자 또 '목적지'가 나왔다. 40센티미터 정도만 벗어나도 문이 열리지 않는다. 1초, 1센티미터의 오차도 없이 정확히 열차를 부린 박 씨는 출입문 개폐 버튼에 손을 올리고, 오른쪽 전방에 붙어 있는 화면 속 뒤로 길게 뻗은 스크린도어 주변을 꼼꼼히 응시했다. "출입문 닫습니다." 방송이 나간 후 박 씨는 '지적 확인'을 했다. 출입문을 닫고, 전방 신호를 손으로 지적해가며 일일이 확인한 후 자동 운행 버튼을 눌렀다.

"예전에는 터널에 형광등도 잘 안 켰어요. 하나 건너 하나 켜서 지금보다 더 어두웠죠.절전이 목적이라고도 하고…. 5호선 같은 경우는 한강도 땅 밑으로 가요. 해저터널인데, 지날 때마다 불안감이 생기죠. 군데군데 금 간 곳도 보여요. 농담으로 기관사들은 '한강 밑을 가다가 터널이 무너지면 다 죽는 것 아니냐'고 말하기도 해요. 시절이 좋을 때는 지하철에 승무원이 네 명씩 탔대요. 앞 운전실에 두 명, 뒤 운전실에 두 명. 그런데 서울도시철도는 태어날 때부터 1인 승무제였어요. 운전실에서 단 한 명이 전철을 움직여요. 기관사 한 명이 출발지부터 종착역까지 운행의 모든 것을 책임지는 거죠."


▲ 7호선 지하철 운전실에 앉아 있는 기관사(자료 사진) ⓒ연합뉴스

사람 잡는 '1인 승무제'

1990년 6월 서울 지하철 5호선이 착공된 후 1994년 1월 15일, 서울메트로(1·2·3·4호선 운행)와 별도로 서울특별시도시철도공사가 탄생했다. 박 씨는 "공사가 왜 두 개인지 잘 이해가 안 간다. 하는 일은 거의 똑같다"고 말했다. 새로 탄생한 도시철도공사는 처음부터 '1인 승무제'를 채택했다. '2인 승무제'를 고수하고 있는 서울메트로와 달리 한 명의 기관사가 모든 돌발 상황에 대응해야 하는 시스템이다. 자동화 기술의 발전과 같은 이유들이 붙었지만,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인건비를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로 이해했다. 그러나 이는 기관사 한 명에게 극한의 스트레스를 집중시키는 근무 방식이다.

크고 작은 고장은 일상다반사다. 간혹 승객이 문에 끼이거나 하는 문제도 발생한다. 그런 상황으로 연착이 되거나 승객들의 '항의'가 들어오면, 그 책임은 모두 기관사가 져야 한다. 그렇게 되면 기관사의 근무 평가는 악화되고, 기관사가 속한 조의 성적도 낮아진다. 각종 불이익을 감내해야 한다. 기관사들은 자신들 중 30% 정도가 '사상 사고'를 경험한다고 한다. 이 경우 근무 평점도 평점이지만, 기관사 본인은 극도의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박 씨가 운행하는 전철은 어두운 터널 속을 1시간 정도 달려 종착역에 도착했다. 모든 승객이 내렸다. 복잡한 신호 체계를 몸으로 체득한 듯 보이는 박 씨는 기지로 향하는 전철을 능숙하게 다뤘다. 기지는 종착역에서 약 10분 거리에 있다. 기지에서 근무 관련서류를 작성한 후 박 씨가 캔 커피를 뽑아서 마신 시간은 저녁 8시 20분 무렵. 해가 떨어진 지는 오래이고, 바람은 유달리 차가웠다.

종착역에서 다음 운행 열차를 받기로 한 시각은 오후 9시 10분. 50분 정도 시간이 남았지만, 기지에서 종착역까지 승무원 전용 '운행차'를 타고 이동하는 시간 15분 정도를 빼면 종착역에서 출발하는 기차 운전대를 잡기 전에 30~40분 정도 쉬는 셈이다. 박 씨는 가슴에 검은색 '근조' 리본을 단 동료 기관사들 몇 명과 안부 인사를 나눴다.

"며칠 전 일어난 회기역 사고(1월 24일 발생) 얘기 들었어요?""네""뉴스 보고 화가 났어요. 미친 것 아냐? 사람이 치여 죽었는데, 그 기관사를 구로역까지 운행시켰다는 것 아녜요…. '빠릿빠릿하게' 했으면 청량리쯤에서 바꿔줄 수도 있었을 텐데."

대화가 이어지는 와중에도 박 씨는 '승객들이 불편하더라도, 당장 운행을 중단시키고 다른 기관사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은 하지 않았다. 당시 회기역플랫폼에서 청량리역 방면으로 150미터 떨어진 선로에 웬 남자가 앉아 있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을 기관사는 사고를 낸 후, 시신이 수습되자 곧바로 운행에 투입됐다고 했다. 정신적 충격에 빠진 기관사에게 사고 후 1시간 동안 운행을 맡긴 것이다. 박 씨는 "한번 사고가 나면 기관사들은 선로나 플랫폼에서 뭔가가 튀어나올 것 같은 착시에 빠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박 씨는 말을 끊고 애써 웃음을 지어 보였다.

플랫폼에 박 씨와 앉아 얘기를 나눴다. 어두운 운전실에 앉아 빨갛고 파란 계기판을 보며 운행을 할 때보다는 그의 표정이 밝아 보였다. "어두운 곳에서 소음에 갇혀 장시간 일하는 직업이다 보니 '징크스' 같은 것도 있을 것 같다"고 질문을 던지자 박 씨가 입을 열었다.

"주박지라고 있어요. 첫차가 양 끝 기지에서 출발하면 중간에 있는 역에서는 한 시간쯤 후에 첫차를 받잖아요. 그래서 중간에서 출발하는 첫차들이 있어요. 주박 근무자들은 터널에서 잠을 자고 새벽에 첫차를 몰아야 하죠. 기차가 출발하는 곳이 주박지예요. 주박지에는 도저히 뭐가 있을 것 같지 않은 터널 구석에 작은 문이 있고, 침실이 있어요. 주박 근무는 보통 저녁 9~10시쯤 시작하는데, 새벽 1시쯤 막차 운행이 끝나면 그날 주박 근무 기관사들은 주박지로 걸어 들어가 잠을 청하죠. (새벽) 4시 반이 되면 일어나서 첫차를 몰게 되는데, 3시간 정도 쉬는 시간이 있잖아요? (하지만) 자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저도 주박 근무 들어가면 무서워서 잠을 안 자요. 잠깐 피곤해서 눈을 붙이게 되더라도 불은 절대 끄지 않아요. 주박지가, 6호선 라인만 따지면 11개 있죠. 야근하는 인원이 40명 정도라고 하면 그중 11명은 주박지로 들어가는 거예요. 주박지에서 귀신 봤다는 사람도 있고 거기에서 자다가 가위에 눌리는 사람도 있어요. 주박지 근무만 오면 휴가를 내는 사람도 많죠. 새벽 도시의 지하 터널에 있는 조그만 방에 들어가 침대에 앉아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주박지 안에서 불을 절대 끄지 않는 것, 그게 제 '징크스'라면 '징크스'죠."


▲ 지하철을 이용하는 시민들. ⓒ연합뉴스

"기관사 동료들의 연이은 자살…이젠 나도 나를 못 믿겠다"

열차 시간이 가까워지자 박 씨는 "화장실에 다녀오겠다"고 했다. "차를 타기 전에는 무조건 화장실에 갑니다. 뭐가 안 나와도 갑니다. 버릇이에요." 그는 아침을 거르는 게 습관이 됐다고 덧붙였다.

"제일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가 운행 중에 배가 아플 때 어떻게 하느냐는 것인데, 소변기를 들고 탄다든지 하는 얘기들도 있지만 운행 중에 배가 아프면 고통보다도 공포심이 들어요. 땀에 흠뻑 젖어서 두 시간 동안 화장실도 못 간 채 참고 운행을 마쳤던 기관사 얘기도 있죠."

열차가 도착했다. 시간은 정확했다. 회차하는 차량이라 기지에 들어가지 않고 곧바로 박 씨가 교대해 운행하게 된다. 전철에 올라타니, 미처 못 내린 할아버지 한 분이 안절부절못하고 서 있었다. 박 씨는 "조금만 기다리세요. 조금 있다가 출발하기 전에 반대편 문을 열어드릴 테니 내리세요"라고 친절히 일러두었다.

박 씨는 마치 터널 속의 터널 같은 지하철의 긴 객차 속을 뚫고 걸어가 반대편 운전실에 들어간 뒤 문을 걸어 잠갔다. 새로 운행을 시작해야 한다. 비상 상황일 때 마이크가 작동하지 않으면 곤란하기 때문에 마이크 테스트와 안내 방송 테스트를 하느라 창문을 잠깐 열었다. 창밖에 귀를 기울이던 그는 문을 닫았다. 1분 후면 출발한다. 출발하기 전, "운전할 때는 이런 말을 하면 안 된다"며 박 씨가 '우울한 얘기'를 마지막으로 꺼냈다.

"예전에 한 기관사 선배가 이런 얘길 입버릇처럼 했어요. '야 니네 버튼 누르고 다니다가 그냥 가는 수가 있다.' 농담처럼 하는 얘기죠. 그 선배가 어느 날 휴가를 내더니 고향 여수 바닷가에 가서 투신 자살을 했어요. (1월 19일 세상을 떠난) 황아무개 기관사는 애가 셋이에요. 큰애가 아홉 살, 둘째가 네 살, 막내가 한 살이에요. 그런데, 자살을…. 작년에 스스로 목숨을 던졌던 이아무개 기관사는 원래 기관사 출신도 아니에요. 전직을 해서 온 사람이에요. 기관사 중 좀 문제가 있는 사람은 다른 곳으로 전직을 시키는데, 기관사가 승무직에서 다른 곳으로 옮기면, 다른 직군에서 기관사로 또 와야 하잖아요. 그렇게 온 사람이에요. 그런 사람도 자살을 하는 것을 보고 '야, 전직한 사람도 그러는구나' 하고 충격을 받았죠.

황 씨가 정말 그런 사람이 아닌데…, 자살을 하는 것을 보고, 다른 동료 기관사가 혹시나 해서 병원에 가봤대요. 전혀 몰랐는데, 원래 자기 몸은 자기가 알잖아요, 그 기관사, 병원에서 공황장애 진단 받고 바로 입원을 했어요. 멀쩡하던 사람이 갑자기 정신장애로 입원한 상황. 이해하세요? 그런 걸 겪으니, 이젠 나도 나를 못 믿겠어요. 내 내면에 뭐가 있는지…. 내가 모르는 다른 영역이 있는 것 같아요."


 /박세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