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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2월 8일 금요일

"열차가 들어서자마자 기둥 뒤에서 갑자기..."


이글은 오마이뉴스 2013-02-08일자 기사 '"열차가 들어서자마자 기둥 뒤에서 갑자기..."'를 퍼왔습니다.
[동승취재] 공황장애 시달리는 지하철 기관사들... "1인 승무제 개선해야"

지난 1월 19일, 출근한다며 집을 나섰던 기관사 황아무개(40)씨가 자신이 살고 있던 아파트 옥상에서 몸을 던졌다. 기관사 일을 '천직'이라고 여기던 그가 죽음을 선택한 이유는 '공황장애' 때문으로 알려졌다. 황씨 이외에도 2012년에만 3명의 지하철 기관사가 공황장애 등의 문제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지하철 기관사의 공황장애는 2004년 산업재해로 공식 인정된 바 있다. 2007년 가톨릭대학교가 서울도시철도공사에 근무하는 기관사 836명을 상대로 특별건강검진을 한 결과, 기관사의 공황장애 유병률이 일반인의 7배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관사들은 동료들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이유에 대해 개인적인 일보다 조직 문제와 기관사의 열악한 노동환경이 크게 작용했다고 입을 모은다. 기자는 기관사들의 현실을 살펴보기 위해 지난 1일 지하철 6호선에 기관사와 동승했다. 6호선은 고인이 된 황씨가 운전했던 지하철이다. 

지하철 6호선 봉화산역에서 응암역까지 지상으로 나가는 구간이 단 한 번도 없다. 밖의 날씨가 어떤지조차 알 수 없다. 그저 묵묵히 어둠 속을 지날 뿐이다. 도시철도공사의 기관사들은 어둠 속에서 하루 평균 4.7시간 운행한다. "공황장애가 없더라도 답답증을 호소하시는 기관사가 많다"고 함께 동승했던 기관사 유호석(가명)씨는 말했다. 

유씨와 열차에 동승했던 때는 출근시간이 마무리된 오전 즈음. 승객은 많지 않았다. 그는 한 평 남짓한 어두운 운전실에서 몇 개의 불빛에 의존해 운전했다. 열차는 긴 터널을 묵직한 쇳소리를 내며 통과했다. 운전실에서는 선로 위를 지나가는 소리가 더 크게 들려왔다.

'양호'라는 글자 떠야 출입문 여는 기관사  

▲ 열차를 세웠을 때 오른쪽 전방에 보이는 화면. 스크린도어와 열차 출입문이 잘 맞으면 화면에 '양호'라는 글자가 뜬다. ⓒ 김은희

긴 터널을 2분 정도를 달리자 '다음 역'이 나왔다. 열차를 잠시 세우고 유씨가 쳐다 본 것은 오른쪽 전방에 있는 몇 개의 화면. 스크린도어 앞 승객들을 보여주고 있는 CCTV(폐쇄회로TV)와 열차가 스크린도어에 알맞게 정차했는지를 보여주는 화면이었다. 

그 화면에는 열차가 서야하는 지점에서 몇 미터를 벗어났는지도 보여준다. 화면에 '양호'라는 초록색 글자가 떴다. 스크린도어와 열차 출입문이 잘 맞았다는 신호다. 유씨는 그제야 출입문 개폐 버튼을 눌렀다.

"스크린도어 설치가 사상사고 예방에는 도움이 많이 됐죠. 그런데 기관사에게는 굉장히 어려움이 많아요. 스크린도어와 출입문이 잘 맞아야 개폐가 되니까요. 정확하게 위치를 확인하느라고, 승강장 주변을 살펴보기가 어려워요." 

유씨는 스크린도어가 생긴 후 승객들의 안전과는 별개로 기관사들이 겪는 어려움이 있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기관사가 스크린도어와 출입문 사이에 사고가 없는지 살펴야 하는데, 화면에 잘 보이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또 기관사는 운전대에 집중해야 하니까 확인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실제로 전방에 설치된 CCTV 화면은 승객들을 자세히 보기에는 무리가 있어보였다.

고인이 된 황씨도 지난해 10월, 이런 어려움 때문에 사고를 겪었다. 황씨는 승객이 손짓하는 것 같아 열차를 세웠다. 그러나 관제실에서는 이상이 없으므로 출발하라고 했고 황씨는 그대로 따랐다. 다음 역에 가보니 열차 출입문에 승객의 가방이 끼어있었다. 다행히 인명사고는 없었으나 회사의 질책이 돌아왔다. 황씨가 기관사로서 주의의무를 소홀히 했다는 것이다. 그 뒤부터 황씨는 공황장애 증세를 보였다고 한다. 사소한 것들도 걱정하고 불안함을 느꼈다고. 

유씨는 죽은 황씨가 겪었던 사고를 두고 회사 조직의 문제점을 꼬집었다. 그는 "기관사도 사람이기 때문에 실수를 할 수밖에 없다"며 "그런 실수들을 시스템을 통해 극복하게 만들어줘야 하는데, 회사는 그걸 질책만 하기 때문에 기관사 입장에서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서울도시철도공사(5~8호선)'는 '2인 승무제'를 실시하고 있는 '서울메트로'(1~4호선)와는 달리 '1인 승무제'를 유지하고 있다. 단 한 명의 기관사가 열차 출발지부터 종착지까지 운행 전체를 책임진다. 이는 기관사에게는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유씨는 '2인 승무제'를 시행할 경우 기관사들의 스트레스를 근본적으로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누군가 옆에 있어준다면 사고 상황 대처가 덜 버거울 것"이라고 말했다. 

지하철 기관사들의 '1인 승무제' 부담은 기관사에게만 한정되는 문제가 아니다. 기관사가 수많은 시민들을 책임지고 있기 때문에 시민의 안전과도 직결된다. 실제 서울도시철도공사(5~8호선)의 경우 2012년 기준 일평균 273만 2997명의 승객을 수송했다. 현재 서울도시철도공사의 총 기관사는 약 900명이다. 즉, 기관사 한 명당 약 3036명의 승객을 수송하는 셈이다.

1시간여만에 종착역 도착, 5분 휴식 뒤 다시 출발

▲ 유씨가 운행하는 열차가 역으로 들어서고 있다. ⓒ 김은희

유씨가 운행했던 열차는 1시간여를 달린 끝에 종착역에 닿았다. 그는 바쁘게 가방을 꾸려 문을 나섰다. 그러나 그의 운행은 끝난 게 아니었다. 그가 오전에 출발했던 역 방향으로 다시 운행을 시작해야 했다. 반대방향 끝의 운전실로 이동했다. 다시 출발하는 시간까지 약 5분여의 시간 여유가 있었다. 그는 물로 목을 축인 뒤, 출발 준비를 했다.

운행을 시작하자 플랫폼에서 기다렸던 승객들이 열차에 몸을 실었다. 유씨는 열차에 탑승하는 승객들을 바라보다가 예전에 있었던 사고 얘기를 꺼냈다. 그는 몇 년 전 열차 운행 중 사상 사고를 겪었다. 역에 열차가 들어서자마자 누군가 선로에 뛰어들었던 것. 다행히 사람이 죽지는 않았지만, 그 사고를 겪은 후 두세달 동안에는 굉장히 힘들었다.

"사고 당시 '쿵'하는 소리가 쉽게 잊히지 않았어요. 그 당시는 그냥 넘어갔는데 한참 지나서 어디선가 '쿵' 소리가 나면 불현듯 그 때 장면이 떠오르더라고요. '아 내가 그 때 이런 소리를 들었었구나' 싶고요. 그 뒤로는 승강장에 열차가 들어갈 때 긴장하게 되더라고요. 간혹 열차가 들어가는 것과 동시에 움직이는 사람들이 있어요. 기둥 뒤에 있다가 갑자기 나온다든지, 앉아 있다가 벌떡 일어난다든지. 그런 사람들 보면 철로로 갑자기 뛰어내릴 것 같아서 긴장했죠. 그렇게 두세달은 힘들었던 것 같아요."

유씨의 사고 후유증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사그라졌다. 그러나 기관사들 중에는 사고 후유증이 오랫동안 남아 있는 이들도 더러 있다. 사고 후에 트라우마를 잘 극복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나 연속적으로 사고를 겪는 기관사들이 그렇다. 그런 경우는 일을 하지 못할 만큼 힘들어한다. '혹시나'하는 생각에 자꾸만 불안하게 되고, 운전을 할 때에 강박증에 시달린다. 

그러나 더욱 문제는 그 후 회사의 대처방식이다. 열차에서 사고가 나면 회식을 취소한다든지, 조원 교육을 한다든지 '징계성' 대응을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사고를 낸 기관사는 조원들 사이에서 '문제를 일으킨 사람'이 된다. 이런 상황은 기관사가 겪은 사고가 마치 개인의 잘못이자 조원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인냥 인식될 수밖에 없다.

현재 서울도시철도공사는 '9조 5교대(주간근무-주간근무-야간근무-비번-휴일, 주간근무-야간근무-비번-휴일)'로 기관사들끼리 조를 이뤄 교대근무를 하고 있다. 각 조원들은 10-15명으로 관리자인 PL(Part Leader)이 한 명씩 배정된다. PL은 조의 기관사들을 전반적으로 관리하는 역할을 맡고 있고, 기관사들의 성과금과 승진 평가에도 관여한다. 그러다보니 기관사들은 PL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유씨는 이러한 구조를 "회사의 통제시스템이 강화된 것"이라고 설명하면서 "당장 1인 승무제를 폐지해줄 것도 아니라면, 통제 시스템이라도 완화해줬으면 좋겠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현재 도시철도노조는 조를 없애고 각 기관사에게 개별적인 운행 일정을 주는 시스템인 '개별교번제'의 시행을 촉구하고 있다. 

유씨와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는 사이, 그와 오전에 출발했던 역으로 돌아왔다. 약 2시간의 여정이었다. 플랫폼으로 나오자마자 반사적으로 큰 숨을 한번 내뱉었다. 막혔던 숨이 확 트이는 순간이었다. 귓가에는 한참동안이나 선로 위를 굴러가는 열차의 쇳소리와 함께 그가 마지막에 답답해하며 뱉었던 소리가 귓가를 떠나지 않았다. 

"안 좋은 일들이 있고 나면 '이제는 뭔가 바뀌겠지' 하는데 어떤 변화도 없어요. 기관사들이 요구하는 개선점은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아요. 기관사의 처우개선을 위한 실질적인 노력이 없었어요. 그것도 황씨의 죽음이 있고 나서야 드러났죠." 

서울도시철도공사 "근본적 개선대책 강구하고 있다"

서울도시철도공사에서는 "기관사 처우개선특별위원회를 구성·운영하여 운전분야 현안사항 등에 대해 협의를 계속하고 있다"며 "서울시와 지하철 최적근무위원회를 발족하여 근본적 개선대책을 종합적으로 강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 지하철 승강장에 있는 스크린도어(PSD). 지하철 기관사들은 스크린도어와 출입문을 맞춰 개폐하는 것에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 연합뉴스

기관사들의 '1인 승무제' 폐지 요구를 두고 "5-8호선 열차운전시스템은 기관사 1인이 운전하도록 설계된 첨단시스템"이라며 "공사에서도 예산문제만 지원된다면 전향적으로 검토할 의향이 있다"고 말했다. 

덧붙여 '9조 5교대'에서 '개별교번제'로의 변화를 바라고 있는 기관사들의 목소리에 대해서는 "현재 공사에서 시행하고 있는 기관사 근무형태도 주기만 정형화 되어 있는 개별교번제로 기관사들이 요구하는 교번제와 크게 다르지 않다"라며 "담당PL과 함께 기관사가 9개조로 움직이는 것은 항상 혼자 근무해야 하는 기관사들의 고립감을 해소하고 조직 내의 연대감과 상시 지원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덧붙이는 글 | 김은희 기자는 (오마이뉴스)17기 인턴입니다.

김은희(ombre35)

2013년 2월 1일 금요일

192명 사망 '대구 참사', 승무원 1명만 더 있었어도…


이글은 프레시안 2013-02-01일자 기사 '192명 사망 '대구 참사', 승무원 1명만 더 있었어도…'를 퍼왔습니다.
[위기의 지하철 기관사 ③] 참사 10년, 1인 승무제 그대로 둘 것인가

1월 19일, 서울 지하철 6호선 기관사 황아무개 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가족에게 출근 인사를 하고 집을 나선 황 씨는 회사에 가는 대신 아파트 옥상에서 몸을 던졌다. 황 씨는 삶을 마감하기 얼마 전 가족에게는 "회사 가는 것이 힘들다"고, 동료들에게는 "차에 타는 것이 힘겹다"고 토로했다고 한다. 가족과 동료들은 '기관사를 천직으로 알고 15년간 성실히 일한 사람'으로 황 씨를 기억한다. 그런 황 씨가 변한 건 지난해 10월 사고를 겪으면서다. 한 승객의 가방이 황 씨가 운행하는 열차의출입문에 낀 사고였다. 다행히 승객이 크게 다치지는 않았지만 황 씨는 이 일로 회사에서 심하게 질책을 당했다. 이를 계기로 황 씨는 이전과 달리 강박증과 심한 우울증 증세를 보이고 공황장애로 힘들어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유족과 서울도시철도공사 노동조합은 이번 비극이 황 씨 개인의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기관사 한 사람이 모든 것을 책임지고 운행해야 하는 구조, 그리고 "기관사에게 모든 책임을 몰아 매도하는 조직 문화"가 비극의 배후에 있다는 주장이다.  수많은 기관사가 생전의 황 기관사와 마찬가지로 과도한 압박에 시달리고 있으며, 그런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비극은 계속될 것이라고 이들은 경고한다. 황 씨처럼 공황장애로 괴로워하다 스스로 삶을 마감한 기관사가 2012년 한 해에만 3명이나 있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이는 지하철 기관사의 노동 조건에 한정된 문제가 아니다. 수많은 시민의 안전과도 직결된 사안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시민의 발'을 안전 운행하기 위해 노심초사하는 기관사들의 고충에 눈감는다면, 지하철을 이용하는 시민들도 언제든 위험에 빠질 수 있다. (프레시안)은 지하 터널을 누비는 지하철 기관사들의 현실을 짚는 기획을 마련했다. (편집자)

위기의 지하철 기관사
 ① "동료들 연이어 자살…이젠 나도 날 못 믿겠다"
 ② 사람 잡는 1인 승무제…공황장애 15배, 트라우마 8배

서울도시철도노동조합 김태훈 승무본부장은 1월 19일 세상을 떠난 황 기관사를 떠올리며 "자랑스러운 내 동기였다"고 말했다. 김 본부장은 황 기관사가 "밑으로(지하철) 내려가야 하는데 거꾸로 옥상으로 올라가서 우리를 떠났다"고 말하며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그는 이아무개 기관사가 지난해 3월 세상을 떠난 후 "10개월 동안 처절히 싸웠다. 그러나 공사 측에서는 '기관사에게 해줄 게 없다'고 한다. 억울하고 분통이 터진다"고 말했다.

서울도시철도노동조합 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가 '노숙 투쟁'을 벌이고 있는 서울시청과 국가인권위원회 사이 인도에서, 1월 29일 황 기관사를 추모하고 재발 방지책 마련을 요구하는 기관사들의 대회가 조촐하게 열렸다. 동기를 떠나보낸 김 본부장 뒤로 "우리에게 아프다고 말할 수 있는 권리를 달라"는 펼침막이 나부끼고 있었다.

연이은 지하철 기관사의 죽음을 사전에 막을 수 있는 대안이 있을까. 많은 전문가는 정신 질환을 호소하는 지하철 기관사 문제에 관한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그중 핵심으로 꼽히는 것이 1인 승무제 폐지다. 기관사 관련 사고나 전동차 사고가 터질 때마다 지적된 문제인 1인 승무제에 대한 근본적인 논의가 절실한 시점이라는 지적이다.

그러나 황 기관사의 유족 보상 문제 및 재발 방지 대책을 논의하고 있는 서울도시철도공사와 노조 사이에서 중재 역할을 하고 있는 서울시 측은 "1인 승무제 근로 환경 개선은 당장의 쟁점이 아니"라고 설명하고 있다.

▲ 1월 29일, 황 기관사를 추모하는 기관사들의 대회가 열렸다. ⓒ프레시안(박세열)

'1인 승무제' 대구 지하철 참사…승무원이 한 명 더 있었다면?

지난 2003년 2월 18일 대구에서 끔찍한 사고가 발생했다. 대구 지하철 1호선 중앙로역 구내에서 한 남자가 시너가 든 플라스틱 통 2개에 라이터로 불을 붙인 후 객차에 던졌다. 이 방화로 192명이 숨지고 148명이 다쳤다. 비극이었다.

방화는 전차의 뒷부분에서 일어났다. 열차 맨 앞에 있던 기관사는 방화 여부를 즉시 알 수 없었다. 반대 방향에서 오는 열차에 통보해 비상 제동을 끌어냈어야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결국 반대 방향에서 오는 열차에 불이 옮겨 붙었다. 피해가 더 커질 수밖에 없었다. 만약 앞뒤에 기관사 혹은 승무원이 한 명씩 타고 있는 2인 승무제였다면 어땠을까.

또 다른 사례로, 2005년 1월에 발생한 지하철 7호선 화재 사건을 들 수 있다. 이때 여당이던 열린우리당은 '지하철 1인 승무제'의 문제점에 관한 보고서를 내놓았다. 보고서는 1인 승무제를 언급하며 "사고 발생 초기 대응 불가능"이라고 규정했다. 또한 "시스템 부실로 인한 사고이며, 지속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사고"로 진단하고 "1인 승무제 보완 등 개선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러한 인식이 입법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 2005년 1월에 발생한 지하철 7호선 화재 사건에 관해 열린우리당이 낸 진상 조사 보고서. 1인 승무제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기관사는 승객의 안전을 책임져야 한다. 1인 승무제는 그 책임을 전적으로 한 명의 기관사에게 떠넘기는 시스템이다. 잦은 고장과 사고의 위험에 매일 노출돼 있는 기관사는 긴장할 수밖에 없다. 한 기관사는 "문을 여닫을 때 후부(전철 뒷부분)를 끝까지 주시하는데, 잘 보이지 않아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1인 승무제가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기관사는 '심리적 불안'과 '안전에 대한 강박'을 이중으로 겪을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2인 승무제에 대한 논의는 대구 지하철 참사 이후 꾸준히 이뤄져 왔다. 그러나 1인 승무제를 택할지, 2인 승무제를 택할지에 대한 뚜렸한 기준은 전무한 상황이다. 대구 지하철 참사를 계기로 2005년 철도안전법이 제정됐지만 여기에도 승무 기준은 없었다. 2년 뒤인 2007년 4월 이영순 민주노동당 의원이 주최한 '철도안전법 개정안 시민 공청회'에서 그나마 의미 있는 논의를 담아냈지만, 이후 철도안전법 개정 문제는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도시철도공사 노조는 1인 승무제의 문제점을 공론화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제도 개선을 이뤄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2007년 공청회에서 제기됐던 내용이 지금까지도 유효하다는 전문가의 지적은 1인 승무제 관련 논의의 현실을 보여준다.

당시 공청회에서 김성희 산업노동정책연구소 소장은 철도안전법에 "기관사, 부기관사 및 차장과 열차 객실 업무 종사자의 필수적 탑승과 2인 승무를 규정한다"는 조항을 넣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철도안전위원회 신설 등과 함께 철도안전법 개정의 핵심이었다. 김 소장은 "전 세계적으로 1인 승무가 추세라는 주장은 잘못된 경우이며 1인 승무를 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조건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김 소장은 당시 발제문에서 "참고로 2인 승무였다가 1인 승무로 전환되기 직전의 부산지하철공단과 당시 국내 최초로 1인 승무가 도입되어 운영 중이던 서울도시철도공사의 사고율을 비교하면 차이가 눈에 보인다"며 사교율 비교표를 제시했다. 2인 승무이던 부산지하철공단의 사고 비율은 1인 승무제로 운영되던 서울도시철도공사의 그것에 비해 현저히 낮았다.

▲ 2007년 김성희 소장의 '현행 철도안전법의 문제점과 개정안의 의미' 발제문 중 일부

일각에선 2인 승무제 도입에 따른 비용 문제를 제기하기도 한다. 공사 측은 (프레시안)에 보낸 답변서를 통해 "1인 시스템으로 설계된 것을 2인 승무로 전환 시 운전실(후부) 취급 기기 보완과 기관사 조작반, CCTV, 기관사 감시 설비의 재설치 및 기관사 인력 증원 등 추가 예산이 소요된다"고 말했다. 공사 측은 2인 승무제를 도입하려면 당장 1000억 원 이상의 예산이 추가로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기관사 정원 수준의 차장 인력 증원으로 연간 약 600억 원, 시스템 보완 및 설비 이설 등에 약 161억 원, 승무관리소 등의 개축 비용으로 341억 원 정도가 든다는 말이다.

그러나 공사에서 비용을 과도하게 추산했다고 보는 전문가도 있다. 한인임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연구원은 "1000억 원 주장은 터무니없다"고 본다. "예를 들어 단순 계산으로 해도, 혼잡한 선로 등에 우선 차장을 투입해 순차적으로 2인 승무제 전환을 진행시킬 경우 고졸 초임 수준을 적용해보면, 100명을 채용해도 한 해에 30억 원 정도가 든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연구원은 "사무 인력이 과다하니 이를 현장에 차장으로 투입할 수도 있고, 서울시에서 지하철 무료 운임 등을 실질적으로 부담해 수십억 원을 당장 아낄 수도 있는 문제"라고 주장했다.

한 연구원은 "안전을 위해서라면 사회적 비용을 더 들일 수도 있다"고 본다. 또한 "다양한 방법을 통한 2인 승무제가 가능하며, 정책 결정권자의 결단만 있으면 당장이라도 가능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대구 지하철 참사 10년…위험한 '1인 승무제' 고수해야 할까?

공사 측은 외국에서도 1인 승무제가 널리 도입·운영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5~8호선 열차 운전 시스템은 개통 시부터 전동차 제어 및 지상신호시스템을 자동화하여 기관사 1인이 운전 가능토록 설계된 첨단 시스템으로, ATO(자동열차운전장치) 시스템을 설치·운영 중인 국내 및 해외 도시철도 운영기관에서도 모두 1인 승무제를 도입·운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운영 형태를 보면 얘기는 조금 달라진다. 외국 사례 중에서도 한국과 철도 시스템이 비슷한 일본의 사례는 특히 주목할 만하다.

한인임 연구원은 2008년 12월 '철도안전법 개정을 위한 전동차 1인 승무 문제점과 역사무인화 경향 연구'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일본의 철도 시스템을 주제로 한 이 보고서에 따르면, "동경메트로와 도영지하철에는 13개 노선이 있는데 이 중에서 1인 승무가 진행되는 곳은 4개 노선"이다.

이 4개 노선은 모두 ATO 체계 아래 있고 전 역사에 PSD(스크린도어)가 설치돼 있다. 전동차 양(輛)수는 한국보다 적었다. 또한 혼잡도의 경우 150%를 행정 조치 기준으로 하여 낮은 곳을 중심으로 1인 승무를 시행하고 있었다. 혼잡도의 경우 100%를 차량 정원으로 보는데, 이는 승객이 지하철 안에서 신문을 펼쳐 볼 수 있는 수준이다. 정리하면, 일본에서는 체계적인 기준을 정하고 그에 맞춰 1인 승무제를 부분적으로 택하고 있다.

이에 더해 한 연구원은 일본의 경우 1인 승무가 이뤄지는 곳에서는 사령에서 기관사의 업무를 줄여주기 위한 다양한 조치를 취하고, 특히 역무에서 승강장 안전 요원에 대한 대대적 지원이 이뤄지고 있었다는 점이 인상적이라고 강조했다.

전동차 양수는 전동차 승하차 승객을 육안으로 확인하는 데 영향을 끼치는 요소다. 기관사 혼자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곡선 구간을 고려하여 8량 미만의 전동차 구성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1인 승무제를 시행하는 경우도 대부분 8량 전동차를 운행하고 있다. 또한 출퇴근 시간의 경우 혼잡도가 200%를 넘어선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 연구원은 한국의 지하철에서는 1인 승무제로 할 것인지, 아니면 2인 승무제로 할 것인지 등이 명확한 원칙 없이 정해졌다고 비판했다. 또한 "1인 승무제의 폐해가 보고되고 있고, 현장의 기관사들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무시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한 연구원은 "승무제의 기준을 철도안전법에 정하는 것이 시민의 안전을 지키고 기관사의 희생을 막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다시 말해 승무원을 2인 이상으로 하도록 법으로 규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예외적으로 1인 승무제를 허용하더라도 그 요건(스크린도어 수, 역무원 수 등)을 엄격히 정해야만 그간 1인 승무제로 인해 발생한 문제점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프레시안)이 보도한 '최적근무위원회 권고안' 가안을 실행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시설 개선 문제뿐만 아니라 안전 요원 확보, 역무 인원 상주, 2인 승무의 제도화 등에 관한 공론화가 시급한 상황이다. 

얼마 후면 대구 지하철 참사가 일어난 지 꼭 10년이 된다. 적잖은 세월이 흘렀지만 참사의 기억은 여전히 생생하다. 참사 규모를 키운 원인 중 하나로 꼽히는 것이 1인 승무제다. 그에 더해 1인 승무제는 기관사의 고통을 가중시키는 핵심 요소라는 비판도 계속 받고 있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지금과 같은 방식의 1인 승무제를 고수하는 것이 바람직한 일일까? 한국 지하철은 갈림길에 서 있다.

기관사 압박 요인으로 지목된 '9조 5교대', 어떻기에?

도시철도공사와 노조는 현재 서울시의 중재로 황 기관사 사망 관련 보상 및 재발 방지책에 관한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재발 방지를 위한 근본적인 해결책으로 1인 승무제 폐지가 꼽히지만, 이와 별개로 노조는 노동 환경 개선을 위해 '9조 5교대제'의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서울도시철도공사 기관사들은 9일간 '주주야비휴 주야비휴(주간근무-주간근무-야간근무-비번-휴일, 주간근무-야간근무-비번-휴일)'의 순으로 근무한다. 이를 위해 9개 조가 필요하며, 각 조에는 9~20명의 기관사가 속해 있다고 한다. '주주야비휴'를 큰 틀에서 한 사이클로 보기 때문에 정확한 명칭은 아니지만 '9조 5교대'라는 이름이 붙었다. 조별로 관리자급 PL(Part Leader, 일종의 '조장')이 한 명씩 배정되는데, 이들은 기관사들을 전반적으로 관리하는 역할을 한다.

공사 측은 "담당PL과 기관사가 9주기 개별 교번제로 함께하는 것은 항상 혼자 근무해야 하는 기관사들의 고립감을 해소하고, 조직 내의 연대감 및 상시 지원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함으로써 PL과 기관사가 멘토링 관계를 형성하여 (…) 협력적 직장 문화를 조성하고 있다"고 본다.

그러나 9조 5교대와 관련해 한 조합원은 "규칙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각 근무일마다 출퇴근 시간은 천차만별이다. 오히려 기관사 개개인의 생체리듬에 맞지 않게 획일화됐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그는 "PL이 기본적으로 관리자로 붙기 때문에 기관사는 병가를 내거나 휴가를 내도 PL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이런 관리 시스템을 느슨하게 하자는 취지로 요구하고 있는 것이 개별 교번제다"라고 설명했다. 즉, 조를 사실상 없애고 각 기관사에게 개별적인 운행 일정을 주는 시스템이다.

기관사 인력이 부족해 개별 기관사들의 업무 강도는 높아질 수 있지만, 통제와감시 시스템을 상징하는 '9조 5교대'에 비해 스트레스를 덜 받게 된다는 주장이다. 노조는 '"근무 강도가 높아지더라도 현 제도를 시정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박세열 기자

2013년 1월 30일 수요일

사람 잡는 1인 승무제…공황장애 15배, 트라우마 8배


이글은 프레시안 2013-01-29일자 기사 '사람 잡는 1인 승무제…공황장애 15배, 트라우마 8배'를 퍼왔습니다.
[위기의 지하철 기관사 ②] 벼랑 끝 기관사…노동 환경 개선 시급

1월 19일, 서울 지하철 6호선 기관사 황아무개 씨가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가족에게 출근 인사를 하고 집을 나선 황 씨는 회사에 가는 대신 아파트 옥상에서 몸을 던졌다. 황 씨는 삶을 마감하기 얼마 전 가족에게는 "회사 가는 것이 힘들다"고, 동료들에게는 "차에 타는 것이 힘겹다"고 토로했다고 한다. 가족과 동료들은 '기관사를 천직으로 알고 15년간 성실히 일한 사람'으로 황 씨를 기억한다. 그런 황 씨가 변한 건 지난해 10월 사고를 겪으면서다. 한 승객의 가방이 황 씨가 운행하는 열차의출입문에 낀 사고였다. 다행히 승객이 크게 다치지는 않았지만 황 씨는 이 일로 회사에서 심하게 질책을 당했다. 이를 계기로 황 씨는 이전과 달리 강박증과 심한 우울증 증세를 보이고 공황장애로 힘들어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유족과 서울도시철도공사 노동조합은 이번 비극이 황 씨 개인의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기관사 한 사람이 모든 것을 책임지고 운행해야 하는 구조, 그리고 "기관사에게 모든 책임을 몰아 매도하는 조직 문화"가 비극의 배후에 있다는 주장이다.  수많은 기관사가 생전의 황 기관사와 마찬가지로 과도한 압박에 시달리고 있으며, 그런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비극은 계속될 것이라고 이들은 경고한다. 황 씨처럼 공황장애로 괴로워하다 스스로 삶을 마감한 기관사가 2012년 한 해에만 3명이나 있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이는 지하철 기관사의 노동 조건에 한정된 문제가 아니다. 수많은 시민의 안전과도 직결된 사안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시민의 발'을 안전 운행하기 위해 노심초사하는 기관사들의 고충에 눈감는다면, 지하철을 이용하는 시민들도 언제든 위험에 빠질 수 있다. 은 지하 터널을 누비는 지하철 기관사들의 현실을 짚는 기획을 마련했다.

위기의 지하철 기관사① "동료들 연이어 자살…이젠 나도 날 못 믿겠다" 지난해 3월 12일 공황장애를 앓던 서울도시철도공사 이아무개 기관사가 지하철 5호선 왕십리역에서 달리는 열차에 몸을 던져 자살한 사건이 벌어졌다. 당시 분향소를 방문했던 박원순 서울시장은 '서울시 지하철 최적근무위원회'를 설치해 근무 환경이 서울도시철도공사 직원들의 심리 상태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이를 바탕으로 근무 환경을 합리적으로 개선해나갈 것을 제안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9월 한림대학교 산학협력단 주용수 교수팀은 '서울특별시도시철도공사 정신 건강 실태 조사 및 개선 방안 연구'를 발표했다.

그러나 위원회가 이 연구 결과를 토대로 공식 권고안을 내기 전인 지난 19일, 황아무개 기관사가 또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이 발생했다. 이 단독 입수한 '서울시 도시철도 안전 운행을 위한 승무 방식 선택 시 고려해야 할 가이드라인 권고안' 초안은 주 교수팀의 연구 결과에 따른 후속 조치를 담고 있다. 이 안은 아직 정식 권고되지 않은 상황이다.

이 안에는 1994년 개통할 때부터 기관사만 승차하는 1인 승무 체계를 고수해 온 서울도시철도공사의 업무 행태의 문제점이 지적돼 있다. 이 안은 "특히 도시철도공사처럼 개통 당시 1인 승무 체계로 시작되었던 대구도시철도에서는 2003년 대규모 참사가 발생하였으며 이 원인 중 하나로 1인 승무 체계가 문제로 지적되었다. 최근에 와서 도시철도공사 기관사의 정신 건강 문제가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되었고 이 역시 같은 문제가 원인인 것으로 적시되고 있다"고 권고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이 안은 "수천 명 승객의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기관사의 정신 건강 문제는 사회적으로도 매우 위험한 일이다. 이 점을 고려할 때 1인 승무 체계가 노동자와 이용자의 안전을 책임질 수 있는 형태로 운영되어야 하며 이를 위한 적정 가이드라인이 제공되어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다.

이 안은 "물리적 조건 8가지와 인적 조건 2가지가 모두 만족되지 않으면 서울시 도시철도에서는 1인 승무 체계 운영을 재고해야 한다"고 밝혔다. 물리적 조건 8가지는 △ATO(자동열차운전장치) 시스템 이상의 기술 지원 △혼잡률 150% 이하(전동차 1량에 승객 140명 이하) △1인 이상의 역무원 상시 배치 △8량 이하의 전동차 운영 △자동 운전 및 자동 방송 △지상 구간이 10% 이하일 경우 △사고 시 기관사 외에 관제에서 방송·안내 책임 분담 △스크린도어 전체 설치이고, 인적 조건 2가지는 △승무 및 휴식 시간 보장 △건강 장애 호소자 승무 배제다.

정식으로 제안된 권고안은 아니지만, 현재 서울도시철도 운행 상황은 이 안이 제시하는 조건에 대부분 미달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 2008년 2월 18일 대구지하철 참사 5주기를 맞아 중앙로역에 마련된 분향소에 시민들의 헌화가 이어지고 있다. 대구지하철에서는 2003년 대규모 참사가 발생했는데, 피해 규모를 키운 원인 중 하나로 1인 승무 체계가 지적되기도 했다. ⓒ뉴시스

트라우마 유병률 일반인의 8배, 공황장애는 무려 15배


이 권고안의 배경이 된 주 교수팀의 연구는 2012년 6월 29일부터 7월 8일까지 서울도시철도공사 전 직원 중 4075명(64.01%)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이 연구 결과에 따르면 운전 직군은 보상 문제를 제외한 모든 영역에서 직무 스트레스가 높게 나타나 '스트레스 고위험군'으로 분류됐다. 특히 서울도시철도공사가 운영하는 운전 직군의 9조 5교대 방식에 따른 스트레스 강도는 다른 직군보다 매우 높게 나타났다.

특히 이 조사에서 "자신이나 타인의 죽음, 심각한 상해, 또는 신체적 안녕에 위협을 가져다주는 사건을 경험하거나 목격한 경우의 충격적 경험 이후 발생한 스트레스"인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 PTSD, 일명 트라우마)'와 관련해 외상 경험이 있는 사람은 338명(8.3%)으로 나타났고 이 중 업무와 관련이 있는 사람은 209명(5.1%)으로 나타났다. 외상 경험이 있는 사람들 중에서 PTSD 증상자는 164명(48.5%)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본 연구는 단면적인 평가라는 제한점이 있기 때문에 사고 직후 발생할 수 있는 급성 스트레스 반응이나 장기적인 추적 조사가 이루어지기 힘들므로 사고 후 발생할 수 있는 PTSD 영향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서는 각 시기별로 적절히 개입할 수 있는 추적 연구가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설문을 통해 나타난 사람보다 훨씬 많은 이가 위험에 노출돼 있다는 것이다.

▲ 지하철 기관사가 어둠 속에서 운전을 하고 있다. ⓒ프레시안(박세열)

지하에서 나쁜 공기 마시며 사고까지 책임져야 하는 기관사는 슈퍼맨?

가톨릭대학교 성모병원 이강숙 교수팀이 2007년 9월 발표한 '도시철도공사 기관사 정신 보건 임시 건강진단 최종 보고서'를 보면 상황은 더 심각하다.

현업 4급 이하 전체 기관사 961명을 대상으로 한 이 조사에서 우울증의 경우 평생 유병률(일정한 지역 혹은 집단 구성원 중에서 환자가 발생하는 비율)이 3.0%로 나타났다. 국민 평균(2.6%)보다 높은 수치다. 황 기관사를 죽음으로 몰고 간 주요 원인으로 추정되는 공황장애의 경우 기관사들의 평생 유병률은 1.5%다. 일반 인구 집단에서 보고되는 0.1%의 15배에 달한다. 공황장애 관련 1년 유병률은 0.7%로 전 국민 유병률의 7배에 이르렀다. 강박장애의 경우 평생 유병률이 1.8%, 1년 유병률이 1.5%로 전 국민 유병률과 비교했을 때 3배가량 높은 수치를 보이고 있다.

사고 경험에 관한 설문 응답자 827명 중 사고 경험자는 265명(32%), 사고 무경험자는 562명(68%)이었다. 전체 기관사의 40.3%가 승객과 갈등 상황을 경험했고, 62.2%가 중압감으로 인해 운전을 회피하고 싶은 마음이 든 적이 있었다. 비상벨로 인해 심리적 부담을 느낀 경험이 있는 사람은 75.2%였다.

자신의 실수나 기계 문제로 인해 사고가 날 뻔한 경험이 있는 사람은 31.2%였으며, 이 중 7%는 이로 인해 징계를 받은 경험이 있었다. 동료의 사상 사고 경험 소식에도 47.8%의 기관사가 불안이나 '가슴 떨림'을 경험했다. 중압감 때문에 운전을 회피하고 싶은 생각을 항상 한다는 기관사 28명(3.4%) 중 사고 경험이 있는 기관사는 12명, 사고 경험이 없는 기관사는 16명이었다. 모든 사고 경험이 곧바로 PTSD로 이어진다고 가정할 수는 없지만, 이 연구 결과에 따르면 PTSD로 인한 지하철 기관사의 '1년 유병률'은 일반 인구 집단의 8배에 달한다.

이 보고서는 "기관사들이 운전을 하는 공간은 주로 지하 공간으로, 심리적 폐쇄감이 상당하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좋지 않은 공기질의 영향은 간접적으로 심리적 폐쇄감을 유발할 수 있다. 지하 공간 자체에 민감한 사람들에게 공황장애 등이 유발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또한 "기관사들은 운전뿐 아니라 출입문 개폐 등의 작업을 주로 하게 되는데, 특히 출퇴근 시간 때는 이를 둘러싼 승객과의 마찰이 있을 수 있다. (…) 운행 중 운전 외에 관여해야 하는 '운전처와 송수신' 등 복잡한 운전 상황, 승객들이 누르는 비상벨에 대처해야 하는 상황 등, 실제 운전 외에 기관사가 처리해야 하는 복잡한 상황이 상당히 많이 주어진다. 일상적인 상황에서 별 문제가 되지 않는 작업 조건들이라도 어떤 이례적 상황에 놓이게 되면 상당한 스트레스를 유발할 수 있게 된다"고 지적했다.

지하철 기관사가 각종 정신 질환에 시달린다는 사실은 이처럼 여러 연구 결과가 뒷받침해 준다. 직업과 관련해 발생한 정신 질환의 경우 직업병으로 승인 받기도 어렵고, 막상 승인을 받아도 효과적인 치료를 받는 경우가 드물다는 것도 문제다. 치료 후에도 체계적인 작업 복귀 프로그램은 전무하다. 결국 모든 사고에 대해 책임지고 그 후유증을 감당하는 것은 기관사 자신의 몫으로 여겨지는 게 현실이다.

"한 달 동안 악몽"…"운전 중에 누군가 옆에 있었으면"

2007년 9월 가톨릭대 연구팀이 발표한 보고서와 2012년 9월 한림대 연구팀이 발표한 보고서에는 익명의 기관사들을 대상으로 한 심층 면접 내용이 실려 있다.

이 중 가톨릭대 연구팀 보고서에는 기관사들의 다음과 같은 호소가 담겨 있다.

"어떤 때는 기차에서 뛰어내리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기도 해요. 꽉 막힌 공간에 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내 자신을 어찌할 수 없는 그런 상태를 경험한 적도 있어요. 그럴 땐 나름대로 방법을 만들죠. 사진이지만 파란 하늘을 본다거나, 다른 생각을 하려고 노력하는 거죠. 매일 그러는 건 아니에요. 몸 상태가 나쁘거나 하면 이런 느낌이 더 심해지는 것 같아요."

"서울메트로는 지상 공간이 있잖아요. 근데 우리는 100% 지하 공간이에요. 3시간 넘게 지하에서 운전해 봐요. 집중을 하면 오히려 미쳐 버립니다. 승객에 대한 부담감이요? 있죠. 그런데 대구지하철 (참사) 있고 나서 더 심해졌어요."

"운전 중에 누군가 옆에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자주 들어요. 운전 중에 어떤 때는 동료 기관사가 아는 체를 하거든요. 그러면 앞으로 태우죠. 옆에 누군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막 편안해져요."

"OO역에서 사상 사고가 났어요. 부딪히는 소리가 그렇게 크게 들릴지 몰랐어요. 그 순간 머릿속이 까매져요. 뭘 해야 될지 아무 생각도 안 나요. 그날 운전도 다 끝내고 집에 있는데 자꾸 그 장면이 떠오르고, 두렵고 무섭더라고요. 한 달 동안 거의 매일 악몽에 시달렸어요."

"병원엔 안 가봤어요. 그냥 이겨낼 수 있을 것 같더라고요. 처음엔 몰랐는데, 일주일쯤 있다가 그 역을 지나는데, 머리가 삐쭉 서는 느낌이 들어요. 갑자기 가슴이 쿵쾅쿵쾅하는데, 미치겠더라고요. 몇 번 그런 적이 있어, 병원에 가볼까 생각도 했는데, 항상 그런 게 아니라… 피곤할 때 더 느낀다고."

"병원에 가봤죠. 의사한테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는 얘기를 들었어요. 약물 치료도 받았고요. 치료 받으면서도 다 잊히는 건 아니더라고요. 신경이 날카로워졌어요. 집에서 부부 싸움도 자주 하고, 애도 귀찮고, 내가 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럴 땐 무섭더라고요."

이 보고서는 "사상 사고 후의 심리 상태는 그 순간의 상태도 문제가 되고, 이후 지속적인 운전을 계속한다면 2차 안전사고의 문제도 우려되었다. 또한 2차 사고에 대한 파악, 그리고 이를 경험한 기관사들에게도 일정한 심리 상담이 필요하다고 판단된다"고 지적했다.

한림대 연구팀의 보고서에도 다음과 같은 기관사 심층 면접 내용이 실려 있다.

"저희 도시철도에 설치된 스크린도어만 10000개예요. 하루에 1%만 고장이 나도 100개니까 계속 그것과 관련된 전화가 걸려옵니다. 그러다 보니 5시에서 7시 사이에 있는 휴식 시간에도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초과근무를 합니다. 회사 측에서는 그러면 다른 시간에 대신 쉬라고는 하는데, 문서상으로나 쉬는 시간이지 사실상 쉬지 못한다고 보면 됩니다."

"제발 눈 가리고 아웅 식의 봉사 활동 같은 것은 이제 없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저희처럼 교대 근무를 하는 사람들은 봉사 활동을 가려면 야간 근무가 끝나고 가야 됩니다. 그러다 보니 2시간 일하고 8시간 봉사 활동을 한 것처럼 받아오는 일도 많습니다."

"하도 시민들에게 욕을 많이 듣다보니 이제는 대인 기피증이 생길 지경입니다. 거기에 시민들이 제기하는 민원 중에는 저희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문제도 많은데 본사 측에서는 알아서 해결하란 식입니다."

"계속 참아야 돼요. 생리적인 것도 참고, 힘들어도 참아야 되고. 업무 중 힘든 것은 시민과 만나는 것, 불량도 있고요, 출퇴근 시간을 맞추는 것, 생리적인 것을 참는 것, 환경도, 어두운 곳에서 계속 불빛이 왔다 갔다 하는 것, 소음도 있고요. 졸립고요, 그래도 참아야 돼요. 첫차를 타게 되면, '6시 15분에 출근하려면 몇 시에 일어나야 하겠다' 하고 잠을 자면 중간에 몇 번 깨는 거죠. 시계 보고, 시계 보고. 차 타러 갈 때도, 타러 갈 때가 되었나? 되었나? 급할 때, 가장 단순하지만 가장 힘든 것 같아요. 야근할 때 저는 저녁을 안 먹거든요. 약간 가스가 차서, 한번 고생을 하게 되면…."

"환경 자체가 터널 근무이므로 안 좋습니다. 터널에서 근무하면서 환경이 나쁘다고 느낀 게 먼지가 기름기에 찌든 먼지입니다. 그런 먼지인 줄은 몰랐어요.환경 측정은 역사만 해요."


 /박세열 기자

2013년 1월 29일 화요일

"동료들 연이어 자살…이젠 나도 날 못 믿겠다"


이글은 프레시안 2013-01-28일자 기사 '"동료들 연이어 자살…이젠 나도 날 못 믿겠다"'를 퍼왔습니다.
[위기의 지하철 기관사 ① - 운전실 동승 취재] 사람 잡는 '1인 승무제

1월 19일, 서울 지하철 6호선 기관사 황아무개 씨가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가족에게 출근 인사를 하고 집을 나선 황 씨는 회사에 가는 대신 아파트 옥상에서 몸을 던졌다. 황 씨는 삶을 마감하기 얼마 전 가족에게는 "회사 가는 것이 힘들다"고, 동료들에게는 "차에 타는 것이 힘겹다"고 토로했다고 한다. 가족과 동료들은 '기관사를 천직으로 알고 15년간 성실히 일한 사람'으로 황 씨를 기억한다. 그런 황 씨가 변한 건 지난해 10월 사고를 겪으면서다. 한 승객의 가방이 황 씨가 운행하는 열차의출입문에 낀 사고였다. 다행히 승객이 크게 다치지는 않았지만 황 씨는 이 일로 회사에서 심하게 질책을 당했다. 이를 계기로 황 씨는 이전과 달리 강박증과 심한 우울증 증세를 보이고 공황장애로 힘들어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유족과 서울도시철도공사 노동조합은 이번 비극이 황 씨 개인의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기관사 한 사람이 모든 것을 책임지고 운행해야 하는 구조, 그리고 "기관사에게 모든 책임을 몰아 매도하는 조직 문화"가 비극의 배후에 있다는 주장이다.  수많은 기관사가 생전의 황 기관사와 마찬가지로 과도한 압박에 시달리고 있으며, 그런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비극은 계속될 것이라고 이들은 경고한다. 황 씨처럼 공황장애로 괴로워하다 스스로 삶을 마감한 기관사가 2012년 한 해에만 3명이나 있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이는 지하철 기관사의 노동 조건에 한정된 문제가 아니다. 수많은 시민의 안전과도 직결된 사안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시민의 발'을 안전 운행하기 위해 노심초사하는 기관사들의 고충에 눈감는다면, 지하철을 이용하는 시민들도 언제든 위험에 빠질 수 있다. (프레시안)은 지하 터널을 누비는 지하철 기관사들의 현실을 짚는 기획을 마련했다. 그 첫 번째는 고(故) 황 기관사가 일한 지하철 6호선의 운전실 동승 취재다. 취재에 협조해준 기관사가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기에 기관사의 실명, 취재 당일 운행 노선 등은 밝히지 않는다. (편집자)

"기관사는 사람이 치여 죽은 자리를 다 안다"

"기관사는요, 사람이 치여 죽은 자리를 다 알아요. 매일 그 자리를 지나가는 거죠. 방금 OO역 지났는데, 여기에서도 사고가 있었죠. 기관사가 운전실 밖으로 나갔는데, 선배(기관사)가 치였어요. 돌아가셨죠. 이를테면 이 역에 잊기 힘든 기억이 생긴 거예요."

좁고 검은 터널이 이어졌다. 서울시민 수백만 명이 매일 이 터널을 달린다. 퇴근길 6호선의 운행을 책임지는 기관사 박철민 씨(가명)가 '마스콘'(주제어기, Master Controller)을 쥔 채 기자에게 말했다. 박 씨의 가슴에는 검은색 '근조' 리본이 달려 있었다. 그의 얼굴에 푸르고 흰 터널 벽 형광등이 환등기 영상처럼 지나갔다.

낮인지 밤인지, 시계를 보지 않고서는 모른다고 한다. 새벽 '주박지'에서 첫차가 나갈 때, 사람들이 우산을 들고 타면 '지금 비가 오는구나' 생각한다고 박 씨는 설명했다. 박 씨는 이날 오후 5시쯤 출근했다. '야간 근무'다. 기자는 6호선의 한 역에서 박 씨가 운행하는 지하철 운전실에 동승했다. 직장인들이 잠시나마 지하철 승객이 되는 퇴근 시간대였다.

"외로울 것 같다고요? 그런 생각은 하면 안 돼요.(웃음) 노선이 길잖아요. 처음에는 저도 앉아서 쓸데없이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했는데, 지금은 그런 생각, 안 하려고 합니다."

열차가 눈앞에 뻗어 있는 좁고 검은 구멍을 가르면 쉭쉭 소리가 터널 벽과 차체 사이를 빠져나와 귀를 때렸다. 선로 이음새 위를 덜컹거리고 지나갈 때마다 차체는 카랑카랑 소리를 내며 파르르 떨었다. 운전실은 한 평도 안 되는 좁은 공간(2.68㎡, 약 0.81평).전조등도 켜지 않고, 터널 벽 형광등과 붉고 푸른 계기판 불빛에 의존하며 박 씨는 능숙하게 고갯짓을 하고 손짓을 했다.

출발한 뒤 제한 속도를 지키며 3~4분 남짓 달리자 또 '목적지'가 나왔다. 40센티미터 정도만 벗어나도 문이 열리지 않는다. 1초, 1센티미터의 오차도 없이 정확히 열차를 부린 박 씨는 출입문 개폐 버튼에 손을 올리고, 오른쪽 전방에 붙어 있는 화면 속 뒤로 길게 뻗은 스크린도어 주변을 꼼꼼히 응시했다. "출입문 닫습니다." 방송이 나간 후 박 씨는 '지적 확인'을 했다. 출입문을 닫고, 전방 신호를 손으로 지적해가며 일일이 확인한 후 자동 운행 버튼을 눌렀다.

"예전에는 터널에 형광등도 잘 안 켰어요. 하나 건너 하나 켜서 지금보다 더 어두웠죠.절전이 목적이라고도 하고…. 5호선 같은 경우는 한강도 땅 밑으로 가요. 해저터널인데, 지날 때마다 불안감이 생기죠. 군데군데 금 간 곳도 보여요. 농담으로 기관사들은 '한강 밑을 가다가 터널이 무너지면 다 죽는 것 아니냐'고 말하기도 해요. 시절이 좋을 때는 지하철에 승무원이 네 명씩 탔대요. 앞 운전실에 두 명, 뒤 운전실에 두 명. 그런데 서울도시철도는 태어날 때부터 1인 승무제였어요. 운전실에서 단 한 명이 전철을 움직여요. 기관사 한 명이 출발지부터 종착역까지 운행의 모든 것을 책임지는 거죠."


▲ 7호선 지하철 운전실에 앉아 있는 기관사(자료 사진) ⓒ연합뉴스

사람 잡는 '1인 승무제'

1990년 6월 서울 지하철 5호선이 착공된 후 1994년 1월 15일, 서울메트로(1·2·3·4호선 운행)와 별도로 서울특별시도시철도공사가 탄생했다. 박 씨는 "공사가 왜 두 개인지 잘 이해가 안 간다. 하는 일은 거의 똑같다"고 말했다. 새로 탄생한 도시철도공사는 처음부터 '1인 승무제'를 채택했다. '2인 승무제'를 고수하고 있는 서울메트로와 달리 한 명의 기관사가 모든 돌발 상황에 대응해야 하는 시스템이다. 자동화 기술의 발전과 같은 이유들이 붙었지만,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인건비를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로 이해했다. 그러나 이는 기관사 한 명에게 극한의 스트레스를 집중시키는 근무 방식이다.

크고 작은 고장은 일상다반사다. 간혹 승객이 문에 끼이거나 하는 문제도 발생한다. 그런 상황으로 연착이 되거나 승객들의 '항의'가 들어오면, 그 책임은 모두 기관사가 져야 한다. 그렇게 되면 기관사의 근무 평가는 악화되고, 기관사가 속한 조의 성적도 낮아진다. 각종 불이익을 감내해야 한다. 기관사들은 자신들 중 30% 정도가 '사상 사고'를 경험한다고 한다. 이 경우 근무 평점도 평점이지만, 기관사 본인은 극도의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박 씨가 운행하는 전철은 어두운 터널 속을 1시간 정도 달려 종착역에 도착했다. 모든 승객이 내렸다. 복잡한 신호 체계를 몸으로 체득한 듯 보이는 박 씨는 기지로 향하는 전철을 능숙하게 다뤘다. 기지는 종착역에서 약 10분 거리에 있다. 기지에서 근무 관련서류를 작성한 후 박 씨가 캔 커피를 뽑아서 마신 시간은 저녁 8시 20분 무렵. 해가 떨어진 지는 오래이고, 바람은 유달리 차가웠다.

종착역에서 다음 운행 열차를 받기로 한 시각은 오후 9시 10분. 50분 정도 시간이 남았지만, 기지에서 종착역까지 승무원 전용 '운행차'를 타고 이동하는 시간 15분 정도를 빼면 종착역에서 출발하는 기차 운전대를 잡기 전에 30~40분 정도 쉬는 셈이다. 박 씨는 가슴에 검은색 '근조' 리본을 단 동료 기관사들 몇 명과 안부 인사를 나눴다.

"며칠 전 일어난 회기역 사고(1월 24일 발생) 얘기 들었어요?""네""뉴스 보고 화가 났어요. 미친 것 아냐? 사람이 치여 죽었는데, 그 기관사를 구로역까지 운행시켰다는 것 아녜요…. '빠릿빠릿하게' 했으면 청량리쯤에서 바꿔줄 수도 있었을 텐데."

대화가 이어지는 와중에도 박 씨는 '승객들이 불편하더라도, 당장 운행을 중단시키고 다른 기관사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은 하지 않았다. 당시 회기역플랫폼에서 청량리역 방면으로 150미터 떨어진 선로에 웬 남자가 앉아 있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을 기관사는 사고를 낸 후, 시신이 수습되자 곧바로 운행에 투입됐다고 했다. 정신적 충격에 빠진 기관사에게 사고 후 1시간 동안 운행을 맡긴 것이다. 박 씨는 "한번 사고가 나면 기관사들은 선로나 플랫폼에서 뭔가가 튀어나올 것 같은 착시에 빠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박 씨는 말을 끊고 애써 웃음을 지어 보였다.

플랫폼에 박 씨와 앉아 얘기를 나눴다. 어두운 운전실에 앉아 빨갛고 파란 계기판을 보며 운행을 할 때보다는 그의 표정이 밝아 보였다. "어두운 곳에서 소음에 갇혀 장시간 일하는 직업이다 보니 '징크스' 같은 것도 있을 것 같다"고 질문을 던지자 박 씨가 입을 열었다.

"주박지라고 있어요. 첫차가 양 끝 기지에서 출발하면 중간에 있는 역에서는 한 시간쯤 후에 첫차를 받잖아요. 그래서 중간에서 출발하는 첫차들이 있어요. 주박 근무자들은 터널에서 잠을 자고 새벽에 첫차를 몰아야 하죠. 기차가 출발하는 곳이 주박지예요. 주박지에는 도저히 뭐가 있을 것 같지 않은 터널 구석에 작은 문이 있고, 침실이 있어요. 주박 근무는 보통 저녁 9~10시쯤 시작하는데, 새벽 1시쯤 막차 운행이 끝나면 그날 주박 근무 기관사들은 주박지로 걸어 들어가 잠을 청하죠. (새벽) 4시 반이 되면 일어나서 첫차를 몰게 되는데, 3시간 정도 쉬는 시간이 있잖아요? (하지만) 자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저도 주박 근무 들어가면 무서워서 잠을 안 자요. 잠깐 피곤해서 눈을 붙이게 되더라도 불은 절대 끄지 않아요. 주박지가, 6호선 라인만 따지면 11개 있죠. 야근하는 인원이 40명 정도라고 하면 그중 11명은 주박지로 들어가는 거예요. 주박지에서 귀신 봤다는 사람도 있고 거기에서 자다가 가위에 눌리는 사람도 있어요. 주박지 근무만 오면 휴가를 내는 사람도 많죠. 새벽 도시의 지하 터널에 있는 조그만 방에 들어가 침대에 앉아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주박지 안에서 불을 절대 끄지 않는 것, 그게 제 '징크스'라면 '징크스'죠."


▲ 지하철을 이용하는 시민들. ⓒ연합뉴스

"기관사 동료들의 연이은 자살…이젠 나도 나를 못 믿겠다"

열차 시간이 가까워지자 박 씨는 "화장실에 다녀오겠다"고 했다. "차를 타기 전에는 무조건 화장실에 갑니다. 뭐가 안 나와도 갑니다. 버릇이에요." 그는 아침을 거르는 게 습관이 됐다고 덧붙였다.

"제일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가 운행 중에 배가 아플 때 어떻게 하느냐는 것인데, 소변기를 들고 탄다든지 하는 얘기들도 있지만 운행 중에 배가 아프면 고통보다도 공포심이 들어요. 땀에 흠뻑 젖어서 두 시간 동안 화장실도 못 간 채 참고 운행을 마쳤던 기관사 얘기도 있죠."

열차가 도착했다. 시간은 정확했다. 회차하는 차량이라 기지에 들어가지 않고 곧바로 박 씨가 교대해 운행하게 된다. 전철에 올라타니, 미처 못 내린 할아버지 한 분이 안절부절못하고 서 있었다. 박 씨는 "조금만 기다리세요. 조금 있다가 출발하기 전에 반대편 문을 열어드릴 테니 내리세요"라고 친절히 일러두었다.

박 씨는 마치 터널 속의 터널 같은 지하철의 긴 객차 속을 뚫고 걸어가 반대편 운전실에 들어간 뒤 문을 걸어 잠갔다. 새로 운행을 시작해야 한다. 비상 상황일 때 마이크가 작동하지 않으면 곤란하기 때문에 마이크 테스트와 안내 방송 테스트를 하느라 창문을 잠깐 열었다. 창밖에 귀를 기울이던 그는 문을 닫았다. 1분 후면 출발한다. 출발하기 전, "운전할 때는 이런 말을 하면 안 된다"며 박 씨가 '우울한 얘기'를 마지막으로 꺼냈다.

"예전에 한 기관사 선배가 이런 얘길 입버릇처럼 했어요. '야 니네 버튼 누르고 다니다가 그냥 가는 수가 있다.' 농담처럼 하는 얘기죠. 그 선배가 어느 날 휴가를 내더니 고향 여수 바닷가에 가서 투신 자살을 했어요. (1월 19일 세상을 떠난) 황아무개 기관사는 애가 셋이에요. 큰애가 아홉 살, 둘째가 네 살, 막내가 한 살이에요. 그런데, 자살을…. 작년에 스스로 목숨을 던졌던 이아무개 기관사는 원래 기관사 출신도 아니에요. 전직을 해서 온 사람이에요. 기관사 중 좀 문제가 있는 사람은 다른 곳으로 전직을 시키는데, 기관사가 승무직에서 다른 곳으로 옮기면, 다른 직군에서 기관사로 또 와야 하잖아요. 그렇게 온 사람이에요. 그런 사람도 자살을 하는 것을 보고 '야, 전직한 사람도 그러는구나' 하고 충격을 받았죠.

황 씨가 정말 그런 사람이 아닌데…, 자살을 하는 것을 보고, 다른 동료 기관사가 혹시나 해서 병원에 가봤대요. 전혀 몰랐는데, 원래 자기 몸은 자기가 알잖아요, 그 기관사, 병원에서 공황장애 진단 받고 바로 입원을 했어요. 멀쩡하던 사람이 갑자기 정신장애로 입원한 상황. 이해하세요? 그런 걸 겪으니, 이젠 나도 나를 못 믿겠어요. 내 내면에 뭐가 있는지…. 내가 모르는 다른 영역이 있는 것 같아요."


 /박세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