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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2월 1일 금요일

이충연 "MB 정권은 나를 용서할 수 없다"


이글은프레시안 2013-01-31일자 기사 '이충연 "MB 정권은 나를 용서할 수 없다"'를 퍼왔습니다.
[포토] 용산참사 구속자 이충연 씨 출소하던 날

용산 철거민 이충연 씨가 31일 안양교도소에서 출소했다. 2009년 용산철거민대책위원장이었던 그는 망루에 올라 경찰특공대와 대치하다 참사를 겪었다. 그때 아버지 이상림 씨와 동료 철거민 4명을 잃고 4년 동안 수감됐다. 안양교도소에서는 모친 전재숙 씨, 부인 정영신 씨가 그를 맞았다.

감격스런 상봉. 말보다 눈물이 앞섰다. 어머니와 아내는 차례로 이 씨를 안고 꽃다발을 안겼다. 이충연 씨는 환한 얼굴로 가족을 맞았지만 비교적 담담한 모습으로 눈물을 보이지는 않았다.

이어 열린 기자회견에서 그는 "오늘은 날씨가 따뜻하다. 4년 전 망루에 올랐을 때는 영하 10도를 밑도는 날씨였다"며 참사 당시의 악몽을 떠올렸다. 그는 "그날 아버지와 철거민 네 분을 잃었다. 그러나 4년이 지난 지금도 개발 지역에서 대책 없이 철거민들이 내쫓긴다. 또 다른 용산이 계속되고 있다"고 쓴소리를 내뱉었다.

이어 그는 "저 안(감옥)에서 이웃들의 삶을 돌아볼 수 있게 됐다"며 "내가 원해서 이렇게 살기 시작한 것은 아니지만 이제는 이웃을 살피면서 살겠다"고 말했다. 그는 또 "수많은 노동자들이 극단의 선택으로 삶을 마감한다"며 쌍용차 국정조사의 필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 31일 출소한 이충연 씨를 가족이 맞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이번 특별 사면에 대한 비판도 잊지 않았다. 그는 "저들이 권력으로 나를 석방했지만 나를 용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용서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다"라고 말해 대통령 측근용 특사의 구색 맞추기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이번 사면을 비꼬았다. 박근혜 당선인에 대해서도 후보 시절 했던 '용산참사 진상 규명' 약속을 지켜달라고 주문했다.

부인 정영신 씨는 "혼자 남편을 만나서 (남편을 잃은) 어머니들에게 죄송한 마음"이라고 말문을 연 뒤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만을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버텼다"고 지난 4년을 회고했다. 그는 이어 "다시는 이 나라에서 집이 없어서, 가진 게 없어서 쫓겨나고 죽음을 당하는 사람이 없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각오를 다졌다.

한편, 이 씨와 같이 구속된 철거민 중 4명도 이날 대구·순천·여주·춘천교도소에서 각각 출소했다. 이들은 이날 저녁 7시 서울 대한문 앞에서 집회를 연다. 다음 날인 1일에는 용산참사 희생자가 묻힌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을 참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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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멀리서 이충연 씨가 아내 정영신 씨를 향해 걸어오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 이충연 씨는 2009년 1월 수감돼 꼬박 4년을 옥살이했다. ⓒ프레시안(최형락)

▲ 아내 정영신 씨와 이충연 씨. ⓒ프레시안(최형락)

▲ 그는 박근혜 당선인이 용산참사 진상 규명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프레시안(최형락)

▲ 아내를 보고 있는 이충연 씨. 아내 정영신 씨는 '용산의 며느리'라 불리며 참사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활동가로 변신했다. 그는 이날 아내에게 미안함과 고마움을 전했다. ⓒ프레시안(최형락)

▲ 기자회견 내내 어머니 전재숙 씨가 아들 손을 꼭 잡고 있다. 평범하던 전재숙 씨는 아들이 감옥에 있는 4년 동안 투쟁 사업장을 돌며 연대 활동을 해왔다. ⓒ프레시안(최형락)

▲ 이들은 재개발 지역에서의 강제 퇴거 금지와 재개발 정책 개선 등을 요구했다. ⓒ프레시안(최형락)

▲ 31일 오전 경기도 안양교도소 앞에서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 안양교도소 정문에는 '꿈과 희망을 주는 교정'이라고 적힌 간판이 걸려 있다. 이충연 씨는 감옥에서 책과 신문을 읽으며 사회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됐다고 했다. "이제는 가족만을 위해 살 수 있는 시간은 아닌 것 같다"고 말하는 이충연 씨. 역설적이게도 그는 교도소에서 새로운 '꿈'과 '희망'을 가슴에 담고 나왔다. MB정권은 이렇게 평범했던 사람을 투사로 키웠다. ⓒ프레시안(최형락)

/최형락 기자

2012년 12월 31일 월요일

‘깔때기’ 정봉주 감옥 갔다 오더니…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12-30일자 기사 '‘깔때기’ 정봉주 감옥 갔다 오더니…'를 퍼왔습니다.

정봉주 전 의원이 29일 오후 서울 북촌의 한 찻집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정봉주 전 의원 출소 후 첫 인터뷰
 “성찰 없인 살아남지 못해…국민 행복해진다면 선거 져도 돼
”87년 넥타이부대였던 50대를 우리가 내치지는 않았는지…
‘48% 지지’ 반성으로 지켜내고 ‘51% 반대’ 공감으로 다가가

정봉주 전 민주당 의원이 진지해졌다. 특유의 독설이 사라졌다. 자기자랑을 늘어놓는 ‘깔때기’도 줄었다. ‘반성하는 정봉주는 재미없지 않으냐’는 질문에 “지금 성찰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고 답했다.29일 서울 종로구 북촌의 한 찻집에서 출소 뒤 첫 언론 인터뷰에 응한 정봉주 전 의원은 박근혜 정부의 성공을 진심으로 성원한다며 야권의 자성을 촉구했다.박근혜 정부의 성공을 기원하는 게 진심이냐고 재차 물어도 “진심이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정 전 의원은 “박근혜 당선인이 집권하니까 이민을 가겠다거나 실정을 바라는 것은 어리석은 태도다. 박 당선인의 성공에 국민들의 삶이 달려 있다. 진심으로 성공하길 바라고, 그들이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를 다 실현해 국민들이 행복하다면 다음 선거에서 져도 상관없다. 우리(민주당)는 나름대로 진화해야 한다”고 말했다.그는 또 “성공의 가장 기본적 조건은 생각이 다른 상대를 인정하는 것이다. 박 당선인이 만일 쌍용차 농성촌과 고공농성장을 찾게 되면 민주당으로선 정말 싸우기 힘든 상대가 된다. 우리로선 뼈아프지만 그렇게 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정 전 의원은 25일 출소하자마자 첫 행보로 서울 중구 대한문 옆 농성촌을 찾은 바 있다.정 전 의원은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가 48%의 지지를 얻은 이번 대선 결과에 대해 “선전했다”고 평가하면서도 “48%가 정말 우리 표인가. 민주당이 언제 48%의 지지를 얻어봤나. 우리가 이 지지를 어떻게 유지할 수 있을까를 먼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민주통합당 의원 한명 한명이 내가 잘못했다고 반성해야 하는데, 겉으로는 반성한다고 하고선 안에서는 서로 남 잘못이라고 한다”고 덧붙였다.정 전 의원은 “(문 후보를 지지한) 48%를 지키는 것은 반성이고, (박근혜 당선인을 지지한) 51%에게 다가가는 것은 공감”이라는 말도 했다. “박 당선인을 찍은 50대는 6월 항쟁 때 넥타이 부대였고, 2002년 노무현을 찍었던 사람들이다. 혹시 우리 사회가 그 세대를 존중하지 않고, 지금 있는 곳에서 나가라고 하지 않았는지 뼈아프게 되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또 세대를 떠나 박근혜 당선인을 찍은 51%에 대해 야권이 너무 몰랐다고 진단했다. 그는 “우리가 51%를 너무 몰랐다. 그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우리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복기해야 한다”고 밝혔다.야권의 주요 패인에 대해 정 전 의원은 다양한 의제를 이끌어내지 못한 데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지난 5년간의 실정을 심판하려면 전선을 넓혔어야 했다. 의원들 한명 한명이 대선 후보만 따라다닐 게 아니라 자기 분야에서 싸워야 했다. 정리해고, 비정규직, 환경, 물가, 양극화, 교육, 등록금 등으로 전선을 넓히지 못한 것이 아쉽다”고 지적했다.민주통합당을 비롯한 개혁진영의 진로와 관련해선 약자를 보호하고 기득권에 맞설 새로운 방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기업과 정권은 노동자들에게 손해배상 청구를 한다. 노동자 탄압이 21세기 방식으로 진화한 것이다. 반면 투쟁의 방식은 아직 그대로다. 상대가 정말 난감하게 생각하는 투쟁의 방식은 쌍용차 해고자를 상담하는 ‘와락’의 활동이나 재능기부, 문화공연 같은 것”이라며 앞으로 이런 투쟁에 동참하겠다는 뜻을 밝혔다.정 전 의원은 비비케이(BBK) 주가조작 의혹 폭로에 대해 “전혀 후회하진 않지만, 다시 맡는다면 더 잘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2007년 대선 때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후보의 비비케이 주가조작 연루 의혹을 제기했다가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그는 “당시엔 잘못이 있다고 말하는 것에만 급급했다. 하지만 비비케이는 너무 어렵고 복잡한 사안이었다. 듣는 사람들이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언어로 얘기했어야 했다”고 회고했다.투옥되기 전까지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나꼼수)를 진행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라고 설명했다. “사람들이 정치에 관심을 갖게 하기 위해 나꼼수를 했다. 비판하는 국민이 많아지면 정부는 절대 엇나갈 수 없다. 물론 나꼼수의 여러 한계가 있지만, 기존 언론이 다루지 않은 것을 쟁점화했다는 점에서 대안언론의 움직임은 계속될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1년간 감옥생활을 했지만 그의 표정은 인터뷰 내내 밝았다. 정 전 의원은 “감옥에서의 1년은 하늘이 내게 준 기회였다. 나꼼수 하다가 총선에서 당선됐으면 스스로를 연예인처럼 생각했을 거다. 감옥 안에서 독서와 운동에 열중하면서 자신을 가다듬었다. 나중엔 내가 이명박 대통령에게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나 착각할 정도였다”며 웃었다.정 전 의원은 앞으로 9년간 피선거권이 제한된다. 그는 상관없다고 했다. “좁은 의미의 정치를 못할 뿐, 넓은 의미의 정치는 계속할 수 있다. 내년 1월에 책을 출간할 계획이고, 지역에서 시민사회기구를 만들어 공익적인 일을 도모할 것”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에 그는 “이젠 정치가 국민들에게 웃음을 줘야 한다. 나처럼”이라고 덧붙였다. 특유의 ‘깔때기’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윤형중 기자 hjyoon@hani.co.kr

2012년 8월 21일 화요일

튀는행동으로 왕따? 강의석 재평가


이글은 프레스바이플 2012-08-20일자 기사 '튀는행동으로 왕따? 강의석 재평가'를 퍼왔습니다.
(기자수첩) 양심적 병역거부 구속됐다 14일 출소

▲ 강의석/홈페이지 캡쳐

고교시절 '학교내 종교자유'와 '국군의 날 알몸시위'등으로 화제를 모았으며 지난해 6월 2일 양심적 병역거부로 인해 1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감옥에 갔다가 최근 출소한 강의석(27)을 19일 신촌에 있는 더블더블호프에서 만났다.
필자가 강의석을 처음 만난 건 지난 2004년 고등학교 3학년 시절이었다. 이후 종교인권을 위한 '로이'와 '18세 선거권 낮추기 공동연대'그리고 '학교폭력피해자가족협의회 청소년대책위'등에서 함께 활동하기도 했다.
19일 다시 만난 강의석은 감옥에서 관리를 했는지 다부진 체격에 근육질의 몸매로 재탄생했다. 감옥에 가면 밥을 제대로 안주고 수척해질 것이라고 생각한 필자의 생각과는 다른 결과에 의외(?)였지만 의석이는 생각보다 힘들었다고 전했다.
실제 강의석은 겉으로는 건강해보였지만 감옥에서 손을 다쳐 현재 한쪽 손 사용이 불가능한 상태다. 강의석은 감옥에서 있었던 일을 '감옥일기'라는 이름으로 책을 내볼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필자와 강의석은 86년생 청소년활동가 시절의 친분을 바탕으로 공동으로 팟캐스트 인터넷 방송을 하는 것과 음반을 제작하는 것 등 다양한 음모(?)를 구상하며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회포를 풀수 있었다.
강의석은 서울시 교육청에서 학교 내 종교자유를 주장하며 1인시위를 하는 모습을 (한겨레신문)이 보도했고, 이후 어린 나이에 단식을 하면서 언론에 화제가 됐다.
강의석은 '학생들에게 개신교 예배를 강요하는데 반발하는 시위'를 벌였다는 이유로 2004년 6월 대광고등학교에서 제적당했으나, 퇴학무효 소송 및 손해배상청구를 통해 대법원에서 승소했다. 이후 강의석은 '군대'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한다.
군대와 관련된 '다큐멘터리 영화'를 촬영해 영화제에 출품하기도 하고, 군대폐지를 주장했다. 올림픽 금메달로 병역특례를 받은 수영선수 박태환에게 '태환아, 너도 군대 가'라는 글을 보내 논란을 일으켰고, 국군의 날 강남 테헤란로 앞에서 전차를 몸으로 막은 채 알몸으로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이후 강의석은 2010년 11월 논산훈련소에 입소하라는 입영통지서를 받고도 이행하지 않아 병역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고, 결국 1년6개월의 실형을 받았다.
강의석이 공식적으로 사람들의 비난을 받기 시작한 건, 군대 문제를 제기하고 부터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 병역특례를 받은 박태환 선수에게 군대가라고 발언하며 안티를 늘렸고, 정점을 찍은 것은 같은해 12월 알몸시위 때문.
알몸시위는 외국에서도 종종 있는 시위 방법인데도 단지 국내에서는 아직 없었던 투쟁의 방식. 조금 튀었다는 이유만으로 국내 여론은 강의석을 비난했다.
"관심병""언론노출증""나중에 정치하려고"등의 색깔을 덧씌우며 여론은 그를 '돌아이'로 낙인찍었다. 하지만 비난 여론 어디에도 그의 행동의 어떤 부분이 문제점인지, 그의 주장이 틀린 점이 무엇인지를 지적하는 글은 많지 않았다.
강의석이 공직 등에 몸담으며 누군가의 신뢰를 배신한 것도 아니고, 피해를 준 것도 없다. 그가 잘못한 것이 있다면 남들과 다르게 튀었다는 것뿐.
사람들은 말한다. "20대가 무엇이든 부딪혀야 하는 무모한 용기를 바란다"고 말이다. 그리고 "젊은 나이의 실수는 경험" 이라는 말도 있다. 이런 말이 나온 것은 나이가 들면 하지 못하는 것들을 20대라면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젊은 세대가 용기를 내지 않고 기성세대와 같이 현실에 안주하면 세상은 과연 바뀔 수 있었을까?
그렇기에 강의석은 재평가받아야 한다. 그가 행했던 국군의 날 누드 퍼포먼스를 두고 많은 이들이 '쇼'라고 했지만 그것은 쇼가 아니었다. 강의석은 내방동에 있는 본인의 자취방에서 매주 사람들을 모아 '군대'문제에 대해 토론했고 국군의 날 시위도 많은 사람들이 함께 의견을 모은 것이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성폭력상담소' 등 여성단체 활동가도 있었다.
알몸시위가 논란의 여지는 있었지만, 병역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무런 무기도 없이 전차 앞에 선다는 '상징성' 부각과 그 상징성을 통한 여론 환기가 목적이었다. 그런 목적을 이루는 데는 실패했지만 결론적으로 '진정성'을 가지고 논의를 했던 결과다.
사회적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지 않았다는 비판은 수용하면서도 강의석의 모든 행동 자체가 '쇼'와 '진정성'문제로 결부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사회 운동이 꼭 시위를 하거나, 전단지를 돌리거나, 서명을 하는 방식이 올바른가? 그런 방식은 효과적이지도 않을 뿐더러 동일한 사회문제의 되풀이 장사를 하는 느낌마저 든다. 오히려 강의석같은 사람이 '미친놈'처럼 한번 튀어주면서 대중의 관심을 환기시키는 것이 오히려 진보진영의 '활력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강의석이 남 다르게 튀는 모습, 평화에 대한 근본적 이상주의, 그리고 강의석 개인에 대한 루머가 뒤섞이면서 생긴 오해와 편견은 이제 거둘 때가 됐다. 강의석이 싫다고 해서 그가 전하는 메시지를 '하찮다'고 여기면 안된다.
군대를 없애자는 생각은 평화를 외치는 순수한 이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현실적인 불가능한 주장을 한다고 해서 그 주장이 비웃고 조롱하는 것만이 전부가 되어서도 안된다. 강의석은 자신의 신념에 대해서는 고집을 가지고 끝까지 밀고나가는 사람이다. 단지 '튀었다'는 이유로 진보진영에서 따돌리는 일은 없어야 한다. 기존의 방식이 모두 옳은 것이 아니듯이 시민운동의 다양성도 존중돼야 한다.

이계덕 기자  |  dlrpejr@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