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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2월 2일 토요일

"용산참사 진압, 경찰 수뇌부가 잘못 인정"


이글은 오마이뉴스 2013-02-01일자 기사 '"용산참사 진압, 경찰 수뇌부가 잘못 인정"'을 퍼왔습니다.
[이털남 275회] 이충연 용산4구역 철거민대책위원장·철거민 김재호씨

▲ 석방 후 아버지 묘소 찾은 용산철거민 이충연 대통령 특사로 석방된 용산철거민참사 구속자 이충연씨가 부인 정영신씨와 함께 1일 오전 경기도 남양주시 모란공원에서 철거민 희생자 5명의 묘소를 참배하던 중, 아버지 이상림씨의 묘소를 침통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 권우성

'용산참사' 당시 구속된 이충연 용산4구역 철거민대책위원장이 이명박 대통령 임기 말 특별사면으로 지난 1월 31일 출소해 4년여 만에 가족의 품에 안겼다. '용산참사'는 2009년 1월 20일 용산4구역 재개발 철거 현장에서 철거민 5명과 경찰 1명이 목숨을 잃은 사건이다. 

출소 다음 날인 1일 이 위원장은 오마이뉴스 팟캐스트 방송 [이슈 털어주는 남자(이털남)]에 출연해 그동안의 소회를 털어놨다. 용산참사 당시 함께 구속된 철거민 김재호(57)씨도 함께했다. 

☞ 아이튠즈에서 (이털남) 듣기
☞ 오마이TV에서 (털남) 듣기

이 위원장은 부모님이 27년 정도 운영한 음식점을 개조해 호프 가게 영업을 해오던 평범한 '사장님'이었다. 용산참사 당시 서울 용산구 한강로2가 남일동 건물 망루에 올라 철거에 저항하다 구속돼 옥살이를 하게 됐다. 김씨 역시 용산에서 25년간 금은방을 운영하다가 용산참사 농성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3년 9개월 동안 옥살이를 하고 지난해 10월 가석방됐다. 

4년여의 수감생활과 관련해 이 위원장은 "신문과 책을 읽으며 용산참사의 원인인 도시개발 문제를 두고 공부했다"며 "그밖에 노동자·농민·빈민 문제도 관심을 갖고 지켜봤다"고 말했다. 

김씨는 "교도소에 있는 동안 딸에게 만화로 편지를 보내는 일에 집중했다"며 "제가 구속된 이후 정신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딸을 즐겁게 해주고자 했다"고 전했다. 그는 교도소에서 딸에게 보낸 만화편지를 엮어 책 (꽃피는 용산, 딸에게 보내는 편지)를 출간하기도 했다. 이 책에는 김씨가 가석방 때까지 보낸 편지 400여 통이 담겼다. 

'도심 테러리스트' 비판에... "우리가 원한 건 장사하게 해달라는 것뿐"

▲ 2009년 ‘용산참사’ 당시 점거농성을 벌이다 수감됐던 철거민 김재호씨(57)는 만기 3개월을 앞두고 지난해 10월 가석방됐다. 용산참사가 일어나기 전까지 김씨는 용산 4구역에서 25년 동안 금은방을 운영했다. ⓒ 남소연

교도소 안에서 분주한 시간을 보낸 두 사람은 출소 후에도 용산참사 진상규명을 위해 바쁜 일정을 소화할 예정이다. 이 위원장은 "재판 과정에서 많은 진실이 드러났는데 잘 알려지지 않았다"며 "사건 당시 공권력을 통한 진압에 대해서도 경찰 수뇌부가 잘못이라 인정했다"고 하소연했다. 

이 위원장은 또 "경찰은 '사고 원인인 화재는 철거민들의 화염병 때문'이라고 주장했는데, 당시 현장에 있었던 경찰 대부분은 화염병이 없었다고 이야기했다"며 "불이 밖에서부터 시작되는 동영상도 있다"고 반박했다. 그는 "이러한 내용들과 관련해 정부와 국회가 나서 진상규명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들은 용산참사의 원인이 세입자가 소외되는 도시 재개발 정책 때문이라며 무분별한 철거를 막을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정청래 민주통합당 의원이 발의한 '강제퇴거금지법' 제정이 하루빨리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용산참사 때 철거민들의 저항이 지나치게 강경했다는 비판과 관련해서도 아쉬움을 표했다. 당시 일부 보수 언론에서는 망루에 오른 철거민들을 '도심 테러리스트'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 위원장은 "용산참사 전부터 약 1년 동안 경비용역업체 직원들에게 맞으며 시달렸고 지방자치단체에 대화를 요청해도 들어주지 않았다"며 "저희의 방법이 무조건 옳았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이런 상황이 저희를 극단으로 밀어 올렸다는 현실을 사람들이 알아줬으면 한다"고 조심스레 말했다.

▲ 이충연 용산4구역 철거대책위원장과 용산4구역 철거민 김재호씨가 1일 오마이뉴스 팟캐스트 방송 <이슈 털어주는 남자>에 출연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이주영

김씨도 "우리가 요구한 건 용산에서 계속 장사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뿐이었는데, 철거민의 농성이 강경하다는 비판에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나도 철거민이 되기 전에는 강경한 농성이 문제라고 생각했었는데, 직접 당해보니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를 이해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 위원장은 (이털남)에 출연하기 경기 마석 모란공원에 들러 용산참사 희생자 묘역을 참배했다. 그는 용산참사 당시 망루에 올랐다가 목숨을 잃은 아버지 이상림씨의 묘소에도 들렸다. 

이 위원장은 "아직 용산참사와 관련해 제대로 밝혀진 게 없고, 아버지가 원했던 염원도 이뤄지지 않아 죄송한 마음에 무덤 앞에서 눈물을 많이 흘렸다"며 "용산참사 진상규명으로 아버지의 명예를 회복해드릴 때까지 눈물을 흘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고 전했다.

이주영(imjuice)

"용산참사 진압, 경찰 수뇌부가 잘못 인정"


이글은 오마이뉴스 2013-02-01일자 기사 '"용산참사 진압, 경찰 수뇌부가 잘못 인정"'을 퍼왔습니다.
[이털남 275회] 이충연 용산4구역 철거민대책위원장·철거민 김재호씨

▲ 석방 후 아버지 묘소 찾은 용산철거민 이충연 대통령 특사로 석방된 용산철거민참사 구속자 이충연씨가 부인 정영신씨와 함께 1일 오전 경기도 남양주시 모란공원에서 철거민 희생자 5명의 묘소를 참배하던 중, 아버지 이상림씨의 묘소를 침통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 권우성

'용산참사' 당시 구속된 이충연 용산4구역 철거민대책위원장이 이명박 대통령 임기 말 특별사면으로 지난 1월 31일 출소해 4년여 만에 가족의 품에 안겼다. '용산참사'는 2009년 1월 20일 용산4구역 재개발 철거 현장에서 철거민 5명과 경찰 1명이 목숨을 잃은 사건이다. 

출소 다음 날인 1일 이 위원장은 오마이뉴스 팟캐스트 방송 [이슈 털어주는 남자(이털남)]에 출연해 그동안의 소회를 털어놨다. 용산참사 당시 함께 구속된 철거민 김재호(57)씨도 함께했다. 

☞ 아이튠즈에서 (이털남) 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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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위원장은 부모님이 27년 정도 운영한 음식점을 개조해 호프 가게 영업을 해오던 평범한 '사장님'이었다. 용산참사 당시 서울 용산구 한강로2가 남일동 건물 망루에 올라 철거에 저항하다 구속돼 옥살이를 하게 됐다. 김씨 역시 용산에서 25년간 금은방을 운영하다가 용산참사 농성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3년 9개월 동안 옥살이를 하고 지난해 10월 가석방됐다. 

4년여의 수감생활과 관련해 이 위원장은 "신문과 책을 읽으며 용산참사의 원인인 도시개발 문제를 두고 공부했다"며 "그밖에 노동자·농민·빈민 문제도 관심을 갖고 지켜봤다"고 말했다. 

김씨는 "교도소에 있는 동안 딸에게 만화로 편지를 보내는 일에 집중했다"며 "제가 구속된 이후 정신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딸을 즐겁게 해주고자 했다"고 전했다. 그는 교도소에서 딸에게 보낸 만화편지를 엮어 책 (꽃피는 용산, 딸에게 보내는 편지)를 출간하기도 했다. 이 책에는 김씨가 가석방 때까지 보낸 편지 400여 통이 담겼다. 

'도심 테러리스트' 비판에... "우리가 원한 건 장사하게 해달라는 것뿐"

▲ 2009년 ‘용산참사’ 당시 점거농성을 벌이다 수감됐던 철거민 김재호씨(57)는 만기 3개월을 앞두고 지난해 10월 가석방됐다. 용산참사가 일어나기 전까지 김씨는 용산 4구역에서 25년 동안 금은방을 운영했다. ⓒ 남소연

교도소 안에서 분주한 시간을 보낸 두 사람은 출소 후에도 용산참사 진상규명을 위해 바쁜 일정을 소화할 예정이다. 이 위원장은 "재판 과정에서 많은 진실이 드러났는데 잘 알려지지 않았다"며 "사건 당시 공권력을 통한 진압에 대해서도 경찰 수뇌부가 잘못이라 인정했다"고 하소연했다. 

이 위원장은 또 "경찰은 '사고 원인인 화재는 철거민들의 화염병 때문'이라고 주장했는데, 당시 현장에 있었던 경찰 대부분은 화염병이 없었다고 이야기했다"며 "불이 밖에서부터 시작되는 동영상도 있다"고 반박했다. 그는 "이러한 내용들과 관련해 정부와 국회가 나서 진상규명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들은 용산참사의 원인이 세입자가 소외되는 도시 재개발 정책 때문이라며 무분별한 철거를 막을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정청래 민주통합당 의원이 발의한 '강제퇴거금지법' 제정이 하루빨리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용산참사 때 철거민들의 저항이 지나치게 강경했다는 비판과 관련해서도 아쉬움을 표했다. 당시 일부 보수 언론에서는 망루에 오른 철거민들을 '도심 테러리스트'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 위원장은 "용산참사 전부터 약 1년 동안 경비용역업체 직원들에게 맞으며 시달렸고 지방자치단체에 대화를 요청해도 들어주지 않았다"며 "저희의 방법이 무조건 옳았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이런 상황이 저희를 극단으로 밀어 올렸다는 현실을 사람들이 알아줬으면 한다"고 조심스레 말했다.

▲ 이충연 용산4구역 철거대책위원장과 용산4구역 철거민 김재호씨가 1일 오마이뉴스 팟캐스트 방송 <이슈 털어주는 남자>에 출연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이주영

김씨도 "우리가 요구한 건 용산에서 계속 장사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뿐이었는데, 철거민의 농성이 강경하다는 비판에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나도 철거민이 되기 전에는 강경한 농성이 문제라고 생각했었는데, 직접 당해보니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를 이해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 위원장은 (이털남)에 출연하기 경기 마석 모란공원에 들러 용산참사 희생자 묘역을 참배했다. 그는 용산참사 당시 망루에 올랐다가 목숨을 잃은 아버지 이상림씨의 묘소에도 들렸다. 

이 위원장은 "아직 용산참사와 관련해 제대로 밝혀진 게 없고, 아버지가 원했던 염원도 이뤄지지 않아 죄송한 마음에 무덤 앞에서 눈물을 많이 흘렸다"며 "용산참사 진상규명으로 아버지의 명예를 회복해드릴 때까지 눈물을 흘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고 전했다.

이주영(imjuice)

2013년 2월 1일 금요일

이충연 "MB 정권은 나를 용서할 수 없다"


이글은프레시안 2013-01-31일자 기사 '이충연 "MB 정권은 나를 용서할 수 없다"'를 퍼왔습니다.
[포토] 용산참사 구속자 이충연 씨 출소하던 날

용산 철거민 이충연 씨가 31일 안양교도소에서 출소했다. 2009년 용산철거민대책위원장이었던 그는 망루에 올라 경찰특공대와 대치하다 참사를 겪었다. 그때 아버지 이상림 씨와 동료 철거민 4명을 잃고 4년 동안 수감됐다. 안양교도소에서는 모친 전재숙 씨, 부인 정영신 씨가 그를 맞았다.

감격스런 상봉. 말보다 눈물이 앞섰다. 어머니와 아내는 차례로 이 씨를 안고 꽃다발을 안겼다. 이충연 씨는 환한 얼굴로 가족을 맞았지만 비교적 담담한 모습으로 눈물을 보이지는 않았다.

이어 열린 기자회견에서 그는 "오늘은 날씨가 따뜻하다. 4년 전 망루에 올랐을 때는 영하 10도를 밑도는 날씨였다"며 참사 당시의 악몽을 떠올렸다. 그는 "그날 아버지와 철거민 네 분을 잃었다. 그러나 4년이 지난 지금도 개발 지역에서 대책 없이 철거민들이 내쫓긴다. 또 다른 용산이 계속되고 있다"고 쓴소리를 내뱉었다.

이어 그는 "저 안(감옥)에서 이웃들의 삶을 돌아볼 수 있게 됐다"며 "내가 원해서 이렇게 살기 시작한 것은 아니지만 이제는 이웃을 살피면서 살겠다"고 말했다. 그는 또 "수많은 노동자들이 극단의 선택으로 삶을 마감한다"며 쌍용차 국정조사의 필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 31일 출소한 이충연 씨를 가족이 맞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이번 특별 사면에 대한 비판도 잊지 않았다. 그는 "저들이 권력으로 나를 석방했지만 나를 용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용서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다"라고 말해 대통령 측근용 특사의 구색 맞추기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이번 사면을 비꼬았다. 박근혜 당선인에 대해서도 후보 시절 했던 '용산참사 진상 규명' 약속을 지켜달라고 주문했다.

부인 정영신 씨는 "혼자 남편을 만나서 (남편을 잃은) 어머니들에게 죄송한 마음"이라고 말문을 연 뒤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만을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버텼다"고 지난 4년을 회고했다. 그는 이어 "다시는 이 나라에서 집이 없어서, 가진 게 없어서 쫓겨나고 죽음을 당하는 사람이 없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각오를 다졌다.

한편, 이 씨와 같이 구속된 철거민 중 4명도 이날 대구·순천·여주·춘천교도소에서 각각 출소했다. 이들은 이날 저녁 7시 서울 대한문 앞에서 집회를 연다. 다음 날인 1일에는 용산참사 희생자가 묻힌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을 참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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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멀리서 이충연 씨가 아내 정영신 씨를 향해 걸어오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 이충연 씨는 2009년 1월 수감돼 꼬박 4년을 옥살이했다. ⓒ프레시안(최형락)

▲ 아내 정영신 씨와 이충연 씨. ⓒ프레시안(최형락)

▲ 그는 박근혜 당선인이 용산참사 진상 규명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프레시안(최형락)

▲ 아내를 보고 있는 이충연 씨. 아내 정영신 씨는 '용산의 며느리'라 불리며 참사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활동가로 변신했다. 그는 이날 아내에게 미안함과 고마움을 전했다. ⓒ프레시안(최형락)

▲ 기자회견 내내 어머니 전재숙 씨가 아들 손을 꼭 잡고 있다. 평범하던 전재숙 씨는 아들이 감옥에 있는 4년 동안 투쟁 사업장을 돌며 연대 활동을 해왔다. ⓒ프레시안(최형락)

▲ 이들은 재개발 지역에서의 강제 퇴거 금지와 재개발 정책 개선 등을 요구했다. ⓒ프레시안(최형락)

▲ 31일 오전 경기도 안양교도소 앞에서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 안양교도소 정문에는 '꿈과 희망을 주는 교정'이라고 적힌 간판이 걸려 있다. 이충연 씨는 감옥에서 책과 신문을 읽으며 사회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됐다고 했다. "이제는 가족만을 위해 살 수 있는 시간은 아닌 것 같다"고 말하는 이충연 씨. 역설적이게도 그는 교도소에서 새로운 '꿈'과 '희망'을 가슴에 담고 나왔다. MB정권은 이렇게 평범했던 사람을 투사로 키웠다. ⓒ프레시안(최형락)

/최형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