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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3월 7일 목요일

[Why뉴스] 장관님들, 왜 5.16을 쿠데타라 말하지 못할까?

이글은 노컷뉴스 2013-03-07일자 기사 '[Why뉴스] 장관님들, 왜 5.16을 쿠데타라 말하지 못할까?'를 퍼왔습니다.
지나친 대통령 '눈치보기'…명백한 역사적 사실도 소신껏 발언 못해



박근혜 정부의 장관 후보자들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가 본격적으로 치러지고 있다. 그러나 장관 후보자들이 인사청문회에서 국회의원들의 5.16 군사쿠데타에 대한 질문에 제대로 응답을 하지 못하는 일이 이어지고 있다.

'역사의 평가에 맡기겠다'거나 '국무위원으로서 견해를 밝히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거나 심지어 '역사적 문제에 대하여 판단을 할 만큼 깊은 공부가 안 되어 있다'며 답변을 회피하고 있다.

5.16에 대해서는 대법원이 '쿠데타'로 판결을 했고 헌법재판소에서도 쿠데타임을 곳곳에서 밝히고 있다. 보수단체들이 만든 교과서에도 5.16은 쿠데타라는 표현이 나온다.

그런데도 법률을 다루는 법무부장관이나 교육을 담당하는 교육부장관을 비롯해 학자 출신 등 여러 장관후보자들이 명백한 역사적 사실에 대해 소신껏 입장 표명을 하지 못하는 건 결국 박근혜 대통령의 눈치를 보기 때문일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구국의 결단'이라고 하다가 지난해 대선과정에서 "5.16이 헌법 가치를 훼손"했다며 대국민사과를 했는데도 장관후보자들이 대통령의 눈치를 보며 소신 있는 답변을 하지못하는 것이다.

일국의 장관 후보자들이 대통령의 눈치를 보면서 명백한 역사적 사실에 대한 답변조차 제대로 못한다면 국정을 운영하면서 어떻게 할지는 불을 보듯 뻔 할 수밖에 없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하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의 심정처럼 소신껏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거나 대통령에게 직언을 할 장관이 없을 것이라는 얘기고 이는 박근혜 정부 5년 내내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그래서 오늘 [Why뉴스]에서는 "장관님들, 왜 5.16을 쿠데타라 말하지 못할까?"라는 주제로 그 속사정을 알아보고자 한다.

▶ 장관후보자들이 왜 5.16을 쿠데타라고 말하지 못하는 걸까요?

= 장관 후보자들이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답변한 내용을 보면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6일 청문회를 한 류길재 통일부장관 후보자는 "5.16은 쿠데타가 맞느냐"는 민주통합당 정청래 의원의 질문에 "역사의 평가에 맡겨야 한다고 본다"고 답변했다.

조윤선 여성부장관 후보자는 4일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5.16을 혁명이라고 생각하느냐, 쿠데타라고 생각하느냐"라는 민주통합당 전병헌 의원의 질의에 "역사적인 문제에 대해 판단을 할 만큼 깊은 공부가 안 되어 있다"고 답변했다. 

서남수 교육부장관 후보자는 지난달 28일 열린 청문회에서 "5.16을 군사정변으로 보느냐, 혁명으로 보느냐"는 질문에 "교과서에 기술된 것을 존중한다. 그 문제에 직답을 못 드리는 이유를 이해해 달라"고 답했으며 국회의원들의 거듭된 질문에도 서 후보자는 답변을 피했다.

황교안 법무부장관 후보자도 27일 인사청문회에 제출한 서면 답변서에서 5.16 쿠데타에 대해 "역사적, 정치적으로 다양한 평가가 진행 중이므로 개인적 견해를 밝히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밝혔고 28일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교과서 편수자료에 그런 내용이 있는 것으로 안다"며 "공감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유정복 장관 후보자 역시 국회에 제출한 서면 답변서에서 "(5.16 쿠데타에 대한) 답변이 어렵다"고 말했다.

다만 정홍원 국무총리는 "(5.16이) 군사정변으로 교과서에 기술돼 있고, 저도 찬성한다"고 말했다.

▶ 명확하게 답변한 후보자가 없는데 왜 이러는 거냐?

= 5.16에 대해서는 이미 법률적으로나 역사적으로 '군사 쿠데타'라는 건 명백한 사실이다. 뒷부분에서 다시 설명을 하겠지만 '군사 쿠데타'라는 사실은 바뀔 수 없는 사안인데도 일국의 장관 후보자들이 소신껏 말하지 못하는 건 박근혜 대통령의 눈치를 보기 때문일 것이다. 

5.16에 대한 평가는 박근혜 대통령의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인 만큼 자신을 임명한 대통령의 입장을 고려해서 명확한 답변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법률을 집행하는 법무부 장관이나 교육을 담당하는 교육부 장관조차 법률적으로 대법원에서 확정 판결을 했고 교과서에 기재된 사실에 대해서 제대로 된 답변을 못하는 건 심각한 사안이다.

명색이 일국의 장관인데 대법원에서 확정 판결을 한 사안에 대해서도 명확하기 말하지 못할 정도로 대통령의 눈치를 본다면 장관들이 국정을 수행하면서 어떻게 업무를 할 것인지는 명확하다. 대통령의 눈치만 보지 않겠나? 누가 이를 책임정부라고 하고 민주정부라고 할 수 있겠나?

친박계인 새누리당 윤상현 의원도 류길재 통일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청문회에서 "학자로서 당당하게 소신을 펴야지 왜 정의 내리지 못하나"라고 질타할 정도였다.

오늘의 주제와는 다소 거리가 있지만 지금 정부조직법이 표류하면서 박근혜 정부의 내각이 구성되지 못하는 심각이 상황이 빚어지는 것도 미래창조과학부와 방송통신위원회의 방송업무 분장에 대한 논란 때문이다.

대통령이 대국민담화를 발표하면서 격노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다. 결과적으로 대통령의 체면만 구긴 셈이다. 왜 이랬을까? 케이블SO(케이블 지역방송국)가 새 정부의 출범을 가로막을 만큼 중요하기 때문일까? 방송전문가들은 SO의 영향력이 크긴 하지만 정부 출범을 지체시킬만큼 중요한 사안은 아니라고 말한다. 이 문제를 누군가 대통령에게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있거나 잘못된 정보를 제공하기 때문일 것이라는 진단이 나온다.

명백한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도 대통령의 눈치를 보는데 박근혜 정부의 핵심으로 떠오른 미래창조과학부의 역할과 관련된 걸 누가 제대로 보고하고 설명하고 할 수 있겠나?

정부조직법에 대한 협상 과정에서 여당 측 대표들은 '대통령의 의지'라는 말이 나오면 한 점 한 획도고칠 수 없다고 나오는 상황이나 장관후보자들이 명백한 사실에 대해서조차 발언하지 못하는 상황이너무도 닮았다.

▶ 박근혜 대통령도 5.16을 헌법을 훼손한 사건이라고 하지 않았나?

= 그렇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9월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5.16은 헌법을 훼손한 사건이라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박 대통령은 야권에서 5.16과 유신, 제2차 인혁당사건에 대한 입장이 무엇인지를 집요하게묻자 "5.16, 유신, 인혁당 사건 등이 헌법 가치를 훼손하고 대한민국 정치발전을 저해하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지난 1989년 방송토론회에 출연해 "5.16은 '구국의 결단'"이라고 공개적으로 밝힌 뒤 입장에 변함이 없었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과정에서도 '구국의 결단'이라는 견해를 일관되게 밝혀왔다.


그런데 대국민사과 기자회견을 하면서 이를 공개적으로 번복했다. 비록 헌법을 훼손했다는 발언이 대선과정에서 마지못해 한 것이라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지만 처음으로 헌법가치를 훼손했다고 한 것이다. 

의미 있는 변화였지만 지금 장관후보자들이 보여주고 있는 모습을 보면 당시 박근혜 후보자의 대국민사과 발표가 진정성이 있었던 것인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박 대통령은 새누리당의 대선후보 경선과정에서 다른 후보들이 5.16에 대한 입장을 묻자 '쿠데타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답변을 분명히 한 적이 있다.

대국민사과를 발표하기 한 달여 전의 상황인데 당시 상황을 다시 언급하자면 김태호 후보가 5.16을 쿠데타로 인정하느냐? 라고 물으니까 "아니요"라고 대답했다. 그러면서 "그걸(5.16) 갖고 논쟁을 자꾸 일으켜서 '이게 쿠데타냐 혁명이냐' 싸우는 것 자체가 정치인이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도 역사관에 대해 문제를 삼자 "계속 몇 십 년 된 얘기만 하시는 거예요, 현재는 없어요 두 분한테 현재는 없고, 몇십 년 전 얘기만 계속하시는 거예요……. 참 과거에 묻혀 사시네요"라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이런 상황을 잘 아는 장관후보자들로서는 비록 박근혜 대통령이 '5.16을 헌법가치를 훼손' 했다는 발언을 했더라도 감히 대통령의 심기를 불편하게 할 발언을 자제하는 것으로 보이는 대목이다.

특히 정홍원 국무총리가 교과서에 군사정변이라고 기술돼 있고 이를 찬성한다고 했는데 장관 후보자들은 총리보다도 못한 답변을 하는 건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 쿠데타와 혁명이 어떻게 다른 거냐?

= 혁명이나 쿠데타 모두 비합법 수단으로 지배체제를 뒤집는 행위라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두산백과사전에 따르면 혁명(revolution , 革命)은 "기존 사회체제를 변혁하기 위해 이제까지 국가권력을 장악하였던 계층에 대신하여, 피지배계층이 그 권력을 비합법적인 방법으로 탈취하는 권력교체의 형식"을 말한다.

쿠데타(coup d'Etat)는 동일 체제 내에서 지배자의 교체를 목적으로 하며, 혁명과는 달리 민중의 지지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쿠데타라는 말은 ‘국가에 대한 일격 또는 강타’라는 뜻으로, 은밀하게 계획되어 기습적으로 감행되는 것이 보통이다.

쿠데타와 혁명의 근본적인 차이는 혁명은 촉발 단계에서부터 다수 민중의 동의를 얻어 공개적으로 진행되는 반면, 쿠데타는 무력을 동원한 소수집단에 의해 은밀하고도 신속하게 치러진다는 점이다.

혁명이냐 쿠데타냐 하는 구분은 발생이나 진행 형태에 따른 것일 뿐, 결과나 추후 평가로 규정하는 가치개념이 아닌 것이다.

5.16은 당시 박정희 소장이 군인들을 이끌고 대한민국 헌법이 규정하고 있고 국민의 투표로 뽑은 국회를 강제해산 하고 헌법에 없는 '국가재건최고회의'라는 통치기구를 만들어 1961년 5월 16일부터1963년 12월 26일까지 대한민국을 통치했다. 이건 진행 과정으로 봐서 쿠데타인 것이다.

5.16을 군사혁명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당시 정국이 혼란스러워 그대로 뒀다면 공산화 됐을 것'이라거나, '무정부 상태에 빠졌을 것'이라는 등의 가정을 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역사에서 가정이란 부질없는 일장춘몽과 같은 것이다. 그 가정은 거꾸로 5.16 쿠데타가 일어나지 않았다면 민주화가 앞당겨 졌을 것이고 선진국에 진입했을 것이라는 가정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역사에서 '면'자 3개면 못할 일이 없다고 한다. 신라가 아니라 고구려가 3국을 통일했다면, 고려가 북진정책을 써서 요동정벌을 했더라면,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을 하지 않고 요동정벌에 나섰더라면 등등 역사에서의 가정은 의미 없는 일이다.

▶ 왜 5.16을 쿠데타로 부르지 못하는 것이냐?

= 사실 이 문제는 어려운 게 아니다. 역사적 사실에 가치를 부여하다 보니 끊임없는 논쟁이 벌어지는 것이다.

5.16은 쿠데타이면서 산업혁명이다 이런 얘기가 나오는 건 5.16이 쿠데타 인줄은 알지만그렇다고 쿠데타로만 말하기는 어렵다는 그런 식의 얘기다. 5.16을 쿠데타로 인정하면 그 이후에 벌어진 모든 일이 부정될까봐 그러는 것이다.

역사의 평가는 단순하게 일어난 일 그 자체로 평가하고 그 이후에 일어난 일은 그 일대로 평가를 하면 되는 것이다. 5.16을 그 자체로만 보고 가치부여를 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지금 5.16 군사 쿠데타임을 명확히 한다고 해서 5.16 이후에 있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의 업적이나 치적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반대로 5.16을 군사혁명으로 인정한다고 해서 군대를 이끌고 권력을 장악한 일이 없어지는 게 아니다.

예를 들어서 누군가가 은행에서 돈을 훔쳤다. 그런데 그 훔친 돈으로 불우한 이웃을 돕고 지역사회에도 기여하고 나라에도 좋은 일을 했다. 그래서 그 사람에 대한 사회적 평가가 훌륭하다고 하자. 그렇지만 돈을 훔쳤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 것이다. 쿠데타 이후에 한 역할과 쿠데타는 별개인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새누리당 최고위원인 심재철 의원이 가장 명쾌하게 정리를 했다.

심 최고위원은 지난해 7월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의에서 "5.16 이후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공이 크다고 해도 5.16 자체가 쿠데타였다는 평가는 변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아무리 5.16이 산업화에 공헌이 있다손 치더라도 현역 군인들이 총칼로 정권을 탈취했다는 점에서는 쿠데타는 분명 쿠데타인 것이다. 

▶ 5.16에 대한 역사논쟁을 불식시키는 방법은 없나?

= 박근혜 대통령이 해결하면 된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9월 24일 대국민사과 기자회견을 하면서 "저는 오늘 한 아버지의 딸이 아니라 새누리당의 18대 대통령 후보로서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과거사와 관련해 말씀하겠다"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제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 박근혜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대통령이다. 그런 만큼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서 판단하고 행동하고 결정해야 한다.

박 대통령은 취임식에서 분명하게 "헌법을 준수하겠다" 선서를 했다.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서도 딸이 아닌 대한민국 대통령의 입장에서 평가를 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역사는 박정희 전 대통령도 박근혜 대통령도 대통령으로서 평가할 것이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이 과거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는 점을 자주 강조를 했는데 이제는 박 대통령이 아버지를 넘어서는 '비욘드 박정희'를 해야 한다. 

'5.16은 헌법적 가치를 훼손한 쿠데타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 이후 대한민국을 바로 세웠다. 그러므로 공과 과를 제대로 평가하자'라고 한다면 국론이 양극단으로 나뉘는 분열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중국의 덩샤오핑(등소평)이 마오쩌뚱(모택동)에 대해 '공은 7이고 과는 3이다'라고 선언하면서 문화대혁명으로 찢겨진 중국을 '흑묘백묘'론으로 바로 세워 갔듯이 이제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공과 과에 대해 한 측면만 강조할 것이 아니라 제대로 된 평가를 하는 것으로 새로운 출발을 하면 될 것이다.

박 대통령이 5.16을 쿠데타라고 인정한다고 박정희 대통령이 했던 업적이나 치적이 사라지는 것이아니고 5.16을 '구국의 결단'이라고 해서 군대를 이끌고 무력으로 국정을 장악했던 사실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CBS 권영철 선임기자

2013년 2월 23일 토요일

[사설] 탈세 의혹 받는 현 후보자, 경제부총리 자격 없어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3-02-22일자 사설 '[사설] 탈세 의혹 받는 현 후보자, 경제부총리 자격 없어'를 퍼왔습니다.

세계 경제위기 여파로 새 정부 앞에 놓인 경제상황은 엄혹하다. 복지와 경제민주화 같은 만만치 않은 시대적 과제 또한 산적해 있다. 새 정부가 경제부총리제를 부활시킨 까닭도 이런 난제를 풀어갈 역량 있는 경제 수장이 필요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현오석 경제부총리 후보자는 소신과 리더십 측면에서도 문제지만, 지금까지 드러난 재산증식 과정의 의혹과 부적절한 처신으로만 봐도 결코 적임이라고 할 수 없다. 실타래 같은 의혹 가운데서도 탈세 의혹은 중대한 결격사유다. 납세는 일반 국민한테도 기본 의무지만, 경제부총리로서는 당연히 갖춰야 할 필수 덕목이기 때문이다.현 후보자는 장남에 대한 증여세 탈루 의혹이 제기되자 후보자 지명 다음날 증여세 400여만원을 납부했다고 한다. 2009년에 냈어야 할 증여세를 4년이 지나 뒤늦게 부랴부랴 납부한 것은 어느 모로 보나 떳떳지 못하다. 이런 인물한테 경제부총리의 주요 임무 중 하나인 엄정한 세정을 바라기는 어려울 것이다. 현 후보자 장남은 현재 1억4000여만원의 금융자산이 있는데 2008~2009년 모 대학에서 받은 450만원의 기타소득 외엔 별다른 소득원이 없어 탈세 의혹은 여전히 남아 있다.현 후보자는 증여세 납부에 더해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 시절 주말 판공비 유용 의혹이 제기되자 곧바로 600여만원을 반납했다. 규정을 지키지 않은 게 문제인데 돈으로 눙치고 넘어가려는 듯한 뻔뻔함이 놀라울 뿐이다. 낙마한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는 특정업무경비를 사적으로 썼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재임기간 받았던 3억원을 사회에 환원할 용의가 있다고 밝혀, 헌재소장직을 돈으로 사겠다는 발상이라는 비아냥을 받기도 했다. 현 후보자의 증여세 지각납부나 판공비 반납도 발상은 다르지 않아 보인다.현 후보자는 장남뿐 아니라 장녀에 대한 부동산 편법 증여 의혹도 받고 있다. 서울 강남 요지의 중형 아파트를 2005년 당시 20대였던 딸에게 증여하는 과정에서 아파트를 담보로 3억원의 대출을 받아 증여세를 1억원 이상 줄였다는 것이다. 탈세가 아니고 절세라고 해도 성실납세와는 거리가 멀다. 딸이 그 뒤에 대출금을 상환했다고 하는데, 재정 능력을 고려할 때 스스로 갚기 힘든 액수라고 하니 청문회에서 꼼꼼히 따져볼 일이다.현 후보자는 엠비노믹스를 적극 지지해온 대표적인 성장론자로 박근혜 당선인의 대표 공약인 경제민주화와 복지를 추진할 적격 인사가 아니다. 게다가 성실하게 세금을 내온 국민을 허탈하게 만드는 탈세 의혹이 사실이라면 경제부총리로서는 더욱 자격 미달이다.

2013년 1월 18일 금요일

'막무가내' 검찰의 '소신' 임은정 검사 죽이기


이글은 프레시안 2013-01-17일자 기사 ''막무가내' 검찰의 '소신' 임은정 검사 죽이기'를 퍼왔습니다.
[기자의 눈] 1964년의 검찰과 2013년의 검찰

'검사동일체의 원칙'이 있다. "검사는 검찰총장을 정점으로 한 전국적으로 통일적인 조직체의 일원으로서 상명하복(上命下服)의 관계에서 직무를 수행한다는 원칙"이라고 한다. 조금 비약하자면, 검찰 조직은 논리적 완결성과 함께 단 하나의 이성을 가진 거대한 '법인격체'여야 한다는 것이다. 현대판 '리바이어던'이어야 함을 스스로 요구하고, 또 스스로 요구받는다.

이런 '검사동일체의 원칙'은 과거 독재 체제에서 악용돼 왔다. 1964년 1차 인혁당(인민혁명당) 사건을 복기해보자. 1964년 8월 중앙정보부는 '인민혁명당 사건'을 발표하고, 서울지검 공안부에 사건을 송치했다. 그러나 서울지검 공안부의 담당 검사들은 구속 연장 만료일인 9월 5일 "증거가 없어 기소를 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기소를 거부했다. 몇몇 검사는 사표까지 냈다. 그러자 신직수 당시 검찰총장은 당직 검사인 정명래로 기소 검사를 바꾼다. 시쳇말로 '까라면 까야' 하는 검사들이 기소를 거부하니, 사건 내용도 충분히 파악하지 못한 검사가 공소장도 제대로 읽어보지 않고 기소하는 일이 발생했다. '검사동일체의 원칙' 하에서는 이 검사든 저 검사든 상관없음을 검찰 스스로 드러낸 사건이었다.

그 이후엔? 고문 조작 논란이 벌어지면서 검찰은 재수사를 해야 했다. 그 결과 처음에 기소된 인원의 절반 이상(26명 중 14명)이 공소 취소로 풀려났고, 나머지 12명도 형량이 훨씬 가벼운 혐의로 공소장의 내용이 바뀌었다.

'검사동일체'의 정점에 앉아 있던 신직수 검찰총장은 이것에 책임을 졌나? 그렇지 않다. 그는 잘나갔다. 서슬 퍼런 유신 체제에서 법무부 장관을 지냈고, '긴급조치 시절'에는 중앙정보부장도 역임했다.

기자에게 49년 전 사건을 떠올리게 만든 건 (동아일보)의 한 기사였다. (동아일보) 온라인판에 "'브로커 검사' 해임…'막무가내 女검사' 정직"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뜬 것은 15일 새벽이었다. (동아일보)가 지목한 '막무가내 女검사'는 최근 과거사 재심 사건에서 무죄를 구형한 임은정 검사다. (동아일보)는 지난해 12월 31일(온라인판)에도 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임 검사를 '막무가내 검사'로 몰아갔다.

언론의 '네이밍(naming)'이라는 것이 무섭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이렇게 '막무가내 여검사'로 낙인찍힌 임은정 검사에 대한 대검 감찰본부(이준호 본부장)의 징계 청구 결정이 16일 내려졌다. 정직. 무거운 징계다.

임 검사에 대한 중징계가 청구된 계기는 윤길중 전 진보당 간사장 사건의 재심 공판이다. 윤길중 전 간사장은 1961년 5.16쿠데타 후 기소돼 1962년 반공법 위반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았다. 5.16쿠데타 세력의 혁신계 탄압에 휘말린 윤길중 전 간사장은 7년을 감옥에서 보냈다. 임 검사는 이 사건의 재심 공판과 관련해, 부당하다고 느낀 상부의 지시에 맞섰다.

'막무가내' 검찰, 그렇게도 '항소' 여지를 남겨두고 싶었나?

▲ 임은정 검사 ⓒ임은정 검사 미니홈피

임 검사는 지난달 28일 '윤길중 사건'에서 '무죄를 구형하겠다'고 의견을 냈다. 그러자 '상관'인 김국일 공판2부장검사는 "당시 판결문에 나타난 당사자 진술이 고문·협박에 의한 것이 아니고 수사·재판 기록도 없다"는 점을 들어 "법과 원칙에 따라 선고해달라"고 구형할 것을 주문했다. 임 검사가 이를 거부하자 김 부장검사는 다른 검사에게 이 사건을 재배당했다. 임 검사는 그것도 거부했다. "징계도 감수하겠다"며 법정의 검찰 출입문을 걸어 잠그고 "내가 할 일을 하겠다"는 내용의 쪽지를 써 붙였다.

'윗선'에서 '항소'를 전면 배제하지 않은 것을 임 검사가 받아들이지 않자, '윗선'은 공판 검사를 바꾸는 것으로 대응했다.

대검 감찰본부가 이런 임 검사에게 중징계를 청구한 것을 보면서 '인혁당 사건 재배당' 사례를 떠올리는 것은 지나친 일일까? '윗선'의 명으로 바뀐 공판 검사는 '윗선'의 입맛에 맞는 구형을 해야 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검찰은 그간 과거사 재심 사건에 대해 무죄 구형을 하는 대신 "법과 원칙대로 판결해달라"는 것을 관행처럼 읊조렸다. 엄밀히 말하면 항소 여지를 남겨두는 것이다. 실제로 김지하 시인이 '오적 필화 사건' 무죄 취지 선고 유예에 대해 '왜 무죄가 아니냐'며 항소하자, "법과 원칙대로 판결해달라"고 했던 검찰도 이에 맞서 항소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자존심' 싸움 같은 느낌도 들지만, 검찰은 긴급조치 문제를 비롯한 과거사 재심 사건에서 여러 번 항소를 해 비난을 자초한 전력이 있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고, 하필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 대선에서 승리한 것과 임 검사 사건이 맞물리는 것도 우려스러운 게 사실이다.

"유죄를 전제하고 수사, 기소를 했는데 구형이 '무죄'면 논리적 모순 아니냐"는 말도 나오지만, 이는 과거사 재심 사건의 '특수성'을 모르고 하는 얘기거나 일부러 무시하는 얘기다. 과거사 재심 사건은 기본적으로 법원이 내렸던 과거 판결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전제한다. 법원이 숙고해 재심 결정을 내렸는데도, '논리적 완결성'이나 '무결점주의'를 이행하고자 검찰이 기계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이른바 '법 감정'에도, '상식'에도 맞지 않는다. 수십 년간 국가 권력이 씌운 누명으로 인해 고통받은 사람들은 대부분 고령이거나 이미 세상을 떠났다. 검찰은 의례적으로 항소하지만 이들에게 항소 기간은 피 말리는 시간의 연장일 뿐이다.

임 검사의 무죄 구형은 의미가 크다. 임 검사는 무죄 구형 직전 검찰 내부 통신망 '이프로스'에 글을 올려 "저는 구형의 의미에 대해 크게 생각했다. 비겁하게 구형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임 검사의 말에는 이 같은 '성찰'이 담겨 있다.

이런 임 검사가 (동아일보)의 표현대로 '막무가내 검사'일 뿐인가? 임은정 검사와 '윗선' 중 누가 '막무가내'인가? 이 대목에서 1964년 1차 인혁당 사건 때 "증거가 없어 기소를 할 수 없다"던 검사들과 '기소 의견'을 밀어붙였다 망신당한 신직수 검찰총장 중 어느 쪽이 '막무가내'였는지를 떠올릴 필요가 있다.

(동아일보)에 "'막무가내' 검찰, 임 검사 '무죄 구형' 막으려 해"라는 제목을 추천한다.


 /박세열 기자 

2012년 10월 6일 토요일

정수장학회 부인하던 박근혜, 받을 건 다 받아?


이글은 프레스바이플 2012-10-05일자 기사 '정수장학회 부인하던 박근혜, 받을 건 다 받아?'를 퍼왔습니다.
박홍근 "상근 임직원 보수 챙겨"…SNS "원칙과 소신이 이런 거?"

▲ (서울=뉴스1) 박정호 기자=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5일 오전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오디토리움에서 열린 세계 한인의 날 기념식 참석에 앞서 상훈 포상자들을 만난 후 밖으로 나오고 있다. 이날 박 후보는 "경제민주화는 확실하게 실천할 것"이라고 말했다. 2012.10.05/뉴스1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정수장학회 이사장직을 맡았을 때, 상근 임직원 보수를 받은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박홍근 민주통합당 의원이 공개한 정수장학회 결산서에 따르면, 박 후보는 정수장학회 이사장 당시 지난 1995년부터 2005년 8월까지 10년간 재직했으며, 총 11억3천720만원을 실비 보상 명목으로 지급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박 후보가 국회의원이 된 1998년 1억원, 1999년 1억3천만원, 2000~2001년 2억3천520만원, 2002년 1억4천880만원, 2003년 1억2천300만원, 2004년 1억3천200만원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고, 이사장직에서 물러났던2005년 8월까지 2천200만원을 받은 것으로 돼 있다.
그러나 공인법인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비상근 임직원은 보수를 받을 수 없게 됐고, 국회의원 윤리실천 규범에도 통상적인 기준이 넘는 사례금을 받지 못하게 돼 있다.
이를 지적한 박 의원은 "불법적인 강탈에 불법적인 거액의 보수 수령으로 점철된 정수장학회에 대해 박 후보가 상관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후안무치한 태도"라며 "박 후보의 자금 제공처로서 사유물이나 다름없는 정수장학회를 이제라도 환원하고 사과하는 것이 도리"라고 꼬집었다.
이를 두고 트위터 여론은 "박근혜씨는 학생들에게 줄 돈 많이도 가져갔네요", "전체 직원 보수의 50% 이상을 받았다니, 뭐 정수장학회는 당연히 박근혜 거였네요", "집도 받아, 돈도 받아, 덥석덥석 잘도 받는다", "이유 없이 부자가 된 데에는 말할 수 없는 이유가 있는 법", "원칙 있고, 소신 있네요. 내 것은 내 것이고 남의 것도 내 것이고" 등의 비아냥이 잇따르고 있다.
일부 트위터리안들은 "뭐~ 또 '불법인 줄 몰랐다'라면서 발 빼시겠죠. 굳이 입 아프니 그냥 말하지 말길"이라면서 박 후보의 반응을 미리 예측하는 한편, 일부 언론에선 안철수 무소속 대선 후보만 검증하겠다는 것을 비꼬아 "털면 털리는 박근혜 비리나 털어라"라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김경환 기자  |  1986kkh@pressbyple.com

2012년 8월 23일 목요일

KBS 신입사원 면접 때 “입사하면 파업할 건가”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2-08-22일자 기사 'KBS 신입사원 면접 때 “입사하면 파업할 건가”'를 퍼왔습니다.
‘언론파업·노조’ 관련 소신 물어… 새노조 “양심자유 침해” 사측 “1~2개 질문한 것”

KBS가 구성원들의 파업이 한창일 무렵 신입사원 선발을 위한 면접 과정에서 ‘파업’과 ‘노조’에 대한 응시생들의 소신을 질문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따라 KBS 내부에서는 면접자들을 대상으로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22일 KBS 새노조가 발행한 노보에 따르면, 지난 10일 KBS연수원에서 실시된 39기(공채) 신입사원 노조 설명회에서 ‘면접과정에서 파업 및 노사관계에 대한 질문을 받은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신입사원(응답자 131명)들 가운데 28명이 “현재 진행 중인 언론사 파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았다고 답했다.
이밖에도 9명의 신입사원은 “입사하면 파업에 참여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5명은 “노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았다고 답했다고 KBS 새노조는 전했다.
또한 노조에 대한 질문도 나온 것으로 나타났다. 신입사원들은 KBS 면접관들이 “노조위원장을 시킨다면 할 것인가”, “언론 파업을 하고 있는 친구를 만난다면 어떤 대화를 하겠는가”, “파업 때문에 1박2일을 못봤는데 시청자로서 어땠는가”, “방송인이 사회 현상에 참여해야 하는가”, “예전에 다니던 회사에 노동조합이 있었나. 어떤 활동을 했나” 등의 질문도 했다고 답했다고 KBS 새노조는 전했다.

지난 10일 경기도 수원시 KBS 연수원에서 열린 신입사원 KBS 새노조 설명회(오른쪽). ⓒKBS 새노조

이를 두고 KBS 새노조는 “요즘 같이 취업이 힘든 시기에 사용자 측에 선 면접관이 파업과 관련한 소신을 물었을 때 지원자 스스로 갖고 있는 소신을 가감없이 밝히기는 쉽지 않다”며 “이런 현실에서 이번 신입사원 채용과정에서 사측이 집중적으로 캐물은 파업 관련 질문은 그야말로 사상 검증”이라고 비판했다.
KBS 새노조는 “노동자로서 파업을 할 수 있는 단체행동권은 헌법에 보장된 노동3권 중 하나”라며 “이런 당연한 권리를 질문한다는 것 자체가 몰상식한 행위일 뿐 아니라 파업 관련 개인 소신을 밝힐 것을 요구하는 것은 양심추지금지원칙(良心推知禁止原則)에 어긋나는,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반헌법적인 행위”라고 성토했다.
KBS 새노조는 앞서 이병순 사장 시절인 지난 2008년 35기 신입사원 최종면접장에서 한 고위 임원이 “자네도 다음 아고라 회원인가”라는 우문을 던지자 이 질문을 받은 지원자가 “아고라는 회원제가 아닙니다”라고 현답을 했었다는 이야기는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다고 사례를 소개했다.
KBS는 39기 신입사원 면접을 KBS 새노조 총파업이 정점에 달했던 지난 5월 하순경에 실시했다고 배재성 KBS 홍보실장이 전했다.

배재성 KBS 홍보실장은 22일 “여느 기업이나 기관의 신입사원 채용 면접 때 하는 질문의 정형이나 틀이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면접관이 질문하고 싶은 것에 대해 어떻게 대답하고 대처하는지를 알아보는 것”이라며 “다만 이 질문으로 유도하는 답을 하지 않았다고 탈락시켰다거나 전체 질문 가운데 대부분이 이 질문이었다는 증거가 있다면 KBS를 공격해도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채 비난하는 것은 너무 편협하다”고 말했다.
배 실장은 “언론인이라는 다양한 직원을 뽑는 자리인데, 자유로운 질문을 할 수 있지 않느냐”며 “어떻게 대처하는지, 지혜를 발휘하는지, 어떤 가치관인지를 보고 점수주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당시 전체 질문 20개 가운데 1~2개 파업 관련 질문을 한 것이 뭐가 잘못인가”라고 덧붙였다.

22일 발행된 KBS 새노조 노보

조현호 기자 | chh@mediatoday.co.kr  

2012년 7월 20일 금요일

"박근혜 전 위원장, 4대강 사업에 대한 소신이 무엇입니까?"


이글은 민중의소리 2012-07-19일자 기사 '"박근혜 전 위원장, 4대강 사업에 대한 소신이 무엇입니까?"'를 퍼왔습니다.
[박근혜에 묻는다]4대강 복원 범국민대책위원회 이항진 상황실장

 
ⓒ민중의소리 4대강 복원 범국민대책위원회 이항진 상황실장

"4대강 사업이 잘된 사업입니까?"

"대통령이 되면 국민이 반대하는 사업은 어떻게 할 것 입니까? 담당자들에게 책임을 물을 것입니까?"

4대강 복원 범국민대책위원회 이항진(48) 상황실장은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경선 후보에게 묻고 싶은 말이 많았다. 지난 5년간 숱하게 물어왔지만 대답이 없었다. 지금이라도 답을 들을까 싶어 그동안 물어왔던 질문을 쏟아냈다. 

그는 "박근혜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4대강 사업을 방조한 것은 이런 사업을 자신도 하겠다는 의도를 내포하고 있다"며 "그런 사람이 대통령이 되는 것은 어떻게든 막겠다"고 강조했다.

대운하 사업, 4대강 사업 '똑같았다'

ⓒ민중의소리 이항진 여주환경운동연합 집행위원장이 골수채취로 기반이 약해진 교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기반이 약한 옛 남한강교에는 안전성을 이유로 폐쇄됐고, 바로 오른편에 남한강교가 새로 놓여져 차량이 다니고 있다.

이 실장은 지난 2007년 당시 이명박 대통령 후보가 대운하를 만들겠다고 하자, 심각함을 느끼면서 대운하 반대 운동을 시작했다. 2008년 6월 이명박 대통령은 대운하 사업 중단의사를 표명했고, 이 실장은 "대통령이 운하를 그만두고 본연의 일을 하겠구나"라며 마음을 놨다고 한다. 

그러나 이 실장은 몇 달 뒤 정부가 꺼낸 4대강 사업 마스터 플랜을 본 뒤 깜짝 놀랐다. 정부가 내놓은 4대강 사업안은 대운하 사업과 똑같았던 것이다. 

그는 결국 4대강 사업을 반대하기위해 다시 나섰고 환경운동단체, 학계, 종교계, 법조인 등과 이름 없는 시민들이 반대운동을 함께 했다. 하지만 국민 여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4대강 사업은 강행됐다. 

이 실장은 "4대강 사업의 목적이 이뤄졌는지를 봐야한다"며 "물을 깨끗이 한다고 했는데 이미 영산강, 낙동강 물이 썩고 있고, 준공을 한 지금보다 앞으로 더 많은 폭탄이 터질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이 사업이 가뭄을 예방하는데 소용없는 것은 물이 있어도 끌어다 쓰지 못하는 데서 이미 확인됐다"며 "건설마피아들이 이제는 물을 끌어다 쓰기 위해 국토 전체에 수로를 만들자고 할까봐 두렵다"고 전했다. 

아울러 "현장에 나가보면 단한명도 걷지 않는 공원에, 새들의 보금자리는 사라졌고, 강변에는 죽어 나자빠지는 나무들이 무수하다"며 "결국 4대강 사업으로 사람도 안 쓰고 자연에게는 무용지물인 공간을 만든 것"이라고 꼬집었다.

박근혜 전 위원장 말하지 않는 것은 책임 없애려는 '꼼수'

이 실장은 눈물을 '뚝' 떨궜다. 17일 와 인터뷰 전날 남한강 일대를 둘러보고 온 그는 '현장은 어땠냐'는 물음에 대답없이 눈물을 흘렸다. 

이 실장은 "'삶에 있어서 아름다운 것들은 쉽게 잊혀지지만, 그 아름다운 것들이 사라지면 삶은 지옥으로 변한다'는 말이 있다"며 "5년 동안 하루가 일년 같았다. 아름다운 것이 사라지면서 얼마나 많은 국민들의 삶이 지옥으로 변했냐"고 개탄했다.

그는 “4대강 사업은 한나라당의 동조 없이는 불가능했고, 새누리당의 책임이 있음은 명명백백하다"며 "박근혜 전 위원장이 아무 말하지 않았다고 책임이 없다는 것은 유력한 대통령 후보자로서 꼼수를 펴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4대강 사업 예산을 야당의 저항을 폭력적으로 제압하고 다수당의 횡포로 날치기 통과시킨 것이 한나라당이 아니고 누구냐"며 "4대강 사업은 이명박과 박근혜가 작당한 합작품"이라고 규탄했다. 

이어 "음주운전에 대한 책임을 음주한 사실을 알고 동승한 사람에게도 묻는 것처럼, 국가 재난을 만들어놓고 함구하는 것은 '이명박근혜'가 한몸이라는 것을 스스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질타했다.

아울러 "따져보면 이명박과 박근혜는 결국 공범"이라며 "스스로 이 굴레를 벗고자 한다면 새누리당이 사과하고, 책임을 물을 사람은 묻고, 재발방지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보고있나 ㅂㄱㅎ?

ⓒ양지웅 기자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 경선 후보

이 실장은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 경선 후보에게 가졌던 물음을 줄줄이 꺼내놨다. 그는 "국정에 있어서 국민적 합의에 따른 의사결정의 중요성이 뭐라고 생각하는가?"라며 묻고는 "4대강 사업은 국민의 70%가 반대했는데 추진했다. 이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며 질문했다.

그는 "4대강 사업은 국책연구기관에서 조차 적절하지 않다는 연구결과가 나왔고, 과학적 타당성에도 입증되지 못했다"며 "타당성이 없다면 그 책임을 지금이라도 묻는 것이 정치인이 할 일"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4대강 사업의 추진세력인 한나라당 국회의원과 수공, 국토부, 환경부 장관을 비롯한 공무원들에 대해 공적 책임이 있느냐"며 "책임이 있다면 그것을 묻는 것이 최소 재발방지를 위해 필요한 것 아니냐"고 따졌다. 

4대강과 관련해 무수한 질문을 던지던 이 실장은 잠시 침묵 한 뒤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그는 "박근혜 전 위원장은 민주주의란 뭐라고 생각하냐"고 물었다.

이 실장은 "박근혜 전 위원장은 4대강 문제뿐만 아니라 용산 참사, 쌍용차 문제, 제주도 강정 등 현안과 관련해 결국 국민적 합의를 이루는 민주주의가 뭐라고 생각하느냐"며 "구구한 해석이 필요없는 명확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덧붙였다.

전지혜 기자 creamb@hanmail.net

2012년 7월 16일 월요일

‘궁정동 총성’ 석달뒤 박근혜 일기에는 “소신 펴 나갈 때 욕 안먹을 수 없어”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07-16일자 기사 '‘궁정동 총성’ 석달뒤 박근혜 일기에는  “소신 펴 나갈 때 욕 안먹을 수 없어”'를 퍼왔습니다.

박근혜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이 10일 오전 서울 영등포 타임스퀘어에서 대통령 후보 출마 선언식을 열고 선언문을 낭독하며 시민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뉴시스

[2012 대선주자 탐구] 박근혜 ① 역사관과 통치관
“5·16과 유신 없었다면 대한민국 없을것”
“역사에 판단 맡겨야” 신념 바뀐적 없어

새누리당이 대선후보 경선에 참여할 후보 등록을 마감하고 21일부터 공식 선거운동을 시작한다. 뒤이어 민주통합당도 후보 경선에 들어갈 예정이다. 12월19일 치러지는 18대 대통령선거전의 막이 본격적으로 오르는 것이다. 는 주요 대선주자들을 심층 조명하고 그를 둘러싼 의혹을 점검하는 ‘대선주자 탐구’ 시리즈를 시작한다. 그가 어떤 생각을 갖고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깊숙이 들여다보는 건, 5년간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대통령을 선택하는 데 매우 중요한 척도가 된다. ‘대선주자 탐구’의 첫번째로, 지지율 1위인 박근혜 새누리당 의원 탐구를 4차례에 걸쳐 싣는다. 이어 김문수 경기도지사와 김태호·임태희·안상수 새누리당 경선후보를 조명하는 기사를 싣는다. 민주통합당 경선이 본격화하면, 민주당 후보들에 대한 심층취재 기사도 계속 실을 예정이다.2007년 1월23일 ‘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 사건에 연루돼 사형 당한 8명에 대한 재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야당은 말할 것도 없고, 한나라당 대변인도 “이제라도 진실이 밝혀진 것이 큰 다행”이라며 “이 사건으로 고인이 된 분들의 명복을 빌고 유족들에게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 다시는 이런 일이 되풀이되어서는 안 될 것”이라는 논평을 냈다. 국민의 시선은 박근혜 의원(이하 호칭 생략)의 입을 향했다. 그는 침묵했다.박근혜는 그보다 1년여 전 한 인터뷰에서, 인혁당·민청학련 사건이 박정희 정권에 의해 조작·과장됐다는 ‘국가정보원 과거 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의 발표에 “한마디로 가치가 없는 것이며, 모함”이라고 불쾌감을 드러낸 바 있다.인혁당재건위 사건은 1974년 4월 유신 반대 학생운동을 주도하던 전국민주청년학생연맹(민청학련)의 배후에 인혁당재건위가 있다며 중앙정보부가 23명을 기소했던 사건이다. 사법부는 8명에게 사형을, 나머지 15명은 무기징역 및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이듬해 4월 대법원이 상고를 기각하면서 사형이 확정된 8명은 재판 뒤 18시간 만에 형이 집행됐다.많은 이들은 인혁당 사건을 두고 “유신체제에서 ‘권력의 시녀’가 돼버린 사법부가 박정희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고 지적했다. 2002년 9월 대통령 직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이 사건이 고문에 의해 조작된 것이라고 발표했고, 같은해 12월 유족들이 재심을 청구하면서 결국 무죄 판결이 나왔다.그러나 박근혜의 생각은 달랐다. 애초부터 그는 “법적으로 결론이 난 사건 아니냐”며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사형이 집행됐던 1975년 4월은 박근혜가 ‘퍼스트레이디’로 활동하던 시절이다. 32년 만에 무죄 판결이 나오자 그는 “법원에서 정반대의 두가지 판결을 내렸다. 그렇다면 뭐가 진실인가. 역사적 진실은 한가지밖에 없다”며 “역사가 앞으로 밝혀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 “5·16과 유신 없었다면 대한민국도 없을 것”

박근혜는 박정희의 유신과 5·16 쿠데타 에 대해 ‘역사가 평가할것’이란 신념을 굽히지 않는다. 2007년 7월19일 한나라당 대선 경선 후보 청문회에서는 “유신체제에 대해서는 역사에 판단을 맡겨야 한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에 80개가 훨씬 넘는 나라들이 독립을 하거나 새로 탄생을 했다. 그 많은 나라들이 이른바 군사독재 정치를 겪었다. 그 나라 중에서 유일하게 한국만이 개발에 성공을 한 나라”라고 말했다.며칠 뒤 방송토론에선, 5·16에 대한 찬반 논란을 고려-조선 왕권 교체기에 빗대기도 했다. “이성계의 조선 개국에 대해 포은 정몽주 선생과 세종대왕의 평가가 다를 수 밖에 없지 않나? 두 분이 똑같은 얘기를 할 수 없을 것이다.” 박정희는 이성계, 자신은 세종대왕, 그리고 박정희 시절의 희생자들은 정몽주로 비유한 셈이다. 고려 말 이성계의 ‘역성혁명’에 반대하는 정몽주를 제거한 것은 이성계의 아들 이방원 일파였고, 세종대왕은 이방원의 아들이었다.박근혜는 박정희가 주도한 5·16과 유신이 각 시점의 한국에 반드시 필요했다고 확신하고 있다. 그는 1989년 (문화방송) 인터뷰에서 “5·16은 구국의 혁명이었다. 과연 5·16과 유신이 없었다면 대한민국이 존재할 수 있었겠나?”라고 물었다. 더 나아가 4·19의 결과로 꾸려진 정부를 전복한 5·16이 오히려 4·19 정신을 계승했다는 주장도 펼쳤다. “4·19의거는 잘못된 나라를 바로잡기 위해 일어난 희생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라를 구하기 위해 일어난 5·16혁명도 4·19의 뜻을 계승하고 있다고 본다. 5·16이 있었기 때문에 4·19 때 희생된 분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목숨까지 버렸는데 4·19 후 그 혼란의 와중에 만약 우리나라가 ‘공산당의 밥’이 됐다면 그 희생이 무슨 가치가 있나?” 2007년 한나라당 경선 청문회 때 “5·16은 구국혁명이었다. 유신 체제는 역사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했던 발언도 언론의 관심을 받았다.박근혜가 5·16과 유신을 옹호하는 발언을 내놓으면 비판 여론이 들끓곤 했다. 민주 선거로 선출된 정부를 뒤엎은 쿠데타와 박정희의 ‘종신독재’를 가능하게 한 유신을 옹호했다며, 박근혜의 민주주의관과 역사관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이다.

박근혜 의원이 지난 2월21일 서울시 마포구 상암동에 개관한 박정희 대통령 기념ㆍ도서관을 돌아보며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사진을 쳐다보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박근혜도 5·16 및 유신에 대해 문제가 제기되는 지점을 이해하고는 있는 듯하다. “만약 아버지가 그때 총탄에 돌아가시지 않았다면 유신체제를 끝내고, 대통령에서 물러나셨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당시 아버지께서 유신헌법에 대해 개정하는 방향으로 수석비서관에게 연구 지시를 했고, 스스로도 물러나실 준비를 하셨고, 식사 시간 대화에도 다음 대통령은 누가 됐으면 좋겠냐고 저에게 의견을 물어봤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지 않았더라면 그 일들을 해결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후보 검증 청문회에서 나온 이 발언은 ‘종신독재’에 대한 비판을 다분히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그렇다 해도 각 시점에 사회적 불안, 북한의 위협 등 때문에 5·16과 유신 결단은 불가피했다는 게 박근혜의 주장이다.“(5·16 무렵엔) 그때 상황이 너무나 나라가 혼란스러웠고, 남북간 대치 상황에서 잘못하면 북한에 우리가 흡수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또 혁명규약에 보면 ‘기아선상에 헤매는 국민을 구제하고’ 이런 얘기가 나올 정도로 기아선상에 헤맸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구국을 위한 혁명이었다고 생각한다.”(2007년 후보 검증 청문회)“유신과 자주국방은 뗄래야 뗄 수가 없다. 아버지는 유신을 통해 북한보다 10년이나 뒤진 우리나라의 병기를 독자적으로 생산해서 자주국방을 달성하려 했다. 그런 계획을 차질없이 수행하려면 사회의 안정이 유지되어야 하고, 사회의 안정이 유지되려면 강력한 지도체제가 불가피했기 때문에 유신을 통해 그것을 이루려 했던 것이다.”(1989년 문화방송 인터뷰)

■ “소신 펴는 과정에서의 비난은 훈장 이상”

박근혜는 ‘정쟁’, 곧 정치권의 반목과 갈등이 5·16이나 유신을 불가피하게 만든 결정적 요소였다고 꼽는다. 박정희 추모 사업의 일환으로 박근혜가 1990년 제작한 영화 (조국의 등불)은 박정희 정권의 경제·외교·문화·안보 등의 치적을 두루 자랑하며 박정희를 미화하는 내용이다. 이 영화는 5·16의 배경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4·19 이후) 서투른 민주주의가 뿜어내는 공해로 인해 정치는 표류하고 세상은 불만과 불평으로 가득했다. …더욱 기막힌 것은 나라 살림보다는 내 살 길에 혈안이 된 정치인들이 나라를 보살펴야 하는 의무와 책임은 젖혀놓고, 주먹질로 세상을 잡으려고 아우성치는 것이 정치 1번가의 풍경이었다. 국민들은 강력한 지도자를 갈망했다. 국민의 편에 서서 국민의 어려움을 헤아려주는 청렴한 정치인을 고대했다. 1961년 5월16일 은인자중하던 군부가 나라의 위기를 구하기 위해 드디어 궐기했다.”민주주의는 서로 다른 주장을 하는 개인이나 집단이 토론하고 타협하는 과정을 필수적으로 수반한다. 그래야 결정이 내려진 뒤에도 잡음이 적다. 그렇기 때문에 박근혜가 ‘정쟁’을 바라보는 시각은 논란의 소지가 있다. 5·16이나 유신은 민주주의의 기회를 뺏은 역사이고, 그 책임은 박정희에게 있으며, 박정희 정권은 취약한 정당성을 보완하고자 정치인들에게 ‘당쟁만 일삼는 것들’이란 혐의를 뒤집어 씌워 책임을 미룬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기 때문이다.강력한 추진력을 강조하는 태도는 박근혜가 쓴 글에서도 엿볼 수 있다. 대표적인 게 10·26 석달 뒤인 1980년 2월7일의 일기다.“소신을 펴나가는 과정에서 욕을 안 먹을 수 없으니 그 비난은 가슴에 다는 훈장 이상으로 자랑스러운 일이다. 손에 물 한방울 묻히지 않고 설거지 하는 것만큼이나 욕먹지 않고 일하기는 어렵다. 일 잘하고 나서 그릇 한두개 깬 것만 가지고 욕을 하는 풍토라면 그 나라는 많은 애국자를 기대하기 어렵다.”수많은 반대 여론을 무릅쓰고 장기집권을 이어갔던 아버지의 통치관을 이어받은 셈이다. “고속도로 건설을 비롯하여, 한-일 국교회복, 포항제철 건설과 월남 파병 등 하나에서 열까지 그 굵직굵직한 나라의 큰일들이 심한 반대에 부딪히지 않고 이루어진 적이 없었다. 아버지가 당대에 박수받는 법을 모르셨겠는가. …국가를 보위한다는 것은 대통령 취임선서에도 첫번째로 나오는 국가 지도자의 엄숙한 임무인데, 그 임무수행에 혹여 차질을 빚었을 때 역사 앞에 어떠한 책임을 져야 하는지 아버지는 알고 계셨다.”(1989년 (한국논단) 기고문)박근혜는 정치를 시작한 이래 박정희 정권 시절 탄압받았던 피해자들과의 접점을 서서히 늘려왔다. 박근혜는 2004년 8월 박정희의 ‘정적’이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을 만나 “아버지 시절에 많은 피해를 입고 고생한 것을 딸로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2007년 7월엔 유신 시절 의문사한 언론인 장준하의 부인을 만나 위로의 인사를 건넸다. 박근혜의 사과 대상은 20년째 비슷한 표현이 반복된다. “산업화 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피해를 입은 분들”이라고도 했고, “유신시대에 민주화 운동을 하면서 헌신하셨던 분들, 희생하고 고통을 받은 분들”이란 표현도 있다. 박근혜의 사과 행보가 어디까지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또 ‘본의 아니게’라는 표현이 초래한 논란에서 보듯이, 박근혜의 사과는 진정성 논란을 불러오기 일쑤다. 아직까지 5·16이나 유신을 정면으로 부정한 적은 없기 때문이다.박근혜는 2003년 6월 기고문에서 자신이 정치에 나선 이유를 “아버지 때 못 이룬 이 나라의 민주정치를 꽃피우기 위해” 라고 밝힌 바 있다. 자신의 소신이 여론과 충돌할 때 “비난을 훈장 이상으로 자랑”스러워 한다면 과연 민주정치가 꽃피는 세상일까?

김외현 기자 oscar@hani.co.kr

박근혜 일기 주요 대목
 소신을 펴나가는 과정에서 욕을 안 먹을 수 없으니 그 비난은 가슴에 다는 훈장 이상으로 자랑스러운 일이다.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설거지 하는 것만큼이나 욕먹지 않고 일하기는 어렵다. (1980년 2월7일)

혹한·혹서가 오래가는 법은 없다. …한 겨울에 봄이 올 것이라고 느끼기는 어려우나 봄은 어김없이 찾아온다. (1980년 2월11일)

자기를 은혜로이 돌보았지만 언제 어떻게 돌변하여 총을 겨눌지, 욕을 할지 모르는 사람들이 가득한 도시, 또 그러한 사람들이 영웅시되는 사회는 도덕이 발로 설 수가 없다. (1981년 3월5일)

영웅으로 키우신 그 뜻이 바로 영웅적인 죽음까지 마련하신 것은 아닐까. 평범한 죽음은 세인의 관심을 끌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1981년 10월19일)

유신없이는 아마도 공산당의 밥이 되었을지 모른다. (1981년 10월28일)

1970년대의 노력과 땀이 없었다면 지금 우리 민족의 설 땅이 과연 어디 있을 수 있겠는가. (1985년 7월26일)

죽은 후에는 왕조차도 금세 잊혀지겠지만 사회를 위해 일한 사람은 오래오래 기억될 것. (1985년 9월28일)

1989년은 수년간 맺혔던 한을 풀었다고 표현해도 좋을 한해이다. 1980년대는 다시 돌아다보기도 싫은 소름끼치는 연대라고 느껴지는 것. (1989년 12월30일)

화염병을 던지며 반항하고, 선배 알기를 개떡만도 못하게 생각하고 온통 도덕, 질서, 가치관 등을 뒤죽박죽으로 뒤집어 놓은 오늘의 이 현실은 그동안의 역사 왜곡으로 인한 기성세대의 자업자득이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가를 이 사회는 지금 단단히 치르고 있는 것. (1990년 5월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