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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5월 9일 목요일

“매번 욕…그날 하루만 그런 게 아니었다”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3-05-08일자 기사 '“매번 욕…그날 하루만 그런 게 아니었다”'를 퍼왔습니다.

“대리점주 함부로 대하는 게 남양유업 문화
영업직원들 물량 밀어내야만 간부로 승진” 


“매번 욕이었어요. 그날 하루만 그런 게 아니에요.”

‘남양유업 욕설 파문’의 피해 당사자인 김아무개(53) 전 남양유업 치즈대리점주는 아직도 분을 삭이지 못하고 있었다. 김씨는 8일 (한겨레)와 한 단독 인터뷰에서 “남양유업 직원들에게 준 ‘떡값’ 관련 기록도 다 갖고 있다. 남양유업이 대리점주들한테 받은 떡값에 대해 끝까지 거짓말을 하면 공개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본사 직원들이 대리점주들한테 함부로 대하는 게 남양유업의 기업문화”라고 단언했다. “이씨가 좀 심한 경우이긴 했지만, 전반적으로 영업사원들이 그렇게 해서 물량을 밀어내야만 매출 목표를 만들어내고 결국 승진을 할 수 있어요. 지금 남양유업 간부들이 다 그런 식으로 승진한 사람들입니다. 남양유업 대표이사가 사과하고 문제의 영업사원을 퇴사시켰지만 기업문화 자체가 문제입니다.” 남양유업의 수익 구조 자체가 욕설·막말을 동원한 물량 밀어내기로 유지돼 왔다는 주장이다.

이 영업사원은 욕설 파문을 부른 녹취록이 악의적으로 짜깁기돼 이용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는데, 김씨는 기막히다는 표정부터 지었다. 김씨는 “2010년 6월30일 밤 전화통화 하다 녹음된 건데 일부러 녹음한 게 아니다. 휴대폰을 잘못 만져 나도 모르게 통화녹음 버튼이 눌러져 있었다. 녹취된 게 있던 것도 한참 지나서야 알았다. 그래서 욕설이 담긴 녹취록이 더 있다. (공개된 녹취록은) 일부 편집하긴 했지만 서로 숨소리 내며 조용히 있는 부분만 잘라냈다. 대화 내용을 왜곡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씨가 녹취록을 남양유업 대리점 피해자협회에 건네기로 결심한 것도 또다른 피해점주 때문이었다고 한다. “협회에 가보니 어떤 40대 피해점주가 앉아서 울고 있었어요. 그 모습을 보고 녹취록 공개를 결심했습니다.” 이 말을 하면서 김씨는 갑작스레 눈물을 쏟았다.

김씨는 2000년 남양유업 치즈대리점을 시작했다가 2011년 7월 접었다. 남양유업 본사의 물량 떠넘기기로 매달 100만원씩 적자를 냈지만, 아내가 동네마트에서 일해 벌어오는 월급 100만원으로 “12년을 버텨냈다”고 말했다. “더는 아내를 고생시킬 수 없었다”고 그는 덧붙였다.

김씨는 남양유업이 밀어낸 물량을 직접 팔러 다니기도 했다. 업소용 치즈 100개들이 묶음 상품을 남양유업에서 1만5950원에 사들여 토스트 가게들을 돌아다니면서 1만4000원에 팔았다는 것이다.

김씨는 치를 떨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제도 개선을 해서 물량 떠넘기기 관행이 사라져도 남양유업 대리점만큼은 다시는 안 하고 싶어요.” 남양유업 대리점을 하며 5년 전부터 공황장애에 시달렸다는 김씨는, 이제 주차요원으로 일하며 대리점 운영 때 생긴 빚을 갚고 있다.

‘남양유업 김웅 대표이사 등이 9일 대국민 사과를 한다’는 보도를 접한 김씨는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까지 피해 본 대리점주들한테 먼저 와서 사과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허재현 기자 
catalunia@hani.co.kr

2012년 8월 20일 월요일

“군인이 대통령 욕하면 상관 모욕죄? 트위터 공부 좀 해라”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2-08-19일자 기사 '“군인이 대통령 욕하면 상관 모욕죄? 트위터 공부 좀 해라”'를 퍼왔습니다.
[인터뷰] 이○○ 대위 변호 맡은 이재정 변호사, “표현의 자유를 뺏을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가카 이새끼 기어코 인천공항을 팔아먹을라구 발악을 하는구나”“가카는 3년 만에 국가채무에 따른 이자 지급액만 50조에 이르는 위대한 경제 성장을 이루신 분! 마이너스의 손 가카!”“지금 남북관계의 경색은 MB정부의 대북 병신외교가 한몫을 하고 있죠”
트위터나 인터넷 게시판 등에서 이런 내용이나 표현은 아주 흔하다. 하지만 현역 군인이 이런 얘길 한다면?
한 현역 장교(이하 ‘이 대위)가 트위터상에서 한 발언이 문제가 되어 군 형법상의 상관모욕죄로 기소된 사건이 처음 알려진 것은 지난 5월 말경이다. 그리고 이 대위를 변호하고 있는 이재정 변호사(법무법인 동화)를 만난 것은 역시 5월 말경으로 사건이 일어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인터뷰 이후 시간이 많이 지났기 때문에 처음과 상황이 달라진 부분도 있고 추가로 진행된 사안도 있다. 이 점을 고려하여 인터뷰와 함께 지난 3개월간의 흐름을 되짚어 보도록 하자.
1. 이재정 변호사 인터뷰 (2012년 05월 31일)
군인이 대통령을 비판하면 상관모욕죄?
- 어떻게 된 사건인가. 이 대위는 어떻게 군 검찰에 기소를 당하게 된 것인가.이 대위가 다른 트위터 사용자와 강정마을 문제에 대해 논쟁했다. 팽팽한 논쟁이라기보다는 대화를 나눈 정도였는데, 상대방이 ‘당신은 왜 안보관이 없느냐’ 이렇게 나왔다. 그래서 ‘나야말로 안보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라는 얘기를 하려고 신분을 밝히게 되었는데, 상대방이 그것을 기무사에 신고한 거다.(필자 주: 최초 발화점이 트위터 논쟁이었다고 알려졌으나, 2차 공판에서 트위터 논쟁이 있기 전부터 기무사가 이 대위를 사찰해왔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 그럼 군검찰은 그걸 받아서 상관모욕죄로 기소를 한 것 아닌가. 대통령이 상관모욕죄 상의 상관이 맞느냐, 이게 가장 중요한 법적 이슈가 되는지.생각보다 군 형법이 그렇게 무식하지 않다. 군 검찰과 국방부는 ‘군 통수권자니까 상관이다’ 이렇게 단순하게 얘기하지만, 육군본부에서 펴낸 ‘군 형법 주해’라는 책을 보면 각 적용 법규마다 상관의 범위가 다르므로 유의해서 해석해야 한다는 내용이 나온다. 일부는 너무 추상적이어서 위헌의 소지가 있다는 내용까지 나오고. 그러니까 ‘상관의 범위’를 합헌적으로 해석하기 위해서는 주의 깊은 접근이 필요한 거다. 그런데도 지금 군검찰에서 앵무새처럼 얘기하고 있는 게 ‘군 통수권자니까’ 이것뿐이다.
- 그렇다면 군 장교가 이것보다 더 심한 말을 해도 다 용서해야 하는 거냐는 의문이 있을 수 있다.물론 그것을 비난할 수도, 정치사회적 책임을 지게 할 수도 있다. 그리고 속한 집단(군)에서 징계를 논의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게 형벌로 처벌할 거리가 되는가를 얘기하고 싶다. 상관모욕죄가 그러려고 만들어진 죄는 아니다. 그리고 이 사건을 얘기하면서 미국 사례를 많이 들지 않나.
- 그 해병대 건 말인가.이 해병대원은 오바마 대통령을 비난하는 사이트를 군인 신분을 노출한 상태에서 운영하고, 오바마의 명령을 듣지 않겠다는 항명 의사까지 밝혔다. 우리나라 같으면 바로 영창이었을 거다. 이런 사안에서조차 미국 내 인권단체들의 옹호가 있었다. 미국 군 형법에도 상관 모욕 규정이 있지만, 그 적용은 고려도 하지 않고 내부 징계 절차(불명예제대)로 끝냈다.
군인복무규율은 왜 갑자기 대통령을 상관으로 규정했나
- 군인복무규율 얘기를 해 보자. 군인복무규율에는 군 형법상의 상관모욕죄보다는 더 명시적으로 ‘대통령은 상관’이라고 되어 있는데, 그렇다면 이 건은 ‘군 형법상의 상관모욕죄가 아니라 군인복무규율에 따라 징계하면 된다’ 이렇게 해석해도 되는 건가.그것도 경계해야 할 시각이다. 원래 군 형법과 관련해서 구체적인 내용이 필요하면 군 형법 시행령으로 해결하면 된다. 그런데 군인복무규율은 시행령과도 무관하고, 원래는 군인복무규율 상의 상관 규정이 군 형법상 규정과 같았다.
- 그렇다면 그 규정이 어느 순간 갑자기 바뀌었다는 것인지.2009년에 전군지침으로 ‘이명박 대통령을 비난하면 상관모욕죄로 처벌된다’는 내용이 하달되었다. 하지만 전군지침으로 군 형법을 해석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자기네들도 찜찜했을 거다. 대통령이 상관인가도 명확하지 않고 그렇게 처벌했던 사례도 없고, 그렇다고 군 형법을 고치거나 시행령을 만들려면 법률 위임이 있어야 하니까 어렵고. 그러니까 에둘러서 꼼수를 써서 전군지침의 권위를 보장하기 위해서 군인복무규율에다가 끼워 넣은 거다.
- 꼼수…군 검찰은 당연히 대통령은 상관모욕죄 상의 상관에 포함된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굳이 전군지침 내리고 군인복무규율에 이런 규정을 슬며시 끼워 넣을 이유가 없는 거다. 그것 자체가 이미 이율배반적 아닌가.
- 결론적으로 군인복무규율을 통한 처벌은 가능하다?그렇게 결론을 낼 수는 없다. 물론 군 형법보다는 좀 더 여러 가지 판단을 할 수는 있다. 그렇다고 해도 이 사안으로 무거운 징계까지 해야 하나 싶고, 적절하고 합리적인 수준에서 진행되어야 한다고 본다. 어떤 식으로든 처분이 내려진다면 그 내용에 따라서 법률로서 다시 다툴 수도 있는 거니까.
- 만일 군인복무규율에 따라 징계를 받는다면, 당사자는 뭘 할 수 있나.행정소송을 통해서 부당하다고 주장하는 거다. 예전에 국방부의 불온서적 지정에 대해 헌법소원 냈다가 감봉, 파면 등 징계받은 군 법무관들도 그랬었고. 혹시나 해서 강조하는데, 내부 징계 절차 역시도 합리적인 수준이어야 한다는 걸 말하고 싶다.
군인으로서의 개인, 시민으로서의 개인, 그리고 트위터라는 공간.
- 군인으로서의 이 대위가 군 통수권자인 이명박 대통령을 비판한 것이 아니라, 시민으로서의 이 대위가 정치인 이명박 대통령을 비판한 것이라는 논지도 있더라. 그런데 하나의 인격을 이렇게 나누어서 보는 게 가능한가. 가능하다면 어떤 기준으로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하나.이것이 개인적으로 한 행위인지, 군인으로서 한 행위인지는 내용을 보면 알 수가 있다. 과거의 트윗 내용을 가지고 이제 와서 대위, 육사 출신이라는 프로필을 합쳐서 무게를 실으려고 하지만, 그 트윗을 날릴 때만 해도 그게(군인으로서가) 아니었다. 만약 군 조직 내에서 이 친구의 대북관 안보관 등이 상사와 조직과 부딪혀 실질적인 문제가 생겼다면 모르겠지만 말이다. 이런 걸 구분하는 게 어려울 것 같지만, 일단 행위가 던져지면(사건이 일어나면) 국민의 법감정에 따라 그 척도가 생겨난다.
- 이 대위의 경우 어떤 정도의 처분이 적합하다고 보나.이 건에 대해서는 내부 징계도 부당하다고 본다. 프로필에 군인임을 밝힌 것도 아니고 사적 대화의 수준이다. 트위터가 일반인에게 퍼블릭하다고 하지만 트위터의 특징은 억지로 찾아서 읽지 않으면, 스토커가 아닌 이상은 종합해서 볼 수 있지도 않다.
- 트위터란 공간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것은 사실 논란이 많긴 하다. 단순히 사적인 공간이라고 보기도 어렵고, 사용자 개인의 영향력의 문제이기도 하고… ‘에이, 트위터에서 그런 말을 왜 했어’ 하고 생각할 수도 있고 말이다.서기호 전 판사 건도 마찬가지인데, 사실 처음에는 트위터 사용자들이 서기호가 판사인 줄도 몰랐다. 그런데 이제는 영향력이 생겼다. 같은 의견을 말하더라도 예전과 지금은 다르게 받아들여지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이것이 판단의 척도가 될 수 있다. 예전에 서기호 전 판사가 올린 글을 막 캐내서 얘기하는 건 그거 자체로 코미디인 거고, 만약 서기호 전 판사가 지금도 판사이고 (지금의 영향력 아래에서) 그런 내용의 글을 계속해서 올린다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본다.
- 이 대위 트윗은 지금도 볼 수 있나?계정은 이미 해지했다. 기소 내용으로 보면, 리트윗한 것이 많다. 공지영 작가 글을 리트윗한 것도 있는데 그러면 공지영 작가에게도 모욕죄 혐의를 씌워야 하는 거 아닌가? 중앙일보 논평에 대해 쓴 것도 있다. “수백억 원 재산을 사회 환원하신 분이 고작 수억 때문에 내곡동 땅 가지고 장난쳤겠느냐는 중앙일보 논평인지 사설을 읽고 나니 올해도 개소리가 풍년일 거라는 전망을 내릴 수 있었습니다” 이게 대통령을 욕하는 건가? 중앙일보 논평을 욕한 것일 뿐이다.
- 군 검찰이 트위터를 잘 모르는 것 아닌가.군 검찰은 리트윗 개념을 제대로 모른다. 군 검찰이 제시한 증거는, 이 대위가 군인 신분을 밝혔다면서 여기저기 있는 정보를 다 뒤져서 조합을 해놓은 거다. 흡사 프로필에 올려놓은 것처럼 보이게. 군 검찰도 이렇고 군 판사나 심판관도 마찬가지여서 이걸 설명하는데 시간이 좀 든다. (주: 뒤이은 공판에서 이 증거자료의 편집 의혹 및 증거능력에 대한 문제가 제기된다.)
뚫린 입으로 무슨 말을 못 해
- 군인에게 있어서 정치적 표현의 자유는 어디까지 허용되는 하는 것인가. 특수한 신분인 것은 분명하지 않나.우리가 합의한 헌법과 법률은 그러한 제한을 두고 있지 않다. 그러니까 결국 그 화두는 법 외적인 화두가 된다. 아니려면 법부터 고쳐야 할 것이다. 결국, 그 문제는 도의적 책임, 직업윤리의 문제로 봐야 하는데, (얘기가 반복되지만) 결국은 구체적인 사안에 따라 판단이 되는 거다. 그에 따라 합리적 내부 절차에 의한 처분이 있을 수도 있고, 비난을 감수할 수도 있을 것이다.
- 헌법과 법률이 그렇다고 하더라도 현실적으로…아무튼 개인이 마땅히 누려야 하는 표현의 자유를 뺏을 자유는 누구에게도 없다. 판사든 군인이든 공무원이든, 법에 정해져 있는 경우(정당 가입 금지 등)를 제외하고는 없다. 나는 이런 화두가 자꾸 “어떻게 제한할 것인가”를 중심으로 얘기가 진행되면 사실 발끈하게 되곤 한다. 개인의 자유를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식으로든 제한하려고 하는 의도로 보여서 경계하게 되기도 하고.
-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사실 우리 헌법 자체가, 말하는 것에 대해서는 입을 꿰매버리지 않는 이상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사후 규제는 몰라도 사전 규제는 하지 않는다는 것이기 때문에, 누구라도 뚫린 입으로 뭔 소리를 못하나. 책임은 자신이 지는 것이다. 정치적이든 도의적이든 길 가다 맞든 (…) 어쨌든 “뚫린 입으로 뭔 말을 못해”에 방점을 좀 찍어주면 좋겠다.
2. 이후 3개월, 새로운 쟁점들
증거자료는 조작되었나, 기무사는 불법적으로 증거를 수집하였나.
요약하면 이렇다. 이 대위는 평소 트위터에서 대통령을 비판하는 글을 올렸다. 트위터상에서의 제주 해군기지와 관련된 논쟁을 벌이다 신분이 드러나 기무사에 신고를 당했다. 그래서 군 검찰이 상관모욕죄로 기소했다.
그래서 처음에 이 사건은 군 형법상의 상관모욕죄에 해당할 만한 ‘범죄’인가 아닌가 하는 점이 중심이었다. 하지만 6월을 지나며 상황이 달라졌다. 관련된 오마이뉴스의 기사들을 요약하였다.
6월 16일: 오마이뉴스가 기무사와 군 검찰이 제주 해군기지 논쟁 이전부터 이 대위의 트위터를 사찰해왔다는 의혹을 제기 (링크) 6월 26일: 2차 공판에서 이재정 변호사는 군 검찰의 증거자료에 대해 조작 의혹과 함께 증거능력 부족 사유로 공소 사실을 전면 부인, 증거자료 작성자의 확인을 요구(링크) 7월 17일: 비공개로 진행된 공판준비기일에 군 검찰은 기무사 서 아무개 대위가 작성한 확인서 제출. (링크) 확인서의 내용은 이 대위 트위터 총 473장 출력, 제주 해군기지 논쟁 이전에 대부분 출력되었다는 것.
즉, 이 사안을 주도한 것은 기무사였으며 최초에 알려진 바와 달리 트위터상의 제주 해군기지 논쟁 이전부터 이 대위의 트위터를 주시하고 있었다는 것이 밝혀진 것이다. 이로써 공방의 중심은 ‘이 대위의 트윗이 상관모욕죄에 해당하는가’에서 ‘군 검찰이 제시한 증거(트윗)의 조작 여부와 위법적인 방법으로의 수집 여부’로 옮겨지게 된다.
다시 한 번, 군인은 대통령을 비방하면 안 되는가
물론 그렇다고 해서 ‘군인이 대통령을 비방해도 되는가’라는 질문 자체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여러 가지 의견이 있을 수 있겠고 여기서 결론을 쉽게 낼 수도 없다. 다만, 이재정 변호사가 인터뷰에서 언급한 내용을 다시 한 번 곱씹어 볼 필요는 있을 것이다.

“그것을 비난할 수도, 정치사회적 책임을 지게 할 수도 있다. 그리고 속한 집단(군)에서 징계를 논의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게 형벌로 처벌할 거리가 되는가”“우리가 합의한 헌법과 법률은 그러한 제한을 두고 있지 않다. 개인이 마땅히 누려야 하는 표현의 자유를 뺏을 자유는 누구에게도 없다. 판사든 군인이든 공무원이든, 법에 정해져 있는 경우(정당 가입 금지 등)를 제외하고는 없다.”
표현의 자유 기금,김앤장부럽지 않은 서비스를 해 드립니다.
- 표현의 자유 기금(나꼼수 기금) 좀 소개해 달라.공익 사건들은 대체로 보수도 적고 시간도 많이 뺏기다 보니 개별 변호사의 결의 수준만 바라보게 된다. 이걸로 돈 벌자는 건 아니지만, 예전에 촛불 시위 관련해서 30만 원 받고 2년 동안 한 달에 한 번씩 재판을 계속 진행한 케이스도 있다, 열 몇 명을 변호하면서. 실질적으로 돈을 받는 게 아닌 거다. 게다가 이렇게 참여할 수 있는 변호사들은 대체로 대형 로펌에 매여 있지 않은 개업 변호사들이나, 우리 같은 소규모 민변계 로펌처럼, 기본적으로 장사 못하는 사람들이기도 하고. (웃음)
- 그래서 기금을 만들게 된 것인가.기존에 민변 내부 기금이 있긴 했지만 많지 않은 수준이기도 했고… 그런데 걱정이 되는 거다. 2012년이. 선거도 있고, SNS 이슈에… 선거법, 명예훼손 등등 이 복잡한 법률에 따라, 이 검찰 아래에서 얼마나 많은 기소가 있겠는가. 그러던 차에 나꼼수 측과 얘기가 되어서 기금을 만들게 되었다. 많은 시민이 참여해 주셨고, 실제로 나꼼수 멤버들도 이 기금으로 법률적 조력을 받고 있기도 하다. 5억이 좀 안 되는 돈이 십시일반으로 모였는데, 이 대위 사건 진행도 이 기금을 통해, 시민의 도움으로, 진행하고 있다.
- 이 기금으로는 어떤 사건들을 변호하게 되는지.상세한 내부 규정이 있긴 한데, 어쨌든 표현의 자유가 침해받는 사안들은 모두 포함된다. 우리는 근본적으로 ‘명예훼손이나 모욕, 이런 것까지 형벌로서 처벌해서는 안 되는다’는 입장이니까, 때로는 실정법 위반의 소지가 있더라도 변호한다. SNS 상의 표현의 자유 문제가 중심이 되고 있기도 하고, 연희동 전두환 포스터 사건도 이 기금으로 지원하고 있고.
- 마지막으로 광고 한 말씀.이 기금을 통해 표현의 자유 변호인단이 만들어졌는데, 워크숍도 많이 하고, 표현의 자유에 관한 법리는 모두 리뷰를 했다. 선거법상에서의 표현의 자유, 명예훼손 일반법리, 판례, 모욕죄 일반법리 판례 등등. 그러니까 표현의 자유와 관련된 문제만큼은 김앤장 안 부러운 서비스를 할 수 있다. (웃음)
- 이걸 소제목으로 박아야겠다.대한민국 어느 로펌도 따라올 수 없는 표현의 자유 변호인단. 이건 장담할 수 있다. 각 개인이 개별 사건을 맡는다기보다는 그 부분에서 함께 서포트를 할 수 있는 집단이니까.

(이 글은 슬로우뉴스에 동시 게재됐습니다)

뗏목지기·블로거 | slownewskr@gmail.com  

2012년 7월 16일 월요일

‘궁정동 총성’ 석달뒤 박근혜 일기에는 “소신 펴 나갈 때 욕 안먹을 수 없어”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07-16일자 기사 '‘궁정동 총성’ 석달뒤 박근혜 일기에는  “소신 펴 나갈 때 욕 안먹을 수 없어”'를 퍼왔습니다.

박근혜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이 10일 오전 서울 영등포 타임스퀘어에서 대통령 후보 출마 선언식을 열고 선언문을 낭독하며 시민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뉴시스

[2012 대선주자 탐구] 박근혜 ① 역사관과 통치관
“5·16과 유신 없었다면 대한민국 없을것”
“역사에 판단 맡겨야” 신념 바뀐적 없어

새누리당이 대선후보 경선에 참여할 후보 등록을 마감하고 21일부터 공식 선거운동을 시작한다. 뒤이어 민주통합당도 후보 경선에 들어갈 예정이다. 12월19일 치러지는 18대 대통령선거전의 막이 본격적으로 오르는 것이다. 는 주요 대선주자들을 심층 조명하고 그를 둘러싼 의혹을 점검하는 ‘대선주자 탐구’ 시리즈를 시작한다. 그가 어떤 생각을 갖고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깊숙이 들여다보는 건, 5년간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대통령을 선택하는 데 매우 중요한 척도가 된다. ‘대선주자 탐구’의 첫번째로, 지지율 1위인 박근혜 새누리당 의원 탐구를 4차례에 걸쳐 싣는다. 이어 김문수 경기도지사와 김태호·임태희·안상수 새누리당 경선후보를 조명하는 기사를 싣는다. 민주통합당 경선이 본격화하면, 민주당 후보들에 대한 심층취재 기사도 계속 실을 예정이다.2007년 1월23일 ‘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 사건에 연루돼 사형 당한 8명에 대한 재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야당은 말할 것도 없고, 한나라당 대변인도 “이제라도 진실이 밝혀진 것이 큰 다행”이라며 “이 사건으로 고인이 된 분들의 명복을 빌고 유족들에게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 다시는 이런 일이 되풀이되어서는 안 될 것”이라는 논평을 냈다. 국민의 시선은 박근혜 의원(이하 호칭 생략)의 입을 향했다. 그는 침묵했다.박근혜는 그보다 1년여 전 한 인터뷰에서, 인혁당·민청학련 사건이 박정희 정권에 의해 조작·과장됐다는 ‘국가정보원 과거 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의 발표에 “한마디로 가치가 없는 것이며, 모함”이라고 불쾌감을 드러낸 바 있다.인혁당재건위 사건은 1974년 4월 유신 반대 학생운동을 주도하던 전국민주청년학생연맹(민청학련)의 배후에 인혁당재건위가 있다며 중앙정보부가 23명을 기소했던 사건이다. 사법부는 8명에게 사형을, 나머지 15명은 무기징역 및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이듬해 4월 대법원이 상고를 기각하면서 사형이 확정된 8명은 재판 뒤 18시간 만에 형이 집행됐다.많은 이들은 인혁당 사건을 두고 “유신체제에서 ‘권력의 시녀’가 돼버린 사법부가 박정희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고 지적했다. 2002년 9월 대통령 직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이 사건이 고문에 의해 조작된 것이라고 발표했고, 같은해 12월 유족들이 재심을 청구하면서 결국 무죄 판결이 나왔다.그러나 박근혜의 생각은 달랐다. 애초부터 그는 “법적으로 결론이 난 사건 아니냐”며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사형이 집행됐던 1975년 4월은 박근혜가 ‘퍼스트레이디’로 활동하던 시절이다. 32년 만에 무죄 판결이 나오자 그는 “법원에서 정반대의 두가지 판결을 내렸다. 그렇다면 뭐가 진실인가. 역사적 진실은 한가지밖에 없다”며 “역사가 앞으로 밝혀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 “5·16과 유신 없었다면 대한민국도 없을 것”

박근혜는 박정희의 유신과 5·16 쿠데타 에 대해 ‘역사가 평가할것’이란 신념을 굽히지 않는다. 2007년 7월19일 한나라당 대선 경선 후보 청문회에서는 “유신체제에 대해서는 역사에 판단을 맡겨야 한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에 80개가 훨씬 넘는 나라들이 독립을 하거나 새로 탄생을 했다. 그 많은 나라들이 이른바 군사독재 정치를 겪었다. 그 나라 중에서 유일하게 한국만이 개발에 성공을 한 나라”라고 말했다.며칠 뒤 방송토론에선, 5·16에 대한 찬반 논란을 고려-조선 왕권 교체기에 빗대기도 했다. “이성계의 조선 개국에 대해 포은 정몽주 선생과 세종대왕의 평가가 다를 수 밖에 없지 않나? 두 분이 똑같은 얘기를 할 수 없을 것이다.” 박정희는 이성계, 자신은 세종대왕, 그리고 박정희 시절의 희생자들은 정몽주로 비유한 셈이다. 고려 말 이성계의 ‘역성혁명’에 반대하는 정몽주를 제거한 것은 이성계의 아들 이방원 일파였고, 세종대왕은 이방원의 아들이었다.박근혜는 박정희가 주도한 5·16과 유신이 각 시점의 한국에 반드시 필요했다고 확신하고 있다. 그는 1989년 (문화방송) 인터뷰에서 “5·16은 구국의 혁명이었다. 과연 5·16과 유신이 없었다면 대한민국이 존재할 수 있었겠나?”라고 물었다. 더 나아가 4·19의 결과로 꾸려진 정부를 전복한 5·16이 오히려 4·19 정신을 계승했다는 주장도 펼쳤다. “4·19의거는 잘못된 나라를 바로잡기 위해 일어난 희생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라를 구하기 위해 일어난 5·16혁명도 4·19의 뜻을 계승하고 있다고 본다. 5·16이 있었기 때문에 4·19 때 희생된 분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목숨까지 버렸는데 4·19 후 그 혼란의 와중에 만약 우리나라가 ‘공산당의 밥’이 됐다면 그 희생이 무슨 가치가 있나?” 2007년 한나라당 경선 청문회 때 “5·16은 구국혁명이었다. 유신 체제는 역사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했던 발언도 언론의 관심을 받았다.박근혜가 5·16과 유신을 옹호하는 발언을 내놓으면 비판 여론이 들끓곤 했다. 민주 선거로 선출된 정부를 뒤엎은 쿠데타와 박정희의 ‘종신독재’를 가능하게 한 유신을 옹호했다며, 박근혜의 민주주의관과 역사관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이다.

박근혜 의원이 지난 2월21일 서울시 마포구 상암동에 개관한 박정희 대통령 기념ㆍ도서관을 돌아보며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사진을 쳐다보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박근혜도 5·16 및 유신에 대해 문제가 제기되는 지점을 이해하고는 있는 듯하다. “만약 아버지가 그때 총탄에 돌아가시지 않았다면 유신체제를 끝내고, 대통령에서 물러나셨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당시 아버지께서 유신헌법에 대해 개정하는 방향으로 수석비서관에게 연구 지시를 했고, 스스로도 물러나실 준비를 하셨고, 식사 시간 대화에도 다음 대통령은 누가 됐으면 좋겠냐고 저에게 의견을 물어봤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지 않았더라면 그 일들을 해결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후보 검증 청문회에서 나온 이 발언은 ‘종신독재’에 대한 비판을 다분히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그렇다 해도 각 시점에 사회적 불안, 북한의 위협 등 때문에 5·16과 유신 결단은 불가피했다는 게 박근혜의 주장이다.“(5·16 무렵엔) 그때 상황이 너무나 나라가 혼란스러웠고, 남북간 대치 상황에서 잘못하면 북한에 우리가 흡수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또 혁명규약에 보면 ‘기아선상에 헤매는 국민을 구제하고’ 이런 얘기가 나올 정도로 기아선상에 헤맸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구국을 위한 혁명이었다고 생각한다.”(2007년 후보 검증 청문회)“유신과 자주국방은 뗄래야 뗄 수가 없다. 아버지는 유신을 통해 북한보다 10년이나 뒤진 우리나라의 병기를 독자적으로 생산해서 자주국방을 달성하려 했다. 그런 계획을 차질없이 수행하려면 사회의 안정이 유지되어야 하고, 사회의 안정이 유지되려면 강력한 지도체제가 불가피했기 때문에 유신을 통해 그것을 이루려 했던 것이다.”(1989년 문화방송 인터뷰)

■ “소신 펴는 과정에서의 비난은 훈장 이상”

박근혜는 ‘정쟁’, 곧 정치권의 반목과 갈등이 5·16이나 유신을 불가피하게 만든 결정적 요소였다고 꼽는다. 박정희 추모 사업의 일환으로 박근혜가 1990년 제작한 영화 (조국의 등불)은 박정희 정권의 경제·외교·문화·안보 등의 치적을 두루 자랑하며 박정희를 미화하는 내용이다. 이 영화는 5·16의 배경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4·19 이후) 서투른 민주주의가 뿜어내는 공해로 인해 정치는 표류하고 세상은 불만과 불평으로 가득했다. …더욱 기막힌 것은 나라 살림보다는 내 살 길에 혈안이 된 정치인들이 나라를 보살펴야 하는 의무와 책임은 젖혀놓고, 주먹질로 세상을 잡으려고 아우성치는 것이 정치 1번가의 풍경이었다. 국민들은 강력한 지도자를 갈망했다. 국민의 편에 서서 국민의 어려움을 헤아려주는 청렴한 정치인을 고대했다. 1961년 5월16일 은인자중하던 군부가 나라의 위기를 구하기 위해 드디어 궐기했다.”민주주의는 서로 다른 주장을 하는 개인이나 집단이 토론하고 타협하는 과정을 필수적으로 수반한다. 그래야 결정이 내려진 뒤에도 잡음이 적다. 그렇기 때문에 박근혜가 ‘정쟁’을 바라보는 시각은 논란의 소지가 있다. 5·16이나 유신은 민주주의의 기회를 뺏은 역사이고, 그 책임은 박정희에게 있으며, 박정희 정권은 취약한 정당성을 보완하고자 정치인들에게 ‘당쟁만 일삼는 것들’이란 혐의를 뒤집어 씌워 책임을 미룬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기 때문이다.강력한 추진력을 강조하는 태도는 박근혜가 쓴 글에서도 엿볼 수 있다. 대표적인 게 10·26 석달 뒤인 1980년 2월7일의 일기다.“소신을 펴나가는 과정에서 욕을 안 먹을 수 없으니 그 비난은 가슴에 다는 훈장 이상으로 자랑스러운 일이다. 손에 물 한방울 묻히지 않고 설거지 하는 것만큼이나 욕먹지 않고 일하기는 어렵다. 일 잘하고 나서 그릇 한두개 깬 것만 가지고 욕을 하는 풍토라면 그 나라는 많은 애국자를 기대하기 어렵다.”수많은 반대 여론을 무릅쓰고 장기집권을 이어갔던 아버지의 통치관을 이어받은 셈이다. “고속도로 건설을 비롯하여, 한-일 국교회복, 포항제철 건설과 월남 파병 등 하나에서 열까지 그 굵직굵직한 나라의 큰일들이 심한 반대에 부딪히지 않고 이루어진 적이 없었다. 아버지가 당대에 박수받는 법을 모르셨겠는가. …국가를 보위한다는 것은 대통령 취임선서에도 첫번째로 나오는 국가 지도자의 엄숙한 임무인데, 그 임무수행에 혹여 차질을 빚었을 때 역사 앞에 어떠한 책임을 져야 하는지 아버지는 알고 계셨다.”(1989년 (한국논단) 기고문)박근혜는 정치를 시작한 이래 박정희 정권 시절 탄압받았던 피해자들과의 접점을 서서히 늘려왔다. 박근혜는 2004년 8월 박정희의 ‘정적’이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을 만나 “아버지 시절에 많은 피해를 입고 고생한 것을 딸로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2007년 7월엔 유신 시절 의문사한 언론인 장준하의 부인을 만나 위로의 인사를 건넸다. 박근혜의 사과 대상은 20년째 비슷한 표현이 반복된다. “산업화 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피해를 입은 분들”이라고도 했고, “유신시대에 민주화 운동을 하면서 헌신하셨던 분들, 희생하고 고통을 받은 분들”이란 표현도 있다. 박근혜의 사과 행보가 어디까지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또 ‘본의 아니게’라는 표현이 초래한 논란에서 보듯이, 박근혜의 사과는 진정성 논란을 불러오기 일쑤다. 아직까지 5·16이나 유신을 정면으로 부정한 적은 없기 때문이다.박근혜는 2003년 6월 기고문에서 자신이 정치에 나선 이유를 “아버지 때 못 이룬 이 나라의 민주정치를 꽃피우기 위해” 라고 밝힌 바 있다. 자신의 소신이 여론과 충돌할 때 “비난을 훈장 이상으로 자랑”스러워 한다면 과연 민주정치가 꽃피는 세상일까?

김외현 기자 oscar@hani.co.kr

박근혜 일기 주요 대목
 소신을 펴나가는 과정에서 욕을 안 먹을 수 없으니 그 비난은 가슴에 다는 훈장 이상으로 자랑스러운 일이다.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설거지 하는 것만큼이나 욕먹지 않고 일하기는 어렵다. (1980년 2월7일)

혹한·혹서가 오래가는 법은 없다. …한 겨울에 봄이 올 것이라고 느끼기는 어려우나 봄은 어김없이 찾아온다. (1980년 2월11일)

자기를 은혜로이 돌보았지만 언제 어떻게 돌변하여 총을 겨눌지, 욕을 할지 모르는 사람들이 가득한 도시, 또 그러한 사람들이 영웅시되는 사회는 도덕이 발로 설 수가 없다. (1981년 3월5일)

영웅으로 키우신 그 뜻이 바로 영웅적인 죽음까지 마련하신 것은 아닐까. 평범한 죽음은 세인의 관심을 끌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1981년 10월19일)

유신없이는 아마도 공산당의 밥이 되었을지 모른다. (1981년 10월28일)

1970년대의 노력과 땀이 없었다면 지금 우리 민족의 설 땅이 과연 어디 있을 수 있겠는가. (1985년 7월26일)

죽은 후에는 왕조차도 금세 잊혀지겠지만 사회를 위해 일한 사람은 오래오래 기억될 것. (1985년 9월28일)

1989년은 수년간 맺혔던 한을 풀었다고 표현해도 좋을 한해이다. 1980년대는 다시 돌아다보기도 싫은 소름끼치는 연대라고 느껴지는 것. (1989년 12월30일)

화염병을 던지며 반항하고, 선배 알기를 개떡만도 못하게 생각하고 온통 도덕, 질서, 가치관 등을 뒤죽박죽으로 뒤집어 놓은 오늘의 이 현실은 그동안의 역사 왜곡으로 인한 기성세대의 자업자득이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가를 이 사회는 지금 단단히 치르고 있는 것. (1990년 5월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