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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6월 18일 월요일

총선 때 투표 안 했던 556만명, 이들이 판도를 바꾼다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2-06-18일자 기사 '총선 때 투표 안 했던 556만명, 이들이 판도를 바꾼다'를 퍼왔습니다.
[뉴스분석] 한국일보, 정치전문가 예상투표율 분석 68.1%… 수도권·40대 표심이 변수

“19대 총선 투표에 불참했던 556만 명의 선택이 차기 대통령을 결정한다.”
2012년 12월 19일 제 18대 대통령선거를 6개월가량 앞둔 가운데 한국일보가 대학 교수, 학자, 여론조사 전문가 등 정치전문가 30명에게 차기 대선 예상 투표율을 묻는 조사를 진행했다. 정치전문가들의 대선 예상 대표율을 보면 적게는 65% 많게는 75% 가량을 예상했다.
30명 정치전문가의 예상 투표율은 68.1%다. 김민전 경희대 교양학부 교수, 박한규 경희대 국제학부 교수, 이철순 부산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이택수 리얼미터 대표, 최진 대통령리더십 연구소장 등은 68%를 콕 짚어서 예상 투표율로 응답했다.
정치전문가들의 대선 예상 투표율은 대충 넘겨짚는 게 아니라 나름의 분석을 바탕으로 한 결과이다. 이번 대선 투표율이 최소 65%에서 70% 정도 될 것이란 예상은 이번 조사뿐만이 아니라 보편적으로 예상된 결과다.
이유가 있다. 역대 대선 가운데 최저 투표율은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됐던 2007년 제17대 대선으로서 63.0%로 나타났다. 당시 1위 이명박 후보와 2위 정동영 후보는 530만 표가 넘는 월등한 격차로 당락이 결정됐다. 선거를 하기도 전에 결과가 예견된 선거였다는 얘기다.

한국일보 6월 18일자 3면.

역대 최저 투표율인 63.0%를 나타낸 것도 이 때문이다. 대부분의 전문가는 2007년에 비해 2012년 대선은 투표율이 올라갈 것으로 점치고 있다. 이번 대선은 누가 대통령이 될 것인지 예측하기 쉽지 않는 접전 양상으로 흐를 것이란 판단이 깔려 있다.
이번에 한국일보가 정치전문가들에게 물어 본 결과는 68.1%다. 2002년 제16대 대선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될 때 투표율인 70.8%보다는 다소 낮은 수치다. 1997년 제15대 대선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선될 때 투표율은 80.7%에 달한 것을 고려하면 68.1%는 그리 높은 수준은 아니다.
전문가들의 분석을 종합해보면 2012년 대선 투표율은 2007년 대선보다는 높고 2002년 대선보다는 다소 낮은 수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대선레이스의 열기와 역동성이 한층 가열되면 투표율은 더 올라갈 수 있고, 결과가 너무 쉽게 예측되는 상황이 온다면 투표율은 68.1%보다 낮을 수도 있다.
전문가 분석을 기초로 해서 분석을 해보면 12월 예상 투표율 68.1%는 지난 4월 총선 당시 참여하지 않았던 많은 유권자가 대선에는 참여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 규모는 어느 수준일까.
19대 총선을 기준으로 할 때 당시 총 유권자는 4020만 5055명이었으며, 54.3%인  2181만 5420명이 투표에 참여했다. 대선 예상 투표율이 68.1%라는 얘기는 총선보다 13.8%포인트의 유권자가 더 투표에 참여한다는 얘기다.
총선 당시 유권자를 기준으로 할 때 4020만 5055명 중 68.1%인 2737만 9642명이 대선 예상 투표 인원이다. 4월 총선과 비교해보면 556만 4222명이 더 투표에 참여한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총선에 참여하지 않은 이들은 어떤 이들일까.
우선 총선과 대선의 차이점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 총선은 ‘공휴일’이기는 하지만 정상적으로 출근하는 업체들도 적지 않다. 직장인들의 경우 출근이나 출장 등 업무 때문에 총선에 참여하지 못한 이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대선은 회사의 정상 출근 때문에 투표에 참여하지 못하는 이들은 극히 적다고 봐야 한다. 대부분의 회사가 그날만큼은 휴무일로 지정하기 때문이다. 결국 어쩔 수 없이 투표에 참여하지 못했던 이들이 대선에는 참여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총선에서 뽑을 후보가 없거나 정치에 큰 관심이 없다는 이유 등으로 투표에 불참한 이들도 있다. 이들 역시 대선에서는 보다 적극성을 띨 가능성이 크다. 지역단위 선거는 후보 개인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이유 등이 있겠지만, 전국단위 선거에서는 특히 대선의 경우 특정 후보의 장단점이 집중 부각되기에 평소 정치에 관심을 덜 뒀던 이들도 투표 참여 의지를 보이는 경우가 있다. 이런 이유 등으로 대선 투표율은 다른 어떤 선거보다 투표율이 높은 편이다.
그렇다면 총선에 참여하지 않았던 556만 명이 대선에 참여한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 한마디로 대선 판도를 완전히 정리하는 엄청난 규모라고 할 수 있다. 2007년 대선이 530만 표 이상의 격차를 보인 싱거운 승부였다면, 1997년 2002년 대선은 40만~60만 표 수준의 박빙 승부로 펼쳐졌다. 2012년 대선 역시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운 박빙 승부가 될 가능성이 크다.
결국 556만 명이라는 표심의 향방이 누가 대통령이 될 것인지를 결정하는 변수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들의 표심에 관심이 집중되는 이유는 4월 총선이 새누리당 승리로 끝이 났지만 표심을 분석해보면 여야 어느 쪽도 안심할 수 없는 사실상 ‘무승부’ 결과로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조선일보 4월 13일자 3면.

조선일보는 지난 4월 13일자 3면 라는 기사에서 "결국 보수와 진보 진영이 얻은 득표는 48% 대 48%로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총선 표심은 여야 어느 쪽도 안심할 수 없는 팽팽한 박빙 구도라면 556만 명 가량으로 예측되는 ‘총선 불참’ ‘대선 참여’ 유권자의 선택은 판세를 가르는 결정적 변수가 될 수 있다. 한국일보는 "(대선 투표율은) 지역적으론 특정 정당 충성도가 높은 영호남보다는 수도권의 탄력성이 높았다"면서 "연령별로는 40대의 대선 투표율 상승이 눈에 띈다"고 분석했다.
결국 지역적으로는 수도권, 세대별로는 40대의 표심이 ‘총선 불참’ ‘대선 참여’ 유권자의 주축이라는 얘기다. 이들의 표심을 잃어서는 대선 승리가 어렵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들의 특징은 ‘구호’가 아닌 ‘내용’을 중시하는 이들이라는 점이다. 

야권의 경우 정권심판론 돌림노래만 갖고는 이들의 마음을 다 얻기는 어렵고, 현 정권에 비해 어떤 점이 더 뛰어난지 어떻게 더 나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끌 수 있는지 구체적인 정책과 비전을 보여줘야 하는 상황이다.
여권 역시 철지난 색깔론으로 보수층 표심만 자극해서는 40대와 수도권의 버림을 받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이번 한국일보 전문가 분석 결과는 여권의 대선 전략을 짜는 데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류정민 기자 | dongack@mediatoday.co.kr  

2012년 4월 13일 금요일

이제는 '어떤' 야권연대냐가 중요하다


이글은 민중의소리 2012-04-13일자 기사 '이제는 '어떤' 야권연대냐가 중요하다'를 퍼왔습니다.
'야권연대'가 패배 요인?...비전 갖춘 야권연대의 '콘트롤타워' 부재가 패배 원인


ⓒ이승빈 기자 4.11총선 여야가 출구조사 초박빙인 가운데 11일 오후 서울 영등포 민주통합당 당사에서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와 박선숙 선대본부장이 당사를 나서고 있다.

4.11총선이 새누리당의 승리로 끝났고 야권은 패배를 인정했다. 민주통합당 한명숙 대표는 총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사퇴하라는 내외의 압박에 직면했다. 당장 민주통합당은 새로운 지도부 구성 등을 놓고 또다시 내홍을 겪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당 차원에서 보면 '약진'했다고 할 수 있는 통합진보당 이정희 공동대표도 개표가 끝난 후 "수도권에서 변화의 열망과 야권연대를 지지하는 민심을 확인했지만, 저희가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면서 "여소야대 국회를 만들어 내지 못해 죄송하다"고 말했다. 

이번 총선의 결과에 야권 전체는 각각의 세력을 불문하고 패배의 책임에서 자유롭기 힘든 게 사실이다. 몇 달 전만 해도 야권이 원내 과반을 얻는 것은 물론이고, 새누리당이 역대 최소 의석을 얻어 빈사 지경에 빠지는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예상이 이상해 보이지 않았을 정도였다.

하지만 총선이 야권의 패배로 끝나자 총선 기간 내내 '김용민', '종북좌파' 등을 가지고 줄기차게 공격을 가하던 조중동을 위시한 보수세력은 외려 '야권연대'를 야권이 패배한 주요원인 중 하나로 꼽고 있다.

"진보당과의 연대 성사를 위해 일방적으로 좌파에게 끌려다니는 모습 때문에 빚어진 무당파 중간충의 민주당에 대한 안정감 동요가 컸다"는 의 평과 "민주통합당이 통합진보당과 선거연대를 추진하면서 중도층이 선뜻 동참하기 힘들 정도로 너무 좌경화 노선을 취했다"는 새누리당 관계자의 말을 인용한 의 보도가 대표적이다. 

야권 일각에서도 이런 분석이 나왔다. 민주통합당 이용섭 정책위의장은 12일 "진보색채가 강한 당과의 연대로 야권이 정권을 잡으면 불안해질 것이라는 인식을 심어줬다"고 총선 패배의 원인을 분석했다. 이 의장 외에도 민주통합당 내에서는 "야권연대로 인해 중도층을 잡지 못했다"는 분석이 나돌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이런 분석대로라면 향후 야권의 전략은 각개약진이 될 가능성이 높다. 당연히 새누리당의 안정적인 재집권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야권연대는 '정치공학적 전술'이 아니라 전략이자 노선" 

야권연대는 보수진영에 맞서 민주 진보 진영이 하나로 뭉쳐 새로운 정권을 창출하자는 전략이다. 우리 사회의 보수세력이 가지고 있는 물적 인적 토대가 매우 굳건하기 때문에, 이를 허물고 진보적 방향의 변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민주진보진영이 서로의 차이가 있더라도 하나로 뭉쳐 대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이번 총선에서도 보수진영이 가지고 있는 쉽사리 흔들리지 않는 토대는 다시 한 번 확인되기도 했다.

그간 야권연대를 만들어온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은 야권연대를 '전략'과 '노선'이라고 설명한다. 단순히 선거를 이기기 위해서 취하는 '전술'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야당들이 각각 따로 출마하면 모두가 이기기 힘들기 때문에 합쳐서 나와야 한다'는 정치공학적 전술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이같은 전제에서는 야권연대는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된다. 하나는 이명박 정부에 맞서는 세력을 모두 모아 공동으로 대응하자는 '반MB' 전략이다. 이 전략 아래 진행된 2010년 지방선거와 지난해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야권은 압승을 거뒀다. 그리고 그 결과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앞날이 불투명했던 야권이 국민들의 관심과 신뢰를 다시 받게 되는 계기가 됐다. 

또한 이번 총선에서도 최소한 수도권에서는 야권연대의 위력이 다시 한 번 확인됐다는 게 여야 공통의 인식이다. 수도권에서 야권이 압승을 거뒀음에도 불구하고 강원도, 충청도에서의 패배로 인해 전체적으로 야권이 패배한 결과가 됐지만, 새누리당과 보수세력이 긴장을 풀지못하는 결과가 된 것이다.

공동 정책과 대응이 없으면 '전술'로 비춰질 가능성 높아

야권연대의 또다른 축은 MB정권 이후 야권은 어떤 국가, 어떤 사회를 만들어갈 것이냐다. 이른바 야권연대의 향후 비전의 문제이자 내용의 문제다. 이번 총선의 경우 야권의 공동정책 및 정책협약으로 드러났다. 대선에서는 이에 더해 야권의 공동정부의 인적 구성과 정책으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문제는 이번 총선에서 정책으로 드러나는 비전의 문제를 야권이 제대로 유권자들에게 보여주지 못한 것이다. 이번 총선은 '정권심판론'으로 표현되는 '반MB'와 사회경제적 의제 설정으로 나타나는 공동정책이 모두 중요한 선거였다. 지난해 서울시장 재보선이 정권심판론만으로 구도가 형성되는 선거였다면 이번 총선은 대선의 전초전 성격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력이 부족해) 못한 면도 있지만 (야권에 절대적으로 불리한) 언론환경의 문제도 있었다"면서 "계속 정책공약을 의제로 냈지만 부각되지 못하고 '정권 심판이냐, 아니냐'로만 흐르면서 유권자 입장에서는 전혀 새로울 게 없는 지나치게 식상한 선거가 됐다"는 통합진보당 이의엽 정책위의장의 의견은 이런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특히 야권 공동의 정책과 비전을 '흔들기'하거나 우와좌왕하는 이들이 야권 내부에서 발목잡기를 한 것은 선거 패배의 큰 요인을 제공했다. 이른바 김진표 의원 공천을 둘러싸고 벌어진 국민적 비판이나 한미FTA폐기냐 재협상이냐를 둘러싼 논쟁이 대표적인 예다. 아무리 반MB정서가 높더라도 야권이 쇄신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거나 공동정책이 흔들릴 경우 국민들의 압도적 지지를 얻기 힘들다는 게 증명된 것이다. 

이와 관련 민주통합당의 한 관계자는 "민주당 내부에서 끊임없이 발목을 잡는 세력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어 전체 야권연대 진영이 단결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데 선거패배의 상당한 원인이 있다"고 진단했다. 공동의 정책과 대응이 제대로 되지 않을 경우 야권연대가 단순히 정치공학적인 '전술'로 비쳐져 국민들의 신뢰를 얻기 힘들다는 얘기다.

야권연대진영 전체의 리더십 행사할 '콘트롤 타워' 부재 아쉬워 

아울러 이번 총선에서 야권연대 진영 전체의 리더십을 행사할, 이른바 '콘트롤 타워'를 제대로 가동하지 못한 것도 패배의 한 원인으로 꼽힌다. 야권연대 진영이 공동으로 대응한 선거였지만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 후보간의 경선이 끝난 이후에는 각 당이 알아서 선거운동을 하는 형태가 됐다는 것이다. 

"박근혜 비대위는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데 반해 민주당과 진보당은 전체 선거를 진두지휘할 공동의 지휘부가 없다보니 각자가 시의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니 선거를 이기기 힘든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 아니겠냐"는 한 선거전략 전문가의 지적은 야권이 새겨들을 만한 부분이다. 

총선은 각 지역구별로 선거가 진행되는 측면이 있지만 전국적인 이슈에 따라 향방이 좌우된다. 하지만 야권은 전국 선거를 야권이 공동으로 총괄할 지휘부가 존재하지 않아 급박하게 터져나오는 이슈에 일관된 대응과 메시지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관악을 사태', '김용민 사태' 등에서 야권이 각자 다른 목소리를 내면서 일사분란한 대응을 하지 못해 여론이 불리하게 돌아가도록 방치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결국 이번 총선은 야권이 대선을 승리하기 위해서는 야권연대가 보다 질적으로 발전해야 한다는 교훈을 준 것으로 해석된다. 민주진보진영이 만들어갈 우리 사회의 모습이 무엇인지 더욱 선명하게 보여줘야 하며 야권연대의 지도부가 더 강한 리더십을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다.

정성일 기자 soultrane@vop.co.kr

인물·비전 빠진 심판론, 국민가슴 뚫지 못했다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04-12일자 기사 '인물·비전 빠진 심판론, 국민가슴 뚫지 못했다'를 퍼왔습니다.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와 19대 총선 당선자들이 12일 오전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을 참배하기 위해 계단을 오르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뉴스분석] 야권 패배 왜
피부에 와닿는 정책부족
쇄신하는 모습 안 비쳐
공천실패·오만함도 한몫

19대 총선에서 야권은 ‘엠비 심판’을 내세웠고, 여당은 ‘박근혜’를 앞세웠다.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선거에는 강하지만, 광범위한 반엠비 정서에다가 야권의 선거 연대까지 고려하면 야권이 쉽게 이길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그러나 결과는 152석을 얻어 단독으로 과반을 달성한 새누리당의 승리였다. 회고적 성격이 강한 대통령 임기 말의 총선에서는 야당이 유리하다는 정치이론이 깨졌다. 수도권에서 이기는 정당이 제1당을 차지한다는 공식도 빗나갔다.
왜 그럴까? 전문가나 일반 유권자들은 민주통합당 등 야당이 잘못했기 때문이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선거의 3대 요소인 비전과 정책, 인물에서 야당이 여당한테 경쟁이 안 됐다는 지적이다.
먼저, 민주당과 통합진보당은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기보다는 엠비 심판에 주로 초점을 맞췄다. ‘이명박근혜’라는 단어는 야권에서 가장 인기있는 구호였다.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을 이명박 대통령과 함께 묶어 심판하자는 논리에 지지자들은 환호했다.
하지만 ‘미래’가 빠진 과거 심판론은 공허한 구호에 불과했다. 강원택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는 12일 “박근혜 위원장은 새누리당의 정강정책을 바꿔 이명박 대통령과 거리를 두면서 어쨌든 미래를 얘기하고 있는데 야당은 박근혜도 이명박과 같이 심판하자고만 했다”며 “자신이 무엇을 잘할 수 있는지 비전을 내놓지 않고 남을 비판만 해서는 큰 선거에서 이길 수 없다”고 말했다. 서울 용산의 30대 회사원인 장성호씨는 “새누리당도 엠비와 선을 긋고, 공천 물갈이를 했기에 유권자들은 박근혜를 뽑아도 정권을 심판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며 “그런데도 민주당이 무조건 이명박과 박근혜를 심판하자고만 떠드는 게 별로였다”고 말했다.
둘째, 정권 심판 뒤에 자신들이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정책이 보이지 않았다. 선거연대에 합의하면서 야권이 내놓은 ‘공동정책 합의문’에는 국민의 피부에 와닿는 정책들이 없었다. 오히려 한-미 자유무역협정과 제주 해군기지 폐기 등을 내세워 소모적인 논쟁만 키웠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는 야당이 승리했던 2010년 지방선거와 지난해 10월 재보궐선거 때와 확연히 비교된다. 당시 야당은 이명박 정부의 4대강 토목사업과 부자감세 등을 비판하면서 대안으로 무상급식과 반값 등록금 등 구체적인 정책을 내놓았다. 복지포퓰리즘이라는 여권과 보수층의 공격에 대해서는 실현 가능성을 무기로 버텼다. 결국 새누리당도 야당의 정책 대안에 따라왔다. 서울 잠실동에 사는 30대 초반의 회사원 권혜진씨는 “선거에서는 개인과 당의 공약을 보고 뽑는 면도 있다”며 “민주당에서 내놓은 공약이 정권 심판에만 치우치고 심판 이후의 대책은 안 보였다”고 말했다.
셋째, 인물 혁신에서도 여당에 밀렸다. 공천에서는 새누리당이 민주통합당보다 훨씬 나았다는 평이 중론이었다.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은 “야권이 2012년 정권 탈환을 위해 지난해 후반부터 ‘혁신과 통합’을 추구해 민주당이나 통합진보당이나 통합은 어느 정도 달성했다. 그러나 본질적인 부분인 혁신은 너무 미약했다”며 “내부 쇄신 없이 외부적인 연대로만 유권자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는 게 드러났다”고 말했다.
계파간 나눠먹기로 과거 인물을 대거 공천한 게 대표적이다. 그 결과 서울 강서을 등 전통적으로 야권이 강한 지역에서도 민주당 후보는 낙선했다. 서울대 대학원생인 조석영(27)씨는 “재벌을 개혁한다고 해놓고 유종일 교수를 떨어뜨리고, 김용민씨도 아무 생각 없이 공천한 것 같다”며 “민주당은 인물이 어필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야권이 지난 두번의 선거 승리에 취해 오만한 태도를 보인 것도 유권자들로부터 외면받은 원인으로 지적된다. 정치평론가인 유창선 박사는 “쇄신하는 모습도 제대로 보이지 않고 김용민 후보 막말 파문도 대수롭지 않게 지나간 야당한테 보수층이 화가 나서 결집해 난을 일으킨 것”이라며 “4·11 패배는 오만하게 비친 야당이 국민에게 심판당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종철 선임기자, 이충신 기자 phillkim@hani.co.kr

2012년 4월 12일 목요일

민주당 '굴욕'…'한명숙 리더십' 실패했다


이글은 프레시안 2012-04-12일자 기사 '민주당 '굴욕'…'한명숙 리더십' 실패했다'를 퍼왔습니다.
[분석] 연합 과반조차 실패한 야당, 패인은?

굴욕이었다. 4년 만의 설욕전은 완전한 패배로 끝났다. 민주통합당의 19대 총선 성적표는 참담했다. 의회권력 교체는 고사하고 새누리당이 과반 넘는 1당을 차지했다.

수도권에서는 나름 선전했지만, 전국의 종합 결과는 명백한 패배였다. 4년 간의 이명박 정부의 실정은 민주통합당 등 야권에 대한 지지로 연결되지 않았다. 정권 심판론은 실패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2010년부터 2년 내내 심판론, 국민은 대안과 비전을 원했다"



▲한명숙 민주당 대표 ⓒ뉴시스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의 성적표를 요약하면 수도권의 선전, 호남을 제외한 지방의 사실상 전패다. 특히 2004년 이후 야권에 상대적으로 더 많은 지지를 보냈던 충청의 민심은 완전히 돌아섰다. 통합진보당은 일부 지역에서 당선자를 냈지만, 대부분이 민주통합당의 양보를 받아 낸 전통적 야권의텃밭 지역이었다.

민주당은 총선 하루 전날에도 "예측이 어려운 끔찍한 선거"(박선숙 사무총장)라며 '엄살'을 떨었지만 내심 1당은 자신했었다. 4.11 총선 당일에도 "단독 과반은 어렵더라도, 통합진보당과 함께 과반 달성은 무난하리라"는 예측이 당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압도적이었다.

그런데 졌다. 심판론이 먹히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 심판론은 사실 2010년 지방선거 이후 반복된 야권의 무기였다. 정권 중반 치러진 지방선거 때의 아젠다를 야권은 정권 말까지 놓지 못했다. 상대는 '미래권력' 박근혜인데, 이쪽은 '과거권력' 이명박만 붙잡고 있었던 것이다.

지평선 너머로 이미 넘어간 해를 붙잡고 있자니, 새 시대에 대한 비전은 미처 제시하지 못했다. 총선 직전까지 대한민국을 들썩였던 경제민주화의 이슈는 정작 선거가 시작되자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김종배 시사평론가는 "야권은 선거 기간 내내 단 한 가지의 정책 이슈도 만들어내지 못했다"며 "그것이 가장 큰 패인"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전문가도 "국민은 이미 여러번 민주당에 기회를 줬는데 정작 야권은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전혀 보여주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이정희와 김용민, 비수도권 참패의 시작이었다"

또 다른 패인으로 전문가들은 '오만함'을 꼽았다. 한귀영 한겨레사회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자신들의 과오에 대한 비판을 허용하지 않는 진영논리는 일시적으로는 굉장히 폭발적인 힘을 발휘하지만 장기적으로는 덫이 된다"고 말했다. 한귀영 연구위원은 "스스로 성찰의 공간을 열어놓지 못하고 상대의 실책에만 의존했던 주체들의 문제가 치명적이었다"고 덧붙였다.

대표적인 두 장면이 바로 이정희 통합진보당 공동대표의 '부정 경선' 파문과 김용민 노원갑 후보의 막말 파동이었다. 이정희 대표는 "송구스럽다"며 후보 자리는 내놓았지만 통합진보당의 선거운동을 진두지휘하며 대중 앞에서 여전히 지지를 호소했다. 한 전문가는 "이런 모습이 국민의 눈에 자신의 과오를 진심으로 뉘우치지 않는 것으로 비춰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김용민 후보는 여러 차례 자신의 잘못을 사과했지만, "국민에게 심판 받겠다"라며 일각의 사퇴 요구를 거부하고 완주했다. 한명숙 대표마저 김 후보에게 사퇴를 권고했지만, 김 후보 본인은 물론이고 그의 출마를 만들어 낸 와 그 지지자들은 "대체 왜?"라는 태도였다.

두 사람의 이같은 행보는 "비수도권 결과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 정치분석 전문가는 "이정희-김용민 파동은 강원, 충청, 인천 등의 50대 이상이 똘똘 뭉치는 계기를 제공했다"고 말했다. 이 전문가는 "이번 선거는 기본적으로 '심판 선거'가 아니라 '세대 대결'이었다"며 "충청도에서 선거를 치른 이해찬 전 총리가 '김용민 사퇴'를 얘기한 것은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현장에서 느꼈기 때문일 것"이라고 풀이했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도 "선거 막판 튀어 나온 김용민의 변수가 비수도권에는 막강한 영향을 미친 것 같다"고 토로했다.

공천은 엉망으로 해도 야권연대만 되면 이긴다?

1당을 자신했던 두 당의 오만함은 총선 시작부터 터져 나온 공천 파문을 복기해 보면 여실히 드러났다. 민주통합당은 공천 결과를 발표할 때마다 거센 역풍을 맞았다. 야심작이라고 내놓았던 국민참여경선은 오히려 최악의 공천을 불러왔다.

한귀영 연구위원은 "특히 충청도의 참패는 공천이 핵심 이유"라고 말했다. 한 연구위원은 "야권이 그나마 선전한 선거구는 대부분 후보의 인물 경쟁력이 좋았던 곳인데 반해, 참패한 충청은 자신들의 텃밭이라고 생각해 거의 대부분 기존의 인물을 단수공천했다"며 이같이 비판했다.

선거운동 기간 동안에도 민주당은 수도권과 부산 등 영남권에 집중했을 뿐, 충청은 눈 밖에 있었다. 이는 수도권과 영남의 경쟁력을 확보해야 대선에서의 승산이 있다는 계산 때문이었지만, 충청과 강원의 민심은 그 계산을 정확히 꿰뚫었다.

공천의 문제는 통합진보당도 마찬가지였다. 성추행 전력자를 공천했을 뿐 아니라, 비례대표 선출 과정은 각종 의혹으로 휘청거렸다. 한귀영 연구위원은 "비례대표 공천은 우리끼리 알아서 해도 된다는 오만함의 발로였고 그 결과가 2004년보다 낮은 정당 지지율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공천은 유권자 개개인의 입장에서 보면 나를 대변할 '단 한 사람'의 문제인데, 두 당은 국민의 눈높이에 맞춘 공천보다는 '야권 단일화'가 세상에서 가장 위력적인 무기라고 믿고 있었다. 2010년 지방선거로부터 한 발자욱도 나가지 못한 또 한 가지 대목이다.

한명숙, 취임 3개월만에 불명예 퇴진하나?

당장 민주통합당은 지도부 거취 논란 등 거센 후폭풍에 시달리게 될 것으로 보인다. 취임 3개월이 채 되지 않은 한명숙 대표가 당 안팎의 사퇴 압박을 버텨낼 가능성은 높지 않다. 이 모든 문제는 결국 '리더십의 문제'로 귀결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 대표를 포함한 지도부가 총사퇴할 경우, 민주당은 조기 전당대회냐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냐를 놓고 한동안 극심한 혼란을 빚게 될 것으로 보인다.



/여정민 기자 

2012년 1월 22일 일요일

“무기력한 좌파들, 유토피아 말고 현실적 비전을 보여달라”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2-01-22일자 기사 '“무기력한 좌파들, 유토피아 말고 현실적 비전을 보여달라”'를 퍼왔습니다.
[인터뷰]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소장, “복지국가는 이상 아닌 최소한의 생존조건”

한나라당이 복지를 이야기하는 시대가 됐다. 민주통합당도 이에 뒤질 새라 온갖 복지 공약을 남발하고 있다. 말로만 떠드는 복지, 돈으로 해결하는 복지는 오히려 쉬운 일, 이 와중에 통합진보당은 오히려 방향을 잃고 차별화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소장의 책 “비그포르스, 복지국가와 잠정적 유토피아”가 최근 진보진영에서 화두로 떠오른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홍 소장은 무기력에 빠진 진보진영이 답답해서 이 책을 쓰게 됐다고 말했다. 홍 소장은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의 교조에 충실하다 보면 자본주의가 완전히 붕괴할 때까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면서 “좌파나 우파나 시장경제 자체를 부정해서는 안 된다는 굳건한 신념을 공유하고 있는 것 아니냐”고 반문한다. “막연한 유토피아를 그리워할 게 아니라 노동자와 근로 대중이 지금 여기에서 절박하게 여기는 여러 문제들에서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스웨덴 복지국가 시스템을 설계한 에른스트 비그포르스는 시장이 생산적이고 국가는 비효율적이라는 통념을 뒤집어 국가가 산업을 조직하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는 논리를 펼쳤다. 국가가 시장의 바깥을 떠돌게 아니라 직접 대규모 생산적 산업을 조직하고 일자리를 창출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복지국가 시스템을 떠받치는 사회적 연대가 국민들의 자발적인 합의에 의해서가 아니라 성장 기반과 물질적 안정 위에 구축됐다는 분석이 새삼스럽지만 놀랍다. 

홍 소장은 “사람들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더 나은 세상에 대한 상상력과 열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윤리적 당위를 찾아내고 그것이 현실적 희망이 될 수 있도록 과학적 해명을 결합하는 것이 잠정적 유토피아를 일궈내는 비결”이라고 설명한다. 홍 소장은 복지는 가치가 아니라 최소한의 생존 조건이라고 거듭 강조한다. 다음은 지난 6일 사루비아다방 ‘명랑한 세미나’에서 홍 소장과 토론 내용을 인터뷰 형태로 정리한 것.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소장. ⓒMBC.

- 비그포르스는 우리나라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사람이다. 왜 이 사람에게 주목하게 됐나. “좌파의 무기력함이 지긋지긋했다. 좌파 입장에서 마르크스주의를 비판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사회주의 붕괴 이후 나타난 반 자본주의와 제 3의 길, 둘 다 너무 무기력하지 않나. 그걸 뛰어넘을 매뉴얼이 잠정적 유토피아라고 생각했다. 들뢰즈다 뭐다 다 공해 아닌가. 결국 자기 잘났단 이야기지. 좌파들의 고질적인 문제다. 꿈꾸는 걸 경멸하는 걸로 자기 존재를 드러내고 자기 자신도 잘 모르는 걸 떠들면서 아무 것도 안 한다. 모여서 맨날 술만 먹는다. 그런 사람들이 10년, 20년 운동을 묶어두고 복지국가를 경멸해 왔다.”

- 복지국가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라는 건 안다. 1900년대 초반 스웨덴에서는 노동운동의 힘이 강력했고 그래서 자본가 계급을 압박해서 사회적 타협을 끌어낼 수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게 우리나라에서 스웨덴 복지국가 모델을 이해하는 방식이었다. 동유럽이 잇따라 공산권에 넘어가던 무렵이라 위협을 느꼈다는 분석도 있고. 그런데 이 책에서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는 것 같다. 이를 테면 찰츠요바덴 협약이나 노사 대타협에 의미를 두기 보다는 비그포르스라는 한 정치인의 정치적 식견과 전략을 더 부각시키고 있는데 특별한 의도가 있었나. “우리는 LO(노동조합총연맹) 이퀄(=) 스웨덴 사회민주주의라고 오해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LO가 주도적인 역할을 한 건 맞지만 정당운동을 빼고 이야기할 수 없다. 노동자들이 자본가들을 겁박해서 겨우 얻어낸 게 스웨덴 복지국가 모델이라고? 그건 오해다. 노동자들이 단결 투쟁해야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쌍용자동차를 봐라. 목숨 걸고 해도 다 깨진다. 1920년대 자본가들이 겁을 먹었으면 파시스트 깡패들을 불렀겠지. 겁 준다고 복지국가를 하겠나. 노동자 계급이 정치적 영향력을 확보했다고 보기 보다는 노동자 계급의 지지를 받는 사회민주당이 변화를 끌어냈다고 보는 게 맞다. 같은 이야기 같지만 다르다. 헤게모니를 확보하면 좀 더 유화적인 전략이 가능하다. 좌파들은 뭔가 깨부숴야 한다, 뭔가 휘두르고 투쟁해야 한다는 강박을 갖는 것 같은데, 현실적인 힘과 정치적인 힘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스웨덴에서는 건설 노동자들이 파업에 돌입하자 LO가 나서서 파업을 막기도 했다. 단위 사업장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봤기 때문이다. 노동운동이 정치권을 압박했다기 보다는 오히려 노동운동 진영이 사회민주당의 노사협조 노선에 끌려왔던 측면이 강하다. 있는 대로 싸워서 스스로 이익을 희생하기 보다는 일정 부분 양보하면서 정치적으로 더 큰 걸 끌어내는 전략이었던 셈이다. 계급적 이해관계를 넘어 연대를 끌어내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만약 우리나라에서 금속노조 중심으로 싸우는 걸로 한계가 있다고 말하면 마르크스주의자들이 기겁을 하지 않겠나. 그런데 스웨덴에서는 합리적으로 생산성을 높이고 공동의 목표를 만들자는 논의가 1920년대부터 있었다.”

- 우리나라에서도 그런 실험이 가능할 거라고 보나.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 만들었던 종합부동산세는 폐지됐고 이명박 정부 들어서는 오히려 대규모 감세를 단행하기도 했다. 노동조합 조직률은 10%도 안 되고 노동운동은 갈수록 힘을 잃고 있다. “스웨덴은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다. 1차와 2차 세계대전 때 독일이 건드리지 않았고 심지어 비그포르스는 히틀러에 협조했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비그포르스라는 선견지명 있는 정치인이 있었고 무엇보다도 스웨덴 우파가 설득됐다는 것은 국운이라고 할 수 있다. 잠정적 유토피아는 몇 가지 정책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반의 시스템과 산업, 노사문제, 복지 등등 총체적 사회상을 그려야 하는 문제다.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을 만들고 산업 구조조정에 개입하고 그런 게 진보정당이 해야 할 일 아닌가. 지금은 박근혜도 복지를 떠들고 누구나 복지를 이야기한다. 그런 막연한 수준의 복지를 말하는 게 아니다. 소박한 보통 사람들이 한에 맺힌 것, 그거라도 집단적으로 한 발자국씩 떼자, 그게 복지국가라고 생각한다.”


스웨덴 스톡홀름 시내. 맨 뒤에 보이는 건물이 스웨덴노동조합총연맹, LO본부다. 이정환 기자.

스웨덴 복지국가 모델의 작동원리를 완전고용을 창출하기 위한 공공지출 확대, 이른바 케인즈주의에서 찾는 사람들도 많지만 비그포르스는 단순히 통화정책이나 재정정책 수준을 넘어 경제구조를 근본적으로 뒤집는 일련의 개혁정책을 단행했다. 물가안정과 균형재정을 유지하면서 불황과 실업을 해결하고 성장을 견인했다는 사실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스웨덴 사회민주주의가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중간 지점의 어설픈 타협이 아니었다는 이야기다. 

- 진보진영에서는 사회민주주의나 복지국가를 타협적인 방식이라고 평가절하하는 시각이 많다. 비정규직과 실업, 소득 양극화 등의 문제를 복지국가가 해결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복지혜택을 늘리자는 데 반대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과연 그게 변화의 최종 목표가 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우선 복지국가와 노동운동은 대립적인 개념이 아니다. 노동자들이 노동자성을 자각해야 한다고? 우리나라 노동조합 가입 비율은 9% 수준이다. 이 정도 노조 조직률로 뭘 할 수 있겠나. 우리나라 중산층은 사실 고전적 의미의 노동계급이라고 보기 어렵다. 정작 진짜 노동계급은 돈도 없고 시간도 없다. 그래서 복지가 필요한 거다. 핵심은 물질적 역량이 있어야 노동운동을 살찌울 수 있다는 거다. 그래서 비그포르스도 예테보리 강령을 만든 거다.”

비그포르스의 정치 철학은 1919년에 발표한 예테보리 강령에서 실체를 드러낸다. 비그포르스는 스웨덴 사회민주주의의 근간이 된 이 강령에서 급진적인 혁명이나 거대 담론이 아니라 국가 주도의 일자리 창출과 노동시간 단축, 사회복지 확충, 은행과 보험의 사회화 등 실천적인 행동 과제들을 제시한다. 비그포르스가 내놓은 일련의 아이디어들은 마르크스주의에서 말하는 공상적 유토피아가 아니라 잠정적 유토피아의 전망을 가늠하게 했다. 


스웨덴의 복지재정 구조. 연간 최대 3천만원 이상의 세금을 내지만 그만큼 많이 돌려 받는 구조다.

- 2012년 한국 사회에서도 복지국가가 잠정적인 유토피아가 될 수 있다고 보나. “사실 복지라는 단어가 마음에 안 드는데, 영어로는 ‘walfare’라고 하지 않나. 의미를 살려서 옮기면 우리 말로 ‘안녕’ 정도가 아닐까. 안녕하게 잘 있자, 그런 게 가치가 될 수 있나. 이건 기본적인 거고 그야말로 최소한이다. 장하준 교수의 표현을 빌리자면 복지는 구성원들이 살아가면서 필요한 걸 공동구매하자는 거다. 다시 말하면 구성원 모두의 기회를 극대화하는 방법이 복지라는 거다. 부잣집 애들에게 무상급식을 할 필요가 있느냐고 하는데 복지는 소득보전의 차원이 아니라 생로병사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돈이 없어서 애를 못 낳거나 학교를 못 가거나 병원에 못 가거나 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는 거다. 나라살림의 계획을 세울 때 제발 이 정도는 머니게임에서 빼내오자는 거다. 복지로 잘 살 생각하지 마라. 기본 원칙은 인간 존재의 밑둥은 상품이 아니라는 거다. 사람이 시장에서 상품이 돼서는 안 된다는 거다. 보편적 복지는 체첸 독립과 별개다. 이게 무슨 말이냐고? 세상의 수많은 모순을 복지국가로 해결할 수는 없다는 말이다. 그런 문제들과 무관하게 복지는 필요하다는 말이다.“

- 복지국가도 결국 경제성장 없이는 불가능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경제가 성장할 때 그 성과를 나누기는 쉽지만 성장의 한계에 직면한 상황에서 복지국가가 과연 대안이 될 수 있을까. “비판에 근거가 없다. 성장을 해야 복지국가 된다? 그건 어디서 나온 이야기인가. 성장 안 할 건가. 기름 없이 살 건가. 성장을 지상명령으로 존속시키는 것 경계해야겠지만, 막연하게 반 성장주의를 외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없다. 성장주의에서 빠져나오는 것과 복지국가를 동시에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뉴레프트들은 생활 속의 식민화를 이야기하면서 국가가 감 놔라 배 놔라 해서는 안 된다고 하는데, 그것도 배부른 소리다. 국가가 나서지 않으면 자유로워지나. 오히려 시장의 노예가 되지 않을까. 복지국가는 내 인생의 주인이 되고 싶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 쌍용자동차나 유성기업, 한진중공업 등의 노동 현장을 돌아보면 복지국가라는 것도 공상적 유토피아 같다. 당장 죽음이 문밖에 있는 사람들에게 너무 먼 이야기처럼 들리지 않겠나. “좌파들 가운데서는 노동 없이 복지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과거 민주노동당 종북 세력들은 심지어 평화 없이는 복지 없다는 말도 하더라. 군축을 해서 그걸로 복지 예산을 만든다고? 그런 이야기 들으면 답답하다. 국가의 개입은 반드시 필요하다. 복지국가라는 게 완전고용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시장에 유효적절하게 개입해야 한다. 비정규직과 무더기 해고를 방치하면서 복지국가로 갈 수는 없다. 노동도 물론 중요하다. 최장집 교수 같은 사람은 진보진영에서 선봉에서 서라고 말한다. 물론 진보진영에서 나서서 정권을 바꾸고 노동자들이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면 얼마나 좋겠나. 그건 당연한 거고 내가 말하고 싶은 건 그 좋은 세상을만들기 위해 뭘 해야 하는가다. 그냥 좋은 세상 올 때까지 기다릴 건가. 노동자들이 권력을 잡을 때까지 우리는 뭘 할 수 있나. 기본소득 쟁취? 그게 답이 되나. 눈물을 흘리면서 그날을 염원하면 되나. 더 나은 세상을 꿈꾼다면 더 나은 세상을 상상해야 한다. 그 현실적인 대안, 공상적인 유토피아가 아닌 잠정적 유토피아가 복지국가라고 나는 생각한다.”

노동자들이 세탁기와 자동차, 아파트, 별장을 갖게 된다고 해서 사회의 경제적 권력 구조가 바뀌지 않는다. 그래서 비그포르스는 소득의 재분배가 아니라 사회적 권력의 재분배를 목표로 했다. 계급 차별이 사라지고 생산과 소비 모두에서 노동자들의 주체로 서는 세상이 비그포르스가 꿈꿨던 사회민주주의의 이상이었다. 홍 소장은 “다음으로 설정해야 할 목표는 아래로부터의 경제 민주화를 통해 소유권이라고 하는 자본의 근본적 권력을 노동자들이 사회로 빼앗아 오는 것”이라는 결론을 끌어낸다. 

- 잠정적 유토피아를 앞당기기 위해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뭐가 있나.  “쿨하고 재미있는 것만 할 수는 없다. 지루한 것도 해야 한다. 그런 거 하는 게 정당 아닌가. 토론하고 실천적 대안을 끌어내야 한다. 국민들 의식을 바꿔야 한다. 우리 진보정당은 뭘 하고 있나. 유권자들이 싫어할 것 같은 이야기를 쉽게 꺼내지 못한다. 우선은 세금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것부터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더 내고 더 받자는 운동을 해보려고 한다. 스마트폰 앱 같은 걸 만들어서 내 연봉이 얼마인데 세금을 얼마 더 내면 얼마나 혜택을 받게 되는지를 시뮬레이션해서 쉽게 보여주는 방식을 고민하고 있다. 강 바닥 뒤집는 돈 4분의 1이면 무상보육도 할 수 있다. 지난해 이야기 나왔던 건강보험 1만원 더 내기 운동도 좋다. 복지의 체험을 조금씩 늘려가면서 기대수준을 높여가고 정치권을 압박해 변화를 끌어내자는 전략이다. 올해 총선과 대선이 중요한 국면이 될 거라고 본다. 말로만 복지를 떠들 게 아니라 잠정적 유토피아의 구체적인 청사진을 만드는 정당을 지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