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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4월 24일 화요일

“맥쿼리가 MB 회사? DJ·노무현 때 민영화 원죄부터 털어라”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2-04-24일자 기사 '“맥쿼리가 MB 회사? DJ·노무현 때 민영화 원죄부터 털어라”'를 퍼왔습니다.
[인터뷰] 오건호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연구실장… “수서KTX는 황금독점이다”

수서발 KTX 민영화와 서울지하철 9호선의 기습적인 요금인상으로 민영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우선 크게 두 갈래다. 일부 대기업에 대한 특혜 의혹이 제기되는 한편, 임기 10개월을 앞둔 이명박 대통령의 ‘꼼수’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맥쿼리’라는 회사는 ‘이명박’과 연관검색어에 오르며 일종의 ‘음모’를 꾸며 온 당사자로 지목된다. ‘경쟁체제 도입이지 민영화가 아니’라는 정부의 뻔한 거짓말도 반대 여론에 한몫 하고 있다.
오건호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연구실장은 민영화를 “공공서비스를 수익경영의 대상으로 전환시키는 것”으로 정의했다. 국가 재산을 사익 추구의 대상으로 전락시킨다는 뜻이다. 시민들은 이 지점에서 어떤 ‘익숙함’을 느꼈는지도 모른다. 오 실장은 “(민영화에 대해) 국민들이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가 된 건 분명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 역시도 정부의 ‘꼼수’를 지적했다. 수서발 KTX의 경우, 정부의 설명과는 정반대로 ‘경쟁체제 도입은 아닌데, 민영화는 맞다’는 것이다. 특혜 가능성도 언급했다. 오 실장은 “우리나라 교통정책 계획에 따르면, 수서는 앞으로 수도권의 교통허브”라며 “황금독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특혜’와 ‘꼼수’가 아니더라도, 민영화에 반대할 이유는 얼마든지 있다는 게 오 실장의 설명이다. 그는 소비자를 ‘봉’ 취급하는 이동통신 시장을 예로 들었다. KT가 민영화되지 않고 공기업으로 남아있었다면, 훨씬 공익적인 방향으로 시장이 형성됐을 거란 이야기다.
때 아닌 ‘중도-진보’ 논쟁을 벌이고 있는 민주당에 대한 ‘쓴 소리’도 이어졌다. 오 실장은 “민주당은 반MB 프레임에 걸려 있다”며 “만약 민주당이 좀 더 진보적인 방향으로 나서자고 한다면 지금은 굉장히 좋은 기회”라고 지적했다. 다음은 23일 그와의 전화인터뷰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최근 국토부가 수서발 KTX에 경쟁체제를 도입하겠다고 밝히면서 ‘민영화’가 다시 논란으로 떠오르고 있다. 국토부는 일단 민영화가 아니라는 입장인데.
“민영화에 대한 정의 문젠데, 정부는 소유권을 이전하는 게 아니어서, 철도공사를 파는 게 아니고 운영만 하게 하는 거니까 민영화가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공공서비스 운영 과정에서 민간자본이 참여해서 수익을 올리면 그게 바로 민영화다. 20세기에는 매각 방식이 주를 이뤘는데, 매각은 이미 대부분 했고 이제는 소유권은 국가가 갖되 운영을 민간에 주고 그 과정에서 수익을 얻으라고 하는 쪽으로 (민영화 기조가) 바뀌었다. 수서발 KTX 역시 민영화다. 당연히 민영화라는 건 곧 경쟁체제를 도입하는 거다. 민영화와 경쟁체제는 하나의 논리인데, 정부는 자꾸 이걸 두 개로 분리하려고 한다.
예를 들어 통신의 경우 SK텔레콤도 있고 LG도 있고, 여러 경쟁업체가 있다. 경쟁체제다. 그런데 문제는 KTX는 경쟁체제가 형성되지 않는다는 거다. 똑같이 서울역에서 출발해야 경쟁이 되는 건데 이쪽은 수서에서 출발하고 저쪽은 서울역에서 출발한다. 강남에 계신 분들은 수서로 가고 강북은 서울역으로 간다. 이건 경쟁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다른 산업과는 달리 철도는 지역별 독점체제이기 때문에 경쟁체제가 형성되지 않는다는 게 정설이다. 뒤 열차가 앞 열차를 따라 잡을 수도 없는 것 아닌가. 또 철도기술이라는 게 대부분 표준화가 되어 있다. 회사가 다르더라도 중앙 관제소에서 통제하기 때문에 굳이 회사 간 차이가 있다면 객실서비스 정도다. 이것도 서울역에서 같이 출발할 때 경쟁이 발생하는 건데. 그게 아니다. 보통은 경쟁체제 도입을 위해서 민영화를 하는데 이건 사기업에 운영을 맡기기 때문에 민영화인 반면, 오히려 경쟁체제는 형성되지 않는다. 정부 설명과는 정반대다. 더구나 우리나라 교통정책 계획에 따르면, 수서는 앞으로 수도권의 교통허브다. 앞으로 시민들이 수서로 가서 열차를 탈 수밖에 없게 될 것이기 때문에 완전 독점이다. 황금 독점.”


▲ 지난 2월4일 오후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KTX 민영화 저지 및 철도공공성 강화 철도노동자 1차 총력 결의대회'에서 철도노조의 한 조합원이 KTX민영화 반대 피켓을 들고 있다. ⓒ철도노조

-정부는 ‘효율’을 내세우면서 다양한 방면에서 적극적으로 공공기관 민영화를 선전해 왔다. 공공기관의 비효율성, 방만한 경영 등은 거의 ‘상식’으로 자리 잡은 측면도 있다. 사실 일부 그런 사례들이 있는 것 아닌가.
“철도공사가 비효율적이라면 어디가 비효율적인지 정부는 얘기해야 한다. 인건비 높다는 거 하나다. 일반 시민들 중에서는 동의하는 분도 있을 수 있다. 보기에 따라서 높을 수도 있으니까. 그러나 공공기관 노동자의 임금수준 논의는 민영화와는 별도의 논의다. 노동자들 임금 낮추기 위해 민영화 한다는 건 좀 우습지 않나. 민영화를 하는 이유 중에서 경쟁에 의한 효율 강화라는 측면이 있을 수는 있는데 말씀드렸듯 KTX는 경쟁이 아니라 그건 성립할 수가 없다. 결국 국토부 사람들하고 얘기하면 꼭 끝에 임금 이야기가 나오더라. 그럼 민영화 얘기가 아니고 차라리 철도노동자 임금 깎겠다고 솔직히 말하는 편이 낫다.”
-민영화가 사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닌데. 민영화의 핵심이 뭐라고 보나.
“공공서비스를 수익경영의 대상으로 전환시키는 거다. 그건 소유권 이전의 방식도 있고, 운영권만 주는 방식도 있다. 서울지하철 9초선도 마찬가지다. 소유권은 서울시에 있다. 9호선주식회사에 30년간 운영을 맡겼다. 정부논리에 의하면 이것도 민영화가 아니다.”
-IMF 이후 공공기관 민영화가 일부 불가피했던 측면이 있던 것 아닌가.
“당시 급박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IMF 구제금융을 받으면서 4대 부문 개혁을 했다. 금융, 기업, 노동, 공공부문 개혁 등이 있었는데, 이 중 공공부문 개혁이 바로 민영화였다. 외국자본이 와서 공기업을 많이 사갔고 DJ 정부도 돈이 없으니까 민영화로 돈을 마련하려고 했다. 큰 기업 중에서는 포스코나 KT도 그 때 팔려나가고, 그 다음 순서로 있던 게 철도 가스 발전이었다. 그건 2002년도에 (발전노조의) 파업도 있고 해서 홀딩 됐다가 노무현 정부가 2003년도에 백지화 시켰다. 그래서 안 되고 있다가 갑자기 철도(KTX)가 작년 12월에 국토부 업무보고에 올라가면서 논란이 된 거다.”
-민영화된 공공기관들 중 가장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가 KT가 아닌가 싶다. 민영화 이전과 이후의 KT를 비교할 수 있을까.
“기술적으로 많이 발전했다. 우리나라가 이동통신 선진국이 됐으니까. 근데 만약 공기업이 기술적 경쟁을 같이 하면서도 요금체계나 이런 것에서 수익을 덜 내면서 공익적으로 경영을 했다면 훨씬 이용자를 많이 확보한 KT가 됐을 거라고 본다. SKT나 LG가 있더라도 KT가 공기업으로 같이 경쟁하면 된다. 그러면 지금처럼 이런 식으로 완전히 소비자가 봉이 되는 경우는 없었을 거다. 민영화된 이후 소비자들의 요금부담이 커졌다. 통신민영화도 성공적인 경우가 아닌 거다. 공기업이 있었다면 훨씬 더 공적인 방향으로 통신시장이 형성됐을 텐데, 지금은 셋 다 수익 극대화 방식으로 가고 있다. 포스코는 좀 다른 경우다. 제조업이고, 소비자들에게 직접 서비스를 제공하기 보다는 철강이라는 중간재를 생산하는 거고. 포스코의 성장은 우리나라의 경제 성장하고 연관되어 있다. 우리나라 경제가 성장하면 포스코가 크는 구조였다. 그런 면에서 포스코 자체의 힘이라기보다는 우리나라 산업발전의 수혜를 본 거다. 민영화로 성공했다? 공기업이면 망했을까. 아니라고 본다. 똑같이 독점기업으로서의 영향을 유지했을 거다.”
-민영화가 우리나라만의 ‘트렌드’는 아니었는데, 세계적으로 어떤 변화의 흐름이 있나.
“아직까지는 감지되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97·98년이 전환점이었고, 선진국에서는 그 전부터 공기업 민영화가 진행됐다. 나라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그렇게 해서 2008~2009년에 금융위기가 닥친 다음에 다시 국가의 역할이 중요시되고는 있지만, 민영화된 공기업을 다시 되돌리는 일까지는 못하고 있다. 대부분 재정위기를 겪고 있기 때문에 (다시 사들일) 돈도 없고. 수서발 KTX나 9호선처럼 운영을 민영화하는 방식, 민간투자를 끌어들이는 방식으로 대부분 민영화가 진행되고 있다. 다른 나라도 민자 방식의 민영화가 퍼져있다. 아직까지는 되돌리는 흐름이라고 보긴 어렵다.”


▲ 오건호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연구실장. ⓒ이치열 기자

-민영화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진 이유가 있을까.
“지금까지는 ‘시장’하면 무조건 ‘효율적’이라는 이데올로기가 강했다. 아마 9호선 같은 경우도 대부분의 시민들은 도시철도공사에서 운영하는 줄 알았을 거다. 그런데 (이번 논란이) ‘시장기업이 운영하면 달라지는구나’, 하고 느끼는 계기가 됐을 거라고 본다. 이번 KTX 논란도 만약 적자노선을 민영화 한다고 했으면 국민들이 꽤 찬성했을 거다. 민간기업이 효율화시킬 수 있지 않겠냐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 흑자노선, 알짜배기 노선을 민영화 하겠다고 하니까 더 반대 목소리가 나오는 측면도 있다. 어쨌든 ‘민영화의 본질이 사기업의 수익 극대화 추구’라는 것을 KTX와 9호선이 단순하고 적나라하게 보여주기 때문에 국민들이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가 된 건 분명한 것 같다. 국민들의 관심이나 비판여론이 그걸 말해주는 것 같다.”
-민주당을 비롯한 일반의 정서는 ‘이명박 정권의 꼼수’라는 측면에서 이번 논란을 보는 경향도 있는 것 같다. 특혜 의혹도 제기되는데, 어떻게 보나.
“바보 같다. 민주당은 반MB 프레임에 걸려 있다. 맥쿼리에 이상득 의원 아들이 있다고 의혹을 제기하니까, 저쪽에서 관련 없다고 해명을 했다. 그럼 더 뭐라고 할 건가? 그 걸로 꼬투리 잡는다고 해서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 누가 관련이 되든 안 되든 민간자본, 서민, 민생 이게 본질이다. 민영화 문제를 초점에 두고 파고들기 시작하면 9호선부터 다른 모든 사업자들이 다 연결된다. 굉장히 정책적으로 얘기할 수 있는 게 확장되는데, 그걸 못하고 있으니 답답한 노릇이다.”
-‘민주정부’에서 자신들이 추진했던 정책이기 때문에 그런 측면도 있지 않을까.
“그것도 맞다. 9호선이 MB 시장 때 진행된 거지만, 사실 중앙정부가 추진했던 민영화는 더 많다. 그리고 DJ, 노무현 정부 때 모두 건 건마다 다 이런 특혜가 들어가 있다. 수요예측 과대하게 하고. 지금 9호선의 보장된 수익률이 8.9%인데 DJ 때는 더 높았고 노무현 때도 그만큼 줬다. 당시 DJ나 노무현 대통령이 다 이런 시장중심의 경제효율화 정책을 썼다. 재정에 여유가 없다보니 민간투자를 활성화시킨다면서 추진했다. BTO(수익형 민자사업) 방식은 94년에 시작됐고 (당시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사회간접자본시설에 대한 민자유치촉진법’이 제정됐다.), BTL(임대형 민자사업) 방식은 2005년 노무현 정부 때 도입됐다. 노무현 정부는 당시 공공과 민간을 결합시킨다고 하면서 굉장히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따라서 (민주당에서) 이제 와서 문제가 있다고, 특혜라고 비판할 자격이 없다. 만약 비판 하려면 털어야 한다. 그런데 기본적으로 지금 민주당이 시장과 전면적으로 부딪히는 문제, 한미 FTA도 그렇지만, 기본적인 정치철학이나 정책 방향에서 갖고 있는 자기 한계가 있는 것 같다. 만약 민주당이 좀 더 진보적인 방향으로 나서자고 한다면 지금은 굉장히 좋은 건이다. 그런데 중도 강화론 이야기만 나온다.”

허완 기자 | nina@mediatoday.co.kr  

2012년 1월 22일 일요일

“무기력한 좌파들, 유토피아 말고 현실적 비전을 보여달라”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2-01-22일자 기사 '“무기력한 좌파들, 유토피아 말고 현실적 비전을 보여달라”'를 퍼왔습니다.
[인터뷰]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소장, “복지국가는 이상 아닌 최소한의 생존조건”

한나라당이 복지를 이야기하는 시대가 됐다. 민주통합당도 이에 뒤질 새라 온갖 복지 공약을 남발하고 있다. 말로만 떠드는 복지, 돈으로 해결하는 복지는 오히려 쉬운 일, 이 와중에 통합진보당은 오히려 방향을 잃고 차별화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소장의 책 “비그포르스, 복지국가와 잠정적 유토피아”가 최근 진보진영에서 화두로 떠오른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홍 소장은 무기력에 빠진 진보진영이 답답해서 이 책을 쓰게 됐다고 말했다. 홍 소장은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의 교조에 충실하다 보면 자본주의가 완전히 붕괴할 때까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면서 “좌파나 우파나 시장경제 자체를 부정해서는 안 된다는 굳건한 신념을 공유하고 있는 것 아니냐”고 반문한다. “막연한 유토피아를 그리워할 게 아니라 노동자와 근로 대중이 지금 여기에서 절박하게 여기는 여러 문제들에서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스웨덴 복지국가 시스템을 설계한 에른스트 비그포르스는 시장이 생산적이고 국가는 비효율적이라는 통념을 뒤집어 국가가 산업을 조직하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는 논리를 펼쳤다. 국가가 시장의 바깥을 떠돌게 아니라 직접 대규모 생산적 산업을 조직하고 일자리를 창출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복지국가 시스템을 떠받치는 사회적 연대가 국민들의 자발적인 합의에 의해서가 아니라 성장 기반과 물질적 안정 위에 구축됐다는 분석이 새삼스럽지만 놀랍다. 

홍 소장은 “사람들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더 나은 세상에 대한 상상력과 열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윤리적 당위를 찾아내고 그것이 현실적 희망이 될 수 있도록 과학적 해명을 결합하는 것이 잠정적 유토피아를 일궈내는 비결”이라고 설명한다. 홍 소장은 복지는 가치가 아니라 최소한의 생존 조건이라고 거듭 강조한다. 다음은 지난 6일 사루비아다방 ‘명랑한 세미나’에서 홍 소장과 토론 내용을 인터뷰 형태로 정리한 것.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소장. ⓒMBC.

- 비그포르스는 우리나라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사람이다. 왜 이 사람에게 주목하게 됐나. “좌파의 무기력함이 지긋지긋했다. 좌파 입장에서 마르크스주의를 비판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사회주의 붕괴 이후 나타난 반 자본주의와 제 3의 길, 둘 다 너무 무기력하지 않나. 그걸 뛰어넘을 매뉴얼이 잠정적 유토피아라고 생각했다. 들뢰즈다 뭐다 다 공해 아닌가. 결국 자기 잘났단 이야기지. 좌파들의 고질적인 문제다. 꿈꾸는 걸 경멸하는 걸로 자기 존재를 드러내고 자기 자신도 잘 모르는 걸 떠들면서 아무 것도 안 한다. 모여서 맨날 술만 먹는다. 그런 사람들이 10년, 20년 운동을 묶어두고 복지국가를 경멸해 왔다.”

- 복지국가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라는 건 안다. 1900년대 초반 스웨덴에서는 노동운동의 힘이 강력했고 그래서 자본가 계급을 압박해서 사회적 타협을 끌어낼 수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게 우리나라에서 스웨덴 복지국가 모델을 이해하는 방식이었다. 동유럽이 잇따라 공산권에 넘어가던 무렵이라 위협을 느꼈다는 분석도 있고. 그런데 이 책에서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는 것 같다. 이를 테면 찰츠요바덴 협약이나 노사 대타협에 의미를 두기 보다는 비그포르스라는 한 정치인의 정치적 식견과 전략을 더 부각시키고 있는데 특별한 의도가 있었나. “우리는 LO(노동조합총연맹) 이퀄(=) 스웨덴 사회민주주의라고 오해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LO가 주도적인 역할을 한 건 맞지만 정당운동을 빼고 이야기할 수 없다. 노동자들이 자본가들을 겁박해서 겨우 얻어낸 게 스웨덴 복지국가 모델이라고? 그건 오해다. 노동자들이 단결 투쟁해야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쌍용자동차를 봐라. 목숨 걸고 해도 다 깨진다. 1920년대 자본가들이 겁을 먹었으면 파시스트 깡패들을 불렀겠지. 겁 준다고 복지국가를 하겠나. 노동자 계급이 정치적 영향력을 확보했다고 보기 보다는 노동자 계급의 지지를 받는 사회민주당이 변화를 끌어냈다고 보는 게 맞다. 같은 이야기 같지만 다르다. 헤게모니를 확보하면 좀 더 유화적인 전략이 가능하다. 좌파들은 뭔가 깨부숴야 한다, 뭔가 휘두르고 투쟁해야 한다는 강박을 갖는 것 같은데, 현실적인 힘과 정치적인 힘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스웨덴에서는 건설 노동자들이 파업에 돌입하자 LO가 나서서 파업을 막기도 했다. 단위 사업장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봤기 때문이다. 노동운동이 정치권을 압박했다기 보다는 오히려 노동운동 진영이 사회민주당의 노사협조 노선에 끌려왔던 측면이 강하다. 있는 대로 싸워서 스스로 이익을 희생하기 보다는 일정 부분 양보하면서 정치적으로 더 큰 걸 끌어내는 전략이었던 셈이다. 계급적 이해관계를 넘어 연대를 끌어내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만약 우리나라에서 금속노조 중심으로 싸우는 걸로 한계가 있다고 말하면 마르크스주의자들이 기겁을 하지 않겠나. 그런데 스웨덴에서는 합리적으로 생산성을 높이고 공동의 목표를 만들자는 논의가 1920년대부터 있었다.”

- 우리나라에서도 그런 실험이 가능할 거라고 보나.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 만들었던 종합부동산세는 폐지됐고 이명박 정부 들어서는 오히려 대규모 감세를 단행하기도 했다. 노동조합 조직률은 10%도 안 되고 노동운동은 갈수록 힘을 잃고 있다. “스웨덴은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다. 1차와 2차 세계대전 때 독일이 건드리지 않았고 심지어 비그포르스는 히틀러에 협조했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비그포르스라는 선견지명 있는 정치인이 있었고 무엇보다도 스웨덴 우파가 설득됐다는 것은 국운이라고 할 수 있다. 잠정적 유토피아는 몇 가지 정책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반의 시스템과 산업, 노사문제, 복지 등등 총체적 사회상을 그려야 하는 문제다.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을 만들고 산업 구조조정에 개입하고 그런 게 진보정당이 해야 할 일 아닌가. 지금은 박근혜도 복지를 떠들고 누구나 복지를 이야기한다. 그런 막연한 수준의 복지를 말하는 게 아니다. 소박한 보통 사람들이 한에 맺힌 것, 그거라도 집단적으로 한 발자국씩 떼자, 그게 복지국가라고 생각한다.”


스웨덴 스톡홀름 시내. 맨 뒤에 보이는 건물이 스웨덴노동조합총연맹, LO본부다. 이정환 기자.

스웨덴 복지국가 모델의 작동원리를 완전고용을 창출하기 위한 공공지출 확대, 이른바 케인즈주의에서 찾는 사람들도 많지만 비그포르스는 단순히 통화정책이나 재정정책 수준을 넘어 경제구조를 근본적으로 뒤집는 일련의 개혁정책을 단행했다. 물가안정과 균형재정을 유지하면서 불황과 실업을 해결하고 성장을 견인했다는 사실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스웨덴 사회민주주의가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중간 지점의 어설픈 타협이 아니었다는 이야기다. 

- 진보진영에서는 사회민주주의나 복지국가를 타협적인 방식이라고 평가절하하는 시각이 많다. 비정규직과 실업, 소득 양극화 등의 문제를 복지국가가 해결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복지혜택을 늘리자는 데 반대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과연 그게 변화의 최종 목표가 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우선 복지국가와 노동운동은 대립적인 개념이 아니다. 노동자들이 노동자성을 자각해야 한다고? 우리나라 노동조합 가입 비율은 9% 수준이다. 이 정도 노조 조직률로 뭘 할 수 있겠나. 우리나라 중산층은 사실 고전적 의미의 노동계급이라고 보기 어렵다. 정작 진짜 노동계급은 돈도 없고 시간도 없다. 그래서 복지가 필요한 거다. 핵심은 물질적 역량이 있어야 노동운동을 살찌울 수 있다는 거다. 그래서 비그포르스도 예테보리 강령을 만든 거다.”

비그포르스의 정치 철학은 1919년에 발표한 예테보리 강령에서 실체를 드러낸다. 비그포르스는 스웨덴 사회민주주의의 근간이 된 이 강령에서 급진적인 혁명이나 거대 담론이 아니라 국가 주도의 일자리 창출과 노동시간 단축, 사회복지 확충, 은행과 보험의 사회화 등 실천적인 행동 과제들을 제시한다. 비그포르스가 내놓은 일련의 아이디어들은 마르크스주의에서 말하는 공상적 유토피아가 아니라 잠정적 유토피아의 전망을 가늠하게 했다. 


스웨덴의 복지재정 구조. 연간 최대 3천만원 이상의 세금을 내지만 그만큼 많이 돌려 받는 구조다.

- 2012년 한국 사회에서도 복지국가가 잠정적인 유토피아가 될 수 있다고 보나. “사실 복지라는 단어가 마음에 안 드는데, 영어로는 ‘walfare’라고 하지 않나. 의미를 살려서 옮기면 우리 말로 ‘안녕’ 정도가 아닐까. 안녕하게 잘 있자, 그런 게 가치가 될 수 있나. 이건 기본적인 거고 그야말로 최소한이다. 장하준 교수의 표현을 빌리자면 복지는 구성원들이 살아가면서 필요한 걸 공동구매하자는 거다. 다시 말하면 구성원 모두의 기회를 극대화하는 방법이 복지라는 거다. 부잣집 애들에게 무상급식을 할 필요가 있느냐고 하는데 복지는 소득보전의 차원이 아니라 생로병사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돈이 없어서 애를 못 낳거나 학교를 못 가거나 병원에 못 가거나 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는 거다. 나라살림의 계획을 세울 때 제발 이 정도는 머니게임에서 빼내오자는 거다. 복지로 잘 살 생각하지 마라. 기본 원칙은 인간 존재의 밑둥은 상품이 아니라는 거다. 사람이 시장에서 상품이 돼서는 안 된다는 거다. 보편적 복지는 체첸 독립과 별개다. 이게 무슨 말이냐고? 세상의 수많은 모순을 복지국가로 해결할 수는 없다는 말이다. 그런 문제들과 무관하게 복지는 필요하다는 말이다.“

- 복지국가도 결국 경제성장 없이는 불가능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경제가 성장할 때 그 성과를 나누기는 쉽지만 성장의 한계에 직면한 상황에서 복지국가가 과연 대안이 될 수 있을까. “비판에 근거가 없다. 성장을 해야 복지국가 된다? 그건 어디서 나온 이야기인가. 성장 안 할 건가. 기름 없이 살 건가. 성장을 지상명령으로 존속시키는 것 경계해야겠지만, 막연하게 반 성장주의를 외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없다. 성장주의에서 빠져나오는 것과 복지국가를 동시에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뉴레프트들은 생활 속의 식민화를 이야기하면서 국가가 감 놔라 배 놔라 해서는 안 된다고 하는데, 그것도 배부른 소리다. 국가가 나서지 않으면 자유로워지나. 오히려 시장의 노예가 되지 않을까. 복지국가는 내 인생의 주인이 되고 싶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 쌍용자동차나 유성기업, 한진중공업 등의 노동 현장을 돌아보면 복지국가라는 것도 공상적 유토피아 같다. 당장 죽음이 문밖에 있는 사람들에게 너무 먼 이야기처럼 들리지 않겠나. “좌파들 가운데서는 노동 없이 복지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과거 민주노동당 종북 세력들은 심지어 평화 없이는 복지 없다는 말도 하더라. 군축을 해서 그걸로 복지 예산을 만든다고? 그런 이야기 들으면 답답하다. 국가의 개입은 반드시 필요하다. 복지국가라는 게 완전고용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시장에 유효적절하게 개입해야 한다. 비정규직과 무더기 해고를 방치하면서 복지국가로 갈 수는 없다. 노동도 물론 중요하다. 최장집 교수 같은 사람은 진보진영에서 선봉에서 서라고 말한다. 물론 진보진영에서 나서서 정권을 바꾸고 노동자들이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면 얼마나 좋겠나. 그건 당연한 거고 내가 말하고 싶은 건 그 좋은 세상을만들기 위해 뭘 해야 하는가다. 그냥 좋은 세상 올 때까지 기다릴 건가. 노동자들이 권력을 잡을 때까지 우리는 뭘 할 수 있나. 기본소득 쟁취? 그게 답이 되나. 눈물을 흘리면서 그날을 염원하면 되나. 더 나은 세상을 꿈꾼다면 더 나은 세상을 상상해야 한다. 그 현실적인 대안, 공상적인 유토피아가 아닌 잠정적 유토피아가 복지국가라고 나는 생각한다.”

노동자들이 세탁기와 자동차, 아파트, 별장을 갖게 된다고 해서 사회의 경제적 권력 구조가 바뀌지 않는다. 그래서 비그포르스는 소득의 재분배가 아니라 사회적 권력의 재분배를 목표로 했다. 계급 차별이 사라지고 생산과 소비 모두에서 노동자들의 주체로 서는 세상이 비그포르스가 꿈꿨던 사회민주주의의 이상이었다. 홍 소장은 “다음으로 설정해야 할 목표는 아래로부터의 경제 민주화를 통해 소유권이라고 하는 자본의 근본적 권력을 노동자들이 사회로 빼앗아 오는 것”이라는 결론을 끌어낸다. 

- 잠정적 유토피아를 앞당기기 위해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뭐가 있나.  “쿨하고 재미있는 것만 할 수는 없다. 지루한 것도 해야 한다. 그런 거 하는 게 정당 아닌가. 토론하고 실천적 대안을 끌어내야 한다. 국민들 의식을 바꿔야 한다. 우리 진보정당은 뭘 하고 있나. 유권자들이 싫어할 것 같은 이야기를 쉽게 꺼내지 못한다. 우선은 세금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것부터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더 내고 더 받자는 운동을 해보려고 한다. 스마트폰 앱 같은 걸 만들어서 내 연봉이 얼마인데 세금을 얼마 더 내면 얼마나 혜택을 받게 되는지를 시뮬레이션해서 쉽게 보여주는 방식을 고민하고 있다. 강 바닥 뒤집는 돈 4분의 1이면 무상보육도 할 수 있다. 지난해 이야기 나왔던 건강보험 1만원 더 내기 운동도 좋다. 복지의 체험을 조금씩 늘려가면서 기대수준을 높여가고 정치권을 압박해 변화를 끌어내자는 전략이다. 올해 총선과 대선이 중요한 국면이 될 거라고 본다. 말로만 복지를 떠들 게 아니라 잠정적 유토피아의 구체적인 청사진을 만드는 정당을 지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