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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2월 16일 일요일

박근혜를 움직이는 ‘환관권력’


이글은 한겨레21 2912-12-17일자 제940호 기사 '박근혜를 움직이는 ‘환관권력’'을 퍼왔습니다.
[표지이야기] ‘정치 투신’ 때부터 함께해온 네 명의 비서진, 절대적 ‘문고리 권력’ 형성… ‘대통령 박근혜’는 비선 통해 ‘민간인 사찰’한 MB와 얼마나 다를까

대통령은 불안했다. 신뢰할 수 있는, 그리고 필요하다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수족이 필요했다. 공식적인 계통과 체계를 뛰어넘는, 측근들의 친위 조직은 그렇게 탄생했다. 비법과 탈법, 위법의 경계를 넘나들며 정적의 뒤를 밟고 약점을 캤다. ‘충성’이라는 이름 아래 뭉쳤지만, 비밀을 비밀의 영역에 가두려고 검은돈을 주고받았다. 세상에 그 실체가 드러난 순간, 아슬아슬하게 유지돼온 권력의 정당성도 함께 무너졌다.
이 대선을 코앞에 둔 시점에 가장 유력한 대선 후보인 박근혜의 측근 리더십을 다시 주목한 것도 마찬가지 이유다. 희끄무레한 장막을 걷어내고 그 리더십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조망하고자 했다. 여러 차례 ‘문고리 권력’으로 지목돼온 보좌진들과, 그 실체가 여전히 드러나지 않는 ‘그림자 실세’의 이야기를 추적했다. 물음표는, 여전히 물음표로 남아 있다. 판단은 12월19일 투표장으로 향할 유권자의 몫일 것이다. _편집자

»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1998년 국회에 입성한 이후 4명의 보좌진들은 늘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그를 보좌해왔다. 2007년 11월2일 국정감사 도중 박 후보가 안봉근 비서관(왼쪽)에게 지시를 내리고 있다. 뉴시스

이재만(46)·이춘상(47) 보좌관, 정호성(43)·안봉근(46) 비서관은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대구 달성 국회의원으로 당선돼 정치에 투신한 1998년부터 한결같이 박 후보를 보좌해왔다, 그러나 이들의 구체적인 신상은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 박 후보의 수행을 도맡아온 안봉근 비서관 정도가 비교적 언론과의 접촉 면이 넓은 편이지만 그가 보좌진에 합류한 계기에 대해서는 당내에서도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

유력한 대선 후보로서의 오늘을 가능케 한, ‘박정희의 딸’이라는 정치적 유산은 단지 상징의 영역에 머무르지 않는다. 아버지의 측근 아들의 지역구와, 그의 보좌진도 함께 물려받았다.
물려받은 지역구에 따라온 비서관

(한겨레21)의 취재 결과 안 비서관은 박 후보가 대구 달성군에서 당선되기 전에도 지역구 보좌진으로 활동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달성군의 역사는 18대 대선을 코앞에 둔 현재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달성은 원래 쌍용그룹 창업자인 김성곤 전 명예회장의 지역구였다. 김 전 회장은 공화당의 재정위원장까지 지낸 ‘박정희의 오른팔’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김 전 회장이 김진만·길재호·백남억 등과 함께 공화당의 ‘4인방’으로 통했다는 점이다. 40년 세월을 거슬러 박근혜 후보 주변에서 다시 ‘4인방’이 회자되는 건 단지 우연일까. 김 전 회장은 야당이 제출한 오치성 내무부 장관 해임 건의안을 박정희 대통령의 뜻을 거스르고 통과시킨 1971년 10월2일 이른바 ‘항명 파동’으로 정계를 은퇴하게 된다. 공화당 내부의 권력다툼이 원인이었다. 오 장관은 김종필 당시 국무총리의 측근으로, 김 전 총리는 4인방의 움직임을 미리 포착했지만 정적을 제거할 수 있는 기회라고 보고 별다른 조처를 취하지 않았다는 게 정설이다. 항명을 주도한 실세들, 특히 김성곤 전 회장은 당시 중앙정보부로 끌려가 고문과 구타를 당했다. 그의 트레이드마크였던 콧수염을 조사관이 뜯어버렸다는 이야기까지 돌았다. 정치권에 오랫동안 회자되는 이 ‘항명 파동’은 측근까지도 잔인하게 짓밟는 박정희 정권의 냉혹함을 잘 보여주는 사례로 통한다.
김 전 회장이 정계를 떠난 뒤 달성 지역구는 박준규(공화당)·김종기(민정당)·구자춘(민자당) 등이 돌아가며 차지했다. 김 전 회장의 아들인 김석원 회장이 달성에서 당선된 것은 1996년의 일이다. 안봉근 비서관은 이 시절 김 회장의 지역구 활동을 보좌했다. 지역구와 쌍용그룹 내부 사정을 잘 아는 한 인사에 따르면, 안 비서관은 지역구에서 김석원 회장을 도운 것은 사실이지만 정식으로 등록할 수 있는 법정보좌관이나 비서관 수가 적었기 때문에 쌍용 계열사에 적을 두고 월급을 받으면서 일은 지역구에서 했다고 한다. 그동안 당 안팎에서 안 비서관이 ‘쌍용 계열사 출신’이라고 알려지게 된 배경이다.
1996년 국회에 입성한 김 회장은 1998년 2월 의원직을 던지고 그룹 경영 일선으로 복귀한다. 그리고 두 달 뒤 치러진 보궐선거에서 ‘정치인 박근혜’가 탄생한다. 유력한 대선 후보로서의 오늘을 가능케한, ‘박정희의 딸’이라는 정치적 유산은 단지 상징의 영역에 머무르지 않는다. 아버지의 측근 아들의 지역구와, 그의 보좌진도 함께 물려받았다. 이후 박 후보의 15년 동안의 정치 여정은 온전히 ‘아버지의 복권’을 위한 것이었다. 정치인 박근혜의 시선이 늘 ‘과거’에 머물러 있는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인지 모른다.

지난 10월에는 이들의 퇴진 문제가 공개적으로 거론되기도 했다. 전 비상대책위원 등은 친박 핵심 의원들의 2선 후퇴와 함께 “박근혜 후보의 일정과 메시지를 담당한 박 후보의 보좌진이 오늘의 사태에 상당한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주장 했다.
MB 견제로 4명과만 만나게 돼

안 비서관뿐 아니라 다른 세 명의 보좌진도 이때부터 박근혜 의원실에 합류해 최측근에서 활동해왔다. 한양대 경영학과에서 석·박사를 마친 뒤 의원실에 합류한 이재만 보좌관이 같은 과 예종석 교수의 제자라는 점도 새롭게 밝혀진 사실이다. 예 교수는 정치권의 원로로 잘 알려진 예춘호 전 한국사회과학연구소 이사장의 아들로, 아름다운재단 이사장도 맡고 있다. 박 후보의 정책을 담당하고 있는 이 보좌관은 예 교수의 제자 모임인 ‘예우회’에서도 중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한다. 정호성 비서관은 ‘4인방’ 가운데 나이는 가장 어리지만 정무와 기획, 후보의 메시지를 담당해 사실상 의원실에서 가장 중점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게 당 안팎의 공통적 관측이다. 해병대 출신인 정 비서관은 고려대 노어노문학과를 졸업했다.
박 후보의 강원도 유세를 수행하다 12월2일 급작스러운 교통사고로 사망한 이춘상 보좌관도 해병대 장교 출신으로, 대일고등학교·단국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한 뒤 의원실에 들어오기 전까지 한 전문대학 교수로 재직했다. 전공을 살린 인터넷·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팬클럽 관리 등의 업무뿐 아니라 박정희·육영수 기념사업회의 활동과 박 후보의 후원금 관리도 도맡아 챙겨온 것으로 전해진다. 그의 인터넷 메신저 대화명은 ‘섬기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배신’에 대한 트라우마에서 자유롭지 못한 박 후보다. 십수 년 동안 같은자리에서 자신을 보좌해온 측근의, 그것도 대선을 코앞에 둔 상황에서의 비극적인 죽음 앞에서 박 후보는 여러 차례 눈물을 보였다.
이들의 역할에 대한 내부 평가는 엇갈린다. “비서진들이 박근혜의 눈과 귀를 가린 일종의 문고리 권력으로 행세하고 있다”는 비판과 “그저 한 자리에서 오랜 기간 일해온 실무진일 뿐”이라는 항변이 충돌했다. 지난 10월에는 이들의 퇴진 문제가 공개적으로 거론되기도 했다. 김세연·이상돈·이준석 전 비상대책위원 등이 당시 성명에서 최경환·이한구 의원 등 친박 핵심 의원들의 2선 후퇴와 함께 “박근혜 후보의 일정과 메시지를 담당한 박 후보의 보좌진이 오늘의 사태에 상당한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들도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당과 정치권 안팎에선 ‘4천왕’ ‘환관 권력’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실제 박 후보에 대한 이들 보좌진의 영향력은 어느 정도일까. 2007년 경선 캠프에서 활동했던 새누리당의 한 고위 관계자는 “2007년의 4인방과 2012년의 4인방은 전혀 다르다”며 이렇게 설명했다. “2007년에도 비서진들은 박 후보에게 들어가는 정보의 핵심 관문이긴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문고리 권력으로 지목될 정도는 아니었어요.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되고 나서 박 후보는 점점 고립됐습니다. 가까운 친박 의원들도 만날 수 없었어요. 혹시라도 뭔가 꾸미고 있는 게 아니냐는 (친이계의) 시선 때문이기도 했고, 말이 외부로 퍼질까봐 두렵기도 했겠죠. 그러다 보니 박 후보가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는 4명의 비서진이 사실상 전부였습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났습니다. 특히 정무적 역할을 담당해온 정호성 비서관의 영향력은 몇 년 동안 너무 커져버렸습니다. 매일 박 후보와 1시간 이상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으니까요. 특별한 계기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런 오랜 과정을 통해서 비서진들이 박 후보에게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 겁니다.”

» 공식적인 계통과 체계를 뛰어넘는 비선 측근 조직의 폐단은 이명박 정부의 민간인 사찰 파동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전국언론노동조합 조합원들이 지난 4월2일 청와대 인근에 있는 서울 종로구 청운동 주민센터 앞에서 불법 사찰을 규탄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한겨레 이정아 기자

박 후보 대권 플랜의 막후 실력자 정윤회

‘4인방’의 전횡을 거론할 때 늘 함께 등장하는 인물이 있다. 바로 박근혜 후보의 오랜 측근으로 알려진 정윤회씨다. 정씨는 박 후보의 젊은 시절 비화에 자주 등장하는 최태민 목사의 딸 최순실씨의 남편이다. 정씨는 박 후보의 입법보좌관을 끝으로 공식적으로 여의도를 떠난 뒤에도 꾸준히 박 후보의 ‘실세’로 지목돼왔다. 2007년 박근혜 캠프 공보라인 특보로 일했던 관계자가 당시 대선 이후 익명으로 한 인터넷 게시판에 올린 글은 ‘4인방’과 정윤회씨의 관계를 드러내는 단서가 된다. 그는 이 글에서 측근 보좌진들과 정씨의 실명을 두루 거론한 뒤 이들의 전횡을 경선 패배의 핵심 요인으로 꼽으며 이렇게 썼다. “박 대표 핵심 보좌진들이 삼성동을 빈번히 왕래하며 협의하는 것은 물론, 이들이 정윤회씨를 만나고 온 후 캠프 내에서 공론이 모아진 부분이 180도 다른 방향으로 결론이 나는 것을 보며 ‘삼성동 캠프’의 위력을 실감했습니다. 진정으로 박근혜 대표가 차기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청와대에 입성하기 위해서는 읍참마속의 심정으로 보좌진을 완전히 새롭게 갖추고 삼성동 캠프에 대해서는 해체 혹은 정치 개입을 엄단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2012년 박근혜의 청와대 입성을 위한 첫 번째 시험대가 될 것입니다.”
‘4인방’이 당시 박 후보와 정윤회씨 사이에서 일종의 메신저 역할을 했다는 점을 캠프 내부 관계자가 거론한 것으로, 그가 언급한 ‘삼성동’ 혹은 ‘삼성동 캠프’란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위치한 박 후보의 자택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당시에도 정치권에선 “정윤회가 삼성동 자택을 수시로 드나든다” “공식적인 라인이 아니라 자택에서 이뤄지는 비선 조직의 회동이 박근혜의 실질적인 정치적 지도부”라는 뒷말이 무성했다.
이 밖에도 정씨는 ‘논현동팀’ ‘강남팀’ 등의 비선 조직을 이끌며 박 후보의 대권 플랜을 이끌어온 막후 실력자라는 관측이 많았다. 물론 다른 시각도 있다. 새누리당의 또 다른 고위 당직자는 “박근혜·정윤회 라인은 이미 오래전에 정리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반박했다. 2007년과 올해 캠프에 모두 참여하고 있는 한 인사는 “4명의 비서진은 단지 박 후보에 대한 충성심으로 똘똘 뭉친 실무자들일 뿐”이라며 “박 후보를 쥐고 흔든다거나 배후에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이야기들은 이들에 대한 외부의 시기심에서 비롯된 오해”라고 반박했다.
수소문 끝에 이 글을 쓴 이아무개씨와 접촉할 수 있었지만 그는 끝내 구체적인 언급을 피했다. 이씨는 “당시 글은 박근혜 후보를 비방하거나 흠집 내려던 것이 아니라 문제점을 극복하고 개선해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썼다”며 “지금은 정치권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일을 하고 있고, 그 문제에 대해서는 더 이상 할 이야기가 없다”고만 밝혔다.

“충성심으로 똘똘 뭉친 실무자일 뿐” 반박도

12월19일 대선까지는 불과 10여 일밖에 남지 않았다. 박 후보는 여전히 가장 유력한 후보다. 만일 박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최측근 보좌진들과 ‘최태민의 사위’ 정윤회씨는 어떤 역할을 하게 될까. 정규적이고 공식적인 계통과 체계를 무시한, 비선 측근들을 통한 국정 운영의 문제점은 이명박 정부의 ‘민간인 사찰’ 파문을 통해 충분히 드러났다. 그러므로 이렇게 물어야 한다. ‘대통령 박근혜’의 길은 과연 얼마나 다를까?

송호균 기자 uknow@hani.co.kr·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2012년 5월 27일 일요일

“VIP께 一心으로 충성”


이글은 한겨레21 2012.05.28 제912호 기사 '“VIP께 一心으로 충성” '을 퍼왔습니다.
[초점] MB에게 불법사찰 내용 보고했다는 정황 담긴 문건들… 지원관실 간판 걸고 은밀하게 ‘VIP 보위기구’로서 ‘충성’한 영포라인

»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충성 문건’ 내용은 적나라하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여전히 나 몰라라 하고 있다. 언젠가는 드러난다.
“VIP께 一心으로 충성하는 별도 비선을 통해 총괄 지휘” “특명 사항은 VIP께 절대 충성하는 친위조직이 비선에서 총괄 지휘”.
일심, 특명, 절대 충성, 친위조직, 비선. 정상적인 민주주의국가에서는 통용될 수 없는 단어들이다. 봉건적이거나 독재의 냄새가 물씬 난다. 우리는 이런 말들을 가까이는 현재의 북한에서, 조금 멀리는 유신 시절의 박정희 군사정권에서나 들어볼 수 있었다. 그러나 VIP에 대한 조폭 같은 한마음 충성을 맹세하는 ‘충성 문건’이 작성된 것은 2008년 8월28일, 문건을 작성한 이는 나랏돈으로 월급을 받는 공무원이었다. VIP는 이명박 대통령을 칭한다.
불법사찰, 지원관실 부활의 주목적
민간인을 불법사찰한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지원관실)이 이 대통령에게 ‘비선’으로 불법사찰 내용을 보고했다는 정황이 담긴 문건이 검찰 재수사 과정에서 드러났다. 최소한 불법사찰이 이뤄지던 시점의 청와대 대통령실장들은 검찰 수사를 피할 수 없게 됐다.
진경락 전 지원관실 기획총괄과장(구속 기소)이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A4용지 4쪽짜리 문건(‘공직윤리지원관실의 업무추진 지휘체계’)에는, 지원관실이 ‘공직기강 확립’이라는 그럴듯한 간판을 내걸고 은밀하게 ‘대통령 보위기구’로서 ‘충성’을 다해왔음을 보여주는 대목이 곳곳에서 나타난다. 문건은 ‘BH(청와대) 민정비서관’이 지원관실을 지휘할 경우 “야당의 정치 공세에 전면 노출, VIP 국정 수행에 부담 가중, 표적사정·정치사찰 논란”이 있다며 지원관실을 한발 떨어진 국무총리실 아래에 두자고 제안한다. 그러면서 “운영의 묘를 살려, 통상적인 공직기강 업무는 국무총리가 지휘하되, 특명 사항은 VIP께 절대 충성하는 친위조직인 비선에서 총괄 지휘”할 것을 상신한다. VIP 보고는 ‘공직윤리지원관→BH 비선→VIP(또는 대통령실장)’로 최대한 줄여야 한다고 했다. 대통령 ‘하명·특명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의 보안을 생각한 조처로 보인다. 이 대통령에게 충성을 바칠 ‘비선’은 청와대부터 지원관실 말단 현장요원에 이르기까지 이 대통령 고향인 경북 포항과 영일 지역 출신 인사들을 일컫는 영포라인으로 채워졌다.
이명박 정부 들어 조직과 기능이 폐지됐던 지원관실은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가 있은 뒤 갑자기 부활했다. “저 많은 촛불을 누구 돈으로 샀느냐”는 대통령의 ‘의심’이 계기가 됐단다. 해당 문건이 작성된 시기는 지원관실이 다시 만들어진 직후였다. 이 문건은 민간인·정치인 등에 대한 불법사찰이 일개 공무원의 우발적 행위가 아니라 지원관실 부활의 주목적이었음을 시사한다. 진경락 전 과장이 여동생 집에 숨겨두었다가 최근 압수된 컴퓨터 하드디스크에서는 이 대통령을 비판한 여야 의원들의 동향 등을 파악한 사찰보고서 수백 건이 추가로 발견됐다. 정부 산하기관장·고위공무원들에 대해서도 “옷 벗겨야” “따라붙어서 잘라라” “확실히 정리” “날릴 수 있도록” 등의 표현을 써가며 표적 사찰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명박 정부의 ‘박정희 코스프레’
청와대는 해당 문건에 대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일축했다. 그런 ‘구상’은 했을지 몰라도 실제 시행되지는 않았다는 주장이다. 민간인 불법사찰 사실이 드러난 지 2년이 됐지만 청와대가 이와 관련한 내용을 인정한 예는 거의 없다. 대통령은 내란이나 외환의 죄가 아닌 경우에는 ‘재직 중’ 형사소추를 받지 않는다.
충성 문건이 언론에 보도된 날은 마침 5월16일이었다. 이명박 정부의 ‘박정희 코스프레’가 들통나기에 적절한 날이었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2012년 5월 17일 목요일

“비선 통해 일심으로 충성”…‘사찰 몸통=대통령’ 암시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05-16일자 기사 '“비선 통해 일심으로 충성”…‘사찰 몸통=대통령’ 암시'를 퍼왔습니다.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작성한 업무추진 지휘체계 문서

지원관실 진경락 문건 보니
 야당 정치공세 부담 줄이려
“형식적으로는 총리실 소속
특명사항 비선서 총괄지휘”


실제 지휘체계 어떻게 꾸렸나
 이영호·최종석·이인규 등
‘영포라인’ 인맥으로 채워
공기업임원·정치인 뒷조사
문건내용 거의 100% 실현

16일 공개된 국무총리실 내부 문건은 민간인 불법사찰과 증거인멸이라는 ‘국기 문란’ 사건의 진원지인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지원관실)이 이명박 대통령이 직할하는 ‘대통령 보위기구’였음을 스스로 폭로하고 있다. 문건은 “브이아이피(VIP, 대통령)께 일심으로 충성하는 별도 비선”이라는 등의 자극적인 표현을 써가며 대통령 1인을 위해 복무하는 조직임을 명확히 했다. 이 문건을 입수해 지원관실의 배후에 청와대가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한 검찰은 이명박 대통령을 포함한 청와대 인사들이 ‘정권 보위’를 위해 지원관실을 활용한 구체적인 단서를 추적중이다.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팀장 박윤해)은 김경동 전 지원관실 주무관(현 행정안전부 소속)이 가지고 있던 이동식저장장치(USB)에서 ‘공직윤리지원관실의 업무추진 지휘체계’라는 지원관실 내부 문건을 확보한 것으로 16일 확인됐다. 김 전 주무관은 장진수 전 주무관의 전임자로, 2008년 7월 지원관실 창설 때부터 서무 담당자로 일했다. 이 문건은 진경락 전 지원관실 기획총괄과장이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문건에는, 지원관실의 ‘몸통’은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이 아니라 이 대통령임을 알 수 있는 대목이 많다. 우선 지원관실을 총리실 소속으로 두면서 별도의 지휘·보고라인을 검토하는 이유로 “브이아이피 의중이 ①정확히 전달되고 ②보안을 유지하면서 ③불필요한 마찰 없이 ④밀도 높게 추진”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 대통령의 뜻에 맞춰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친위조직’으로 운영하기 위한 지휘체계를 두되, 통상적인 기구로 ‘위장’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문건에서는 총리실 소속의 지원관실이 실제로 총리의 지휘를 받을 경우 “지휘체계가 법령에 부합”한다는 점과 “야당의 정치공세와 브이아이피 부담 완화” 등을 장점으로 꼽았지만, “힘이 덜 실리고 상대적으로 브이아이피 국정철학 접목에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청와대 민정수석이 지원관실을 통제할 경우 “공직사회를 포함한 각계의 고급정보 활용”이 가능하고 “브이아이피 국정철학 구현에 더 유리”하지만, “정치인인 민정(수석)비서관이 사정기관을 동원해 정치사찰을 한다는 인식” 때문에 “표적사정 논란, 활동상 제약”이 있다고 봤다. 결국 문건에서는, “통상적인 공직기강 업무는 총리가 지휘하되, 특명사항은 브이아이피께 절대 충성하는 친위조직이 비선에서 총괄지휘”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놓았다.
또 “과거 사직동팀이 곧바로 청와대 공격루트가 되었으므로 외양을 총리실 소속으로 하고 민감한 사안은 절대 충성심이 보장돼 있는 비공식 선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대통령 하명 사건을 처리했던 과거 정권 시절의 사직동팀을, 정치적 논란 없이 세련되게 부활시키려는 의도다. 그러면서 “정부의 모든 권한은 대통령이 위임하기 때문에 정당성을 가지게 되고 형식적인 업무분장에 구애될 필요가 없으며 비선 활용은 추후 레임덕 방지를 위해서도 긴요”하다며 탈법적 운영을 정당화했다.
지원관실의 지휘체계는 실제로 문건 내용대로 구성됐다. ‘대통령에게 일심으로 충성하는 별도 비선’으로는 이 대통령과 동향인 포항 출신의 이영호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이 발탁됐고 이 비서관은 최종석 행정관, 이인규 지원관, 김충곤 점검1팀장, 김화기 팀원 등 ‘범영포라인’으로 지원관실을 꾸렸다. 지원관실을 지휘하는 조직은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실이었으므로, 이들에게 지원관실 업무추진비로 한달에 280만원이 ‘상납’된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이미 구속된 이 전 비서관, 최 전 행정관은 ‘충성심’이 검증된 대로 여전히 청와대의 관련성을 부인하고 있다고 한다.
문건에서는 지원관실 업무가 ‘고도의 보안성’이 필요해 “지휘·보고 체계 이외의 라인에서 관여하게 되면 업무 추진력이 떨어지고 보안유지가 안 되”는 만큼, “대통령실장이 민정비서실에서 (지원관실에) 자료요구 등 업무 관여를 하지 못하도록 보고라인 정리”를 해달라고 건의했다. 실제로 정동기 민정수석(2008년 6월~2009년 8월)이 지원관실 업무에 아무런 문제제기도 못하고 있다가 후임인 권재진 민정수석이 ‘보고라인 정상화’를 요구하며 이영호 비서관과 갈등을 빚었다는 일화는, 이 건의가 실제로 작동했음을 보여준다.
또 문건에서는 “전 정권 말기에 대못질한 코드인사 중 엠비(MB) 정책기조에 부응하지 못하거나 저항하는 인사에게 사표제출 유도(9월, 공기업 임원 39명)”를 ‘당면과제’로 제시하고 있다. 실제로 지원관실 직원들은 ‘감찰’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참여정부 시절 임명된 공공기관 임원들을 솎아냈고, 이 대통령을 비방하는 정치인들에 대해서는 뒷조사가 이뤄졌다. 이 대통령 1인을 위한 친위조직 역할을 해야 한다는 문건의 내용이 거의 100%에 가깝게 실현된 것이다.



이 문건을 작성한 진경락 전 과장은 사찰과 증거인멸, 특수활동비 횡령 혐의로 두 차례나 구속돼 수감중이다. 진 전 과장은 지인들에게 “내가 입을 열면 엠비가 하야해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진 전 과장은 지원관실의 ‘몸통’이 이 대통령임을 일찌감치 알고 있었던 셈이다.

김태규 기자 dokbu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