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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8월 25일 토요일

‘정당에 헌금’ 막았더니 ‘실세에 뇌물’ 터졌다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08-24일자 기사 '‘정당에 헌금’ 막았더니 ‘실세에 뇌물’ 터졌다'를 퍼왔습니다.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친박연대 비례대표 의원직을 상실한 양정례 전 의원(위)과 모친인 김순애씨가 2009년 5월18일 오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검찰에 출석하는 서청원 대표의 인사말을 들으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뉴시스

[토요판] 뉴스분석 왜?현영희 비례대표 공천 비리 의혹
▶ 새누리당 비례대표 공천 비리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부산지방검찰청이 지난 22일 현영희 의원에 대해 사전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현 의원의 구속 여부는 8월30일 국회 본회의 투표에 의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비례대표 공천을 대가로 돈을 주고받는 행위는 단순한 범죄일까, 구조적인 비리일까? 비례대표 공천 비리의 이면을 파헤쳐 본다.비례대표 국회의원을 15대 국회(1996~2000년)까지는 전국구(全國區) 의원이라고 했다. 일부 비아냥거리는 사람들은 돈전자를 써서 ‘전(錢)국구’라고도 불렀다. 돈으로 의원직을 샀다는 의미다. ‘공천헌금’, ‘특별당비’라는 말을 선거 때마다 쉽게 들을 수 있었다. 2000년 2월 선거법 개정으로 전국구 의원은 비례대표 의원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그러나 비례대표를 둘러싼 돈 잡음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고 있다. 2012년 19대 총선에서 집권여당인 새누리당에서 비례대표 공천 비리가 터졌다. 어떻게 된 것일까? 도대체 왜 비례대표 공천 비리는 사라지지 않는 것일까?

왜 옛날엔 야당에서 전국구를 팔았을까

전국구 공천헌금과 관련해 1995년 10월5일은 정치적으로 특별한 의미가 있는 날이다. 당시 김대중 국민회의 총재가 창당 한 달을 맞아 기자간담회를 하면서 전국구 공천헌금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다.“과거에는 전국구 후보에게 특별헌금을 받아 총선을 치르는 것이 불가피했다. 그러나 지금은 당 운영경비와 선거자금을 국고에서 보조하고 있기 때문에 돈을 받을 필요가 없다.”이 발언은 당시 정가에서 큰 화제가 됐다. 그 정도로 야당의 전국구 헌금은 일상화되어 있었다. 김대중 총재는 약속을 지켰을까? 다음해인 1996년 15대 4·11 총선에서 국민회의는 13명의 전국구 당선자를 냈다. 교육자 출신의 정희경,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장 출신의 박상규씨가 기호 1번과 2번이었다. 상위순번 후보들은 “총재님이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래도 우리가 돈을 좀 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술렁댔다. 그러나 결국 공천헌금을 내지 않았다. 그 이전의 공천헌금 실태는 어떠했을까?전국구 의원을 직접 해 본 사람들, 당시 당내 사정을 잘 아는 정치인들에게 물어보았다. 1992년 14대 3·24 총선에서 민주당은 전국구 후보 순번을 정하면서 ‘당선 안정권’은 30억원, ‘당선 가능권’은 15억~20억원씩의 공천헌금을 받았다. 물론 당 지도부와 영입 후보들은 예외였다. 16번 이하는 당선 가능성이 없다고 보고 돈을 받지 않았다. 그런데 선거 결과 민자당이 참패하면서 민주당은 전국구 후보 22번까지 당선되는 이변이 일어났다. 16번부터 22번까지는 ‘공짜’로 배지를 달았다.앞서 1988년 13대 4·26 총선에서 야당의 전국구 당선자는 김대중 총재의 평화민주당 16명, 김영삼 총재의 통일민주당 13명, 김종필 총재의 신민주공화당 8명이었다. 당별로, 사람별로 액수의 차이가 있지만 당선권에 든 후보들은 10억~30억원씩의 공천헌금을 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직 대통령이 재벌들 움직여
여당에 돈줄 대주던 시절
가난한 야당선 ‘전(錢)국구 장사’
당선권 후보들에 10억~30억씩
2008년에야 돈 공천 불법화

새누리당, 현영희 사건 번지자
“단순한 개인 범죄” 불끄기
일부선 “영남 공천서도
박근혜 눈치보느라 수사 안해”

이처럼 주로 야당에서 돈을 받고 전국구 자리를 팔았던 것은 당시 정치자금 사정과 깊은 관련이 있다. 여당이었던 민주정의당(민정당), 민주자유당(민자당)은 총재였던 전두환, 노태우 현직 대통령이 직접 재벌로부터 수천억원대의 정치자금을 받아서 당에 내려보냈다. 전국구 순번은 청와대에서 정했다. 여당은 전국구 장사를 할 필요가 없는 구조였다. 그러나 야당엔 돈이 없었다. 기업인이 야당에 돈을 줬다가는 국세청의 세무사찰을 받던 시절이었다. 야당으로서는 선거에 쓸 정치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전국구 의원 자리를 재력가들에게 팔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야당가의 반공개적인 전국구 공천헌금 관행에는 몇 가지 규칙이 있었다. 공천헌금을 받은 뒤 공천이 제대로 안 되면 돈을 반드시 돌려주었다. 그래야 분쟁이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 공천 신청자가 공천을 알선해 준 사람에게 많게는 10억원에서 적게는 2억~3억원까지 ‘소개료’를 주는 경우가 많았다.몇십억원씩의 돈을 내고 전국구 의원을 하려는 사람들은 대략 두 부류였다. 첫째, 돈을 내고 국회의원이 된 뒤 그 이상의 금전적 이득을 챙기려는 사람들이다. 철저한 장삿속이다. 둘째, 이왕 번 돈으로 단순히 명예를 사고 싶은 사람들도 있었다. 어느 경우든 돈을 주고 국회의원 자리를 샀다고 공공연히 떠들지는 않았다. 부끄러운 줄은 알았던 것이다.

서청원·양정례·김노식·문국현의 의원직 상실

8대 의원을 지냈던 ㅅ씨는 1992년 14대 총선에서 40억원을 내고 민주당 전국구 상위순번을 받았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당에는 18억원만 입금됐다. 중간에서 누군가 배달사고를 낸 것이다. 몇 년 뒤 ㅅ씨는 당에 문제를 제기했다. 민주당은 ㅅ씨에게 상임위원장 자리를 주고 무마했다.마찬가지로 14대에 공천헌금 30억원과 소개료 10억원을 주고 민주당 전국구 의원이 된 ㄱ씨가 있었다. ㄱ씨는 국회의원이 되면 40억원 정도는 쉽게 ‘회수’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아니었다. 돈 회수는 고사하고 사업이 아예 망하는 바람에 지금은 기원에서 바둑만 두는 신세로 전락했다.1995년에 김대중 국민회의 총재가 전격적으로 전국구 공천헌금 포기 선언을 할 수 있었던 데는 특별한 배경이 있었다. 야당의 자금사정이 급속히 호전되고 있었던 것이다.정당에 지급되는 국고보조금 규모는 정치자금법이 92년 11월, 94년 3월 두 차례 개정되면서 크게 늘기 시작했다. 92년 이전에 국고보조금은 유권자 1인당 600원씩의 ‘경상보조금’(매 4분기 분할 지급)과 300원씩의 ‘선거보조금’(전국선거가 있는 해에 추가 지급)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 돈을 각 정당에 분배하는 것이 국고보조금이다. 두 차례의 법개정으로 경상보조금과 선거보조금 계상 단가가 각각 800원씩으로 인상됐다. 전국선거가 있는 해에는 거의 두 배 가까이 국고보조금이 늘어난 것이다.당시 국민회의 자금 사정을 아는 인사는 “매달 5억~6억원이 필요했는데 1억원은 당비수입, 3억~4억원은 국고보조금, 나머지 1억~2억원은 김대중 총재가 알아서 마련해 왔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밝혔다.국고보조금 계상 단가는 2008년 2월 정치자금법 개정으로 소비자물가 변동률을 적용하기 시작했다. 2012년엔 910원까지 인상됐다.그렇지만 야당의 전국구 돈 공천 관행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특히 국고보조금을 거의 받을 수 없어 자금난에 시달리던 신생 정당이 늘 문제를 일으켰다. 2000년 총선을 앞두고 급조된 민주국민당(민국당)은 강숙자씨를 전국구 1번에 배정하고 공천헌금 30억원을 받았다. 민국당은 이 돈을 지역구 출마자 기탁금과 중앙당 비용으로 전액 사용했다.2008년 2월 공직선거법은 정당의 후보자 추천과 관련해 금품수수를 금지하는 ‘47조의 2’ 조항을 신설했다. 공천 대가 금품수수가 마침내 불법화한 것이다. 법원은 이 조항을 매우 엄격하게 적용했다.2008년 18대 4·9 총선에서 친박연대의 서청원 대표는 비례대표 1번 양정례, 3번 김노식 후보에게 모두 32억1천만원을 당에 내도록 했다. 검찰은 이들을 선거법 47조의 2 위반으로 기소했다. 당사자들은 재판에서 대여금이라고 항변했지만 법원은 공천대가 금품수수로 판단했다. 세 사람은 2009년 5월 대법원 확정판결로 나란히 의원직을 상실했다. 친박연대에서 노철래 의원은 애초 4번을 받기로 했다가 8번으로 밀렸다. 당선을 사실상 포기한 상태였는데 ‘박풍’ 덕분에 기적적으로 당선이 됐다. 8번은 당선권 밖이라 돈을 내지 않았고 그래서 기소되지도 않았다. 노 의원은 19대 총선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경기도 광주에 출마해 당선됐다. 새옹지마다.그런가 하면 18대 총선에서 창조한국당의 문국현 대표는 비례대표 후보 공천을 대가로 6억원의 당채를 저리로 발행해 금전적 이득을 취한 혐의로 2009년 10월 의원직을 잃었다.

이재영 의원이 비례 24번을 받은 경로

법원의 서슬에 놀란 탓일까? 2012년 19대 총선에서 야당의 비례대표 공천 비리는 사라졌다. 그런데 엉뚱하게 집권여당에서 사건이 터졌다.새누리당의 현영희 의원 사건은 과거 전국구 및 비례대표 공천 비리와 양상이 좀 다르다. 무엇보다 돈을 받은 주체가 정당이 아니다. 박근혜 후보는 지난 20일 후보선출 전당대회에서 기자들이 ‘공천헌금 파문’이라는 표현을 사용해서 질문하자, “당에서 받은 것이 아니므로 헌금이 아니라 개인간의 금품수수 비리 의혹”이라고 사건의 성격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다. 실제로 새누리당 비례대표 의원들이 당에 공천헌금을 냈다는 흔적은 발견되지 않고 있다. 혹시 비리가 있었다면 비례대표 순번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실세’들이 개별적으로 금품을 받은 경우라고 봐야 한다.총선 당시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은 비례대표 당선권을 대략 22번까지로 보고 매우 세심하게 관리를 했다. 대통령을 노리는 박근혜 후보가 비례대표 공천을 대가로 돈을 받았을 가능성은 없다. 그렇다고 총선 당시 사무총장이었던 권영세 전 의원이 돈을 받을 사람도 아니다. 22번 밖의 순번은 23번 현영희, 24번 이재영, 25번 신경림이었다. 24번 이재영 의원은 13대 민정당 전국구 국회의원을 지냈던 도영심씨의 아들이다. 이재영 의원이 당선권 가까이에 포진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도영심씨의 현 남편인 권정달 전 의원의 간곡한 민원이 있었다고 한다. 쉽게 말해 새누리당 비례대표 후보 선정이 조직적인 금품수수에 의해 이뤄졌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얘기다.그러나 당내엔 다른 시각도 있다. 이명박 정부 초기에 정권실세였던 새누리당의 한 의원은 “2008년 총선에서 몇몇 실세들이 돈을 받고 지역구와 비례대표 공천에 개입했지만 정권 초기라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며 “지금은 그 주체가 친박인사들로 바뀌었을 뿐 박근혜 후보의 눈치를 보는 수사기관에서 제대로 수사를 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새누리당 사정에 밝은 또다른 인사는 “집권여당 비례대표 공천은 대개 청와대에서 했는데 이명박 대통령과 청와대가 정치적으로 무너졌기 때문에 현영희 의원 사건 같은 것이 터져 나오는 것”이라며 “비례대표 공천뿐 아니라 영남 지역구 공천에 친박실세 몇 사람이 깊숙이 개입했고 돈도 챙긴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런 시각이 사실이라면 현영희 의원 사건은 대대적인 공천 비리 사건의 예고편에 불과할 수도 있다.정당이 조직적으로 공천헌금을 챙기든, 공천위원이나 당 실세들이 뇌물성 돈을 챙기든, 국민들이 보기에는 다 비슷한 공천 비리다. 정당의 공천 비리는 언제까지 계속될까? 이에 대한 해답은 정당이나 정치인들이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 차원에서 찾는 것이 빠를 수 있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이권이 있으면 돈이 몰린다. 부당한 이권이 사라지면 이를 대가로 오가는 금품도 자연히 사라진다. 정치의 영역이라고 예외일 수 없다.현직 대통령이 재벌에게 거액의 불법 정치자금을 거둬들이고, 야당은 전국구 공천 장사를 하던 1990년대까지, 공무원 세계에는 상급자에게 승진청탁 뇌물을 주던 관행이 남아 있었다. 민간영역의 부패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원청업체 임직원은 하청업체의 금품과 향응 제공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2000년대로 접어들면서 대한민국 사회 전체의 청렴도는 올라가고 있다. 정당의 비례대표 공천 장사는 거의 사라졌다. 정치인들이 개별적으로 저지르는 공천 비리 정도가 잔재로 남아 있다. 언젠가는 그 잔재도 사라져야 한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2012년 4월 26일 목요일

[사설] 이명박 정권 실세들의 비굴하고 추한 몰골들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04-25일자 사설 '[사설] 이명박 정권 실세들의 비굴하고 추한 몰골들'을 퍼왔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멘토’ ‘방통대군’ 등으로 불리며 현 정권의 실세로 군림해오던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어제 검찰에 출석해 구속영장 청구를 앞두고 있다. 그런가 하면 또다른 실세로 불리던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 역시 출국금지와 함께 가택 압수수색을 당했고 ‘영일대군’ 이상득 새누리당 의원도 조만간 검찰에 불려올 처지에 놓였다고 한다.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오는 이명박 정권 ‘실세’들의 비리에 머리가 어지러울 지경이다. 아무리 처음부터 이해관계로 맺어진 정권이라 해도 이렇게 처참하게 망가질 수 있는 것인지, 권력무상이란 말로도 이런 황당함을 표현하기에 부족하다.
파이시티에서 받은 돈을 여론조사 등 대선자금으로 썼다던 최 전 위원장은 검찰 소환을 앞두고 돌연 “얼떨결에 한 말”이라며 “개인적인 활동에 썼다”고 말을 바꿨다. 청와대가 나를 보호해줘야 한다는 말도 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그러나 오락가락하는 진술에도 불구하고 형사처벌은 피할 길이 없어 보인다. 특히 파이시티 대표 ㅇ씨한테서 서울시 등의 중요 심의를 전후해 수시로 현금뭉치를 받았고, 양아들로 불리는 정용욱씨가 파이시티 투자자 모집에 관여했다는 증언까지 나오고 있어 최 전 위원장이 이 사업에 깊숙이 관여하면서 뒤를 봐줬다는 의혹은 커지고 있다.
박 전 차관 역시 이번에는 검찰 수사망을 빠져나가기 어려워 보인다. 민간인 불법사찰과 씨앤케이 주가조작, 이국철 에스엘에스 회장 로비 사건 등 중요 비리 사건 때마다 거론됐으나 한 번도 처벌받은 적이 없다. 그러나 이번엔 그가 서울시 전 정무조정실장에게 전화해 “파이시티 사업이 어떻게 돼가는지 알아봐 달라”고 했다는 당사자의 증언이 나왔다. 어제 자택과 사무실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벌이는 등 검찰 수사가 그를 조여가는 형국이다.
이상득 의원에 대해서도 검찰이 에스엘에스 사건에서 드러난 장롱 속 7억원과 저축은행 구명청탁 관련 4억원 수수 의혹 등에 대해 형사처벌을 검토중이라고 한다. 어제는 그가 박근혜 위원장과의 만찬 자리에서 대선 경쟁자인 이재오 의원과 김문수 경기지사를 험담하며 “대선 필승”을 위한 건배를 제의했다고 한다. 그의 처지가 처지인지라 그런 낯간지러운 발언의 의미가 각별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한때나마 한 나라의 정권을 맡겠다고 나섰던 인사들의 행태치고는 참으로 추하고 비굴한 모습이 아닐 수 없다. 비리를 철저하게 응징하지 않으면 권력부패는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는 역사의 교훈을 되새겨야 할 때다.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의 ‘신들린 부패경쟁’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2-04-25일자 기사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의 ‘신들린 부패경쟁’'을 퍼왔습니다.
[뉴스분석] 이명박 정부 실세들의 몰락, 이상득 박희태 그리고 최시중…

대통령 친형이자 여권의 ‘넘버 원’ 실세로 불렸던 이상득, 여당 대표와 국회의장을 두루 거친 박희태, 대통령의 ‘멘토’이자 언론장악 논란의 핵심 당사자인 최시중 등 이명박 정권에서 권력의 정점에 서 있었던 그들이 몰락의 길을 걷고 있다.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은 각종 비리와 부패 의혹에 직면해 19대 총선에 나서지도 못했고, 박희태 전 국회의장은 한나라당 전당대회 ‘돈 봉투’ 사건으로 국회의장직에서 불명예 퇴진했다. 최근 뉴스 초점으로 떠오른 인물은 언론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동아일보 출신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이다.
수십억 원의 비리의혹 사건인 ‘파이시티’ 인허가 로비의혹의 당사자로 지목된 그는 금품수수 사실을 시인하면서 돈을 받은 이유에 대해 “2007년 대선 당시 독자적으로 여론조사나 정세 분석 등으로 많은 일을 했고 그런 관련된 일에 썼다”고 말했다.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25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 출두하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이명박 대선캠프의 핵심 실세로 통하던 그가 ‘대선자금’ 얘기를 꺼내자 정치권과 언론은 발칵 뒤집혔다. 중앙일보는 4월 24일자 1면에 라는 기사를 내보냈고, 한국일보는 이날 머리기사를 통해 라는 기사를 실었다.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자금’은 정권을 뿌리부터 흔들어 놓을 수 있는 메가톤급 사안이다. 언론은 최시중 전 위원장의 ‘대선 자금’ 발언에 대해 자신이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놓고 청와대에 자신만 당할 수 없다는 경고의 메시지를 전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대선자금’ 논란이 일파만파 번지자 최시중 전 위원장은 하루 만에 말을 바꿨다. 동아일보는 4월 25일자 1면 라는 기사에서 "돈을 받은 시점 직후가 대선이 다가오는 시절이었기 대문에 얼떨결에 '내가 독자적으로 MB(이명박 대통령) 여론조사를 하고 했거든'이라고 말했지만 이 후보 캠프의 정식 여론조사 비용으로 썼다는 게 아니다"라면서 "돈이 무슨 꼬리표가 달린 것은 아니지 않으냐. 그 시점에 내 개인적 활동을 하면서 모두  썼다"라는 최시중 전 위원장 발언을 전했다.
문제는 대통령 ‘대선자금’ 발언으로 나라를 발칵 뒤집어 놓은 뒤 ‘얼떨결에’ 얘기한 것이라고 해명한다고 정리될 성질이 아니라는 점이다. 한나라당 상임고문을 지낸 박찬종 변호사는 25일 평화방송 라디오 와 인터뷰에서 “대가성이 없다고 말하고 있는 것은 본인의 말이고 그 자금이 수수된 시점으로 봐서는 대통령 선거 직전, 직후인 것 같은데 이것은 당연히 특가법 상의 알선수재죄에 해당된다”면서 “돈을 어디에 썼는가, 그것은 사후 행위이고 받을 때의 취지, 돈 받을 때 그 사람의 위치, 그것이 알선수재죄에 해당된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현직 대통령 대선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검찰은 곤혹스러워하면서 ‘꼬리 자르기’ 수사에 나설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만, 야당이 강력히 반발하면서 상황은 심상치 않게 흐르고 있다. 박용진 민주통합당 대변인은 “검찰이 최시중 게이트를 단순 인허가 청탁비리 사건으로 축소시키고 꼬리자르기 수사로 일관하려고 한다. 검찰은 한상대 총장과 최재경 중수부장 등이 참여한 회의를 통해 ‘이번 수사는 대선자금 수사가 아니라 인허가 로비 수사’로 규정지었다고 한다. 결국 우려했던 대로 검찰이 제한적이고 속이 뻔한 겉치레 수사로 사건본질을 감추려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안개 휩싸인 청와대. ©CBS노컷뉴스

이명박 정부 검찰이 권력의 정점을 향해 제대로 된 수사를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여론의 뭇매 때문에 수사하는 시늉을 하다 정권을 둘러싼 또 다른 악재가 터질 경우 과거의 악재는 적당히 덮고 수사를 마무리하는 지금까지의 이명박 정부 악재탈출 공식을 재연할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우위영 통합진보당 대변인은 “검찰은 여론 무마용 '소환'과 '압수수색'이 국민의 의구심과 비난을 덮을 수 있을 것이라 착각해서는 안된다. 짜맞추기 수사, 꼬리자르기식의 기만적인 수사로 계속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려 한다면, 우리 국민은 검찰을 결단코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명박 정권이 위기에 빠졌을 때마다 고비를 넘길 수 있었던 배경에는 또 다른 악재가 터지면서 여론의 시선이 분산된 이유도 있지만, 언론이 적당히 물타기 해준 측면도 있다. 그러나 여권의 ‘권력지형도’ 변화와 맞물려 청와대에 대한 ‘변론 보도’는 한계가 있을 것이란 분석도 만만치 않다.
이명박 정권과 코드를 맞춰온 언론들이 청와대 변론보다는 ‘박근혜 보호’에 논조의 무게중심을 옮겨가고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이 ‘단호한 대처’를 주문하고 있다는 보도를 이어가는 이유는 정권 부패 문제가 대선가도에 악재로 비화되는 것을 차단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는 얘기다.
“이 정권 초 언론·지식인 그리고 많은 정치인이 대통령 형님은 물러나야 한다고 충고했다. 비리에 연루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통령 형제와 측근들만 소리를 듣지 않았고, 길을 보지 못했다. 그런 혜안을 지닐 만한 철학과 도덕이 없었던 것이다. 이 정권만큼은 새롭게 해보겠다는 개혁 의식이 없었다. 그저 편하게 구태의 옷을 걸치고 길을 나섰다. 실패와 감옥의 길로….”
한 전국단위 종합일간지의 4월 25일자 라는 사설의 일부이다. 해당 신문은 “정권을 소수 무(無)철학의 권력자들이 땅바닥에 굴렸다. 그러고도 서민을 위한 공정사회였단다. 이명박 정권은 역사적인 죄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주문했다.


중앙일보 4월25일자 사설.

이 정권은 개혁의식이 없었으며 감옥의 길로 가고 있고, 역사적인 죄의식을 가져야 한다면서 ‘혹평’을 쏟아낸 이 언론은 어디일까. 진보성향의 언론일까. 그렇지가 않다. 이 사설의 주인공은 중앙일보였다. 중앙일보는 4월 24일자 4면에 라는 기사를 실었고, 4월 25일자 5면에 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 
보수언론은 이명박 정권 부패의 불똥이 박근혜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에 튀지 않도록 ‘부패에 단호한 박근혜’라는 프레임 설정에 나섰지만, 여론의 동의를 구할 수 있을지는 지켜볼 대목이다.
언론에 알려진 이명박 정권 핵심 실세들의 부패 비리는 ‘빙산의 일각’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해 9월 30일 제36차 확대비서관회의에서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인 만큼 조그마한 흑점도 남기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도덕적으로 완벽하다는 정권의 핵심 실세들은 끝이 어디인지 모를 정도로 ‘신들린 부패경쟁’을 이어가고 있다. 박근혜 대선가도의 최대 걸림돌은 이명박 대통령이 될 것이라는 정치 전문가들의 예측이 점점 현실이 되고 있다는 얘기다.

류정민 기자 | dongack@media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