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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9월 15일 토요일

박정희·김일성과 짜고 유신헌법 만들었다.


이글은 프레스바이플 2012-09-14일자 기사 '박정희·김일성과 짜고 유신헌법 만들었다.'를 퍼왔습니다.
서울대 한인섭 교수 주장

한인섭 서울대 법대 교수와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가 13일 트위터를 통해 박 후보의 '유신'과 관련된 역사인식을 비판하고 나섰다.
한 교수는 "남한은 유신헌법 제정사실을 북한에 알려줬고, 북한도 그에 발맞춰 주체헌법을 제정했다. 심지어 발효일자도 같다"며 "한마디로 박정희·김일성이 독재강화를 위해 짜고친 고스톱이었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도 14일 자신의 블로그에 글을 올려 "한가지 재미있는 것은 일본에 대해서는 입에 거품을 물어가며 진정한 반성과 사과가 있어야 한다고 외치는 사람들이 독재통치의 과거에 대해서는 그냥 묻어버리고 가자는 주장을 한다"며 "나는 일제 통치가 우리 경제발전에 밑거름이 되었다는 말이 듣기 싫고, 박정희 대통령의 독재통치 때문에 경제발전을 이룰 수 있었다는 말도 듣기 싫다"고 말했다.

이계덕 기자  |  dlrpejr@hanmail.net

2012년 8월 1일 수요일

김일성 찬양하면 학점 잘줬다고? 자고 일어나니 난데없는 ‘종북교수’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07-31일자 기사 '김일성 찬양하면 학점 잘줬다고? 자고 일어나니 난데없는 ‘종북교수’'를 퍼왔습니다.

울산대 교수, 보안법 위반혐의 기소
“김일성회고록, 분단문학 자료일뿐
”과제물 평가점수 학점 10% 불과
“검찰·언론 사실 왜곡해 종북몰이”

이아무개(55) 울산대 교수는 최근 검찰과 보수언론에 의해 졸지에 ‘종북’ 교수로 낙인찍혔다. 그는 2005년부터 2010년까지 국문학사 등을 강의하면서 380여명의 수강 학생들에게 김일성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를 읽고 김상문을 써내게 했다는 혐의(국가보안법의 이적행위)로 지난 23일 불구속 기소됐다. 하지만 그는 31일 “이 사실을 검찰이 아닌 언론 보도를 통해 처음 알았다”며 “2년 전부터 지난해까지 서울경찰청에서, 지난 4월 울산지검에서 조사받은 일이 있지만 이후 아무 연락이 없어 그냥 지나간 줄 알았다”고 털어놓았다.그는 특히 검찰이 언론을 통해 “김일성을 찬양하는 감상문을 낼수록 좋은 학점을 주는 등 학점을 미끼로 학생들에게 종북행위를 했다”고 발표한 데 대해 “학점 평가방법은 과제물 10%, 중간·기말시험 80%, 출석 10%로 배점해 종합하기 때문에 과제물 점수가 종합점수를 좌우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이어 “과제물 평가도 대개 분량이나 제출 시점 등 형식적 요건의 충족 정도만 봤을 뿐 그 내용이나 종류와는 무관했다”고 덧붙였다.그는 “조정래의 (태백산맥) 등 남한의 문학작품까지 포함해 남북한의 다양한 자료 가운데 학생들이 선택해 읽고 과제물을 내도록 했고, 회고록은 이 가운데 하나였다”며 “국문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에게 우리의 언어로 된 다양한 자료를 접하도록 했던 것도 학점을 미끼로 한 종북행위냐”고 되물었다. 그는 검찰이 “수업시간에 김일성을 ‘장군님’으로 부르게 하고 김일성에 대해 비판적인 학생을 강의실 밖에 내보낸 적도 있다고 학생들이 진술했다”고 한 발표에 대해서도 “스승으로서 있지도 않고 있을 수도 없는 일로, 완전한 왜곡”이라고 항변했다.그는 “검찰이 문제삼는 자료는 분단문학사의 온전한 구도를 연구하는 학자로서 수집한 참고자료로,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충분히 용인될 수 있는 것들”이라며 “이를 이유로 처벌한다면 학문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는 설 자리가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이 교수의 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는 졸업생 박아무개씨는 “김일성을 찬양하거나 장군님으로 부르라고 시킨다고 해서 그렇게 할 대학생이 어디 있겠느냐”며 “이 교수는 수업시간에 그런 걸 시킬 분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 교수는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편하게 생각했던 교수”라며 “수업 도중 학생을 나가라고 할 분도 아니고 그런 걸 본 적도 없다”고 했다. 같은 대학의 김연민 교수(산업경영공학)는 “검찰이 기소사실을 당사자에게 알리지 않고 언론에 먼저 퍼뜨려 대학에까지 ‘종북’ 바람몰이를 하려 한다”고 지적했다.이에 대해 이태승 당시 울산지검 공안부장(현 부산지검 공안부장)은 “이 교수에 대한 기소 내용은 오랜 수사를 통해 드러난 것으로 재판 과정에서 모두 밝혀질 것”이라며 “모든 기록이 법원에 넘어갔기 때문에 법원에서 기소사실을 당사자에게 통보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신동명 기자 tms13@hani.co.kr

2012년 7월 15일 일요일

하태경은 문익환 목사의 죽음을 왜곡 말라


이글은 한겨레21 2012-07-16일자 제919호 기사 '하태경은 문익환 목사의 죽음을 왜곡 말라 '를 퍼왔습니다.
[줌인]범민련과 사이에 오간 편지를 왜곡해 “김일성이 프락치로 지목한 것에 충격받아 사망”이라 주장문 목사의 꿈은 6·15 공동선언 바탕이 되어 현재진행 중

김창수 통일맞이 정책실장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다.” E. H. 카의 에 나오는 유명한 말이다. 여기서 과거란 사실과 자료에 입각한 과거다. 흔히 말하는 ‘팩트’(fact)다.
북한이 문익환 목사를 프락치로 지목한 팩스를 보냈고, 이것이 문익환 목사 사망의 원인이라는 하태경 새누리당 의원의 주장은 팩트에 충실한 것인가? 문익환 목사가 사망한 지 18년이 되었는데 하태경 의원 때문에 그의 사인이 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 그러나 하태경 의원의 주장은 팩트에 충실하지 않다. 많은 경우 팩트에 충실하지 않으면 왜곡이 된다.

» 1989년 3월 27일 평양 주석궁에서 문익환(오른쪽) 목사가 김일성 주석에게 서울에서 가져간 (한길사 펴냄)을 전하며 ‘남북한 통일 사전’ 편찬을 제안하고 있다. 왼쪽 뒤에 서 있는 유원호씨는 그 뜻을 이어 저자 박용수씨의 후원자로 나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한겨레 자료

책에서 밝히고 언론이 수차례 인용
하태경 의원은 지난해 9월 는 책을 냈다.
“하루는 범민련 북측본부에서 팩스가 왔다. 범민련 북측본부 백인준 의장 명의로 날아온 그 팩스에는 ‘문익환 목사는 안기부 프락치다’고 명시되어 있었다.(…) 사실상 김일성의 최종 승인이 없이는 날아올 수 없는 팩스였다.(…) 결국 문 목사는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94년 1월18일 돌아가시고 말았다.”
하태경 의원이 그의 저서에서 밝힌 이 내용은 그동안 수차례 언론에 인용되었다. 하태경 의원 스스로도 총선 출마를 전후해 (조선일보) (중앙일보) (문화일보)를 비롯해 진보매체인 (오마이뉴스)에 이르기까지 많은 인터뷰를 하며 이를 여러 차례 강조했다. 그가 전향(?)한 것도 이 사건이 계기가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대문짝만하게 보도된 많은 언론 인터뷰 때문에 그의 말이 사실로 받아들여질까 염려스럽다. 하태경 의원의 발언이 사실 왜곡의 씨앗이지만 언론을 통해 잘못된 사실들이 확산되고 있다. 자칫 “99가지의 거짓과 1개의 진실을 섞으면 100%의 거짓보다 더 큰 효과를 낸다”는 나치의 선동 천재 괴벨스의 말이 통용되는 사회가 돼버릴 수 있다.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
“당시 북한은 ‘문 목사의 노선을 거부하라’는 지령과 함께 범민련 남측본부 백인준 의장 명의로 ‘문익환 목사는 안기부의 프락치’라는 팩스를 보냈고, 주사파들은 이 팩스를 전국에 전파했다.”(‘NL 핵심서 전향한 운동권 출신 탈북자 만난 후 북한 고발자로’, (주간조선) 2202호, 2012년 4월16일)
“내 입장이 크게 바뀐 계기는 문익환 목사님이 돌아가셨을 때 일 때문이다. 북한이 ‘범민련’(조국통일범민족연합)을 해체하려 한 문 목사를 안기부 프락치로 몰았다.”((오마이뉴스) 당선자 인터뷰, 2012년 5월11일)
하태경 의원의 회고에 따르면, 당시 백인준 의장 명의로 보내온 A4용지 한 장 분량의 팩스는 범민련 해외본부 임민식 사무총장이 남측본부로 보낸 형식으로, 범민련 남측준비위원회가 들어가 있던 재야단체인 민족자주통일중앙협의회(일명 민자통) 서울 종로5가 사무실로 전달됐다고 한다. 하 의원은 “북한은 팩스에서 문 목사를 범민련 해체라는 반통일 행위를 주장하는 안기부 프락치로 모는 파렴치한 행위를 했다.”(‘죽음 몰고 간 북한의 팩스 주사파가 뿌려 NL 분파 계기로’, (주간조선) 2210호, 2012년 6월11일)
“문 목사가 김일성에게 ‘범민련 해체하고 통일운동을 위해 더 크게 태어나야 한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바로 다음날 답신이 왔다. 범민련 북측본부 의장인 백인준 명의였다. ‘문익환은 안기부의 프락치, 안기부의 사주를 받아 범민련을 해체하려는 책동을 펴고 있다’는 내용이었다.”(최보식이 만난 사람 ‘임수경에게 변절자로 지목된, 하태경 새누리당 의원’, (조선일보) 인터넷판, 2012년 6월11일)

‘프락치’ 운운은 유럽 범민련에서 온 팩스

“문 목사의 편지에 대한 답신이 비록 백인준 명의로 왔지만 북 체제의 특성상 김일성에게 보고됐을 거라고 목사님은 생각하신 것 같습니다. 그런데 후에 황장엽 선생을 통해 안 일은, 문 목사님이 편지를 보냈던 1994년 당시는 모든 보고가 김정일을 통했다고 하더군요. 김정일은 김일성에게 불필요한 건 보고를 안 했다고 하고요. 그렇다면 문 목사님에게 온 답신은 김일성이 아니라 김정일의 뜻이라고 생각됩니다. 저는 문 목사님이 돌아가신 것은 김정일 때문이라고 봅니다.”(하태경 의원 인터뷰, (문화일보) 인터넷판 2012년 6월15일)

» 문익환 목사는 통일된 조국을 보지 못하고 1994년 1월18일 심근경색으로 숨을 거뒀다. 그해 1월22일 ‘겨레장’으로 치른 문 목사의 장례식 행렬이 서울 종로 대학로에서 노제를 마친 뒤 장지인 경기도 남양주군 마석 모란공원으로 향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
하태경 의원은 몇 가지 사실을 섞어서 문익환 목사는 김정일 때문에 사망했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우선 몇 가지 사실관계만 순서대로 정렬해보자.
1993년 12월10일, ‘범민련 북측본부’ 의장인 북한의 백인준 의장이 문익환 목사 앞으로 팩스를 이용한 장문의 편지를 보낸다(편지1). 백인준 의장이 문익환 목사에게 편지를 보낸 것은 문익환 목사가 1993년 범민련 남측본부를 탈퇴했기 때문이다.
문익환 목사가 1989년 평양을 방문했을 때 두 사람은 처음 만났다. 이 편지에서 백인준 의장은 문익환 목사에 대한 그리움을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 진정의 고백”이라고 말한다.
백인준 의장은 편지를 통해 범민련 탈퇴를 재고해줄 것을 요청했다. 통일운동은 남북·해외가 공동 보조를 맞춰야 하는 것인데 남한 통일운동의 대중화를 위해 범민련을 탈퇴하는 것은 남한의 지역운동이지 통일운동이 아니라는 게 백인준 의장이 편지에서 주장한 내용이다. 이 편지 어느 대목에도 ‘문익환은 안기부 프락치’라는 저급한 표현은 없다.
문익환 목사는 백인준 의장에게 보낸 답장에서 범민련 활동의 ‘합법성’을 얻으려고 “범민련 남측준비위원회는 출범과 함께 대결하는 관계에서 대화하는 관계”로 정부 당국과 관계를 설정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런 노력이 물거품이 되었고 이는 ‘범민련 한계’라고 지적했다(편지2).
백인준 의장과 문익환 목사가 주고받은 편지가 공개되자 문익환 목사가 제안한 ‘새로운 통일운동체’(이하 ‘새통체’) 결성에 대한 찬반 논란이 격렬하게 진행되었다. 문익환 목사가 김영삼 정부에 회유당했다는 음해까지 나돌기 시작했다. 새통체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배후에 안기부 프락치가 있다는 소문이 나돈 것도 그즈음부터였다. 프락치로 공공연하게 거론되었던 사람 가운데는 문익환 목사와 조성우(현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공동의장)씨가 있었다.
범민련을 탈퇴한 문익환 목사는 1994년 1월17일 밤에 범민련 북측본부 백인준 의장, 범민련 해외본부 윤이상 의장, 범민련 남측본부 강희남 준비위원장을 공동 수신인으로 한 편지를 작성해 1월18일 아침에 발송한다(편지3).
문익환 목사는 이 편지에서 “7천만 겨레의 통일 의지를 담아낼 틀을 다시 짜고, (남북·해외) 세 지역의 통일운동이 한 흐름이 될 수 있는 길 또한 진지하게 모색”해야 한다며 이에 대한 답신을 요청했다.
문익환 목사가 이 편지를 보낼 즈음 유럽 범민련에서 ‘새로운 통일운동체 건설을 주장하는 사람들 사이에 프락치가 있다’고 매도하는 충격적인 팩스가 날아온다(편지4).

마지막 시 “나는 겨레의 허기꾼 역사에 묻혀야”

문익환 목사는 유럽 범민련에서 날아온 팩스를 받고 큰 충격을 받았다. 그날 점심때 자신을 프락치라고 매도하는 편에 서 있는 사람을 만나 “내가 스파이야, 스파이야?”라고 큰 노여움을 표출했다. 그날 저녁 문익환 목사는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
하태경 의원은 이 4개의 편지를 뒤섞어 ‘문익환이 김일성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김정일의 뜻을 담아 범민련 북측본부의 백인준 이 ‘문익환은 안기부 프락치다’라는 답장을 보냈고 이에 충격을 받은 문익환이 사망했다’는 가공의 사실을 만들어냈다. 문익환 목사가 김일성에게 편지를 보낸 적이 없고, 범민련 북측본부의 백인준 의장이 ‘문익환은 안기부 프락치다’라는 답장을 보낸 적이 없다.
문익환 목사가 제기한 새로운 통일운동에 대한 논의 과정에서 국내에서는 문 목사가 프락치라는 논란이 있었고, 이런 논란은 범민련 해외본부 활동이 활발했던 일본과 유럽에서도 벌어졌다. 그 소동 속에서 유럽 범민련의 강경 교조주의자들이 새통체를 준비하는 사람들 사이에 프락치가 있다는 팩스를 보낸 것이 이른바 프락치 파동의 절정이었다. ‘김정일의 뜻’에 따라 북한 ‘백인준’이 ‘문익환은 프락치다’라는 팩스를 보냈다는 하태경 의원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팩트는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유럽 범민련에서 팩스가 왔다는 것에 대해서는 문익환 목사와 함께 평양을 방문했던 정경모씨도 증언하고 있다. 평론가 김형수씨는 (문익환 평전)에서 ‘범민련 해외본부’에서 문제의 팩스가 왔다고 기술하고 있다. ‘문익환의 통일론과 통일운동에 대한 연구’(이유나, 성균관대 사학과)라는 박사 논문에서도 마찬가지로 팩스 발신지는 범민련 해외본부라고 기술하고 있다.
하태경 의원의 주장은 팩트가 아니다. 문익환 목사의 죽음은 그에 의해 왜곡되고 있다. 새통체 준비위원장이던 박순경 교수는 문 목사 1주기 추모사에서 “운동권의 분열의 멍에를 짊어지고 목사님은 대속적인 죽음을 생각하였습니다”라고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문익환 목사는 1977년 감옥에서 단식투쟁을 하며 ‘마지막 시’를 썼다.
“나는 죽는다/ 나는 이 겨레의 허기꾼 역사에 묻혀야 한다/ 두 동강 난 이 땅에 묻히기 전에/ 나의 스승은 죽어서 산다고 그러셨지(후략).”
문익환 목사의 죽음을 왜곡하지 말고 그를 죽어서 살게 하라. 문익환 목사는 1993년 감옥에서 출감한 뒤 논쟁의 한복판에서 프락치라는 소리까지 들어가며 ‘새로운 통일운동’을 제안했다. 문익환 목사를 죽어서 살게 하는 것은 그가 새로운 통일운동을 제안한 이유를 현재 시점에서 계승·발전시키는 것이다.
문익환 목사는 1989년 평양을 방문해 김일성 주석에게 연방제를 점차적으로 하자고 제안해 동의를 받아낸다. 북한은 나중에 이를 ‘낮은 단계의 연방제’라고 불렀는데, 이는 연방제를 수정한 것으로 한국 정부에서도 긍정적으로 평가되었다. 문 목사의 방북 이후 당시 노태우 대통령은 통일 방안으로 ‘남북연합’을 발표했다(1989년 9월11일).

시대와 불화한 선구적 주장

문익환 목사는 1993년 출소 이후 범민련을 비롯한 재야단체들의 생각과 달리 국가연합을 주장했다. 문익환 목사는 ‘낮은 단계의 연방제’와 ‘국가연합’의 공통성을 간파했던 것이다. 아울러 문익환 목사는 반정부 투쟁이라는 시대적 분위기가 압도하던 당시에 남북 정부 당국의 역할을 인정하자는 주장을 하고 김영삼 대통령에게 범민족대회 초청장을 보내기도 했다. 이런 그의 선구적 주장이 시대와 불화해 그를 논쟁의 중심에 세웠다. 이 와중에 그를 프락치라고 비난하는 사람들까지 생겨났다. 그러나 문익환 목사의 주장은 2000년 6·15 공동선언에서 남북 두 정상이 남북 통일 방안의 공통성을 인정하게 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역사는 어떤 편리에 의해 끌어당겨져도 가볍게 움직이지 않는다. 역사는 많은 사람들이 살아온 삶의 누적이다. 그래서 문익환 목사는 “역사는 사는 것이다”라고 했다. 문익환 목사가 주창한 대중적 통일운동, 남북연합, 통일 준비는 오늘날 백낙청 교수가 주장하는 ‘2013년 체제 만들기’의 핵심이다. 문익환 목사의 꿈은 현재진행형이다.

2012년 6월 13일 수요일

보수언론 대표, 김정일에 “참 인간이십니다”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06-13일자 기사 '보수언론 대표, 김정일에 “참 인간이십니다”'를 퍼왔습니다.

 <동아일보> 취재단이 지난 1998년 10월 방북해 북측에 선물로 준 김일석 주석의 항일 무장 투쟁인 ‘보천보 전투’를 보도한 자사의 기사를 담은 금동판. <한겨레>자료사진

‘종북몰이’ 보수인사들 방북행적은…
‘김일성 항일투쟁 보도 금동판’ 선물도
“그 나라 지도자에 경의 표하는 건 상식” 지적도

북한이 박근혜·정몽준 의원, 김문수 경기도지사 등 새누리당 대선 경선 후보들의 친북 발언을 공개하겠다고 밝히면서 이들의 북한 방문 행적이 궁금증을 낳고 있다. 최근 ‘종북몰이’에 앞장서온 보수언론들도 북한에 선물 공세를 폈던 것으로 나타났다.
박근혜 의원은 2002년 5월11~14일 평양을 방문하는 동안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면담하고 만찬도 함께 했다. 박 의원은 또 공연을 보기 위해 김일성 주석의 생가인 만경대 부근의 학생소년궁전을 찾았고, 평양 시내가 한눈에 보이는 주체사상탑을 방문하기도 했다. 그러나 박 의원은 만경대 자체나 김 주석의 주검이 안치된 금수산궁전은 찾아가지 않았다고 밝혔다.
김문수 지사는 두 차례 북한을 방문했다. 2005년에는 다른 의원들과 함께 ‘북한 아궁이 개량 운동’ 지원 차원에서, 2008년에는 경기도가 조성한 개성시와 개풍군의 양묘장 준공식에 참석하기 위해 방문했다. 정몽준 의원은 1999년과 2000년 대한축구협회장 겸 국제축구연맹 부회장으로 방북했다. 이들 세 사람은 모두 “북한을 찬양하는 발언을 한 일이 없다”고 밝혔다.
평소 북한에 비판적이었던 보수 인사들이 방북해 북한 지도자에 대해 긍정적으로 발언한 일도 있었다. 2000년 8월 남한의 언론사 대표들이 대거 북한을 방문했을 때 한 보수언론사 대표는 김 위원장에게 “호탕하십니다”, “참인간이십니다”, “세계 그 어디에 나서셔도 단연 제일이십니다” 등의 발언을 했다고 북한의 월간지 (금수강산) 2000년 8월호가 보도한 바 있다.
1998년 10월 동아일보사 취재단은 북한을 방문해 김일성 주석의 항일무장투쟁인 ‘보천보 전투’를 보도한 (동아일보)기사를 담은 금동판을 선물했다. 또 1998년 9월 홍석현 당시 중앙일보사 사장은 김정일 위원장에게 고급시계를 선물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대학원대학교 양무진 교수는 “남의 나라를 방문해 그 나라 지도자에게 경의를 표시하고 선물을 전달하는 것은 상식적인 일”이라며 “남한의 비이성적인 종북 논란이 방북 발언이나 선물을 둘러싼 논란으로 번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규원 기자 che@hani.co.kr

2012년 3월 17일 토요일

북한, 실용위성 발사 계획…총선 변수되나


이글은 프레시안 2012-03-16일자 기사 '북한, 실용위성 발사 계획…총선 변수되나'를 퍼왔습니다.
'김일성 100년 축포'…북미협상 영향 불가피

북한이 김일성 주석의 100회 생일(4월 15일)을 맞아 '광명성 3호' 실용위성을 발사할 계획이라고 16일 밝혔다.

북한의 조선우주공간기술위원회 대변인은 이날 담화에서 "김일성 동지의 탄생 100돌을 맞으며 자체의 힘과 기술로 제작한 실용위성을 쏘아올리게 된다"며 "이번에 쏘아올리는 '광명성 3호'는 극궤도를 따라 도는 지구관측 위성으로, 운반 로켓 '은하 3호'는 평안북도 철산군 서해 위성발사장에서 남쪽 방향으로 4월 12일부터 16일 사이에 발사된다"고 밝혔다.

대변인은 "위성발사 과정에서 산생되는 운반 로켓 잔해물들이 주변 국가들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비행궤도를 안전하게 설정했다"며 "우리는 평화적인 과학기술 위성발사와 관련해 해당한 국제적 규정과 관례들을 원만히 지킬 것이며 투명성을 최대로 보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 2009년 광명성 2호 발사 장면 ⓒ연합뉴스

장거리 로켓에 통신위성을 얹어서 쏘면 위성이 되고, 탄두를 얹으면 장거리 미사일이 된다. 북한이 이번 발표에서 '실용위성'을 부각시킨 것은 군사적 목적의 미사일이 아님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4.11 총선 전 북한에 의한 안보 위협을 부각시키고자 하는 남측의 세력에 북한의 이날 발표는 '호재'가 될 것으로 보인다. 발사 예정일이 총선 다음날인 12일부터 16일 사이라는 점에서 총선의 쟁점으로 삼으려 할 가능성이 높다.

북한과 미국은 지난 2월 29일 발표에서 북한이 추가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 우라늄 농축 활동을 임시 중단하는 대가로 미국이 24만 톤의 식량을 지원하기로 했다. 그후 양국은 식량 지원을 위한 추가 협의를 했고, 북한은 미국에서 열리는 민관 공동 세미나에 리용호 외무성 부상을 보내 '2.29 합의'를 이행하겠다는 적극적인 의지를 표명해 왔다.

그같은 흐름으로 볼 때 이번 위성 발사는 대미 협상을 위한 '도발 카드'로 보기는 힘들다는 분석이다.

남측 총선과 미국과의 핵 합의 이행 과정이라는 정세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위성 발사를 밀어붙이는 것은 국내정치적 목적이 큰 것으로 보인다. 4월 예정된 조선노동당 당대표자회에서 김정은으로의 권력 승계를 마무리하고, '강성대국'으로 나아간다는 '축포'의 의미를 띤 발사라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하지만 이유야 어찌됐건 남측의 총선과 북미 핵협상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북한은 지난 1998년 8월 광명성 1호를, 2009년 4월 광명성 2호를 발사했고, 두 차례 모두 장거리 미사일이 아니라 위성이라고 주장했다. 오는 4월 3호가 발사되는 '서해위성발사장'은 평북 철산군 동창리 미사일 발사 시설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황준호 기자

2012년 2월 21일 화요일

보수우익이라면 궐기하라!


이글은 미디어스 2012-02-21일자 기사 '보수우익이라면 궐기하라!'를 퍼왔습니다.
[최경영의 서동요] 제2화

개인적으로 난 내 스스로의 이념적 정체성을 ‘보수우익’이라고 판단한다. 난 기본적으로 자본주의 원리에 반대하지 않으며 김일성이나 김정일을 박정희, 전두환과 비슷한 독재자로 본다. 내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는 자유고 민주이기 때문이다. 자유민주주의를 지탱하는 핵심적 가치가 언론의 자유니 내가 언론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악다구니를 쓰는 것은 그래서 당연하다.
언론의 자유는 인간의 자유를 뜻한다. 한 개인의 자유가 담보되지 않은 조직의 자유, 또는 조직 간부들만의 자유는 독재나 권위주의다. KBS의 사장이나 간부들이 일선 기자나 PD들에게 자신들의 편향적 정치 이념을 강요하는 것은 그래서 반민주적 작태일 뿐이다. 결국 자본주의 원리를 지지하고 북한과 같은 체제를 혐오하며 개인주의를 선호하는 난 정통 자유민주주의자다. 자유민주주의자는 이른바 ‘글로벌 스탠다드’로 보자고 해도 기껏해야 ‘보수우익’이다. 여기에 ‘좌’나 ‘빨’을 갖다 붙이기는 힘들다. 


▲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성을 보도해 명예훼손 혐의 등으로 불구속 기소된 MBC PD수첩 조능희 책임PD 등 제작진들이 2010년 1월 20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선고공판에서 5명 전원 무죄 선고를 받은 뒤 심경을 밝히고 있다.

그런데 한국사회에서 나는 ‘좌빨’로 취급된다. 한 달여전부터 시작한 트위터에서도 나를 진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KBS 새노조의 노동조합 집행부라서 그런가? 15년을 근무한 KBS의 상당수 동료들도 나를 ‘좌익’으로 본다. 우습지도 않다. 친일극우꼴통들이 정부와 시장의 권력을 독점하고 수 십여년이 흐르다보니 근대적 보수 우익 개념마저도 전복되어 버린건가? 내가 좌파면 파리가 새고 이명박은 세종대왕이다.
우리의 문제는 이렇듯 잘못된 ‘규정’에서부터 시작한다. 잘못된 ‘규정’은 왜곡된 역사로부터 연유했다. 자본주의에 대한 규정 역시 마찬가지다. 이명박 류의 사람들은 아마 자본주의가 ‘약육강식의 정글적 체제’라고 믿고 있는 듯하다. 먹고 먹히는 것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그래서 힘세고 돈 많은 자가 모든 것을 제멋대로 할 수 있는 세상이 자본주의라 여기고, 여기에 조금이라도 규제를 가하거나 변화를 주려하면 ‘좌’나 ‘빨’이라고 몰아붙이니 하는 말이다. 이 지구상에 그런 약육강식의 정글적 자본주의, 순수한 자본주의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건 너희들 머릿속에만 있는 환상이다.        자본주의의 바탕에는 자유롭게 경쟁하는 개인에 대한 믿음이 있다. 모두 자유롭게 경쟁하다보면 시장에 가장 잘 적응하는 개인들이 살아남고 이들에 의해 생산성이 높아져서 사회가 발전할 것이라고 믿는다. 문제는 이 자본주의의 전제(자유롭게 경쟁하는 개인)에 중대한 오류가 있다는 사실이다. 3백여년의 자본주의 역사에서, 아니 수 만년의 인류사에서 단 한번이라도 ‘모두 자유롭게 경쟁했던’ 시대가 있었던가?
자유롭게 경쟁하기 위해서는 ‘경쟁의 조건’이 비슷해야 한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거대한 부와 권력을 물려받았고 어떤 사람들은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태어났다. 효도르와 내가 사각링 위에 올라 아무리 피 튀기게 싸운다 한들 나로선 죽지만 않으면 다행인 것이다. 물질적으로 불평등한 권력의 현재는 타인의 자유를 억압하면서 현실화된다. 하나의 대기업이 수많은 중소기업을 갖고 놀 수 있다.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죽지 않으려면 꿇어야 한다. 경쟁이 아니라 복종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현대 자본주의에서는 독과점을 규제하지 않는 나라를 찾기 힘들다. 금융과 산업 자본을 분리하려는 노력, 중소기업을 지원하고 대기업의 담합을 처벌하는 정책들, 복지를 확대해 시민 각자가 최대한 비슷한 경쟁력을 갖춰주게 하려는 노력들이 모두 같은 이치에서 나온다. 자본주의 원리에 충실하기 위해 자유롭게 경쟁할 시스템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자본주의만이 민주주의를 지탱시킬 수 있는 유일한 체제인지는 입증되지 않았으나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여러모로 비슷한 속성을 지니고 있는 것 또한 부인하긴 힘들다. 특히 둘은 ‘인간’에 대한 전제가 닮았다. 민주주의도 자본주의와 비슷하게 ‘인간’을 상정한다. ‘자율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인간’이 각자 한 표씩의 투표권을 가지고 대표를 선출한다면 최선의 결정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 민주주의 체제를 뒷받침하는 핵심 논리다.
그런데 여기에 또 다시 근본적 오류가 있다.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모든 인간이 항상 자율적으로 판단해서 최선의 결정을 할 수 있는가? 여러분은 시장에 가서 정확히 내가 원하는 물건을 내가 원하는 가격에 살 수 있는가? 결코 충동구매를 하거나 바가지를 쓰지 않을 만큼 충분한 정보와 정확한 판단력을 모든 사람이 갖추고 있는 것인가? 우리는 몇 년에 한 번씩 돌아오는 국민 투표라는 그 알량한 민주주의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 인간이 되기 위해서도 막대한 정보와 정확한 판단력이 필요함을 이미 알고 있다. 미국에서는 조지 W. 부시가 두 번이나 대통령으로 당선됐고 4년전에 우리는 이명박을 뽑았다. 최선의 결정이었을까? 
그래서 미국의 언론학자들은 민주주의에서 언론의 가장 중요한 역할 가운데 하나를 ‘자유로운 사상의 시장’(Market place of ideas)라고 표현한다. 자유 시장 경제처럼 사상도 자유로운 시장을 형성할 수 있어야 언론이 제 역할을 하는 것이고 이를 통해 민주주의가 담보되는 것이라는 믿음이다. 언론이 한 나라 또는 한 지역의 대표를 선출하는데 필요한 다양한 정보와 생각을 전달해줘야 시민이 ‘자율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여기에는 다양한 정보와 생각을 전달하지 않고 한 정파의 일방적인 생각만을 전달한다면 사회는 ‘사상의 독과점'에 빠지게 된다는 우려가 배어있다.
자, 이 모든 생각에 무슨 ‘좌’나 ‘빨’의 요소가 있단 말인가? 지극히 시장경제 중심적이며 철저히 자유적이고 순수히 민주적인 사고다. 그래서 나는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이명박, 이동관, 최시중, 이병순, 김인규, 그리고 한나라당류의 무리에게 묻는다. 당신들이 보수 우익인가?
당신들이 보수 우익이었다면 당신들은 정부가 불법적으로 정연주를 KBS 사장직에서 쫓아냈을 때 궐기했어야 했다. PD수첩의 광우병 보도를 국가 기관에 대한 명예훼손으로 몰 때 격분했어야 했다. 촛불집회에서 죄 없는 시민들이 얻어터질 때 함께 거리로 나섰어야 했다. 그게 보수다. 그게 우익이다. 그게 당신들이 지켜야 할 시장의 가치며 사상의 자유다. 보수우익이라면 궐기하라!

2011년 12월 25일 일요일

“교류단절로 인한 대북정보 부재, 현 정부의 자업자득이다”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1-12-24일자 기사 '“교류단절로 인한 대북정보 부재, 현 정부의 자업자득이다”'를 퍼왔습니다.
[인터뷰]정일용 615 남측위원회 언론본부 상임공동대표

연합뉴스에서 오랫동안 북한 및 한반도 관련 보도를 하며 기자협회장을 역임한 정일용 기자는 615공동선언실천남측위원회 언론본부 상임공동대표로서 남북교류 사업도 수차례 관여한 바 있다. 

정일용 대표는 23일 오후 와의 전화인터뷰에서 ‘94년에 비해 언론보도가 차분하고 냉정해졌다’는 평가를 일부 인정하면서도 “여전히 북에 대해 잘 모르면서 추정에 추정을 거듭해서 쓰고 있다”고 쓴 소리를 했다.

정일용 대표는 일부 언론의 김정은 후계체제가 준비가 부족하고 불안하다는 보도와 관련, “오히려 김정일 위원장이 후계자가 될 때보다 북 사회가 내부적으로 안정돼있다고 볼 수도 있다”며 새로운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정일용 대표는 일선에서 북한 관련 보도를 하는 후배들에게 “북한에서 나오는 원전에 근거해 최소한 북의 주장이 이렇다 라고 보도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며 ‘사실 보도’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언론이 남북관계를 파탄내자는 것이 아니라면 관계개선을 어떻게 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민중의소리 김철수 기자 정일용 615공동선언실천남측위원회 언론본부 상임공동대표

다음은 정일용 대표와의 일문일답 요지다.

-언론보도가 94년에 비해 차분해졌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지만 여전히 일부 언론은 서거냐 사망이냐 하는 지엽적인 논란을 부채질하거나 출처가 불분명한 보도를 하고 있다.

=94년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좀 나아진 것으로 보인다. 아무래도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에 북과 교류접촉 많아지면서 북쪽에 대해 전보다 좀 많이 알게 돼서 그렇지 않겠나?
그러나 남쪽이 김정일 위원장이 사망했는지도 모르는 것이 정부와 언론의 수준이다. 북과 김정은 후계자에 대해 잘 모른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추정해서 쓰는 것은 쓰는 기자도 하고 싶지 않은 일일 것이다. 국민들도 94년과 비교하자면 (북에 대한 선정적인) 그런 기사가 나온다 해도 별로 주목하지 않고 있다. 

김정일 후계 승계 당시보다 현재의 북이 훨씬 안정돼 있어

-김정은 후계자가 갓 서른도 안 된 인물로 사실상 허수아비라거나 북이 극도의 혼돈에 빠질 것이 분명하다는 가설이 쏟아지고 있다.

=나이만 갖고 따질 것은 아닌 것 같고 후계자 수업을 오래 못 받았다, 후계자로서 활동이 별로 없었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달리 생각할 수도 있다. 김정일 위원장은 후계자 결정 과정에 삼촌이나 경쟁세력이 있었다. 김정일 위원장이 한창 자랄 때는 북이 유일사상을 정립한다 면서 내부 정리가 필요한 분위기였다. 김정은 후계자 지명은 김정일 위원장과 비교해보면 상당히 안정적이다.
경제로 보더라도 (김일성 주석이 서거한) 1994년에도 힘들었고 이후 계속 가뭄이다, 홍수다 해서 얼마나 힘들었나? 그때와 비교하면 북쪽에서도 경제적으로는 좋아졌다고 말하고 외신에 따르면 북의 올해 식량 작황이 괜찮다는 보도도 있다. 그런 면을 종합해보면 김정은 후계자는 상대적으로 괜찮은 분위기에 권력을 승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3대 세습을 인정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언론과 일부 정치권에서도 나오고 있다.

=호불호가 있을 수 있다. 생각을 어떻게 가지라고 할 수도 없다. 그러나 부인할 수도 없고, 간과할 수 없는 것은 북의 현실이다. 김정은 후계체제가 들어선 것을 부인할 수 있겠나?

-김일성 주석도 생전에는 남쪽으로부터 극심한 비판에 시달리다 사후에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비교되며 언론의 평가가 후해졌다. 지금도 김정은 후계자와 비교하며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나름대로 지도력이 있었다는 식으로 상대적으로 후하게 평가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그런 것이 보인다. 죽은 사람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다 해서 좋게 평가하고 새로 등장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깎아내리는 것이 반복되고 있다. 김정은 후계자에 대해서는 당분간 좀 더 지켜봐야 한다.

북을 봉쇄고립시키니 정보도 얻을 수 없어

-북의 서거 발표 이후 남측이 북에 대해서 알고 있는 정보가 대단히 부족하다는 것이 충격적으로 드러났다. 정부여당 쪽에서는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 동안의 정보력이 약화됐다고 하고, 반대로 남북교류 차단이 정보력 부재의 주원인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본래 서로 만나고 해야 주워듣기라도 하지. 이 정부 들어와서 언론본부만 해도 만남 자체를 봉쇄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첩보위성이 지름 몇 센티미터짜리 물체를 구분한다 해도 건물 내부 상황이나 사람 생각을 어떻게 끄집어낼 수 있나. 이명박 정부와 미국 등 서방의 자업자득이다. 만나지도 못하게 하고 고립시켜서 폐쇄적으로 만들어놓았으니 정보가 있을 수 없다. 

ⓒ6.15남측위 언론본부 2006년 남북언론인토론회 합의서에 서명(수표)한 남측 언론본부 정일용 상임대표와 북측위원회 양철식 사무국장이 기쁜 표정으로 합의서를 교환하고 있다.

-이전 정부처럼 남북 교류가 활성화 됐다면 지금과 달랐을까?

=교류가 진전되고 만나고 있었다면 갑자기 17일 뭔가 변화가 있다면 알 수 있지 않았겠나. 관계가 진전됐다면 북쪽에서도 숨기지 않았을 것이다. 개연성으로 보자면 보다 빨리 알았을 가능성이 훨씬 높다.

-정부는 조의 대신 위로를 표명하고, 이희호 현정은 여사 외 민간 조문은 불허하되, 민간단체의 조의 표명이나 조전 발송은 허용한다는 입장을 정리했다. 어떻게 보나?

=남북 간의 특수관계를 떠나나 조문을 가는데 정부의 승인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우스운 이야기다. 사람들이 잘 기억을 못하는데 북쪽에서 조문을 오거나 조전을 보낸 것은 상당히 여러 차례다. 정주영·정몽헌 회장과 김대중·노무현 두 대통령, 그리고 통일 관련 인사 등에 여러 차례 조의를 전했다. 그렇다면 북쪽이 더 유연한 것이 아닌가. 
남에서 정부 차원 조의 표시 대신 동포들에게 위로의 말을 전달한다고 하는데 굳이 김정일 위원장 등 지도체제를 인민과 구분할 필요가 있는가. 그런 식이라면 막말로 잘 됐으니까 축하한다는 것도 논리적으로 가능하다. 이명박 대통령은 남쪽에서 이렇게 유연하게 하리라고는 북에서 생각도 못했을 거라는데 말 하다보니 유치하고 웃음이 난다. 꼼수로 보인다.
북쪽에서 와달라고 하는 것도 아니고 이쪽에서 남북관계 개선 생각해서 조문 가겠다고 하는데 누구는 가지 말라고 무슨 잣대로 하는가? 

북 관련 보도에서 북의 ‘원전’ 중시해야

-북 관련 보도는 사실 관계 확인도 어렵고 명예훼손 같은 위험도 없어 ‘소설 쓰기’의 유혹이 많다.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은?

=1차적으로 원전, 즉 북쪽 신문이나 방송, 출판물에 기초해서 기사를 썼으면 좋겠다. 최소한 북이 그렇게 주장했다는 것은 사실 아니냐. 사실이든 선전이든, 북의 말은 알 수 있다. 또 깊이 오랜 시간 보다보면 어떤 건져낼 것이 있다.
지금 남북관계의 향방은 남에 많이 달려 있다. 북도 남이 하기 따라서 상당히 좋아질 수도 있고 끝장날 수도 있다고 하지 않나. 그런 면에서 언론이 남북관계를 파탄내자는 것이 아니면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는가 전향적인 태도를 취해야 한다.

-앞으로의 남북관계 어떻게 전망하나

=김정일 위원장 부고를 보면 상당히 장문이다. 김 위원장 치적이 나오고, 뒷부분에 남북관계에 대해 조국통일 3대헌장과 남북 간의 공동선언을 철저히 이행해 자주적인 통일 위해 계속 노력하겠다고 한다. 김정일 위원장 시대와 변함이 없다. 김정은 시대를 보면 큰 틀이 바뀐다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다.
핵문제는 1994년 제네바 기본합의문부터 20년 넘게 계속되는 문제다. 김정은 시대라고 갑자기 태도를 바꾸지 않을 것이다. 외부 압박으로 어떻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자기 편의주의적인 생각일 뿐이다.

고희철 기자khc@vop.co.kr

2011년 12월 22일 목요일

"가상 시나리오보다 실사구시를"


이글은 레디앙 2011-12-22일자 기사 '"가상 시나리오보다 실사구시를"'을 퍼왔습니다'
[기고] "미중 한반도 이해관계 드러나…북미대화는 유훈"

‘문제적 인물’은 그가 살아 있을 때보다도 죽음과 죽음 이후에 더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키곤 하는 것 같다. 여기서 ‘문제적’이라 함은 특정의 가치판단을 개입시킨 표현이 아니다. 그보다는 한 사람의 삶 자체가 역사적 과정 속에서 많은 문제를 제기해왔으며, 수많은 역사적 문제들과 얽혀 있음을 의미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또한 그의 아버지 김일성 주석과 마찬가지로 그러하다.
사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뉴스로 접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1994년 7월 故김일성 주석 사망 당시 필자가 다니던 학교 학생회관 앞에 붙었던 모 학생정치조직 명의의 ‘경축 독재자의 죽음’이라는 대자보, 격렬했던 조문파동, 대학가 분향소 설치 논란, 박홍 당시 서강대 총장의 주사파 파동과 공안사건들로 이어지던 어두운 기억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는 그 정도까지 극단적인 논란의 소용돌이에는 빠지지 않은 점은 1990년대 초부터 단속적으로 진행되어온 남북 화해, 교류협력 흐름의 성과라고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의 아버지 김일성 주석처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이미 ‘역사화’된 인물이다(그가 살아 있었을 때조차도). 그는 40년 가까운 세월을 북한 체제 권력의 핵심에 있었다. 또한 1994년 7월 김일성 주석이 사망한 후에는, 당국가체제(party-state system)라는 표현이 부족해 ‘수령제’와 같은 수식어를 붙이곤 하는 북한 체제 ‘최고지도자’로서 군림해왔다.
따라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죽음’과 ‘죽음 이후’를 분석하고 전망하며 대응하는 시야는 조의, 조문과 같은 문제에 국한될 수 없다. 또한, 생전의 김정일이라는 인물과 그가 구축하고 이끌어온 체제에 대한 호불호와도 다른 차원의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가상 시나리오보다는 실사구시를
예컨대, 조의, 조문의 문제는 이미 논의되고 있는 것처럼 정부가 조금만 유연성을 발휘하면 큰 무리 없이 진행할 수 있는 선택지들이 존재하고 있다. 또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전용열차가 정지해 있었는지 달리고 있었는지가 국정원과 군 정보당국에게는 꽤 중요한 정보로 여겨지는 것 같다.
만약 그것이 정보당국들의 무능력을 질타하는 여론을 의식해 (우리는 이 정도까지 알고 있었다는 것을 각인시키려는 듯) 서로 경쟁하며 정보를 흘리는 것이라면, 볼썽사납지만 그리 낯선 풍경은 아니기에 ‘그러려니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만약 그런 정보가 북한의 급변사태 징후를 염두에 둔 발언들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그토록 핵심적인 정보를 정보위 국회의원들을 통해 언론에 공개하는 것도 그렇고, 특히 국정원 측의 정보와 군 정보당국의 정보가 서로 엇갈리는 것은 있을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이다(원세훈 국정원장의 12월 20일 국회 정보위 발언과 김관진 국방장관의 12월20일 국회 국방위 발언).
북한 급변사태론(혹은 붕괴론)은 특히, 2008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 이상과 와병을 즈음해서 다시 힘을 얻은 바 있다. 이를 계기로 개념계획으로 존재해오던 한미연합 ‘작계5029’를 공식화하려는 움직임도 있었다.
참고로 ‘작계5029(정확하게 얘기하면 개념계획5029, CP-5029)’는 북한 급변사태를 상정한 북한 지역에 대한 개입과 안정화 작전에 대한 계획이다. 이중 일부는 올해 2월 한미연합 키리졸브 훈련 시 시험 적용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정부가 만일의 사태에 대한 대책을 세우는 것을 마냥 탓할 수만은 없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이 공표되었을 때, 워치콘 단계를 격상시키는 등의 조치도 비판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러나, 공공연하게 북한의 급변사태나 붕괴를 상정한 군사훈련이나 군사적 조치가 취해지는 것은 현실적으로 생각해봐도 북한을 자극해 불필요한 갈등을 야기할 수 있는 문제이다.
북한 급변사태가 어떤 근거 하에서 제기되고 있는 것인가도 문제이다. 북한의 리더십과 체제의 불확실성이 증가한 것은 사실이지만, 현재까지 이렇다 할 불안정과 동요가 드러나지는 않고 있다. 김정은을 중심으로 하는 북한의 집단지도체제는 장의위원회 명단 발표와 참배 모습, 중국의 반응 등을 종합해 볼 때 그동안 준비해왔던 ‘권력승계 프로세스(succession process)’를 착실히 밟아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 중론이다.
결국, 오히려 북한의 새로운 권력체제의 운명은 이후 전개되는 내외적 요인들의 상호작용 과정에서 판가름 날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지금 단계에서 성급한 결론을 내리려고 하는 것은 현실에 대한 적확한 인식에 기반 한 판단이라기보다는, 자칫 현실을 희망적 사고로 재단하게 되는 오류를 범할 수도 있다.
북한의 권력승계 과정을 둘러싼 국제정치
우리는 북한의 내적 문제에 직접 개입할 수 있는 수단과 방법을 갖고 있지 않다. 설사, 무리한 개입을 시도한다고 할지라도 그 결과가 바람직스럽지 않다는 것은 세계사가 확인해 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집중해야 할 부분은 북한과 북한 리더십이 한반도 평화와 통일이라는 관점에서 정책적 선택을 할 수 있는 외적 환경을 조성하고 그를 위한 신뢰 조성의 신호를 보내는 것이라고 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염두 해 두어야 할 문제들이 있다. 우선, 북한과 미국이 김정일 국방위원장 생전에 고위급 대화를 진행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3차 북미 고위급 대화가 예정된 상황에서 김정일 위원장의 ‘급서’를 맞이했지만, 미국은 여전히 북한과의 대화에 대해 적극적인 의사를 표명하고 있다(연합뉴스 12월21일자). 북한의 입장에서는 애도 기간과 ‘국상’이라는 변수로 인하여, 미국만큼 적극적일 수는 없을지라도 대화의 모멘텀은 유지해 갈 가능성도 있다.
특히, 북미 대화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유훈과 같은 사업으로 볼 수도 있으며, 또한 북미 대화를 시작한 배경이 남북 관계의 단절과 6자회담의 교착국면 속에서 전기를 마련하기 위한 조처의 일환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6자회담 재개와 같은 가시적인 성과로 이어질지는 좀더 두고 봐야 한다. 또한, 6자회담이 재개된다고 해도 ‘비핵화’를 위한 논의의 진전이 가능한가는 더 미지수다.
1994년 ‘제네바 기본합의’가 김일성 주석의 사망에도 불구하고 지속된 북미 대화의 성과였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당시에 이미 공고한 권력기반을 구축하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1974년 2월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5기 8차 전원회의에서의 후계자 공인만을 고려해보더라도 20년이라는 시간적 여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한 배경에서 나름의 ‘정치적 결단’이 가능했을 것이다.
후계자 김정은의 경우는 이제 갓 후계자라로서 권력의 전면에 등장한 상황이다. 그런 상황에서 김정은을 중심으로 한 북한의 새로운 리더십이 ‘정치적 결단’에 이르기에는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미 간의 상호작용 과정에서 가능성의 공간은 새롭게 열릴 수도 있다. 그것이 당장 한반도 문제의 ‘일대전환’으로 이어지지는 않더라도 그동안의 경색된 정세를 돌파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이 ‘관계’이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는 ‘북한 문제’에 관한 한 ‘관계’라는 것이 서로 상대가 존재하고 복수의 행위자 간의 상호작용에 의해 구성되어진다는 점을 망각하곤 한다.
중국과 미국, 한반도의 ‘안정적 관리’라는 공통의 이해관계
북한과 중국의 관계도 북미 관계와 연동될 수밖에 없다. 북한의 대중 접근, 대중 의존에 대해 북한이 중국의 ‘동북4성’으로 전락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우려들이 나온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최근에는 ‘위기’를 맞은 북한이 이 같은 경향성을 가속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러한 우려는 과장된 측면도 있지만 단순히 근거 없는 시나리오로 치부할 수 없는 문제이기도 하다.
또한, 북한이 중국의 ‘동북4성’으로 전락한다든지, 혹은 ‘종속’될 것이라는 등의 표현은 한미 관계의 프리즘을 통해 북중 관계를 바라본다는 점에서, 혹은 북중 관계를 너무 단순화해서 바라본다는 점에서 불편한 점이 있지만, 북한이 남쪽과 서쪽으로 문을 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라고 촉구하는 측면에서는 의미가 있을 수 있다.
북한의 대중 접근은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이명박 정부 출범과 함께 남북 교류협력 사업의 축소, 단절, 그리고 사실상의 남북관계의 단절이 계속되었고, 6자회담은 한 번도 열리지 않고 있다. 이런 조건 하에서 북한이 경제적 측면에서나, 외교안보적 측면에서 중국과의 관계를 긴밀히 하는 것은 예상된 결과라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에게 남쪽과 서쪽으로 문을 열 수 있는 기회가 부여된다면 그런 우려는 기우로 끝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오히려 주목해야 할 부분은 중국과 미국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과 북한의 권력승계 국면을 맞아 북한 문제에 관한 한 오래간만에 일치된 행보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중국과 미국이 한반도의 ‘안정적 관리’라는 이해관계에서 일치를 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중국과 미국이 발표한 성명에서 공통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부분은 한반도의 안정이다. 이것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일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미중 양국이 한반도의 현상변경보다는 현상유지를 선호하고 있는 것으로 읽힐 수도 있다(북한의 핵무장과 핵보유국으로서의 등장도 현상변경에 해당할 수 있다). 이러한 미중 양 강대국의 이해관계는 우리의 이해관계와는 절반 정도밖에 일치하지 않는다.
비핵화도 중요하지만, 평화협정의 체결을 통한 정전체제의 평화체제로의 전환도 중요하다. 또한, 전쟁의 부재도 중요하지만 국지적인 무력충돌을 예방하고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시스템의 구축도 빼놓을 수 없는 과제라는 점은 여러 차례의 경험을 통해 절실히 실감하고 있다. 이산가족 문제를 비롯한 인도적 문제도 우리에게는 중요한 과제이다. 장기적인 목표이기는 하지만, 남북의 경제공동체 건설과 통일 같은 목표도 갖고 있다. 우리는 그러한 맥락 속에서 북한을 상대해야 한다.
한반도의 평화구축이라는 큰 틀에서
한반도 문제에 관한 한 우리에게는 평화와 통일이라는 목표가 있다. 설사 급격하고 격렬한 체제변동이라고 할지라도 북한의 체제변동이 바람직스럽다는 점을 강조하는 이들은 그 과정에서 치러야 할 비용-정치적, 경제적 비용 뿐만아니라 인간적 비용(human cost)까지를 포함해서-에 대해서 언급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우리가 한반도 문제에 대해 목적의식적 접근을 할 수밖에 없다고 할 때, 평화는 포기할 수없는 목표이다. 또한, 평화가 전면 전쟁의 부재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더더욱 그러하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의 남북관계 상황을 고려해 보면, 정부의 운신의 폭은 그리 넓어 보이지는 않는다. 또한, 단기적 성과를 기대하는 것도 무리일 수 있다. 그러나, 인도적 지원의 재개와 북한을 자극할 수 있는 조치와 군사훈련 등의 자제만으로도 신뢰회복의 메시지는 보낼 수 있다. 이것이 어쩌면 현 정부가 다음 정부에게 남겨주는 유일한(!) 긍정적 유산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이것이 정부만의 몫은 아니다. 시민사회와 다양한 민간부문의 사려깊은 대응이 동반되어야 할 부분이다. 현 정부의 정책전환을 촉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요구에 부응하지 않는다면 비판하고 심판하는 몫은 우리 한사람 한사람의 몫이기 때문이다.

2011년 12월 22일 (목) 16:15:50 이준규 / 메이지가쿠인대학 국제학연구소

2011년 12월 21일 수요일

"비난은 김정일에게, 그러나 북한 주민들에겐 원조를"


이글은 프레시안 2011-12-20일자 기사 '"비난은 김정일에게, 그러나 북한 주민들에겐 원조를"'을 퍼왔습니다.
[해외시각] '브래트 트래블' 북한편 저자 "북한은 '생존'의 귀재" 곽재훈 기자(번역)

유명한 여행 가이드북 '브래트 트래블' 시리즈의 북한편 저자 로버트 월러비는 19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인터넷판 기고에서 김정일의 사망은 역설적으로 북한과의 평화를 수립할 수 있는 기회라고 주장했다.

그는 과거 북한의 도발 등을 죽은 김정일의 탓으로 돌리고 새로운 북한 지도부와 원조‧무역을 통해 평화를 이룩할 수 있다고 서방에 제언하면서 "지금은 김정일의 사망을 북한 역사상 가장 좋은 일로 만들어야 할 때"라고 말했다. 다음은 월러비의 글 주요 내용이다. (☞원문 보기)


▲19일 평양에서 북한 주민들이 고(故)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초상 앞에서 김 위원장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다. ⓒ로이터=뉴시스

북한과의 평화를 수립할 때

북한의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의 죽음으로 한 가지는 확실해졌다. 서방이 북한과의 평화를 수립함으로써 한반도의 안정을 가져올 수 있는 가능성은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는 것이다.

김정일의 죽음은 북한과 (동북아) 역내에 많은 불확실성을 야기할 것으로 알려졌다. 예상대로 북한은 미사일을 발사했다. 그러나 우리는 서울이 불바다가 되기보다는 평양이눈물바다가 되는 것만을 보게 될 것이다.

북한 내부의 분열도 없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에는 공개된 반정부 세력이 존재하지 않는다. 수만 명이 목숨을 걸고 중국으로 탈출하고 있지만 북한에는 야당도 없고 '아랍의 봄' 같은 상황을 불러올 통신수단도 없다.

'경제 붕괴'에 대한 모든 논의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사실 놀라운 회복력을 보이고 있다. 북한은 수십 년 동안 계속된 한국‧미국과의 반(半) 전쟁상태, 외교적‧경제적 고립과 제재, 기근, 핵무기 개발에 대한 국제적 비난, 그리고 김일성 주석의 사망도 이겨내고 살아남았다. 북한이 가장 잘 하는 것은 '생존'이며 이는 20대인 김정은의 치하에서도 계속 그럴 것이다.

북한에 대한 어떤 분석에서도 간과되는 것은 생존을 위해 분투하고 있는 2400만 북한 주민이다. 서방에서 그들은 죽은 지도자를 숭배하며 노예 근성을 가진 세뇌된 기계로 자주묘사된다. 따라서 북한 주민들이 서방의 제재로 인해 더 심해진 기아나 연료 부족으로 사망한다 해도 우리(서방)는 별 불편함을 못 느낀다.

알려지기로 북한 정권은 미치광이의 영도 아래에서 정권의 생존을 첫 번째 목표로 놓고군대에 자원을 우선 배분한다고 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으면 한국이나 초강대국 미국과 평화 상태에 있지 않은 그들이 달리 뭘 하겠나?

따라서 서방은 (북한의) 목을 죄고 있는 제재와 위협은 효과가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며, 이 기회를 활용해 모든 과거에 대한 비난을 죽은 김정일과 그의 개인적인 기괴함(cult) 탓으로 돌리고 북한에 원조와 무역, 평화를 제공해야 한다.

이는 "북한의 나쁜 행동에 보상을 하는" 그런 문제가 아니다. '정권 달래기'도 아니며 평화를 위해 위험한 무기나 핵에 대해 이미 존재하는 구조적 감시 협상을 포기해야 함을 뜻하는 것도 아니다. 어쨌든 북한은 몇 년 동안 사실상 핵보유국이었고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큰일도 없었다. 그런 큰일은 특히 중국이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네오콘들이 북한의 원자로 폐쇄에 대해 경수로 기술과 중유를 제공하기로 한 북한과의 오래된 합의(제네바 기본합의)를 어겼을 때 북한은 핵 프로그램을 재개했음을 기억해야 한다. 부시 행정부는 북한을 "악의 축"으로 지목했고 거짓말을 앞세워 중동을 침공하면서 북한의 핵폭탄 제조에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런 공격적인 행동 앞에서 폭탄을 만들지 않는다면 그것이야말로 미친 짓이다.

더 나쁜 것은, 한국과 미국이 북한을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려 하면서 이뤘던 지난 수 년 간의 외교적‧경제적 진전이 이 핵 소동으로 인해 후퇴했다는 것이다. 1990년대 한국의 김대중 정부는 미 클린턴 정부의 축복 하에 북한에 화해와 투자의 "햇볕정책"을 폈고 김정일은 이를 열성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때 평양의 핵 프로그램은 멈췄었다. 반미 선전선동도 중단됐고 북한과 유럽연합(EU), 영국 간에는 외교와 무역 관계가 맺어졌다. 가족을 넉넉히 먹이고 친구와 맥주잔을 기울이며 소풍을 가서 공원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길 바랐던,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이지만 어쩌다 변방의 이상한 나라에 태어났을 뿐인 (하지만 더 나이든 사람들은 김일성을 위해 울었을) 북한 주민들은 진정으로 평화의 새 시대가 싹터온다고 믿었다. 워싱턴의 네오콘들이 판을 깨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러나 계속되는 무력 대치와 위협 속에서도 한국 돈 수십억 원은 여전히 북한의 공단과관광시설에 투자돼 있다. 세계에서 가장 경계가 엄중한 전선인 '비무장지대'의 일부는 지뢰가 제거됐고 탱크조차 지나가기 두려워했던 길을 관광버스가 가로질렀다. 또 하나의 희망은 평양을 거쳐가는 철도로 인해 한-EU 자유무역협정(FTA)이 더 강화될 것이라는 것이었다.

바로 지난주, 북한과 미국의 당국자들은 핵 프로그램에 대한 조건 없는 미국의 인도적 대북지원을 논의하러 만났다. 이 협상에 '평화'를 더하고 버락 오마바 미 대통령으로 하여금 그가 이라크전을 끝냈듯 한국전을 끝내게 해야 한다.

앞선 전례들은 북한과 협력하는 것이 효과가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원조와 무역은 적어도 고통받는 북한 민중들에게 구원이 될 것이다. 지금은 김정일의 죽음을 북한 역사상 가장 좋은 일로 만들어야 할 때다.



/곽재훈 기자(번역) 

[사설]김정일 사망 성숙한 대응 자세 견지해야


이글은 경향신문 2011-12-20일자 사설 '[사설]김정일 사망 성숙한 대응 자세 견지해야'를 퍼오ㅏㅆ습니다.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소식이 알려진 이후 우리 사회가 김일성 주석 사망 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훨씬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17년 전 김 주석 사망 때는 사망 소식이 알려지자 순식간에 첨예한 남남갈등과 정부의 미숙한 대처, 그리고 사재기 등으로 한반도 긴장은 고조되고, 우리 사회는 극심한 혼란상을 보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과거와 다르게 대처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김 위원장 사망 후 아직 라면이나 생수, 우유와 같은 생필품을 사재기하는 현상이 발생하지 않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북한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각이 종전과 달라졌다는 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17년 전에는 생필품 사재기로 이들 제품이 품귀현상을 빚은 바 있다. 또 정부의 대응도 지금까지는 비교적 차분하다. 정부는 성탄절을 맞아 애기봉, 평화전망대, 통일전망대 등 최전방 3곳에 등탑을 설치하려던 계획을 재검토하는 등 북한을 자극하지 않으려고 고심하는 듯하다. 

사회 분위기가 성숙해진 데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다. 우선 세대가 바뀌면서 북한에 대한 시각이 달라진 것을 주요 요인으로 꼽을 수 있다. 전쟁을 경험하거나 대결적 반공교육을 받은 세대들은 아무래도 북한 체제를 승리의 대상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했다. 그러나 지금의 40대 이하 세대들은 다수가 북한을 공존의 대상으로 본다. 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정보가 실시간으로 전달되면서 불필요한 불안감이나 소문이 확산되지 않는 것도 우리의 성숙한 대처에 기여하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요인은 한반도의 안정이 국익이라는 인식이 우리 사회에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여기에는 17년 전 경험이 반면교사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러한 모습이 앞으로도 유지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미 일부 대북 강경론자들이 지금의 성숙한 대처 분위기를 해칠 수 있는 발언이나 행동들을 나타내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뚜렷한 근거없이 북한을 자극할 수 있는 김 위원장의 ‘타살설’ ‘6개월 후 권력투쟁설’ 등을 제기하는 목소리들도 나오고 있다. 또 일부 보수 강경파들은 ‘축 사망’을 외치거나 ‘남한 빨갱이 때려잡자’고 주장한다. 심지어 한 강경보수단체는 그제 광화문광장에서 인공기와 김 위원장의 초상화를 불태우려고 했으나 경찰의 제지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정부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17년 전 김영삼 정권처럼 보수 강경론자들의 여론몰이에 떠밀려 강경입장으로 선회한다면 우리는 또 다시 값 비싼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다. 당시 우리는 그릇된 대응으로 남북관계 악화와 외교력 약화라는 후유증을 앓았다. 정부가 성숙된 분위기를 바탕으로 한반도 안정을 위해 슬기롭게 대응해 나가야 한다. 그런 점에서 정부가 어제 사실상 북한에 조의를 표하는 한편 김대중 전 대통령과 정몽헌 현대회장의 유족에게 조문 허용 방침을 밝힌 것은 김 주석 사망 때에 비해 진일보한 태도다. 하지만 정부가 남북관계 개선 의지가 있다면 북한의 의사를 확인한 뒤 정부 차원의 조문단을 보내는 것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사설]‘먹통 정보력’으로 북 급변사태 대응 가능한가


이글은 경향신문 2011-12-20일자 사설 '[사설]‘먹통 정보력’으로 북 급변사태 대응 가능한가'를 퍼왔습니다.
정부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사망 사실을 북한 관영매체가 공식 발표할 때까지 이틀 동안 전혀 몰랐던 것으로 확인됐다. 원세훈 국가정보원장과 김관진 국방장관은 어제 국회에서 김 위원장의 사망을 북한 발표 후에 알았다고 답변했다. 막대한 예산을 쓰는 정보당국이 북한 내부의 엄청난 급변사태를 51시간이 넘도록 까맣게 몰랐다는 것은 충격적이다. ‘먹통 국정원’이라는 비판이 괜한 말이 아니다. 

북한이 내부 사정을 매우 알기 어려운 폐쇄사회인 점은 분명하다. 온갖 정보수단을 가동해 북한을 감시하고 있는 미국도 이상징후를 포착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안보와 직결된 북한의 급변사태를 공식 발표 전까지 낌새조차 채지 못한 것은 납득이 안된다. 그 때문에 국군통수권자인 이명박 대통령은 자리를 비운 채 일본 방문에 나섰다. 국방부와 외교통상부 등 관계 부처들도 주말 동안 아무런 비상조치를 취하지 않는 등 안보상의 중대한 허점을 노출했다. 더 큰 문제는 북한이 특별방송을 예고한 뒤에도 정보 당국이 이를 김 위원장의 사망발표와 연결해 분석해내지 못했다는 점이다. 오히려 탈북자 출신으로 구성된 민간단체가 1994년 김일성 주석 사망 때와 양상이 비슷하다며 김 위원장의 사망 발표일 가능성을 제기했다. 정보 수집은 고사하고 분석조차 민간단체보다 못한 것이다. 사실 대북 정보에 대한 취약성은 진작부터 우려돼온 바다. 원 국정원장 등 비전문가가 정보 기관의 주요 위치에 포진한 데다 북한 관련 정보가 허술하게 다뤄진다는 지적이 많았다. 지난 2008년 여름 김 위원장이 뇌졸중으로 쓰러졌을 때 “칫솔질을 할 수 있는 정도”라는 등의 공개되지 말아야 할 첩보 수준의 정보가 쏟아져 나온 게 대표적인 예다. 어떤 게 진짜 정보 당국의 능력인지 도무지 믿음이 가지 않는다. 

김 위원장의 사망으로 북한의 불확실성이 증폭된 상황에서 북한에 대한 정보는 우리의 안보와 직결된다. 북한 내부의 변화를 면밀히 주시하면서 상황에 기민하게 대처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북 정보 수집과 분석을 위한 특단의 조치가 마련돼야 한다. 첨단 기술에 의한 정보수집은 미국과의 공조로 해결한다 하더라도 우리에게 특장이 있는 인적 정보 수집과 분석 능력을 한층 강화해야 한다. 지금은 정보 능력이 곧 안보의 핵심 역량이다.

2011년 12월 20일 화요일

김정일 사망, MB는 김영삼 반면교사 삼아야


이글은 대자보 2011-12-19일자 기사 '김정일 사망, MB는 김영삼 반면교사 삼아야'를 퍼왔습니다.
[공희준의 일망타진] 한반도의 냉엄한 현실과 북한 급변사태 대비해야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급작스러운 사망은 그동안 우리가 너무나 내부적인 정치적 화두들에만 자폐적으로 몰두해왔음을 통렬하게 일깨워주었다. 특히 이른바 ‘생활정치 제일주의’에 광신적으로 매몰된 ‘축소지향형 정치집단’의 득세는 대한민국이 마치 북유럽 여러 나라들과 같은 안온하고 안전한 국제정치적 환경을 누리고 있는 것과 같은 어처구니 없는 착시현상을 불러온 것이 사실이다.

이명박 정권 등장 이래로 남북관계는 심각한 퇴행을 거듭하였다. 김영삼 정권이 집권할 당시에 벌어졌던 상황과 놀라울 만큼 대단히 흡사하다. 더군다나 한반도는 물론이고 동아시아 전체의 평화와 안정을 치명적으로 위협하는 북한 핵 문제는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해결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

김영삼 정부 당시에는 김일성 주석이 사망하였고, 이명박 정부에 들어와서는 김정일 위원장이 숨졌다. 김일성이 사망하자 한국 정부는 대책 없고 비이성적인 북한 붕괴론에만 매달리다가 한반도의 위기를 오히려 심화시켰다. 이명박 정권은 김영삼 정권의 전철을 답습할 가능성이 현재로서는 매우 크다.

다행히도 그때는 김대중이라는 불세출의 거인이 한반도 정세가 전면적 파국으로 빠지지 않도록 튼튼한 안전판 역할을 훌륭하게 맡아주었다. 허나 현재는 무능하고 식견 짧은 김영삼의 후예들이 집권 여당은 물론이고 야당들마저 장악하고 말았다. 문재인과 유시민의 대북관이 김대중 전 대통령의 그것에 가까울지, 김영삼 전 대통령의 그것에 가까울지는 물어보나 마나다. 노무현 정권이 출범하자마자 정권 수뇌부가 가장 먼저 착수한 정책은 대북송금 특검 수용이었다. 역대 수구냉전 정권들과 마찬가지로 정권의 이익을 위해 남북관계를 거리낌 없이 희생시킨 것이다.

그러므로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사상 최초의 남북정상 회담을 성사시키고, 남북관계의 발전에 획기적 전환점을 마련한 사람들은 어느 때보다 무거운 역사적 책임감과 사명감을 가지고 정치에 임해야 할 것이다. 그들마저 한반도의 냉엄한 현실과 북한의 급변사태를 강 건너 불구경 하듯 수수방관하면서 당장의 인기와 지지율에 급급해 친노세력 식의 얄팍한 ‘내수용 정치’에만 몰입한다면 우리 민족에게는 더 이상 아무런 희망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통일을 외면하는 정치인과, 통일이 필요 없다고 믿는 무리가 진보진영의 미래와 개혁세력의 운명을 주도하는 엽기적인 일은 다시는 없어야 한다. 민주당 재건의 길은 남북관계 정상화의 길에서 찾아야 한다. 민주당이 해체되었다고 평화롭고 정상적인 남북관계까지 덩달아 아예 완전히 해체당해야만 하겠는가? 
글쓴이는 정권탈환의 본진 누리집(http://soobok.or.kr/) 운영자입니다.

"MB, 지금이 남북관계 돌파구 만들 기회다"


이글은 프레시안 2011-12-20일자 기사 '"MB, 지금이 남북관계 돌파구 만들 기회다"'를 퍼왔습니다'
[전문가 좌담] "김정일 만났던 박근혜가 조의 표명하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한반도 정세의 불확실성이 증대되는 가운데 후계자 김정은 체제의 안정성, 북한과 주변국들의 관계 등이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은 19일 북한 및 남북관계 전문가인 김근식 경남대 교수와 김창수 전 청와대 행정관의 긴급 좌담회를 열고 김정일 사망 이후의 정세 전망과 향후 한반도 정세에 미칠 영향을 짚어봐다.

박인규 프레시안 대표가 진행한 이번 대담에서 패널들은 김 위원장의 사망이 북한에서 급격한 변동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은 적으며, 한국 정부는 오히려 경색된 남북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지렛대로 삼아야 한다고 제안했다. 다음은 이날 좌담회 전문.


▲ 김정일 사망을 특별방송으로 보도한 북한 <조선중앙TV> 방송화면

"52시간 조용했던 북한, 위기관리 체제 정상 작동 증명"

프레시안 : 1994년 김일성 주석 사망 당시에는 하루 뒤 발표했는데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이틀이 지나 알려졌다. 52시간의 공백 동안 북한의 움직임은 어땠을까.

김창수 : 현재까지의 언론 보도를 보면 그 동안 북한은 내부 체제 단속을 위한 점검 시스템을 만들고 김정일의 사인을 밝히는 후속 조치를 한 것으로 보인다. 52시간의 공백은 오히려 북한의 위기관리 체제가 잘 작동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김정일 사망 이후 어떻게 해야하는지에 대해 불안해하지 않고, 관련된 정보가 잘 통제되는 시스템이 있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김근식 : 그 사이에 당이나 국방위원회, 군의 엘리트들이 대책을 논의했을 텐데, 가장 큰이슈는 김정은 후계체제로의 순탄한 이행, 그를 중심으로한 권력 이양, 주민 동의나 대외 특이동향 점검 등이었을 것이다. 52시간 동안 의견 조율이 합의되고 끝난 상황에서 사망 소식이 발표됐기 때문에, 큰 사건이었지만 초동 대응은 잘 했다고 사후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또 그동안 중국, 러시아와 조율에 들어가 김정은 후계 체제에 대한 정치적 지지를 암묵적으로 이끌어내는 작업을 했을 것이라고 본다. 대외적 지지를 얻고 대내으로 권력이양을 순탄한 진행했다는 자신감을 확보한 측면이 있다. 반대로 52시간 동안 남쪽은 몰랐다는 것은 굉장한 문제점으로 보여진다.

프레시안 : 아직까지 확인되지 않았지만 중국 측에 사전 통보가 갔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인가?

김창수 : 단정하긴 힘들지만 현재 북중관계를 고려할 때 52시간 동안 북한의 위기관리 체계가 작동됐다면 중국과 논의했을 가능성이 있다. 사망 직후가 아니더라도 발표 전에 긴급조치를 발표하겠다 정도는 통지됐을 것으로 보인다.

프레시안 : 94년 김일성 사망 시에는 남측에 사전 통보가 왔었나?

김근식 : 당시도 남북이 좋은 사이는 아니었다. 핵문제로 긴박한 상황이었고 2000년 정상회담을 한 이후에나 화해협력이 돼 조문단이 오고갔다. 따라서 94년 당시 상황상 사전 통보는 무리였고, 다만 남측 정보당국은 알고 있었을 수 있다. 두 차례 정상회담 이후 많은 사람이 오고가고 북측에 개성공단까지 있는 현재 상황에서 눈치 못 챈 건 국정원 등 정보라인이 북한에 대해 장님이 됐다고 밖에 볼 수 없다.

김창수 : 다른 시각으로 보면, 기본적으로 북한과 대치하는 상황에서 최고지도자의 유고 동향은 우리 안보에 중요한 문제다. 그래서 온갖 촉수를 세우고 있는 건 분명한데 정보를 세세히 얻을 수 있느냐는 달리 봐야 한다. 예전 관례를 보면 김정일이 80일 동안 안 나타난 적도 있었고 그 동안 무엇을 했는지 모를 경우도 많았다. 며칠씩 안 나타나는 경우도 허다했다. 우리 측이 항상 즉각 파악한 건 아니었다.

이번에 특별방송을 하겠다고 발표할때까지도 몰랐는데 그럴 수 있다고 본다. 북한이 예를 들어 핵문제 관련 발언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긴급방송을 사전 예고할 때도 있어서, 이번에도 그런 식이라고 예측했을 수 있다. 또 한미 정보당국이 그 동안 김정일의 건강상태에 대해 대체적으로 4~5년 생존이 가능하다고 봤기 때문에 실시간으로 상황을 파악 못한데 책임을 묻기는 어렵다. 하지만 사망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일본에 가 있었고, 결과적으로는 북한에 대한 정보능력 부족이 대통령의 행보에까지 영향을 미친데 대해서는 비판의 소지가 있다고 본다.

프레시안 : 일부 보도에는 타살설, 테러설, 정변설까지 나오는데.

김창수 : 북한의 발표를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가에 대해 의문을 가져볼 수는 있다. 개인적으로 북한의 발표는 사실이라 본다. 김정일이 건강 이상으로 사망했을 것이라 보는데, 그간 건강 이상설에 대해 많이 확인된 부분이 있었고, 김정일 사망 원인이 만약 건강 이상이 아닌 다른 요인이라면 52시간 동안 소식이 잘 관리되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또 우리나 미국 정보당국이 그것을 모를 수 없었을 것이다.

"외국 조문 안 받기로 한 것, 94년 조문 논란 영향 미친 듯"

프레시안 : 북한은 외국의 조문단을 받지 않겠다고 했다.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김일성 사망 당시에도 같은 입장이었나?

김창수 : 당시에는 그런 언급이 없었고 통상적인 과정을 거쳤다. 이번에 안 받겠다는 것은 김일성 이후 발생했던 조문 파동에서 비롯된 게 아닌가 한다. 그때처럼 김정일 사망에 대한 불필요한 논란이 사망 자체에 대한 의혹을 증폭시키는 방향으로 확산되는 것을막기 위해서라고 본다. 이명박 정부 입장에서도 한 시름 덜어주는 측면도 있다.

한편으로 중국에 사전에 알려줬다는 가정 하에 생각해보면, 중국 측의 조문단을 비공식적으로 받을 가능성이 있다. 김정은 체제 안착 과정에서 북중이 서로 도움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중국도 김정은 체제의 안착이 필요하고 북한도 중국의 지원이 필요하기 때문에 향후 북중관계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대외적으로 알리기 위한 징표 측면에서라도 받을 확률이 있다. 당장은 공개하지 않겠지만 정치적 필요에 따라 추후 공개하는 식으로 진행되지 않을까 본다.

김근식 : 조문단 안 받겠다는 게 특이한 사안인 것은 맞다. 정상적이라면 조문단 왕래는 다양한 관계를 개선할 수 있는 외교의 장이다. 가장 우선적인 이유는 호상(好喪)이 아니기 때문인듯 하다. 김일성 사망도 급작스러웠지만 83세로 장수한 편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70세도 채우지 못했다. 두 번째로, 국가영도자의 죽음을 맞은 북한의 분위기가 94년과 비교했을 때 사뭇 차분한 분위기다. 당시처럼 애도의 물결이 넘치는 건 아닌 것 같다. 그런 분위기를 반영한 게 아닌가 싶다.

프레시안 : 북한의 붕괴를 바라는 이들은 체제의 취약성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 조문단의 방문을 거절한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김창수 : 조문단을 받으면 평양에 가서 북한의 통제를 벗어나 사회 곳곳를 뒤지는 게 아니다. 취약성이 노출되지 않는다. 조문단은 한 국가를 대표하는 제한된 사절단이라 그런 분석과는 큰 관련이 없다. 가령 북한이 아리랑 공연을 할 때 관광객들을 많이 받았고 관광객들은 조문단보다 훨씬 많은 곳을 볼 수 있었다. 그런 점을 생각해보면 체제 취약성론은 별로 설득력이 없다.

프레시안 : 김정일 위원장이 2008년 9월 뇌졸중으로 한번 쓰러졌는데 그때야 말로 김정일이 곧 사망할 것이란 얘기가 많았고 현재는 회복됐다는 분석이 우세한 상황이었는데.

김근식 : 잘못된 진단을 내린건 아니고 2009년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방북 당시 대통령 주치의가 김정일을 장시간 관찰한 결과 직무수행에 이상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후 중국의 다이빙궈(戴秉国) 국무위원, 원자바오(溫家寶) 총리가 방북했다. 현정은 회장도 4시간 동안 김정일을 만났다. 위키리크스가 김정일이 지난해 줄담배를 피웠다는 외교전문도 공개했다.

김정일의 최근 몇 년간 대외 활동과 올해 중국·러시아까지 수천 킬로미터를 가 회담을 한 것을 보면 업무 수행에는 지장이 없었을 것이다. 갑자기 사망한 것은 기차에서 심근경색이 발생했고 응급처지가 제대로 이어지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김정은 체제, 어디로 갈 것인가?

프레시안 : 김일성은 1945년부터 1994년까지 49년간, 김정일은 1994년부터 2011년까지 17년을 통치했다. 후계자로 지명된 이후로 치면 거의 40년이다. 84년 생인 김정은은 2010년 후계자로 지명됐는데 김정일이 없는 북한은 이제 어디로 갈까?


▲ 김근식 경남대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김근식 : 김정은 후계체제가 안착하기 전에 유고사태를 맞이해서 북한의 불안정성은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으로 봐야한다. 하지만 사망 초기 이틀 동안 큰 동요 없이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보면 김정은을 중심으로 한 권력 이양이 순탄하게 진행될 가능성이 있다.

문제는 김정은의 위치와 리더십, 카리스마, 정치적 정당성의 정도는 1994년의 김정일보다 약하다는 사실이다. 김정일은 20년 넘게 후계자 준비를 해 왔다. 전반적 영역에서 경험을 쌓아 당의 리더십을 장악했고 1991년 군 최고사령관에 취임하면서 군 통제권도 확보한 상황이었다.

김정은은 짧게 보면 작년 9월부터 채 2년도 안 되는 기간 동안 후계자 수업을 받았다. 그것도 김정일의 후광을 업고 현지지도를 다녔다. 내년에 강성국가를 만들어 가야하는데 김정일이 사라진 공백기에 김정은이 경제 차원에서 주민들을 독려할 수 있을까 의문이다. 북핵 문제도 북미협상은 재개되겠지만 최고지도자가 결정을 내릴 시점이 있다. 농축 우라늄 프로그램(UEP)을 어떻게 할 것이냐 평화협상을 어떻게 할 것이냐는 백날 강석주, 김계관이 해봤자 결국엔 김정일이 결정해주는 건데 이제 구심점이 없어지면면서 결정은 미뤄지고 시간이 소요되는 과정이 있을 수 있다.

프레시안 : 협상파과 강경파가 대결할 때 중재 역할로서 리더십 문제가 있다는 것인가.

김근식 : 김정은의 후견 그룹이 당내 엘리트를 얼마나 장악할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장기적으로 내년 강성대국 건설을 위해 대중들에게 설명하고 이끌고 선두에 서서 선전할 수 있으냐를 보면 취약하다. 둘째, 정치 엘리트 내부의 갈등이다. 작년 9.28 당대회 이후 뜨는 별이 있고 지는 별이 있었다. 뜨는 별로는 리용호 당중앙군사위 부위원장, 최룡해 당비서가 급부상했고, 지는 별로는 김영춘 정치국위원, 오극렬 정치국 후보위원 등이 있다. 장의위원회도 '지는 엘리트'의 순번은 뒤다. 이 엘리트 사이의 알력을 김정은이 잘 조절하지 못하면 중장기적으로 갔을 때 내부적 불안정성은 취약하지 않을까 싶다.

김창수 : 첨언하자면 김정일 체제는 후계 체제에 대한 개념과 논리를 만들고 실제 시스템을 만드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1970년대부터 시작해 성립도 되지 않았던 후계체제 논리를 만들어 나갔고 이를 바탕으로 1980년대 이후 후계자로 등극했다.

김정은 후계체제가 나오기 전에 북한 연구자 사이에 벌어진 논란은 과연 3대 세습을 할 것인가에 대해서였다. 세습, 집단지도체제, 과도 체제에서 3대 세습으로 가는 이론이 각각 제기됐다. 이제 3대 세습으로 간 상황이라면 후계체제로 갈 수 밖에 없다고 했던 당시 분석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북한은 후계체제를 정당화하는 개념과 논리에 의해 유지되어 왔다. 이를 바꾸고 집단지도체제로 가려면 또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야 해서 결국은 3대 세습으로 갈 수 밖에 없다는 게 당시 주장이었는데 현재를 보면 맞아떨어진 셈이다. 또한 김정일이 후계체제에 대한 개념부터 시스템까지 만들었자면 김정은은 이미 만들어진 상태에서 올라타는 방식으로 가기 때문에 선대와 달리 압축적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있다.

북한은 이미 최근 몇 년간 김정은 체제의 틀을 만들어 왔기 때문에 틀 자체는 유지가 될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중국의 이념 갈등처럼 정치 중심 노선과 경제개발·실용주의 사이의 갈등이 북한 내에도 있어왔는데, 이를 극복하기 위해 제시된 국가영도자의 역할을 김정은이 어느 정도로 할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프레시안 : 1994년 당시 김정일이 김일성의 3년상을 치르면서 대외관계를 동결시켰는데 앞으로도 북한이 수세적으로 갈 것인지 궁금하다.

김근식 :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 김정은이 확고한 역량과 리더십, 정책적 경륜을 100% 습득했다고 볼 수 없기 때문에 상당 기간 테크노크라트에게 결정을 위임할 수 있다. 북핵 문제는 강석주, 대남정책은 김양건, 경제는 최영림 등 각 영역에서 김정은보다 전문 역량이 있는 이들에게 위임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그들 역시 김정일이 결심한 바에 따라 움직이던 이들이라 자신들이 결정한 적이 없어서 과거와 다른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두 번째 가능성은 이러한 배경 하에 테크노크라트와 김정은 모두 과감하게 결정을 못해 미뤄질 가능성이다. 실기(失機)하는 것이다. 앞으로 북미협상을 지켜봐야 알겠지만 그렇게 흘러가면 북한도 대외적으로 불리한 상황이 될 수 있다. 이를 정당화하기 위해 대내적으로 통치의 정당성 강화에 집중하면서 대외정책은 김정일이 공언한 정도를 지켜내는 수준에서 상황을 보자는 정도로 갈 수 있다.

▲ 김창수 통일맞이 집행위원. ⓒ프레시안(최형락)
▲ 김창수 통일맞이 집행위원. ⓒ프레시안(최형락) 김창수 : 현 시점에서 북한의 대외관계는 북미관계, 중국과 러시아와의 관계, 남북관계가 있다. 김일성 사망 당시 북한이 결과적으로 수세적이었지만 주목할 점은 대미 관계에 있어 그해 10월 제네바 합의가 있었다는 것이다. 협상 타결을 위한 실무접촉은 유지된 셈이다. 당시 대남 관계는 단절됐는데 이는 수세적 태도도 있었지만 조문 파동을 불러일으킨 남측 정부와 관계개선을 원하지 않았던 측면도 있다.

앞으로도 중국, 러시아와의 관계는 유지될 것이다. 주목할 점은 올해 1월 후진타오(胡錦濤 ) 중국 국가주석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결과다. 당시 두 정상은 남북대화 유지 및 미국과 북한의 관계개선을 하기로 했는데 결실을 맺지 못했다. 최근 몇 차례 북미접촉 통해 UEP 동결 합의와 영양 지원까지 합의된 것은 그 정상회담의 연장선상에 있다.

문제는 내년이 국제사회에서 모든 한반도 문제에 영향력 행사하는 국가들의 리더십 교체기라는 점인데, 그 시기에 북한이 상황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활용할 수 있는 비전을 만들 것인가에 있다. 현재로서 그 가능성은 유동적이다. 북한이 현재의 수준은 유지해도 새로운 환경에 대해서 어떤 것을 만들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프레시안 : 국내 언론들은 김정은의 리더십이 약하면 군부가 들고 일어날 수도 있고 탈북자가 증가할 수도 있다는 시나리오를 내놓고 있다.

김근식 : 군부가 최고지도자에 저항하는 것은 북한의 수령제 구조에서는 불가능하다. 군부가 따로 독립해 국방위원장이나 최고사령관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국방위원회의 정치국 상무위원 등은 사실 당 사람이면서 군에 가있기 때문에 군이 자기의 당과 분리된, 후보자와 분리된 이해관계 때문에 후계 체제에 저항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다만 김정일이 후게체제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형식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2009년 헌법을 개정해 국방위의 권한을 강화하고 국방위원장을 영도자로 규정했다. 하지만 지난 4월 최고인민위원회에서 김정은, 리용호, 최룡해 등은 국방위 안에 들어가지 못했다. 이번 장의위원회 명단을 봐도 당, 정치국 인사들이 전면에 섰고 국방위 위원들은 뒤로 밀렸다. 국방위를 중심으로 통치하기엔 김정은이 아직 맡고 있는 직함이 없어서 배제하는 것으로 보인다.

김창수 : 북한의 기본 권력구조상 군부가 최후까지 체제를 유지하는 수호자 역할을 하기 때문에 현재 체제에서 이탈하리라는 발상은 북한 연구자 입장에선 타당성이 없다. 김일성 사망 이후 김정일이 선군정치를 내세우면서 군이 모든 결정과정에서 우위에 있던게 오히려 비정상적인 과정으로 봐야 한다. 최근에 이러한 경향이 정상화됐고 이는 김정일을 호칭할 때 당 명칭을 앞세우고 군 직함을 뒤로 빼는 것에서도 확인된다.

미국과 중국의 향후 움직임은?

프레시안 : 중국·미국의 향후 움직임은 어떻게 될까? 는 오늘 한반도에서 군사적 충돌 가능성을 경고했는데.

김근식 : 중국은 공식적으로 애도를 표명했고 94년 당시 클린턴 행정부가 김일성 사망에 애도를 표명한 것처럼 미국도 유사하게 갈 것이다. 중요한 점은 지난 1월 미중 정상회담에서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를 위해 통제할 수 없는 군사적 긴장은 피하자고 합의했다는 점이다. 오히려 북한과의 협상을 진전시켜서 미국이 다시 한반도 문제에 개입해야 북한의 불안정성을 완충할 수 있는 공간이 생기기에 정치적 급변이나 소요사태는 중국과 미국 둘 다 원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김창수 : 오바마 행정부는 북한에 대한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 그럼에도 북한의 미사일 사정거리에 미국이 노출되어 있다는 점에서 일정한 관계를 유지하고 적절한 관리를 해야 할 필요성도 갖고 있다. 한편으로는 내년에 미국도 대통령 선거가 있어서 북한과 적극적 관계에서 생길 수 있는 불확실한 상황이 위험으로 번질 수 있다.

때문에 적극적이지도, 악화되지도 않은 현상 유지 국면이 올 것으로 보인다. 현재 미 정부의 반응도 호들갑보다는 냉철하게 관찰하는 편에 가깝다. 미국은 지금까지 유지해온 대화를 좀 더 시간을 두고 추진하지 않을까 한다. 중국 역시 변방에서의 불확실성을 원하지 않는다.

프레시안 : 미국의 대북 접근에 대해 좀 더 적극적이라는 의견과 현상 유지로 갈 것이라는 분석이 각각 나왔는데, 극소수 사람들은 미국이 북한을 무너트리길 기대하기도 한다.

김근식 : 중국이 있어서 쉽지 않다. 중국이 북한을 포기하면 그럴 수 있겠지만 북중관계가 전략적 협력관계로 격상된 상황에서는 어렵다. 미국이 그렇게 나오려면 북한 내부의 불안정성이 최고조에 달해 방아쇠를 당기면 터진다는 자신감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아니다. 군사적 임계점이 와야 현실화될 것이다.

김창수 : 미국이 동북아에서 목표로 하는 것은 대중정책이다. 한국의 일부 세력은 미국이 압박하고 군사조치를 강화하는 게 희망상황일 수 있지만 대중정책 추구하는 미국 입장에서 북한 압박이 무슨 도움이 될 것인가. 그런 압박이 효과를 보지 못하면서 북중관계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가서 미국의 대중국 전략에도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북한만을 독립적 변수로 놓고 압박할 가능성은 없을 것 같다.

한국 정부, 조문 문제 어떻게 풀 것인가

▲ 이날 좌담회를 진행한 박인규 프레시안 대표.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결국은 한국의 대응이 미국, 중국이 나아갈 방향에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인데, 일단 민주당에서는 조의를 표명했고 통합진보당도 애도를 표했다. 정부 차원에서 조의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

김근식 : 가장 중요한 건 이명박 대통령의 입장이다. 김정일이 사망한 오늘은 일단 통상적인 국가안전보장회의, 군 공무원에 대한 경계령을 내렸다. 남북관계가 4년 동안 중단되고 교착되는 것을 반복해왔는데 김정일 사망으로 이를 돌파해 전기를 마련할 수 있는 모멘텀으로 삼을 창조적인 지혜가 이 대통령에게 있을 것인지가 중요하다.

예컨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 당시 남북관계의 엄중한 분위기 속에서도 김양건이 조문단으로 왔다. 그래서 이 대통령을 만나고 나중에 정상회담 합의까지 갔었다.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감안하면 지도자가 사망했을 때 그 시점에서 돌파구가 마련되는 게 역사적 현실이었다. 이 대통령이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관리할 독자적인 행동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면 오히려 이번이 기회다.

프레시안 : 적어도 차분하게라도 조의를 공식적으로 표명해야 한다는 것인가.

김근식 : 조문단을 받지 않으니 조의나 유감 표명도 할 수 있고 조전을 보낼 수 도 있다. 통일부나 현대아산 명의 등 수위를 조절할 수도 있다. 남북관계를 위해 북한을 강압적으로 대하지 않겠다는 신뢰의 시그널을 보내면 된다. 그게 가능한 이유는 내년 핵안보 정상회의에 김정일을 초청했었고, 기자회견 때마다 이 대통령은 김정일 위원장을 만날 용의가 있다고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한민국의 전직 두 대통령이 각각 만나 합의를 도출했던 상대다. 94년 상황과는 다르다. 그 동안의 남북관계 개선 상황을 감안하면 전향적인 표명으로 신뢰 개선이 가능하다.

김창수 : 정부는 우선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최우선 원칙으로 세워야 한다. 지금은 비정상적인 상황이기 때문에 평상시에 수습될 수 있는 남북 간의 사건도 수습되지 않는 상황으로 발전, 확산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철저히 위기관리를 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북한 상황을 냉철하게 주시하고 북한의 상황이 남한으로 확산되는 걸 막아야 하는 차원에서 대응해야 한다.

둘째로 국민들이 군사적 충돌이 발생해 남북관계의 위험으로 번지는 것을 염려하는데, 오늘도 주가가 요동을 쳤다. 과거 남북관계에 우발적 충돌이 발생하면 주가가 하락했다 반등하면서 '큰손'들만 이익을 챙기곤 했다. 이런 상황이 되면 국민들만 피해를 보는데 현재 글로벌 경제 위기의 장기화가 점쳐지는 상황에서 한반도의 상황을 잘 관리해 위험을 최소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조문도 이 원칙과 같은 맥락에서 봐야 한다. 남북간의 상황도 악화되지 않고 내부적으로 국론이 요동쳐서도 안된다면 이를 충족시키는 것은 정부가 의젓한 태도로 조의를 표명하는 게 바람직하다.

프레시안 : 조의 표명이 남북관계를 개선할 호기하고 했는데 국내 정치만 보면 상당히 답답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김근식 : 진보 진영과 보수 진영 사이에 대결 구도가 생기기 전에 정부가 주도권을 잡고 정리해줘야 한다. 이를 미루면 진보 진영에서 조문 얘기가 자연스레 나올 것이고 보수 진영에서 반발하면서 김정일의 악행을 보수 언론들이 싣기 시작할 것이다. 이러한 남남갈등이 격화되면 여야 싸움이 되고 정쟁화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되면 국내 정치권이 김정일 사망을 남북관계 개선의 호기로 보는 게 아니라 김정일 사망이 국내 정치 파동의 근원이 될 것이다.

개인적인 바람은 박근혜 비대위원장이 김정일과 만난 인연도 있고 하니 조의 표명을 하는 수준도 나쁘지 않다고 본다. 이 대통령이 하기 어렵다면, 박근혜로서는 이 대통령과 선을 그을 필요도 있고 비대위원장으로서 쇄신과 혁신을 해야하는 상황이라면 말 한마디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정부 차원에서 힘들다면 박근혜로도 괜찮다는 것인가.

김근식 : 이명박 정부는 지난 4년간 북한에 해온 일이 있어서 그런 기조를 떠나기 힘들 수 있다. 그런 기조를 버리길 바라지만 박근혜가 정당 자격에서 평범하게 조의나 유감을 표명하고, 한반도가 이 일을 계기로 평화롭게 갔으면 한다는 원칙적인 말을 할 수 있다.

김창수 : 우리 사회가 다원주의 사회기 때문에 북한 문제를 놓고 의견이 다양하게 표출되는 건 다양하다. 하지만 양극단에서 충돌하는 상황으로 가서 그 극단이 중간의 여러 세력을 대표하는 방식으로 여론이 잘못 형성되면 문제다.

그렇기에 이 문제에 있어서 정부가 기준점을 잡을 필요가 있다. 북한이 외국 조문단을 받지 않겠다는 것은 우리 정부에겐 부담을 덜어준 셈이다. 조문단 문제가 논란의 화약고가 될 수 있었는데 안 받겠다고 하니 극단적 논쟁으로 빠질 수 있는 상황은 예방됐다고 본다. 이명박 정부가 역대 정부의 대북정책 수준에서 표명했으면 한다.

프레시안 : 김정일 사망이 일종의 '북풍'이고, 결국 박근혜 위원장에게 유리하게 작용하지 않겠냐는 얘기가 은연 중에 나오고 있다.

김근식 : 민주당도 비대위를 구성했는데 과거 김대중 대통령 서거시 조문단이 왔으니 우리도 가야하는 게 아니냐는 분위기가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조의 표명 문제는 정부에 맡기고 당은 북한의 안정성에 포커스를 맞추는 게 중요하지 않나 싶다. 남한에서 화약고 될 수 있는 문제를 치고나갈 필요는 없다.

김창수 : 내년 선거 국면에서 한반도 통일 이슈가 최대 이슈로 부각할 가능성이 있다. 이전까지 복지 문제나 양극화 문제, 사회정의 문제가 중요한 이슈였고, 이명박 정부에서 대북정책이 망가진 상황에서 새로운 대통령이 평화통일이라는 헌법상 의무를 할 수 있겠느냐 정도였다.

이제는 김정일 사망 이후 종합적인 큰 틀에서 한반도에서 벌어지는 불확실한 상황을 관리할 수 있는 역량의 대통령이 필요하다는 이슈가 등장할 것이다. 또 최근 약화되어가던 흑색선전이 선거 국면에서 검증을 빌미로한 네거티브 선거로 부활할 수 있는 가능성도 있다.

프레시안 : 마지막으로 각자가 김정일 사망을 보고 느끼는 소회는.

김근식 : 오늘 뉴스를 보고 여러 생각이 났다. 김일성이 1994년 사망하고 김정일이 최고지도자가 됐는데 아버지로부터 부채만 떠안아 어려운 시기를 겪다 해결을 못하고 사망했다. 17년 동안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해보려고 했던 일도 부시 행정부나 남북관계 경색 등 국제환경이 맞지 않았다.

북한을 정상화하고 개혁·개방하려고 시도했지만 실패와 좌절을 겪었고 2012년 김일성 100주년을 계기로 강성국가를 만들어보겠다고 했지만 새해를 한 달로 남겨두지 않은 상황에서 문턱도 못 넘은 셈이 됐다. 17년 동안 하루도 편한 잠을 못자던 시기였을 것이다. 죽고 나서도 후계자에게 더 큰 숙제와 부채를 넘겨주고 갔다. 한반도의 안타까운 역사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김창수 : 이번 사건을 계기로 백낙청 선생이 말한 분단체제론을 다시 확인하게 됐다. 남한과 북한은 독립된 구조에 놓여있지 않다는 것이다. 정치든 경제든 북한과 남한은 체제 차원에서 영향을 미친다.

이번 사건이 우리에게 충격으로 작용하면서 경제, 안보 불안으로 작용하듯 앞으로도 북한의 안정이 우리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남한의 안정과 번영을 위해 북한의 체제가 현재 상황을 안정적으로 극복해 나야야 한다. 기본적으로는 현재 북한 상황에 대한 섣부른 예단을 하지 않는 것이다. 북한을 부추겨 원하는 상황으로 진단하고픈 마음을 접고 냉철하게 북한 상황을 분석해 계획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김봉규 기자(정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