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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4월 25일 목요일

아베 신조 말을 단순히 넘길 수 없는 이유


이글은 진실의길 2013-04-25일자 기사 '아베 신조 말을 단순히 넘길 수 없는 이유'를 퍼왔습니다.
역사인식 수정되지 않으면… 아베 망언은 되풀이될 것
“침략에 대한 정의는 학계에서도, 국제적으로도 확실하지 않다. 국가 간의 관계에서 어느 쪽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르다”


일본 총리 아베 신조가 지난 23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한 말이다. 1995년 무라야마 담화를 무력화 하겠다는 발언이다. ‘무라야마 담화’란 1995년 8월 15일 당시 무라야마 도미이치 일본 총리가 “식민지 지배와 침략으로 아시아 제국의 여러분에게 많은 손해와 고통을 줬다. 의심할 여지없는 역사적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여 통절한 반성의 뜻을 표하며 진심으로 사죄한다”고 발표한 것을 말한다.
사실 무라야마 담화도 우리 입장에서는 부족했다. 외교상 일본이 일제의 식민지배를 가장 적극적으로 사죄했지만,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배상 문제와 군 위안부 문제 따위는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베는 이것마저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지난 해 12월 일본 총리에 선출될 때부터 아베 극우성향을 우려됐다. 아베는 그 동안 “사기꾼이 쓴 (위안부 강제동원에 관한) 책을 일본 언론이 보도하면서 강제동원이 사실처럼 알려졌다”, “총리 시절에 참배하지 않은 것이 통한으로 남는다”는 망언을 되풀이했다.
특히 이번 아베 망언은 굉장히 심각하다. 일본제국주의가 자행한 한반도 침략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19세기말부터 20세기초 같은 한반도 지형이 형성되면 일본제국주의가 대한제국을 침탈했듯이 대한민국을 침략할 수 있다는 논리로 귀결된다. 아베 말을 단순히 넘길 수 없는 이유다. 그리고 ‘침략’이 아니라 ‘진출’이라고 할 것이다.
문제는 아베가 그냥 ‘극우’가 아니라는 점이다. 아베는 괴뢰국 만주국을 실질적으로 설계하고, 패전 후 A급 전범 용의자였던 기시 노부스케 외손자이다. 그리고 일본 극우 정치인 망언은 그 뿌리가 깊다는 점이다.

일본의 조선통치가 구미 강국의 식민지 통치보다 심하게 조선인을 노예적으로 착취하고 그 행복을 유린했다는 논고에 대해서는 정당한 항변의 여지가 있다고 나는 믿는다-1948년 스즈키 다케오(경성제국대학 교수, 종전 후 도쿄대학 교수)
일본의 이들 지역에 대한 시정(施政)은 결코 이른바 식민지에 대한 착취정치라고 인식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각 지역의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향상과 근대화는 오로지 일본측의 공헌에 의한다. 일본의 이들 지역에 대한 통치는 ‘반출’상황이었다고 할 수 있다-1949년 12월 외무성에 관한 경제적, 재정적 사항의 처리에 관한 진술
일본의 식민통치가 한국의 통치에 크게 공헌했으며 한국에 은혜를 베푼 결과가 되었으므로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다.-1953년 한·일청구권위원회의 일본측대표 구보다 간이치로
일본이 메이지 이래 이처럼 강대한 서구제국주의의 위협으로부터 아시아를 지키고 일본의 독립을 유지하기 위해 대만을 경영하고 조선을 합방하고 만주에 5족공화의 꿈을 건 것이 일본제국주의라고 한다면, 그것은 영광의 제국주의이다 -1963 시이나 에쓰사부로, (‘동화와 정치’, 동양정치경제연구소, 1963, 58~59쪽)
36년간은 착취를 위한 것이 아니라 선의로 한 것이다.-1965년 제7차 한일회담 일본측 수석대표인 다카쓰기 신이치
한국의 눈부신 경제발전은 과거 일본 식민지시대의 훌륭한 교육 덕분(중략)소학교 1학년 때, 한일합방 축하행렬에 붙어서 일장기를 흔들었던 것이 생각난다.-1979년 3월 21일, 경단련 회장인 사쿠라다는 한국경영자협회 주최의 국제세미나
한일병합조약은 원만히 체결된 것으로, 무력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1995.06.04 와타나베 미치오 전 외무장관
“일본인이 강제로 종군위안부로 끌고 갔다는 증거가 어디 있느냐. 가난한 시대에 매춘은 매우 이익이 나는 장사였고 (위안부는)이를 피하지 않고 그 장사를 선택한 것이다.”-2012.08.24 이시하라 신타로 지사

이외에도 일본 극우는 아니, 일본 많은 정치인들과 각료는 일제식민지배를 정당화한다. 일본 총리 아베만 아니라는 점이다. 아베 발언에 대해 우리 외교부는 “아베 내각의 역사 인식이 심히 우려된다”며 “일본이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국가로서 발전적이고 미래지향적인 논의를 해야 할 시기에 책임 있는 정치인들이 국회에서 시대역행적인 논의만을 이어가는 데 대해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박근혜 대통령도 24일 청와대에서 가진 편집국장 및 보도국장단과의 오찬간담회에서 “한일관계는 안보 경제적으로 매우 중요하지만 역사 인식을 다르게 하고 과거 상처를 덧나게 하면 미래지향적으로 가기 힘들 것”이라며 일본 정부를 비판했다. 
특히 박 대통령은 “일본은 국제사회와 조화롭게 가야 한다. 우경화로 가면 동북아와 아시아 여러 국가들간 관계가 어려워질 것이고, 일본에게도 바람직하지 않을 것”이라며 “이런 점을 일본 지도자들에게 얘기하고 있다”며 아베를 직접 언급하지 않았지만 정면으로 겨냥했다.
(손석희의 시선집중)은 ‘말과 말’에서 아베 망언을 인용하면서 “벌써 여러 번 듣게 되는 말이지만 또 소개하게 되는군요. 이 정도 표현이면 사실상 일본 제국주의 식민지 침탈의 역사적 사실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망언인데요,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어제 일본 의회에서 이렇게 공개적으로 발언했다”며 아베를 향해 직격탄을 날렸다.
우리가 일제에 식민지배를 당했기 때문에 아베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 아베 인식은 인류 보편적 가치를 정면으로 부정했다. 일제가 자행한 만행들은 상상할 수 없다. 땅을 빼앗고, 말을 빼앗고 나중에는 이름마저 빼앗았다. 특히 종군위안부는 성노예였다. 이를 부정하는 것은 보편가치인 인간존엄성을 짓밟은 행위로 용납할 수 없다. 그런데 이를 부정한다.
(역사를 위한 변명)을 지은 마르크 블로흐(Marc Bloch)는 “과거에 대한 무지가 현재의 이해 부족을 초래한다”고 했다. 아베와 일본 극우들이 망언을 하고, 역사교과사를 왜곡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그들이 저지른 일을 가르치지 않으면 일본 극우는 더 번성할 것이고, 망언은 되풀이를 넘어 더 심각한 상황을 초래하게 된다.
역사를 배우는 이유는 사물이나 현상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기르는데 있다. 역사를 앎으로써 사회 현상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고, 미래를 설계할 수 있다. 하지만 일본 극우는 이를 하지 않겠다고 한다. 극우의 이런 시각이 고쳐지지 않는 한, 침략전쟁을 부정하는 망언은 되풀이 될 것이다. 설혹 아베가 사과를 할지라도. 역사교과서 왜곡을 가볍게 넘기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블로흐는 에서 “역사는 올바른 생각을 하는 사람의, 올바른 행동의 정당성을 증명해줄 것”, “역사가 다루어야 하는 것은 인간의 모습이다.”, “역사는 인간이 만들어간다”고 했다. 깊이 새겨야 할 것 같다.

耽讀  

2012년 10월 29일 월요일

강압' 인정 정수장학회 판결…野 대선주자들, 朴에 '맹공'


이글은 프레시안 2012-10-28일자 기사 '강압' 인정 정수장학회 판결…野 대선주자들, 朴에 '맹공''을 퍼왔습니다.
문재인 측 "朴 입장 밝혀야", 안철수 측 "역사인식 필요해"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의 '아킬레스 건'인 정수장학회 논란과 관련, 법원이 또 다시 고(故) 김지태 씨의 재산헌납 과정에서 박정희 정권의 '강압'이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놓자 야권 대선주자들은 일제히 박 후보를 비판하고 나섰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 측은 28일 김 씨의 부일장학회(정수장학회의 전신) 증여 의사 표시가 '국가에 의한 강박'에 의해 이뤄진 것이라는 부산고법의 판결과 관련해 박 후보의 입장 표명을 요구했다.

문 후보 선거대책위원회의 진성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을 통해 "정수장학회에 얽힌역사적 사실이 법원에 의해서도 분명하게 인정되고 있는 만큼, 박 후보는 이 문제에 대한 자신의 인식을 다시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철수 무소속 후보 측은 '역사 인식'을 거론하며 박 후보를 압박했다. 안 후보 측 유민영 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과거의 역사가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다"며 "대한민국이 '강박'의 주체로 등장하는 이런 잘못된 과거에 대한 분명한 역사인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유 대변인은 "대한민국이 부정과 불의의 이름으로 판결문에 등장하도록 만든 것은 누구인가"라며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은 누구도 예외없이 지켜야 할 가치"라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부산고법 민사 5부(유인태 부장판사)는 부일장학회 소유주인 김지태 씨 유족이 정부와 부산일보 등을 상대로 한 '진정명의 회복을 위한 소유권 이전 등기 등' 청구 소송에서 "김 씨의 증여 의사 표시는 대한민국 측의 강박에 의해 이뤄진 것으로 불 수 있다"며 부일장학회 헌납의 '강압성'을 인정했다. 다만 재판부는 증여 의사 표시 취소에 대한 시효(10년) 소멸을 이유로 원심과 마찬가지로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이에 앞서 박근혜 후보는 정수장학회 관련 논란이 커지자 지난 21일 기자회견을 통해 입장을 밝혔지만, 야권의 의혹 제기를 "정치 공세"로 일축하며 김 씨의 재산 헌납 과정에서 "강압이 없었다"고 주장하다 이를 뒤늦게 시정, 오히려 논란에 불을 지폈다.

부산고법 판결 전에도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2월 국가의 강압에 의해 김 씨가 재산을 헌납한 사실을 인정했으나, 시효가 지나 반환 청구는 할 수 없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선명수 기자

2012년 10월 22일 월요일

文 "朴, 공과 사 구분 못해"…安 "중대한 인식 문제"


이글은 프레시안 2012-10-21일자 기사 '文 "朴, 공과 사 구분 못해"…安 "중대한 인식 문제"'를 퍼왔습니다.
야권 후보들 일제히 '朴 역사인식'에 우려 쏟아내

정수장학회 논란에 대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의 기자회견에 대해 문재인, 안철수 두 후보 측은 일제히 우려를 표명했다.

문재인 측 "대통령 후보로 부적격 스스로 드러내"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 측은 21일 박 후보의 기자회견 직후 "대통령 후보로서 부적격임을 스스로 드러냈다"고 평가했다.

문 후보 측 진성준 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박 후보는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진 대변인은 "모든 것을 '아버지 박정희'를 중심으로 인식하고해석하니 강탈이 헌납으로, 장물이 선물로 보이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진 대변인은 이어 "(박 후보가) 국민의 기대와 동떨어지다 못해 정반대된 입장을 밝힌데 대해 실망을 넘어 분노스럽다"고 말했다.

진 대변인은 "박 후보가 정수장학회 문제를 진정으로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다면 △과거사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그에 기반한 사죄, △정수장학회로부터 받은 모든 특전과 특혜 반납, △최필립 이사장 등 박근혜 측근의 즉각 퇴진, △김지태 회장 등 유족에 대한 피해 배상 및 사회 환원 모색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안철수 측 "국민의 상식과 사법부 판단에 반해"

안철수 무소속 대선 후보 측도 "국민의 상식과 사법부의 판단에 반하는 내용"이라고 비판했다.

안 후보 측 유민영 대변인은 "사법부는 김지태 씨가 주식을 강박에 의해 넘겼다는 점을 적시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는 박 후보가 김지태 씨의 유족들이 낸 소송의 1심 판결 내용을 전혀 다르게 해석해 말한 것을 지적한 것이다.

유 대변인은 "(사법부의 판단을) 부인하는 것은 대선 후보로서 중대한 인식의 문제가 있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여정민 기자

2012년 10월 1일 월요일

거짓말쟁이가 아니라면 박근혜도 피해자다


이글은 프레시안 2012-09-30일자 기사 '거짓말쟁이가 아니라면 박근혜도 피해자다'를 퍼왔습니다.
[김기협의 '페리스코프'] 한국사회 역사인식 ③ 가해자의 인식 결함과 피해자의 인식 결함

"나처럼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이것은 올바른 정치가의 할 말이 아니다. 쿠데타나 유신 아니라 어떤 일을 놓고라도 이런 말을 하는 정치인은 "참 나쁜 정치인"이다.

미국 공화당의 롬니 대통령후보가 동영상 때문에 곤욕을 치르고 있는 것을 보라. 지지자들 모임에서 말을 막하다가 들통이 났다. 민주당 지지자들은 세금도 안 내는 사람들이니 그 사람들 위해 정치할 생각이 없다고 했다. 세금 많이 내는 사람들끼리 뭉치자는 얘기다.

한 사회 안에는 온갖 분열의 소지가 있다. 분열을 방치하면 사회가 약화되고 구성원들이 모두 고통을 겪게 된다. 개인에 따라 적게 겪고 많이 겪는 차이가 있겠지만, 분열을 적정선에서 억제할 때보다 고통을 적게 겪을 사람은 거의 없다. 정부와 정치의 첫 번째 기능이 국가사회의 통합성을 지키는 것이다.

역사인식의 차이도 분열의 소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5.16과 유신을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도 많다.

온 국민을 섬기는 대통령 자리를 바라보는 사람이라면 분열을 해소하기 위해 애쓰는 것이 마땅한 일이다. 자신이 5.16과 유신의 긍정적 가치에 믿음을 가졌더라도 반대하는 사람들의 생각에서 받아들일 것이 없는지 고민해야 하고, 반대하는 이유에 허점이 있다고 생각되면 그 점을 설득하려 최선을 다해야 한다. 내 주장의 지지자도 많이 있으니 숫자로 붙어보자는 배짱은 국민을 섬길 생각 없이 권력만을 노리는 사람의 것이다.

박정희의 평가를 둘러싼 '국론 분열'은 일시적 현상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박정희를 비판적으로 본 국민은 1987년까지 아주 소수였다. 독재의 문제점에 대한 논의가 독재의 힘으로 막혀있었기 때문이다. 민주화 진행에 따라 비판적 시각이 점점 자라나 오늘에 이른 것이다. 아직도 상당수의 사람들이 박근혜처럼 생각하고 있는 것은 이 사회의 민주화 수준이 아직 미흡하기 때문이고, 그 수가 계속 줄어들 것이라고 내가 믿는 것은 이 사회의 민주주의가 계속 발전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박근혜처럼 생각하는' 주변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이 믿음이 굳어진다. 경기고나 서울대를 함께 다닌 친구와 선후배 중에는 이 사회에서 우월한 위치를 차지한 데 만족하고 우월한 위치를 잘 누릴 수 있는 특권구조를 지키고 싶은 마음에서 개발독재 시대의 세계관을 버리지 않는 사람이 많다. 인간을 이기적 존재로 규정하는 뉴라이트 사고방식이다.

그런데 경상도의 친척, 친지들 중에는 특권구조에 대한 집착이 없는데도 개발독재 시대에 주입된 세계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이들이 많다. 그들은 그 세계관이 무너지면 엄청난 혼란이 닥칠 것이라는 '두려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독재자들이 심어준 두려움이 아직도 남아있는 것이다. 이것이 억압체제의 '내면화' 흔적이다.

1945년 8월 15일, 천황의 항복 방송이 정오에 있었지만 사람들이 즉각 뛰쳐나와 만세를 부른 것이 아니었다는 증언이 있다. 오후 늦게 감옥 문이 열리자 비로소 군중이 길거리로 쏟아져 나왔다고 한다. (강준만 [한국현대사산책 1940년대 1] 29-30쪽) 환경 변화 앞에서 사람들은 눈치를 보게 되어 있다. 식민지시대 이래의 오랜 억압체제가 풀린 1987년 이후에도 사람들은 눈치를 살펴야 했다. 열악한 환경에 처해 있는 사람들, 그리고 변화의 감지가 늦은 사람들이 몰려 있는 구석에서는 눈치 보기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독재시대에 심어준 두려움에 아직도 짓눌리고 있는 그 사람들이 바로 독재체제의 최대 피해자다. 겉보기로는 이따금 공격적 태도 때문에 피해자보다 가해자로 보이는 사람도 있지만, 욕심이 아니라 두려움에 쫓긴다는 점에서 피해자다. 이런 두려움이 남아있다는 사실이 이 사회의 민주화가 아직도 미흡하다는 무엇보다 뚜렷한 징표다.

▲ 5.16과 유신, 인혁당 사건에 대해 사과하는 박근혜 후보 ⓒ뉴시스

어찌 보면 박근혜 자신에게도 피해자의 측면이 있다. 뉴라이트의 몇몇 사람은 식민지배와 독재정치의 나쁜 점을 뻔히 알면서도 정략적 이유로 억지소리를 하는 것 같다. 그런 것은 '역사의 왜곡'이다. 그런데 박근혜는 그가 서 있어 온 자리 때문에 5.16과 유신의 정당성을 진심으로 믿게 된 것 같다. 나는 그가 거짓말쟁이는 아니라고 믿는다.

피해자는 연민의 대상이다. 피해자에 대한 비판은 가혹한 짓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장기간에 걸친 억압의 피해자는 입었던 피해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의식의 치료가 필요하고, 치료를 위해서는 문제를 밝힐 필요가 있다.

박근혜가 개인의 운명 때문에 박정희 통치의 정당성에 대한 믿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 비난할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순(耳順) 나이의 그가 민주화에 따른 사회의 인식 변화를 따라갈 생각을 않고 "나처럼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고 뻗대는 것은 운명이 아니라 그의 의지에 달린 일이다. 개인으로서는 '역사인식의 결함' 정도 문제지만, 권력을 추구하는 정치인으로서는 '역사 왜곡'으로 넘어가고 있는 것이다.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는 칼로 무 자르듯 갈라지는 것이 아니다. 일제시대에 징용으로 남방에 가서 포로수용소에 근무한 조선인들, 그들은 일본 제국주의의 피해자였지만 포로들에게는 가해자였다. 베트남 전선에 끌려갔던 대한민국 군인들도 마찬가지다.

포로수용소의 조선인 중에는 험악한 조건 속에서도 인류애를 체현하여 미담을 남긴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대다수는 주어진 역할에 묶여 포로들의 눈에 일본의 주구로 비쳐지는 존재였다. 그들이 동원된 억압적 상황이 그들의 행동 모두를 면책시켜 주지 못한다.자기 몫의 반성을 제대로 하지 않고는 억압적 상황으로부터의 진정한 해탈을 바랄 수 없다.

더 넓은 범위의 피해자들도 이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4년 전 (뉴라이트 비판)을 쓸 때 이른바 진보진영의 지나친 독선이 뉴라이트 담론이 비집고 나올 틈새를 준다는 인상을 도처에서 받았다. 예컨대 '식민지착취론'에 식민 지배를 백퍼센트 나쁜 것이라고 주장하는 경향이 있어서 뉴라이트 논객들은 부분적 허점을 파고들며 그에 편승해서 '식민지근대화론'을 주장했던 것이다. 인간 세상에 백퍼센트 악마가 있다고 우기는 사람이 있으면 백퍼센트 천사가 있다고 우기는 사람도 나오기 마련이다.

박근혜를 둘러싼 이번 '역사논쟁'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나타난다. 박근혜의 역사인식을 비판하면서 민주당 정권이 백퍼센트 정당성을 가진 정권이었고, 따라서 이를 무너트린 쿠데타에는 티끌만큼의 정당성도 없었다고 하는 주장이 더러 나온다. 논란의 여지가 있는 문제를 놓고 여지가 없는 것처럼 우기면 그에 대한 반론이 힘을 얻게 된다.

민주당 정권을 대표하던 대통령 윤보선과 국무총리 장면이 쿠데타 상황에 임한 자세를 보라. 칠레의 아옌데처럼 정권을 지키려는 결연한 자세가 왜 민주당 정권에는 없었나? 윤보선과 장면의 4-19 이전 행적을 살펴보면 국가와 민족을 위해 생명은커녕 소소한 이익조차 내놓으려는 의지가 보이는 대목이 전연 없다. 그런 기회주의자들이 민주당 정권을 대표한 것이 우연한 일도 아니었다. 이승만 통치 아래 민주당의 성격 자체가 기회주의 정당이었다.

민주당의 당시 '구파'는 이승만의 분단건국을 거들었다가 권력을 충분히 나눠받지 못해서 야당으로 나선 한민당의 후신이었고, '신파' 역시 성향이 비슷한 사람들이 나중에 모여든 것이었다. 1950년대의 자유당과 민주당, 그리고 민주당의 구파와 신파는 정치이념에 별 차이 없이 같은 권력구조 안에서 이권을 놓고 경쟁하던 집단들이었다.

자유당과 민주당의 동질성은 1959년 조봉암의 '사법살인' 사건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1956년 대통령선거 도중 민주당의 신익희 후보가(이승만의 분단건국을 앞장서서 거들다가 후에 이승만에 맞서는 위치로 돌아서며 함께 임정 출신인 유림에게 협력을 청했을 때 "이승만의 기생첩 노릇 한 사람과 협력 못 한다"고 면박을 당했다고 한다.) 갑자기 죽은 후 민주당은 조봉암의 득표를 막기 위해 안 한 짓이 없었다.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는 조봉암을 찍느니 오히려 이승만을 찍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버젓이 나왔다.

1958년 초 조봉암이 체포되고부터 1959년 7월 처형당할 때까지 민주당은 이 사법살인을 저지하기 위한 아무런 노력도 보이지 않았다. 그 동안 민주당이 한 일은 자유당과 협력해서 제3당의 진입에 불리하도록 선거법을 고친 것이었다. 이념다운 이념을 들고 나오는 정치세력에 대한 경계심은 자유당이나 민주당이나 매한가지였다.

4.19 당시 민주당이 유일한 대안으로서 정권을 쥔 것은 제3세력이 철저히 박멸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민주당의 속성에 자유당과 큰 차이가 없었다고 보기 때문에 민주당 집권밖에 가져오지 못한 4-19는 '혁명'에 이르지 못한 '의거'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자유당과 민주당을 포괄하는 '1950년대 체제'를 척결했다는 점에서는 4.19보다 5.16에 혁명의 의미가 더 있었다. 민정 이양의 약속을 어긴 데서부터는 군사독재의 문제가 심각해지지만, 1961년 민주당 정권의 전복 자체에는 대한민국의 발전 기회를 만든 공로가 컸다. 그 죽음이 군사독재 폭력성의 상징으로 부각되고 있는 장준하를 비롯해 많은 민주주의자, 민족주의자들이 5.16 당시 거사를 지지했다. 5.16 쿠데타를 '백퍼센트' 잘못으로 규정하려 드는 데는 만만찮은 논란이 따를 것이다.

제1야당으로서 민주당의 긴 역사 속에는 독재의 피해자 못지않게 독재의 공범으로서 기회주의자의 모습이 많이 남아있다. 1956년 조봉암의 득표를 막으려 애쓰고 1959년 조봉암의 처형을 방관한 것은 독재에 대한 항거보다 제1야당의 이권을 지키는 것이 그들에게 더 중요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불임(不姙)정당'이 될 수 없다는 민주당 일각의 고집은 정권 교체를 바라기보다 제1야당의 위상을 더 아끼는 것처럼 보인다. 당선자, 아니면 차점자라도 만들어야 생산적인 정당인가? 생산적인 정당이 되려면 후보보다 정책 만드는 데 먼저 힘을 써야 한다. "못 살겠다, 갈아보자!" 수준의 구호로 차점자를 노리던 전통을 벗어나기 바란다.

이명박 정권의 엽기적 행태를 줄줄이 보고도 민심이 민주당으로 흔연히 모이지 않는 것은 민주당의 역사에 떳떳치 않게 보이는 것이 많아서다. 칼자루를 쥐고 있을 때가 많지 않은 덕분에 그 흠이 크게 드러나지 않아서 제1야당 자리를 아직까지 지키고 있지만 중도적 입장의 국민들에게 미덥게 보이지 않는 인상이 너무 많이 쌓여있다. 역사를 새로운 시각에서 성찰할 필요는 박근혜만이 아니라 민주당에게도 있다.

 /김기협 역사학자

2012년 9월 18일 화요일

조갑제의 궤변, “세종대왕도 독재자로 몰릴 판”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2-09-17일자 기사 '조갑제의 궤변, “세종대왕도 독재자로 몰릴 판”'을 퍼왔습니다.
박근혜 역사인식 비판 목소리엔 “아버지를 욕하라고 계속 우기는 것” 비난

대표적 수구보수논객으로 유명한 조갑제 전 월간조선 편집장이 최근 불거진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의 역사인식 논란을 두고 “역사 평가는 후세의 사람들이 하는 것이지 당사자가 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좌파 선동꾼들이) 박근혜에게 아버지를 욕하라고 계속 우기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5‧16 쿠데타에 대해선 “헌정체제를 무너뜨렸다고 나쁘다고 하는데 헌법적 기준만으로 역사평가를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조갑제 전 편집장은 17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조갑제 기자의 한국 현대사 강좌’에서 최근의 정세를 조목조목 짚으며 박근혜 후보에게 집중되고 있는 유신독재에 대한 평가 및 사과 요구가 부당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역사 평가는 후세의 객관적인 위치에 있는 사람이 종합적으로 학문적으로 결과적으로 하는 것”이라 정의한 뒤 “역사평가는 당사자가 하는 게 아니다. 박근혜 보고 박정희(유신독재)에 대해 사과하라고 하는데 (박근혜는) 사과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 박근혜와 박정희는 인격체가 다르다”고 말했다.

그는 박 후보에게 유신체제에 대한 명확한 입장 또는 사과를 요구하는 이들을 두고 “어떻게 보면 (박근혜에게) 아버지를 욕하라고 계속 우기는 것”이라 비판한 뒤 “이 말을 하는 사람들은 김정일에게 김일성의 전쟁범죄를 책임지라고 묻지 않는다. 또 살인의 책임은 사회가 져야 한다고 하면서 유신의 책임은 박근혜가 져야 한다고 말한다”며 현재 상황이 비논리적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같은 주장은 ‘퍼스트 레이디’로 유신독재를 지탱해 역사의 책임이 있는 박 후보를 자연인으로 인식하는 오류 속에 이뤄져 문제다.

▲ 조갑제 전 월간조선 편집장. 이치열 기자 truth710@

조갑제 전 편집장은 이날 유신독재체제에 대해서도 적극 옹호하는 발언에 나섰다. 그는 “헌정체제를 무너뜨렸다고 (유신이) 나쁘다고 하는데, 헌법적 기준만으로 역사평가를 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그는 “역사평가는 헌법적 평가와 함께 안보, 문화, 경제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야 한다. 헌법적 평가는 역사평가의 한 부분”이라고 주장한 뒤 “법적으로만 보면 5‧16은 쿠데타이지만 그렇다고 유신 때 만든 중화학공업을 쓰레기통에 버려야 하나”라고 되물으며 유신독재가 경제발전을 이뤘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서구식 민주주의 잣대로 1970년대를 평가하면 살아남을 이가 없다”며 “지금과 같은 식이 더 진행되면 세종대왕도 독재자로 몰릴 판”이라고 말했다. 그는 “민주주의는 제도에 불과하다. 민주주의를 절대화하면 안 된다”며 “박정희만이 민주주의는 하나님이 아니다라고 했다”고 말해 청중의 박수를 받았다. 그는 “유신체제는 경제발전을 통해 민주주의의 토대를 만들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하지만 초유의 사법살인으로 불리는 인혁당사건을 비롯해 인권과 자유를 유린한 수 없는 반민주적 억압과 고문 등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조 전 편집장은 “역사논쟁의 대전제는 대한민국과 자유민주주의를 인정하는 것이다. 전제를 부정하는 사람과는 논쟁이 안 되고 비방으로만 끝난다”며 최근의 논란 자체를 반국가단체세력의 음해 정도로 치부했다. 그는 “민주화를 먼저하고 나중에 경제개발에 성공한 나라는 단 하나도 없다”,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는 많지 않다”, “이승만은 언론 검열하지 않았고 전쟁 중에도 선거를 했다. 링컨보다 나은 사람이다”라는 발언 등을 통해 이승만‧박정희로 이어지는 독재체제를 옹호했다. 

그는 이어 문재인 민주당 대선 후보를 두고는 “오늘 국립현충원을 갔는데 예상대로 김대중 묘소만 갔다고 한다. 박근혜씨의 통합적 역사관과 달리 (문재인은) 분열적 역사관을 갖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문재인씨의 연설문을 보니 좌익 운동권의 격문으로서는 손색이 없다”고 비꼬기도 했다. 그는 또 문재인 후보의 연설문 일부를 인용하며 “문재인씨는 김대중이 병사하고 노무현이 자살한 것이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파탄 탓이라고 한다”며 “목욕탕에서 넘어지고 나서 이명박 대통령 탓이라고 하는 딱 그 수준”이라고 폄훼했다.

▲ 17일 오후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조갑제 전 월간조선 편집장의 강연회 모습. 50대 이상 남성 청중들로 앉을 자리가 없다. ⓒ정철운

조갑제 전 편집장은 장준하 선생 타살 의혹에 대해서도 “추락사 당시 확실한 목격자가 있는데 20년째 문제를 제기 한다. 부지런한 선동꾼과 게으른 기자들의 합작품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그는 “1993년 SBS 가 장준하 사망을 타살이라고 판결했다. 당시 진행자가 문성근이다. 방송이 타살이라고 판결할 자격이 있나”라고 비판했다. 그는 “장준하씨는 자기 발로 등산코스를 정했고 길을 질러가다 일어난 사고인데 모든 문제를 의심의 눈으로 보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편 조갑제 전 편집장은 이날 모인 300여명이 넘는 청중을 가리키며 “여러분 같은 50세 이상의 유권자가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투표자의 반을 차지할 것”이라며 “50세 이상의 분별력이 유지된다면 간첩과 사기꾼에게 정권이 넘어가는 것은 막을 수 있다”고 장담했다. 이날 강좌모임에는 50세 이상의 남성으로 보이는 청중들이 300여명 넘게 참석해 앉을 자리가 없었으며, 조 전 편집장의 발언이 끝날 때마다 여러번 박수갈채가 이어졌다. 

정철운 기자 | pierce@mediatoday.co.kr  

2012년 9월 15일 토요일

박정희·김일성과 짜고 유신헌법 만들었다.


이글은 프레스바이플 2012-09-14일자 기사 '박정희·김일성과 짜고 유신헌법 만들었다.'를 퍼왔습니다.
서울대 한인섭 교수 주장

한인섭 서울대 법대 교수와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가 13일 트위터를 통해 박 후보의 '유신'과 관련된 역사인식을 비판하고 나섰다.
한 교수는 "남한은 유신헌법 제정사실을 북한에 알려줬고, 북한도 그에 발맞춰 주체헌법을 제정했다. 심지어 발효일자도 같다"며 "한마디로 박정희·김일성이 독재강화를 위해 짜고친 고스톱이었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도 14일 자신의 블로그에 글을 올려 "한가지 재미있는 것은 일본에 대해서는 입에 거품을 물어가며 진정한 반성과 사과가 있어야 한다고 외치는 사람들이 독재통치의 과거에 대해서는 그냥 묻어버리고 가자는 주장을 한다"며 "나는 일제 통치가 우리 경제발전에 밑거름이 되었다는 말이 듣기 싫고, 박정희 대통령의 독재통치 때문에 경제발전을 이룰 수 있었다는 말도 듣기 싫다"고 말했다.

이계덕 기자  |  dlrpejr@hanmail.net

2012년 9월 13일 목요일

아버지 명예회복에 집착 박 ‘일그러진 신념’ 굳어져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09-13일자 기사 '아버지 명예회복에 집착 박 ‘일그러진 신념’ 굳어져'를 퍼왔습니다.

바뀌지않은 역사인식 왜?
 ‘인혁당 사법살인’ 재평가 주장
당시 퍼스트레이디 ‘면피성’
당 핵심·참모 고언 안 먹혀
“누구도 박후보 생각 못바꿔”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는 인혁당 사건과 관련해 11일 “대법원 판결은 존중한다. 법적으로 그렇게 된 것은 저도 인정한다”고 말해, 재심 결과의 법적 효력은 수용할 뜻을 비쳤다. 박 후보의 발언이 사법체계의 부정 즉, 국가 운영체제의 혼선을 초래한 문제점은 어느 정도 바로잡혔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1975년 인혁당 재건위 관련자에 대한 ‘사법살인’을 반성한다는 진정성은 전혀 없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실제로 박 대표는 이날 “(다른 증언 등) 그런 여러가지 얘기가 있고 하니까 그런 걸 다 종합할 적에 그것은 역사적으로 좀 판단할 부분이 아니냐”며 ‘역사 재평가’를 거듭 강조했다. 이는 결국 자신이 집권한 뒤 ‘또다른 해석’ 즉 ‘인혁당 재건위 사형 집행=합법’을 꾀하려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지적이 나온다. 역사학자인 전우용 박사는 자신의 트위터에서 “‘역사의 판단에 맡기자’는 말의 본뜻은 “뉴라이트의 판단에 맡기자’일 것”이라며 “그러면 인혁당 사법살인은 ‘불가피한 최선의 선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5·16과 유신에 대한 인식과 태도도 동일하다. 박 후보는 지난 7월 5·16에 대해 “불가피한 최선의 선택”(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토론회)이었다고 했다가 비판을 받자 며칠 뒤 “정상적인 것은 아니었다”고 한발 물러섰다. 그 뒤 5·16에 대해 “내가 만약 그때 지도자였다면 어떤 선택했을까 생각하면서 객관적으로 봐야 하지 않나”라며 거듭 ‘5·16 불가피론’을 주장했다. 박 후보의 역사 인식은 사실 바뀐 적이 한번도 없다. 5년 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때는 5·16을 “구국의 혁명”이라고 했으며, 인혁당 재심에 대해서는 “지난번에도 법에 따라 한 것이고, 이번에도 법에 따라 한 것인데 그러면 법 중 하나가 잘못된 것 아니겠느냐. 나에 대한 정치공세다”라고 말했다.박 후보의 기본 생각이 안 바뀌는 것은 왜곡된 신념체계 때문이라는 의견이 많다. 박 후보를 잘 아는 여권의 한 인사는 12일 “과거사에 대해 전향적인 태도를 보여야 한다고 5년 전에도 주변에서 많이 얘기했지만 요지부동이었다”며 “5·16과 유신이 없었으면 공산화가 됐을 것이라는 생각이 너무 강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박 후보는 정치권에 나오기 전부터 “유신 없이는 아마도 공산당의 밥이 됐을지도 모른다. …시대 상황과 혼란 속에 나라를 빼앗기고 공산당 앞에 수백만이 죽어 갔다면 그 흐리멍텅한 소위 민주주의가 더 잔학한 것이었다고 말할지 누가 알 수 있으랴”(1981년 10월28일 일기)라고 썼다. 민주주의는 흐리멍텅했고, 유신이야말로 구국이라는 인식이다.이런 생각은 사후 독재자로 비판받은 아버지의 명예회복 시도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박 후보는 일찍부터 “비범하신 아버지를 모셨고, 생전이나 서거하신 후나 평범하지 않은 관심과 혹독한 비난에 시달리셨기 때문에 그걸 바로잡는 일을 해야 했기 때문에 내 자신 또한 평탄하지 못한 길을 가고 있다”(1989년 11월5일 일기)며 ‘명예회복’을 별렀다. 박 후보가 1990년 아버지 박정희 찬양 영화인 ‘조국의 등불’을 만든 것도 이런 맥락이다.유신 통치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의도라는 지적도 있다. 새누리당의 한 의원은 “인혁당 판결은 박 후보가 퍼스트레이디를 한 이후인 1975년에 있었다”며 “그가 유신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아마도 그 시절 자기가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한 것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인혁당 사건을 ‘사법살인’으로 인정할 경우 자신에게 직접 책임이 돌아올 수 있다고 판단한다는 것이다.하지만 박 후보의 이런 인식에 대해서는 당 안팎에서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김종인 국민행복특별위원장은 “정치지도자로서 아버지를 객관화할 수 있어야 한다”고 여러차례 비판적인 견해를 밝혔다. 새누리당의 한 핵심관계자도 “위헌적인 권력 장악을 덮기 위해 내세웠던 공산화 방지라는 논리를 아직도 신봉하면서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지 않는 것은 낡은 사고”라며 “문제는 아무도 박 후보의 생각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종철 성연철 기자 phillkim@hani.co.kr

2012년 9월 12일 수요일

박근혜, 1·2차 인혁당 사건 구분도 못하면서 우겼나?


이글은 프레시안 2012-09-11일자 기사 '박근혜, 1·2차 인혁당 사건 구분도 못하면서 우겼나?'를 퍼왔습니다.
[기자의 눈] 판결이 두 개? 사건이 두 개!

'역사인식'이 문제라고? 아니다. '팩트'가 문제였다. 유신 정권하의 '사법 살인'으로 불리는 인혁당 사건과 관련해 "판결이 두개"라고 말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11일 역사적 '팩트'에 대한 무지를 드러냈다. '1차 인혁당 사건'과 '2차 인혁당 사건'을 근본적으로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박 후보는 11일 국회 본회의장 앞에서 "(인혁당 사건은) 판결이 두개"라며 "역사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고 전날 말했던 것과 관련해 "어제 말한 대로 같은 대법원에서 상반된 판결이 나온 것도 있지만, 한편으론 그 조직(인혁당)에 몸 담았던 분들이 최근 여러 증언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까지 감안해 역사 판단에 맡겨야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두개의 판결"이 모순된다는 지적이 나오자 새로운 '근거'를 댔다.

박 후보가 주장한 "그 조직에 몸 담았던 분들"은 민주당과 신한국당 국회의원을 지낸 박범진 전 한성디지털대 총장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박 전 총장은 지난 2010년 명지대 국제한국학연구소가 출간한 학술총서 에서 "제가 입당할 때, 당의 강령과 규약을 봤고, 북한산에 올라가서 오른 손을 들고 입당 선서를 한 뒤 참여했다"며 "인혁당 사건은 조작이 아니다"라고 주장했었다. 박 후보는 치명적인 실수를 했다. 박범진 전 총장은 1차 인혁당 관련자다.

박 후보는 1964년 '1차 인혁당 사건' 당시 인혁당 참여자의 증언을 토대로 1974년 '인혁당 재건위 사건', 즉 '2차 인혁당 사건'의 "판결이 두 개"라고 말한 근거를 설명한 셈이 됐다. 명확히 하자면 1차 인혁당 사건은 판결이 하나다. 2차 인혁당 사건은 판결이 "두개"다. 게다가 1차 인혁당 사건은 유가족 등에 의해 2011년 4월 1일 재심이 청구된 상태다. '재심 여부'가 법원에 계류된 상황이다.

▲ '인혁당 사건 관련자 사형 집행' 2달 여 전, 박근혜 후보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유신 정권 신임 국민투표' 투표함에 한 표를 행사하고 있다. ⓒ매일경제

박 후보가 언급한 "그 조직에 몸 담았던 분들"이 박범진 전 총장이 아닐 수 있을까? 만약 그렇다면 박 후보는 '인혁당 재건위'에 몸 담았던, 역사상 최초로 등장하는 사람일 모종의 '증인'을 언급하고 있는 셈이 된다.

결국 "박근혜 후보는 1차 인혁당과 2차 인혁당 사건을 구별하지 못하고 있다"는 결론이 가장 설득력을 얻게 된다.

박 후보의 이같은 '무지'는 다른 추측을 파생시킨다. 1975년 4월 9일, 유신 정권에 의해 '사법 살인' 사건이 나기 약 두달 전인 2월 12일, 박정희 전 대통령은 '유신 헌법 재신임 국민투표'를 실시했다. 72년 발표해, 대한민국 헌정 사상 '위헌 기록'들을 연일 갱신하던 유신 헌법에 대한 저항이 거세지던 때였다. 당시 '영애' 였던 박 후보는 유신헌법 유지를 위해 설치된 투표함에 박 전 대통령과 나란히 한 표를 행사한다. 이 사진은 1975년 2월 12일자 1면 톱에 실린다. 계엄 하에서 실시된 국민투표는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압도적인 재신임으로 귀결됐다.

당시 역사의 한 가운데에서 유신 재신임 투표함에 한 표를 던졌던 박근혜 후보는 유신이 없었던 시절의 '1차 인혁당 사건'과 유신 헌법에 따라 처형된 '2차 인혁당 사건'이 무엇인지 헷갈려 하고 있다. 게다가 "2개의 판결" 논란에서 긴급조치 등 위헌적 법률에 근거한 군사 법정의 판결을 지난 2007년 대법원 판결과 동일시하는 인식을 보인 것도 문제다. 이는 대통령의 '헌정관'에 대한 문제로 비화될 수 있다.

▲ 1975년 4월 9일자 <동아일보> 1면에 실린 인혁당 사건 관련자 사형 소식 ⓒ동아일보

박근혜 후보를 위한 '1차, 2차 인혁당 사건' 요약


박근혜 후보의 발언 때문에 이런 사실이 다시 한번 확인됐으니, 박 후보를 위해서라도 1차 인혁당 사건과 2차 인혁당 사건에 대한 설명이 필요해 보인다. 1964년 8월 14일 중앙정보부는 "북괴의 지령을 받고 대규모적인 지하조직으로 국가를 변란하려던 인민혁명당 사건을 적발, 일당 57명 중 41명을 구속하고 나머지 16명을 전국에 수배 중에 있다"며 '지하 조직 사건'을 발표했다. 18일 중앙정보부로부터 '인민혁명당' 사건을 송치 받은 서울지검 공안부는 구속연장 만료일인 다음달 5일 "증거가 없어 기소를 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기소를 거부했다.


이에 신직수 당시 검찰총장은 '검사 동일체의 원칙'에 따라 기소 내용을 알리가 없는 당직 검사 정명래를 통해 26명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기소했다. 65년 6월 29일 항소심 재판부는 10년 후 '2차 인혁당 사건'으로 사형을 당하게 될 도예종에게 징역 3년, 박현채 등 6명에게 징역 1년, 이재문 등 6명에게 징역 1년·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이후 대법원에서 이 판결이 확정됐다.


노무현 정부 시절 국정원 진실위는 이 사건과 관련해 "도예종 등이 북괴의 지령을 받고 국가변란을 목적으로 '공산비밀지하조직'인 '인민혁명당'을 결성해 학생데모를 배후에서 조종하였다는 증거가 전혀 없었고 수사와 재판과정에서 위와 같은 조직의 결성 사실조차 인정되지 않았으며, 당시 발표문은 확인되지도 않은 허위사실을 발표한 것"이라는 취지로 결론을 냈다.


유신체제가 들어선 가운데 박정희 정권은 1974년 4월 25일 도예종 등 23명을 '인혁당 재건위 사건'으로 엮어 구속 시켰다. 이른바 '2차 인혁당 사건'이다. 이들은 국가보안법, 반공법 위반, 내란예비음모, 긴급조치 1, 4호 위반으로 재판에 회부된다. 특히 긴급조치 1호는 이 재판을 '군사법정'에 회부하는 것을 가능케 했고, 긴급조치 4호는 "민청학련"을 1항에 명시하며 이들에게 "사형"을 내릴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대법원은 군사법정의 판결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였고, 긴급조치 1호와 4호에 규정된 대로 이들 가운데 8명은 1975년 4월 8일 사형 선고를 받았다. 사형은 18시간만에 집행된다. 그러나 이들을 사형으로 내몬 긴급조치는 전두환 정권 시절 뿐 아니라 법원에 의해 수차례 '위헌'임을 지적받아 왔다.


결국 2002년 피해자 유족 등은 '2차 인혁당 사건'과 관련해 재심 청구를 했고, 대법원은 2005년 형사소송법에 따라 재심 결정을 내렸다. 2007년 억울하게 죽은 8인은 33년 여만에 무죄 판결을 받게 된다. 이것이 1, 2차 인혁당 사건의 대략적인 개요다. 

   /박세열 기자

2012년 9월 11일 화요일

박근혜 인혁당 발언, 사법질서까지 부정하나


이글은 민중의소리 2012-09-10일자 기사 '박근혜 인혁당 발언, 사법질서까지 부정하나'를 퍼왔습니다.
"인혁당 판결 두 개"...야당·법조계 일제히 비판

ⓒ이승빈 기자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

'사법살인'의 대표적 예로 꼽히는 인민혁명당 재건위 사건 관련 "대법원 판결이 두 개"라는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의 발언이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역사인식'도 문제지만, 사법질서까지 부정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박 후보는 이날 오전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서 '인혁당 사건 피해자들에게 사과할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 부분에 대해선 대법원 판결이 두 가지로 나오지 않았냐"며 "앞으로의 (역사의) 판단에 맡겨야 되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 

'사람들의 의견이 서로 다르니 역사의 판단에 맡기자'는 것은 5·16과 유신 등의 사안에 대해 박 후보가 대응하는 고유 논리다. 이와 관련해서도 비판이 이어지고 있지만, 인혁당 사건의 경우 앞선 판결과 이를 '오심'으로 인정한 판결 두 가지를 대등하게 놓고 볼 수 있느냐는 데서 비판의 소지가 다분하다. 

한인섭 서울대 법대 교수는 이날 자신의 트위터에서 박 후보의 발언을 거론한 뒤, "1975년 사형판결에 대해 2007년에 재심으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무죄판결을 내렸다"며 "원심판결에 대해서는 사법부도 가장 오욕스런 판결로 반성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둘을 동격으로 놓고 보는 것은 모순이라는 얘기다. 

당시 인혁당 사건의 시발점이 됐던 '민청학련'(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 사건으로 투옥당했던 민주통합당 이해찬 대표도 기자들과의 오찬 자리에서 박 후보의 발언에 대해 "두 개의 판결이 있다고 해서, 한 번은 유죄, 한번은 무죄가 났다고 해서 그 중간이라고 말하는 정도의 법률 상식을 가지신 줄은 몰랐다"고 지적했다. 

이어 "본인이 의도한 것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평가가 두 개가 있을 수 있다는 말씀을 하려던 것 같은데, 그것은 우리 대법원에 대한 큰 모독이 될 수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 대표는 거듭 "이번에 난 판결은 앞의 것이 유죄가 아니고 무죄라는 것이다. 그래서 국가에서 배상을 수십억씩 해준 것 아닌가"라며 "대선후보로서는 큰 실언을 하신 것"이라고 밝혔다. 

정성호 민주당 대변인도 "말로는 법질서를 세우자며 위헌적인 유신을 옹호하고, 국민통합을 말하며 사법적 판단까지 부정하는 사람이 과연 대통령 자격이 있는지 묻고 싶다"고 몰아붙였다. 

이날 열린 김창종 헌법재판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도 박근혜 후보의 인혁당 발언이 도마에 올랐다. 김 후보자에 대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청문회 중 박영선 법사위원장이 '공직후보자로서 대법원의 판결이 2가지가 존재할 수 있다고 보나'라고 질문하자, 김 후보자는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최종적인 (재심) 견해가 최종 결론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답했다. 

인혁당 사건은 중앙정보부가 1974년 유신 반대 투쟁을 벌였던 민청학련의 배후로 '인혁당 재건위'를 지목, 이듬해 4월 8일 도예종 등 관련자 8명을 재판 종료 후 24시간도 안 돼 기습적으로 사형을 집행한 대표적인 '사법살인' 사건이다. 

2002년 대통령직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와 2005년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는 인혁당 사건이 조작된 사건이었음을 밝혔다. 

이에 인혁당 사건 피해자들은 재심을 청구했고, 2007년 1월 무죄가 선고됐다.

최명규 기자 press@vop.co.kr

2012년 7월 6일 금요일

‘5·16 미화’ 박효종-삼성출신 현명관…박근혜캠프 ‘보수본색’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07-06일자 기사 '‘5·16 미화’ 박효종-삼성출신 현명관…박근혜캠프 ‘보수본색’'을 퍼왔습니다.

홍사덕 공동선대위원장을 비롯한 박근혜 선거 캠프 관계자들이 지난 2일 오후 서울 여의도에 마련한 캠프사무실에 들러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왼쪽부터 홍사덕 선대위원장, 조윤선, 이상일 공동대변인, 최경환 총괄 본부장.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정치발전위원에 박효종 교수
뉴라이트 교과서포럼 대표 맡아
쿠데타 아닌 ‘혁명’…유신 찬양도

“박근혜 역사인식 한계 드러내
”새누리당 안에서도 ‘패착’ 지적

삼성-정치권 오간 현명관 발탁
‘경제 민주화’ 실천의지 의문 일어

박근혜 새누리당 의원이 5·16 군사 쿠데타를 ‘혁명’으로 표현한 뉴라이트 교과서를 편찬했던 박효종 서울대 교수를 5일 대선후보 경선 캠프의 정치발전위원으로 임명해 역사관 논란이 일고 있다. 또 삼성그룹 비서실 출신으로 정치권과 삼성그룹을 오간 현명관 전 삼성물산 상임고문도 포함시켜 경제민주화 실천 의지에 의문이 제기돼고 있다.박 교수는 이날 발표된 캠프 인선에서 정치발전위원으로 임명됐다. 이상일 캠프 대변인은 “정치발전위원회는 지난 4·11 총선 때부터 시작한, ‘과거의 잘못’과 단절하는 더 좋은 정치적 쇄신을 위해 구성됐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박 교수는 2006년 현대사 왜곡 논란을 일으켰던 뉴라이트 계열의 ‘교과서포럼’ 공동대표였다. 이 단체가 펴낸 한국 근현대사 최종 편집본은 5·16 군사 쿠데타를 ‘5·16 혁명’으로 표현하고 유신체제를 찬양하는 내용을 담았다. 교과서포럼은 “당시 한국 사회의 가장 중요한 국가적 과제인 산업화를 성공적으로 주도할 새로운 대안적 통치집단 등장의 계기가 된 사건으로 군사정부는 강한 추진력으로 경제발전을 성공적으로 주도했다”고 5·16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유신 역시 “권력구조적 차원에서 영도적 권한을 지닌 대통령의 종신 집권을 보장하는 체제인 동시에 행정적 차원에선 국가적 과제 달성을 위한 국가의 자원동원과 집행능력을 크게 제고하는 체제”라고 옹호했다. 경제개발 5개년계획을 주도한 경제기획원의 성공 요인에 관해선 “박정희 정부의 추진력 덕분”이라고 기술했다.반면 4·19 혁명은 ‘4·19 학생운동’이라고 표현하며 “이를 계기로 학생운동이 견제되지 않은 권력으로 등장하고 좌파가 학생 운동권을 장악하기 시작했다”고 평가절하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역시 ‘민주화항쟁’이라 표기했지만 중앙권력으로부터 소외된 광주지역의 분노가 누적된 것을 원인으로 꼽으며 “한국사회에 반미급진주의를 확산시키는 계기가 됐다”고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박근혜 새누리당 의원 대선 경선 캠프 구성도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보입니다)

박 교수는 최근 종북 척결을 내세운 우파 시민단체에도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그는 “종북 논란에 휩싸인 대한민국의 국회에서 종북세력을 척결하자”며 지난 2일 자유총연맹, 복지포퓰리즘추방 국민운동본부 등 보수성향 시민단체들이 꾸린 ‘자유민주국민연합’ 상임대표를 맡았다.정치권 안팎에선 박 교수 기용을 두고 박근혜 의원 역사관이 드러났다는 말이 나온다. 박 의원은 2007년 당내 대선후보 검증 청문회에서 “5·16은 구국 혁명이었다”며 “유신체제는 역사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는 생각이다. 다만 유신시대에 고통받은 분들에 대해서는 진심으로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말한 바 있다. 당내에서도 박 교수 기용은 패착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당의 한 관계자는 “역사 인식에 관한 박근혜 의원의 한계를 그대로 드러냈다”며 “5년이 지났지만 사람은 변하지 않는 것 같다. 걱정이다”라고 말했다.박 의원이 현명관 전 삼성물산 상임고문을 정책위원에 발탁한 것도 자신이 간판구호로 내세운 경제민주화와는 거리가 먼 인선이란 지적이 나온다. 현 고문은 2003년에는 전국경제인연합회 상근부회장을 지냈다. 전경련은 지난달 산하 연구원인 한국경제연구원 토론회에서 경제민주화의 근거인 헌법 119조2항을 삭제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현 고문은 2006년께부터 박 의원의 분야별 핵심 측근들로 구성된 전략회의 멤버로 참여했다. 경제 정책에서 현장과 실무를 아우른 인사라는 점이 평가됐다고 한다. 2007년 박 의원 경선 캠프에도 미래형정부기획위원장으로 참여한 바 있다. 현 전 고문은 삼성물산 회장에서 물러난 뒤 2006년 제주지사 선거에 나섰다가 낙선했고 2년이 채 안 된 2008년 5월 삼성물산 고문으로 삼성에 복귀해 기업 전략을 조언해왔다. 2010년 지방선거 때도 다시 제주지사에 도전했다가 낙선한 바 있다. 수차례 정치권과 삼성을 오간 것이다. 현 전 고문은 지난해 스톡옵션 행사로 263억원의 차익을 남겼다. 한 새누리당 관계자는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삼성에서 근무한 현 고문은 지금도 삼성과 깊은 연관이 있는 것으로 안다”며 “얼마 전까지 재벌의 고문이었던 그를 캠프 정책위원으로 넣고 어떻게 경제민주화를 하겠다는 건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또다른 한 의원도 “현 고문은 사실상 삼성의 비서실장이라고 불리는 사람으로 경제민주화와는 전혀 맞지 않는다”며 “정신없는 인사를 했다”고 말했다.기획조정특보로 임명된 최외출 영남대 교수 인선을 두고도 박 의원의 부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그림자를 지우지 못했다는 평이 나온다. 박 의원의 싱크탱크인 미래연구원 출신인 최 교수는 박 전 대통령의 새마을운동을 기리는 ‘글로벌새마을포럼’ 회장과 영남대 ‘박정희 리더십연구원’ 원장을 맡고 있다. 공보위원으로 임명된 김병호 전 의원은 17대 의원이던 2007년 12월 정치자금법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의원직을 상실했다.

성연철 기자 sychee@hani.co.kr

2012년 3월 15일 목요일

이영조 공천과 '산업화' 발언, 박근혜는 뉴라이트로 통하고 있다


이글은 민중의소리 2012-03-14일자 기사 '이영조 공천과 '산업화' 발언, 박근혜는 뉴라이트로 통하고 있다'를 퍼왔습니다.
[기고] 박근혜의 '뉴라이트' 품기, "독재 미화할 생각일랑 마라"

 ⓒ뉴시스 '한국전쟁전후 민간인피학살자 전국유족연합회'와 한국진보연대 등은 지난 2010년 12월27일 오후 서울 중구 진실화해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영조 진실화해위원장 퇴진'을 촉구하고 있다.

지난 12일 11시 참여연대 사무실에서 한국전쟁전후 민간인피학살자 전국유족회를 비롯한 시민사회단체가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이영조 전 진실화해를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위) 전 위원장의 전략공천을 강력히 규탄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14일 오후, 새누리당은 비난 여론에 못 이겨 이영조 전 위원장 공천을 취소했다. 이 두 사건의 중간에는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의 '산업화' 발언이 있었다. 일련의 과정은 박근혜의 그릇된 역사인식과 뉴라이트와의 관계를 알게 해주는 대목이다.

박근혜의 잘못된 역사인식, '유족 두 번 죽였다'

역사의 진실을 밝혀 과거의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고 화해를 통한 국민통합에 기여한다는 목적으로 신설된 진실위에서 이영조 전 위원장은 재직시 갖은 파행과 편향된 역사인식으로 진실규명을 명목으로 오십여년을 한결같이 살아온 유족은 두 번 죽이는 결정을 내린바 있다. 이영조 전 위원장을 새누리당이 전략공천했던 행위는 새누리당과 박근혜 위원장의 잘못된 역사인식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그간 일부 진보언론에서는 이영조 전 위원장의 5.18 폭동 및 제주 4.3 민중반란이라는 표현과 시각에 대해 보도했다. 그는 그동안 이승만의 치적을 찬양하는 극우적 발언을 서슴치 않았다. 이영조 전 위원장은 2011년 6월30일, 5년여 동안 끌고 오던 한국전쟁시기 민간인 학살문제에 대해 "'학살'은 인정하지만 유족이 그동안 이 사실을 알면서도 사법부에 소송을 제기하지 않아 소멸시효가 지났다"는 어이없는 발언으로 유족의 가슴에 또 한번의 절망을 안겼다. 그러나 사법부는 이영조 전 위원장의 입장을 뒤집고 국가공권력이 자행한 학살은 불가항력이었으므로 소멸시효가 없음을 인정했다. 

대법원 판결 이후 이영조는 보수언론을 통해 '본인의 결정문이 잘못됐다'라고 보도함으로서 그나마 현재는 울산보도연맹사건은 서울고등법원에 심리 중에 있다. 이런 역사인식이 없는 이영조의 발언들은 한국전쟁시기 민간인피학살 유족을 두 번 죽이는 행위였다.

이영조 전 위원장을 공천하려는 세력은 비무장. 비폭력상황에서 민간인을 무려 백만명 이상 학살한 이승만 정권을 신원하기 위해 유족회활동을 한 유족회간부를 5.16 군사 쿠데타 후 특별법으로 구속하고 간부 전원을 사형 및 10년형 이상을 선고했고, 유족들이 혼신으로 지켜온 유해를 불도저로 파괴했던 박정희의 만행을 유야무야 넘기려는 역사인식의 저급함을 보여주고 있다. 

ⓒ김철수 기자 새누리당 박근혜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은 13일 부산에서 열린 9개 지역민방 공동 초청토론회에서 "산업화 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피해를 입은 분들께 저는 항상 죄송한 마음을 가져왔다"고 말했다

박근혜의 '뉴라이트' 품기..."'독재정치' 미화할 생각일랑 마라"

이영조 전 위원장을 강남을에 전략공천하려고 했던 박근혜 위원장 및 유신잔당들에게서는 자신들이 저지른 과오를 합리화하려는 태도를 엿볼 수 있다. 박근혜 위원장은 지난 13일 부산 사상구에서 산업화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피해본 분들에 사죄한다며 어설픈 사과를 했다. 박정희 독재시대를 '산업화'라고 미화하는 데 앞장선 세력이 바로 '뉴라이트'다. 박근혜 위원장은 뉴라이트의 주장을 빌어 독재시대를 미화하려는 셈이다.

나는 그런 박근혜 위원장에게 박정희 독재정치하에서 희생된 분들, 그리고 한국전쟁전후 민간인학살과 인혁당, 아람회, 민족일보, 납북어부 간첩사건 등의 모든 과거사 문제와 정수장학회, 영남대학교 문제 등을 해결하고 사죄하는 진정성을 보여야 한다고 제안한다. 

역사인식이 바르지 못한 후보를 차기정권의 심부름꾼으로 공천한다면 새누리당은 100만 유족들은 철저한 응징을 기다려야할 것이다. 또한 잘못된 역사인식을 가진 뉴라이트 집단과 박근혜 위원장이 진정성 있는 대안을 제시하지 않을 경우 총선 및 대선 과정을 통해 끝까지 싸울 것임을 100만 유족의 이름으로 천명한다. 끝으로 박근혜 위원장은 여론에 떠밀려 공천을 취소하긴 했으나 진정성이 담긴 사과와 대책을 공약으로 제시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한국전쟁전후 민간인피학살자 전국유족회 대변인 이성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