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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9월 14일 금요일

표 보다 아버지? 박근혜 “사과는 사과로 받아들여라”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2-09-14일자 기사 '표 보다 아버지? 박근혜 “사과는 사과로 받아들여라”'를 퍼왔습니다.
[아침신문 솎아보기] 조선일보도 “늘 과거사 논란 만든 건 박근혜 자신”

인혁당 재건위 사건 판결이 두 개라는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의 역사인식에 일반인 뿐 아니라 새누리당 내부에서도 거센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심지어 14일자 조선일보도 “과거사 논란을 만든 건 늘 박 후보 자신”이었으며 “아버지와 딸의 굴레를 벗어야 한다”고 비판했다. “유신시대는 무엇으로도 합리화될 수 없다”는 지적이다.
그런데도 박 후보는 동아일보와 인터뷰에서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해야 한다는 비판에 대해 “사과를 사과로 받아들여야 한다”며 어깃장을 놓았다. 개인적으로 인혁당 사형수 유족에 사과하면서도 사형을 결정한 당시 판결이 잘못됐다는 대법원 재심판결에 대해서는 판결이 두 개라는 법률에도 맞지 않는 이중적 주장을 편 데 대한 아무런 반성이 없는 태도이다.
박 후보는 오는 추석을 앞두고 국민들에게 입장을 밝힐 것 같다는 뉴스도 있었다(한국일보).
다음은 14일자 아침신문 1면 머리기사 제목이다.

-경향신문 (새누리 중진들 ‘박근혜 역사인식’ 비판)
-국민일보 (새누리, 대검 중수부 폐지 추진)
-동아일보 (대선후보에게 듣는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 선출후 첫 인터뷰/“북 서해 경계 존중하면 평화수역 논의할 수 있다”)
-서울신문 (광화문~숭례문 꿈의 숲 만든다)
-세계일보 (9영화 한 편에…중동이 폭발)
-조선일보 (암으로 사망비율 처음으로 꺾였다)
-중앙일보 (이란 명의로 개설 기업은행 계좌서 1조 위장거래 정황)
-한겨레 (정부 취로사업만 바라보던 섬…이제 평화를 꿈꾼다)
-한국일보 (재벌가 자녀들 외국인학교 부정입학)

새누리 중진들도 박근혜 비판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의 인민혁명당 재건위 사건 발언 등에 대해 당내 중진·소장파 의원들이 강하게 비판하고나서 주목된다.
경향신문에 따르면, 5선 중진인 남경필 의원은 13일 기자들과 만나 “개인의 판단과 인식이 당 전체의 인식으로 오인될 수 있는 구조를 바꿔야 한다”며 “당내 토론이 먼저이고, 그것을 후보와 소통해서 하나로 모아가야 한다”며 “그럴 때 민주적인 정당, 개인이 아니라 당 전체를 생각하는 정당이라는 안정감을 주는데, 이것이 실종된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
인혁당 사건에 ‘두 개의 판결이 있다’는 박 후보의 10일 발언에 대해 남 의원은 “동의하지 않는다”며 “역사인식에 대해 개인적 판단으로 당의 입장이 정리되는 건 옳지 않다”고 말했다.

경향신문 9월 14일자 1면

유승민 의원도 이날 대구지역 중견 언론인 및 전문가 모임인 아시아포럼21 정책토론회에서 “5·16이 쿠데타라는 것은 상식이고 유신이 헌정질서를 파괴했다는 것에 많은 분이 동의하고 있다”며 “박 후보가 본인 생각을 국민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정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전날 장준하 선생의 타살 의혹을 제기했던 정의화 의원은 이날 트위터에 “지난 8월1일 이장으로 법의학자의 유골검사 결과 새로운 증거가 나왔으니 정부는 의지를 가지고 재규명 조사하는 것이 당연하다”며 “고인과 같이 민주 헌법을 위해 민주화 운동을 하던 중 의문사한 분의 사인에 대한 진실을 밝히는 것이 정부와 살아있는 우리의 의무가 아닐까”라고 적었다.
전날 홍일표 대변인의 사과 브리핑 번복 사건을 두고 한 친박 의원은 “전향적인 방향 전환을 건의한 사람들이 있었지만 박 후보의 태도가 확고하다”고 말했다.

표보다 아버지? “당이 바꿔보려 해도 박근혜 몰라서 하는 소리”

국민일보는 박 후보의 과거사 인식과 관련해 “박 후보가 이날 유가족 방문 의사를 밝혔지만 과거사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선 좀더 전향적인 입장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분위기가 강하다”며 “전태일재단 방문이 무산됐던 것처럼 입장 변화 없는 방문 추진은 무위로 끝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국민은 “이 때문에 당에서는 늦어도 추석 전 박 후보가 직접 입장을 밝히리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며 “대선 판도에 큰 영향을 미칠 추석 ‘밥상 민심’에서 적어도 과거사 논란이 확산되는 것만은 막아야 한다는 당의 절박함이 반영돼 있다. 그럼에도 박 후보가 입장 표명을 할지는 여전히 미지수”라고 분석했다.

국민일보 9월 14일자 3면

국민에 따르면, 박 후보는 정치 입문 후 줄곧 박 전 대통령과의 강한 일체감을 드러내 왔다. 1998년 대구 달성 보궐선거로 국회의원에 당선된 뒤 “아버지가 못다 한 뜻을 펼치는 데 조그만 힘을 바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99년 5월 김영삼 전 대통령이 박 전 대통령 시대를 비판하자 당시 한나라당의 미온적 태도를 비판하며 탈당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이런 그가 과거사 입장을 급격히 바꿀 경우 “여론에 떠밀렸다” “표를 의식했다”는 비판이 뒤따를 수 있다고 국민일보는 내다봤다.
국민일보는 박 후보 측 관계자의 말을 빌어 “당은 어떻게든 후보를 압박해 바꿔보려 하는데 후보를 잘 몰라서 그러는 것”이라고 전했다.

박근혜 “유족 동의하면 만나겠다” 유족 “대법원 판결 입장부터 밝혀야”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는 13일 “(인민혁명당 재건위 사건) 유가족분들이 동의하시면 제가 만나뵙겠다”고 밝혔으나 유족들은 대법원 판결에 대한 공식입장을 밝히면 만날지를 결정할 것이라고 답했다.
박 후보는 이날 강원 홍천 대명비발디파크에서 열린 새누리당 당원협의회 사무국장 연수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 사건의 피해자 유가족들을 직접 찾아가 사과할 의향을 묻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박 후보는 인혁당 사건에 대해 “전부터 제가 당시 피해를 입은 분들께 참 죄송하고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는 얘기를 많이 했다”고만 말했다.
그는 또 인혁당 사건에 대한 자신의 발언에 반발하고 있는 유족들에게 “오늘 어떤 기회가 있어서 제 생각을 말씀드리려고 했는데 어제 그런 차질(사과논평 관련 혼선)이 있었지 않았나”라며 “갑자기 이야기가 나오고 해서 어제 저녁에 제 생각을 대변인을 통해서 말씀드린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유족들은 이날 공식입장을 통해 “박 후보가 ‘유신헌법’과 ‘긴급조치’ 그리고 ‘1975년 4월8일 인혁당 재건위 대법원 판결’에 대한 공식입장을 밝히면 그에 따라 만남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유족들은 또 박 후보가 “전부터 피해를 입은 분들께 죄송하다는 뜻을 여러 번 밝혔다”고 한 데 대해서도 “지금껏 한 번도 (직접) 들은 적 없다”며 불쾌하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경향은 전했다.

근혜 “사과는 사과로 받아들여야…과거지향적” 변한 것 없네

중앙일보 9월 14일자 3면
이런 안팎의 변화에도 박 후보는 자신의 생각에 달라진 것이 없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박 후보는 13일 동아일보와의 단독인터뷰에서 “우리나라가 그동안 압축성장을 했는데 그 과정에서 긍정적인 면도 있었지만 굴절과 또 그림자도 있었다”고 밝혔다.
박 후보는 5·16군사정변과 유신에 이어 1975년 인민혁명당(인혁당) 재건위 사건 관련 발언을 놓고 벌어진 역사인식 논란에 “좋은 점에 대해서는 승계하고 계속 발전시켜 나가고 또 어두웠던 부분에 대해서는 상처를 치유하고 화해하면서 미래로 나가야 한다”면서 “앞으로도 계속 그런 방향으로 노력해가겠다”고 말했다.
유족에 대한 사과의 진정성을 묻는 야권의 공격에는 물러서지 않겠다는 뜻을 명확히 했다고 동아는 전했다. 박 후보는 “사과한 건 사과로 받아들이고, 더 갈등이 조장되지 않도록 해야 우리가 진정한 화해의 길로 갈 수 있다”면서 “우리 사회에서 과거 지향적인 얘기만 나오고 국민이 힘들어하는 현실의 문제와 미래의 얘기는 실종되다시피 한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박근혜 “정수장학회 이사진이 잘 판단해주길…논란 때문에 순수 취지마저 훼손”

동아와 인터뷰에서 박 후보는 2005년까지 이사장을 지낸 정수장학회 문제에 대해 “이사진이 잘 판단해 주셨으면 하는 게 제 개인적인 바람”이라고 말했다.
이 발언을 두고 동아는 “사실상 최필립 이사장의 조기 퇴진을 요청한 것으로, 박 후보가 야권에서 ‘장물’이라고 공격한 정수장학회의 처리 해법을 내놓은 것은 처음”이라며 “이에 따라 그간 사퇴를 거부해온 최 이사장이 어떤 선택을 할지가 주목된다”고 주장했다.
박 후보는 인터뷰에서 “정수장학회가 정치쟁점화하며 여러 논란과 억측에 휩싸여 있다. 논란이 계속되면서 장학회의 순수한 취지마저 훼손되고 있는데 장학회를 위해서도, 이사진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견해가 달라진 이유를 설명했다.
이에 앞서 그는 7월엔 “저는 이사장도 아닌데 아는 사람이니까 물러나라고 하면 이사회에서 ‘왜 간섭하느냐’고 할 수 있다”고 일축했었다.

조선일보도 박근혜 비판 “늘 논란 만드는 건 박근혜 자신”

박 후보의 역사 인식에 대해 조선일보도 쓴소리를 내뱉었다. 조선은 사설에서 “과거사 논란이 잦아들 만할 때마다 일반 국민의 역사 인식과 동떨어진 발언을 하면서 다시 불씨를 살려 놓고 있는 것은 박 후보 자신”이라고 비판했다.
조선은 “‘박정희 시대 18년’ 속에는 국민이 머리를 끄덕이는 빛나는 역사도 있고, 긍정 평가와 부정 평가가 엇갈리면서 박 후보 주장처럼 역사의 판단을 기다려야 할 대목도 있다”면서도 “그런가 하면 어떤 논리로도 합리화될 수 없는 어두움의 역사 또한 분명히 있다”고 지적했다.

조선일보 9월 14일자 사설

조선은 “친구들과 귓속말도 마음 놓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민주주의가 질식 위기를 맞았던 유신 시대, 그리고 ‘사형선고 18시간 만에 8명 전원 사형 집행’으로 유신 시대의 성격을 상징하는 2차 인혁당 사건 등은 어두움의 역사에 속한다는 게 일반 국민의 공감대”라며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는 아버지의 말에 모든 게 함축돼있다는 박 후보의 발언을 두고도 “박 후보의 유신에 대한 인식은 40년 전 박 전 대통령과 청와대 식탁에 마주 앉아 직접 들었던 ‘박정희식 유신관(維新觀)’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뜻”이라고 폭평했다.
이 신문은 “자연인 박근혜가 개인적으로 품고 있는 유신에 대한 생각은 쉽게 바꿀 수 없겠지만, 차기 대통령이 되겠다는 집권당 후보의 유신에 대한 공식 입장은 ‘아버지와 딸’이라는 개인사의 굴레를 뛰어넘어야 한다”며 “청와대 밖에서 공포와 두려움으로 유신 시대를 겪어냈던 국민이 유신 시대를 감싸고 도는 듯한 박 후보 태도를 어떻게 받아들이겠는가를 입장을 바꿔 생각해 봐야 한다”고 충고했다.

서울신문 “박근혜 역사 바로 봐야 미래 있다”

서울신문 비판에 나섰다.
박 후보의 역사인식에 대해 서울신문은 사설에서 “박 전 대통령의 공에 대한 평가는 받아들이면서 과에 대한 평가는 부정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자신의 역사 인식에 국민의 절반 이상이 동의한다는 박 후보의 말에 대해서도 “설사 그렇다고 하더라도 동의하지 않는 절반의 인식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특히 박 후보가 국민 대통합을 이루려 한다면 자신의 역사관에 동의하지 않는 절반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서울신문은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보자는 박 후보에 대해 “그러나 과거를 바로 보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한·일관계에서 적나라하게 경험하고 있다”며 “현재 대통령 후보로서 가장 많은 지지를 받고 있는 박 후보가 이처럼 과거의 논란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라고 개탄했다.

“죄없는 남편 사형판결에 울며 몸부림쳤다”

남편 우홍선씨(당시 46세)가 그 전달 ‘인민혁명당 재건위’ 사건에 연루돼 사형을 당한 강순희(80)씨는 13일 서울 종로구 4·9평화통일재단 사무실에서 가진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1974년 7월8일 남편에 대한 군사법원의 1심 판결로 ‘사형’이 나오자 재판정에서 울며 몸부림을 쳤다고 말했다. 강씨는 “남편이 ‘괜찮다, 괜찮다’고 나를 안심시키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강씨는 슬퍼하기보단 분노했다. 재판 중에 남편이 고문당했다는 얘기를 들은 강씨는 거리로 나섰다. 호소문을 써 시민들을 상대로 구명운동을 펼쳤고 기독교회관, 국제앰네스티 서울지부 등을 찾아 발언대에 서 인혁당 사건의 공개 재판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러다 결국 남산 중앙정보부로 끌려갔다. 중정 요원들은 48시간 동안 잠도 재우지 않으며 구명운동을 하지 말라고 압박했다. 강씨는 “호소문을 다시 쓰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고 ‘남산’에서 나왔는데, 곧바로 기독교회관에 가서 구명운동 연설을 했다”고 말했다.
남편의 얼굴을 한번이라도 보기 위해 강씨는 변호사와 접견 시간을 기다려 교도소 문틈으로 찾아갔다고 강씨는 전했다. 접견을 마친 변호사가 나올 때 강씨는 문틈으로 “담비야” 하고 막내아이의 이름을 부르면 남편은 개나리가 핀 마당 저편에서 흐릿하게 손을 흔들었다고 강씨는 회고했다.
1975년 4월8일 대법원에서 사형 확정 선고가 내려지자 강씨는 들고 있던 양산이 박살날 정도로 바닥을 치며 한참을 오열했다. 강씨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고 당시 심정을 전했다. 그래도 설마 죄 없는 사람을 죽이기야 할까 하는 한 줄기 희망을 갖고 다음날 재심 청구를 위해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갔으나 새벽에 남편의 사형이 집행됐다는 소식이 라디오에서 나왔다고 전했다.

박근혜 5·16 유신 등 추석 전 입장표명하나

한국일보에 따르면,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추석 연휴 전에 인민혁명당 사건은 물론 5ㆍ16쿠데타와 유신체제 등 과거사 문제 전반에 대해 전향적 입장을 표명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13일 알려졌다.
박 후보 측 핵심 관계자는 이날 “박 후보가 조만간 과거사 전반에 대해 차분하게 정리해 발표할 기회를 가질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고 한국일보는 전했다.

한국일보 9월 14일자 1면

이주영 대선기획단장이 최근 “아버지와 딸 관계가 아니라 국민의 눈높이에서 바라보고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도 안고 가야 한다”고 건의하자, 박 후보가 “내가 생각하는 바가 그것이다. 더 포용하는 방향으로 가도록 하겠다”고 답한 것으로 전해졌다고 한국은 보도했다.

안철수-박원순 비공개 회동, 대선 출마 터닦나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13일 오후 박원순 서울시장을 만나 자신의 대선 출마와 관련해 조언을 구하고 의견을 나눠 대선출마 선언을 앞둔 터닦기가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한겨레 등에 따르면, 안 원장 쪽 유민영 대변인은 “안 원장이 서울시청을 방문해 박 시장과 환담했다”며 “안 원장은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서울시의 새로운 변화에 대한 시민들의 기대를 전했다. 박 시장은 1년 전 (서울시장 후보 단일화) 상황을 회고하며 다시 감사의 뜻을 전했다”고 밝혔다.
유 대변인은 “안 원장이 대선 출마에 대한 입장을 밝히기에 앞서 지속적으로 많은 분야의 분들과 만나고 있고, 박 시장과의 만남도 이런 취지”라고 설명했다.
이날 만남은 지난해 9월 6일 서울시장 후보 단일화 1주년을 기념해 박 시장의 초청으로 이뤄졌으며, 둘의 대화는 배석자 없이 35분 동안 진행됐다. 기동민 서울시 정무수석은 “구체적인 대화 내용은 두 분 모두 이야기하지 않기로 한 것 같다”며 “대화를 마친 뒤 활짝 웃는 등 분위기는 매우 좋았다”고 전했다.
안 원장과 박 시장 쪽은 이달 초부터 단일화 1주년을 기념하는 회동을 하기로 뜻을 모으고 날짜를 조정해 왔는데, 만남이 잡힌 것은 바로 전날이었다. 안 원장 쪽의 한 인사는 “박 시장과의 만남은 ‘경청투어’를 시작하면서 초반에 공개적으로 만나는 것을 검토했지만, 여러 사정으로 날짜가 미뤄지고 비공개로 전환됐다”고 전했다.
박 시장은 회동 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정치적인 얘기는 일부러라도 나누지 않았다”고 했으나 안 원장이 민주당 대선후보 선출 이후 대선 관련 거취를 밝히겠다고 예고한 상태여서 자연스럽게 대선에 대한 얘기가 오갔을 것으로 보인다고 한겨레는 분석했다.
한겨레에 따르면, 안 원장과 가까운 정치권의 한 인사는 “안 원장이 출마를 앞두고 어떤 고민과 결심을 해야 할지, 어떤 점들을 염두에 둬야 하는지 가장 편하게 물어볼 수 있는 사람이 박 시장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박 시장은 ‘출마를 하기 위해서는 이런 점들이 준비돼야 한다. 만약 이러저러한 점들이 준비되지 않았으면 (독자출마를 고집하지 말고) 도와줘야 한다’는 정도로 이야기하지 않았을까 한다”고 말했다. 안 원장은 최근까지 만난 인사들에게 “제가 대통령이 될 경우 대통령직을 잘 수행할 수 있을지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한 바 있다.

“박근혜 조카 주가 조작 의혹”

민주통합당 장병완 의원은 13일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 후보 조카사위인 박영우 대유신소재 회장 가족의 주가조작 의혹에 “금융감독원이 대놓고 봐주기를 한 것”이라고 말했다.
장 의원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고위정책회의에서 “박 회장 가족이 대유신소재 주식을 매매하면서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주가조작 혐의에 권혁세 금감원장은 ‘문제가 없다’고 밝혔지만, 동일한 유형 사건에서 금감원이 검찰에 고발한 사례가 드러났다”고 말했다.
장 의원은 10일 국회 경제분야 대정부질문에서 “지난 2월 박 회장과 조카 한아무개씨, 이들 자녀 2명이 대유신소재의 전년도 실적 적자전환 공시 직전 주식 227만주(80억원 상당)를 대량매도한 것은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위법”이라고 지적했다.
권 원장은 “(전년도) 3·4분기 보고서에 적자 공시가 된 것으로 파악된다”며 “(실무자로부터) 큰 문제가 없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밝혔다.
장 의원은 고위정책회의에서 “3·4분기에 적자전환 공시를 했어도 연말 기준 실적의 적자전환 공시 직전에 대주주나 경영진이 주식을 매도한 ㅇ사와 ㅅ사는 미공개 정보 이용금지 위반으로 금감원이 검찰에 고발조치했다”며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고 권 원장의 해명을 반박했다. ㅅ사는 지난달 17일 최대주주 겸 회장이, ㅇ사는 6월27일 대표이사가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주가조작 혐의로 각각 검찰에 고발됐다.

새누리 대검 중수부 폐지 추진

새누리당이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를 폐지하고 검찰 경찰 국가정보원 국세청 공정거래위원회 등 5대 권력기관의 권한을 축소하거나 조정하는 방안을 추진 중인 것으로 13일 확인됐다고 국민일보가 보도했다. 이 신문에 따르면 당 정치쇄신특별위원회(위원장 안대희)는 이 같은 개편안에 대한 법률 검토를 진행 중이며 조만간 확정안을 발표할 계획이다.
정치쇄신특위 핵심 관계자는 이날 “특별감찰관제에 이은 특위의 두 번째 발표 내용은 권력기관 권한 조정안이 될 것”이라며 “대검 중수부 등 국민의 반대 여론이 높은 부처는 폐지를 추진하고 그 밖에 주요 권력기관의 일부 기구나 부서도 폐지 또는 권한 축소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고 국민일보는 전했다. 이 관계자는 권한이 집중된 곳으로 대검 중수부, 경찰대학,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 공정거래위원회, 법원행정처 등을 꼽았다고 국민일보는 보도했다. ‘국세청의 중수부’로 불리는 조사4국은 국세청장의 특명을 받아 특별 세무조사를 담당하고 있어 기업의 탈세 정보가 집중된 곳이다.

재벌가 아들 며느리 외국인 학교 부정입학

외국인 학교 입학 비리에 재벌가 아들과 며느리 등이 대거 연루된 것으로 알려져 파장이 예상된다.
서울신문 등에 따르면, 외국인학교 입학 비리 사건을 수사 중인 인천지검(부장 김형준)은 지난 11일부터 자녀를 외국인학교에 부정 입학시키기 위해 브로커에게 돈을 주고 자녀의 외국 국적 취득을 의뢰한 혐의를 받고 있는 학부모들을 집중 소환해 조사 중이라고 13일 밝혔다.
이 가운데는 재벌가 아들과 며느리 등이 대거 포함된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이날 국내 A그룹 전 부회장의 아들과 며느리를 불러 조사한 데 이어 14일에도 B그룹 전 회장의 아들 내외를 조사하기 위해 소환 통보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고 서울신문은 전했다. 부정 입학한 혐의를 받고 있는 재벌가 3·4세 자녀 중에는 그룹 계열사의 지분을 가진 소년 주식 부자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고도 했다.
검찰에 따르면 이들은 브로커에게 1인당 5000만~1억원씩을 주고 자녀가 온두라스와 브라질, 시에라리온 등 중남미와 아프리카 국가들의 국적을 취득한 것처럼 보이기 위해 위조한 현지 여권과 시민권 증서 등을 넘겨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넘겨받은 서류들은 자녀가 외국인 학교에 부정 입학하는 데 사용했다. 서울신문에 따르면, 일부는 실제로 그 나라에 3~4일씩 다녀온 적이 있지만 대부분은 해당 국가에 가본 적도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1차 소환 대상 학부모를 60여명으로 압축했으며, 매일 1~2명씩 차례로 불러 조사할 방침이다. 검찰은 우선 피내사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한 뒤 혐의가 인정되면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할 방침이다.
소환 대상 학부모 대부분은 서울 강남에 살고 있고 남편 직업이 투자업체 대표, 골프장 소유주, 병원장 등으로 부유층과 사회지도층에 속하는 것으로 파악됐으며 일부 학부모들은 검찰 조사에서 “브로커에게 속아서 진짜 외국 국적을 주는 줄 알았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고 서울신문은 보도했다.

조현호 기자 | chh@mediatoday.co.kr  

2012년 9월 13일 목요일

아버지 명예회복에 집착 박 ‘일그러진 신념’ 굳어져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09-13일자 기사 '아버지 명예회복에 집착 박 ‘일그러진 신념’ 굳어져'를 퍼왔습니다.

바뀌지않은 역사인식 왜?
 ‘인혁당 사법살인’ 재평가 주장
당시 퍼스트레이디 ‘면피성’
당 핵심·참모 고언 안 먹혀
“누구도 박후보 생각 못바꿔”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는 인혁당 사건과 관련해 11일 “대법원 판결은 존중한다. 법적으로 그렇게 된 것은 저도 인정한다”고 말해, 재심 결과의 법적 효력은 수용할 뜻을 비쳤다. 박 후보의 발언이 사법체계의 부정 즉, 국가 운영체제의 혼선을 초래한 문제점은 어느 정도 바로잡혔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1975년 인혁당 재건위 관련자에 대한 ‘사법살인’을 반성한다는 진정성은 전혀 없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실제로 박 대표는 이날 “(다른 증언 등) 그런 여러가지 얘기가 있고 하니까 그런 걸 다 종합할 적에 그것은 역사적으로 좀 판단할 부분이 아니냐”며 ‘역사 재평가’를 거듭 강조했다. 이는 결국 자신이 집권한 뒤 ‘또다른 해석’ 즉 ‘인혁당 재건위 사형 집행=합법’을 꾀하려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지적이 나온다. 역사학자인 전우용 박사는 자신의 트위터에서 “‘역사의 판단에 맡기자’는 말의 본뜻은 “뉴라이트의 판단에 맡기자’일 것”이라며 “그러면 인혁당 사법살인은 ‘불가피한 최선의 선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5·16과 유신에 대한 인식과 태도도 동일하다. 박 후보는 지난 7월 5·16에 대해 “불가피한 최선의 선택”(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토론회)이었다고 했다가 비판을 받자 며칠 뒤 “정상적인 것은 아니었다”고 한발 물러섰다. 그 뒤 5·16에 대해 “내가 만약 그때 지도자였다면 어떤 선택했을까 생각하면서 객관적으로 봐야 하지 않나”라며 거듭 ‘5·16 불가피론’을 주장했다. 박 후보의 역사 인식은 사실 바뀐 적이 한번도 없다. 5년 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때는 5·16을 “구국의 혁명”이라고 했으며, 인혁당 재심에 대해서는 “지난번에도 법에 따라 한 것이고, 이번에도 법에 따라 한 것인데 그러면 법 중 하나가 잘못된 것 아니겠느냐. 나에 대한 정치공세다”라고 말했다.박 후보의 기본 생각이 안 바뀌는 것은 왜곡된 신념체계 때문이라는 의견이 많다. 박 후보를 잘 아는 여권의 한 인사는 12일 “과거사에 대해 전향적인 태도를 보여야 한다고 5년 전에도 주변에서 많이 얘기했지만 요지부동이었다”며 “5·16과 유신이 없었으면 공산화가 됐을 것이라는 생각이 너무 강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박 후보는 정치권에 나오기 전부터 “유신 없이는 아마도 공산당의 밥이 됐을지도 모른다. …시대 상황과 혼란 속에 나라를 빼앗기고 공산당 앞에 수백만이 죽어 갔다면 그 흐리멍텅한 소위 민주주의가 더 잔학한 것이었다고 말할지 누가 알 수 있으랴”(1981년 10월28일 일기)라고 썼다. 민주주의는 흐리멍텅했고, 유신이야말로 구국이라는 인식이다.이런 생각은 사후 독재자로 비판받은 아버지의 명예회복 시도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박 후보는 일찍부터 “비범하신 아버지를 모셨고, 생전이나 서거하신 후나 평범하지 않은 관심과 혹독한 비난에 시달리셨기 때문에 그걸 바로잡는 일을 해야 했기 때문에 내 자신 또한 평탄하지 못한 길을 가고 있다”(1989년 11월5일 일기)며 ‘명예회복’을 별렀다. 박 후보가 1990년 아버지 박정희 찬양 영화인 ‘조국의 등불’을 만든 것도 이런 맥락이다.유신 통치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의도라는 지적도 있다. 새누리당의 한 의원은 “인혁당 판결은 박 후보가 퍼스트레이디를 한 이후인 1975년에 있었다”며 “그가 유신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아마도 그 시절 자기가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한 것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인혁당 사건을 ‘사법살인’으로 인정할 경우 자신에게 직접 책임이 돌아올 수 있다고 판단한다는 것이다.하지만 박 후보의 이런 인식에 대해서는 당 안팎에서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김종인 국민행복특별위원장은 “정치지도자로서 아버지를 객관화할 수 있어야 한다”고 여러차례 비판적인 견해를 밝혔다. 새누리당의 한 핵심관계자도 “위헌적인 권력 장악을 덮기 위해 내세웠던 공산화 방지라는 논리를 아직도 신봉하면서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지 않는 것은 낡은 사고”라며 “문제는 아무도 박 후보의 생각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종철 성연철 기자 phillkim@hani.co.kr

2012년 8월 28일 화요일

도올 "박근혜, 아버지와 단절하라…환관들을 정리하라"


이글은 프레시안 2012-08-28일자 기사 '도올 "박근혜, 아버지와 단절하라…환관들을 정리하라"'를 퍼왔습니다.
[도올과의 인터뷰②·끝] "'인간 박정희'와 '역사 속 박정희'는 달라"

도올 김용옥 한신대 초빙교수가 신간 (사랑하지 말자)에서 대선정국을 그리고, 주요 대선 후보들을 평가해 화제에 올랐다.

그와의 두 번째 인터뷰 주제는 박정희와 박근혜다. 도올은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가 높은 국민적 지지를 누리는 이유는 전적으로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의 후광 덕택이라고 지적했다. 박근혜 후보가 제대로 된 정치지도자가 되려면 아버지와의 비판적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도올은 우선 '인간 박정희'와 '역사 속의 박정희'를 달리 볼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성공을 위해 변절을 거듭한 박정희는 도덕적으로는 "무덤에 침을 뱉을 필요도 없는" 인간에 불과하지만, 그가 역사에 남긴 공은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근혜는 여전히 우리 역사를 바라보는 데 중요한 관점을 제공하는 아버지의 그늘에 가려져 있기 때문에 정치인의 기본적 자질을 찾아보기 힘들다고 도올은 언급했다. 그의 현재 위치를 고려할 때, 아버지가 남긴 유산 못지않게 부정적 그늘 또한 짙음을 지적한 셈이다.

이제 말기를 달리고 있는 현 정부 치하에서 나타나는 외교 문제와 정치 개혁 방향, 경제민주화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도올은 거침없이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중국과의 외교를 강화해야 하고, 그 연장선상에서 이번 독도 논쟁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특히 우리 사회가 미국에 대해 지나친 경외감을 품고 있다고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기독교에 대해서도 그는 "우리 사회에 해악이 많다"고 질타했다.

긴 내용을 보다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도올과의 인터뷰는 두 편에 걸쳐 게재했다. 인터뷰 진행은 박인규 (프레시안) 대표가 맡았다. 다음은 두 번째 인터뷰 전문.

▲"'인간 박정희'와 '역사 속의 박정희'는 달리 봐야 한다." ⓒ프레시안(최형락)

박정희가 곧 한국사… 어떻게 봐야 하나

프레시안 : 책의 3장 '조국' 부분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남로당원이었다가 동료들의 명단을 팔아 사형을 면하고 살아난 과정이라든가, 형의 친구였고 김일성의 밀사였던 황태성을 사형시킨 정황 등 그간 잘 알려지지 않았던 박정희 전 대통령의 행적을 이렇게 자세하게 풀어 쓴 글은 처음이 아닐까 싶네요.

도올 : 개인적으로 당시 정황을 소상히 알 수 있는 여건이었어요. 관계된 사람들을 많이 만나서 체화한 얘기였으니까요. 황태성 사건(박정희의 형 박상희와 함께 독립운동을 했으나, 5.16 군부 쿠데타 직후 북한의 밀사로 월남했다 체포됨. 박정희 대통령 당선 직후 간첩죄로 사형 당함. 편집자)에 대해 총체적인 보고서를 쓴 미국 사람도 나와 가까운 사이였어요.

프레시안 : 우리가 아직 박정희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아닌가요?

도올 : 나는 내 책을 박정희라는 인간을 비판하거나 찬양하려고 쓴 것이 아닙니다. 이해하려고 쓴 것이지요. 그 사람은 자기 내면의 이상(理想)을 끊임없이 배반하면서 변절의 삶을 살아 온 불쌍한 사람이지만, 그 변절은 개인의 차원에서만 끝나는 것이 아닌, 우리 민족 모두의 굴절이기도 해요. 그래서 '박정희의 망령' 운운하기 전에, 그의 집권 과정은 우리 스스로도 책임이 있는 우리의 역사라는 인식을 가져야 합니다. 나아가 박정희의 생애 자체를 우리 20세기 역사 전체의 축소판으로 조감하는 관점을 가져야 해요.

박정희는 20세기 우리 역사의 아픈 면들을 드라마틱하게 다 겪었죠. 일제 강점기의 죄악, 해방 이후 좌우 분열의 죄악, 이승만 정권 하에서의 부패, 군부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후 이어진 미국의 압력, 그리고 죽음에 이르기까지 그가 겪은 모든 과정이 우리 현대사의 아픈 면을 단적으로 나타내주고 있어요. 그 역사를 통해 우리가 반성할 게 너무 많아요.

프레시안 : 그럼에도 역대 대통령 평가하면 박정희는 언제나 압도적 1위입니다.

도올 : 그건 너무나 당연해요. 이승만하고 박정희를 비교해보세요. 이승만은 너무 형편없어요. 정통성 없는 자기 권력만을 유지하는 데 급급했지, 역사를 이끌어나가는 비전이 없었습니다. 그러한 이승만에 비한다면 박정희는 최소한 민족사를 도약시키려고 하는 비전이 있었어요. 박정희의 경제개발 정책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우리 경제발전은 국민들 노력 덕분이지 독재자 박정희의 덕분이 아니다', '당시 세계적 운세가 우리에게유리하게 돌아갔다'라고 말해도, 그러한 비판의 언사만으로 박정희 치세를 다 도매금으로 넘길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박정희의 군사독재가 인권을 억압하고 정당한 정치과정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할지라도, 그것과는 무관하게 대다수 국민은 박정희가 만든 역사에 대한 근원적인 가치 평가 기준을 갖고 있습니다. 박정희는 치밀한 계획으로 인프라를 구축해 국가를 근원적으로 격상시켰습니다. 그 이미지가 민중의 마음속에서 어떤 확고한 가치를 유지하고 있어요. 문제는 그 이후에 어느 누구도 그와 같은 스케일의 국가경영을 하지 못했다는 데 있습니다.

박정희의 그런 공까지 인정하고 그걸 극복할 수 있는, 근원적으로 새로운 정치를 할 생각을 해야 합니다. 어설프게 비판한다고 새로운 지도자상이 생겨나진 않아요.

프레시안 : 최근 고 장준하 선생의 죽음 정황에 대한 새로운 이야기들도 나오고 있습니다. 당시 민주화 운동하던 사람들이 박정희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란 힘든 일인 것도 사실입니다.

도올 : 그것도 너무 당연하지요. 박정희 시대에 저질러진 일들이 얼마나 흉악합니까. 우리 세대에 정신이 깨인 자들은 매일 자고 일어나면 '저 인간을 누가 어떻게 안 해주나'하는 간절한 기도 속에 살았어요.

장준하 선생 얘기도 아마 내가 (중앙일보)에 가장 먼저 썼을 겁니다. 제가 우리 집에 오신 함석헌 선생님한테 직접 생생하게 들었거든요.

사건이 난 1975년 당시 장준하 선생이 함석헌 선생한테 '이대로 올해를 무사히 넘기기란 힘들 것 같다. 우리가 뭔가 해봐야겠다. 막강한 유신 앞에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해도, 절망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니냐'라는 말을 했답니다. 함석헌 선생이 이런 장 선생의 이야기를 들으신 이후에 '저 사람이 뭔가 혼자 꾸미려나보다'는 생각이 들더래요.

실제 이날 대화 이후에 장준하 선생이 세 가지 행동을 취했습니다. 갖고 있던 대한민국 임시정부 태극기를 이화여대 박물관에 기증했어요. 그러고 나서 효창동의 김구 선생 묘소를 들르고, 자기 아버지 성묘를 했지요. 세 번째로 혼인신고만 하고 결혼식을 못 올렸던 부인과 망우리 상봉동 성당에서 미국인 변 신부의 집례로 가톨릭 혼배성사를 치렀습니다.

문제의 그날 산에 오르려는데, 옛날 잘 알고 지내다 한 동안 전혀 나타나지 않던 사람 둘이 나타나서 '산에 모셔다드리겠다'고 집에 찾아왔더래요. 그러고 나서 일이 발생한 거예요. 함석헌 선생이 소식을 듣고 바로 사고현장에 달려갔는데, 딱 보니 타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래서 그 분은 '장준하가 시청 앞 광장에 가서 분신자살이라도 하려 한 것 아니겠느냐. 당시 정보부에서 그런 분위기를 파악하곤 죽였을 거다'라고 추측하셨어요.

박정희 시대의 비극이 어디 장준하 하나뿐입니까. 인혁당 사건도 그렇고, 그 수많은 학생들이 당한 고초를 돌이켜보세요. 당시 나는 일본 유학생이었는데, 조총련이 운영하는 불고기집 가는 것도 엄청난 공포였어요. 조총련과 접촉만 했다 해도 간첩으로 몰리던 시대였으니까요. 박정희 시대 민중의 공포라는 것은 요새 사람 입장에선 상상도 못합니다.

프레시안 :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되는 것 보면서 '우리 국민 전체 도덕성이 마비됐다'고 개탄하는 지적이 많았습니다. 그게 바로 박정희 시대가 남긴 폐해라는 지적 또한 있고요.

도올 : 정확한 지적입니다. 박정희를 통해서 경제발전이 도덕성보다 중요하다는 이런 엉뚱한 논리가 만들어졌어요. 경제발전은 얼마든지 도덕적으로 이루어질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도덕적으로 못 이룩하는 이유는 개인의 욕심 때문입니다.

박정희는 이런 욕망의 화신이었어요. 권좌에 집착해 국가의 대간을 그르쳤어요. 이런 논리가 만들어진 근원은 조선왕조의 세조에게까지 올라갈 수 있습니다. 세조가 정권을 잡으면서 뭐가 되든 밀어붙이기만 하면 정의가 된다는 논리가 만들어졌어요. 그리고 지식인들의 변절이 정당화되었지요. 그것이 조선 지식인들의 자기모멸로 이어졌어요. 이런 대립구도가 조선 후기의 노론정치로 이어지고 그 맥락에 박정희도 있어요. 그리고 그걸 가장 극악한 형태로 구현한 게 바로 이명박 대통령이라고 봐야 돼요.

"박근혜, 아버지와 단절해라"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 박근혜는 물론 한국 정치의 거물이다. 그러나 박근혜에게서 박정희를 완전히 떼내기란 불가능한 것 또한 사실이다. ⓒ뉴시스

프레시안 : 전두환이나 이명박도 어떻게 보면 '박정희 2세'라고 말할 측면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지금 유력 대권 후보로 떠오른 박근혜는 아예 생물학적 2세이지요. '박근혜 현상', 어떻게 봐야 합니까?

도올 : 박근혜를 얘기하려면 박정희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세워야 합니다.

국가대사의 사실담론으로서의 박정희 문제와, 우리가 한 인간으로서 살아야 할 도덕적 당위성의 맥락에서 박정희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예요. 거시 담론 차원에서 박정희의 생애는 역사의 한 굴절로서 이해할 수도 있는 부분이지만, 개인 박정희의 인생은 그 자신이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고 했다지만, 침조차 뱉을 가치가 없는 인생이에요. 우리가 배워서는 아니 될 인생입니다. 위무불능굴(威武不能屈)하는 대장부의 인생은 아니지요.

그의 권력욕 하나로 인해 얼마나 많은 이가 피해를 겪었습니까. 경제발전 공을 이야기하지만 얼마든지 그것을 도덕적인 방식으로 할 수 있었어요. 국가를 사유화해 죽을 때까지 대통령 해먹겠다는 유신과 긴급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있었지요. '천황폐하'가 되려고 한 거예요. 그릇된 자기 욕망을 품었고 끊임없이 변절한 사람이기 때문에 박정희는 너무나 불행한 인간이고, 우리가 절대 긍정해선 안 될 인간이에요.

그렇다면, 박근혜는 어떤가. 박근혜는 이러한 박정희를 인지할 능력이 없어요. 자식은 아버지를 객관화할 수 없어요. 자식에게 부모는 개념화될 수 없는 느낌으로만 남지요. 박정희 삶의 주요 부분은 이미 박근혜가 태어나기 이전에 이뤄졌고, 박근혜의 삶과 박정희의 삶은 전혀 차원을 달리하는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정치가 박근혜' 이미지의 후광에 항상 박정희가 있다고 하는 것이 너무도 잘못된 것이지요.

박근혜는 정치가라고 하지만 독자적인 정치행위를 해본 적이 없는 인물이에요. 박정희는 인생을 걸었지만 박근혜는 몸을 사리기만 했어요. 우리 역사에서 실제적으로 긴 시간 동안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박근혜는 국민의 대의를 위해 정의로운 행위를 한 적이 없습니다. 4대강 때문에 우리 민족이 얼마나 앞으로 큰 피해를 입게 됐습니까. 그 피해를 예상한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처절하게 4대강 반대운동을 했는데도 박근혜는 뒷짐 지고 쳐다만 보고 있었어요. 모든 불의에 침묵으로 일관했습니다. 예전 당내 경선에서 대운하를 두고 '난센스'라고 열렬히 주장한 사람이라면, 그 이후에도 그 주장을 관철시켜야 했습니다.

만약 박근혜가 '이런 저열한 토목공사는 한국의 위상으로 볼 때 전혀 걸맞지 않으며 그것은 해선 안 된다'라고 발언했다면, 당장은 이명박과 불편한 관계가 됐을지 모르지만, 그 정의로운 발언 하나로 인해 대통령이 되고도 남았을 거예요. 그런데 박근혜에게서 단 한 번이라도 국민의 기억에 남을 정의로운 목소리가 있었던가? 없어요. 이건 정치가로서 일차적 자격 미달입니다.

프레시안 : 박근혜 후보에게 해주실 말씀이 있으신가요?

도올 : 아버지와 모든 관계를 단절해라. 스스로 독자적인 정치인이 돼라. 한 인간으로서 역사의 평가를 받아라. 그리고 주변 환관들을 다 정리해라. 이런 나의 소리와 무관하게 박근혜를 찍을 운명의 사람들은 박근혜를 찍을 거예요. 그러나 그들도 마음속으론 '이번엔 또 어떤 놈들이 5년 동안 설칠 거냐'고 체념하면서 찍을 겁니다.

아울러 이명박의 모든 부정부패를 척결해야 합니다. 반민특위가 좌절된 역사가 재현돼선 안 됩니다.

프레시안 : 비단 박근혜 후보뿐만 아니라 새 대통령에게 주어진 공통의 과제 같군요.

도올 : 맞아요. 이제 우리는 상식을 회복하고, 남북화해도 적극 추진해야 해요. 특히 낙후된 우리 교육 시스템을 리모델링하는 것도 필요하고. 이건 진보-보수와 관계없는 문제에요.

▲독도 문제는 한일 관계를 급랭시키고 있다. 과연 우리 역사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 이명박 대통령이 광복절을 닷새 앞둔 지난 10일 오후 전용헬기에서 독도를 내려다보고 있다. 이 대통령은 현직 대통령으로서는 헌정 사상 처음으로 독도를 방문했다. ⓒ뉴시스

"독도 문제, 차라리 잘 터졌다"

프레시안 : 에서도 남북관계의 중요성을 언급하셨죠. 새 정부가 지향할 남북관계는 어떤 방향이어야 한다고 보십니까?

도올 : 중국과의 관계를 본질적으로 회복해야 남북관계를 풀 수 있습니다. 아직 우리감정의 밑바닥에는 '짱꼴라'니 '되놈'이니 하는 편견이 자리 잡고 있어요. 괜히 중국을 깔봅니다. 외교 등 모든 문제에 있어서 중국을 미국과 동등하게 대접하지 않아요.

당장 주미대사보다 더 능력 있고 중후한 인물이 베이징에 가야 해요. 이런 것부터 실천하는 게 '본질적 회복'입니다. 중국 지도자들이 '남북을 통일시키는 게 우리에게 이득'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도록 중국과 긴밀한 관계를 가져야 합니다. 한때 이건희 회장이 '우리 민족의 미래는 중국에 달렸다'고 했는데, 단순히 기업의 중국진출에 관해서만 얘기한 게 아니에요. 중국 지도자와 한국 지도자가 상호 이해를 찾아내고, 인간적 유대를 맺어서 어떤 상황에서도 중국이 남한을 지지하게 해야 합니다. 시대를 읽을 줄 아는 사람에겐 매우 절박한 문제예요.

그래서 나는 대일관계에 균열을 낸 이명박의 이번 독도 발언이 차라리 잘한 짓이라고 생각해요. 조중동 등 보수 세력을 독도에 가둬버리고, 거기에 책임을 지게 만들면 돼요. 남북은 이 문제에 공동 대응하도록 하고, 거기에 중국의 지지까지 끌어내서 우리가 한미일 공조에 편향된 냉전질서를 청산하고 새 판을 짜야 합니다.

프레시안 : 우리는 미국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과연 가능할까요?

도올 : 남북관계 정상화의 핵심은 '맥아더 환상'에서 벗어나는 겁니다. 미국 덕분에 한국전쟁에서 이겼다는 것은, 이여송 덕분에 임진왜란에서 승리했다는 말 만큼이나 미친 환상이에요. 맥아더 동상 하나 처리하지 못하는 게 우리 민족사의 비극이에요.

프레시안 : 대선의 가장 큰 화두가 경제민주화입니다. 그런데 선생은 예전에는 대기업회장들과도 좋은 관계를 가졌고,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과의 이야기를 담은 (대화)란 책도 냈죠. 재벌이 불편하게 느끼는 경제민주화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도올 : 내가 경제학자는 아니니 구체적 처방을 내리진 못하겠지만, '경제학자가 경제를 제일 모른다'는 조순 선생의 말씀도 있으니 한마디 해보지요.

우리나라 대재벌 문제는 결국 잘못돼 온 우리 정치의 결과예요. 재벌 문제와 정치 문제는 분리될 수 없어요. 정치가 재벌을 매판자본으로 키웠어요. 재벌은 국가권력과 밀착해 비리를 저질러왔어요. 그래서 재벌이 자체적인 논리도, 도덕성도 갖추지 못하고 적나라한 독식의 지배체제만 추종하는 거예요. 자국민의 생활세계를 식민지화하는 데 광분하고 있어요.

오늘날 소위 30개의 대재벌이 이렇게 무지막지하게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반면, 너무도 도덕성이 없다는 것이지요. 공익을 위한 비전과 행위가 없어요. 이런 비정상적인 체제가 이어지다보니 재계 지도자들도 비정상이 돼 가는 거 같아요.

나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가급적이면 기업을 좋은 방향으로 휘몰아가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어요. 하지만 이젠 그런 희망을 버렸습니다. 골목상권까지 잠식하는 대기업은 대기업의 자격이 없습니다. 이제 한국에서 대기업은 투쟁의 대상이에요. 기업이 불의의 화신이라면, 앞으로 대기업을 타도하기 위해 정의로운 세력이 길거리에서 항거해야 할 역사적 국면이 올 수도 있어요.

▲"기독교는 우리나라 모든 불합리한 논리의 뿌리."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책에서 말씀하시고자 한 핵심은 '우리의 전통적 인간관과 세계관을 회복하자'는 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도올 : 정확합니다.) 그 과정에서 기독교 문제도 말씀하셨습니다. 과거 우리가 우리 문제의 해결을 위해 주체적으로 기독교를 수용했고, (같은 논리로) 언젠가는 주체적으로 뱉어내버릴 것이라고 하셨죠. 기독교가 우리 사회의 건강함을 유지하는데 별로 도움이 안 된다는 생각이신 것 같은데요.

예컨대 책에서 조선조 말, "기독교도들이 천당을 추구할 때 동학은 이 땅의 혁명을 주도했다"며 우리 전통사상을 높게 평가하셨죠. 또 "과학은 조선인을 개화시켰지만, 기독교는 조선인을 퇴화시켰다"고 지적하셨는데요. 특히 천주교 전도에 열심이었던 안중근 의사가 전도의 대가로 뮈텔 주교에게 대학 설림을 요청했으나 "조선인이 학문과 문장을 알게 되면 교를 믿는 일에 소홀하게 될 것"이라며 대학 설립을 거부했다는 얘기, 그리고 이후 안중근 선생이 천주교에 환멸을 느꼈고, 뮈텔 주교가 그를 파문했다는 얘기는 충격적이기까지 했습니다.

도올 : 기독교가 한국 역사에 공헌한 부분이 있어요. 교육, 의료, 근대적인 생각, 인간 평등관 등등을 가져다줬죠.

그런데 총체적으로 평점을 내 보면, 기독교는 이 땅에서 존립해야 할 이유를 상실해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모든 불합리한 논리의 뿌리가 기독교에서 나와요. 초월을 강조하고, 절대를 강조하고, 불변을 강조하고, 절대자에 대한 충성과 복종을 강요하는 이 모든 논리가 기독교의 폐해입니다. 기독교는 우리나라 사람의 모든 보수적 성향의 근원입니다. 우리 민족은 이처럼 격렬하게 절대자에게 귀의한 적이 없습니다. 절대는 자연이지, 초월적 존재자일 수가 없어요. 우리 민족은 언어와 사유를 기독교에게 빼앗긴 겁니다.

그러나 그러한 논리는 간단히 자멸할 겁니다. 니체는 신을 살해했지만 결국 미칠 수밖에 없었어요. 그의 존재의 혈관을 흐르는 피 전체가 하나님이었으니까. 그러니 피 전체를 갈아 치울 수는 없지요.

그러나 우리 민족에게 기독교는 살갗에 붙은 때를 씻어내는 정도의 노력이면 없앨 수 있는 겁니다. 200년의 어설픈 랑데부가 아직도 뿌리를 못 내렸어요. 우리가 기독교에 관해 어떤 담론을 하든, 그 담론이 서구인이 가진 담론의 깊이와 고뇌를 가질 수는 없어요. 우리 사회는 기본적으로 유교사회입니다. 모든 인간관계의 가치에 유교적 합리성이 99퍼센트 깔려 있어요.

우리나라에서 광포한 대형 기독교는 머잖아 자멸할 겁니다. 그리고 진정한 신앙을 추구하는 훌륭한 기독교 신앙인들이 살아남겠지요. 일본은 기독교 인구가 전체의 1퍼센트 밖에 안 되지만 존경스러운 사람들이 너무도 많아요.

프레시안 : 새로운 정치의 요체는 검찰과 언론을 바로 세우는 거라고 하셨습니다.

도올 : 우리나라에서 현실적으로 가장 무서운 권력 중심이 검찰이에요. 검찰하고 각을 세워봤자 되질 않아요. 노무현 대통령도 검찰을 제대로 다루지 못해 대의를 그르친 사람입니다. 검찰과 타협하지 않고 또 검찰에게 끌려 다니지 않는 정치적 역량이 있는 인물이 필요합니다. 검찰 안에도 정의로운 세력이 많아요. 그러니 이들을 통해 검찰을 정의롭게 만들고 검찰이 정의를 위해 협조하도록 만들면, 아무리 허약한 정치 세력이 집권하더라도 사회장악 능력을 가질 수 있겠죠.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게 조중동을 어떻게 다룰 거냐는 거예요. 이명박 대통령은 '종편'이라는 미끼 하나를 갖고 멋지게 조종했죠. 이제 그런 방식은 통하지 않아요. 조중동의 권력을 통제할 근원적인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정보다원화가 대세인 흐름으로 볼 때, 결코 어려운 일은 아니지요. 한 치의 양보도 있어선 안 돼요.

프레시안 : 젊은이들에게 한 마디 말씀 해 주시죠.

도올 : 지금 청춘이 가위에 눌려 있어요. 그냥 뛰어만 가면 되는데, 가위에 눌려서 제자리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습니다. 청춘은 깨어나기만 하면 뛰어나갈 수 있습니다.

인생이라는 것이, 목에 풀칠하는 게 그리 어렵지 않아요. 우리나라는 잘 사는 나랍니다. 그러니 사회 전선의 무가치한 전위에 나서려고만 하지 말고, 정의로운 삶을 여유 있게 살도록 노력하세요. 청춘의 역량을 조직하고, 투쟁하세요. 인생은 청춘의 꿈에서 시작해 비극의 해탈로 끝납니다. 꿈과 해탈을 연결하는 외나무다리가 모험입니다. 청춘의 생명은 오직 모험 속에서 유지되는 것입니다.

 /이대희(정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