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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0월 23일 화요일

‘아버지 시대’ 앞에 서면 왜 박근혜는 작아지는가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10-22일자 기사 '‘아버지 시대’ 앞에 서면 왜 박근혜는 작아지는가'를 퍼왔습니다.

=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가 21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새누리당사에서 정수장학회 논란에 대한 입장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기자회견 후폭풍 자질논란 재점화
 부일장학회 강탈 사실 부인
법원 판결까지 무시한 발언
과거사 사과 진정성 의문 키워선대위 ‘해법’ 건의했지만 묵살
회견내용 비서 4인방과만 논의
“비슷한 일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의 21일 정수장학회 관련 기자회견은 그가 안고 있는 ‘박근혜 문제’의 본질을 보여준다. 기자회견 직후, 당 안팎에선 대선 지지율 1위를 달리는 박 후보가 지도자로서 갖춰야 할 기본 자질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 잘못된 역사인식 여전 먼저, 국가공동체를 이끌 정치 지도자로서 공동체 역사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여전히 지니고 있다는 점이 문제로 꼽힌다. 박 후보의 회견 기조는 고 김지태씨가 설립한 부일장학회를 정부에서 강압적으로 빼앗은 것이 아니라, 5·16 군사쿠데타 이후 부정부패 혐의로 구속된 김씨가 구명을 위해 스스로 헌납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박정희 전 대통령이나 당시 정부가 잘못한 건 없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국정원 과거사위원회 조사 결론뿐 아니라 1심 재판부도 지난해 “김씨가 국가의 강압에 의해 5·16장학회에 주식을 증여하겠다고 의사표시를 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판결했다. 새누리당 선거대책위원회 고위관계자는 “과거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미래로 가자’고만 하면 설득력이 있겠느냐”며 “박 후보의 역사인식과 판단력에 국민이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게 됐다”고 말했다.박 후보의 이런 그릇된 역사인식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는 정계에 들어온 이후 최근까지도 5·16과 유신 등에 대해 줄곧 “구국의 결단”, “불가피한 최선의 선택”이라고 말해왔으며, 사법살인으로 비판받는 인혁당 재건위 사건에 대해서도 “두 개의 판결이 있다”며 국가범죄란 사실을 부인했다. 그러다 지지율이 크게 떨어지자, “5·16과 유신, 인혁당 등은 헌법가치가 훼손되고 대한민국의 정치발전을 지연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며 처음으로 사과했다.하지만 이번 기자회견으로 박 후보의 과거사 사과가 정치적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일시적 말바꾸기 아니었느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새누리당 재선의원은 “지도자라면, 아버지와 자신의 잘못도 객관화할 수 있어야 하는데, 박 후보는 박정희 시절 문제만 나오면 무조건 방어적으로 임한다”며 “아버지 명예를 회복하고자 하는 생각이 강한 탓인지, 자신에 대한 객관화 능력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 공적인 의사결정 구조 부재 또한 이번 정수장학회 기자회견 과정을 통해 박 후보의 의사결정 구조가 공적 시스템을 외면한 채 지나치게 폐쇄적으로 이뤄진다는 점이 또다시 드러났다. 새누리당 선대위는 내부 논의를 거쳐 정수장학회 문제에 대한 해법을 마련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해법은 박 후보에게 전달됐지만 논의가 이뤄지지 못했다. 박 후보가 “나한테 맡겨달라”고 잘라버렸기 때문이다. 여권 핵심관계자는 “선대위가 박 후보에게 올린 건의안에는 최필립 이사장 등 이사들의 전원 사퇴와 재단 명칭 변경, 장학회의 공익성 강화 등 국민의 눈높이에 맞춘 내용들이 다 들어 있었다”며 “박 후보가 저렇게 발표하니 말릴 방법이 없지 않으냐”고 말했다.주요 정책이나 정치적 사안에 대한 입장이 당의 공식적인 회의 등에서 결정되지 않고 박 후보가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구조다. 박 후보를 잘 아는 한 초선의원은 “후보와 선대위 관계자들이 모여 토론을 하면 많은 문제들이 사전에 걸러질 텐데 후보가 토론 자체를 좋아하지 않는다”며 “앞으로도 얼마든지 비슷한 사례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김세연 의원도 “박 후보가 의사결정을 할 때 당 공식기구를 통하지 않고 있다”며 “앞으론 당 공식기구의 결정이 후보 입을 통해 나오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 비서 4인방에 의존한 비선정치 이재만, 이춘상, 정호성, 안봉근 등 ‘비서 4인방’이 박 후보를 둘러싼 비선정치의 실상도 다시 불거졌다. 새누리당 당직자는 “박 후보는 국회의원 등 다른 사람은 모두 자기 정치하느라 믿을 수 없는 사람이고, 4인방만이 자신을 위해 헌신한다는 생각이 너무 강해 이들과만 상의한다”며 “이러다 보니 소통이 안 되고 문고리 권력이 정치를 흔드는 비정상적인 상태가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이번에도 기자회견 직전까지 비서실 4인방을 제외하고는 선대본부장, 상황실장, 대변인 등 선대위 지도부 어느 누구도 회견 방향이나 내용을 몰랐다. 회견 뒤 선대위 관계자가 ‘왜 박 후보가 법원 판결을 잘못 말하게 했느냐’고 비서실에 항의하자, 한 보좌관은 “법원 판결이 그렇지 않느냐”며 박 후보와 똑같은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당내에서는 문고리 권력 퇴진론이 다시 강하게 나오고 있다. 정우택 최고위원은 “공식라인이 아니라 비서 4인방이 했다면 두드려야 한다”고 말했다. 선대위 핵심관계자도 “문고리 권력들이 기초적인 사실조차 틀리게 전달해 사태가 악화됐다”며 “후보와의 소통을 막고 있는 측근들이 물러나는 게 급선무”라고 말했다. 지난번 당 쇄신 파동 때 최경환 비서실장이 사퇴하고, 이한구 원내대표가 2선으로 물러났지만 당내의 온갖 요구에도 박 후보는 비서 4인방에 대해선 아무런 조처를 취하지 않았다. 이런 당내 요구를 ‘권력투쟁’이라고 규정한 바 있는 박 후보가 결국 비서 4인방을 물리치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여전히 많다.

김종철 기자 phillkim@hani.co.kr

2012년 10월 8일 월요일

“장준하 의문사 진상규명 없이 과거사 사과 명분 없다”


이글은 민중의소리 2012-10-07일자 기사 '“장준하 의문사 진상규명 없이 과거사 사과 명분 없다”'를 퍼왔습니다.
장준하 선생 천도재 열려...참가자들 “진상규명 꼭 해야”

ⓒ양지웅 기자 6일 오후 경기도 포천 약사계곡 고 장준하 선생 의문사로 발견되었던 현장에서 '고 장준하 선생 천도재 및 의문사 진상 규명 촉구 법회' 참가자들이 추모재를 올리고 있다.

“박정희 정권은 경제를 발전한다는 명분으로 한일 역사문제를 팔아 먹었다. 박근혜 후보는 (과거에) 집착하지 말고 미래로 가자고 한다. 그들의 논리라면 우리는 일본의 만행에 대해 입도 뻥긋할 수 없고 일본에게 배상하라는 소리도 못한다. 잘못한 사람들이 와서 무릎꿇고 용서를 구해야 피해자도 용서해 줄수 있고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는 것이다. 진실은 감출 수는 있어도 없앨 수는 없다”-명진 스님

2012년 10월 6일. 37년 전 장준하 선생이 의문사를 당했던 곳과 불과 3km가량 떨어진 포천시 백운산 흥룡사에서 장 선생의 극락왕생을 바라는 천도재가 열렸다. 

천도재는 죽은 이의 넋을 극락으로 보내기 위한 불교의식이지만, 정작 이날 흥룡사에 모인 400여명의 참가자들은 평생 동안 조국의 독립과 민주화를 위해 헌신한 장 선생의 정신을 더 뚜렷하게 가슴에 새기며 진상규명을 촉구했다. 

ⓒ양지웅 기자 고 장준하 선생의 장남인 장호권 씨가 6일 오전 경기도 포천 백운산 흥룡사에서 열린 '고 장준하 선생 천도재 및 의문사 진상 규명 촉구 법회'에서 유족 인사말을 하고 있다.

같은 시대 너무도 다른 삶을 살았던 장준하와 박정희

장준하 선생의 장남인 장호권씨는 “이렇게 많은 분들이 아버지의 넋을 편안하게 해드리려고 오신 점에 대해 너무 감사하다”면서도 “아직 아버지는 할 일이 남아 있으시기 때문에 당분간 이승에 머물고 계실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대선에서 국민들이 얼마나 현명한 선택을 한다면 아버지도 그 때서야 편안하게 쉬실 것 같다”고 덧붙였다. 

직접 참석하지는 못했지만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선후보는 추도사를 통해 “일제의 악재가 극에 달았을 때 이 땅의 한 젊은이는 혈서를 쓰고 일본 천황에게 충성을 맹세했고, 다른 젊은이는 강제징병으로 끌려갔지만 탈출해 조국회복을 위한 광복군이 됐다”며 “장준하 선생과 박정희 전 대통령의 너무나 달랐던 선택이 우리 근대사를 규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이 땅의 진정한 화해와 통합을 위해서는 진상규명이 돼야 한다”며 “장준하 선생님께서 국민들 앞에 구멍 뚫린 백골을 보여 준 것은 우리들에게 새로운 출발을 시작하라는 계시”라고 주장했다. 

ⓒ양지웅 기자 명진스님이 6일 오전 경기도 포천 백운산 흥룡사에서 열린 '고 장준하 선생 천도재 및 의문사 진상 규명 촉구 법회'에서 장준하 선생의 제단에 분향하고 있다.

“장준하 의문사 관련 보고서는 70년 비공개”

이날 천도재 참가자들은 장준하 선생에 죽음에 대한 진상규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2003~2004년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관이었던 고상만 씨는 “위원회에서 장준하 선생님 의문사에 대해 ‘진상규명 불능’이라고 결정한 것은 결코 실족사를 인정한 것이 아니다”라며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에 차후 조사를 위해 그와 같은 결정을 내렸던 것”이라고 강조했다.

고씨에 따르면 진상규명위원회는 7명의 표결로 인해 결과가 결정된다. 장준하 선생 의문사의 경우 4명이 ‘진상규명 불능’에 손을 들었고, 3명이 인용(공권력에 의한 타살을 인정)에 손을 들어 결국 ‘진상규명 불능’이 됐던 것. 이후 진실화해위원회의 추가조사가 예정돼 있었기 때문에 진상조사 불능 결과를 내렸다는 것이 고씨의 설명이다. 

고씨는 또 “조사를 하는 동안 당시 조난자료 등을 해당 부서로부터 협조받지 못했다”며 “왜 이 사건이 벌어졌고 어떤 경위로 진행 됐는지 반드시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주통합당 임수경 의원 역시 “국정감사에서 고상만 전 조사관을 비롯해 유족들과 김용환(장준하 선생 시체 최초 목격자)씨를 증인으로 신청했지만 새누리당 의원들이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며 “장준하 선생님 의문사에 대해 진상을 규명할 수 있는 특별기구 설치와 특별법을 만들어 진실과 정의가 바로 설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양지웅 기자 고상만 전 장준하의문사위원회 담당조사관과 임수경 민주통합당 의원등이 6일 오후 경기도 포천 약사계곡에서 고 장준하 선생이 의문사로 발견되었던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이곳은 지난 1975년 추락사고를 당한 고 장준하 선생을 목격자 김용환 씨가 발견한 곳 알려져 있다.

“현장 와보니 타살이라는 확신이 든다”

점심 공양을 마친 참가자들이 발걸음을 분주하게 옮긴 곳은 바로 장준하 선생이 사망한 백운산 약사계곡이었다. 약사계곡으로 들어가는 길은 밧줄에 의지해 지나가야 할 정도로 좁고 험난했다.

30여분의 산행길 끝에 마침내 장준하 선생의 시체가 놓여져 있던 바위가 눈 앞에 나타났고, 그 옆에는 ‘장준하 선생님 원통히 숨지다’라는 나무 푯말이 덩그러니 세워져 있었다. 

고상무씨는 “장 선생의 시신을 최초로 목격했다는 김용환씨의 주장과는 달리 저는 장 선생이 산행을 하지 않았다고 본다”며 “장 선생이 일행들과 헤어진 시간이 낮 12시였고 시체로 발견된 시간이 오후 1시였는데, 당시 몸이 좋지 않았던 장 선생이 1시간 만에 군인 2명과 샌드위치를 먹고 정상에 도착했다가 등산로도 아닌 곳으로 내려오신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어 “전문산악인도 시험을 해봤지만 도저히 불가능한 시간”이라고 강조했다.

명진 스님 역시 “이 현장에 와보니 타살이라는 확신이 든다”며 “장 선생님이 우리에게 진실을 밝히라는 역사적 소명을 짊어준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편 행정안전부는 지난 4일 유족들이 요청한 장준하 의문사 재조사에 대해 "재조사를 할 수 있는 법적 권한을 가진 기구가 없다" 며 재조사를 하지 않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양지웅 기자 명진 스님이 6일 오후 경기도 포천 약사계곡의 고 장준하 선생이 의문사로 발견되었던 현장에서 고 장준하 선생의 의문사 진상규명을 촉구하고 있다.

ⓒ양지웅 기자 임수경 민주통합당 의원이 6일 오후 경기도 포천 약사계곡의 고 장준하 선생이 의문사로 발견되었던 현장에서 장준하 선생을 추모하며 제단에 술을 올리고 있다.

ⓒ양지웅 기자 장준하 선생의 장남이 장호권 씨가 6일 오전 경기도 포천 백운산 흥룡사에서 열린 '고 장준하 선생 천도재 및 의문사 진상 규명 촉구 법회'에서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양지웅 기자 고상만 전 장준하의문사위원회 담당조사관이 6일 오전 경기도 포천 백운산 흥룡사에서 열린 '고 장준하 선생 천도재 및 의문사 진상 규명 촉구 법회'에서 장준하 선생의 의문사에 대한 진사규명을 촉구하고 있다.

김대현 기자 kdh@vop.co.kr

2012년 9월 25일 화요일

[사설] 박근혜, 행동으로 과거사 인식 변화 진정성 보여야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09-24일자 사설 '[사설] 박근혜, 행동으로 과거사 인식 변화 진정성 보여야'를 퍼왔습니다.

과거사 문제에 대해 요지부동의 태도를 보여온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결국 뒤로 물러섰다. 박 후보는 어제 기자회견을 자청해 “5·16, 유신, 인혁당 사건 등은 헌법 가치가 훼손되고 대한민국 정치발전을 지연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생각한다”며 “이로 인해 상처와 피해를 입은 분들과 그 가족들에게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박 후보가 뒤늦게나마 박정희 시대가 우리 헌정사와 민주주의에 끼친 폐해를 인정하고 피해자들에게 공식 사과한 점은 평가할 만하다. 특히 전임 대통령의 딸이 아니라 선거에 나선 공직 후보의 입장에서 아버지 박 전 대통령의 과오를 솔직히 인정한 것은 진일보한 면이 있다. “박 후보가 최선을 다했다”는 새누리당의 평가처럼 박 후보로서는 결코 쉽지 않은 고민의 결과일 것이다.하지만 박 후보의 노력을 흔연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기에는 찜찜한 구석이 없지 않다. 누가 봐도 박 후보의 이날 회견은 ‘두 개의 인혁당 판결’ 발언 등으로 지지율이 크게 추락한 데 따른 응급처방의 인상을 피하기 어렵다. 만약 지지율이 고공행진을 계속했더라도 이런 회견이 나왔을까 하는 질문을 해보면 답은 더욱 명확해진다.결국 문제의 초점은 박 후보의 진정성 여부로 모아진다. 무엇보다 짤막한 기자회견 하나로 과거사 문제에 대한 논란을 잠재우기에는 박 후보의 과거 숱한 발언들과 이번 발언 사이의 간격이 너무나 아득하다. 그런데도 박 후보는 어제 기자회견에서 이런 간극을 메우려는 최소한의 노력도 하지 않았다. ‘비행기 시간’을 이유로 기자들의 질의응답도 받지 않고 원고만 읽고 떠난 것부터 실망스럽다.박 후보가 ‘대통합’을 강조하면서 “국민대통합위원회를 설치해 국민의 아픔을 치유하겠다”고 말한 대목도 일방적이라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사실 과거사의 상처와 아픔을 치유하기 위한 기구는 지난 정부 시절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등이 이미 있었다. 하지만 이런 과거사위원회를 끊임없이 비판하고 조사 권한을 약화시키려 한 것은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이었고, 박 후보 역시 이 대열에 앞장섰다. 가해자가 ‘시혜적 대통합’을 하겠다는 오만한 생각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진정한 통합은 요원하다.박 후보가 “과거와 현재가 충돌하면 미래가 없다. 과거에서 미래로 가자”고 말한 대목도 마찬가지다. 과거의 좌표가 잘못되면 미래의 항로도 어긋난다. 국가지도자의 과거사 인식이 중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럼에도 박 후보는 과거사 인식 문제가 불필요한 정치논쟁이라는 사고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박 후보는 자신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사람들을 탓할 게 아니라 스스로 진정성을 증명해 보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멀리 국민대통합위원회까지 갈 것도 없이 당장 실천 가능한 일부터 행동에 옮기는 것이 순서다. 고 장준하 선생 의문사 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한 재조사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도 그 하나다. 박 후보의 진정성을 판단할 사람은 결국 유권자들이다.

2012년 9월 24일 월요일

"박근혜,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논란 잠재우려"


이글은 노컷뉴스 2012-09-24일자 기사 '"박근혜,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논란 잠재우려"'를 퍼왔습니다.
박근혜 대선 후보 과거사 기자회견 관련 지적


새누리당 김재원 대변인이 박근혜 대선 후보의 정치 입문 배경을 "아버지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라고 밝히면서 박 후보의 과거사 사과 기자회견에 재를 뿌린 셈이 됐다.

김 대변인은 23일 대변인으로 임명된 직후 일부 기자들과의 저녁식사 자리에서 "박 후보가 정치를 하는 것은 아버지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민주통합당은 24일 박근혜 후보의 사과 기자회견이 끝나자마자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이 박근혜 후보의 진정한 의중"이라고 지적했다.

따라서 박 후보의 이날 사과도 "대통령이 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잠시 전향적인 입장을 밝혀 논란을 잠재우겠다는 것으로 의심될 수도 있는 말"이라고 봤다.

박용진 대변인은 "마치 주가하락을 막기 위해 경영상 긴급조치를 취하는 것처럼 지지율 하락을 막기 위한 정치공학적 태도로서 일종의 위장사과에 불과하다"고 혹평했다.

이와 관련해 민주당은 김 대변인이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때부터 박근혜 후보의 대변인을 지낸 최측근으로 박 후보의 의중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소위 친박성골이다"고 설명했다.

한편 김 대변인은 이날 YTN라디오에서 "과거 박 후보께서 정치에 입문할 때 그런 이야기가 있었다는 것은 저도 듣고 있다"며 "그러나 지금 상태에서 박 후보의 정치목적이 그렇다는 것은 언어도단"이라고 주장했다.

CBS 조근호 기자

2012년 9월 14일 금요일

표 보다 아버지? 박근혜 “사과는 사과로 받아들여라”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2-09-14일자 기사 '표 보다 아버지? 박근혜 “사과는 사과로 받아들여라”'를 퍼왔습니다.
[아침신문 솎아보기] 조선일보도 “늘 과거사 논란 만든 건 박근혜 자신”

인혁당 재건위 사건 판결이 두 개라는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의 역사인식에 일반인 뿐 아니라 새누리당 내부에서도 거센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심지어 14일자 조선일보도 “과거사 논란을 만든 건 늘 박 후보 자신”이었으며 “아버지와 딸의 굴레를 벗어야 한다”고 비판했다. “유신시대는 무엇으로도 합리화될 수 없다”는 지적이다.
그런데도 박 후보는 동아일보와 인터뷰에서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해야 한다는 비판에 대해 “사과를 사과로 받아들여야 한다”며 어깃장을 놓았다. 개인적으로 인혁당 사형수 유족에 사과하면서도 사형을 결정한 당시 판결이 잘못됐다는 대법원 재심판결에 대해서는 판결이 두 개라는 법률에도 맞지 않는 이중적 주장을 편 데 대한 아무런 반성이 없는 태도이다.
박 후보는 오는 추석을 앞두고 국민들에게 입장을 밝힐 것 같다는 뉴스도 있었다(한국일보).
다음은 14일자 아침신문 1면 머리기사 제목이다.

-경향신문 (새누리 중진들 ‘박근혜 역사인식’ 비판)
-국민일보 (새누리, 대검 중수부 폐지 추진)
-동아일보 (대선후보에게 듣는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 선출후 첫 인터뷰/“북 서해 경계 존중하면 평화수역 논의할 수 있다”)
-서울신문 (광화문~숭례문 꿈의 숲 만든다)
-세계일보 (9영화 한 편에…중동이 폭발)
-조선일보 (암으로 사망비율 처음으로 꺾였다)
-중앙일보 (이란 명의로 개설 기업은행 계좌서 1조 위장거래 정황)
-한겨레 (정부 취로사업만 바라보던 섬…이제 평화를 꿈꾼다)
-한국일보 (재벌가 자녀들 외국인학교 부정입학)

새누리 중진들도 박근혜 비판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의 인민혁명당 재건위 사건 발언 등에 대해 당내 중진·소장파 의원들이 강하게 비판하고나서 주목된다.
경향신문에 따르면, 5선 중진인 남경필 의원은 13일 기자들과 만나 “개인의 판단과 인식이 당 전체의 인식으로 오인될 수 있는 구조를 바꿔야 한다”며 “당내 토론이 먼저이고, 그것을 후보와 소통해서 하나로 모아가야 한다”며 “그럴 때 민주적인 정당, 개인이 아니라 당 전체를 생각하는 정당이라는 안정감을 주는데, 이것이 실종된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
인혁당 사건에 ‘두 개의 판결이 있다’는 박 후보의 10일 발언에 대해 남 의원은 “동의하지 않는다”며 “역사인식에 대해 개인적 판단으로 당의 입장이 정리되는 건 옳지 않다”고 말했다.

경향신문 9월 14일자 1면

유승민 의원도 이날 대구지역 중견 언론인 및 전문가 모임인 아시아포럼21 정책토론회에서 “5·16이 쿠데타라는 것은 상식이고 유신이 헌정질서를 파괴했다는 것에 많은 분이 동의하고 있다”며 “박 후보가 본인 생각을 국민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정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전날 장준하 선생의 타살 의혹을 제기했던 정의화 의원은 이날 트위터에 “지난 8월1일 이장으로 법의학자의 유골검사 결과 새로운 증거가 나왔으니 정부는 의지를 가지고 재규명 조사하는 것이 당연하다”며 “고인과 같이 민주 헌법을 위해 민주화 운동을 하던 중 의문사한 분의 사인에 대한 진실을 밝히는 것이 정부와 살아있는 우리의 의무가 아닐까”라고 적었다.
전날 홍일표 대변인의 사과 브리핑 번복 사건을 두고 한 친박 의원은 “전향적인 방향 전환을 건의한 사람들이 있었지만 박 후보의 태도가 확고하다”고 말했다.

표보다 아버지? “당이 바꿔보려 해도 박근혜 몰라서 하는 소리”

국민일보는 박 후보의 과거사 인식과 관련해 “박 후보가 이날 유가족 방문 의사를 밝혔지만 과거사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선 좀더 전향적인 입장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분위기가 강하다”며 “전태일재단 방문이 무산됐던 것처럼 입장 변화 없는 방문 추진은 무위로 끝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국민은 “이 때문에 당에서는 늦어도 추석 전 박 후보가 직접 입장을 밝히리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며 “대선 판도에 큰 영향을 미칠 추석 ‘밥상 민심’에서 적어도 과거사 논란이 확산되는 것만은 막아야 한다는 당의 절박함이 반영돼 있다. 그럼에도 박 후보가 입장 표명을 할지는 여전히 미지수”라고 분석했다.

국민일보 9월 14일자 3면

국민에 따르면, 박 후보는 정치 입문 후 줄곧 박 전 대통령과의 강한 일체감을 드러내 왔다. 1998년 대구 달성 보궐선거로 국회의원에 당선된 뒤 “아버지가 못다 한 뜻을 펼치는 데 조그만 힘을 바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99년 5월 김영삼 전 대통령이 박 전 대통령 시대를 비판하자 당시 한나라당의 미온적 태도를 비판하며 탈당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이런 그가 과거사 입장을 급격히 바꿀 경우 “여론에 떠밀렸다” “표를 의식했다”는 비판이 뒤따를 수 있다고 국민일보는 내다봤다.
국민일보는 박 후보 측 관계자의 말을 빌어 “당은 어떻게든 후보를 압박해 바꿔보려 하는데 후보를 잘 몰라서 그러는 것”이라고 전했다.

박근혜 “유족 동의하면 만나겠다” 유족 “대법원 판결 입장부터 밝혀야”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는 13일 “(인민혁명당 재건위 사건) 유가족분들이 동의하시면 제가 만나뵙겠다”고 밝혔으나 유족들은 대법원 판결에 대한 공식입장을 밝히면 만날지를 결정할 것이라고 답했다.
박 후보는 이날 강원 홍천 대명비발디파크에서 열린 새누리당 당원협의회 사무국장 연수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 사건의 피해자 유가족들을 직접 찾아가 사과할 의향을 묻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박 후보는 인혁당 사건에 대해 “전부터 제가 당시 피해를 입은 분들께 참 죄송하고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는 얘기를 많이 했다”고만 말했다.
그는 또 인혁당 사건에 대한 자신의 발언에 반발하고 있는 유족들에게 “오늘 어떤 기회가 있어서 제 생각을 말씀드리려고 했는데 어제 그런 차질(사과논평 관련 혼선)이 있었지 않았나”라며 “갑자기 이야기가 나오고 해서 어제 저녁에 제 생각을 대변인을 통해서 말씀드린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유족들은 이날 공식입장을 통해 “박 후보가 ‘유신헌법’과 ‘긴급조치’ 그리고 ‘1975년 4월8일 인혁당 재건위 대법원 판결’에 대한 공식입장을 밝히면 그에 따라 만남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유족들은 또 박 후보가 “전부터 피해를 입은 분들께 죄송하다는 뜻을 여러 번 밝혔다”고 한 데 대해서도 “지금껏 한 번도 (직접) 들은 적 없다”며 불쾌하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경향은 전했다.

근혜 “사과는 사과로 받아들여야…과거지향적” 변한 것 없네

중앙일보 9월 14일자 3면
이런 안팎의 변화에도 박 후보는 자신의 생각에 달라진 것이 없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박 후보는 13일 동아일보와의 단독인터뷰에서 “우리나라가 그동안 압축성장을 했는데 그 과정에서 긍정적인 면도 있었지만 굴절과 또 그림자도 있었다”고 밝혔다.
박 후보는 5·16군사정변과 유신에 이어 1975년 인민혁명당(인혁당) 재건위 사건 관련 발언을 놓고 벌어진 역사인식 논란에 “좋은 점에 대해서는 승계하고 계속 발전시켜 나가고 또 어두웠던 부분에 대해서는 상처를 치유하고 화해하면서 미래로 나가야 한다”면서 “앞으로도 계속 그런 방향으로 노력해가겠다”고 말했다.
유족에 대한 사과의 진정성을 묻는 야권의 공격에는 물러서지 않겠다는 뜻을 명확히 했다고 동아는 전했다. 박 후보는 “사과한 건 사과로 받아들이고, 더 갈등이 조장되지 않도록 해야 우리가 진정한 화해의 길로 갈 수 있다”면서 “우리 사회에서 과거 지향적인 얘기만 나오고 국민이 힘들어하는 현실의 문제와 미래의 얘기는 실종되다시피 한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박근혜 “정수장학회 이사진이 잘 판단해주길…논란 때문에 순수 취지마저 훼손”

동아와 인터뷰에서 박 후보는 2005년까지 이사장을 지낸 정수장학회 문제에 대해 “이사진이 잘 판단해 주셨으면 하는 게 제 개인적인 바람”이라고 말했다.
이 발언을 두고 동아는 “사실상 최필립 이사장의 조기 퇴진을 요청한 것으로, 박 후보가 야권에서 ‘장물’이라고 공격한 정수장학회의 처리 해법을 내놓은 것은 처음”이라며 “이에 따라 그간 사퇴를 거부해온 최 이사장이 어떤 선택을 할지가 주목된다”고 주장했다.
박 후보는 인터뷰에서 “정수장학회가 정치쟁점화하며 여러 논란과 억측에 휩싸여 있다. 논란이 계속되면서 장학회의 순수한 취지마저 훼손되고 있는데 장학회를 위해서도, 이사진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견해가 달라진 이유를 설명했다.
이에 앞서 그는 7월엔 “저는 이사장도 아닌데 아는 사람이니까 물러나라고 하면 이사회에서 ‘왜 간섭하느냐’고 할 수 있다”고 일축했었다.

조선일보도 박근혜 비판 “늘 논란 만드는 건 박근혜 자신”

박 후보의 역사 인식에 대해 조선일보도 쓴소리를 내뱉었다. 조선은 사설에서 “과거사 논란이 잦아들 만할 때마다 일반 국민의 역사 인식과 동떨어진 발언을 하면서 다시 불씨를 살려 놓고 있는 것은 박 후보 자신”이라고 비판했다.
조선은 “‘박정희 시대 18년’ 속에는 국민이 머리를 끄덕이는 빛나는 역사도 있고, 긍정 평가와 부정 평가가 엇갈리면서 박 후보 주장처럼 역사의 판단을 기다려야 할 대목도 있다”면서도 “그런가 하면 어떤 논리로도 합리화될 수 없는 어두움의 역사 또한 분명히 있다”고 지적했다.

조선일보 9월 14일자 사설

조선은 “친구들과 귓속말도 마음 놓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민주주의가 질식 위기를 맞았던 유신 시대, 그리고 ‘사형선고 18시간 만에 8명 전원 사형 집행’으로 유신 시대의 성격을 상징하는 2차 인혁당 사건 등은 어두움의 역사에 속한다는 게 일반 국민의 공감대”라며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는 아버지의 말에 모든 게 함축돼있다는 박 후보의 발언을 두고도 “박 후보의 유신에 대한 인식은 40년 전 박 전 대통령과 청와대 식탁에 마주 앉아 직접 들었던 ‘박정희식 유신관(維新觀)’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뜻”이라고 폭평했다.
이 신문은 “자연인 박근혜가 개인적으로 품고 있는 유신에 대한 생각은 쉽게 바꿀 수 없겠지만, 차기 대통령이 되겠다는 집권당 후보의 유신에 대한 공식 입장은 ‘아버지와 딸’이라는 개인사의 굴레를 뛰어넘어야 한다”며 “청와대 밖에서 공포와 두려움으로 유신 시대를 겪어냈던 국민이 유신 시대를 감싸고 도는 듯한 박 후보 태도를 어떻게 받아들이겠는가를 입장을 바꿔 생각해 봐야 한다”고 충고했다.

서울신문 “박근혜 역사 바로 봐야 미래 있다”

서울신문 비판에 나섰다.
박 후보의 역사인식에 대해 서울신문은 사설에서 “박 전 대통령의 공에 대한 평가는 받아들이면서 과에 대한 평가는 부정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자신의 역사 인식에 국민의 절반 이상이 동의한다는 박 후보의 말에 대해서도 “설사 그렇다고 하더라도 동의하지 않는 절반의 인식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특히 박 후보가 국민 대통합을 이루려 한다면 자신의 역사관에 동의하지 않는 절반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서울신문은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보자는 박 후보에 대해 “그러나 과거를 바로 보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한·일관계에서 적나라하게 경험하고 있다”며 “현재 대통령 후보로서 가장 많은 지지를 받고 있는 박 후보가 이처럼 과거의 논란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라고 개탄했다.

“죄없는 남편 사형판결에 울며 몸부림쳤다”

남편 우홍선씨(당시 46세)가 그 전달 ‘인민혁명당 재건위’ 사건에 연루돼 사형을 당한 강순희(80)씨는 13일 서울 종로구 4·9평화통일재단 사무실에서 가진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1974년 7월8일 남편에 대한 군사법원의 1심 판결로 ‘사형’이 나오자 재판정에서 울며 몸부림을 쳤다고 말했다. 강씨는 “남편이 ‘괜찮다, 괜찮다’고 나를 안심시키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강씨는 슬퍼하기보단 분노했다. 재판 중에 남편이 고문당했다는 얘기를 들은 강씨는 거리로 나섰다. 호소문을 써 시민들을 상대로 구명운동을 펼쳤고 기독교회관, 국제앰네스티 서울지부 등을 찾아 발언대에 서 인혁당 사건의 공개 재판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러다 결국 남산 중앙정보부로 끌려갔다. 중정 요원들은 48시간 동안 잠도 재우지 않으며 구명운동을 하지 말라고 압박했다. 강씨는 “호소문을 다시 쓰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고 ‘남산’에서 나왔는데, 곧바로 기독교회관에 가서 구명운동 연설을 했다”고 말했다.
남편의 얼굴을 한번이라도 보기 위해 강씨는 변호사와 접견 시간을 기다려 교도소 문틈으로 찾아갔다고 강씨는 전했다. 접견을 마친 변호사가 나올 때 강씨는 문틈으로 “담비야” 하고 막내아이의 이름을 부르면 남편은 개나리가 핀 마당 저편에서 흐릿하게 손을 흔들었다고 강씨는 회고했다.
1975년 4월8일 대법원에서 사형 확정 선고가 내려지자 강씨는 들고 있던 양산이 박살날 정도로 바닥을 치며 한참을 오열했다. 강씨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고 당시 심정을 전했다. 그래도 설마 죄 없는 사람을 죽이기야 할까 하는 한 줄기 희망을 갖고 다음날 재심 청구를 위해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갔으나 새벽에 남편의 사형이 집행됐다는 소식이 라디오에서 나왔다고 전했다.

박근혜 5·16 유신 등 추석 전 입장표명하나

한국일보에 따르면,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추석 연휴 전에 인민혁명당 사건은 물론 5ㆍ16쿠데타와 유신체제 등 과거사 문제 전반에 대해 전향적 입장을 표명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13일 알려졌다.
박 후보 측 핵심 관계자는 이날 “박 후보가 조만간 과거사 전반에 대해 차분하게 정리해 발표할 기회를 가질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고 한국일보는 전했다.

한국일보 9월 14일자 1면

이주영 대선기획단장이 최근 “아버지와 딸 관계가 아니라 국민의 눈높이에서 바라보고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도 안고 가야 한다”고 건의하자, 박 후보가 “내가 생각하는 바가 그것이다. 더 포용하는 방향으로 가도록 하겠다”고 답한 것으로 전해졌다고 한국은 보도했다.

안철수-박원순 비공개 회동, 대선 출마 터닦나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13일 오후 박원순 서울시장을 만나 자신의 대선 출마와 관련해 조언을 구하고 의견을 나눠 대선출마 선언을 앞둔 터닦기가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한겨레 등에 따르면, 안 원장 쪽 유민영 대변인은 “안 원장이 서울시청을 방문해 박 시장과 환담했다”며 “안 원장은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서울시의 새로운 변화에 대한 시민들의 기대를 전했다. 박 시장은 1년 전 (서울시장 후보 단일화) 상황을 회고하며 다시 감사의 뜻을 전했다”고 밝혔다.
유 대변인은 “안 원장이 대선 출마에 대한 입장을 밝히기에 앞서 지속적으로 많은 분야의 분들과 만나고 있고, 박 시장과의 만남도 이런 취지”라고 설명했다.
이날 만남은 지난해 9월 6일 서울시장 후보 단일화 1주년을 기념해 박 시장의 초청으로 이뤄졌으며, 둘의 대화는 배석자 없이 35분 동안 진행됐다. 기동민 서울시 정무수석은 “구체적인 대화 내용은 두 분 모두 이야기하지 않기로 한 것 같다”며 “대화를 마친 뒤 활짝 웃는 등 분위기는 매우 좋았다”고 전했다.
안 원장과 박 시장 쪽은 이달 초부터 단일화 1주년을 기념하는 회동을 하기로 뜻을 모으고 날짜를 조정해 왔는데, 만남이 잡힌 것은 바로 전날이었다. 안 원장 쪽의 한 인사는 “박 시장과의 만남은 ‘경청투어’를 시작하면서 초반에 공개적으로 만나는 것을 검토했지만, 여러 사정으로 날짜가 미뤄지고 비공개로 전환됐다”고 전했다.
박 시장은 회동 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정치적인 얘기는 일부러라도 나누지 않았다”고 했으나 안 원장이 민주당 대선후보 선출 이후 대선 관련 거취를 밝히겠다고 예고한 상태여서 자연스럽게 대선에 대한 얘기가 오갔을 것으로 보인다고 한겨레는 분석했다.
한겨레에 따르면, 안 원장과 가까운 정치권의 한 인사는 “안 원장이 출마를 앞두고 어떤 고민과 결심을 해야 할지, 어떤 점들을 염두에 둬야 하는지 가장 편하게 물어볼 수 있는 사람이 박 시장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박 시장은 ‘출마를 하기 위해서는 이런 점들이 준비돼야 한다. 만약 이러저러한 점들이 준비되지 않았으면 (독자출마를 고집하지 말고) 도와줘야 한다’는 정도로 이야기하지 않았을까 한다”고 말했다. 안 원장은 최근까지 만난 인사들에게 “제가 대통령이 될 경우 대통령직을 잘 수행할 수 있을지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한 바 있다.

“박근혜 조카 주가 조작 의혹”

민주통합당 장병완 의원은 13일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 후보 조카사위인 박영우 대유신소재 회장 가족의 주가조작 의혹에 “금융감독원이 대놓고 봐주기를 한 것”이라고 말했다.
장 의원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고위정책회의에서 “박 회장 가족이 대유신소재 주식을 매매하면서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주가조작 혐의에 권혁세 금감원장은 ‘문제가 없다’고 밝혔지만, 동일한 유형 사건에서 금감원이 검찰에 고발한 사례가 드러났다”고 말했다.
장 의원은 10일 국회 경제분야 대정부질문에서 “지난 2월 박 회장과 조카 한아무개씨, 이들 자녀 2명이 대유신소재의 전년도 실적 적자전환 공시 직전 주식 227만주(80억원 상당)를 대량매도한 것은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위법”이라고 지적했다.
권 원장은 “(전년도) 3·4분기 보고서에 적자 공시가 된 것으로 파악된다”며 “(실무자로부터) 큰 문제가 없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밝혔다.
장 의원은 고위정책회의에서 “3·4분기에 적자전환 공시를 했어도 연말 기준 실적의 적자전환 공시 직전에 대주주나 경영진이 주식을 매도한 ㅇ사와 ㅅ사는 미공개 정보 이용금지 위반으로 금감원이 검찰에 고발조치했다”며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고 권 원장의 해명을 반박했다. ㅅ사는 지난달 17일 최대주주 겸 회장이, ㅇ사는 6월27일 대표이사가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주가조작 혐의로 각각 검찰에 고발됐다.

새누리 대검 중수부 폐지 추진

새누리당이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를 폐지하고 검찰 경찰 국가정보원 국세청 공정거래위원회 등 5대 권력기관의 권한을 축소하거나 조정하는 방안을 추진 중인 것으로 13일 확인됐다고 국민일보가 보도했다. 이 신문에 따르면 당 정치쇄신특별위원회(위원장 안대희)는 이 같은 개편안에 대한 법률 검토를 진행 중이며 조만간 확정안을 발표할 계획이다.
정치쇄신특위 핵심 관계자는 이날 “특별감찰관제에 이은 특위의 두 번째 발표 내용은 권력기관 권한 조정안이 될 것”이라며 “대검 중수부 등 국민의 반대 여론이 높은 부처는 폐지를 추진하고 그 밖에 주요 권력기관의 일부 기구나 부서도 폐지 또는 권한 축소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고 국민일보는 전했다. 이 관계자는 권한이 집중된 곳으로 대검 중수부, 경찰대학,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 공정거래위원회, 법원행정처 등을 꼽았다고 국민일보는 보도했다. ‘국세청의 중수부’로 불리는 조사4국은 국세청장의 특명을 받아 특별 세무조사를 담당하고 있어 기업의 탈세 정보가 집중된 곳이다.

재벌가 아들 며느리 외국인 학교 부정입학

외국인 학교 입학 비리에 재벌가 아들과 며느리 등이 대거 연루된 것으로 알려져 파장이 예상된다.
서울신문 등에 따르면, 외국인학교 입학 비리 사건을 수사 중인 인천지검(부장 김형준)은 지난 11일부터 자녀를 외국인학교에 부정 입학시키기 위해 브로커에게 돈을 주고 자녀의 외국 국적 취득을 의뢰한 혐의를 받고 있는 학부모들을 집중 소환해 조사 중이라고 13일 밝혔다.
이 가운데는 재벌가 아들과 며느리 등이 대거 포함된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이날 국내 A그룹 전 부회장의 아들과 며느리를 불러 조사한 데 이어 14일에도 B그룹 전 회장의 아들 내외를 조사하기 위해 소환 통보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고 서울신문은 전했다. 부정 입학한 혐의를 받고 있는 재벌가 3·4세 자녀 중에는 그룹 계열사의 지분을 가진 소년 주식 부자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고도 했다.
검찰에 따르면 이들은 브로커에게 1인당 5000만~1억원씩을 주고 자녀가 온두라스와 브라질, 시에라리온 등 중남미와 아프리카 국가들의 국적을 취득한 것처럼 보이기 위해 위조한 현지 여권과 시민권 증서 등을 넘겨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넘겨받은 서류들은 자녀가 외국인 학교에 부정 입학하는 데 사용했다. 서울신문에 따르면, 일부는 실제로 그 나라에 3~4일씩 다녀온 적이 있지만 대부분은 해당 국가에 가본 적도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1차 소환 대상 학부모를 60여명으로 압축했으며, 매일 1~2명씩 차례로 불러 조사할 방침이다. 검찰은 우선 피내사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한 뒤 혐의가 인정되면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할 방침이다.
소환 대상 학부모 대부분은 서울 강남에 살고 있고 남편 직업이 투자업체 대표, 골프장 소유주, 병원장 등으로 부유층과 사회지도층에 속하는 것으로 파악됐으며 일부 학부모들은 검찰 조사에서 “브로커에게 속아서 진짜 외국 국적을 주는 줄 알았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고 서울신문은 보도했다.

조현호 기자 | chh@mediatoday.co.kr  

2012년 9월 10일 월요일

청소년들, “일본은 과거사 인정하고 역사 바르게 가르쳐라”


이글은 민중ㅇ의소리 2012-09-09일자 기사 '청소년들, “일본은 과거사 인정하고 역사 바르게 가르쳐라”'를 퍼왔습니다.
9일 오후 일본대사관 앞..“역사왜곡으로 한일관계 악화시키지 말아야”

ⓒ뉴시스 한국청소년미래리더연합

청소년들이 일본정부에 과거사를 인정하고 역사를 바르게 가르칠 것을 요구했다.

전국 중·고등학생 3천여명이 참여하고 있는 한국청소년미래리더연합 소속 청소년 50여명은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중학동 일본대사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일본은 위안부와 강제징용 등 일제강점기에 있었던 과거사를 인정하고 진심으로 사과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일본 정부의 역사 왜곡과 독도 영유권 억지주장으로 인해 한일 청소년들 사이에서 마찰이 일고 있다"며 "일본정부는 일본 청소년들에게 과거 역사를 바르게 가르쳐 역사 왜곡으로 한일관계가 악화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한국 정부에는 "정부는 역사교과목을 필수과목으로 지정해 대한민국 청소년들이 애국애족의 올바른 역사관을 가질 수 있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지혜 기자 creamb@hanmail.net

2012년 7월 18일 수요일

한일 군사협력 아닌 과거청산부터 해라


이글은 대자보 2012-07-17일자 기사 ' 한일 군사협력 아닌 과거청산부터 해라'를 퍼왔습니다.
[시론] 과거청산과 평화를 위한 한일민간의 연대가 더욱 절실하다.

1. 일본의 군사화와 과거문제에 대한 대응 

-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추진은 한일 군사협력의 강화를 가져와 일본의 군사화를 더욱 가속화할 것이다. 일본은 원자력법 개정을 통해 핵무기 개발의 가능성을 높였고, 일본 총리 직속의 위원회의 집단적 자위권을 요구하는 보고서를 발표하고, 일본 PKO의 집단자위권을 추진하는 등 일본의 군사화에 대한 우려가 어느 때보다 높다. 이런 상황에서 한일정보보호협정은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돕는 협정이다. 

- 최근 일본 우익들이 일본대사관 앞 일본군‘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평화비 소녀상에 ‘다케시마는 일본 땅’이라며 말뚝을 세웠다. 

- 일본 외무성은 최근 자국 뉴욕총영사에게 재미 한인들이 추진하고 있는 위안부 기림비 건립에 대해 적극적으로 항의하도록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 일제강점기 미쓰비시 중공업에 강제동원 피해를 본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에 대한 피해배상 협상이 최종 결렬됐다. 미쓰비시 측은 일본 최고재판소 판결을 근거로 개인 보상에는 응할 수 없고 이미 한일청구권 협정으로 국가간 해결된 사안이라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2. 일제 강점기 피해자 

1) 일본군 '위안부' 

일본군 ‘위안부’의 경우 피해자가 20만명으로 이중 조선인은 80%로 추산되고 있지만 정부에 등록된 피해자는 234명에 불과한 실정이다. 일본군 '위안부' 지원대상 (2012.2 기준); 생략 

2) 강제동원자 

일본이 저지른 아시아태평양정쟁(1931-1945)에 연인원 800만명에 달하는 조인인이 전쟁에 동원되었다. 이들은 노무자로 군인과 군무원이라는 이름으로, 군수공장에서 군 시설물 공사장에서 탄광에서 그리고 전쟁터에 동원되었다. 10대 남녀 청소년부터 60대의 노인까지 다양한 연령의 남녀가 일본의 침략전쟁에 동원. 노무자와 군무원들이 동원되어 공출품목을 생산하고 군 시설공사를 했던 작업장만 해도 1만개소가 넘는다. 국내를 제외한 78만명의 해외동원 피해자 중 피해신고가 들어온 것은 22만건이다. 피해자로 인정받은 21만명 가운데 한국 정부의 지원금을 받은 사람은 약 7만7000명에 불과하다. 

; 생략 ; 생략 

3. 과거사, 끝나지 않은 현재- 성노예, 전시 성폭력 

"보통 때는 그렇게 사람이 많지 않아, 하루에 15명 정도 상대해야 했지만, 주말에는 말할 수도 없이 많았다. 50명이 넘었던 것 같다"(김복동 증언,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들" 증언2집,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정신대 연구회, 1997. 한울) 

"다시 그 기억들을 되새김질하는 것이 무척 힘들다.... 내 순결을 빼앗고 나를 이렇게 만든 놈들을 갈기갈기 찢어놓고 싶은 심정도 있다. 그러나 어떻게 내 원통한 심정을 풀 수 있겠는가. 이젠 더 이상 내 기억을 파헤치고 실지 않다." (김학순) 

"성폭력은 우리의 중요한 무기였다.... 우리는 그것을 콩고정부를 자극하기 위한 방법으로서 사용했다. 성폭력은 그 정부가 우리와 타협을 원하도록 이끌었다." 2009년 도큐멘터리 "전쟁의 무기: 콩고에서 강간에 대한 고백"에서 테일러 사령관(National Congress for the Defense of the People)의 증언 

"아마 무력분쟁에서 군인보다 여성이 더욱 위험할 것이다." 2008년 5월 윌튼파크 회의, Maj.Gen(Ret.) Partick Cammaert 

- 일본군 '위안부'는 일제하 일본군의 승리를 위한 군의 사기 충전용으로 여성들이 강제 동원되어 여성의 몸이 전쟁터가 된 일본군의 성노예이다. 

- 일본군 '위안부'는 국가와 군대에 의한 체계적인 여성폭력으로 일본군 '위안부'와 관련한 일본의 행위는 전쟁범죄, 인도에 반하는 범죄를 구성한다. 따라서 이 문제에 대한 일본의 국가책임은 당연하다. 

-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은 지난 50년간 침묵을 깨고 증언하였다. 그들을 침묵하게 한 요인은 무엇인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한국 사회의 정절이데올로기 때문이었다. 정절이데올로기 때문에 자신의 가족, 심지어 부모에게조차 말하지 못했다. 순결이데올로기가 지배적인 가부장제 사회에서 '위안부'라는 낙인은 여성의 삶에 치명적이었기 때문이다. 피해자들이 침묵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우리 안의 가부장성 때문이었다. 

-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해결은 피해자의 관점(victim-oriented perspective)에 서야한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는 인도성과 존엄과 인권에 대한 존중에 기초하여 처우받아야 하며,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들의 안전, 신체적 심리적 안정과 사생활을 보장하는 데 필요한 조치들을 취해야 한다. 국가는 국내법이 가능한 범위 안에서 폭력이나 트라우마를 겪었던 피해자가 정의와 배상을 위한 법적 행정적 절차에서 다시 트라우마를 겪지 않도록 특별한 고려와 배려를 하도록 규정하는 것을 확보해야 한다. 피해자는 재판에 대한 평등하고 효과적인 접근, 피해 대한 적절하고 효과적이고 즉각적인 배상, 위반 행위와 배상 장치와 관련한 정보들에 대한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피해자에게는 각 사례의 위반의 중대성과 상황에 비례하고 필요한 범위내에서 원상회복, 금전배상, 재활, 만족, 재발 방지의 보증을 정한원칙에 규정된 바와 같이 완전하고 효과적인 배상을 제공해야한다. (국제인권법의 중대한 위반 행위와 국제인도법의 심각한 위반 행위의 피해자 구제와 배상권리에 관한 기본원칙과 가이드라인(A/60/509/Add.1) ) 

4. 해결되지 않은 과거 청산 

- 일본 정부는 그동안 종군'위안부'문제를 부인해오다가 1990년대 들어 이 문제가 대두되자 일본군 '위안소'에 대한 국가관여를 부분적으로 인정하기에 이르지만 1965년 한일이 체결한 ‘한일협정’의 부속협정인 ‘청구권·경제협력에 관한 협정’ 제2조 “양국의 모든 청구권에 관한 문제는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다는 것을 확인한다”에 따라 법적 책임은 없다고 주장해왔다. 일본의 법적 책임 부정과 함께 관련 범죄자에 대한 불처벌(impunity)과 피해자에게 배상을 하지 않고 있다. 

- 2011년 8월 30일, 헌법재판소는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이 한일 청구권협정에 의하여 소멸되었는지에 관하여 한일 간에 분쟁이 존재한다고 판단하고 일본군‘위안부’ 문제가 협정에 의하여 해결된 것인지에 관한 분쟁이 있음에도 이러한 절차를 밟지 않고 있는 외교통상부의 부작위는 위헌이라고 확인하는 결정을 내렸다. 

- 2012년 5월 24일 대법원은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일본 기업이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1965년 체결된 청구권협정은.. 일본의 국가가권력이 관여한 반인도적 불법행위나 식민지배와 직결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이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또 "피고들이 소멸시효의 완성을 주장하여 원고들에 대한 채무이행을 거절하는 것은 현저히 부당하여 신의성실에 원칙에 반하는 것으로 허용될 수 없다"고 판시했다. 

- 전쟁범죄 및 인도에 반하는 죄에 대한 공소시효 부적용에 관한 협약 

전쟁범죄와 인도에 반하는 죄에 대하여는 공소시효의 기한이 없다는 국제법상의 원칙을 확인하고 있다. 

- 국제인권법의 중대한 위반 행위와 국제인도법의 심각한 위반 행위의 피해자 구제와 배상권리에 관한 기본원칙과 가이드라인(A/60/509/Add.1) 등으로 결실 

- 일본군 '위안부'문제와 같은 전시의 여성폭력은 세계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구 유고슬라비아, 르완다, 수단, 콩고, 시에라레온 등에서 반복되어 나타났으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국제형사법정들과 특별법정이 설립되고 유엔 차원에서 지속적으로 대응이 이루어지고 있다. 

- 1995년 세계여성회의의 베이징 선언 및 행동강령 

무력 분쟁 수행중의 강간은 전쟁범죄이며 특정 상황에서는 제노사이드를 구성한다는 것, 여성에 대한 전쟁 범죄에 책임이 있는 모든 범죄자를 소추함과 동시에 피해 여성에 대한 완전한 보상을 제공할 것 등이 명기하고 있다. 

- 여성・평화・안보에 대한 유엔 안보리 결의 1325, 1820, 1880, 1888, 1960호 채택 

특히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2008년 6월 19일 채택한 1820호는 성폭력을 전쟁의 전술로서 인정하고 무장갈등의 모든 당사자는 민간인에 대항하는 모든 성폭력 행위를 즉각 완전히 중지할 것을 요구(op2)하였다. 성폭력 문제에 대한 대응을 더 효과적으로 할 수 있도록 후속 결의 1888호, 1960호 채택하였다. 

5. 한일 정부는 군사협력이 아니라 과거 청산을 위한 협력을 

- 일본군 '위안부'문제와 일제하 강제동원 피해는 일본의 제국주의와 군국주의의 산물이다. 일본은 과거를 반성하지 않고 한일협정을 내세우며 피해자에 대한 책임을 지지않고 있다. 한국 정부 역시 한일협정을 내세우며 청구권문제에 소극적이다. 아시아태평양 전쟁을 일으켜 동아시아 4천만 민중을 고통을 안겨 준 일본은 역사적 책임을 지지 않고 '과거'를 망각하고 있다. 그러나 수많은 피해자들이 생존해있고 지금도 고통을 당하고 있다. 일제가 안겨준 피해는 과거가 아니라 '현재'이다. 과거를 청산하지 않는 일본과 군사협력은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지원하는 길이며, 일본이 군사대국화 되었을 때 다시금 전쟁 피해자를 양산할 수 있다. 한국정부와 일본정부는 군사협력이 아니라 피해자의 고통에 공감하며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비롯한 올바른 한일 과거사 청산에 앞장서야 할 것이다. 

-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와 광주의 '근로정신대할머니와 함께 하는 시민모임"을 비롯한 민간의 과거사 청산 활동은 피해자를 지원하며 일제시기 피해문제에 소극적인 정부를 대신해 과거청산을 위한 적극적인 활동으로 헌법재판소의 판결과 대법원의 판결을 이끌어냈다. 과거청산을 위한 여성과 시민사회의 활동은 피해자 할머니들 뿐 만 아니라 정의와 평화가 실현되는 사회를 위한 강력한 원동력으로서 희망을 주고 있다. 군사협력이 아닌 과거청산과 평화를 위한 한일민간의 연대가 더욱 절실하다. 

-------------- * 위는, 시민평화포럼 등이 2012년 7월 11일에 개최한 「한일 군사협력 무엇이 문제인가?」에서 필자가 발제한 내용임. 
* 필자는 [평화를 만드는 여성회]의 정책위원장이다. 
* 본문은 (대자보)와 기사제휴협약을 맺은 평화전문 인터넷신문 (평화만들기) http://www.peacemaking.co.kr 2012년 7월 16일자 (제516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정경란 

2012년 7월 6일 금요일

조해진 "자위대 독도상륙설 떠도는데 무슨 군사협정?"


이글은 뷰스앤뉴(Views&News) 2012-07-06일자 기사 '조해진 "자위대 독도상륙설 떠도는데 무슨 군사협정?"'을 퍼왔습니다.
친이 직계까지도 MB정부 정면 비판

친이 직계인 조해진 새누리당 의원은 6일 국민적 반발에도 불구하고 MB정부가 계속 한일군사협정을 체결하려는 데 대해 직격탄을 날렸다.

조해진 의원은 이날 트위터에 "한일군사협정 추진에는 정부도 나름 생각이 있을 것"이라면서도 "그러나 독도, 과거사, 위안부 문제로 시시각각 부딪히는 일본과 어떻게 군사적 협력이 가능한지?"라고 반문했다.

그는 이어 "자위대의 독도 상륙과 무력충돌 시나리오까지 떠도는 판에 군사정보를 서로 교환한다?"라며 세간의 자위대 독도 상륙 우려까지 거론한 뒤, "신뢰구축이 우선 아닌가?"라고 일갈했다.

친이 직계인 조 의원조차 정면에서 MB정부를 질타하고 나서면서 MB정부의 한일군사협정 추진은 사실상 동력을 완전 상실한 분위기다.

김동현 기자

2012년 7월 1일 일요일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친일뿌리 드러나


이글은 대자보 2012-06-30일자 기사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친일뿌리 드러나'를 퍼왔습니다.
[최용익 칼럼] 일제하 친일 청산 못한 과거사 어두운 그림자는 넓고 깊다

‘뼛속까지 친미, 친일’이라는 이명박(MB) 정권이 또 사고를 쳤다. 국민 몰래 일본과 군사정보보호협정을 맺으려다 야당과 시민단체들의 격렬한 반대 움직임이 일자, 협정체결을 불과 한 시간 남겨둔 상태에서 서명식을 전격적으로 연기한 것이다. 일반적인 외교관례를 깬 어쭙잖은 모양새는 차치하고라도 이 정부의 무모(無謀)성, 저돌성과 더불어 국민여론을 우습게 아는 반민주적 행태가 여지없이 까발려졌다. MB 취임 초부터 누누이 지적돼왔으나 임기 만료를 눈앞에 둔 지금까지 전혀 달라지지 않은 불통(不通)정부의 진면목을 되풀이한 것이다. 

정부는 국무회의에 부치기 전에 논의 사항이 사전에 공개되는 일반안건이 아니라 대외비로 처리되는 `즉석안건'으로 협정 체결을 의결했다. 공개될 경우 일어날 반발과 비판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과는 최악이었다. `밀실처리'라는 거센 비난여론에 부닥치자 결국 사흘 만에 서명을 연기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외교적 망신은 둘째 치고 이 안건이 공개될 경우, 여론이 어떻게 흐를지에 대한 최소한의 예측능력도 갖추지 못한 이 정권의 누추함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말았다. 그런데도 이 정부는 “국회의 비준동의가 필요 없다는 법제처의 유권해석을 받았다”, “청와대는 몰랐다”는 등 말이 안 되는 변명을 계속하고 있다. 

35년간 식민지 지배를 하면서 위안부 차출과 강제 징병·징용 등 인적 착취와 각종 식량자원과 지하자원 등에 대한 물적 수탈 등, 조선 민중에게 끼친 막대한 피해에 대해 단 한 번도 진정성있는 사죄를 해 본 적이 없으며 멀쩡한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고 있는 게 바로 일본이다. 2차 대전에서 같은 추축국이었던 독일이 보여준 전후 배상과 사죄 태도와 비교하면 일본은 정신적으로 유아(幼兒)국가 수준에 머물고 있을 뿐이다(1970년 12월, 동방정책으로 잘 알려진 서독의 빌리 브란트 총리가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에 있는 유태인 위령탑 앞에 무릎을 꿇은 것을 상기해보라!).   일본은 해방 이후 남북분단으로 이어지는 쓰라린 한국 현대사의 직접적인 가해자이자 원인 제공자인 동시에, 분단의 결과 벌어진 한국전쟁의 최대 수혜자이기도 하다. 2차 대전의 패배로 쪽박 찰 형편이었던 일본은 한국전쟁을 계기로 일약 경제강국으로 도약하는 발판을 마련하게 된다. 언제든 적대관계로 돌아설 가능성이 상존하고 있는 나라와 군사기밀을 주고받는 협정을 체결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인데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 동의도 필요없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또 국무총리와 장관들이 대통령 모르게 자기들끼리 모여 극도로 예민한 한일협정 추진을 의결했다는 말을 믿으라는 것이다. 지나가는 소가 웃을 일이다. 이들이 과연 대한민국의 국정을 책임진 대통령과 고위 관료들이 맞는지 어이가 없을 뿐이다. 

광우병 논란을 불러일으킴으로써 MB정부 취임 직후 1년을 뒤흔들어 놓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 파동 때와 너무나 유사하지 않은가? 그때도 한미 FTA 타결이라는 목적달성을 위해 국민 몰래, 이전 정권에서 광우병 감염 위험성 때문에 금지해왔던 30개월 이상 된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장벽을 하루 아침에 허물어 버렸다. 국민에게 상의하는 절차 하나 없이 밀어붙이려다 들통이 나자 MB는 두 번이나 대국민사과를 하는 망신을 자초하더니 끝내는 두 달 간 계속된 촛불집회를 경찰력을 동원해 강제해산해야 했다. 광우병 관련 촛불집회는 “촛불은 누구 돈으로 샀고 누가 주도하는지 보고하라!”는 명언(?)을 남겼고 이후 이 나라가 ‘명박산성’으로 상징되는 국민과의 소통거부와 감시, 사찰이 일상화되는 경찰국가로 추락하고 만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MB의 대일, 대미관은 불투명하며 국민여론과는 거리가 멀고 국익과도 상관이 없다. 형인 이상득 전 새누리당 의원이 2008년 버시바우 당시 주한 미국 대사를 만나 “이명박 대통령은 뼛속까지 친미, 친일이니 의심할 필요가 없다”고 발언했다는 사실이 위키리크스를 통해 공개된 바 있다. MB가 미국정부에 쇠고기 관련 수입장벽 제거라는 선물을 헌납하기 직전이었다. 또 2008년 7월 호카이도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 일본 총리가 교과서에 독도를 다케시마로 표기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에 대해 MB는 “지금은 곤란하다. 조금만 기다려 달라.”는 말을 했다는 내용이 주일 미 대사관의 외교문서를 통해 공개되기도 했다. 

▲ 이명박 정권이 밀실야합으로 추진한 한일군사정보보호 협정이 각계각층의 격렬한 저항으로 서명 한시간 전에 철회하는 국제망신을 초래했다. © 한민족운동연합 제공

미국이 동북아 패권 경쟁에서 중국을 압박하기 위해 뒤에서 사주한 것으로 추정되는 이번 한일 군사정보협정의 진상도 얼마 지나지 않아 밝혀질 테니 조금만 기다려 보자! 아이러니한 것은 MB는 고려대 상대학생회장 으로 1964년 6.3사태 때 한일회담 반대에 앞장섰고 6개월간 구치소에 갇히기도 했다. 47년의 세월이 한 인간을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바꾸어 놓을 수도 있다는 생생한 실례를 MB는 몸으로 웅변하고 있는 셈이다. 

국민의 일상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정책을 국민 몰래 추진하곤 하는 이 정부의 옹졸하고 비루한 행태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민주적인 선거를 통해 집권했으면서도 당당하지 못하게 눈속임으로 넘어가려다 뒤늦게 발각이 되면 말을 바꾸거나 온갖 변명을 늘어놓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촛불시민들은 일찍부터 MB 정권의 이런 못 된 버릇을 설치류 중 특정 동물의 행태로 풍자, 조롱해왔다. 앞뒤가 맞지 않는 변명이 잘 먹힐 리 없고 따라서 당사자들의 반발이 커지면 검찰과 경찰을 동원해 인신구속과 강제진압으로 입막음을 해 온 게 MB 집권 4년의 역사다. 광우병 위험 미국산 쇠고기 수입 파동에서 시작해 4대강 사업, 용산참사, 미디어법 날치기 통과, 미네르바 사건, 한미 FTA 졸속 타결, 천안함 침몰 의혹, 그리고 최근에는 민간인 불법사찰 파문과 내곡동 사저 구입에 따른 각종 의혹 등등 자고 깨면 터지는 사건들로 대한민국은 4년 내내 편한 날이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진짜 큰 문제는 MB 정부의 일본을 보는 시각 자체에 있다. 이 사회를 쥐락펴락하는 기득권 집단의 가장 큰 지분을 친일파들이 차지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이 점도 당연하달 수 있다. 부자감세와 노동탄압으로 계급적 정체성을 분명히 한 MB 정부는 시종 반북친미정책으로 일관하고 있는데 이 또한 국내적으로 재벌 등 부자들의 이익과 더불어 국제적으로는 미국의 세계전략에 충실히 복무하고 있는 ‘마름정부’의 특성상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그런지 MB 정부가 한일 군사정보협정을 추진하는 과정과 배경이 1965년 박정희 정권 당시 강행된 한일 청구권협정 때와 매우 유사하다. 47년이 지났어도 미국이 주도하는 동북아 질서와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대한 태도, 한국 정부의 권위주의적 태도에는 변함이 없다.

“커트 캠벨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는 한국과 일본에 올 때마다 한일 군사협력의 필요성을 집요하게 역설했다. 1965년에도 미국은 러스크 국무장관 등이 방한해 한일 국교정상화 회담을 조속히 타결하라고 촉구했었다. 권위주의 정권이 밀실에서 비공개적으로 추진한 점도 공통된다. 박정희 정부는 한·일협정을 밀실에서 추진하다 6·3사태라는 국민적 저항에 직면했었다.”(경향신문, 2012년 6월 29일자)

민주주의 신장과 남북관계 등 다른 모든 분야도 군사독재 시절로 돌아갔지만 MB 정부가 들어서자 역사해석이 과거로 회귀했다. 뉴 라이트 등 신보수를 표방하는 우파세력은 광복절을 건국절로 대체하고 식민지 근대화론에 근거해 일제통치를 합리화하는 이론화 작업에 바빴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남한단독정부를 주도한 이승만의 정통성 수립과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찬탈한 박정희의 경제발전 실적을 유독 강조하는 역사 교과서 개편 작업이었다. ‘역사 뒤집기 작업’에는 정권의 나팔수로 전락한 공영방송도 동원됐다. MB의 후보시절 언론특보가 낙하산 사장으로 내려온 KBS는 독립운동가들을 때려잡던 조선인 특수부대 간도특설대 장교 출신 백선엽을 전쟁영웅으로 미화하는가 하면, 반민특위를 해체하고 친일파들을 고위직에 대거 등용했다가 결국 4.19 혁명으로 쫓겨난 이승만을 건국의 아버지로 찬양하는 다큐 프로그램을 방송했다. 

MB와 새누리당의 후견인이자 기득권 세력의 대변인 역할을 하고 있는 조중동이 빠질 수 없다. 기득권 세력의 가장 큰 뿌리는 친일파들이다. 이들은 일제하에서 “귀축영미(鬼畜英美)”를 부르짖다가 해방이 되자 잽싸게 말을 갈아탔다. 열렬한 친미주의자들이 된 것이다. 기득권 유지를 위해서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이 이들의 특징이다. 앞에서 언급한대로 먹을 것을 따라 몰려다니는 설치류 중 특정동물의 특성을 이들은 유전자로 지니고 있다.

2009년 말, 방응모와 홍진기, 김성수 등 자사의 사주 또는 사장을 친일파로 비판한 이 발간되자 조중동은 맹비난을 퍼부었다. 주된 논지는 시간도 많이 흘렀는데 이제 와서 친일파를 적시, 비판하는 것은 혼란을 부추기며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훼손한다는 것이다. 이들의 논리를 밀고 가면 재미있는 역설이 발생한다. 역으로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세우기 위해서는 일제부역이라는 민족반역 행위에 눈감았어야 한다는 자기모순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친일파 문인과 지식인들을 필진으로 동원해 위안부와 징병모집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라고 감언이설을 꾀한 자신의 과거 민족반역행위에 대해 한 번도 사과한 적이 없는 친일신문들의 자가당착이다.

식민지로 전락한 조국을 되찾기 위해 국내외에서 풍찬노숙을 마다하지 않은 수많은 독립투사들과 일제의 식민지배를 주도한 자들을 응징했던 안중근, 이봉창, 윤봉길 등 의사들이 해방 후 70년이 다 됐음에도, 한국사회 기득권층에 강고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는 친일 잔재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들까? 일제하 부역자들을 제대로 청산, 정리하지 못한 과거사의 어두운 그림자는 넓고도 깊다.

최용익:MBC 전 논설위원, 새언론포럼 회장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