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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8월 28일 화요일

박근혜는 전태일을 만나 어떤 ‘사과’를 할까?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2-08-28일자 기사 '박근혜는 전태일을 만나 어떤 ‘사과’를 할까?'를 퍼왔습니다.
[아침신문 솎아보기] 라디오21 전 대표 민주당 공천헌금 의혹에 대검 중수부 수사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부장 최재경)가 양경숙 인터넷방송국 라디오21 본부장 겸 이사(전 대표)를 정치자금법 및 공직선거법 위반 등 혐의로 27일 구속했다. 서울시내 구청 산하단체장 등에게 민주통합당 공천을 약속하며 수십억 원을 받았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새누리당 공천헌금 사건과 달리 대검 중수부가 직접 움직였다는 점에서 ‘수사 형평성’을 문제 삼았다. 검찰 내부에서는 이번 수사가 ‘박지원 원내대표’를 겨냥하고 있다는 시선도 있다.

노다 요시히코 일본 총리가 “일본이 위안부를 강제 동원한 증거가 없다”고 말했다. 마쓰바라 진 국가공안위원장은 일본군의 위안부 강제 동원을 인정하고 사죄한 1993년 ‘고노 담화’ 수정을 제안했다. 안정 국면으로 흐르던 한일 양국의 외교문제가 일본군 성노예 문제로 다시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28일 전태일재단을 방문한다. 박 후보는 인민혁명당재건위원회 사건 피해자들과 만남도 검토 중이다. 후보 확정 이튿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찾아 참배한 것부터 박 후보의 행보는 이례적이었다. 특히 이번 전태일재단 방문에서 박 후보가 박정희 전 대통령의 개발독재와 유신의 직접적인 피해자들에 대해 ‘사과’할 것인지 주목된다.

안대희 전 대법관이 퇴임한지 48일 만에 박근혜 후보 캠프에 합류했다. 퇴임 직후 대선 후보의 캠프로 간 대법관은 그가 처음이다. 안 전 대법관은 27일 새누리당 정치쇄신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 합류했다. 대법관의 정치적 중립 의무를 저버렸다는 비판과 대법관의 위상을 제도정당에 복속시켰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언론의 평가는 박근혜의 쇄신을 위한 노력에 방점을 찍었다. 박 후보는 지난 7월부터 안 전 대법관을 삼고초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여의도 사건 등 언론이 ‘묻지마 살인’에 집중하고 있을 때 한겨레는 죽음의 원인을 따졌다. 서울 강북의 한 영구임대 아파트에서는 100일 동안 6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한겨레는 “단일 거주환경에서 단기간에 이처럼 많은 이들이 잇따라 자살한 사례는 국내에서 찾기 힘들다”면서 공공복지체계의 부실을 원인으로 지목했다. 한겨레가 1면 과 4면 에서 보도했다.

다음은 28일 전국단위 아침신문 1면 머리기사 제목이다.

경향신문 (교내에 호텔·해외 투자도 가능/ 정권말기 사립대학 빗장 푼다)
국민일보 (“인민 약탈하지 말라… 김정은 동지 배신하지 말라”/ 북, 모든 군장교에 서약서 요구)
동아일보 (한국 신용등급/ Aa3 사상 최고/ 일-중과 같아져)
서울신문 (국민 우롱하는 ‘성범죄 대책’)
세계일보 (초속 50m ‘광풍대란’)
조선일보 (민주당 공천 알선/ 32억원 받은 혐의/ 양경숙씨 구속)
중앙일보 (태풍 볼레벤 오전이 고비)
한겨레 (퇴임하자마자 박근혜 캠프로 달려간 대법관)
한국일보 (애플서 보듯… “한국 견제” 장벽 높아간다)

민주당 공천헌금 의혹 돈은 어디로 갔나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부장 최재경)가 양경숙 인터넷방송국 라디오21 본부장 겸 이사(전 대표)를 정치자금법 및 공직선거법 위반 등 혐의로 27일 구속했다. 서울시내 구청 산하단체장 등에게 민주통합당 공천을 약속하며 수십억 원을 받았다는 것. 27일자 아침신문 (총선 민주당 공천 명목 수십억원 투자금 받아) 제하 기사로 이 의혹을 단독 보도한 한국일보는 구속 소식도 상세히 전했다.

한국일보는 2면 (돈 사용처 따라 정치권 큰 파장)에서 양경숙 전 대표가 서울 강서구청 산하단체장 이모씨, 세무법인 대표인 또 다른 이모씨, 부산지역 사업가 정모씨 등 3명에게 민주당 공천을 약속하며 투자금 명목으로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 수십억 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고 보도했다. 검찰은 이미 지난 25일 양 전 대표의 주거지와 라디오21 사무실 등 10곳을 압수수색했다.


▲ 한국일보 28일자 2면

양 전 대표와 함께 구속된 3명은 모두 지난 4‧11 총선에서 공천을 신청했으나 탈락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중 이아무개씨에 대해 한국일보는 “2007년 12월 19일 대선과 함께 치른 기초단체장 선거에서 서울 강서구청장 후보로 출마한 적이 있다”고 보도했다. 한국일보는 이어 “세무법인 대표 이씨는 라디오21의 세무 업무를 대리했으며, 정씨는 부산 소재 부동산 시행업체 대표로 알려졌다”고 전했다.

한국일보는 “특히 검찰은 양씨가 이씨 등에게 돈을 받는 과정에서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를 언급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면서 “이씨 등은 검찰 조사에서 ‘양씨가 박 원내대표 이름을 대며 공천을 약속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전했다.

한겨레에 따르면 이씨 등 3명은 총선을 앞둔 지난 3월 각각 500만 원의 정치후원금을 박 대표에게 낸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박 대표 측은 “이를 공천과 연결지으려는 것은 전혀 사실과 다르다”며 공천헌금 관련 의혹을 부인했다고 한국일보는 전했다.

이 돈을 어디에 사용했느냐가 관건이다. 현재 양경숙 전 대표는 ‘공천’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일보는 “양씨는 검찰 조사에서 투자계약서를 근거로 이씨 등에게 돈을 받은 것은 자신이 운영하는 홍보대행업체 및 라디오21에 대한 투자 유치 목적이었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한국일보는 이어 “그러나 검찰은 투자계약서는 공천헌금 제공 사실을 숨기기 위한 이면계약서에 불과하며, 돈의 액수와 오간 시점 등을 볼 때 사실상 공천헌금 성격이 짙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국일보에 따르면 검찰은 양 전 대표가 받은 돈이 공천헌금 명목으로 민주당 실세에게 전달됐거나 당 대표 경선 자금으로 흘러갔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양 전 대표가 돈을 건네받은 시기가 지난 1월 민주당 전당대회 시기이기 때문이다. 한국일보는 “검찰 안팎에서는 전당대회 당시 자금책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진 인사 2, 3명이 양씨로부터 경선자금을 지원받았을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 중앙일보 28일자 10면

중앙일보는 10면 (40억 주고받은 양경숙과 3인, 3월 박지원 만나)에서 양경숙 전 대표가 40억 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고 보도했다. 특히 중앙일보는 “검찰은 또 이들이 돈을 주고받은 이후 박지원 민주통합당 원내대표를 직접 만난 사실을 확인하고 박 원내대표가 금품 수수 과정에 개입했는지 등을 확인 중”이라고 보도했다.

중앙일보에 따르면 구청 산하단체장 이아무개(55)씨는 양 전 대표에게 10억 원을 건넸고, 부산지역 사업가 정아무개(52)씨는 12억 원, H세무법인 대표 이아무개(57)씨는 18억 원을 건넸다.

조선일보, 액수와 내용면에서 가장 상세하게 보도

언론마다 양 전 대표가 받았다는 금액이 다르다. 한겨레는 30억, 중앙일보는 40억, 조선일보는 액수를 32억 8000만 원으로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구청 산하단체장 이모씨는 당초 17억원을 주기로 약속했지만 실제로는 2억8000만원만 건넨 것으로 검찰은 파악했다”고 전했다.

조선일보는 돈의 목적이 ‘공천’이고 배달지가 야권 유력인사라는 점에 무게를 뒀다. 조선일보는 “검찰에 따르면 양씨는 이씨 등에게 박 원내대표를 언급해 가면서 ‘비례대표 ○○번이 될 것 같다’는 식의 문자메시지도 발송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이어 조선은 검찰과 정치권에선 박지원 대표 외 1~2명의 민주당 유력인사들 이름도 거론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조선은 3면 (양씨, 32억8000만원 전액 인출… ‘비례 ○○번 될 듯’ 문자도)에서 “검찰이 자금 흐름을 추적한 결과 양씨 계좌에 들어왔던 32억 8000만 원은 이미 전액 인출돼 해당 계좌에는 돈이 남아 있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고 한다”고 보도했다.

대검 중수부가 이 사건에 팔 걷어붙인 이유민주당은 수사 주체의 불공평성을 비판했다. 이례적으로 대검 중수부가 나섰기 때문이다. 민주당 측은 27일 “새누리당 공천헌금 사건은 지방검찰청 공안부에 배당하면서, 민주당 공천헌금 사건은 대검 중수부가 수사하는 것은 형평에 맞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한국일보는 (현영희 사건은 부산지검에 맡기면서…/ 야당 사건은 중수부가 맡아 ‘형평 논란’)에서 이 같은 논란을 보도했다. “대검은 이에 대해 사건 제보가 직접 중수부로 들어왔고, 특수부 수사 대상인 정치자금법 성격도 있기 때문이지 다른 정치적 이유는 없다는 입장”이라고 한국일보는 전했다.

대검 중수부가 직접 나선 것에 대해 검찰 내부의 상이한 시각도 있다. 한국일보는 “대선을 앞둔 민감한 시점에 대검 중수부가 직접 나선 것은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 등 야당 실세 정치인을 타깃으로 한 것 아니냐는 시선이 검찰 내에서도 나오고 있는 실정”이라고 보도했다.

한겨레는 이를 두고 “한상대 검찰총장이 총장의 하명사건을 전담하는 중수부를 통해 이번 사건을 ‘특별관리’하겠다는 의지”로 해석했다. 


▲ 한겨레 28일자 10면

한겨레는 10면 (대검 중수부, 민주당 공천헌금 의혹 ‘수상한 수사’)에서 “문제는 선거 관련 공안사건에 왜 대검 중수부가 나섰는지”라며 수사 주체 결정에 대해 의문을 나타냈다. 한겨레는 ‘제보를 받았다’, ‘정치자금 수사도 해왔다’는 대검의 의견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한겨레는 새누리당 공천헌금을 부산지검에 배당한 것과 달리 민주당 건은 중수부가 나선 점에 의문을 표했다. 정치 이벤트가 예정돼 있는 경우 선거 개입 논란을 피하기 위해 검찰은 통상 자체적으로 범죄 혐의를 인지해 수사에 나서는 걸 자제한다는 것이 한겨레의 근거 중 하나다.

한겨레는 “대검 중수부는 대기업이나 고위공직자, 유력 정치인의 부정부패 사건을 수사하는 곳으로, 검찰총장의 직할부대와 다름없다”며 “선거사건 등 주요 공안사건은 대검 공안부 지휘에 따라 통상 서울중앙지검 공안부가 처리한다”고 보도했다. 한겨레는 “대검 공안부는 앞서 4·11 총선 사범 처리와 관련해 ‘총선 전단계인 공천 및 당내 경선을 둘러싼 불법행위에 대해 여야 불문하고 철저히 수사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며 새누리당과 민주당 공천헌금 사건 처리 과정에서 검찰이 이중 잣대를 보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겨레는 사설 (여당 수사는 지검 공안부, 야당은 대검 중수부)에서도 검찰이 사건 배당을 통해 수사 강도와 수위를 조절한다는 의혹을 받아온 건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라면서 “더구나 한상대 검찰총장을 비롯한 대검 간부들이 대선을 앞두고 인지수사를 하지 않겠다고 여러 차례 다짐해놓고 이를 정면으로 어긴 것은 정치적 의도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한겨레는 이어 “선거를 4개월 앞둔 민감한 시점에 검찰이 아직도 ‘정치검찰’의 행태를 버리지 못한다면 스스로 무덤을 파는 짓”이라고 했다.

노무현 참배 박근혜… 전태일 열사와 인혁당 사건 피해자들에게 사과할까?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28일 전태일재단을 방문한다. 박 후보는 인민혁명당재건위원회 사건 피해자들과 만남도 검토 중이다. 후보 확정 이튿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찾아 참배한 것부터 박 후보의 행보는 이례적이었다. 특히 이번 전태일재단 방문에서 박 후보가 박정희 전 대통령의 개발독재와 유신의 직접적인 피해자들에 대해 ‘사과’할 것인지 주목된다. 한국일보, 조선일보, 세계일보 등이 보도했다.


▲ 조선일보 28일자 5면

조선일보 (박근혜, 오늘 전태일 유족 만난다)5면 에서 “다음 달 3일 전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 별세 1주기를 앞두고, 박 후보가 직접 찾아뵙겠다는 뜻을 밝혔다”며 박근혜 후보측의 말을 인용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박 후보는 전태일 열사의 동생 전태삼씨와 당시 고인과 함께 노동운동을 했던 활동가들을 만난다. 동생 전순옥 민주통합당 의원은 불참할 것으로 알려졌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 ©CBS노컷뉴스

한국일보는 6면 (박근혜, 오늘 전태일재단 방문/ 인혁당 피해자와 만남도 추진)에서 박 후보가 고 이소선 어머니를 추모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박근혜 측 관계자는 한국일보에 “국민대통합”으로 취지를 설명했다.

박근혜 후보는 인혁당 사건 피해자들과의 회동을 검토 중이다. 한국일보는 “캠프에서 인혁당 사건의 가족과 박 후보가 만나야 하는 것 아니냐는 논의가 있었다”면서 “유신 시절 가장 어두운, 비극적인 일이므로 박 후보가 유족을 빨리 만나는 것이 좋다”는 새누리당 정치쇄신특위 위원으로 임명된 이상돈 중앙대 교수의 말을 인용 보도했다.

박근혜, 차떼기당 수사한 대법관 영입… 정말 쇄신?안대희 전 대법관이 퇴임한지 48일 만에 박근혜 후보 캠프에 합류했다. 퇴임 직후 대선 후보의 캠프로 간 대법관은 그가 처음이다. 안 전 대법관은 27일 새누리당 정치쇄신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 합류했다. 대법관의 정치적 중립 의무를 저버렸다는 비판과 대법관의 위상을 제도정당에 복속시켰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언론의 평가는 박근혜의 쇄신을 위한 노력에 방점을 찍었다. 박 후보는 지난 7월부터 안 전 대법관을 삼고초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앙일보에게 그는 ‘정치혁신’의 아이콘이다. 중앙일보는 6면 (박근혜가 ‘차떼기’ 수사한 안대희 영입 … 정치혁신 맡겨)에서 “2003년 대검 중수부장 시절 한나라당의 차떼기 대선자금 수사를 지휘했던 안대희 전 대법관이 새누리당 박근혜 대통령후보 캠프에 합류했다”고 전하며 박근혜 후보가 안 전 대법관을 정치쇄신특별위원회 위원장에, 김종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을 국민행복특별위원회 위원장에, 이주영 의원을 대선기획단장에 임명하는 등 대선기구 인선안을 발표했다고 보도했다.

▲ 중앙일보 28일자 6면

안 전 대법관은 지난 2003년 대검 중수부장 시절 한나라당의 차떼기 대선자금 수사를 지휘했다.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법시험 동기로, 노 전 대통령 시절 대법관에 지명됐다. 안 전 대법관의 중용을 두고 중앙일보가 극찬하는 이유다.

박근혜 후보는 지난 20일 후보 수락연설에서 “당내에 정치쇄신특별기구를 구성하고 공천시스템 개혁을 포함해 정치발전을 위한 일대 혁신책을 만들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 한겨레 28일자 1면

한겨레의 시선은 사뭇 다르다. 한겨레는 1면 (퇴임하자마자 박근혜캠프로 달려간 대법관)에서 “대법관이 퇴임 직후 특정 정당에 간다면 그가 대법관으로 있을 때 한 판결을 국민들이 믿을 수 있겠는가”라며 “전직 대법관이 특정 정당에 갔으니 선거관리 중립성도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선거를 앞두고 간 것은 정말 심각한 문제”라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박주민 사무처장의 발언을 인용 보도했다.

한겨레는 “‘최후의 심판자’로서 사회 각 분야에 지대한 영향력을 끼친다는 점에서 대법관은 고도의 정치적 중립성을 요구받는 직책”이라며 “미국에서 대법관 임기를 종신으로 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대한변호사협회 노영희 대변인도 “대법관은 퇴임 후에도 어느 정도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한다”며 “대법관 자리를 발판으로 삼은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든다”고 말했다고 한겨레가 보도했다.

한겨레에 따르면 이런 비판과 관련해 안 전 대법관은 “나도 고민한 부분이고, 그런 비판을 할 수 있다”면서도 “하지만 (정치쇄신특위 위원장직 수락은) 당리당략이 아니라 나라와 대의를 위해 한 일이다. (정치쇄신특위는) 내가 선거운동을 하는 것도 아니고, 직접적인 정치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한겨레는 “측근인 현기환 전 의원이 공천 금품수수 의혹에 휘말리는 등 쇄신 드라이브에 제동이 걸린 상황에서 ‘부패 근절’ 의지를 다시 보여줄 ‘회심의 카드’로 판단한 것 같다”고 평가했다.

▲ 한겨레 28일자 8면

한겨레는 8면에 (안대희, 2003년 ‘차떼기당’ 수사하며 ‘국민검사’ 인기)라는 안 전 대법관 인물평 기사를 게재했다.

한겨레에 따르면 “안대희 전 대법관이 27일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의 정치쇄신특별위원장을 맡은 건 의외라는 평가가 많다”며 “대법관이 퇴임 직후 특정 정당 대통령 후보의 캠프로 가는 것은 뒷말이 나올 여지가 많기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실제 안 전 대법관은 퇴임을 앞두고 사석에서 “대법관은 모든 공직의 마지막이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안 전 대법관에게는 ‘국민검사’라는 별명이 있었다. 한겨레는 “당시로선 성역이던 대선자금 수사에 나서자 국민들은 그를 ‘안짱’이라 부르며 성원했다”고 회고했다. 그에 대한 정치권의 평가는 엇갈리기 시작한 것은 ‘차떼기당’ 수사부터다. 안 전 대법관은 2003년 대검 중수부장 시절 한나라당의 2002년 대선 자금 수사를 지휘했다.

한겨레는 안 전 대법관과 박근혜 후보의 인연(?)을 소개했다. 한겨레는 “안 전 대법관은 대선자금 수사 당시 신당을 창당했다가 한나라당으로 복귀한 뒤 활동비 2억 원을 받은 박근혜 후보에 대해선 소환조사를 하지 않았고, 이를 두고 수사 형평성 시비에 휩싸이기도 했다”고 전했다.

일본 총리 일본군 성노예 “증거 없다”… 서울신문 “우익 본색 노골화”

노다 요시히코 일본 총리가 27일 “일본이 위안부를 강제 동원한 증거가 없다”고 말했다. 마쓰바라 진 국가공안위원장은 일본군의 위안부 강제 동원을 인정하고 사죄한 1993년 ‘고노 담화’ 수정을 제안했다. 안정 국면으로 흐르던 한일 양국의 외교문제가 일본군 성노예 문제로 다시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연합뉴스와 서울신문에 따르면 노다 총리는 이날 오전 참의원 예산위원회에 출석, 일본군 성노예 문제에 대해 “(1965년의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해결이 끝났다”면서 “앞으로도 이를 계속 얘기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 서울신문 28일자 1면

서울신문 1면 (노다 “위안부 강제동원 증거없다”)에 따르면 노다 총리는 일본군 성노예 강제 동원 사실을 인정하고 사죄한 1993년 고노 요헤이 관방장관 담화에 대해 “강제 연행을 했다는 사실이 문서로 확인되지 않고 일본 측 증언도 없었지만, 이른바 종군 위안부에 대한 청취를 포함해 그 담화가 나온 배경이 있다”고 말했다.

이른바 ‘고노 담화’는 1993년 8월 고노 요헤이 당시 관방장관이 “위안소는 군 당국의 요청으로 설치됐고, 일본군이 위안소의 설치·관리와 위안부의 이송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했다”면서 “위안부의 모집은 감언이나 강압 등 본인들의 의사에 반한 경우가 많았고, 관헌 등이 직접 가담한 적도 있다”고 한 것을 가리킨다.

서울신문에 따르면 마쓰바라 진 국가공안위원장은 고노 담화와 관련, “각료들 간에 (수정 문제를)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신문은 8면 (일 ‘우익 본색’ 노골화… 고노담화 수정론 급류 탈듯)에서 “노다 총리의 발언은 고노 담화의 의미를 축소하길 원하는 일본 우익의 주장과 동일한 것”이라며 일본이 우익 본색을 노골화했다고 봤다.

서울신문은 “일본 정부와 우익 정치인들의 이 같은 망언은 위안부 강제 동원을 인정한 ‘고노 담화’ 자체를 지워 없애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독도 문제와 더불어 앞으로 한·일 관계에 새로운 갈등 요인으로 급부상할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 서울신문 28일자 8면

박장준 기자 | weshe@mediatoday.co.kr  

2012년 7월 18일 수요일

한일 군사협력 아닌 과거청산부터 해라


이글은 대자보 2012-07-17일자 기사 ' 한일 군사협력 아닌 과거청산부터 해라'를 퍼왔습니다.
[시론] 과거청산과 평화를 위한 한일민간의 연대가 더욱 절실하다.

1. 일본의 군사화와 과거문제에 대한 대응 

-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추진은 한일 군사협력의 강화를 가져와 일본의 군사화를 더욱 가속화할 것이다. 일본은 원자력법 개정을 통해 핵무기 개발의 가능성을 높였고, 일본 총리 직속의 위원회의 집단적 자위권을 요구하는 보고서를 발표하고, 일본 PKO의 집단자위권을 추진하는 등 일본의 군사화에 대한 우려가 어느 때보다 높다. 이런 상황에서 한일정보보호협정은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돕는 협정이다. 

- 최근 일본 우익들이 일본대사관 앞 일본군‘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평화비 소녀상에 ‘다케시마는 일본 땅’이라며 말뚝을 세웠다. 

- 일본 외무성은 최근 자국 뉴욕총영사에게 재미 한인들이 추진하고 있는 위안부 기림비 건립에 대해 적극적으로 항의하도록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 일제강점기 미쓰비시 중공업에 강제동원 피해를 본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에 대한 피해배상 협상이 최종 결렬됐다. 미쓰비시 측은 일본 최고재판소 판결을 근거로 개인 보상에는 응할 수 없고 이미 한일청구권 협정으로 국가간 해결된 사안이라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2. 일제 강점기 피해자 

1) 일본군 '위안부' 

일본군 ‘위안부’의 경우 피해자가 20만명으로 이중 조선인은 80%로 추산되고 있지만 정부에 등록된 피해자는 234명에 불과한 실정이다. 일본군 '위안부' 지원대상 (2012.2 기준); 생략 

2) 강제동원자 

일본이 저지른 아시아태평양정쟁(1931-1945)에 연인원 800만명에 달하는 조인인이 전쟁에 동원되었다. 이들은 노무자로 군인과 군무원이라는 이름으로, 군수공장에서 군 시설물 공사장에서 탄광에서 그리고 전쟁터에 동원되었다. 10대 남녀 청소년부터 60대의 노인까지 다양한 연령의 남녀가 일본의 침략전쟁에 동원. 노무자와 군무원들이 동원되어 공출품목을 생산하고 군 시설공사를 했던 작업장만 해도 1만개소가 넘는다. 국내를 제외한 78만명의 해외동원 피해자 중 피해신고가 들어온 것은 22만건이다. 피해자로 인정받은 21만명 가운데 한국 정부의 지원금을 받은 사람은 약 7만7000명에 불과하다. 

; 생략 ; 생략 

3. 과거사, 끝나지 않은 현재- 성노예, 전시 성폭력 

"보통 때는 그렇게 사람이 많지 않아, 하루에 15명 정도 상대해야 했지만, 주말에는 말할 수도 없이 많았다. 50명이 넘었던 것 같다"(김복동 증언,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들" 증언2집,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정신대 연구회, 1997. 한울) 

"다시 그 기억들을 되새김질하는 것이 무척 힘들다.... 내 순결을 빼앗고 나를 이렇게 만든 놈들을 갈기갈기 찢어놓고 싶은 심정도 있다. 그러나 어떻게 내 원통한 심정을 풀 수 있겠는가. 이젠 더 이상 내 기억을 파헤치고 실지 않다." (김학순) 

"성폭력은 우리의 중요한 무기였다.... 우리는 그것을 콩고정부를 자극하기 위한 방법으로서 사용했다. 성폭력은 그 정부가 우리와 타협을 원하도록 이끌었다." 2009년 도큐멘터리 "전쟁의 무기: 콩고에서 강간에 대한 고백"에서 테일러 사령관(National Congress for the Defense of the People)의 증언 

"아마 무력분쟁에서 군인보다 여성이 더욱 위험할 것이다." 2008년 5월 윌튼파크 회의, Maj.Gen(Ret.) Partick Cammaert 

- 일본군 '위안부'는 일제하 일본군의 승리를 위한 군의 사기 충전용으로 여성들이 강제 동원되어 여성의 몸이 전쟁터가 된 일본군의 성노예이다. 

- 일본군 '위안부'는 국가와 군대에 의한 체계적인 여성폭력으로 일본군 '위안부'와 관련한 일본의 행위는 전쟁범죄, 인도에 반하는 범죄를 구성한다. 따라서 이 문제에 대한 일본의 국가책임은 당연하다. 

-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은 지난 50년간 침묵을 깨고 증언하였다. 그들을 침묵하게 한 요인은 무엇인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한국 사회의 정절이데올로기 때문이었다. 정절이데올로기 때문에 자신의 가족, 심지어 부모에게조차 말하지 못했다. 순결이데올로기가 지배적인 가부장제 사회에서 '위안부'라는 낙인은 여성의 삶에 치명적이었기 때문이다. 피해자들이 침묵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우리 안의 가부장성 때문이었다. 

-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해결은 피해자의 관점(victim-oriented perspective)에 서야한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는 인도성과 존엄과 인권에 대한 존중에 기초하여 처우받아야 하며,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들의 안전, 신체적 심리적 안정과 사생활을 보장하는 데 필요한 조치들을 취해야 한다. 국가는 국내법이 가능한 범위 안에서 폭력이나 트라우마를 겪었던 피해자가 정의와 배상을 위한 법적 행정적 절차에서 다시 트라우마를 겪지 않도록 특별한 고려와 배려를 하도록 규정하는 것을 확보해야 한다. 피해자는 재판에 대한 평등하고 효과적인 접근, 피해 대한 적절하고 효과적이고 즉각적인 배상, 위반 행위와 배상 장치와 관련한 정보들에 대한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피해자에게는 각 사례의 위반의 중대성과 상황에 비례하고 필요한 범위내에서 원상회복, 금전배상, 재활, 만족, 재발 방지의 보증을 정한원칙에 규정된 바와 같이 완전하고 효과적인 배상을 제공해야한다. (국제인권법의 중대한 위반 행위와 국제인도법의 심각한 위반 행위의 피해자 구제와 배상권리에 관한 기본원칙과 가이드라인(A/60/509/Add.1) ) 

4. 해결되지 않은 과거 청산 

- 일본 정부는 그동안 종군'위안부'문제를 부인해오다가 1990년대 들어 이 문제가 대두되자 일본군 '위안소'에 대한 국가관여를 부분적으로 인정하기에 이르지만 1965년 한일이 체결한 ‘한일협정’의 부속협정인 ‘청구권·경제협력에 관한 협정’ 제2조 “양국의 모든 청구권에 관한 문제는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다는 것을 확인한다”에 따라 법적 책임은 없다고 주장해왔다. 일본의 법적 책임 부정과 함께 관련 범죄자에 대한 불처벌(impunity)과 피해자에게 배상을 하지 않고 있다. 

- 2011년 8월 30일, 헌법재판소는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이 한일 청구권협정에 의하여 소멸되었는지에 관하여 한일 간에 분쟁이 존재한다고 판단하고 일본군‘위안부’ 문제가 협정에 의하여 해결된 것인지에 관한 분쟁이 있음에도 이러한 절차를 밟지 않고 있는 외교통상부의 부작위는 위헌이라고 확인하는 결정을 내렸다. 

- 2012년 5월 24일 대법원은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일본 기업이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1965년 체결된 청구권협정은.. 일본의 국가가권력이 관여한 반인도적 불법행위나 식민지배와 직결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이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또 "피고들이 소멸시효의 완성을 주장하여 원고들에 대한 채무이행을 거절하는 것은 현저히 부당하여 신의성실에 원칙에 반하는 것으로 허용될 수 없다"고 판시했다. 

- 전쟁범죄 및 인도에 반하는 죄에 대한 공소시효 부적용에 관한 협약 

전쟁범죄와 인도에 반하는 죄에 대하여는 공소시효의 기한이 없다는 국제법상의 원칙을 확인하고 있다. 

- 국제인권법의 중대한 위반 행위와 국제인도법의 심각한 위반 행위의 피해자 구제와 배상권리에 관한 기본원칙과 가이드라인(A/60/509/Add.1) 등으로 결실 

- 일본군 '위안부'문제와 같은 전시의 여성폭력은 세계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구 유고슬라비아, 르완다, 수단, 콩고, 시에라레온 등에서 반복되어 나타났으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국제형사법정들과 특별법정이 설립되고 유엔 차원에서 지속적으로 대응이 이루어지고 있다. 

- 1995년 세계여성회의의 베이징 선언 및 행동강령 

무력 분쟁 수행중의 강간은 전쟁범죄이며 특정 상황에서는 제노사이드를 구성한다는 것, 여성에 대한 전쟁 범죄에 책임이 있는 모든 범죄자를 소추함과 동시에 피해 여성에 대한 완전한 보상을 제공할 것 등이 명기하고 있다. 

- 여성・평화・안보에 대한 유엔 안보리 결의 1325, 1820, 1880, 1888, 1960호 채택 

특히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2008년 6월 19일 채택한 1820호는 성폭력을 전쟁의 전술로서 인정하고 무장갈등의 모든 당사자는 민간인에 대항하는 모든 성폭력 행위를 즉각 완전히 중지할 것을 요구(op2)하였다. 성폭력 문제에 대한 대응을 더 효과적으로 할 수 있도록 후속 결의 1888호, 1960호 채택하였다. 

5. 한일 정부는 군사협력이 아니라 과거 청산을 위한 협력을 

- 일본군 '위안부'문제와 일제하 강제동원 피해는 일본의 제국주의와 군국주의의 산물이다. 일본은 과거를 반성하지 않고 한일협정을 내세우며 피해자에 대한 책임을 지지않고 있다. 한국 정부 역시 한일협정을 내세우며 청구권문제에 소극적이다. 아시아태평양 전쟁을 일으켜 동아시아 4천만 민중을 고통을 안겨 준 일본은 역사적 책임을 지지 않고 '과거'를 망각하고 있다. 그러나 수많은 피해자들이 생존해있고 지금도 고통을 당하고 있다. 일제가 안겨준 피해는 과거가 아니라 '현재'이다. 과거를 청산하지 않는 일본과 군사협력은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지원하는 길이며, 일본이 군사대국화 되었을 때 다시금 전쟁 피해자를 양산할 수 있다. 한국정부와 일본정부는 군사협력이 아니라 피해자의 고통에 공감하며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비롯한 올바른 한일 과거사 청산에 앞장서야 할 것이다. 

-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와 광주의 '근로정신대할머니와 함께 하는 시민모임"을 비롯한 민간의 과거사 청산 활동은 피해자를 지원하며 일제시기 피해문제에 소극적인 정부를 대신해 과거청산을 위한 적극적인 활동으로 헌법재판소의 판결과 대법원의 판결을 이끌어냈다. 과거청산을 위한 여성과 시민사회의 활동은 피해자 할머니들 뿐 만 아니라 정의와 평화가 실현되는 사회를 위한 강력한 원동력으로서 희망을 주고 있다. 군사협력이 아닌 과거청산과 평화를 위한 한일민간의 연대가 더욱 절실하다. 

-------------- * 위는, 시민평화포럼 등이 2012년 7월 11일에 개최한 「한일 군사협력 무엇이 문제인가?」에서 필자가 발제한 내용임. 
* 필자는 [평화를 만드는 여성회]의 정책위원장이다. 
* 본문은 (대자보)와 기사제휴협약을 맺은 평화전문 인터넷신문 (평화만들기) http://www.peacemaking.co.kr 2012년 7월 16일자 (제516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정경란 

2011년 12월 15일 목요일

[사설] 일본, 수요시위 1000회 피맺힌 외침이 안 들리나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1-12-14일자 사설 '[사설] 일본, 수요시위 1000회 피맺힌 외침이 안 들리나'를  퍼왔습니다.
어제 서울 중학동 주한 일본대사관 길 건너편에 130㎝ 높이의 작은 소녀상이 세워졌다. ‘평화비’로 이름 붙여진, 작은 의자에 걸터앉은 이 소녀는 일본군 성노예로 희생당한 할머니들의 당시 모습을 상징한다. 어린 소녀의 평화로운 삶에의 희망은 일제의 전쟁범죄로 인해 갈가리 찢겼다. 한맺힌 삶을 살아온 길원옥씨 등 위안부 할머니 다섯명은 평화비 앞에서 각국에서 모인 2000여명과 함께 “일본은 사죄하라”고 피맺힌 절규를 토해냈다. 위안부 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수요시위는 이렇게 1000회 행사를 치렀다. 일본 도쿄와 미국 뉴욕, 대만 타이베이 등 세계 곳곳에서도 수요시위 1000회에 연대의 마음을 전하는 다양한 집회가 열렸다.
1992년 1월8일부터 어제까지, 20년 동안 수요일마다 어김없이 열린 수요시위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한과 분노, 슬픔의 역사 자체였다. 1991년 고 김학순 할머니가 “내가 눈을 감기 전 한을 풀어달라”며 위안부의 존재를 처음 알린 뒤, 할머니들은 일본 정부의 전쟁범죄 인정과 공식 사죄, 법적 배상 등을 요구하며 시위를 이어왔다.
군대 위안부에 대한 일본의 책임은 이미 국제적으로 판정이 내려진 상태다. 1996년 국제노동기구(ILO)는 일본 정부의 보상을 촉구했고, 1998년 유엔 인권소위는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을 인정했다. 2007년엔 미국과 유럽연합 등의 의회에서 위안부 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결의안이 채택됐다.
하지만 일본은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을 통해 식민지배의 책임 문제가 모두 청산됐다며 꿈쩍도 않고 있다. 우리 정부도 일본에 대한 적극적인 압박을 사실상 꺼려왔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8월 “정부가 위안부 문제에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위헌”이라고 결정했지만, 이명박 대통령은 10월 서울에서 열린 노다 요시히코 일본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위안부 문제를 거론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위안부 생존자는 234명에서 63명으로 줄었다. 올해에만 16명의 할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이제 정말로 시간이 촉박하다. 조금만 더 지나면 일본은 진정으로 사죄할 대상을 마주할 길마저 잃게 된다. 일본의 침묵은 여성들을 일본군 성노예로 내몬 비인도적 범죄행위와 크게 다르지 않다. 위안부 문제를 공식 인정하고 사죄·배상하지 않는 한 일본은 지구촌의 평화와 공존을 거론할 자격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