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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2월 17일 토요일

[사설] 여성 인권에 소극적인 여성부, 존재 이유가 뭔가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1-1216일자 사설 '[사설] 여성 인권에 소극적인 여성부, 존재 이유가 뭔가'를 퍼왔습니다.
여성가족부에 대한 여성계의 불신이 커지고 있다. 여성부 해체와 김금래 장관 퇴진을 요구하는 여성단체의 성명이 나올 정도다. 여성부가 핵심 과제인 여성 인권 보호에서 제구실을 다하지 못했다는 게 비판의 이유다. 여성부는 왜 이런 지경에 이르렀는지 냉철히 반성하고 적극적인 자세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
여성부가 비판의 대상이 된 것은 현대자동차 하청업체에서 해고당한 성희롱 피해자와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 문제에서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성희롱 피해여성의 경우, 지난 1월국가인권위로부터 성희롱을 인정받았지만 복직이 되지 않아 여성부 건물 앞에서 200일 가까이 농성을 해왔다. 그러나 여성부는 “피해자를 도울 법적 권한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며 별다른 지원의 손길을 내밀지 않았다. 또 김 장관은 지난달 이 여성을 면담하면서 “(회사와의) 소송에서 이겨도 복직이 어려우니 다른 곳에서 일하며 피해보상을 받아라”는 취지의 말까지 했다고 한다. 성희롱을 폭로했다가 되레 해고를 당한 피해자를 감싸안기는커녕 가슴에 큰 상처를 준 것이다. 여성부는 또 군대위안부 할머니들의 1000회 수요시위에서 한-일간 논란이 된 ‘평화비’를 놓고도 사실상 뒷짐만 졌다. 외교문제로 비화할 수 있으니 신중해달라는 외교통상부의 요청을 받고 그저 눈치만 본 것이다.
여성부는 이처럼 제 할 일은 못하면서 엉뚱한 곳에서 사회적 갈등만 증폭시키기도 했다. 가사에 ‘술’이 들어 있는 노래들을 무분별하게 ‘19금’ 판정했다가 망신을 산 것이 대표적이다. 16살 미만 청소년에 대한 심야 인터넷 셧다운제 역시 자유 침해 논란을 낳고 있다.
여성부의 소극적 태도와 관련해선 김금래 장관에게 아쉬운 대목이 많다. 전임 백희영 장관과 달리 김 장관은 여성단체협의회 사무국장,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간사(한나라당 비례대표)를 지내는 등 여성계에서 잔뼈가 굵었다. 그런데도 여성 현안에서 두드러진 활동이 보이지 않는다. 장관이 된 지도 3개월이 지났으니 시간을 핑계로 댈 처지도 아니다.
여성부는 늘 “다른 부처에 비해 법적 권한이 없다”는 말로 무기력을 호소한다. 하지만 권한이 제한적이기에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고 목소리를 내는 것 외엔 다른 살길이 없다. 현안에 침묵하면 여성부의 존재감은 완전히 사라진다는 사실을 김 장관은 명심해야 한다.

2011년 12월 15일 목요일

[사설] 일본, 수요시위 1000회 피맺힌 외침이 안 들리나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1-12-14일자 사설 '[사설] 일본, 수요시위 1000회 피맺힌 외침이 안 들리나'를  퍼왔습니다.
어제 서울 중학동 주한 일본대사관 길 건너편에 130㎝ 높이의 작은 소녀상이 세워졌다. ‘평화비’로 이름 붙여진, 작은 의자에 걸터앉은 이 소녀는 일본군 성노예로 희생당한 할머니들의 당시 모습을 상징한다. 어린 소녀의 평화로운 삶에의 희망은 일제의 전쟁범죄로 인해 갈가리 찢겼다. 한맺힌 삶을 살아온 길원옥씨 등 위안부 할머니 다섯명은 평화비 앞에서 각국에서 모인 2000여명과 함께 “일본은 사죄하라”고 피맺힌 절규를 토해냈다. 위안부 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수요시위는 이렇게 1000회 행사를 치렀다. 일본 도쿄와 미국 뉴욕, 대만 타이베이 등 세계 곳곳에서도 수요시위 1000회에 연대의 마음을 전하는 다양한 집회가 열렸다.
1992년 1월8일부터 어제까지, 20년 동안 수요일마다 어김없이 열린 수요시위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한과 분노, 슬픔의 역사 자체였다. 1991년 고 김학순 할머니가 “내가 눈을 감기 전 한을 풀어달라”며 위안부의 존재를 처음 알린 뒤, 할머니들은 일본 정부의 전쟁범죄 인정과 공식 사죄, 법적 배상 등을 요구하며 시위를 이어왔다.
군대 위안부에 대한 일본의 책임은 이미 국제적으로 판정이 내려진 상태다. 1996년 국제노동기구(ILO)는 일본 정부의 보상을 촉구했고, 1998년 유엔 인권소위는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을 인정했다. 2007년엔 미국과 유럽연합 등의 의회에서 위안부 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결의안이 채택됐다.
하지만 일본은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을 통해 식민지배의 책임 문제가 모두 청산됐다며 꿈쩍도 않고 있다. 우리 정부도 일본에 대한 적극적인 압박을 사실상 꺼려왔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8월 “정부가 위안부 문제에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위헌”이라고 결정했지만, 이명박 대통령은 10월 서울에서 열린 노다 요시히코 일본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위안부 문제를 거론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위안부 생존자는 234명에서 63명으로 줄었다. 올해에만 16명의 할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이제 정말로 시간이 촉박하다. 조금만 더 지나면 일본은 진정으로 사죄할 대상을 마주할 길마저 잃게 된다. 일본의 침묵은 여성들을 일본군 성노예로 내몬 비인도적 범죄행위와 크게 다르지 않다. 위안부 문제를 공식 인정하고 사죄·배상하지 않는 한 일본은 지구촌의 평화와 공존을 거론할 자격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