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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5월 18일 토요일

日의원 "한국인 매춘부 아직도 우글우글"


이글은 2013-05-17일자 기사 '日의원 "한국인 매춘부 아직도 우글우글"'을 퍼왔습니다.
"오사카 번화가에서 '너 한국인, 위안부'라 부르면 올 정도"

일본 중진 의원이 17일 "일본에는 한국인 매춘부가 우글우글하다"는 한국 비하 발언을 해 파문이 일고 있다.

(요미우리) 신문 등 일본언론에 따르면, 위안부 망언을 한 하시모토 도루 오사카 시장이 공동대표로 있는 일본유신회 소속의 6선 니시무라 신고(西村真悟) 중의원 의원은 이날 당 중의원 의원 회의에서 "한국인 매춘부는 아직도 일본에 우글우글하다"며 "오사카의 번화가에서 '너 한국인, 위안부 '라고 부르면 올 정도다. (한국과) 싸웁시다"라고 말했다.

그는 하시모토의 위안부 발언을 질타하는 해외언론 보도로 인해 "위안부가 '성노예'로 전환되고 있다"며 강한 불만을 나타낸 뒤, "이런 상황이 국제적으로 확산되면 (한국의) 모략이 성공할 지도 모른다"며 반격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위안부는 필요했다"는 망언을 한 하시모토 오사카 시장을 감싸면서 위안부를 거듭 매춘부로 매도하고 나선 것.

그의 발언은 일본 언론들로부터도 망언이란 질타를 받았고, 그는 이에 기자회견을 통해 한국이라는 나라 이름을 거론한 것은 온당하지 못했다고 한발 물러섰다.

그러나 비난 여론이 국제적으로 확산될 움직임을 보이자 그는 "당에 폐를 끼쳤다"며 탈당 신고서를 제출했다. 유신회는 그러나 이를 수리하지 않고 바로 제명했다.

파문이 일자 일본정부 대변인인 간 요시히 관방장관은 이날 오후 "매우 유감이다. 논평만한 가치도 없다"며 파문 진화에 부심했다.


박태견 기자

2012년 11월 9일 금요일

"위안부는 창녀들…" 日극우파 美신문광고 파문


이글은 뉴시스 2012-11-09-일자 기사 '"위안부는 창녀들…" 日극우파 美신문광고 파문'을 퍼왔습니다.

【뉴욕=뉴시스】노창현특파원=일본의 광신적 극우파들이 미국 뉴저지의 스타레저(Star Ledger)에 지난 4일자로 일본군강제위안부의 역사를 왜곡하는 광고를 실어 파문이 일고 있다. ‘그래, 우리는 사실들을 기억한다(Yes, We remember the facts)’는 제목의 광고는 한국의 홍보전문가 서경덕 교수와 가수 김장훈 씨 등이 뉴욕타임스와 타임스스퀘어 광고판에 올린 ‘당신은 기억하세요?(Do You Remember?’ 광고를 반박하는 형식으로 돼 있다. 이 광고를 게재한 ‘역사적 사실위원회’는 극우언론인 사쿠라이 요시히코를 비롯, 정치평론가 TV프로듀서 교수 작곡가 등으로 구성됐다. robin@newsis.com 2012-11-09

위안부기림비 있는 뉴저지 지역 신문 게재


【뉴욕=뉴시스】노창현 특파원 = ‘위안부 모집은 민간 브로커들이 했다’, ‘일본 정부는 불법 브로커들을 단속했다’ ‘성노예는 존재하지 않았고 직업적인 창녀들의 수입은 장군의 월급을 능가했다.’


일본의 광신적 극우파들이 미국에서 벌이는 역사 왜곡의 광고전이 점입가경이다. 뉴저지의 유력지 스타레저(Star Ledger)에 지난 4일 전면으로 실린 이 광고는 한마디로 “일본군 위안부는 자발적인 창녀이며 일본 정부는 민간브로커들의 불법을 오히려 단속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래, 우리는 사실들을 기억한다(Yes, We remember the facts)’는 제목의 광고는 한국의 홍보 전문가 서경덕 교수와 가수 김장훈씨 등이 뉴욕 타임스 등 유력 매체와 타임스스퀘어 광고판에 올린 ‘당신은 기억하십니까(Do You Remember?’ 광고를 반박하는 형식으로 돼 있다.


광고를 실은 ‘역사적 사실 위원회(the Committee for Histoical Facts)’는 극우언론인 사쿠라이 요시히코를 비롯, 아오야마 시게하루, 스기야마 고이치, 니시무라 고유. 후지오카 노부가스 등 정치평론가와 TV 프로듀서, 작곡가, 교수 등으로 구성돼 있다. 


광고는 이른바 ‘세 가지 팩트’를 관련 문서와 신문기사 등을 곁들여 미국의 독자들을 오도하고 있으며 영화제목을 패러디한 ‘섹스 거짓말 그리고 위안부’라는 자극적인 제목의 유투브 동영상까지 안내하고 있다.


자칭 첫 번째 팩트는 위안부 모집은 민간 브로커들이 저지른 일이라는 것이다. 정작 일본 군대는 이를 금지했다며 1938년 3월4일자 '일본군 2197문서'를 싣고 있다.


두 번째 팩트는 1939년 8월31일자 동아일보 기사다. ‘악덕 소개업자 발호’ ‘농촌 부녀자를 유괴 피해여성 100명 돌파’ 등의 제목이 달린 이 기사는 여성들을 유괴·납치해 위안부로 삼은 일당이 경찰에 검거됐다는 것. 광고는 “이 시기 한국은 일본의 지배 하에 있었고 결과적으로 일본 정부가 이런 범죄에 대해 강력한 대응을 했다는 걸 입증한다”고 주장했다.


위안부가 성노예(Sex Slave)가 아니라는 세 번째 팩트는 실소를 자아낸다. 이들은 “합법적인 매춘부들은 어느 전쟁이나 존재했다. 그들은 잘 대접받았고 장교나 심지어 장군의 월급보다 많이 벌었다. 전쟁 중에 그들이 곤란을 당한 것은 슬픈 일이지만 어린 여성들을 성노예로 끌고갔다거나 20세기 최대의 인신매매 범죄라고 우기는 것은 일본 군대를 고의로 훼손하려는 의도”라고 주장했다.


2007년 미 하원에서 통과된 위안부 결의안은 캐나다와 네덜란드에서도 채택이 되었고 최근 유엔 회의에서도 일본의 위안부 역사 인정 및 사과를 요구하는 발언이 나오는 등 전 세계적인 인권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시민참여센터의 김동찬 대표는 “미국 신문에 위안부 역사를 부정하는 광고를 실은 자들의 뻔뻔함이 가증스럽다”면서 “일본이 아직도 전세계 보편적인 "인권의 이슈"를 외면하고 역사 왜곡을 일삼고 있는 것이 심히 우려된다”고 말했다.


한인사회는 격앙된 반응이다. 팰팍의 유재원씨는 “하늘이 알고 땅이 아는 역사의 진실을 거짓으로 덮는 자들과 같은 하늘 아래 있다는 것이 화가 나지만 미치광이들의 뇌구조를 탓하기 전에 미주 한인사회가 진실을 알리는데 힘을 합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일본의 극우파들이 뉴욕타임스나 월 스트리트 저널같은 권위있는 매체에 광고를 싣지 않고 로컬 신문을 택한 것은 전략적인 포석으로 분석된다. 스타 레저는 지역 신문이지만 위안부기림비가 건립된 뉴저지 북부 버겐카운티에서 많은 독자들을 확보하고 있다.


전국지에 광고를 게재하면 일본군 강제위안부의 존재를 모르는 대부분의 미국인들에게 홍보(?)하는 자충수가 되는만큼 이를 피하면서 지역 주민들에게 위안부 이슈에 대해 의문을 품도록 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지난 5월 이후 일본은 정부와 민간 차원에서 위안부 이슈와 독도에 대해 이전에 볼 수 없는 공격적인 자세로 일관하고 있다. 일본 총영사가 위안부기림비가 건립된 팰리세이즈팍시를 방문, 지원을 빙자해 철거를 종용한데 이어 자민당 의원 3명이 항의 방문을 했다.


또 최근엔 위안부기림비에 ‘다케시마는 일본 영토’라는 말뚝을 박고 맨해튼의 한국 총영사관 민원실 현판에 다케시마 스티커와 동일한 말뚝을 갖다 놓는 등 조직적인 테러를 자행하고 있다. 이번 광고도 이들 극우파들이 계획하는 전략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분석이다.


robin@newsis.com

2012년 10월 1일 월요일

‘미쓰비시 불매 범국민선언 운동’을 시작하며


이글은 민중의소리 2012-09-30일자 기사 '‘미쓰비시 불매 범국민선언 운동’을 시작하며'를 퍼왔습니다.

 
ⓒ민중의소리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은 25일 오전 광주시의회 기자실에서 전범기업 미쓰비시에 대한 불매운동을 선언하고 있다. 이들은 해방 70여년이 되도록 근로정신대 문제에 대한 사죄와 배상을 외면한 미쓰비시와 그 계열사의 니콘 카메라, 미쓰비시 자동차, 기린 맥주 등 제품 불매운동에 나서면서 국민들의 동참을 호소하고 있다.

조선여자근로정신대를 아시나요?

일본군 위안부가 아닙니다.

일제강점기, 일본의 전범기업 후지코시, 미쓰비시 등에 강제 연행되어 군수공장에 배치돼 강제 노동에 시달리고 온갖 차별과 배고픔에 고통당하고 임금 한 푼 받지 못한 조선의 어린 여학생들을 말합니다. 해방 후 고국에 돌아와서는 일본군 위안부로 오인 받아 결혼에도 어려움을 당하고 했다하더라도 나중에 파혼의 아픔을 당한 가난한 여성들을 말합니다.

'일제와 전범기업의 강제 연행, 강제 노동, 임금체불에 피해당하고 희생당한 조선의 미성년 여성 아동'이 바로 조선여자근로정신대입니다.

태평양 전쟁 막바지 패전으로 기울어진 상황에다가 인적, 물적 자원의 고갈로 전쟁 수행이 어려워진 일제와 전범기업들은 조선의 어린 여학생들(당시 12세 ~ 15세)에게 까지 “일본에 가면 돈도 벌 수 있고, 공부도 할 수 있다”고 현혹하여 군수공장에 배치합니다.

하루 10시간 이상의 고된 노동은 어린 여학생들에겐 감당키 어려운 작업이었습니다. 온갖 차별과 배고픔은 견디기 어려운 설움이었습니다. 지진에 죽은 어린 학생들도 있었습니다. 일본이 패망하여 고국으로 돌아올 땐 한 푼도 받지 못했습니다. 

고국에서의 삶은 더욱 기구한 나날들이었습니다. 어렵게 한 결혼도 그리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남편의 폭언과 폭행, “일본에서 몇 놈이나 상대했느냐?”며 군위안부로 오인하여 결국 파혼에 이르게 된 경우도 많습니다. 이웃들에게 알려 질까봐 몰래 살았던 아픔에 가난까지 겹쳐 한 많은 세월을 살아오신 분들… 이런 고통의 세월에 이미 많은 분들은 돌아가셨고 살아계신 분들도 팔순이 넘은 고령의 할머니들이 되어 있습니다.

일본 제1의 전범기업 미쓰비시를 아시나요?

미쓰비시는 조선인 10만 명을 강제 연행해 간 대표적인 전범기업입니다.탄광, 조선소, 군수공장 등에 배치하여 강제 노동을 시키고 임금 체불한 기업입니다. 

혹시 '군함도'를 아십니까?미쓰비시는 그 때만이 아니라 지금도 일본 최대 군수산업체입니다.전쟁 물자를 생산해 언제든지 평화를 깰 수 있는 침략을 뒷받침하고 있는 기업입니다.일본 정부와 마찬가지로 조선에 대한 침략과 수탈을 시인하지 않고 사죄하지도 않으며 배상도 하지 않는 반인륜 악덕 기업입니다.

미쓰비시와 싸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먼저, 일본의 양심 있는 시민들로 구성된 '나고야 미쓰비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소송 지원회'(나고야 지원회)입니다. 이 분들은 26년 전부터 이 문제 해결을 위해 미쓰비시와 일본 정부와 싸우고 있습니다. 한국의 피해자들을 원고로 세워 10년 동안 재판투쟁을 해 왔고 그 뒷바라지를 감당해 왔습니다.

기각, 패소 후에도 끈질긴 투쟁을 계속했습니다. 3년 동안 '금요행동'을 실천해 왔습니다. 금요행동은 매주 금요일 나고야에서 도쿄(왕복 720Km)까지 올라와 미쓰비시 본사 앞에서 근로정신대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여 왔습니다. 수차례 협박을 받는 위협 속에서도 꾸준히 투쟁해 오고 있는 분들입니다.

그리고 광주에 있는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시민모임)입니다. 너무나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광주시민들은 부끄러움과 친일매국원흉 청산이라는 역사적 사명으로 반미쓰비시 운동을 활발히 전개해 왔습니다.

2009년 3월 결성 후 곧바로 서명운동을 전개했고, 미쓰비시 자동차 광주판매장 앞에서의 208회 동안의 1인 시위도 감당했습니다. 이 투쟁은 결실을 보았습니다. 바로 미쓰비시자동차 광주판매장의 영업 포기와 철수입니다. 또한 10만 명 서명운동을 전개해 13만 5천 명에 이르게 되었고 이 서명용지는 일본정부와 미쓰비시에 전달했습니다. 이런 투쟁의 결과 미쓰비시를 협상장에 끌어내는 해방 후 최초의 일도 해 냈습니다.

나고야 지원회와 시민모임은 '근로정신대 할머니 협상단'을 꾸려 미쓰비시와 16차 본 협상을 추진해 왔습니다. 이 협상을 지원하기 위해 '10만 희망릴레이'를 전개했습니다. 이 또한 목표를 초과 12만 2천 명이 넘는 참여를 이끌어 냈습니다. 

미쓰비시와의 협상은 의미 있는 성과를 냈지만 배상에 대한 미쓰비시의 반역사적이고 오만한 태도에 협상은 결국 결렬에 이르게 됩니다. 미쓰비시는 “피해 할머니들에게 금전적인 직접 보상은 할 수 없다. 일본에 공부하러 온 한국의 유학생들에게 장학금 지급을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습니다. 

특별히 이 과정에서 한국 정부는 무관심과 비협조로 일관해 왔다는 것을 밝히는 바입니다.

다시 투쟁을 전개하며 동참을 호소 드립니다

3년 여 기간 동안 미쓰비시와의 협상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내기 위해 금요행동을 잠정중단 했던 나고야 지원회는 또 다시 금요행동을 재개했습니다. 매주 금요일 아침 시나가와 역엔 나고야 지원회원들의 여론전과 전단지 배포 등 실천이 있습니다. 미쓰비시 본사 앞에서의 항의 시위가 있습니다. 

광주의 시민모임은 '제1의 전범기업 미쓰비시 불매 범국민선언 운동'을 시작합니다.불매운동의 대상은 니콘(nikon) 카메라, 미쓰비시 자동차, 미쓰비시 예초기, 미쓰비시 엘리베이터, 기린맥주입니다.시민들이 생활 속에서 참여, 실천 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또한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발주 사업 입창에 원천적으로 참여할 수 없도록 하는 법 개정 운동, 전범기업과의 계약대금 즉시 유예 촉구, 입국 금지 조치 촉구 등도 전개할 것입니다.

대한민국은 지금 '뼈 속까지 친일'인 자를 대통령으로 두고 있습니다. 또한 친일과 배신과 반인권 반민주 독재자 박정희의 딸이 새누리당 대선 후보로 있는 상황입니다. 분단과 신자유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저들 1%를 몰아내지 않는 한 우리 조국의 미래는 여전히 암울할 수밖에 없습니다. 생명과 정의와 평화의 조국, 동아시아는 물론 지구촌의 평화로운 공동체를 위해서도 전범기업은 물리쳐야 할 대상입니다. 이에 반미쓰비시 불매운동에 적극 동참해 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오늘, 우리가 역사입니다.

김희용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상임대표

2012년 9월 10일 월요일

[윤미향 칼럼]‘위안부’ 문제 해결 기회 걷어찬 한국정부


이글은 민중의소리 2012-0910일자 기사 '[윤미향 칼럼]‘위안부’ 문제 해결 기회 걷어찬 한국정부'를 퍼왔습니다.
‘위안부’ 헌재 판결 1주년, 한국정부는 뭐하고 있나?

“이명박 대통령 독도방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8.15를 앞두고 정신없이 분주한 일정을 보내고 있을 때 난데없이 걸려온 기자의 전화인터뷰에 즉답을 할 수가 없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대답은커녕 만우절에 간혹 지인들에게 당하곤 했던 당혹감과 허무함이 다가왔다. 그때는 일본군‘위안부’와 관련한 압박여론을 어떻게 형성할 수 있을까를 골몰하던 시기였기에 황당함은 더 크게 느껴졌다. 

한 손으로 전화를 받으면서 다른 한 손으로 인터넷 뉴스를 검색하니 정말 이명박 대통령이 독도를 방문했단다. 아뿔싸! 내 머릿속을 치고 가는 것은 바로 “일본군‘위안부’ 문제가 어디로 향해 갈 것인가!”였다. 아니나 다를까, 이전까지는 한국 헌재 판결에 의해 한국정부가 주도권을 쥐고 계속 일본정부에게 양자협의를 제의하고, 국가의 법적 책임을 요구했는데, 대통령의 독도방문은 상황을 완전히 거꾸로 뒤집어 놓았다.

“우리 땅을 대통령이 방문했는데 무슨 난리냐!” 하는 목소리들도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소리들을 무색하게 할 정도로 일본정부의 강한 공격이 시작되었다. 그동안 피해자들과 민간단체들이 한국정부에게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일본정부를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하라, 중재위원회에 회부하라고 요구해 왔다. 그런데 오히려 일본정부가 ‘독도’를 카드로 한국정부에게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하자고 공격하기 시작했고, 한국정부는 대응하느라 쩔쩔맸다. 

이명박 대통령은 그러한 상황을 예견치 않았을까? 아니면 그 상황을 예견했음에도 불구하고 한일외교문제보다 얼마 남지 않은 대통령 임기에 대한 불안 해소와 게속 하락하는 지지도를 끌어올리기 위한 이미지 만들기가 더 중요했을까? 아니면, 정말 독도 방문이 한일 간의 과거역사 청산에 기여할 것이라고 생각했을까?

ⓒ뉴시스 지난 8월 10일 독도를 전격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

한국정부 직무유기, 헌재 판결에도 안 고쳐져

일본군‘위안부’ 제도는 일제의 군과 정부가 적극 주도하여 식민지조선을 포함한 아시아태평양지역의 젊은 여성들을 강제로 전쟁터에 끌고 가 ‘성노예’를 강요한 국가적 범죄행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군‘위안부’ 제도의 피해자들은 ‘광복’ 후 반세기가 지나는 동안 자신이 피해자라는 사실조차 이야기할 수 없었던 억압된 세상에서 살아야 했다. 뿐만 아니라 피해를 해결 받지 못함으로 인해 그 피해는 또 다른 피해를 만들었다. 피해자들의 평범한 육체적. 정신적 생활을 가로막았으며 가족과 이웃, 사회와의 정상적인 관계를 방해하는 등 피해자들의 고통을 가중시켜 왔다. 이러한 피해자들의 고통은 개인에게 국한되지 않고, 가족과 사회전반에 반목과 갈등, 상처를 유발시키며 현재에 이르고 있다. 

한국정부는 이러한 피해자들의 문제를 올바르게 해결하여 피해자들의 인권을 옹호하고, 한일 간의 역사를 바로잡아야 할 책임이 있음에도, 그 책임을 방기해왔다. 결국 한국정부는 2006년에 피해자들의 헌법소원심판청구 소송을 당해야 했고, 1년 전 8월 30일 헌법재판소로부터 위헌판결을 받았다. 헌법재판소 판결은 이전까지 한국정부가 제 책임을 하지 못한 것이 위헌이라는 뜻이고, 따라서 앞으로 헌법재판소 판결을 제대로 이행하여 구체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할 행위의무가 주어졌음을 명백히 밝힌 것이다. 그러니만큼 한국정부는 중재절차를 비롯하여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의 배상권리 등에 관한 국제기준에 입각하여 정부의 책임을 다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1년이 지난 지금, 어떠한가? 여전히 한국정부는 위헌 상태를 계속하며,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외교활동의 푯대가 어디인지,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갈팡질팡하며 한 걸음도 나가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대통령의 독도 방문 후에는 엉뚱한 곳을 향해 튕겨가는 탁구공처럼 한국과 일본정부 사이에 설전만이 오가고 있다. 

더욱이 일본정부는 한국정부의 정권말기 상황을 간파라도 한 듯이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대해 ‘강제연행 입증자료’가 없다며 일본군 성노예 범죄를 국가의 정책으로, 제도로 입안하고 집행해 놓고도, ‘연행’ 과정의 문제로 책임여부를 축소·왜곡하는 시도를 계속하고 있다. 이미 군 수뇌부의 명령으로, 행정문서로 정책을 마련하여 지시하고, 하달하며, 집행했던 사실을 입증하는 수많은 군 문서들을 자신들의 손으로, 입으로 조사하고 발표해놓고도 지금 와서 그것이 잘못이었다며 거꾸로 돌리려 하고 있는 것이다. 

대통령의 독도 퍼포먼스, ‘위안부’ 해결 기회 걷어찼다

그렇게 대통령의 독도방문 퍼포먼스로, 일본군‘위안부’ 문제는 한일 간의 외교쟁점에서 다시 사라졌다. 이명박 대통령이 8.15 경축사에서 “위안부 문제는 보편적 여성인권문제”이며 “일본정부는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며 전례 없이 강경하게 발언했지만, 일본정부에 압력도, 국제사회에 홍보도 되지 못한 채 우리 ‘국민’들을 향한 메시지만 되고 말았다. 그렇게 일제 강점으로부터 해방된 지 67년이었던 8.15는 지나가버렸다. ‘광복’이었으되 ‘광복’의 기쁨을 누리지 못한 채 67년을 살았던 일본군성노예 생존자들은 여전히 길거리 투쟁을 벌이고 있고, 피해자들의 기본권 침해를 계속하고 있는 한국정부의 위헌 상태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그 사이에, 지난 1년 동안 피해자들은 10명이 사망하였고, 60명의 생존자만 남아있는 아픈 현실이다. 

왜 한국정부는 피해자들과 민간단체들이 유엔과 ILO, 세계 각국 의회를 돌아다니며 민간외교를 펼치듯이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일본정부에 대한 국제적 외교활동을 펼치지 못하는가?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한반도 평화에 위협이 되고, 아시아 평화에 위협이 되는, 저렇게 위험하게 변해가는 일본정부와 일본사회에 대해 세계 여러 나라 정부들로부터 지지와 연대를 받아내지 못하는가? 여전히 일본군‘위안부’ 문제는 외교적인 총력을 기울이기에는 껄끄러운 주제라고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아니면 여전히 군사협정을 체결해야 할 동반자로 여기고 있는 것일까?

ⓒ김철수 기자 경술국치 102주년을 맞은 29일 오후 서울 종로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정기 수요집회에 참석한 위안부피해 할머니들이 피켓을 들고 있다.

일본군‘위안부’ 문제는 한국에서만 피해자가 있었던 것이 아니다. 역사적인 상황과 배경, 피해의 정도에 차이가 있었지만 아시아태평양지역의 여성들이 성노예로 연행되어 인권유린을 당했던 문제이다. 충분히 남북 및 아시아피해국 정부와 공조로 국제적인 힘을 만들 수 있다. 세계 각국 의회 결의를 이끌어냈던 나라들의 정부의 지지와 연대도 가능할 것이다. 더욱이 지난 2005년, 한국정부는 한일협정에서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법적 책임 문제는 다뤄지지 않았고, 이 때문에 일본정부에 법적 책임을 추궁해 나갈 것이라고 발표하였다. 그러므로 전후 단 한 번도 진행되지 못했던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의 배상권 행사를 위해 한국정부는 유엔 등 국제기구와 국제재판소 등에서의 해결방안을 적극 추진하고, 세계 각국의 연대와 지지를 통해 일본정부에게 조속한 문제해결을 촉구해야 할 의무가 있다. 위헌의 범죄를 더 이상 반복해서는 안 된다. 

지난 주간에 또 한 분의 일본군‘위안부’ 피해자가 돌아가셨다. 북이 고향이신 할머니는 위안부로 끌려가신 후에 이산의 아픔까지 안고 이남에서 홀로 외롭게 살아야 했다. 살아있을 때에 문제 해결을 보면 한이 풀릴 것 같다던 할머니들이 그렇게 한 분 두 분 한 많은 역사를 안은 채 생을 마감하고 있다. ‘내일’을 기대한다는 것조차 사치라고 여겨지는 피해자들의 ‘오늘’에 해방을 이룰 수 있도록, ‘국민’으로서 존중받고 보호받을 수 있도록 한국정부는 조속히 외교정책을 수립하고, 다방면의 외교활동을 진행하길 촉구한다.

윤미향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대표

2012년 8월 30일 목요일

日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증거 대라니 내가 증인이다”


이글은 민중의소리 2012-08-29일자 기사 '日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증거 대라니 내가 증인이다”'를 퍼왔습니다.

http://www.youtube.com/watch?v=oKCA5TEhLmw&feature=player_embedded

경술국치일 102주년인 29일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수요집회가 서울 종로구 중학동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렸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는 성명을 통해 "노다 총리와 일본정부의 행태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뿐 아니라 인권이라는 인류 보편의 가치를 나 몰라라 하는 반인도적 도발행위"라고 지적하고 노다 총리의 망언 철회와 사죄, 정부 각료들의 망발을 중단시킬 것을 일본 정부에 촉구했다.

이날 집회에서는 최근 독도 논란에 이어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 사실을 부인하는 일본 정부 고위층의 주장에 대한 비판이 잇따랐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김복동 할머니는 위안부 강제동원을 부인하는 일본 정부 고위층의 주장에 대해 "증거를 내놓으라니 여기 증인이 살아있지 않느냐"며 "억울하게 당한 늙은이의 한을 풀지 않으면 일본도 큰 재앙을 당할 것이다. 하루 빨리 잘못을 뉘우치고 사죄와 배상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철수 기자 경술국치 102주년을 맞은 29일 오후 서울 종로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정기 수요집회에 참석한 위안부피해 할머니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김도균 기자 vnews@vop.co.kr

2012년 8월 17일 금요일

중앙일보 “구속된 김승연 회장 운 없고 억울할 듯”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2-08-17일자 기사 '중앙일보 “구속된 김승연 회장 운 없고 억울할 듯”'을 퍼왔습니다.
[아침신문 솎아보기] 장준하 의문사 의혹 증폭…한일 관계 악화일로


법원이 회사에 3024억원의 손실을 끼치고 차명 계좌로 주식을 거래해 양도소득세 15억원을 포탈한 혐의로 김승연(60) 한화그룹 회장에게 징역 4년을 선고하고 지난 16일 법정 구속했다. 그동안 국가경제에 기여했다는 이유로 재벌 회장을 집행유예로 석방해온 관행과 달리 기업인 범죄에 무관용 원칙을 적용한 것이다. 이를 두고 종합일간지 대부분은 재벌개혁 여론에 따른 결과라고 평가하고 나섰다.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에 맞서며 민주화운동을 하다 1975년 의문사한 장준하 선생의 두개골 부위가 지름 6㎝ 크기 원형으로 함몰돼 있는 사실이 37년 만에 확인됐다. 그가 인공적인 물체로 가격당해 타살됐을 것이라는 의혹이 증폭되며 박정희의 딸인 박근혜 새누리당 의원의 대응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과 일왕 사과 요구 발언 등 대일 공세에 따른 ‘역풍’이 일본 사회로부터 불고 있다. 하타 유이치로 국토교통상과 마쓰바라 진 국가공안위원장이 15일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해 한국을 자극한 데 이어, 일본 사회 내에서 반 한류 분위기까지 보이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한국 언론은 일본의 태도에 대한 비판을 이어가고 있다. 

다음은 16일 아침 전국단위 종합일간지의 1면 머리기사 제목이다.

경향신문 (경제‧한류로 번진 ‘한일 갈등’>)
국민일보 (한‧중‧러 vs 일 ‘영토전쟁’)
동아일보 (총수 배려 관행 3‧5 공식 깨졌다)
서울신문 (청 “노다 내각에 기대할 게 없다” 강경)
세계일보 (귀국해봤자 백수…고급 두뇌 안 돌아온다)
조선일보 (대기업 회장 선처없다…판결 대전환)
중앙일보 (대기업 총수도 관용없다)
한겨레 (미-중이 키운 동북아 영토 갈등…한국은 좌충우돌)
한국일보 (현대차, 사내하청 3000명 정규직 전환)

김승연 회장 법정구속 ‘재벌 관용시대’ 끝나나

▲ 경향신문 1면 기사.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에 대한 법정구속을 두고 언론은 대체로 “기업범죄에 대한 법원의 단호한 의지를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경향신문은 3면 기사에서 “법원이 기업범죄에 무관용 원칙을 적용한 것은 정치권을 중심으로 한 이른바 ‘경제민주화’ 논쟁이 가열되면서 재벌에 대한 압박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한겨레 3면 기사에 따르면 이날 선고를 내린 서울서부지법 서경환(46·사법연수원 21기) 부장판사는 “실형 선고는 양형 기준에 따른 것으로, 법정구속이 일반적 관행이고 법정구속을 하지 않는 것이 예외적인 것”이라며 “경영 공백이나 경제발전 기여 등은 집행유예를 위한 참작 사유가 될 수 없다”고 말했다.

지금껏 법원은 재벌 총수에게 관대한 편이었다.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선언으로 시작된 ‘삼성특검’에 의해 기소된 이건희 삼성 회장은 2008년 서울중앙지법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2001년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과 2006년 두산그룹 박용오·박용성 전 회장 형제도 모두 같은 형을 선고받아 ‘재벌 회장=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이 공식처럼 받아들여졌다. 회사 돈을 횡령한 혐의로 기소된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2007년 1심에서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받았지만 법정 구속되지는 않았으며, 2심에서는 집행유예형을 받았다. 

경향은 “재벌 총수에 대한 사법부의 무관용 원칙은 앞으로 더 강화될 공산이 크다”고 내다봤다. 연말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에서 여야 할 것 없이 경제민주화 방안을 쏟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경향은 “민주통합당이 재벌 기업에 대한 출자총액제한제도 도입과 부자증세를 포함한 9개 법안을 내놓았고 새누리당은 횡령·배임을 저지른 재벌 총수에게는 집행유예 선고를 금지하는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고 전했다.

과거 ‘재벌 총수 봐주기’, ‘솜방망이 처벌’ 등 사회적 비난이 일자 양형위원회는 2009년 7월 횡령·배임 이득액에 따른 처벌 기준을 정해 시행했다. 이후 대기업 총수 비리사건으로는 지난 2월 이호진(50) 전 태광그룹 회장에게 양형기준이 처음 적용됐다. 양형기준을 보면, 횡령·배임으로 인한 이득액이 300억원 이상인 경우 기본적으로 징역 5~8년을 선고하되 별도 양형 요인에 따라 감경·가중하도록 했다. 김승연 회장의 경우 개인적 이득액이 300억원 이상으로 인정됐다. 

한편 김 회장의 법정 구속으로 한화는 당분간 비상경영체제 돌입이 불가피해졌다. 한화는 이날 “재판부의 1심 판결을 존중하나, 법적 쟁점이 있는 사항에 대해서는 항소를 통해서 다시 한번 자세히 소명해 2심 재판부의 판단을 구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한화 관계자는 “계열사 최고경영자의 책임경영으로 운영돼 왔기에 기본적인 경영은 문제없이 굴러갈 것”이라면서도 “이라크 건설 사업 추가 수주, 독일 태양광 업체인 큐셀 인수 등 김 회장이 주도하던 사업에 차질이 우려된다”고 전했다.

조선, “재계는 큰 충격” 

조선일보는 “법원이 16일 한화 김승연 회장을 법정 구속하자 재계가 큰 충격에 빠졌다”고 전했다. 조선은 3면 기사에서 “이번 판결은 정치권과 시민단체가 재계를 압박하는 가운데 나온 것이어서 재계가 받는 충격은 더 컸다. 재계는 이번 판결이 정치권 등에서 경제 민주화와 재벌 개혁을 이슈로 몰고 가는 흐름 속에서 나왔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조선은 “재계 일각에선 사법부까지 재벌 때리기에 나선 것 아니냐는 불만이 나온다. 법적으로 다툴 여지가 있는데도 그룹 총수를 법정 구속까지 한 것은 ‘사법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 아니냐는 것”이라며 재계 입장을 전했다. 이와 관련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최근 경제도 어려운데 기업인을 법정 구속한 것에 대해 유감으로 생각한다”는 짤막한 논평만 냈다.

조선은 같은 날 사설에서 “1990년 이후 10대 그룹 총수 가운데 7명이 경영이나 회계 비리로 유죄판결을 받았으나 모두가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그리고 거의 전원이 1년 이내에 사면·복권되며 국민 사이에서 사법부에 대한 불신과 대통령 사면권 행사의 정당성에 대한 논란이 번져왔다”며 이번 판결의 배경을 짚었다. 

조선은 이어 “법인 돈은 총수 개인 돈과는 다르다. 우리 기업인들도 이제 법인 돈과 대주주의 돈을 엄밀하게 구별해 회사 돈을 함부로 꺼내 써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재계는 법원이 경제 범죄에 대한 처벌 수위를 높여가고 정치권이 경제 민주화를 앞세워 변신을 압박하는 상황 속에서 새로운 경영 방식과 진로를 찾아야 할 때가 왔다”고 주장했다. 

중앙 “김승연 회장 억울할 법도 하다”

중앙일보는 이번 판결을 두고 1면 머리기사에서 “대선을 앞두고 있고, 경제는 어려워지는 미묘한 시기에 상징적인 판결이 나왔다”고 전했다. 중앙은 “이번 판결은 세태의 변화와 무관치 않다.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대기업과 부자에 대해 곱지 않은 시각이 늘고 있다. 재판부에서 예전처럼 구속을 면해주는 판결을 내놓기 어려운 분위기가 사회 전반에 깔려 있다”며 이번 판결이 부자에 대한 곱지 않은 시각에 따른 것인 양 전했다. 

중앙은 “여야 막론하고 대기업을 몰아세우면 대선 득표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는 듯하다”며 “대선 후보들은 개념이 모호한 ‘경제민주화’를 내걸고 선명 경쟁을 하고 있다. 이런 때 김 회장의 재판이 벌어진 것”이라며 “김 회장과 한화그룹으로선 운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고, 억울할 법도 하다”고 밝혔다. 이번 판결에 정치적 의도가 있다는 뜻이다. 

중앙은 “세상은 대기업과 부자에게 우호적이지 않다. 이는 전 세계적인 현상이기도 하다. 미국인들의 64%는 고소득자에게 더 많은 소득세를 물리기를 원하고 있다. 경기 침체와 대선이 겹쳐 대기업과 부자에 대한 부정적 시각은 확산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한 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의 발언을 인용, “잘못은 벌하되 보여주기식 처벌이나 몰아세우기는 곤란하다”고 밝혔다. 

공개된 장준하 유골…이윤성 교수 “뒷머리 함몰 의한 사망” 

▲ 서울신문 8면 기사.

장준하기념사업회는 16일 오후 장 선생의 유해를 이장할 당시 찍었던 장 선생의 유골 사진과 유골을 검시한 법의학 교수의 소견서를 공개했다. 장 선생의 두개골 사진은 지난 1일 그의 유해를 ‘장준하공원’으로 이장할 때 찍은 것이다.

한겨레 2면 기사에 따르면 장 선생의 두개골에는 벼랑에서 추락했다고 보기 어려운, 지름 6㎝가량 원형으로 파인 상흔이 매우 뚜렷했다. 진황색 두개골은 머리뼈 형태나 치아 상태도 그다지 썩지 않은 채로 꽤 온전하게 남아 있었다. 두개골 오른쪽 원형으로 금이 간 상처 부위는 깊이 1㎝가량 들어간 상태였다. 상처 오른쪽 위 45도 각도로 금이 가 있고, 위쪽과 아래쪽으로도 갈라져 있었다. 당시 이장 과정을 지켜본 장남 장호권(63)씨는 “누군가 망치 같은 것으로 부친의 뒷머리를 가격한 것이 너무나도 분명해, 보는 순간 이를 악물 정도로 분노가 솟구쳤다”고 말했다.

장 선생의 두개골에 나 있는 상처는, 1975년 장 선생 운명 직후 유족의 의뢰를 받아 주검을 육안과 손으로 살펴본 의사들의 머리 부위 검안 소견과도 거의 일치하는 것으로 보인다. 사망 당시 주검을 들여다봤던 조철구 박사는 1993년 민주당의 ‘장준하 선생 사인규명 조사위원회’에 낸 사체 검안 소견에서 “직접 사망 원인은 우측두 기저부 함몰 골절상으로 인한 두개강내 손상으로 추정”된다며 “후두부 골절 부위가 해부학적으로 추락으로 인해 손상당하기 어려운 부위라는 것을 지적할 수 있다”고 밝혔다. 

지난 1일 장 선생의 유골을 검시했던 서울대 의대 법의학교실 이윤성 교수는 소견서에서 ‘뒷머리 함몰에 의한 사망’이라는 의견만 확정적으로 밝혔다. 사망 당시 의사들의 검안 소견과 37년 만의 유골 검시 결과를 검토한 장준하기념사업회는 “이윤성 교수가 사인이라고 밝힌 두개골 오른쪽 귀 뒤쪽의 함몰 모양과 위치는 결코 추락에 의한 함몰이 아니다. 추락하는 과정에서 그 부분에 사진과 같은 모양의 함몰 골절은 결코 생길 수 없다”며 정부에 전면 재조사를 요구했다.

서울신문은 8면 기사에서 “불거진 장준하 타살 의혹이 대선 국면 ‘핫 이슈’로 부상했다”고 전했다. 장준하 선생은 독립운동가이자 박정희 정권 시절 대표적 재야 정치인으로, 지난 1975년 8월 경기 포천의 약사봉에 올랐다가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박정희 정권은 실족사라고 발표했지만 권력기관에 의한 타살 의혹이 줄곧 끊이지 않았다. 73㎏의 몸무게에도 머리 외에 별다른 외상이 없는 점, 장비도 없이 길이 아닌 절벽을 타고 하산한 점 등 수많은 의문이 제기됐다. 2004년 과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 타살 의혹을 조사했으나 ‘진상규명 불능’이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민주, 장준하 의문사 진상조사위 구성 “박근혜 입장 밝혀라”

이런 가운데 민주통합당은 16일 ‘장준하 의문사 진상조사위’를 구성키로 했다. 우원식 원내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고인에 대한 유골 감식 등을 통해 타살 등의 정확한 사인을 밝혀내고 박정희 유신정권의 중앙정보부 등 국가 기관 개입 여부에 대한 진실을 밝혀낼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일보는 8면 기사에서 이번 진상조사위가 “최근 장 선생의 타살 의혹이 다시 불거진 데 따른 것으로, 박 전 대통령의 딸인 박근혜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에 대한 공세 차원과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17일은 장 선생이 세상을 떠난 지 37년이 되는 날”이라고 짚었다.

유기홍 민주당 의원은 “정부가 타살 의혹 규명에 나서지 않는다면 (장 선생이 타계한) 1975년 당시 퍼스트레이디였던 박근혜씨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것을 두려워한 소극적 대응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문재인 후보는 이날 트위터에 “장준하는 시대정신이었습니다. 살아 있어야 하고 살아 계셨어야 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그분을 잃었는지 꼭 밝혀져야 합니다”라고 밝혔다. 손학규 후보 측 김유정 대변인도 논평에서 “박정희 정권에 의한 정치적 타살이 사실로 밝혀진다면 박근혜 후보는 즉각 석고대죄하고 후보직을 사퇴하는 것이 옳다”고 말했다. 

한편 장준하 의문사와 관련해 조중동은 소극적인 보도태도를 보였다. 조선일보는 12면 단신기사로 이번 사안을 처리하며 검사 소견서를 인용, “머리뼈와 오른쪽 볼기뼈의 골절은 둔체에 의한 손상이지만 이 손상이 가격에 의한 것인지 넘어지거나 추락하면서 부딪쳐 생긴 것인지는 판단할 수 없다”고 밝혔다. 동아일보는 8면 기사에서 박근혜 의원 경선캠프 관계자의 말을 인용, “박 의원이 2007년 장준하 선생의 유가족을 만나 사과 말씀을 드린 게 있다”고 밝혔다. 중앙일보는 이날 단신도 보도하지 않았다. 

일본 사회에 ‘반한 감정’ 고개… 주일대사관 부근서 연일 시위

한·일관계가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이후 급격히 나빠지고 있다. 한일 소식통은 16일 경향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그동안엔 한국의 행동에 대해 일본은 ‘구두항의’ 수준에 그쳤지만 이번엔 행동으로 보여주자는 의견들이 많다”며 “통화스와프 재검토가 언론에 흘러나온 것 자체가 이런 기류를 반영한다”고 말했다. 물론 ‘경제보복’을 실행할 가능성은 낮지만 루머에 민감한 국제금융시장의 특성을 감안하면 가볍게 볼 사안이 아니라는 것이다. 

경향신문 4면 기사에 따르면 한류 종사자 사이에서는 한류스타 송일국씨가 출연하는 드라마의 일본 내 방영이 보류된 것을 한류 위축의 전조로 해석하는 이들도 있다. 일본 일간지 문화담당 간부는 “방송국들이 우익들의 압력을 우려해 한류드라마 방영을 자제하는 움직임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일본 사회에서는 특히 이 대통령의 일왕 사과 요구 발언에 정치인이나 우익들은 물론 일반 시민들조차 불쾌감을 표출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도쿄에서 부동산업을 하는 신고 가즈오(眞後和男·60)는 “어제 저녁 회식 때 참석자들이 이 대통령의 일왕 사과 요구 발언에 너나없이 실망과 분노를 표출했다”면서 “이 대통령의 발언이 ‘선을 넘어버렸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주변에 적지 않다”고 말했다.

한겨레는 5면 기사에서 “일본이 독도 문제로 외교적 충돌을 빚은 한국에 대해 연일 강공을 퍼붓고 있는 반면,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를 놓고 충돌한 중국과는 갈등을 키우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겨레는 “중국인의 센카쿠열도 상륙은 처음이 아닌데다, 센카쿠열도는 일본이 실효 지배 중인만큼 굳이 분쟁을 키우지 않겠다는 의도로 보이는 반면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은 일본의 시각에서 보면 한국 정부가 일본을 크게 자극한 일이고, 한국이 실효 지배 중이기 때문에 분쟁을 키워서 일본이 손해 볼 게 없다는 계산이 작용한 것”이라 분석했다. 

정부, “위안부 등 역사문제 일본과 타협할 수 없다”

이런 가운데 청와대는 16일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과 관련해 “역사 문제는 일본과 타협할 수 없다”는 강경한 입장을 표명했다. 한국일보 1면 기사에 따르면 청와대는 노다 총리 내각이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를 보여 주지 않을 경우 노다 내각에 더 이상 기대하지 않겠다는 뜻도 밝혔다. 

조태영 외교통상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우리는 분명히 타협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면서 역사 문제에서의 비타협 입장을 강조했다. 조 대변인은 또 일본 각료 2명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해 “일본의 책임 있는 인사들이 역사를 반성한다면서 행동으로 군국주의 상징인 야스쿠니를 참배한다면 과연 역사를 반성하는 것인지 생각할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한편 일본 정부는 독도 문제의 국제사법재판소(ICJ) 제소를 한국에 제안하기로 최종 결정했다. 일본이 독도 문제의 국제사법재판소 제소를 한국에 제안하는 것은 1962년 이후 약 50년 만이다. 일본 정부는 16일 오후 총리 관저에서 사이토 쓰요시 관방 부장관을 책임자로 하는 독도 문제 관련 부처 국장급 회의를 열고 이 같이 결정했다.

▲ 조선일보 5면 기사.

조선, “日 단체, 독도상륙 시도 가능성 커져”

조선일보는 정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과, 홍콩 활동가들의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 상륙에 자극받은 일본 우익이 독도 불법 상륙을 시도할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커졌다”고 보도했다. 

16일 군과 해경 등에 따르면 일본 우익 등 일본 민간인들이 독도 상륙을 시도할 경우 해경 함정과 독도 경비대원 등 경찰이 일선에서 대응하고 군은 후방에서 지원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조선 5면 기사에 따르면 일본 우익 단체 등을 태운 민간 선박이 독도 영해(12해리·22㎞)에 접근하면 해경 경비함이 독도 우발 사태 위기 대응 매뉴얼에 따라 긴급 출동해 “영해를 침범하면 나포하겠다”는 경고 방송을 하게 된다. 독도 위기 대응 지침은 일본 우익의 상륙 시도 등 6개 유형의 우발 사태 대응 방법과 절차를 시나리오별로 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차단 작전에도 일본 우익 등이 독도에 상륙할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독도는 경비대원이 경계 근무를 서는 동도(東島)와 독도 주민 숙소가 있는 서도(西島)를 포함해 크고 작은 91개 섬으로 구성돼 있다. 해경 관계자는 “배로 독도 근처까지 접근한 뒤 수십명이 헤엄쳐 동도·서도 외에 작은 바위섬에 올라 우리 땅을 밟았다고 주장할 수 있다”고 했다.

우익 단체 회원들이 독도에 상륙할 경우 독도 경비대원들이 이들을 체포해 출입국관리법 위반으로 강제 출국시키거나 재판에 회부하는 절차를 밟게 된다. 그러나 해경 경비함과 독도 경비대가 막기 힘들 정도로 일본 민간인들과 선박 규모가 크거나, 자위대 함정과 항공기 등 일본 군대가 출동하면 군이 지원 역할에서 더 나아가 일선에서 직접 대응을 하게 된다. 

현대차 “비정규직 3천명 정규직 채용”

현대자동차가 16일 사내하청 노동자 3000여명을 2016년까지 정규직으로 채용하겠다고 밝혔다. 한겨레 1면 기사에 따르면 현대차 사쪽은 이날 울산 북구 양정동 울산공장에서 열린 노사교섭에서 사내하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3000여명의 사내하청 노동자를 채용해 정규직 정년퇴직에 따른 결원과 신규로 필요한 인력 등을 충원하겠다는 안을 제시했다.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는 모두 6800여명(노조 통계로는 8000여명)에 이른다. 현대차는 올해 1000명을 우선 채용하고, 나머지는 2016년까지 단계적으로 채용한다는 계획이다.

현대차는 “사내하청과 관련된 논란을 해소하고 사회적 책임을 다한다는 차원에서 이런 결단을 내리게 됐다”며 “아울러 정규직화 대상이 아닌 사내하청 노동자의 급여를 대폭 올려 직영 노동자와의 임금격차를 최소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현대차는 대법원이 사내하청을 불법으로 판단해 정규직으로 전환하라고 판결한 데 대해선 여전히 ‘소송을 낸 노동자 개인에 대한 판결’이라는 태도를 유지했다. 

경향신문 16면 기사에 따르면 현대차 노사는 지난 2월 대법원에서 “현대차의 사내하청 노동자는 정규직으로 채용된 것으로 봐야 한다”는 판결이 나온 뒤 이 판결을 다른 사내하도급 노동자에게도 일반화시킬지를 놓고 대립해왔다. 현대차 관계자는 “사내하도급 문제가 산업계 전반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 현실적인 대안을 찾으려고 고심했다”며 “불법파견 논란을 마무리하고 고용 유연성을 확보하는 계기가 마련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노조는 그러나 전원 정규직화 안이 아니어서 수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현대차노조 권오일 대외협력실장은 “어차피 2016년까지 퇴직 등으로 3000여명가량 신규채용 수요가 생기게 된다”며 “이 수요를 하도급 노동자로 메우겠다는 의미일 뿐이라서 협상안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밝혔다. 

직접적인 당사자인 비정규직노조도 반발했다. 현대차 비정규직노조 박현제 지회장은 “3000여명만 정규직화한 뒤 남은 인력들은 합법적 파견직으로 재구성하겠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노광표 부소장은 “사측이 일면 진전된 방안을 내놓은 것으로 볼 수 있지만 노조에 확실한 신뢰를 주지 못하는 게 문제”라며 “협상에서 제외된 비정규직노조와 시민단체 등 다양한 계층이 참여해 이번 문제를 하나의 사회적 협약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것도 해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안철수재단’ 안철수 명칭은 그대로… 대선전 활동 사실상 유보

안철수재단은 16일 재단의 기부 활동을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판단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유권해석과 관련, 재단의 명칭은 유지하면서 법적 테두리 안에서 사업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국일보는 6면 기사에서 이 같은 사실을 전하며 “현 상태에선 재단 명칭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정상적인 기부활동을 펴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대선 이후에 본격적인 활동을 하겠다는 것을 에둘러 표현한 것으로 풀이된다”고 전했다. 

안철수재단은 이날 오전 박영숙 이사장 주재로 이사회를 열어 “선관위의 유권해석을 염두에 두는 한편, 재단의 설립 취지를 구현하기 위해 현재의 재단 명칭을 유지하면서 정해진 사업 계획에 따라 업무를 진행할 것”이라고 입장을 정리했다. 재단은 “출연자의 기부 정신을 바탕으로 설립되었으나 법적으로는 출연자로부터 독립된 별개의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재단의 독립성에 대하여 논란이 제기된 것을 유감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앞서 중앙선관위는 13일 안철수재단이 입후보예정자의 명칭을 포함하고 있어서 기부활동이 공직선거법 위반에 해당된다는 유권해석을 내렸다. 이런 상황에서 재단이 명칭을 고수함에 따라 본격적인 활동은 대선 이후에 시작할 수밖에 없다. 재단은 그러나 활동 시기를 구체적으로 못 박지는 않았다. 한국은 이를 두고 “안 원장의 대선 출마 문제와 직접적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점에 부담감을 느꼈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정철운 기자 | pierce@mediatoday.co.kr 

'이것이 일본의 실체입니다' 확산… 분노, 충격


이글은 노컷뉴스 2012-08-16일자 기사 ''이것이 일본의 실체입니다' 확산… 분노, 충격'을 퍼왔습니다.
독도·위안부 문제로 고조된 반일감정… 빠르게 확산

 

최근 독도·위안부 문제로 반일감정이 고조된 상황에서 일제강점기 일본군의 잔인한 행태를 담은 게시물이 빠르게 퍼지고 있다. 

이 게시물은 ‘이것이 일본의 실체입니다’는 제목으로 일제 강점기 일본군의 만행을 주된 내용으로 한다. 

게시물은 미소를 지으며 민간인의 목을 베는 일본 군인, 하의가 벗겨진 채 고문당하는 여인, 트럭에 실린 채 막사로 끌려가는 위안부여성 등 당시의 사진 60여장과 각 사진에 대한 간략한 설명으로 구성돼 있다. 

게시물 초반부에 적힌 ‘심장이 약한 분은 주의가 필요합니다’라는 당부처럼 사진들은 매우 끔찍하다. 잘린 목이 백화점 상품처럼 진열된 사진, 길거리에서 죽은 채 누워있는 아이의 사진들은 보는 이로 하여금 분노를 느끼게 한다.


이 게시물을 본 네티즌들은 ‘이런 만행을 온 세상에 알려야 하는 건데.. 원통하네요’, ‘아픈 역사의 자료다’, ‘독일 유태인의 만행이 알려졌듯 일본의 만행도 영화나 책으로 만들어 알려야 한다’ 등 대부분 과격한 반응을 쏟아냈다. 

사실 국민들이 갖는 반일감정은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지만 최근 독도·위안부 문제와 올림픽 한일전이 맞물리면서 다시금 일본에 대한 적대감이 커졌다. 이런 분위기에 힘입어 이 게시물도 빠른 속도로 전파되고 있는 것이다.

경기도 일산에 사는 권 모씨(48세)는 최근 친구에게 게시물의 주소가 적힌 카카오톡 메시지를 받아 이 게시물을 접했다. 권씨는 게시물을 보고 난 후 “일본인들의 잔혹한 행위들에 대해서 새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다. 통탄을 금할 수 없다. 물론 한-일 외교관계에 있어서 용서와 협력은 필요하겠지만 그들의 만행을 잊어서는 안될 것 같다.”는 소감을 밝혔다. 

그렇지 않아도 최근 박종우의 ‘독도 세리머니’ 논란, 대통령의 독도 방문, 욱일승천기를 모티프로 한 일본 체조 유니폼 등으로 인해 반일감정이 고조되고 있는 시점에서 이 게시물은 국민들의 반일감정을 더욱 뜨겁게 달구고 있다.

CBS노컷뉴스 기명균 인턴기자

2012년 8월 16일 목요일

MB, 인권 없는 선진국 타령 그만 하시라


이글은 미디어스 2012-08-16일자 기사 'MB, 인권 없는 선진국 타령 그만 하시라'를 퍼왔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언급하며 일본의 책임 있는 조치를 촉구했다. 그가 2008년 취임 이후 광복절 경축사에서 위안부 문제를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그는 이날 “일본군 위안부피해자 문제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에 반하는 행위”라고 말했다.  그가 말했던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줄이면 인권이 된다. 더하거나 뺄 것 없는 지극히 타당한 발언이지만 전 정권에서 유행했던 진정성의 측면에서 보면 할 말이 많을 수밖에 없다. MB가 인권을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고 보기 어려운 대목이 많기 때문이다. 

▲ 이명박 대통령이 15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67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경축사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와 올바른 역사에 반하는 행위"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흔히들 내부의 문제를 덮기 위해 외부에서 문제를 만든다는 말을 한다. 또한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듣고 싶어 하는 것을 말한다고 한다. 위정자를 두고 하는 말이다. MB의 위안부 관련 발언을 ‘잇따른 대일 공세’라고 표현하는 일부 언론이 있다. 사실 MB는 독도 방문에 이어 위안부문제를 거론하며 여론의 시선을 단박에 잡아냈고 그리고 끌고 있다. 요즘 TV에서 그의 얼굴이 부쩍 많이 나오고 있다. 
측근 비리 등 부정적 여론의 중심에 섰던 그가 독도 ‘깜짝’ 방문에 이어 위안부 문제를 거쳐 “대한민국이 당당히 선진국 대열에 진입했음을 확인한다”고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그가 정작 말하고 싶은 대목은 ‘대한민국이 선진국 대열에 진입했다’는 선언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위정자는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듣고 싶어 하는 것을 말한다는 것과는 달리, 선진국 진입이라는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한 셈이다. 돌아오지 않는 메이리쯤 된다. ‘기여’, ‘맞아’하는 여론이 얼마나 될까.
인류의 보편적 가치, 즉 인권의 문제로 돌아오면 대한민국은 인권에서 있어서 적어도 선진국이 못된다. 못되는 정도가 아니라 한참 멀었다. 바로 MB 때문이다. 최근 그는 역대 최악이라는 표현도 부족할 현병철 인권위원장의 연임을 강행했다. 반발은 당연지사.
업무수행능력에서 무리가 없다는 판단이었다고 한다. 갖가지 문제가 만천하에 드러난 현병철 위원장에게 어떤 점에서 무리가 없다는 것인지, 대략 짐작할 수 있다. 현병철 위원장이 MB에게 밉보인 적은 없다. 가이드라인에서 벗어나 본 적이 없다는 얘기다. 당연히 청와대 입장에서는 한 번 해본 그가 업무수행능력에서 탁월하다 여길 수밖에 없다.
‘정치는 임기가 있지만 경제와 민생은 임기가 없다’는 그에게 한마디만 하고 마치겠다. 그가 챙길 경제와 민생은 시간이 정해져 있다. 더 나아가 그가 챙길 인권은 더 이상은 없다. 인권을 입에 올리지 마시라. 인권 없는 선진국 타령 그만 하시라. 

안현우 기자  |  adsppw@mediaus.co.kr

2012년 8월 8일 수요일

“국민 어루만져야할 정치권, 제 욕심 채우기 바빠”


이글은 민중의소리 2012-08-08일자 기사 '“국민 어루만져야할 정치권, 제 욕심 채우기 바빠”'를 퍼왔습니다.
[인터뷰]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의 20년 투쟁

 
ⓒ이승빈 기자 김복동 할머니

지난달 21일 김복동(87) 할머니는 서울을 출발해 워싱턴에서 열린 미국 하원의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정부의 공식시인과 사과를 요구하는 결의안' 채택 5주년 기념식에 참가했다.

김 할머니와 일행은 LA다운타운 일본총영사관 앞에서 1032차 수요시위를하고 칼스테이트대학 LA 캠퍼스에서 강연을 했다. 또 갤러리웨스턴에서 스티브 카발로 작가와 언론 인터뷰를 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벌였다.

미국 글렌데일 시의 프랭크 퀸테로 시장은 7월 30일을 "한국 일본군 '위안부'의 날"로 선정했고, 미국 전국방송인 폭스뉴스는 3일 뉴저지주 팰리세이즈팍 공립도서관 앞에 있는 일본군강제위안부 기림비 앞에서 두 차례나 생방송 뉴스로 위안부 문제를 방송했다. 

한국정신대대책협의회(정대협) 윤미향 대표와 미국을 방문하고 온 김 할머니는 "미국 워싱턴도 가고 LA에도 갔지. 대학교에서 학생, 학부형들 5~6백명 많이 모였는데 과거 이야기 해주니 '그렇게 험악한 줄은 몰랐다. 자기들도 힘쓰겠다'고 하더라"며 "LA가서는 일본대사를 만났는데 '자기 혼자만 힘을 써서 되는 것이 아니다. 너무나 오랫동안 할머니들 고생시켜서 미안하다'고도 말했어"라고 상황을 설명했다.

그는 미국에 다녀오니 마음이 가벼워 진 것 같다고 했다. 김 할머니는 "미국인들이 관심이 없을 줄 알았는데 관심이 깊어. 특히 위안부 할머니들을 많이 걱정해"라며 "우리 교포들도 많아서 LA에서는 우리들처럼 수요시위를 하는데, 우리를 모른다고 하는 것 보다 관심을 주니 마음이 더 좋지. 가볍고"라고 말했다.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에 건넨 1천만원

ⓒ이승빈 기자 김복동 할머니

지난 5월 5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를 고발하는 '전쟁과 여성인권박물관'이 마포구 성미산 자락에 개관했다. 2003년 점화식을 한 지 9년 만이다. 박물관은 꽃다운 나이에 전쟁터로 끌려간 위안부 할머니들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 졌으며 검은 벽돌로 지하 1층, 지상 2층으로 돼 있다. 1034회를 맞은 정대협과 할머니들의 수요시위의 결실이기도 하다. 

김 할머니는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을 건립할 때 매월 조금씩 적금을 모아 1천만원을 전달했다. 최근 미국에 다녀와서도 LA기림비 건립을 위해 보태라며 1000$를 기금했다.

그는 "내가 직접 당한사람"이라며 "내 혼자 힘으로는 안되는 일을, 우리들 위해 일하는 사람들을 도와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자 한다"며 돈을 보태는 이유를 전했다. 이어 "힘껏 도와주고 싶지만 가진게 없어서 많이 해주지 못한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김 할머니는 지난 1992년 7번째 진행된 수요시위 현장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20년 동안 한결같이 일본의 사죄와 배상을 위해 싸워왔다. 그런 김 할머니도 "이렇게 오래 걸릴 줄 알았으면 애초에 나오지도 않고 묻고 살았을 텐데.."라며 긴시간 투쟁에 지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지금은 신사적이지, 그때는 청와대 앞에 드러눕고 그랬어"

ⓒ민중의소리 미국 방문에서 여성인권 활동을 인정받은 공로패

김 할머니는 14살 때 일본군에 끌려가 22살에 돌아왔다. 그는 군복을 짓는 공장에 가는 줄 알았지만 8년 동안 중국·타이·말레이시아를 떠돌았다. 해방이 됐지만 자신이 겪은 일을 세상에 알리기는 어려웠다. 김 할머니는 90년대가 돼서야 진실을 들고 나올 수 있었다.

그는 "처음 신고를 하라고 할 때 내가 가정만 가졌더라면 못했겠지. 그런데 갔다 왔다고 하면 어떻게 생각하겠어. 가정이 없으니 '내가 말을 안하면 이게 묻힐 것 아니냐', '우리들이 말을 해야만 나쁜 짓을 한 것을 알 것 아니냐'하고 생각했지"라며 말했다.

이어 "할매들이 젊을 때였는데.. 처음에는 '우리나라 국민들이 이렇게 몰라주나' 서러웠어. 지금은 신사적이지만 그때는 막 청와대 앞에서 드러눕고 그랬거든. 그러면 청년들이 우리를 짊어지고 실어 날라서 서울광장에 콱 내려놓고 그랬어"라며 전했다. 

그는 "요즘은 예전과 달리 좀 알아주니까 '나와서 이렇게 하길 잘했구나' 생각이 들지. 관심이 높아져서 마음이 좋아"라며 밝혔다. 그는 특히 수요집회에 참여하는 학생들을 이야기 하면서 "더우나 추우나 와서 할 때보면 우리가 기운이 좀 난다"며 "학생들이 과거 역사 잘 알아서 '우리나라에도 그런일이 있었구나' 알고 잘 자라줬으면 좋겠어"고 고마워 했다.

"국민 어루만져야할 대통령이 도둑질하기 바빠"

ⓒ이승빈 기자 김복동 할머니

김 할머니는 일본 정부가 사죄와 배상을 하지 않는데에는 우리 정부의 역할에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무조건 적으로 일본을 배타할 것은 아니지만 과거를 깨끗하게 청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 할머니는 "우리나라 대통령은 '우리 둘이(일본과 한국) 서로 왕래하는 것도 좋지만 과거 잘못된 것은 깨끗하게 청산하자' 이렇게 바로잡아야 하는데 바로잡지도 않고 있다"며 "정치인들은 나라를 사랑하고 국민의 아픔을 어루만져 줘야 하는데, 권력을 잡기 전에는 다 해준다고 해놓고 막상 권력을 쥐면 제 욕심 챙기기 바쁘다"고 질타했다.

이어 그는 "남의 일이 아니라 내 집안일이라고 생각하고 이 나라의 대통령이라면 일본에게 '과거의 잘못은 깨끗이 해결하라'고 강력하게 항의를 해서 일본이 잘못을 뉘우치고 사죄하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할머니는 '하루 빨리 일본이 자기 잘못 뉘우치고 법적 배상하고 사죄를 하는 것'외에는 더 바라는 것이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사죄를 받으면 마음이 풀릴 것 같아. 그 전에는 이 마음이 풀리지가 않아"라며 속내를 드러냈다.

김 할머니에게 일본의 사죄와 배상 외에 하고싶은 일을 여쭤봤다. 그는 "편안하게 살고 싶다"며 바람을 전했다. 그는 "하고 싶은 일은 뭘 더 하겠나. 내일 모레면 죽을지 안 죽을지 알기도 어려운데"라며 "사죄받고 배상 다 받고나면 좀 편안하게 살고 싶어. 걱정없이 살다가 가고싶지"라며 말끝을 흐렸다.

ⓒ이승빈 기자 김복동 할머니

전지혜 기자 creamb@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