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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4월 11일 목요일

장준하 비밀 밝혀줄 단서, 나는 어디 있는지 안다


이글은 오마이뉴스 2013-04-10일자 기사 '장준하 비밀 밝혀줄 단서, 나는 어디 있는지 안다'를 퍼왔습니다.
동행자 K의 변명 써준 (조선), 진실 왜곡 말라
▲ 장준하선생 암살의혹규명 국민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2012년 12월 5일 오전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성도리 장준하 공원에서 고인의 사인 규명을 위한 유골 정밀감식을 위해 개묘작업을 해 고인의 두개골을 수습하고 있다. 유골은 이정빈 서울대 교수를 비롯한 법의학자들에 의해 정밀감식하게 된다. ⓒ 권우성


2013년 3월 26일, 백범기념관을 가득 채운 사람들은 경악했다. 슬라이드 화면 가득 드러난 장준하 선생의 유골과 그 유골의 상흔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서울대 이정빈 교수의 감정 결과를 접한 이들이었다. 이날 이정빈 교수는 컴퓨터 단층 촬영(CT)과 3D 동영상 등 첨단기술을 동원한 정밀 감정과 함께 판단하기 어려운 부분은 두개골을 절개하는 최후 수단까지 마다하지 않은 채 사인에 대한 진실을 추적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 끝에 이정빈 교수팀은 지난 38년간 감춰진 장준하 선생의 법의학적 사인을 명쾌하게 제시했다. 핵심 요지는 "장준하 선생이 머리를 가격 당해 즉사했고, 이후 누군가 벼랑 밑으로 내던졌거나 추락해 엉덩이뼈가 손상된 것으로 판단된다"는 결론이었다. 

신문과 방송이 들끓었다. 타살이냐, 추락사냐를 두고 벌어졌던 지난 38년간의 논란에 '새로운 방점'을 찍은 이 감정 결과를 두고 "이제라도 장 선생의 사인 의혹을 제대로 밝혀야 한다"는 여론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동안의 경험으로 비춰보아 나는 이 감정 결과를 비난하려는 움직임이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지난 38년간 '상식적' 진실을 부정해온 세력이 늘 존재해 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상은 크게 틀리지 않았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최근 (조선일보)의 연이은 기사였다. 지난 1일 이정빈 교수를 상대로 한 인터뷰에 이어 (조선일보)는 이틀 뒤인 3일, '주말 뉴스부장' 선우정의 기명 칼럼 '동행자 K씨의 인권'이라는 제목으로 장 선생의 타살 의혹을 제기하는 이들에 대해 비난하는 요지의 글을 보도했다. 

지난 2003년부터 '대통령소속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이하 '의문사위')에서 장 선생 의문사 담당 조사관으로 일했던 내 입장에서 이 칼럼은 매구 큰 관심이 아닐 수 없었다. 맹세컨대 '최대한' 객관적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하며 일독했다. 하지만 장 선생의 타살 의혹을 반박하는 그 칼럼을 다 읽고난 나는, 오히려 그 '참담한 수준의' 반격에 대해 허탈했다.

내가 묻고 싶은 것은 (조선일보)의 선 부장이 정말 장 선생 의문사에 대해 최소한의 정보라도 구해서 제대로 읽어보고 이러한 칼럼을 쓴 것인지 믿을 수 없었다. 그래서 고민했다. 선 부장의 글에 대해 조목 조목 반박하는 것이 정말 가치있는 일인가에 대해서였다. 

하지만 '일부 사람들에게는' (조선일보)가 쓰면 사실이라는 말처럼 진실을 제대로 모르는 이들은 마치 (조선일보)의 글이 사실인양 트위터 공간에서 날아 다녔다. 그리고 이렇게 생명력을 부여받은 왜곡된 진실이 마치 '진짜인 것처럼' 사람들을 현혹시키고 있었다. 결국 '지겹지만' 이 거짓을 반박하는 글을 또 다시 쓰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 되고 말았다.

(조선일보)가 쓴 동행자 K씨를 위한 '변명'

(조선일보) 선 부장은 자신이 쓴 칼럼 '동행자 K씨의 인권'에서 장 선생의 마지막을 목격했다고 주장하는 이른바 'K씨'를 일방적으로 변론하는 내용으로 일관했다. 그런데 내가 가장 의아하게 여긴 것이 하나 있었다. 새삼스럽게 장 선생의 사고 목격자를 자처하는 김용환씨에 대해 (조선일보)가 뜬금없이 실명 대신 'K씨'로 언급한 점이었다. 

목격자를 '자처하는' 김용환씨는 93년 장 선생의 사인 의혹을 사회적 이슈로 만든 서울방송 '그것이 알고 싶다'가 보도된 후와 2004년 2기 '의문사위'가 조사 결과를 발표할 때마다 (조선일보)와 '사실상' 같은 매체인 (월간 조선)과 장문의 인터뷰를 한 사실이 있다. 한번은 집으로 찾아온 기자와 했고, 마지막엔 스스로 찾아가 인터뷰를 자청했다. 이를 통해 목격자를 자처하는 김용환씨는 "장 선생이 실족 추락사했으며 그것을 내가 분명히 봤는데 뭐가 의문이냐"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더 나아가 그는 2004년 (월간조선) 인터뷰에서 "사건이 복잡한 것도 아니고 단 1분, 아니 몇 초만 이야기하면 끝나는 거예요. 내 생각에는 10분이면 조사가 끝나요. 그렇게 길어야 할 이유가 없어요. 반복에 반복을 하는 거예요"라고 했으며 "조사를 받으면서 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조사관들은 내가 거짓말을 안 하고 있다는 걸 알아요."라며 "자기들의 조직 수명 연장을 위해 자꾸 출두를 요구하는 것"이라는 원색적인 비난하기도 했다. 

이같은 김용환씨의 인터뷰를 위해 당시 (월간조선)은 적지않은 지면을 할애했으며 그 과정에서 그의 실명 '김용환' 석자를 수 도 없이 되풀이 썼음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또한 이같은 김용환씨의 (월간조선) 인터뷰를 근거로 장 선생의 타살 의혹을 부정하려는 이들이 이 '실명' 인터뷰를 인터넷으로 퍼 나르며 반박에 나섰던 사실은 장 선생 사건에 대해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일이다. 

(조선일보) 기자 출신이면서 (월간조선) 사장까지 지낸 조갑제씨 역시 자신이 운영하는 '조갑제 닷컴'에 이 실명 인터뷰를 전문 게제하며 반박할 정도였다. 그런데 이제와서 그의 이름을 (조선일보)가 왜 'K씨'로 언급하며 마치 실명을 쓰는 것이 '인권 침해'인 양 새삼 주장하는 것인지 그 의도가 난감했다. 한마디로 너무 궁색해 보였다. 설마 '(조선일보)와 (월간조선)은 다른 매체'라는 식의 주장은 하지 않으리라 믿고 싶다.

이처럼 문제의 (조선일보) 칼럼을 반박하자면 한도 끝도 없을 것 같다. 또한 이런 식으로 반박하다보면 너무 길어질 것 같아 다른 것은 제쳐두고 핵심 요지 하나만 지적하려 한다. 먼저 (조선일보) 선우정 주말뉴스 부장이 쓴 칼럼의 핵심을 간결하게 정리해보면 거칠지만 아마도 이런 의미인 듯 하다. 

[장준하 선생의 사인 진상을 밝힌다는 명분으로 동행자 K씨의 인권이 무시당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그동안 5차례에 걸쳐 조사를 했고 이 과정에서 죄인처럼 끌려다닌 K씨의 주장을 들어보니 그는 "난 절벽에 붙어있는 소나무를 잡고 뛰어 내렸는데 뒤에서 '휙' 소리가 났다. 돌아보니 뒤에 계셔야 할 선생님이 보이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이게 전부였다. 그런데도 장준하 선생의 사인에 의혹을 가진 이들은 정황상 맞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그를 암살범으로 몰아가고 있고 이는 정황만으로 과거 간첩으로 누군가를 몰아간 그들과 닮아 있다. 아버지를 잃은 유족의 눈물에 공감하지만 이를 규명하기 위해 그 모습(유골)까지 공개하는 것이 최선인지 아쉬움이 남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상처받는 한 인간의 초라한 권리가 마음에 걸린다.]

김용환씨, 그는 왜 여러차례 재조사를 받았을까

결론부터 말하겠다. 지난 2003년부터 약 1년에 걸쳐 내가 김용환씨를 만나 조사한 횟수는 15회 정도인 것으로 기억한다. 그렇다면 나는 그를 괴롭힐 목적으로  '일부러' 여러차례 조사를 요청한 것일까. 천만의 말씀이다. 김용환씨는 스스로가 '장 선생의 최후를 목격한 당사자'라고 자처했다. 장 선생이 75년 8월 17일 포천 약사봉 계곡에서 추락하여 실족사했다는 결론이 나온 이유의 '처음과 끝'은 단  한 사람, 바로 목격자를 자처하는 김용환씨 때문이었음을 상기해야 한다.

이유는 이렇다. 이 사건 당시 수사를 담당했던 경찰과 담당 검사를 불러 장 선생을 실족 추락사로 결론내린 이유를 물을 때마다 그들의 답변은 한결같았다. "당시 목격자가 있었는데 그가 장준하 선생이 실족 추락하여 사망한 것을 봤다고 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한 당시 장준하 선생의 사망 사실을 실족 추락사로 보도한 기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목격자가 그렇게 말했으니 그렇게 쓴 것"이었다.

문제는 목격자인 김용환씨의 주장처럼 장 선생이 실족 추락사의 '그것처럼' 아무런 의심의 여지없이 판단되었으면 좋았을텐데 실제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김용환씨의 목격 주장과 달리 장 선생의 시신은 제멋대로 날카로운 각이 서 있는 14.7미터 높이의 벼랑에서 추락한 사람으로 볼 수 없었다. 나는 조사관으로서 장준하 선생의 시신 사진을 수없이 많이 살펴봤다. 이를 그냥 이해하도록 한마디로 쉽게 표현한다면 '막 목욕을 마치고 나와 잠자는 사람'의 모습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이런 의문으로 시작된 여러 의혹에 대해 그렇다면 사람들은 누구에게 제일 처음 진실을 물을 것인가. 당연히 장 선생과 유일하게 혼자 있었고 동시에 추락 실족사하는 것을 봤다고 주장하는 목격자에게 물어보는 것이 당연한 일이 아닌가. 그래서 목격자를 자처하는 그에게 사람들이 물었다. "당신이 본 사실이 무엇이냐고" 그리고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당신은 장준하 선생 사망후 사라졌는데 어디로 갔냐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물었다. 

"당신이 사라진 후 당신은 그 사이에 어디에서 누구를 만났느냐." 

이상이 바로 이 사건에 '상식적' 의문을 가진 사람들이 목격자를 자처해온 김용환씨에게 물어온 핵심이었다. 문제는 이에 대한 김용환씨의 답이었다. 김용환씨는 '스스로' 불행을 자초하는 납득할 수 없는 언행을 보였다. 그것이 어쩌면 38년에 걸친 장 선생 의문사의 문을 여는 '비극의 시작'이었을지 모른다. 나는 여전히 그의 답변을 이해할 수 없다.

목격자 김용환씨, 정말 당신은 무엇을 보았나요

안타깝지만 김용환씨는 이같은 세 가지 질문에 대해 많은 이들이 납득할 수 있는 설명을 하지 못했다. 선 부장은 칼럼에서 사건 경위를 목격한 김용환씨가 "난 절벽에 붙어있는 소나무를 잡고 뛰어 내렸는데 뒤에서 '휙' 소리가 났다. 돌아보니 뒤에 계셔야 할 선생님이 보이지 않았다"라고 아주 쉽게 그의 말을 믿어줬고 "이것이 그의 전부"라고 변론까지 해 줬다. 

미안하지만, 장 선생의 최후를 봤다는 김용환씨의 주장은 선 부장의 주장처럼 그것이 다가 아니었다. 정말로 선 부장이 이 사실을 몰라서 이렇게 글을 쓴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주장을 강변하기 위해 이렇게 쓴 것인지 그 속내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사실은 김용환씨는 절대 '그렇게만' 말하지 않았다. 어쩌면 김용환씨가 사건 발생후 지금까지 이렇게만 주장했다면 차라리 더 좋을 뻔했다. 그랬다면 그를 상대로 이렇게 많은 이들이 끈질기게 그의 목격자 주장을 의심하지 않았을 수 있었을지 모른다.

안타깝게도 김용환씨는 정말로 '다양한' 목격담을 그때 그때 다르게 말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장준하 선생 추락 상황을 봤다는 증언이다. 그는 지난 75년 8월 17일 사건 직후 "장 선생이 하산중 소나무를 잡고 내려오는데 그 나무가 휘면서 추락했다"고 말했다. 분명히 이렇게 말했다. 따라서 당시 (동아일보) 역시 '소나무 가지' 관련 내용을 장 선생의 최후라며 보도했고 이후 장 선생의 지인 역시 사건 현장인 약사봉 계곡만 가면 문제의 '휘어진 소나무'가 어느 나무인지를 두고 서로 '갑론을박'을 하는 촌극을 빚기도 했다. 

이러한 '휜 소나무' 발언은 그때뿐만이 아니었다. 2004년 1월, 2기 의문사위 조사에서도 김용환씨는 조사관이 묻는 질문에 대해 재차 반복하여 "장 선생이 소나무를 잡았으나 휘어 추락했다"고 되풀이 진술했고 조서에도 그렇게 기록을 남겼다. 그래서 '장준하'하면 많은 이들은 '휜 소나무'를 연상했고, 지금 역시 장 선생의 사고 경위를 그렇게 믿고 있는 사람들이 참 많다. 모두 김용환씨가 '봤다는' 목격 증언 때문이었다.

그런데 김용환씨가 봤다는 '휜 소나무' 주장이 사실은 '거짓'이라는 '충격적인' 문서가 새롭게 발견되었다. 놀라운 사실은 그 발언의 당사자가 누구도 아닌 바로 '김용환', 그 자신이었다. 88년 국정감사 과정에서 야당이 장 선생 사인 의혹을 제기하며 재조사를 요구하자 이에 당시 포천경찰서 경찰관 한희권이 작성한 이른바 '88년 경찰 재조사' 기록에서였다. 이미 폐기된 것으로 알려진 이 문서를 포천경찰서 문서고에서 '극적'인 과정을 통해 찾아낸 후 그 보고서에 담긴 김용환씨의 발언을 접한 나는 그야말로 경악에 가까운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관련 부분을 발췌하면 이렇다

한희권 : 그럼 장준하씨가 실족 추락할 때 그곳에서 소나무를 잡고 미끄러 떨어졌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어떤 종류의 소나무인가요
김용환 : 예. 저는 장준하씨가 실족 추락할 때 소나무를 잡았는지, 안 잡았는지 보지 못하였는데 며칠후 (동아일보) 신문에서 소나무를 잡고 내려오다 떨어졌다고 한 것을 보았습니다.

나로서는 정말 심장이 멎어 버리는 줄 알았다. 장 선생이 실족 추락사했다는 그동안의 모든 '역사적 대 전제'가 무너지는 발언이었기 때문이었다. "잡았던 소나무가 휘어 추락사했다"는 그동안의 목격 진술이 그렇다면 모두 거짓말이었단 말인가. 김용환씨를 다시 부르지 않을 수 없었던 이유가 바로 이런 것이었다. 그리고 그에게 새로 찾아낸 '88년 경찰 재조사 기록'을 제시하며 따졌다. 이후 그의 '변해가는' 주장은 놀라웠다. 

처음에 당황해하던 그는 자신의 발언이 담긴 '88년 경찰 재조사 기록'을 전면 부정했다.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하더니 끝내 "경찰관이 잘못 쓴 것"이라고 잡아 떼기도 했다. 하지만 자신의 지장까지 찍은 그 조서를 부정하는 것은 믿을 수 없는 말이었다. 더구나 김용환씨의 경우 우리 위원회 조사시 최소 8시간 이상 소요되곤 했는데 그중 상당 시간은 자신의 발언 내용을 꼼꼼히 확인하는데 필요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발언 의미가 조금만 달라도 수정을 요구했고 그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그는 절대 도장을 찍지 않았다. 

한편 더 어처구니없는 사실은 2004년 5월 12일 그가 마지막으로 조사를 받은 날이었다. 그동안 '88년 경찰 재조사 기록'이 잘못된 것이라고 줄기차게 주장해왔던 김용환씨가 갑자기 '휜 소나무' 목격 주장을 전면 철회한 것이다. 그러면서 느닷없이 '나는 소나무가 휜 것을 본적이 없고, 휜 소나무가 있다는 말을 지금까지 한 사실이 없다'라는 황당한 주장을 새롭게 시작한 것이다.

물론 그의 말은 사실이 아니었다. 75년 8월 20일, 장준하 선생이 사망한 후 3일이 지나서야 김용환씨는 처음으로 장 선생의 상가를 방문했다. 그리고 이날, 그는 유족과 문익환 목사 등 지인들 앞에서 자신이 목격한 장 선생의 최후를 처음으로 증언했다. 이 당시 숨겨진 야사가 있었는데 함께 듣던 문익환 목사가 기지를 발휘하여 김용환씨 몰래 그의 육성을 테이프로 녹음한 것이다. 그리고 우리 조사팀이 잃어버렸던 그 테이프를 다시 찾아내어 복원한 결과 그의 육성이 들려왔다. 이때 그는 뭐라고 말했을까. 문익환 목사가 반복하여 "목격한 것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그는 거듭하여 분명히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장준하 선생이 소나무를 잡고 내려오던중 휘면서 추락했고 그 휘는 모습을 옆에서 내가 봤어요. 옆에서..."

김용환 선생님, 도대체 진실이 무엇인가요

참으로 이 어지러운 사실을 언제까지 말해야 하는지 안타깝다. 선 부장은 목격자인 김용환씨가 모든 사실을 아주 간결하게 정리해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의심을 '삼으려는' 사람들의 억지로 인해 억울한 인권을 만들고 있는 것처럼 빗대어 말했다. 하지만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 이치에 맞지 않는 그의 진술 앞에 누구보다 가장 안타까워 한 사람은 바로 조사관인 '나'였다는 사실이다.

김용환씨는 자신이 봤다는 장 선생의 최후에 대해 '셀 수 없이' 진술을 바꿨다. 어떨 때는 '억 소리가 나서 돌아보니 장 선생님이 없었다'라고 했고 또 어느 때는 '따라오는 소리가 없어 돌아보니 장 선생이 보이지 않아 추락한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또 '돌아보니 장 선생이 떨어지는 것을 순간적으로 봤다'고도 했고 또 지금처럼 '잡았던 소나무가 휘어 떨어졌다'고도 했다. 심하게 표현하면 그의 '팔색조 진술' 앞에 때로는 화가 나는 것도 지쳐 멍한 표정으로 그의 얼굴만 한참 바라 본적도 있었다. 

이것만이 아니었다. 일행의 증언에 의하면 사건 직후 김용환씨는 어디론가 사라졌었다. 그렇다면 그 사이 어디로 갔으며 또한 누구를 만났는지를 묻는 조사관의 질문에 대한 그의 답변은 더욱 의아했다. 이 모든 내용을 이곳에 다 적을 수는 없다. 다만 간단하게 정리한다면 그가 갔다고 주장하는 파출소와 경찰서 근무자는 모두 한결같이 그를 본적이 없다고 말했다. 

반면 또 다른 의정부 지청 검사와 경찰관들은 김용환씨가 가지 않았다는 부인하는 장소와 시간에 그를 '분명히' 만났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김용환씨는 이러한 이들의 주장이 '거짓말'이라고 전면 부정했다. 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인가. 전직 경찰관과 검사 모두가 하나로 공모하여 이 사건 목격자를 자처하는 김용환씨를 궁지에 몰아넣기 위해 거짓말을 하고 있단 말인가. 그것이 정말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는가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렇기에 나는 조사 과정에서 오히려 김용환씨에게 거듭 거듭 호소했다. 

"많은 이들이 선생님을 향해 의구심을 제기하는데 이러한 의심을 해소할 수 있도록 분명하게 말씀해 주십시오. 맞으면 맞다고 하고 틀리면 왜 틀린지에 대해 납득할 수 있게 설명을 해 주셔야 우리가 이해할 수 있을 것 아닙니까."

하지만 그는 끝내 자신에게 쏠린 합리적 의심을 '쉽게' 털어내지 못했다. 그리고  그렇게 계속된 실갱이 끝에 예정되어 있던 조사 기간은 끝났다. 시간은 진실을 밝히려는 사람들의 편이 아니었다. '버틴' 거짓이 '찾으려는' 진실을 이기고 말았다. 그리고 그렇게 위원회의 문을 닫던 그때, 김용환씨는 '스스로' (월간조선)을 찾아가 인터뷰를 자청했다. 그것이 바로 이번에 (조선일보) 선 부장이 마치 '금과옥조'처럼 칼럼에서 인용한 "난 절벽에 붙어있는 소나무를 잡고 뛰어 내렸는데 뒤에서 '휙' 소리가 났다. 돌아보니 뒤에 계셔야 할 선생님이 보이지 않았다"이며 "이것이 전부"라며 선 부장이 인정해준 그 말이었다. 조사관이었던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행보였다. 그는 왜 이 말을 (월간조선)까지 찾아가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우리의 의문에 대해서는 제대로 답하지 못하면서 말이다.

내가 정말 '그에게' 묻고 싶은게 있다

누구에게나 인권은 소중하다. 나 역시 아무 죄도 없는 누군가를 향해 근거없는 의혹을 제기하는 것은 반대하며 그렇게 하는 것을 증오한다. 따라서 누군가가  이치에 좀 맞지 않는다 해서 그를 향해 성급하게 '암살자'라고 윽박지르는 것은 절대 옳지 못하다. 마찬가지로 장 선생 사건 목격자를 자처하는 김용환씨에 대해서도 그런 부당한 대우를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이는 지금까지 내가 해온 여러 강연과 방송 인터뷰, 그리고 지난 해 장 선생 사건의 모든 내용을 세세하게 담아 출판한 책 (장준하, 묻지못한 진실)(돌베개)를 통해서도 거듭 주장해 온 사실이다. 

하지만 반면 김용환씨 역시 이러한 자신에게 쏠린 의혹을 명쾌하게 털어야 할 책임이 있음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거칠게 보면 장 선생의 사인을 규명해야 할 중요한 이유로 나는 두가지를 언급해 왔다. 첫째는 장 선생 당사자와 그 유족을 위해서이다. 자신이 왜 죽었고 또한 내 아버지와 남편이 어떤 경위로 죽었는지에 대해 '알 권리'가 유족에게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바로 이 사건의 목격자를 자처하는 김용환씨를 위해서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는 이미 원하든, 원치 않든 많은 이들에게 이 사건과 관련한 '중대한 의혹 인물'이 되어버렸다. 만약 이대로 그냥 김용환씨가 자신의 주장처럼 '순수한 목격자'임을 밝히지 못한다면 그에게 씌워진 멍에는 역사에 오래 오래 남을 수 밖에 없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안타깝지만 이러한 '근원적 책임'은 이미 확인한 것처럼 자신의 목격 증언을 뒤죽박죽으로 해 버린 김용환씨, 바로 자신 때문임도  나는 분명하게 확인한다.

정말 김용환씨가 이 사건의 '순수한 목격자라면 진술은 하나'여야 한다. 한 두가지 사실은 틀릴 수 있지만 조사 과정에서 충분히 정정될 수 있음에도, 또한 일부 기억중 틀린 것 역시 대질조사를 통해 다시 정정할 수 있는데도 김용환씨는 달랐다. 그는 자신의 필요에 의해서만 주장을 바꿨고 반면 다른 이의 주장에 대해서 철저하게 배격했다. 자신의 주장이나 기억이 분명히 틀렸음이 넉넉하게 확인되는데도 불구하고 혼자만 끝까지 아니라고 버텼다. 그러다보니 그는 사건 발생 이전과 이후를 통 털어 '알리바이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 묘한 상황이 되어 버렸다.

그중 가장 압권은 1975년 8월 17일 당시 중앙정보부가 작성한 한 장의 '중요상황 보고문'에 적힌 목격자 김용환씨의 행적이다. 중정 문서에 따르면 그는 사건 발생 직후 장준하의 집으로 전화를 건 사람으로 기재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는 '역시나' 이러한 중정 문서의 내용을 끝까지 부인했다. 그렇다면 김용환씨는 왜 중앙정보부 문서 내용을 이처럼 강력하게 부인했을까. 

유족이 장준하 선생의 사인에 대해 강력한 의구심을 가진 계기가 바로 이 '한통의 전화'로 출발했기 때문이었다. 사건이 발생한 8월 17일 오후 3시경, 신분을 밝히지 않은 남자로부터 한통의 전화가 장 선생의 집으로 걸려왔다. 그리고 괴  남자는 '지금 장 선생이 포천 약사봉에게 크게 다쳤으니 서울에서 많은 사람들이 와서 모셔가야 한다'고 말한 후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유족은 이 괴 전화를 한 남자가 바로 이 사건의 열쇠를 쥔 누군가로 여겨왔던 것이다. 그런데 중정 존안 기록에서 마침내 그 괴전화의 주인공이 다름 아닌 바로 이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 '김용환'씨임을 찾아내었다.

장준하 선생 사인 의혹, 이제 그만 결론내야

다시 한번 전율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를 또 다시 부르지 않을 수 없는 이유였다. 하지만 그는 또다시 강력 부인했다. 끝끝내 부인하더니 '88년 경찰재조사 기록'처럼 이 보고문 역시 '중앙정보부 조작'이라고 강변했다. 김용환씨를 궁지로 몰아넣은 것은 유족이나 조사관이 아니라 사실은 '전직 경찰관과 검사', 그리고 '중정과 경찰의' 국가 공식 문서였다. 혹시 정말 중앙정보부 기록이 잘못된 것일까. "그럴 가능성은 전혀 없다. 실명이 기재되어 있다면 그가 맞다"는 진술을 나는 당시 중앙정보부에서 이 업무를 담당했던 복수의 책임자로부터 확인했다. 

나는 김용환씨에게 쏠린 이같은 의혹에 대해 다시한번 답할 기회를 줘야 한다고 '여전히' 믿는다. 그것이 김용환씨를 위해 우리가 해 줄 수 있는 '또 다른 배려'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가 끝내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며 조사를 거부한다면 그건 나로서도 어쩔 수 없다. 그리고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만약 내가 다시 '이 사건 조사관이 된다 할지라도' 이처럼 거부하는 김용환씨를 굳이 '억지 조사'할 생각이 없다. 그가 "자신을 향한 의혹에 대해 더 이상 해명하지 않겠다"고 결정한다면 지금까지 확인한 결론만으로도 어느 것이 사실인지, 아닌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남는 것은 "그가 왜 사실과 다른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인가"를 찾는 일이다. 

결국 또 글이 길어졌다.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글은 아직도 여전히 다 쓰지 못했다. 사실 장 선생 사건의 진실은 '상식적'이다. 그런데 이 상식을 넘어서는 '억지가 마치 사실인양' 호도하는 부정 세력을 보면서 나는 참담한 심정을 금할 수 없다. 이제 더 이상의 소모적인 논쟁은 가치가 없는 일이다. 2기 의문사위 조사 결과와 이정빈 교수의 법의학 감정 결과를 통해 확인된 사실은 '결국 하나'다. 장 선생의 사인 의혹은 '이미 끝난 사건이 아니라 국가 차원의 조사를 통해 다시 밝혀야 할 진실'이라는 결론이 그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의혹에 대해 진실을 알고 있는 이는 답해야 한다. 나는 그 진실의 '일부가' 있는 곳을 알고 있다. 바로 1975년 장 선생 사망 당시 사고 현장을 다녀간 '중앙정보부'와 '보안사령부' 요원이 작성한 '중요 상황보고서'를 존안해 놓고 있는 그 문서고이다. 이제 그 문서고 안으로 '강제 수사권'과 '압수 수색권'을 가진 의문사 사건 조사관이 직접 들어가 문제의 존안 문서를 확보할 수 있다면 지난 38년에 걸친 '비밀의 문'은 그 먼지를 털며 열리게 될 것이다. 바로 그때가 이 나라의 '진짜' 민주주의가 이룩되는 '그날'임을 나는 확신한다. 그날이 어서 오기를 간절하게 고대한다.

덧붙이는 글 | 고상만 기자는 (장준하, 묻지못한 진실)(돌베개 출판사)의 저자입니다.

2012년 10월 8일 월요일

“장준하 의문사 진상규명 없이 과거사 사과 명분 없다”


이글은 민중의소리 2012-10-07일자 기사 '“장준하 의문사 진상규명 없이 과거사 사과 명분 없다”'를 퍼왔습니다.
장준하 선생 천도재 열려...참가자들 “진상규명 꼭 해야”

ⓒ양지웅 기자 6일 오후 경기도 포천 약사계곡 고 장준하 선생 의문사로 발견되었던 현장에서 '고 장준하 선생 천도재 및 의문사 진상 규명 촉구 법회' 참가자들이 추모재를 올리고 있다.

“박정희 정권은 경제를 발전한다는 명분으로 한일 역사문제를 팔아 먹었다. 박근혜 후보는 (과거에) 집착하지 말고 미래로 가자고 한다. 그들의 논리라면 우리는 일본의 만행에 대해 입도 뻥긋할 수 없고 일본에게 배상하라는 소리도 못한다. 잘못한 사람들이 와서 무릎꿇고 용서를 구해야 피해자도 용서해 줄수 있고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는 것이다. 진실은 감출 수는 있어도 없앨 수는 없다”-명진 스님

2012년 10월 6일. 37년 전 장준하 선생이 의문사를 당했던 곳과 불과 3km가량 떨어진 포천시 백운산 흥룡사에서 장 선생의 극락왕생을 바라는 천도재가 열렸다. 

천도재는 죽은 이의 넋을 극락으로 보내기 위한 불교의식이지만, 정작 이날 흥룡사에 모인 400여명의 참가자들은 평생 동안 조국의 독립과 민주화를 위해 헌신한 장 선생의 정신을 더 뚜렷하게 가슴에 새기며 진상규명을 촉구했다. 

ⓒ양지웅 기자 고 장준하 선생의 장남인 장호권 씨가 6일 오전 경기도 포천 백운산 흥룡사에서 열린 '고 장준하 선생 천도재 및 의문사 진상 규명 촉구 법회'에서 유족 인사말을 하고 있다.

같은 시대 너무도 다른 삶을 살았던 장준하와 박정희

장준하 선생의 장남인 장호권씨는 “이렇게 많은 분들이 아버지의 넋을 편안하게 해드리려고 오신 점에 대해 너무 감사하다”면서도 “아직 아버지는 할 일이 남아 있으시기 때문에 당분간 이승에 머물고 계실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대선에서 국민들이 얼마나 현명한 선택을 한다면 아버지도 그 때서야 편안하게 쉬실 것 같다”고 덧붙였다. 

직접 참석하지는 못했지만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선후보는 추도사를 통해 “일제의 악재가 극에 달았을 때 이 땅의 한 젊은이는 혈서를 쓰고 일본 천황에게 충성을 맹세했고, 다른 젊은이는 강제징병으로 끌려갔지만 탈출해 조국회복을 위한 광복군이 됐다”며 “장준하 선생과 박정희 전 대통령의 너무나 달랐던 선택이 우리 근대사를 규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이 땅의 진정한 화해와 통합을 위해서는 진상규명이 돼야 한다”며 “장준하 선생님께서 국민들 앞에 구멍 뚫린 백골을 보여 준 것은 우리들에게 새로운 출발을 시작하라는 계시”라고 주장했다. 

ⓒ양지웅 기자 명진스님이 6일 오전 경기도 포천 백운산 흥룡사에서 열린 '고 장준하 선생 천도재 및 의문사 진상 규명 촉구 법회'에서 장준하 선생의 제단에 분향하고 있다.

“장준하 의문사 관련 보고서는 70년 비공개”

이날 천도재 참가자들은 장준하 선생에 죽음에 대한 진상규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2003~2004년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관이었던 고상만 씨는 “위원회에서 장준하 선생님 의문사에 대해 ‘진상규명 불능’이라고 결정한 것은 결코 실족사를 인정한 것이 아니다”라며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에 차후 조사를 위해 그와 같은 결정을 내렸던 것”이라고 강조했다.

고씨에 따르면 진상규명위원회는 7명의 표결로 인해 결과가 결정된다. 장준하 선생 의문사의 경우 4명이 ‘진상규명 불능’에 손을 들었고, 3명이 인용(공권력에 의한 타살을 인정)에 손을 들어 결국 ‘진상규명 불능’이 됐던 것. 이후 진실화해위원회의 추가조사가 예정돼 있었기 때문에 진상조사 불능 결과를 내렸다는 것이 고씨의 설명이다. 

고씨는 또 “조사를 하는 동안 당시 조난자료 등을 해당 부서로부터 협조받지 못했다”며 “왜 이 사건이 벌어졌고 어떤 경위로 진행 됐는지 반드시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주통합당 임수경 의원 역시 “국정감사에서 고상만 전 조사관을 비롯해 유족들과 김용환(장준하 선생 시체 최초 목격자)씨를 증인으로 신청했지만 새누리당 의원들이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며 “장준하 선생님 의문사에 대해 진상을 규명할 수 있는 특별기구 설치와 특별법을 만들어 진실과 정의가 바로 설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양지웅 기자 고상만 전 장준하의문사위원회 담당조사관과 임수경 민주통합당 의원등이 6일 오후 경기도 포천 약사계곡에서 고 장준하 선생이 의문사로 발견되었던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이곳은 지난 1975년 추락사고를 당한 고 장준하 선생을 목격자 김용환 씨가 발견한 곳 알려져 있다.

“현장 와보니 타살이라는 확신이 든다”

점심 공양을 마친 참가자들이 발걸음을 분주하게 옮긴 곳은 바로 장준하 선생이 사망한 백운산 약사계곡이었다. 약사계곡으로 들어가는 길은 밧줄에 의지해 지나가야 할 정도로 좁고 험난했다.

30여분의 산행길 끝에 마침내 장준하 선생의 시체가 놓여져 있던 바위가 눈 앞에 나타났고, 그 옆에는 ‘장준하 선생님 원통히 숨지다’라는 나무 푯말이 덩그러니 세워져 있었다. 

고상무씨는 “장 선생의 시신을 최초로 목격했다는 김용환씨의 주장과는 달리 저는 장 선생이 산행을 하지 않았다고 본다”며 “장 선생이 일행들과 헤어진 시간이 낮 12시였고 시체로 발견된 시간이 오후 1시였는데, 당시 몸이 좋지 않았던 장 선생이 1시간 만에 군인 2명과 샌드위치를 먹고 정상에 도착했다가 등산로도 아닌 곳으로 내려오신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어 “전문산악인도 시험을 해봤지만 도저히 불가능한 시간”이라고 강조했다.

명진 스님 역시 “이 현장에 와보니 타살이라는 확신이 든다”며 “장 선생님이 우리에게 진실을 밝히라는 역사적 소명을 짊어준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편 행정안전부는 지난 4일 유족들이 요청한 장준하 의문사 재조사에 대해 "재조사를 할 수 있는 법적 권한을 가진 기구가 없다" 며 재조사를 하지 않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양지웅 기자 명진 스님이 6일 오후 경기도 포천 약사계곡의 고 장준하 선생이 의문사로 발견되었던 현장에서 고 장준하 선생의 의문사 진상규명을 촉구하고 있다.

ⓒ양지웅 기자 임수경 민주통합당 의원이 6일 오후 경기도 포천 약사계곡의 고 장준하 선생이 의문사로 발견되었던 현장에서 장준하 선생을 추모하며 제단에 술을 올리고 있다.

ⓒ양지웅 기자 장준하 선생의 장남이 장호권 씨가 6일 오전 경기도 포천 백운산 흥룡사에서 열린 '고 장준하 선생 천도재 및 의문사 진상 규명 촉구 법회'에서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양지웅 기자 고상만 전 장준하의문사위원회 담당조사관이 6일 오전 경기도 포천 백운산 흥룡사에서 열린 '고 장준하 선생 천도재 및 의문사 진상 규명 촉구 법회'에서 장준하 선생의 의문사에 대한 진사규명을 촉구하고 있다.

김대현 기자 kdh@vop.co.kr

2012년 10월 7일 일요일

"장준하 선생의 진실은 우리가 짊어지고 갈 짐"




이글은 오마이뉴스 2012-10-06일자 기사 '"장준하 선생의 진실은 우리가 짊어지고 갈 짐"'을 퍼왔습니다.
[현장] 장준하 선생 천도재... 참가자들 '진상 규명', '재조사' 촉구

▲ 박정희 대통령의 유신독재에 맞서 싸우다 의문의 죽음을 맞이한 고 장준하 선생의 추모비가 세워진 곳에서 10월 6일 추모행사가 열렸다. 임권택 판소리꾼이 판소리 '박정희와 장준하'를 공연하고 있다. ⓒ 박소희

"박정희가 쉬지 않고 부정부패 일삼으니 장준하도 쉬지 않고 부정부패 타파아~."

고요하던 계곡이 임권택 판소리꾼의 우렁찬 목소리에 흔들렸다. 그는 6일 오후 처음으로 판소리 '장준하와 박정희'를 공연했다. 37년 전 장준하 선생이 의문스러운 죽음을 맞이한 경기도 포천시 약사계곡이 그 무대였다.

추모비 앞에 차려진 제사상에 절을 하던 장 선생의 큰며느리 신정자(64)씨는 끝내 눈시울을 붉혔다. 결혼한 지 석 달 만에 시아버지를 잃은 며느리는 마음이 아파 사건 현장에 찾아오지 못했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얼굴에 드러날 때가 되어서야 올 수 있었다. 신씨는 "나무가 이렇게 많은 줄도 몰랐다"며 "당시 시신은 정말 깨끗했다"고 말했다. 

"(유골이 세상에 드러난 시기가 신기하다는 말에) 이상하긴 해요. 지난해 여름 우면산 사태가 날 정도로 비가 많이 올 무렵에 아버님 산소가 무너졌어요. 절친한 김준엽 전 고려대학교 총장님도 같은 해에 돌아가셨고…."

남편 백찬홍(52·씨알재단 운영위원)씨와 함께 온 임미리(46)씨도 "장준하 선생님 산소가 무너졌다는 얘기를 듣고 '김준엽 총장님이 돌아가시면서 남긴 선물인가'하는 생각에 뭉클했다"고 얘기했다. 임씨는 고려대 사학과 88학번으로, 김 총장에게 배운 적은 없지만 "80년대 학교를 다녀서 (장준하 선생과 김준엽 총장 이야기는)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명진스님 "장 선생 유골은 우리에게 '진실 밝히라'는 사명"

▲ '너무 마음이 아파서' 그동안 사건 현장을 방문하지 못했던 장준하 선생의 큰며느리 신정자씨는 10월 6일 추모행사 도중 눈물을 흘렸다. ⓒ 박소희

▲ 10월 6일 경기도 포천시 약사계곡에서 열린 장준하 선생 추모행사에 참석한 사람들이 불경 <반야심경>을 외며 장 선생의 극락왕생을 빌고 있다. ⓒ 박소희

현장을 둘러 본 명진스님은 참가자들에게 "장 선생이 이곳에서 사망하셨다는 게 믿어지냐"며 "와보니 권력이 저지른 일임을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일갈했다. 또 "장 선생은 유골로 우리에게 '진실을 밝히라'는 역사적 사명을 내려주신 것"이라며 "여기 계신 분들은 우연히 오셨을 테지만, 여기 온 인연으로 그 짐을 짊어져야 한다"고 당부했다.

'장준하 선생님 원통히 숨지신 곳'이라고 쓰인 추모비 옆에 있는 거대한 바위는 시신을 검안한 장소다. 2003~2004년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관으로 장 선생의 죽음을 조사했던 인권운동가 고상만씨는 "여기서 400미터쯤 떨어진 곳에서 시신이 발견됐고, 그날 함께 왔던 김용환씨 등 호림산악회 사람 넷이 나무와 겉옷으로 들것을 만들어 선생을 이곳으로 옮겼다"고 설명했다.

당시 장 선생의 추락사고를 목격했다던 김용환씨는 조사과정에서 몇 가지 의문을 제대로 해명하지 않았고, 답변을 바꿨다. 죽음의 진실을 알려줄 다른 단서들도 부족했다. 고씨는 "국가기관의 무책임한 외면에 장준하, 김용환 두 명의 피해자가 있는 것 아니냐"며 재조사를 주장했다. 

야당, '유일한 목격자' 김용환씨 국감 증인 채택하려 했지만...

▲ 장준하 선생의 장남 장호권씨는 10월 6일 경기도 포천시 백운산 흥룡사에서 열린 천도재에서 진상 규명을 촉구했다. ⓒ 박소희

그러나 대선을 두 달여 앞둔 시기에, 박정희 전 대통령의 군사독재에 저항하다 숨진 장준하 선생의 죽음을 재조사하는 것은 새누리당에게 부담스러운 일이다. 전날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야당은 장준하 선생 유족과 김용환씨 등의 증인 채택을 요구했지만 새누리당은 거세게 반대했다. 아예 국감이 열리지 않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장 선생의 장남 장호권씨는 현장 방문 전 경기도 포천시 백운산 흥룡사에서 열린 천도재에서 "잘못된 과거를 정리하고, 현재를 바로 세워 미래에 화합하려면 시대상황을 정확히 인식하고, 정의로운 일꾼을 이번 대선에서 뽑아야 한다"며 "그래야만 장준하 선생과 희생된 분들에게 보답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천도재에 참석한 200여명은 박수로 화답했다.

한편 이날 천도재를 주관한 '고 장준하 선생 천도재 봉행 및 의문사진상규명촉구불교위원회'는 진상규명을 위한 활동과 더불어 장준하 선생을 기리는 비석을 세우기 위한 모금운동을 진행 중이다. 

봉행위원장인 혜문스님은 '고 장준하 선생 비석 건립 모연문'이란 글에서 "격동의 근현대사 속에서 독립운동과 민주화운동의 전범이 되신 선생의 뜻을 되새기고, 의문사의 진실 규명을 촉구하기 위한 일"이라고 밝혔다.

박소희(sost)

2012년 9월 17일 월요일

[사설] ‘장준하 의문사 청원’이 단순 민원이라니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09-16일자 기사 '[사설] ‘장준하 의문사 청원’이 단순 민원이라니'를 퍼왔습니다.

장준하 선생 의문사 재조사를 위한 청원이 단순 민원으로 취급되고 있다고 한다. 유족과 기념사업회의 청원을 청와대는 조사와 무관한 행정안전부에 넘기고, 행안부는 단순한 민원으로 처리하려 한다는 것이다. 애당초 이 정부가 재조사에 나설 것이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다만 새로 드러난 여러 증거를 계기로, 민족과 국가를 위한 선생에 대해 최소한의 예의는 지킬 것이라 생각했다. 일제하 항일 독립투쟁을 위한 6000리 대장정, 해방 후 민주화와 통일을 위한 30년 가시밭길 등 선생의 삶은 말 그대로 민족의 사표였다. 그런 이와 관련한 지극히 합당한 청원을 단순 민원으로 간주한다니, 이러고서야 어찌 국민 앞에서 애국을 말하고, 역사와 정의를 들먹일 수 있을까. 예의는커녕 그 파렴치가 놀랍다.이장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두개골 원형 함몰의 의미에 대해서는 두말할 필요도 없다. 박근혜 후보 지지자들이 구구한 궤변을 늘어놓자 새누리당 소속의 뇌 수술 권위자인 정의화 의원은 이런 말을 트위터로 날렸다. “선생의 두개골이 신경외과 전문의인 내게 외치고 있는 듯하다. 타살이라고!” 그런 골절은 망치 같은 것으로 때리지 않으면 생길 수 없다는 것이다.게다가 의문사가 발생한 다음날 청와대 대통령 서재에서 뜬금없는 보안사령관의 단독보고가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보안사는 105보안대장을 현장에 직접 보내 관련 내용을 보안사령관에게 직보하도록 했다. 중앙정보부는 별도로 의문사 5개월 전 ‘추가 공작 필요시 보고조처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된 ‘유해분자 관찰계획보고서’를 작성했다. 두개골의 원형 함몰이 타살을 웅변한다면, 정보기관의 이런 행적은 사건의 배후를 일러주는 증거다.이 정부의 꼼수가 분명해지고 있는 이상 이제 남은 건 국회뿐이다. 필부의 의문사라도 그 진상을 가려 억울함이 없도록 하는 것이 국가의 의무다. 하물며 일생을 국가에 헌신한 선생의 의문사임에랴. 재조사가 이뤄지도록 당장 여야는 특별법 제정에 나서기 바란다. 박근혜 후보의 새누리당이 반대한다면, 이는 주범이 유신정권임을 인정하는 꼴이 될 것이다.

2012년 9월 13일 목요일

정의화 "MB정부, 장준하 의문사 재조사하라"


이글은 뷰스앤뉴스(Views&News) 2012-09-13일자 기사 '정의화 "MB정부, 장준하 의문사 재조사하라"'를 퍼왔습니다.
"진실 밝히는 것이 살아있는 우리의 의무"

고 장준하 선생 타살 의혹을 공개리에 제기했던 새누리당 소속 정의화 전 국회 부의장이 13일에는 "지난 8월1일 이장으로 법의학자의 유골검사 결과 새로운 증거가 나왔으니 정부는 의지를 가지고 재규명 조사하는 것이 당연하다"며 MB정부에 대해 재조사를 촉구하고 나섰다.

정의화 전 부의장은 이날 오전 트위터에 올린 글을 통해 이같이 주장한 뒤, "고인 같이 독립유공자며 민주헌법을 위해 민주화운동 하던 중 의문사한 분의 사인의 진실 밝히는 것이 정부와 살아있는 우리의 의무 아닐까요?"라고 반문했다. 

그는 자신에게 비난 글을 쏟아붓는 일부 보수세력에 대해서도 "장준하님 의문사 관련해서 잘못 알고 계신 분들이 많이 있군요"라며 "장준하님 경우 타살이 아닌 것으로 규명된 게 아니라, 실족 추락사가 아닌 것이 분명한데 자칭 목격자라는 사람의 거짓진술과 정보기관의 비협조로 1-2기 의문사 진상조사위에서 규명불능으로 판단한 겁니다"라고 반박했다.

그는 전날 타살 의혹을 제기한 자신의 글을 본 한 시민이 "박근혜 후보가 무섭지 않나요? 새누리당에도 겁없는 분이 계시네?!"라는 글을 올리자, 정 의원은 "진정성은 인간은 다 있습니다. 규명 위한 노력할 겁니다"라고 다짐하기도 했다.

그는 또다른 보수인사가 "정의화씨, 저도 타살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타살 범인이 오히려 야당쪽에 있다고 보는데요..유신시절 유신반대 투쟁의 선봉장이 수행비서 없이 산행하는 것 가능할까요"라고 황당한 음모론을 제기하자 "쓸 데 없는 소리! 그런 소리들 때문에 나라에 병리현상이 생깁니다. 말조심하길"이라고 일갈하기도 했다.

한편 정 전 부의장의 타살 의혹 제기에 민주통합당은 반색했다.

유기홍 민주당 의원은 이날 오전 고위정책회의에서 "저명한 신경외과 전문의인 정의화 전 국회부의장의 안목이 아니라 누가 보더라도 원을 놓고 그린 듯이 동그란 함몰자국을 도대체 어떻게 추락에 의해 바위에 부딪혀 생긴 골절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라며 "75년 직접 검안했던 분들, 93년 민주당 조사위에서 잠정적으로 결론 내렸던 것처럼 마취나 독극물에 의해 눕혀놓고 둥근 인공물체 예를 들면 망치나 해머로 가격한 것이라 비쳐지고 그것이 새누리당 소속의 더군다나 신경외과 전문의의 안목으로 백일하에 다시 한번 드러나고 있다"고 타살을 기정사실화했다.

엄수아 기자

2012년 8월 27일 월요일

YS, 장준하 선생 의문사 진상규명위 참여


이글은 시사IN 2012-08-27일자 기사 'YS, 장준하 선생 의문사 진상규명위 참여'를 퍼왓습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장준하기념사업회와 장 선생 유족들이 발족을 준비하고 있는 가칭 '장준하 선생 의문사 범국민진상규명위원회'에 발기인으로 참여키로 결정했다. 

김 전 대통령의 측근은 27일 뉴시스와의 전화통화에서 "지난주에 장호권(장 선생의 장남)씨가 와서 (김 전 대통령께)정중하게 (발기인 참여를)동의해주셨으면 한다고 부탁했다"며 "김 대통령께서 유족들의 아픔과 뜻을 존중해 흔쾌히 동의하셨다"고 말했다. 

ⓒ뉴시스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후보가 22일 오전 서울 동작구 상도동 김영삼 전 대통령을 예방, 악수하며 인사하고 있다.

이 측근에 따르면 김 전 대통령은 장 선생의 죽음을 둘러싼 의혹이 역사적 진실을 위해 반드시 규명되어야 한다는 의지를 보였다. 

'재야 대통령'으로 불리며 박정희 정권과 끊임없이 마찰을 빚었던 장 선생은 지난 1975년 8월17일 경기 포천군 이동면 약사봉에서 의문사했다

한편 범국민진상규명위는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 등 민주화 원로를 주축으로 꾸려져 이달말께 출범할 예정이다.

(뉴시스)

2012년 8월 21일 화요일

민주당, 19년전 '장준하 보고서' 공개


이글은 뷰스앤뉴스(Views&News) 2012-08-21일자 기사 '민주당, 19년전 '장준하 보고서' 공개'를 퍼왔습니다.
당시 검안보고서 "가격에 의한 두부골절, 의문의 주사자국"

민주통합당은 21일 고 장준하 선생 사망 당시 검안의의 증언을 청취한 1993년 진상조사보고서를 재공개하며 거듭 정부 차원의 재조사를 촉구했다. 

유기홍 원내부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당시 민주당 진상조사위원회의 조사보고서를 공개하며 "민주당 진상조사위원회에서 당시 검안했던 의사로부터 직접 증언을 청취했는데, 추락 실족사가 아닌 원형에 인공물체에 의한 두부골절이라는 것이었다"고 밝혔다. 

당시 진상조사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한광옥 최고위원을 위원장으로 하는 '장준하 선생 사인규명조사위원회'는 약사봉 현장답사를 비롯해 유일한 사고 목격자인 김용환, 호림산악회 회장 김용덕, 동아방송 기자, 의정부지청 검사, 법의학자 문국진 박사를 대상활동을 벌였다. 또 당시 사체를 검안했던 조철구 박사도 소견서를 제출했다. 

문국진, 조철구 박사는 "장준하선생 사망의 결정적인 원인은 직경 2cm, 중앙부에 홈이 있는 인공적인 물체를 가지고 직각으로 가격하여 생긴 후두부 함몰상으로 추정된다"고 증언했다. 이들은 또한 "오른쪽 팔과 엉덩이의 의문의 주사자국은 보통 주사자국보다 크게 확장된 것으로서 짧은 시간에 많은 양을 주사한 경우에 해당되며, 마취주사 후 선생의 몸을 고정시킨 뒤 후두부 급소 부위를 강타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문 박사는 "두부를 비롯해서 외상을 입기 쉬운 견갑부, 주관절부, 수ㆍ족관절부 등 돌출부위의 외상이 전혀없는 점으로 보아 넘어지거나 구른 흔적이 없고 후두부 골절부위가 해부학적으로 추락으로 인해 손상당하기 어려운 부위라는 것을 지적할 수 있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사고현장에 대해서도 강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추락사를 주장하는 유일한 목격자인 김용환씨는 당시 현장답사에서 등반을 개시한 산 입구, 장 선생과 점심을 먹었다는 바위, 계곡으로 내려가는 길을 찾지 못하는 등 대부분 증언과 현장답사 결과가 일치하지 않았다. 김씨는 추락지점에 고운 모래가 있었다고 했지만 답사 결과는 견치석(모난돌) 투성이었고, 높은 벼랑에서 굴러 떨어진 물체가 정지하기 어려운 곳이었다. 또 김씨가 지정한 추락지점은 약 75미터 높이의 높은 절벽으로 장 선생의 사체처럼 아무런 상처없이 반듯이 누워 발견되기가 어려운 곳이었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권력기관의 은폐 의혹도 제기됐다. 당시 동아방송 기자는 데스크로부터 무조건 취재 중단 명령을 받고 철수했고, 가족들은 사고 당일 오후 3시께 전화로 사고소식을 들었지만 당시 산에는 전화가 없었고 인가도 멀리 떨어져 있었다는 증언도 확보했다. 

유 원내부대표는 "2002년, 2004년 의문사 진상조사위원회에서는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12가지 자세로 추락하는 것을 조사를 해봤는데 12가지 모두에서 머리 한 군데에만 함몰이 일어나는 일은 있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강조했다. 그는 의문의 주사자국에 대해서도 "주사자국 관련해서 만약에 마취제가 있었다면 유골의 그런 성분이 침착된 것을 밝혀낼 수도 있다는 것이 법의학자들의 의견"이라고 재조사를 통해 진상을 밝힐 것을 촉구했다. 

그는 중앙정보부에 대해서도 "당시 중앙정보부와 보안사가 관여된 흔적이 있다"며 "중정이 일주일 전 산행에 대해서도 이미 동향파악을 했던 기록이 있고 바로 전 날 박형규 목사 재판에 장준하 선생이 참석했던 동향보고까지 하고 있는데 유독 당일만 자기들이 그날 동향 파악을 못 했다는 것은 믿기 어렵고 당시 사건현장 주변에서 중정 요원이라고 밝히는 사람들이 경찰에게 함구해달라고 했다는 증언이 확보돼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한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에서 장준하 사건은 대통령에 대한 A보고라는 진술을 확보했다"며 "이것은 대통령에 보고 됐다는 것이고 그 자료는 보존되어 있다는 것인데 찾아내지 못했다. 이것 역시 정부가 나서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최병성 기자

민주당, 19년전 '장준하 보고서' 공개


이글은 뷰스앤뉴스(Views&News) 2012-08-21일자 기사 '민주당, 19년전 '장준하 보고서' 공개'를 퍼왔습니다.
당시 검안보고서 "가격에 의한 두부골절, 의문의 주사자국"

민주통합당은 21일 고 장준하 선생 사망 당시 검안의의 증언을 청취한 1993년 진상조사보고서를 재공개하며 거듭 정부 차원의 재조사를 촉구했다. 

유기홍 원내부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당시 민주당 진상조사위원회의 조사보고서를 공개하며 "민주당 진상조사위원회에서 당시 검안했던 의사로부터 직접 증언을 청취했는데, 추락 실족사가 아닌 원형에 인공물체에 의한 두부골절이라는 것이었다"고 밝혔다. 

당시 진상조사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한광옥 최고위원을 위원장으로 하는 '장준하 선생 사인규명조사위원회'는 약사봉 현장답사를 비롯해 유일한 사고 목격자인 김용환, 호림산악회 회장 김용덕, 동아방송 기자, 의정부지청 검사, 법의학자 문국진 박사를 대상활동을 벌였다. 또 당시 사체를 검안했던 조철구 박사도 소견서를 제출했다. 

문국진, 조철구 박사는 "장준하선생 사망의 결정적인 원인은 직경 2cm, 중앙부에 홈이 있는 인공적인 물체를 가지고 직각으로 가격하여 생긴 후두부 함몰상으로 추정된다"고 증언했다. 이들은 또한 "오른쪽 팔과 엉덩이의 의문의 주사자국은 보통 주사자국보다 크게 확장된 것으로서 짧은 시간에 많은 양을 주사한 경우에 해당되며, 마취주사 후 선생의 몸을 고정시킨 뒤 후두부 급소 부위를 강타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문 박사는 "두부를 비롯해서 외상을 입기 쉬운 견갑부, 주관절부, 수ㆍ족관절부 등 돌출부위의 외상이 전혀없는 점으로 보아 넘어지거나 구른 흔적이 없고 후두부 골절부위가 해부학적으로 추락으로 인해 손상당하기 어려운 부위라는 것을 지적할 수 있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사고현장에 대해서도 강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추락사를 주장하는 유일한 목격자인 김용환씨는 당시 현장답사에서 등반을 개시한 산 입구, 장 선생과 점심을 먹었다는 바위, 계곡으로 내려가는 길을 찾지 못하는 등 대부분 증언과 현장답사 결과가 일치하지 않았다. 김씨는 추락지점에 고운 모래가 있었다고 했지만 답사 결과는 견치석(모난돌) 투성이었고, 높은 벼랑에서 굴러 떨어진 물체가 정지하기 어려운 곳이었다. 또 김씨가 지정한 추락지점은 약 75미터 높이의 높은 절벽으로 장 선생의 사체처럼 아무런 상처없이 반듯이 누워 발견되기가 어려운 곳이었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권력기관의 은폐 의혹도 제기됐다. 당시 동아방송 기자는 데스크로부터 무조건 취재 중단 명령을 받고 철수했고, 가족들은 사고 당일 오후 3시께 전화로 사고소식을 들었지만 당시 산에는 전화가 없었고 인가도 멀리 떨어져 있었다는 증언도 확보했다. 

유 원내부대표는 "2002년, 2004년 의문사 진상조사위원회에서는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12가지 자세로 추락하는 것을 조사를 해봤는데 12가지 모두에서 머리 한 군데에만 함몰이 일어나는 일은 있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강조했다. 그는 의문의 주사자국에 대해서도 "주사자국 관련해서 만약에 마취제가 있었다면 유골의 그런 성분이 침착된 것을 밝혀낼 수도 있다는 것이 법의학자들의 의견"이라고 재조사를 통해 진상을 밝힐 것을 촉구했다. 

그는 중앙정보부에 대해서도 "당시 중앙정보부와 보안사가 관여된 흔적이 있다"며 "중정이 일주일 전 산행에 대해서도 이미 동향파악을 했던 기록이 있고 바로 전 날 박형규 목사 재판에 장준하 선생이 참석했던 동향보고까지 하고 있는데 유독 당일만 자기들이 그날 동향 파악을 못 했다는 것은 믿기 어렵고 당시 사건현장 주변에서 중정 요원이라고 밝히는 사람들이 경찰에게 함구해달라고 했다는 증언이 확보돼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한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에서 장준하 사건은 대통령에 대한 A보고라는 진술을 확보했다"며 "이것은 대통령에 보고 됐다는 것이고 그 자료는 보존되어 있다는 것인데 찾아내지 못했다. 이것 역시 정부가 나서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최병성 기자

2012년 8월 20일 월요일

“박근혜, 장준하 선생 의문사 입장 밝혀라”


이글은 미디어스 2012-08-20일자 기사 '“박근혜, 장준하 선생 의문사 입장 밝혀라”'를 퍼왔습니다.
장준하 유족 “의문사, 피할 수 없는 숙명적 악연 청산해야”

고 장준하 선생의 유족은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예비후보가 장준하 선생의 의문사에 대한 입장을 밝힐 것을 촉구했다.
장준하 기념사업회의 서상섭 상임위원장은 SBS라디오 (김소원의 SBS전망대)와의 전화인터뷰에서 “장준하 선생 의문사는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 영부인 대행이라는 역할을 맡았던 당시에 일어난 일”이라며 “(사건의 내막을)알았든 몰랐든, 사후에라도 이 문제에 대한 입장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라며 말문을 열었다.
서상섭 상임위원장은 또한 “박 후보는 지난 2007년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 당시 사죄의 포즈를 담아 장준하 선생의 미망인을 방문했다”며 “피해갈 수 없는 숙명적인 악연을 청산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고 장준하 선생의 아들 장호권 씨는 당시 정황에 대해 “박 후보의 지지자 중 과거에 인연이 있던 사람들이 박 후보와의 어머니의 만남을 추진했다”며 “박 후보가 대통령 후보 자리를 놓고 당시 이명박 후보와 경쟁하는 입장으로 어머니를 찾아온 것”이라고 불교방송 (고성국의 아침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설명했다.
이어 장호권 씨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행위와 박 후보가 하려는 일은 연결선상에 있다”며 “국가의 원수가 되려는 사람은 개인적인 사과의 말이나 의견 이전에 공인으로서의 입장을 국민에게 밝힐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장준하 기념사업회와 유족은 20일 오전 11시 경 청와대를 방문해 ‘장준하 선생 의문사 진상 규명 재조사 요구서’를 제출할 예정이다.

윤다정 수습기자  |  songbird@mediaus.co.kr

2012년 8월 17일 금요일

중앙일보 “구속된 김승연 회장 운 없고 억울할 듯”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2-08-17일자 기사 '중앙일보 “구속된 김승연 회장 운 없고 억울할 듯”'을 퍼왔습니다.
[아침신문 솎아보기] 장준하 의문사 의혹 증폭…한일 관계 악화일로


법원이 회사에 3024억원의 손실을 끼치고 차명 계좌로 주식을 거래해 양도소득세 15억원을 포탈한 혐의로 김승연(60) 한화그룹 회장에게 징역 4년을 선고하고 지난 16일 법정 구속했다. 그동안 국가경제에 기여했다는 이유로 재벌 회장을 집행유예로 석방해온 관행과 달리 기업인 범죄에 무관용 원칙을 적용한 것이다. 이를 두고 종합일간지 대부분은 재벌개혁 여론에 따른 결과라고 평가하고 나섰다.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에 맞서며 민주화운동을 하다 1975년 의문사한 장준하 선생의 두개골 부위가 지름 6㎝ 크기 원형으로 함몰돼 있는 사실이 37년 만에 확인됐다. 그가 인공적인 물체로 가격당해 타살됐을 것이라는 의혹이 증폭되며 박정희의 딸인 박근혜 새누리당 의원의 대응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과 일왕 사과 요구 발언 등 대일 공세에 따른 ‘역풍’이 일본 사회로부터 불고 있다. 하타 유이치로 국토교통상과 마쓰바라 진 국가공안위원장이 15일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해 한국을 자극한 데 이어, 일본 사회 내에서 반 한류 분위기까지 보이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한국 언론은 일본의 태도에 대한 비판을 이어가고 있다. 

다음은 16일 아침 전국단위 종합일간지의 1면 머리기사 제목이다.

경향신문 (경제‧한류로 번진 ‘한일 갈등’>)
국민일보 (한‧중‧러 vs 일 ‘영토전쟁’)
동아일보 (총수 배려 관행 3‧5 공식 깨졌다)
서울신문 (청 “노다 내각에 기대할 게 없다” 강경)
세계일보 (귀국해봤자 백수…고급 두뇌 안 돌아온다)
조선일보 (대기업 회장 선처없다…판결 대전환)
중앙일보 (대기업 총수도 관용없다)
한겨레 (미-중이 키운 동북아 영토 갈등…한국은 좌충우돌)
한국일보 (현대차, 사내하청 3000명 정규직 전환)

김승연 회장 법정구속 ‘재벌 관용시대’ 끝나나

▲ 경향신문 1면 기사.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에 대한 법정구속을 두고 언론은 대체로 “기업범죄에 대한 법원의 단호한 의지를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경향신문은 3면 기사에서 “법원이 기업범죄에 무관용 원칙을 적용한 것은 정치권을 중심으로 한 이른바 ‘경제민주화’ 논쟁이 가열되면서 재벌에 대한 압박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한겨레 3면 기사에 따르면 이날 선고를 내린 서울서부지법 서경환(46·사법연수원 21기) 부장판사는 “실형 선고는 양형 기준에 따른 것으로, 법정구속이 일반적 관행이고 법정구속을 하지 않는 것이 예외적인 것”이라며 “경영 공백이나 경제발전 기여 등은 집행유예를 위한 참작 사유가 될 수 없다”고 말했다.

지금껏 법원은 재벌 총수에게 관대한 편이었다.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선언으로 시작된 ‘삼성특검’에 의해 기소된 이건희 삼성 회장은 2008년 서울중앙지법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2001년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과 2006년 두산그룹 박용오·박용성 전 회장 형제도 모두 같은 형을 선고받아 ‘재벌 회장=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이 공식처럼 받아들여졌다. 회사 돈을 횡령한 혐의로 기소된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2007년 1심에서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받았지만 법정 구속되지는 않았으며, 2심에서는 집행유예형을 받았다. 

경향은 “재벌 총수에 대한 사법부의 무관용 원칙은 앞으로 더 강화될 공산이 크다”고 내다봤다. 연말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에서 여야 할 것 없이 경제민주화 방안을 쏟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경향은 “민주통합당이 재벌 기업에 대한 출자총액제한제도 도입과 부자증세를 포함한 9개 법안을 내놓았고 새누리당은 횡령·배임을 저지른 재벌 총수에게는 집행유예 선고를 금지하는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고 전했다.

과거 ‘재벌 총수 봐주기’, ‘솜방망이 처벌’ 등 사회적 비난이 일자 양형위원회는 2009년 7월 횡령·배임 이득액에 따른 처벌 기준을 정해 시행했다. 이후 대기업 총수 비리사건으로는 지난 2월 이호진(50) 전 태광그룹 회장에게 양형기준이 처음 적용됐다. 양형기준을 보면, 횡령·배임으로 인한 이득액이 300억원 이상인 경우 기본적으로 징역 5~8년을 선고하되 별도 양형 요인에 따라 감경·가중하도록 했다. 김승연 회장의 경우 개인적 이득액이 300억원 이상으로 인정됐다. 

한편 김 회장의 법정 구속으로 한화는 당분간 비상경영체제 돌입이 불가피해졌다. 한화는 이날 “재판부의 1심 판결을 존중하나, 법적 쟁점이 있는 사항에 대해서는 항소를 통해서 다시 한번 자세히 소명해 2심 재판부의 판단을 구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한화 관계자는 “계열사 최고경영자의 책임경영으로 운영돼 왔기에 기본적인 경영은 문제없이 굴러갈 것”이라면서도 “이라크 건설 사업 추가 수주, 독일 태양광 업체인 큐셀 인수 등 김 회장이 주도하던 사업에 차질이 우려된다”고 전했다.

조선, “재계는 큰 충격” 

조선일보는 “법원이 16일 한화 김승연 회장을 법정 구속하자 재계가 큰 충격에 빠졌다”고 전했다. 조선은 3면 기사에서 “이번 판결은 정치권과 시민단체가 재계를 압박하는 가운데 나온 것이어서 재계가 받는 충격은 더 컸다. 재계는 이번 판결이 정치권 등에서 경제 민주화와 재벌 개혁을 이슈로 몰고 가는 흐름 속에서 나왔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조선은 “재계 일각에선 사법부까지 재벌 때리기에 나선 것 아니냐는 불만이 나온다. 법적으로 다툴 여지가 있는데도 그룹 총수를 법정 구속까지 한 것은 ‘사법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 아니냐는 것”이라며 재계 입장을 전했다. 이와 관련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최근 경제도 어려운데 기업인을 법정 구속한 것에 대해 유감으로 생각한다”는 짤막한 논평만 냈다.

조선은 같은 날 사설에서 “1990년 이후 10대 그룹 총수 가운데 7명이 경영이나 회계 비리로 유죄판결을 받았으나 모두가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그리고 거의 전원이 1년 이내에 사면·복권되며 국민 사이에서 사법부에 대한 불신과 대통령 사면권 행사의 정당성에 대한 논란이 번져왔다”며 이번 판결의 배경을 짚었다. 

조선은 이어 “법인 돈은 총수 개인 돈과는 다르다. 우리 기업인들도 이제 법인 돈과 대주주의 돈을 엄밀하게 구별해 회사 돈을 함부로 꺼내 써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재계는 법원이 경제 범죄에 대한 처벌 수위를 높여가고 정치권이 경제 민주화를 앞세워 변신을 압박하는 상황 속에서 새로운 경영 방식과 진로를 찾아야 할 때가 왔다”고 주장했다. 

중앙 “김승연 회장 억울할 법도 하다”

중앙일보는 이번 판결을 두고 1면 머리기사에서 “대선을 앞두고 있고, 경제는 어려워지는 미묘한 시기에 상징적인 판결이 나왔다”고 전했다. 중앙은 “이번 판결은 세태의 변화와 무관치 않다.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대기업과 부자에 대해 곱지 않은 시각이 늘고 있다. 재판부에서 예전처럼 구속을 면해주는 판결을 내놓기 어려운 분위기가 사회 전반에 깔려 있다”며 이번 판결이 부자에 대한 곱지 않은 시각에 따른 것인 양 전했다. 

중앙은 “여야 막론하고 대기업을 몰아세우면 대선 득표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는 듯하다”며 “대선 후보들은 개념이 모호한 ‘경제민주화’를 내걸고 선명 경쟁을 하고 있다. 이런 때 김 회장의 재판이 벌어진 것”이라며 “김 회장과 한화그룹으로선 운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고, 억울할 법도 하다”고 밝혔다. 이번 판결에 정치적 의도가 있다는 뜻이다. 

중앙은 “세상은 대기업과 부자에게 우호적이지 않다. 이는 전 세계적인 현상이기도 하다. 미국인들의 64%는 고소득자에게 더 많은 소득세를 물리기를 원하고 있다. 경기 침체와 대선이 겹쳐 대기업과 부자에 대한 부정적 시각은 확산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한 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의 발언을 인용, “잘못은 벌하되 보여주기식 처벌이나 몰아세우기는 곤란하다”고 밝혔다. 

공개된 장준하 유골…이윤성 교수 “뒷머리 함몰 의한 사망” 

▲ 서울신문 8면 기사.

장준하기념사업회는 16일 오후 장 선생의 유해를 이장할 당시 찍었던 장 선생의 유골 사진과 유골을 검시한 법의학 교수의 소견서를 공개했다. 장 선생의 두개골 사진은 지난 1일 그의 유해를 ‘장준하공원’으로 이장할 때 찍은 것이다.

한겨레 2면 기사에 따르면 장 선생의 두개골에는 벼랑에서 추락했다고 보기 어려운, 지름 6㎝가량 원형으로 파인 상흔이 매우 뚜렷했다. 진황색 두개골은 머리뼈 형태나 치아 상태도 그다지 썩지 않은 채로 꽤 온전하게 남아 있었다. 두개골 오른쪽 원형으로 금이 간 상처 부위는 깊이 1㎝가량 들어간 상태였다. 상처 오른쪽 위 45도 각도로 금이 가 있고, 위쪽과 아래쪽으로도 갈라져 있었다. 당시 이장 과정을 지켜본 장남 장호권(63)씨는 “누군가 망치 같은 것으로 부친의 뒷머리를 가격한 것이 너무나도 분명해, 보는 순간 이를 악물 정도로 분노가 솟구쳤다”고 말했다.

장 선생의 두개골에 나 있는 상처는, 1975년 장 선생 운명 직후 유족의 의뢰를 받아 주검을 육안과 손으로 살펴본 의사들의 머리 부위 검안 소견과도 거의 일치하는 것으로 보인다. 사망 당시 주검을 들여다봤던 조철구 박사는 1993년 민주당의 ‘장준하 선생 사인규명 조사위원회’에 낸 사체 검안 소견에서 “직접 사망 원인은 우측두 기저부 함몰 골절상으로 인한 두개강내 손상으로 추정”된다며 “후두부 골절 부위가 해부학적으로 추락으로 인해 손상당하기 어려운 부위라는 것을 지적할 수 있다”고 밝혔다. 

지난 1일 장 선생의 유골을 검시했던 서울대 의대 법의학교실 이윤성 교수는 소견서에서 ‘뒷머리 함몰에 의한 사망’이라는 의견만 확정적으로 밝혔다. 사망 당시 의사들의 검안 소견과 37년 만의 유골 검시 결과를 검토한 장준하기념사업회는 “이윤성 교수가 사인이라고 밝힌 두개골 오른쪽 귀 뒤쪽의 함몰 모양과 위치는 결코 추락에 의한 함몰이 아니다. 추락하는 과정에서 그 부분에 사진과 같은 모양의 함몰 골절은 결코 생길 수 없다”며 정부에 전면 재조사를 요구했다.

서울신문은 8면 기사에서 “불거진 장준하 타살 의혹이 대선 국면 ‘핫 이슈’로 부상했다”고 전했다. 장준하 선생은 독립운동가이자 박정희 정권 시절 대표적 재야 정치인으로, 지난 1975년 8월 경기 포천의 약사봉에 올랐다가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박정희 정권은 실족사라고 발표했지만 권력기관에 의한 타살 의혹이 줄곧 끊이지 않았다. 73㎏의 몸무게에도 머리 외에 별다른 외상이 없는 점, 장비도 없이 길이 아닌 절벽을 타고 하산한 점 등 수많은 의문이 제기됐다. 2004년 과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 타살 의혹을 조사했으나 ‘진상규명 불능’이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민주, 장준하 의문사 진상조사위 구성 “박근혜 입장 밝혀라”

이런 가운데 민주통합당은 16일 ‘장준하 의문사 진상조사위’를 구성키로 했다. 우원식 원내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고인에 대한 유골 감식 등을 통해 타살 등의 정확한 사인을 밝혀내고 박정희 유신정권의 중앙정보부 등 국가 기관 개입 여부에 대한 진실을 밝혀낼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일보는 8면 기사에서 이번 진상조사위가 “최근 장 선생의 타살 의혹이 다시 불거진 데 따른 것으로, 박 전 대통령의 딸인 박근혜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에 대한 공세 차원과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17일은 장 선생이 세상을 떠난 지 37년이 되는 날”이라고 짚었다.

유기홍 민주당 의원은 “정부가 타살 의혹 규명에 나서지 않는다면 (장 선생이 타계한) 1975년 당시 퍼스트레이디였던 박근혜씨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것을 두려워한 소극적 대응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문재인 후보는 이날 트위터에 “장준하는 시대정신이었습니다. 살아 있어야 하고 살아 계셨어야 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그분을 잃었는지 꼭 밝혀져야 합니다”라고 밝혔다. 손학규 후보 측 김유정 대변인도 논평에서 “박정희 정권에 의한 정치적 타살이 사실로 밝혀진다면 박근혜 후보는 즉각 석고대죄하고 후보직을 사퇴하는 것이 옳다”고 말했다. 

한편 장준하 의문사와 관련해 조중동은 소극적인 보도태도를 보였다. 조선일보는 12면 단신기사로 이번 사안을 처리하며 검사 소견서를 인용, “머리뼈와 오른쪽 볼기뼈의 골절은 둔체에 의한 손상이지만 이 손상이 가격에 의한 것인지 넘어지거나 추락하면서 부딪쳐 생긴 것인지는 판단할 수 없다”고 밝혔다. 동아일보는 8면 기사에서 박근혜 의원 경선캠프 관계자의 말을 인용, “박 의원이 2007년 장준하 선생의 유가족을 만나 사과 말씀을 드린 게 있다”고 밝혔다. 중앙일보는 이날 단신도 보도하지 않았다. 

일본 사회에 ‘반한 감정’ 고개… 주일대사관 부근서 연일 시위

한·일관계가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이후 급격히 나빠지고 있다. 한일 소식통은 16일 경향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그동안엔 한국의 행동에 대해 일본은 ‘구두항의’ 수준에 그쳤지만 이번엔 행동으로 보여주자는 의견들이 많다”며 “통화스와프 재검토가 언론에 흘러나온 것 자체가 이런 기류를 반영한다”고 말했다. 물론 ‘경제보복’을 실행할 가능성은 낮지만 루머에 민감한 국제금융시장의 특성을 감안하면 가볍게 볼 사안이 아니라는 것이다. 

경향신문 4면 기사에 따르면 한류 종사자 사이에서는 한류스타 송일국씨가 출연하는 드라마의 일본 내 방영이 보류된 것을 한류 위축의 전조로 해석하는 이들도 있다. 일본 일간지 문화담당 간부는 “방송국들이 우익들의 압력을 우려해 한류드라마 방영을 자제하는 움직임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일본 사회에서는 특히 이 대통령의 일왕 사과 요구 발언에 정치인이나 우익들은 물론 일반 시민들조차 불쾌감을 표출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도쿄에서 부동산업을 하는 신고 가즈오(眞後和男·60)는 “어제 저녁 회식 때 참석자들이 이 대통령의 일왕 사과 요구 발언에 너나없이 실망과 분노를 표출했다”면서 “이 대통령의 발언이 ‘선을 넘어버렸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주변에 적지 않다”고 말했다.

한겨레는 5면 기사에서 “일본이 독도 문제로 외교적 충돌을 빚은 한국에 대해 연일 강공을 퍼붓고 있는 반면,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를 놓고 충돌한 중국과는 갈등을 키우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겨레는 “중국인의 센카쿠열도 상륙은 처음이 아닌데다, 센카쿠열도는 일본이 실효 지배 중인만큼 굳이 분쟁을 키우지 않겠다는 의도로 보이는 반면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은 일본의 시각에서 보면 한국 정부가 일본을 크게 자극한 일이고, 한국이 실효 지배 중이기 때문에 분쟁을 키워서 일본이 손해 볼 게 없다는 계산이 작용한 것”이라 분석했다. 

정부, “위안부 등 역사문제 일본과 타협할 수 없다”

이런 가운데 청와대는 16일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과 관련해 “역사 문제는 일본과 타협할 수 없다”는 강경한 입장을 표명했다. 한국일보 1면 기사에 따르면 청와대는 노다 총리 내각이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를 보여 주지 않을 경우 노다 내각에 더 이상 기대하지 않겠다는 뜻도 밝혔다. 

조태영 외교통상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우리는 분명히 타협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면서 역사 문제에서의 비타협 입장을 강조했다. 조 대변인은 또 일본 각료 2명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해 “일본의 책임 있는 인사들이 역사를 반성한다면서 행동으로 군국주의 상징인 야스쿠니를 참배한다면 과연 역사를 반성하는 것인지 생각할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한편 일본 정부는 독도 문제의 국제사법재판소(ICJ) 제소를 한국에 제안하기로 최종 결정했다. 일본이 독도 문제의 국제사법재판소 제소를 한국에 제안하는 것은 1962년 이후 약 50년 만이다. 일본 정부는 16일 오후 총리 관저에서 사이토 쓰요시 관방 부장관을 책임자로 하는 독도 문제 관련 부처 국장급 회의를 열고 이 같이 결정했다.

▲ 조선일보 5면 기사.

조선, “日 단체, 독도상륙 시도 가능성 커져”

조선일보는 정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과, 홍콩 활동가들의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 상륙에 자극받은 일본 우익이 독도 불법 상륙을 시도할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커졌다”고 보도했다. 

16일 군과 해경 등에 따르면 일본 우익 등 일본 민간인들이 독도 상륙을 시도할 경우 해경 함정과 독도 경비대원 등 경찰이 일선에서 대응하고 군은 후방에서 지원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조선 5면 기사에 따르면 일본 우익 단체 등을 태운 민간 선박이 독도 영해(12해리·22㎞)에 접근하면 해경 경비함이 독도 우발 사태 위기 대응 매뉴얼에 따라 긴급 출동해 “영해를 침범하면 나포하겠다”는 경고 방송을 하게 된다. 독도 위기 대응 지침은 일본 우익의 상륙 시도 등 6개 유형의 우발 사태 대응 방법과 절차를 시나리오별로 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차단 작전에도 일본 우익 등이 독도에 상륙할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독도는 경비대원이 경계 근무를 서는 동도(東島)와 독도 주민 숙소가 있는 서도(西島)를 포함해 크고 작은 91개 섬으로 구성돼 있다. 해경 관계자는 “배로 독도 근처까지 접근한 뒤 수십명이 헤엄쳐 동도·서도 외에 작은 바위섬에 올라 우리 땅을 밟았다고 주장할 수 있다”고 했다.

우익 단체 회원들이 독도에 상륙할 경우 독도 경비대원들이 이들을 체포해 출입국관리법 위반으로 강제 출국시키거나 재판에 회부하는 절차를 밟게 된다. 그러나 해경 경비함과 독도 경비대가 막기 힘들 정도로 일본 민간인들과 선박 규모가 크거나, 자위대 함정과 항공기 등 일본 군대가 출동하면 군이 지원 역할에서 더 나아가 일선에서 직접 대응을 하게 된다. 

현대차 “비정규직 3천명 정규직 채용”

현대자동차가 16일 사내하청 노동자 3000여명을 2016년까지 정규직으로 채용하겠다고 밝혔다. 한겨레 1면 기사에 따르면 현대차 사쪽은 이날 울산 북구 양정동 울산공장에서 열린 노사교섭에서 사내하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3000여명의 사내하청 노동자를 채용해 정규직 정년퇴직에 따른 결원과 신규로 필요한 인력 등을 충원하겠다는 안을 제시했다.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는 모두 6800여명(노조 통계로는 8000여명)에 이른다. 현대차는 올해 1000명을 우선 채용하고, 나머지는 2016년까지 단계적으로 채용한다는 계획이다.

현대차는 “사내하청과 관련된 논란을 해소하고 사회적 책임을 다한다는 차원에서 이런 결단을 내리게 됐다”며 “아울러 정규직화 대상이 아닌 사내하청 노동자의 급여를 대폭 올려 직영 노동자와의 임금격차를 최소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현대차는 대법원이 사내하청을 불법으로 판단해 정규직으로 전환하라고 판결한 데 대해선 여전히 ‘소송을 낸 노동자 개인에 대한 판결’이라는 태도를 유지했다. 

경향신문 16면 기사에 따르면 현대차 노사는 지난 2월 대법원에서 “현대차의 사내하청 노동자는 정규직으로 채용된 것으로 봐야 한다”는 판결이 나온 뒤 이 판결을 다른 사내하도급 노동자에게도 일반화시킬지를 놓고 대립해왔다. 현대차 관계자는 “사내하도급 문제가 산업계 전반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 현실적인 대안을 찾으려고 고심했다”며 “불법파견 논란을 마무리하고 고용 유연성을 확보하는 계기가 마련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노조는 그러나 전원 정규직화 안이 아니어서 수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현대차노조 권오일 대외협력실장은 “어차피 2016년까지 퇴직 등으로 3000여명가량 신규채용 수요가 생기게 된다”며 “이 수요를 하도급 노동자로 메우겠다는 의미일 뿐이라서 협상안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밝혔다. 

직접적인 당사자인 비정규직노조도 반발했다. 현대차 비정규직노조 박현제 지회장은 “3000여명만 정규직화한 뒤 남은 인력들은 합법적 파견직으로 재구성하겠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노광표 부소장은 “사측이 일면 진전된 방안을 내놓은 것으로 볼 수 있지만 노조에 확실한 신뢰를 주지 못하는 게 문제”라며 “협상에서 제외된 비정규직노조와 시민단체 등 다양한 계층이 참여해 이번 문제를 하나의 사회적 협약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것도 해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안철수재단’ 안철수 명칭은 그대로… 대선전 활동 사실상 유보

안철수재단은 16일 재단의 기부 활동을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판단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유권해석과 관련, 재단의 명칭은 유지하면서 법적 테두리 안에서 사업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국일보는 6면 기사에서 이 같은 사실을 전하며 “현 상태에선 재단 명칭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정상적인 기부활동을 펴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대선 이후에 본격적인 활동을 하겠다는 것을 에둘러 표현한 것으로 풀이된다”고 전했다. 

안철수재단은 이날 오전 박영숙 이사장 주재로 이사회를 열어 “선관위의 유권해석을 염두에 두는 한편, 재단의 설립 취지를 구현하기 위해 현재의 재단 명칭을 유지하면서 정해진 사업 계획에 따라 업무를 진행할 것”이라고 입장을 정리했다. 재단은 “출연자의 기부 정신을 바탕으로 설립되었으나 법적으로는 출연자로부터 독립된 별개의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재단의 독립성에 대하여 논란이 제기된 것을 유감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앞서 중앙선관위는 13일 안철수재단이 입후보예정자의 명칭을 포함하고 있어서 기부활동이 공직선거법 위반에 해당된다는 유권해석을 내렸다. 이런 상황에서 재단이 명칭을 고수함에 따라 본격적인 활동은 대선 이후에 시작할 수밖에 없다. 재단은 그러나 활동 시기를 구체적으로 못 박지는 않았다. 한국은 이를 두고 “안 원장의 대선 출마 문제와 직접적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점에 부담감을 느꼈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정철운 기자 | pierce@media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