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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1월 23일 금요일

"문재인과 안철수, DJ-YS가 될 것인가?"


이글은 프레시안 2012-11-23일자 기사 '"문재인과 안철수, DJ-YS가 될 것인가?"'를 퍼왔습니다.
"문재인과 안철수, DJ-YS가 될 것인가?"'를 퍼왔습니다.

되풀이되는 분신과 투신의 역사

1987년 12월 5일 대통령 선거를 불과 열흘 앞두고 대전역 광장에서는 영세가구점 노동자였던 박응수(당시 29세)씨가 '군부독재 종식과 단일화 쟁취'를 외치며 분신하여 현장에서 사망하였다. 정확히 25년이 흐른 어제(11월 22일) 전북 완주의 50대 남성이 단일화를 요구하는 유서와 플랜카드를 남기고 투신하였다는 비보는 단일화를 염원하는 모든 이들을 충격에 빠트렸다.

역사는 반복될 것인가? 1987년 6.29 선언으로 대선 국면이 시작되었을 때만 해도 단일화에 대한 '순진한 낙관론'이 우세하였다. 직선제만 되면 '저마다 중앙청의 문지기가 되어도 좋다. 요리사가 되어도 좋다'고 말했던 양김의 공언이 계속되었고, 실제 DJ는 복권되자마자 YS가 이끌던 통일민주당에 입당하는 절차를 밟기도 하였다. DJ는 대통령직선제 관철을 조건으로 대통령 불출마를 선언(1986.11.5)하였고, 자신의 회고록에서 YS가 망명 직후 "당신이 나이도 위이고 하니 사면복권이 되면 대통령후보로 지지 하겠다"고 예기하곤 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주지하다시피 단일화를 외치며 양당 당사를 점거하였던 대학생들의 간절한 염원도, 김수환 추기경을 비롯한 원로들의 중재도, 심지어는 노동자의 목숨을 건 분신도 양김의 권력욕 앞에 무기력하게 주저앉았다.

같은 것과 다른 것

그때나 지금이나 정권교체의 유일한 카드로서 단일화를 바라는 여망은 간절하였지만 전망은 그리 낙관적이지 않다. 당시 실시되었던 전화면접 여론조사에서는 양김의 단일화는 필요(69%)하지만 실제 이루어질 것이라는 응답(30.4%)보다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응답(40%)이 다소 높게 나타났다(. 1987.9.25).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단일화에 대한 찬성 견해는 64.2%(박근혜 지지층 포함)에서 84.7%(박근혜 지지층 제외)에 달하고 있다(. 2012.11.13).

같은 것은 이것만이 아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양김의 탐욕이나 야망과 같은 '유해한 열정'을 다스릴 수 있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제도의 모색은 턱 없이 부재하다. 여야 없이 정치권은 후보단일화를 위한 민주적인 경선 제도도, 4년 중임제와 결선투표제와 같은 합의제 헌정체제를 진지하게 모색하지 않은 채 25년 동안 손 놓고 앉아 있었다.

ⓒ뉴시스

그러나 희망을 갖게 만드는 중대한 차이도 있다. 혹자는 노회한 양김보다는 문재인과 안철수의 인품이 출중하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비교와 검증이 어려운 인상주의적 평가이다. 희망의 유력한 근거는 '새정치 공동선언'과 같은 정책협약의 성과이다. 정치뿐만 아니라 외교ㆍ안보와 경제 분야에서 양측의 공동선언문이 성사된다면 공동정부의 청사진을 마련하는 셈이다.

그렇지만 내가 단일화를 낙관하는 강력한 근거는 역사적 교훈의 엄숙함이다. 우리 모두 알다시피 양김은 결국 각각 집권에는 성공하였다. 그렇지만 양김의 동시 출마는 지역주의의 악화뿐만 아니라 훗날 3당 합당의 간접적 원인을 제공함으로써 영남의 야당 및 민주화 세력의 결정적 약화를 가져왔다. 'YS의 욕심과 DJ의 고집'으로 인한 정치적 결별로 그들은 군부와 야합하거나 아니면 유신 잔당과 손잡음으로써 집권의 정당성에 결정적 손상을 당하였다. 또한 민통련의 해체에서 드러나듯 '정치권은 물론 민주화세력에 대한 국민적 신뢰의 완전한 상실'을 가져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너무도 많은 국민들의 희생과 소모적인 분열을 낳았다. 두 정부 모두 집권 과정에서 입은 지지 기반의 분열과 도덕성의 실추로 '성공한 정부'를 창출하지는 못하였다.

최초의 성공한 정부와 최초의 4년 중임 대통령이라는 역사적 과제를 분담하라

한국 현대사에서 꼭 필요한, 그러나 아직 갖지 못한 것 중 하나가 성공한 정부이다. 박정희 정부는 경제성장이라는 업적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와 인권이라는 관점에서,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는 민주주의와 남북화해협력이라는 진전에도 불구하고 사회경제적 양극화를 치유하는데 실패하였다는 점에서 성공한 정부라고 평가하기 어렵다.

안철수 정부이든 문재인 정부이든 차기 정권의 첫 번째 과제는 경제민주화와 평화ㆍ복지국가의 건설이다. 그리고 이 과제는 중도 자유주의 세력을 대변하는 안철수나 개혁적 자유주의 세력을 대표하는 문재인의 민주당 없이는 성공적으로 실행할 수 없다. 나아가 진보정의당이나 녹색당, 그리고 개혁적 시민단체와 같은 진보세력과의 우호적 협력이 필수적이다. 즉,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최초의 성공한 정부라는 위대한 비전은 개혁과 진보세력의 지혜로운 연대와 소통 속에서만 가능하다.

진정 우리가 이 시점에서 꿈꾸어야 하는 것은 후보자들의 결단에 의한 '아름다운 단일화'가 아니다. 우리는 그동안 집권에는 성공하였으나 통치에는 실패한 단일화의 역설적 비극을 수차례 경험하였다. 단일화가 성공한 이후에도 안철수와 문재인이 함께 진심으로 전력을 기울여야 하는 것은 또 다시 실패한 정부가 되지 않기 위해 '공동정부의 비전과 내용을 담보하고 실행'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최초의 성공한 정부가 되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이다.

박근혜 후보야말로 이번 단일화가 성공한다면 최고의 숨어있는 조력자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박근혜 후보가 지난 11월 6일 제안한 '4년 중임 개헌'은 향후 권력의 공존과 연합을 가능하게 할 제도적 매개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대선은 우리 선거사상 처음으로 집권 여당 후보와 제1 야당 후보 모두 '4년 중임 개헌'을 정치공약으로 제시하였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선거 결과가 어떻게 결정되든 차기 정부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개헌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전망할 수 있다.

단일화가 된다면 한 사람은 최초의 성공한 정부의 마지막 5년 단임 대통령이 될 것이다. 물론 성공한 정부는 앞서 설명한 대로 중도에서 진보를 아우르는 역사적 블록을 형성할 지혜와 능력의 결과로 주어질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새정치 공동선언에서 그동안 정치학계와 시민단체가 줄곧 제기해 온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가 누락된 것은 참으로 아쉬운 일이다. 단일화가 어렵게 성사된다면 해야 할 일은 문재인과 안철수가 함께 손잡고 전국의 유세장을 누비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정치와 경제는 물론이고 복지와 조세, 생태와 평화로 정책협약의 내용을 구체화하고, 선거법 개정과 개헌의 방향을 당당하게 공약으로 내세워야 한다.

지금 두 후보와 측근들이 버려야 할 것은 단기적ㆍ정략적 셈법이며, 가져야 할 것은 역사적 교훈이 주는 중장기적 관점이다. 최초의 성공한 대통령이 될 것인가? 아니면 최초의 연임에 성공한 8년짜리 대통령이 될 것인가? 연이은 개혁정부의 13년 집권을 통해 역전이 불가능할 정도로 굳건한 생태ㆍ평화ㆍ복지국가를 건설하는 꿈, 멋지지 아니한가? 87년으로 돌아가 역사의 수인(囚人)이 될 것인가, 아니면 '새시대의 맏이'가 될 것인가? 지금 우리에게 더 없이 필요한 것은 헌신과 양보를 강조하는 주관적 결단이 아니라 공존을 가능케 할 지혜로운 역사적 안목이다.


 /정상호 서원대학교 교수 

2012년 8월 27일 월요일

YS, 장준하 선생 의문사 진상규명위 참여


이글은 시사IN 2012-08-27일자 기사 'YS, 장준하 선생 의문사 진상규명위 참여'를 퍼왓습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장준하기념사업회와 장 선생 유족들이 발족을 준비하고 있는 가칭 '장준하 선생 의문사 범국민진상규명위원회'에 발기인으로 참여키로 결정했다. 

김 전 대통령의 측근은 27일 뉴시스와의 전화통화에서 "지난주에 장호권(장 선생의 장남)씨가 와서 (김 전 대통령께)정중하게 (발기인 참여를)동의해주셨으면 한다고 부탁했다"며 "김 대통령께서 유족들의 아픔과 뜻을 존중해 흔쾌히 동의하셨다"고 말했다. 

ⓒ뉴시스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후보가 22일 오전 서울 동작구 상도동 김영삼 전 대통령을 예방, 악수하며 인사하고 있다.

이 측근에 따르면 김 전 대통령은 장 선생의 죽음을 둘러싼 의혹이 역사적 진실을 위해 반드시 규명되어야 한다는 의지를 보였다. 

'재야 대통령'으로 불리며 박정희 정권과 끊임없이 마찰을 빚었던 장 선생은 지난 1975년 8월17일 경기 포천군 이동면 약사봉에서 의문사했다

한편 범국민진상규명위는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 등 민주화 원로를 주축으로 꾸려져 이달말께 출범할 예정이다.

(뉴시스)

2012년 7월 12일 목요일

YS “박근혜 칠푼이” 발언 화제…“수첩공주보다 직설적”


이글은 뉴스페이스 2012-07-12일자 기사 'YS “박근혜 칠푼이” 발언 화제…“수첩공주보다 직설적”'을 퍼왔습니다.
네티즌 “팔푼이가 칠푼이 알아봐, 새별명 선사했네”

김영삼 전 대통령이 11일 새누리당의 유력한 대선 주자인 박근혜 전 비상대책위원장에 대해 “별거 아니다”, “칠푼이”라는 독설을 날렸다.

11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김 전 대통령은 이날 오후 서울 상도동 자택으로 김문수 경기지사가 예방한 자리에서 박 전 위원장이 언급되자 이같이 평가했다.

김 지사가 “지금은 토끼가 사자를 잡는 격”이라며 자신이 박 전 위원장에게 밀리고 있는 것을 비유하자 김 전 대통령은 “(박 전 위원장은) 사자가 아니다. 아주 칠푼이다. 사자가 못 돼”라며 “(막상 경선판이 열리면) 박근혜는 별 것 아닐 것”이라고 혹평했다.

김 전 대통령은 또 ‘박근혜 경선캠프’의 홍사덕 공동선대위원장이 자신에게 수차례 전화를 걸어왔다고 공개하면서 “박 위원장이 전화하면 되지, 대신 전화하는 것은 별로 받고 싶지 않다고 답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김 전 대통령의 이러한 발언이 화제가 되면서 관련기사에는 네티즌들의 수천여개 댓글이 주렁주렁 달렸다.

네티즌들은 “박근혜에 대한 김영삼의 평가 하나만은 탁월하다. 맞는 말”(야구**), “칠푼이는 칠푼이를 알아보는 것인가”(re**), “가실 날이 얼마 안 남았나... 입바른 소릴 다 하시고”(하늘을**), “총선 때 아들 공천 안 해줘 골난 듯”(she**), “칠푼이 뜻 : 지능이 조금 모자라는 사람을 놀림조로 이르는 말”(so-***), “이 영감이 소가 뒷걸음질하다 쥐 잡는 격으로 가끔 옳은 소릴 할 때가 있어”(푸른**)라는 반응을 보였다.

트위터 상에는 김 전 대통령의 패러디 봇인 ‘김빙삼’(@PresidentVSKim)이 “지금 우리나라에서 박근혜를 보고 ‘칠푼이’라꼬 솔직하게(!) 깔 수 있는 팔푼이가 그리 흔하지는 않재”라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파워트위터러 ‘mettayoon’은 “하자 둘이서 또하나의 하자를 씹었군요”라며 “박근혜가 칠푼이면 상도동에서 만난 두분은 팔푼이쯤 되나요”라고 꼬집었으며, “‘수첩공주’로 통했는데 그것 보단 훨씬 직설적인 표현”(hangang****), “영삼옹이 좋은 별명 하나 선사했네”(yla***), “팔푼이가 칠푼이에게”(mbwill***)라는 반응도 있었다.

마수정 기자

2012년 6월 2일 토요일

권력교체기마다 사퇴 압력…“나 물러날 때도 김무성이 개입”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06-01일자 기사 '권력교체기마다 사퇴 압력…“나 물러날 때도 김무성이 개입”'을 퍼왔습니다.

황경로 전 포스코 회장은 박태준 전 명예회장의 뒤를 이어 1992년 10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포스코를 이끌었으나 김영삼 정부의 압력으로 6개월만에 물러나야 했다.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토요판] 커버스토리
포스코 잔혹사, 황경로 전 회장 인터뷰

▶ 정부가 세우고 국민이 키운 포스코가 흔들리고 있다. 정부 주식이 단 한 주도 없는데도 포스코를 정권의 전리품으로 여기는 최고권력과 권력에 줄을 대어 최고경영자 자리를 노리는 내부 인사들의 분열, 포스코의 창업자인 박태준 전 명예회장의 사후 ‘포스트 티제이(TJ)’ 자리를 노리는 실력자 등. 국민기업 포스코를 과연 누가 흔들고 있는지 파헤쳤다.

정부는 주식 한주도 없으면서
포스코를 전리품 취급
박태준 명예회장 없다고
아예 재벌에 팔아버릴까 걱정

퇴직임원 모임인 중우회가
정권 개입 막는 울타리 될 것
회장도 너무 오래할 생각 말고
후계자 키우는 시스템 갖춰야

지난 5월 말 전남 포스코 광양제철소에서는 현장 간부를 상대로 한 긴급 설명회가 열렸다. 권력 실세의 회장 인사 개입과 학교법인 포스텍의 저축은행 투자 손실, 파이시티 특혜 등 의혹 사건이 잇달아 터지면서 생산현장까지 동요하기 시작하자 차단에 나선 것이다. 경북 포항제철소에서도 한주 전 같은 행사가 열렸다.
최근 포스코 위기는 권력이라는 외부세력의 부당한 개입 의혹에 조직 내부의 분열이 중첩되면서 복잡하고도 미묘한 양상을 띠고 있다. 포스코 안에서도 말하는 사람에 따라 사태를 바라보는 시각이 전혀 다르다. 는 포스코 위기의 실상과 해법을 사심 없이 듣기 위해 적임자를 찾다가 황경로 전 회장을 만나기로 했다. 그는 포스코 창립 멤버로, 퇴직임원 모임인 중우회 회장이다. 박태준 회장이 1992년 집권 여당의 대통령 후보였던 와이에스(YS·김영삼 전 대통령)와의 갈등으로 퇴진하자 그 뒤를 이어 2대 회장을 지냈다. 창업자인 박 전 명예회장이 지난해 말 세상을 떠난 뒤부터는 포스코의 가장 웃어른인 셈이다. 그는 김영삼 정부의 압력으로 6개월 만에 회장을 그만뒀다. 1968년 설립 이후 45년 동안 끊임없이 권력의 개입에 시달려온 포스코 역사의 산증인인 셈이다.
황경로 전 포스코 회장과 전화 연결이 된 것은 지난 29일 밤늦은 시간이었다. 황 전 회장은 최근 포스코 사태에 관해 인터뷰를 요청하는 기자에게 “잘못 말하면 오비(퇴직임원)들이 간섭한다는 얘기만 듣는다”며 사양했다. 대일청구권 자금 일부인 7200만달러와 해외차관 5000만달러를 포함한 국민 혈세로 지어져 세계적 철강회사로 성장한 포스코가 1992~1993년 최고경영자(CEO) 연쇄교체 사태 이후 최대 위기를 맞았는데 원로들이 버팀목이 돼야 하지 않느냐고 졸랐다. 황 전 회장과의 인터뷰는 이처럼 20년 만에 재연되고 있는 국민기업 포스코의 최대 위기를 걱정하는 공감 속에서 어렵게 이뤄졌다. 다음날인 30일 오후 서울 역삼동 한 식당에서 만난 황 전 회장은 1930년생(82살)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정정했다.

역대 정권은 각종 이권을 챙기려 했다

-국민기업인 포스코가 최근 크게 흔들리고 있다. 철강업계의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회사가 잘못되지는 않을까 걱정이다.
“원자재값 급등과 중국의 덤핑공세, 현대제철이라는 경쟁자의 등장 등 어려운 경영여건 속에서도 매출 증가세가 지속되고 이익도 꾸준히 내고 있다. 경영은 기본적으로 잘하고 있다. 하지만 자꾸 언론에 회사와 관련해 안 좋은 기사가 나니까 임직원이 큰일이 나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는 것 같다.”
조강(가공되지 않은 강철) 생산능력 3700만t으로 세계 6위의 철강업체인 포스코는 한국경제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지난 4월 현재 포스코는 계열사 70개에, 자산 80조6천억원으로 재계 6위에 올라 있다. 다른 재계 상위그룹은 모두 총수가 있는 재벌이지만, 포스코는 케이티(KT)와 함께 지배주주가 없는 말 그대로 ‘국민기업’이다.
특히 정부는 단 한주의 주식도 갖고 있지 않다. 경제 전문가들은 포스코에 권력이 여전히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시장경제원리를 부정하는 행위라고 비판한다. 포스코 사태도 결국 권력 실세들이 2009년 회장 인사에 부당하게 개입한 의혹이 발단이 됐다. 정준양 회장과 함께 시이오 후보였던 윤석만 사장은 2009년 1월29일 시이오후보추천위원회에서 “(권력 실세로부터) 후보 사퇴 압력을 받았다”고 직접 폭로했다.
-권력이 포스코를 여전히 정권의 전리품 정도로 생각하는 것 아닌가?
“포스코는 45년간 주인 없는 회사로 경영이 잘 돼왔다. 지금까지 단 한번도 적자를 낸 적이 없다. 정부가 개입만 안 한다면 이상적인 경영시스템이다. 지금 흔들린다고 해서 과거 국영기업 시절로 되돌아가거나, 재벌 오너체제로 전환하는 것은 모두 바람직하지 않다. 정부 지분은 하나도 없고, 외국인 지분이 50%에 육박하는 기업에 권력이 개입하면 안 된다. 재벌들도 포스코가 주인 없는 회사여서 흔들린다고 부추기면 안 된다. 국민기업인 포스코는 그 누구의 것도 아니다.”
포스코 계열사의 한 고위 임원은 “역대 정권은 주인 없는 포스코를 당연히 자신들의 것이라고 생각하고 각종 이권을 챙기려 했다”며 “이것이 포스코가 정권이 바뀔 때마다 흔들리게 된 근본 이유”라고 지적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전 새누리당 의원은 포스코 인사 개입의 배후인물로 지목되고 있다. 포스코의 전 고위 임원은 “이 전 의원이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 포스코 간부들과의 한 모임에서 ‘이구택 회장이 야당 시절 전혀 도와주지 않았다’고 노골적인 불만을 토로하는 것을 들었다”며 “포스코는 이명박 정부 4년간 권력 실세들의 먹잇감이 됐다”고 털어놨다. 이구택 회장이 임기 중에 물러난 것은 정권 실세들이 포스코의 이권을 챙기기 위해 껄끄러운 관계에 있는 이 회장을 정리한 셈이다.
권력 실세들의 최종 목표는 포스코의 이권을 챙기는 것이다. 포스코 주변에서는 그것이 주로 포스코건설을 통해 이뤄진다고 말한다. 포스코의 한 전직 고위 임원은 “포스코는 나름 시스템을 갖추고 있고 사회에서 감시의 눈이 많기 때문에 포스코건설을 활용한다”며 “건설업종 특성상 많은 협력사와 거래해, 이권을 챙기기도 쉽다”고 말했다. 이권을 챙기는 또다른 통로는 100여개에 이르는 포스코의 외주파트너사(협력업체)이다. 이들은 주로 포항과 광양제철소에서 포장, 정비보수 등 보조적인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포스코의 한 전직 임원은 “외주파트너사는 포스코 간부 출신이 회사를 그만둔 뒤 몇년간 사장을 맡았다가 후배에게 자리를 넘겨주는 게 일반적인데, 권력 실세의 줄을 잡은 사람들이 알짜배기 회사를 개인소유로 인수해 특혜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회장 교체시기는 정권 교체기와 정확히 일치

권력이 이권을 챙길 때는 옆에서 이를 도와주고 떡고물을 챙기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포스코의 한 전직 임원은 “이명박 정부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는 포스코건설의 정동화 부회장과, 파이시티 사건에서 박영준 전 차관의 돈세탁 창구 혐의를 받고 있는 이동조 제이앤테크 회장을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포스코 안에서는 현실론도 제기된다. 한 임원은 “누가 포스코 회장이 돼도 정치권의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다”며 “때로는 회사에 더 큰 손실이 초래되는 것을 막기 위해 작은 이권은 양보할 수도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이번 사태는 1992~1993년 불과 1년반 사이에 포스코의 최고경영자 4명(박태준-황경로-정명식-김만제)이 잇달아 바뀌는 초유의 일이 벌어진 이후 20년 만의 최대 위기다. 당시에도 권력의 개입이 원인이었는데?
“박태준 회장의 퇴진은 1992년 대선에서 와이에스(YS)를 지원하지 않은 데 대한 정치보복이었다. 와이에스 정권이 들어선 뒤인 1993년에는 ‘박태준 사단’이라는 이유로 나를 포함해 7~8명이 한꺼번에 쫓겨났다.”
포스코의 최고경영자는 초대 박태준 회장을 시작으로 황경로, 정명식, 김만제, 유상부, 이구택을 거쳐 현재의 정준양 회장까지 7번째다. 전임 회장 6명은 모두 임기를 제대로 마치지 못했거나 타의에 의해 물러났을 정도로 포스코의 ‘시이오 잔혹사’는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회장 교체 시기의 대부분이 정권 교체기와 정확히 일치하는 것은 포스코가 태생적으로 정치적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1992년 3당 합당으로 출범한 민자당의 김영삼 대통령 후보는 박태준 회장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박 회장은 “와이에스는 5분만 말해보면 바닥이 드러나는데, 이런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안 된다”고 거절했다. 그 대가는 가혹했다. 박 회장은 1992년 10월5일 포스코에서 퇴진했고, 대신 황경로 회장-정명식 부회장-박득표 사장 체제가 들어섰다. 정권은 한번 눈 밖에 난 포스코를 그대로 놔두지 않았다. 황 회장 체제는 6개월 만에 막을 내리고, 1993년 3월 주총에서 정명식 회장-조말수 사장 체제가 출범했다.
정권의 보복은 이어졌다. 포스코와 박태준 사단을 대상으로 강도 높은 국세청 세무조사와 검찰 수사가 시작됐다. 박 회장은 일본으로 사실상 망명을 떠났다. 국세청과 검찰은 360억원에 이르는 박 회장의 숨겨진 재산을 찾아냈다고 발표했고, 황 회장과 유상부 부회장은 6개월간 감옥생활을 했다.
정명식 회장-조말수 사장 체제도 내부 갈등 끝에 1년 만에 막을 내렸다. 그것은 김만제 전 재무장관이 외부에서는 처음으로 포스코 회장으로 들어오는 빌미를 줬다. 1998년 디제이피(DJP) 연합을 통해 집권한 김대중 정부에서 박태준 명예회장이 총리를 맡으면서 외부환경은 180도 바뀌었다. 결국 김만제 회장은 임기를 못 끝낸 채 물러나고 유상부 회장이 1998년 3월에 취임했다. 유 회장은 2003년 연임을 추진했는데 주총 하루 전날 돌연 사임했다. 유 회장의 사임으로 가장 선임이었던 이구택 사장이 회장으로 선임됐다. 유 회장의 사임 이유에 대해서는 박 명예회장과 인사문제 등으로 갈등을 빚었다는 설과, 정권 교체기에 외부 인사를 시이오로 선임할 시간적 여유를 주지 않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는 설, 노무현 정부의 퇴진압력설이 엇갈린다.

황 전 회장이 지난 30일 서울 역삼동의 한 식당에서 이뤄진 <한겨레> 인터뷰에서 기자의 질문에 대답하고 있다. 김경호 기자

외풍 빌미 준 회장들의 개인비리 의혹은?

이구택 회장은 외부 입김 차단과 독립경영을 위해 전원 사외이사로 된 시이오후보추천위원회를 신설하는 등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단행했다. 하지만 이 회장도 임기가 남은 상황에서 2009년 1월 전격 사임했다. 이 회장은 사퇴 직전까지 포스코의 국세청 세무조사 로비 의혹과 관련해 검찰 압수수색설에 시달렸다.
-1993년 회장에서 물러날 때 구체적으로 무슨 일이 있었나?
“1992년 10월 회장이 될 때 (노태우) 대통령의 승인을 받았다. 1993년 3월 주총에서도 결산보고까지 마쳤다. 하지만 권력 실세가 직접 개입하니 소용이 없었다.”
그 권력실세가 누구였는가?
“(잠시 멈칫하더니) YS의 측근이었던 김무성 전 의원이다.(김 전 의원은 김영삼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행정실장을 거쳐 대통령 민정비서관과 사정비서관을 지냈다)”
2009년 초에는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으로 불리는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과 이상득 전 의원의 보좌관 출신인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이 포스코 회장 인사에 입김을 작용했다. 두 사람은 회장이 선임되기 석달 전인 2008년 11월부터 당시 차기 회장 후보로 거론되던 윤석만 사장과 정준양 사장은 물론 박태준 명예회장, 이구택 회장 등과 잇달아 만나 사전심사를 했다.
현 포스코 위기에는 권력의 개입 의혹과 함께 내부 분열도 큰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내부가 하나로 단결된 것은 아니다. 자기 생각을 과장해서 언론사에 퍼뜨려 회사를 흔드는 일부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포스코 안에서는 황 회장과 다른 시각도 있다. 현 경영진을 비판하는 쪽에서는 “원로 중에서도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한다.
회사를 흔드는 사람이 누구인지 아는가?
“추측은 한다. 한두 사람이 그런다.”
결국 선후배 사이일 텐데, 직접 만날 생각은 없는가?
“조만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충고를 할까 생각하고 있다.”
비판세력들은 현 경영진에 대해 회장 선임과정에서의 문제와 개인비리 의혹을 동시에 제기한다. 한 관계자는 “포스코가 외풍에 흔들리는 것은 현 경영진이 그런 빌미를 줬기 때문”이라며 “경영진이 깨끗하다면 문제가 될 게 없었을 것 아니냐”고 말했다. 비판자들은 현 사태가 이미 선을 넘었다고 말한다. 한 관계자는 “(현 경영진으로는 외풍을) 막을 수 없고, 막을 필요도 못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또 “박태준 회장이 생전에 정준양 회장에 대해 물욕이 많아서 안 된다고도 했다”고 말했다. 황 회장에게 다시 물어봤다.

※클릭하면 큰 그림을 볼 수 있습니다

박 명예회장이 생전에 정 회장을 가리켜 물욕이 많다고 한 적이 있나?
“능력은 있는데 말이 다소 많다는 얘기를 한 적은 있다. 하지만 물욕 얘기는 처음 듣는다.”
경영진 쪽에서는 회사를 흔드는 불순세력이라고 하지만 비판하는 쪽에서는 현 경영진이 태생부터 정통성이 없는데다 정권과 손잡은 부패세력이라고 비판한다.
“자세한 것은 모르지만, (현 경영진에) 비리가 있다면 구체적인 증거가 있어야겠지. 설령 있다고 해도 다른 회사보다 많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지난해 말 정 회장이 연임의사를 비쳤을 때 선뜻 동의한 것도 그 때문이다. 처음 선임될 때 의문이 제기됐지만, 벌써 지난 일이고 그동안 경영성과를 냈기 때문에 특별히 바꿀 이유는 없다고 봤다.”
2009년 1월 시이오후보추천위원회가 열리기 직전에 정준양 회장 비리가 담긴 투서가 언론사에 전달됐고, 일부 언론은 이를 크게 보도했다. 포스코는 이에 대해 “회사 차원에서 조사를 벌여 혐의가 없다는 점을 시이오후보추천위원회에 보고했고, 민주당에서 이후 같은 내용으로 검찰에 고발했지만 역시 무혐의로 나왔다”며 억울해한다. 계열사의 한 고위 임원은 “권력이 마음에 들지 않는 전임자를 퇴임시키는 데는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새 회장 선임은 포스코의 시이오 선출절차로 볼 때 한계가 있다”고 말한다. 만약 정권이 시이오후보추천위원회에 압력을 넣었다면 박원순, 안철수 같은 사외이사들이 가만히 있었겠느냐는 것이다. 포스코에서는 비리투서가 정 회장의 경쟁자 쪽에서 흘러나온 것으로 의심한다.
박태준은 YS에 찍혀 퇴장
황경로 6개월, 정명식 1년…
1년반동안 회장 무려 4번 교체
임기 채우고 떠난 회장 없어

엠비정부가 밀어준 정준양
한쪽선 “정권과 손잡은 부패세력
”경영진은 “회사 흔드는 불순세력
”외풍에서 내부 분열로 번져

‘재벌에 매각’ 꾸미지 않을지 경계해야

포스코의 창업자로 지난 45년 동안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며 외부 입김을 막는 울타리 구실을 해온 박태준 회장이 지난해 말 세상을 떠났다. 일부에서 ‘포스트 티제이(TJ·박태준의 별칭)’를 노린다는 얘기도 들린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박태준 회장은 포스코를 창업하고, 숱한 어려움을 극복해, 오늘날의 포스코 성공 신화를 만든 주역이다. 개인 역량이나 회사에 대한 공헌도에서 박 회장에 비견될 만한 사람이 어디 있나. 나도 절대 ‘포스트 TJ’가 아니다. 제2의 박태준은 없다.”
경영진 쪽에서는 일부 인사가 포스코를 사유화하기 위해 ‘포스트 TJ’자리를 노린다고 경계한다. ‘포스트 TJ’를 노리는 인사로는 박태준 회장의 왼팔로 불렸던 이대공 포스코 교육재단 이사장이 꼽힌다. 이 이사장은 1998년부터 15년째 이 자리를 맡아왔다. 포스코 안팎에서는 이미 지난해 가을 교육재단 이사진의 물갈이가 쟁점이 됐을 때부터 양쪽의 갈등이 표면화됐다고 말한다.
박태준 명예회장은 현역에서 물러난 뒤에도 정치적 외풍으로부터 포스코를 보호하는 울타리 구실을 했지만, 동시에 ‘상왕’ 노릇을 했다는 비판도 있다. 포스코의 전직 고위 임원은 “박 명예회장은 1992년 현직에서 물러난 뒤에도 막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했고, 차기회장 선임 등 인사에도 간여했다”며 “이 때문에 자기가 앉힌 회장과 갈등을 빚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대공 포스코 교육재단 이사장은 지난해 말 “박 명예회장은 포스코가 특정 세력이나 기업에 경영권을 뺏길까봐 가장 우려했다”며 “포스코는 박태준이 있었기에 그나마 정치 외풍에 적게 흔들렸다”고 말한 적이 있다.
다시 정권 교체기가 다가오는데, 포스코가 권력의 개입을 받지 않기 위한 묘책은 없을까?
“회장이 후계자를 키우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회장이 너무 오래 할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
포스코의 위기가 더 깊어지면 포스코 현직 원로들과 퇴직임원들도 가만히 있을 수 없을 텐데.
“중우회가 포스코의 강한 울타리 역할을 할 생각이다. 그를 위해 당연직인 전임 회장과 사장을 포함해 25명 내외의 운영위원회를 구성하는 등 시스템을 바꾸려고 한다. 이미 내부 합의는 끝났고, 가을 정기총회에서 구체화할 것이다. 앞으로 외부 입김에 강력 대처할 것이다.”
내년 정권 교체기에 대비하는 성격인가?
“그렇다. 과거 정권에서 포스코를 재벌에 매각하는 방안이 거론된 적이 있는데 박태준 회장이 살아 있어 성공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재벌이 정부와 짜고 그런 일을 꾸미지는 않는지 항상 경계해야 한다. 박 회장이 죽은 뒤 내가 가장 신경을 쓰는 사안이다.”
황 회장은 “정치도 발전했으니 앞으로는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아, 지금의 (포스코에 대한) 걱정이 기우가 되기를 희망한다”며 “창립멤버로서 죽는 날만 기다리는 처지에서 유일한 바람이니 언론에서도 도와달라”고 당부했다. 늙은 회장의 눈에서 국민기업 포스코가 박태준 회장 사후에도 정치권의 입김으로부터 독립해 홀로서기에 성공하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읽혔다.

곽정수 선임기자 jskwak@hani.co.kr

“악순환 막으려면 대통령 의지가 중요”

지배구조 개선안 만든 장하성씨


“12월 대통령선거에 출마하는 후보들은 집권할 경우 포스코 인사에 개입하지 않겠다고 약속해야 한다.”
장하성(사진) 전 고려대 경영대학장은 지난 29일 와 한 국제전화 인터뷰에서 포스코 회장 인사에 권력의 입김이 작용하는 악순환을 막으려면 “대통령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며 이렇게 말했다. 장 전 학장은 2006년 포스코가 투명하고 독립적인 최고경영자 선임을 위해 시이오(CEO)후보추천위원회를 신설할 때 기업지배구조 개선방안을 직접 디자인했다. 1990년대 후반 이후 참여연대의 소액주주운동을 주도했던 장 전 학장은 현재 중국 상하이에 머물며 ‘한국형 시장경제와 자본주의’에 관한 책을 집필하고 있다.
포스코는 그동안 선진형 기업지배구조를 가진 기업으로 평가받아 왔다. 어떻게 포스코 기업지배구조 개선안을 만들게 됐나?
“처음에는 3번이나 사양했다. 4번째는 이구택 회장이 직접 전화해서 부탁을 하더라.”
사고초려(四顧草廬)였던 셈인데, 결국 수락한 이유는?
“원래 기업 관련 프로젝트는 안 하는데, 이구택 회장과는 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다. 프로젝트를 맡는 대신 조건을 내걸었다. 첫째는 나에게만 맡기면 편향될 수 있으니 다른 팀에게도 똑같은 프로젝트를 맡겨서 복수경쟁을 시켜달라는 것이었다. 두번째는 최종 결과가 나오면 그냥 서랍 속에 넣어 썩히지 말고 공청회를 거쳐 시행하자는 것이었다.”
이구택 회장이 승낙하던가?
“그러니까 맡았지. 나중에 2개의 보고서를 가지고 내부임원들과 전문가들이 참석한 가운데 토론회를 했다.”
그렇게 객관적이고 엄정하게 만든 지배구조인데, 2009년 회장 선임과정에 권력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제도에 허점이 있는 것은 아닌가?
“제도의 문제가 아니다. 아무리 좋은 제도도 안 지키면 아무 소용 없다. 제도를 운영하는 사람들이 선의를 가지고 해야 한다.”
포스코는 정부 지분이 하나도 없는 민간기업이다. 포스코의 회장 선임과정에 권력의 입김설이 나오는 게 말이 되나?
“정부가 시장경제의 기본틀을 안 지키고 있다. 정부가 부당하게 인사개입을 하는 곳은 포스코만이 아니다. 공기업에서 민영화된 케이티나 금융지주회사의 최고경영자 임명에도 개입하고 있지 않나.”
권력의 인사개입으로 포스코가 어떤 악영향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나?
“정준양 회장은 올해 초 연임에 성공했지만, 회사 안에서 영이 제대로 서겠나? 투자자들에게도 회사의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사람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다. 기업은 최고경영자가 가장 중요하다. 세계적 기업인 포스코의 최고경영자가 회사 내부와 시장에서 모두 신뢰를 얻지 못한다면 치명적이다.”
포스코 사태가 재연되는 것을 막을 방법이 있을까?
“이번 대선에 출마하는 후보들이 집권하면 포스코 회장 인사에 개입하지 않겠다고 약속해야 한다. 지난해 초 포스코 시이오추천위원회에는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박원순 서울시장 등 명망 있는 분들이 사외이사로 참여하고 있었다. 그 정도 사람들이 있었는데도 (권력의 입김이 작용하는) 일이 벌어졌다. 결국 대통령이 어떤 의지와 철학을 갖느냐가 중요하다.”

글 곽정수 선임기자

2012년 4월 3일 화요일

'국가 부도' YS는 손도 못 대면서 도덕 타령이라니!


이글은 프레시안 2012-04-03일자 기사 ''국가 부도' YS는 손도 못 대면서 도덕 타령이라니!'를 퍼왔습니다.
[기고] 도덕의 덫에 갇힌 한국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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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응신(1817~1887년)의 '유속을 징계한다'는 글을 읽으면 한국 자본주의의 인간형을 머릿속에 그릴 수 있다. 이응신은 당대의 인간형을 셋으로 나누었는데, 군자와 소인 그리고 유속이다.

유속(流俗)은 한마디로 군자의 너울을 뒤집어쓴 소인이다. 이응신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옳고 그름의 중간에 몸을 두고 맑고 더러움의 중간에 발을 붙인다. 의상이나 취미는 남들을 따라하고 말과 행동은 시세와 부합하게 한다. 표 나게 정직해서 명성을 취하지 않고 곧이곧대로 행동해서 미움을 받지 않는다. 사교에 정성을 기울이고 온화하게 공손하며 정보에 밝아 두루 통해서 비방을 듣지 않는다. 하지만 재물의 이득을 얻으려는 욕심과 남의 재물을 취하려는 속셈으로 밤낮 일을 꾸미는 버릇이 몸에 단단히 붙어 여기서 헤어나지 못한다. 심성이 무너지고 풍속이 점점 물들어 더럽고 비루해 더불어 일할 수 없다. 이것이 유속의 환난이다.

이응신은 이러한 유속이 앞으로 온천지를 뒤덮게 되리라 예견하며 후세에 소인이라도 나오면 그래도 볼 만한 세상이라고 개탄했다. 그는 유속을 소인보다 더 심각한 악으로 보았다. 소인은 드러나니 박멸할 수 있지만 유속은 물(水)이라 빠져들지 않은 사람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나는 한국 자본주의의 인간형을 이응신이 말한 '유속'에서 찾는다.

2

그런데 이런 의문이 든다. 과연 유속은 군자의 도덕에 배치되는가? 이응신의 시대는 자본주의가 싹트는 19세기의 한가운데서 세도 정치와 민란과 외세로 격변했다. 이 격변의 와중에서 '유속'의 다수를 이루는 사람들은 누구였을까? 사대부 관료들과 아전, 부농, 부상 등 정경 유착 세력이었다. 이들의 수탈과 학정에 민란은 필연적이었으며, 이후 식민지 시대를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이 정경 유착 세력은 한국 자본주의의 주류를 형성해 왔다.

여기서 두 가지가 새롭게 제기되는 문제다. 하나는 유속의 가치관이 군자의 도덕에 배치되지 않는 점, 다른 하나는 한국 자본주의의 비주류(소외 계층) 역시 유속에 전염되어 유속의 가치관을 자신의 생체 속에 이식하고 있는 점이다.

3

막스 베버는 '프로테스탄티즘의 도덕'이 '자본주의 정신'을 이룬다는 사실을 실증해 보였다. 자본주의는 탐욕적이고 프로테스탄트는 도덕적이라는 상식에 비추어 이는 놀라운 발견이다.

나는 전부터 막스 베버의 관점에서 한국의 유학과 자본주의 관계를 생각해 보았다. 저명한 동양학자 오웬 라티모어가 동아시아의 자본주의를 유교 자본주의라고 말한 내용도 중요한 계기였다. 그 뒤 이응신의 글을 접하고 '유속'이 유학과 한국 자본주의의 관계를 살피는 데 매우 중요한 고리라는 잠정 결론을 내렸다.

이응신의 군자-소인관은 멀리는 공자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직접적으로는 조선의 주자학인 성리학에서 나온다. 붕당 정치와 당쟁의 명분이었던 성리학의 예론은 조선의 주자라고 불리는 송시열의 노론을 중심으로 활짝 꽃피웠다. 당시, 군자는 성리학의 예론을 따르는 사대부 양반들이었다. 이들은 정경 유착의 검은 거래로 '방납(防納)의 폐해'를 조장해 백성들을 수탈했는데, 이를 혁파하기 위해 실시한 '대동법' 요즘 말로 하면, 경제 민주화 조치를 불온 사상이라 하여 극력 막았다.

성리학의 도덕을 동원해 사익(私益)을 극대화한 점에서 이들은 후대의 '유속'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이들 군자가 시대에 맞게 변형되어 새로운 인간형으로 나타난 게 '유속'이라고 하는 것이 맞다.

4

나는 한국 자본주의 정신의 뿌리에는 성리학, 특히 노론의 도덕이 자리 잡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공자의 사상과는 거리가 먼 '도그마'다. 마치 로마 공인 기독교가 원시기독교의 예수와 거리가 멀 듯이.

공자는 논어에서 "군자는 화이부동(和而不同)하나 소인은 동이불화(同而不和)한다"고 하였다. 화이부동(화합하되 같지 않음)하려면 남을 인정해야 하므로 화(和)는 타자를 전제한다. 반면, 동(同)은 타자가 없는 상태를 말한다. 예컨대, 나는 '다른 나'가 있어야 나를 인식할 수 있고 나에 대해 화(대화)할 수 있다. 나에게 '타자 나'가 없는 경우를 우리는 정신병 상태라 한다.

소인이 동이불화하는 건 도덕에 지배되기 때문이다. 반면, 공자의 군자는 윤리를 통해서 화이부동 한다. 도덕은 신의 심판이고 심판의 체계이다(아담아 이 열매를 먹지 마라!). 반면 윤리는 이 도그마를 전도시킨다(밭에 심은 겨자씨 한 알이 자라 나무가 되어 공중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었느니라!). 윤리는 사회 내에 내재한 신의 뜻을 따름으로서 존재를 초월적 가치들에 관계시키는 도덕을 대체한다.

공자가 죽기 전까지 탐독한 책이 인데, 은 바로 하늘의 뜻을 알려주는 책이다. 다산도 동이불화를 강요하는 노론의 세상에서 귀양살이 18년 끝에 도달한 학문이 이었다. 노론의 도덕을 최종적으로 부정하는 근거가 에서 나왔다. 은 사회가 화이부동하기 위해 '나'와 '타자' 사이에서 하늘의 뜻을 찾도록 돕는 윤리학인 것이다.

종교가 '하늘의 뜻'을 선택받은 백성의 전유물로 만들 때 이것은 전형적으로 타자가 없는 동이불화의 도덕이 된다. 동이불화의 사회에서는 모든 사람이 초월적 가치들에 준거해 선악적인 판단 즉, 도덕적인 판단을 한다. 이는 구성원 스스로 예속이 마치 자신들의 안녕이기라도 하듯이 예속을 위해 투쟁하게 만든다. 도덕은 이처럼 사회 구성원의 자발적 복종을 통해 지배자가 자신의 권력과 체제를 안정화하는 정치 신학이다.

5

데이비드 소로가 에서 "우리는 먼저 인간이어야 하고, 그 다음에 국민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법에 대한 존경심보다는 먼저 정의에 대한 존경심을 기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한 것은 공자의 화이부동의 행동 윤리와 같다.

시민 불복종 운동이 저항하는 '법'은 공동체의 도덕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 운동은 사회적 약자들의 정당한 요구가 현실 고착적인 법과 도덕 앞에서 좌절될 때 최후의 수단으로 일어나는 아주 강력한 윤리적 행동이다. 그런데도 도덕성을 진보의 생명인 것처럼 말하는 것은 전도된 의식이 만들어낸 희극이다. 도덕과 윤리가 구별 없이 사용되는 현실을 감안해도 최근의 사건은 확실히 도덕성을 문제 삼고 있다.  비키니 사건 그리고 이정희 경선 부정 사건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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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키니 사건은 사건 자체보다 부적절한 대응과 수습이 더 문제가 됐다. 진보 쪽은 "비키니 사진의 성적인 의미를 무시하지도 않고, 시위 방식의 발랄함을 인정하는 방식"을 원했다. 역시 같은 의도였다고 생각한다. 또 그런 차원에서 해명하려 했다고 믿는다. 그러나 문제를 던지고 받는 과정에서 완전히 꼬여버리고 말았다.

사건 당시 는 도덕적 프레임을 지나치게 의식한(=반발한) 나머지 '가장 심오한 것은 피부다'(발레리)라는 선을 넘어버렸다. 무슨 말이냐면, 정봉주를 감옥에 처넣은 이명박 정부의 새디스트적 쾌감에 성 유머로 통쾌하게 한방 먹인 건 사실이지만 성적으로 치닫는 팬들의 농담이 성 도덕주의에서 발생하고 있다는 자각을 놓쳐버린 것이다.

때문에 수구와 진보 양쪽의 공격을 받았다. 조롱하려던 성 도덕의 프레임이 부메랑으로 돌아와 보수 언론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다른 한편 페미니스트의 비판에 대해서 피해자 프레임 운운하는 악수를 둔 것이다. 여기에는 수준에 해당하는 성 윤리 의식의 피상성이 자리 잡고 있다(피상성은 나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나 를 성 도덕주의로 몰아붙이는 건 언어도단이다. 성 도덕주의에 대한 반발이 의 의도라는 걸 고려해야 한다. 만약 자신들이 관계되지 않았다면 가 이런 사건에 페미니스트적 견해를 취하지 않을 까닭이 없다.

페미니스트들의 문제는 를 마초적인 성 도덕주의자로 몰아붙임으로써 일찌감치 도덕적 판결을 해버린 것이다. 아무리 자신들이 정당성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타자와 대화하려 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낙인찍는 것은 동이불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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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키니 사건과 관련해서 에 실린 서울대학교 교수 이근의 글이 가장 황당했다.

비키니 사건은 저항적 매체의 남성적 특성에 심취하면서(마초이즘) 제대로 된 피아(彼我)의 구별을 상실한 를 보여준다. 즉, 우리 편이 아닌 저편이라는 범주에 이명박 정부뿐만이 아니라 남성의 지배 대상과 도구로서 여성을 포함시켜 버린 것이다. 이는 어쩌면 예견된 사건이다. 왜냐하면 가 처음부터 매우 남성적인 프로였기 때문이다. 이는 진행자의 구성과 사용되는 언어와 표현에서 알 수 있으며, 처음부터 남성성이 필요한 저항적 매체였기 때문이다. 문제는 가 남성성을 통해 권력이 되었기 때문에 자연히 여성성에 대한 올바른 인식에 무뎌진 것이다.

긴 말은 하지 않겠다. 가 왜 이처럼 초호황의 인기를 누리는 걸까? 내 생각이 옳다면, 심층적인 것을 표면으로 끌어올림으로서 도덕적 허위와 위선을 벗겨내고 진실을 말하기 때문이다. 스타일은 가장 현대적인 문학과 공명한다. 미하일 바흐친은 웃음, 광장의 언어, 축제적 형식, 육체적 하부의 이미지 등을 위대한 문학의 조건으로 꼽았다. 이 조건은 심층이 아니라 표면에서 이루어진다. 따라서 '가장 심오한 것은 피부'일 수밖에 없다.

이근은 이런 의 표현 스타일을 남성성의 젠더로 오해한 모양이다. 더 할 말이 없다. 심층적으로 파악하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사건을 얼마나 도덕적으로 재단하는가를 보여주는 본보기다.


▲ 민주주의를 이유로 이정희를 단죄하는 것은 옳은가? 혹시 지금 한국 정치는 도덕의 덫에 갇힌 것은 아닐까?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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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 이정희의 경선 부정 사건에 대해서. 이 사건을 경기동부연합(주사파)과 연계시키는 보수 언론 등의 색깔 공세를 필두로 진보 쪽에서도 많은 비난과 논란이 있었다. 그중에서 에 실린 박권일(의 저자)의 칼럼에 대해 말하려 한다. (☞관련 기사 : 박정희와 싸우다 박정희가 될 뻔한 이정희!)

보수 언론 등은 아니면 말고 식의 정보를 제공하는 수준이지만 박권일은 이 사건을 민주주의의 룰을 어긴 중대 사범으로 규정하고 있으니 어떻게 보면 비판이 훨씬 더 가혹하다.

모든 사건이 그렇듯 이 사건도 콘텍스트가 중요하다. 그가 자신의 글보다 닷새 전에 게재된 김주언의 칼럼을 읽어 보고서도 그렇게 썼다면 지독한 형식주의자요 도덕주의자다. 그러나 칼럼을 쓰고 있는 분이 이런 사실을 모르긴 어렵다. (☞관련 기사 : 이정희 사태, '여론 조사'와 '여론 조작'은 한 끗 차이)

문제는 민주주의에서 절차와 룰이 그의 생각처럼 그렇게까지 중요하지 않다는 데 있다. 그는 박정희가 민주주의를 꿈꾸었지만 민주적 절차를 이해하지 못해서 독재를 했다고 말한다. 나아가 "아이러니하게도 민주주의에 대한 이런 인식은 상당수 민주주의자들과 그들을 탄압하던 반민주주의자들이 사실상 공유하던 인식"이라고 강조한다.

나로선 납득이 가질 않는 소리다. 현재 민주주의 문제는 자유, 평등, 인권 등의 실질적 내용이 사라지고 형식적인 절차만 남았기 때문이다. 이런 절차 민주주의를 극복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진전이다.

룰과 절차를 우선시하는 원조는 소크라테스다. 이런 형식주의자들은 언제나 사태의 본질에 입각하려 한다. 그러나 본질을 향해 심층으로 하강하는 태도는 본말을 전도시켜 사태를 그르친다. 악법도 법이란 유명한 말은 마치 법이란 본질이 존재하는 것처럼 만들어 현실에서 '악법은 악법이다'는 사실을 은폐한다.

물론 박권일이 이 정도는 아니겠지만, 이정희를 박정희와 싸우다 박정희가 될 뻔한 사람으로까지 몰아세우는 건, "어느 정권 없이 불법 사찰"이라고 말한 박근혜와 유사한 정신상태가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들게 한다.

물론 나는 이정희의 경선 부정 사건을 변호하려는 게 아니다. 이글의 초점은 도덕적 잣대의 불편한 진실에 맞추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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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부도를 낸 YS나 서울 시민에게 수십조 원의 빚을 안겨준 오세훈'과 '수억 원대의 불법 정치 자금을 받은 정치인'. 과연 누구 죄가 더 중한가? 수많은 사람을 실직시키고가정을 파탄시키고 사회를 후퇴시킨 것에 비하면 비리 정치인의 죄과는 미미하다.

하지만 후자는 도덕적 비난을 뒤집어쓰고 구속과 벌금을 내야 하는데 김영삼이나 오세훈은 법적으로 처벌할 수 없다. 절차 민주주의의가 갖는 심각한 문제이다.

언론이 정치인의 비리를 머리기사로 다루는 가장 큰 이유는 '의제' 설정의 파워를 장악하기 위해서다. 국민의 알 권리보다는 자신들의 파워를 유지 확대하려는 목적이 더 일차적이다. 사실 대다수 국민들은 정치인의 비리에 대해서 언론과는 다르게 그다지 큰 관심이 없다. 이명박 정부가 비리 백화점이란 걸 국민들이 몰라서 지난 선거에 압도적인 지지를 보낸 건 아니다.

국민들의 관심은 피부에 와 닿는 정책의 효과다. 소위 이 '피부 효과'를 '심층의 본질'로 대체하려는 게 도덕이다. 이것은 무상 급식을 둘러싸고 포퓰리즘 논의가 진보, 보수 양쪽 진영에서 어떻게 쟁점화되었는가를 상기하는 것으로 족하다.

일반 국민에게도 피부에 닿지 않고 수구 세력에겐 사익을 챙기는 명분이요 정적을 치는 무기일 뿐인데도 누구를 위해서 도덕을 지행합일의 가치로 믿어야 하는가?

나에겐 이런 그림이 그려진다. 돈키호테가 풍차를 상대로 대결하는 꼴, 혹은 회사 돈은 오너가 다 빼갔는데 업무 합리화에만 목메는 꼴. 진보 쪽 정치인에게 결벽증처럼 도덕성을 요구하는 것은 식자우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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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면서 마키아벨리의 을 다시 읽었다. '인간이 어떻게 살고 있는가'는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와 너무도 다르기 때문에 이론이나 사변보다는 사물의 실제적인 진실에 관심을 기울였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 결과 도덕을 제거하고 권력을 순수하게 실익의 관점에서 본 것이다.

군주론은 귀족한테 휘둘리는 왕권을 굳건히 세워 나라를 외세로부터 지키고 백성들을 수탈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 쓴 책이다. 만약 이런 목적이 없었다면 이 책은 비정한 정치공학 책에 불과했을 것이다.

독서 중에 우리의 역사와 현실이 겹쳐서 지나갔다. 조선 후기 사회도 사대부가 왕권을 좌지우지해 나라가 넘어가고 백성들이 도탄에 빠져 신음했다. 마키아벨리와 같은 탈도덕의 관점이 절실하게 다가왔다.

권력은 도덕을 명분으로 내걸면서 실익을 추구하고 또, 언제든지 실익을 위해서 새로운 명분의 옷으로 갈아입는다. 이게 정치의 현실이다.

마키아벨리 정치론은 그 자체만으론 악용되기 쉽고 인민 권력론이 뒷받침돼야만 제몫을 다할 수 있다. 전자는 도덕을 배제하는 칼이고 후자는 윤리를 행동화하는 양심이다. 둘의 관계가 '뱀처럼 영리하게 비둘기처럼 순결하게'라는 성서의 비유처럼 될 때 상생한다.

이 문제는 다시 정치와 도덕의 문제로 돌아온다. 사실 도덕성 시비는 네거티브 전략이다. 비전이 없을 땐 네거티브 전략만 난무한다. 네거티브 공세를 뚫고나갈 수 있는 힘은 비전에서 나온다. 곽노현 사건은 좋은 예라고 생각한다. 비전은 건강한 시민의 활력을 먹고 자란다. 광장에서건 마을 회관에서건 시장에서건 시민이 직접 정치에 참여할 때 시민 사회가 활력에 넘치며 윤리적 가치가 의제로 등장한다. 이것이 비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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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응신은 '유속'이라는 새로운 인간형을 세상에 알린 공에도 불구하고 그가 설 자리는 없었다. 그가 신봉한 군자는 비전이 없기 때문에 역사의 뒤안길로 퇴장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그럼에도 식민지 시대 이래 한국의 지배 권력은 이응신의 군자를 놓아주지 않았다. 그만한 가치가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배운 한국의 성인(聖人)들은 성리학적인 군자상이다. 학교에서는 시민의 윤리가 아니라 이런 성인의 도덕을 가르치고 있다.

이런 교육은 비전 없는 통치를 가능하게 하는 기름진 토양이다. 식민지 통치와 해방 후 독재 정권은 비전을 금지했다. 재벌 중심의 신자유주의도 비전을 불허한다. 노무현 정권은 비전이 없는 정권이었다.

민주통합당은 노무현을 벗어난 비전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비전이 없기 때문에 죽은 자를 보내지도 못하고 있다. 오직 이명박 정부 심판에만 의존하고 있으므로 불가피하게 도덕성이 정권 교체의 최대 무기가 됐다. 이 때문에 도덕성은 전략 전술적으로 아주 중요하다. 하지만 여기까지다. 무엇보다도 진보의 생명은 '윤리에 기초한 비전'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역사적으로 봐도 도덕성은 엘리트의 전유물이다. 또, 이것은 우월성과 직결된다. 더 나은 교육을 받을수록 사익을 탐하고 거기에 걸맞은 도덕으로 분식하는 유속과 같은 인간이 된다. 고학력 사회가 된 한국은 이응신의 우려대로 누런 띠풀(삘기)이나 하얀 갈대 같은 유속이 땅을 온통 뒤덮고 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이러한 우리의 자화상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마저 이응신의 목소리다. 즉, 성리학 군자의 꾸짖는 음성이다. 출구 없는 이런 폐쇄 회로가 우리 사회의 비전을, 진전을 결정적으로 가로막고 있다.



/김영종 저술가 

2012년 2월 24일 금요일

대선판세 가르는 ‘4·11 낙동강 전투’


이글은 대자보 2012-02-23일자 기사 '대선판세 가르는 ‘4·11 낙동강 전투’'를 퍼왔습니다.
[김영호 칼럼] 부산경남 민심 이반, 민주당 교만하면 민심 표변 알아야

1990년 3당합당 이후 지역주의가 고착화되어 연고지역 정당의 공천만 받으면 영남-호남에서는 당선이 보장되었다. 공천이 곧 당선이었다. 그 까닭에 양대 정당이 영남-호남지역을 양분해 완전히 석권해 왔다. 그런데 4·11 총선을 앞두고 새누리당의 텃밭인 영남지역에서 이상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20년간의 정치적 연대인 PK+TK에 균열양상이 드러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역대 선거에서 수도권이 격전지였으나 이번 총선에서는 PK가 최대의 격전지로 떠올라 전운이 감돌고 있다. 역대 대선을 보면 PK의 향방이 대선의 판세를 가른다는 점에서 ‘낙동강 전투’로 비유될 정도이다. 

PK는 전통적인 야성지역이다. 1960년 이승만의 3·15 부정선거에 항거한 봉화도 마산에서 먼저 들었다. 박정희의 유신체제에 종언을 고하는 1979년 부마항쟁도 부산-마산이 진앙지였다. PK는 신군부에 치명타를 준 신당 돌풍의 주역이기도 하다. 1985년 12대 총선에서 YS-DJ가 주도한 신한민주당의 후보 5명을 모두 당선시켰던 것이다. 관권과 금품이 난무한 부정선거였지만 신군부의 민주정의당은 2석을 얻는데 불과했다. 1987년 6월항쟁 이후 13대 총선에서는 YS의 통일민주당이 15석 중 14석을 석권했다. 

1990년 YS의 민주통일당이 노태우의 민주정의당, JP의 자유민주연합과 합당하여 민주자유당이 태어났다. 이른바 3당합당이다. YS의 연고지역인 PK가 박정희-전두환-노태우의 연고지역인 TK와 정치적 연대를 맺은 것이다. 이후 PK는 줄곧 민주자유당→신한국당→한나라당의 확고한 지지기반이었다. 노무현은 PK출신이다. 그럼에도 PK에서 그의 도전은 번번이 실패했다. ‘호남당’이란 간판이 패인이었다. 2002년 16대 대선에서 그는 새천년민주당의 후보로 입후보했다. 그런데 PK에서 그의 득표율은 29.4%에 그쳤다. 반면에 지역연고가 없는 한나라당의 이회창은 65.3%의 득표율을 올렸다. 호남의 지지가 노무현을 당선시켰던 것이다. 

MB정권 들어 그 철옹성 같던 PK가 영남지역에서 이탈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2010년 6·2 지방선거가 그 시발점이다. 무소속 김두관의 경남지사 당선은 예상 밖의 승리였다. 그는 2003년 노무현 정권에서 행정자치부 장관을 지낸 후 2004년 총선, 2006년 경남지사, 2008년 총선에 출마했으나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이 점에서 그의 당선은 이변이다. 그와 함께 부산시장 선거에서 민주당 김정길이 45%란 높은 득표율로 약진했다. 기초단체장 10명, 광역의원 23명, 기초의원 174명의 당선됐다. 한나라당의 아성 PK에서 일어난 파란이다. 서울시장 선거패배와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날치기의 후폭풍이 MB정권의 권력누수를 가속화시키고 있다. 여기에 꼬리를 물고 터지는 MB 친인척-측근 비리가 MB정권을 혼수상태에 빠뜨렸다. 그 틈을 타서 박근혜가 한나라당을 접수하고 당명을 새누리당으로 바꾸고 친정체제를 구축했다. 친이계의 무저항이 그것을 말한다. 그 배경에는 PK가 크게 작용하고 있다. PK의 이탈은 곧 대선패배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표면적인 불만은 부산저축은행 금융비리,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이다. 하지만 그 기저에는 불통-강압통치와 TK우대-PK박대 인사에 대한 저항이 깔려있다. 

2007년 12월 대선의 승패는 노무현 심판론이 결정했다. MB의 압승은 친노세력에게 동면의 세월을 안겨줬다. 하지만 MB의 실정은 4년만에 그들에게 재기의 발판을 마련해 줬다. 노무현의 비서실장 문재인을 부산 진출의 교두보로 삼고 그 선봉장으로 문성근이 나섰고 김정길이 가세했다. 친노세력이 화려하게 부활하여 민주통합당의 지도부를 장악했다. 부산 공략을 통해 대권까지 간다는 전략이다. 여기에 조심스럽게 무소속으로 관망하던 김두관이 지방분권과 균형발전이라 기치를 들고 통합대열에 가세했다. 다분히 호남을 의식한 대목이라 대권 도전의 의지를 읽을 수 있다. 총선 이후 상황전개에 따라 결행하겠다는 뜻이다. 

TK와 PK가 합세한 대선에서는 한나라당이 승리했다. 1992년 김영삼, 2007년 이명박 당선이 그것이다. 하지만 두 지역이 분열한 1997년, 2002년 대선에서는 김대중, 노무현한테 실패했다. 그것을 알기 때문에 한나라당이 간판을 바꾸고 탈색작업을 하느라 분주하다. 같은 이유로 민주통합당이 PK에 공을 들인다. 4·11 총선에서 문재인의 부산, 김두관의 경남이란 거점공략이 승기를 잡으면 대권쟁취의 열쇠를 쥘 수도 있다. 하지만 유동성이 너무 크다. PK는 항구도시, 공업지대가 포진해 있어 외지인, 노동자가 많아 역동성이 높다. 민주통합당이 교만한 표정을 짓는 순간 민심도 표변한다는 점이다. 


언론개혁시민연대 상임공동대표 언론광장 공동대표 시사평론가 <건달정치 개혁실패>의 저자 본지 고문

2012년 1월 30일 월요일

"최시중, 허문도보다 더 나쁘다"


이글은 프레시안 2012-01-30일자 기사 '"최시중, 허문도보다 더 나쁘다"'를 퍼왔습니다.
[오홍근의 '그레샴 법칙의 나라'] 최시중 청문회, 반드시 필요하다

그해 겨울은 눈이 참 많이도 내렸다. 서울 도심에서도 골목마다 거의 눈이 녹을 새가 없었다. 우리들은 취한 발걸음으로 넘어지고 엎어지면서도, 눈물 훔쳐가며 그 미끄러운 눈길 골목들 술집을 끝없이 훑었다. 플라스틱 물바가지에 소주를 붓고 맥주ㆍ정종ㆍ양주 등 술이란 술은 다 섞어서 큰 잔에 나눈 뒤, "통폐합!"이라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회사 빼앗긴 설움을 마셔댔다.


그리고는 진눈깨비에 젖은 개처럼 몸을 떨었다. 아무 짓도 할 수 없음을 자학하며 진저리를 쳤다. 필자는 동양방송(TBC)의 기자였다. 1980년 12월, 그 때 우리들이 이를 갈며 뇌리 깊숙이 담아 갖고 다니던 한 사람의 얼굴이 있었다. 허문도 씨였다. 허 씨는 언론 통폐합의 주역이었다.


필자의 기자 생활은 방송 12년에 신문 18년을 합해 30년여가 된다. 경력은 신문 쪽이 훨씬 많은데도, 지금 더 그립고 애착을 느끼는 것은 신문보다 근무기간이 짧은 방송기자 시절이다. 아마도 대학을 나와 바로 시작한 직장으로서의 '첫 정(情)'도 있겠으나, 언론 통폐합으로 회사를 빼앗기면서 겪었던 고통스러움이 너무 컸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 때문에 허 씨에 대한 증오도 더 컸을 것이다.



▲ 1988년 11월 22일 국회 문공위 청문회에서 증인으로 출석한 오른쪽부터 허문도 전 청와대 비서관. 한용원 전 보안사 정보처장직무대리. 이병찬 전 검열단장이 80년 언론통폐합 상황에 대해 증언하고 있다 ⓒ연합

허 씨는 언론 통폐합이 소신이었다고 훗날 청문회에서 말했다. 기본 구상은 △언론과 재벌분리 △방송 공영화 △사이비 기자 정리라 했다. 그러면서도 이른바 80년 언론인 대량해직은 자신과는 관계없는 보안사의 작품이며, "난세적(亂世的) 상황에서는 자유주의적 수단으로 자유를 지킬 수 없다"는, 이른바 난세론을 역설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난세적 상황'이 바로 전두환 씨를 비롯한 신군부와 허 씨 자신 등이, 의도적으로 만들어 낸 상황이었음을 실토하지는 않았다. 그 같은 난세적 상황에서 쫓겨난 수많은 기자들과, 정든 회사를 빼앗긴 언론인들이, 80년 그 겨울 울면서 거리를 헤맸다. 몇몇은 얼마 뒤 죽기까지 했다. 허 씨 때문은 아니었을지라도 나이 든 언론인들은 지금도 그 해 겨울을 잊지 못한다.

허문도 씨는 이 나라 언론사(言論史)를 이야기 할 때, 한 시대를 상징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인물이다. 그 허 씨(1940년생)보다 나이는 더 많으면서도 한 세대(30년) 뒤에 등장해, 결코 지울 수 없는 족적을 남겨 허 씨와 비교되는 사람이 바로 최시중 씨(1937년생)다. 허문도 씨의 전두환 정권과, 최시중 씨의 이명박 정권을 바로 수평 비교 할 수는 없다. 당장 선거절차를 거친 정당성이 있고 없고부터 차이가 난다.

그런데도 허·최 씨 두 개인을 비교 할 때는, 정당성이 결여돼있는 전두환 정권의 허문도 씨가, 정당한 선거절차를 거친 이명박 정권의 최시중 씨 보다 나은 평가를 받는 아니러니가 등장한다. 허 씨가 이른바 '소신'에 따라, 사이비 언론의 극심한 폐해를 나름대로 정리했다는 '실적'때문일지도 모르지만, 그 보다는 특히 두 사람 개개인의 살아온 인생과 '도덕성'을 사람들은 비교하는듯하다. 허 씨가 훌륭하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한 마디로 최 씨가 도덕성에서 처진다고 했다.

두 사람을 다 아는 언론인들은 서슴지 않고 그렇게 말한다. 최 씨는 유력 정치인의 줄을 잡고 1964년 동양통신에 입사해 기자 생활을 시작했다. 그 줄을 타고 최 씨는 이듬해인 1965년 동아일보 기자가 된다. 다 아는 이야기다.

그리고 1971년, '정치적 행사'와 관련해 당시로서는 거금인 200만 원을, '어떤 사람으로 부터 받은 것이 문제가 되어' 그는 구속된다. (바로 이 대목과 관련해 최시중 씨는 작년 3월17일,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의 방송통신위원장후보자 인사 청문회에서, "언론자유를 위해 독재에 항거하다 고문당하고 투옥되기도 했다"며,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았다. 동아일보에서 함께 근무하던 사람들이 이 터무니없는 거짓말에 모두 기절 할 듯이 놀랐다.)

결국 그 200만 원을 되돌려 주고 어찌어찌하여 무죄를 선고받아 사태는 수습되었다. 회사에서 최 씨는 사주의 전기(傳記) 쓰는 일을 맡아 매달리기도 했다. 그는 전두환 씨와골프 회동도 했고, 정치인 장관을 찾아가 줄 대기를 하려한 사실이 드러나 사내에서 말썽 된 적이 있다. 때문에 그를 '기자다운 기자'로 기억하는 동료는 별로 없다. 2007년 MB가 대선에 출마하면서, 이상득 의원과 친구였던 그는 날개를 달고 '이명박 대통령 만들기'에 성공한다.

최시중 씨의 언론 다루는 솜씨는 '탁월'했다. 그가 방송통신위원장이 되었을 때는, 정부 언론 관계가 YS때까지처럼, 정보기관 등에서 언론사별 담당자를 두고, '밀착관리'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최씨는 먼저 말 잘 듣지 않는 사람 사장자리에서 밀어내고, '충성스런 내 사람'을 심는데 결사적으로 매달리며 '일'을 시작했다. 무리를 하면서 그런 구도를 만들어 갔다. 감사원·검찰과 작당해, 죄 없는 정연주 KBS 전 사장을 몰아 낸 것도 그런 수순이었다.


▲ 지난 27일 서울 종로구 방통위 브리핑실에서 퇴임 기자회견을 한 뒤 기자들 틈을 비집고 빠져나오고 있는 최시중 전 방통위원장 ⓒ프레시안(최형락)

일단 그게 된 다음에는 거칠 것이 없었다. 새로 앉힌 사장으로 하여금 걸림돌들 제거케 하고, 말 잘 듣는 언론사 만들도록 했다. 이른바 마피아의 underboss(부두목) 시스템이었다. 두목이 부두목 한 사람의 멱살만 잡고 있으면, 아무리 큰 조직이라도 멋대로 좌지우지 할 수 있는 체계였다. MBC·YTN도 다 그렇게 했다. 바른 눈 박힌 '반골'들 그렇게 보도일선에서 쫓아냈고, 등 '볼만 한' 프로들 그렇게 숨통을 조여 놓았다. KBS·MBC 보도책임자 불신임 난리도, 근원을 찾아 올라가면 다 최시중 씨의 얼굴이 나온다.

그의 공식 직함은 '방송통신'위원장이었으나, 내용적으로는 직함에 '신문'이 붙어 있었다. '신문'방송통신위원장이었다. '종편(종합편성) 채널'이라는, 아편 듬뿍 바른 당근을 손에 들고, 이른바 메이저 신문들을 이리저리 멋대로 끌고 다녔다. 조·중·동은 그거 얻겠다고 죽기 살기로 조아렸다. 정신 못 차리고 알아서 기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는 MB의 '정권 안보'를 위한 언론담당 문지기였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를 거치면서, 가까스로 제자리 잡아가던 언론풍토는 그의 발길 밑에서 사정없이 유린되었다. 종편에 온갖 특혜 다 주고 미디어렙법 개정 방해하면서, 종편들이 기업에 눈 부라리며, 직접 "광고 내라" 손 벌리고 다니게 하는 '강도 면허'도 내 주었다. 그것도 모자라 기업의 광고담당자들 따로 불러, 종편 쪽에 광고 물량 늘려 주라고 호통치는, 터무니없는 주문도 서슴지 않았다. 업계를 마구마구 어지럽혀 놓았다.

종편들 때문에 광고 수입이 격감했다며, 지역방송·종교방송에서는 아우성을 친다. 그런데도 종편들 시청률은 땅바닥에 딱 달라붙어, 미동도 하지 않는다. "최씨가 다 같이 죽게 된 판을 짜 놓았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방통위원회의 다른 고유 업무들도 엉망이었다. 2011년의 정부업무평가보고회에서 방통위원회는 꼴찌판정을 받았다.

'못된 송아지 엉덩이에 뿔 난다'했던가. 최씨는 트위터나 페이스북까지 검열하겠다고, 뉴미디어 정보심의팀 신설을 강행했다. '시대착오'라는 이야기가 한나라당에서도 나왔다. 미 국무부 정례브리핑에서, 한국정부의 이 같은 표현의 자유 검열에 대한 미국정부의 입장을 묻는 질문까지 나왔다. 월스트리트 저널기자가 그랬다. 국제적 망신살이었다.

MB정권 들어서기 전인 2007년, 영국의 EIU(Economist Intelligence Unit)가 발표한 한국 IT 산업 경쟁력은 세계 3위였다. 최시중 씨가 방통위원장 되고난 이후 미끄럼타기 시작하던 이 순위가 2011년 19위까지 추락했다. IT강국, 우습게 되었다. 한 눈이나 팔면 다 그런 꼴 당하게 되어있다. "망쳐도 너무 많이 망쳐놓았다"는 소리는 그래서 나온다.

때맞춰 '양아들 게이트'니, '5만원 권 100장'이니, 이런저런 구린 이야기들도 들리기 시작한다. 사표를 쓴 그는 죄 없다고 시침을 떼지만, 지켜봐야 할 일이다. 검찰수사는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 눈 부릅뜨고 주목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평소의 희망대로 최 씨가 '뒷모습이 아름다운 언론계 선배'로 남을 수 있을지 참으로 궁금하다. 허문도 씨가 그리 됐듯이, 악몽같던 최시중 씨의 시대도 확실히 정리되어야 한다. 청문회가 반드시 필요하다.



/오홍근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