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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5월 2일 목요일

“재벌이라고 부르지 마라”

이글은 대자보 2013-05-02일자 기사 '“재벌이라고 부르지 마라”'를 퍼왔습니다.
[김영호 칼럼] 빈부격차 심화되면 재벌 존립기반도 위협 깨달아야
한국경제가 안고 있는 최대의 난제는 빈부격차에 따른 경제-사회구조의 양극화이다. 그 까닭에 지난 대통령 선거과정에서 경제민주화가 시대정신으로 떠올랐다. 이것은 양극화 완화를 통해 사회통합을 이룩하지 않으면 국가가 발전역량을 발휘하는데 한계에 도달한다는 사회적 합의를 뜻한다. 이에 따라 국회가 경제민주화와 관련한 최소한의 입법활동을 벌이자 재계가 저지에 나섰다. 집단행동의 배경에는 재벌의 막강한 경제적-정치적 영향력이 있다. 또 박근혜 대통령이 경제민주화 입법에 소극적 자세를 보이자 그 틈을 타서 반격에 나선 것이다. 하지만 당사자의 한 축인 노동계의 목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는다. 

전국경제인연합회, 대한상공회의소, 한국경영자총협회, 중소기업중앙회, 한국무역협회 등 경제5단체가 지난 달 26일 회동을 갖고 경제민주화 입법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최근 논란을 빚은 대체휴일제 도입, 정년60세 의무화, 부당내부거래 고발권 확대, 화학사고 과징금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이들 단체는 20개 법안⁃판결을 일방적인 논리로 공격하며 기세를 올리고 있다. 이례적으로 사법부의 판결에도 노골적인 불만을 나타냈다. 경제적-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규제, 경제질서에 관한 규제, 환경보존에 관한 규제는 완화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그런데 이들 단체는 모든 규제는 경제적 해악이고 사회통합을 저해한다며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에 하루 앞선 지난 달 25일 전경련 산하의 한국경제연구원은 ‘바른 용어를 통한 사회통합의 모색’이란 토론회를 열었다. 주제내용은 “국가운영의 틀인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대해 설명하는 용어들 가운데 부정적인 의미를 전파하는 것들이 많아 바로 잡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또 “바른 용어를 쓰지 않는 데서 혼란과 갈등이 생기며 이것이 사회통합을 저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재벌은 ‘대기업집단’이라고 불러라. 자본주의→시장경제, 정글자본주의→상생경제, 과당경쟁→시장경쟁, 기업의 사회적 책임→기업의 사회공헌, 시장점유율→소비자선택율, 시장지배적 사업자→소비자선택 사업자, 급진적 자유주의→순수자유주의, 자유방임주의→불간섭주의, 사적소유→개인소유, 사기업→민간기업, 보수와 진보→우파와 좌파로 바꿔 쓰라는 것이다. 

인간은 언어를 통해 사유한다. 전경련의 이런 움직임은 단어의 사전적 의미를 변질시켜 인간의 사고를 통제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조지 오웰의 ‘1984년’을 떠올려 전율을 느끼게 한다. 절대자 대형(Big Brother)은 ‘신어’를 통해 단어를 삭제하면서 인간의 사상을 통제한다. '자유'라는 개념은 사라지고 ‘예속’이란 의미가 그 자리를 차지한다. 사상죄에 해당되는 낱말도 개념도 없어진다. 전경련이 사회분열을 획책하면서 사회통합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대중매체를 통해 조직적-체계적 여론조작을 기도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전경련은 20여년간의 홍보활동을 통해 이미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대중매체에서 재벌이란 단어는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거의 사라졌다. 재벌은 대기업, 재벌총수는 대기업 총수로 표현한다. 

한국재벌은 단순한 기업집합이 아니다. 총수 1인이 혈연을 중심으로 순환출자를 통해 지배하는 다계열-다업종의 거대한 기업집단이다. 수직적-수평적 기업결합을 통해 잡제품에서 첨단제품까지 생산-판매에서 배타적 지배력을 행사한다. 거의 전업종에서 사업을 영위하는 것이다. 방대한 규모만큼이나 정치적-경제적 영향력이 막강한 자본권력이다. 세계적으로도 한국재벌 같은 기업집단은 없다. 한국재벌과 유사한 기업집단이 일본과 독일에 있었으나 2차 대전 이후 해체됐다. 그 까닭에 구미(歐美)언론은 재벌을 표현할 적절한 단어가 없어 그냥 음역해서 ‘chaebol'이라고 부른다. 영어사전에도 등재되어 있다. 한국의 대중매체가 재벌=대기업라고 등식화해 쓰는데 이것은 틀린 표현이다. 대기업은 규모면에서 중소기업의 대칭어이지 기업집단이란 뜻이 없다. 

1987년 체제 이후 역대 정권이 경제민주화에 관한 헌법정신을 망각하고 있었다. 하나 같이 규제완화를 통한 효율성을 합창해 왔다. ‘완화’도 모자라 ‘철폐’, ‘혁파’를 입에 달고 다니며 외쳤다. 그 결과 경제력이 재벌로 더욱 집중되고 빈부격차가 극대화되었다. 강자가 약자의 이익을 뺏어가는 약탈적 사회구조가 고착화한 것이다. 국회가 경제민주화와 관련한 법안들을 논의하자 재계가 반자본주의, 반시장주의라고 주장하며 반격에 나섰다. 법안내용들이 이 본질적인 재벌개혁과 거리가 먼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경제민주화를 방기하여 빈부격차가 더욱 벌어지면 재벌의 존립기반도 위협받는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언론광장 공동대표
(건달정치 개혁실패), (경제민주화시대 대통령) 등의 저자 
본지 고문 

2013년 4월 18일 목요일

전쟁을 두려워하라

이글은 대자보 2013-04-17일자 기사 '전쟁을 두려워하라'를 퍼왔습니다.
[김영호 칼럼] 전쟁 발발하면 한반도는 공멸, 추측-과장보도 경계하라
노예해방론자인 에이브람함 링컨이 1860년 11월 6일 미국 16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이에 반발해 노예제도 폐지를 반대한 사우스 캐롤리나주를 비롯한 남부 11개주가 연방분리를 선언하고 아메리카 남부연합을 결성했다. 남부연합 민병대가 연방정부의 요세를 점령했다. 하지만 남북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믿었던 링컨은 전시내각이 아닌 통합내각을 구성했다. 링컨은 노예해방에 대해 불변의 원칙을 고수하면서도 연방분리만은 막아야 한다며 타협적인 자세를 취했다. 노예제도의 확산은 단호히 반대했지만 남부의 기존노예는 인정한다며 유연하게 대처했던 것이다. 

1861년 3월 4일 취임한 링컨은 이튼 날 사우스 캐롤리나주 찰스턴항 섬터 요새 지휘관이 보낸 편지를 받았다. 4~6주 이내에 보급품이 동난다는 내용이었다. 링컨은 섬터의 고수와 포기를 놓고 각료들과 고심하다 4월 6일 사우스 캐롤리나 주지사에게 친서를 보냈다. 섬터에 식량만 보내겠다, 저지하지 않으면 사전통지 없이 병력, 무기, 탄약을 보급하지 않고 공격도 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그 내용을 타전 받은 남부연합 대통령 데이비스가 섬터에 항복을 요구했고 응답이 없자 4월 12일 포격을 가했다. 남북전쟁은 이렇게 한 발의 포성으로 터졌고 4년간에 전사자만 62만5,000명이 발생했다. 

북한이 1993년 3월 NPT(핵확산금지조약)를 탈퇴한 이후 한반도의 안보위기가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지난 20년간 평화기반 구축을 위해 이뤄진 두 차례의 남북정상회담과 경제교류를 무위로 만들었다. 북한이 한-미 군사훈련을 ‘북침’이라며 ‘전시상황’을 선언했다. 미국의 오바마 2기 행정부 출범과 남한의 정권교체기에 맞춰 핵보유국임을 천명하고 나섰다. 2012년 12월 대륙간탄도탄미사일 발사와 2013년 2월 3차 핵실험이 그것이다. 이와 함께 연일 미국과 남한을 원색적으로 비난하며 전쟁위협으로 기세를 올리고 있다.

남한도 무력도발에 대해 단호하게 응징하겠다고 맞고 있다. 미국은 한반도 상공과 해역에 최첨단 무기를 잇달아 발진하며 가공할 파괴력을 과시하고 있다. 폭탄 27t을 탑재한 최장거리 폭격기 B-52, 보이지 않는 폭격기 B-2, 최강의 전투기 F-22, 핵탄두 순항미사일을 탑재한 구축함, 핵추진 잠수함, 이지스함 등등이 그것이다. 이에 맞서 북한은 평양주재 외교관의 철수를 권고하며 전쟁위험을 고조시키고 있다. 남북화해의 마지막 상장인 개성공단마저 가동을 중단했다. 북한이 동해안에서 중거리 미사일을 발사한다는 관측이 나오는 가운데 한-미 양국이 외무장관 회담을 계기로 강경대응에서 대화제안으로 선회한 상태다. 

한 발의 총성이 1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다. 1914년 6월 28일 세르비아계 19세 청년이 쏜 총탄에 맞아 사라예보를 방문했던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가 쓰러졌다. 그 총성은 긴 파장을 일으키며 1차 세계대전을 촉발한 도화선이 되었다. 한 달 후 오스트리아가 세르비아에 선전포고를 했다. 여기에 독일, 이탈리아가 가세하여 3국동맹을 맺고 영국, 프랑스, 러시아가 주도한 3국연합이 대항함으로써 1차 세계대전이 터졌다. 뒤이어 터키가 3국동맹에 가담함으로써 전쟁은 중동지역으로 확산되었다. 4년간 계속된 1차 대전으로 말미암아 발생한 사상자가 대략 사망자 1,600만명, 부상자 2,100만명으로 추정된다. 

언론의 선정적 과장보도가 미-스페인 전쟁을 촉발했다. 1898년 2월 15일 밤 쿠바 아바나항에 정박중이던 미국 순양함 메인호가 폭발해 침몰했다. 당시 쿠바에서는 스페인의 식민통치에 저항하는 독립운동이 격렬했고 미국은 지지하는 입장이었다. 미국의 황색언론이 기다렸다는 듯이 스페인의 소행으로 단정하고 보복과 응징을 부르짖으며 군중을 선동했다. 해군은 즉각 조사에 들어가 함수 바닥에서 기뢰가 폭발해 침몰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언론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미국-스페인 전쟁을 촉발한 메인호 침몰에 대해 100년간 5차례나 조사가 이뤄졌지만 확실한 원인을 찾지 못했다. 북한은 접근이 불가능한 취재원이라 사실관계를 확인하기 어렵다. 따라서 선정적 추측-과장보도를 경계해야 한다.

만약 전쟁이 일어난다면 한반도는 석기시대로 돌아간다. 남-북한은 모두 패자가 된다. 미국이 주도한 이라크 전쟁,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그것을 증명한다. 두 중동전쟁과 테러와의 전쟁으로 미국 국민은 전쟁 피로증에 시달리고 있다. 그 탓에 미국이 한반도에서 전쟁을 수행한다면 ‘병력투입 최소화-병기동원 최대화’의 속도전으로 종전을 서둘 것이다. 일본은 전쟁물자 공급과 전후복구 사업으로 최대의 수혜자가 된다. 
언론광장 공동대표
(건달정치 개혁실패), (경제민주화시대 대통령) 등의 저자 
본지 고문  

김영호

2013년 3월 7일 목요일

공직부패의 연결고리 전관예우

이글은 대자보 2013-03-06일자 기사 '공직부패의 연결고리 전관예우'를 퍼왔습니다.
[김영호 칼럼] 도덕적 불감증 만연하면 정부조직 정상적으로 작동못해

인사청문회가 열릴 때마다 많은 국민들이 실망을 넘어 절망한다. 총리-장관 내정자들이 온갖 부정한 방법과 수단을 동원하여 축재한 사실이 드러난다. 부동산투기, 위장전입, 농지소유, 편법상속-증여 등등 청렴성의 결여가 대개 공직자의 적격성을 넘어선다. 논문표절, 허위학력, 자녀의 미국국적, 공금유용 따위로도 도덕성-정직성의 논란을 일으킨다. 국민의 의무인 납세의 의무, 국방의 의무조차 기피한 경우가 허다하다. 개인이익을 추구하는 탈법-불법도 심각한 문제이지만 그 중에서 전관예우는 공직부패의 온상이라는 점에서 그 폐해는 더욱 심각하다. 

전관예우란 일반적으로 판-검사 출신 변호사가 수임한 사건에 대해서 재직했던 검찰-법원의 후배-동료가 유리하게 기소하거나 판결을 내리는 법조계의 특혜적 관행을 일컽는다. 그 전관예우가 이제 정부부처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고위관료-각료 출신이 거액의 보수를 받고 유관기업-단체에 취업-자문을 통해 관청로비스토로 활동한다. 재벌기업의 불투명한 경영을 감시하려고 도입된 사외이사도 퇴직관료-각료의 로비창구로 전락했다. 이들은 과거 근무처에서 취득한 정보-경험을 활용하는 한편 학연-고시로 엮어진 인맥-연줄을 동원하여 해당기업-단체의 이익을 극대화하는데 앞장선다. 

현직 판-검사나 고위관료들이 현실적으로 힘센 전관을 예우하지 않을 수 없다. 공직→법무법인-유관기업→공직으로 이어지는 회전문 인사가 그 원인이다. 언제든지 대법관이나 장-차관으로 올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고위 판-검사 출신은 소송가액이 수십억~수백억원인 사건에 대해 전관예우의 위력을 발휘한다. 퇴직관료-각료는 주로 인-허가 업무를 담당하는데 때로는 정부정책을 변경-왜곡시키기도 한다. 참여연대가 조사한 바로는 2011년 6월~2012년 5월 1년간 퇴직 고위관료 172명 중에서 103명이 과거 근무부처와 이해관계가 있는 기업에 취업한 것으로 의심된다고 한다. 

대형 법무법인의 전관예우는 상상을 초월한다. 검사장이나 고등법원 부장판사 출신이라면 연봉이 6억~12억원이라는 게 법조계의 공공연한 비밀이다. 법원장 출신이라면 1~2년만에 평생 먹고 살고도 남을 만큼 돈을 번다고 한다. ‘도장변론’, ‘전화변론’이라는 것도 있다. 대법관 출신 변호사가 소장에 도장만 찍어줘도 수임료가 수천만원이고 전화 한 통화만 해줘도 법무법인은 투자를 뽑는다고 한다. 고검장 출신인 법무부 장관 내정자 황교안이 법무법인서 17개월간 16억원을 벌었다. 억대연봉이 아닌 억대월급이 전관예우의 막강한 위력을 방증한다. 

과거에는 법무법인이 주로 판-검사 출신을 영입했지만 이제는 그 대상을 경제관련 규제-감독기관에 이어 전 부처로 확대하고 있다. 경제경찰로 알려진 공정거개위원회가 단연 인기다. 대형 법무법인에는 대개 위원장을 비롯한 공정위 고위직 출신들이 포진해 있다. 6개 대형 법무법인에만도 공정위 출신이 41명이나 된다. 저축은행 부실사태를 통해 금융권에서도 전관예우의 폐해가 심각한 사실이 확인됐다. 금융경찰로 불리는 금융감독원의 고위직 출신들이 저축은행의 감사와 사외이사를 거의 독점하고 있었다. 이 사건 이후에는 기획재정부 출신의 진입이 활발하다고 한다. 금융회사에 대한 감독권-검사권을 장악한 금감원 출신은 은행-증권-보험사의 영입순위 1위다. 

정보통신업체의 경영진은 과거 정보통신부와 방송통신위원회 고위관료-각료의 전유물이다. 인-허가 업무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국토해양부와 건설업체, 국방부와 무기상 등도 악어와 악어새의 관계이다. 국세청 출신은 법무법인 이외에도 회계법인, 세무법인으로도 직행한다.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2006년 이후 5년간 법무법인과 회계법인에 취업한 국세청 출신이 26명이나 된다. 재벌닷컴의 2012년 9월 자료에 따르면 10대재벌 계열의 상장기업들이 1년 동안 국세청 출신을 사외이사로 17명이나 영입했다. 그 밖에도 판-검사 출신과 함께 경제부처 고위직 출신이 재벌그룹 계열사의 사외이사를 거의 독식한다. 보수와 회의횟수를 따지면 회의참석비가 보통 1,000만~2,000만원 꼴이다. 

공익과 사익을 분별하지 못하고 합법과 불법을 분간하지 못하는 인사들이 정부요직에 발탁되어 부정한 수단과 방법을 정당시하며 축재를 일삼는다. 공익보다 사익이 우선하는 도덕적 불감증이 공직사회에 만연하면 정부조직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못한다. 그 결과가 얼마나 참혹한지 2008년 미국의 금융위기가 말한다. 탐욕의 상징인 월스트리트 금융인들이 뉴욕과 워싱턴을 오가며 공익은 뒷전에 두고 사익을 앞세워 미국의 금융-재정정책을 주무른 결과가 빚은 비극이다. 

김영호
언론광장 공동대표(건달정치 개혁실패), (경제민주화시대 대통령) 등의 저자 본지 고문

2013년 2월 22일 금요일

혼자 살다 홀로 죽는 사회


이글은 대자보 2013-02-21일자 기사 '혼자 살다 홀로 죽는 사회'를 퍼왔습니다.
[김영호 칼럼] 초고령 사회 진입 전 사회변화에 맞춰 제도정비 시급

지난 1월 16일 부산에 있는 한 다세대주택 보일러실에서 백골로 변한 50대 남자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그의 셋방에 걸린 달력이 2006년 11월에 멈춰 그의 사망시점을 말한다. 6년이 지나도록 집주인도 세입자들도 그의 죽음을 까맣게 모르고 지냈다. 그는 번잡한 도시에서 자기만의 고도(孤島)에 갇혀 혼자 살다 홀로 죽은 것이다. 이른바 고독사(孤獨死) 또는 무연사(無緣死)는 쪽방촌의 독거노인의 일만은 아니다. 1인 가구가 늘어나면서 사회와 단절된 채 홀로 지내다 삶을 마감하는 죽음이 이제 예사가 되었다. 

65세 이상 독거노인의 고독사는 말할 것도 없고 50~60대 초반의 중장년층의 고독사도 늘고 있다. 조기퇴직이 일반화하고 있으나 고실업 사회가 그들을 기다리지 않는다. 그 까닭에 여성보다 남성의 고독사가 훨씬 많다. 직장생활을 삶의 전부처럼 매달려 살다 퇴직하는 순간 사회와 잇는 끈이 끊겨 갑자기 몰려오는 절망과 좌절을 견디지 못한 탓이다. 실업-이혼으로 쪽박촌-고시촌에서 혼자 살다가 뒤늦게 주검이 발견되는 청년층의 고독사 또한 적지 않다. 

일본에서는 2011년 3만2,000명의 독거노인이 고독사로 세상을 떠났다. 한국은 그 같은 통계가 없어 정확한 실태를 파악하기 어렵다. 하지만 전통적 가족개념이 무너지면서 고독사가 초고령 사회인 일본이 걸어온 길을 따라 가는 모습이다.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독고노인이 2000년 54만명이었는데 2012년 전체 노인 589만명의 20%가 넘는 119만명으로 2.2배 늘어났다. 5명 중의 1명꼴로 혼자 산다는 뜻이다. 

문제의 심각성은 이들의 77%인 91만명이 빈곤층이라는 점이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의 평균 빈곤노인층 비율이 13.5%인데 한국은 45.1%로 그보다 3배 이상 많다. 그런데 2035년에는 독거노인이 3배 가까운 343만명으로 늘어난다. 현재 40~50대 중장년층의 220만명이 독거노인이 된다는 소리다. 그들의 상당수가 이미 사별, 이혼으로 혼자 살고 있어 고독사는 늘어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1인 가구도 빠른 속도로 증가한다. 2000년 222만가구이었는데 2010년 그것이 414만가구로 86%나 늘어났다. 4가구 중의 1가구가 홀로 사는 셈이다. 고령화와 함께 젊은층의 1인 가구도 사별, 이혼, 독신, 만혼, 실업, 빈곤 등으로 급속하게 증가한 것이다. 1인 가구와 고독사는 떼어놓을 수 없는 문제다. 2011년 하루 43.6명 꼴로 자살했다. 한국의 자살률이 놀랍게도 9년째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34개 회원국 중에서 1위이고 세계적으로도 리투아니아에 이어 2위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1년 자살자가 1만5,906명이다. 10만명당 31.7명꼴로 OECD 회원국 평균 12.9명보다 2.5배나 많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OECD 평균 자살률은 감소하는데 한국은 오히려 증가한다는 점이다. 나이가 들수록 자살률이 높아진다. 20대 자살자는 10만명당 24.3명인데 40대 34명, 50대 41.2명으로 많아진다. 65세 이상 자살자는 다른 연령대에 비해 2~3배 이상 많아 노인빈곤의 심각성을 말해준다. 2010년 10만명당 81.9명으로 일본의 17.9명, 미국의 14.5명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높다. 

이제 4인가구 위주의 주택-의료-복지-조세정책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할 시점이다. 특히 노인복지정책이 시급한 과제다. 스웨덴은 스페인에 노인마을을 만들어 겨울에 그곳에서 노인들이 피한생활을 하도록 돕고 있다. 남의 나라는 이런 복지정책을 펴는데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의 공약인 기초노인연금 20만원의 재원조달을 놓고 논란이 많다. 차제에 65세 이상 노인의 지하철 무임승차를 없애라는 천박한 주장까지 나오는 판이다. 오늘의 한국경제는 그들의 노력과 세금이 이룩한 것이다. 

국민연금은 30년 가까이 부어야 월100만원을 받을까 말까하다. 그런데 공무원과 군인에게는 세금으로 적자를 보전하면서 2~3배 이상 많은 월250~350만원씩 연금을 준다. 국회의원을 단 하루만 해도 65세부터 세금으로 월120만원을 준다. 그런데 노인기초연금 20만원을 주지 말라는 논리는 뭔가? 공무원연금, 군인연금, 국회의원연금을 근본적으로 수술해야 한다. 왜 일반국민과 달리 그들의 노후생활을 세금으로 보전하는가? 

주택정책도 4인가구에 맞춘 85㎡(25.75평)에서 1~2인가구를 위한 40㎡(12.12평)~60㎡(18.18평)로 바꾸고 공동임대주택 공급을 확대해야 한다. 독신자에게도 아파트청약 신청자격을 주고 소득세 공제혜택을 주도록 세제도 개편해야 한다. 2025년에는 노인인구가 5명 중의 1명꼴인 초고령 사회로 진입한다. 1~2인 가구가 이미 전체가구의 절반 가까운 48.2%를 차지한다. 사회변화에 맞춰 제도정비가 시급하다. 

언론개혁시민연대 상임공동대표  언론광장 공동대표시사평론가  (건달정치 개혁실패), (경제민주화시대 대통령) 등의 저자  본지 고문 

2013년 2월 6일 수요일

"한국은 생명 지옥, 생물의 저주가 두렵지 않은가?"


이글은 프레시안 2013-02-05일자 기사 '"한국은 생명 지옥, 생물의 저주가 두렵지 않은가?"'를 퍼왔습니다.
[생물다양성협약 전도사] 김영호 전 산업자원부 장관

"16세기의 르네상스가 인간의 발견이었지만 21세기의 르네상스는 자연의 재발견이다."

오는 2014년 한국에서 개최될 유엔 생물다양성협약 제12차 당사국 총회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며 김영호 단국대 석좌교수(전 산업자원부 장관)는 '자연의 재발견'에 방점을 찍었다. 생물다양성협약 당사국 총회를 유치하고자 김 교수는 지난해부터 서명 운동을 벌이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사막화방지협약, 기후변화협약과 함께 유엔 3대 환경 협약으로 꼽히는 생물다양성협약은 대부분의 사람에게 낯설다. 2010년에 일본 나고야에서 생물다양성협약 '나고야 의정서'가 채택되었고, 지난 2011년에는 '생물 다양성 보전 및 이용에 관한 법률(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지만, 이에 대해서도 아는 이는 거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생물 다양성의 중요성을 널리 알리고자 김영호 교수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그렇다면, 원로 경제학자인 김 교수는 왜 '생물다양성협약 전도사'를 자처했을까? 김 교수는 "현재 지구 상의 생물 중 인간은 오직 5퍼센트 정도의 생물만 이용하고 있다"며 나머지 95퍼센트의 생물에 대해 연구한다면 '블루오션'을 개척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김영호 교수는 생물다양성협약이 "자국에 있는 다양한 생물의 현황을 파악해 '생물 주권'을 확보"하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또 생물다양성협약 총회에서 "각국 생물자원의 이익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지"를 이야기하기 때문에 한국이 이 총회에 더욱 많은 관심을 쏟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앞으로 다양한 생물을 어떻게 이용할지 연구해 생물 주권을 획득하지 못한다면 제약산업 등에서 한국만 나홀로 뒤처지게 된다는 이야기였다. 김 교수는 "지금이라도 범정부적 차원에서 나서야 할 때"라고 거듭 강조했다. 지난 1월 30일 오후 서울시 서교동 프레시안 편집국에서 김영호 교수와 만났다. 인터뷰는 박인규 프레시안 대표가 맡았다. (편집자)

▲김영호 단국대 석좌교수 ⓒ프레시안(최형락)

"21세기의 르네상스는 자연의 재발견"

프레시안 : 제12차 생물다양성협약 총회가 오는 2014년 한국에서 열린다. 생물다양성협약은 사막화방지협약, 기후변화협약과 함께 '유엔 3대 주요 환경 협약'으로 꼽힌다고 들었다. 그러나 다른 두 협약에 비해 생물다양성협약은 대중에게 낯설다. 생물다양성협약은 무엇인가?

김영호 : 생물다양성협약(CBD)은 1992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유엔환경정상회의(UNCED)에서 사막화방지협약, 기후변화협약과 함께 채택됐다. 생물다양성(Biodiversity)개념은 하버드 대학의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의 저서제목으로 사용했던 것으로 생물종(species) 다양성, 유전자(Genetic) 다양성, 생태계(Ecosystem) 다양성을 총칭한다.

개인적으로 그 중에서도 생물다양성협약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 왔다. 지금 현재 지구의 생물 종 다양성은 굉장히 빠른 속도로 파괴되고 있다. 지금 이런 속도라면 20년 후에 바다의 물고기가 모두 없어진다. 식물도 1년에 4만~5만 종이 없어져 굉장히 빠른 속도로 사라지고 있다. (네이처)는 2050년에는 생물종이 지금의 4분의 1로 감소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으며 유엔은 생물 다양성 전망 보고서에서 이전보다 1000배 이상 빨리 생물종이 감소하고 있다고 주의를 환기 시키고 있다.

이것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연의 회복은 문명의 새로운 패러다임 아닌가? 16세기의 르네상스는 인간의 발견이었지만 21세기의 르네상스는 자연의 재발견이다. 18세기 이래의 산업 혁명은 화석 연료에 의한 반자연적인 것이었지만 21세기 이래의 신 산업 혁명은 태양 내지 수소 에너지에 의한 친자연적인 것이다.게다가 이렇게 사라지는 생물 중에는 그 존재조차 알지 못하는 것이 상당수다. 생물은 하나하나가 굉장한 잠재적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데 인간은 생물의 4, 5퍼센트 밖에 이용하지 못하고 95퍼센트는 활용하지 못한다. 인간이 잘 모르는 것을 잡초라 하는데 잡초란 식물은 없다. 경제학자의 입장에서 강조하자면, 만약 이것을 잘 지켜서 활용하면 생물계는 새로운 경제 발전의 보고가 될 수 있다.

지난 2010년 10월 일본 나고야에서 열린 제10차 생물다양성협약 당사국 총회에서 '나고야 의정서'가 채택됐다. 나고야 의정서는 생물자원을 활용하며 생기는 이익을 국가 간에 공유하기 위한 지침을 담은 국제 협약이다.

나는 2007년부터 2010년 총회를 서울로 유치하여 '나고야 의정서'가 아닌 '서울 의정서'를 만들려고 노력을 했다. 그러나 정부가 움직여주지 않았다. 결국 제10차 당사국 총회를 일본이 유치해 이런 시도는 좌절됐다. 이후 제11차 당사국 총회가 2012년에 인도 하이드라바트에서 열렸고, 그곳에서 2014년 제12차 당사국 총회를 서울에서 열기로 결정했다.

2012년 여름 이후, 우리가 서울 여러 곳에서 한국이 제12차 당사국 총회를 유치하자는 서명 운동을 했다. 그때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도 지나가다 서명했다. 지난 8월에 제주도에서 열린 '세계자연보호총회'에 생물다양성협약의 사무총장이 왔었다. 그때 우리가 한국에서 서명한 것을 전부 제출했는데 이를 보고 그 양반이 감동했다더라.

한 가지 기막힌 것은, 이렇게 국제 사회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생물다양성협약의 2014년 당사국 총회의 한국 유치가 지난해 10월 확정됐는데 국내의 거의 모든 언론이 외면했다. 당사국 총회 유치를 위해서 앞장선 입장에서 서운하기도 했고, 한국 언론의 심각한 문제점 중 하나를 확인하는 것 같아서 씁쓸했다.

프레시안 : 생물다양성협약은 '생물 다양성을 지키기 위해 뭔가를 하자'는 뜻으로 생각되는데, 이를 위해서 어떤 조치를 모색하고 있나?

김영호 : 지금 생물 산업에서 핵심은 자국에 있는 다양한 생물의 현황을 파악하고 '생물 주권'을 확보하는 일이다.

예를 들어보자. 은행나무 잎에는 혈액의 순환을 돕는 성분인 '징코민'이 있다. 버드나무에서 아스피린 원료가 나오고 주목에서 항암제 '텍솔'이 나온다. 지렁이에서 혈전 용해제가 나오고 개구리 피부에서 항생제가 나온다. 이런 예는 무수히 많다. 한국에서 은행나무의 가치를 모를 때 독일과 스웨덴이 이것을 헐값으로 가져가서 활용했다. 거꾸로 아프리카나 남아메리카에 있는 생물 종을 우리가 발견해서 활용할 수도 있다. 특히 제약 산업에서 생물 다양성을 확보하는 일은 핵심이다.

지난번 나고야에서 열린 총회의 핵심 문제 역시 '각국 생물자원의 이익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였다. 당시 그 자리에는 세계 유수의 제약 업체 관계자뿐만 아니라, 중요한 경제계, 산업계 관계자를 보내지 않은 나라가 없었다. 유독 한국의 경제계, 산업계만 아무도 참가하지 않았다. 장담하건대, 이런 무관심의 결과는 참담할 것이다.

지금처럼 각국이 생물 다양성을 파악하고 이익을 공유하자고 나서는 상황에서 한국이 관심을 두지 않으면 배제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현재 생물 10만 종 중 10분의 1밖에 파악하지 못한 상태다. 만약 외국의 제약 업계가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곳곳의 생물자원에서 신약의 원료를 찾아 개발한다면, 한국의 제약 업계는 복제 약만 만드는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다.

프레시안 : 탄소 배출권의 거래 등이 중요한 사업이 되는 등 기후변화협약의 산업적 중요성은 이미 일반인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는 것 같다. 생물다양성협약에 의한 산업의 잠재력은 어느 정도인가?

김영호 : 생물 다양성 시장은 흔히 기후 변화 관련 시장보다 8배 정도 큰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여기에는 생물자원의 기능 가치와 내재 가치 직접 가치와 간접 가치를 포함하여 종자 바이오 에너지 등의 경제적 가치, 인간 생존에 필요한 기본 환경을 제공하는 생태적 가치, 생물종의 음식 생활습관 등을 통해 구현되는 문화적 가치, 다양한 생물자원을 통해 문명이 발생하고 사회가 발전하는 사회적 가치, 기존 선진국과 생물자원을 보유한 국가 간의 힘의 균형을 이루게 해주는 정치적 가치 등을 포함하고 있다. 그리고 다시 생물 영감, 생물 모방 기술이 가져다주는 소위 청색 산업 혁명의 가치를 포함하는 더욱더 크다. 구체적으로는 생물 영감(bioinspiration), 바이오닉스(bionics), 바이오미메틱스(biomimetics), 바이오미미크리(biomimicry)가 있다.

"생물자원에 한국의 미래가 달렸다"

프레시안 : 우리나라의 생물 10만 종에 대한 현황 파악이 10분의 1도 제대로 안되었다는 지적에 걱정이 앞선다. 지금까지 파악된 것의 경제적 활용 가치는 어떤가?

김영호 : 신물질을 개발해서 제약 산업이나 식품 산업 방면에서 활용할 수 있다. 몇 십만 년의 기후 변화와 풍파를 이겨내고 지금까지 버텨온 식물과 생물에는 이것을 가능하게 한 무엇인가가 숨어있지 않겠나. 이것을 발견하는 기술인 바이오 생물 영감(bioinspiration), 바이오닉스(bionics), 바이오미메틱스(biomimetics), 바이오미미크리(biomimicry) 기술 등은 블루오션이다.

바이오미미크리의 예를 들어보자. 내가 어릴 때 들판에 나가면 뱀, 도마뱀, 개구리, 두꺼비 천지였는데 그 중 도마뱀이 특히 싫었다. 지금 생각해도 참 잔인하게 죽였다. 사실은 내가 생물다양성협약에 이렇게 열심인 이유도 바로 그들에게 속죄하기 위해서인데…. (웃음) 아무튼 나중에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가서 유명한 건축가인 안토니오 가우디의 작품을 보면서 충격을 받았다.

가우디는 도마뱀을 굉장히 좋아해서 침대에 도마뱀을 두고 같이 잘 정도였다. 그러다 보니 도마뱀의 색이 가우디 건축의 알록달록한 색채에 중요한 모티프가 되었다. 도마뱀의 울퉁불퉁한 피부도 가우디 건축의 울퉁불퉁한 표면에 그대로 반영됐다. 도마뱀을 싫어하는 나는 도마뱀에서 아무것도 얻지 못했는데 도마뱀을 좋아하는 가우디로부터는 세기의 건축 예술이 나왔다.

이뿐만이 아니다. 벽을 타는 도마뱀의 발바닥에는 표면에 잘 달라붙도록 하는 나노 빨판의 접착 장치가 있다. 이런 접착 장치의 원리를 이용해서 재미 한국인 과학자가 끈끈이 로봇 기술을 개발했는데 (타임)2006년의 최고 기술로 선정했다. 이 기술은 높은건물의 외벽을 청소할 때나 혹은 우주 개발 과정에서 이용할 가능성이 크다. 도마뱀은 여러 가지 첨단 접착제 개발의 영감을 많이 주었다. 혹은 알프오 스파이더맨을 실현할 수 있게 되었다.

자동차를 연구하는 내 친구 아들의 예를 봐도 바이오미미크리의 응용 범위가 얼마나 무궁무진한지 알 수 있다. 그의 연구실에 가면 큰 유리 상자 속에 바퀴벌레가 있다. 바퀴벌레는 빠른 속도로 이동을 하다가 천천히 속도를 줄이는 게 아니라 급정거를 한다. 그는 이 원리를 자동차에 이용해보려고 바퀴벌레를 관찰한다. 상어 지느러미를 본 딴 수영복이 수영 선수에 필수적이다. 또 이를 비행기 날개에 이용하면 공기 저항을 8퍼센트가량 감소시킨다. 모기 주둥이를 모방한 무통 주사 등도 개발되었다.

▲김영호 단국대 석좌교수 ⓒ프레시안(최형락)

"한국은 생물의 지옥"

프레시안 : 그렇다면 한국의 생물자원을 파악하기 위해 정부는 무슨 일을 하고 있나?

김영호 : 그게 지난 2011년 12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생물 다양성 보전 및 이용에 관한 법률(안)'의 핵심이다. 그런데 얼마나 관심권 밖이면 이 사실이 신문에 한 줄도 안 났다. 이제 범정부적인 인력과 자원을 투입하자고 하는 것인데 지금 시작해도 아주 늦었다. 이처럼 생물을 지키고 사랑하는 데 대해서 한국은 굉장히 후진국이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가 최근 표지에 지옥도를 실으며 세계 경제가 지옥이라고 했는데 나는 한국이야말로 생물 종의 지옥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2010년부터 2011년까지구제역, 조류 인플루엔자(조류 독감) 때문에 무려 약 1000만 마리의 소, 돼지, 닭, 오리를 생매장한 것을 생각하면 한국은 동물들의 지옥이자 생물들의 지옥이다.

프레시안 : 한국의 생태 복지가 12위라는 자료를 보았다. 생태 복지란 무엇이며, 12위란 순위는 어떻게 나온 것인가?

김영호 : 지금은 순위가 더 떨어졌다. 생태 복지란 동식물의 복지와 그런 동식물과 인간이 더불어 편안히 살 수 있는 복지를 포괄하는 말이다. 덴마크의 한 과학자가 한국에 와서 몇 달 머무르며 조사한 결과를 보고 내가 큰 충격을 받았다. 그의 연구를 보면, 공장식 밀집 사육을 당하며 학대 받는 한국의 동물은 코티솔이라는 스트레스 물질이 많다. 그는 이렇게 경고했다.

"한국의 동물과 식물들은 인간에 대한 저주를 품고 있다. 그래서 그 음식에는 독성이 있어 한국 사람들은 병에 잘 걸릴 것이다."

프레시안 : 생물다양성협약 당사국 총회의 한국 유치에 나선 것은, 한국이 이제라도 생물 다양성 문제에 관심을 가져보자는 차원이라고 볼 수도 있다. 생물다양성협약 한국위원회는 지금 무엇을 고민하고 있나.

김영호 : 나는 올해를 한국생물다양성 원년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연을 이롭게 해야 인간이 이롭게 된다. 아메리카 인디언의 생활을 보건데 원래 홍익 인간 개념에 자연과 일체화된 삶이 포함되어 있는 것 같다는 해석을 할 수 있다. 이런 점을 염두에 두면 더욱 저항 없이 홍익 자연 개념으로 확장할 수 있다. 나는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한다는 단군의 홍익 인간 사상을, 널리 자연을 이롭게 하자는 홍익 자연 사상으로확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오는 2014년 총회를 앞두고 생물다양성협약 한국위원회는 홍익 자연 사상과 그에 걸맞는 삶의 문화를 어떻게 보급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 남북한 생태 통일, 한국의 바이오미미크리 청색 산업 부흥도 관심사다.

프레시안 : 2014년에 열리는 총회의 주제는 무엇으로 정할 것인가?

김영호 : 유엔은 2010년대(2010-2019년)를 생물 다양성의 10년이라고 정했다. 이 같은 맥락에서 나고야 의정서를 수정·확장해 보자는 게 우리의 꿈이다. 나고야 의정서에서 생물자원 보유국의 권리를 강화 한 것은 진전이다. 일본은 이익의 공유와 생물자원의 주권 확보라는 모순된 문제 사이에서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런데 우리 쪽은 아직 준비가 약한 편이다. 자칫하면 나고야 의정서 뒤치다꺼리 총회가 될 수 있다. 그래서 문화 다양성, 생물 다양성, 산업 다양성을 함께 연결하는 구상이 어떨까 한다. 여러 가지 문화 다양성이 생물 다양성과 관계가 있고 그것은 산업 다양성으로 연결 될 수밖에 없다. 방금 언급한 남북 생태 통일도 분단 이후 단절된 남북 생태와 남북 문화를 같이 고민해 보자는 취지고 백두대간 생태 프로젝트는 사무총장도 매우 흥미 있어 하더라.

그런 의미에서 2014년 생물다양성협약을 휴전선 비무장지대(DMZ)에서 남북 공동으로 주최할 수도 있다. 북한에 간접적으로 의사를 타진해 보니 "이명박 정부하고는 하지 않겠지만 그다음 정부하고는 할 수 있다"는 입장이더라. 가장 큰 문제는 한국 정부, 정계가 관심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프레시안 : 기업 쪽의 관심도 미미한 편이다.

김영호 : 지금 시행되고 있는 ISO 26000에서는 생물 다양성 문제를 환경 분야의 큰 이슈로 선정하여 기업의 사회적 활동의 주요 실천 사항으로 강조하고 있으며, 유엔 GRI(Global Reporting Initiative)도 기업의 환경성과 지표 중 생물 다양성 관련 6개 항목을 지정하고 있다. 또 다우존스 지속 가능 지수에도 생물 다양성 항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나고야 의정서 이후 기업은 적극적인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큰 손해를 볼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독일, 덴마크, 스위스는 말할 것도 없고 일본만 하더라도 '기후변화협약에 얼마만큼 대응하고 있느냐'가 기업을 평가하는 6가지 항목에 포함된다. 또 다른 평가 항목 중 하나가 '생물 다양성 영역에 얼마만큼 기여하고 있느냐'다. 그런데 한국 기업은 기후 변화, 생물 다양성에 대한 기여에 뒷전이다.

생물 다양성, 문화 다양성, 산업 다양성이 연결되려면 기업의 관심과 참여가 절실하다. 현재 국내 기업 중 생물 다양성 문제에 공격적인 관심을 보이는 기업은 아직까지 삼성 정도 인 것 같다.

프레시안 : 그렇다면, 생물 다양성 관련 시장은 어느 나라가 앞서 가고 있는가. 위에서 언급한 유럽 국가들이 앞서고 있나?

김영호 : 뉴질랜드, 오스트레일리아, 일본, 영국 등이 앞서 가고 있다. 영국은 지금 '노아의 방주'라는 각종 씨앗을 밀봉해서 보존하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일본에서는 상위 100대 기업의 80퍼센트가 구체적으로 생물 다양성 관련 사업 활동을 하고 있고, 2010년 8월 약 340개 기업이 생물 다양성 선언을 했다.

한국도 비무장지대에 세계 자연사 박물관을 만들면 어떨까. 위도 36~38도 사이가 세계에서 생물 종이 가장 풍부하게 존재하는 위도다. 비무장지대에 세계 자연사 박물관에 유치해서 북극 지방 생물, 열대 지방 생물까지 온실 전시하면, 한국의 비무장지대에서 세계의 모든 생물 종을 다 볼 수 있게 된다. 비무장지대가 새로운 생물종의 세계적 보고가 된다.

"의 홍익 자연 사상을 되살리자!"

프레시안 : 역시 아직 국내에서는 이 문제에 대한 관심이 높지 않다.

김영호 : 높지 않다. 그래서 관심을 환기하는 차원에서 오는 2월 5일 심포지엄을 열 계획이다. 또 앞으로 생물 다양성의 중요성에 관한 글을 (프레시안)에 연재해 책으로도 낼 생각이다. 이번 총회를 계기로 한국 사회에서 미래가 달린 생물 다양성 의제를 확산시키고 싶다. 또 더 나아가 남북한의 생태 평화 통일을 자극하고 싶다. 이 모든 게 궁극적으로 인간과 자연 간의 화해를 모색하려는 시도다.

프레시안 : 원로 경제학자로서 최근에는 기업의 사회 책임 투자에 관심을 갖고 여러 가지 활동을 펼쳤다. 또 이제 생물다양성협약에서 열성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런 활동이 한국 사회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가?

김영호 : 아까 말씀드린 대로 자연과 더불어 사는 나라를 만들어야 그게 진정한 선진국이고 행복한 나라다. 그리고 자연을 회복하는 것이 가장 돈벌이가 잘되는 길이다. 자연이 주는 혜택을 서비스로 계산하면 인간이 만든 집이나 그 어떤 것이 주는 서비스보다 가치가 높다. 단지 우리가 그것을 가치로 계산하지 않을 뿐이다.

나는 (흥부전)의 흥부를 좋아한다.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서 가장 사랑받는 구절이 '나는 장미에 대해서 책임을 진다'다. (흥부전)에서도 이런 행위가 나온다. 흥부가 뱀한테 쫓기는 제비를 향해 달려가지 않았나. 말이 필요 없는 상황이었다. 또 헨리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을 보면 주인공이 밭을 가는데 두더지가 튀어나오는 장면이 있다.

나 같으면 두더지를 때려잡을 텐데 주인공은 "네 땅을 침범해서 미안하다"며 두더지를 고이 싸서 농장 밖에 가서 살도록 한다. 나는 20세기에 가장 사랑받는 책인 (어린 왕자)(1943년)에서 가장 빛나는 장면과, 19세기에 가장 사랑받는 책인 (월든)(1854년)에서 가장 빛나는 장면이 (흥부전)에 다 녹아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아가 제비와 뱀 사이의 평화 질서 구현자로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대박으로 연결시켰으니 경제 효과를 거두고 있다. 흥부가 바로 홍익 자연 사상의 구체적 표현이 아닐까. 아까 말한 생물·문화 산업 다양성을 함께 구현한 모델이기도 하다.

프레시안 : 2014년 생물다양성협약 당사국 총회의 한국 개최를 계기로 우리나라에 홍익 자연 사상이 널리 퍼지기를 기대해본다. 오랜 시간 좋은 말씀 고맙다.


 /남빛나라 기자(정리)

2012년 12월 25일 화요일

서민생활 안정이 최우선이다


이글은 미디어스 2012-=12-24일자 기사 '서민생활 안정이 최우선이다'를 퍼왔습니다.
[김영호의 시사칼럼]

 
▲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한상균(51) 전 지부장과 문기주(53) 정비지회장, 복기성(36) 비정규직 수석부회장 등 3명의 쌍용차 평택공장 정문 앞 철탑 고공 농성이 20일로 한달을 맞았다. 이들은 15만4천볼트의 고압전류가 흐르는 송전탑 중간 좁은 곳에서 한달을 보냈다. 복기성씨는 "쌍용차 사태가 완전히 해결되기 전까지 고공농성을 멈추지 않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 연합뉴스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하지만 축배를 들고 도취하기에는 그들만의 축제와는 먼 거리감을 느끼는 서민대중이 너무 많다. 대통령을 뽑는 날이라지만 먹고 살기에 쫓겨 투표장에도 못 가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거리를 즐비하게 질주하는 외제 승용차가 풍족한 생활을 말하지만 그 이면에는 경제상황이 위기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저속성장과 집값하락, 폭발위기의 가계부채, 사상최대의 빈부격차가 그것을 말한다. 박 당선자는 선거기간 내내 ‘민생 대통령’을 자처한 만큼 서민생활 안정을 최우선 과제를 삼아야 한다.  
내년도 시간당 최저임금은 4,860원이다. 이것을 주40시간(월209시간) 사업장 기준으로 치면 한 달에 101만5천740원이다. 노동자 258만2,000명에게 적용된다는 것이 최저임금위원회의 추산이다. 식비는 빼고 지하철 기본요금 거리를 20일만 출퇴근해도 교통비가 한 달에 4만2,000원이 든다. 대부분이 수도권에 사니까 이보다 훨씬 많이 들지만 말이다. 그 나머지로 4인 가족이 생활을 꾸린다면 그 삶이 얼마나 절망적일지 짐작된다. 그런데 최저임금을 받지 못하는 노동자가 200만 명이나 된다는 주장도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임금은 정규직의 50~70% 수준이다. 이들은 같은 직장에서 같은 일을 하더라도 임금 이외에 다른 복지혜택이 없다. 계약기간이 끝나면 언제 잘릴지 모르고 경제침체 장기화로 고용불안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 일은 원청업체서 하는데 임금은 하청업체에서 받는 간접고용자. 월급이 아닌 일당을 받는 일용직. 개별사업자로 규정되어 노동3권을 보호받지 못하는 특수고용자. 고용기간이 정해진 계약직. 이들 비정규직을 노동계는 870만 명, 정부는 600만 명으로 보는 모양이다.
금년 상반기 가계소비지출에서 식료품비가 13.6%을 차지하여 엥겔지수가 12년 만에 최악을 나타냈다. 소득은 줄고 물가는 뛰니 먹고 사느라 다른 지출 크게 줄였다는 뜻이다. 술과 담배는 1970년 이래 최저수준이다. 2007년 11월~2012년 11월 5년간 농축수산물가격이 30.1%, 가공식품가격이 33.7%나 올랐다. 쌀을 빼고는 식탁을 수입식품이 점령한 현실에서 고환율정책을 견지한 탓이 크다. 5,000원 짜리 점심이 이제는 보통 7,000~8,000원으로 올랐다. 그 까닭에 편의점서 가장 많이 팔리는 품목이 2000원대 도시락이다. 서민대중의 삶이 얼마나 팍팍한지 말해주는 대목이다.
집값은 떨어지나 집세는 오르기만 하여 셋방살이가 정말 고달프다. 2010년 자가소유비율이 61.3%이니 국민의 40%는 세입자이다. 국민은행의 전세가격지수(2011년 6월을 100기준으로 환산)를 보면 2007년 12월 82.9에서 금년 11월 107.9로 올랐다. 5년간 30.2%나 뛴 것이다. 전셋값이 1억 원이었다면 3,200만원이나 오른 셈이다. 세입자들이 도시의 난민처럼 더 싼 셋집을 찾아 더 먼 변두리를 헤맨다. 아니면 빚을 내거나 월세로 쳐서내야 한다. 금리가 내려가면서 보증금의 일부를 월세로 내는 이른바 반전세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대학가의 원룸은 전세파동에 밀려난 젊은 부부의 보금자리가 됐다. 원룸도 얻지 못하는 독신자들은 고시원으로 간다. 서울에만 고시원이 5,700곳이 넘는다. 막상 각종 고시를 준비하는 젊은이나 학생은 채 20%도 안 된다고 한다. 대부분이 전세나 월세를 얻을 형편이 안 되는 실업자나 일용직 노동자의 차지가 되었다. 월 25만 원짜리 고시원도 부담하기 어려우면 PC방, 만화방, 지하다방 등의 소파에서 쪽잠을 잔다.
집값이 떨어지는 바람에 고통 받는 사람들이 많다. 돈을 많이 빌려 집을 마련한 이른바 ‘하우스 푸어’들이 집값 하락으로 자칫 집을 날릴 판이다. 소득의 60% 이상을 원리금 상환에 쓰는 하우스 푸어가 56만9,000가구나 된다. 그들의 부채가 무려 149조5,000억 원이다. 집을 팔아도 빚을 다 갚지 못하는 이른바 ‘깡통주택’ 소유자가 19만 명에 이른다. 수도권에서 금융권 부채를 갚지 못해 경매에 나온 집이 2010년 1만3,382건, 2011년 1만4,816건에 이어 금년 11월 1만7737건으로 증가세가 커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소비와 투자가 빠르게 위축되면서 올해 경제성장률이 2%를 넘길지 아슬아슬하다. 내년에도 경기침체가 지속되고 집값이 더 하락하면 한국판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도 우려된다. 지난 9월말 현재 가계부채가 937조5,000억 원이다. 여기에다 가계부채나 마찬가지인 자영업자 부채를 합치면 실질적인 가계부채는 1,000조원을 훨씬 넘어선다.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서 1990년대 일본의 장기불황을 닮아가고 있다. 과도한 가계부채-집값하락에 겹친 저성장-저금리가 그것을 말한다. 차기 정권은 국민경제 안정에 모든 경제정책의 초점을 맞춰야 한다.

김영호 언론광장 공동대표  |  webmaster@mediaus.co.kr

2012년 10월 31일 수요일

식량주권 포기


이글은 대자보 2012-10-31일자기사 ' 식량주권 포기'를 퍼왔습니다.

지구촌에 곡물파동이 잦아지고 있다. 곡물파동이 7~10년 주기로 나타나더니 근년에 들어서는 이상기후 탓에 1~3년 주기로 짧아지는 추세다. 이상기후가 이제 일상기후로 변해가는 증상을 보이는 가운데 세계식량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한국에서도 주식인 쌀 생산이 급격하게 감소하고 있다. 2007년 27년만에 큰 흉년이 들었다. 이어 2010년 이후 3년간 내리 더 큰 흉년이 들었다. 이에 따라 곡물자급률이 2011년 22.6%로 전년에 비해 5%p나 급락했다. 쌀이 남아돈다고 난리였는데 이제 수입해야만 먹고산다. 

2007년 쌀 생산량이 440만8000t에 불과했다. 이후 다소 회복세를 보이더니 2010년 429만5000t 2011년 422만4000t으로 급감했다. 올해는 쌀 생산량이 407만4000t으로 31년만에 최악의 흉작이 예상된다. 3년 연속 대흉작이다. 

이에 따라 100% 전후를 유지하던 쌀 자급률이 2011년 83.0%로 급락했다. 올해는 이보다도 더 떨어져 쌀 자급체제가 붕괴될 전망이다. 다른 곡물은 자급률이 미미한 수준인데 그마저도 더욱 줄었다. 보리가 2010년 0.9%에서 지난해 0.8%로 떨어졌고 콩도 10.4%에서 6.4%로 줄었다. 밀과 옥수수도 1% 전후에 불과하다. 

식량위기의 원인은 이상기후이다. 한국에서는 이상기후와 함께 농지축소가 큰 원인이다. 2008년 식량파동으로 곡물가격이 폭등하자 30여개국에서 폭동이 일어났다. 식량대국들은 곡물을 전략상품(strategic commodity)으로 지정하고 수출통제에 나서는 한편 증산에 박차를 가한다. 

그런데 한국은 거꾸로 간다. 세계식량위기가 고조되는 바로 그 시점에 이명박 정권은 농지축소를 감행했다. 2008년 6월 우량농지인 농업진흥지역의 농지를 다른 용도로 전용할 경우 이에 상응하는 농지를 농업진흥지역으로 대체하도록 지정하는 제도를 폐지됐다. 이어 2009년 11월 평균 경사율 15% 이상 농지를 비농업인이 소유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이상기후와 농지축소가 큰 원인

또 11월에는 농업적 가치가 낮다는 명목을 내세워 6만5000㏊ 규모의 절대농지를 농업진흥지역에서 해제했다. 올 9월에는 개별공시가지가의 30%를 내는 농지보전부담금 감면대상에 경제자유구역-기업도시 관광단지-관광시설용지 체육시설을 추가하기로 했다. 농지전용을 촉진하기 위해서다. 1990년에만 해도 농지가 210만9000ha였는데 2000년 188만9000ha 2011년 169만8000ha로 20년간 20%나 줄었다.   이명박 정권 들어서는 더욱 빠른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그 동안은 간척-개간을 통해 농지감소를 부분적으로 보충했지만 앞으로는 새로운 농지조성은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농촌경제연구원은 정부가 설정한 2020년 곡물자급률 32%를 달성하려면 175만2000㏊의 농지를 확보해야 한다고 추정하고 있다. 그런데 경지면적이 2017년 162만4000㏊ 2022년 158만㏊로 오히려 줄 것이란 전망이다. 여기에다 전방위 FTA(자유무역협정)에 따른 수지악화로 인해 농경지의 유휴화가 급증할 가능성이 높다. 

이명박 정권은 식량위기에도 불구하고 농지축소를 밀어붙이는 한편 해외농업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해외의 값싼 농지-노동력을 이용해 생산한 농산물을 국내에 들여온다는 것이다. 

작년 6월 해외농업개발협력지원법을 만들고 투자기업에 연간 300억원의 지원금과 각종 세제혜택을 주고 있다. 이에 따라 현대중공업 대우인터내셔날 LG상사가 해외투자에 나섰다. 이와 함께 '식량자주율'이란 허구적인 개념을 도입했다. 한국기업이 해외에서 생산한 식량을 수입해서 식량자급을 이룩한다는 것이다. 식량자주율을 2020년까지 65%로 높인다는 계획이다. 기업은 식량위기에 대비한 투자를 통해 돈을 벌 수 있다. 하지만 국가는 식량의 해외의존도를 높임으로써 식량주권을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다. 

식량난이 공산주의 붕괴시켜

식량위기가 닥치면 수출국은 수출관세-할당-금지를 통해 수출을 통제한다. 당장 제 나라에서 식량이 부족한 데 수출을 허용하겠는가? 2008년 식량위기 당시에도 중국은 모든 식량수출을 금지하고 아르헨티나는 제한했다. 러시아를 비롯한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밀 수출을 통제했고 베트남 등 동남아 국가들은 쌀 수출을 통제했다. 

경찰의 곤봉세례를 맞아가면서 농민들이 시장개방을 반대하며 쌀 자립을 지켰다. 그 덕택에 한국은 2008년 식량파동의 무풍지대에서 살았다. 그 탓에 식량위기의 공포를 모른다. 만성적인 식량난이 공산주의를 붕괴시켰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식량주권을 포기한 나라는 냉혹한 국제질서에서 생존할 수 없다. 식량의 해외의존은 국가의 운명을 건 위험한 도박이다. 

언론개혁시민연대 상임공동대표  언론광장 공동대표시사평론가  (건달정치 개혁실패), (경제민주화시대 대통령) 등의 저자  본지 고문 

2012년 9월 11일 화요일

구체제로의 복귀


이글은 대자보 2012-09-11일자 기사 '구체제로의 복귀'를 퍼왔습니다.
[김영호 칼럼] 박근혜 등장으로 유신옹호론 고개, 박정희체제 복귀하나

유신선포 40년, 6월항쟁 25년을 맞아 나라가 거꾸로 가는 느낌이다. 박정희의 딸 박근혜가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로 확정되자 유신옹호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박근혜는 5⁃16 군부 쿠데타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강변한다. 수출증대를 위해 유신체제가 필요했다느니 반유신-반독재 투쟁은 종북이라는 따위의 소리가 스스럼없이 튀어나온다. 박정희 기념관-대학원-신당동집 복원, 육영수 생가복원이 같은 맥락에서 이뤄진다. 구체제(Ancien Régime)의 복귀를 보는 것같아 섬뜩하다. 

1960년 4⁃19 혁명에 의해 그 해 8월 장면 내각이 탄생했다. 자유당 독재체제에 의해 억압됐던 혁명적 열기가 장면 내각 출범 이후 민주화의 욕구로 분출했다. 그것을 빌미로 1961년 5월 16일 육군 소장 박정희가 군부 쿠데타를 일으켜 장면 정권이 붕괴되었다. 박정희는 대의민주주의를 부정하고 국가재건최고회의를 설치하고 군사통치를 실시했다. 박정희는 민정이양이란 당초의 약속을 파기하고 헌법개정을 추진했다. 1962년 12월 권력구조를 내각책임제에서 대통령중심제로 바꾸었다. 

이 헌법에 따른 1963년 10월 15일 대통령 선거에서 박정희는 15만여 표차로 윤보선을 누르고 당선되었다. 1967년 5월 3일 실시된 대통령 선거에서도 박정희는 윤보선을 이겼다. 4년전에 비해 표차가 116만여표로 늘어났다. 야권분열 말고도 관권-금권선거가 크게 작용했다. 박정희는 재집권 2년차에 들어서자 장기집권의 마각을 드러냈다. 그것은 대통령 3선연임 개헌이었다. 1969년 9월 14일 공화당은 헌법개정안을 날치기했다. 새벽 2시 회의장소를 제3별관으로 옮기고 야당한테 통고조차 하지 않았다. 

이 헌법에 따라 1971년 4월 27일 실시된 대통령 선거에서 박정희는 김대중을 94만여 표차로 누르고 3선연임에 성공했다. 무난한 승리처럼 보였지만 3선 연임에 따른 후유증이 컸고 부정선거 시비가 그치지 않았다. 선거기간 중에 김대중은 박정희가 영구집권을 획책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경고가 현실로 드러났다. 박정희는 1972년 10월 17일 돌연 비상계엄령을 선포한 다음 국회를 해산하고 정당활동을 금지시켰다. 또 정치적 목적의 옥내외 집회와 시위를 금지하고 언론, 출판, 보도, 방송은 사전검열을 실시했다. 대학에는 휴교조치를 내렸다.

이어 10월 27일 비상국무회는 유신헌법을 의결하고 국민투표를 거쳐 확정했다. 투표율 92.9%, 찬성률 91.5%는 당시 분위기가 얼마나 살벌했는지 말해준다. 10월 유신은 친위 쿠데타였다. 유신은 일본의 메이지유신(明治維新)에서 따온 말이다. 이것은 과정-절차-내용-형식면에서 헌법개정이 아니라 헌법파괴(Verfassungsvernichtung)였다. 이 헌법은 대통령 직선제를 폐지하고 통일주체국민회의가 대통령을 선출하도록 하고 연임을 제한하지 않아 영구집권의 길을 열었다. 

또 대통령은 국회의원 1/3의 추천권과 함께 국회해산권을 가졌다. 입법부의 국정감사권을 박탈하고 연간회의도 제한했다. 대법원장을 비롯한 모든 판사의 임면권도 대통령에게 속했다. 국가권력간의 견제와 균형을 이루는 삼권분립을 부정했다. 무엇보다도 헌법의 효력까지 일시적으로 정지시킬 수 있는 긴급조치권을 부여했다. 국민의 기본권까지 제한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한마디로 유신체제는 권력자 1인 아래 법과 제도를 두는 초법적체제였다. 

박정희는 긴급조치권을 9차례나 발동했다. 유신헌법을 부정, 반대, 왜곡, 비방하는 행위는 일체 금지하고 위반하면 영장 없이 체포, 구속, 압수, 수색하여 군사재판에서 15년의 징역에 처했다. 장준하, 백기완이 긴급조치1호 위반으로 징역15년을 받았다. 학생의 출석거부, 수업-시험거부, 학내외 집회-시위-농성을 금지하고 위반하면 퇴학-정학시켰다. 반유신 운동으로 1,024명이 수사를 받았고 윤보선, 박형규 등 180명이 군사재판에 회부되었다. 그 중에서 9명이 사형, 21명이 무기징역, 140명이 징역살이를 했다. 

이 헌법에 따라 박정희는 1972년 12월, 1978년 7월 두 차례 체육관에서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그런데 1978년 12월 실시된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집권당 공화당의 지역구 득표율이 신민당의 그것보다 1.1% 뒤졌다. 신민당은 김영삼을 새 총재로 뽑고 유신체제에 대한 투쟁을 강화했다. 그러자 박정희 정권은 1979년 10월 4일 김영삼을 국회에서 제명했다. 그것이 부마민주항쟁의 도화선이 되었다. 10월 26일 궁정동 술자리에서 박정희는 그의 심복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총탄에 맞아 숨졌다. 총구는 김재규가 겨눴지만 방아쇠는 부마항쟁이 당긴 셈이었다. 이로서 유신체제는 종막을 내렸다. 헌정파괴로 점철된 박정희의 집권 18년이었다. 

김영호

언론개혁시민연대 상임공동대표  언론광장 공동대표시사평론가  (건달정치 개혁실패), (경제민주화시대 대통령) 등의 저자  본지 고문  

2012년 9월 7일 금요일

경제민주화는 국민적 합의…헌법정신으로 돌아가자


이글은 프레시안 2012-09-07일자 기사 '경제민주화는 국민적 합의…헌법정신으로 돌아가자'를 퍼왔습니다.
[민생복리가 경제민주화다] 양극화 해소 없이 경제민주화 없다

1987년 6월 민주화의 열망이 아스팔트 위로 분출했고 그 열기가 군벌지배 체제의 종막을 내렸다. 그 6월항쟁은 신군부의 폭정을 분쇄하고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많은 국민들은 구체제의 잔재와 폐습을 혁파하고 희망에 찬 새로운 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기대에 차 있었다. 하지만 5년을 주기로 열병 같은 홍역을 치른 끝에 새 대통령이 태어나나 국민에게 희망보다는 절망과 실망을 안겨 주곤 한다. 국정 전반에 대한 이해도가 낮아 무엇을 어떻게 할지 몰라 5년이란 세월을 허송하고 만다.

정당사를 되돌아보면 모든 정당이 선거용 포말정당이나 다름없다. 5년마다 선거철이 가까워지면 이합집산이나 신장개업을 되풀이하며 당명을 바꾼다. 정권실패에 대해서는 반성을 모르고 잃어버린 국민적 신뢰를 되찾겠다고 새롭게 치장하는 꼴이다. 선거 때마다 보수니 진보니 하며 떠드나 정책방향은 없고 공허한 이념공방만 남는다. 어디에도 투철한 국가관과 국정철학이 보이지 않는다. 정권을 잡더라도 집권세력의 정책기능이 취약한 탓에 이 나라에서 가장 보수적 세력인 관료집단에 의존한다. 그 까닭에 역대 정권의 사회-경제정책의 골격은 신자유주의에 근거하여 대차가 없다.

한국사회가 직면한 최대의 난제는 양극화이다. 역대정권이 시장주의와 규제완화에 근거한 신자유주의를 맹신한 결과 계층-부문 간의 극단적인 양극화가 형성되었다. 사상 최대의 빈부격차, 가계부채 1000조 원, 비정규직 양산과 청년실업, 부동산 투기와 전세대란, 과중한 사교육비와 출산율 저하, 경쟁 위주의 교육의 시장화, 유통재벌의 골목시장 침탈, 거대자본의 자영업-중소기업 영역 침투, 부문-지역 간의 발전격차 등등 국가적 난제 한가운데는 신자유주의가 자리 잡고 있다. 이에 따라 계층-부문 간의 반목과 갈등이 갈수록 증폭되고 있다. 그 간극을 좁히지 않고는 국가가 발전역량을 발휘하지 못할 단계에 이르렀다.

경제민주화가 시대정신으로 떠올랐다. 이것은 국민적 합의이며 경제발전 불균형에 따라 국민적 불만이 발화점에 달했다는 뜻이다. 역대정권이 노동의 가치는 말하지 않고 '기업하기 좋은 나라'니, '친기업'이니 떠들며 자본 위주의 편향적 경제-사회정책을 펴왔다. 정-재-관계가 한 몸이 되어 자본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데 앞장서온 것이다. 그 뒤에는 전경련을 비롯한 경제5단체가 도사리고 있다. 하지만 서민대중의 이익을 대변하는 세력은 존재하지 않는다.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 되겠다는 사람들도 선거철에만 서민을 찾는다며 시장 바닥이나 누비고 다닌다.

정치권이 내놓는 경제담론을 보면 구체성-현실성이 결여된 채 재벌개혁에만 매몰되어 있다. 경제민주화를 자칫 잘못 논의하다가는 이념논쟁만 유발하여 본질은 증발하고 사상논쟁만 남을 공산이 크다. 구체적 각론과 실천의지를 담보하지 않은 재벌개혁은 정치구호로 변질되어 색깔론만 유발할 우려가 큰 것이다. 그곳에는 항상 반자본주의와 반시장주의라는 반격의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성장론과 복지론 또한 비생산적인 이념논쟁으로 비화될 가능성이 짙다. 경제민주화의 본질은 민생복리이다. 그 지향점은 양극화 완화를 통한 사회통합이다. 논의의 초점을 민생복리에 맞추지 않는다면 경제민주화는 공허한 정치적 수사로만 남는다.

▲ 눈물 흘리는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 비정규직 양산은 양극화의 문제점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이렇게 배제된 사람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양극화를 해소하는 것이 경제 민주화의 핵심이다. ⓒ프레시안(김윤나영)

민생복리에 초점 맞추지 않으면 공허한 수사로만 남을 수도

경제민주화를 이룩하기 위해서는 이제 헌법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 헌법 제119조 2항은 경제민주화에 관해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과 안정', '적정한 소득의 분배',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 남용의 방지',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규정하고 있다. 이것은 시장경제의 원리에 대한 제약적 규정으로서 국가는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책임 있는 자리에 앉은 인사들이 아직도 야유조로 경제민주화가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는 따위의 망발을 일삼고 있다.

1987년 체제 이후 25년간 역대정권이 이 헌법정신을 망각하고 있었다. 어느 정권이나 하나같이 규제완화를 통한 효율성을 합창해왔다. '완화'라는 단어도 모자라 '철폐', '혁파'라는 단어를 입에 달고 다니며 외쳤다. 경제적-사회적 약자를 위한 규제, 경제질서에 관한 규제, 경제력 남용을 방지하기 위한 규제, 공공복리를 위한 규제, 환경보존을 위한 규제 등등을 마치 경제발전을 가로막는 해악이라는 듯이 경쟁적으로 없애버렸다. 그 결과 계층-지역-부문 간의 발전격차가 극대화되었고 재벌로 경제력 집중이 더욱 심화되었다.

맹목적인 규제완화가 자본-지식-기술-정보에서 열위에 있는 사회적-경제적 약자의 생존기반을 위협하고 있다. 강자가 약자의 이익을 뺏어가는 약탈적 사회구조가 고착화한 것이다. 역대 정권이 외적 성장에만 몰두한 탓에 성장의 과실이 과점되어 양지는 더욱 밝아지고 음지는 더욱 어두워졌다. 하루 종일 먹고살려고 버둥대다 밤이 되면 지친 몸을 다시 이끌고 대리운전을 나가는 아버지들. 자식 과외비를 마련하느라 허드렛일도 마다않는 어머니들. 해마다 치솟는 등록금을 마련하느라 밤일, 잡일로 지쳐 수업시간에 졸음과 싸우는 대학생들.

퇴직금을 털고 빚을 내서 조그만 가게 하나 차렸지만 골목상권마저 초토화하는 유통재벌과 재벌 프랜차이즈 횡포 앞에 밤잠 못 이루는 자영업자들, 봉급을 아무리 모아도 내 집 마련의 꿈은 무지개마냥 멀어져만 가는 셋방살이 월급쟁이들. 전방위 FTA에 따른 농촌붕괴로 통곡하는 농민들. 정치권은 귀를 막았는지 성장의 그늘 아래서 들려오는 신음과 절규가 갈수록 커지나 들을 줄 모른다. 정치권이 사회의 공동번영을 최우선가치로 삼아야 구성원의 행복이 보장된다. 그 해답은 바로 민생복리이고 그것이 경제민주화이다.

경제민주화란 시대정신에 걸맞은 대통령이 되려면 역대정권의 정책실패를 되돌아보는 지혜가 소중하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남북긴장완화, 인권신장, 권위주의 타파, 민간영역의 자율성 확장에 대해서는 긍정적 평가가 가능하다. 경제부문은 정책의 보수화로 다른 정권과 차별성을 부각시키지 못했다. 가장 큰 원인은 이념과잉에 따른 진영논리에 있다. 민주개혁세력의 기반이 취약한데다 이른바 보수세력이 가치중립적 사안에 대해서도 이념공세를 펴면서 조직적으로 저항해왔다. 그 과정에서 선거철이 다가오면 영남민심을 악의적으로 자극하는 수단으로 악용한다. 그것이 왜곡된 지역구도에서 다수파를 쉽게 포섭하는 방도이기 때문이다.

대통령 선거 때마다 국민들이 지역주의의 포로가 되는 바람에 정치발전과 정책대결이 실종된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 남은 것은 정치체제의 퇴영과 경제질서의 왜곡뿐이다. 다행히 근년에 들어서는 지역주의에도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특히 수도권 20-30대는 지역의식이 많이 희박해져 새로운 정치지형의 변화가 예고된다. 이제 국민들이 깨어나서 1990년 3당합당 이후에 고착화된 지역구도를 깨야 한다. 앞으로 누가 대통령이 되어도 정치권이 지역주의를 토템(totem)처럼 숭배하는 미신을 타파하지 못하면 정치적-경제적으로 성공하지 못한다. 다만 역대정권의 실패를 답습하는 길만 열린다.


 /김영호 언론광장 공동대표

2012년 9월 3일 월요일

고물가-전세난이 등록금 투쟁 불렀다


이글은 프레시안 2012-09-03일자 기사 '고물가-전세난이 등록금 투쟁 불렀다'를 퍼왔습니다.
[민생복리가 경제민주화다] 대학생 신용불량자 양산하는 사회

등록금 1000만 원 시대의 대학생들은 불쌍하다. 부모들의 학창시절에도 고학생들이 있었다. 학자금을 스스로 벌어서 고생하며 학교에 다닌다고 해서 고학생이라고 불렀다. 그때는 일거리가 주로 가정교사였다. 입주하는 경우 학자금도 벌지만 숙식이 해결되어 요즈음 학생들보다 덜 고달팠다.

지금은 가정교사가 거의 사라졌다. 중고등학생들이입시전문학원에 다니기 때문이다. 말이 아르바이트이지 대학생들이 할 만한 일거리가 별로 없다. 막노동 아니면 밤일, 허드렛일뿐이다. 밤새 학원순례를 마친 고3들이 수업시간에는 엎드려 잔다지만 대학에도 조는 학생들이 수두룩하다. 막일, 밤일로 몸이 지친 탓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1년 내내 버는 돈이 1000만 원이 될까 말까하다. 이런 판에 대학생들이 학자금, 생활비를 번다는 게 여간 어렵지 않다. 설혹 벌더라도 지방 출신의 경우 방세 내고 먹고 나면 남는 게 없다. 그 까닭에 적지 않은 대학생들이 휴학, 복학을 반복하다 졸업한다.

보통 월급쟁이라면 자녀 둘을 한꺼번에 대학에 보낼 수 없다. 아들이라면 군대에 보내고 딸이라면 번갈아 휴학해서 막일로 학비를 마련한다. 그 까닭에 입학 후 4년 만에 졸업하는 학생들이 그리 많지 않다. 일에 치여 시간에 쫓기니 졸업도 취직도 걱정이 태산 같다. 부모의 도움으로 학비 걱정하지 않는 학생이라면 공부에 열중하고 소위 스펙도 열심히 쌓으니 취직이 훨씬 수월한 편이다.

대학등록금이 올라도 올라도 너무 올랐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2001년 5월~2010년 5월 10년간 소비자물가가 36.4% 올랐다. 대학등록금은 이보다 2배 전후로 인상됐다. 국공립대학교가 88.2%, 사립대학원이 82.1%나 뛰어 소비자물가보다 2배 이상 올랐다. 그 다음은 전문대학 70.9%, 국공립대학원 69.3%, 사립대학 63.3% 순으로 뛰었다. 전체교육물가 상승률 53.3%보다도 훨씬 높다.

이 기간 입시학원비가 대입종합반 74.0%, 고입종합반 65.1%로 크게 올랐다. 대학들이 입시학원 수준만큼 경쟁적으로 등록금을 올린다는 소리다. 그래서 대학생들이 거리로 뛰어나와 반값 등록금을 외쳤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벌금폭탄밖에 없다.

ⓒ프레시안(김윤나영)

대학들이 생활협동조합이 운영하던 식당, 매점, 기숙사 등 편의-주거시설을 점차 재벌 계열사로 넘기고 있다. 이윤을 추구하는 상업자본에 경영을 위탁하니 물가가 비쌀 수밖에 없다. 학교 인근 식당도 임대료가 비싸 가난한 학생들이 이용하기에는 너무 벅차다.

이런 판에 이명박 정권이 고환율 정책을 견지함으로써 수입물가 앙등에 따른 생활물가 폭등으로 대학생들의 생활이 더욱 궁핍해졌다. 정부통계를 인용할 필요도 없다. 학교부근에서도 5000원 이하 밥을 찾기 어려워졌다. 도심지보다 2000~3000원가량 싸지만 값이 싼 만큼 내용이 부실하다. 밥값이 이렇게 비싸니 집안사정이 어려운 학생들은 라면 따위로 끼니를 때우는 실정이다.

전세대란이 대학가에도 직격탄을 날렸다. 지방 출신만이 하숙이나 자취를 하는 것이 아니다. 취직시험을 준비하느라 통학시간을 줄이려고 학교 부근에 둥지를 트는 학생들이 많다. 기숙사 들어가기는 하늘의 별따기다. 원룸은 이제 대학생들의 기거처가 아니다. 전세파동에 밀려난 신혼부부들의 차지가 됐다.

학기가 바뀔 때마다 보증금과 월세를 올려달라는 바람에 대학가를 떠나 더 싼 하숙집, 자취방, 고시원을 찾아 변두리로 변두리로 헤매도 싼 방이 거의 없다. 뉴타운 개발로 옥탑방, 지하방이 많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방을 얻으면 교통비도 만만찮다. 다리 뻗고 내 몸 하나 누울 공간을 찾지 못한 그들은 지금 절망하고 있다.

대학생 신용불량자가 2007년 3785명에 불과했다. 그런데 2011년 4월 무려 3만57명으로 7.94배나 늘어났다. 사회생활도 시작하기 전에 신용불량자가 된 것이다. 이것은 경제정책 실패에 따라 나타난 물가폭등-전세대란의 한 단면이다. 또 대학 등록금이 많은 학부모들의 부담능력을 넘어섰음을 말한다.

최저소득계층 보호를 위한 최저임금 인상에는 기업들이 부담능력을 이유로 아주 인색하다. 그럼에도 역대 정권이 대학등록금 인상률이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훨씬 능가하도록 방치하여 등록금 1000만 원 시대가 열렸다. 보통 월급쟁이 연봉을 5000만 원으로 치면 자녀를 대학 보내기가 너무 벅차다. 연간 등록금 1000만 원에 교재값, 교통비, 숙식비, 잡비 등 생활비를 1000만원으로 잡으면 나머지 가족은 생계를 꾸릴 형편이 안 된다.

이런 현실에서 이명박 집권세력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가관이다. 반값 등록금은 복지 포퓰리즘이니까 안 된다는 것이다. 성층권에서 호사하는 부자정권의 실세들에게야 허튼소리로 들릴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반값 등록금은 누가 먼저 꺼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반값 등록금은 이명박 정권의 선거공약이었다. 대학생들의 요구가 꼭 반액으로 낮추라는 것은 아니다. 현실성 있게 낮추고 다양한 장학제도를 마련하라는 소리일 것이다. 경제정책 실패가 등록금 투쟁에 불을 붙였다는 사실을 각성해야 하나 그들은 들을 자세조차 갖지 않았다.

 /김영호 언론광장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