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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5월 2일 목요일

“재벌이라고 부르지 마라”

이글은 대자보 2013-05-02일자 기사 '“재벌이라고 부르지 마라”'를 퍼왔습니다.
[김영호 칼럼] 빈부격차 심화되면 재벌 존립기반도 위협 깨달아야
한국경제가 안고 있는 최대의 난제는 빈부격차에 따른 경제-사회구조의 양극화이다. 그 까닭에 지난 대통령 선거과정에서 경제민주화가 시대정신으로 떠올랐다. 이것은 양극화 완화를 통해 사회통합을 이룩하지 않으면 국가가 발전역량을 발휘하는데 한계에 도달한다는 사회적 합의를 뜻한다. 이에 따라 국회가 경제민주화와 관련한 최소한의 입법활동을 벌이자 재계가 저지에 나섰다. 집단행동의 배경에는 재벌의 막강한 경제적-정치적 영향력이 있다. 또 박근혜 대통령이 경제민주화 입법에 소극적 자세를 보이자 그 틈을 타서 반격에 나선 것이다. 하지만 당사자의 한 축인 노동계의 목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는다. 

전국경제인연합회, 대한상공회의소, 한국경영자총협회, 중소기업중앙회, 한국무역협회 등 경제5단체가 지난 달 26일 회동을 갖고 경제민주화 입법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최근 논란을 빚은 대체휴일제 도입, 정년60세 의무화, 부당내부거래 고발권 확대, 화학사고 과징금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이들 단체는 20개 법안⁃판결을 일방적인 논리로 공격하며 기세를 올리고 있다. 이례적으로 사법부의 판결에도 노골적인 불만을 나타냈다. 경제적-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규제, 경제질서에 관한 규제, 환경보존에 관한 규제는 완화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그런데 이들 단체는 모든 규제는 경제적 해악이고 사회통합을 저해한다며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에 하루 앞선 지난 달 25일 전경련 산하의 한국경제연구원은 ‘바른 용어를 통한 사회통합의 모색’이란 토론회를 열었다. 주제내용은 “국가운영의 틀인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대해 설명하는 용어들 가운데 부정적인 의미를 전파하는 것들이 많아 바로 잡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또 “바른 용어를 쓰지 않는 데서 혼란과 갈등이 생기며 이것이 사회통합을 저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재벌은 ‘대기업집단’이라고 불러라. 자본주의→시장경제, 정글자본주의→상생경제, 과당경쟁→시장경쟁, 기업의 사회적 책임→기업의 사회공헌, 시장점유율→소비자선택율, 시장지배적 사업자→소비자선택 사업자, 급진적 자유주의→순수자유주의, 자유방임주의→불간섭주의, 사적소유→개인소유, 사기업→민간기업, 보수와 진보→우파와 좌파로 바꿔 쓰라는 것이다. 

인간은 언어를 통해 사유한다. 전경련의 이런 움직임은 단어의 사전적 의미를 변질시켜 인간의 사고를 통제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조지 오웰의 ‘1984년’을 떠올려 전율을 느끼게 한다. 절대자 대형(Big Brother)은 ‘신어’를 통해 단어를 삭제하면서 인간의 사상을 통제한다. '자유'라는 개념은 사라지고 ‘예속’이란 의미가 그 자리를 차지한다. 사상죄에 해당되는 낱말도 개념도 없어진다. 전경련이 사회분열을 획책하면서 사회통합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대중매체를 통해 조직적-체계적 여론조작을 기도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전경련은 20여년간의 홍보활동을 통해 이미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대중매체에서 재벌이란 단어는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거의 사라졌다. 재벌은 대기업, 재벌총수는 대기업 총수로 표현한다. 

한국재벌은 단순한 기업집합이 아니다. 총수 1인이 혈연을 중심으로 순환출자를 통해 지배하는 다계열-다업종의 거대한 기업집단이다. 수직적-수평적 기업결합을 통해 잡제품에서 첨단제품까지 생산-판매에서 배타적 지배력을 행사한다. 거의 전업종에서 사업을 영위하는 것이다. 방대한 규모만큼이나 정치적-경제적 영향력이 막강한 자본권력이다. 세계적으로도 한국재벌 같은 기업집단은 없다. 한국재벌과 유사한 기업집단이 일본과 독일에 있었으나 2차 대전 이후 해체됐다. 그 까닭에 구미(歐美)언론은 재벌을 표현할 적절한 단어가 없어 그냥 음역해서 ‘chaebol'이라고 부른다. 영어사전에도 등재되어 있다. 한국의 대중매체가 재벌=대기업라고 등식화해 쓰는데 이것은 틀린 표현이다. 대기업은 규모면에서 중소기업의 대칭어이지 기업집단이란 뜻이 없다. 

1987년 체제 이후 역대 정권이 경제민주화에 관한 헌법정신을 망각하고 있었다. 하나 같이 규제완화를 통한 효율성을 합창해 왔다. ‘완화’도 모자라 ‘철폐’, ‘혁파’를 입에 달고 다니며 외쳤다. 그 결과 경제력이 재벌로 더욱 집중되고 빈부격차가 극대화되었다. 강자가 약자의 이익을 뺏어가는 약탈적 사회구조가 고착화한 것이다. 국회가 경제민주화와 관련한 법안들을 논의하자 재계가 반자본주의, 반시장주의라고 주장하며 반격에 나섰다. 법안내용들이 이 본질적인 재벌개혁과 거리가 먼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경제민주화를 방기하여 빈부격차가 더욱 벌어지면 재벌의 존립기반도 위협받는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언론광장 공동대표
(건달정치 개혁실패), (경제민주화시대 대통령) 등의 저자 
본지 고문 

2012년 9월 4일 화요일

세계 경제 위기에도 그들은 불황을 몰랐다


이글은 프레시안 2012-09-04일자 기사 '세계 경제 위기에도 그들은 불황을 몰랐다'를 퍼왔습니다.
[민생복리가 경제민주화다] (7) 빈부격차 최대, 주말 거리는 좌판 행렬

지구촌을 강타한 2008년 9월 미국발 세계적 금융위기에 이어 유로존의 재정위기가 아직도 그 꼬리를 다 드러내지 않고 있다. 하지만 한국의 부유층은 처음부터 그 사정권에서 벗어나 무풍지대에 사는 느낌이다.서울 강남에 몰렸다던 외제 승용차가 지방도시로 빠르게 보급되면서 승용차의 크기도 빠르게 대형화하고 있다. 세계유명상표 매장으로 탈바꿈한 백화점은 대중품을 취급하는 대형매장과는 달리 판매가 늘고 있다.

부유층이 찾는 술집, 밥집, 골프장 등은 불황을 모른다. 피한여행-피서여행의 행렬도 점점 길어져 공항은 항시 만원이다. 이와 달리 빈곤층의 그늘은 갈수록 짙어진다. 황학동 벼룩시장이 동대문 운동장으로 옮겼으나 2008년 그곳이 헐리면서 다시 신설동 풍물시장으로 이전했다. 벼룩시장을 시설물로 집단화하면서 서울 시내에서는 좌판시장이 한때 사라졌다.

그런데 이제는 주말이면 거리에 좌판을 펴고 잡동사니를 파는 행상들이 쏟아져 나온다. 종로통을 거쳐서 동대문을 지나 신설동까지 인도변을 따라 뒷골목까지도 행상, 좌판 행렬이 이어진다. 신당역에서 청계천을 잇는 거리, 동묘 인근, 신설동 풍물시장 주변에도 커다란 좌판시장이 형성된다. 2~3년 전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그 규모가 커졌다.

지난 몇 년 새 먹고살기가 더 어려워지자 달라진 풍경이다. 더러 값깨나 나가는 물건도 있지만 주로 쓰다 버리거나 쓰다 남은 잡동사니나 헌옷가지를 판다. 다 팔아도 몇 만 원, 몇 천 원이 될까 말까싶다. 사는 사람보다 파는 사람이 더 많아 보인다. 그래도 하루 벌이를 하려고 여름날 뙤약볕이나 엄동설한에도 거리에서 손님을 기다린다. 직장에서 쫓겨나거나 자영업을 하다가 망한 사람들이 그만큼 많이 늘어났다는 소리다.

정부통계를 보더라도 양극화 사회에서 저소득층의 절박한 삶이 그들을 거리로 내몰고 있음이 짐작된다. 2009년 6월 자영업자가 1년 전에 비해 28만7000명이나 줄었다. 일손을 돕는 가족까지 합치면 34만7000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경기불황 탓도 크지만 유통재벌들이 기업형 슈퍼마켓을 통해 골목상권을 침탈하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2009년 5월 임시직이 8만9000명, 일용직이 13만8000명 감소하는 등 취약계층의 고용사정이 크게 악화됐다.

▲ 세계 유명 상표 매장으로 탈바꿈한 백화점은 판매가 늘었다. 사진은 롯데백화점 부산본점이 2011년 8월 25일 롯데호텔에서 연 '제5회 해외 명품대전'.. '명품' 이월 상품을 최대 70%까지 할인 판매하는 행사였다. ⓒ연합뉴스

2009년 2/4분기 대학졸업 실업자가 34만3000명으로 1년 전에 비해 6만4000명이 늘어났다. 그중 20대가 17만9000명, 30대가 9만7000명, 40대가 5만1000명이다. 30-40대의 상당수는 구조조정에 밀려 퇴직했을 가능성이 크다. 20대 실업자는 기업들이 신규인력 채용을 기피하면서 크게 증가한 탓이다. 취업난으로 인해 사실상 구직활동을 포기한 20대가 24만5000명이나 되는데 이 또한 2008년에 비해 5만5000명이나 늘어난 것이다.

비정규직법은 그냥 두면 큰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기업의 능력에 따라 비정규직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이명박 정권이 나서 100만 명 해고대란설을 유포하면서 계약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연장한다고 난리를 피운 바람에 고용시장을 더욱 악화시켰다. 그것도 고용안정에 힘써야 할 공기업이 앞장섰다. 공기업 선진화 시책에 따라 인건비를 절감한다며 비정규직을 무더기로 해고했던 것이다. 해고가 선진화라니, 고용안정을 기대하기 어려운 정권이다.

불황의 여파로 빈곤층의 삶이 더욱 궁핍해지고 있다. 2009년 1/4분기 하위 10%의 월평균 소득이 45만6487원으로 2008년 동기에 비해 7만4328원이나 줄었다. 그중 절반에 가까운 20만 원은 정부 등에서 나온 지원금인데 그나마 2008년보다 3만7097원이나 준 것이다. 일해서 번 돈은 고작 13만5000원에 불과했다. 반면에 지출은 2008년보다 10만1109원이 감소했지만 126만6478원이나 되어 심각한 적자를 나타냈다.

도시노동자의 소득격차도 갈수록 벌어진다. 2009년 1/4분기 상위 10%의 월평균 소득은 1023만7410원으로 2008년 같은 기간에 비해 3.4% 증가했다. 반면에 하위 10%의 소득은 95만9338원으로 오히려 9.7%나 감소했다. 이에 따라 상위 10%와 하위 10%의 소득격차는 2008년의 9.32배에서 사상 최대인 10.67배로 더욱 벌어졌다. 감세혜택이 주로 고소득층에 돌아갔기 때문이다.

자영업 폐업과 대량해고로 인해 가계가 무너진다. 법원의 개인파산 심사가 까다로워졌지만 2009년 들어 신청건수가 높은 증가세를 나타났다. 1월 7928건, 2월 9132건, 3월 1만892건 등이었다. 신용회복위원회에 신청한 금융기관 개인채무조정도 급증세를 보였다. 3개월 이상 연체로 인한 신청이 2009년 1/4분기에 2만4004건이나 되었다. 이것은 2008년 같은 기간에 비해 55%나 늘어난 것이다.

빈부격차를 나타내는 지니계수가 2008년 0.325로 1990년 조사를 시작한 이래 최고치를 나타냈다. 취약계층에 대한 재정지출은 소득재분배의 기능을 갖는다. 그런데 재정지출을 줄였으니 2009년에는 그 격차가 더욱 벌어졌을 것이다. 입으로만 아무리 민생을 외쳐봤자 소용이 없다. 정책방향을 바꾸어야 한다. 사회안전망을 확충하고 비정규직을 축소하고 세제도 역진성(逆進性)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간접세제를 고쳐야 한다.

 /김영호 언론광장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