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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9월 3일 월요일

고물가-전세난이 등록금 투쟁 불렀다


이글은 프레시안 2012-09-03일자 기사 '고물가-전세난이 등록금 투쟁 불렀다'를 퍼왔습니다.
[민생복리가 경제민주화다] 대학생 신용불량자 양산하는 사회

등록금 1000만 원 시대의 대학생들은 불쌍하다. 부모들의 학창시절에도 고학생들이 있었다. 학자금을 스스로 벌어서 고생하며 학교에 다닌다고 해서 고학생이라고 불렀다. 그때는 일거리가 주로 가정교사였다. 입주하는 경우 학자금도 벌지만 숙식이 해결되어 요즈음 학생들보다 덜 고달팠다.

지금은 가정교사가 거의 사라졌다. 중고등학생들이입시전문학원에 다니기 때문이다. 말이 아르바이트이지 대학생들이 할 만한 일거리가 별로 없다. 막노동 아니면 밤일, 허드렛일뿐이다. 밤새 학원순례를 마친 고3들이 수업시간에는 엎드려 잔다지만 대학에도 조는 학생들이 수두룩하다. 막일, 밤일로 몸이 지친 탓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1년 내내 버는 돈이 1000만 원이 될까 말까하다. 이런 판에 대학생들이 학자금, 생활비를 번다는 게 여간 어렵지 않다. 설혹 벌더라도 지방 출신의 경우 방세 내고 먹고 나면 남는 게 없다. 그 까닭에 적지 않은 대학생들이 휴학, 복학을 반복하다 졸업한다.

보통 월급쟁이라면 자녀 둘을 한꺼번에 대학에 보낼 수 없다. 아들이라면 군대에 보내고 딸이라면 번갈아 휴학해서 막일로 학비를 마련한다. 그 까닭에 입학 후 4년 만에 졸업하는 학생들이 그리 많지 않다. 일에 치여 시간에 쫓기니 졸업도 취직도 걱정이 태산 같다. 부모의 도움으로 학비 걱정하지 않는 학생이라면 공부에 열중하고 소위 스펙도 열심히 쌓으니 취직이 훨씬 수월한 편이다.

대학등록금이 올라도 올라도 너무 올랐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2001년 5월~2010년 5월 10년간 소비자물가가 36.4% 올랐다. 대학등록금은 이보다 2배 전후로 인상됐다. 국공립대학교가 88.2%, 사립대학원이 82.1%나 뛰어 소비자물가보다 2배 이상 올랐다. 그 다음은 전문대학 70.9%, 국공립대학원 69.3%, 사립대학 63.3% 순으로 뛰었다. 전체교육물가 상승률 53.3%보다도 훨씬 높다.

이 기간 입시학원비가 대입종합반 74.0%, 고입종합반 65.1%로 크게 올랐다. 대학들이 입시학원 수준만큼 경쟁적으로 등록금을 올린다는 소리다. 그래서 대학생들이 거리로 뛰어나와 반값 등록금을 외쳤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벌금폭탄밖에 없다.

ⓒ프레시안(김윤나영)

대학들이 생활협동조합이 운영하던 식당, 매점, 기숙사 등 편의-주거시설을 점차 재벌 계열사로 넘기고 있다. 이윤을 추구하는 상업자본에 경영을 위탁하니 물가가 비쌀 수밖에 없다. 학교 인근 식당도 임대료가 비싸 가난한 학생들이 이용하기에는 너무 벅차다.

이런 판에 이명박 정권이 고환율 정책을 견지함으로써 수입물가 앙등에 따른 생활물가 폭등으로 대학생들의 생활이 더욱 궁핍해졌다. 정부통계를 인용할 필요도 없다. 학교부근에서도 5000원 이하 밥을 찾기 어려워졌다. 도심지보다 2000~3000원가량 싸지만 값이 싼 만큼 내용이 부실하다. 밥값이 이렇게 비싸니 집안사정이 어려운 학생들은 라면 따위로 끼니를 때우는 실정이다.

전세대란이 대학가에도 직격탄을 날렸다. 지방 출신만이 하숙이나 자취를 하는 것이 아니다. 취직시험을 준비하느라 통학시간을 줄이려고 학교 부근에 둥지를 트는 학생들이 많다. 기숙사 들어가기는 하늘의 별따기다. 원룸은 이제 대학생들의 기거처가 아니다. 전세파동에 밀려난 신혼부부들의 차지가 됐다.

학기가 바뀔 때마다 보증금과 월세를 올려달라는 바람에 대학가를 떠나 더 싼 하숙집, 자취방, 고시원을 찾아 변두리로 변두리로 헤매도 싼 방이 거의 없다. 뉴타운 개발로 옥탑방, 지하방이 많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방을 얻으면 교통비도 만만찮다. 다리 뻗고 내 몸 하나 누울 공간을 찾지 못한 그들은 지금 절망하고 있다.

대학생 신용불량자가 2007년 3785명에 불과했다. 그런데 2011년 4월 무려 3만57명으로 7.94배나 늘어났다. 사회생활도 시작하기 전에 신용불량자가 된 것이다. 이것은 경제정책 실패에 따라 나타난 물가폭등-전세대란의 한 단면이다. 또 대학 등록금이 많은 학부모들의 부담능력을 넘어섰음을 말한다.

최저소득계층 보호를 위한 최저임금 인상에는 기업들이 부담능력을 이유로 아주 인색하다. 그럼에도 역대 정권이 대학등록금 인상률이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훨씬 능가하도록 방치하여 등록금 1000만 원 시대가 열렸다. 보통 월급쟁이 연봉을 5000만 원으로 치면 자녀를 대학 보내기가 너무 벅차다. 연간 등록금 1000만 원에 교재값, 교통비, 숙식비, 잡비 등 생활비를 1000만원으로 잡으면 나머지 가족은 생계를 꾸릴 형편이 안 된다.

이런 현실에서 이명박 집권세력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가관이다. 반값 등록금은 복지 포퓰리즘이니까 안 된다는 것이다. 성층권에서 호사하는 부자정권의 실세들에게야 허튼소리로 들릴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반값 등록금은 누가 먼저 꺼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반값 등록금은 이명박 정권의 선거공약이었다. 대학생들의 요구가 꼭 반액으로 낮추라는 것은 아니다. 현실성 있게 낮추고 다양한 장학제도를 마련하라는 소리일 것이다. 경제정책 실패가 등록금 투쟁에 불을 붙였다는 사실을 각성해야 하나 그들은 들을 자세조차 갖지 않았다.

 /김영호 언론광장 공동대표

2012년 8월 27일 월요일

신용불량자 1년 새 24%나 급증 ‘불황의 늪’ 깊어간다


이글은 경향신문 2012-08-26일자 기사 '신용불량자 1년 새 24%나 급증 ‘불황의 늪’ 깊어간다'를 퍼왔습니다.

ㆍ늘어난 가계 빚과 맞물려… 신용 최하위 등급도 금융위기 이후 최고

경기침체가 장기화하면서 빚을 갚지 못하는 사람이 1년 새 크게 증가했다. 신용도 최하위 등급인 10등급 비중도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최고치다.

26일 나이스신용평가정보에 따르면 3개월 이상 원금과 이자를 갚지 못한 신용불량(채무불이행) 신규발생지수는 지난 3월 기준 20.80을 기록했다. 지난해 4월 16.83에 비해 1년 새 23.6% 높아진 것이다.

신용불량 신규발생지수는 매월 새로 발생하는 신용불량자를 나이스신용평가정보가 지수화한 것으로 지수가 높을수록 신용불량자가 많이 발생했다는 의미다. 신용불량자는 금융기관 대출을 비롯해 신용카드 사용, 할부금융 등에서 골고루 늘어났다.


정상적인 경제활동이 어려운 신용도 최하위 등급(10등급)의 비중 역시 금융위기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보였다. 코리아크레딧뷰로(KCB)가 집계한 10등급은 지난 5월 말 기준 40만5000명이다. 2010년 말 33만3000명과 비교해 전체 등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0.84%에서 1.00%로 늘어났다.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10등급 비중이 가장 높았던 2009년 말(1.21%·45만8000명) 이후 가장 큰 규모다.

나이스신용평가정보는 “개인 신용등급별 불량률(연체율)에서 10등급의 불량률도 크게 높아졌다”고 밝혔다. 불량률은 3개월 이상 연체를 기준으로 최근 1년간 연체자가 얼마나 발생했는지 나타내는 지표다.

지난해 6월부터 올해 6월까지 발생한 10등급 불량률은 전체 10등급자 가운데 33.52%였다. 지난 3월 기준은 32.30%, 지난해 말은 30.91%로 늘어나는 추세다. 

신용불량자 급증은 경기침체와 맞물려 있다. 경기 상황이 호전되지 못해 돈벌이가 막막해진 서민층의 빚은 점점 늘어나고, 이자를 갚기도 어려운 상황에 처하면서 연체율이 증가하는 것이다. 

불안해진 고용시장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정규직보다 임시·일용직과 생계형 자영업자가 늘어나고 있어 실질소득이 점차 줄어드는 데다 소득의 질도 나빠지고 있다.

금융감독원 통계를 보면 은행의 가계대출 연체율은 지난 5월 말 0.97%로 전달보다 0.08%포인트 높아졌다. 주택담보대출을 제외한 가계의 신용대출 연체율도 1.21%로 전월 대비 0.13%포인트 상승했다. 서민층이 이용하는 햇살론의 최근 연체율은 7% 안팎이다. 집값이 떨어지면서 5월 말 기준 은행권의 집단대출 연체율도 1.71%를 기록했다.

김윤기 대신경제연구소 조사실장은 “경기가 안 좋아지면 소득구조상 저소득층의 피해가 가장 크다”면서 “금융기관의 대출이 더욱 엄격해지는 상황에서 저소득층이 고금리 대출과 사채시장에서 생활자금을 조달하고 있어 신용불량자가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희연 기자 egghee@kyunghyang.com

2012년 7월 20일 금요일

대학생 학자금 대출연체율, 사상 최고로 급등


이글은 뷰스앤뉴스(Views&News) 2012-07-20일자 기사 '대학생 학자금 대출연체율, 사상 최고로 급등'을 퍼왔습니다.
연체액 3천억원 육박, "사회생활전에 신불자로 전락"

대학생들이 학자금 대출금을 제때 갚지 못하는 연체비율이 지난해 최고로 급등한 것으로 나타났다.

19일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가 정보공개를 요구해 교육과학기술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학자금 대출 연체율은 4.99%에 달했다. 연체건수는 7만4천150건, 연체액은 2천297억원으로 3천억원에 육박했다.

정부가 학자금 대출을 처음 시행한 2005년 연체율은 2.01%(건수 3천780건, 금액 105억원)이었으며 2006년 3.06%(2만1천984건, 657억원), 2007년 2.96%(4만1천455건, 1천266억원), 2008년 2.65%(5만6천456건, 1천759억원), 2009년 3.3%(7만4천133건, 2천394억원), 2010년 3.45%(5만9천1건, 1천858억원) 등이었다.

미국발 금융위기 발발 직후인 2009년부터 연체율이 수직상승하고 있는 것.

대출 규모는 해마다 크게 늘어 2005년 29만4천명에 8천923억원, 2006년 51만5천명에 1조6천256억원, 2007년 61만5천명에 2조1천296억원, 2008년 63만5천명에 2조3천486억원, 2009년 67만5천명에 2조5천125억원, 2010년 76만6천명에 2조7천875억원, 2011년 73만3천명에 2조6천853억원이었다.

정보공개센터는 "많은 학생들이 고금리 족쇄로 인해 사회 생활을 시작하기도 전에 빚쟁이 신세가 돼 결국 신용불량자로까지 전락하고 있다"며 반값등록금 등 획기적 대책을 주문했다.

김혜영 기자

2012년 5월 29일 화요일

[최장집칼럼]누가 신용불량자 문제를 방치하나


이글은 경향신문 2012-05-28일자 기사 '[최장집칼럼]누가 신용불량자 문제를 방치하나'를 퍼왔습니다.
지난 칼럼(5월22일자 31면)에서 만났던 신용불량자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구로구 궁동의 박영신씨(가명)는 현재 다섯 식구를 위한 최소한의 생계비 월 150만원의 절반인 70만~80만원의 수입으로 절대적인 마이너스 생활을 하고 있다. 그런데도 기초생활보장 혜택을 받지 못하고,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증후군을 갖고 있는 큰아이로 인해 월 15만원의 장애수당만 받는다. 지난 총선 때는 선거운동 일을 봤고, 지금은 식당에서 일하는 등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나 파트타임 노동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녀는 왜 수입이 더 나은 일자리를 찾지 않을까. 신용불량자라는 전력이 있기에 점포의 계산대나 콜센터 서비스와 같이 돈·신용과 관계된 일자리를 가질 수 없다. 신용카드도 만들지 못한다. 휴대폰도 갖지 못한다. 사실상 사회로부터 격리돼 있는 상태다. 

신용불량자로서 사채업자들의 위협에 시달리면서 그녀가 겪었던 경제적·육체적·정신적 고통으로,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갖게 돼 좁은 공간에서 일하는 사무일도 보기 어렵다. 또한 어린 자녀를 돌봐줄 사람이 없어 장시간 집을 비우는 파출부 같은 것도 할 수 없다. 그녀가 먹고살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란 실로 한정된 것이다. “나라에서 불법자로 찍히면 발목 꽉 잡혀 빼도박도 못하죠. 한번은 기회를 줘야 하는데…. 한순간 잘못한 것이 이렇게 큰 결과를 가져올지 몰랐어요”라고 그녀가 말할 때, 회한과 항변이 교차하고 있었다.

청소일을 하는 최태일씨(가명)는 궁동의 박씨보다 상황이 나아 보였다. 박씨는 아버지가 암으로 사망했을 때 장례비가 없어 시신을 병원에 기증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최씨는 가정형편이 좀 나아 가족들의 도움으로 부채의 급한 부분을 빨리 정리할 수 있었고, 어머니에 의탁해서 살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아직 가정을 갖지 않은 건강한 청년으로 고된 노동일을 할 수 있었다. 최씨의 청소노동은, 두 사람이 한 조가 돼서 이루어진다. 먼저 새벽에 나가 아침 9시까지 일한 뒤 집에 돌아와 한잠 잔다. 그리고 오후 4시 반에 나가 다음날 새벽 6시까지 일하는 것으로 한 사이클이 끝난다. 그리고 하루를 쉬고 다시 시작하는 것으로 노동시간이 짜여 있다. 

필자가 최씨를 만난 날은 노동절이어서 “오늘은 쉬지 않느냐”고 물었는데, 그는 자기는 쉬는 날이 없다고 대답했다. 그가 하루에 처리하는 쓰레기양이 1만가구에 이른다고 했는데, 생각해보니 엄청난 양이다. 최씨는 월평균 220만~230만원의 임금을 받는데, 외주업체에 소속된 작업원들은 구청 소속의 작업원들에 비해 일은 더 힘들고, 받는 금액은 훨씬 적다고 말한다. 노동시장의 중심 제도인 파견법, 변형근로제는 인력장수들에게는 커다란 혜택이 돌아가지만 비정규직에게는 가혹하기 그지없는 제도다.

세탁소를 운영하는 장재선씨(가명)는 신용불량자들이 선택할 수밖에 없는 편법에 대해 말한다. 신용불량자인 그 역시 통장에 자기 돈 넣고 찾는 체크아웃카드를 사용하는 것 말고는 은행거래를 할 수 없고, 휴대폰도 가질 수 없다. 하지만 남아 있는 편법은 구청 사회복지사가 된 딸 명의를 이용해 이를 피해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가명을 사용하는 수많은 신용불량자들이 자신들을 배제한 제도권 경제 안으로 들어와 이중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나와 헤어질 때 장씨는 조용조용한 인상과는 달리 “이곳 거마(거여·마천동) 지역은 서민 밀집지역이고, 사채업자나 일수업자들이 많아요. 국가는 재벌들 자회사인 금융회사들에 많은 대출도 해주는데, 없는 사람들은 고금리로 내몰고 있지요.”라며 강한 어조로 불만을 토로했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궁동의 박씨가 “(인생이) 너무 어려서 시작해 너무 어려서 끝나 버린 것 같아요. 다시 일어나는 것도 힘들다고 생각해요. 하루 먹고 하루 살다가 결국 애들에게 대물림될 거예요”라고 했던 말은 커다란 여운을 남긴다. 경제적으로 박탈당한 그들에게 새겨진 ‘낙인’으로 인해 정상적인 사회관계가 어려워지는 이러한 조건은, 민주주의를 가능케 하는 정치적 참여의 권리, 즉 제레미 왈드론(Jeremy Waldron) 같은 법철학자들이 말하는 ‘권리 중의 권리’(the right of rights)마저 박탈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신용불량자 문제가 잘못된 정책으로 만들어진 문제이고, 따라서 정치적으로 해결되어야 한다는 인식을 어렵게 하는 것은, 사회에 널리 퍼져 있는 어떤 도덕적 인식과 깊이 연관돼 있다. 그것은 모든 것을 과시적 허영심이나 자제력 없는 소비욕구 내지 도덕성의 결여와 같이 신용불량자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생각을 말한다. 그로 인해 신용불량자 문제가 사회경제적 문제이자 정책결정자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정치적 문제라는 인식은 사라져버리고 만다. 

제도권 밖에 이리저리 흩어져 보이지 않는 곳으로 밀려나 있는 신용불량자들 스스로가 자신들의 문제를 도덕적으로 정당화하면서 정치적 이슈로 만드는 일은 쉽지 않다. 게다가 금융 관련 문제는 복잡한 기술적 문제를 포괄하고 있어 전문가 아닌 보통사람들이 문제 해결 방안을 찾아내기도 어렵다. 다양한 성격의 광범위한 일반 소비자들로 이루어져 있는 이들을 공통의 정치적 요구를 갖는 하나의 사회집단으로 조직해서 목소리를 갖게 하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할 정도로 어렵다. 

이런 환경에서 ‘1인 운동’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민생연대’ 송태경 사무처장의 활동은 진정한 의미에서 진보적인 것으로 보인다. 필자가 인터뷰한 박영신씨, 신영환씨는 모두 송 처장의 법률자문 덕분에 파산처리 과정에서 더 큰 재난을 피할 수 있었다. 필자가 송 처장과의 인터뷰를 위해 영등포구 당산동의 조그만 사무실을 방문했을 때, 속초에서 상경한 한 여성 보험설계사 역시 송 처장으로부터 결정적인 도움을 받았다고 내게 말했다. 그러나 송 처장이 누구도 하지 못하는 운동을 통해 여러 사람의 경제적 파탄을 경감시켜 주는 데 큰 기여를 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가 다루고 도와줄 수 있는 범위는 지극히 한정적이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말할 것도 없이 신용불량자들을 위한 정치적 대표가 있어야 한다. 오늘날 우리는 잘못된 이념적 급진주의에 의해 주도된 진보정치가 민중의 권익 증진에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그만두고라도, 민주주의 그 자체에 해악적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분명히 보고 있다.

제대로 된 진보정당이 신용불량자 문제를 진지하게 접근하는 데는 두 가지 요소가 필수적이다. 첫째는, 신용불량자 문제를 포함하여 금융정책을 실제로 다룰 수 있는 당의 제도와 조직체계를 조직하는 일이다. 이는 관련 이해당사자 집단, 예컨대 신용불량자, 비정규직 노동자, 복지수혜 대상자, 청년 등이 정책 이슈 제기에서 아젠다 형성, 정책 대안 마련에 이르기까지 보다 더 가까이 참여하거나 접맥될 수 있는 방향으로 정당 활동의 체계가 달라지는 문제를 말한다. 당의 조직과 역할은 시민의 실생활로부터 발생하는 문제들을 해결하는 과업에 부응할 수 있도록 변화되지 않으면 안된다. 그렇지 않고서 진보냐 아니냐를 따지는 것은 별다른 의미를 갖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실제 사태를 못 보게 만드는 역기능이 될 수 있다. 

둘째는, 정책 이슈와 대안들이 이념적 거대담론으로부터 직접 도출되지 않아야 한다. 담론 내지 공론장에서의 논의는 추상 수준이 높은 관념성에서 벗어나, 사회경제적 문제를 실제로 다룰 수 있도록 구체화되고 현실성을 갖지 않으면 안된다. 이 점에서 경제민주화, 보편적 복지, 재벌개혁과 같은 포괄적이고 추상 수준이 높은 슬로건이나 언어는 불필요할 뿐만 아니라 공허한 구호를 반복하는 것에 그치는 역효과를 갖는다. 추상적 언어가 꼭 필요하다면, 개별적이고 구체적 정책 대안들이 충분히 형성된 후에나 불러들여질 수 있을 것이다. 마키아벨리는 추상적이고 일반적인 사안으로 민중을 속이기는 쉬우나 구체적인 사안에서는 그렇게 하기 어렵다고 말한 적이 있다. 추상적 이념에 헌신하나 구체적 실천에는 관심이 없는, 진보의 이름을 딴 습관성 정치구호나 관성화된 행태를 더는 보고 싶지 않다.

최장집 | 경향시민대학 학장·고려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