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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3월 30일 토요일

경기 침체 우려 강조해 ‘12조원 + α추경’ 못박기


이글은 경향신문 2013-03-29일자 기사 '경기 침체 우려 강조해 ‘12조원 + α추경’ 못박기'를 퍼왔습니다.

ㆍ정부 ‘재정절벽’ 얘기 왜 나왔나ㆍ2009년 마이너스 성장때 ‘슈퍼추경’ㆍ지난해 0%대지만 플러스 성장 유지ㆍ한은은 경제 낙관 금리 동결 ‘엇박자’

정부는 29일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 필요성을 이야기하면서 ‘재정절벽’을 언급했다. 이석준 기획재정부 2차관은 이날 기자 브리핑에서 “추경 규모는 12조원 플러스 알파가 될 것이며 추경이 없으면 한국판 ‘재정절벽’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추경 편성이 이뤄지지 않으면 올 하반기쯤 정부의 재정 지출이 뚝 끊기게 되고, 그 결과 한국 경제가 절벽에서 추락하듯 큰 충격을 받을 것이라는 시나리오다.

정부는 추경이 아니면 극복하기 어려울 정도로 현재의 경제 상황이 너무 심각하다고 보고 있다. 지표상으로 나타나는 한국 경제는 분명 좋은 상태라고 할 수 없다. 이날 통계청이 내놓은 ‘산업활동 동향’을 보면 2월 광공업 생산은 제조업(-1.2%) 하락세의 영향으로 전달보다 0.8% 감소했다. 지난해 9~12월 오름세를 타다 올해 1월 마이너스로 돌아선 뒤 침체가 이어지고 있다. 올 들어 무역수지 흑자폭이 확대됐지만 수출이 늘어서라기보다는 수입이 더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이 같은 판단을 근거로 정부는 올 경제성장률이 2.3%를 기록할 것으로 내다봤다. 지난해 말만 해도 올 경제성장률을 3.0%로 전망했지만 3개월 새 0.7%포인트 낮췄다.

그러나 한국 최고 권위의 경기 예측기관인 한국은행의 경기 인식은 다르다. 한은은 경제 상황을 다소 낙관적으로 보고 지난 14일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한은의 ‘최근 국내외 경제동향’ 자료를 보면 미국은 2월 취업자 수가 전월보다 늘고 주택가격 상승률도 확대되고 있다. 중국 또한 수출 증가율이 두 달째 20%대를 기록했다. 한국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는 미국과 중국 경제가 조금씩 회복 기미를 보이고 있어 금리를 낮춰야 할 정도는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다.

추경 부담은 결국 국민이 져야 한다. 국가재정법은 추경의 편성 요건을 엄격하게 규정하고 있다. 전쟁이나 대규모 자연재해가 발생한 경우, 경기침체·대량실업 등 대내외 여건에 중대한 변화가 발생했거나 그럴 우려가 있는 경우, 법령에 따라 국가가 지급해야 하는 지출이 발생하거나 증가하는 경우로 한정하고 있다. 조원동 청와대 경제수석과 이석준 재정부 2차관이 이날 한목소리로 재정절벽을 언급한 것은 현재의 경제 상황이 국가재정법에서 언급한 경기침체·대량실업 등이 발생할 우려가 있는 경우에 해당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하지만 통상 경기침체라고 하면 2분기 연속 분기 성장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한 경우를 말한다. 2009년 ‘슈퍼 추경(28조4000억원)’ 당시 2008년 4분기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 4.6%로 급락해 추경이 불가피했다. 그러나 이번 추경의 배경이 되는 지난해 분기 성장률이 0.9%, 0.3%, 0.1%, 0.3% 등으로 저조한 수준이지만 플러스를 유지했다.

재정 지출 감소 규모도 따져볼 필요가 있다. 정부는 올해 예산 중에 12조원 결손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 8월 기획재정부가 국제통화기금(IMF)의 자료를 인용해 미국의 재정절벽을 설명한 자료를 보면 ‘미국에서 국내총생산(GDP) 대비 4% 이상의 재정 감축이 이뤄질 경우’라는 전제를 달았다. 한국의 GDP가 약 1200조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미국처럼 재정절벽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50조원가량의 재정 감축이 발생해야 한다.

민간 경제연구소 관계자는 “경제 상황이 나쁜 것은 맞지만 정부가 추경을 밀어붙이기 위해 다소 과장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강동수 한국개발연구원(KDI) 거시·금융정책연구부장도 “추경을 해야 한다는 것이 아주 틀린 정책은 아니지만 정부 인식이 이례적으로 비관적”이라고 말했다.

오창민·박병률 기자 riski@kyunghyang.com

2012년 11월 19일 월요일

대선특수 실종.. 더 싸늘해진 경기


이글은 파이낸셜뉴스 2012-11-18일자 기사 '대선특수 실종.. 더 싸늘해진 경기'를 퍼왔습니다.

2002·2007년과 달라진 18대 선거
경기침체로 '대선(대통령) 특수'가 실종됐다.
통상 대통령선거가 있는 해에는 술 소비량이 늘고 개발 공약이 쏟아지면서 부동산 가격이 들썩이는 등 대선특수가 있었으나 올해는 국내외 경기침체로 사실상 물 건너갔다는 분위기다. 호텔의 경우 항상 연말이면 기업 회의나 각종 모임 특수로 10월에도 자리를 잡기 어려울 정도로 예약이 꽉 찼으나 올해는 아직 빈자리가 있을 정도로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기업은 물론이고 식당 등 자영업자들도 지금이 대선 기간인지 모를 정도로 별다른 재미를 보지 못하고 있다고 하소연한다.
18일 업계에 따르면 과거 대선 때는 모임이 많아지면서 소주나 맥주 등 술 소비량이 증가했으나 올해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나타내고 있다.
소주는 지난 8월 이후 전년 동기 대비 판매량(월 기준)이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불황에 더 잘 팔린다는 소주마저 판매량이 줄고 있는 것이다. 맥주도 10월 이후 판매량 신장세가 꺾인 것으로 추정된다.
대선 때마다 호황이던 소주·맥주 매출이 줄어든 이유는 경기불황과 맞닿아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주폭(酒暴·만취상태에서 행하는 폭력)' 문제가 이슈화되면서 과음, 폭음을 자제하는 영향도 있다.
오비맥주 관계자는 "10월 맥주 판매량은 지난해 동기 대비 15% 이상 줄어들었고 연말 대선경기도 예년의 호황을 사실상 포기했다"면서 "경기불황이 지속됨에 따라 돈 씀씀이가 줄어드는 등 체감경기는 더 싸늘하다"고 했다.
제15대 대통령(김대중)이 선출됐던 지난 1997년에는 8227만8000상자(1상자=360mL×30병)의 소주가 팔렸다. 이는 전년에 비해 9.6%나 증가한 것이다. 특히 그해 12월 한 달에만 소주 판매량은 820만4000상자에 달해 전년 동월보다 무려 38.4%나 급증했다. 출판계도 지난 대선 때와 달리 찬바람이 불고 있다. 4년 전 이명박 후보의 '신화는 없다'가 대선 직전까지 출판시장을 독주하며 선거특수를 누린 것에 비해 올해는 안철수 후보가 쓴 '안철수의 생각'이 출간 직후 반짝인기를 누렸지만 지금은 베스트셀러 톱50 목록에도 빠져 있다. 교보문고 관계자는 "대선은 여전히 출판계의 가장 큰 이슈인 것만은 틀림없다"면서 "그러나 올해 대선에서는 대박을 터뜨릴 만한 대형 서적이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전기전자와 자동차업계, 철강 등의 분야도 대선특수가 사라진 것은 마찬가지다. 전기전자 분야의 경우 연말 성수기와 대선이 맞물렸지만 예년에 비해 냉장고, 세탁기, TV 등의 판매가 신통치 않다. 이들 가전제품의 11월 판매실적은 예년 동기 실적을 크게 밑돌고 있다.
자동차분야도 판매부진을 겪고 있다. 이에 따라 국내 자동차기업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할인판매에 잇따라 나서고 있다.
특급호텔도 대선특수가 없기느 마찬가지다.  동창회, 향우회 등 단체모임에 대한 기대가 있지만 올해는 연말인데도 오히려 예약률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정당 대표나 대선후보가 참석하는 것이 선거법에 저촉될 수 있는 만큼 잡음을 없애기 위해 가급적 모임을 줄이거나 늦추고 있다"면서 "과거에 비하면 단체모임 예약률이 10%가량 줄었다"고 설명했다.
부동산시장에서도 '대선 바람'은 불지 않고 있다. 과거에는 후보들이 뉴타운, 재개발.재건축, 토목사업 등 각종 개발사업 관련 공약을 내놓으면서 부동산 가격이 들썩이기도 했으나 올해는 부동산시장 활성화 공약이 전무한 데다 주택경기 침체가 장기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여야 대선 후보들은 전.월세 및 하우스푸어 대책을 찔끔 내놓은 것을 제외하고는 경제민주화와 복지 공약에만 매달릴 뿐 부동산시장에 대해서는 거론조차 하지 않고 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대내외적인 불안요소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선거특수'에 따른 큰 폭의 부동산 가격 변동을 기대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sdpark@fnnews.com 박승덕 최진숙 양형욱 윤경현 이보미 기자

2012년 8월 27일 월요일

신용불량자 1년 새 24%나 급증 ‘불황의 늪’ 깊어간다


이글은 경향신문 2012-08-26일자 기사 '신용불량자 1년 새 24%나 급증 ‘불황의 늪’ 깊어간다'를 퍼왔습니다.

ㆍ늘어난 가계 빚과 맞물려… 신용 최하위 등급도 금융위기 이후 최고

경기침체가 장기화하면서 빚을 갚지 못하는 사람이 1년 새 크게 증가했다. 신용도 최하위 등급인 10등급 비중도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최고치다.

26일 나이스신용평가정보에 따르면 3개월 이상 원금과 이자를 갚지 못한 신용불량(채무불이행) 신규발생지수는 지난 3월 기준 20.80을 기록했다. 지난해 4월 16.83에 비해 1년 새 23.6% 높아진 것이다.

신용불량 신규발생지수는 매월 새로 발생하는 신용불량자를 나이스신용평가정보가 지수화한 것으로 지수가 높을수록 신용불량자가 많이 발생했다는 의미다. 신용불량자는 금융기관 대출을 비롯해 신용카드 사용, 할부금융 등에서 골고루 늘어났다.


정상적인 경제활동이 어려운 신용도 최하위 등급(10등급)의 비중 역시 금융위기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보였다. 코리아크레딧뷰로(KCB)가 집계한 10등급은 지난 5월 말 기준 40만5000명이다. 2010년 말 33만3000명과 비교해 전체 등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0.84%에서 1.00%로 늘어났다.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10등급 비중이 가장 높았던 2009년 말(1.21%·45만8000명) 이후 가장 큰 규모다.

나이스신용평가정보는 “개인 신용등급별 불량률(연체율)에서 10등급의 불량률도 크게 높아졌다”고 밝혔다. 불량률은 3개월 이상 연체를 기준으로 최근 1년간 연체자가 얼마나 발생했는지 나타내는 지표다.

지난해 6월부터 올해 6월까지 발생한 10등급 불량률은 전체 10등급자 가운데 33.52%였다. 지난 3월 기준은 32.30%, 지난해 말은 30.91%로 늘어나는 추세다. 

신용불량자 급증은 경기침체와 맞물려 있다. 경기 상황이 호전되지 못해 돈벌이가 막막해진 서민층의 빚은 점점 늘어나고, 이자를 갚기도 어려운 상황에 처하면서 연체율이 증가하는 것이다. 

불안해진 고용시장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정규직보다 임시·일용직과 생계형 자영업자가 늘어나고 있어 실질소득이 점차 줄어드는 데다 소득의 질도 나빠지고 있다.

금융감독원 통계를 보면 은행의 가계대출 연체율은 지난 5월 말 0.97%로 전달보다 0.08%포인트 높아졌다. 주택담보대출을 제외한 가계의 신용대출 연체율도 1.21%로 전월 대비 0.13%포인트 상승했다. 서민층이 이용하는 햇살론의 최근 연체율은 7% 안팎이다. 집값이 떨어지면서 5월 말 기준 은행권의 집단대출 연체율도 1.71%를 기록했다.

김윤기 대신경제연구소 조사실장은 “경기가 안 좋아지면 소득구조상 저소득층의 피해가 가장 크다”면서 “금융기관의 대출이 더욱 엄격해지는 상황에서 저소득층이 고금리 대출과 사채시장에서 생활자금을 조달하고 있어 신용불량자가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희연 기자 egghee@kyunghyang.com

2012년 1월 23일 월요일

돌려막기 경제, 남은 카드가 없다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01-21일자 기사 '돌려막기 경제, 남은 카드가 없다'를 퍼왔습니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바로가기

» 독일 프랑크푸르트 중심가에 위치한 유럽중앙은행(ECB) 앞에 세워진 대형 유로화 상징물 밑으로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2008년 이후 금융 상황이 쉴 새 없이 악화되는 것을 가리키기 위해 쓰고 있는 ‘위기’라는 개념은 어떤 유구한 체계에 느닷없이 이상이 생겼음을 암시한다. 그렇다면 원상복구를 하기 위해 무절제했던 그동안의 행태를 고치는 것 정도로 충분할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 사태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서구 국가들에 도입된 민주자본주의가 넘을 수 없는 어떤 혼돈을 내포하고 있다면 어떨까?
매일같이 현 경제위기를 수놓고 있는 사건들을 보면 ‘시장’이 국가를 지배함을 알 수 있다. 자칭 ‘민주주의 주권국가’라고 하나 국가는 시민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에 한계를 그어놓고 시민이 요구할 수 있는 것에 양보를 종용하는 모습이다. 국민은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을 확인한다. 바로 정치 지도자들이 자국민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들은 국가나 민주주의의 준엄한 원리에서 비켜 있는 유럽연합(EU)이나 국제통화기금(IMF) 같은 국제기구들을 위해 봉사한다. 대부분은 지금 이런 상황에 대해 대체로 안정적 기초경제 여건에 사소한 장애가 발생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냥 위기라는 것이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
‘대불황’(Great Recession)과 그로 인해 거의 붕괴된 공공재정은 모두 시장의 요구와 민주주의의 요구 간 줄다리기에서 결국 자본주의 사회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음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시장과 민주주의 간의 갈등은 혼란과 불안정을 낳는다. 따라서 현 경제위기를 이해하려면 본질적으로 갈등을 내포한 ‘민주자본주의’라 부르는 이 체제의 변환을 조명해야 한다.
1960년대 말 이후 정치민주주의와 시장자본주의 사이의 모순을 뛰어넘기 위해 세 가지 방안이 차례로 도입됐다. 첫째 해결 방안은 인플레이션, 둘째는 공공부채, 셋째는 민간부채다. 각 방안의 해결 방식에 따라 경제세력, 정치권, 사회세력 사이에는 특별한 관계가 형성됐다. 그러나 이런 방안은 차례로 위기에 봉착했다. 2008년 금융 환란은 결국 세 번째 방안의 종언과 함께, 그 성격이 어떠할지 불확실한 새로운 관계의 시작을 보여준다.

민주주의와 시장, 태생적 갈등관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민주자본주의는 1960년대 말부터 첫 위기를 겪었다. 당시 서방세계 전체에 인플레이션의 소용돌이가 시작되고 있었다. 경제성장 침체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노사 갈등 해소와 평화로운 관계의 지속성을 급작스럽게 위협했다. 당시까지 수용된 관계 방식의 골자는 다음과 같다. 노동계층은 정치민주주의에 대한 대가로 시장경제와 사유재산제를 수용했다. 당시 정치민주주의는 사회보장과 지속적인 생활수준 향상을 보장했다. 20여 년간, 통제 없는 경제성장이 계속되면서 사회·경제적 진보가 민주시민권을 형성한다는 신념을 고착화했다. 정치 지도자들은 이런 세계관을 자랑스럽게 여겼으나, 다양한 정치적 요구들이 불거졌다. 복지국가 확장, 자유로운 단체협상에 관한 노동자의 권리와 완전고용의 정치적 보장 같은 요구였다. 정부는 케인스 경제정책을 대대적으로 실행함으로써 이 모든 요구 사항의 수용에 나섰다.
그러나 1960년대 말부터 성장세가 둔화되면서 이런 관계는 지속되기 힘든 상태에 이른다. 노동사회적 저항이 전세계에 확산되면서 불안정이 대두됐다. 아직 실업의 공포를 실감하지 못한 노동자들은 생활수준 향상 같은 자신의 진보적 권리라고 여겼던 모든 것을 포기하려 하지 않았다.

이후 몇 년에 걸쳐 서방세계의 정부는 모두 같은 문제에 직면한다. 어떻게 완전고용에 대한 케인스식 비전을 고수하면서 노조의 임금 인상 요구를 누그러뜨릴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 1970년대, 대부분의 서방 정부는 실질임금 상승을 억제하기 위해 실업률 상승을 내버려두면 자신의 존립 기반이나 민주자본주의를 위협하게 된다고 믿었다(이는 국가 최고위 계층에서 공유된 신념이기도 했다). 각국 정부는 이런 난관에서 벗어나려 완전고용과 자유로운 단체협상을 동시에 지속하면서 하나의 방안을 강구하게 되었다. 바로 인플레이션 확대를 각오하고 통화정책을 완화하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노동자에게 물가 상승은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물가 상승에 실질임금을 연동하도록 강요할 수 있는 상당히 강한 노조가 이들을 대변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인플레이션은 채권자와 금융자산 보유자, 즉 상대적으로 노동자층이 거의 없는 계층의 자산을 침식하면서 손해를 입혔다. 이런 점에서 인플레이션은 분배의 갈등이 통화를 통해 그대로 투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한쪽은 고용 안정과 국가 수입에 대한 더 많은 지분을 요구하는 노동자 계층이고, 다른 한쪽은 투자에 대한 이익 환수를 최대화하려 애쓰는 자본가 계층이다. 양쪽은 각자 회귀하게 되는, 서로 양립이 불가능한 사상을 토대로 한다. 한쪽은 시민권을 주장하고 다른 한쪽은 사유재산과 시장을 내세운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 인플레이션은 한 사회의 아노미를 표출한다. 사회 구성원 모두가 사회정의의 공통 기준에 대한 합의점에 도달할 수 없는 아노미다.

성장 둔화와 마주친 케인스주의
제2차 세계대전 직후 각국 정부들이 경제성장을 통해 계층 간 반목을 완화할 수 있었다면, 인플레이션은 실질 경제가 생산하지 않은 자원을 짜내면서 소비수준과 소득의 재분배를 유지할 수 있게 했다.
어쨌든 이런 갈등 중재 전략은 효과적이었지만 무한정 지속될 수 없었다. 결국 자산 보호에 고심하던 자본가 쪽의 반발을 야기했다. 이들의 대응으로, 처음에는 노동자에게 유리했던 인플레이션이 실업을 낳으면서 노동자를 벌하게 된다. 시장의 압력을 받은 각국 정부는 재분배 중심의 임금 합의를 포기하고 통화 규제로 돌아서게 된다.
제임스 카터 미국 대통령(1977~81)에 의해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으로 새로 지명된 폴 보커가 전례 없는 금리 인상을 단행하기로 결정하면서 인플레이션은 1979년 이후 안정됐다. 금리 상승 때문에 대공황 이후 초유의 실업을 기록하게 되었다. ‘폴 보커의 쿠데타’는 투표를 통해 인정받게 된다. 처음에는 보커가 취한 디플레이션 정책의 여파를 우려한다고 말했던 로널드 레이건이 1984년 재집권한 것이다. 1983년 영국에서는 미국 정책을 따르는 엄격한 통화정책으로 실업자가 급증하고 급속한 탈산업화가 야기됐음에도 마거릿 대처가 총리 연임에 성공했다. 두 나라에서 디플레이션은 노조에 대한 합법화된 탄압을 동반했다. 이후 몇 년에 걸쳐 자본주의 국가 전체에서 인플레이션은 제어됐지만 실업은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특히 프랑스의 실업률은 1980년 5%에서 1988년 9%로 증가했다. 같은 때 노조가입률은 급감했고 파업도 드물어져 일부 국가에서는 집계조차 그만두었다.
신자유주의 시대는 앵글로색슨 국가들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민주자본주의의 한 축을 폐기 처분한 시점에 시작됐다. 그 축이란 실업은 집권 정부뿐 아니라 사회 구성 방식의 존립 기반인 정치적 지지를 무너뜨린다는 생각이다. 전세계의 정치 지도자들은 레이건과 대처가 이끈 정책 경험을 큰 관심을 갖고 추종했다. 그러나 인플레이션을 끝내면 경제 무질서가 해결될 것이라고 희망하던 자들은 곧 스스로 그 비용을 치르게 되었다. 인플레이션은 멈추었지만 공공부채가 그 자리를 대신했기 때문이다. 1980년대 공공부채는 하늘로 치솟았다. 그 이유는 다양하다.
인플레 확대 동반한 임금 상승
먼저 경기침체로 납세자들은 세금 납부에 적대적으로 변했다. 부유하고 사회적 영향력이 큰 사람들이 유독 심했다. 물가 상승을 억제하면서 자동적으로 세수 증가(소득 증가에 연동한)도 멈추었다. 이는 국가 통화의 가치를 하락시켜 공공부채를 지속적으로 경감하는 것도 끝났음을 의미했다. 사실 통화가치 하락은 초기에는 경제성장을 보완했다가 점차 부채를 줄이기 위한 최상의 수단으로 변해왔다. 통화 안정화에 따른 실업 상승으로 국가는 사회 지원 비용을 늘려야 하는 상황에 이른다. 게다가 1970년대 노조의 임금 상승 완급 조절 수용(일종의 차등화된 임금체계)을 대가로 형성된 여러 사회적 권리들에 대한 요구가 시작되고 있었다. 이는 점차 공공재정을 무겁게 짓눌렀다.
시장의 압력, 통화 규제로 급선회
시민과 시장의 요구 사이의 간극을 해소하기 위해 인플레이션을 다시 활용하는 건 불가능했다. 결국 사회 평화를 유지하는 부담은 국가에 돌아갔다. 한동안 공공부채는 기능적으로 인플레이션 같은 유용한 도구였다. 실제 인플레이션과 똑같이, 공공부채는 분배 갈등을 완화하기 위해 정부가 아직 생산된 바 없는 자원을 유용할 수 있게 해주었다. 달리 말하면 미래의 자원을 가져와 오늘 필요한 자원으로 충당하는 것이다. 시장과 사회의 요구 간 다툼이 생산의 터에서 정치의 터로 옮겨가면서 노조투쟁은 선거 압력으로 바뀌었다. 돈을 계속 찍어내는 대신, 정부가 먼저 나서 돈을 더 빌려오게 된다. 인플레이션 정도가 미미했기에 채권자들은 국채의 장기적 가치에 안심했고, 이런 과정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공공부채 늘리며 노동자 달래기
그러나 공공부채 축적도 영원히 지속될 수 없었다. 오래전부터 경제학자들은 공공적자가 유용가능한 재원을 고갈시키고 금리 상승과 경기 둔화를 야기하며 민간 투자를 고사시킬 것이라고 정권에 경고해왔다. 그렇지만 그들은 그 임계점을 찾아낼 수 없었다. 그렇더라도 한동안은 금융시장 규제를 완화하면서 상대적으로 저금리를 유지하고, 노조를 무력화하면서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는 것이 가능했다. 그러나 저축률이 예외적으로 낮은 미국은 곧바로 자국민과 외국 투자자들에게까지 국부펀드를 포함해 국채를 팔기 시작했다. 더구나 부채 부담이 커질수록 공공재정에서 이자를 지급하는 비중이 증가했다. 특히 사전에 규정할 수 없는 어느 시점에 국내외 채권자들은 돈을 돌려달라고 요구할 터였다. 따라서 ‘시장’은 국가에 재정 규율과 이자 보전에 필요한 엄격한 공공예산을 실행하도록 압박하기 시작했다.
1992년 미국 대통령 선거는 이중 적자 문제가 주요 쟁점이었다. 연방정부 적자와 국가 전체의 무역수지 적자였다. 이 문제를 선거 전략 중심으로 삼은 빌 클린턴이 승리하면서 ‘재정 건전화’(Fiscal Consolidation)에 역점을 둔 정책의 신호탄이 울린다. 전세계적으로 미국의 주도 아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IMF 등이 이런 노력을 적극적으로 약속했다. 초기 민주당 내각은 대대적인 사회 개혁을 통해 경제성장을 진작하고 세금을 올리면서 적자를 줄이려 했다. 그렇지만 1994년 민주당은 중간선거에서 의석 과반수를 얻지 못한다. 클린턴은 노선을 급선회해 공공비용 감축이 골자인 긴축정책을 받아들인다. 수십 년에 걸쳐 처음으로 1998∼2000년 미국 연방정부는 예산 흑자를 기록한다.


» 지난해 11월 ‘탐욕’ ‘그릇된 우상’이라 적힌 황금소 모형을 메고 월가를 행진하는 ‘월가를 점령하라’ 시위대.

시장의 새 압력, 재정 건전화
그러나 클린턴 행정부는 항구적으로 민주자본주의 정치의 경제를 순조롭게 진행시키는 데는 이르지 못했다. 그의 사회갈등 조정 전략은 많은 부분에서 레이건 정권 때 이미 시작된 금융 분야 규제 완화를 확대하는 내용이었다. 노조의 지속적 쇠락과 사회보장 지출의 대대적 삭감, 재정 건전화 정책으로 위축된 수요 등으로 소득 불평등이 급속히 심화되자, 이를 상쇄하기 위해 개인과 기업들에 전례 없는 수준의 대출이 가능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공공부채가 민간부채로 대체된 것을 가리키는 그럴듯한 이름의 ‘민간 케인스주의’가 등장하게 된다. 정부는 더 이상 양질의 주택을 평등하게 공급하거나 노동자를 교육할 비용을 대기 위해 돈을 빌리지 않는다. 이제는 개인들이 자신의 교육, 또는 더 나은 주거지로 옮기는 비용을 대기 위해(4) 위험과 리스크를 각오하고 대출 계약을 하게 된다(실제 거의 선택의 여지가 없다).
대출 확대, 공공부채를 민간부채로
클린턴 행정부에서 도입한 정책은 상당한 행복을 창출했다. 부자들은 세금을 덜 냈고, 그중에서 미리 눈치채고 금융 분야에 투자한 이들은 막대한 이익을 챙겼다. 그런데 빈곤층도 전혀 불만을 가질 이유가 없었다. 적어도 초기에는 그랬다. 서브프라임 신용과 이에 따른 ‘부의 신기루’가 복지 지원금 삭감과 임금 상승(‘유연화’된 노동시장의 최하위층에서는 존재하지 않던)을 대체했다. 특히 흑인들에게 주택 취득은 단순히 ‘아메리칸드림’을 실현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았다. 그들이 일자리에서 보장받지 못했고, 지속적인 긴축에만 매진하는 정부로부터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던 퇴직연금을 대신하는 것이었다.

‘민간 케인스주의’로 금융 초호황
따라서 자유화는 재정 건전화와 공공 긴축정책을 상쇄했다. 공공부채에 이어 민간부채까지 가세해 국가 주도의 공공 수요를 대체하게 된다. 고용과 이익을 지탱하는 것은 개인 수요였고, 특히 부동산 부문은 더욱 심했다. 이런 동력은 앨런 그린스펀이 이끄는 FRB가 경기침체 및 실업률 재상승을 막기 위해 저금리를 도입하는 2001년부터 가속화했다. 그러나 ‘민간 케인스주의’는 금융 분야에서 사상 최대의 이익을 낳았을 뿐만 아니라 경제 호황의 중심축이기도 했다. 이는 유럽 노조들의 한없는 부러움을 샀다. 유럽 노조는 미국 사회의 급속한 부채 확산을 야기한 그린스펀의 통화 확대 정책을 모델로 한 정책을 입안한다. 유럽 노조는 유럽중앙은행과 달리 미국 FRB가 통화 안정을 지키는 것뿐 아니라 높은 고용을 유지해야 할 법적 의무를 지닌 점에 열렬한 관심을 보였다. 그러나 2008년 이것들은 모두 끝나버린다. 국제 신용의 피라미드가 갑자기 붕괴하면서 말이다. 이 피라미드는 1990년대 말과 2000년 초기 경제 번영의 토대였다.
인플레이션, 공공적자, 그리고 민간부채로 이어지는 시대를 지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민주자본주의는 이제 네 번째 단계로 진입했다. 전세계 금융 시스템이 내폭하려고 하자 국가들은 그 전에 재정 건전화 정책을 상쇄할 목적으로 용인한 치명적 대출을 사회화하면서 경제 신뢰를 회복하려 했다. 실물 경제 붕괴를 막는 데 필요한 경기 부양과 맞물려 이런 조처는 공공적자를 더욱 심각한 수준으로 악화했다. 그 경과를 보면 알겠지만 이런 사태는 일부 이론의 주장과 달리, 세계은행과 IMF 체제하의 1990년대에 벌어진 기회주의 지도자나 공공기관의 잘못된 지출 탓이 아니었다.
위기, 그리고 부실채권의 사회화
그 경과는 이렇다. 2008년 이후 민주자본주의에 내재된 분배 갈등은 국제 금융 투자자들과 각 주권국가 간의 치열한 싸움으로 바뀌었다. 과거에는 노동자와 사장, 시민과 재정 부처, 개인 채무자와 민간은행 간의 싸움이었지만 오늘날은 금융기관들이 국가와 진검승부를 벌이고 있다. 금융기관들은 최근까지 국가를 협박해 자신을 구제하도록 요구했다. 앞으로는 이런 상황의 근본인 그 역학관계가 어떤 것인지 규정하는 일이 남았다.
실례로 금융위기 초기 이후부터 금융시장은 국가별로 상이한 금리를 요구했다. 금융시장이 각국 정부에 차등적으로 압력을 행사하면서 해당 국가의 국민은 전례 없는 재정 감축을 감내해야 했다. 천문학적인 금액의 부채가 국가들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기 때문에, 아주 미미한 수준의 국채 금리 상승도 여차하면 재정 파탄을 야기할 수 있다. 동시에 국가들이 디폴트(채무불이행)를 택할 수도 있기 때문에, 시장은 국가를 너무 강하게 압박해서도 안 되는 상황이다. 따라서 일부 국가들은 가장 위태로운 상황에 있는 다른 국가들을 기꺼이 도우려 한다. 그렇게 해서 국채 금리 상승을 대비하는 것이다.
시장이 기대하는 것은 단지 재정 건전화만이 아니다. 시장은 경제성장에 대한 합리적인 전망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재정 건전화와 경제성장, 이 둘을 어떻게 동시에 달성할 것인가? 아일랜드가 재정 적자 감소를 위한 강력한 조처를 약속했을 때 아일랜드 부채의 리스크 프리미엄은 낮아졌다. 그러나 몇 주 뒤 프리미엄은 다시 상승했다. 경제재건 계획이 너무 혹독해 어떤 경기회복도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몇 년 전부터 민주자본주의 정치를 실행하기가 어려워지고 있다. 대공황 이후 정책 결정자들이 이렇게 불확실성이 큰 상황과 대면한 적은 없었던 듯하다.
게다가 일부에서는 사상 초유로 저금리의 돈이 넘쳐나면서 새로운 거품이 형성되고 있다. 적어도 현재까지는 서브프라임 모기지에 대한 투자가 더 이상 이루어지고 있지 않지만, 원자재나 새로운 인터넷 경제 전망은 매력적이다. 금융회사들은 주요 고객과 자신의 이익을 위해 ‘새로운 성장 분야’가 될 것으로 보이는 분야에 중앙은행이 공급해준 넘치는 유동성을 이용할 소지가 충분하다. 어쨌든 금융 분야 규제를 목표로 한 개혁들이 거의 실패하는 바람에 자본은 예전보다 더 성마르게 요구 사항을 내놓을 수 있게 됐다. 2008년 ‘대마불사’(大馬不死)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 은행들은 2012년이나 2013년에도 같은 도움을 바랄지 모른다. 그리하여 3년 전 국가를 상대로 능수능란하게 펼쳤던 협박을 다시 실행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번에는 자본주의의 공공구제는 불가능할지 모른다. 공공재정이 능력의 한계치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민주자본주의에 남은 카드는 있나
현재 민주주의의 위기는 경제를 짓누르는 위기만큼이나 심각하다. 현대사회의 ‘시스템 통합’, 즉 자본주의 경제의 효율적 운영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을 뿐 아니라 ‘사회적 통합’도 흔들리고 있다. 새로운 긴축 시대가 열리면서 시민의 권리와 자본 축적의 요구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각국의 능력은 심각한 타격을 받았다. 또한 국가 간 상호의존 관계가 더욱 심화되면서 경제와 사회, 또는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간의 갈등을 국내 차원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은 갈수록 현실성이 떨어지고 있다. 어떤 정부도 더 이상 국제사회의 제약과 의무, 특히 자국민을 희생시켜야 하는 금융시장의 강요를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민주자본주의의 위기와 모순은 국가 내에서뿐만 아니라 국가 관계에서도 아직은 알 수 없는 조합과 교체를 진행하며 점차 국제적 양상으로 확산되고 있다.
1970년대 이후 경제위기의 흐름을 관찰해볼 때, 민주자본주의가 사회 갈등을 조정할 (한시적이긴 해도) 새로운 방안을 찾게 될 가능성은 있다. 그러나 이번에는 정치적으로 난공불락(難攻不落)의 위치에 견고히 버티고 있는 자본가 계층, 즉 국제 금융산업에 전적으로 유리한 방향일 것이다.
글 / 볼프강 스트리크 Wolfgang Streeck
막스플랑크 사회연구소(쾰른) 소장. 본문은 2011년 9~10월 발행된 (New Left Review) 71호(런던)에 게재된 분석 내용을 축약한 것이다.

번역 / 박지현 sophile@gmail.com
남극보호연합(ASOC) 동아시아지부 담당.

2012년 1월 4일 수요일

[사설] 위기라면서 실효성 있는 서민 대책이 없다


이글은 경향신문 2012-01-02일자 사설 '[사설]비정규직 대책 허구성 드러낸 공공부문 해고사태'를 퍼왔습니다.
새해 초부터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거리로 내몰리고 있다. 인천공항세관, 노사발전재단, 서울고법, 서울 구로보건소 등 공공부문 거의 전 분야에서 해고 사태가 이어지고 있다. 정부가 지난해 내놓은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이 현장에서 먹혀들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인천공항세관에서 수하물에 전자태그를 붙이는 일을 하는 하청노동자 34명은 지난해 12월31일 계약 해지 통보를 받았다. 새로 하청을 맡은 용역업체가 고용을 승계하지 않기로 했다는 것이 이유였다. 고용노동부 산하 노사발전재단도 최근 비정규직 31명에게 계약 종료를 통보했다. 비정규직 차별 시정 업무를 하는 기관에서 비정규직을 집단 해고한 것은 설립 취지에 어긋나는 것이다. 공공운수노조 등에 따르면 서울고법의 청소용역 노동자 6명, 구로보건소의 방문간호사 2명도 지난해 말 해고됐다.

2011년 현재 공공부문 비정규직은 모두 34만여명이며 이 가운데 29%인 9만9000여명이 파견·용역·외주 등 간접고용 형태이다. 공공부문의 간접고용은 2006년 6만4000여명보다 8.5%포인트 증가했다. 지난해 11월 정부는 2년 이상 상시·지속적 업무에 종사한 비정규직을 기간 제한 없이 고용되는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고, 용역업체가 교체되더라도 원칙적으로 고용을 승계토록 하는 내용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을 발표했다. 이채필 노동부 장관은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려면 공공부문이 선도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요구를 반영한 것”이라고 자찬했다. 그러나 정부가 내놓은 대책에 공공부문의 간접고용 남발에 대한 근본적 해결책은 포함되지 않았다. 당시 우리는 ‘공공부문 선진화’란 이름의 잘못된 정책기조 자체를 전환해야 한다고 촉구한 바 있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의 허구성은 일련의 해고 사태를 통해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정부는 2년 이상 상시·지속적 업무에 종사한 비정규직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겠다고 했지만, 노사발전재단에서는 무기계약직 전환을 단 4개월 앞두고 있던 노동자를 해고했다. 고용주가 피해갈 수 있는 길을 열어둔 대책은 대책이 아니다.

어제 이명박 대통령은 신년 국정연설에서 “비정규직 차별 문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라며 “같은 일을 하면서 불합리하게 차별받아서는 안된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의 발언이 빈말에 그치지 않으려면 정부는 공공부문에 무분별한 해고를 자제토록 하고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고용안정을 위한 근본적 대책을 제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