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블이 국제통화기금(IMF)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레이블이 국제통화기금(IMF)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2012년 7월 14일 토요일

한미FTA, 시민검증단이 나섰다


이글은 시사인 2012-07-13일자 기사 '한미FTA, 시민검증단이 나섰다'를 퍼왔습니다.
정부가 한·미 FTA 번역 오류 내역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아예 ‘3년간 비공개’라고 못을 박았다. [시사IN]은 시민 검증단을 모집해 한글 번역본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따져보기로 했다.

1997년 12월3일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신청서에 사인하는 임창렬 경제부총리를 지켜보며 대한민국 국민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곧 망할지도 모른다’는 대한민국에 긴급 자금을 빌려주는 구세주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사인을 받으러 온 미셸 캉드쉬 IMF 총재는 국빈 대접을 받았다. 

그로부터 4년 뒤 IMF로부터 빌린 돈은 다 갚았지만, 이후 대한민국은 ‘IMF 체제’의 후유증을 혹독하게 겪고 있다. 그 사이 알짜배기 기업들이 외국인 손에 헐값에 넘어갔고, ‘빅딜’을 통해 기업 간 빈익빈 부익부가 심화됐으며, 정리해고 광풍이 몰아치면서 실업자가 급증하고 중산층이 몰락했다. 대한민국에 양극화가 이렇게 심해진 데는 ‘IMF 체제’가 결정적인 분기점이 되었다는 데 이견이 없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현재 여권이 추진 중인 한·미 FTA는 IMF 구제금융 때보다 훨씬 더 폭넓게, 더 오래 우리 사회 곳곳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한·미 FTA를 비준한다 해도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내게는 어떤 영향을 미칠지 잘 알고 통과시켜야 한다. 

그런데 이번 한·미 FTA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우리 정부가 지나치게 정보 공개를 꺼리고 있다. 당장 비준안을 통과시켜야 할 국회의원 299명 가운데 외통위원 등 관련 상임위원 등을 뺀 대다수가 한글 번역본을 받지 못했다. 민주당 박주선 의원실의 한 보좌관은 “‘전체 의원에게 번역본을 보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외통부에 얘기를 했더니 ‘예산이 많이 든다. 관심 있는 분들은 홈페이지에서 보면 된다’는 답이 돌아왔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영문 협정본을 국문 협정본으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어떤 오류가 있었고, 그걸 어떻게 고쳤는지 전혀 공개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2008년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한글 번역본에서 오류가 처음 확인된 건 2011년 4월이다. 그에 앞서 한·EU FTA 협정문에 대한 무더기 번역 오류가 확인되어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비준안을 철회하고 수정 제출하는 소동이 벌어진 터였다. 

‘협정문 정오표’ 안 내놓는 까닭확인된 번역 오류는 치명적이었다. 통상 ‘군 복무자’를 뜻하는 ‘military service personal’을 엉뚱하게도 ‘병역 의무자’로 번역했고, ‘펀드 운용’ 또는 ‘펀드 사무관리’를 뜻하는 ‘fund administration’은 금융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사무관리’로 번역했다. 이렇게 지적된 오류가 300개에 이르자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은 국회에서 잘못을 시인하고, 한·미 FTA 비준동의안마저 스스로 철회한 후 다시 내는 ‘굴욕’을 겪었다. 

이렇게 한바탕 홍역을 치른 후 정부는 2011년 6월3일 새로운 한·미 FTA 비준동의안을 제출했다. 그런데 기존 협정문에서 무엇을, 어떻게 고쳤는지 한눈에 볼 수 있는 ‘정오표(正誤表)’를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안 내놓고 있다. 

그동안 야당과 FTA 전문가들이 번역 오류 정오표를 요구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한·미 FTA는 국회의 비준 동의를 거치면 곧바로 법률적 효력을 가진다. 그런데 영문본과 국문본이 서로 불일치할 경우 법률적 효력에 당장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따라서 제대로 된 수정 작업이 이뤄졌는지, 또 다른 문제는 없는지 국회가 다시 확인할 필요가 있다. 이 과정에서 이 효력의 대상자가 되는 일반 국민이 그 내용을 이해하게 된다면 더더욱 바람직하다. 

둘째, 정부가 쉬쉬하고 있다가 또다시 번역 오류가 발견된다면 국회에 상정된 비준동의안을 또 한번 철회하고 다시 제출해야 한다. 이는 정부의 망신은 물론 대한민국 전체의 망신이다. 올봄 한·EU FTA가 번역 오류로 두 번이나 철회되는 과정을 겪자 외신이 이를 비웃은 바 있다. 여권 일각에서도 정오표를 제출하라고 가세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데도 외통부의 방침은 요지부동이다.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은 지난 9월16일 한·미 FTA 번역 오류에 대한 정오표를 제출하라는 외통위원들의 요구에 “깨끗하게 고친 국문본을 6월3일 전 국민이 보시도록 공개했다. 그로부터 석 달이 지났으니 관심 있는 분들은 볼 만큼 봤을 것이다”라면서 정오표 제출을 거부했다. “한·EU FTA 때는 정오표를 제출해놓고 이번에는 왜 안 내놓느냐”라는 질문에는 “한·EU FTA 때는 유럽 내 비준 절차가 먼저 끝나서 공개할 수 있었지만, 한·미 FTA는 미국 내 절차가 진행 중이라 공개할 수 없다”라는 취지로 답변했다(한·EU FTA 때도 정부는 “정오표 분량이 너무 많다” “번역상의 미세한 오류를 찾아낼 정도로 자세히 본 분들이 많다”라며 정오표 제출을 거부하다 국회가 집요하게 요청하자 결국 제출했다).  

그 논리대로라면 한·미 FTA에 대한 미국 내 절차가 마무리된 지금 시점에는 ‘번역 오류 정오표’를 내놓아야 한다. 그러나 외통부는 새로운 논리를 개발해 놓았다. 지난 9월20일 서울행정법원 재판부는 외통부에 ①정정 전 한글본 ②정정 후 한글본 ③정오표의 제출을 지시했다.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모임’이 제기한 소송에서 외통부가 패소한 셈이다. 하지만 외통부는 9월26일 법원에 보낸 공문에서 “한·미 FTA 오류 정정을 미국 정부가 검증하는 과정에서 외교문서의 일부로 처리된 점에 비추어(한·미 FTA 협상 관련 문서는 양국 간 합의에 따라 발효 후 3년까지 비공개로 분류), 정오표 제출에 어려움이 있다”라고 주장했다. 아예 ‘발효 후 3년간 비공개’로 대못을 박은 셈이다.

정부는 10월 안에 한·미 FTA 비준동의안을 처리해달라고 국회를 압박하고 있다. 그럴수록 정오표 확인이 시급하다. 급기야 한나라당 소속인 남경필 외통위원장마저 10월13일 “정부가 의원들의 정오표 제출 요구를 일정 부분 받아들일 의무가 있다”라고 말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시민검증단이 정오표 만들어 전문가에게 의뢰

정부가 끝까지 뭉갤 경우 시민이 직접 나설 수밖에 없다. 이에 은 박주선 의원실과 공동으로 한·미 FTA 시민 검증단을 모집해 정정 전의 한글본과 정정 후의 한글본 600여 쪽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따져보는 중이다. 

이미 20여 명의 시민이 비교 검토를 자원했는데, 초반 작업에서만 의미 있는 대목이 눈에 띄었다. 이를테면 제1.4조 정의 조항의 경우 2007년 한글본에 “기업이라 함은 회사·신탁회사·합명회사·1인기업·합작투자·조합 또는 유사한 조직을 포함하여”라고 번역됐던 것이 2011년에는 “기업이라 함은 회사·신탁·파트너십·단독소유기업·합작투자·협회 또는 유사한 조직을 포함하여”로 바뀌었다. 합명회사나 조합은 법적 개념인 반면, 파트너십이나 협회는 쓰임새가 다르다. 게다가 파트너십이나 협회로 정정한 것은 당초 정부가 발표한 ‘번역 오류 수정 유형’에는 없던 대목이다. 검증단이 이런 정오표를 만들면 이를 송기호 변호사 등 전문가들에게 보내 적용상의 차이를 검증받을 계획이다. 

어른들 말씀에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라”고 했다. IMF 외환위기야 느닷없이 당했다 쳐도, 한·미 FTA만은 신중 또 신중할 필요가 있다.

이숙이 기자 | sook@sisain.co.kr 

2012년 6월 18일 월요일

그리스 국민, 유로존 잔류 채택했다


이글은 뷰스앤뉴스(Views&News) 2012-06-18일자 기사 '그리스 국민, 유로존 잔류 채택했다'를 퍼왔습니다.
신민당, 시리자 제치고 2차 총선서 1위. 위기감 진정

17일(현지시간) 치러진 2차 총선에서 '구제금융 약속' 이행을 내건 신민당이 1위를 차지할 게 확실시돼 그리스 파국 위기감이 일단 진정되는 양상이다.

신민당은 전국 개표가 33% 가량 진행된 17일 밤 9시45분 현재 득표율 30.65%로 2위인 급진좌파연합(시리자·25.85%)를 5% 포인트 가까이 따돌리며 선두를 지키고 있다. 그리스 내무부의 중간개표 발표에서도 신민당이 29.5%, 시리자는 27.1%로 신민당이 앞섰다.

신민당과 연정을 꾸렸던 옛 여당 사회당은 12.96%로 3위가 유력하다.

이밖에 내부부 중간개표 결과 그리스독립당은 7.6%, 황금새벽당은 7%, 민주좌파 6.2%, 공산당 4.5% 순으로 나타났다.

예상 지지율과 제1당에 몰아주는 비례대표 50석을 합산해 추정한 예상 확보 의석은 신민당이 128석, 시리자 72석, 사회당 33석, 그리스독립당 20석 등으로 나타나, 앞서 '거국정부 구성'을 제안한 사회당과 신민당이 연정을 꾸리면 예상 의석은 161석으로 정원 300석인 의회의 과반을 차지한다. 여기에다 사회당과 공동보조를 취하는 민주좌파를 포함해 '신민-사회-민주좌파'의 연정이 성사되면 민주좌파 의석 17석을 포함해 연립정부는 188석으로 안정적 기반을 마련할 수 있다.

안토니스 사마라스 신민당 당수는 이날 밤 10시 자피오 청사에서 TV 생중계를 통해 "그리스 국민이 오늘 선거로 유럽을 향한 길과, 유로존 잔류를 선택했다"고 사실상 승리를 선언하면서 "더 이상 다른 모험은 더 없으며 유럽의 그리스에 대한 입장도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지금은 그리스와 유럽에 중요한 시점으로 그리스의 모든 정당이 이익을 버리고 경제개발을 위해 협력해 하루 빨리 위기에서 벗어나자 "고 초당적 협력을 호소했다.

2위가 유력한 시리자의 알렉시스 치프라스 대표도 TV에 나와 "(신민당의) 사마라스는 주변 인사와 정당으로 정부를 구성할 것"이라고 패배를 인정하면서도 "하지만 우리는 강력한 야당이 돼 정부가 주요 사안에서 마음대로 하지 못하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스가 원만히 정부 구성에 성공하면 국제통화기금(IMF)을 비롯해 유럽연합(EU), 유럽중앙은행(ECB) 등은 구제금융 지원을 지속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새 연정이 그리스 국민이 당면한 파국적 상황을 타파하지 못할 경우 불안은 계속되고 구제금융 재협상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여전히 높아, 이번 선거 결과는 일단 발등의 불을 끈 정도라는 게 중론이다.

임지욱 기자

2012년 6월 13일 수요일

“한국 경제 하반기 회복 힘들다” IMF, 성장률 3.25%로 낮출 듯


이글은 경향신문 2012-06-12일자 기사 '“한국 경제 하반기 회복 힘들다” IMF, 성장률 3.25%로 낮출 듯'을 퍼왔습니다.

밝혔다. 유럽 등 대외여건이 더 나빠질 경우 추가하향 가능성도 시사했다. 한국 경제의 회복세는 2013년에나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IMF는 12일 한국 정부와 연례협의를 가진 뒤 “낮은 세계 경제성장률을 반영해 한국 경제성장률이 기존 전망 3.5%보다 둔화될 수 있다”며 “올해 성장률은 약 0.25%포인트 낮아질 가능성이 있다”고 발표했다. 

호이 코르 IMF 아·태국 부국장은 “처음에는 한국 경제가 상반기에 저점을 찍고 하반기 들어서는 회복될 것으로 기대했으나 대외여건 상황 때문에 1~2분기 정도 미뤄진 2013년쯤 돼야 할 것”이라며 “회복속도가 더뎌 애초 전망보다 0.25%포인트 조정이 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IMF는 지난해 9월 4.0% 성장 전망을 내놨지만 지난 1월 3.5%로 낮췄으며 더 낮아질 가능성도 내비친 것이다. 

한국 정부는 성장률을 3.7%로 예상하고 있으나 이달 말 기획재정부가 하반기 경제운용방향 발표 시 하향 수정할 가능성도 있다. 한국개발연구원은 지난달 3.6%로 전망치를 하향했다. 

IMF는 유럽사태 등이 더 악화될 경우 성장률은 더 낮아질 수도 있다고 봤다. 

호이 코르 부국장은 “불확실성이 상존하고 매일 상황이 바뀌고 있기 때문에 유럽사태 관련 상황이 더 나빠진다면 한국 성장률 전망치는 더 약한 수준도 기록할 수 있다”며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 모두에 적용이 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IMF는 세계 각국 성장률 전망치를 다음달에 무더기 하향할 가능성도 언급했다. 

호이 코르 부국장은 “세계 경제 자체가 예상보다 둔화할 가능성이 있어서 현재 전망치들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생각해 조정이 필요하다”며 “한국뿐 아니라 아시아, 세계 각국가들의 전망치를 조정 작업 중에 있으며 7월에 새로운 전망치를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자본시장에 대해서는 “상당히 개선됐다”고 평가했다. IMF는 “유럽 위기가 주체할 수 없는 상황으로 번지면, 자본유출이 벌어지고 시중은행들이 어려워지겠지만, 한국은행은 이미 높은 수준의 외환보유고를 가지고 있어 외화유동성을 지원하는 데 사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1000조원에 이르는 가계부채 문제에 대해서는 “구체적 수치로도 높은 수준”이라면서도 “당국이 이미 인식을 하고 있고 연착륙을 유도하기 위해 다양한 조치를 하고 있으므로 크게 우려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만 생각보다 급속한 경기 악화가 발생하고 금리가 인상될 경우 가계부채 상환 부담이 생길 수 있다고 밝혔다. 

현재 3.25%인 기준금리는 현 상황에서 적절한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2013년 초쯤에는 금리 인상이 필요할 것으로 봤다. 추가경정예산 편성에 대한 얘기가 나오는 것과 관련해선 “과민반응할 필요가 없고 현재 예산으로 충분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다슬 기자 amorfati@kyunghyang.com

2012년 6월 11일 월요일

한국경제 ‘냉온탕’ 들락날락 가능성…“문제는 실물 분야”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06-10일자 기사 '한국경제 ‘냉온탕’ 들락날락 가능성…“문제는 실물 분야”'를 퍼왔습니다.

루이스 데긴도스 스페인 경제장관이 9일 마드리드에서 열린 기자회견 도중 손깍지를 끼며 근심스런 표정을 짓고 있다. 스페인 정부는 이날 유로안정화기구(ESM) 등을 통해 구제금융을 지원받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마드리드/AP 뉴시스

스페인 구제금융
 “불확실성 해소” 일단 긍정적
기재부 “시간 끌지않아 다행”
“은행권에 대한 구제금융은
실물회복엔 도움안돼” 걱정

유럽 5대 경제 대국 스페인의 구제금융 신청은 단기적으로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을 해소한다는 측면에서 일단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스페인은 지난해 4월 포르투갈이 구제금융을 신청한 직후부터 다음 ‘타자’로 지목돼왔다. 9일(현지 시각) 스페인의 공식 구제금융 신청은 1년 이상 질질 끌어온 상황에 대한 일종의 확인이자, ‘쉼표’인 셈이다. 국내 경제 정책을 총괄하는 기획재정부 고위관계자는 “더 이상 시간을 끌지 않겠다고 한 점에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말했다.

국내 금융시장 또한 수면 아래 있던 악재의 노출을 반길 것으로 보인다. 김학균 케이디비(KDB)대우증권 투자전략팀장은 “무질서한 디폴트(채무 불이행)를 피했다는 점에선 긍정적”이라며 “지난 주말 미국 뉴욕 증시가 소폭 상승한 것도 이런 평가 때문”이라고 말했다. 유상대 한국은행 국제국장은 “유럽의 각국 재무장관들도 스페인의 구제금융 신청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고, 국제 금융시장에서도 같은 반응”이라며 “우리 금융시장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내 시장 전문가 및 정부 관계자들은 대체로 이런 밝은 면과 아울러 부정적 측면 또한 클 것으로 보고 있다. 구제금융 신청이 단기적으로 긍정적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본 재정부 고위관계자조차도 “스페인이 그만큼 부실이 심각하다는 것을 시인한 것인데, 충분한 지원이 안 되면 불안 요인이 지속될 수 있다”고 말했다. 스페인에 대한 구제금융 지원 방식과 규모, 그 효과를 둘러싼 국내 시장의 반응이 당분간 ‘냉온탕’을 들락날락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염상훈 에스케이(SK)증권 연구원은 “(구제금융이) 깔끔하게 정리된 게 아니다”며 “나쁘게 말하면 자칫 죽지도 살지도 못하고 있는 ‘또다른 그리스’의 탄생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스페인의 구제금융 신청은 유럽 부채위기란 드라마의 한 장면에 불과하다. 곧 있을 그리스의 2차 총선 결과와 주요 20개국(G20) 및 유럽 정상회의의 결과에 따라 흐름이 한순간에 뒤바뀔 수 있다. 한은 관계자는 “지뢰밭이 너무 많다”고 말했다. 지뢰밭 구간을 지날 때마다 우리나라 금융시장도 출렁일 수밖에 없다. 스페인의 구제금융 신청에도 불구하고,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위기의 불확실성이 지속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상재 현대증권 연구원은 “(스페인 구제금융이) 스페인발 유럽 부채위기를 진정시키기 위한 임시 미봉책 성격이 짙다”며 “어차피 유로존 재정위기 해법의 최종 ‘방화벽’이 아니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실 우리나라 정책 당국자와 시장 전문가들의 근심은 위기가 점차로 실물경제로 이어질 파장 쪽에 쏠리고 있다. 주재성 금융감독원 부원장은 “우리나라 금융회사들의 스페인 익스포저(위험에 노출된 대출 및 투자금)가 적은데다, (스페인 구제금융 신청이) 우리 금융·외환시장 쪽에 끼치는 영향도 크지 않을 것으로 본다”며 “문제는 실물 분야”라고 말했다. 재정부 관계자는 “스페인 은행권에 대한 구제금융은 실물경제 회복을 뒷받침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9일 한 남성이 종이컵을 손에 든 채 구걸을 하고 있다. 바르셀로나/AP 뉴시스

스페인 구제금융을 바라보는 시장 쪽 시선도 비슷하다. 이창선 엘지(LG)경제연구원 금융연구실장은 “중장기적으로 스페인 경제가 계속 안 좋다는 게 문제”라며 “스페인이 마이너스(-) 성장하면, 자산가격이 떨어지면서 은행 부실도 계속 커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지난해 0.7% 성장률을 기록한 스페인 경제는 올해 구제금융 여파로 큰 폭의 성장률 하락이 예상된다. 스페인의 침체는 안 그래도 부진한 유럽 경제의 침체를 가속화시킬 것으로 보인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스페인 -1.8%, 유럽연합)은 0%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지난 4월 내다봤다. 이는 스페인발 은행위기가 본격화하기 이전 전망이다.
우리나라도 수출을 고리로 유럽 쪽 위기에 빠르게 전염되고 있다. 중국, 미국에 이어 우리나라 3대 수출권인 유럽 쪽 수출은 이미 두자릿수 감소율을 보이고 있다. 주형환 재정부 차관보는 “유럽의 최대 교역국인 중국과 미국이 유럽 쪽에서 받고 있는 영향이 다시 교역을 통해 우리한테 전해지고 있다”며 “국내 소비와 투자 심리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도 예의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달말 하반기 경제운용 방향을 발표하면서 대외 경제 여건의 악화를 반영해, 성장률 전망치 등을 하향 조정할 것으로 보인다. 재정을 통한 경기부양책이라 할 수 있는 추가경정예산 편성은 “아직 검토하고 있지 않다”는 게 정부의 공식 입장이다.

류이근 권은중 최혜정 기자 ryuyigeun@hani.co.kr

2012년 6월 6일 수요일

"론스타, 한미FTA 약한 고리 치고 들어왔다"


이글은 프레시안 2012-06-06일자 기사 '"론스타, 한미FTA 약한 고리 치고 들어왔다"'를 퍼왔습니다.
[인터뷰] 송기호 민변 외교통상위원장

'먹튀' 자본. '탐욕스레 먹고 뻔뻔하게 튄다'는 이 말은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위기 이후 한국 사회에 유령처럼 맴돌았다. 이런 '먹튀'의 대명사로 꼽히는 것이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다.

2003년 외환은행을 인수한 론스타는 투자액의 2배가 넘는 4조 원 이상의 차익을 챙겼다. 그 돈을 챙겨 떠난 줄 알았던 론스타가 한국 정부에 싸움을 걸었다.

론스타는 지난달 초 남대문세무서에 경정청구서를 냈다. 외환은행 지분 매각과 관련해 부과된 양도소득세 3915억 원을 돌려달라는 내용이다. 론스타로부터 외환은행 지분을 사들인 것은 하나금융지주다. 하나금융지주는 론스타로부터 3조9156억 원에 외환은행 지분을 매입하기로 계약했다. 국세청이 그 금액의 10퍼센트(3915억 원)를 양도소득세로 원천징수하자 론스타가 이를 돌려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외환은행의 실소유자는 벨기에에 설립된 LSF-KEB홀딩스(론스타의 자회사로 조세를회피하기 위해 만들어진 페이퍼 컴퍼니라는 의혹을 사고 있다)였는데, 한국과 벨기에는 이중과세방지협정을 맺고 있기 때문에 한국 정부에 세금을 낼 필요가 없다는 것이 론스타 측의 논리인 것으로 알려졌다. 벨기에는 기업의 해외 양도소득에 대해 세금을 부과하지 않는다. 론스타의 주장이 받아들여지면 론스타는 4조 원이 넘는 이익을 냈으면서도 세금은 단 한 푼도 낼 필요가 없게 된다.

론스타는 이에 더해 "2000년대 초에 획득한 외환은행과 기타 한국 기업의 최대주주 권리에 대한 한국 정부의 부당한 개입으로 인한 피해에 대해 중재를 의뢰하겠다고 (5월 한국 정부에) 통보했다"고 밝혔다. 한국 정부가 "벨기에와 한국 간 투자협약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론스타와 한국 정부의 협의가 원만히 이뤄지지 않으면, 11월에 한국-벨기에 투자보장협정에 있는 투자자-국가소송제(ISD)에 따라 한국 정부가 최초로 국제중재 법정에 서게 될 것으로 보인다.

"론스타 문제는 한미FTA 사안"

그동안 많은 우려를 낳았던 ISD가 한국의 목줄을 죌 수 있는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은 통상 문제 전문가인 송기호 변호사(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외교통상위원장)를 만나 의견을 들었다.

송 변호사는 "론스타 문제는 한미FTA 사안"이라고 진단했다. 론스타가 한국-벨기에 투자보장협정뿐만 아니라 한미FTA의 ISD를 활용할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말이다. 이와 관련, 송 변호사는 크게 두 가지 점을 짚었다.

첫 번째는 론스타 측이 '한국 정부가 승인하지 않아 피해를 봤다'고 표현한 대목이다.

"론스타는 2003년에 외환은행 주식을 인수하고 2012년에 팔았다. 이에 대해 론스타는 '한국 정부가 승인하지 않아 외환은행 주식을 필요 이상으로 보유해야 했고 그 때문에판매 가격이 크게 하락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이야기를 한미FTA와 연결시키면, 공정-공평대우 문제가 된다. 공정-공평대우의 핵심은 투자자를 법적 불확실성 상태에장기간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론스타가 이 점을 강하게 주장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공정-공평대우 조항과 관련, 송 변호사는 얼마 전 논란이 됐던 지하철 9호선 문제를 사례로 들었다. 9호선 논란 당시 외교통상부 산하 통상교섭본부는 '한미FTA에 명시된 ISD 대상 투자 계약 주체는 중앙정부와 외국인 투자자이며, 서울시와 외국인 투자가가 체결한 9호선 투자 계약은 ISD 대상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또한 9호선의 2대 주주인 맥쿼리인프라는 미국 투자자가 아니기 때문에 ISD 제소 자격이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송 변호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9호선 사태는 아직 해결된 게 아니다. 이건 한미FTA의 공정-공평대우 조항이 얼마나 공공 서비스를 위축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다. 9호선 문제도 민영화, 즉 지하철이라는 공공 서비스 사업권을 민간에 주면서 생겼다. 국제중재에 회부된 많은 사건들은 수도,항만, 하수 처리 같은 공공 서비스 영역에 투자했던 민영화와 관련된 것이고, 이런 판례들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공정-공평대우 조항이다.

9호선 문제가 터졌을 때 외교통상부는 '서울시와 관련된 문제이지 한미FTA와는 무관한 사안'이라고 교묘하게 말장난을 했다. 왜곡이다. 한미FTA의 본질을 회피하는 방식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지방정부이건 중앙정부이건 간에 (FTA) 협정문을 준수할 의무가 있다. '민영화와 관련해 중앙정부와 직접 계약한 것만 (FTA에서) 문제가 되며, 따라서 한미FTA 사안이 아니다'라는 태도를 취하는 건 한미FTA의 객관적 구조를 국민에게 덮으려는 시도다. 지금까지 국제중재로 간 공공서비스 민영화 사례는 대부분 연방 차원이 아니라 지방정부를 상대로 한 분쟁이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두 번째는 론스타 측이 '3915억 원 원천징수가 자의적이고 몰수적인 과세'라고 주장한 대목이다. 송 변호사는 "굉장히 많은 법적 쟁점이 있다"며 이렇게 진단했다.

"지금까지 벨기에 국적의 다른 기업 혹은 벨기에처럼 (한국과) 이중과세방지협정을 맺고 조세회피지역으로 지정되지 않은 국가의 기업 중에 론스타처럼 원천징수된 사례가 있었는지 살펴봐야 한다. 그런 사례가 없었다면 론스타 측에서 '자의적인 과세'라고 주장할 수 있다."

송 변호사와 달리, '론스타 사안은 한미FTA와 무관한 문제'라고 보는 이들도 있다. 론스타가 외환은행 주식을 매각하고 국세청에서 과세한 시기가 한미FTA 발효(3월 15일) 이전이므로 '소급 적용'을 할 수 없다는 논리다. 송 변호사는 이와 다른 견해를 밝혔다.

"'한미FTA가 발효되기 전에 론스타가 주식을 모두 팔았으므로 한미FTA 발효 이후에는 투자자라고 볼 수 없고 제소할 자격도 없다'는 견해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더 검토해봐야겠지만 한미FTA에 규정된 투자의 개념이 폭넓다. 계약상의 권리도 투자로 인정한다. 론스타는 하나은행과 계약을 맺고 주식을 팔았다. 계약에 따르면 론스타는 하나은행으로부터 3915억 원을 포함한 매각 대금 전체를 받을 권리가 있다. 론스타로서는 이 권리가 침해됐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문제는 한미FTA 사안이다. (이 문제와 관련해) 국세청이 어떤 법률에 근거해서 원천징수를 한 것인지 확인해봐야 한다.

소급 적용 문제와 관련해서는, 어떤 조치가 FTA 발효 전에 이뤄졌는지가 아니라 그 조치의 효과가 발효 이후에도 적용되느냐 하는 문제를 살펴봐야 한다. 3월 15일 이전에 제정된 법률이 투자자 이익을 침해할 경우 '법이 한미FTA 발효 전에 제정됐으므로 한미FTA가 적용되지 않는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

"론스타, 한국 정부의 약한 고리 치고 들어온 것"

 ▲ 송기호 변호사. ⓒ프레시안(손문상)

송 변호사는 론스타 문제에 관한 정부의 태도를 비판했다. 우선 지적한 사항은 비밀주의다.

"론스타가 정부에 보낸 의향서는 단순히 협의하자는 차원이 아니라, 명백하게 국제중재에 걸겠다고 통지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정부는 처음에 이걸 은폐했다. 이 문제에 관해 처음 나온 보도를 보면 '협의했다'고만 돼 있다. 정부가 ISD와 관련해 제소 위협을 당하는 정식 통지문을 받았는데도 (제때) 알리지 않았다는 건 큰 문제다. 그동안 '한미FTA, 문제 없다'고 해왔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이와 관련,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은 5월 31일 정부에 '론스타가 보낸 국제중재제기의향서 원본을 공개하라'고 청구했다.

송 변호사는 이번 사태를 한국 정부가 자초한 면이 있다고 봤다.

"지난 10년간 한국 정부는 결과적으로 론스타에 여러 가지 편법을 제공했다. 이제 론스타가 원천징수된 3915억 원을 찾아가기 위해 한국 정부의 그런 약한 고리를 치고 들어오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송 변호사는 론스타 보도자료에 나오는 "a series of"란 표현에 주목했다.

"이 법적 용어는 상당히 의미가 크다. 국제중재에 걸리는 사안은 하나의 행위에 대해 협정 위반 여부를 판단해달라는 경우만 있는 게 아니다. 하나하나 보면 문제가 없지만 각 행위의 일련의(a series of) 과정, 즉 그 일련의 조치들이 종합적으로 협정을 위반했다고 주장하는 일도 있다. 한미FTA도 이를 인정한다."

송 변호사는 이번 론스타 사건을 "국제 금융자본이 과세 조치에 대해, 즉 조세주권에 문제제기를 하는 것"이라고 규정한 뒤 "지금껏 '조세는 ISD 대상이 아니다'라고 한 사람들이 (이제) 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송 변호사는 법조계에 대해서도 쓴 소리를 했다.

"론스타 보도자료에 따르면, 한국 로펌에 자문했다고 돼 있다(편집자 : 론스타 보도자료에는 "우리는 이 사안을 한국과 세계의 법 전문가와 상의했으며, 설득력 있는 법적클레임이 성립한다는 조언을 받았다"고 돼 있다). (일부 한국 법률가들이) 'ISD로 걸 수 있다. 승산 있다'고 론스타에 의견을 줬다는 이야기다. 그 자체를 탓할 건 아니지만, 그런 로펌은 적어도 정부의 론스타 관련 대응에서 배제해야 한다. 정부가 구성한 태스크포스에 들어가지 못하게 해야 한다."

이에 더해 송 변호사는 "그간 론스타의 차익 실현을 가능하게 해준 국내 법조계의 역할도 (이번 기회에)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론스타에 대한 '예외적 승인' 등을 통해산업자본 논란을 결과적으로 묵인했다"는 비판이다.

"120% 승소 확신? 어려운 싸움 될 것"

국제중재로 갔을 때 한국 정부의 승소 가능성은 어느 정도일까? 이에 대해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5월 31일 "소송으로 갔을 경우 이긴다고 120% 확신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송 변호사의 생각은 달랐다.

"당연히 한국 정부가 승소하길 희망한다. 그렇지만 김석동 위원장처럼 '120% 승소'라고 말할 수 있는 사안은 결코 아니다. 국제중재로 가면 어려운 싸움이 될 것이다."

송 변호사는 이번 사안을 길게, 그리고 넓게 바라볼 것을 주문했다.

"론스타 문제는 (1997년) IMF 위기와 뗄 수 없는 관계다. 그때 만들어진 틀이 계속 가고 있다는 게 문제다. (참고로) 론스타 보도자료에 흥미로운 대목이 있다. 1997년 아시아 금융 위기 때 한국을 눈여겨보게 됐다는 내용이다.

성취도 일부 있었지만,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의 근본적인 한계의 뿌리는 경제가 금융자본주의화한 데 있다. 그 결과 한국 경제가 금융자본의 이익이 철저하게 관철되는 구조로 갔고, 그것이 론스타 사건으로 불거진 것이다.

국민경제가 금융자본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고 민주주의가 금융자본을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 정말 큰 숙제다. 지난 10년간 누가 론스타에 예외적 승인을 허용했고 론스타 정책을 누가 결정했는지, 그리고 한국의 이른바 모피아, 김앤장 등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제대로 드러내야 한다. (이대로 가면) 또 다른 론스타가 언제든 나올 수 있다. 신빈곤 현상이 왜 생기는지, 반(反)빈곤을 어떻게 이뤄가야 할 것인지를 론스타 대응과연계해서 봐야 한다.

한미FTA는 갈수록 그 효과가 커질 것이다. 이번 론스타 사건은 한미FTA의 심연 속에서 우리가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를 보여준다. 조세뿐만 아니라 국가의 공공 정책이 ISD에 의해 제약받는 현실을 이번 기회에 확실히 인식해야 한다. ISD 폐기는 국민 일반의공감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박근혜는 한미FTA를 잘 모른다"

송 변호사는 이날 인터뷰에서 정치권도 질타했다. 특히 박근혜 새누리당 의원을 "이명박 대통령과 함께 한미FTA를 최종적으로 통과시켜 살아 숨 쉬게 한 장본인"으로 규정하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박근혜 의원은 한미FTA를 잘 모른다. ISD가 논란이 됐던 시기에 박근혜 의원은 '이건 그냥 다 하는 것 아니냐. 보편적 규범이니 받아들여야 한다'는 취지로 말했다(편집자 : 박 의원은 지난해 11월, "ISD는 국제 통상협정에서 일반적인 제도이고, 또 표준약관 같이 거의 모든 협정에 다 들어 있는 제도"라며 "ISD가 있거나 없거나 (…) 통상협정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발언이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의원에 의해 한미FTA 국회 비준이 강행된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만약 박 의원이 'ISD 문제를 신중하게 봐야 한다'고 했다면 한미FTA는 비준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ISD에 대한 박 의원의 판단은 대단히 안이했다."

송 변호사는 한미FTA 비준을 강행한 정부와 여당이 협정 발효 후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고 질타했다.

"한미FTA가 발효된 지 두 달여가 지났다. 발효 후 4월에 미국에 대한 수출 증가율은 전년도 같은 기간에 비해 오히려 감소했다. 5월 들어 수출 총액 자체가 줄었다. 정부는 한미FTA의 효과를 강조하지만 현실은 그와 정반대다. 그런데도 이명박-박근혜 그룹에서 나온 이야기는 기껏해야 왜 체리 값 안 떨어지느냐는 수준이었다. 

한미FTA로 관세 수입이 줄었다. 국가 재정의 확실한 손실이 먼저 이뤄진 것이다. 가령 한미FTA로 인해 관세 수입이 1000억 원 줄었는데, 체리나 와인 같은 제품의 수입 가격은 그만큼 떨어지지 않았다고 해보자. 그건 국민 복지를 위해 써야 할 관세를 미국의 수출업자, 한국의 수입업자 호주머니에 집어넣어준 격이다. 이렇게 국가 재정 손실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문제인데도 (이명박-박근혜 그룹은) 책임성 있는 자세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야당도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송 변호사는 민주통합당을 비롯한 야당 일각에서 "한때는 관성적으로 한미FTA 폐기를 주장하다가 이제는 냉탕과 온탕을오가는 정략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송 변호사는 "'한미FTA에 대해 문제제기하면 손해'라는 식으로 보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 된다"고 주문했다. 한미FTA에 대한 문제의식의 원칙은 유지하되, 발효에 따라 새로운 이해관계와 새로운 경제주체들의 행동이 발생했다는 점에 주목하고 그에 맞춰 대응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김덕련 기자,이대희 기자

2012년 1월 23일 월요일

돌려막기 경제, 남은 카드가 없다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01-21일자 기사 '돌려막기 경제, 남은 카드가 없다'를 퍼왔습니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바로가기

» 독일 프랑크푸르트 중심가에 위치한 유럽중앙은행(ECB) 앞에 세워진 대형 유로화 상징물 밑으로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2008년 이후 금융 상황이 쉴 새 없이 악화되는 것을 가리키기 위해 쓰고 있는 ‘위기’라는 개념은 어떤 유구한 체계에 느닷없이 이상이 생겼음을 암시한다. 그렇다면 원상복구를 하기 위해 무절제했던 그동안의 행태를 고치는 것 정도로 충분할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 사태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서구 국가들에 도입된 민주자본주의가 넘을 수 없는 어떤 혼돈을 내포하고 있다면 어떨까?
매일같이 현 경제위기를 수놓고 있는 사건들을 보면 ‘시장’이 국가를 지배함을 알 수 있다. 자칭 ‘민주주의 주권국가’라고 하나 국가는 시민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에 한계를 그어놓고 시민이 요구할 수 있는 것에 양보를 종용하는 모습이다. 국민은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을 확인한다. 바로 정치 지도자들이 자국민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들은 국가나 민주주의의 준엄한 원리에서 비켜 있는 유럽연합(EU)이나 국제통화기금(IMF) 같은 국제기구들을 위해 봉사한다. 대부분은 지금 이런 상황에 대해 대체로 안정적 기초경제 여건에 사소한 장애가 발생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냥 위기라는 것이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
‘대불황’(Great Recession)과 그로 인해 거의 붕괴된 공공재정은 모두 시장의 요구와 민주주의의 요구 간 줄다리기에서 결국 자본주의 사회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음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시장과 민주주의 간의 갈등은 혼란과 불안정을 낳는다. 따라서 현 경제위기를 이해하려면 본질적으로 갈등을 내포한 ‘민주자본주의’라 부르는 이 체제의 변환을 조명해야 한다.
1960년대 말 이후 정치민주주의와 시장자본주의 사이의 모순을 뛰어넘기 위해 세 가지 방안이 차례로 도입됐다. 첫째 해결 방안은 인플레이션, 둘째는 공공부채, 셋째는 민간부채다. 각 방안의 해결 방식에 따라 경제세력, 정치권, 사회세력 사이에는 특별한 관계가 형성됐다. 그러나 이런 방안은 차례로 위기에 봉착했다. 2008년 금융 환란은 결국 세 번째 방안의 종언과 함께, 그 성격이 어떠할지 불확실한 새로운 관계의 시작을 보여준다.

민주주의와 시장, 태생적 갈등관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민주자본주의는 1960년대 말부터 첫 위기를 겪었다. 당시 서방세계 전체에 인플레이션의 소용돌이가 시작되고 있었다. 경제성장 침체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노사 갈등 해소와 평화로운 관계의 지속성을 급작스럽게 위협했다. 당시까지 수용된 관계 방식의 골자는 다음과 같다. 노동계층은 정치민주주의에 대한 대가로 시장경제와 사유재산제를 수용했다. 당시 정치민주주의는 사회보장과 지속적인 생활수준 향상을 보장했다. 20여 년간, 통제 없는 경제성장이 계속되면서 사회·경제적 진보가 민주시민권을 형성한다는 신념을 고착화했다. 정치 지도자들은 이런 세계관을 자랑스럽게 여겼으나, 다양한 정치적 요구들이 불거졌다. 복지국가 확장, 자유로운 단체협상에 관한 노동자의 권리와 완전고용의 정치적 보장 같은 요구였다. 정부는 케인스 경제정책을 대대적으로 실행함으로써 이 모든 요구 사항의 수용에 나섰다.
그러나 1960년대 말부터 성장세가 둔화되면서 이런 관계는 지속되기 힘든 상태에 이른다. 노동사회적 저항이 전세계에 확산되면서 불안정이 대두됐다. 아직 실업의 공포를 실감하지 못한 노동자들은 생활수준 향상 같은 자신의 진보적 권리라고 여겼던 모든 것을 포기하려 하지 않았다.

이후 몇 년에 걸쳐 서방세계의 정부는 모두 같은 문제에 직면한다. 어떻게 완전고용에 대한 케인스식 비전을 고수하면서 노조의 임금 인상 요구를 누그러뜨릴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 1970년대, 대부분의 서방 정부는 실질임금 상승을 억제하기 위해 실업률 상승을 내버려두면 자신의 존립 기반이나 민주자본주의를 위협하게 된다고 믿었다(이는 국가 최고위 계층에서 공유된 신념이기도 했다). 각국 정부는 이런 난관에서 벗어나려 완전고용과 자유로운 단체협상을 동시에 지속하면서 하나의 방안을 강구하게 되었다. 바로 인플레이션 확대를 각오하고 통화정책을 완화하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노동자에게 물가 상승은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물가 상승에 실질임금을 연동하도록 강요할 수 있는 상당히 강한 노조가 이들을 대변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인플레이션은 채권자와 금융자산 보유자, 즉 상대적으로 노동자층이 거의 없는 계층의 자산을 침식하면서 손해를 입혔다. 이런 점에서 인플레이션은 분배의 갈등이 통화를 통해 그대로 투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한쪽은 고용 안정과 국가 수입에 대한 더 많은 지분을 요구하는 노동자 계층이고, 다른 한쪽은 투자에 대한 이익 환수를 최대화하려 애쓰는 자본가 계층이다. 양쪽은 각자 회귀하게 되는, 서로 양립이 불가능한 사상을 토대로 한다. 한쪽은 시민권을 주장하고 다른 한쪽은 사유재산과 시장을 내세운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 인플레이션은 한 사회의 아노미를 표출한다. 사회 구성원 모두가 사회정의의 공통 기준에 대한 합의점에 도달할 수 없는 아노미다.

성장 둔화와 마주친 케인스주의
제2차 세계대전 직후 각국 정부들이 경제성장을 통해 계층 간 반목을 완화할 수 있었다면, 인플레이션은 실질 경제가 생산하지 않은 자원을 짜내면서 소비수준과 소득의 재분배를 유지할 수 있게 했다.
어쨌든 이런 갈등 중재 전략은 효과적이었지만 무한정 지속될 수 없었다. 결국 자산 보호에 고심하던 자본가 쪽의 반발을 야기했다. 이들의 대응으로, 처음에는 노동자에게 유리했던 인플레이션이 실업을 낳으면서 노동자를 벌하게 된다. 시장의 압력을 받은 각국 정부는 재분배 중심의 임금 합의를 포기하고 통화 규제로 돌아서게 된다.
제임스 카터 미국 대통령(1977~81)에 의해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으로 새로 지명된 폴 보커가 전례 없는 금리 인상을 단행하기로 결정하면서 인플레이션은 1979년 이후 안정됐다. 금리 상승 때문에 대공황 이후 초유의 실업을 기록하게 되었다. ‘폴 보커의 쿠데타’는 투표를 통해 인정받게 된다. 처음에는 보커가 취한 디플레이션 정책의 여파를 우려한다고 말했던 로널드 레이건이 1984년 재집권한 것이다. 1983년 영국에서는 미국 정책을 따르는 엄격한 통화정책으로 실업자가 급증하고 급속한 탈산업화가 야기됐음에도 마거릿 대처가 총리 연임에 성공했다. 두 나라에서 디플레이션은 노조에 대한 합법화된 탄압을 동반했다. 이후 몇 년에 걸쳐 자본주의 국가 전체에서 인플레이션은 제어됐지만 실업은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특히 프랑스의 실업률은 1980년 5%에서 1988년 9%로 증가했다. 같은 때 노조가입률은 급감했고 파업도 드물어져 일부 국가에서는 집계조차 그만두었다.
신자유주의 시대는 앵글로색슨 국가들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민주자본주의의 한 축을 폐기 처분한 시점에 시작됐다. 그 축이란 실업은 집권 정부뿐 아니라 사회 구성 방식의 존립 기반인 정치적 지지를 무너뜨린다는 생각이다. 전세계의 정치 지도자들은 레이건과 대처가 이끈 정책 경험을 큰 관심을 갖고 추종했다. 그러나 인플레이션을 끝내면 경제 무질서가 해결될 것이라고 희망하던 자들은 곧 스스로 그 비용을 치르게 되었다. 인플레이션은 멈추었지만 공공부채가 그 자리를 대신했기 때문이다. 1980년대 공공부채는 하늘로 치솟았다. 그 이유는 다양하다.
인플레 확대 동반한 임금 상승
먼저 경기침체로 납세자들은 세금 납부에 적대적으로 변했다. 부유하고 사회적 영향력이 큰 사람들이 유독 심했다. 물가 상승을 억제하면서 자동적으로 세수 증가(소득 증가에 연동한)도 멈추었다. 이는 국가 통화의 가치를 하락시켜 공공부채를 지속적으로 경감하는 것도 끝났음을 의미했다. 사실 통화가치 하락은 초기에는 경제성장을 보완했다가 점차 부채를 줄이기 위한 최상의 수단으로 변해왔다. 통화 안정화에 따른 실업 상승으로 국가는 사회 지원 비용을 늘려야 하는 상황에 이른다. 게다가 1970년대 노조의 임금 상승 완급 조절 수용(일종의 차등화된 임금체계)을 대가로 형성된 여러 사회적 권리들에 대한 요구가 시작되고 있었다. 이는 점차 공공재정을 무겁게 짓눌렀다.
시장의 압력, 통화 규제로 급선회
시민과 시장의 요구 사이의 간극을 해소하기 위해 인플레이션을 다시 활용하는 건 불가능했다. 결국 사회 평화를 유지하는 부담은 국가에 돌아갔다. 한동안 공공부채는 기능적으로 인플레이션 같은 유용한 도구였다. 실제 인플레이션과 똑같이, 공공부채는 분배 갈등을 완화하기 위해 정부가 아직 생산된 바 없는 자원을 유용할 수 있게 해주었다. 달리 말하면 미래의 자원을 가져와 오늘 필요한 자원으로 충당하는 것이다. 시장과 사회의 요구 간 다툼이 생산의 터에서 정치의 터로 옮겨가면서 노조투쟁은 선거 압력으로 바뀌었다. 돈을 계속 찍어내는 대신, 정부가 먼저 나서 돈을 더 빌려오게 된다. 인플레이션 정도가 미미했기에 채권자들은 국채의 장기적 가치에 안심했고, 이런 과정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공공부채 늘리며 노동자 달래기
그러나 공공부채 축적도 영원히 지속될 수 없었다. 오래전부터 경제학자들은 공공적자가 유용가능한 재원을 고갈시키고 금리 상승과 경기 둔화를 야기하며 민간 투자를 고사시킬 것이라고 정권에 경고해왔다. 그렇지만 그들은 그 임계점을 찾아낼 수 없었다. 그렇더라도 한동안은 금융시장 규제를 완화하면서 상대적으로 저금리를 유지하고, 노조를 무력화하면서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는 것이 가능했다. 그러나 저축률이 예외적으로 낮은 미국은 곧바로 자국민과 외국 투자자들에게까지 국부펀드를 포함해 국채를 팔기 시작했다. 더구나 부채 부담이 커질수록 공공재정에서 이자를 지급하는 비중이 증가했다. 특히 사전에 규정할 수 없는 어느 시점에 국내외 채권자들은 돈을 돌려달라고 요구할 터였다. 따라서 ‘시장’은 국가에 재정 규율과 이자 보전에 필요한 엄격한 공공예산을 실행하도록 압박하기 시작했다.
1992년 미국 대통령 선거는 이중 적자 문제가 주요 쟁점이었다. 연방정부 적자와 국가 전체의 무역수지 적자였다. 이 문제를 선거 전략 중심으로 삼은 빌 클린턴이 승리하면서 ‘재정 건전화’(Fiscal Consolidation)에 역점을 둔 정책의 신호탄이 울린다. 전세계적으로 미국의 주도 아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IMF 등이 이런 노력을 적극적으로 약속했다. 초기 민주당 내각은 대대적인 사회 개혁을 통해 경제성장을 진작하고 세금을 올리면서 적자를 줄이려 했다. 그렇지만 1994년 민주당은 중간선거에서 의석 과반수를 얻지 못한다. 클린턴은 노선을 급선회해 공공비용 감축이 골자인 긴축정책을 받아들인다. 수십 년에 걸쳐 처음으로 1998∼2000년 미국 연방정부는 예산 흑자를 기록한다.


» 지난해 11월 ‘탐욕’ ‘그릇된 우상’이라 적힌 황금소 모형을 메고 월가를 행진하는 ‘월가를 점령하라’ 시위대.

시장의 새 압력, 재정 건전화
그러나 클린턴 행정부는 항구적으로 민주자본주의 정치의 경제를 순조롭게 진행시키는 데는 이르지 못했다. 그의 사회갈등 조정 전략은 많은 부분에서 레이건 정권 때 이미 시작된 금융 분야 규제 완화를 확대하는 내용이었다. 노조의 지속적 쇠락과 사회보장 지출의 대대적 삭감, 재정 건전화 정책으로 위축된 수요 등으로 소득 불평등이 급속히 심화되자, 이를 상쇄하기 위해 개인과 기업들에 전례 없는 수준의 대출이 가능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공공부채가 민간부채로 대체된 것을 가리키는 그럴듯한 이름의 ‘민간 케인스주의’가 등장하게 된다. 정부는 더 이상 양질의 주택을 평등하게 공급하거나 노동자를 교육할 비용을 대기 위해 돈을 빌리지 않는다. 이제는 개인들이 자신의 교육, 또는 더 나은 주거지로 옮기는 비용을 대기 위해(4) 위험과 리스크를 각오하고 대출 계약을 하게 된다(실제 거의 선택의 여지가 없다).
대출 확대, 공공부채를 민간부채로
클린턴 행정부에서 도입한 정책은 상당한 행복을 창출했다. 부자들은 세금을 덜 냈고, 그중에서 미리 눈치채고 금융 분야에 투자한 이들은 막대한 이익을 챙겼다. 그런데 빈곤층도 전혀 불만을 가질 이유가 없었다. 적어도 초기에는 그랬다. 서브프라임 신용과 이에 따른 ‘부의 신기루’가 복지 지원금 삭감과 임금 상승(‘유연화’된 노동시장의 최하위층에서는 존재하지 않던)을 대체했다. 특히 흑인들에게 주택 취득은 단순히 ‘아메리칸드림’을 실현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았다. 그들이 일자리에서 보장받지 못했고, 지속적인 긴축에만 매진하는 정부로부터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던 퇴직연금을 대신하는 것이었다.

‘민간 케인스주의’로 금융 초호황
따라서 자유화는 재정 건전화와 공공 긴축정책을 상쇄했다. 공공부채에 이어 민간부채까지 가세해 국가 주도의 공공 수요를 대체하게 된다. 고용과 이익을 지탱하는 것은 개인 수요였고, 특히 부동산 부문은 더욱 심했다. 이런 동력은 앨런 그린스펀이 이끄는 FRB가 경기침체 및 실업률 재상승을 막기 위해 저금리를 도입하는 2001년부터 가속화했다. 그러나 ‘민간 케인스주의’는 금융 분야에서 사상 최대의 이익을 낳았을 뿐만 아니라 경제 호황의 중심축이기도 했다. 이는 유럽 노조들의 한없는 부러움을 샀다. 유럽 노조는 미국 사회의 급속한 부채 확산을 야기한 그린스펀의 통화 확대 정책을 모델로 한 정책을 입안한다. 유럽 노조는 유럽중앙은행과 달리 미국 FRB가 통화 안정을 지키는 것뿐 아니라 높은 고용을 유지해야 할 법적 의무를 지닌 점에 열렬한 관심을 보였다. 그러나 2008년 이것들은 모두 끝나버린다. 국제 신용의 피라미드가 갑자기 붕괴하면서 말이다. 이 피라미드는 1990년대 말과 2000년 초기 경제 번영의 토대였다.
인플레이션, 공공적자, 그리고 민간부채로 이어지는 시대를 지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민주자본주의는 이제 네 번째 단계로 진입했다. 전세계 금융 시스템이 내폭하려고 하자 국가들은 그 전에 재정 건전화 정책을 상쇄할 목적으로 용인한 치명적 대출을 사회화하면서 경제 신뢰를 회복하려 했다. 실물 경제 붕괴를 막는 데 필요한 경기 부양과 맞물려 이런 조처는 공공적자를 더욱 심각한 수준으로 악화했다. 그 경과를 보면 알겠지만 이런 사태는 일부 이론의 주장과 달리, 세계은행과 IMF 체제하의 1990년대에 벌어진 기회주의 지도자나 공공기관의 잘못된 지출 탓이 아니었다.
위기, 그리고 부실채권의 사회화
그 경과는 이렇다. 2008년 이후 민주자본주의에 내재된 분배 갈등은 국제 금융 투자자들과 각 주권국가 간의 치열한 싸움으로 바뀌었다. 과거에는 노동자와 사장, 시민과 재정 부처, 개인 채무자와 민간은행 간의 싸움이었지만 오늘날은 금융기관들이 국가와 진검승부를 벌이고 있다. 금융기관들은 최근까지 국가를 협박해 자신을 구제하도록 요구했다. 앞으로는 이런 상황의 근본인 그 역학관계가 어떤 것인지 규정하는 일이 남았다.
실례로 금융위기 초기 이후부터 금융시장은 국가별로 상이한 금리를 요구했다. 금융시장이 각국 정부에 차등적으로 압력을 행사하면서 해당 국가의 국민은 전례 없는 재정 감축을 감내해야 했다. 천문학적인 금액의 부채가 국가들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기 때문에, 아주 미미한 수준의 국채 금리 상승도 여차하면 재정 파탄을 야기할 수 있다. 동시에 국가들이 디폴트(채무불이행)를 택할 수도 있기 때문에, 시장은 국가를 너무 강하게 압박해서도 안 되는 상황이다. 따라서 일부 국가들은 가장 위태로운 상황에 있는 다른 국가들을 기꺼이 도우려 한다. 그렇게 해서 국채 금리 상승을 대비하는 것이다.
시장이 기대하는 것은 단지 재정 건전화만이 아니다. 시장은 경제성장에 대한 합리적인 전망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재정 건전화와 경제성장, 이 둘을 어떻게 동시에 달성할 것인가? 아일랜드가 재정 적자 감소를 위한 강력한 조처를 약속했을 때 아일랜드 부채의 리스크 프리미엄은 낮아졌다. 그러나 몇 주 뒤 프리미엄은 다시 상승했다. 경제재건 계획이 너무 혹독해 어떤 경기회복도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몇 년 전부터 민주자본주의 정치를 실행하기가 어려워지고 있다. 대공황 이후 정책 결정자들이 이렇게 불확실성이 큰 상황과 대면한 적은 없었던 듯하다.
게다가 일부에서는 사상 초유로 저금리의 돈이 넘쳐나면서 새로운 거품이 형성되고 있다. 적어도 현재까지는 서브프라임 모기지에 대한 투자가 더 이상 이루어지고 있지 않지만, 원자재나 새로운 인터넷 경제 전망은 매력적이다. 금융회사들은 주요 고객과 자신의 이익을 위해 ‘새로운 성장 분야’가 될 것으로 보이는 분야에 중앙은행이 공급해준 넘치는 유동성을 이용할 소지가 충분하다. 어쨌든 금융 분야 규제를 목표로 한 개혁들이 거의 실패하는 바람에 자본은 예전보다 더 성마르게 요구 사항을 내놓을 수 있게 됐다. 2008년 ‘대마불사’(大馬不死)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 은행들은 2012년이나 2013년에도 같은 도움을 바랄지 모른다. 그리하여 3년 전 국가를 상대로 능수능란하게 펼쳤던 협박을 다시 실행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번에는 자본주의의 공공구제는 불가능할지 모른다. 공공재정이 능력의 한계치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민주자본주의에 남은 카드는 있나
현재 민주주의의 위기는 경제를 짓누르는 위기만큼이나 심각하다. 현대사회의 ‘시스템 통합’, 즉 자본주의 경제의 효율적 운영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을 뿐 아니라 ‘사회적 통합’도 흔들리고 있다. 새로운 긴축 시대가 열리면서 시민의 권리와 자본 축적의 요구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각국의 능력은 심각한 타격을 받았다. 또한 국가 간 상호의존 관계가 더욱 심화되면서 경제와 사회, 또는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간의 갈등을 국내 차원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은 갈수록 현실성이 떨어지고 있다. 어떤 정부도 더 이상 국제사회의 제약과 의무, 특히 자국민을 희생시켜야 하는 금융시장의 강요를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민주자본주의의 위기와 모순은 국가 내에서뿐만 아니라 국가 관계에서도 아직은 알 수 없는 조합과 교체를 진행하며 점차 국제적 양상으로 확산되고 있다.
1970년대 이후 경제위기의 흐름을 관찰해볼 때, 민주자본주의가 사회 갈등을 조정할 (한시적이긴 해도) 새로운 방안을 찾게 될 가능성은 있다. 그러나 이번에는 정치적으로 난공불락(難攻不落)의 위치에 견고히 버티고 있는 자본가 계층, 즉 국제 금융산업에 전적으로 유리한 방향일 것이다.
글 / 볼프강 스트리크 Wolfgang Streeck
막스플랑크 사회연구소(쾰른) 소장. 본문은 2011년 9~10월 발행된 (New Left Review) 71호(런던)에 게재된 분석 내용을 축약한 것이다.

번역 / 박지현 sophile@gmail.com
남극보호연합(ASOC) 동아시아지부 담당.

2011년 12월 11일 일요일

ISD는 ‘월가 권리장전’


이글은 한겨레신문 Economy Insight 2011-12-01일자 기사 'ISD는 ‘월가 권리장전’'을 퍼왔습니다.
[Special Report Ⅱ] 한-미 FTA 쟁점 해부

이해영 한신대 국제관계학 교수

지난 11월17일 미국의 뉴욕증권거래소 근처에 ‘월가를 점령하라’ 시위대가 경제적 불평등에 항의하며 집결해 있다.

공익을 대표해야 하는 국가를 기본적으로 사인들 간의 분쟁 해결 방식인 중재에 ‘강제’ 회부하는 것을 통해, 국가를 사익 추구자인 투자자 지위로 격하시키는 것이 ISD의 본질이라 할 수 있다. 이 과정이 강제인 이유는, 한-미 FTA상 ISD의 경우 국가는 이미 중재 절차에 ‘사전동의’ 또는 ‘자동동의’(제11.17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어떤 선택권 없이도 투자자가 소송하면 무조건 세계은행의 중재법정인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에 끌려가야 한다.
정부는 “세계은행이 중립적이며, 공정하고 투명한 제3의 기구”라고 말한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어 한다. 세계은행은 미국의 지분이 17%를 차지하는 등 사실상 미국이 대주주다. 세계은행 총재는 언제나 미국 차지다. 세계은행은 국제통화기금(IMF)과 더불어 제3세계 국가에 자금 지원을 대가로 구조조정을 강요해왔다. 이처럼 강요된 신자유주의는 글로벌 양극화를 심화시킨 주범 중 하나였다. 더군다나 그 산하기관인 ICSID는 기본적으로 투자자의 이익을 보장하기 위해 설립된 것이지, 공익을 수호하기 위해 만든 기구가 아니다. 더군다나 한-미 FTA상 ISD는 한-미 양국이 합의에 도달하지 못할 경우, 중재인 3명 가운데 의장이 되는 중재인을 ICSID의 사무총장이 지명하게끔 되어 있다. 문제는 사무총장이 ICSID의 운영위원회 의장, 즉 세계은행 총재의 지휘하에 있다는 것이다. 
ISD는 어떤 협정문상의 특정 조항이기보다는 하나의 절차 규율이자 시스템으로 간주해야 한다. 미국의 투자·금융에 관계되는 모든 것이 ISD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투자, 곧 돈이라는 것이 결국 우리 경제의 혈관을 따라 움직이는 것이라 할 때, ISD는 보편적 지위를 갖는 경제법이자 사실상 헌법 위에 군림하는 또 다른 절차법인 셈이다.

미국이 중재인 ‘셋 중 둘’ 사실상 지명 
한-미 FTA 발효 전에 론스타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내려졌기에 망정이지, 만에 하나 한-미 FTA 체제하에서 이런 판결이 내려졌다면 론스타는 십중팔구 이 대법원 판결을 ISD에 따라 ICSID에 제소했을 것이다. 한국 정부가 론스타의 막대한 투자 이익 송금을 제한한 것은 협정문 부속서 11-사 송금, 즉 ‘금융세이프가드 조항’ 제2항 나호에서 금지하는 ‘외국인 직접투자와 연계된 지급 또는 송금’에 해당된다. 이런 자금에 대해 협정문은 어떤 송금 제한 조치도 취할 수 없도록 한다. 사모펀드인 론스타는 투기성 자금이지만, 법률상으로는 외국인 직접투자로 분류되고, 심지어 한-미 FTA 투자 개념에는 사모펀드도 포함된다. 따라서 사모펀드에도 우리 정부는 모든 협정상의 의무를 이행해야 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ISD의 대상이 된다. ISD가 논쟁의 중핵이 되면서 정부 쪽의 변명 역시 치열하다. 그 과정에서 책임질 수 없는 과도한 주장이 남발되고 있다. 외교통상부가 낸 ‘한-미 FTA의 공공정책 자율권 확보현황 자료’를 보자.


여기에서 보듯 정부 쪽은 ‘협정의 적용배제’라는 이름으로 예컨대 국민연금 등 4대 보험과 8개 국책금융기관을 들고 있다. 과연 이 주장은 사실일까. 그 해당 조문인 금융부문 제13.1조 제3항을 보자.



예컨대 국민연금 등에 대해서는 ‘이 장’ 곧 협정문 제13장 금융 서비스만 적용되지 않을 뿐이다. 그리고 가호 아래에 달린 단서를 잘 보자. 결국 이런 말이다. 국민연금이 국내외 여러 자산운용사에 위탁운용한 자금, 즉 경쟁이 허용되는 범위에 대해서는 당연히 ISD를 포함한 제13장 금융부문의 각종 의무가 적용된다는 말이다. 따라서 협정이 ‘적용배제’되었다는 말은 과장된 잘못된 주장이다. 마찬가지로 8개 국책금융기관에 대해서도 협정이 ‘적용배제’되었다는 주장 역시 과장된 것이다.
해당 제13장의 ‘부속서한’을 보면 8개 국책금융기관에 대해 “제13장의 적용을 받으나 그 장의 목적상 금융기관으로 간주되지 아니함을 확인한다”고 되어 있다. 8개 기관이 금융기관은 아니지만 제13장의 적용을 받는다는 의미가 뭘까. 제13.1조에 규정된 13장의 적용 범위를 살펴보자.



이 부속서한의 의미는 8개 국책금융기관이 제13.1조 1항 가호에 규정된 ‘금융기관’은 아니지만, 이들이 향후 상장되거나 특히 민영화될 경우 13장은 물론이고, 위 나호와 다호에 따라 11장 투자, 12장 서비스의 적용을 받게 된다는 말이다. 따라서 엄연한 협정문상의 규정을 제쳐두고, 8개 국책금융기관에 대해 협정이 ‘적용배제’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매우 과장됐다. 앞에서 든 몇 가지 사례에서 보듯이, 정부 쪽이 주장하는 상당수의 ‘적용배제’  ‘유보’  ‘예외’ 등에 관련된 것들은 사실에 정확히 부합되지 않거나, 다분히 과장된 것들이다. 나아가 의도적으로 단서조항들을 언급하지 않거나 누락시키고 있다.

4대 보험·국책금융기관도 제소 대상
정부는 우리나라의 미국에 대한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해 협정문 11장과 같은 투자자 보호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주로 직접투자만 언급한다. 주식·채권 등과 같은 간접투자 통계는 잘 안 보인다. 
2010년 우리나라의 미국에 대한 직접투자가 2002년에 비해 4배 가까이 증가한 반면, 같은 기간 미국의 한국에 대한 직접투자는 2배 정도 증가했다. 마찬가지로 미국에 대한 증권투자는 6배 정도 증가한 반면, 미국의 한국에 대한 증권투자는 3배에 못 미치는 정도로 늘었다. 그래서 한-미 간 직접투자 규모는 상당히 근접하고 있다.
하지만 간접투자는 규모에서 2010년 기준 미국이 한국보다 5배 정도 더 많다. 문제는 한-미 FTA 투자·금융 부문은 이 모든 부문에 적용된다는 것이다.
직접투자라 하더라도 예컨대 KT에 투자한 영미계 사모펀드나 론스타 등이 모두 직접투자로 분류된다는 점에서 문제의 소지가 다분하다. 하물며 투기성이 강한 미국의 한국에 대한 증권투자가, 한국에 대한 전체 투자액의 약 75%(2010년 기준)를 차지하는 현실에서 투자·금융 부문이 우리나라에 유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은 낮다.

한국여성민우회 회원이 지난 11월9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국회 비준을 반대하는 1인시위를 벌이고 있다.

투기성 자본의 ‘먹튀’ 더욱 활개 우려
우리나라의 현대·기아차처럼 이른바 공장설립형(그린필드형)으로 진출한 미국에 대한 직접투자가 미국 경제의 선순환을 지지하는 것과 큰 대조를 이룬다. 그런데 막상 현대·기아차가 진출한 미국의 앨라배마주와 조지아주는 지금까지 미국이 체결한 FTA를 승인한 예가 거의 없다. 다시 말해 주법상의 투자자 보호를 현대·기아차가 받을 가능성이 낮다는 말이다.
한-미 FTA는 수출의존도를 더욱 심화시키고, 과도한 금융시장 개방을 돌이킬 수 없게 만들 것이다. 한국에 대해 ‘외국계 투기자본의 현금인출기(ATM Korea)’라고 말한다. 그들이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한국 경제의 수출의존도가 지나치게 높고, 주식시장에서 외국인 비중이 너무 높다(30% 이상 차지)는 데 있다. 금융시장이 과도하게 개방되어 있다는 말이다. 한-미 FTA는 이 경향을 불가역적인 것으로 만든다. ISD나 역진방지 메커니즘(한번 개방하면 다시 후퇴할 수 없는 래칫 조항) 등으로 인해 ‘ATM Korea’는 항구화될 위험에 처하게 되고, 한국의 주식시장은 ‘글로벌 호구’가 될 판이다. 
최근 월가 점령시위는 1%도 안 되는 월가 ‘금융귀족’들이 미국을 점령한 데 대한 일대 반격이다. 한국은 어떨까. 시중은행 대부분이 영미계 외국자본으로 넘어간 지 오래다. 그리고 상위 50대 기업의 외국인 주식 비중을 보면 KT&G·NHN·포스코는 50%를 넘고, SK텔레콤·삼성전자·KT는 50%에 육박한다. KT는 자사주 비율을 제외하면 50%를 넘는다. 한국 경제의 주도권은 월가가 쥐락펴락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미 FTA는 한국 경제에 대한 월가(초국적 금융자본)의 지배권을 더욱 공고화하고 나아가 ‘역진 불가능한’ 것으로 확정하는 효과를 낳을 뿐이다. 

2haeyoung@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