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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5월 21일 화요일

한겨레와 중앙일보의 사설 교류, ‘청소년’ 위해?


이글은미디어스 2013-05-20일자 기사 '한겨레와 중앙일보의 사설 교류, ‘청소년’ 위해?'를 퍼왔습니다.
사교육에 영합하는 한겨레의 탈정치성은 아닌지


▲ 20일자 한겨레 1면 기사

한겨레와 중앙일보의 ‘사설 교류’가 시작됐다. 한겨레와 중앙일보는 동일한 사안에 대한 두 언론사의 사설을 비교·분석해 보여주는 지면 ‘사설 속으로’를 공동 제작해 21일부터 매주 화요일 두 신문에 싣는다. 두 신문사는 사설을 비교·분석하는 필자를 두 명씩 추천하기로 했는데, 한겨레는 송승훈 남양주광동고 국어 교사와 안광복 중동고 철학교사를 추천했고 중앙일보는 김기태 호남대 교수와 허병두 숭문고 교사를 추천했다.  
한국 사회의 대표적인 진보언론인 한겨레와 영향력 있는 보수신문 중 하나인 중앙일보가 공동기획을 추진하는 상황은 그 자체로 분석될 가치가 있다. 만일 성향이 다른 두 신문사가 공동기획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면 그 이유는 ‘심화된 공론형성’과 ‘진영논리의 극복’ 정도가 될 것이다. 사설을 비교·분석하는 기획이라면 더욱이나 그렇다. 

그렇다면 이 기획을 평가하는 잣대는 “이 기획이 밋밋한 양비론이나 양시론을 넘어 공론형성을 심화하고 진영논리를 극복하는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질문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진보진영 내부에서 이러한 질문이 던져진다면 그 질문은 중앙일보 보다는 한겨레를 향하게 될 것이다. 보수세력이 진보세력에게 관용적인 자세를 취하겠다는 데에 진보진영 입장에서 시비를 걸어야 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진보세력이 보수세력에게 접근한다면 그것이 정체성을 훼손하지는 않는지 유효한 전략·전술인지를 따져 물을 수 있다.   

이를테면 보수언론 중에 ‘파트너’를 선택할 때 그 대상이 중앙일보인 것이 적절했느냐는 질문이 가능하다. ‘조중동’으로 요약되는 보수언론의 지형도에서, 조선일보는 삼성 등 기업권력에 대한 비판은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반면 대북문제에 대해서는 대단히 경직되어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중앙일보는 정확히 반대방향이다. 동아일보는 이명박 정부 시절 무색무취했던 여당지에서 나름의 변신을 꾀하고 있는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중앙일보는 ‘상대적으로 해악이 덜한 보수신문’이란 평가도 받을 수 있고 ‘장기적으로 볼 때 가장 해악이 큰 보수신문’이란 평가도 가능하다. 하지만 현재 신문지형과 담론 구조에서 볼 때 중앙을 '조선, 동아'에서 떼어내 판단해야 할 아무런 근거가 없으며 이를 한겨레 역시 모르지 않을 것이다. 한겨레 역시 나름의 평가를 통해 협력관계를 추구했겠지만 이 첨예한 논의를 진보담론이나 언론개혁 운동 내부에서 공론화하기 전에 ‘독단적으로’ 결정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가능하다. 

더 큰 문제는 ‘사설 속으로’가 그 취지 설명 기사를 볼 때 ‘공론형성’이나 ‘진영논리 극복’ 등을 준거로 평가 받을 기획도 아닌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중앙일보와 한겨레에 같은 내용으로 실린 기사 설명을 보면 유난히 부각되는 키워드가 ‘청소년’이다. 

두 신문은 “건강한 토론 문화를 뿌리내리고, 청소년에게 균형 잡힌 시각을 길러주기 위한 뜻있는 일을 시작합니다”라고 선언했고 두 신문사의 사설을 깊이 있게 탐구하는 것이 “청소년들에겐 다양한 분야의 풍부한 지식을 쌓을 수 있는 기회”라고 말한다. 신문사가 청소년을 걱정하는 것을 탓할 수는 없으나 보기에 따라서는 ‘공론형성’이나 ‘진영논리 극복’보다는 논술이나 구술면접 시장에 어필하려는 장삿속이 읽힌다고 보일 수 있는 대목이다.  

과거에는 시사현안에 대해 곧바로 대응하는 텍스트를 읽을 수 있는 창구가 신문 정도 밖에는 없었다. 그런 시대의 신문은 자신의 주장만 늘어놓을 것이 아니라 그 신문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으면 상대 입장의 논리까지도 정연하게 파악할 수 있도록 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경향신문이 한때 조선일보 출신 논객 류근일의 칼럼 등을 지면에 받으며 논란을 일으켰던 상황은 그러한 ‘전통적인 신문의 문법’으로 복귀하려는 욕망에서 나온 일이었다는 평가도 가능하다.  

오늘날에도 그러한 일이 필요한지는 분명하지 않다. 오늘날 뉴스를 소비하는 독자들은 주로 인터넷에서 소비하기 때문에, 신문사가 소개하기 전에 입장이 다른 언론사의 뉴스들을 찾아다닌다. 특히 조중동의 독자들이 정치성향이나 연령의 특성상 주로 조중동만 본다면, 한겨레와 경향신문의 독자들은 이미 조중동의 논의들을 충분히 접하고 그에 염증을 내는 중이다. 

‘소통’도 좋지만 조선일보 사이트만 들어가면 볼 수 있는 류근일과 같은 전형적인 극우논객의 글을 굳이 경향신문 지면에서 봐야 하는지에 대해 의구심을 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진보언론이 한국 사회에서 여전히 ‘마이너’의 입장에 있고 그 독자들이 ‘메이저’의 논리를 이미 알고 있다면 더욱이나 그렇다. 사실 뉴스소비의 창구가 온라인이 되기 이전에도 한겨레는 보수언론과 함께 읽는 일종의 ‘병독지’로 소비되었기 때문에 그 ‘전통적인 신문의 문법’에서 꽤나 자유로웠다. 

그러나 경향신문의 시도가 ‘전통적인 신문의 문법’으로 회귀하려는 보수성이라면 한겨레의 시도는 정치성향이나 입장과 무관하게 ‘글쓰기’ 자체를 평가하는 사교육에 영합하는 탈정치성이 될 수도 있다. 이는 ‘청소년’에 대한 강조에서만 이끌어낸 무리한 추론이 아니라, 양 신문사가 추천한 필자가 글쓰기 교육에 종사하는 이들이란 점에서 나온 우려이기도 하다. 

물론 이 사회에서 글쓰기 교사들의 역할은 소중하지만, 정치성향이 다른 양 신문사의 사설을 비교·분석하는 ‘중립지대’에 글쓰기 교사가 포진해 있는 상황은 부적절하다. 정말로 공론형성 심화나 진영논리 극복을 목적으로 했다면 양 신문사의 관성적인 ‘취재원 풀’을 넘어서는 각 분야에서 ‘열린 사고’를 가지고 있는 이들을 매번 선정하거나, 적어도 그런 시선을 대변할 수 있는 필자를 선정했어야 했다. 양 신문사가 선정한 필자가 그런 역할을 하기를 기대해야겠지만 대체로 교사들의 글쓰기는 대단히 조심스럽고 제약이 많은 것도 현실이다. 정치적 견해를 드러내기는 어려운 실정에서 그들의 글쓰기는 '균형잡힌 견해가 요구된다'거나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류의 하나마나한 소리로 귀결되기 십상이다. 

사실 양 신문사의 ‘사설 속으로’ 기획 취지실명 기사에서는 ‘공론형성’이나 ‘진영논리 극복’이란 말이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건강한 토론 문화를 뿌리내린다”는 말이나, “사설은 우리 사회 현안에 대한 신문사의 책임 있는 주장입니다. 세상을 보는 다른 시각을 지닌 두 신문사의 사설을 깊이 살피면 무차별적으로 쏟아지는 정보 홍수의 시대에 바르고 균형 잡힌 시각을 갖출 수 있게 될 것”이란 말은 그런 식으로 이해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만약 저 말들을 그저 ‘립서비스’로만 받아들이고 위와 같은 비판기준을 적용하지 않는다면 이 기획은 그야말로 ‘청소년 글쓰기 교재’가 되어버린다. “사설은 우리 사회 현안에 대한 신문사의 책임 있는 주장”이란 말이 무색하게, 성향이 다른 두 신문사의 사설 교류가 공론형성의 문제와는 큰 관련이 없고 21세기 내내 진행된 ‘NIE(Newspaper In Education)’ 판촉전략과 관련이 있는 상업기획이 되어버린다. 그리고 이렇게 접근할 때엔 한겨레 측의 ‘사업 파트너’로 중앙일보가 최적이었을 거라는 점이 단번에 납득이 가게 된다. 

실제로 한겨레 측은 미디어스 측의 확인취재 당시 “(기획 꼭지는) 교육면에 배치될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차라리 그랬다면 그 역할을 한정하기가 쉬웠을 테지만 ‘사설 속으로’의 포부는 그것을 넘어서니 문제다. 

한겨레 사정을 아는 한 관계자는 “한겨레 내부에서 끊임없이 반성적으로 나오는 논리가 있다. 우리는 너무 편향된 신문이고 중도층으로 세를 확장할 수 있는 논조와 불편부당함을 갖출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 기획 역시 그러한 인식의 발현인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편향성을 극복하는 것은 모든 언론의 과제겠지만, 이 기획은 애초에 ‘공론’과는 상관없는 문제였던 것이 아닐까. 양 신문사에서 섭외된 4인의 필자들이 의외의 활약을 해주기만을 바랄 뿐이다. 


▲ 20일자 중앙일보 1면 기사


한윤형 기자  |  a_hriman@hotmail.com

2013년 1월 8일 화요일

[사설]물질만능주의 수렁에 빠진 청소년들


이글은 경향신문 2013-01-07일자 사설 '[사설]물질만능주의 수렁에 빠진 청소년들'을 퍼왔습니다.

우리나라 고교생 10명 중 4명은 ‘10억원이 생긴다면 잘못을 하고 1년 정도 감옥에 가도 괜찮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흥사단이 최근 초·중·고생 각 2000명을 상대로 윤리의식을 조사한 결과다. 어른도 아닌 청소년 입장에서 감옥생활을 10억원과 맞바꿀 수 있다는 생각은 다소 충격적이다. 인간의 자유를 속박하는 최대 형벌이 인신구속이라는 사실도 돈 앞에서는 공허한 얘기라는 의미나 다름없다. 돈의 액수를 떠나 자신의 ‘잘못’(범죄행위)을 10억원으로 갈음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함축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더 큰 문제다. 자칫 살인이나 강도 같은 중대범죄만 아니라면 사기행각쯤은 괜찮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가정하면 등골이 오싹해진다.

청소년들의 물질만능주의는 사실 어제오늘의 얘기는 아니다. 지난해 말 교육과학기술부가 전국 초·중·고생 2만4000여명을 상대로 ‘인생에서 추구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는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52.5%가 돈이라고 답해 충격을 줬다. 얼마 전에는 한 초등학교 졸업생의 60%가량이 장래희망을 ‘돈 많이 버는 의사’라고 답해 기성세대에 허탈감을 주기도 했다. 한국사회의 미래를 짊어진 청소년들의 자화상이라고 믿기엔 가슴 답답한 노릇이다. 황금만능주의를 청소년들의 탓으로만 돌릴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줄세우기가 일상화된 경쟁 위주의 교육하에서 올바른 가치관을 기대하기는 애초부터 무리다. 실용주의가 강조된 이명박 정부 들어 학교 교과서에서 ‘노동의 가치’ 항목이 사라진 대신 재테크와 돈 잘 버는 유망직업이 자리를 차지한 게 현실이다. 청소년들에게 영향력이 큰 방송 프로그램도 예외는 아니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라는 방송 드라마를 보면 재벌2세 남자와 결혼하기 위한 전략을 ‘비즈니스’(사업)의 하나로 묘사하고 있다.

툭하면 불거지는 권력층 비리도 청소년들이 보고 배울 게 없는 한국사회의 병든 모습 그대로다. 이명박 대통령의 큰형 이상득 전 의원과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은 얄팍한 권력을 등에 업고 억대의 금품을 받아 감옥생활을 하고 있다. 권력이 곧 돈으로 연결되는 부패고리를 끊지 않는 한 청소년들에게 ‘공정사회’는 뜬구름 잡는 얘기일 뿐이다. 언제부터인지 청소년들에게 ‘대통령이 꿈’이라는 장래희망이 사라진 지 오래다. 최소한 몇 명이라도 대통령이 장래희망이라고 당당하게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면에서라도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이끌 새 정부의 책무가 막중하기 이를 데 없다.

2013년 1월 2일 수요일

[청소년 노동인권](3)알바비 4억2400만원 ‘꿀꺽’ 나쁜 사장들…


이글은 경향신문 2012-12-31일자 기사 '[청소년 노동인권](3)알바비 4억2400만원 ‘꿀꺽’ 나쁜 사장들…'을 퍼왔습니다.

올해 초 고용노동부가 패스트푸드점, 주유소, 편의점 등 청소년을 고용하고 있는 918곳을 점검한 결과, 304곳이 임금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점검 대상 사업장의 무려 3분의 1이 청소년들에게 임금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은 것이다. 이들 사업장이 청소년들에게 지급하지 않은 임금 총액은 4억2400만원. 적발된 사업장 1곳당 평균 139만원의 임금을 청소년들에게 주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이처럼 겉으로 드러나게 임금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거나 아예 지급하지 않는 경우는 그나마 알아내기 쉬운 편이다. 청소년이 자신의 잘못 때문이라 여겨 항변할 생각조차 못하는 경우도 있고, 임금을 떼이는 사례도 많다. 중3 겨울방학 때 이름만 대면 알 만한 피자집에서 배달 일을 했던 한 친구의 이야기다. 이 친구는 당시 사장으로부터 “손님들한테서 음식이 식었다고 전화가 오거나 늦게 배달된다고 항의전화가 오면 항의 한 번 들어올 때마다 시급을 100원씩 깎겠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러다 한번은 다른 아이가 배달하다가 다치는 것을 봐서 안전하게 가려고 좀 느리게 오토바이를 운전했다고 한다. 그러자 손님들의 항의전화가 많이 와서 사장이 4200원인 시급을 3500원까지 깎았다고 한다. 

월급을 주기는커녕 벌금을 부과하는 경우도 있다. 치킨집에서 일했던 고2 친구의 이야기. 하루는 이 친구가 몸이 아파서 출근을 하지 못했다. 그러자 사장이 결근하면 벌금 5만원이라며 월급에서 깎겠다고 했고, 이 친구는 화가 나서 일을 그만두면서 당시 못 받은 임금을 사장한테 달라고 했다. 그러자 사장이 하는 말이 “벌금 5만원이 있으니 그거나 먼저 내”였다고 한다.

일을 못한다고 혹은 결근했다고 성인 노동자한테 벌금을 물리는 사장은 거의 없다. 왜? 불법이어서 사장이 처벌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지각·결근으로 일하지 않은 시간에 대해서 딱 그만큼 차감할 수는 있다). 그런데 유독 청소년들에게만 벌금을 물리고 임금마저 떼먹는 일이 더 많이 벌어지는 것은 청소년이 어리고, 자신의 권리를 몰라 주장하지 못하리라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글을 읽는 청소년들은 정말 ‘일할 맛’ 안 날 것이다. 그러나 법은 (여전히 완벽하지는 않지만) 청소년 노동자의 편이다! 

일하는 청소년의 임금과 관련된 문제는 ‘잘 모르거나, 열악하거나, 안 주려고 하거나’ 할 때 주로 발생한다. 청소년들이 임금을 제대로 받으려면 먼저 ‘알아야’ 한다. 사장이 몰라서 임금을 제대로 안 주는 경우도 적지 않다. 또 사장이 모르는 것을 찾아봐 가면서 챙겨주는 경우는 드문 게 현실이다. 그러니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듯, 내가 알아야 한다(지금 잘 알아두면 나이가 들어서도 다 도움이 된다). 임금은 노동시간, 휴일 등과 직접 연결되어 있으니 임금을 제대로 챙기려면 우선 이 연재물에 나오는 내용을 잘 스크랩해두면 좋을 것이다. 오늘은 임금 지급의 기본원칙에 대해 알아보자. 

사장이 임금을 지급할 때는 지켜야 할 기본원칙이 있다. ‘매월 1회 이상 정기적으로’ 세금, 사회보험료를 제외한 ‘임금 전액’을 노동자에게 ‘직접’ 지급해야 한다(이를 위반한 사장은 징역 또는 벌금의 형벌을 받는다). 즉 ‘두 달에 1회’ 또는 ‘어떤 달은 10일, 그 다음달은 15일’ 이런 식으로 지급하면 안된다. 또 사장이 노동자로부터 정당하게 받을 돈(가령 사장이 노동자에게 빌려준 돈)이 있더라도 이를 임금에서 빼고 나머지를 지급하면 안된다. 일단 임금을 전액 지급하고, 그런 다음 노동자로부터 받을 돈을 달라고 해야 한다. 

열악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임금 문제는 최저임금에 관한 것이다. 현실에서는 일자리에 비해 노동자 수가 더 많고, 일자리가 없어지면 노동자는 당장 생활이 어려워지기 때문에 고용 여부를 결정하는 사장의 힘이 노동자에 비해 훨씬 크다. 이런 현실에서 사장이 임금을 낮게 정해도 청소년을 비롯한 노동자들은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고, 너무 낮으면 생계조차 유지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래서 국가는 노동자들이 최소한의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임금의 최저선을 매년 정하는데, 이를 최저임금이라 한다(물론 현재의 최저임금 수준으로는 최소한의 생활도 영위하기 어렵다). 극소수 예외를 제외하고, 노동자를 고용한 모든 사업장은 반드시 최저임금 이상의 임금을 지급해야 하고, 이보다 적게 지급하면 처벌을 받으며, 그 차액만큼 노동자에게 지급해야 한다. 최저임금은 1시간당 임금(시급)으로 정하고, 2013년 1월1일부터 적용되는 최저임금은 시급 4860원이다. 그러므로 겨울방학을 맞아 일을 하고 있는 청소년들, 1월1일부터는 시급 4860원 이상으로 계산해서 임금을 받아야 한다는 점을 꼭 알아둬야 한다. 

최저임금과 관련하여 꼭 놓치지 말아야 사실이 있다. 최저임금대로 계산하더라도 최저임금보다 적게 받는 경우가 많다. 

어떤 음식점에서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하루 3시간씩 1주 15시간을 일하고, 최저임금 시급 4860원을 받기로 했다고 치자. 열심히 일하고 한 달이 지난 다음 월급을 받았는데 딱 일한 노동시간 수에 시급을 곱해서 임금이 지급되었다면, 최저임금보다 월급이 적을 가능성이 아주 크다. 왜냐하면 1주 15시간 이상 일을 하면 매주 주휴일수당(하루치 임금. 주휴일수당은 이후 자세히 설명할 것임)을 추가로 지급해야 하는데, 이를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급이 최저임금과 같고 1주 노동시간이 15시간 이상인데, 만약 ‘최저임금 시급 × 실제 노동시간 수’만큼만 월급을 받았다면, 반드시 확인해보라. 99%가 최저임금보다 적을 것이다. 

만약 최저임금보다 낮은 임금을 받거나,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한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할까? 더 나아가 사장이 남은 임금을 일부러 ‘안 주려고’ 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상황에 따라 시간이 걸리긴 하지만 돌려받을 수 있는 방법이 있으며, 또 어렵지 않다. 그런데 방법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제대로 받지 못한 임금, 밀린 임금을 반드시 받겠다’는 마음을 굳게 먹는 것이다. ‘못 받은 임금 액수가 적다고, 그때 생각만 하면 짜증이 난다고, 사장이 안 좋은 소리를 할 텐데 그럼 감정만 더 상한다고’ 참는다면, 너무 억울하고 자신만 손해다. 못 받은 임금은 내가 놀고 싶은 시간, 공부하고 싶은 시간을 쪼개서 땀 흘려 얻은 정당한 권리다. 사회적 약자가 정당한 권리를 스스로 포기한 경우를 보면, 알게 모르게 강제에 의해 사실상 굴복하게 된 경우일 때가 많다. 이런 식으로 정당한 권리를 포기하면 자신을 무시하는 격이 된다. 또 내 또래인 다른 청소년들이 제2, 제3의 같은 피해를 입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꼭 받아야 한다. 

못 받은 임금을 받기 위해 기본적으로 알아두어야 할 것은, 못 받은 임금을 받을 수 있는 기한이 3년이라는 사실이다. 가령 3년 전부터 사업장을 그만둘 때까지 일한 노동에 대해 당시 최저임금보다 적은 임금을 받았다면, 그 차액은 지금이라도 받을 수 있다. 못 받은 임금이 있으면 먼저 임금을 받지 못한 사실을 나타낼 수 있는 자료(노동시간과 임금 액수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를 준비한다. 근로계약서, 급여명세서, 매장에 붙은 구인광고를 휴대전화기 등으로 찍어 놓은 것이나 인터넷 구인광고 화면을 캡처해 놓은 것, 통장 입금내역(임금은 반드시 은행 통장으로 받자) 등이다. 그런 다음 이러한 자료를 들고 학교나 동네의 안심알바신고센터에 신고를 하거나 일했던 곳과 가까운 노동지청에 찾아가 신고한다(만약 아무 자료도 없다면 같이 일했던 친구의 증언도 좋다. 자료도 없고 친구의 증언이 없어도 일단 찾아가 신고하라). 신고한 이후부터는 안심알바신고센터나 노동지청이 신고된 내용을 처리해준다. 만약 처리과정이 지연되거나 부당하다고 생각되면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cafe.daum.net/nodongzzang)로 연락해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그리고 이제 처리결과를 기다리면 된다. 만약 처리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으면 역시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로 연락해 도움을 구하면 된다. 이처럼 ‘못 받은 임금 돌려받기’는 어렵지 않다. 꼭 돌려받아서 친구랑 맛있는 것이라도 하나 더 사 먹자!

권혁태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노무

2012년 9월 10일 월요일

청소년들, “일본은 과거사 인정하고 역사 바르게 가르쳐라”


이글은 민중ㅇ의소리 2012-09-09일자 기사 '청소년들, “일본은 과거사 인정하고 역사 바르게 가르쳐라”'를 퍼왔습니다.
9일 오후 일본대사관 앞..“역사왜곡으로 한일관계 악화시키지 말아야”

ⓒ뉴시스 한국청소년미래리더연합

청소년들이 일본정부에 과거사를 인정하고 역사를 바르게 가르칠 것을 요구했다.

전국 중·고등학생 3천여명이 참여하고 있는 한국청소년미래리더연합 소속 청소년 50여명은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중학동 일본대사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일본은 위안부와 강제징용 등 일제강점기에 있었던 과거사를 인정하고 진심으로 사과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일본 정부의 역사 왜곡과 독도 영유권 억지주장으로 인해 한일 청소년들 사이에서 마찰이 일고 있다"며 "일본정부는 일본 청소년들에게 과거 역사를 바르게 가르쳐 역사 왜곡으로 한일관계가 악화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한국 정부에는 "정부는 역사교과목을 필수과목으로 지정해 대한민국 청소년들이 애국애족의 올바른 역사관을 가질 수 있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지혜 기자 creamb@hanmail.net

2012년 6월 16일 토요일

"교과부는 살인범, 이주호 장관 양심 있다면 사퇴하라"


이글은 민중의소리 2012-06-15일자 기사 '"교과부는 살인범, 이주호 장관 양심 있다면 사퇴하라"'를 퍼왔습니다.
[인터뷰] 이주호 장관 '직무유기'로 고발하는 최훈민 군

ⓒ양지웅 기자 이주호 교과부장관을 직무유기로 고발하는 청소년 최훈민 군

청소년들이 18일 교육과학기술부 이주호 장관을 '직무유기'로 고발한다. 학생들이 학교폭력·입시경쟁으로 잇따라 자살하는 상황에서 교과부가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 4조에 명시된 국가의 책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교과부 장관 고발에 앞장서는 최훈민(18)군은 15일 와의 인터뷰에서 "청소년들이 자살을 막아달라고 1인시위를 한지 50일이 지났지만 교육당국은 무관심, 무책임, 무대책으로 일관하고 있다"며 "국가의 책무를 다하지 않은 이주호 장관을 직무유기로 고발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최군은 지난 4월 경북 영주와 안동에서 청소년들이 잇따라 자살하자 기자회견을 열고 "학생 죽이는 입시경쟁교육을 즉각 중단하라"고 주장했다. 이후 최군은 청소년, 사회단체 인사 등과 함께 "교과부는 청소년 자살을 막기 위한 실효성 있는 대책을 세우라"며 50여일 간 1인시위를 이어오고 있다.

그는 "아버지가 보는 앞에서 한 학생이 자살하는 등 청소년 자살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며 "학생의 개인적인 죽음이 아니라 입시 경쟁 제도 때문에 생긴 명백한 '교육 살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러나 정작 교과부에서는 청소년들이 죽음을 막아달라고 1인시위를 해도 연락이 없는 등 의견을 수렴하지 않고 있다"며 "이주호 장관이 하는 행위가 직무유기로 끝나면 차라리 다행인데, 살인에 가깝다는 것을 알아야한다. 이주호 장관은 죽은 학생들에 대해 사죄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최군은 지난 2월 학교를 자퇴해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이후 5월 또래 청소년들과 함께 '희망의 우리학교'를 설립하는 등 대안교육을 만들어가고 있다.

ⓒ양지웅 기자 최훈민 군이 지난 2월 서울 종로 교육과학기술부 앞에서 '죽음의 입시경쟁교육을 중단해주세요'라고 적힌 피켓을 든 채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 이주호 교과부 장관을 왜 고발하나?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을 보면 정부와 국가는 학교폭력을 예방하고 근절할 의무가 있음에도 그런 책무를 다하지 않고 있다. 청소년이 계속 자살을 하는 상황에서 교과부가 직무유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청소년들의 절박한 목소리를 전달해야겠다는 생각에 고발까지 생각했다."

- 대구에서 6개월 사이에 10명의 청소년이 투신을 하는 등 청소년 자살이 끊이지 않고 있다.

"작년 말부터 청소년 죽음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또래의 친구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웠다. 제대로된 신고조차 하지 못하고 사망한 그들을 보면서 마음이 아팠다. 이번 주만 하더라도 아버지가 보는 앞에서 자살하거나 자신이 원하는 학교에 못가게 됐다며 자살하는 등 청소년 두 명이 자살했다. 모두 개인적인 죽음이 아니다. 입시경쟁 제도 때문에 죽은 것으로 명백한 '교육 살인'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도 아무런 대처를 하지 않는 교과부는 살인범이다."

- 학교폭력으로 인한 죽음도 심각하다. 정부는 그동안 '일진경보제', '복수담임제' 등 학교폭력 대책을 내놓았다. 어떻게 보나?

"과연 정부와 교과부가 내놓는 정책이 실효성 있는 정책인지 되묻고 싶다. 학교폭력을 근절하는 대책은 내놓지만 '원인'을 해결할 수 있는 대책은 아무도 내놓지 않고 있다. 담임이 한명 더 늘면 학교폭력이 사라지는 것인가. 정부는 언론을 통해 웹툰과 게임을 폭력의 원인으로 몰아가고 있다. 모두 다 '입시경쟁으로 생긴 죽음'이라는 본질을 흐리기 위한 대책일 뿐이다. 

한번의 경쟁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는 이 교육 시스템, 친구를 동료가 아니라 경쟁자로 만드는 교육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입시경쟁 제도를 고치지 않는 교과부를 이해할 수 없다. 이 사태를 겪으면서 교과부는 기득권층이라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다. 학벌구조가 사라지면 기득권이 흔들리기 때문에 지금의 교육제도를 유지하는 것인가?" 

- 50여일간 입시교육 경쟁 교육 중단을 위한 1인 시위를 진행했다. 교과부에서는 따로 연락이 오지 않았나.

"시위를 하니까 서울시교육청에서는 연락이 오더라. 곽노현 교육감과 직접 만나서 밥도 먹었다. 곽 교육감은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며 해결하려는 의지를 보였다. 그러나 정작 교과부에서는 지금까지 아무런 연락도 취하지 않았다. 심지어 교과부 직원이 '학교폭력 토론회'에 참석한다고 해놓고 '지방 출장을 간다'며 나오지 않은 일도 있었다. 교과부가 청소년의 죽음을 해결할 의지가 없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자세로 지방출장을 백날 가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전교조나 다른 단체에 물어봐도 교과부에서 이야기를 듣는 자세가 부족하다고 하더라."

- 청소년 자살을 막으려면 무엇을 해야하나?

"단순하다. 입시교육이 아니라 서로 협력하는 교육, 자신이 하고 싶은 교육을 만들면 된다. 물론 이것은 근본 문제로 해결하려면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그렇기 때문에 현 상황에서 불필요한 것들을 제거하는 것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일제고사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 아니다. 그런 것부터 줄여 나간다면 청소년 자살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 이주호 장관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주호 장관은 토크콘서트를 하면서 소통을 언급하고 있는데, 그것이 진정한 소통인지 의문이 든다. 본인이 하는 행위가 직무유기로 끝나면 차라리 다행이다. 그러나 지금은 살인에 가깝다. 이주호 장관은 평생 죽은 학생들에 대해 사죄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일말의 양심이 있다면 지금 당장 사퇴해야한다. 그것이 교육자로서의 최소한의 양심을 지키는 일이다."

정혜규 기자 jhk@vop.co.kr

2012년 1월 15일 일요일

노스페이스의 소실점, ‘왕따’


이글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2-01-11일자 기사 '노스페이스의 소실점, ‘왕따’'를 퍼왔습니다.
문화의 가장 큰 기능은 ‘구분 짓고’, ‘무리 짓는’ 것이다. 언뜻 생각해보면 구분 짓는 것과 무리 짓는 것은 전혀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이 둘은 같다. 우리는 무리 짓기 위해서 구분 짓고, 구분 짓기 위해서 무리를 짓는다. 무리를 짓는 순간 다른 무리와 나를 구분하며, 구분되는 순간 나와 동일한 집단과 같이 무리를 짓게 된다. ‘노페’(청소년들 사이의 미국 아웃도어 브랜드 ‘노스페이스’ 열풍)가 보여주는 것이  바로 ‘구분하고 무리 짓기’이다. 이를 통해 그 안에서 서열을 둘러싼 ‘치열한’ 위세 경쟁이 펼쳐진다.

어느 교실 한 분단의 모든 학생들이 ‘노스페이스’를 입고 있는 풍경. 지난해 인터넷에서 화제가 된 사진이다.

나이키·프로스펙스 때와 뭐가 달라
그러나 이 자체는 그리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우리가 학창시절 경험한 것처럼, 특정한 상표나 물건을 통해 학생들 사이에 위세 경쟁이 일어나고 서열이 만들어지는 것은 늘 있었던 일이다. 교복자율화와 함께 시작된 전두환 시절에는 나이키와 프로스펙스, 그리고 아디다스와 아식스가 그런 물건이었다. 좀더 지나서는 ‘오리털 파카’로 위세 경쟁이 펼쳐졌다. 처음 한국에 소개된 오리털 파카는 당시 돈으로 15만원인가 20만원인가 했다.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면 요새 대장급 취급을 받는 노페보다 오히려 더 비쌌다. 그후 교복이 다시 등장하면서는 어떤 브랜드의 교복인가를 놓고 또 위세 경쟁이 펼쳐졌다. 한때는 청바지도 있었다. 수입 청바지가 대유행하면서 너도나도 가져야 하는 아이템이 되었다. 한 벌에 20만원이 넘는 것이었다. 가격을 따져보면 부모 등골을 빼먹기는 그때나 지금이나 매일반이라고 봐야 한다.
따라서 학생들이 경제적인 것을 기준으로 계급을 나눈다고 개탄하거나, 과거와 비교해서 지나치게 가격이 비싸다는 것은 전혀 초점이 될 수 없다. 오히려 그때와 비교해서 왜 이렇게 청소년과 위세 경쟁을 문제시하는지 질문해야 한다. 문제(Problem) 자체보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무엇을 문제적(Problematic)으로 바라보며 누가 그것을 문제로 만드는가 하는 점이다. 과거와 비교해서 그리 문제가 될 수 없는 것을 문제화했을 때는 반드시 그 문제화를 통해 만들어내려는 이데올로기적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문제가 아니라 문제화가 그 사회의 징후를 드러낸다.
여기서 우선 지적하고 싶은 징후가 바로 ‘위기’이다. 어떤 위기인가. 졸업식 뒤풀이부터 노페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는 지금 강박에 걸린 것처럼 청소년들을 불온시하고 범죄시한다. 하루가 멀다 하고 청소년 관련 뉴스가 헤드라인에서 떠나지 않는다. 이런 뉴스를 보면 우리 사회가 곧 무너질 것처럼 보인다. 따라서 당장 강력한 어떤 대책을 세워야만 하는 긴박함이 광범위하게 동의를 얻게 된다. 그러나  청소년을 문제화하는 현재의 호들갑은 전혀 다른 무능과 위기를 은폐하는 알리바이에 불과하다. ‘민주화 이후’ 청소년들을 어떻게 다루고 대하고 배려해야 하는지, 그 방법에 대해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고 우리 사회 전체가 총체적 무능상태에 빠져 있다.
그렇다고 지금의 위세 경쟁이 과거에도 있었으니 별일 아니라는 식으로 접근하는 것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가 질문해야 하는 것은 위세 경쟁이 일어나는 양상이 어떻게 바뀌었고, 그 의미가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고전적 의미에서 위세 경쟁은 권력층이 대중 앞에서 펼치는 의례였다. 부족사회의 위세 경쟁에서 유명한 것이 북미에서 행하던 포트래치 같은 것이 있다. 북미 인디언들은 자신의 위신을 보여주기 위해 많은 손님들을 초대해 재산을 파괴하고 나누는 잔치를 벌이곤 한다. 나는 이런 잔치를 벌일 수 있는 사람임을 드러내는 것이다. 선물을 안고 돌아가는 사람들은 ‘얻었다’는 기쁨을 찾는 것이 아니라 ‘답례할 의무를 졌다’는 점에서 오히려 수치를 느낀다. 그가 답례하지 않으면 영원히 체면을 잃게 된다. 경제적 관점에서 완전히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이런 행위가 추구하는 것은 이윤이 아니라 명성이다. 이런 포트래치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 부족장과 귀족들의 행사였다.
청소년에 대한 총체적 무능의 징후
여기엔 또 다른 특징이 있다. “우린 촌스럽게 그런 것 안 하는데요.” 항간에 유행하는 노페 현상에 대해 특목고 나온 학생에게 물어보았더니 예상했던 말이 나왔다. 그런 것 가지고 자랑 떠는 아이들은 더욱 없다고 한다. 강남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강남 아이들은 다른 동네에 비해 잘 안 입는다고 한다. 학교마다 차이가 있지만 길거리에서 눈대중으로 살펴보더라도 노스페이스를 입고 다니는 아이수는 현저히 줄어든다. 강북이나 지방에서 더 난리다. 강북에서도 홍대 근처와 구로구, 중랑구 같은 곳이 또 달라진다고 한다. 강북이나 지방은 노페라는 무리 짓기를 통해 자신을 불가촉천민과 구분해 드러내야 하는 반면, 이들은 노페를 통해 굳이 자신을 드러낼 필요가 없는 사람들이다. 구분되지 않은 것으로 구분 체계 자체를 뛰어넘는 특권적 방식으로 구분되는 것이 바로 이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노페를 통해 드러나는 위세 경쟁은 과거와는 완전히 다르다. 나이키 시절의 위세 경쟁은 부족사회에서 보이던 위세 경쟁과 비슷하다. 권력자들이 더 많은 위세를 얻기 위해 자신의 재산을 과도하게 파괴하거나 증여하는 것을 통해 경쟁을 펼치던 것이 나이키 시대의 위세 경쟁이었다. 이때에는 강남이건 중산층이건 자신이 가진 아이템을 대중에게 과시했다. 그것은 다른 대중이 가질 수 없는 아이템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위세 경쟁은 대중 앞에서 펼치는 그들의 과시였다. 과거의 위세 경쟁은 부자들이 축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위세 경쟁에서 부자들은 사라졌다. 중산층 이상이 노페의 위세 경쟁에서 상대적으로 사라진 큰 이유는, 위험 사회의 도래와 성채 사회(Gated Society)의 탄생과 맞닿아 있다. 우선 이들은 강남이나 특목고처럼 ‘자기들만의 공간’에 어느 정도 폐쇄적으로 모여 살기 때문에 위세 경쟁 자체도 자기네 내부에서 펼치지 굳이 대중 앞에서, 대중과 함께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대중의 위세 경쟁과 한 걸음 떨어져야 더욱 자신을 구별 지을 수 있다. 나아가 지금은 불특정 다수 앞에 자신의 얼굴을 노출해 과시하는 것은 위험하기까지 하다. 갈수록 중산층은 ‘사생활 보호’와 안전을 도모하는 데 초점이 맞춰 있다.
대신 위세 경쟁에 뛰어든 것은 이들을 제외한 ‘거의 전부’다. 위세 경쟁의 범위가 일부에서 전체로 확산되었다. 노페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현재의 위세 경쟁은 중산층 이하의 대중에게서 일어나고, 그 양상도 하층으로 갈수록 더욱 치열해진다. 마치 부족사회가 식민화되면서 식민 모국의 물품들이 급격히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부족사회의 위세 경쟁이 대중화된 것과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대표적인 것이 뉴기니의 ‘쿨라’가 있다. 쿨라는 일종의 증여의 고리 같은 것이다. 내가 만들어 쿨라에 투여한 물건이 멀리 퍼져나갈수록 내 명성은 높아진다. 이렇게 내 명성을 높여주는, 내 정성스러운 노동이 새겨진 물건을 이들은 ‘키툼’이라고 부른다. 키툼은 새로운 쿨라의 경로를 열 수 있고, 쿨라에 참여할 수도 있다.
위세 경쟁, 상층에서 중산층 이하로
그런데 모리스 고들리에가 쓴 에 따르면, 현재 뉴기니의 마심 지역에서 쿨라를 주도하는 것은 뉴기니인들이 아니라 ‘빌리’(Billy)라고 불리는 유럽인이라고 한다. 이들은 임노동자를 고용해 대량으로 조개껍데기를 키툼으로 가공한 뒤 관광객에게 팔기도 하고, 쿨라에 투입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 유럽인이 목적하는 것은 당연히 명성이 아닌 이윤이다. 한국에서 청소년들이 위세 경쟁을 펼치는 동안 알토란같이 이윤을 챙기는 것이 ‘노스페이스’라는 초국적 기업인 것처럼 말이다.
위세 경쟁이 대중화될수록 위세 경쟁의 대상이 되는 물건을 소유하는 것은 ‘의무’에 가까워진다. 과거에는 나이키를 가지는 것이 ‘자랑스러운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 노페는 반드시 가져야만 하는 아이템이다. 이걸 가지지 못하거나 가질 수 없는 학생들은 ‘불가촉천민’이 된다. 반드시 가져야 하는 아이템이라는 것이 누구나 가져야 한다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반드시 가져야 하는 것은 반대로 누군가는 반드시 가져서는 안 된다는 것에 기반을 두고서만 작동할 수 있다. 이것이 카스트 제도가 작동하는 방식이다. 인도의 카스트 제도에서 흔히 가장 밑바닥을 이루는 제도가 ‘달릿-불가촉천민’이라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것은 잘못된 일이다. 불가촉천민은 카스트 제도의 맨 밑바닥이 아니라 카스트 제도의 ‘바깥’이다. 카스트에 의해 식별될 필요가 없는 존재다. 역설적으로 식별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이들은 식별되어야 한다. 그래서 힌두 사원에 들어갈 때 남자들은 모두 웃통을 벗게 되어 있다. 상위 카스트의 남자들은 웃통을 벗으면 하얀 줄을 두르고 있는데, 불가촉천민은 그걸 두를 수 없기 때문이다. 외국인 역시 웃통을 벗는 순간 불가촉천민으로 구분된다. 어깨에 줄을 두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 카스트 제도의 바깥, 즉 ‘예외’들이 카스트 제도를 떠받든다.
불가촉천민 구분하려는 표식
노페가 학생들 내부를 계급으로 나눌 때 나타나는 양상 역시 이런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 언론에 보도된 것처럼 노페 중에서 어떤 시리즈를 입는가에 따라 계급을 구분하는 것이 핵심이 아니다. 문화의 큰 특징은 식별할 필요가 있는 것과 식별할 필요가 없는 것을 먼저 구분한다. 즉, 노페는 무슨 시리즈를 입었는가에 따라 세심하게 ‘대장’부터 ‘찌질이’까지 구분하는 일을 하기 전에 먼저 구분할 가치도 없는 아이들을 식별해낸다. 이들은 구분 자체에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기 위해 구분되지만 무리 지워지지 않는다. 바로 ‘왕따’다. 그들은 철저히 구분되어 있지만 그 어떤 무리에도 속해 있지 않다. 다만 다른 무리를 ‘무리’로 만들기 위한 일종의 표식에 불과하다. 이들은 결코 노페를 입어선 안 되는 존재다. 이들이 ‘건방지게’ 노페를 입는다면 그것은 카스트 제도를 붕괴시키는 위협적 사건이 된다. 따라서 못생기고, 되지도 않는 주제에 노페를 입는다면 이들에게 가해지는 것은 직접적 폭력이다.
왕따를 중심에 놓으면, 왜 노페라는 아이템을 가지고 위세 경쟁을 주도하는 게 ‘일진’이라 불리는 ‘노는 애들’인지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과거에 이들은 아이템 경쟁에서 약간 비켜나 있었다. 이들이 스스로를 정체화하고 그 힘을 과시하는 방식은 주로 ‘파괴’였다. 중산층이 고가의 아이템을 구비하는 것으로 자신을 과시했다면, 교복을 줄이거나 치마를 말아 올리는 것같이 기존 ‘가치와 질서’를 파괴하는 데서 자신의 ‘힘’을 과시했다. 학교라는 권위와 질서의 파괴자로서 말이다. 물론 한편에서 이들은 여전히 이런 ‘튜닝’을 실천하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이들은 노페라는 아이템을 통해 학생들 내부에 서열을 분배하고 통제하는 주도권을 행사한다.
따라서 지금 펼쳐지는 위세 경쟁의 소실점은 바로 ‘왕따’이다. 이 소실점에 의해 전체 위세 경쟁이 받쳐지고 유지된다. 이 경쟁에 뛰어들지 않는다면 왕따가 되고, 왕따는 이 경쟁에 끼어들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모두가 필사적으로 이 경쟁에 뛰어들어야 한다. 왕따가 되지 않기 위해서 혹은 왕따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말이다. 오래전 인도의 인권운동가를 만나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불가촉천민, 이들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결코 인도를 알 수 없다. 정확하게 비슷한 말을 붙일 수 있을 것 같다. 왕따, 이들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결코 한국의 청소년과 학교를 알 수 없다.

글 / 
엄기호
(교육공동체 벗) 편집위원. 저서로 (닥쳐라, 세계화),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 (우리가 잘못 산 게 아니었어)등이 있다.

2011년 12월 23일 금요일

[기고]얘들아, 높푸른 하늘에 학생인권조례가 펄럭인다


이글은 민중의소리l 2011-12-23일자 기사 '[기고]얘들아, 높푸른 하늘에 학생인권조례가 펄럭인다'를 퍼왔습니다.
"조례 통과 이후의 학생성숙도를 믿는다"

서울학생인권조례 수정안이 19일 서울시의회 본회의에서 진통 끝에 가결됐다. 이 수정안은 이전 주요 쟁점이었던 '성적 지향과 임신 및 출산에 따른 차별 금지', '종교 자유 보장' 등의 경우 원안과 같고 '집회 자유 보장'과 관련해서는 교내 집회를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서울시 교육의원 최홍이

교문 앞에서 멈춰 서있던 학생인권의 깃발이 창공에 나부낍니다. 축복하는 사람들은 평화롭고 행복합니다. 축복의 대상이 청소년이거나 소수자일 때는 더 아름답습니다. 입시와 경쟁교육에 무너져 가는 학생들의 인권이기에, 조례의 나부낌에 더더욱 가슴이 뿌듯합니다.

'당신의 사위가 여자이길 바란다', '며느리가 남자이면 그때 후회하려느냐?'. '초등학생에게도 임신ㆍ출산을 조장하느냐?', '아이들을 정치판으로 몰고 가느냐?'. '종교의 자유를 왜 가로 막느냐?' 던 무수한 저주와 협박을 기억합니다. 교통법규 제정은 사고를 예방하고 피해자를 구제하자는 것이지 사고를 조장하자는 게 아니잖습니까? 그들은 다름과 틀림을 혼동하고 있습니다.

학생인권조례를 극렬하게 반대한 분들의 우려도 이해합니다. 세상에서 '절대 진리'는 몇 가지 안 되기 때문입니다. 매사에 양면성이 있는 것도 인정합니다. 그러나 극단을 벗어나서 균형적 시각을 갖추면 세계 보편적 진리인 유엔 인권선언을 만나게 되고, 소수자의 인권을 차별하지 말라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권고문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가끔 사회나 학교에서 성 소수자들의 사례를 보게 됩니다. 있는 것을 없다하면 문명사회가 아니잖습니까? 그들이 다수가 아니라고 무시해야 하나요? 그들이 에이즈를 퍼뜨리고 입양보내려고 어린아이를 매매한다고요? 제가 아내와 미혼모의 집을 방문했을 때 그들을 돌보는 수녀님들이 더없이 고마웠습니다. 미혼모들은 아기를 기르며 학교에 가고 싶어 했습니다. 이들을 보듬는 성숙한 온정과 사회적 합의가 필요합니다. 선진국은 하는데 우린 말로만 선진국입니까? 미숙하여 일으킨 실수나 과오에 우리 사회는 너무 적대적이고 엄격한 게 문제입니다.

스웨덴 방문 때 만난 나까시 지역 교육책임자 린다는 25세의 여성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선 '교육장'에 해당합니다. 약관에 재선의 관록을 묻자 오히려 린다가 어리둥절해 하며 말했습니다. 자기는 고교 1학년 때 스웨덴 중도연합당(현 집권여당)의 청년당원이었고, 그 활동을 인정받아 재선에 성공했노라고. 더 놀란 것은 나까시 시(市)의 예산 60%가 교육재정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극우주의자 브레이빅의 총기 난사에 희생된 젊은이들이 노르웨이 노동당원 연수중인 고교 1년생들이었는데, 약소 정당에 후원금 몇 푼 낸 교사들을 재판에 회부한 우리와는 정치활동 격차가 자동 비교됩니다.


ⓒ민중의소리 지난 17일 오후 서울 종로 청계광장에서 청소년들이 서울시 의회에서 청소년 인권조례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유관순 열사의 3ㆍ1운동이나 4ㆍ19 학생혁명은 그냥 지나간 학생역사일 뿐이고, 아이들이 자기들 먹을 광우병 쇠고기가 불안해 촛불집회에 나가면 불온인 나라. 이 중고생들의 학내집회도 안 된다고 하는 나라. 우리는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합니까? 종교의 자유를 누가 막습니까? 믿지 않을 권리와 다른 종교를 가진 학생들의 인권을 존중하자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더 이상 공존상생을 외면하지 맙시다.

역사는 민주주의 발달사이고 그 척도는 인권입니다. 우리가 우여곡절 끝에 통과시킨 학생인권조례는 유엔인권위로부터 통박당한 인권 후진국 불명예를 떨쳐내는 상징적 노력입니다. 반대하신 분들의 우려를 감안하여 집회나 복장 등은 학칙으로 지도할 수 있게 했습니니다. 이 조례로 하여금 우리 사회가 한 단계 더 성숙하길 소망합니다.

심야 통행금지와 해외여행이 금지된 수십 년의 독재 치하에서, 그게 억압구조인 줄을 모르고 지낸 사람도 있지 않았습니까?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에 오열하는 북한 사람들을 생각하면 이해가 될까요? 역설적이게도 친위 쿠데타로 집권한 신 군부가 이 두 가지를 풀었는데 우려하던 혼란이나 안보 불안은 없었습니다. 그처럼, 우리는 서울인권조례 통과 이후의 학생성숙도를 믿습니다.

수많은 날밤을 지새우며 주민발의안을 손질한 윤명화, 김형태 의원의 노고와, 김종욱, 서윤기, 김명신, 최보선 의원의 열정, 그리고 김상현 위원장의 지도력에 역사적인 평가를 바칩니다.

얘들아! 저 높푸른 하늘에 펄럭이는 인권의 깃발을 보아라! 그렇게 힘차게 도약 하거라!

2011년 11월 27일 일요일

"현병철 위원장, 인권위 말아드신 소감이?"


이글은 프레시안 2011-11-25일자 기사 '"현병철 위원장, 인권위 말아드신 소감이?"'를 퍼왔습니다.
인권위 10주년 행사서 인권단체들 항의ㆍ비판

국가인권위원회가 출범한지 25일로 만 10년이 됐다. 그간 인권위는 국가권력의 인권침해를 감시, 견제하고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인권을 옹호하는 역할을 해왔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한 성역 없이 인권침해 현장을조사하고 인권정책을 생산하고 의견을 내는 기구로 자임해왔다. 하지만 지금의 현병철 위원장 체제 아래 인권위 모습은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 걸까.

국가인권위원회는 25일 서울 중구 한국언론회관에서 10주년 기념식을 진행했다. 현병철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은 "내년부터 '인권증진 3개년 계획'에 따라 우리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실현하고 인권이 존중되는 사회를 구현하기 위해 노력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현 위원장은 "이를 위해 자유권과 사회권 등 기본적 인권의 제도적 보장과 강화를 위해 힘쓰고, 이주민, 노인, 아동과 청소년, 시설 생활인 등 사회적 약자의 인권보호와 함께 북한인권, 기업인권, 정보인권 증진을 역점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현 위원장은 "또한 인권침해와 차별행위에 대한 조사 및 구제의 실효성을 강화하고, 인권교육과 홍보활동을 체계적으로 전개, 인권존중문화가 확산되도록 역량을 집중하겠다"고도 했다.

▲ 24일 오전 서울 중구 태평로1가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현병철) 설립 10주년 기념식에서 인권단체연석회의 및 국가인권위원회 제자리찾기 공동행동 등 회원들이 행사장 입구에서 인권위 독립성 훼손과 장애인권 후퇴 등에 시위하며 진입하려 하고 있다. ⓒ뉴시스

인권단체 회원들, 식장 들어와 "정권 하수인 현병철 물러나라"

하지만 이 기념사를 읽기까지는 쉽지 않았다. 기념식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인권단체 회원 10여 명이 식장에 들어와 '현병철 인권위원장 사퇴'를 요구하는 등 한 때 소동이 벌어진 것.

이들은 "이명박의 친위대 현병철은 사퇴하라", "인권위를 말아 드신 소감이 어떤가", "국가인권만 옹호하는 인권위를 해체하라", "정권의 하수인, 권력의 개는 물러나라", "현병철은 인권을 알기는 하나" 등을 외치며 약 10여 분 간 소란을 피우다 주최 측에 의해 강제로 퇴거됐다.

이들이 식장에 난입한 이유는 현병철 위원장 이후 인권위가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물론 인권위에서는 제대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항변한다. 실제 인권위에 제기된 사건진정 건수는 매년 늘어나 양적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 2002년 2790건이었던 진정 건수는 지난해 9168건으로 매년 증가세를 보였다. 올해는 10월 말 기준 6165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80% 수준이다.

반면, 인권위의 위치를 가늠할 수 있는 정부의 인권위 권고안 수용률은 현병철 위원장취임이후 현저히 떨어졌다. 지난 10년간 자료를 종합하여 정리해 보면 인권위가 발표한 정책권고를 관계 기관이 그대로 수용한 수용률은 27%, 일부수용까지를 합한 수용률은 57%이다.

하지만 이 수치는 역대 대통령 재임 기간에 따라 차이가 나타난다. 김대중 정권과 노무현 정권 시기라고 할 수 있는 2001년부터 2007년까지는 연 평균 74% 정도의 수용률(일부수용 포함)인데 반해 그 이후부터 최근까지(2011년 9월 말)는 연 평균 30%로 급격히 떨어진다.

정책 권고에서 70% 이상 수용률을 보인다는 것은 매우 높은 것으로, 이는 관련기관이 인권위 권고의 권위를 인정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수용률이 30%대로 떨어졌다는 것은 인권위의 권고가 다른 국가기관으로부터 제대로 존중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한다.

현병철 체제 이후, 제 역할 못하는 인권위

뿐만 아니다. 현병철 위원장 취임 이후 최고 의결기구인 전원위원회(전원위)가 정부와 여당이 추천한 보수인사로 채워지면서 우편향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2009년 MBC 검찰 수사에 대한 인권위 의견 제출안이 부결됐고, 지난해는 국정원의 민간인 사찰 진정이 기각됐다. 용산 참사 관련, 의견 표명도 하지 못했다. 올해 인권위는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 인권보호 관련 의견 표명을 부결해 인권위 내·외부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이 때문에 더 이상 인권위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며 지난해 8월부터 '쓰나미식'으로 주요 인사들이 인권위를 떠났다. 유남주 인권위 상임위원 등 다수의 인권위원과 인권위 설립 초기부터 관여해온 김형완 인권정책과장 등 직원 10여 명이 연이어 떠났다. 인권위에서 인권조사 등을 진행할 때, 전문자문 역할을 담당해온 상담위원 60여 명도 독립성에문제가 있다며 집단사퇴했다.

결국, 이러한 여러 이유로 2011년 들어 인권위는 관계 기관의 법령 조회에 의한 의견표명 이외에는 의미 있는 인권정책 권고를 하지 못하고 있다. 2010년 말까지 정책권고를 이끈 상임위원들이 현병철 위원장이 이끄는 인권위에 항의하며 떠나고 보수적 인사들이 그 뒤를 채우면서 나타나는 불가피한 현상이라고 평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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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기관에 면죄부는 주는 권력옹호기구 됐다"

하지만 현병철 위원장은 취임사에서 밝힌 대로 계속해서 '마이웨이'일 뿐이다. 인권단체연석회의 등 인권단체는 25일 10주년 기념식이 열리는 한국언론재단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10년간 인권위는 우리사회에 인권이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던지는 데 분명 기여했다"며 "하지만 현재의 인권위 모습은 후퇴하는 한국 인권에 힘이 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인권위 문제의 핵심은 독립성 훼손"이라며 "인권위의 독립성을 인정하지 않는 이명박 정부의 인권위 흔들기와 무자격자 인권위원 인선으로 인권위는 권력기관을 감시하는 인권옹호기구가 아니라 권력기관에 면죄부를 주는 권력옹호기구가 되어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시민사회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는 인권위는 보수정권 등장으로 2년 반 만에 7년 반의 성과를 무너뜨리고 있다"며 "현병철 위원장을 비롯한 무자격 인권위원들은 사퇴해야 한다. 더 이상 인권위의 이름으로 인권의 이름을 더럽히지 말라"고 촉구했다.

이광철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사무차장은 "인권위는 인권 침해 현장엔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서 간섭해도 아무 소용도 없는 북한 인권에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사무차장은 "결국 권력의 입맛에 맞는 소림만 하고 있다"며 "이게 10돌을 맞은 인권위의 자화상이다"고 꼬집었다.

명숙 인권단체연석회의 활동가는 "오늘 기념식에는 이전에 인권위 위원장을 역임하신 분이 아무도 오지 않았다"며 "국가에 의해 인권이 침해당해도 아무 말 하지 않는 인권위의 지금 상황을 정확히 보여주는 모습"이라고 질타했다.

명숙 활동가는 "인권위가 제대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인사 쇄신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아무 것도 모르고 오로지 대통령에게 충성하는 무자격자는 사퇴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허환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