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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5월 16일 목요일

‘5.18 때 북한특수부대 개입’ 방송한 TV조선 심의 신청


이글은서울의소리 2013-05-16일자 기사 '‘5.18 때 북한특수부대 개입’ 방송한 TV조선 심의 신청'을 퍼왔습니다.
“역사왜곡·5.18민주정신 매도, 강력한 제재 필요”

5월 15일 민주당 노웅래, 최민희, 홍영표, 홍종학 의원은 지난 5월 13일 방송된 TV조선 (장성민의 시사탱크) ‘특집 광주 5.18, 북한특수부대개입정황’ 편과 관련해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방송법 및 방송심의규정 위반으로 심의요청 민원을 신청하며 “강력한 제재”를 요구했다. 5월 13일 방송된 TV조선 (장성민의 시사탱크)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북한군 특수부대가 개입하여 게릴라전을 벌이며 시민들을 선동했다는 일방적인 주장을 펼치고 있는 임천용씨(탈북자, 전 북한특수부대 장교)과 이주천씨(원광대 사학과 교수)를 패널로 출연시켜 5.18 당시 “600명 규모의 북한 1개 대대가 침투해 왔다”, “전남도청을 점령한 것은 시민군이 아니고 북한에서 내려온 게릴라다”, “5.18은 무장폭동의 성격을 띠고 있다”, “5.18 자체가 김정일이 1980년 당창건 80돌을 계기로 김일성에게 드리는 선물이었다”, “5.18은 북한군이 내려와 숱한 사람을 죽이고 이간질한 사건” 등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의미를 훼손하고, 오랜 세월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밝혀진 5.18의 진실을 뒤집는 반민주적이고 반역사적인 내용의 발언을 1시간여에 걸쳐 일방적으로 소개했다.이 과정에서 “5.18 전후 북한군 특수부대가 3차에 걸쳐 바다와 땅굴로 침투했다”, “북한의 ‘인민군영웅들의렬사묘’는 광주에 투입됐다 사망한 북한군 특수부대원들의 가묘다”, “복면을 쓴 시민군이 북한 특수부대였다”, “망월동 5.18 묘역의 신원미상자 묘 70여개 북한 특수부대원들의 묘다” 등 아무런 객관적 증거와 근거가 없는 패널들의 일방적인 주장을 아무런 여과없이 수차례 소개하여 시청자들이 5.18의 의미와 진실을 호도하도록 조장했다.뿐만 아니라 이 프로그램의 진행자인 장성민씨는 프로그램 말미에 “탈북자들의 직간접적 증언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며 이를 “시민들이 빨갱이, 폭도, 간첩으로 매도된 데 대한 의구심을 해결한 결정적 증거와 단서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는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하고 “북한의 특수게릴라들이 어디까지 광주민주화운동에 관련되어 있는지 그 실체적 진실은 반드시 밝혀야 한다”고 주장해 5공 군사독재정권이 5.18 이후 광주 시민군을 ‘폭도’나 ‘빨갱이’로 매도한 것이 근거가 있는 것처럼 주장하기도 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이와 같은 TV조선 (장성민의 시사탱크) 방송을 “5.18민주화운동에 참여했다 희생당한 분들과 그 유가족, 그리고 여전히 5.18 당시 비극을 상처로 간직하고 있는 수많은 시민들의 명예를 훼손하고, 그 분들을 더 큰 고통에 빠트리는 반인권적 방송이자, 시민들의 고귀한 희생으로 민주주의를 지키고자 했던 5.18의 의미와 가치를 무너트리려는 반민주적 역사왜곡 방송”으로 규정했다.아울러 (장성민의 시사탱크)가 “방송법 제5와 제6조, 방송심의규정 제9조(공정성), 제14조(객관성), 제20조(명예훼손 금지), 제27조(품위유지) 등을 위반한 방송”이라며 방통심의위의 심의를 요청해 “강력한 제재조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방송심의신청

•민원인 : 민주당 홍영표, 노웅래, 홍종학, 최민희 의원
•방송프로그램 : TV조선 (장성민의 시사탱크) ‘특집 광주 5.18, 북한특수부대개입정황’ 편
•방송일자 : 2013년 5월 13일
•심의신청내용 :
2013년 5월 13일 방송된 TV조선 (장성민의 시사탱크)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북한군 특수부대가 개입하여 게릴라전을 벌이며 시민들을 선동했다는 일방적인 주장을 펼치고 있는 임천용(탈북자, 전 북한특수부대 장교)과 이주천(원광대 사학과 교수)를 패널로 출연시켜 5.18 당시 “600명 규모의 북한 1개 대대가 침투해 왔다”, “전남도청을 점령한 것은 시민군이 아니고 북한에서 내려온 게릴라다”, “5.18은 무장폭동의 성격을 띠고 있다”, “5.18 자체가 김정일이 1980년 당창건 80돌을 계기로 김일성에게 드리는 선물이었다”, “5.18은 북한군이 내려와 숱한 사람을 죽이고 이간질한 사건” 등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의미를 훼손하고, 오랜 세월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밝혀진 5.18의 진실을 뒤집는 반민주적이고 반역사적인 내용의 발언을 1시간여 걸쳐 일방적으로 소개함.이 과정에서 “5.18 전후 북한군 특수부대가 3차에 걸쳐 바다와 땅굴로 침투했다”, “북한의 ‘인민군영웅들의렬사묘’는 광주에 투입됐다 사망한 북한군 특수부대원들의 가묘다”, “복면을 쓴 시민군이 북한 특수부대였다”, “망월동 5.18 묘역의 신원미상자 묘 70여개 북한 특수부대원들의 묘다” 등 아무런 객관적 증거와 근거가 없는 패널들의 일방적인 주장을 아무런 여과없이 수차례 소개하여 시청자들이 5.18의 의미와 진실을 호도하도록 조장함.뿐만 아니라 이 프로그램의 진행자인 장성민은 프로그램 말미에 “탈북자들의 직간접적 증언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며 이를 “시민들이 빨갱이, 폭도, 간첩으로 매도된 데 대한 의구심을 해결한 결정적 증거와 단서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는 것”이라고 의미부여함. 이는 5공 군사독재정권이 5.18 이후 광주 시민군을 ‘폭도’나 ‘빨갱이’로 매도한 것이 근거가 있었다는 주장으로, 장성민은 이에 대해 “새로운 자료들이 나왔다고 생각한다”며 “북한의 특수게릴라들이 어디까지 광주민주화운동에 관련되어 있는지 그 실체적 진실은 반드시 밝혀야 한다”고 주장함. TV조선 (장성민의 시사탱크)의 이 같은 방송은, 5.18민주화운동에 참여했다 희생당한 분들과 그 유가족, 그리고 여전히 5.18 당시 비극을 상처로 간직하고 있는 수많은 시민들의 명예를 훼손하고, 그 분들을 더 큰 고통에 빠트리는 반인권적 방송이자, 한국사회 민주화운동의 분수령이자 시민들의 고귀한 희생으로 민주주의를 지키고자 했던 5.18의 의미와 가치를 무너트리려는 반민주적 역사왜곡 방송임.아울러 “방송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 및 민주적 기본질서를 존중”하고 “국민의 화합과 조화로운 국가의 발전 및 민주적 여론형성에 이바지”해야 한다고 규정한 방송법 제5조와, “방송에 의한 보도는 공정하고 객관적이어야 한다”는 제6조를 정면으로 위반한 방송이며,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제9조 공정성(“방송은 진실을 왜곡하지 아니하고 객관적으로 다루어야 한다”)와 제14조 객관성(“방송은 사실을 정확하고 객관적인 방법으로 다루어야 하며, 불명확한 내용을 사실인 것으로 방송하여 시청자를 혼동케 하여서는 아니된다”), 제20조 명예훼손 금지(“방송은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여서는 아니된다”, “방송은 사자(死者)의 명예도 존중하여야 한다”), 제27조 품위유지(“방송은 품위를 유지하여야 하며, 시청자에게 예를 지켜야 한다”) 등을 위반한 방송임.이에 따라 본 방송에 대해서는 강력한 제재조치가 필요함.

서울의소리

2013년 4월 1일 월요일

일본만 역사를 왜곡한다고? 과연 그럴까


이글은 진실의길 2013-04-01일자 기사 '일본만 역사를 왜곡한다고? 과연 그럴까'를 퍼왔습니다.
한국사를 죽인, 조선사편수회 이어받은 주류 역사학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을 강력히 규탄한다"
일본 문부과학성이 '독도 영유권' 주장을 담은 고등학교 사회교과서 검증을 통과시키자, 지난 27일 새누리당 민현주 대변인 낸 논평입니다. 서남수 교육부 장관은 아예 서한을 보내 "일본 사회과 교과서에 독도 기술이 확대되고 가해자로서의 역사인식이 희박한 일본정부의 입장이 교과서 기술에 반영됐다"며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역사왜곡, 일본 '전유물'? 아닌 것 같은데…

'독도는 우리 땅'은 불변입니다. 하지만 과연 일본만 우리 역사를 심각하게 왜곡하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명박 정권 들어 현대사를 재해석하는 시도가 끊임없이 제기되었습니다. 뉴라이트 핵심 인물이자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여의도연구소 이사장을 지낸 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는 "일본이 독도를 일본 것이라고 주장할 만한 근거를 가지고 있다", "위안부를 강제 동원했다는 객관적인 자료는 하나도 없다"며 일본 극우와 근현대 인식이 비슷합니다. 

▲ <한국사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 역사의아침

그리고 박근혜 정부들어 '5.16군사반란'을 '쿠데타'로 부르지 못하는 고위공직자들이 수두룩했습니다. 그 중 한 사람이 독도 영유권을 주장한 일본에 항의 서한을 보낸 서남수 교육부 장관입니다.
문제는 현대사만 왜곡된 것이 아니라 고대사(고조선·한사군·임나일본부)가 주류 역사학자들에 의해 심각하게 왜곡됐다고 주장하는 역사학자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일제식민지사관 시각을 가졌다고 강하게 비판합니다. 이들 중 한 사람이 이주한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연구위원입니다.
"한국 주류 역사학계에는 '한국'과 '역사학'이 없다. 중국의 변방사나 일본의 지방사로 한국 역사를 보니 한국이 사라졌다. 역사적 사실에 성실하기는커녕 사실을 외면하거나 과장하고, 견강부화하거나 억단해서 진실을 매몰시키니 '역사학' 없다."-(한국사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이주한 지음 ㅣ 역사의 아침 펴냄) 서문에서
주류 역사학계가 한국사를 중국 '변방사'나 일본 '지방사'로 봤다는 주장에 동의하기 힘들지만, 이주한은 한국사 '거두' 이병도 전 서울대 교수와 그의 후예들이 얼마나 한국사를 왜곡시켰는지 강하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한국사를 죽인, 조선사편수회 이어받은 주류 역사학

몇 년 전 한국사가 필수과목에서 빠져 논란이 빚어지고, 아직도 수능은 선택과목이라 역사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다는 비판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제가 중고등학교에 다닐 때 국사는 필수였고, 학력고사(1986년 학년도)는 20점짜리 필수였습니다. 하지만 지금 생각나는 것은 '태정태세문단세...'밖에 없습니다. 그만큼 우리는 우리 역사를 제대로 배우지 못했습니다.

▲ 단재 신채호 ⓒ 다음백과사전

아직도 한국사를 '암기과목'으로 생각하니 제대로된 역사관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 고대사가 일제식민사관 지배를 받고 있는 주류 역사학계 주장이 '정설'이 된 것에 대해 강하게 비판한 책이 (한국사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입니다.
"1945년 조선총독부는 해체되었지만, 조선총독부 산하 조선사편수회는 한국 주류 역사학계로 승계되었다. 광복 후 독립운동가가 친일파의 손에 청산되면서 한국사 원형과 진실은 철저하게 부관참시 당했다. 조선사편수회가 날조하고  왜곡한 역사는 이른바 '실증주의'로 치장되었고, 조선사편수회가 가장 두려워한 독립운동가의 과학적 역사학은 '신념이 앞서 관념론, '국수주의'로 전락했다. 그렇게 한국사는 죽었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자신의 나라를 사랑하려거든 역사를 읽을 것이며 다른 사람에게 나라를 사랑하게 하려거든 역사를 읽게 할 것이다."고 했습니다. 단재 선생은 또 역사를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으로 해석했습니다.

김삼웅 "단재 고대사만 제대로 연구했다면, 중국 역사왜곡 없을 것"

이같은 인식은 밖으로는 아의 단위인 우리 민족과 국가의 주체성을 강조하고, 안으로는 각 시대 다양한 역사적 모순은 투쟁을 통해 사회발전 한다는 변증법적 역사관입니다. 이주한은 "주류 식민사학자들은 단재를 죽이지 못해 안달이다. 그들과 단재는 양립할 수 없다. 식민사학자들은 조선총독부의 시각으로 한국사를 본다"면서 "일본 극우파 시각으로 한국사를 본다. 그리니 양립할 수 없다"고 질타하면서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이 지은 (단채 신채호 평전)(시대의 창)을 다음과 같이 인용합니다.
"한국 사학계가 단재의 고대사만 제대로 연구하고 고증에 충실해왔다면 감히 중국이 요즘 같이 황당무계한  역사 왜곡의 망설을 들고 나오지 못하였을 터이다. 이런 의미에서 단재의 고대사에 대한 인식과 100년 앞을 내다보는 진정한 사가의 진면목을 보인다."

▲ 단재 선생은 역사를 보는 주체적 관점을 매우 강조했다. ⓒ 역사의 아침

이주한은 단재 선생이 역사를 보는 주체적 관점을 무엇보다 강조했다면서 "주체적 관심이란 누가, 어떤 시각으로 역사를 바로보는가 문제"라고 합니다. 단재는 중화주의나 일제 식민주의 관점에서 보는 것을 가장 먼저 경계했다고 이주한은 강조합니다. 그 이유는 "침략과 지배의 관점에 서면 반드시 역사를 왜곡하기 때문"이란 것이 단재 신채호의 역사를 보는 관점이었습니다.

"식민주의사관은 일제 한국 침략과 지배 정당화 합리화"

그럼 식민사관은 어떻게 우리나라에 생겨났을까요? 이만열 숙명여대 명예교수(역사학)는(식민사관은 어떻게 생겨났는가)에서 "일제 어용학자들은 한국사 연구를 '한국침략'이라는 그들 정책에 맞춰 진행시켰다. 따라서 식민주의사관은 일제가 한국 침략과 지배를 한국의 역사로 정당화 합리화 위해 고안해 낸 역사관"이라고 말합니다. 이에 근거해 이주한은 "이만열 분석은 정확하다"며 "침략과 지배를 위해 고안함 역사가 제대로 된 역사일 수 없다. 학문이 아니고 정치이고, 이론이 아니라 폭력이다"고 식민주의사관을 맹비난합니다.
옛 서독 대통령 바이체크가 2차 대전 패전 40돌 기념식에서 "기억을 생생하게 간직하는 게, 왜 중요한지 이해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과거의 극복이 아니다. 과거에 눈을 감은 사람은 현재도 보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주한도 말합니다.
"기억은 인간을 인간답게 살게끔 한다. 기억이 없는 인간은 인간의 정체성과 존엄성을 지키기 어렵다. 역사는 기억이다. 기억되지 않는 역사는 얼마든지 농락되고 누군가에 의해 지배당할 수 있다. 역사를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 그러나 역사를 기억하는 자는 결코 쓰러지지 않는다."(책 서문)
우리 역사를 기억해야 합니다. 친일파와 수구기득권세력이 끊임없이 역사를 왜곡하고, 제대로 된 역사를 가르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식민사관은 역사만 아니라 현대사 전반에 걸쳐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식민사관 논란은 단순히 역사학계에만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다. 역사관은 그 시대의 세계관을 함축한 것이어서, 정치·경제·사회·문화·종교·젠더·교육·법·예술 등 사회 전 영역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한국사회의 모든 문제가 식민사관에서 비롯되지는 않겠지만, 그로부터 자유로운 것도 없다. 식민사관은 오늘도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고 있다. 그래서 한국사가 죽어야 한국이 산다는 말이 성립하는 것이다."(본문에서)

한사군이 한반도가 아니라 요동에 있다고?

'한사군'(낙랑·진번·임둔·현도), 시험 때마다 많이 외웠을 것입니다. 하지만 한사군 위치를 두고 주류사학계는 한반도 서북부라고 주장합니다. 우리들도 그렇게 배웠습니다. 하지만 이주한은 한사군이 한반도가 아니라 요동이라고 강하게 주장합니다.

▲ 위만조선의 항신들이 제후로 봉해진 지역 ⓒ 역사의 아침

▲주류 역사학계가 주장하는 한사군,임나일본부의 위치와 실제 위치 ⓒ 역사의 아침

서기전 1세기경 (사)》나 서기 1세기경 (한서), 3세기 후반 (삼국지), 5세기경 고대 남송의 (후한서)를 비롯한 중국 고대 사료들에서 한사군의 위치를 추적해야 한다. 1차 사료를 해석한 2차 사료보다 1차 사료를 우선해야 한다. 이것은 역사학의 기본이다. 중국 고대 사료는 일관되게 한사군 중심지인 낙랑이 요동에 있었다고 기록했다. 고조선과 한나라의 국경인 패수가 지금의 난하라는 사실도 중국 고대 사료에 근거해 어렵지 않게 비정할 수 있다. "패수가 압록강이다, 청천강이다" 하는 고정관념만 버리면 그렇다. - (한사군은 한반도에 없었다)
한사군이 한반도가 아니라 요동이나 중국에 있었다는 주장은 이전부터 제기되었습니다. 아직도 첨예한 논란입니다. 그러므로 이주한 주장이 완전한 정설로 받아들이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지만, 한산군 위치가 어디인지에 따라 중국 동북공정을 반복하는 중요한 근거가 될 것임은 분명합니다.

역사는 늘 "왜"라는 질문으로 시작한다… 다른 학문도 마찬가지

이주한 같은 주장을 '국수주의'로 비판할 수 있지만, 이주한은 "하나의 정설만 있어야 하는 한국사는 이미 역사도 아니고 학문도 아니다"면서 "이미 답이 다 정해져 있으니 연구할 필요가 없다. 역사는 늘 '왜'라는 질문에서 시작한다"고 강조합니다. 어떤 학문이던 끊임없는 연구를 통해 논쟁과 토론을 해야 합니다. 사료를 통해 상대방의 역사 해석을 반박할 때만 한국사는 발전하고 우리 사회 역시 진보할 것입니다.
우리 사회의 많은 분야 중에서 가장 먼저 바뀌어야 할 것이 역사관이다. 역사관은 한 사람의 종합적인 인식체계이자 한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시도한 발상의 전환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이 순간 영혼의 소리에 집중해보자. 우리의 사고와 의식, 일상을 지배하는 가치를 각자의 장에서 문제제기하고, 새로운 꿈을 구하고, 찾고, 두드리며 연대의 장으로 나오자. 모두를 위한 역사는 없다. 일제 식민사관에 균열이 생길 때, 우리는 역동적으로 굽이치는 변혁의 물결을 맞을 것이다.

耽讀  

2012년 10월 23일 화요일

"정수장학회 역사왜곡, 박근혜 사퇴하라"


이글은 대자보 2012-10-22일자 기사 '"정수장학회 역사왜곡, 박근혜 사퇴하라"'를 퍼왔습니다.
언론노조와 정수장학회 공대위 기자회견...최필립 사퇴 촉구

▲ 기자회견 © 김철관

언론노조와 정수장학회 공대위가 정수장학회와 역사왜곡과 관련해 "국민을 기만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 사퇴와 최필립 정수장학회 이사장의 사퇴”를 촉구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이하 언론노조, 위원장 이강택)과 독재유산 정수장학회 해체와 독립정론 부산일보쟁취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정수장학회 공대위, 집행위원장 한홍구)는 22일 오전 10시 30분 서울 중구 정동 정수장학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박 후보 기자회견에서) 시민사회와 언론, 정치권에서 기대했던 정치적 결단과 해법은 커녕, 박 후보 자신의 왜곡된 역사 인식을 다시 한 번 국민들에게 각인시켰다”면서 “결과적으로 왜 자신이 대통령이 될 자격이 없는지를 국민들 앞에 명확히 보여줬다”고 밝혔다. 

기자회견문을 통해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정수장학회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은, 이제 일각의 주장 차원을 넘어 ‘사회적 인정’의 수준에 도달했였다”면서 “시민사회와 학계, 정치권, 심지어 새누리당 내부에서 조차 박 후보의 ‘결단’을 촉구하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인데도, 박 후보는 여전히 사회적 요구와 민심을 읽지 못하고, 진실을 외면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또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의 정수장학회 관련 기자회견은, 국민을 우롱하고 기만하는 대국민 사기극으로 규정한다”면서 “박근혜 후보의 즉각적인 사과와 대선 후보 사퇴”를 강력히 촉구했다. 

이어 “부산일보의 편집권 독립을 유린하고, 이정호 편집국장을 해고한 정수장학회를 강력하게 규탄한다”면서 “장학사업과는 무관한 ‘정치쇼’를 일삼는 최필립 이사장의 즉각적인 사퇴를 강력하게 요구한다”고 밝혔다. 

마이크를 잡은 이강택 언론노조 위원장은 “이름만 공익재단이지 그동안 어떻게 운영됐고, 최필립을 비롯해 이사진이 어떻게 구성됐는지 국민들은 다 알고 있다”면서 “부산일보가 정수장학회 문제를 제기하니 신문 발행조차 중단시키고, 편집국장을 해고하는 만행까지 저질렀다”고 밝혔다. 

에서 해고된 이정호 전 편집국장은 “언론자유와 편집권 독립을 탄압하는 그 단체(정수장학회)가 과연 공정하다고 말할 수 있냐”면서 “현재 정수장학회를 사회에 환원하지 않는 것 역시 언론을 장악하려는 증거”라고 밝혔다. 

전규찬 언론연대 대표는 “스스로 역사를 외면한 자에 대해 이제 역사적 심판을 내려야 한다”고 말했고, 박석운 민언련 공동대표는 “이런 사람은 (당선되면) 국민 마음에 대못을 박겠구나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기자회견이 끝나고 이정호 전편집국장과 이강택 언론노조위원장이 정수장학회 앞에서 거리 농성에 들어갔다. 오늘(22일) 오후 3시에는 정수장학회 전신인 부일장학회 설립자 고 김지태씨 유족과 언론노조, 정수장학회 공대위가 정수장학회 앞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갖는다. 

한편, 지난 21일 기자회견을 한 박근혜 후보는 ▲2005년 이사장을 그만 둔 이후 자신은 정수장학회와 무관 ▲장학회는 정치활동을 하지 않는 순수 장학재단 ▲과거 김지태씨가 처벌을 피하기 위해 먼저 재산 헌납 등의 입장을 피력했다. 

[기자회견문] 독립정론 부산일보 가로막는 정수장학회 즉각 해체하라! 역사 왜곡, 국민 기만 박근혜는 즉각 대선 후보 사퇴하라!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가 어제, 21일(일) 기자회견을 통해, 그동안 시민 사회에서 강력하게 요구하였던 정수장학회 사회 환원 문제와 최근 불거진 최필립 정수장학회 이사장의 불법 매각 기도 사건 등으로 자신에게 불리하게 전개되는 이슈에 대한 진화를 시도하였다. 그러나 “정수장학회는 정치활동을 하지 않는 순수한 장학재단이다.” “그 어떤 장학회보다 깨끗하고 모범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2005년 장학회 이사장을 그만 둔 이후로 장학회와 무관하다” “(김지태씨가) 처벌을 받지 않기 위해 먼저 재산 헌납의 뜻을 밝혔다.”는 등의 그동안 표명해왔던 입장을 되풀이하거나, 어처구니없는 발언 일색이었다. 

시민사회와 언론, 정치권에서 기대했던 정치적 결단과 해법은 커녕, 박 후보 자신의 왜곡된 역사 인식을 다시 한 번 국민들에게 각인시켰으며, 결과적으로 왜 자신이 대통령이 될 자격이 없는지를 국민들 앞에 명확히 보여주었다. 

우리는 지난 5년 동안, 국민을 기만하고 거짓으로 일관하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 지에 대해, 엄청난 수업료를 지불하고 있다. 정치, 경제, 문화 등 시민 사회 전반에서 퇴행적 기조가 심화되어, 진실이 외면되고 거짓을 일삼는 모사꾼이 득세하며, 국민을 기만하며 고혈을 빨아먹는 ‘사회적 흡혈귀’들로 넘쳐나고 있다. 하여, 정말 물러설 수 없는 점은, 앞으로는 결단코 이런 자들이 국정을 다스리는 자리에 오르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정수장학회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은, 이제 일각의 주장 차원을 넘어 “사회적 인정”의 수준에 도달하였다. 시민사회와 학계, 정치권, 심지어 새누리당 내부에서 조차 박 후보의 ‘결단’을 촉구하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인데도, 박 후보는 여전히 사회적 요구와 민심을 읽지 못하고, 진실을 외면하고 있다. 

또한 박근혜 후보의 “정수장학회는 정치활동을 하지 않는다.”는 거짓말과는 달리, 정수장학회 최필립 이사장은 그동안 수차례, 지극히 정치적인 언사를 일삼았다. 부산 지역이 여당에게 유리하도록 해야 한다는 말이나, 박근혜 후보의 당선을 위해 “한몫”을 하겠다는 말 등 그가 보여온 정치적 언동은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런 인사가 장학회 수장이며, 실질적으로 최 이사장의 의사가 곧 장학회의 의사인 것이다. 수십년간 박정희, 박근혜로 이어지는, 이른바 ‘임금님과 공주님’의 가신을 자처하는 자가 어찌 박근혜와 ‘정치적으로 무관’하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후보의 이러한 발언은, 실로 지나던 개가 웃을 일이요, 심각하게 국민을 기만하고 우롱하는 작태이다. 

또한 박 후보와 정수장학회의 ‘유관함’의 대표적 사례는 오늘 이 자리에, 이제는 해직 언론인이 되어 함께하고 있는 부산일보 이정호 편집국장이다. 이 편집국장은 정수장학회의 사회환원 관련 기사를 게재했다는 이유로 보직 해임과 해고를 당했으며, 실질적으로 박근혜 후보와 새누리당에게 비판적인 기사를 싣지 못하게 하기 위한 정수장학회의 ‘정치적’ 책략의 희생양이다. 

전국언론노동조합(위원장 이강택)과 정수장학회 공대위(집행위원장 한홍구)는 어제(19일)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의 정수장학회 관련 기자회견은, 국민을 우롱하고 기만하는 대국민 사기극으로 규정하고, 박근혜 후보의 즉각적인 사과와 대선 후보 사퇴를 강력하게 촉구한다. 또한 부산일보의 편집권 독립을 유린하고, 이정호 편집국장을 해고한 정수장학회를 강력하게 규탄하며, 장학사업과는 무관한 ‘정치쇼’를 일삼는 최필립 이사장의 즉각적인 사퇴를 강력하게 요구한다. 

오늘부터 우리는 이정호 편집국장과 함께 더욱 강력한 정수장학회 규탄 농성 운동을 전개할 것이며, 국민을 우롱하고 기만하는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국민앞에 사죄를 빌고, 정수장학회가 온전히 사회에 환원되는 그날까지 이 투쟁의 깃발을 결코 내리지 않을 것이다.(끝) 

2012. 10. 22 정수장학회 공대위, 전국언론노동조합 

김철관

2012년 9월 10일 월요일

청소년들, “일본은 과거사 인정하고 역사 바르게 가르쳐라”


이글은 민중ㅇ의소리 2012-09-09일자 기사 '청소년들, “일본은 과거사 인정하고 역사 바르게 가르쳐라”'를 퍼왔습니다.
9일 오후 일본대사관 앞..“역사왜곡으로 한일관계 악화시키지 말아야”

ⓒ뉴시스 한국청소년미래리더연합

청소년들이 일본정부에 과거사를 인정하고 역사를 바르게 가르칠 것을 요구했다.

전국 중·고등학생 3천여명이 참여하고 있는 한국청소년미래리더연합 소속 청소년 50여명은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중학동 일본대사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일본은 위안부와 강제징용 등 일제강점기에 있었던 과거사를 인정하고 진심으로 사과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일본 정부의 역사 왜곡과 독도 영유권 억지주장으로 인해 한일 청소년들 사이에서 마찰이 일고 있다"며 "일본정부는 일본 청소년들에게 과거 역사를 바르게 가르쳐 역사 왜곡으로 한일관계가 악화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한국 정부에는 "정부는 역사교과목을 필수과목으로 지정해 대한민국 청소년들이 애국애족의 올바른 역사관을 가질 수 있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지혜 기자 creamb@hanmail.net

2012년 8월 1일 수요일

5.16 세력 '구국혁명'커녕 사리사욕 싸움질


이글은 프레시안 2012-07-31일자 기사 '5.16 세력 '구국혁명'커녕 사리사욕 싸움질'을 퍼왔습니다.
[김재홍의 '박정희 권력의 DNA'] 5.16군사반란의 원인, 군내 파벌과 승진불만

5.16군사반란에 대해 구국의 혁명이니 사회혼란을 막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니 하는 역사왜곡이 등장했다. 새누리당의 대통령예비후보인 박근혜 의원이 내놓은 나름의 역사평가다. 그러나 그 발언은 박 의원이 5.16군사반란 주모자 박정희 소장의 딸로서 사인(私人)의 입장과 공당의 대통령예비후보라는 공인의 역사관이 뒤엉켜 있는 것 같다. 일각에서는 박 의원이 여론조사 지지율에서 계속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으니 자신감이 지나쳐 교만해졌기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즉 확고해진 정치적 위상을 이용해 아버지 박정희가 자행한 헌정유린까지도 무리하게 정당화를 시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큰 오산이다. 그런 언급은 박정희의 딸로서 어쩔 수 없다고 하면 몰라도 정면으로 '구국의 결단'이니, '최선의 선택이었다'느니 하는 것은 보통문제가 아니다. 국민여론층에서 그렇게 만만하게 넘어갈 리가 없다. 역사 왜곡이 될 소지가 매우 크기 때문이다. 일제의 한반도 강점과 식민지배가 불가피했고 결과적으로 근대화에 밑거름이 됐다고 하는 역사왜곡과 동일한 논리가 아닌가.

헌법전문 '3.1운동과 불의 항거 4.19민주이념 계승'4.19혁명 짓밟은 5.16군사반란 미화는 헌법정신 유린

박근혜 의원은 그런 발언을 한 후 자신의 말을 지지하는 국민이 50%가 넘는다고 했다. 그 국민만 투표를 한다고 해도 박 의원은 이미 대통령 당선이다. 그러나 그 50%는 허수였다. 한겨레가 사회여론조사연구소와 함께 벌인 정기 여론조사(7월27~28일)에서 박 의원의 5.16군사반란 정당화에 대해 "동의한다"는 응답은 37.2%에 불과했고 "동의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훨씬 많은 49.9%로 나타났다.

특히 박 의원의 5.16군사반란 합리화에 대한 반대는 20대에서 64.9%, 30대 61.9%, 40대 57.7%로 높게 나왔다. 50% 이상 동의를 보인 연령대는 60대 이상에서만 58.5%였으며 50대도 47.1%였다.

60대 이상이라면 5.16군사반란 때 10대, 유신 때 20대여서 박정희 정권 아래서 교육받고 또 고도로 통제된 언론을 접하면서 정치의식이 형성된 세대다. 지금도 머릿속에 개발독재와 강권통치가 '한국적 민주주의'라는 식의 정치교육을 받은 악영향이 유산처럼 남아있는 세대라는 것이다. 반민주적 1인 독재체제인 유신헌정을 강행해 놓고서 그것이 한국적 민주주의라고 예찬하는 극단적 우민화 조작을 하던 정권이었다. 그에 비해 2040세대는 5.16 군사반란 때 세상에 태어나지도 않았을 뿐더러 유신 때도 유아기였다. 그러니까 박정희 정권으로부터 정치의식 면에서 오염되지 않은 세대다. 이들 중 다수의 자율적인 의식과 판단은 5.16군사반란을 합리화하는데 동의하지 않았다.

여기서 60대 이상 세대 중에서 5.16군사반란에 의해 짓밟힌 당사자 그룹인 4.19혁명 참여자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지 않을 수 없다. 피해자 단체로는 4.19혁명 유족회와 부상자회가 국가보훈처에 등록돼 있다. 보훈처에 등록하지 않은 채 광범하게 4.19혁명 참여자들이 자율성을 견지해온 단체가 '사단법인 사월혁명회'(상임의장 정동익)라 할 수 있다.

사월혁명회는 7월26일 오후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회관에서 정례발표회를 갖고 박근혜 의원의 5.16군사반란 미화 발언에 대해 규탄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우리 헌법은 전문(前文)에 딱 두 가지의 역사적 사건과 그 정신을 계승한다고 명기했다. 하나는 항일 자주독립 정신으로 3.1운동을 들었고 두 번째가 반독재 시민혁명 정신으로 '4.19민주이념'이다. 이는 국민 합의의 결과다.

그런데 5.16군사반란은 4.19혁명 정신에 바탕한 제2공화정 헌법과 민주당 정부를 짓밟고 정권을 찬탈했다. 박근혜 의원은 그 4.19혁명 정신을 유린한 군사반란을 불가피하고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미화하고 있다. 그것은 '4.19민주이념'이 명기한 헌법정신에 대한 부정이 아닐 수 없다.

사월혁명회 성명 "5.16군사반란 미화는 제2의 쿠데타 기도"

사월혁명회는 이날 성명에서 "박근혜 의원은 공당의 대통령 예비후보로서의 활동을 중단하고, 4월혁명을 짓밟은 5.16 군사반란을 단죄하는 취지로 4.19민주이념을 대한민국헌법 전문에 규정한 헌법정신에 대한 입장을 먼저 명백하게 밝히라."고 요구했다.

성명은 이어 "박 의원의 5.16 군사반란과 유신체제에 대한 망언을 '제2의 쿠데타 기도'로 규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맹비난하고 "집권여당의 대통령 후보가 군사반란을 정당시 하는 위험한 국가관을 가지고 있는데 대해 우려를 표하면서 새누리당 박근혜의원은 5.16을 군사반란으로 인정하고 국민 앞에 사죄하라고 규탄했다.

5.16군사반란이 과연 구국의 혁명인가를 검증하기 위해서는 1960년 4.19혁명 이후 1961년 5.16과 63년 이른바 민정이양, 그리고 65년 3차 반혁명사건까지 분석적으로 정리해 보아야 한다. 그들은 총칼을 들고서도 최소한 5년 동안 내부 권력투쟁과 검은 정치자금 조달로 나라 전체를 정치적 혼란과 부패상 아래 추락시켰다. 그러면서 4.19혁명 과정에 대해서는 불과 1년을 혼란상으로 규정하고 정권찬탈의 명분으로 삼았다.

5.16군사반란의 원인은 무엇보다도 군 장교 인사적체와 정치군인 발호였다. 군사반란의 주모자들은 군 인사에서 소외된 그룹이었다. 당시 군내 파벌은 지연과 학연, 장교임관 구분 등을 기반으로 형성됐다.

광복군 일본군 만주군과 함께 '하극상파' 형성

5.16군사반란이 일어나기 전 4.19혁명 전후 군내 파벌은 크게 ⧍광복군과 중국군 출신 ⧍일본군 ⧍만주군 ⧍동북(함경도)파 ⧍서북(평안황해)파 ⧍중남부(경기충청)파 ⧍정군운동과 하극상파 등으로 나뉘어 있었다. 이때 5.16 이후 박정희 정권아래서 기승을 부린 영남(대구경북과 경남)군벌은 아직 형성되지 않았다.

첫째, 광복군과 중국군 출신은 해방 후 창군 때 군 수뇌부에서 중심 역할을 맡았다. 중국군(장개석 국민당 군) 소장으로 광복군 참모장을 지낸 이범석이 초대 국방장관, 일본육사 출신이지만 광복군 참모총장을 지낸 유동열이 미군정 아래서 초대 통위부장, 중국군 소장으로 1946년 한국군 경비대 총사령관을 맡은 송호성 등이 주요 인물이다.

이범석은 1946년 민족청년단장, 48년 초대 국무총리 겸 국방부장관, 자유당 부당수, 4.19혁명 후 참의원 등 정계에서 활동했다. 그는 창군 초기 광복군 정신의 계승 원칙을 천명했으나 실제로는 일본육사 출신들을 많이 등용했다. 그것은 김구 세력에 대한 이승만의 견제 책략을 이범석이 실행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광복군과 중국군 출신의 주류는 김구가 관여하던 낙양군관학교 한인특별반에서 교육받은 인사들이었다. 이들은 자연히 김구의 정치적 입장을 지지하는 세력으로 조직화할 수 있었다. 이것을 이승만이 그대로 둘리 없었으며 광복군계는 군요직에서 차례로 제거되고 만다. 그 뒷자리를 차지한 것이 일본군 출신들이었다.

유동열은 1919년 3.1운동 후 상해임시정부에서 군무총장을 역임, 광복군 양성에 주력했으며 민족혁명당을 조직하여 독립투쟁을 하다가 해방후 환국했으나 6.25 때 납북당했다. 송호성은 6.25 전쟁 중 자진 월북하여 국군의 발전에 기여한 바 없으며 북한에서 강계 월북자 재교육훈련소의 소장으로 일했다.

둘째, 일본군계는 일본육사와 학도병과 지원병 출신으로 이루어졌고 이 중 주류는 일본육사계였다. 일본육사 출신의 주류는 창군 초기 육군참모총장 채병덕과 4.19혁명 직후 과도정부의 국방장관을 지낸 이종찬, 그리고 6.25전쟁 때 육본 작전국장과 남부지구경비사령관을 지낸 이용문을 3걸로 꼽을 수 있다. 해방후 초대 육군참모총장을 지낸 이응준, 그리고 51년 휴전회담 대표와 56년 육군참모총장을 지낸 이형근도 일본육사계의 거물이다.

이들은 일본육사에 입학한 후 계림회라는 친목모임을 만들었다. 당시 도쿄에 있던 영친왕은 계림회를 위하여 방을 얻어주고 과자와 과일 등을 보내주기도 했다. 이 계림회 아지트는 조선인 일본육사 출신 선후배들의 친목모임 장소였으며 모임은 해방 때까지 지속됐다.

일본군파 이종찬, 이승만의 군 동원 거부로 육참총장직 해임

이 중 특히 이종찬은 1952년 5월 피난수도 부산에서 이승만이 재선을 위해 계엄령을 선포하고 참모총장이던 그에게 1개 전투사단의 동원을 명령했으나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종찬은 이승만이 국회의원들과 언론을 협박하기 위해 군을 이용하려 하자 전방 전투부대 부족과 군의 정치적 중립을 내세워 단호하게 거부했다. 대통령이 군 통수권자였지만 부당하게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하자 항명한 것이다. 이종찬은 이 사건으로 참모총장직에서 해임되고 사실상 미국으로 추방조치 당하고 말지만 그는 군 안팎에서 참군인으로 존경을 받았다.

이승만은 군의 정치적 이용을 거부한 이종찬의 항명 이후 자신이 통제하기 어려운 장성을 중용하지 않았다. 이종찬의 후임은 백선엽이었으며, 52년 부산 직선제 개헌파동 때 이승만의 군 동원 명령을 이행한 사람은 헌병총사령관 원용덕으로 모두 만주군 출신이다.

일본육사파 채병덕은 6.25전쟁 중 하동전투에서 전사했으며, 이용문도 남부지구경비사령관으로 재직하던 1953년 비행기 사고로 전사하고 만다.

일본군파는 또 일본육사 출신과 지원병 하사관 출신 간에 알력이 심했다. 하사관 출신으로는 일본군 지원병으로 입대했다가 해방 후 군사영어학교를 거쳐 임관한 송요찬과 최경록이 대표적이었다. 송요찬은 4.19혁명 당시 육군참모총장으로 계엄사령관이었다. 육참총장 재직 때 군의 부패 척결에 앞장섰으며 일본군 하사관 출신의 보스로 상당한 군벌을 형성했다. 5.16군사반란 후 국방장관과 내각수반 겸 외무장관을 지냈다.

최경록은 5.16 때 박정희가 부사령관이던 2군의 직속상관 사령관으로 처음에 군사반란에 반대했다가 차츰 묵인 자세를 취했다. 유신 후에도 교통부장관과 유정회 국회의원을 지냈다.

일본군계는 학병 출신도 상당수 군 수뇌부에 진출했다. 5.16군사반란 당시 육군참모총장으로 초기 최고회의 의장에 추대됐으나 반혁명 혐의로 투옥된 장도영, 민주당 정부 때 육참총장 재임시 정군운동의 표적이 됐던 최영희, 그리고 5.16 때 육사교장으로 군사반란에 반대하다가 구금된 강영훈 등이 학병 출신이다.

이승만, 김구 관련된 광복군 거세 후 일본군파 중용일본군 비대해지자 다시 만주군파 키워 일본군파 견제

셋째, 만주군파는 이승만이 광복군과 중국군 출신을 거세한 뒤 중용했던 일본군파가 비대해지자 다시 이들을 견제하기 위해 육성한 세력이다. 특히 52년 부산 직선제개헌 파동 때 만군 출신이 군의 정치적 이용에 공을 세운 후 육군참모총장을 백선엽(두 번 중임)과 정일권이 독과점하면서 만군계가 급성장했다.

만군파는 초기의 봉천군관학교와 그 후의 신경군관학교로 나뉘지만 함께 나라를 빼앗긴 조선인으로서 만주에서 일본인이나 중국인과 경쟁하면서 교육받아 동병상련 관계로 단결력이 강하다.

봉천군관학교 출신으로는 정일권과 김백일 송석하 신현준 백선엽 등이 유명인사다. 신경군관학교 출신은 이주일 김동하 윤태일 박임항 방원철 박정희 이한림 강문봉 김윤근 등이다. 이 중 5.16 당시 제1야전군 사령관이던 이한림은 처음부터 군사반란에 반대했으나 나중에 박정희에 회유당하고 공직에 참여한다. 또 5.16에 가담했던 군단장 김동하와 박임항은 나중에 이른바 반혁명 사건으로 고초를 겪기도 한다.

이들 중엔 만주군관학교 우수졸업자로 일본육사에 편입한 경우도 상당수에 이른다. 박정희 이한림 이주일 박임항 강문봉 김윤근 등이 그들이다.

신경군관학교 출신 중에 이주일(감사원장 지냄) 윤태일(중앙정보부 차장 지냄) 등 박정희 정권에서 고위직을 지낸 인사가 많이 배출됐다.

넷째, 동북(함경도)파로는 정일권, 이한림, 강문봉 등이 중심인물이었고 다섯째, 서북(평안황해)파는 백선엽과 백인엽 형제를 중심으로 파벌을 이루었으며 여섯째, 중남부(경기충청)파로 이형근 박병권 김종오 민기식 최경록 등이 보스 노릇을 했다.

군내 소외된 육사5기와 8기 하극상파가 5.16군사반란 꾸며

일곱째, 4.19혁명과 5.16군사반란을 전후해서 학연과 지연으로 유력한 파벌을 형성하지 못했으며 그 결과 군 인사에서 소외된 불만세력이 이른바 정군운동과 하극상사건을 일으킨다. 이들은 만주군 출신내의 비주류, 미군정하 경비사관학교에서 교육받고 임관한 육사5기 그룹, 정부수립 후 첫 육사출신 장교가 된 육사8기 그룹이었다.

4.19혁명 이전 이승만 정권아래서 정군운동은 인사적체 때문에 발화됐다. 계급사회인군대에서 승진이 막혀있다는 것은 가장 심각한 불만사항이다. 그런데 이승만 정부는 군 수뇌인 합참의장과 육군참모총장직을 소수의 몇 사람이 2~3회씩 중임하는 독과점식 인사정책을 유지했다. 이유는 창군된 지 오래되지 않아 장성들의 나이가 젊었고 또 이승만도 새로운 사람보다는 손에 익은 장군을 계속 중용하는 것이 안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채병덕 정일권 백선엽은 참모총장을 각각 두 번씩 중임했으며, 함참의장의 경우 김종오는 3대나 연임했다. 또 이형근 정일권 백선엽 최영희 김종오는 합참의장도 하고 이어 육군참모총장에 임명되기도 했다. 그 결과 육사5기의 경우 대령에 7~8년이나 머물러야 했고 8기생은 소령에서 중령으로 진급하는데 8년이 소요됐다.

특히 기록적으로 1300여명이 임관한 8기는 승진적체에 위기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임관한 동기생 중 절반 정도가 6.25전쟁을 겪으면서 희생됐음에도 5.16 이전 1차 대령 진급자는 7명에 불과했다.

이들 8기생은 총리와 국방장관을 찾아가 육군참모총장의 임명 기준을 제시하는 등 하극상 행동에 들어간다. 8기생 8명이 하극상을 벌였다 해서 8-8그룹이라 불리는 이들이 나중에 5.16군사반란의 주모그룹이 되는 것이다.

김종필 김형욱 신윤창 길재호 옥창호 석창희 최준명 오상균 등이 그들이다. 이 중 최준명 오상균은 육본에 8기생이 너무 많다는 이유로 '소개'방침에 따라 지방에 전보되는 바람에 5.16주체세력에 끼지 못했다. 그러나 이들 8기그룹은 또 5.16군사반란 주모세력 내부에서 김재춘 문재준 박치옥 등의 5기그룹과 치열한 권력투쟁을 치러야 했다.

 
▲ 5.16군사반란 주모세력 내부 육사5기의 중심인물 김재춘(제3대 중앙정보부장)과 8기의 리더 김종필(초대 중앙정보부장)은 치열한 권력 각축전을 벌였다.

/김재홍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

2012년 6월 7일 목요일

중국의 ‘고무줄 만리장성’… 고구려·발해 편입으로 역사왜곡


이글은 경향신문 2012-06-06일자 기사 '중국의 ‘고무줄 만리장성’… 고구려·발해 편입으로 역사왜곡'을 퍼왔습니다.

ㆍ고조선·고구려 역사도 중국사에 포함 속셈

중국이 만리장성을 동쪽으로는 헤이룽장(黑龍江)성, 서쪽으로는 신장위구르자치구까지 연장해 발표한 것은 그동안 추진해 온 만리장성 늘이기의 결정판이다. 

만리장성은 이제 중국의 주장대로라면 이만리장성이 돼 버렸다. 중국이 만리장성 길이는 고무줄이란 비아냥을 들으면서도 연장에 집착해 온 것은 동북공정과 연관이 있다. 중국은 고구려와 발해를 중국 지방정권으로 규정하는 동북공정의 물증을 확보한다는 측면에서 그동안 끊임없이 만리장성 늘이기를 시도해 왔다. 이집트 피라미드와 함께 세계 7대 불가사의의 하나로 꼽히는 만리장성은 중국인들의 긍지와 자부심을 상징하는 대표적 유산이란 점에서 만리장성 길이 늘이기는 중화사상의 또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변경에 주로 포진하고 있는 소수민족들을 중화민족으로 통합하기 위해서 역사를 왜곡하는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중국은 11차 5개년계획(2006~2010년) 중 만리장성 보호와 조사를 위해 5억위안(927억원) 이상을 투입했다. 법제만보(法制晩報)는 국가문물국 관계자가 “2009년 만리장성 길이를 공표한 이후 국가문물국은 진한(秦漢) 시대와 기타 시대의 만리장성 자원 조사를 벌여왔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명분은 만리장성에 대한 기초 조사와 보호에 나선다는 것이었지만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추진하기 위해 어떤 역사도 왜곡하겠다는 게 속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큰 줄기는 요동은 물론 만주까지 원래의 중국 영토였음을 강조하기 위해 장성과는 구별되는 유적들까지 만리장성에 포함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은 2009년 4월 만리장성의 길이를 종전까지 알려진 것보다 2500㎞ 더 긴 8851.8㎞로 확인됐다고 발표했다. 원래 만리장성 동단은 베이징에서 가까운 허베이성(河北省) 산하이관(山海關)이란 게 오랜 정설이었다. 그러나 중국은 산하이관에서 한참 동쪽인 압록강변의 단둥(丹東) 후산장성(虎山長城)이 동쪽 끝이라고 발표한 것이다. 후산장성은 오랫동안 고구려의 대표적 산성인 박작성으로 인정돼 왔던 곳으로 648년 당(唐) 태종 침략에도 함락되지 않았던 성이다. 중국 역시 후산장성 증·개축 이전에는 고구려 유적으로 인정해 왔다. 그러나 현재는 박작성에 ‘만리장성 동단 기점’이라는 대형 표지판이 설치돼 있다. 중국은 이어 지린(吉林)성 퉁화(通化)현에서도 만리장성의 유적이 발견됐다는 주장을 내놨다. 그러다가 만리장성의 총길이가 2만1196.18㎞라는 결론을 얻었다고 발표한 것이다.

관광객들이 지난 2일 중국 베이징 서북부에 있는 명나라 시대에 쌓은 만리장성을 둘러보고 있다. 베이징 | AP연합뉴스

중국은 새로 발굴되는 만리장성의 유적들이 오랜 세월 묻혀 있었던 것으로 차츰 만리장성 본래의 면모를 회복해 가고 있다고 강변하고 있다. 예컨대 청나라를 세운 누르하치가 한족의 진입을 막기 위해 도랑과 담을 쌓으면서 동북지방 일대에 있는 만리장성을 훼손시켰으며 그 유적이 발굴되고 있다는 식이다. 

중국이 만리장성 늘이기를 시도하는 지역이 한국 고대사의 숨결이 흐르는 지역이란 점에서 중국의 의도는 동북공정과 깊은 관계를 갖고 있다. 백두산 부근 지린성 퉁화의 고구려 산성을 만리장성 유적이라고 주장한 것이 대표적이다. 결국 만리장성을 동쪽으로 확장함으로써 고구려와 발해 영토였던 중국 동북일대가 고대부터 중국의 영토였음을 주장하려는 속셈이다.

중국은 인류 최장의 건축물인 만리장성을 전 세계에 전파하려 해 왔으며 동북지방인 지린성과 헤이룽장성에 만리장성이 없는 공백을 메우기 위해 조작을 서슴지 않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중국의 만리장성 보호사업 대상 지역은 15개 성(省)에 이른다.

변경지역에 소수민족이 집중적으로 분포하고 있는 중국으로서는 만리장성 늘이기를 통해 고조선과 부여, 고구려사가 사실상 중국사에 편입된다는 인식을 전파시킴으로써 소수 민족을 통제하려는 의도도 갖고 있다. 네이멍구에서는 원(元)사를, 중앙아시아 일부 국가에서 서역(西域)사를 자국 역사로 주장하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측면도 있다는 것이다.

베이징 | 오관철 특파원 okc@kyunghyang.com

2012년 5월 25일 금요일

[사설] 역사·정치적 의미 큰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05-24일자 사설 '[사설] 역사·정치적 의미 큰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을 퍼왔습니다.
대법원이 어제 일제하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들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심을 파기하고 기업의 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획기적인 판결을 내렸다. 법률적으로뿐 아니라 역사적 정치적으로도 상당히 의미가 있는 판결이다. 크게 환영한다. 시기적으로 너무나도 늦었지만 이제라도 징용 피해자들과 후손들의 원통함을 조금이나마 풀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은 무척 다행스럽다. 지난해 8월 헌법재판소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배상청구권 문제에 대해 정부가 해결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은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린 데 이어 사법부가 우리의 과거사에 대해 잇따라 진전된 판단을 내리고 있는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강제징용 피해자들은 일본 법원에 같은 취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으나 최고재판소에 의해 패소판결을 받았고, 우리 법원에서도 1·2심까지 줄줄이 패소했다. 이번 사건에서 부산지법과 부산고법은 이미 시효가 지났다는 일본 법원의 판결을 그대로 수용하면서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었다.
그러나 대법원은 일본 판결이 일제강점기의 강제동원 자체를 불법으로 보는 우리 헌법의 핵심적 가치와 정면으로 충돌하므로 그 효력을 승인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헌법 규정에 비춰 일본의 한반도 지배가 불법적인 강점에 지나지 않으므로 일제의 국가총동원법과 국민징용령을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적용하는 것이 유효하다고 평가한 일본 법원의 판결을 승인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최고 규범인 헌법의 규정과 정신을 제대로 드러냈다는 점에서 헌정사에 남을 만한 명판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동안 1·2심의 발목을 잡았던 시효 문제에 대해서도, 과거사 관련 고문조작사건 판결에서 그랬듯이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이상 시효가 지났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번 판결은 정치적으로도 그간 박정희 정권이 일본과 맺은 한일협정에 얽매여 위안부와 강제징용 피해자 문제 해결을 사실상 방치해오다시피 한 정부의 태도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1965년 맺은 한일협정에 의해 민간인의 모든 청구권까지 소멸됐다고 주장하는 일본에 대해 우리 정부는 사실상 나몰라라 식의 무책임한 태도를 보여왔다. 그러나 헌재가 치욕의 과거사에 대한 정부의 헌법상 의무를 분명히 한 데 이어 대법원까지 개인의 배상권을 인정한 만큼 정부는 그 의미를 각별히 되새겨야 한다. 민간의 법률적 책임 추궁과 별개로 일본 정부에 정치적 역사적 책임을 묻는 일은 정부의 몫으로 남아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일본 식민지배를 미화하려는 뉴라이트 등 일부 우익의 역사왜곡 시도마저 횡행하는 현실에서 식민지배를 부인하는 헌법정신을 재확인한 대법원 판결은 역사적으로도 적잖은 의미가 있다. 역사적으로 친일청산에 실패한 대가는 고스란히 국민의 부담으로 남았고, 강제징용과 위안부 피해자들의 처참한 삶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이번 판결은 여러 측면에서 국민적 각성과 함께 정부의 분발을 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