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블이 만리장성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레이블이 만리장성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2012년 6월 8일 금요일

중국의 ‘고무줄 만리장성’ 주장에 맞설 자료가…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06-07일자 기사 '중국의 ‘고무줄 만리장성’ 주장에 맞설 자료가…'를 퍼왔습니다.

(※ 클릭하시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중국의 ‘고무줄 만리장성’ 맞설 고구려 성곽 연구 시급
”학계 “중국의 아전인수식 일방 주장
”한편선 마땅한 대응 자료 없어 곤혹
“건립 주체 등 현지조사 필요” 목소리

‘제 논에 물대기식이지만, 마냥 무시할 수도 없고….’
‘고무줄’ 만리장성 앞에서 국내 역사학자들은 냉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지난 6일 중국 국가문물국은 최근 5년간의 재조사 결과 장성이 동북 만주와 서북 신장까지 뻗어나갔으며, 길이도 기존의 두 배인 2만1196.18km로 확인됐다고 발표했다. 고구려·발해 등의 주요 성들을 장성 범위에 모두 포함시킨 것이다. 국내 역사학계 대부분은 학술적 의미가 희박한 일방적 주장으로 폄하하지만, 대응할 만한 현지 사료가 거의 없는 현실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다.
중국의 이번 발표는 만리장성의 기존 개념을 완전히 뒤엎었다. 지금까지 만리장성에 대한 일반적 개념은 기원전 전국시대 북방 유목민을 막으려고 쌓기 시작해 진의 시황제가 본격적으로 구축했으며, 15세기 명대에 이를 온전히 연결시킨, 서쪽 간쑤성 가욕관부터 동쪽의 허베이성 산해관까지의 6000여km구간이었다. 그러나 중국은 2009년 장성 동쪽 끝을 압록강변 단둥의 고구려 호산장성으로 연장해 총길이를 8000km로 발표했고, 이번에는 북만주 성터 전역을 사실상 장성 구간에 흡수시켰다.
일부 소장학자들은 ‘고무줄 만리장성’을 최근 중국 동북공정의 논리로만 바라보면 안 된다고 주문한다. 중국 곳곳의 고대 장성 분포에 대한 발굴·연구는 20세기초부터 시작돼 1980년대 이후 장성 범위 자체를 국경선과 동일시하는 인식이 확산되는데, 이번 발표 또한 이런 장기간 축적된 연구 흐름을 반영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최근 (동북아역사논총) 35집에 중국의 장성연구 현황을 소개한 홍승현 박사(숙명여대 연구원)는 “흔히 알려진 장벽 이미지의 장성은 15세기 명대 이후 나타나며, 그 이전에는 변방의 장성을 봉수대 초소 등 드문드문 설치된 거점을 가상 선으로 잇는 방어선 개념으로 보았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전통적 시각에 국경선 개념을 연결시키면, 방어시설 터 등에서 중국산 동전 토기 따위만 나와도, 이 유적들을 만리장성의 일부로 확대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 홍 박사는 “실제 중국의 장성 재조사 공정에서 각 성 박물관 등이 사소한 유적들까지 모두 장성의 자취로 간주해 경쟁적으로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며 “만리장성 공정이 어떤 논의와 조사 과정을 거쳤는지 세부 정보부터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와 별개로 고구려·발해 등과 요·금 등의 유목민 왕조가 쌓은 중국 동북 변방 성곽들이 만리장성과 실제로 어떻게 다른지 축조 과정을 짚는 현지조사가 시급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장성을 건립한 주체를 파악하는 것이 우선”(여호규 한국외대 교수) “고구려의 천리장성, 고려·고구려 축조설이 엇갈리는 연변장성 등의 실체에 대한 연구자료 축적이 필요하다”(윤용구 한국고대사학회 이사) 등의 지적이 그렇다. 그러나, 한·중 역사 분쟁이 첨예한 현 시점에서 중국 당국이 현장 조사를 얼마나 허용할지 미지수라는 점이 학계의 고민이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2012년 6월 7일 목요일

중국의 ‘고무줄 만리장성’… 고구려·발해 편입으로 역사왜곡


이글은 경향신문 2012-06-06일자 기사 '중국의 ‘고무줄 만리장성’… 고구려·발해 편입으로 역사왜곡'을 퍼왔습니다.

ㆍ고조선·고구려 역사도 중국사에 포함 속셈

중국이 만리장성을 동쪽으로는 헤이룽장(黑龍江)성, 서쪽으로는 신장위구르자치구까지 연장해 발표한 것은 그동안 추진해 온 만리장성 늘이기의 결정판이다. 

만리장성은 이제 중국의 주장대로라면 이만리장성이 돼 버렸다. 중국이 만리장성 길이는 고무줄이란 비아냥을 들으면서도 연장에 집착해 온 것은 동북공정과 연관이 있다. 중국은 고구려와 발해를 중국 지방정권으로 규정하는 동북공정의 물증을 확보한다는 측면에서 그동안 끊임없이 만리장성 늘이기를 시도해 왔다. 이집트 피라미드와 함께 세계 7대 불가사의의 하나로 꼽히는 만리장성은 중국인들의 긍지와 자부심을 상징하는 대표적 유산이란 점에서 만리장성 길이 늘이기는 중화사상의 또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변경에 주로 포진하고 있는 소수민족들을 중화민족으로 통합하기 위해서 역사를 왜곡하는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중국은 11차 5개년계획(2006~2010년) 중 만리장성 보호와 조사를 위해 5억위안(927억원) 이상을 투입했다. 법제만보(法制晩報)는 국가문물국 관계자가 “2009년 만리장성 길이를 공표한 이후 국가문물국은 진한(秦漢) 시대와 기타 시대의 만리장성 자원 조사를 벌여왔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명분은 만리장성에 대한 기초 조사와 보호에 나선다는 것이었지만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추진하기 위해 어떤 역사도 왜곡하겠다는 게 속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큰 줄기는 요동은 물론 만주까지 원래의 중국 영토였음을 강조하기 위해 장성과는 구별되는 유적들까지 만리장성에 포함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은 2009년 4월 만리장성의 길이를 종전까지 알려진 것보다 2500㎞ 더 긴 8851.8㎞로 확인됐다고 발표했다. 원래 만리장성 동단은 베이징에서 가까운 허베이성(河北省) 산하이관(山海關)이란 게 오랜 정설이었다. 그러나 중국은 산하이관에서 한참 동쪽인 압록강변의 단둥(丹東) 후산장성(虎山長城)이 동쪽 끝이라고 발표한 것이다. 후산장성은 오랫동안 고구려의 대표적 산성인 박작성으로 인정돼 왔던 곳으로 648년 당(唐) 태종 침략에도 함락되지 않았던 성이다. 중국 역시 후산장성 증·개축 이전에는 고구려 유적으로 인정해 왔다. 그러나 현재는 박작성에 ‘만리장성 동단 기점’이라는 대형 표지판이 설치돼 있다. 중국은 이어 지린(吉林)성 퉁화(通化)현에서도 만리장성의 유적이 발견됐다는 주장을 내놨다. 그러다가 만리장성의 총길이가 2만1196.18㎞라는 결론을 얻었다고 발표한 것이다.

관광객들이 지난 2일 중국 베이징 서북부에 있는 명나라 시대에 쌓은 만리장성을 둘러보고 있다. 베이징 | AP연합뉴스

중국은 새로 발굴되는 만리장성의 유적들이 오랜 세월 묻혀 있었던 것으로 차츰 만리장성 본래의 면모를 회복해 가고 있다고 강변하고 있다. 예컨대 청나라를 세운 누르하치가 한족의 진입을 막기 위해 도랑과 담을 쌓으면서 동북지방 일대에 있는 만리장성을 훼손시켰으며 그 유적이 발굴되고 있다는 식이다. 

중국이 만리장성 늘이기를 시도하는 지역이 한국 고대사의 숨결이 흐르는 지역이란 점에서 중국의 의도는 동북공정과 깊은 관계를 갖고 있다. 백두산 부근 지린성 퉁화의 고구려 산성을 만리장성 유적이라고 주장한 것이 대표적이다. 결국 만리장성을 동쪽으로 확장함으로써 고구려와 발해 영토였던 중국 동북일대가 고대부터 중국의 영토였음을 주장하려는 속셈이다.

중국은 인류 최장의 건축물인 만리장성을 전 세계에 전파하려 해 왔으며 동북지방인 지린성과 헤이룽장성에 만리장성이 없는 공백을 메우기 위해 조작을 서슴지 않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중국의 만리장성 보호사업 대상 지역은 15개 성(省)에 이른다.

변경지역에 소수민족이 집중적으로 분포하고 있는 중국으로서는 만리장성 늘이기를 통해 고조선과 부여, 고구려사가 사실상 중국사에 편입된다는 인식을 전파시킴으로써 소수 민족을 통제하려는 의도도 갖고 있다. 네이멍구에서는 원(元)사를, 중앙아시아 일부 국가에서 서역(西域)사를 자국 역사로 주장하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측면도 있다는 것이다.

베이징 | 오관철 특파원 okc@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