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블이 김기협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레이블이 김기협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2013년 2월 4일 월요일

측근 사면한 MB의 속내 '나도 법대로 하시오!'


이글은 프레시안 2013-02-03일자 기사 '측근 사면한 MB의 속내 '나도 법대로 하시오!''를 퍼왔습니다.
[김기협의 '페리스코프'] 10년 전으로 : 가신을 둔 죄

가신(家臣)을 둔 죄

당(唐) 태종(太宗) 이세민(李世民)은 고조(高祖)의 둘째 아들이었다. 그는 원래 태자였던 형 건성(建成)과 동생 원길(元吉)을 현무문(玄武門)의 변(變)으로 죽이고 태자가 되었다가 곧이어 황제가 되었다.

정변을 일으킨 후 세민은 형을 받들어 자신을 적대하던 인물들에게 관대한 처분을 내렸다. 특히 자신을 억누르도록 건성에게 꾸준히 건의했던 위징(魏徵)을 "그는 자기 위치에서 할 바를 다한 것일 뿐"이라며 자기 측근에 중용한 것은 그의 큰 도량을 드러낸 일로 일컬어진다.

그후 위징은 태종에게 바른말을 아끼지 않고 올리는 '충직한 신하'의 상징이 되었고, 태종은 귀에 거슬리는 말이라도 열심히 받아들이는 '관대한 군주'의 모범이 되었다. [정관정요(貞觀政要)]에는 두 군신 간의 믿음을 그린 이야기들이 수없이 들어 있다.

현무문의 변 몇 년 후 태종의 옛 부하 하나가 독직(瀆職)으로 해임된 일이 있다. 태종은 어려웠던 시절의 충성을 생각해 그를 복직시켜 주려 했다. 그러자 위징은 "폐하를 모셨던 수많은 사람들이 모두 특별한 대우를 받는다면 보통 사람들이 불안해 할 것"이라며 반대했다. 태종을 적대했던 사람이 태종의 부하였던 사람을 우대하지 말라는 것이니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낸 격이다. 그런데도 태종은 위징의 간언(諫言)에 따랐다.

그로부터 10여 년 후 이번에는 당인홍(黨仁弘)의 독직 사건이 있었다. 그 죄가 커서 사형이 판결되었으나, 워낙 오랫동안 고락을 함께 해온 그를 차마 죽게 할 수 없었다. 태종은 여러 신하를 모아놓고 이렇게 말했다. "법이란 하늘이 임금에게 내려준 것이다. 그런데 이제 나는 사사로운 정으로 당인홍을 풀어주고자 하니, 이는 법을 어지럽히고 하늘의 뜻을 저버리는 짓이다. 남교(南郊)에 멍석을 깔아 하늘에 죄를 고하고 거친 밥을 먹으며 사흘 동안 근신하여 이 죄를 풀고자 한다." 그리고는 신하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그와 같은 처벌을 자신에게 내렸다.

당 태종은 중국 역사상 가장 뛰어난 황제의 하나로 꼽히지만 그의 행적을 살펴보면 결코 성인 군자 스타일은 아니다. 애증(愛憎)이 뚜렷한, 너무나 인간적인 인물이다. 가신들 때문에 그가 겪은 고민을 들여다보면 인간적 약점을 뛰어넘어 훌륭한 군주가 되고자 애쓴 꾸준한 노력이 참으로 평가받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1997년 4월 25일)

ⓒ프레시안(손문상)

오늘을 살고 있는 현대인은 '민주주의'와 '법치'를 매우 자랑스러워한다. 근대 이전의 군주제를 미개한 정치 체제로 여기고 그 앞에 '전제'라는 말을 자동적으로 떠올린다. 특히 아시아 지역의 근대화가 늦은 이유로 '동양적 전제주의(Oriental despotism)'를 지목하면서 굳어진 관념이다.

유럽 발 근대 문명이 근년 한계를 드러내면서 이 관념에 대한 반성이 일어나고 있다. 중국 역사상 가장 강력한 황제의 하나였던 당 태종이 법을 대한 태도를 보여주는 위 일화도 그런 반성에 도움이 되는 자료의 하나다. 퇴임을 몇 주일 앞두고 모든 방면의 반대를 무릅쓰며 "대통령의 고유 권한"을 행사하는 이명박, 측근의 사면을 위해 근신의 제스처라도 취하는 당 태종, 어느 쪽이 '법치'의 참된 정신에 가까운 것인가?

법치의 요건으로 형식적인 측면을 많이 이야기한다. 법이 군주의 전제 권력이 아닌 인민의 합의로 만들어져야 한다는 점. 법이 통치의 수단이 아니라 통치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점. 바람직한 '방향'일 수는 있다. 그러나 그런 형식적 요건으로 법치의 '실질'이 보장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명박의 사면권 행사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명박의 사면권을 뒷받침해 준 제반 법률은 국민을 대표하는 대한민국 국회에서 제정된 것이다. 그리고 이명박이 그 사면권을 행사할 수 있는 자리에 앉은 것도 국민의 합의 과정인 선거를 통해서였다. 법치의 형식적 요건에 아무런 하자가 없다. 그런데 그 행위가 법치의 훌륭한 실행이었다고 만족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사면을 받은 당사자 중에도 정당한 사면이 아니라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

법이 통치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에 나는 회의적이다. 물론 권력자가 법을 자의적으로 농단하고 유린하는 '무법' 상태를 막기 위해 법을 존중할 필요는 있다. 그러나 법의 권위를 절대화하는 것은 일종의 물신주의(fetishism)에 빠질 위험이 있다.

법을 통치의 주체로 삼는 원칙에 제일 철저했던 사례로 중국 전국 시대의 법가가 있었다. 상앙은 진나라에 법치주의 변법을 실시해 귀족의 견제를 물리치고 왕권을 절대화함으로써 부국강병의 길을 열어주었으나 엄격한 법률에 그 자신이 희생당했다는 일화를 남겼다. 진나라는 상앙의 변법을 발전시켜 시황제의 통일에 이르렀으나 결국 진나라를 무너뜨린 것도 지나친 법치주의였다. 시황제가 죽은 후 환관 조고가 권력을 농단할 때 그의 '지록위마(指鹿爲馬)'에 누구도 맞서지 못한 것은 그의 행위가 법률적 요건을 갖춘 것이기 때문이었다.

법가의 법치주의는 통치자에게 매력적인 도구였다. 한나라가 천하를 넘겨받은 뒤에도 법가를 중용한 자취는 (사기) '혹리열전(酷吏列傳)'에 여실히 나타나 있다. 사마천은 그 서문에서 "정(政)과 형(刑)으로 백성을 다스리면 이를 빠져나가는 사람들이 부끄러움을 모르게 되므로 덕(德)과 예(禮)로 다스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명박을 보고 한 말 같다.

당 태종에게 생각을 되돌려 본다. 태종이 죽은 4년 후인 653년에 반포된 [당률(唐律)]은 중국 법률 체계 발전의 획기적 사건이었다. 30권으로 이뤄진 방대한 내용은 태종 재위 중에 준비된 것이다. 5호16국, 남북조의 혼란기를 넘기고 다시 세워진 천하 제국의 법률 체계 확립은 태종의 중요한 과제였다. 쿠데타로 황제 자리를 차지했던 태종이지만, 안정된 천하질서 수립을 위해 힘껏 노력했던 것이다. 측근 사면을 위해 스스로에게 벌을 내린 것은 그런 마음에서였다.

과연 이명박은 측근을 사면하면서 태종만큼 자기 손해를 감수하는 것일까? 결과적으로는 태종보다 훨씬 더 큰 손해를 떠안을 것 같다. 대한민국 전직 대통령이 형사 책임을 추궁당한 예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쉬운 일이 아니다. 국가 체면도 있고 최소한의 '예우'란 것이 있지 않은가. 그런데 이명박은 이번 사면으로 그것을 훨씬 쉬운 일로 만들었다. '법대로' 사면권을 행사한 대통령이라면 혹 무슨 책임이라도 있을 때 '법대로' 추궁당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 아닌가.

안타까운 것은 자기가 어떤 손해를 떠안고 있는 것인지 그 자신이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면 받는 사람들도 그렇다. 죄가 확정된 범행에 대해서는 사면을 받지만 앞으로 새로 밝혀질 혐의가 아무것도 없을까? 이번에 사면을 행한 자나 받은 자가 앞으로 혹시 형사 책임을 추궁당하는 일이 있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좋아할까? 정권을 맡는 사람들도 간과할 수 없는 호재 아니겠는가.

많은 사람들을 우울하게 만든 이 일이 대한민국의 법치가 형식적 차원을 넘어 더 발전할 길을 열어줄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위안을 삼는다.


 /김기협 역사학자 

2012년 10월 1일 월요일

거짓말쟁이가 아니라면 박근혜도 피해자다


이글은 프레시안 2012-09-30일자 기사 '거짓말쟁이가 아니라면 박근혜도 피해자다'를 퍼왔습니다.
[김기협의 '페리스코프'] 한국사회 역사인식 ③ 가해자의 인식 결함과 피해자의 인식 결함

"나처럼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이것은 올바른 정치가의 할 말이 아니다. 쿠데타나 유신 아니라 어떤 일을 놓고라도 이런 말을 하는 정치인은 "참 나쁜 정치인"이다.

미국 공화당의 롬니 대통령후보가 동영상 때문에 곤욕을 치르고 있는 것을 보라. 지지자들 모임에서 말을 막하다가 들통이 났다. 민주당 지지자들은 세금도 안 내는 사람들이니 그 사람들 위해 정치할 생각이 없다고 했다. 세금 많이 내는 사람들끼리 뭉치자는 얘기다.

한 사회 안에는 온갖 분열의 소지가 있다. 분열을 방치하면 사회가 약화되고 구성원들이 모두 고통을 겪게 된다. 개인에 따라 적게 겪고 많이 겪는 차이가 있겠지만, 분열을 적정선에서 억제할 때보다 고통을 적게 겪을 사람은 거의 없다. 정부와 정치의 첫 번째 기능이 국가사회의 통합성을 지키는 것이다.

역사인식의 차이도 분열의 소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5.16과 유신을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도 많다.

온 국민을 섬기는 대통령 자리를 바라보는 사람이라면 분열을 해소하기 위해 애쓰는 것이 마땅한 일이다. 자신이 5.16과 유신의 긍정적 가치에 믿음을 가졌더라도 반대하는 사람들의 생각에서 받아들일 것이 없는지 고민해야 하고, 반대하는 이유에 허점이 있다고 생각되면 그 점을 설득하려 최선을 다해야 한다. 내 주장의 지지자도 많이 있으니 숫자로 붙어보자는 배짱은 국민을 섬길 생각 없이 권력만을 노리는 사람의 것이다.

박정희의 평가를 둘러싼 '국론 분열'은 일시적 현상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박정희를 비판적으로 본 국민은 1987년까지 아주 소수였다. 독재의 문제점에 대한 논의가 독재의 힘으로 막혀있었기 때문이다. 민주화 진행에 따라 비판적 시각이 점점 자라나 오늘에 이른 것이다. 아직도 상당수의 사람들이 박근혜처럼 생각하고 있는 것은 이 사회의 민주화 수준이 아직 미흡하기 때문이고, 그 수가 계속 줄어들 것이라고 내가 믿는 것은 이 사회의 민주주의가 계속 발전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박근혜처럼 생각하는' 주변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이 믿음이 굳어진다. 경기고나 서울대를 함께 다닌 친구와 선후배 중에는 이 사회에서 우월한 위치를 차지한 데 만족하고 우월한 위치를 잘 누릴 수 있는 특권구조를 지키고 싶은 마음에서 개발독재 시대의 세계관을 버리지 않는 사람이 많다. 인간을 이기적 존재로 규정하는 뉴라이트 사고방식이다.

그런데 경상도의 친척, 친지들 중에는 특권구조에 대한 집착이 없는데도 개발독재 시대에 주입된 세계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이들이 많다. 그들은 그 세계관이 무너지면 엄청난 혼란이 닥칠 것이라는 '두려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독재자들이 심어준 두려움이 아직도 남아있는 것이다. 이것이 억압체제의 '내면화' 흔적이다.

1945년 8월 15일, 천황의 항복 방송이 정오에 있었지만 사람들이 즉각 뛰쳐나와 만세를 부른 것이 아니었다는 증언이 있다. 오후 늦게 감옥 문이 열리자 비로소 군중이 길거리로 쏟아져 나왔다고 한다. (강준만 [한국현대사산책 1940년대 1] 29-30쪽) 환경 변화 앞에서 사람들은 눈치를 보게 되어 있다. 식민지시대 이래의 오랜 억압체제가 풀린 1987년 이후에도 사람들은 눈치를 살펴야 했다. 열악한 환경에 처해 있는 사람들, 그리고 변화의 감지가 늦은 사람들이 몰려 있는 구석에서는 눈치 보기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독재시대에 심어준 두려움에 아직도 짓눌리고 있는 그 사람들이 바로 독재체제의 최대 피해자다. 겉보기로는 이따금 공격적 태도 때문에 피해자보다 가해자로 보이는 사람도 있지만, 욕심이 아니라 두려움에 쫓긴다는 점에서 피해자다. 이런 두려움이 남아있다는 사실이 이 사회의 민주화가 아직도 미흡하다는 무엇보다 뚜렷한 징표다.

▲ 5.16과 유신, 인혁당 사건에 대해 사과하는 박근혜 후보 ⓒ뉴시스

어찌 보면 박근혜 자신에게도 피해자의 측면이 있다. 뉴라이트의 몇몇 사람은 식민지배와 독재정치의 나쁜 점을 뻔히 알면서도 정략적 이유로 억지소리를 하는 것 같다. 그런 것은 '역사의 왜곡'이다. 그런데 박근혜는 그가 서 있어 온 자리 때문에 5.16과 유신의 정당성을 진심으로 믿게 된 것 같다. 나는 그가 거짓말쟁이는 아니라고 믿는다.

피해자는 연민의 대상이다. 피해자에 대한 비판은 가혹한 짓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장기간에 걸친 억압의 피해자는 입었던 피해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의식의 치료가 필요하고, 치료를 위해서는 문제를 밝힐 필요가 있다.

박근혜가 개인의 운명 때문에 박정희 통치의 정당성에 대한 믿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 비난할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순(耳順) 나이의 그가 민주화에 따른 사회의 인식 변화를 따라갈 생각을 않고 "나처럼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고 뻗대는 것은 운명이 아니라 그의 의지에 달린 일이다. 개인으로서는 '역사인식의 결함' 정도 문제지만, 권력을 추구하는 정치인으로서는 '역사 왜곡'으로 넘어가고 있는 것이다.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는 칼로 무 자르듯 갈라지는 것이 아니다. 일제시대에 징용으로 남방에 가서 포로수용소에 근무한 조선인들, 그들은 일본 제국주의의 피해자였지만 포로들에게는 가해자였다. 베트남 전선에 끌려갔던 대한민국 군인들도 마찬가지다.

포로수용소의 조선인 중에는 험악한 조건 속에서도 인류애를 체현하여 미담을 남긴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대다수는 주어진 역할에 묶여 포로들의 눈에 일본의 주구로 비쳐지는 존재였다. 그들이 동원된 억압적 상황이 그들의 행동 모두를 면책시켜 주지 못한다.자기 몫의 반성을 제대로 하지 않고는 억압적 상황으로부터의 진정한 해탈을 바랄 수 없다.

더 넓은 범위의 피해자들도 이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4년 전 (뉴라이트 비판)을 쓸 때 이른바 진보진영의 지나친 독선이 뉴라이트 담론이 비집고 나올 틈새를 준다는 인상을 도처에서 받았다. 예컨대 '식민지착취론'에 식민 지배를 백퍼센트 나쁜 것이라고 주장하는 경향이 있어서 뉴라이트 논객들은 부분적 허점을 파고들며 그에 편승해서 '식민지근대화론'을 주장했던 것이다. 인간 세상에 백퍼센트 악마가 있다고 우기는 사람이 있으면 백퍼센트 천사가 있다고 우기는 사람도 나오기 마련이다.

박근혜를 둘러싼 이번 '역사논쟁'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나타난다. 박근혜의 역사인식을 비판하면서 민주당 정권이 백퍼센트 정당성을 가진 정권이었고, 따라서 이를 무너트린 쿠데타에는 티끌만큼의 정당성도 없었다고 하는 주장이 더러 나온다. 논란의 여지가 있는 문제를 놓고 여지가 없는 것처럼 우기면 그에 대한 반론이 힘을 얻게 된다.

민주당 정권을 대표하던 대통령 윤보선과 국무총리 장면이 쿠데타 상황에 임한 자세를 보라. 칠레의 아옌데처럼 정권을 지키려는 결연한 자세가 왜 민주당 정권에는 없었나? 윤보선과 장면의 4-19 이전 행적을 살펴보면 국가와 민족을 위해 생명은커녕 소소한 이익조차 내놓으려는 의지가 보이는 대목이 전연 없다. 그런 기회주의자들이 민주당 정권을 대표한 것이 우연한 일도 아니었다. 이승만 통치 아래 민주당의 성격 자체가 기회주의 정당이었다.

민주당의 당시 '구파'는 이승만의 분단건국을 거들었다가 권력을 충분히 나눠받지 못해서 야당으로 나선 한민당의 후신이었고, '신파' 역시 성향이 비슷한 사람들이 나중에 모여든 것이었다. 1950년대의 자유당과 민주당, 그리고 민주당의 구파와 신파는 정치이념에 별 차이 없이 같은 권력구조 안에서 이권을 놓고 경쟁하던 집단들이었다.

자유당과 민주당의 동질성은 1959년 조봉암의 '사법살인' 사건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1956년 대통령선거 도중 민주당의 신익희 후보가(이승만의 분단건국을 앞장서서 거들다가 후에 이승만에 맞서는 위치로 돌아서며 함께 임정 출신인 유림에게 협력을 청했을 때 "이승만의 기생첩 노릇 한 사람과 협력 못 한다"고 면박을 당했다고 한다.) 갑자기 죽은 후 민주당은 조봉암의 득표를 막기 위해 안 한 짓이 없었다.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는 조봉암을 찍느니 오히려 이승만을 찍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버젓이 나왔다.

1958년 초 조봉암이 체포되고부터 1959년 7월 처형당할 때까지 민주당은 이 사법살인을 저지하기 위한 아무런 노력도 보이지 않았다. 그 동안 민주당이 한 일은 자유당과 협력해서 제3당의 진입에 불리하도록 선거법을 고친 것이었다. 이념다운 이념을 들고 나오는 정치세력에 대한 경계심은 자유당이나 민주당이나 매한가지였다.

4.19 당시 민주당이 유일한 대안으로서 정권을 쥔 것은 제3세력이 철저히 박멸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민주당의 속성에 자유당과 큰 차이가 없었다고 보기 때문에 민주당 집권밖에 가져오지 못한 4-19는 '혁명'에 이르지 못한 '의거'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자유당과 민주당을 포괄하는 '1950년대 체제'를 척결했다는 점에서는 4.19보다 5.16에 혁명의 의미가 더 있었다. 민정 이양의 약속을 어긴 데서부터는 군사독재의 문제가 심각해지지만, 1961년 민주당 정권의 전복 자체에는 대한민국의 발전 기회를 만든 공로가 컸다. 그 죽음이 군사독재 폭력성의 상징으로 부각되고 있는 장준하를 비롯해 많은 민주주의자, 민족주의자들이 5.16 당시 거사를 지지했다. 5.16 쿠데타를 '백퍼센트' 잘못으로 규정하려 드는 데는 만만찮은 논란이 따를 것이다.

제1야당으로서 민주당의 긴 역사 속에는 독재의 피해자 못지않게 독재의 공범으로서 기회주의자의 모습이 많이 남아있다. 1956년 조봉암의 득표를 막으려 애쓰고 1959년 조봉암의 처형을 방관한 것은 독재에 대한 항거보다 제1야당의 이권을 지키는 것이 그들에게 더 중요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불임(不姙)정당'이 될 수 없다는 민주당 일각의 고집은 정권 교체를 바라기보다 제1야당의 위상을 더 아끼는 것처럼 보인다. 당선자, 아니면 차점자라도 만들어야 생산적인 정당인가? 생산적인 정당이 되려면 후보보다 정책 만드는 데 먼저 힘을 써야 한다. "못 살겠다, 갈아보자!" 수준의 구호로 차점자를 노리던 전통을 벗어나기 바란다.

이명박 정권의 엽기적 행태를 줄줄이 보고도 민심이 민주당으로 흔연히 모이지 않는 것은 민주당의 역사에 떳떳치 않게 보이는 것이 많아서다. 칼자루를 쥐고 있을 때가 많지 않은 덕분에 그 흠이 크게 드러나지 않아서 제1야당 자리를 아직까지 지키고 있지만 중도적 입장의 국민들에게 미덥게 보이지 않는 인상이 너무 많이 쌓여있다. 역사를 새로운 시각에서 성찰할 필요는 박근혜만이 아니라 민주당에게도 있다.

 /김기협 역사학자

2012년 5월 24일 목요일

김기협 식 ‘낭만적 종북주의’가 구당권파의 토양이다


이글은 미디어스 2012-05-23일자 기사 '김기협 식 ‘낭만적 종북주의’가 구당권파의 토양이다'를 퍼왔습니다.
낭만적인, 너무도 낭만적인 ‘그 종북주의’ 비판

어제 저녁부터 오늘 오전까지 프레시안의 탑에는 을 저술한 역사학자 김기협의 라는 글이 올라와 있었다. 부제는 “가짜 ‘종북주의자’는 가라!”다. 요즘 맥락에 대입해 본다면 경기동부연합의 ‘가짜 종북’을 규탄하고 우리가 긍정해야 할 ‘진짜 종북’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겠다는 것이 글의 의도라 여겨진다. (링크)

▲ 김기협의 해당 칼럼은 프레시안 TOP에 만 하루 동안이나 올라가 있었다.

처음에 기자는 이 글의 제목만 보고 순간적으로 ‘진성 주체사상파’의 커밍아웃인 줄 알았다. 기자가 아는 선배 운동권들의 전승에 의하면, ‘진성 주체사상파’들은 오직 북한에 있는 조선노동당만을 섬길 뿐 그 중간에 다른 당이 개입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래서 ‘강철서신’의 김영환도 민혁당을 못 마땅해하는 ‘꼴주사’들에게 시달렸고, 김일성이 친히 그 뒷방 늙은이들을 정리해 주기를 바랐건만 누구의 편도 들지 않는 걸 보고 ‘삐져서’ 변절했다고들 한다. 민혁당을 재건한 하영옥과 이석기 역시 ‘꼴주사’들의 비난을 받은 건 마찬가지였다 한다.
훗날 소련이 붕괴한 후 몇 년을 우왕좌왕하며 정신을 못 차리던 PD들이 혁명노선을 포기한 합법적 대중정당을 기획하고 ‘저 사람 좋고 활동성 좋은 NL 친구들’도 ‘대중운동을 하면 달라질 것’이라 믿고 합류를 권유했을 때, NL들은 국민승리21이나 민주노동당을 ‘합법적 대중정당’이 아니라 민혁당 대하듯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꼴주사’들의 시선에서라면 중간에 민주노동당이든 통합진보당이든 다른 매개를 도입하는 것이 ‘타락’의 증표일 수 있다. ‘타락한 주체사상파’들이 모여 민주노동당의 역사를 그들의 것으로 고쳐쓰고 그들의 오랜 숙원인 연립정부 건설을 위해 여러 세력을 그러모아 판돈을 키운 것이 오늘날의 통합진보당이다. 통합진보당에 속한 다른 정파들은 기분이 나쁘겠지만, 적어도 '진성 주체사상파'들의 시선에서는 그렇다.     물론 기자는 전승에 나오는 ‘진성 주체사상파’들이 아직 대한민국에 남아 있는지 여부를 모르고, 있다 해도 그 ‘사상’을 이유로 감옥에 가야 한다고는 믿지 않는다. 그리고 이석기 등이 과거 민혁당 활동을 했다 하여 오늘날에도 그들이 ‘혁신 주체사상파’라고 단언할 생각도 없다. 그 과거를 근거로 그들이 대한민국을 북한에 팔아넘길 거라 동네방네 떠들고 다니는 보수언론들의 주장에 동의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민혁당 활동에 대해 이미 처벌받았으며, 그래서 대한민국 법으로도 그 건에 대해 다시 처벌받을 수는 없는 상황이다. 다만 이석기가 사퇴를 거부하는 이유로 ‘30년 진보운동’을 운운할 때, 그가 말하는 운동의 역사가 민주노동당이나 그 전신인 국민승리21의 역사가 아니라 다른 어떤 연속된 운동의 역사를 말하는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할 따름이다.
‘낭만적 종북주의’가 어떻게 이석기를 숨기는가
여기서 기자가 김기협의 칼럼 논지와 ‘무관한’ 주체사상파들의 이야기를 한 이유가 드러난다. 그들의 과거 행적으로, 그들 조직의 목표를 추정하여 비판하는 것이 보수언론의 방식이다. 이런 비판에 영향 받을 이들도 한국 사회에 꽤 있겠으나 기자는 물론 통합진보당 지지층의 상당수는 이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19대 총선에서 10.3%, 220만표의 지지를 획득했던 통합진보당이 최근 여론조사에서 3%대까지 추락한 모습을 보인 것은 조중동의 보도 탓이 아니다.
아마도 김기협은 이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통합진보당이 지지층의 신뢰를 잃어버린 원인은 구당권파의 권력을 내려놓지 못하는 태도, 폭력으로 절차를 회피하려는 기동, 국민의 명령에 승복하지 못하는 자세에 있지 ‘종북주의’에 있지는 않다고 말할 것이다. 그리고 설령 사람들이 그 ‘종북주의’에 비판적일지라도, ‘진보진영’은 그 ‘상식적인 인식’을 넘어서야 한다고 볼 것이다. 그가 북한 핵개발과 3대세습 비판을 ‘상식적인 견해’로 바라보는 진중권의 인식의 한계(?)를 비판할 때 의도하는 바가 그것이다.
그러나 김기협의 견해는 구당권파가 대중의 질문에 답변하는 방식과 별반 다르지 않다. 대중은 조중동의 주장에 반신반의할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과거는 건너뛰고 현재에 관해 질문을 한다. “북한 핵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북한의 3대세습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북한 인권 문제가 있다고 보십니까, 없다고 보십니까?” 이에 대해 백분토론에 나온 이상규 당선자는 “질문이 잘못 되었다”고 말한다. 통합진보당 소속 정치인들의 상당수가 이런 식일 것이다. 그리고 김기협은 이것들을 ‘말도 안 되는 짓’으로 여기는 ‘진중권의 관점’에 “이 사회에서 스스로 깨어 있다고 자부하는 이들도 많이 동조하기 때문에 걱정스”럽다고 말한다. 그리고 기자는 일반적인 대중은 물론 통합진보당의 지지층도 이 견해에 동의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사태가 어떤 식으로든 수습된다 하더라도 통합진보당은 올해 대선 정국 내내 보수언론의 꽃놀이패, 야권연대의 ‘약한 고리’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기자의 예측이다.
통합진보당 구당권파는 이런 문제에 대해 “질문에 답변할 수 없으며, 그런 질문 자체가 냉전적 사고방식을 드러내는 것이다”라고만 얘기해도 진보진영 내에 지지해줄 사람들이 제법 있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안다. 그래서 대중 앞에서 여전히 그런 태도를 견지할 수 있고, 그 결과  통합진보당은 물론 진보세력 전체를 고립시키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문제의 핵심은 보수언론이 연일 때려대는 이석기의 민혁당 경력과 김재연의 시댁의 부유함이 아니다. 오히려 문제가 되는 건 그들이 가진 현재의 정치적 견해를 비호하는, 김기협이 ‘커밍아웃’과 궐기를 촉구하는 ‘그 종북주의’, ‘낭만적 종북주의’다. 진보진영이 이 견해가 ‘상식 이하’의 것이 아니라 ‘상식 이상’의 것이라 믿는 한, 진보언론의 NL 비판에도 한계가 있고 진보지식인들 역시 언제든지 '통일운동의 동지'들을 품으라고 진보진영과 시민사회 세력에게 요구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경우 한국의 진보진영은 흡사 서민에게 "노동(문제 해결을 위한 우리의 노력)과 함께 친북(적 태도)을 함께 받든지, 아니면 북한 욕하며 비참하게 살든지"란 식의 '베팅'을 거는 '타짜질'을 하는 상황을 넘어설 수 없다. 

▲ 22일자 <100분 토론>에서 한 시민 논객은 이상규 당선인을 향해 '북한 3대 세습, 북한 핵개발 그리고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대답'을 요구했다. 이에 이 당선인은 장광설을 늘어놓으며, 대답을 유예했다. 진보진영은 언제까지 이런 문제에 대한 대답회피를 옹호할 것인가.

김기협이 ‘상식’을 회피하는 몇 가지 논거에 대한 답변
김기협은 칼럼에서 “핵 개발이나 3대 세습을 '말도 안 되는 짓'으로 여기는 진중권의 관점”을 비판하기 위해 다양한 논거를 두서없이 늘어놓는데, 이를 요약한다면 다음과 같다.
첫째, 사람 행동은 형편에 따라가는 면이 있다. 형편 때문에 좋아하지 않는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은 누구에게나 발생하는데, 그럼에도 어느 범위의 나쁜 짓은 결코 해서는 안 된다. 가령 연평도 포격 같은 문제가 그렇다. 그러나 핵개발엔 이보다 훨씬 더 복잡한 함의가 있고, 국가 권력 세습은 그보다도 더 의미가 복잡하다.
둘째, 형편이 어려워서 어떤 일을 할 때엔 그 행위를 금지하는 외과적 방법과 형편을 낫게 해주는 내과적 방법이 있다. 이중에서 우리가 취해야 할 것은 내과적 방법이다.
셋째, 개인의 파편화를 더욱 심화하는 경제적 세계화가 인류를 불행하게 만들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민족적 정체성이 중요하다. 민족적 정체성이 확립되어야 정치적 세계화, 세계정부의 기반도 놓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민족 문제 해결은 경제성장이나 민주주의 발전보다 더 중요하고, 분단문제 역시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
넷째, 우리는 북한의 사정을 충분히 알지 못하고 있다.
다섯째, 남한 역시 불과 30여년 전에 핵 개발과 1인 종신 독재를 시도했다(박정희). 지금 북한 형편이 그때 남한이랑 비슷한데, 잘 되도록 도와줘야지 손가락질 하는 것은 오만이다.
첫째 논거를 들으면 우리는 김기협이 북한 핵개발과 국가권력 세습에 관한 그 복잡한 함의에 대해 대략적으라도 설명해줄 것으로, 그리하여 북한 체제에 대한 이해를 높여줄 것으로 기대하게 된다. 그런데 글을 아무리 뒤져봐도 그런 설명은 없다. 그래서 우리는 왜 이 두 사안이 연평도 포격과 구별되어야 하는지를 이 글만 보면 납득할 수 없다.
둘째 논거와 다섯째 논거는 겹친다. 그런데 박정희 시대에는 껍질이라도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있어서 민주화 운동도 가능했고 김영삼과 김대중 같은 정치인의 활동도 가능했다. 그리고 그 당시 국제사회에서 모든 ‘외과적 방법’을 포기했다면, 김대중의 생존도 보장받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김기협의 구별이 두 사안에 대한 비판을 부적절한 것으로 치부할 수 있는 효력을 가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또 남한의 정치인이나 정치세력이 핵개발이나 3대세습에 의견을 표시하는 것이 북한에 무슨 큰 압력을 행사할 수 있다 보기 어렵기에 그게 과연 ‘외과적 방법’을 추구하는 것인지도 의문이다. 지금 유권자들이 진보정치에 요구하는 것은 북한에 침투해서 체제를 무너뜨리거나 바꾸어내라는 것이 아니라 “진보정치는 남한 사회를 북한 사회처럼 만들려고 한다”는 보수세력의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는 점을 확인해 달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점도 확인을 못 해주겠다고 버티는 이들을 보고, 보수세력의 주장이 사실이라 믿게 되거나 기왕에 바쳤던 ‘지지’까지 철회하게 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 아닌가? 

▲ 리얼미터 여론조사 결과로 드러난 통합진보당의 지지율 하락추이. 최근 어떤 조사에서는 3%대까지 하락했다고 알려졌다.

민족 문제에 대한 극단적인 집착이 문제다 
네 번째 논거는 자승자박이다. 김기협은 적어도 북한의 형편이 매우 어렵다는 것과 북한 핵개발과 3대세습에 모종의 사정이 얽혀 있다는 것을 전제로 글을 쓰고 있다. 북한에 대해 얘기하는 대부분의 사람들 역시 자신이 전지전능하다고 주장하는 법이 없고, 우리에게 드러난 것들을 보고 얘기한다. 다만 NL 계열 대학생들과 토론을 하다 보면 UN이나 시민사회단체 쪽에서 나온 정보들까지 ‘미국’에서 나온 것이라 믿을 수 없다고 반응하는 경우가 많았다. 아는 만큼 얘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미 알려질 만큼 알려진 사실을 없다고 우기거나 함의를 왜곡하려고 하는 것도 문제다. 가령 탈북자 얘기를 하는데 그들이 북한 내 사회부적응자에 불과하다든지 남한의 이민이 훨씬 더 많다든지 하는 식으로 반응을 하면 토론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김기협은 그런 이들이라도 우리 사회에 늘어나는 게 더 좋다고 믿는 듯한데, 그 이유를 제시하는 것이 세 번째 논거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민족 문제가 대단히 중요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려면 통일이 이루어져야 하며 그 통일은 평화통일이어야 하기에 북한에 거스르지 않는 말을 하는 관용적인 사람이 훨씬 더 늘어나야 한다는 견해다. 그리고 그 ‘관용’이 어느 정도 관용이냐 하면, 핵개발이나 3대세습에 대한 입장표명도 금지하는 수준의 관용(!)이다.
이런 주장은 민족 문제가 아무리 중요하다 하더라도 납득하기 어렵지만, 그 이전에 김기협이 내세운 ‘민족 문제가 중요한 이유’라는게 망상적이라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개인의 파편화’ 문제와 ‘민족적 정체성’ 문제는 큰 관련이 없다. 따라서 개인의 파편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통일을 해야 한다는 얘기도 청년실업을 해결하기 위해 4대강을 파야 한다는 얘기만큼이나 뜬금없이 ‘안드로메다로 가는’ 소리일 뿐이다.
집단주의와 민족주의가 팽배한 한국 사회에 오히려 소규모 지역공동체가 모조리 파괴되다 시피하여 개인이 파편화된 상태로 남아 있으며, 개인주의가 팽배하고 민족주의를 극우 이념으로 취급하는 유럽 사회가 이 점에 대해서는 한국보다 훨씬 양호한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임대주택이 적고 부동산 가격이 계속 상승하여 사람들이 끊임없이 이사를 가야 하는 사회현실을 놓아두고, 남북교류가 늘어나고 통일이 일어나면 개인이 사회적인 연대의식을 회복할 수 있다고 말할 셈인가. 결국 개인의 파편화 문제를 해결하려면 어떤 종류의 사회경제적 조건이 보장되어야 한다. 또한 지방권력을 창출하는데 시민들 스스로 참여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지는 민주주의의 진전이 필요하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민족문제가 경제문제나 민주주의 문제보다 더 중요하기는커녕, 그 반대인 셈이다.
또 설령 정치적 세계화의 시대에 코스모폴리탄으로 부유하지 않고 ‘정체성’을 확실히 세워야 한다는 주장이 일말의 일리가 있다 하더라도, 그 ‘정체성’이 왜 남북한을 포괄해야 하는지에 대해 김기협은 어떠한 설명도 할 수 없다. ‘민족적 정체성’은 인종적·문화적·언어적 유사성에서 자동적·필연적으로 도출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의 것이기 때문이다. 김기협의 주장대로라면 북한 당국은 이미 정치적 세계화에 대한 모든 대비를 마쳤다. 그들은 자신들을 ‘김일성 민족’이라 칭하고 있고 그것이야말로 3대세습의 중요한 근거다.
물론 이 정체성은 ‘단군 조선 이래 삼천리 강산을 포괄하는 4천년 단일민족’이란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결단코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겠다. 하지만 3대세습도 비판해서는 안 된다는 이들이 ‘김일성 민족’과 ‘대한국민’을 한데 그러모으면 자동적으로 ‘단군 조선 이래 삼천리 강산을 포괄하는 4천년 단일민족’이란 정체성이 회복될 거라 믿는 것은 매우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박정희나 박종흥이 믿었던 것처럼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띄고 이 땅에 태어”난 건 아니기 때문에, 무작정 그러모아도 그런 정체성은 “안 생겨요”라고 답변드릴 수밖에 없다.  
가져다붙이는 이유는 제각각이지만 NL의 주장을 지지·옹호하는 이들은 민족 문제를 극단적으로 중시하며 심지어 사회 문제의 최종 심급에 놓는다. 2007년 당시 민주노동당의 다수파가 된 NL진영에서 '코리아 연방공화국'을 '국가비전'으로 내세우려 시도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지금은 투병 중인 경기동부연합의 실세 중의 실세이며 그 당시 대선 정책개발단장이었던 이용대의 말을 들어보자.
코리아 연방은 단순히 통일정책이 아니라 민주노동당 말고는 그 어느 당도 낼 수 없고 동의할 수 없는 민주노동당만의 국가대안이라는 성격을 지닌다. (...) 민주노동당이 집권하면 나라가 바뀐다! 대한민국 시대가 끝나고 '코리아 연방' 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 비정규직, 한미FTA로 민중의 생존이 벼랑에서 고통받는 나라가 아니라 민중이 잘사는 나라, 일자리 걱정 없는 나라, 서민이 행복한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그 나라가 코리아 연방이다. 
그러나 가령 비정규직 문제 같은 것들엔 별도의 대처가 필요하지 통일을 통해 해소될 수 없다. 남한의 사회경제 구조를 그대로 둔 채 통일을 한다면 통일한국 내에서 북한 인민들의 미래엔 경제적으로는 예비된 비정규직, 문화적으로는 차별받는 2등국민이 남아 있을 뿐이다. 오히려 보수주의자들이라면 “그러한 위치라도 ‘왕조국가 김씨 조선’의 신민보다는 낫지 않느냐”라고 반문할 수 있을 게다. 하지만 진보주의자들이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통일이 모든 문제를 해결한다는 망상은 이렇게 극과 극의 지점에서 통한다.

▲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15번 황선 후보의 리플렛의 정책부분. 남북 교류가 사회경제적 문제의 최종적 해법으로 제시되어 있고 복지예산 역시 이를 통해 충당한다고 되어 있다. 이 777 공약은 2007년 대선 이명박 대통령의 747 공약을 뛰어넘는 '패기'를 보여준다. 그러나 사회문제에 대한 이런 방식의 접근은 'NL출신'들의 '속내'를 보여준다는 시선이 많다.

북한 핵문제에 대한 다른 시선
마지막으로 김기협이 언급을 회피한 북한 핵문제와 3대세습 문제에 대한 맥락과 함의를 한 번 더 짚어보자. 김기협의 말처럼 “핵 개발은 평화를 위협하는 짓이고 3대 세습은 민주주의 원리에 벗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착한 사람들에게 나쁜 짓으로 보”일 뿐, 함의를 따져보면 달리 볼 소지가 있는지를 간략히 살펴보자는 것이다.
어떤 측면에서 보자면 북한 핵문제는 남한 사람보다는 일본이나 미국 사람에게 더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북한 핵문제의 핵심은 북한이 체제의 안정을 보장받기 위해 ‘인질’의 숫자를 늘리려고 한다는 것인데, 남한 사람은 북핵이나 미사일이 등장하기도 전에 이미 ‘인질’로 붙들려 있는 상태로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차라리 그런 이유로 북한 핵문제가 우리에게 심각한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면 납득이나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렇게 말하려면 한반도에 전쟁이 날 경우 우리는 어차피 패배하고 죽게 될 테니 세상이 방사능에 물들건 말건 내 알 바 아니라는 허무주의적 관점과, ‘이왕 나도 인질인 거 남들도 다 인질이었으면 좋겠다’는 비윤리적 태도를 가져야 하겠지만 말이다. 개인사의 세계에서 이런 얘기를 하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누구나 다 걱정스럽게 그가 ‘스톡홀름 콤플렉스’에 빠져 있다고 진단할 것이다. 
북한 정권은 일단 북한 사람을 인질로 잡고 있고, 한반도의 전쟁 발발 가능성을 통해 사실상 남한 사람도 인질로 잡고 있다. 그리고 이 인질의 범위를 확대하는 것이 체제 안정에 기여한다 생각한다. 핵개발과 미사일 개발은 그런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굳이 종북주의자들이 설명해 주지 않아도 남한 사람들 역시 적어도 직관적으로는 이해하는 영역이다. 보수 언론의 보도의 문제는 또 다르지만, 사실 북한이 미사일 실험을 할 때 공포를 느끼는 것은 대체로 일본 사람이지 한국 사람은 아니다. ‘진정한 종북주의자’라면 미제국주의에 대항하는 유일한 해방구인 북한이 곧 핵개발을 완수하여 미제의 항복선언을 받아들이는 날이 올 거라고 믿을 것이다. 남한의 희생 따위는 그 대의를 위한 투쟁에서 파생되는 곁가지로 취급될 것이다. 그러나 ‘온정적인 종북주의자’는 그런 망상적 태도는 버리는 대신 가난한 북한이 같은 핵시설을 미국에 세 번씩 팔아먹는 행위를 이해해야 한다고 말할 것이다.
이를 김기협은 ‘형편이 어려워서 하는 일’이라 요약하고 북한 형편이 어려운 데엔 남한 책임도 있다고 말한다. 그가 연평도 포격과 북한 핵개발을 구별하는 것을 개인사 버전으로 바꾸어 보자면, 형편이 어려워도 강도질을 하면 안 되지만, 인신매매나 유괴를 하는 건 이해할 만하다고 말하는 수준이다. 실제로 때리거나 죽이기 전에는 말이다. 말하자면 이런 식이다.
“오빠 믿지? 오빠가 지금 네 목에 칼을 대고 있는 건 너를 헤치기 위함이 아니고 우리 모두를 괴롭히는 저 미제 아저씨에게 삥을 뜯어 ‘우리 민족끼리’라는 외딴 섬에 가서 함께 행복하게 살기 위해선거 알고 있지?”
믿는 건 좋지만 남들에게 강요는 하지 말았으면 한다.
3대세습과 북한 인권문제를 바라보는 보수와 진보

▲ 김정은은 '김일성 민족'을 통치하기 위해 할아버지의 일거수 일투족을 모방하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연합뉴스

김기협이 말한 대로 3대세습 문제는 핵문제보다도 더 복잡하다. 사실 주변국들도 내심 3대세습이 성공하기를 바랐을 수도 있다. 현재 북한의 실정에서 그 외의 대안을 생각하기 힘들고, 3대세습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북한이 일종의 권력투쟁 상황에 들어가 예측할 수 없는 무력충돌의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지난 세월 동안 북한 정권은 제 나라의 체제를 태양신의 자손이 통치하는 신성왕국처럼 만들어 왔다. 오히려 위기를 관리해야 하는 보수진영의 입장에서 3대세습과 인권문제가 꺼내기 부담스러운 주제가 될 수도 있다.
김기협은 “국가 권력의 혈연 세습은 인류 사회의 보편적 현상이었다. 민주공화제가 군주제를 널리 대치한 것은 20세기에 일어난 일이다. 그리고 민주 정치다운 민주 정치가 작동하고 있는 곳은 지금도 많지 않다”라고 설명한다. 역사학자의 이러한 관점, 존중할 수 있다. 그러나 진화심리학자나 역사학자들이 이러한 이유로 이재용의 삼성 승계를 정당화할 때 우리가 뭐라고 말해야 할지를 한 번 떠올려보자. 아마 “누가 세습 자체를 금지시키자 그랬나. 제 아들에게 물려주려면 세금이나 다 내라 그래라. 그걸 피하니 문제지” 정도가 적절한 대응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에 대해서도 우리가 할 말은 “누가 아니라 했나? 인민이나 굶기지 말라고 그래라. 그리고 저걸 보고 사회주의 체제라 믿는 잡것들도 정신 좀 챙기고” 정도가 될 것이다.
남한 사회에서 오히려 보수세력들이 ‘보수적으로’ 위기를 관리하려고 하기 보다 현존하는 북한 정권을 부정하고 무너뜨려야 한다는 태도를 취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것이 진보세력에 대한 공세를 강화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보수세력은 진보세력이 북한 사회를 이상향 내지 사회변혁의 지향으로 여긴다는 ‘혐의’를 가지고 있다. 3대세습이나 인권문제에 대해 말해보라는 것은 그 ‘혐의’를 시민들에게 납득시키기 위한 정치기동이다. 이에 대해 진보세력은 수세적인 대응을 해왔다. 가령 탈북자 문제에 있어 자유선진당 박선영 의원처럼 문제를 시끄럽게 만들면 오히려 탈북자들의 목숨을 담보하기 힘들다고 말하는 것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그런데 3대세습에 대해 정치세력이 견해를 표명하는 것이 누구를 죽이는 일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런데도 답변을 회피한다.
그리고 구당권파는 이러한 질문이 ‘양심의 자유’의 침해이기 때문에 잘못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은 답변을 회피하면서 충분히 ‘양심의 자유’를 누리고 있다. 진중권이 지적했듯 유권자가 정치인에게 정치적 견해를 물어보는 것은 그들의 권리에 해당한다. 물론 ‘침묵’ 역시 이에 대한 답변일 수 있지만, 그렇다면 유권자가 그 침묵을 근거로 지지를 철회하는 것 역시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김기협이 북한 사회를 이해해 보려 하듯 남한 사회를 살펴본다면, 평범한 시민들이 진보진영의 다른 문제제기엔 공감하더라도 북한 문제에 대한 부족한 태도 때문에 그들을 비토하는 상황은 충분히 이해할만 하다.
‘낭만적 종북주의’가 애써 회피하려고 하는 부분은 그 지점이다. 그리고 지금껏 ‘낭만적 종북주의’가 진보 담론 내에서 주류 담론까지는 아니더라도 상당한 지분과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최근 백일 하에 들어난 구당권파의 패권주의적 태도가 온정주의와 편의주의 속에 지금까지 묵인된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장담컨대 김기협이 천명한 ‘진짜 종북주의’. ‘그 낭만적 종북주의’야말로 경기동부연합이 진보정당 운동을 농단할 수 있게 한 비옥한 토양이다.
그러나 상황은 변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진보'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그런 것은 '진보'가 아니라 말하기 시작했다. 애정이 적은 이들은 비웃으며, 관심이 더 많은 이들은 분노하며 그리 말한다. 그런데도 진보언론과 지식인들이 구당권파의 권력욕에 돌을 던지면서 이 문제를 비켜간다면, 이번 대선만이 문제가 아니라 그간 역사 속에서 어떻게든 영향력을 확장해 온 진보담론의 생존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 올 수 있다.

한윤형 기자  |  ahriman@mediau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