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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월 16일 수요일

KAL기 실종자 가족회장 “분하고 원통하다”


이글은 미디어스 2013-01-15일자기사 'KAL기 실종자 가족회장 “분하고 원통하다”'를 퍼왔습니다.
[긴급인터뷰] “가해자 특별대담? 우리한텐 연락도 안해”

15일 저녁 MBC가 (100분 토론) 대신 (특집대담-마유미의 삶, 김현희의 고백)을 긴급 편성한 가운데, KAL기 폭파사건 실종자 가족들은 “분하고 원통한 감정은 어디 가서 말도 못 한다”며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 KAL기 폭파 사건 피해자 유가족 모임인 KAL기 실종자 가족회의 차옥정 회장은 여전히 의혹이 많은데도 유가족들의 이야기는 들어주지 않는 정부와 언론에 대한 원망을 토로했다. 사진은 지난 2006년 1월 17일 KAL기 실종자 가족회와 KAL858기 사건진상규명 시민대책위원회가 기자회견을 열어 진상규명을 위한 책임 있는 해명을 촉구하는 모습 ⓒ오마이뉴스

차옥정 KAL기 실종자 가족회 회장은 15일 (미디어스)와의 인터뷰에서 MBC의 김현희 특별대담에 대해 “말이 안 된다”며 “우리 피해자들이 있는데 가해자만 불러 맨날 (방송)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지 않나”라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 들어 김현희 씨는 TV조선 등 종편과 주요 보수언론에 출연하며 활발한 행보를 보였다. 하지만 유가족들의 이야기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었다. 차옥정 회장은 “(오늘도) 유가족들한테는 전혀 연락하지 않았다”며 “언제나 그렇듯 가족들은 안중에 없다”고 담담히 말했다.
차옥정 회장은 KAL기 폭파 사건을 언급하면서 목소리가 높아졌다. 차옥정 회장은 “26년째 이렇게 싸우고 있는데 정부는 우리들한테 전화 한 통화 건 적이 없다”며 “가족 입장에서는 분해서 펄펄 뛸 정도”라고 전했다. 차옥정 회장은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사리판단을 전혀 못한다. 정부에서 그렇게 나오니 다 현혹돼서 따라간다”며 정부에 대한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다.
또한, 차옥정 회장은 (마유미의 삶)을 긴급 편성한 MBC에 대해 원망을 표했다. MBC는 지난 2003년 (PD수첩)에서 KAL기 폭파 사건에 의혹을 제기하는 유가족들의 입장을 담은 ‘16년간의 의혹, KAL 폭파범 김현희의 진실’편(2003년 11월 18일)을 방영한 바 있다. 하지만 지난해 MBC 대주주 방송문화진흥회의 정부 여당측 이사들이 ‘편파방송’이라고 반발하자, MBC는  ‘긴급 편성’까지 해 이번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당시(‘PD수첩’ 취재 시)에는 MBC가 많은 힘이 돼 줬다. 우리의 말도 잘 들어주고. 그런데 이번에 1시간 넘게 그걸(특별대담을) 한다니 가족 입장에서는 분해가지고 펄펄 뛸 정도다. 물증도 하나 없이 국적도 모르는 사람을 데리고 얘기를 한다니…. MBC, 괜찮은 방송인 줄 알았는데…왜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다. MBC 사장이 뭐 어떻게 됐나 보다.”
KAL기 실종자 가족회는 15일 성명을 내고 △김현희는 지난해 가족회가 요구한 공개 토론회에 응할 것 △MBC는 대담 프로그램 방영을 중단할 것 △인수위는 MBC에 대담프로 편성 중단을 요청해 국민행복시대 의지를 행동으로 보일 것 등을 요구했다.
차옥정 회장은 “나라에서 국록을 먹고 예산을 쓰는 사람들이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라며 “피해자가 누군데… 미치겠다. 대한민국에서 살기가 힘들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면서 차옥정 회장은 “우리 가족들은 진상규명을 제대로 하지 않는 이상 아무것도 용납하지 않겠다”며 “김현희가 아니라 대한민국을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수정 기자  |  poorenbyul@mediaus.co.kr

2012년 10월 10일 수요일

성폭행에 자매 자살, 충격 못이긴 父까지…비극


이글은 노컷뉴스 2012-10-10일자 기사 '성폭행에 자매 자살, 충격 못이긴 父까지…비극'을 퍼왔습니다.
자살한 성폭행 피해자, 가해자 협박에 못이겨 고소 취하한 것성폭행범 실형 비율 10% 미만엑스트라, 불안한 신분 때문에 엑스트라 반장 영향력 아래 놓여보조 출연자 임금체불율 45%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 방 송 : FM 98.1 (18:00~20:00)■ 방송일 : 2012년 10월 9일 (화) 오후 7시 45분■ 진 행 : 정관용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 출 연 : 민주통합당 최민희 의원

▶정관용> 전면 재조사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한 민주통합당 최민희 의원께 말씀을 좀 들어야겠습니다. 어머니가 너무 또 충격도 많으시고 해서 정확하게 지금 기억 못하시는 것도 많은 것 같은데요. 최민희 의원, 안녕하세요?▷최민희> 예, 안녕하세요?

▶정관용> 이 사건 언제 어떻게 알게 되셨어요?▷최민희> 일단 제가 알게 된 것은 한 종편 방송에서 이것을 방영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것을, 이런 이야기를, 보조 출연자 박희석 씨 문제를 같이 해결하면서 이런 일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래서 이제 그 종편에서 이 방송을 했을 때 아, 저거는 충분히 개연성이 있는 일이고 너무나 억울한 일이더라고요. 그래서 이렇게 파헤쳐보게 되었지요.

▶정관용> 지금 조금 아까 어머니께 말씀 들으니까 아르바이트 하던 도중에 성폭행 당하고, 그때부터 정신 약간 이상 상태가 오고, 그래서 조금 치료가 된 다음에 이제 경찰에 고발을 했는데, 그때 수사기록 같은 것 혹시 보셨나요?▷최민희> 수사기록 요청했는데 아직 안 왔습니다. 요청해서 받아내겠습니다.

▶정관용> 그런데 어떻게 해서 그때 무혐의가 되었는지 혹시 그 정황은 잘 모르세요?▷최민희> 그게 무혐의가 아니고요, 이제 수사를 했는데, 아까 어머니 말씀대로 극심한 협박을 받은 정황을 말씀하시잖아요.

▶정관용> 협박?▷최민희> 그러니까 피해자가 가해자들로부터 지속적인 협박을 당했고요, 그리고 이제 수사를 하면서도 기본적인 피해자 인권보호 조치를 하나도 안 하고 한 거예요. 그러니까 바로 옆방에서 막 이렇게 조사를 하고, 그러니까 피해자가 무슨 말을 하는 지를 가해자가 다 듣고. 그러면 다시 가해자가 피해자에 대해서 협박하고. 그래서 견디다 못한 피해자가 고소를 취하해서 종결된 겁니다.

▶정관용> 고소 취하했어요?▷최민희> 예. 

▶정관용> 수사과정에서 피해자의 인권이나 이런 것을 제대로 보호 못했다, 라고 하는 것은 기록에 다 남아 있습니까?▷최민희> 예, 그것은 일단 저희가 경찰 기록을 받아봐야 되고요. 이 부분은 이제 이 자매와 가까이 있던 친구가 있어요. 중간에 매개해주시는. 그분한테서 이제 다 전해들은 이야기이고요. 그런데 이제 저희가 이게 개연성이 있고 그럴 거다, 라고 생각하는 것은요, 성폭행 관련 모든 사건이 이렇게 진행이 됩니다.

▶정관용> 그래요?▷최민희> 그러니까 피해자들은 일차적으로 성폭행을 당해요. 그러면 이 성폭행을 당한 정서적인 고통에 시달리는데, 가해자가 대개 주변을 떠돌면서 피해자를 감시하지요. 그리고 이게 경찰로 가게 되면 경찰은 이것을 개인 간의 문제로 치부해버리거나...

▶정관용> 저런...▷최민희> 여성에게 문제를 돌려요. 아직 인식이 안 되어 있는 거예요. 그리고 경찰 조사과정에서 조금 아까 말씀드린 그런 보호를 받지 못하다보니... 뿐만 아니라 성폭행 관련 기소율은, 뭐 기소율이 굉장히 낮고, 그리고 기소되어도 그게 실형을 받는 비율이 10% 미만입니다.

▶정관용> 이게 8년 전이라고 그렇습니까, 지금, 요즘도 그래요?▷최민희> 요즘도 이런 일이 있습니다. 최근에 이제 우리가 성폭행 문제에 대해서 굉장히 경각심이 높아지고, 국회에서 성폭력 대책특위가 만들어지면 좀 달라질 것 같지만, 사실은 반짝하고 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그렇게 하지 않고 정말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정관용> 이렇게 당하고 경찰 수사에서도 제대로 보호를 못 받고, 뭐 고소를 취하하는 형식으로 끝났고, 그 후에 이제 자살을 한 것 아니겠습니까?▷최민희> 그렇지요. 그래서 언니가 자살을 했고, 그리고 나니까 동생이 언니를 이제 보조 출연자 하자고 한 거잖아요.

▶정관용> 그렇지요.▷최민희> 그러니까 견디다 못한 동생이 또 자살을 했고요.

▶정관용> 아이고.▷최민희> 그리고 자매 두 명이 자살을 하니까 아버지가 충격을 받아서 뇌경색으로 쓰러져서 또 돌아가신 거예요. 그러니까 이제 저희가 이것 하면서 경찰의 기록을 계속 받으려고 하는 것은, 지금 어머니가 너무나 심리적 충격이 크시잖아요.

▶정관용> 예, 말씀을 잘 못하실 정도로.▷최민희> 그래서 사실은 기초적인 사실파악이 어렵긴 해요. 그래서 경찰 조사서나 이런 것을 받으려고 애를 쓰고 있는 상태인 것이지요.

▶정관용> 그런데 현행법상 이렇게 고소 취하 형식으로 수사가 끝난 것을 다시 재조사하는 게 가능합니까?▷최민희> 일단 제일 큰 문제, 저희가 걸린 문제는 이 성폭행 사건이 2004년에 일어났잖아요. 그런데 성폭행 관련 범죄의 공소시효가 5년이에요. 그런데 이제 이 사람이 자살한 시점은 2009년이거든요. 그러니까 저희는 추정컨대, 추적하면 단지 성폭행뿐만 아니고 이후에도 지속적인 가해가 있지 않았겠냐, 하고 추정해보는 거지요.

▶정관용> 아, 2009년에 이르기까지? ▷최민희> 예, 그러니까 2004년에서 2009년까지 버티다가 자살한 건, 그 사이에 잘 이렇게 돌봄을 받았으면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안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이렇게 생각이 드네요.

▶정관용> 그리고 지금 일부 보도에 보면, 당시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들이 아직도 보조 출연자 업체에서 근무를 하고 있다면서요? ▷최민희> 예, 그러니까 지금 성폭행을 직접 한 사람은 4명이다, 이렇게 지목되고 있고요. 나머지 8~9명 정도는 성추행을 했다, 이렇게 이제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13명 중에 6명이 바로 그 자리에서 같은 일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정관용> 지금도?▷최민희> 예, 그래서 보조 출연자를 관리하는 관리자로 있다고 합니다.

▶정관용> 그리고 최민희 의원 조금 아까 처음 말씀 시작하실 때 보조 출연자들에게 이런 일들이 많다, 라고 들었다고 하셨잖아요. 실제로 그런가요?▷최민희> 그러니까 그건 듣는 거기 때문에 제가 뭐 그렇다, 안 그렇다, 이렇게 말하는 게 또 사실이 아닐 수 있지만, 여러 가지 정황상으로 볼 때, 이게 이제 일 자체가 이게 뭐 일의 조건이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을 것 같고요.

▶정관용> 그러니까 뭐 지방에서 촬영이 이루어진다든지 또 야외 촬영, 밤샘 촬영이 많다든지 이런 것 말입니까?▷최민희> 그런 것도 한 조건이 될 것 같아요.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보조 출연자들의 신분이 불안하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지금 이 자매도 이제 아르바이트를 해보자, 돈을 벌어보자, 이렇게 가는 거잖아요.

▶정관용> 그렇지요.▷최민희> 그런데 이제 보조 출연자를 진짜 밥벌이로 하는 분들도 많이 있지 않을까요? 그러면 이분들이 근로자로서 인정을 받고 있지 못하다 보니까 노동권의 보호를 받지 못해요. 그러니까 예를 들면 뭐 관리자, 엑스트라 반장이라고 이야기하는 분들이 대개 이제 영향력을 크게 받게 되겠지요. 그래서 저는 여러 가지 밤일이라든지 지방촬영의 조건도 한 이유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보조 출연자들의 사회적 신분이 너무 열악하고, 그로 인해서 그 일 자체를 지속하기 어려운 조건, 이게 더 큰 문제가 아닌가, 이렇게 생각이 들어요.

▶정관용> 전형적인 비정규직이라고 봐야 되지요?▷최민희> 비정규직은 나름대로 노동자로서는 인정을 받잖아요.

▶정관용> 그런데 그것도 안 된다?▷최민희> 예, 이번에 박희석 씨 돌아가셨는데, 그 이후에 이제 제가 같이 뭐 같이 이렇게 해보면, 이분들은 근로자가 아니기 때문에 산재 인정도 못 받는 상태였어요. 그리고 이분들이 어떤 경우 자영업자처럼 취급을 받더라고요.

▶정관용> 자영업자로요?▷최민희> 예, 그러니까 그냥 개인사업자처럼. 그러니까 법의 보호를 못 받고 있는 거지요. 

▶정관용> 그렇군요. 몇 번 언급하셨는데 그 드라마 각시탈에 엑스트라로 출연한 박희석 씨의 사망 말씀하시는 거지요?▷최민희> 예.

▶정관용> 어떻게 하다가 또 그런 일이 있었지요? 그것 조금 소개해주세요.▷최민희> 이것도 제가 파악을 해보니 주연급 배우들이 타는 차나 이런 것은 굉장히 조심해서 모는데, 보조 출연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차를 굉장히 험하게 몰아서 왜 이러지, 이렇게 서로 하다가 사고가 나서 돌아가셨더라고요. 그러니까 정말 인명 경시 풍조 만연한 것 같고요. 그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는데 이제 태양기획이라는 기획사에 소속되어 있었어요, 이분이. 그런데 100일이 넘도록 일인시위를 해서 겨우 산재 인정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이제 산재 신청이 결과 나올 것 같고요. 그런데 이게 정말 이상한 것은 법원이 이미 보조 출연자를 산재로 인정한 판례가 있음에도 근로복지공단이 이걸 받아들이지 않는 거지요.

▶정관용> 왜 그럴까요?▷최민희> 그러니까 이게 근로자성 인정 문제 때문입니다.

▶정관용> 지금 저희가 알기로는 보조 출연자, 엑스트라들의 노조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최민희> 예, 그런데 이제 노조라는 것도 사실 근로조건이 어느 정도 되어야 그 가입률도 높고 결속력도 높은데요. 보조 출연자들이 너무 열악한 조건인 거지요. 그러니까 근로자성을 인정받지 못한다는 것은 근로계약서 없이 일한다는 뜻이거든요.

▶정관용> 그렇지요.▷최민희> 그러니까 구두계약을 하고 일하니까, 사실은 임금이, 평균 연봉이 연 623만원이에요. 그런데 이것 최저 생계비보다 훨씬 적잖아요.

▶정관용> 그렇지요.▷최민희> 그런데 임금 체불을 겪는 사람이 45%예요. 경험 있는 사람이. 그런데 이 45%보다 훨씬 높을 거다, 왜냐하면 나 임금 체불 겪고 있어, 라는 답조차 못할 조건의 사람들이 있다는 거지요.

▶정관용> 그 말을 하면 또 다음 일감을 못 받을까봐?▷최민희> 그렇지요. 그래서 저희가 제가 국회에 들어와서, 그러니까 우리가 봤던 큰 의제들 외에 이렇게 정말 해결해야 될 중요한 그런 일들이 많더라고요.

▶정관용> 그렇지요.▷최민희> 그래서 보조 출연자 문제만큼은 이번에 어떻게든 해결해보자, 그런 생각이고요. 그 다음에 그 시작을 근로계약서를 쓰게 하자.

▶정관용> 그렇지요.▷최민희> 일단 표준 근로계약서를 개발해서 쓰게 하면 계약서를 쓰면 근로자로 인정받거든요, 노동법이.

▶정관용> 그렇지요.▷최민희> 그래서 그렇게 해보려고 지금 애를 쓰고 있는 중이고요. 그러기 위해서 이제 보조 출연자들의 노조가 활성화되어야 되고, 저는 이 방송을 듣고 계신 열악한 조건의 이제 말하자면 여러 비정규직 근로자들, 그 다음에 노동자들, 특히 보조 출연자들께서 지금 처지에 만족하거나 박희석 씨의 죽음을 우리 늘 그랬잖아, 이렇게 하지 마시고.

▶정관용> 나서야지요.▷최민희> 예, 이번에 한번 좀 같이...

▶정관용> 알겠습니다.▷최민희> 예, 가슴이 너무 아파요.

▶정관용> 두 갈래로 일단 가야될 것 같아요. 먼저 이 억울한 죽음, 그것에 대한 진상조사가 어떤 식으로든 시작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이고요. 그와 별도로 지금 쭉 후반부에 강조해주신 이 보조 출연자들의 처우 개선을 위한 제도적인 노력, 이게 아울러 있어야 될 것 같습니다.▷최민희> 예, 그렇게 같이 노력했으면 좋겠습니다.

▶정관용> 예, 말씀 잘 들었습니다.▷최민희> 예, 고맙습니다.

▶정관용> 민주통합당 최민희 의원의 이야기까지 들었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그냥 슬쩍슬쩍 스쳐지나가는 분들, 그 속에 이렇게 가슴 아픈 사연이 있는 줄 정말 몰랐네요.

시사자키 정관용

2012년 10월 1일 월요일

거짓말쟁이가 아니라면 박근혜도 피해자다


이글은 프레시안 2012-09-30일자 기사 '거짓말쟁이가 아니라면 박근혜도 피해자다'를 퍼왔습니다.
[김기협의 '페리스코프'] 한국사회 역사인식 ③ 가해자의 인식 결함과 피해자의 인식 결함

"나처럼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이것은 올바른 정치가의 할 말이 아니다. 쿠데타나 유신 아니라 어떤 일을 놓고라도 이런 말을 하는 정치인은 "참 나쁜 정치인"이다.

미국 공화당의 롬니 대통령후보가 동영상 때문에 곤욕을 치르고 있는 것을 보라. 지지자들 모임에서 말을 막하다가 들통이 났다. 민주당 지지자들은 세금도 안 내는 사람들이니 그 사람들 위해 정치할 생각이 없다고 했다. 세금 많이 내는 사람들끼리 뭉치자는 얘기다.

한 사회 안에는 온갖 분열의 소지가 있다. 분열을 방치하면 사회가 약화되고 구성원들이 모두 고통을 겪게 된다. 개인에 따라 적게 겪고 많이 겪는 차이가 있겠지만, 분열을 적정선에서 억제할 때보다 고통을 적게 겪을 사람은 거의 없다. 정부와 정치의 첫 번째 기능이 국가사회의 통합성을 지키는 것이다.

역사인식의 차이도 분열의 소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5.16과 유신을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도 많다.

온 국민을 섬기는 대통령 자리를 바라보는 사람이라면 분열을 해소하기 위해 애쓰는 것이 마땅한 일이다. 자신이 5.16과 유신의 긍정적 가치에 믿음을 가졌더라도 반대하는 사람들의 생각에서 받아들일 것이 없는지 고민해야 하고, 반대하는 이유에 허점이 있다고 생각되면 그 점을 설득하려 최선을 다해야 한다. 내 주장의 지지자도 많이 있으니 숫자로 붙어보자는 배짱은 국민을 섬길 생각 없이 권력만을 노리는 사람의 것이다.

박정희의 평가를 둘러싼 '국론 분열'은 일시적 현상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박정희를 비판적으로 본 국민은 1987년까지 아주 소수였다. 독재의 문제점에 대한 논의가 독재의 힘으로 막혀있었기 때문이다. 민주화 진행에 따라 비판적 시각이 점점 자라나 오늘에 이른 것이다. 아직도 상당수의 사람들이 박근혜처럼 생각하고 있는 것은 이 사회의 민주화 수준이 아직 미흡하기 때문이고, 그 수가 계속 줄어들 것이라고 내가 믿는 것은 이 사회의 민주주의가 계속 발전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박근혜처럼 생각하는' 주변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이 믿음이 굳어진다. 경기고나 서울대를 함께 다닌 친구와 선후배 중에는 이 사회에서 우월한 위치를 차지한 데 만족하고 우월한 위치를 잘 누릴 수 있는 특권구조를 지키고 싶은 마음에서 개발독재 시대의 세계관을 버리지 않는 사람이 많다. 인간을 이기적 존재로 규정하는 뉴라이트 사고방식이다.

그런데 경상도의 친척, 친지들 중에는 특권구조에 대한 집착이 없는데도 개발독재 시대에 주입된 세계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이들이 많다. 그들은 그 세계관이 무너지면 엄청난 혼란이 닥칠 것이라는 '두려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독재자들이 심어준 두려움이 아직도 남아있는 것이다. 이것이 억압체제의 '내면화' 흔적이다.

1945년 8월 15일, 천황의 항복 방송이 정오에 있었지만 사람들이 즉각 뛰쳐나와 만세를 부른 것이 아니었다는 증언이 있다. 오후 늦게 감옥 문이 열리자 비로소 군중이 길거리로 쏟아져 나왔다고 한다. (강준만 [한국현대사산책 1940년대 1] 29-30쪽) 환경 변화 앞에서 사람들은 눈치를 보게 되어 있다. 식민지시대 이래의 오랜 억압체제가 풀린 1987년 이후에도 사람들은 눈치를 살펴야 했다. 열악한 환경에 처해 있는 사람들, 그리고 변화의 감지가 늦은 사람들이 몰려 있는 구석에서는 눈치 보기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독재시대에 심어준 두려움에 아직도 짓눌리고 있는 그 사람들이 바로 독재체제의 최대 피해자다. 겉보기로는 이따금 공격적 태도 때문에 피해자보다 가해자로 보이는 사람도 있지만, 욕심이 아니라 두려움에 쫓긴다는 점에서 피해자다. 이런 두려움이 남아있다는 사실이 이 사회의 민주화가 아직도 미흡하다는 무엇보다 뚜렷한 징표다.

▲ 5.16과 유신, 인혁당 사건에 대해 사과하는 박근혜 후보 ⓒ뉴시스

어찌 보면 박근혜 자신에게도 피해자의 측면이 있다. 뉴라이트의 몇몇 사람은 식민지배와 독재정치의 나쁜 점을 뻔히 알면서도 정략적 이유로 억지소리를 하는 것 같다. 그런 것은 '역사의 왜곡'이다. 그런데 박근혜는 그가 서 있어 온 자리 때문에 5.16과 유신의 정당성을 진심으로 믿게 된 것 같다. 나는 그가 거짓말쟁이는 아니라고 믿는다.

피해자는 연민의 대상이다. 피해자에 대한 비판은 가혹한 짓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장기간에 걸친 억압의 피해자는 입었던 피해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의식의 치료가 필요하고, 치료를 위해서는 문제를 밝힐 필요가 있다.

박근혜가 개인의 운명 때문에 박정희 통치의 정당성에 대한 믿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 비난할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순(耳順) 나이의 그가 민주화에 따른 사회의 인식 변화를 따라갈 생각을 않고 "나처럼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고 뻗대는 것은 운명이 아니라 그의 의지에 달린 일이다. 개인으로서는 '역사인식의 결함' 정도 문제지만, 권력을 추구하는 정치인으로서는 '역사 왜곡'으로 넘어가고 있는 것이다.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는 칼로 무 자르듯 갈라지는 것이 아니다. 일제시대에 징용으로 남방에 가서 포로수용소에 근무한 조선인들, 그들은 일본 제국주의의 피해자였지만 포로들에게는 가해자였다. 베트남 전선에 끌려갔던 대한민국 군인들도 마찬가지다.

포로수용소의 조선인 중에는 험악한 조건 속에서도 인류애를 체현하여 미담을 남긴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대다수는 주어진 역할에 묶여 포로들의 눈에 일본의 주구로 비쳐지는 존재였다. 그들이 동원된 억압적 상황이 그들의 행동 모두를 면책시켜 주지 못한다.자기 몫의 반성을 제대로 하지 않고는 억압적 상황으로부터의 진정한 해탈을 바랄 수 없다.

더 넓은 범위의 피해자들도 이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4년 전 (뉴라이트 비판)을 쓸 때 이른바 진보진영의 지나친 독선이 뉴라이트 담론이 비집고 나올 틈새를 준다는 인상을 도처에서 받았다. 예컨대 '식민지착취론'에 식민 지배를 백퍼센트 나쁜 것이라고 주장하는 경향이 있어서 뉴라이트 논객들은 부분적 허점을 파고들며 그에 편승해서 '식민지근대화론'을 주장했던 것이다. 인간 세상에 백퍼센트 악마가 있다고 우기는 사람이 있으면 백퍼센트 천사가 있다고 우기는 사람도 나오기 마련이다.

박근혜를 둘러싼 이번 '역사논쟁'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나타난다. 박근혜의 역사인식을 비판하면서 민주당 정권이 백퍼센트 정당성을 가진 정권이었고, 따라서 이를 무너트린 쿠데타에는 티끌만큼의 정당성도 없었다고 하는 주장이 더러 나온다. 논란의 여지가 있는 문제를 놓고 여지가 없는 것처럼 우기면 그에 대한 반론이 힘을 얻게 된다.

민주당 정권을 대표하던 대통령 윤보선과 국무총리 장면이 쿠데타 상황에 임한 자세를 보라. 칠레의 아옌데처럼 정권을 지키려는 결연한 자세가 왜 민주당 정권에는 없었나? 윤보선과 장면의 4-19 이전 행적을 살펴보면 국가와 민족을 위해 생명은커녕 소소한 이익조차 내놓으려는 의지가 보이는 대목이 전연 없다. 그런 기회주의자들이 민주당 정권을 대표한 것이 우연한 일도 아니었다. 이승만 통치 아래 민주당의 성격 자체가 기회주의 정당이었다.

민주당의 당시 '구파'는 이승만의 분단건국을 거들었다가 권력을 충분히 나눠받지 못해서 야당으로 나선 한민당의 후신이었고, '신파' 역시 성향이 비슷한 사람들이 나중에 모여든 것이었다. 1950년대의 자유당과 민주당, 그리고 민주당의 구파와 신파는 정치이념에 별 차이 없이 같은 권력구조 안에서 이권을 놓고 경쟁하던 집단들이었다.

자유당과 민주당의 동질성은 1959년 조봉암의 '사법살인' 사건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1956년 대통령선거 도중 민주당의 신익희 후보가(이승만의 분단건국을 앞장서서 거들다가 후에 이승만에 맞서는 위치로 돌아서며 함께 임정 출신인 유림에게 협력을 청했을 때 "이승만의 기생첩 노릇 한 사람과 협력 못 한다"고 면박을 당했다고 한다.) 갑자기 죽은 후 민주당은 조봉암의 득표를 막기 위해 안 한 짓이 없었다.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는 조봉암을 찍느니 오히려 이승만을 찍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버젓이 나왔다.

1958년 초 조봉암이 체포되고부터 1959년 7월 처형당할 때까지 민주당은 이 사법살인을 저지하기 위한 아무런 노력도 보이지 않았다. 그 동안 민주당이 한 일은 자유당과 협력해서 제3당의 진입에 불리하도록 선거법을 고친 것이었다. 이념다운 이념을 들고 나오는 정치세력에 대한 경계심은 자유당이나 민주당이나 매한가지였다.

4.19 당시 민주당이 유일한 대안으로서 정권을 쥔 것은 제3세력이 철저히 박멸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민주당의 속성에 자유당과 큰 차이가 없었다고 보기 때문에 민주당 집권밖에 가져오지 못한 4-19는 '혁명'에 이르지 못한 '의거'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자유당과 민주당을 포괄하는 '1950년대 체제'를 척결했다는 점에서는 4.19보다 5.16에 혁명의 의미가 더 있었다. 민정 이양의 약속을 어긴 데서부터는 군사독재의 문제가 심각해지지만, 1961년 민주당 정권의 전복 자체에는 대한민국의 발전 기회를 만든 공로가 컸다. 그 죽음이 군사독재 폭력성의 상징으로 부각되고 있는 장준하를 비롯해 많은 민주주의자, 민족주의자들이 5.16 당시 거사를 지지했다. 5.16 쿠데타를 '백퍼센트' 잘못으로 규정하려 드는 데는 만만찮은 논란이 따를 것이다.

제1야당으로서 민주당의 긴 역사 속에는 독재의 피해자 못지않게 독재의 공범으로서 기회주의자의 모습이 많이 남아있다. 1956년 조봉암의 득표를 막으려 애쓰고 1959년 조봉암의 처형을 방관한 것은 독재에 대한 항거보다 제1야당의 이권을 지키는 것이 그들에게 더 중요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불임(不姙)정당'이 될 수 없다는 민주당 일각의 고집은 정권 교체를 바라기보다 제1야당의 위상을 더 아끼는 것처럼 보인다. 당선자, 아니면 차점자라도 만들어야 생산적인 정당인가? 생산적인 정당이 되려면 후보보다 정책 만드는 데 먼저 힘을 써야 한다. "못 살겠다, 갈아보자!" 수준의 구호로 차점자를 노리던 전통을 벗어나기 바란다.

이명박 정권의 엽기적 행태를 줄줄이 보고도 민심이 민주당으로 흔연히 모이지 않는 것은 민주당의 역사에 떳떳치 않게 보이는 것이 많아서다. 칼자루를 쥐고 있을 때가 많지 않은 덕분에 그 흠이 크게 드러나지 않아서 제1야당 자리를 아직까지 지키고 있지만 중도적 입장의 국민들에게 미덥게 보이지 않는 인상이 너무 많이 쌓여있다. 역사를 새로운 시각에서 성찰할 필요는 박근혜만이 아니라 민주당에게도 있다.

 /김기협 역사학자

2012년 8월 1일 수요일

김형태 의원, 제수씨에 고소당해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07-31일자 기사 '김형태 의원, 제수씨에 고소당해'를 퍼왔습니다.

“성추행 의혹으로 사퇴 요구받자
실명 노출·허위사실로 명예훼손”

한국여성단체연합 등 여성단체가 모인 ‘친족성폭력 가해자 김형태 제명 촉구를 위한 시민행동’은 31일 김형태 의원(포항 남구·울릉)의 동생 부인이 김 의원을 명예훼손 혐의로 서울남부지검에 고소했다고 밝혔다.단체들은 “김 의원이 과거 동생 부인을 성추행했다는 의혹으로 여러 시민단체와 동료 의원들로부터 사퇴할 것을 촉구당하자, 동생 부인을 허위사실로 비난하는 내용의 A4용지 6쪽 분량 문서를 작성해 의원들에게 배포했다”며 “해당 문서에서 김 의원은 동생 부인과 아들의 실명까지 여러번 노출하며 동생 부인의 평소 행동과 가족관계, 재산문제 등에 대해 악의적인 허위사실을 적시함으로써 명예를 훼손했다”고 주장했다.김 의원은 지난 6월 여러 차례에 걸쳐 19대 국회의원 299명에게 제수의 남자관계와 직장 해고 등을 언급한 문서를 보내 “성추행 의혹은 마녀사냥식으로 일방적으로 매도당한 것”이라며 본인의 억울함을 호소한 것으로 알려졌다.한국성폭력상담소 백미순 소장은 “피해자 여성에게 불미스러운 남자관계가 있다거나 전과가 있다는 등 주장으로 허위사실을 유포한 것은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전형적인 2차 가해 유형에 해당한다”며 “여성단체들은 끝까지 김 의원의 자진사퇴 또는 제명을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2012년 6월 25일 월요일

[사설] 피해 노동자를 가해자로 왜곡한 검·경·언론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06-24일자 사설 '[사설] 피해 노동자를 가해자로 왜곡한 검·경·언론'을 퍼왔습니다.

경찰 조사 과정에서 경찰관한테 성추행을 당했다고 언론에 밝혔다가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됐던 기륭전자 여성노동자가 최근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수사기관이 억울한 피해자를 가해자로 둔갑시켜 진실을 왜곡했다는 점에서 그냥 넘어갈 사안이 아니다. 특히 언론까지 가세해 피해 노동자가 거짓말을 한 것처럼 몰아세우는 등 수사기관과 언론의 왜곡 행태가, 사안의 경중은 다르지만 1980년대 부천서 성고문 사건과 비슷하다. 수사 과정에서 현장의 폐회로텔레비전 화면만 제대로 확인해봤어도 성추행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란 점에서 검찰과 경찰이 ‘악의’ 내지는 ‘고의’로 사실을 왜곡한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살 만하다. 기륭전자 노조가 이미 밝혔듯이 검경과 언론에 대해 엄중한 민형사상 책임 추궁이 있어야 한다. 검경은 이와 별개로 자체 감찰을 통해 이런 황당한 수사의 전말을 조사해 응분의 조처를 취해야 할 것이다.이번 사건은 2010년 4월6일 서울 대방동 기륭전자 사옥 앞에서 금속노조 기륭전자분회 노조원들이 해고자 복직 요구 집회를 열다 회사 간부와 몸싸움이 벌어져 박아무개씨 등 노조원이 동작경찰서로 연행된 뒤 발생했다. 경찰 조사를 받던 박씨가 형사계 안의 화장실에 들어가 있는 상태에서 김아무개 경사가 화장실 문을 강제로 여는 바람에 몸이 노출된 상태의 박씨가 심한 모욕감을 느꼈고 나중에 손발이 마비돼 응급실로 실려가는 상황에 이르렀다고 한다. 박씨와 노조 쪽은 언론 인터뷰와 기자회견을 통해 이런 성추행 사실을 고발하며 경찰관에 대한 처벌을 요구했으나 경찰과 검찰은 오히려 박씨 주장이 허위라며 명예훼손 혐의로 그를 기소해버린 것이다. 이에 보수언론들까지 가세해 “‘경찰이 성추행’ 울먹이던 민노총 조합원, 알고보니 거짓말”이라는 등의 왜곡보도를 쏟아냈다.검경이 얼마나 엉터리로 수사했는지는 재판 과정에서 곧바로 드러났다. “화장실에서 나오라고 했을 뿐 화장실 문을 연 사실이 없다”는 경찰관 주장과 달리 폐회로텔레비전 화면에는 경찰이 화장실 문을 손으로 잡는 장면과 화장실에서 나온 박씨가 경찰에 항의하는 장면 등이 그대로 잡혔다. 이후 조사받던 박씨가 신음을 내며 손가락이 뒤틀리는 등 이상증세와 함께 실신해 응급실로 이송됐는데도 검경은 오히려 박씨가 허위사실을 날조했다고 기소했으니 ‘적반하장 수사’가 아닐 수 없다. 노동자에 대해 편향된 시각을 가진 게 아니라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황당수사’이기도 하다. 엄히 책임을 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