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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5월 3일 금요일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동자들, 8년반만에 복직


이글은 뷰스앤뉴스(Views&News) 2013-05-02일자 기사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동자들, 8년반만에 복직'을 퍼왔습니다.

눈물의 기자회견 "8년 6개월 버텨준 조합원들 고맙다"


1천895일이라는 장기 투쟁기록을 남겼던 기륭전자 비정규직 조합원들이 2일 8년반만에 정규직으로 복직했다.

지난 2005년 5월 '문자메시지' 해고 통보를 시작으로 자행된 집단해고, 이에 맞서 그해 7월 노조를 결성하고 투쟁을 시작한 지 파업기간만 6년, 노사가 복직에 합의하고도 사측 요구로 복직 유예된 2년 6개월을 합하면 도합 8년반만의 현장 복귀다.

6년간 싸움과정은 험난했다. 94일간의 단식투쟁을 비롯해 세 차례나 장기 단식투쟁을 벌였고, 2008년에는 서울시청 앞 철탑에 오르는 등 두 차례의 고공농성을 전개했다. 용역업체를 동원한 폭력, 수십억원의 손해배상 청구, 경찰의 구속 등이 일상화됐지만 조합원들은 금천구 구사옥 부지를 최후의 보루로 삼고 물러서지 않았다.

결국 2010년 11월 노사는 1년 6개월안에 정규직으로 고용하는 조건으로 최종합의에 이르며 6년간의 투쟁을 마무리지었다. 그러나 그 사이 200명의 조합원은 10명으로 줄었고, 초기부터 함께 투쟁해 온 조합원 권명희씨가 2008년 암투병 끝에 사망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조합원들은 이날 오전 신대방동 기륭전자 신사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기륭전자 노동자들은 1895일을 싸우고 2년 6개월을 기다렸다"며 "수 많은 노동자들의 피눈물과 한이 서려 있는, 우리가 목숨을 걸고 그토록 돌아가고자 했던 일터. 기륭전자에 당당히 들어가 일할 것"이라며 눈물을 흘렸다.

유흥희 기륭전자분회장은 "처음 노조를 건설했을 때의 마음을 잊지 않고, 현장에서도 최선을 다하겠다"며 "지금까지 기다려준 동지들과 8년 6개월을 버텨준 조합원들에게 감사하며, 앞으로도 실망시키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선숙 조합원은 "쌍용자동차, 재능교육 등 투쟁하는 노동자들을 두고 복직하려니 마음이 아프다"며 "우리가 다시 현장에서 힘을 내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특수고용노동자 문제 해결에 앞장서 나갈 것을 약속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사측 태도는 여전히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노조에 따르면, 복직을 앞둔 지난 달 19일 열린 노사협의회에서 조합원들이 합의서대로 5월 2일 출근 입장을 밝히자 "회사가 어렵고 들어와도 할 일이 없다"며 차가운 반응을 보였다.

김소연 전 분회장은 "노조를 탄압하고 노동자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회사가 잘 될 수 없다"며 "어렵게 노사가 합의한 만큼, 약속을 지키고 노사가 노력해 살맛나는 일터를 만들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병성 기자

2012년 9월 17일 월요일

기자야, 청와대 대변인이야?


이글은 시사IN 2012-09-17일자 기사 '기자야, 청와대 대변인이야?'를 퍼왔습니다.

지난 8월20일 최초의 여당 대선 후보로 선출된 박근혜의 일성은 ‘국민 대통합’이었다. 거침없어 보이던 박근혜의 행보에 제동이 걸렸다. 8월28일 박근혜 후보는 전태일재단 방문과 전태일 동상 헌화를 시도했다. 유족들은 방식과 진정성에 문제를 제기하며 방문을 막았다. 

제2의 전태일로 살고 있는 쌍용차와 기륭전자 노동자들도 가세했다. 유족조차 모르는 방문, 전태일 정신을 훼손하는 노동 탄압을 사실상 방조해온 정치인의 방문은 ‘상징과 선전만 취하려는 눈요기 행사’라는 비판, 당연하다. 

박근혜 후보, '험난한 과거와의 화해' 【서울=뉴시스】서재훈 기자 =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28일 오전 서울 종로 전태일 다리를 방문, 헌화를 하려다 김정우 금속노조 쌍용차 지부장으로부터 항의를 받고 돌아서며 전태열 열사가 분신한 장소를 살펴보고 있다. jhseo@newsis.com
특히 박 후보 측이 재단 측과 일정을 조율했다고 내세우는 ‘전태일 친구’라는 사람은 4·11 총선 때 새누리당 비례대표 신청을 했고, 현재 박 후보 외곽조직인 국민희망포럼의 노동위원장이기도 하다.

방송 보도는 어떠했을까? 대부분 사실 보도의 관점에서 있었던 일을 나열했고, 따라서 보도 내용은 ‘방문 무산’에 초점이 맞춰졌다. 왜 무산됐는지 방문 반대 의견도 담겼다. 

그러나 YTN은 달랐다. ‘박 후보가 전태일 동상에 헌화한 뒤 화해와 협력을 다짐했다’가 핵심 내용이었다. 헌화 당시의 상황은 화면으로만 짧게 처리했고, 박 후보의 인터뷰를 이어 붙임으로써 박 후보를 포용의 인물로 묘사했다. 

유족 측이 왜 방문을 거부했는지도 전혀 설명하지 않았다. 단신 기사의 리드(기사 핵심, 첫 문장) 역시 이렇게 처리했다. “박 후보는 전태일재단을 방문해 산업화·민주화 세력의 화해와 협력으로 잘사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이건 뭐 청와대 대변인이 대통령 말씀 전하는 수준이다. 전형적인 미화에 해당한다.

노종면 (YTN 해직기자, 트위터 @nodolbal) 

2012년 6월 25일 월요일

[사설] 피해 노동자를 가해자로 왜곡한 검·경·언론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06-24일자 사설 '[사설] 피해 노동자를 가해자로 왜곡한 검·경·언론'을 퍼왔습니다.

경찰 조사 과정에서 경찰관한테 성추행을 당했다고 언론에 밝혔다가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됐던 기륭전자 여성노동자가 최근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수사기관이 억울한 피해자를 가해자로 둔갑시켜 진실을 왜곡했다는 점에서 그냥 넘어갈 사안이 아니다. 특히 언론까지 가세해 피해 노동자가 거짓말을 한 것처럼 몰아세우는 등 수사기관과 언론의 왜곡 행태가, 사안의 경중은 다르지만 1980년대 부천서 성고문 사건과 비슷하다. 수사 과정에서 현장의 폐회로텔레비전 화면만 제대로 확인해봤어도 성추행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란 점에서 검찰과 경찰이 ‘악의’ 내지는 ‘고의’로 사실을 왜곡한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살 만하다. 기륭전자 노조가 이미 밝혔듯이 검경과 언론에 대해 엄중한 민형사상 책임 추궁이 있어야 한다. 검경은 이와 별개로 자체 감찰을 통해 이런 황당한 수사의 전말을 조사해 응분의 조처를 취해야 할 것이다.이번 사건은 2010년 4월6일 서울 대방동 기륭전자 사옥 앞에서 금속노조 기륭전자분회 노조원들이 해고자 복직 요구 집회를 열다 회사 간부와 몸싸움이 벌어져 박아무개씨 등 노조원이 동작경찰서로 연행된 뒤 발생했다. 경찰 조사를 받던 박씨가 형사계 안의 화장실에 들어가 있는 상태에서 김아무개 경사가 화장실 문을 강제로 여는 바람에 몸이 노출된 상태의 박씨가 심한 모욕감을 느꼈고 나중에 손발이 마비돼 응급실로 실려가는 상황에 이르렀다고 한다. 박씨와 노조 쪽은 언론 인터뷰와 기자회견을 통해 이런 성추행 사실을 고발하며 경찰관에 대한 처벌을 요구했으나 경찰과 검찰은 오히려 박씨 주장이 허위라며 명예훼손 혐의로 그를 기소해버린 것이다. 이에 보수언론들까지 가세해 “‘경찰이 성추행’ 울먹이던 민노총 조합원, 알고보니 거짓말”이라는 등의 왜곡보도를 쏟아냈다.검경이 얼마나 엉터리로 수사했는지는 재판 과정에서 곧바로 드러났다. “화장실에서 나오라고 했을 뿐 화장실 문을 연 사실이 없다”는 경찰관 주장과 달리 폐회로텔레비전 화면에는 경찰이 화장실 문을 손으로 잡는 장면과 화장실에서 나온 박씨가 경찰에 항의하는 장면 등이 그대로 잡혔다. 이후 조사받던 박씨가 신음을 내며 손가락이 뒤틀리는 등 이상증세와 함께 실신해 응급실로 이송됐는데도 검경은 오히려 박씨가 허위사실을 날조했다고 기소했으니 ‘적반하장 수사’가 아닐 수 없다. 노동자에 대해 편향된 시각을 가진 게 아니라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황당수사’이기도 하다. 엄히 책임을 물어야 한다.

2012년 1월 31일 화요일

"부역언론인 처벌해야…반성은 이번이 마지막"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2-01-20일자 기사 '"부역언론인 처벌해야…반성은 이번이 마지막"'을 퍼왔습니다.
[인터뷰] 김진혁 EBS PD, '광우병' 방송뒤 3년 만에 '다큐프라임' 제작현장 복귀


"총선이 끝나면 정권에 부역한 언론인들을 평가해야 한다.”

언론노조, 민언련에서 나온 말이 아니다. ‘3년 간 휴업’이라는 형벌을 견딘 김진혁 EBS PD다. 그는 2008년 광우병에 대한 5분짜리 영상 ‘17년 후’를 연출했다가 자신이 원치 않던 책상에 앉게 됐다. 기륭전자 파업을 다룬 ‘3년’을 끝으로 그는 제작부서를 떠났다. 그런지 3년. 김진혁 PD는 제작부서인 교양다큐부 다큐프라임팀 연출자로 돌아왔다. 그리고 이 시대의 언론인들에게 날 선 비판을 꺼내들었다. “부역 언론인, 당신을 평가하겠다”.

그가 다시 복귀할 날을 기다리는 만큼 그의 존재는 사라졌다. 일반인들이 그를 만날 수 있는 기회는 트위터에서뿐이었다. 그동안 연출을 아예 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김 PD는 민주노총, 언론노조가 부탁한 영상을 만들었다. 그는 자신을 “아르바이트 PD였다”고 평했다. 그리고 돈과 거리를 따지지 않고 자신을 부르는 곳에 가 강연을 했다. 그 와중에 책 ‘지식의 권유’도 펴냈다. 그는 “스스로 지식채널이 되기로 했다”고 말했다.



▲ 김진혁 EBS PD

음으로 양으로 지식채널e 제작진을 도왔다. 트위터나 강연에서 들은 반응과 평가를 고스란히 전달했고, 새로운 트렌드나 주제를 제안하기도 했다. 직접 연출하지 못한 아쉬움도 컸지만 그는 “할 수 있는 최선의 역할을 했다”고 자평했다. 주제도 내용도 약해진 것 아니냐는 세간의 평가가 신경 쓰였지만 프로그램이 유지되고 있고 주제도 다양해지고 있다는 점에서 “훌륭하다”고 말했다.

그는 여전히 지식채널e PD의 습관을 간직하고 있었다. “지식채널을 할 때 고민이 있으면 정리될 때까지 잠들지 않았다”. 지금도 그렇다. 인터뷰 당일에도 새벽 5시가 넘어 잠이 들었다. 시작할 다큐를 그는 ‘다큐영화’라고 했다, ‘독립운동가와 그 후손들’ 취재하기에도 부족할 시간인데 그가 요즘 하는 고민은 ‘연출’에서 시작해 ‘정치’까지 다양하다. 그리고 그 끝은 항상 ‘저널리즘’이다.

저널리즘에 대한 고민은 EBS부터 시작됐다. 김진혁 PD는 그가 속한 공간을 “진보도 보수도 꺼리는 이상한 곳”이라고 소개했다. 사실 EBS에서 노동, 빈곤, 장애를 다루거나 ‘PD수첩’과 같은 시사프로그램을 찾긴 힘들다. 몇 년 전에 라는 프로그램이 있었지만 지금은 없다. EBS는 김진혁 PD의 작품을 ‘비교육적’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친일파와 그 후손들과 대비되는 삶을 살고 있는 독립운동가와 그 후손의 이야기를 다루겠다고 제출한 기획안도 두 차례 퇴짜를 맞았다. 고민 끝에 수정한 기획안이 결국 통과됐다. 그는 “회사의 입맛을 고려했다”며 웃으며 얘기했다. 김진혁 PD는 직접적으로 친일파와 대비하지 않고 독립운동가, 후손의 삶에 집중할 생각이다. 그는 ‘타협’이라고 하지 않았다. 오히려 문제를 잘 드러낼 수 있는 전략이라고 했다. 저널리즘은 거시적이고 추상적인 담론이 아니라 미시적이고 구체적인 삶을 보여줘야 한다는 말 또한 덧붙였다. '기계적 중립에 집착하는' EBS에서 그가 살아가는 방법이다.

지난 3년 동안 저널리즘을 어떻게 바라봤느냐는 질문에 김진혁 PD는 “노종면 선배를 생각하면 아직도 미안하다”는 고백을 되풀이했다. 그는 지식채널e를 시작한 2005년부터 ‘언론운동이 이대로 가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는 KBS, MBC가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출입처만 뱅뱅 돌며 권력의 하수인 노릇을 하는 언론 현실을 언론인 스스로 깨야한다고 했다. 

“더 이상 썩기 전에 스스로 도려내야 가장 덜 아프다.”

그는 “동아투위의 정신은 사라진지 오래”라고 했다. 그리고 그는 권력의 옆자리를 차지하고 힘을 휘두르며 ‘사람’과 ‘노동’을 외면하는 보수언론은 물론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 간 주인행세하다 갑자기 이명박 정부에 고개를 숙인 언론들을 ‘부역 언론’이라고 질타했다. 특히 KBS와 MBC를 두고 “전두환 정권 때 언론사통폐합으로 정권에 충성할 가능성은 언제나 있었지만 이 정도로 망가질 거라 생각 못했다”고 말했다. 한숨에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빠르면 총선이 끝나고 이들에 대한 평가, 아니 처벌이 필요하다고 얘기했다. 그는 “반성을 하려면 지금이 마지막”이라며 언론인들의 각성을 요구했다.

김진혁 PD는 가장 가까운 예를 들었다. 한진중공업과 김진숙이다. 언론은 ‘희망버스’ 아니면 ‘불법’만 보도했다. 정작 김진숙이 크레인에 올라간 까닭, 8년 전 끝내 내려오지 못한 또 다른 김진숙, 김주익의 이야기, 김진숙의 김주익 추도사, 평범한 여성노동자 김진숙이 운동권이 된 이유를 얘기하지 않았다. 진보언론과 트위터에서만 회자될 뿐이었다. 김진숙을 소금꽃나무라 불렀지만 언론은 그 나무가 본디 씨앗이었던 사실에는 관심이 없었다. 김진혁 PD는 그런 얘기를 하고 싶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김진숙이 왜 크레인에 설 수밖에 없었는지를…. 그는 “맥락을 복원해야 한다”고 했다. 이제 그가 다시 짊어진, 3년 전보다 무거워진 짐이기도 하다.

드라마 연출자가 꿈이었던 청년은 어느새 자신이 인정하든 안 하든 ‘비판적 저널리스트’가 됐다. 그는 지식채널e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저항'을 했고, 보편타당한 상식에 반하는 현실을 고발했다. 그가 온몸을 비틀어 쥐어 짜낸 5분은 현실의 편린들을 나열하는데 그치지 않았기 때문에 대중의 지지를 얻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