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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월 8일 화요일

강풀·김제동·김진혁·낸시랭… 상상력의 멘토 되다


이글은 시사IN 2013-01-05일자 기사 '강풀·김제동·김진혁·낸시랭… 상상력의 멘토 되다'를 퍼왔습니다.
서울 금천구청이 주최하고 (시사IN)이 주관한 첫 번째 토크 콘서트가 열렸다. 강풀·김제동·김진혁·낸시랭 네 명의 강사가 자신의 성공 키워드인 상상력에 대해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았다.

(시사IN)은 2012년 청소년을 대상으로 세 가지 행사를 진행했다. ‘직업을 창조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드림 콘서트’는 수도권 소재 특성화고등학교(실업계고) 재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직업 안내 강연이다. ‘청소년을 위한 (시사IN) 공감 콘서트’는 미국 하버드 대학과 MIT(매사추세츠 공과대학) 한인학생회와 함께 진행하는 행사로 유학 경험담을 듣는 행사다. 그리고 지방자치단체와 함께하는 ‘청소년 토크 콘서트’는 김제동·강풀·낸시랭·김진혁 등 유명 인사들이 참여하는 멘토링 강연이다. 2013년에도 (시사IN)은 이 같은 청소년 대상의 다양한 콘서트를 개최할 예정이다.

이 가운데 서울 금천구청이 주최하고 (시사IN)이 주관한 첫 번째 ‘청소년 토크 콘서트’의 주제는 상상력이었다(11월8~29일). ‘문화 리더가 들려주는 상상력의 힘’이라는 제목으로 김제동·강풀·낸시랭·김진혁 네 강사가 자신들의 성공 키워드인 상상력에 대한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았다. 낸시랭은 ‘체제에 도전하는 도발적인 시선’을, 김제동은 ‘인간을 바라보는 따뜻한 마음’을, 강풀은 ‘자신의 이야기를 남에게 들려주는 나눔’을, 김진혁은 ‘무심코 맹신하는 것들에 대한 합리적 의심’을 그 비결로 지목했다. 강의 내용을 간략히 전한다.  

ⓒ시사IN 이명익 방송인 김제동씨(위)는 “내 마음 속 소리를 듣고 살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팝아티스트 낸시랭

대학을 졸업할 때 ‘취직을 할까, 예술을 할까’ 고민했다. 집안이 폭삭 망해서 일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유학 같은 것은 꿈도 꿀 수 없었다. 고통스러워서 술도 마시면서 방황했지만 빨리 현실을 직시했다. 시뮬레이션을 해보니 미래가 구체적으로 다가왔다. 안정된 길을 가면 행복하지 않을 것 같았다. 좋아하는 것을 하기로 했다. 마음을 먹으니 두려울 게 없었다. 금기시되는 것들만 골라서 작품을 했다. 자유롭게 내 생각을 펼치다 보니 금기시되는 것에 걸리기도 했다. 

나는 아마도 대한민국에서 역사 이래 가장 욕을 많이 먹은 아티스트인 것 같다. 아주 오래 살 것 같다. 욕을 너무 많이 먹어서. 그런데 예술가는 무언가 새로운 도전을 할 때 수많은 비난과 욕과 멸시를 받더라도 마침내 인정받는 시기가 온다. ‘걸어다니는 팝아트’라고 불릴 만큼 나만의 개성을 가진 예술가가 되었다. 

여러분이 페이스북도 하고 트위터도 많이 하는 것으로 아는데 중요한 것은 자신의 웹사이트를 만드는 일이다. 앞으로는 자신의 브랜드를 만드는 게 가장 중요하다. 서울대, 연·고대를 나와 봤자 소용없다. 기회와 가능성은 펼쳐져 있다. 자신을 하나의 문화 아이콘으로 만들어야 한다. 웹사이트를 만들면 꾸준히 자신의 모형을 만들어낼 수 있다. 

방송인 김제동 

중학생·고등학생 때 어른들은 늘 ‘너희 때가 제일 좋다’는 말을 한다. 내가 볼 땐 거기서 거기다. 겪다보면 이때가 제일 힘든 것 같다. 힘든 일 많고, 어려운 일 많을 수 있다. 돌이켜보면 좋을 수 있지만 견뎌낼 때는 힘들 때가 더 많다. 청춘은 진짜 좋은 건데 그땐 잘 모른다. 

여러분들이 궁금해한 것들을 받아써  봤다. 그러면 여러분이 평소에 뭘 많이 생각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좀 안타깝다. 삶의 중심에 연예인이 있고, 그리고 개개인의 삶과는 별로 상관없는 것들 일색이다. 물론 궁금할 수는 있다. 하지만 우리가 살면서 어떤 중심을 가지고 사느냐,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남의 인생에 지나치게 시간을 할애하는 게, 나보다 다른 사람 눈치 보고 사는 게 아깝지 않나? 내 마음 속 소리를 듣고 살아야 한다. 개개인 삶은 모두 다 소중하고 중요하다. 자기 속 이야기는 자기가 들어줘야 한다. 

갑자기 울고 싶다. 떠나고 싶다. 때리고 싶다. 그런 생각이 들 때 있다.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 왜 사는 걸까. 나는 뭔가. 남들은 다 잘 사는 것 같은데, 나만 그런가. 그런 생각, 나도 하고 여러분도 한다. 감정 자체는 옳은 것도 그른 것도 아니고. 내가 자세히 귀를 기울여야 한다. 가장 속상할 때가 내 맘 아무도 몰라준다는 생각이 들 때다. 속상하다. 하지만 내 마음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나다. 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소리를 내가 외면하고 함부로 대하고 만만히 말해서는 안 된다. 

ⓒ시사IN 백승기 만화가 강풀씨(왼쪽)는 이야기를 재미있게 전달하는 법에 대해 설명했다. 김진혁 PD(가운데)와 팝아티스트 낸시랭씨(오른쪽)가 토크 콘서트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만화가 강풀

이 강연 주제가 ‘상상력에 날개를 달자’이다. 나는 만화 그리고 이야기를 풀어내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야기를 만드는 법에 대해 얘기하겠다. 상상한 것을 어떻게 발전시켜 좋은 이야기를 만드는가에 대해 말하겠다. 만화가이다 보니 항상 받는 질문이 소재를 어디서 발견하느냐, 이야기를 어떻게 만드느냐 하는 것인데, 모든 이야기는 상상력에서 출발한다. 

재미있는 이야기 만들기에 대해 얘기해보겠다. 결론을 말하면 세상에 엉뚱한 상상이란 없다. 여러분들 저도 어릴 때 그런 얘기 많이 들었다. ‘너는 왜 그런 생각하니.’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엉뚱한 상상은 없다. 상상은 원래 엉뚱한 거다. 상상력 키우려면 생각에 제한을 두면 안 된다. ‘그게 되겠어?’ ‘쪽팔린데’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그 다음은 이야기를 재밌게 전달하는 것이다. 세 가지 원칙이 있다. 우리가 대화할 때를 생각해봐라. 사람들은 비밀 얘기에 혹한다. ‘이거 너만 알고 있어야 돼’라고 하면 관심이 쏠린다. 다른 하나는 새로움이다. ‘너 그거 알아?’ 하면서 들려주는 새로운 이야기에 사람들은 귀를 기울인다. 마지막은 실화다. ‘내가 아는 누군가가 말이야…’라고 했을 때 이야기는 더 힘을 갖는다. 

EBS 김진혁 PD

(지식채널e)에서 미국 링컨 대통령에 대해 다룬 적이 있다. 우리가 이런 이야기였을 거야 생각했던 부분이 막상 그렇지 않다는 것을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였다. 1% 정도의 사람을 제외하고 99% 사람이 다 모르는 이야기였다. 그 사람들에게 ‘진실의 반대는 거짓말이 아니라 신화’라는 것을 일깨우는 작품이었다. 

한쪽의 이야기는 완전히 사라지고 나머지 한쪽만 남아서 그것이 마치 전부인 것처럼 얘기하는 것을 신화라 한다. 진실의 반대는 왜 거짓이 아니라 신화라 했을까? 신화는 99%가 잘못 알고 있기 때문에 문제다. 이렇게 다 똑같이 알고 있는데 혹시 내가 거기에 대해서 진실을 알아도 얘기하기가 부담스럽고 침묵하게 되기 때문이다. 는 생각할 수 있도록 권유하는 프로그램인데 신화는 그것을 못하게 한다. 질문을 던지고 의심하는 것을 싫어한다. ‘그냥 그렇게 알고 있어’라고 우긴다. 

생각한다는 것은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당연하다고 생각한 것을 의심해볼 줄 알아야 한다. 다른 각도에서 볼 줄 알아야 한다. 이리저리 의심하고 질문 던지고 궁금해하는 것들이 자꾸 쌓일 때 생각이 많아지고 지식이 는다. 외우고 암기하는 지식은 컴퓨터 하드디스크와 같다. 언제 써야 할지 왜 저장이 됐는지 어떤 프로그램을 써야 하는지 모르고 데이터만 몇백 기가 저장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고재열 기자  |  scoop@sisain.co.kr

2012년 1월 31일 화요일

"부역언론인 처벌해야…반성은 이번이 마지막"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2-01-20일자 기사 '"부역언론인 처벌해야…반성은 이번이 마지막"'을 퍼왔습니다.
[인터뷰] 김진혁 EBS PD, '광우병' 방송뒤 3년 만에 '다큐프라임' 제작현장 복귀


"총선이 끝나면 정권에 부역한 언론인들을 평가해야 한다.”

언론노조, 민언련에서 나온 말이 아니다. ‘3년 간 휴업’이라는 형벌을 견딘 김진혁 EBS PD다. 그는 2008년 광우병에 대한 5분짜리 영상 ‘17년 후’를 연출했다가 자신이 원치 않던 책상에 앉게 됐다. 기륭전자 파업을 다룬 ‘3년’을 끝으로 그는 제작부서를 떠났다. 그런지 3년. 김진혁 PD는 제작부서인 교양다큐부 다큐프라임팀 연출자로 돌아왔다. 그리고 이 시대의 언론인들에게 날 선 비판을 꺼내들었다. “부역 언론인, 당신을 평가하겠다”.

그가 다시 복귀할 날을 기다리는 만큼 그의 존재는 사라졌다. 일반인들이 그를 만날 수 있는 기회는 트위터에서뿐이었다. 그동안 연출을 아예 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김 PD는 민주노총, 언론노조가 부탁한 영상을 만들었다. 그는 자신을 “아르바이트 PD였다”고 평했다. 그리고 돈과 거리를 따지지 않고 자신을 부르는 곳에 가 강연을 했다. 그 와중에 책 ‘지식의 권유’도 펴냈다. 그는 “스스로 지식채널이 되기로 했다”고 말했다.



▲ 김진혁 EBS PD

음으로 양으로 지식채널e 제작진을 도왔다. 트위터나 강연에서 들은 반응과 평가를 고스란히 전달했고, 새로운 트렌드나 주제를 제안하기도 했다. 직접 연출하지 못한 아쉬움도 컸지만 그는 “할 수 있는 최선의 역할을 했다”고 자평했다. 주제도 내용도 약해진 것 아니냐는 세간의 평가가 신경 쓰였지만 프로그램이 유지되고 있고 주제도 다양해지고 있다는 점에서 “훌륭하다”고 말했다.

그는 여전히 지식채널e PD의 습관을 간직하고 있었다. “지식채널을 할 때 고민이 있으면 정리될 때까지 잠들지 않았다”. 지금도 그렇다. 인터뷰 당일에도 새벽 5시가 넘어 잠이 들었다. 시작할 다큐를 그는 ‘다큐영화’라고 했다, ‘독립운동가와 그 후손들’ 취재하기에도 부족할 시간인데 그가 요즘 하는 고민은 ‘연출’에서 시작해 ‘정치’까지 다양하다. 그리고 그 끝은 항상 ‘저널리즘’이다.

저널리즘에 대한 고민은 EBS부터 시작됐다. 김진혁 PD는 그가 속한 공간을 “진보도 보수도 꺼리는 이상한 곳”이라고 소개했다. 사실 EBS에서 노동, 빈곤, 장애를 다루거나 ‘PD수첩’과 같은 시사프로그램을 찾긴 힘들다. 몇 년 전에 라는 프로그램이 있었지만 지금은 없다. EBS는 김진혁 PD의 작품을 ‘비교육적’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친일파와 그 후손들과 대비되는 삶을 살고 있는 독립운동가와 그 후손의 이야기를 다루겠다고 제출한 기획안도 두 차례 퇴짜를 맞았다. 고민 끝에 수정한 기획안이 결국 통과됐다. 그는 “회사의 입맛을 고려했다”며 웃으며 얘기했다. 김진혁 PD는 직접적으로 친일파와 대비하지 않고 독립운동가, 후손의 삶에 집중할 생각이다. 그는 ‘타협’이라고 하지 않았다. 오히려 문제를 잘 드러낼 수 있는 전략이라고 했다. 저널리즘은 거시적이고 추상적인 담론이 아니라 미시적이고 구체적인 삶을 보여줘야 한다는 말 또한 덧붙였다. '기계적 중립에 집착하는' EBS에서 그가 살아가는 방법이다.

지난 3년 동안 저널리즘을 어떻게 바라봤느냐는 질문에 김진혁 PD는 “노종면 선배를 생각하면 아직도 미안하다”는 고백을 되풀이했다. 그는 지식채널e를 시작한 2005년부터 ‘언론운동이 이대로 가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는 KBS, MBC가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출입처만 뱅뱅 돌며 권력의 하수인 노릇을 하는 언론 현실을 언론인 스스로 깨야한다고 했다. 

“더 이상 썩기 전에 스스로 도려내야 가장 덜 아프다.”

그는 “동아투위의 정신은 사라진지 오래”라고 했다. 그리고 그는 권력의 옆자리를 차지하고 힘을 휘두르며 ‘사람’과 ‘노동’을 외면하는 보수언론은 물론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 간 주인행세하다 갑자기 이명박 정부에 고개를 숙인 언론들을 ‘부역 언론’이라고 질타했다. 특히 KBS와 MBC를 두고 “전두환 정권 때 언론사통폐합으로 정권에 충성할 가능성은 언제나 있었지만 이 정도로 망가질 거라 생각 못했다”고 말했다. 한숨에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빠르면 총선이 끝나고 이들에 대한 평가, 아니 처벌이 필요하다고 얘기했다. 그는 “반성을 하려면 지금이 마지막”이라며 언론인들의 각성을 요구했다.

김진혁 PD는 가장 가까운 예를 들었다. 한진중공업과 김진숙이다. 언론은 ‘희망버스’ 아니면 ‘불법’만 보도했다. 정작 김진숙이 크레인에 올라간 까닭, 8년 전 끝내 내려오지 못한 또 다른 김진숙, 김주익의 이야기, 김진숙의 김주익 추도사, 평범한 여성노동자 김진숙이 운동권이 된 이유를 얘기하지 않았다. 진보언론과 트위터에서만 회자될 뿐이었다. 김진숙을 소금꽃나무라 불렀지만 언론은 그 나무가 본디 씨앗이었던 사실에는 관심이 없었다. 김진혁 PD는 그런 얘기를 하고 싶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김진숙이 왜 크레인에 설 수밖에 없었는지를…. 그는 “맥락을 복원해야 한다”고 했다. 이제 그가 다시 짊어진, 3년 전보다 무거워진 짐이기도 하다.

드라마 연출자가 꿈이었던 청년은 어느새 자신이 인정하든 안 하든 ‘비판적 저널리스트’가 됐다. 그는 지식채널e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저항'을 했고, 보편타당한 상식에 반하는 현실을 고발했다. 그가 온몸을 비틀어 쥐어 짜낸 5분은 현실의 편린들을 나열하는데 그치지 않았기 때문에 대중의 지지를 얻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