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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월 23일 수요일

박근혜 당선자, 남북대화 끌어낼 자산 많아


이글은 시사IN 2013-01-23일자 기사 '박근혜 당선자, 남북대화 끌어낼 자산 많아'를 퍼왔습니다.
박근혜 정부 남북대화의 출발은 이산가족 문제가 유력하다. 1972년 7·4 공동성명도 이산가족 문제에서 시작됐다. 박 당선자는 2002년 방북 때 김정일 위원장에게 이산가족 상설면회소 설치를 제안하기도 했다.

박근혜 당선자는 예상 외로 남북관계에 관해 많은 자산을 갖고 있다. 남쪽의 대통령이 된 인물 중, 대통령이 되기 전에 북한 최고지도자와  합의한 사항을 들고 있었던 사람은 없었다. 더욱이 두 사람이 만났을 때, “아버지 대에서 이룩하지 못한 7·4 남북공동성명의 열매를 맺자”라고 서로 다짐했다고 하는데, 남북관계의 효시라 할 7·4 남북공동성명의 계승과 완성을 유업으로 가지고 있다는 점도 중요한 자산 중 하나일 것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대목이 한 가지 있다. 바로 이 7·4 공동성명과 2002년 박근혜 당선자와 김 전 위원장의 합의가 어쩌면 깊게 관련되었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1972년 7월4일 남과 북이 동시에 발표한 7·4 남북공동성명은 분단 이후 최초로 남북 수뇌부가 자주·평화·민족대단결이라는 통일의 기본 원칙에 합의했다는 점에서, 남북 기본합의서, 6·15 공동선언, 10·4 선언의 효시가 된 중요한 선언이다. 

ⓒ사진공동취재단 2001년 2월28일 제3차 남북이산가족상봉 마지막 날에 남쪽 가족들이 작별인사를 하고 있다.

그런데 7·4 공동성명이 애초 이산가족 문제에서 시작된 것이라는 점은 별로 조명을 받지 못해온 것 같다. 실제로 남북한이 휴전 이래 오랜 기간 갈등을 지속하다가 1970년대 초반 국제적인 데탕트 흐름에 편승해 처음으로 남북대화를 시작할 때, 그 출발은 이산가족 문제 협의를 위한 남북 적십자회담이었다.  

그러나 당시의 적십자회담은 남북의 접근 방식 차이로 인해 아무런 성과도 거두지 못한 채 끝나고 말았다. 그리고 30년 만에 만난 그 2세들이 이산가족 1만명 상봉을 위한 상설면회소 설치라는 통 큰 합의를 했다.  

2002년 박근혜 당선자의 방북은 처음부터 이산가족과의 인연으로 시작되었다. 그녀의 자서전에 소개된 방북기에 보면 2002년 5월10일 오후 1시 베이징으로 가려고 인천공항에 도착했을 때 77세 노인 한 분이 다가와 자기 가족의 신상명세가 담긴 쪽지를 건네주며 가족을 꼭 좀 찾아달라고 간절하게 얘기했다는 대목이 나온다. 

그리고 5월13일 저녁 숙소인 백화원 영빈관으로 찾아온 김정일 위원장과 1시간 동안 단독 면담을 할 때 대화의 하이라이트 역시 이산가족 상설면회소 설치 문제였다. 그는 김 위원장에게 ‘이산가족 상설면회소 설치를 제안했다’고 자서전에 쓰고는 그 다음 대목에서 다음과 같이 부연했다. “이산가족 상설면회소는 굉장히 필요하지만 정치적으로 민감한 부분이라서 북한으로서는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문제였다. 그런데 김정일 위원장이 이 제안에 흔쾌히 동의했다. 우리의 대화는 금세 속도가 붙었다.” 

ⓒ박근혜 후보 캠프 제공 2002년 5월13일 북한을 방문한 박근혜 당선자가 김정일 위원장과 회담하고 있다. 이때 박 당선자는 이산가족 상설면회소 설치를 제안했고 김 위원장도 이에 화답했다.

금강산을 살리기 위한 현실적인 방도

이 합의는 그 자체로도 매우 획기적인 것이었다. 당시 남북관계는 2000년 6월의 정상회담 열기가 2년여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식어가고 있었다. 이산가족 상봉의 경우 2000년 6·15 정상회담 이후 그 해에 두 번, 2001년과 2002년에 각각 한 번씩 상봉 행사가 있었으나 100명, 200명 단위의 상봉으로는 부지하세월이란 불만이 많이 제기되기도 했다. 그래서 2000년 9월 남쪽이 상설면회소를 만들자고 제안했으나 북한 측이 묵묵부답이다가, 2002년 5월의 박·김 면담에서 극적으로 타결된 것이다. 그러나 그 뒤 참여정부가 집권하면서 건물은 더디게라도 진행되었으나 두 사람 간 합의의 중요한 내용들은 다시 묻혀버렸고, 지금까지의 추론이 맞는다면 북한 측이 신년사를 통해 매우 모호한 방법으로 이 합의의 이행을 상기시키고 있는 것이다.

7·4 공동성명과 2002년 박·김 면담의 또 다른 공통점은 두 회담 모두 최고위급에 직통하는 채널이 가동됐다는 점이다. 7·4 공동성명의 첫 접촉은 남북 적십자회담을 하는 와중에 남쪽에서 적십자 예비회담과는 별개의 비밀 실무자 접촉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의 신임장을 지참한 대한적십자사의 정홍진과 북한 노동당 김영주 조직지도부장의 신임장을 지참한 북한 적십자사의 김덕현 실무자 간에 판문점 비밀 접촉이 시작됐고, 그 다음 순서로 이후락 부장의 평양 방문 및 김일성 주석 면담, 김영주 부장을 대신한 박성철 제2부수상의 서울 방문 및 박정희 대통령 면담이 이뤄졌다. 

이처럼 최고위급의 직통 라인이 남북관계를 주도하는 전통은 김대중 정부 시절까지는 어느 정도 이어졌으나 그 뒤로 넘어가면서 남쪽의 통일부와 북쪽의 통전부 간의 실무 단위로 떨어지면서 매너리즘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경우는 약간 다르지만 박근혜 대표 방북 과정에서 북쪽의 최고위급 직통 라인이 위력을 발휘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표면적으로는 북쪽 민화협 초청에 의해 주한 유럽연합(EU) 상공회의소 산하 유럽·코리아재단의 장자크 크루아 씨가 주선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김정일 위원장 직보 라인이었던 베이징의 범태평양 조선민족경제개발촉진협회(범태·회장 리도경)와 범태의 국내 파트너인 시스젠(대표 권오홍)의 주선이 주효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공식 사이트인 조선인포뱅크를 운영하던 범태는 2000년대 초반부터 시스젠과 더불어 이산가족 화상 상봉 및 화상을 통한 서신 왕래 사업을 추진하는 등 매우 앞선 시도를 한 바 있다. 

2006년 10월 북핵 1차 실험 때 남북 간의 채널 단절 시에도 최후에 이 라인이 활용된 바가 있다. 그해 10월 노무현 대통령에게 전달된 보고서에 따르면 북쪽은 참여정부와도 이산가족 상봉을 활성화하려는 의사를 명확히 했으나 정권 말기 제대로 이를 추동하지 못했고, MB 정부에서는 사실상 남북 간의 소통이 전면 차단되어 본질적인 해법을 찾을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지금 다시 이산가족 문제가 화두로 등장할 수밖에 없는 것은 박근혜 당선자와 김정일 전 위원장 간의 합의 사항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산가족 문제가 가진 특수성 때문이기도 하다. 첫째는 지금이 마지막 기회라는 점이다. 통일부에 가족 상봉을 신청한 사람 중 많은 이가 사망하고 이제 7만명 정도가 남아 있을 뿐이다. 대부분 고령자라 시간이 별로 없다. 지금이야말로 남북 최고 책임자가 다른 모든 문제에 앞서 이 문제 해결을 위한 획기적 결단을 내려야 할 시점이다. 또한 이산가족 문제의 인도주의적 특성이나 남북 사이에 형성된 공감대 등으로 볼 때, 지난 5년의 남북관계 공백을 메우고 또 다른 협력 사업으로 넘어가기 위한 디딤판으로도 이보다 좋은 어젠다가 없다. 금강산을 살리기 위한 현실적인 방도이기도 하다. 즉 금강산을 단순히 관광을 위한 땅이 아니라 남북 이산가족의 만남과 결합을 위한 땅으로 만들어갈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남문희 대기자  |  bulgot@sisain.co.kr

2012년 12월 17일 월요일

북한 미사일 왜 하필 지금인가


이글은 시사IN 2012-12-17일자 기사 '북한 미사일 왜 하필 지금인가'를 퍼왔습니다.
북한의 위성 발사 시점은 김정일 전 위원장 1주기인 12월17일이 유력하다. 제수용품이라는 말도 있지만 굳이 한·일의 선거 즈음에 쏘아야 하는지 의문이 증폭되고 있다. 미국을 겨냥했나, 경제적 필요 때문인가.

북한이 또다시 위성 발사 카드를 꺼내들었다. 그런데 그 발사 시점이 미묘하다. 12월10일부터 22일 사이 평안북도 철산군 서해위성발사장에서 남쪽 방향으로 자체의 힘과 기술로 개발한 실용위성을 쏘겠단다. 물론 그 사이 김정일 전 위원장 사망 1주기인 12월17일이 있다. 현재 예상으로는 이날이 가장 유력하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1주기 제사에 바치는 제물’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그 전날인 12월16일은 일본 총선이다. 이번 일본 총선은 2009년 신자유주의 심판을 내걸고 돌풍을 일으켰던 민주당 정권에 대한 역심판과 극우 정당들의 득세로 점쳐진다. 이를 계기로 일본은 군비 재무장의 길로 들어설 것이다. 그리고 3일 후인 12월19일이 한국 대선이다. 이미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는 ‘북한 핵 미사일의 무력화를 위한 억지력 강화’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이런 미묘한 시점에 북한이 미사일인지 위성인지 헷갈리는 물체를 발사하면, 일본과 한국의 선거판에서 군비 확산파에게 힘이 쏠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물론 그동안 북한은 이번 한국 대선에 대해 자신들은 절대 개입하지 않을 것이며, 엄정 중립을 지킬 것이라는 방침을 직간접으로 밝혀왔다. 얼마 전 이 남측 대선에 개입하는 듯한 논평을 냈을 때, “조평통 소속 개인의 생각일 뿐 정부 입장은 아니다”라고 베이징의 북한 측 인사들이 해명한 적도 있다. 그런 마당에 남한 대선을 코앞에 두고 북한이 또다시 위성 발사 소동을 일으키는 이유는 무엇일까?

김정일 위원장 1주기용 제수용품이라는 것만으로는 뭔가 부족하다. 북한 소식통들을 통해 전해진 북한 내부의 설명은 두 가지로 모아진다. 첫째는 그동안의 북·미 접촉과 관련된 측면이다. 미국이 북한과 비공식으로 접촉하는 과정에서 모종의 약속을 해놓고 이를 지키지 않아 북한이 이제 실력으로 보여줄 수밖에 없게 됐다는 것이다.  미국, 한국 대선 핑계로 북·미 협상 미뤄?

이 얘기는 지난 4월13일 광명성 3호 발사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1주일 전인 4월7일 미국의 고위급 인사가 괌에서 공군기를 타고 비밀리에 북한으로 들어갔다. 당시 미국 정찰위성 정보에 따르면 13일 발사될 북한 로켓의 사정거리가 미국이 우려할 만한 수준이어서 자칫하면 오바마의 재선에까지 악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고 한다. 미국 측 고위 인사의 극비 방북이 이런 맥락에서 이뤄졌고, 그는 당일 협의를 끝내고 돌아가면서 북한 측에 고맙다는 뜻을 전했다고 한다. 그 1주일 뒤인 4월13일 새벽 북한은 수수께끼 같은 행보를 보였다. 로켓 발사를 참관하라고 불러들인 전 세계 80여 명의 기자를 따돌리고 새벽에 로켓을 발사한 것도 그렇고, 그 로켓이 채 몇 분도 안 돼 공중 폭발한 것도 여전히 의문이다. 북한 측 관계자들 중에는 기술은 되는데 자금이 부족해 값싼 부품을 사용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기도 하나, 복잡한 정치적 맥락이 있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끊임없이 나왔다. 

바로 그 시점에 북한이 미국 측에 평화협정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북·미 간 협상 테이블을 10월 이전에 열자고 요구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약속이 지켜지지 않을 경우 그때 가서 다시 로켓(미사일)을 발사하거나 핵실험을 재개할 것이라고 언명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 뒤로 북·미 간에 비공식 접촉이 이어졌다. 그러더니 지난 11월9일 북한 국방위원회가 한·미 미사일지침 개정을 비난하면서 내놓은 대변인 성명에서는 북한이 그동안 미국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와 중앙정보국(CIA) 측과 접촉한 사실이 거론되기도 했다. 

그중에서 특히 7월 말, 8월 초의 접촉이 중요했던 것 같다. 소식통들에 따르면 당시 접촉에서 미국은 평화협정 협의와 관련한 북한의 요구에 대해 미국 대선이 끝나면 가능할 것처럼 답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막상 대선이 끝나자 이번에는 한국 대선을 핑계로 ‘기다리는 전략’ 모드로 돌아갔다고 한다. 그래서 북한이 이번 위성 발사를 통해 ‘핵탄두가 미국까지 도달할 수 있음을 입증하고 미국을 평화협정의 협상무대로 끌어들이려 한다’는 것이다. 

또 한 측면은 북한의 발표 내용 그대로다. 북측은 이번에 발사할 인공위성이 ‘자체의 힘과 기술로 개발한 실용위성’이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그동안 유엔 등 국제무대에서 자국이 우주에 대한 평화적 이용 권리를 갖고 있다고 거듭 주장했다. 우주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실용위성 발사는 오늘날 모든 나라의 숙제다. 국력의 과시가 아니라 산업 및 경제 발전,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과제이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이 주도하는 위성항법시스템(GPS:Global Positioning System)에 대한 의존에서 벗어나려는 국제사회의 도전이 치열하게 전개된다. 이미 러시아가 독자적으로 글로벌 위성항법시스템(GNSS:Global Navi–gation Satellite System)인 글로나스(GLO NASS) 구축에 한발 다가섰고, 유럽의 갈릴레오(Galileo), 중국의 베이더우(北斗·영문명 COMPASS), 일본의 준천정(準千頂·QZSS) 등이 국가 프로젝트로 진행 중이다.

GPS는 원래 미국 국방부에서 폭격의 정확성을 높이기 위해 군사용으로 개발한 시스템이다. 그러다가 클린턴 정부 시절인 2000년 GPS의 정밀도를 제한하기 위해 도입했던 SA(Selective Availability:선택적 유용성)를 해제하면서, 민간의 위치 정보 정밀도가 크게 높아졌다. 그로부터 자동차용 내비게이션이나 스마트폰 등에 폭넓게 활용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과거 이라크 전쟁에서 보듯 미국이 언제든 SA를 재도입할 수 있기 때문에 각국이 미국 시스템에만 의존할 경우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 독자적 시스템 구축에 나서는 것이다. 

미국과 맞서는 북한에게 이는 더욱 절실한 안보상의 과제로 보인다. 북한은 그동안 타이의 록슬리 사가 제공하는 위성 정보를 활용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최근 북한 내 수요가 증가하면서 한계에 봉착했다고 한다. 더군다나 내년부터 경제 산업 발전이 본격화할 경우 그 수요가 더욱 증대하리라 예상되기도 한다. 즉 위성이 가진 산업적·안보적 측면이 북한에게도 절실하게 제기돼온 것이다. 

그렇지만,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왜 하필 지금인가. 김정일 위원장 1주기에 맞춘 제수용품이라는 설명은 사실 표면에 드러난 얘기일 뿐, 실제 북한 내부에서 나오는 얘기는 내년에 새 출발을 하기 위해, 국제사회의 온갖 제재를 받는 올해 차라리 해치우는 게 낫다는 것이다. 즉 일본 총선이나 남한 대선과는 무관한 자신들 내부 일정 때문이라는 의미다. 그러나 그들 말대로 과연 북한의 위협적 행동과 주변국의 선거가 무관할 수 있을까. 1990년대 이후 북한의 주요 군사적 행적을 보면 미국 군산복합체와 그 주행 방향이 일치해온 경우가 여럿 발견된다. 다만 그것이 ‘적대적 공존’ 때문인지, ‘적대를 가장한 공생 관계’이기 때문인지가 여전히 의문일 뿐이다. 

남문희 대기자  |  bulgot@sisain.co.kr

2012년 10월 12일 금요일

노무현-김정일 '비밀녹취록', 노림수는…


이글은 프레시안 2012-10-11일자 기사 '노무현-김정일 '비밀녹취록', 노림수는…'을 퍼왔습니다.
소모적인 논쟁 끝내고 대북정책을 검증해야

새누리당 정문헌 의원이 제기한 2007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 발언과 비밀녹취록 존재여부에 대한 의혹과 관련해 북한 전문가들은 실체가 없는 사실을 갖고 정치공작을 벌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장용석 선임연구원은 "비밀회담, 단독회담이 없다면 비밀 녹취록도 없는 것이 당연하다. 정 의원이 제기한 의혹은 사실관계부터 잘못된 것"이라고 말했다.

장 연구원은 정 의원의 의혹 제기를 '신(新)북풍 정치공작'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이전의 북풍공작이 북한의 도발이나 발언으로 시작된 것이었다면, 지금의 북풍은 북한의 별다른 움직임이 없는 상태에서 여당의 국회의원이 특정인의 국가관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방식"이라며 "국가관, 특히 안보관을 지적하면서 이념공세를 펼치고 있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경남대 이수훈 교수는 이번 의혹 제기가 문재인 후보를 흠집 내기 위한 정치적 공세의 성격이 강하다고 분석했다. 이 교수는 "2007년 남북정상회담 추진위원장을 맡았던 문재인 후보가 (정 의원이 제기한 의혹과 관련한) 사항을 다 알고 있었다는 것을 연결고리로 삼아 문 후보를 흠집 내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어제(10일) 정상회담을 관장한 이재정 전 통일부장관, 김만복 전 국정원장, 백종천 전 청와대 안보실장이 비밀녹취록은 없다고 말했다"라며 "터무니없고 소모적인 정치공세를 중단하고 대북 정책에 대한 객관적 평가, 정책을 통한 공정한 경쟁으로서 이 논란을 마무리 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 2007 남북정상회담 3일째인 4일 오후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열린 환송오찬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청와대 사진기자단

인제대 김연철 교수는 의혹을 제기한 정문헌 의원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교수는 "의혹의 사실관계가 중요한데 정 의원이 제기한 의혹이 사실이 아니다. 이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이어 "설령 정 의원이 대통령실의 통일비서관이라는 자신의 직분을 이용하여 정상회담의 대화록을 봤다고 해도 이를 공개하는 것은 법적으로, 외교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항"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대외 정책과 관련한 비밀사항을 공개하는 것은 불법이다. 그런데 정 의원이 정치적 필요에 따라 공개한 것이다. 이것이 면책특권에 해당되는 사항인지 검토를 해봐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일반 정치인이 이러한 의혹을 제기했어도 색깔론을 들고 나오는 구태정치의 반복으로 비춰질 수 있는데, 정 의원의 경우는 전직 신분을 이용해 얻어낸 정보를 정치적 정쟁으로 활용한 것으로 색깔론보다 더 질이 안 좋은 사례"라며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이와 같이 대외· 외교 정책의 기본을 훼손한 사례가 없다"고 성토했다.

경남대 이수훈 교수는 현재의 소모적인 논쟁을 속히 마무리하고 대북 정책에 대한 철저한 검증으로 넘어가야 한다고 언급했다. 이 교수는 "터무니없고 소모적인 정치 공세를 중단하고 여야 후보의 대북정책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를 해야 할 때"라며 "정책을 통한 공정한 경쟁으로서 이 논란을 마무리 지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문 후보뿐만 아니라 박근혜 후보의 대북 정책과 공약도 검증해야 한다. 그것을 평가받고 이로부터 유권자들의 지지를 구하는 정치를 펼치는 것이 올바른 방향이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이 교수는 "자칫 국익을 훼손할 가능성이 있고 국민들을 호도시킬 위험이 있는 이런 의혹 제기를 빨리 끝내고 생산적인 논의를 하는 대선국면으로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비밀녹취록 의혹, 여야 정치권 논쟁으로 이어져

새누리당은 정 의원이 제기한 비밀녹취록과 노 전 대통령의 NLL 발언 의혹과 관련, 이를 '대북게이트'로 규정하고 '대북게이트진상조사특위'를 구성하는 등 총공세에 나섰다. 새누리당 이한구 원내대표는 10일 기자간담회를 열어 문재인 후보가 당시 녹취록을 인지했는지, 지금 입장은 어떤지 밝혀야 한다며 문 후보를 압박하는 한편 이와 관련한 국회 국정조사 실시를 촉구했다.

이에 민주통합당 박지원 원내대표는 11일 새누리당의 국정조사 실시요구에 "녹취록이 사실로 확인되면 국정조사를 하겠다"며 "새누리당이 녹취록을 봤다면 공개하라"고 `역제안'했다. 그는 "단연코 단독회담은 없었고 녹취록 또한 없다"며 "새누리당이 박근혜 후보의 지지가 하락하자 색깔론으로 민주당을 공격하고 있다. 국면전환용으로 이러한 정치공세를 펴는 것은 전근대적 색깔론"이라고 비판했다.

 /이재호 기자

2012년 10월 4일 목요일

“버림받은” 10.4선언, 차기 정부에선 살아날까?


이글은 민중의소리 2012-10-04일자 기사 '“버림받은” 10.4선언, 차기 정부에선 살아날까?'를 퍼왓습니다.

2007년 남과 북의 정상인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고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10.4정상선언(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에 서명한 지 5년이 흘렀다. 

임기 초반부터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을 부정한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10.4선언의 합의들은 빛을 보지 못했다.

최근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 있었다. 꽃게잡이 철을 맞아 서해 NLL(북방한계선) 주변에서 조업하던 북측 어선들이 자주 NLL을 넘어왔고 지난달 21일 우리 해군이 북측 어선에 경고사격을 가하면서 서해상 긴장이 높아진 것.

우리 정부는 북 어선의 잇단 NLL 침범을 12월 예정된 대선 개입 시도라고 보고 즉각 중단할 것을 촉구했으며, 북측은 NLL이 미군이 일방적으로 설정한 ‘유령선’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하면서 “우리 군대와 인민은 서해를 대결과 충돌, 전쟁의 도가니 속에 몰아넣으려는 그 어떤 시도도 철저히 짓부숴버릴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처럼 서해 NLL을 둘러싼 군사적 긴장은 서해가 언제든 군사적 충돌이 빚어질 수 있는 화약고임을 보여준다. 아울러 서해에 ‘공동어로수역’을 지정하고 ‘평화수역’으로 만들어가자는 10.4선언의 합의를 돌아보게 한다.

ⓒ민중의소리 자료사진 2007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악수를 나누는 두 정상.

MB정부 5년, 사문화된 10.4선언

10.4선언에는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와 개성공단 2단계 개발, 이산가족 상시상봉, 국방장관회담 재개 등 남북관계의 모든 영역을 망라하는 8개항의 합의가 담겨있다. 

특히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구상은 노무현 전 대통령 자신이 10.4선언을 보고하는 자리에서 “가장 진전된 합의”라며 “박수 한 번 더 치자”고 할 정도로 큰 성과였다.

서해에서 군사충돌이 끊이지 않았던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 같은 충돌의 기저엔 해상경계선에 대한 남북의 입장차가 존재한다. 북은 1953년 유엔군 측이 일방적으로 그은 북방한계선(NLL)을 무효라고 주장해왔다.

그런 의미에서 10.4선언은 남북은 양측의 군사력이 밀집돼있는 서해를 평화적으로 함께 관리하자는 새로운 접근법을 내놓았던 셈이다.

더 나아가 10.4선언에는 해주지역과 주변해역을 포괄하는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를 설치하고 공동어로구역과 평화수역 설정, 경제특구건설과 해주항 활용, 민간선박의 해주직항로 통과, 한강하구 공동이용 등을 통해 군사분계선 일대에 민족공동의 번영을 위한 대규모 협력지대를 건설하겠다는 전망이 담겨있다.

이외에도 10.4선언은 개성공단 2단계 개발 등 남북경제협력의 확대, 사회문화 분야의 교류와 협력, 이산가족 상봉 상시화 등 인도적 협력사업 등 다방면에서 실천적인 이행방안을 담고 있다.

그러나 남북경협의 상징인 금강산관광은 중단됐고 개성공단 2단계 사업은 멈췄으며 ‘5.24조치’ 이후 남북 교류협력 사업은 중단된 상태다. 명맥을 유지해왔던 이산가족 상봉행사도 상시화는 커녕 연평도 사건 이후 남북관계 악화로 2년 가까이 중단됐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서 한 차례씩 진행됐던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10.4선언은 ‘수시로 만나 협의하자’는 약속을 담았으나 이 약속은 현재까지 지켜지지 않고 있다.

차기 정부에서 불씨 살아날까?

사그라진 10.4선언의 불씨는 차기 정권에서 살아날 수 있을까. 

현대경제연구원이 지난 8월 남북관계 전문가 11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진보, 중도, 보수를 막론하고 현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를 유지해야 한다고 답한 전문가는 0명이었다. 또 전문가들 87.5%는 차기 정부가 역대 남북 정부 간 주요 합의를 계승해야 한다고 답했다. 

실제 유력 대선후보로 꼽히는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후보 모두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과 차별화를 시도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명박 정부 들어 대북압박 일변도의 정책으로 불안정해진 남북관계를 정상화해야 한다는 인식이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가 가장 적극적이다. 문 후보는 2007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추진위원장을 맡아 정상회담을 진두지휘한 경험이 있다.

문 후보는 6.15선언과 10.4선언을 실천하고 김대중.노무현 정권 10년의 대북 평화협력 정책을 계승.발전시키겠다는 입장이며, 핵심 공약으로 ‘남북경제연합’을 내세우고 있다. 또한 그는 임기 첫해에 남북정상회담과 이산가족 상봉을 추진하겠다고 약속했다.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조차 역대 정권에서 이뤄진 남북 합의는 지켜져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와 만날 수 있다는 언급을 하기도 했다. 

박 후보는 “10.4선언 같은 경우는 이행에 있어 재정이 많이 소요되고 국회 동의도 받아야 하고 민간이 할 일도 있고 그렇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합의한 걸 지킨다는 틀은 우리가 하지만 세부적인 것은 여러 가지 동의도 받고 조정해야 될 것”이라고 부연했다.

그러나 박근혜 후보의 경우 6.15-10.4선언을 존중한다는 발언으로 보수 언론과 논객의 강한 질타를 받은 바 있어, 보수층을 지지기반으로 하고 있는 박 후보가 실제 화해협력정책을 어느 정도까지 펼칠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무소속 안철수 후보는 대북 포용정책과 안보태세 강화, 균형 외교를 3대 축으로 제시하고 있다. 다만 안 후보의 대북정책은 아직 구체화하지 않아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8년 ‘10.4선언 1주년 기념식’에서 10.4선언을 “버림받은 선언”이라고 부르며 안타까워했다. 이 버림받은 선언은 ‘잃어버린 5년’을 지나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

정지영 기자 jjy@vop.co.kr

2012년 7월 8일 일요일

남한은 온통 빨갱이 천국


이글은 한겨레신문 조현 기자 블로그 밧님글방 휴심정 2012-07-06일자 기사 '남한은 온통 빨갱이 천국'을 퍼왔습니다.

빨갱이 논쟁 

저는 한국의 진보보수논쟁을 지켜 볼 때마다 "양측 다 전투를 이기려고 열심히 싸우는 사병들만 득실거리지 전쟁을 이기려는 장수들의 없구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논쟁들이 동네 골목대장 내지 군 분대장, 소대장급 수준을 못 벗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남북관계에 정작 필요한 것은 국지전투에 이기기 위한 전술이 아니라 전쟁을 이기기 위한 전략입니다. 전쟁에 이기기 위해서는 수십번씩  전투에서 져주기도하고, 중요한  고지를 포기하고 퇴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큰 지도를 읽을 수 있는 안목과 때를 알아 보는 통찰력과  기다릴 줄 아는 인내심이 필요합니다. 이것들이 지도자들이 필수적으로 갖추어야 할 자질이고 그릇입니다.  

전쟁에서 적의 큰 장점을 오히려 적의 큰 단점이 될 수가  있습니다. 

빨갱이 논쟁은 한국보수가 선거때 마다 사용해 온 보검입니다. 6.25 를 경험하고 기억하고 있는 한국인들의 정서에 가장 효과적으로 먹혀 들어가는 원자탄급 무기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이번 선거에도 틀림없이 사용할 것입니다. 아니 빨깽이 논쟁은 이미 극보수주의자들이 용의주도하게  문을 열었습니다. 불안한 중도세력들이 보수로 돌아서고, 진보세력은 방어적 수세로 몰리고 있습니다. 
내부 분열 조심도 보입니다.   

그러나 빨갱이 논쟁처럼 한국보수에게 치명적인 약점도 없을 것입니다. 한방 맞으면 쓰러질 한국보수세력의 정수리가 바로 빨갱이 논쟁입니다. 

한국의 보수는 김대중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 시절을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믿고, 또 그리 떠들고 있습니다. 이는 역사에 대한 무지의 소산이 아니라 상식에 대한 무지의 소치입니다. 어찌 인생에 잃어버린 시절이 있고, 역사에 잃어 버린 시대가 있을 수  있다는 말입니까 ?

세살 먹은 삼척동자도 그럴 수 없다는 것을 빤히 알고 있습니다. 설령 그동안 대한민국 사람들이 모두 잠을 자고 있었다고 해도 
잃어버린 세월일 수는 없습니다. 지난 역사는 가정이 아니라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그동안 대한민국이 오히려 세계경제 10 강국으로 성장하지 않았습니까? 

나는 개인적으로 보수도 아니고 진보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중도도 아닙니다. 그 이상입니다. 

다만 가끔씩 한국의 보수들이 보내오는 악성 이메일들을 읽으면서 분노를 느끼곤 합니다.  지나간 바람으로 풍차를 돌리려 하고 흘러간 물로 물래방아를 돌리려 하는 그들의 무지를 좀처럼 이해 할 수도 없습니다. 그들 보내준 이메일 주요 내용은 이렇습니다. 

"한국전직 두 대통령, 김대중, 노무현은 북한에 동조하는 빨갱이었다. (심지어는 북한 김일성의 유급간첩이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한국의 국민들 절반, 그리고 대부분 젊은이들은 친북, 종북세력이다." 

시골 동네 골목대장이나  군에서 분대장이라고 제대로 한 번 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감히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없습니다. 적어도 제 경험으로는 그렇습니다. 아무리 작은 조직이라도 일단 지도자가 되면 누구보다 그 조직을 사랑하고  애착을 갖게 되는 것이 인간입니다. 하물며 적과 싸우면서 자기편보다 약한 적에게 스스로 무릎을 꿇고 항복하는 지도자는 여지껏 본적이 없습니다. 

한국의 대통령 자리가 어떠한 자리입니까?  일국의 왕에 버금가는 명예와 권력을 누리는 영광스런 자리입니다. 그래서 사람이면 누구나 꿈에서라도 한번쯤 해 보고 싶어 하는 자리가 대통령입니다. 그런 대한민국 대통령이 어찌 북한 김정은의 똘만이를 스스로 자청한다는 말입니까?   

한국 젊은이들만 해도 그렇습니다. 국민소득 년 2만불에,  세계 어느나라 못지않게 풍요와 자유를 누리고 있는 한국젊은이들입니다. 
그들이 모두 정신병 환자들입니까? 국민소득이 겨우 몇천불도 되지 않는 북한사회를  그리워하게.

그렇게 열등의식과 패배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 한국의 보수세력입니까?  자신들의 자녀들, 후배, 형제자매들까지 믿고 신뢰하지 못 할 정도로... 10대 세계경제 대국의 신화를 이끌고 있는 사람들은 죽은 이승만, 박정희가 아니라 바로 당신들이 빨갱이로 몰고 있는 한국의 젊은이들입니다. 그들이 자랑스럽지 않습니까? 

아주 솔직하게  이야기 해 봅시다. 전직 대통령들, 남한 국민들 절반 이상, 한국의 젊은이들을 빨갱이, 친북, 종북세력으로 몰아서 가장 이익을 보는 세력이 과연 누구입니까? 두말할 것도 없이 김정은이 이끄는 북한독제정부입니다. 그들은  골치 아프게 굳이 북한주민들이나 남한국민들을 상대로 심리전같은 것을 할 필요도 없습니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남한의 보수세력들이 정성 스럽게 빨갱이 밥상를 차려 바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신있는 목소리로 이렇게 외치기만 하면 됩니다.  

"보라, 남한은 온통 우리들의 빨갱이 천국이다. 전직 두대통령들도 우리 빨갱이었다. 남한 국민들의 절반 이상, 대부분 남한 젊은이들은 우리 북한사회를 동경하고 그리워 하는 빨갱이들이다. 이것은 우리 억지 주장이 아니다. 남한 주요 일간지와 남한 정부가 인정하는 통계적 자료다  " 

물론 그 이전에, 한국보수세력은 공포와 두려움으로 떨고 있는 국민들의 지지로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겠지요. 전투에서. 

그러나 이 빨갱이 논쟁들이야 말로 북한을 이롭게 하는 이적행위가 아닙니까? 정권을 위해서 남한을 북한에 팔아먹는 매국행위가 아닙니까? 

한국의 현행 반공법으로 처벌되어야 할 사람들은 바로 빨갱이 논쟁을 벌여 북한을 이롭게 하고 있는 이들 보수세력들이 아닙니까? 
그리고 간첩행위로 일차적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할 사람은 그들의 수괴 조깝대기와 김똥통길 아닙니까? 김정일, 김정은을 가장 기쁘게 하는 기쁨조 명목으로 말입니다. 

(당당뉴스) 박평일 기자 bpark7@cox.net

2012년 6월 13일 수요일

보수언론도 ‘역북풍’…김정일 칭찬‧선물공세 행적 도마


이글은 뉴스페이스 2012-06-13일자 기사 '보수언론도 ‘역북풍’…김정일 칭찬‧선물공세 행적 도마'를 퍼왔습니다.
네티즌 “임수경 씹더니 지들이 진짜 빨갱이잖아?” 성토

보수언론이 ‘종북몰이’ 융단폭격을 하고 있지만 과거 언론사 대표들이 방북 당시 북한 지도자에 대해 긍정적인 발언을 했던 사실이 재주목되며 질타를 받고 있다. (동아일보)는 북한이 큰 자랑으로 여기는 김일성 주석의 ‘보천보 전투’를 보도한 자사 기사를 담은 금동판을 선물로 주기도 했다. 

13일 (한겨레)에 따르면 2000년 8월 남한의 언론사 대표들이 대거 북한을 방문했을 때 한 보수언론사 대표는 김정일 위원장에게 “호탕하십니다”, “참인간이십니다”, “세계 그 어디에 나서셔도 단연 제일이십니다” 등의 발언을 했다고 북한의 월간지 (금수강산)2000년 8월호는 보도했다. 

또 1998년 10월 방북한 동아일보사 취재단은 김일성 주석의 항일무장투쟁인 ‘보천보 전투’를 보도한 (동아일보)기사를 담은 금동판을 선물했다. 보천보 전투는 1937년 김일성 주석이 중국에서 항일운동을 하다가 한반도내에서 처음으로 일본군과 싸운 전투이다. 북측에서는 “조국 땅에서 울린 첫 총성”이라며 큰 자랑으로 여기고 있는데 (동아)가 이를 다룬 자사의 기사를 금 1.2kg을 들여 제작해 북한에 선물로 바친 것이다. 

ⓒ 기자협회보 화면캡처

2007년 12월 4일 기자협회보에 따르면 김정일 선물관에는 남측에서 준 각종 선물이 전시돼 있으며 남측 언론사 가운데 선물을 준 곳은 (동아),(중앙),(한겨레) 였다. 

기자협회보는 “동아의 금인쇄원판 진열대에는 ‘보천보전투소식을 소개한 동아일보’라는 제목과 그 아래에는 남조선 동아일보사 취재단 1998.10.26로 적혀 있었다”고 전했다. 

또 기자협회보는 “1998년 9월15일에 당시 홍석현 중앙일보 사장과 호암미술관 홍라희 관장이 준 보석이 박힌 손목시계(북측은 싯가 1천만원 상당주장)가 전시돼 있었다”며 “한겨레가 2001년 2월8일과 9월17일 두 차례 방문당시 준 나무밥상, 만년필, 한겨레 창간호 동판 등 3점의 선물도 진열돼 있었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북한측은 전람관 내부의 사진을 찍지 못하게 했지만 진열된 선물의 사진이 담긴 팜플릿을 10유로에 팔았다며 (동아)의 금 인쇄원판 선물 사진을 공개했다. 

북한대학원대학교 양무진 교수는 (한겨레)에 “남의 나라를 방문해 그 나라 지도자에게 경의를 표시하고 선물을 전달하는 것은 상식적인 일”이라며 “남한의 비이성적인 종북 논란이 방북 발언이나 선물을 둘러싼 논란으로 번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새누리당과 박근혜 의원, 보수언론의 ‘종북 공세’에 북한이 “박근혜, 정몽준, 김문수 등이 우리에게 우리에게 와서 한 말들을 모두 공개하면 남조선 사람들이 까무러치게 될 것”이라고 주요 인사들의 방북 행적 공개 가능성을 거론한 가운데 보수신문의 이같은 이중적 태도는 도마 위에 올랐다(☞ 관련기사).

앞서 북측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은 11일 공개질문장을 통해 “동아일보사는 보천보전투 소식을 전한 당시의 보도기사 원판을 만들어가지고 우리를 찾아왔다”면서 “KBS, SBS, 중앙일보 등 언론사 사장들은 평양을 방문해 우리 최고수뇌부의 접견을 받고 축배까지 들었다, (언론사 사장들은)주체사상탑 등을 돌아보고 공감을 표시했다”고 주장했다.

네티즌 ‘이젠대통령*****’는 “보수언론이 김정일을 찬양했다고,.참 아이러니하구먼. 수구꼴통들의 마음은 알 수가 없다니까!”라고 혀를 찼다. 

‘토**’는 “뭐야~여태껏 빨갱이 타령에 날밤 새우는 줄 모르던 조중동이 진짜 빨갱이잖아? 세계 그 어디에 나서도 단연 제일? 그런 놈들이 빨갱이 타령을 그리 해댔냐? 얼척없네. 종북신문 조중동을 폐간시켜라”라고 비판했다. 

‘sai***’은 “보수 꼴통 찌라시 사장들은 선물을 건네면서 입술에 침도 안 바르고 아부와 아첨하기에 바빴다는 것이 사실이구만. 그러면서 돌아와서는 입에 거품을 물면서 험담을 했고”라며 “이중인격자들이 찌라시들이지, 단언컨대 저 찌라시 사장들 북한에 또 간다면 또 그 짓거리들 할 것이다”라고 성토했다.

‘dnflrk*******’은 “김일성 찬양하는 금동판 선물 한 넘들이 북한 가서 북한사람들 탈북 마음먹게 한 임수경이는 욜라 10었구만”이라며 “임수경이는 남한에 대한 환상을 북한 인민들에게 심어나 주구 탈북을 유도나 했지. 도대체 이 빨갱이 세키들은 무신 돈으로 저렇게 선물을 상납한 거여”라고 비난했다. 

‘게으***’는 “‘김정일에 참인간이십니다’라고 한 보수언론 대표는 찬양고무죄를 적용해야 합니다”라며 “저런 인간이 보수언론 대표라니 말세가 가까워진 것 같군요”라고 비판했다.

네티즌 ‘동물**’은 “동아일보는 권력 해바라기, 친일도 종북도 서슴없다”고 일갈했고 ‘세**’는 “조선 동아일보는 일본에 충성했던 인간들 아니냐? 만약 북한이 적화통일 성공했었다면 지금쯤 북한로동신문 더했으면 더했겠지”라고 비꼬았다. 

‘눈꽃**’는 “조중동은 진짜 보수언론이 아니다. 지들의 기득권을 위해 언론을 도구로 쓰고 있을 뿐....보수를 가장한 친일 친미 뉴라이트 꼴통언론이 맞지”라며 “진정 나라를 사랑하고 국민을 생각하는 보수의 의미는 조중동에 눈곱만치도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조중동에 속지말자. 폐간만이 답이다”라고 맹성토했다.

이진락 기자

2012년 6월 8일 금요일

다시 춤추는 매카시즘의 망령


이글은 프레스바이플 2012-06-07일자 기사 '다시 춤추는 매카시즘의 망령'을 퍼왔습니다.
(긴급진단)

 ▲ 공산주의의 잠재적인 위험을 경고하는 Catechetical Guild Educational Society의 어느 만화책. 1947년.(출처=위키백과)
한국사회에서 수구보수세력이 오랫동안 사용해온 정치적 무기 가운데 하나로 매카시즘이 있다. 매카시즘은 미국의 연방 상원의원 조지프 레이먼드 매카시의 이름을 딴 것이다. 그는 1950년 “국무부에 고용된 공산당원들과 스파이단원들의 명단을 가지고 있다”라고 발표하면서 미국을 ‘빨갱이 공포증’으로 몰아넣기 시작했다. 매카시는 트루먼 행정부의 국무부, 방송, 미 육군에 공산주의자들이 침투해 있다고 계속 비난했다.
매카시즘의 광풍은 꼬박 4년 동안 미국의 정계는 물론이고 문화예술계까지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매카시는 ‘마샬 플랜’의 창시자인 국방장관 조지 마샬이 205명의 ‘알려진 공산주의자들을 품고 있다’고 공격했다. 중공군이 북한을 도우려고 한국전쟁에 참여했을 때, 유엔군 총사령관이던 더글러스 맥아더가 “중국 땅에 원자폭탄을 터뜨리자”고 정부에 건의하자 트루먼 대통령은 단호히 거부하고 맥아더를 해임했다. 그때 매카시는 트루먼을 향해 “그 개자식은 탄핵당해야 한다”라고 극언을 퍼부었다.
매카시 트루먼에게 "그 개자식은 탄핵당해야 한다"
매카시는 1953년에 ‘정부활동조사위원회’ 책임자가 되어 육군 안의 ‘공산주의자들’을 색출하려고 나섰으나 아무런 증거도 찾지 못했다. 반격에 나선 육군이 1954년 초에 매카시를 고발하자 그는 4월에 위원장 자리에서 물러났다. 간염을 앓다가 1957년 5월 세상을 떠난 그가 미국과 세계에 남긴 ‘유산’은 맥카시즘이라는 파괴적 ‘정치공학’뿐이었다.
18대 대통령 선거를 6개월 남짓 앞둔 한국 사회에 매카시즘의 광풍이 몰아치고 있다. 통합진보당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에 당선된 이석기·김재연 씨가 ‘주사파’이자 ‘종북주의자’라는 주장이 2012년에 맥카시즘 망령을 되살리기 시작했다. 게다가 민주통합당 임수경 의원이 술자리에서 청년탈북자에게 했다는 ‘폭언’이 매카시즘에 기름을 퍼부었다.
새누리당과 보수언론은 이석기·김재연·임수경 의원을 ‘종북 주사파’로 몰아붙이는 데 그치지 않고 민주통합당 대표 경선에 나선 이해찬 상임고문의 ‘사상을 검증해야 한다’고 나섰다. 그는 새누리당이 국회에 제출한 ‘북한인권법안’에 대해 “남북한을 고려한 법안이 아니라 일부 극우 보수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를 돕는 ‘삐라 지원법’으로, 남북관계를 악화시킬 뿐 아니라 실효성도 없는 것”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황우여 이해찬에게 "사상을 검증해야 한다" 
이 상임고문은 새누리당의 황우여 대표가 이석기·김재연 의원을 국회에서 제명하자고 주장한 데 대해서도 “한 국가의 큰 당을 이끌어가는 사람이 상대당 의원의 사상과 국가관을 검증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망언’”이라고 공격했다. 황우여 대표는 이해찬 상임고문의 발언을 두고 “과연 대한민국 헌법을 수호하는 국회의원으로서 자격을 갖추었느냐 심사하는 데까지 이를 수밖에 없다는 점을 말씀 드린다”라고 말했다.
이번의 ‘종북 공방전’에서 가장 눈길을 끈 주장 가운데 하나는 새누리당 전 비상대책위원장이자 유력한 대선 후보인 박근혜 의원의 발언이었다. 그는 6월 1일 “이석기·김재연 의원이 자진 사퇴하지 않으면 국회에서 제명해야 한다”라고 공언했다.

▲ (서울=뉴스1) 이광호 기자 = 19대 국회 개원일인 30일 오전 통합진보당 김재연 의원이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반값등록금국민본부 주최로 열린 '반값등록금 법안, 19대 국회 1호 통과 촉구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김 의원 뒤로 군복을 입은 한 시민이 종북 좌파의 국회입성을 반대하는 내용이 담긴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2012.5.30/뉴스1

나는 이번에 되살아난 매카시즘의 망령을 보면서 이렇게 생각을 정리했다.
먼저,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경선에서 일어난 부정행위와 관련해서 혁신비상대책위원회의 사퇴 권고, 그리고 서울시당의 제명 결정을 받은 이석기·김재연 의원의 사퇴 여부는 두 사람이 스스로 결정할 일이다. 그들이 어떤 ‘종북행위’를 했는지에 관한 명확한 증거도 없이 ‘주사파’라고 보면서 국회에서 제명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전형적인 매카시즘이다.
임수경 막말이 불러온 "통일운동은 종북" 
다음으로, 임수경 의원이 술자리에서 백아무개라는 청년을 상대로 탈북자들을 비하하는 말을 한 것은 분명한 잘못이다. 북한 땅을 버리고 남한으로 온 동기가 무엇이든 간에 그들은 ‘망명자’로서,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 인권을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임 의원이 폭언을 했다는 사실 때문에 1989년에 북한을 방문해서 통일운동에 헌신적으로 기여한 일까지를 ‘종북’으로 몰아붙이는 것은 매카시즘이다.
그리고 김대중 정부의 교육부장관, 집권당의 정책위 의장, 노무현 정부의 국무총리로서 ‘햇볕정책’ 실현과 남북 화해에 힘을 쓴 이해찬 의원의 사상을 검증하겠다는 것은 상식에 어긋날 뿐 아니라 민주통합당의 대표 경선에 참여한 그에게 상처를 입히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매카시즘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나는 새누리당과 보수언론의 ‘2012년 판 매카시즘’을 보면서 1972년 5월 4일 판문점을 통해 평양에 가서 김일성 주석을 만난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을 떠올렸다. 그는 남북관계 발전과 민족의 화해를 위해 목숨을 바칠 각오로 ‘청산가리를 몸에 감추고’ ‘대통령에게 보고하지 않은 채’ 김 주석을 만났다고 말했다.당시의 반공법 제5조 1항은 “반국가단체나 국외의 공산계열의 이익이 된다는 점을 알면서 그 구성원 또는 지령을 받은 자와 회합 또는 통신 기타 방법으로 연락을 하거나 금품의 제공을 받은 자는 징역 7년에 처한다”라고 명시하고 있었다.
그러나 박정희 정권은 ‘이적행위’가 될 수도 있는 이후락의 비밀방북을 ‘대통령의 초법적 통치행위’라고 옹호했다. 만일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기에 국정원장이 대통령의 재가 없이 평양에 가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났다면 한나라당과 보수언론은 ‘대통령의 초법적 통치행위’라고 보고 침묵했을까?
박근혜는 김정일이 보낸 특별기 타고 방북 
박근혜 의원은 이번의 ‘종북 논란’에서 사상을 의심받는 국회의원의 제명을 강하게 주장함으로써 ‘색깔론’이라는 보수세력의 해묵은 매카시즘을 대변하고 나섰다는 비판을 받았다. 만약 그가 대통령이 된다면 국회의원은 물론이고 공직자들의 사상을 일일이 검증하는 작업을 하겠다는 뜻인가?

▲ 사진출처 : 진중권 동양대 교수 트위터. / 김정일 "위대한 지도자의 자녀끼리 선친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자"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을 앞둔 2002년 5월 10일 박근혜 예비후보는 김정일 위원장의 초청으로 북한을 방문했다. 그는 중국 베이징에서 김 위원장이 보낸 특별기를 타고 평양으로 갔다. 그는 김 위원장과 단독 면담을 통해 남북 스포츠 교류,  김 위원장의 남한 방문과 박정희 전 대통령 묘소 참배 등 여러 가지 약속을 받았다고 한다. 박근혜 자서전 에는 그때 경험이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북한에 다녀온 이후 나는 남북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 그것은 바로 진심을 바탕으로 상호 신뢰를 쌓아야만 발전적인 현상과 약속을 기대할 수 있다는 점이다. 북의 눈치를 살피거나 정치적 계산에 밀려 신뢰를 쌓지 못한다면, 만난 횟수나 대화 시간은 무의미하다. 아니, 오히려 그런 식의 만남이 많아질수록 양측이 신뢰를 쌓을 가능성은 적어질 것이다”(203쪽)
박근혜 의원은 이해찬 전 국무총리와 민주통합당, 그리고 통합진보당도 ‘진심을 바탕으로’ 북한과 ‘상호 신뢰를 쌓으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점을 인정할 수 없는가? ‘내가 쌓는 신뢰는 로맨스’이고 ‘남이 그렇게 하면 불륜’이라고 본다면, 그것이야말로 전형적 매카시즘이 될 것이다.

김종철 (언론인)  |  cckim999@naver.com

2012년 6월 6일 수요일

"진짜 종북의 원조 '동아일보'?"


이글은 프레스바이플 2012-06-04일자 기사 '"진짜 종북의 원조 '동아일보'?"'를 퍼왔습니다.
김정일에게 금 1.2kg 신문 인쇄원판 선물…'중앙' 1천만원짜리 시계

▲ 보천보 전투 금 인쇄 원판. 북측 전람관 내부에서 사진을 찍지 못하게 해 현재 팸플릿에 담긴 사진으로 전해지고 있다. ⓒ 한국기자협회보

최근 통합진보당에서 민주통합당까지 '종북논란'을 이끌어 온 조선·중앙·동아일보 등 보수언론사들이 앞다퉈 과거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김일성 보천보 전투 기사 금 인쇄원판과 보석 시계 등의 고액 선물을 준 것이 보천보 전투 75주년을 맞은 4일 다시 불거지면서  파문이 일고 있다.
보천보 전투는 일제강점기 시절 항일운동에 대해 강경책을 써 한반도 내 독립투사가 신음하던 1937년 6월 4일, 김일성이 소수의 빨치산 부대를 이끌고 접경 지역의 자그마한 마을인 함남 보천보를 점령하고 관공서를 불 지른 사건이다.
이는 항일무장독립운동에서 김일성의 명성이 단번에 올라가는 계기가 됐으며, 북한에선 아직도 "조국 땅에서 울린 첫 총성"이라면서 김 전 주석의 용감함을 찬양하고 있다.
(동아일보)(당시 사장 김병관) 취재단은 1998년 10월 26일 방북해 김정일 위원장과 만나 김 전 주석의 보천보 전투 소식을 다룬 호외 신문기사를 금 1.2kg을 들여 원판으로 제작해 선물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묘향산 국제친선전람관에 전시돼 있다.
또 이에 앞서 같은 해 9월 15일에는 당시 홍석현 (중앙일보) 사장(현 회장)과 호암미술관 홍라희 관장이 준보석 박힌 손목시계를 김 위원장에게 선물했으며, 북측은 시가 1천만원 상당이라고 주장했다.
두 언론사가 이처럼 북한 최고 지도자의 환심을 사기 위해 엄청난 고가의 선물과 김일성을 사실상 찬양하는 선물을 주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앞다퉈 북한을 비판하고, 일부 국회의원에 대해 색깔론을 적용해 '종북세력'이라면서 원색적 비난을 퍼붓고 있는 것은 정말 아이러니라 할 수 있다.
실제로 북한은 이날 공개적으로 "이명박 역적패당은 아이들을 위한 이 경사스러운 조선소년단 창립 66돌 경축행사에도 심술사납게 찬물을 끼얹는 망동을 부리고 있다"며 조선·중앙·동아일보의 구체적 좌표를 공개하면서 "사과하지 않을 시 조준사격 하겠다"고 경고했다.
앞서 언급된 언론사는 '조선소년단 창립 66돌 경축행사'를 보도하면서 (동아)는 "北, 소년단 2만 명 ‘김정은 호위병’으로 양성", (조선) "北 김정은, 10대 환심 사려고 2만 명 미소년·미소녀를 불러…" 등의 기사 제목을 꼽았다.
그럼에도, 이 두 언론사는 이날 북한을 겨냥한 힐난을 쏟아붓고 있다. (동아일보)는 사설에서 "'민주당 주사파' 본색 드러낸 임수경 막말"이라는 제목으로 "민주당 내 주사파 종북세력의 실체를 검증할 필요가 있다"라면서 북한 추종세력이 국회에 입성할 수 없음을 분명히 했다.
(중앙일보)도 이에 질세라 사설 "19대 국회 내일 개원하라"라는 제목으로 "입법부에서도 64년 헌정사상 처음으로 적잖은 종북주사파가 진입하는 사건이 벌어졌다"라면서 색깔론에 입각한 비난을 쏟아냈다.
이를 본 트위터리안들은 "누가 누구를 욕한 것인가?", "원조 북한 추종인가?", "진짜 종북신문은 동아일보", "수구꼴통 논리대로라면 진짜 종북이 요깄네?", "이런 게 제대로 된 종북이다", "동아일보의 보천보 전투 금판 상납도 종북" 등으로 비아냥댔다.
앞서 트위터 여론에선 통합진보당 이석기 등 일부 국회의원에 대한 박근혜의 '종북검증 논란'이 일었다. 진중권 동양대 교수는 박근혜 새누리당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과거 방북해 김정일 위원장과 만난 뒤 함께 사진을 찍고, 그를 긍정적으로 평가한 것을 두고 "박근혜 위원장도 종북세력"이라는 멘션을 올려 논란이 벌어진 바 있다.
이는 '종북논란'이 얼마나 유치한 것인지를 보이기 위한 진 교수의 일갈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보수언론과 일부 트위터리안 사이에선 이석기 등 통합진보당에 이어 민주통합당까지 색깔론을 대입해 비난을 가하고 있다.
이를 본 트위터리안 will i****(@aris****)은"이 보천보 전투기사 동판에 폭탄을 숨겨서 금을 입혀 북한에 기증한 다음 폭파시켰다면 칭찬할 일이지. 근데 폭탄은 없었는지 김일성박물관에 그걸 전시했대. 북한인민들 체제이념교육에 도움이 되라고 기증했다고 볼 수 있지"라면서 가 순수한 의미로 줬다고 해도 만들면 충분히 종북이 될 수 있음을 지적했다.
그는 이어 "(새누리당 등 보수여론의 논리대로라면) 김일성의 보천보 전투 기사 동판에 금을 입혀 갖다 바친 동아일보는 북한 공작원이겠네?"라고 '색깔논쟁'에 일침을 가하기도 했다.
한편, 트위터리안 바닷*(‏@2ba****)은 "이건희와 김우중의 선물, 김종필은 은수저를 정몽준은 골프채를 선물"이라면서 국내 대기업 회장 등도 모두 북한 추종 세력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실제로 1989년 당시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은 다이너스티 승용차를 선물했고,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자서전과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보낸 가전제품,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대형 TV, 에이스침대가 보낸 가구 세트 등.
한편 (한겨레)는 두 언론사와 달리 2001년 2월 8일과 9월 17일 두 차례 방문 당시 나무 밥상과 만년필, 한겨레 창간호 동판 등 3개의 소박한 선물을 전한 것으로 드러나 보수언론과 좋은 대조를 보였다.

김경환 기자  |  1986kkh@pressbyple.com

2012년 1월 19일 목요일

"김정남 천안함 발언은 <조선일보>의 명백한 오보"


이글은 프레시안 2012-01-19일자 기사 '"김정남 천안함 발언은 (조선일보)의 명백한 오보"'를 퍼왔습니다.
김정남과의 대화록 쓴 日 언론인 "천안함 얘기 없었다"

고(故)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장남 김정남이 "천안함은 북한의 필요에 의해 일어난 것"이라고 말했다는 과 (조선일보)의 기사는 날조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조선일보)는 지난 17일 (김정남 "천안함, 북의 필요로 이뤄진 것")이란 제목의 1면 톱기사에서 김정남이 천안함 침몰 사건에 대해 "북조선 입장에서는 서해5도지역이 교전지역이라는 이미지를 강조할 필요가 있다"며 "그래야 핵, 선군정치 모두 정당성이 부여되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조선일보)는 김정남의 이같은 발언이 일본 (도쿄신문)의 고미 요지(五味洋治) 편집위원과 김정남이 주고받은 이메일에 있다면서 (월간조선)이 그 대화록을 입수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국내 언론들이 고미 편집위원과 인터뷰한 결과 김정남은 천안함과 관련한 말을 전혀 하지 않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고미 편집위원은 18일 과의 인터뷰에서 "김정남과 주고받은 이메일 내용을 게재한 내 책에는 천안함 내용이 단 한 군데도 나오지 않는데 조선일보가 왜 이런 내용을 보도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조선일보)의 해명을 듣고 싶다고 말했다.

최근 고미 위원은 김정남과의 이메일 대화와 대면 인터뷰를 모은 (아버지 김정일과 나)라는 책을 냈다. 그러나 이 책에도 천안함과 관련한 내용은 없다고 (서울신문)은 전했다.

(서울신문)은 기사에서 "조선일보가 기사 중 북한의 입장을 설명한 부분은 연평도 포격사건에 대한 내용인데, 기자가 작위적으로 천안함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해석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고미 위원은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김정남과 주고받은 150여통의 이메일 중 거의 모든 내용을 책에 수록했다"며 "번역 작업도 꼼꼼히 했는데 없었던 내용이 보도된 경위를 알고 싶다"고 거듭 말했다. 그는 또 "책이 발간되면 천안함 내용이 없다는 사실이 명백히 알려질 텐데 왜 그런 무리를 했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며 "조선일보는 책임 있는 언론사로서 책 내용을 다시 검토해 보도 경위를 밝혀 달라"고 말했다.



▲ 고미 요지 편집위원이 펴낸 김정남과의 대화록 <아버지 김정일과 나> 표지 ⓒ연합뉴스
(경향신문)도 18일 온라인판에서 고미 위원과의 전화 인터뷰 내용을 실었다. 고미 위원은 "김정남이 이메일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천안함은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며 "조선일보의 지난 17일자 보도가 사실과 전혀 다르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조선일보의 명백한 오보"라며 "천안함은 내가 물어본 적도, 김정남의 답변을 받은 적도 없다"며 "한국 보도를 보고 놀라 내가 책을 잘못 썼나 싶어 다시 확인했다"고 말했다.

고미 위원은 19일 (MBC)와의 통화에서도 김정남이 하지도 않은 말을 한 것처럼 보도해 곤혹스럽다며 (조선일보) 해명을 기다린다고 말했다. 그러나 (월간조선) 기자는 '고미 요지 씨가 책에는 쓰지 않았지만 김정남이 포괄적으로 천안함에 대해 언급한 것은 사실'이라고 주장했다고 (MBC)는 전했다.

앞서 (동아일보)와 (문화일보) 등 보수 언론은 (조선)의 기사를 바탕으로 쓴 사설에서 '국내 종북(從北) 세력'은 이제 천안함이 북한의 소행이라는 증거가 없다고 주장할 수 없게 됐다고 비판한 바 있다.

(조선일보)에 대한 고미 위원의 반론은 (연합뉴스)가 최초로 보도했다. (연합)은 18일 오후 4시 54분 기사에서 고미 위원이 "김정남과는 천안함이 아니라 연평도 공격에 대해 의견을 주고받았다"며 "한국에서 마치 내 책이나 이메일에서 김정남이 천안함 사건을 북한의 소행이라고 인정한 것처럼 알려진 것은 유감"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연합) 기사에는 이 발언이 기사 맨 밑에 나온다.



/황준호 기자 

2011년 12월 29일 목요일

'김정일 이후'와 2013년 체제


이글은 프레시안 2011-12-29일자 기사 ''김정일 이후'와 2013년 체제'를 퍼왔습니다.
[백낙청 편집인 신년칼럼] "김정일 급서, 남녘의 봄은 준비되고 있는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갑작스러운 타계는 한반도 전체로서도 큰 사건이다. 평소에 한반도에 관심이 적은 서방 언론도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했고 '김정일 이후'가 어떻게 전개될지 많은 논평을 쏟아냈다. 후속 김정은시대가 어떤 양상일지 누구나 궁금해할 법하다.

그런데 이런 궁금증도 있다. 북녘의 지도자 교체와 남녘에서의 2013년체제 중 어느 것이 더 큰 변수가 될까. 북녘 동포들로서야 영도자의 급서(急逝)가 당연히 최대의 사건이겠지만, 한반도 전체의 장기적 전망에서는 2013년체제의 성패, 곧 1987년 6월항쟁으로 한국사회가 한번 크게 바뀌었듯이 다음 정부가 출범하는 2013년을 그에 못지않은 새로운 전환점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인지 여부가 한층 중요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2013년체제'에 관해서는 2011년 여름호에 수록된 졸고 "'2013년체제'를 준비하자" 참조).

최고지도자의 급서와 '급변사태'를 구별해야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은 지도자의 급서가 곧 나라의 급변사태로 이어지지 않을 시스템을 북측이 마련해놓았음이 점차 뚜렷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 시스템이 민주적이냐 또는 사회주의적이냐 하는 것은 별개 문제다. 오히려 왕조적 성격이 두드러진다.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미 국무장관의 회고록에는 김정일 위원장이 태국의 입헌군주제에 많은 관심을 표명했다고 나온다는데, 북조선 체제가 형식과 내용 모두 태국과 거리가 멀지만 김정일에서 김정은으로의 교체가 연로한 국왕의 승하(昇遐)를 대비하여 책봉해두었던 왕세자의 등극과 흡사한 면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런 대비에 주목했더라면 너무 쉽게 '급변사태'를 예단하지 않았을 것이다.

북측 체제의 '왕조적 성격'에 유의한다면 김정은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의 나이가 어리다거나 후계연습기간이 아버지 때보다 짧았다는 사실도 당장에 큰 문제를 일으킬 것 같지 않다. 첫번째 세습의 경우는 국조(國祖)에 해당하는 김일성 주석의 비중이 워낙 크고 그의 죽음이 워낙 갑작스러운데다 공산주의혁명을 표방하고 건설된 국가의 '왕조적' 변형을 처음으로 확인하는 과정이었기 때문에 더 많은 준비가 필요했고 어쩌면 더 큰 진통이 따랐을지 모른다. 반면에 3대세습은 김일성 가문(이른바 '백두혈통')이 아니고는 최고지도자의 지위에 오를 수 없음이 통념화된 사회에서 2대세습으로 이미 닦아놓은 길을 따라 진행되는 사건인 것이다.

다른 한편 같은 유일체제라도 김일성과 김정일의 권력이 달랐듯이 김정은 체제도 많든 적든 변용을 거쳐 형성되리라 보는 게 옳을 것이다. 김정일 위원장이 절대권력을 휘둘렀다고 하지만 선대와는 달리 그는 '수령'도 '주석'도 아닌 지위에서 '선군정치'라는 군부와의 일정한 타협을 전제로 권력을 행사했다. 마찬가지로 김정은이 왕년의 일본 천황을 방불케 하는 신성불가침의 존재로 옹립되더라도 그의 실질적인 통치는 당과 군 엘리트집단과의 또다른 관계 속에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그 새로운 시스템이 얼마나 현실에 적합하며 '대장 동지' 자신이 얼마만큼의 정치력을 발휘하느냐에 따라 김정은시대의 명운이 갈릴 것이다.


▲ 김정은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이 28일 평양 금수산 기념궁전 앞 광장에서 열린 김정일 국방위원장 영결식에서 김 위원장의 운구차량을 호위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3년체제 건설이 핵심 변수인 이유

아무튼 김정일 위원장의 육체적 생명에 대한 불확실성을 곧 북측 체제의 '급변사태' 가능성과 동일시하던 시나리오가 퇴색하면서 한반도정세의 '불확실성'이 도리어 감소한 면이 없지 않다. 동시에 남한 민중이 2013년체제를 건설하느냐 못하느냐는 변수의 비중이 그만큼 더 커졌다고 말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그 비중은 남북한의 국력차이와 무관하지 않다. 남북은 경제력과 국제사회에서의 영향력이 너무나 차이가 나기 때문에, 결국 남쪽 사회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더 큰 무게를 갖게 마련인 것이다. 이런 원론적 고려를 떠나서도, 그동안 이명박정부가 한반도정세를 꼬이게 만드는 데 얼마나 결정적인 역할을 했는지를 돌이켜보면 '한반도문제에서 한국정부의 주도력'을 실감할 수 있다. (한반도평화아카데미 2011.12.1 강의 '2013년체제와 포용정책2.0' 참조)

물론 북에서 급변사태가 실제로 일어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리고 먼 장래에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야 누가 알겠는가. 하지만 중기적으로도 북의 급변사태를 방지하려는중국의 의지와 능력에 큰 변동이 없을 터인데다, 지금은 내부적으로 비교적 질서정연한 승계작업이 진행되는 모양새이고, 중국뿐 아니라 미국, 러시아, 일본이 모두 행여나 순탄한 진행이 안될까봐 일제히 '안정 최우선'을 부르짖고 나오는 형국이다. 심지어 이명박정부도, 특유의 무정견(無定見)과 무교양(無敎養)을 드러내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안정유지를 선택한 것이 분명하다.

남한 바깥의 변수로 말하면 오히려 2012년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가 당선될 가능성이 더 걱정거리다. 후보지명전에 나선 인사들 중에 심지어 온건파라는 롬니 매사추세츠주 지사조차 극우적인 공약을 남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악의 경우로 공화당이 집권하더라도 2013년체제가 아주 불가능해질 것 같지는 않다. 조지 W. 부시가 당선된 2000년대 초와 달리, 현재 미국은 국가경제가 거의 거덜나고 국제무대에서의 영향력이 현저히 약화된 상태이며, 이런 판국에 합리적인 국가경영을 아예 포기한 듯한 정강정책을 내걸고 당선된 대통령이 한반도와 동북아에서 부시와 같은 완력을 행사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한국국민이 2012년에 새 출발을 선택했을 때 훼방을 놓고 애를 먹일 수는 있을지언정 완전히 좌절시킬 수는 없으리라 본다.

2013년체제 건설에서의 북한 변수

여기저기서 논의와 공부가 진행되고 있듯이 2013년체제는 한국사회의 일대 전환을 기약하고 있다. 87년체제에서의 민주화가 새로운 단계로 약진하면서 그간의 극심한 양극화 경향을 반전시키고 국가모델을 생명친화적인 복지사회로 바꾸며 정의・연대・신뢰 같은 기본적인 덕목을 존중하는 사회분위기를 재생하는 등의 과제를 설정하고 있다. 이때 핵심적 의제의 하나이자 어떤 의미로는 여타 의제의 성공을 좌우할 것이 분단체제 극복작업의 획기적 진전이다.

'극복작업의 획기적 진전'이지 완전한 '해소'를 주문하지 않는 것은 1953년의 한국전쟁 휴전 이래 굳어져온 분단체제의 온전한 극복은 아직 먼 길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해도 2013년체제 성공의 한가지 전제가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는 작업인 것만은 분명하다. 새 정부가 그것조차 해내지 못한다면 87년체제의 민주개혁작업을 발목잡던 세력을 제어하기 힘들 것이다. 물론 평화협정만 해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고, 북측의 동의와 주변국 특히 미국의 동조가 필요하다. 6자회담이 재개되고 핵문제 해결에 최소한 상당한 진전을 보이면서 남북간 및 미북간의 신뢰가 쌓여야 가능하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김정일 유훈'의 범위 안에 있는 것으로, 북측도 김정은시대의 안착을 위해 마땅히 추구할 일들이라 생각된다.

반면에 남북연합 건설이라는 2013년체제의 더 큰 목표는 좀 다른 차원이다. 이것도 김정일 위원장의 유산인 6・15공동선언에 포함된 것이고 실제로 10・4선언을 통해 그 준비에 시동이 걸렸지만, 정작 남북연합을 수용하려면 새로운 전략적 결단이 필요할 것이다. 김정은 체제가 그럴 의지와 실력을 갖게 될지는 현재로서 미지수인데, 주변여건이 개선되고 특히 남쪽 국민이 북과의 화해와 협력을 확실히 선택하여 지혜롭게 추진할 경우 새 대통령의 임기내 실현이 반드시 불가능한 것도 아니리라 믿는다.

어쨌든 이명박정부의 남은 기간에라도 대북지원과 금강산 관광을 재개하는 것이 급선무다. 경제협력을 확대하고 고위급 접촉을 진행하여 '북한 변수'를 대한민국의 이익과 한반도 대다수 주민의 염원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관리해야 한다. 그렇게 한다면 정권의 불명예가 그나마 덜어지고 87년체제 극복이 그만큼 순조로워질 것이다. 반면에 그것조차 못한다고 하면 정권교체를 통해 새 체제를 출범시킬 필요성이 더욱 커질 따름이다.

2013년체제는 오고 있다

2013년체제가 다가오는 징후는 2011년 한국의 도처에서 나타난 바 있다. 무엇보다 지난 10월의 서울시장 보궐선거와 '안철수현상'이 그랬고, 한진중공업에서 309일 간의 고공농성을 해낸 김진숙 씨가 희망버스를 비롯한 범사회적 지원을 업고 생환할 수 있었던 것 또한 그런 징후의 일환일 것이다. 변화의 중심에 SNS라는 새 매체를 통해 전에 없이 긴밀히 연결되고 소통하는 대중이 있음은 여러 분석가들이 지적하는데, 이들 대중이 여차하면 오프라인에서도 움직일 태세가 되어 있다는 사실이 결정적이다. 여기에 김정일시대의 종언은 어쨌든 변화가 불가피함을 다시금 일깨워주었다. 북에서도 '재스민혁명'이 임박했다는 허황된 기대가 아니라, 남한의 수구세력이 북녘 사정을 정확히 파악하고 분단현실을 슬기롭게 관리할 능력이 태무함을 재확인해줌으로써 시대전환에 대한 우리 국민의 욕구를 더욱 자극하고 있는 것이다.

여당의 유력한 대선후보인 박근혜 의원이 당 비상대책위 위원장으로 때이르게 전면에 나선 것도 2013년체제를 예감케 하는 징후가 아닐까 싶다. 어차피 '이명박 계승'을 내걸고 선거를 치를 수 없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바였고, 따라서 박위원장이 언젠가 나서는 것은 예견된 수순이었다. 그러나 대통령과 거리를 두면서도 좀더 오래도록 신비의 베일 속에 머물다가 총선이 임박해서 혜성처럼 나타나는 것이 애초의 전략이었을 것으로 짐작되는데, 급변하는 세상은 그런 우아한 이미지 정치를 더는 용납하지 않은 것이다. 서울시장 선거에서 마지못해 나경원 후보 지원에 나섰다가 상처만 입었고, 비대위 위원장으로서의 '조기등판'조차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다. 어쨌든 에이스의 구원등판으로 접전의 양상은 달라졌다. 앞으로 박근혜 체제가 실제로 소통과 문제해결 능력을 보여주며 4월 총선을 승리로 이끈다면 그의 대선 전망도 한결 밝아질 것이다. 반면에 그러지 못할 경우 대선승리를 위한 여당의 최대 카드가 일찌감치 무력화되기 쉽다.

야권이 분열로 패배를 자초할 가능성도 엄연히 남아 있다. 그동안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의 출범으로 각기 부분적인 통합을 이루었고 최소한 연합 대상정당의 '개체 수'를 줄이는 성과를 확실히 거두었다. 하지만 이들 두 당의 추가통합 내지 선거연대는 여전히 장담 못할 일이다. 국회의원 선거에서 다른 당끼리 연합한다는 것은 공동정부를 전제로 대통령후보를 단일화하는 일보다 몇배나 어렵기 때문이다. 더구나 어느 정당도 지지하지 않는 유권자들의 위력을 상징하는 '안철수현상'이 추가 변수로 남아 있는데, 연대조차 못하는 야권이 그들을 끌어들이기는 힘들 터이다.

관건은 역시 2013년체제다. 얼굴을 바꾸고 'MB와의 차별화'에 성공한 구 집권세력으로 만족할 것인가, 아니면 남한에서뿐 아니라 남북이 공유하는 획기적인 새 시대로의 전환을 이룩할 것인가. 어렵지만 가슴 벅찬 모험의 길을 향해 다수 국민들이 열성과 지혜를 모으기만 한다면 총선이라는 최대의 난관을 돌파하는 현실적인 방안을 마련하지 못할 이유도 없다. 정치권의 타성과 작은 이익 챙기기가 한결 발붙이기 어려워지는 동시에, 분단체제 속에 살면서 너무 완벽하고 상큼한 해결책을 기대하는 것도 또다른 타성임을 냉철하게 인식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누구보다 우리들 하나하나가 2013년체제 도래의 징후에 마음을 열고 신심에 찬 노력을 지속할 일이다. "겨울이 오면 봄이 멀리 있으랴?"고 영국의 시인 셸리가 노래한 바 있는데( 1819), 우리는 표현을 약간 바꾸어, "봄이 다가오는데 겨울이 오래 버텨낼 수 있으랴?"고 읊어봄직하다.

* 12월 29일 발행된  전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