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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3월 3일 일요일

서울대, '희망버스' 참가이유로 명예교수 탈락시켜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3-03-02일자 기사 '서울대, '희망버스' 참가이유로 명예교수 탈락시켜'를 퍼왔습니다.
김세균 전 서울대 교수… 민교협 "애초 징계부터 부당"

한진중공업 '희망버스'에 참가해 교육과학기술부(교과부) 징계를 받은 김세균 전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가 명예교수로 임용되지 못했다. 이에 대해 "부당한 징계를 이유로 명예교수 심사대상에서 제외했다"는 논란이 일고있다. 
2일 서울대와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민교협)에 따르면 지난달 28일 정년퇴임한 김 전 교수는 서울대 명예교수 심사대상에서 제외됐다. 

김 전 교수는 2011년 6월 '희망버스'에 참가해 부산 영도조선소 한진중공업 내에 집회한 협의(공동주거침입)로 기소됐다. 교과부는 이를 이유로 김 전 교수에게 견책 징계를 내렸다. 

▲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이 올라가 농성을 벌였던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 ⓒ연합뉴스

서울대 관계자는 "'재직기간 중 징계를 받은 사실이 있거나 사회적·윤리적 물의를 일으켜 학교나 교수의 명예를 크게 손상시킨 사실이 있다고 인정된 때에는 명예교수 추대를 하지 아니할 수 있다'는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규정에 따라 심사대상에서 제외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김 전 교수가 소속된 서울대 민교협은 "교과부의 징계가 부당한데 이를 이유로 명예교수 심사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은 잘못됐다"는 의견서를 서울대에 제출했다. 

이도흠 민교협 상임의장은 "애초 희망버스 참가 이유로 교과부가 견책하는 것도 잘못됐고, 또 이를 이유로 명예교수 심사대상에서 제외한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 의장은 "진보, 보수를 떠나 지행일치는 지신인의 도리"라며 "그걸 이유로 견책한 것은 상식과 이성을 벗어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이 의장은 이어 "한 마디로 지식인의 사회참여를 탄압하는 것으로 볼 수 밖에 없다"며 "민교협 차원에서 대응 방안을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교과부는 검찰의 기소에 따라 견책 징계를 내렸으나, 서울중앙지법은 작년 8월 김 전 교수에게 100만 원의 벌금형을 선고유예했다. 선고유예는 범죄의 정도가 경미한 범인에게 일정한 기간 형의 선고를 유예하고, 그 유예기간을 사고 없이 지내면 형의 선고를 면해주는 제도다. 

김병철 기자 | kbc@mediatoday.co.kr 

2012년 12월 16일 일요일

한국 핵마피아 명단을 파헤치다


이글은 한겨레21 2012-12-17일자 제940호 기사 '한국 핵마피아 명단을 파헤치다'를 퍼왔습니다.
[기획 연재] ‘탈핵’ 로드맵을 그리다 ③ 핵마피아 vs 탈핵연대서울대 원자력공학과 출신이 ‘민·관·학’ 장악하고 철저하게 다른 목소리 배제하는 카르텔…‘핵마피아 대부’가 핵발전소 재가동 등 정하는 원자력안전위 위원장 맡고, 대기업 전무가 원자력학회 임원 되는 요지경

한국원자력원자력문화재단은 해마다 100억원 정도의 예산을 전력산업기반기금에서 타서 쓴다. 이 기금은 우리가 내는 전기요금에서 3.7%를 떼어 종잣돈으로 삼는다. 내가 낸 전기요금이 어디에 쓰이는지 보자.

한국원자력문화재단이라는 곳이 있다. 원자력과 문화가 어떻게 연결되는지는 알 수 없다. ‘전쟁기념관’ 수준의 조어로 보인다. 원자력 대신 ‘핵’을 넣으면 말이 안 된다는 게 더 분명해진다. 원자력문화재단이라는 이름은 ‘원전대국’ 일본에서 따왔음이 분명하다. 일본에는 원자력문화진흥재단이 있다. 원자력문화가 있다면 화력문화나 수력문화도 있어야 하지만 그런 문화는 없다. 당연한 거다. 원자력문화재단은 해마다 100억원 정도의 예산을 전력산업기반기금에서 타서 쓴다. 이 기금은 우리가 내는 전기요금에서 3.7%를 떼어 종잣돈으로 삼는다. 내가 낸 전기요금이 어디에 쓰이는지 보자.

» 지식경제부는 지난 9월17일 강원도 삼척시 근덕면 일대 317만8292m²를 신규 핵발전소 예정구역으로 지정고시했다. 명사십리로 유명한 맹방해수욕장과 불과 2km 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다. 김대수 삼척시장은 소방방재단지를 만들겠다며 이미 땅을 파헤쳐놓았다. 소방방재단지 추진이 실패로 돌아가자 김 시장은 해당 부지를 핵발전소 부지로 내놓았다. 지역 핵마피아인 셈이다. 한겨레 탁기형 기자

핵발전 주변에는 이런 자리가 많다. 핵공학계, 핵에너지 업계, 핵에너지 관료들이 돌아가며 자리를 맡는다. 핵분열을 하듯 기관이 기관을 낳고, 자리가 자리를 낳는다. 당연히 경제적 이해관계도 얽혀 있다. 문제는 이들 기관과 자리 대부분이 핵에너지 규제와 안전보다는 진흥과 이용에 목적을 두고 있다는 점이다.
후쿠시마 이후 바빠진 그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국민들의 원자력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 원전 필요성에 대한 찬성률이 떨어지고 있는 등 원자력 국민인식이 달라졌고 원자력 홍보 업무 시행에 여러 가지 제약이 있는 상황임을 보고드린다. 그래서 재단은 이러한 시점에서 청와대, 총리실과 지경부의 조언에 따라 신홍보전략을 수립해 활동하고 있다. …일반인에게는 원전의 안전관리, 방사능에 대한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서 언론매체를 적극 활용하고, 찾아가는 원자력 교육을 하고 있으며, 시·도교육청 8개와 함께 초·중등학생을 중심으로 원자력 이해 나눔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러한 교육 과정에서 제가 직접 국민들이 우려하고 있는 방사성물질이 위험하지 않음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있다. …그 밖에도 원전을 반대하는 국제적인 세력인 그린피스의 8월 한국지부 설립과 그 이후에 예상되는 활발한 활동에 대응하기 위해 적극적인 대응 논리를 마련하고 있다.”
2011년 3월11일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터진 지 넉 달여 만에 열린 원자력문화재단 첫 이사회 의사록 내용이다. 당시 이재환 재단 이사장의 발언을 보면, 후쿠시마 사고로 급격하게 나빠진 핵발전 이미지를 끌어올리라는 청와대와 국무총리실, 지식경제부의 지침에 따라 이런저런 노력을 땀나게 했다는 설명이 담겨 있다. 전력산업기반기금이 지원되는 원자력문화재단의 설립 목적은 오로지 핵발전 필요성과 안전성 홍보에만 있다. 핵발전에 반대하는 시민이나 환경운동가들이 낸 전기요금까지 핵발전 홍보에 쓰이고 있다는 얘기다. 현 이사장인 천병태 부산대 명예교수는 한국원자력 법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원자력문화재단 이사장 연봉은 올해 기준으로 1억900여만원이다. 그는 우리나라의 핵발전 정책을 수립하고 심의·의결하는 원자력진흥위원회 위원을 맡기도 했다.
핵발전 주변에는 이런 자리가 많다. 핵공학계, 핵에너지 업계, 핵에너지 관료들이 돌아가며 자리를 맡는다. 핵분열을 하듯 기관이 기관을 낳고, 자리가 자리를 낳는다. 당연히 경제적 이해관계도 얽혀 있다. 문제는 이들 기관과 자리 대부분이 핵에너지 규제와 안전보다는 진흥과 이용에 목적을 두고 있다는 점이다. 그 배후에는 핵발전을 부추기는 논리와 정책을 끊임없이 생산·제공하는 핵공학계가 자리하고 있다.

‘규제’ 개념도 없다가 안전위 생겼으나

» 자료 :원자력진흥위원회

1956년 문교부 기술교육국에 원자력과가 만들어졌다. 그 뒤로 반세기가 넘도록 하나의 부서(현 교육과학기술부)에서 핵에너지 ‘진흥’과 ‘규제’를 함께 맡는 칸막이 없는 시스템이 자리잡았다. 짜장과 짬뽕이 한데 섞였다는 얘기다. 1978년 고리 핵발전소가 운전에 들어가자 상공부(현 지식경제부)가 핵발전소 건설과 운영, 핵발전 산업 육성을 담당하게 된다. 핵에너지 담당 부처는 이원화됐지만, 핵에너지 이용·진흥과는 어울리지 않는 안전관리 정책 수립, 인허가 등 안전규제 업무를 한곳에서 맡는 시스템은 바뀌지 않았다. 안전규제 업무의 독립성이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무게는 이용·진흥 쪽에 쏠릴 수밖에 없었다. 정부는 1970년대 두 차례 석유 파동 뒤 핵발전 중심 전원정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이어 핵발전기술 자립계획과 한국형 핵발전소를 추진한다. 이명박 정부에 이르러서는 핵발전소 수출을 역점사업으로 밀어붙였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핵에너지 안전을 맡은 기관의 독립적 운영을 위해 핵에너지 진흥 조직과의 분리를 요구했지만 우리나라는 이를 따르지 않았다. 후쿠시마 사고가 터지기 직전인 2011년 2월 교과부 안에 원자력안전국이 생겼지만 원자력진흥 부서와는 ‘국’ 단위로만 구분될 뿐이었다. 5년마다 ‘원자력진흥종합계획’을 수립하는 교과부의 그늘은 벗어나지 못했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상황이 변했다. 핵발전소에 대한 불안이 커지며 안전규제를 전담할 독립적이고 전문적인 행정기구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됐다. 2011년 6월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원자력안전법)이 만들어졌고, 이 법에 따라 그해 10월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출범했다. 장관급이 위원장을 맡는 원자력안전위는 교과부에서 떨어져나와 대통령 직속으로 바뀌었다.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한국원자력통제기술원도 교과부에서 원자력안전위 밑으로 옮겨졌다.
우리나라도 이제는 국제 기준을 따라 핵에너지 진흥·이용(원자력진흥법)과 규제·통제(원자력안전법) 기관이 번듯하게 구분된 듯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현재 국회에는 원자력안전법 일부개정안이 4건 계류 중이다. 유기홍 민주통합당 의원, 김제남 진보정의당 의원 등이 발의했는데, 내용은 원자력안전위의 ‘독립성 확보’로 대동소이하다. 대통령이 임명하는 원자력안전위 위원장을 국회 인사청문 대상에 포함시키고, 위원장이 임명 제청하는 위원들 외에 국회나 관련 시민단체가 추천하는 인사들도 위원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지금의 위원장과 위원들을 믿지 못하겠다는 얘기다.

대부, 관악산에 핵폐기장 주장하다

원자력안전위 초대 위원장은 강창순 서울대 명예교수다. 탈핵을 주장하는 환경단체와 정치인들은 그를 ‘핵마피아 대부’라 부른다. 강 위원장은 1961년 서울대 원자력공학과(현 원자핵공학과)에 들어갔다. 원자력공학과가 생긴 지 3년째 되던 해다. 1967년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로 유학을 떠난 그는 원자핵공학으로 박사 학위를 땄다. 1977년 강 위원장은 대우그룹 엔지니어링 부문 상무로 영입됐는데, 당시 신문은 ‘원자력 전공 재미 공학박사’로 그를 소개했다. 1980년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가 된 강 위원장은 그 뒤 한국원자력학회장,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이사 등을 맡는다. 이런 이력에 더해 핵발전 업계와의 연결고리도 질기다. 국내 핵발전소 설비를 사실상 독점하는 두산중공업 사외이사, 핵발전소 건설·운영을 독점하는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자문위원을 맡았다. 위원장 내정 직전까지는 현대건설·두산중공업 등 핵 관련 업체 80여 개가 참여하는 한국원자력산업회의 부회장 자리에 있었다. 핵에너지·핵발전의 세 축인 ‘민·관·학’의 정점마다 그가 있었던 셈이다. 원자력안전법은 ‘최근 3년 동안 원자력 이용자 단체가 수행하는 사업에 관여한 사람은 위원이 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이명박 대통령은 이를 무시했다. 유기홍 의원실이 원자력안전위와 한수원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강 위원장은 2002~2007년 한수원으로부터 4건의 연구과제를 통해 4억5400만원의 연구비를 받았다. 또 옛 과학기술부와 한국원자력연구소 등에서 1999~2011년 20건의 연구용역을 맡아 14억6천여만원의 연구비를 받았다.
‘핵마피아’로서 그의 존재감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이 있었다. 2004년 강 위원장은 서울대 안 관악산에 핵폐기장을 유치하자는 제안을 내놓았다. “주민 안전에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과학적 확신을 바탕으로 시설 유치를 건의한다”고 했다. 황우석 교수 등 서울대의 다른 교수 60여 명도 동참했다. 과학기술 지상주의에 빠진 일방적 주장은 관악구와 환경단체의 반발을 살 수밖에 없었다.
원자력안전위는 문제가 발생한 핵발전소의 재가동 여부, 설계수명이 끝난 핵발전소의 수명 연장 여부를 결정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잦은 고장에 더해 조만간 설계수명이 끝나는 핵발전소가 줄서 있는 우리 현실에서 가장 중요한 권한을 쥐고 있는 셈이다. 안전이 우선돼야 하지만 상황은 그렇지 못하다. 강 위원장의 핵발전 지상주의는 안전과 규제가 우선돼야 할 원자력안전위 운영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지난 7월 원자력안전위는 한수원의 정전 사고 은폐가 드러나 넉 달 전 가동을 중단시킨 고리 핵발전소 1호기 재가동을 허용했다. 안전성에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이미 2007년 설계수명(30년)이 끝나 수명을 10년 연장한 핵발전소에는 참으로 관대한 처분이었다. 원자력안전위는 핵발전소의 핵심인 원자로에 대한 안전 기준을 낮추는 방안을 추진해 노후 핵발전소 가동을 연장하기 위한 꼼수라는 비판을 사기도 했다.

» 핵발전소 안전을 책임지는 원자력안전위원회 강창순 위원장은 대표적 핵마피아 가운데 한명이다. 그의 손에 우리의 안전이 달려 있다. 한겨레 박종식 기자

핵마피아 중간 보스 리스트?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는 최근 ‘탈핵 에너지 전환의 정치·사회 시나리오 연구’ 보고서를 냈다. 보고서는 강고한 핵카르텔이 현재의 에너지 시스템을 떠받치고 있다고 지적한다. “원전 중심 전원정책(관료), 핵 관련 기술인력 양성(지식), 신규 핵발전소 건설에 따른 시장(자본)의 확장이라는 관료·지식·자본 카르텔을 강화하는 순환구조를 갖추게 됐다. 이러한 핵카르텔 강화 과정에서 에너지 정책은 폐쇄적인 소수 전문가에 의해 결정되었다.”
원자력안전위에 딸린 원자력안전전문위원회를 총괄하는 이는 이은철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다. 그도 원자력학회장 출신이다. 황일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도 전문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원자력안전위 산하기관인 원자력안전기술원 이사회 의장은 서울대 원자력공학과·원자력학회장 출신인 장순흥 카이스트 교수가 맡고 있다.
현재 원자력학회장은 한국원자력연구원 정연호 원장이 맡고 있다. 그는 핵발전 관련 업체들의 단체인 한국원자력산업회의 이사이기도 하다. 학회·업계·공공기관에 동시에 발을 담그고 있는 셈이다. 원자력학회 수석부회장은 김종경 한양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다. 그는 국가 핵발전 정책을 총괄하는 원자력진흥위원회 위원인데, 그 역시 원자력산업회의 이사로 이름이 올라 있다. 마찬가지로 학회·산업·정부기관에 동시에 몸담고 있다.
원자력학회 임원 중에는 학회와 어울리지 않는 업계 사람도 많다. 이태호 한수원 발전본부장이 부회장에, 박정용 두산중공업 전무, 정선교 한전원자력연료 전문위원이 감사에 이름을 올렸다. 학회의 재무이사는 이종호 한수원 기술기획처장, 이영일 삼성물산 상무가 맡고 있다. 한수원·두산중공업·현대건설 등 관련 업계와 단체 50곳이 학회 특별회원이다. 거꾸로 원자력산업회의 임원진에는 학계와 관계 인사들이 들어가 있다. 정연호·김종경 외에도 원자력학회장 출신인 조남진 카이스트 교수, 노경원 교과부 전략기술개발관, 최태현 지경부 원전산업정책관이 이 단체 이사다. 천병태 원자력문화재단 이사장도 이사로 등재돼 있다. 업계는 아예 퇴직 관료들을 회사 임원으로 영입하기도 한다.

박사의 80% 서울대 출신 독점 구조

하도 어지럽게 얽혀서 복잡해 보이지만 줄기는 큼직하게 잡힌다. 핵공학계 인사들이 민·관·학 주요 포스트를 돌아가며 맡고 있으며, 특히 서울대 원자력공학과 출신 교수들이 ‘성골’ 대접을 받는다는 사실이다. 국내에는 서울대·카이스트·한양대·경희대·조선대·제주대가 핵공학 관련 학과를 두고 있다. 최근 동국대도 관련 학과를 개설했지만 인력풀은 좁은 상황이다. 교과부가 발간한 ‘2010년도 국가 중장기 인력수급 전망: 원자력 분야 인력수급 전망 및 인프라 개선’ 보고서를 보면, 우리나라 핵산업 분야 인력은 2만1천여 명 수준이다. 이 가운데 연구 분야 인력은 전체의 7% 수준인 1500여 명인데, 해마다 배출되는 박사의 80%는 서울대에서 나온다. 원자력학회장 역시 대부분 서울대 원자력공학과 출신이 접수한다. 2000년 이후로만 끊어봐도 학회장 10명 가운데 8명(강창순·신재인·이은철·김시환·조남진·박군철·장순흥·정연호)이 서울대를 나왔다. 유기홍 의원은 “한국은 원전 운영에 들어간 지 벌써 40년 가까이 되어간다. 정부가 정말로 안전이나 규제에 의지가 있었다면 관련 전문인력을 핵공학계 등에서 빌려오지 않고 직접 양성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의지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인력풀이 지나치게 서울대 중심으로 좁은데다 그것마저도 진흥기관과 규제기관을 돌고 도는 회전문 시스템이 자리잡았다. 결국 모두 패밀리가 되는 것이다.” 한국에는 외국과 달리 핵발전에 반대하는 원자력 전공 교수나 학자가 거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김제남 의원실의 이헌석 정책특보는 “핵공학계는 다른 산업으로의 기술 전용이 어렵다. 국가 지원 없이는 연구가 어렵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러다 보니 자기들끼리 똘똘 뭉치고 정체성도 뚜렷하다. 약간의 반대 목소리만 내더라도 그 카르텔에서 버틸 수 없다”고 했다.
2011년 11월 김황식 국무총리의 주재로 열린 원자력진흥위원회는 앞으로 5년(2012~2016) 동안의 핵에너지 진흥·이용 정책 방향을 담은 ‘제4차 원자력진흥종합계획’을 심의·확정했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독일 등 세계 여러 나라에서 탈핵 움직임이 나타나 이명박 정부의 신규 핵발전소 건설정책 등에도 변화가 있을지 관심이 모아졌지만 결과는 뻔했다. 정부는 이 기간에 6기의 핵발전소를 준공하고, 2~3곳의 신규 핵발전소 부지를 새로 확보하기로 했다. 핵발전 관련 인력 양성도 비중 있게 담겼다. 이 기간에 핵발전 분야에만 모두 1조7550억원의 예산이 들어가며, 이 가운데 6736억원은 전력산업기반기금으로 충당된다. 정부가 내놓은 원자력진흥종합계획은 원자력학회가 초안을 짰다.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할까.

» 강원도 삼척은 핵발전소·핵폐기장을 막아낸 경험이 있다. 삼척핵발전소반대투쟁위원회 이붕희 사무국장이 1999년 삼척시 근덕면에 세워진 원전백지화기념탑을 둘러보고 있다(왼쪽). 찬핵단체인 삼척시원자력산업유치협의회 사무실에 걸려 있는 대형 사진. 한겨레 탁기형 기자

세 번째 반핵 투쟁에 나선 삼척

지경부는 2012년 9월14일 강원도 삼척과 경북 영덕을 신규 핵발전소 예정구역으로 지정고시했다. 삼척 주민들은 1998년 핵발전소를, 2005년에는 핵폐기장을 막아낸 경험이 있다. 삼척핵발전소반대투쟁위원회 이붕희 사무국장은 김대수 삼척시장과 삼척시의회가 핵발전소를 유치하자 이번까지 세 번째 싸움에 나서게 됐다. 그에게는 초등학교에 다니는 7살짜리 딸 다인이가 있다. “어린아이와 파란 하늘이 나오는 한수원 광고를 보면 핵발전소는 안전하고 깨끗하고 싼 에너지로 착각하게 된다. 그 최면을 후쿠시마가 깨뜨렸다. 하지만 중앙과 지역의 핵마피아들은 여전히 핵발전소가 안전하다고 떠든다. 게다가 핵발전소 건설에 따른 인구 증가나 경제적 이득도 확인된 바 없다.” 이미 20년 전에 핵발전소가 들어선 옆동네 경북 울진만 보더라도 삼척이 잘될 거라는 주장은 거짓말이라는 것이다. 울진군 핵발전소 추가 건설을 반대하는 장시원 울진군의원도 핵발전소가 들어선 뒤의 경제적 효과를 믿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지난 19대 총선에서 새누리당 비례대표 1번은 핵발전 홍보에 주력해온 민병주 한국원자력연구원 연구위원에게 배정됐다. 한국원자력문화재단 이사 가운데는 황호택 논설위원실장도 있다. 한수원은 2012년 9월까지 방송광고비 11억4천만원, 신문광고비 13억9천만원을 집행했다. 정치와 언론도 핵마피아의 밥상에 슬쩍 숟가락을 얹는다. 사방이 마피아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2012년 11월 16일 금요일

서울대 “안철수 논문 표절 아니다…본조사 안해”


이글은 파이낸셜뉴스 2012-11-16일자 기사 '서울대 “안철수 논문 표절 아니다…본조사 안해”'를 퍼왔습니다.


서울대 “안철수 논문 표절 아니다…본조사 안해”(2보)


서울대는 무소속 안철수 대선 후보의 논문 표절 의혹을 예비조사한 결과 표절 가능성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16일 밝혔다. 

서울대 연구진실성위원회는 안 후보의 논문 5편에 대한 표절 의혹 예비조사에서 문제가 없는 것으로 밝혀짐에 따라 본조사에 회부하지 않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연구진실성위는 지난달 31일 예비조사위원회를 구성해 언론 보도를 통해 ‘표절’과 ‘재탕’ 등 의혹이 제기된 안 후보의 서울대 의대 1988년 석사논문과 1991년 박사논문 등 5편을 검토해왔다.

/연합뉴스

2012년 11월 8일 목요일

서울대가 '꼭두각시' 용역업체 쓰는 이유?


이글은 프레시안 2012-11-07일자 기사 '서울대가 '꼭두각시' 용역업체 쓰는 이유?'를 퍼왔습니다.
용역업체만 22개… 청소·경비 노동자들 "직접 고용해라"

서울대가 약 400명의 청소·경비 노동자들을 22개 용역업체로 잘게 쪼개 간접고용해온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 시내 다른 대학들이 많아야 5개 용역업체와 도급계약을 맺고 있다는 점에서 서울대의 사례는 이례적이다.

특히 이들 용역업체는 표준계약서상 월 '0월'의 이윤을 얻거나, 심지어 월 15만 원 상당의 적자를 보기도 했다. 이에 따라 서울대가 청소·경비 노동조합을 무력화하기 위해 용역업체 이름만을 빌려, 간접고용의 형식만을 갖추어 놓은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6일 서울대 총학생회와 관악노동인권네트워크는 지난 9월 시행한 서울대 청소·경비 노동자 인권실태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총 203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시행했고, 이 중 5명의 노동자를 선정해 심층 면접했다.

조사결과를 보면, 서울대는 현재 단과대별 공개입찰을 통해 22개의 청소·경비 용역업체와 1년 단위로 계약을 맺고 있다. 2001년에는 2개에 불과했던 용역업체가 2003년 6개, 2006년 15개, 2007년 20개로 급격히 증가했다.

간접고용을 하는 사업체에서 용역업체의 개수를 늘리는 것은 노동자들의 단체행동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방책으로 주로 사용된다. 서울대 총학생회 소속 이하나 씨는 "2001년 청소·경비 노동조합이 설립되자 학교가 노조를 와해하기 위해 용역업체를 늘려나갔다"고 말했다.

이 씨는 "용역업체 개수가 늘어남으로써 단과대마다 임금, 4대 보험 적용 여부 등 노동조건에 차이가 생겼다"며 "이에 따라 노동자들 사이에 친밀감이 낮아지고, 노조의 교섭력이 약해지는 결과가 생겼다"고 말했다.

 
▲ 학교 건물을 청소하고 있는 노동자 모습. (이 사진은 기사와 관련이 없습니다) ⓒ프레시안(최형락)

"서울대, 용역업체 명의만 빌려 사실상 청소노동자 직접고용"

게다가 일부 업체들은 서울대와 용역 계약을 체결하면서도 월 0원의 이윤을 얻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관악주민연대 공동대표 남우근 노무사는 이날 (프레시안)에 서울대 자연대, 인문대, 대학본부가 올해 용역회사들과 체결한 청소·경비 표준계약서를 공개했다. 계약서를 보면, 각 대학이 용역업체에 지급한 용역료와 업체가 산출한 용역비가 정확히 일치한다. 다시 말해 이 업체들이 서울대에서 벌어들이는 수익이 '0원'이라는 얘기다.

남 공동대표는 "자연대, 인문대, 대학본부 외에도 중앙도서관, 농생대, 수의과대학, 시설관리국, 행정대학원 등과 용역계약을 체결한 업체들도 올해 '0원'을 벌었다"며 "이는 용역업체들이 실제로 청소·경비 업무를 수행한 것이 아니라 서울대가 간접고용 형식을 갖출 수 있도록 업체 명의를 빌려준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남 공동대표는 "설문·면접 조사 결과, 용역회사가 아닌 서울대가 직접 인사권한을 행사한 사례가 다수 확인됐다"며 "정년이 돼서 사람이 나가면, 그 빈자리를 용역회사가 아닌 각 단과대 행정실 직원이 자신의 인맥을 통해 사람을 뽑는 것이 관행처럼 굳어져 있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이들은 서울대가 실질적인 사용자임을 인정하고, 청소·경비 노동자들을 직접고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당장 직접고용이 어렵더라도 원청 사용자성을 폭넓게 인정하며, 악질적인 용역업체를 우선 퇴출해야 한다"며 "서울대는 교육 공공기관으로서 사회적 책무를 다하는 '모범적 사용자'의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하얀 기자

2012년 9월 29일 토요일

서울대 의대 교수들도 “안철수 논문 재탕 의혹은 왜곡”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09-29일자 기사 '서울대 의대 교수들도  “안철수 논문 재탕 의혹은 왜곡”'을 퍼왔습니다.

안철수 대선후보가 28일 오후 서울 서초구 반포동 고속버스터미널 호남선 승하차장에서 귀성객들에게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본격 검증대 오른 안철수
추석 차례상 민심이 ‘가늠자’

다운계약서 ‘잘못 인정·사과’
깨끗한 이미지 훼손 우려 속
‘묻지마 검증’엔 단호대처키로
“논문표절 의혹 조선일보 기사
진실 왜곡 언론중재 추진

안철수 대선 후보에 대한 검증 공세가 잇따르면서 안 후보에 대한 추석 민심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지난 26일 부인 김미경 교수의 서울 문정동 아파트 다운계약서 작성 의혹에 이어 27일에는 안 후보 본인의 서울 사당동 아파트 다운계약서 작성, 서울대 논문 재게재 의혹 등 안 후보에 대한 개인적 의혹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제기되자 안 후보 쪽은 예상했던 일이라면서도 당황해하는 기색이 역력하다.안 후보 쪽은 다운계약서가 당시 거래관행으로 불법도 아니며 따라서 세금을 탈루한 것도 아니라는 점에서 억울하다는 속내를 비치고 있지만, 일단 신속하게 ‘잘못으로 인정하고 사과한다’는 쪽으로 정리가 됐다. 안 후보 캠프의 이숙현 부대변인은 (교통방송)(TBS) ‘열린아침 송정애입니다’에 출연해 “남아 있는 법적 책임이 있다면 그에 대한 책임을 다하겠다는 것이 안 후보의 생각”이라고 말했다.안 후보 쪽은 이번 파문이 당장은 지지율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지만, 유권자들이 차분히 상황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되면 안 후보에 대한 검증 공세가 과도하다는 쪽으로 이해하게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깨끗한’ 이미지가 워낙 강했던 안 후보에게 부동산, 다운계약서 등의 단어가 오르내리는 것만으로도 이미지 훼손은 피할 수 없어 보인다.안 후보 쪽은 “잘못에 대해서는 곧바로 인정하겠다. 그러나 ‘묻지마식’ 검증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대처하겠다”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안 후보 쪽은 ‘다운계약서’ 건에 대해선 최대한 몸을 낮추고 있지만, 논문 재게재 의혹 제기에 대해선 강하게 반박했다. 안 캠프 핵심 관계자는 “(조선일보)의 논문 재게재 의혹 기사는 진실을 왜곡하는 만큼 언론중재위 중재신청부터 법적인 절차를 밟아가겠다”고 밝혔다. (조선일보)와 [티브이(TV) 조선]은 안 후보가 제2저자(보조저자)로 1993년 서울의대 학술지에 게재한 논문이, 이 논문의 제1저자(주저자)였던 김아무개씨가 1988년 제출한 석사논문과 내용이 거의 일치한다며 “논문을 재탕했다”고 보도했다. 이상일 새누리당 대변인도 “안 후보는 납득할 만한 설명을 해야 할 것”이라고 나섰다.이에 대해서는 서울대 의대 주임교수들이 직접 나서 의도적인 왜곡이라고 반박했다. 서울대 의대 생리학 교실 이석호 주임교수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서울대 의대 학위 기준에는 석·박사 논문을 다시 정리해 학술지에 게재하도록 의무화되어 있다”며 “이는 논문 수준을 높이기 위한 권장사항이었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그 과정에서 함께 도와준 이들은 모두 공동저자로 이름을 올리게 되어 있어 안 후보가 이름을 올린 것”이라며 “이런 의혹 제기는 의도적인 흠집내기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문재인 민주통합당 대통령 후보는 이날 광주 말바우시장 상인회 교육장에서 한 기자간담회에서 “대통령 후보로 나섰으면 검증은 불가피하겠지만, 검증이라는 이름으로 지나치게 편파적으로 검증이 이뤄져서는 안 될 것”이라며 안 후보를 에둘러 엄호했다. 문 후보는 “다운계약서 작성이 사회적으로 큰 잘못이라는 인식이 없던 시절 관행 속에서 일어난 일이 아닐까 짐작한다. 그런 부분도 잘못이라면 지적해야겠지만 당시 상황도 감안해가면서 평가하고 판단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이태희 기자 hermes@hani.co.kr

2012년 3월 19일 월요일

"양 날개가 균형이 잡혀야 날 수 있다"


이글은 프레시안 2012-03-19일자 기사 '"양 날개가 균형이 잡혀야 날 수 있다"'를 퍼왔습니다.
[이정전 칼럼] "중산층은 국민경제의 허리"

금년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3% 대를 턱걸이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중국도 금년 경제성장률을 하향조정하였다. 2008년 세계경제 위기가 터진지 4년이 지났지만, 선진국 경제는 아직도 깊은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전망은 더욱 더 어둡다. 이런 가운데 각국 경제는 내수의 활성화에서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제 수출로 경제를 살리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왜 선진국의 경제가 침체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우리 경제도 침체상태인가? 소득과 부의 분배의 극심한 불평등이 그 원인이라고 라이시(R. B. Reich)교수는 분명히 못 박고 있다. 불평등은 그 자체가 정의의 차원에서도 문제지만, 또한 경제 위기와 민주주의 위기를 초래한다는 점에서도 심각한 문제다. 누구나 인정하듯이 자본주의 경제의 가장 큰 특징이자 자랑거리는 높은 생산력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물질적 풍요는바로 이 높은 생산력 덕분이라고 말한다. 그러다 보니 경제학자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이 생산력에만 관심을 집중한다. 그러나 충분한 구매력의 뒷받침이 없는 생산력은 소용이 없다. 기업이 생산한 것을 아무도 사주지 않는다면 그 기업이 망하듯이 한 나라에서 생산된 것들이 제대로 팔리지 않으면 그 나라 경제는 절단난다. 마치 새가 한쪽 날개로만 날 수 없듯이 생산력 하나만으로는 자본주의 경제가 날 수는 없다. 경제 전체로서 생산력(공급)과 구매력(수요)이 균형을 이룰 때 비로소 그 경제는 날아오를 수 있다. 공급과 수요는 자본주의 경제의 양 날개다. 아직도 보수성향의 경제학자들은 생산만 많이 해놓으면 구매력은 자동적으로 뒤따라온다고 믿고 있다. 다시 말해서 공급이 수요를 창출한다고 믿고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과거 수많은 불황이나 경기침체가 보여주듯이 자본주의 경제의 높은 생산력을 수요가 도저히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자본주의 경제의 양 날개가 균형을 이루지 못할 때가 아주 많다는 것이다. 한 쪽 날개의 힘이 빠진 새는 고꾸라질 수밖에 없다. 경제도 마찬가지다. 마르크스의 자본론 서문에서 엥겔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생산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데 수요는 산술급수적으로 늘어난다는 것, 이것이 자본주의의 구조적 모순이다." 바로 이 모순 때문에 자본주의 경제에서 불황과 경기침체가 무시로 찾아온다는 것이다.

그러면, 왜 이런 말이 나올까? 흔히 자본주의는 대량생산 체제라고 말하지만, 또한 대중소비 사회라고 말한다. 이 말은 일반대중의 소비가 자본주의 경제의 수요에서 절대적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대체로 보면, 가난한 사람들이나 중산층 사람들은 소득의 대부분을 소비에 지출한다. 따라서 이들의 소득이 늘어나면 이에 거의 비례해서 이들의 소비도 늘어난다. 하지만, 부자들의 경우에는 그렇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럴 수도 없다. 예를 들어서 세계 굴지의 투자은행이었던 리먼브라더스가 파산하기 직전 당시 CEO였던 리처드 필드는 5억 달러의 연봉을 받았다고 하는데, 정상적인 방법으로 이 돈을 몽땅 소비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보아야 한다. 실제로 부유층은 소득의 극히 일부만을 소비한다. 결국 국민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일반대중이 충분한 구매력을 갖추고 시장에 나온 상품을 사주어야 자본주의 경제가 날 수 있다. 일반대중의 소비가 양 날개의 균형을 잡아주는 버팀목이다.

일반대중의 대부분은 근로자다. 국민소득이 소수의 부유층의 손에 집중된 결과 근로자들의 몫이 감소해서 충분한 구매력을 가지지 못한다면, 시장에 나온 상품들이 잘 팔리지 않을 것이요, 결과적으로 수요가 공급을 따라가지 못하게 된다. 이런 상태가 오래 계속되면 경기침체가 오고 불황이 오게 되며 높은 실업률이 장기화된다. 경기가 나빠져도 부자들은 별 영향을 받지 않는다. 하지만, 근로자들은 큰 타격을 받는다. 그렇기 때문에 무시로 터지는 불황이나 경기침체가 근로자계층에게는 참으로 불공평한 시장의 변덕으로 느껴진다.

일반대중의 소비 중에서 특히 중산층의 소비가 큰 몫을 차지한다. 소득불평등이 심해진다는 것은 중산층이 몰락한다는 뜻이다. 실제로 지난 수년 간 우리나라에서도 빈부격차가 벌어지면서 중산층이 점차 엷어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중산층은 국민경제의 허리에 해당한다. 마치 허리가 약하면 사람이 힘을 못 쓰듯이 중산층이 엷어지면 국민경제가 힘을 쓰지 못한다. 요컨대, 극심한 빈부격차 그리고 이로 인한 중산층의 몰락이 미국의 경제위기를 초래한 근본적인 원인이며, 우리나라의 경기침체를 초래한 원인임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보수진영 인사들이나언론은 분배보다는 성장이 우선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성장이 분배에 발목 잡혀있는데 성장만 얘기하면 무슨 소용인가.

선거철이 닦아 오면서 여야 가릴 것 없이 정치권이 "경제민주화"를 외치고 있다. 경제민주화의 주된 내용은 경제정의이며, 경제정의의 핵심은 경제적 불평등의 해소다. 이런 점에서 경제정의를 바로 세우는 것이 내수를 늘리고 그럼으로써 우리 경제를 다시 날 수 있게 하는 길이라고 할 수 있다.



▲ 세계 굴지의 투자은행이었던 리먼브라더스가 파산하기 직전 당시 CEO였던 리처드 필드는 5억 달러의 연봉을 받았다고 하는데, 정상적인 방법으로 이 돈을 몽땅 소비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보아야 한다. ⓒ로이터=뉴시스

/이정전 서울대 명예교수 

2011년 12월 29일 목요일

'김정일 이후'와 2013년 체제


이글은 프레시안 2011-12-29일자 기사 ''김정일 이후'와 2013년 체제'를 퍼왔습니다.
[백낙청 편집인 신년칼럼] "김정일 급서, 남녘의 봄은 준비되고 있는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갑작스러운 타계는 한반도 전체로서도 큰 사건이다. 평소에 한반도에 관심이 적은 서방 언론도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했고 '김정일 이후'가 어떻게 전개될지 많은 논평을 쏟아냈다. 후속 김정은시대가 어떤 양상일지 누구나 궁금해할 법하다.

그런데 이런 궁금증도 있다. 북녘의 지도자 교체와 남녘에서의 2013년체제 중 어느 것이 더 큰 변수가 될까. 북녘 동포들로서야 영도자의 급서(急逝)가 당연히 최대의 사건이겠지만, 한반도 전체의 장기적 전망에서는 2013년체제의 성패, 곧 1987년 6월항쟁으로 한국사회가 한번 크게 바뀌었듯이 다음 정부가 출범하는 2013년을 그에 못지않은 새로운 전환점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인지 여부가 한층 중요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2013년체제'에 관해서는 2011년 여름호에 수록된 졸고 "'2013년체제'를 준비하자" 참조).

최고지도자의 급서와 '급변사태'를 구별해야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은 지도자의 급서가 곧 나라의 급변사태로 이어지지 않을 시스템을 북측이 마련해놓았음이 점차 뚜렷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 시스템이 민주적이냐 또는 사회주의적이냐 하는 것은 별개 문제다. 오히려 왕조적 성격이 두드러진다.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미 국무장관의 회고록에는 김정일 위원장이 태국의 입헌군주제에 많은 관심을 표명했다고 나온다는데, 북조선 체제가 형식과 내용 모두 태국과 거리가 멀지만 김정일에서 김정은으로의 교체가 연로한 국왕의 승하(昇遐)를 대비하여 책봉해두었던 왕세자의 등극과 흡사한 면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런 대비에 주목했더라면 너무 쉽게 '급변사태'를 예단하지 않았을 것이다.

북측 체제의 '왕조적 성격'에 유의한다면 김정은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의 나이가 어리다거나 후계연습기간이 아버지 때보다 짧았다는 사실도 당장에 큰 문제를 일으킬 것 같지 않다. 첫번째 세습의 경우는 국조(國祖)에 해당하는 김일성 주석의 비중이 워낙 크고 그의 죽음이 워낙 갑작스러운데다 공산주의혁명을 표방하고 건설된 국가의 '왕조적' 변형을 처음으로 확인하는 과정이었기 때문에 더 많은 준비가 필요했고 어쩌면 더 큰 진통이 따랐을지 모른다. 반면에 3대세습은 김일성 가문(이른바 '백두혈통')이 아니고는 최고지도자의 지위에 오를 수 없음이 통념화된 사회에서 2대세습으로 이미 닦아놓은 길을 따라 진행되는 사건인 것이다.

다른 한편 같은 유일체제라도 김일성과 김정일의 권력이 달랐듯이 김정은 체제도 많든 적든 변용을 거쳐 형성되리라 보는 게 옳을 것이다. 김정일 위원장이 절대권력을 휘둘렀다고 하지만 선대와는 달리 그는 '수령'도 '주석'도 아닌 지위에서 '선군정치'라는 군부와의 일정한 타협을 전제로 권력을 행사했다. 마찬가지로 김정은이 왕년의 일본 천황을 방불케 하는 신성불가침의 존재로 옹립되더라도 그의 실질적인 통치는 당과 군 엘리트집단과의 또다른 관계 속에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그 새로운 시스템이 얼마나 현실에 적합하며 '대장 동지' 자신이 얼마만큼의 정치력을 발휘하느냐에 따라 김정은시대의 명운이 갈릴 것이다.


▲ 김정은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이 28일 평양 금수산 기념궁전 앞 광장에서 열린 김정일 국방위원장 영결식에서 김 위원장의 운구차량을 호위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3년체제 건설이 핵심 변수인 이유

아무튼 김정일 위원장의 육체적 생명에 대한 불확실성을 곧 북측 체제의 '급변사태' 가능성과 동일시하던 시나리오가 퇴색하면서 한반도정세의 '불확실성'이 도리어 감소한 면이 없지 않다. 동시에 남한 민중이 2013년체제를 건설하느냐 못하느냐는 변수의 비중이 그만큼 더 커졌다고 말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그 비중은 남북한의 국력차이와 무관하지 않다. 남북은 경제력과 국제사회에서의 영향력이 너무나 차이가 나기 때문에, 결국 남쪽 사회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더 큰 무게를 갖게 마련인 것이다. 이런 원론적 고려를 떠나서도, 그동안 이명박정부가 한반도정세를 꼬이게 만드는 데 얼마나 결정적인 역할을 했는지를 돌이켜보면 '한반도문제에서 한국정부의 주도력'을 실감할 수 있다. (한반도평화아카데미 2011.12.1 강의 '2013년체제와 포용정책2.0' 참조)

물론 북에서 급변사태가 실제로 일어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리고 먼 장래에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야 누가 알겠는가. 하지만 중기적으로도 북의 급변사태를 방지하려는중국의 의지와 능력에 큰 변동이 없을 터인데다, 지금은 내부적으로 비교적 질서정연한 승계작업이 진행되는 모양새이고, 중국뿐 아니라 미국, 러시아, 일본이 모두 행여나 순탄한 진행이 안될까봐 일제히 '안정 최우선'을 부르짖고 나오는 형국이다. 심지어 이명박정부도, 특유의 무정견(無定見)과 무교양(無敎養)을 드러내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안정유지를 선택한 것이 분명하다.

남한 바깥의 변수로 말하면 오히려 2012년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가 당선될 가능성이 더 걱정거리다. 후보지명전에 나선 인사들 중에 심지어 온건파라는 롬니 매사추세츠주 지사조차 극우적인 공약을 남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악의 경우로 공화당이 집권하더라도 2013년체제가 아주 불가능해질 것 같지는 않다. 조지 W. 부시가 당선된 2000년대 초와 달리, 현재 미국은 국가경제가 거의 거덜나고 국제무대에서의 영향력이 현저히 약화된 상태이며, 이런 판국에 합리적인 국가경영을 아예 포기한 듯한 정강정책을 내걸고 당선된 대통령이 한반도와 동북아에서 부시와 같은 완력을 행사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한국국민이 2012년에 새 출발을 선택했을 때 훼방을 놓고 애를 먹일 수는 있을지언정 완전히 좌절시킬 수는 없으리라 본다.

2013년체제 건설에서의 북한 변수

여기저기서 논의와 공부가 진행되고 있듯이 2013년체제는 한국사회의 일대 전환을 기약하고 있다. 87년체제에서의 민주화가 새로운 단계로 약진하면서 그간의 극심한 양극화 경향을 반전시키고 국가모델을 생명친화적인 복지사회로 바꾸며 정의・연대・신뢰 같은 기본적인 덕목을 존중하는 사회분위기를 재생하는 등의 과제를 설정하고 있다. 이때 핵심적 의제의 하나이자 어떤 의미로는 여타 의제의 성공을 좌우할 것이 분단체제 극복작업의 획기적 진전이다.

'극복작업의 획기적 진전'이지 완전한 '해소'를 주문하지 않는 것은 1953년의 한국전쟁 휴전 이래 굳어져온 분단체제의 온전한 극복은 아직 먼 길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해도 2013년체제 성공의 한가지 전제가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는 작업인 것만은 분명하다. 새 정부가 그것조차 해내지 못한다면 87년체제의 민주개혁작업을 발목잡던 세력을 제어하기 힘들 것이다. 물론 평화협정만 해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고, 북측의 동의와 주변국 특히 미국의 동조가 필요하다. 6자회담이 재개되고 핵문제 해결에 최소한 상당한 진전을 보이면서 남북간 및 미북간의 신뢰가 쌓여야 가능하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김정일 유훈'의 범위 안에 있는 것으로, 북측도 김정은시대의 안착을 위해 마땅히 추구할 일들이라 생각된다.

반면에 남북연합 건설이라는 2013년체제의 더 큰 목표는 좀 다른 차원이다. 이것도 김정일 위원장의 유산인 6・15공동선언에 포함된 것이고 실제로 10・4선언을 통해 그 준비에 시동이 걸렸지만, 정작 남북연합을 수용하려면 새로운 전략적 결단이 필요할 것이다. 김정은 체제가 그럴 의지와 실력을 갖게 될지는 현재로서 미지수인데, 주변여건이 개선되고 특히 남쪽 국민이 북과의 화해와 협력을 확실히 선택하여 지혜롭게 추진할 경우 새 대통령의 임기내 실현이 반드시 불가능한 것도 아니리라 믿는다.

어쨌든 이명박정부의 남은 기간에라도 대북지원과 금강산 관광을 재개하는 것이 급선무다. 경제협력을 확대하고 고위급 접촉을 진행하여 '북한 변수'를 대한민국의 이익과 한반도 대다수 주민의 염원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관리해야 한다. 그렇게 한다면 정권의 불명예가 그나마 덜어지고 87년체제 극복이 그만큼 순조로워질 것이다. 반면에 그것조차 못한다고 하면 정권교체를 통해 새 체제를 출범시킬 필요성이 더욱 커질 따름이다.

2013년체제는 오고 있다

2013년체제가 다가오는 징후는 2011년 한국의 도처에서 나타난 바 있다. 무엇보다 지난 10월의 서울시장 보궐선거와 '안철수현상'이 그랬고, 한진중공업에서 309일 간의 고공농성을 해낸 김진숙 씨가 희망버스를 비롯한 범사회적 지원을 업고 생환할 수 있었던 것 또한 그런 징후의 일환일 것이다. 변화의 중심에 SNS라는 새 매체를 통해 전에 없이 긴밀히 연결되고 소통하는 대중이 있음은 여러 분석가들이 지적하는데, 이들 대중이 여차하면 오프라인에서도 움직일 태세가 되어 있다는 사실이 결정적이다. 여기에 김정일시대의 종언은 어쨌든 변화가 불가피함을 다시금 일깨워주었다. 북에서도 '재스민혁명'이 임박했다는 허황된 기대가 아니라, 남한의 수구세력이 북녘 사정을 정확히 파악하고 분단현실을 슬기롭게 관리할 능력이 태무함을 재확인해줌으로써 시대전환에 대한 우리 국민의 욕구를 더욱 자극하고 있는 것이다.

여당의 유력한 대선후보인 박근혜 의원이 당 비상대책위 위원장으로 때이르게 전면에 나선 것도 2013년체제를 예감케 하는 징후가 아닐까 싶다. 어차피 '이명박 계승'을 내걸고 선거를 치를 수 없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바였고, 따라서 박위원장이 언젠가 나서는 것은 예견된 수순이었다. 그러나 대통령과 거리를 두면서도 좀더 오래도록 신비의 베일 속에 머물다가 총선이 임박해서 혜성처럼 나타나는 것이 애초의 전략이었을 것으로 짐작되는데, 급변하는 세상은 그런 우아한 이미지 정치를 더는 용납하지 않은 것이다. 서울시장 선거에서 마지못해 나경원 후보 지원에 나섰다가 상처만 입었고, 비대위 위원장으로서의 '조기등판'조차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다. 어쨌든 에이스의 구원등판으로 접전의 양상은 달라졌다. 앞으로 박근혜 체제가 실제로 소통과 문제해결 능력을 보여주며 4월 총선을 승리로 이끈다면 그의 대선 전망도 한결 밝아질 것이다. 반면에 그러지 못할 경우 대선승리를 위한 여당의 최대 카드가 일찌감치 무력화되기 쉽다.

야권이 분열로 패배를 자초할 가능성도 엄연히 남아 있다. 그동안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의 출범으로 각기 부분적인 통합을 이루었고 최소한 연합 대상정당의 '개체 수'를 줄이는 성과를 확실히 거두었다. 하지만 이들 두 당의 추가통합 내지 선거연대는 여전히 장담 못할 일이다. 국회의원 선거에서 다른 당끼리 연합한다는 것은 공동정부를 전제로 대통령후보를 단일화하는 일보다 몇배나 어렵기 때문이다. 더구나 어느 정당도 지지하지 않는 유권자들의 위력을 상징하는 '안철수현상'이 추가 변수로 남아 있는데, 연대조차 못하는 야권이 그들을 끌어들이기는 힘들 터이다.

관건은 역시 2013년체제다. 얼굴을 바꾸고 'MB와의 차별화'에 성공한 구 집권세력으로 만족할 것인가, 아니면 남한에서뿐 아니라 남북이 공유하는 획기적인 새 시대로의 전환을 이룩할 것인가. 어렵지만 가슴 벅찬 모험의 길을 향해 다수 국민들이 열성과 지혜를 모으기만 한다면 총선이라는 최대의 난관을 돌파하는 현실적인 방안을 마련하지 못할 이유도 없다. 정치권의 타성과 작은 이익 챙기기가 한결 발붙이기 어려워지는 동시에, 분단체제 속에 살면서 너무 완벽하고 상큼한 해결책을 기대하는 것도 또다른 타성임을 냉철하게 인식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누구보다 우리들 하나하나가 2013년체제 도래의 징후에 마음을 열고 신심에 찬 노력을 지속할 일이다. "겨울이 오면 봄이 멀리 있으랴?"고 영국의 시인 셸리가 노래한 바 있는데( 1819), 우리는 표현을 약간 바꾸어, "봄이 다가오는데 겨울이 오래 버텨낼 수 있으랴?"고 읊어봄직하다.

* 12월 29일 발행된  전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