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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3월 3일 일요일

서울대, '희망버스' 참가이유로 명예교수 탈락시켜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3-03-02일자 기사 '서울대, '희망버스' 참가이유로 명예교수 탈락시켜'를 퍼왔습니다.
김세균 전 서울대 교수… 민교협 "애초 징계부터 부당"

한진중공업 '희망버스'에 참가해 교육과학기술부(교과부) 징계를 받은 김세균 전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가 명예교수로 임용되지 못했다. 이에 대해 "부당한 징계를 이유로 명예교수 심사대상에서 제외했다"는 논란이 일고있다. 
2일 서울대와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민교협)에 따르면 지난달 28일 정년퇴임한 김 전 교수는 서울대 명예교수 심사대상에서 제외됐다. 

김 전 교수는 2011년 6월 '희망버스'에 참가해 부산 영도조선소 한진중공업 내에 집회한 협의(공동주거침입)로 기소됐다. 교과부는 이를 이유로 김 전 교수에게 견책 징계를 내렸다. 

▲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이 올라가 농성을 벌였던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 ⓒ연합뉴스

서울대 관계자는 "'재직기간 중 징계를 받은 사실이 있거나 사회적·윤리적 물의를 일으켜 학교나 교수의 명예를 크게 손상시킨 사실이 있다고 인정된 때에는 명예교수 추대를 하지 아니할 수 있다'는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규정에 따라 심사대상에서 제외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김 전 교수가 소속된 서울대 민교협은 "교과부의 징계가 부당한데 이를 이유로 명예교수 심사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은 잘못됐다"는 의견서를 서울대에 제출했다. 

이도흠 민교협 상임의장은 "애초 희망버스 참가 이유로 교과부가 견책하는 것도 잘못됐고, 또 이를 이유로 명예교수 심사대상에서 제외한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 의장은 "진보, 보수를 떠나 지행일치는 지신인의 도리"라며 "그걸 이유로 견책한 것은 상식과 이성을 벗어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이 의장은 이어 "한 마디로 지식인의 사회참여를 탄압하는 것으로 볼 수 밖에 없다"며 "민교협 차원에서 대응 방안을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교과부는 검찰의 기소에 따라 견책 징계를 내렸으나, 서울중앙지법은 작년 8월 김 전 교수에게 100만 원의 벌금형을 선고유예했다. 선고유예는 범죄의 정도가 경미한 범인에게 일정한 기간 형의 선고를 유예하고, 그 유예기간을 사고 없이 지내면 형의 선고를 면해주는 제도다. 

김병철 기자 | kbc@mediatoday.co.kr 

2013년 2월 24일 일요일

희망은 아직 어떤 안개 같은 것


이글은 한겨레21 2013-02-18일자 제948호 기사 '희망은 아직 어떤 안개 같은 것'을 퍼왔습니다.
[사람과사회] 조계완 ‘노동’경제 연구자가 타고 간 희망버스 3호차… 쌍용차 평택공장, 울산 현대차 비정규직 고공농성장을 찾아가 본 희망, 절망 그리고 우리 시대의 노동

1월26일, 버스가 고속도로를 벗어나 경기도 평택에 접어들고 있었다. 차창 밖으로 겨울새 한 마리가 도로 위를 날고 있다.
진보신당 청년당원 서너 명, 1895일을 싸운 기륭전자 해고 여성노동자 네댓 명, 지난 대선에서 기호 5번 노동자 후보로 나온 김소연 전 기륭전자 분회장, 참여연대 사람들 몇 명, (경향신문) 취재·사진 기자, 그리고 집에서 동네에서 회사에서, 또 아르바이트하다가 각자 온 열댓 명의 시민들, 맨 뒷자리엔 예닐곱 살 딸아이 둘과 애들 아버지가 탔다. 버스 앞유리창 이마엔 ‘3호차’라고 쓰여 있다. 3호차 인솔자인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 명숙씨가 참가비를 3만원씩 걷은 뒤 ‘다시, 희망만들기 쌍용차 한상균·문기주·복기성 동지 힘내세요!’라는 글씨가 적힌 노란 종이쪽지를 나눠준다. 저마다 펜을 꺼내 거기에 무언가 썼다. 철탑 위로 부칠 편지다.

» 희망버스 안에서 참가자들은 손으로 꾹꾹 눌러 편지를 썼다. 밤하늘로 올라간 편지는 구호보다 강할까. 1월26일 현대차 정문에서 행진을 마친 희망버스 참가자들이 촛불집회를 하고 있다. 한겨레 이정아 기자

도망치고 싶었던, 돌아가고 싶은

아침 9시께 서울시청 옆 대한문을 출발한 버스는 11시께 쌍용차 평택공장 맞은편 송전철탑 아래에 도착했다. 길 건너 공장 굴뚝에서 연기가 하얗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멀리 송전탑 위에 친 천막 속에서 세 사람이 나와 손을 머리 위로 동그랗게 들어올리며 흔들었다. 철탑 위의 마이크는 “끝까지 싸워 승리해 공장으로 돌아가겠다”고 외쳤다. 첫 공장 생활 시절 한때 그들에게도 저 공장은 오히려 도망치고 싶은, 지랄 같은 팍팍한 일터였을 것이다. 공장의 닫힌 철문 앞에서 복직을 외치는 그의 쉰 목소리를, 몸부림을 희망이라고 불러도 좋은 것일까? 철탑 밑 길가 농성천막엔 사람은 없고 불 꺼진 난로와 침낭 몇 개만 뒹굴고 있다. 몇 번의 구호와 함성, 노래 그리고 박수가 울려펴졌다. 참가자 몇 명이 버스 안에서 쓴 편지를 모은 보따리를 줄에 매달아 철탑 위로 올려보냈다. 귀마개를 한 젊은 경찰 둘이 방패를 앞세운 채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다. 철탑 아래서 하루 종일 보초근무를 서는 저 청년들도 가끔 공장에 대해, 노동에 대해 생각하며 상념에 젖을 것이다.
공장의 굴뚝 연기가 허공에 흩어졌다. 버스는 다시 울산을 향해 떠났다. 버스 안이 약간 시끌벅적해졌다. 희망버스 참가자들의 자기소개 시간이다. 2012년 12월19일로 시간이 멈춰버렸다는 말을 되풀이하는 50대 남성, 자신이 나갈 사회가 어떤 모습인지 궁금하다는 짧은 머리칼의 19살 소녀, 매일 아침 신문을 보며 한숨만 내쉬곤 했다는 30대 주부, 세상을 지켜보기만 했다는 27살 대학생 둘, “여기 있는 많은 사람들이 해체됐으면 하고 생각할” 기업에 다니고 있다는 50대 중반의 남성…. 어느 책 서문에서 최장집 교수는 말했다. “우리 시대에 있어 노동은 우리의 개인적 그리고 집단적 삶의 형식과 내용을 규정하는 가장 핵심적인 문제로 우리 앞에 나타난다. …산업노동자들의 절망과 고뇌, 그리고 육체적 고통을 이해하고, 많건 적건 이를 나누어 가짐이 없이 물질적·경제적 부의 일정 부분을, 기득권을 향유할 때 오늘날 우리 사회의 누가 과연 스스로를 도덕적이라고 말할 수 있으며 이 사회가 도덕성을 갖는 하나의 사회 공동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버스는 어느새 황간휴게소를 지나고 있었다. 멀리 잿빛 이마에 겨울 잔설을 희끗희끗 이고 있는 월류봉 산등성이가 병풍 같다. 언제부턴가 마이크는 꺼져 있다. 몇 명은 졸고 몇 명은 감기에 콜록대고 몇 명은 차창 바깥을 내다보고 있다.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누군가 싸온 귤봉지가 버스 바닥에 우르르 쏟아졌다. 귤 하나를 만지작거리며 시린 유리창 위에 떠오르던 몇 줄의 말. “어딘가에 아름다운 사람과 사람의 힘은 없는가. 같은 시대를 함께 사는 친근함과 따스함과 그리고 노여움이 날카로운 힘이 되어 솟아오르는.” 창밖으로 높이 치솟은 웅진케미칼·제일모직·STX 공장 굴뚝이 보인다. 경북 구미공단이다. 1970∼80년대 산업노동자들의 땀과 열망이 저 공단에 역사로 남아 있을 것이다.

저들 중 누군가 또 철탑에 오르게 될까

버스 안 분위기가 바뀐다. 공통점 찾기 놀이 시간이다. 걸리면 복도에 나와 노래를 불러야 한다. “고요한 내 가슴에 사랑을 심어놓고 나비처럼~.” 한 청년이 뒷머리를 긁적이며 노래를 불렀다. 다른 한 청년은 “대선 때 여기 김소연 후보를 찍은 공통점을 가진 세 사람이 버스 안에 있다”고 했다. 또 있으면 손들어보라고 한다. 아무도 손을 들지 않는다. 김 후보의 1만6천여 표, 0.05% 득표는 한국의 노동자 정치에서 무엇을 말하는 걸까? 뒷자리에 앉은 김소연 전 후보가 피곤한 듯 내 옆좌석 팔걸이에 발을 올려놓았다. 현장에서 몸으로 싸워온 그의 흰 양말이 따뜻해 보인다. 다시 종이편지를 썼다. 이번에는 울산 철탑에 올라 102일째 농성 중인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 최병승·천의봉씨에게 부쳐질 편지다. “2000년 이후 전국 여기저기 수많은 공장에서 비정규직 싸움이… 끝이 없는, 외롭고 쓸쓸한 싸움… 그러나 희망의 불씨….” 그런 몇 줄을 썼다. 그러고 나선 구겨버렸다. 버스 안 객지에서 가슴의 뜨거움으로 뭔가 쓰고 싶었다.
해가 설핏해질 무렵 버스는 울산 태화강을 건넜다. 길이 막혔다. 현대차 정문에서 이미 집회가 시작된 모양이다. 현대차 정문은 수많은 노조 깃발과 노동자들로 가득 차 있었다. 정문 옆 고객안내실 화장실 앞에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고, 앳된 청년들이 옷 안에서 출입증을 꺼내 보여주며 하나둘 공장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 아마 비정규직일 것이다. 저들 중 누군가도 몇 년 뒤 철탑에 오르게 될까? 봄비 내리는 울산에 왔던 2002년 4월23일(408호 표지이야기 ‘비정규직, 당신은 서글픈 식민지!’ 참조), 그로부터 11년여 만에 다시 온 현대자동차 하청노동자들의 몸서리치는 절망과 아픔, 그리고 열망은 그대로다. 세상은 언제나 달라지며 또한 그대로 있는 것인가? 나부끼는 깃발들 사이로 저만치, 손수건으로 입을 가린 채 ‘불법파견 정규직 전환’ 손팻말을 어색하게 흔들고 있는 여성이 보인다. 아까 내려올 때 버스 안에서 “여기 오는 데 많은 용기가 필요했고 혼자 왔고 쑥스럽기도 하다”고 했던 그 50대 아주머니다. 찢긴 집회 포스터들이 세찬 바람에 날려 공장 담벼락 쪽으로 우르르 흩어졌다.
해가 뉘엿뉘엿 기울고 농성철탑을 향해 행진이 시작됐다. 2천여 명이 차도를 따라 5km 남짓 혹한을 뚫고 걸었다. 철탑은 좀처럼 다가오지 않았다. 대열 속에, 버스 뒷자리에 타고 온 두 아이가 아빠 손을 잡고 걷고 있었다. 몇 사람이 “야, 너희들 멋지다, 용감하다”고 박수를 보냈지만 고단한 행진을 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늘 안쓰럽다. 현대차 명촌 정문 옆 주차장에 있는 철탑농성장에 이미 날은 저물었다. 곧 집회가 시작됐다. 노래패 무대가 끝나고 대열 뒤편에 마련된 밥차 앞에 사람들이 줄을 섰다. 땅에선 국밥을 탄 사람들이 차가운 바닥에 여기저기 쭈그려 앉아 달빛 아래 밥을 먹고, 철탑 쪽에선 밥을 밧줄에 매달아 올려보낸다.

오래 기억될 ‘그해 겨울’의 한판 대결

‘힘내라! 비정규직 콘서트’가 시작됐다. 무대에 선 78살 ‘청년어르신’은 “남은 생애 여러분과 함께하겠다”고 동지적 연대를 보냈고, 초등학교 5학년 아이는 “정규직으로 복직하세요. 힘내세요”라고 쓴 편지를 읽었다. 철탑 위 최병승·천의봉씨가 답장 편지를 읽었다. 밤하늘로 올라간, 꾹꾹 눌러 쓴 편지는 구호보다 강할까? “함께 살자”고 외치는 무대 저편의 시내 주말 술집은 여전히 붐비겠지만, 언젠가 내려온 뒤 그들도 ‘그해 겨울’의 한판 대결을 오래도록 추억할 것이다. 나이 든 노동자 대여섯 명이 철탑 아래 무대에 올라 때 묻은 작업복 차림으로 노래에 맞춰 춤을 췄다. 농성장 곳곳에 모닥불이 타올랐다. ‘우리는 강하다, 반드시 승리한다’고 적힌 플래카드 위로, 휘영청 보름달이 철탑에 걸려 있었다. 밤 10시쯤 버스는 서울을 향해 떠났다. 멀어지는 철탑농성장을 둘러보면, 텅 빈 가슴은 왜 이리 흔들리는지. 희망은 아직 어떤 안개 같은 것일까?

조계완 한겨레 콘텐츠평가실 심의위원 kyewan@hani.co.kr 

2013년 1월 28일 월요일

“대법원 판결 이행하라고 100일 고공농성, 대한민국 현주소”


이글은 민중의소리 2013-01-26일자 기사 '“대법원 판결 이행하라고 100일 고공농성, 대한민국 현주소”'를 퍼왔습니다.
100일 넘은 철탑농성장에 2차 희망버스 출발… 2,000여명 운집

ⓒ이승빈 기자 희망버스 참가자들이 26일 오후 천의봉, 최병승 노동자가 농성중인 울산 현대차 앞에 도착한 가운데 결의대회를 진행하고 있다.

울산으로 향한 희망버스 참가자들이 현대자동차 앞에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촉구했다.

희망버스 참가자들은 26일 오후 울산 현대차 정문 앞에서 정규직 전환을 촉구하는 민주노총 결의대회에 참여했다. 이날 집회에는 통합진보당 이상규 의원을 비롯한 정치인들과 시민사회단체 회원 2000여명(경찰 추산 1300명)이 참가했다.

희망버스 참가자들 “먼저 죽은 노동자들 위해서라도 이 싸움 이기겠다” 

이들은 “최병승, 천의봉 조합원이 현대차에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이행'을 촉구하며 철탑에 올라간지 24일로 100일이 지났다”며 “현대차는 대법원의 판결을 지켜 비정규직을 전원 정규직하라”고 주장했다.

또 현대차의 사내하청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신규채용과 법원의 철탑농성장 강제철거 시도 등을 비판했다.

ⓒ이승빈 기자 희망버스 참가자들이 26일 오후 천의봉, 최병승 노동자가 농성중인 울산 현대차 앞에 도착한 가운데 결의대회를 진행하고 있다.

금속노조 박상철 위원장은 “지난해 대통령 선거 이후에 우리 동지 5명이 세상을 떠났지만 노동자들에게 달라진 것은 하나도 없다”며 “여전히 쌍용차,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철탑에서 내려오지 못하고 있고 유성기업 노동자들은 온몸으로 노조파괴에 항거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 위원장은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공농성이 100일을 넘긴 것이 가슴 아프고 부끄럽다”며 “불법파견을 인정한 대법원 판결을 이행하라고 외쳐도 꿈쩍하지 않는 자본에 맞서 노동자들이 대접받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결의했다.

참여연대 이태호 사무처장도 “오늘로 최병승, 천의봉 동지가 칼바람에 철탑에 올라간지 102일째”라며 “대법원 판결을 이행하라고 100일이 넘도록 철탑에 올라가는 것이 대한민국의 현주소”라고 꼬집었다.

이 사무처장은 “대통령 당선인이 100% 국민 통합한다는 나라에서 최소한의 법도 지키지 않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며 “우리는 고공농성 중인 노동자, 먼저 죽어간 노동자들을 위해서라도 이 싸움을 반드시 이기겠다”고 강조했다.

ⓒ이승빈 기자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깃발과 만장을 들고 26일 오후 천의봉, 최병승 노동자가 농성중인 울산 현대차 철탑 농성장으로 행진하고 있다.

집회를 마친 참가자들은 현대차 정문에서 최 조합원 등이 고공농성중인 명촌 철탑농성장으로 약 5㎞ 정도 행진했다. 이 자리에서 희망버스 참가자들은 최 조합원 등을 격려하는 한편, ‘다시 희망만들기’ 문화제를 개최했다.

한편 이날 ‘1·26 희망과 연대의 날’이란 주제로 전국 곳곳에서 출발한 희망버스는 둘로 나뉘어 현대차 울산공장과 쌍용차 평택공장을 방문해 집회를 개최했다. 이날 희망버스는 지난 5일 현대차 울산공장과 한진중공업 부산 영도조선소를 방문했던 희망버스에 이어 올해 들어 두번째로 진행됐다.

ⓒ이승빈 기자 희망버스 참가자들이 26일 오후 천의봉, 최병승 노동자가 농성중인 울산 현대차 앞에 도착한 가운데 결의대회를 진행하고 있다. 통합진보당 이상규 의원이 함께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승빈 기자 희망버스 참가자들이 26일 오후 천의봉, 최병승 노동자가 농성중인 울산 현대차 앞에 도착한 가운데 결의대회를 진행하고 있다.

ⓒ이승빈 기자 희망버스 참가자들이 26일 오후 천의봉, 최병승 노동자가 농성중인 울산 현대차 앞에 도착한 가운데 결의대회를 진행하고 있다.

ⓒ이승빈 기자 희망버스 참가자들이 26일 오후 천의봉, 최병승 노동자가 농성중인 울산 현대차 앞에 도착한 가운데 결의대회를 진행하고 있다.

ⓒ이승빈 기자 희망버스 참가자들이 26일 오후 천의봉, 최병승 노동자가 농성중인 울산 현대차 앞에 도착한 가운데 결의대회를 진행하고 있다.

정혜규 기자 jhk@vop.co.kr

2013년 1월 27일 일요일

"잘해도 잘리고, 못해도 잘리는…비정규직 운명"


이글은프레시안 2013-01-25일자 기사 '"잘해도 잘리고, 못해도 잘리는…비정규직 운명"'을 퍼왔습니다.
[쌍용차 희망버스 연속 기고·③] 서맹섭 쌍용차지부 비정규직지회장

국정조사 실시와 해고자 복직, 비정규직 정규직화 등을 요구하며 투쟁하고 있는 서맹섭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비정규직지회장을 만났다. 쌍용자동차 평택 공장 인근 송전탑에서 고공 농성 중인 복기성 수석부지회장을 포함한 쌍용자동차 비정규직지회 조합원들은 현재 평택역과 대한문, 송전탑 고공 농성장에서 투쟁하고 있다. 현재 쌍용자동차 비정규직지회는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 및 체불 임금 지급 소송(불법파견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쌍용자동차 투쟁에 비정규직 노동자가 있다?

1월 20일 일요일 오후 평택역 앞 천막 농성장에서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비정규직지회(이하 '비정규직지회') 서맹섭 지회장을 만났다. 서 지회장은 이 천막을 지키면서 국정조사 실시와 해고자 복직,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위해 시민들에게 서명을 받고, 쌍용자동차 문제를 알린다. 242일 간의 천막 농성 기간 동안 1만4000명의 시민이 서명을 해주었다. 시민들은 도 900여 권 샀으며, 투쟁 기금도 꾸준하게 넣어주고 있다.

"쌍용자동차 문제 해결됐다고 뉴스에서 봤는데, 왜 아직도 해요?""무급자만 복귀하는 거고요. 그것도 회사가 임금 소송 취하하라고 해서 아직 해결이 다 안 됐어요.""말씀 좀 묻겠는데요. 안정리 20번 버스 타려면 어디로 가야 돼요?""20번이요? 여기 건너셔 가지고요, 저 가운데 골목 말고 좌측 골목으로 가시면 정류장이 있어요."

▲ 평택역 앞 천막농성장 ⓒ연정

그는 평택역 앞을 오가는 시민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국정조사의 필요성과 쌍용차 문제의 진실을 알린다. 때로는 길이나 교통편을 묻는 시민에게 안내를 하기도 한다. 평택에서 쌍용자동차 투쟁과 관련된 문제가 생기거나 송전탑 농성장에 사안이 생기면 지역시민단체, 지역 민주노총과 소통해서 대응하는 것도 그가 하는 일 중 하나다. 2009년 쌍용자동차 86일 굴뚝 농성의 주인공이기도 한 그는 민주노총 평택안성지부 비대위원 활동도 하고 있다. 서 씨는 인터뷰 전에 다음날 아침 선전전 때 사용할 유인물을 복사해왔다고 했다. 다음날인 21일 오전에는 평택역을 포함한 수도권 주요 전철역에서 쌍용차 사측과 기업노조(위원장 김규한)가 국정조사에 반대하는 서명을 받겠다고 하여, 이에 대한 고민도 해야 한다.

쌍용자동차 비정규직지회에서는 서맹섭 지회장을 포함하여 총 4명의 쌍용차 비정규직 해고노동자들이 투쟁을 함께하고 있다. 조합원은 생계 활동을 하는 4명을 포함하여 총 8명이다. 평택공장 앞 송전탑에서는 비정규직지회 복기성 수석부지회장이 1월 20일로 62일째 문기주·한상균 두 명의 정규직 노동자와 함께 고공 농성을 하고 있다. 송전탑 밑에서는 비정규직지회 한윤수 사무국장이 고공 농성 조합원들을 지원하고, 서울 대한문에서는 유제선 조직부장이 분향소를 지키고 있다. 비록 인원은 많지 않지만, 이들 쌍용차 비정규직지회 조합원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국정조사 실시와 해고자 복직 등 큰 틀에서 쌍용차 투쟁에 함께하면서 쌍용차 비정규직 문제를 알리고 '비정규직 정규직화'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 열심히 싸우고 있다.

하지만 쌍용차에서 비정규직도 싸운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알고 있어도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지나치는 사람들이 많다. 2009년 쌍용자동차 투쟁 당시 쌍용자동차에서 정리해고된 노동자 숫자가 정규직 2646명이 아니라 비정규직 350명을 포함한 3000명이라는 사실 역시 마찬가지다.

왼쪽 문은 정규직, 오른쪽 문은 비정규직


전라남도 구례가 고향인 서맹섭 씨는 농사일을 하는 부모님을 돕다가 농고에 진학했다. 학교에 다니면서 무와 배추를 심고, 소를 키우고, 트랙터와 경운기를 몰았다. 졸업하고 군에 입대한 후에는 경찰관의 꿈을 키우며 경찰 공무원 시험 준비를 했다. 제대 후에 3번 도전했다가 떨어지자 2000년 쌍용자동차에 다니던 친구들의 권유로 평택 쌍용자동차 하청업체에 입사했다. 1년 근무하고, 평택에서 다른 일을 하다가 역시 친구들의 권유로 다시 쌍용차 하청업체에 입사했다. 하청업체인 동산기업으로 들어왔다가 2005년에 영일기업으로 옮긴 후에 2009년 5월 해고될 때까지 그곳 소속으로 있었다.근로계약서는 입사할 때 쓴 이후 거의 쓴 기억이 없다. 업체가 바뀌어도 근속과 고용은 자동 승계되었다.

차체2팀에 들어간 서맹섭 씨는 CO2 용접이나 쇠를 깎는 사상 조립 작업(그라인딩 작업), '도아'와 휀다(펜더)를 조립하는 일을 했다. 서맹섭 씨는 입사 초기 '무쏘'를 잠깐 생산하다가 이후 거의 '로디우스'를 만들었다. 서 씨와 직장이 가장 먼저 그 일을 배웠고, 나중에 온 정규직들에게 서 씨가 일을 가르쳐주기까지 했다. 서 씨는 10명 내외의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섞여 있는 차체2팀 로디우스 3직에서 근무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같은 일을 같이 배우고, 교대 근무를 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서로 1m도 안 되는 거리에서 차문을 조이는 작업을 했다. 왼쪽 문은 정규직이 달고, 오른쪽 문은 비정규직이 달기도 했다. 다만 용접 일은 옷에 구멍이 난다는 이유로 정규직들이 기피했기 때문에 비정규직이 했다.

2005년 노동부의 '사내 하도급 업체 특별 지도점검' 과정에서 쌍용자동차 12개 하청업체 중 동산기업과 영일기업 등의 4개 공정 44명에 대해 불법 파견 판정이 났다. 2006년 각각 벌금 100만 원씩 약식명령이 청구되었다. 당시 서맹섭 씨가 일하던 공정은 불법 파견 혐의로 노동부 조사를 받기도 했었다.

"평택에서 제일 큰 대공장이니까 아무래도 임금이나 복지 면에서 다른 데보다 좋을 거라 생각했었죠. 실질적으로 해보니까 정반대였어요. 한번 몸 닿으니까 딴 데 가서 일하는 게 만만치가 않아서 그냥 견뎌본 건데. 임금은 적어도 열심히 일하면 정규직이 될 수 있다는 말만 믿고 열심히 했지."

대통령상 받은 최저임금 수준의 비정규직 노동자, 정규직을 꿈꾸다

서맹섭 씨는 7년 동안 월차를 두 개밖에 쓰지 않을 정도로 열심히 일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받은 임금은 최저임금을 간신히 웃돌았다. 입사 초기 주야 2교대를 할 때, 가장 많이 받아본 임금이 170만 원이었다. 상여금 600%를 12개월로 나눈 금액을 포함한 금액이었다. 하지만 2007년 물량 감소로 주간 작업만 하면서 세금을 떼고 110~120만 원 정도 받았다. 비정규직에게도 호봉제가 있긴 하지만, 호봉 간 차이가 시급 25원(1일 8시간 200원)에 불과하기 때문에 실질적인 차이가 거의 없다. 5년 다닌 사람이나 10년 다닌 사람이나 임금이 거의 비슷했다. 늦게 입사한 사람이 잔업·특근을 많이 하면 오래 다닌 사람보다 임금이 많아지기도 한다.

▲ 서맹섭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비정규직지회 지회장 ⓒ연정

"2005년에 정규직 노동자들하고 같이 경기도 대표로 출전해서 은상을 받은 적이 있어요. 비용 절감 사례를 발표하는 대회였는데, 쌍용차 생산 과장이 파워포인트를 띄워주고 저랑 직장이 그걸 보면서 발표를 했어요."서맹섭 씨는 2005년 9월, '전국품질분임조경진대회'에서 대통령상을 받은 적도 있다. 상패는 정규직 직장이 받고, 메달은 서 씨가 받았다. 같이 출전해서 은상을 받은 정규직들은 2호봉 승급에 특근이 달리는 등 많은 혜택을 받았지만, 그에게 돌아온 것은 회식 한 번이 다였다. 그래도 그는 수상으로 얻은 고과 점수 덕분에 정규직을 뽑으면 자신이 1순위로 될 수 있겠다는 희망을 품었다. 그런 꿈을 안고 그는 5년 동안 열심히 일만 했다. 2009년 '굴뚝 농성 재판'에서 굴뚝에 지붕이 없어 주거침입죄 성립이 안 되면서 2심까지 무죄 선고를 받았는데, 그게 그 상 때문인가 하는 생각을 했었다며 서맹섭 씨가 웃는다. 경찰 조사 받을 때 상 받은 것 있냐고 묻기에 노무현 대통령상 받았다고 대답했었단다.

5년 동안 비정규직 1500명 해고와 비정규직 노조 설립

그렇게 열심히 일했던 서맹섭 씨는 정규직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2009년 5월 해고되었다. 서 씨는 '잘하면 해고된다'는 이야기를 한다. 쌍용차에서 10년 가까이 비정규직 노동자로 살면서 '못해도 해고되고 잘해도 해고되니 중간만 가야 된다'는 그것 하나 배웠단다.

서 지회장이 입사할 당시 쌍용차에는 비정규직 노동자 1700명이 있었다. 5년 동안 1500명의 노동자들이 영문도 모른 채 일방적인 강제 해고로 쫓겨났다. 2004년도에 500명, 2006년도에 500명이 '희망퇴직'이란 이름으로 쫓겨났다. 그리고 2008년에 정규직 노동조합의 전환 배치 합의로 인해 비정규직 노동자 350명이 쫓겨났다. 그리고 2009년 싸움이 진행될 때도 알게 모르게 100여 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소리도 없이 쫓겨났다.

"2008년 8월에 전환 배치한다는 말을 들었어요. 비정규직들이 일하던 자리에 정규직들이 와서 일을 한다는 거예요. 그때 합의서가 두 번 나왔어요. 한 번은 비정규직에게 희망퇴직을 안 받는 대신 휴업을 하겠다고 했어요. 그런데 일주일 만에 합의서가 바뀌어버린 거야. 위로금 4개월분 줄 테니까 350명은 이것 받고 나가라는 거야."2008년 10월 말, 당시 쌍용자동차지부 1기 집행부(지부장 정일권)는 비정규직 347명에 대한 휴업을 전제로 하는 전환 배치에 사측과 합의했다. 그러나 일주일 뒤에 비정규직 350명을 희망퇴직시키기로 사측과 합의하는 일이 발생했다.

▲ 2008년 11월 4일, 쌍용차 정규직 전환 배치에 따른 비정규직 희망퇴직 관련 노사합의서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쌍용자동차 사측은 하청업체에 할당량을 주어 강제적인 희망퇴직을 진행했다. 사측은 '지금 희망퇴직을 하면 나중에 사람 뽑을 때 들어올 수 있다'는 등의 회유와 협박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정리해고했다. 지저분하고 힘들다는 이유로 비정규직이 했던 일을 기피했던 정규직들은 2008년 전환 배치 당시 어쩔 수 없이 비정규직들이 하던 힘든 공정에 오게 됐다. 관리자들은 비정규직이 쫓겨난 자리를 두고 정규직들에게 "여기 안 가면 잘린다. 잘려나갈래? 아니면 여기 갈래?"라고 윽박질렀다. 서맹섭 씨가 하던 용접 일도 그가 쫓겨나면서 정규직이 와서 하게 된다.

말 한마디 못하고 쫓겨날 수는 없다는 생각 때문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회사의 감시속에 정규직 노동자들의 도움을 받아 2008년 10월 22일 노동조합을 결성했다.

"참 어렵게 노동조합을 만들었어요. 초동 주체 3명이 이름 걸고 띄웠어요. 정규직 활동가들이 정규직이랑 노무팀 반발을 통제하고 엄호해 주면서 많이 도와줬죠. 그래서 무사히 띄울 수가 있었어요."

▲ 2008년 10월 23일, 쌍용자동차 비정규직지회 설립 보고 대회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비정규직지회

전체 비정규직 노동자들 640명 중 150명이 가입했다.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강제 휴업·희망퇴직·전환 배치 철회를 요구하며 싸웠지만, 사측은 업체를 강제 휴업시켰다. 그리고 희망퇴직에 동의하지 않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해고를 통보하기 시작했다. 서맹섭 지회장은 2009년 5월 해고자가 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함께 살기 위한 투쟁

서맹섭 지회장은 그 당시 정규직들이 한 번 더 휴업을 나가더라도 힘을 합쳐서 전환 배치를 막았어야 했다고 이야기한다. 그는 비정규직을 자신들의 고용 안정을 위한 방패로 생각하는 정규직들의 사고방식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한 번 밀리니까 회사는 걷잡을 수 없이 치고 들어왔다.

"2008년도에 정규직 전환 배치를 막아냈어야 돼. 그게 시발점이 된 것 아닌가. 인건비 싼 비정규직 다 쫓아내니까 그 다음에 쫓아낼 사람이 없는 것이잖아요. 그때 우리가 한참 외쳤던 게 '우리 나가면 당신들도 나간다'였어요. 정규직도 칼바람 들어온다, 우리 쫓아내면 안 된다, 전환 배치 하면 안 된다, 그렇게 싸워왔던 건데 못 막아 버린 거지."

▲ 2009년 4월, 회사 내에서 중식 선전전을 진행하고 있는 쌍용차 비정규직지회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비정규직지회

2008년 12월 초에 한상균 지부장이 당선되자마자 사측은 법정관리를 신청했고, 그때부터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정규직 노동조합 사무실을 함께 쓰고 잠을 자면서 투쟁했다. 당시 한상균 지부장 집행부는 일자리 나누기(5+5와 3조 2교대)와 비정규직 고용안정기금 12억 원 노동조합 출연 등 정리해고 없이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함께 살 수 있는 자구책을 제시하였으나, 사측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정리해고를 진행하였다. 비정규직지회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함께 살기 위한 이 투쟁에 흔쾌히 동참했다.

86일 간의 굴뚝 농성과 휴지 조각이 된 8.6 합의

2009년 5월 13일, 서맹섭 지회장(당시 부지회장)은 정규직 노동자 두 명과 함께 쌍용자동차 내에 있는 굴뚝에 올라가 86일 간의 고공농성을 한다.

"저는 비정규직의 억울한 입장을 대변하기 위해서 굴뚝에 올라간 거예요. 살기 위해서 올라간 거지. 말 한마디 못하고 그냥 쫓겨났던 게 얼마나 억울해요. '여기 누가 온다니까 너 나가라.' 그게 말이 되는 소리예요? 열심히 일만 했던 사람들인데…. 또, 분사를 저지하고, 비정규직을 늘리면 안 된다는 요구도 했죠."

▲ 2009년 7월, 86일 간의 고공농성이 진행된 쌍용차 굴뚝 ⓒ연정

굴뚝에 처음 올라갈 때, 여기서 해결되지 않으면 내려가지 않겠다는 각오로 올라갔다.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왜 내려왔나 후회가 된다고 했다. 그때 야무지게 해결했으면 또 다른 누군가가 철탑에 올라갔겠나 싶어서다. 헬기 소리와 쏟아지는 최루액을 견디며 86일을 버틴 경험이 있는 그는 지금 철탑에 올라가 있는 조합원들의 심정을 어느 누구보다도 잘 안다고 했다. 그는 무엇보다 고공 농성자들의 건강이 염려된다고 했다.

"힘들어도 힘들다고 말할 수 없고.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목숨 걸고 올라가 있는 분들이에요."굴뚝 농성 50일 즈음부터 서 씨는 음식물을 넘기지 못해 속이 다 망가졌다. 2009년 8월 6일 노사 합의 이후 경찰에 연행된 다음 병원에 입원했던 당시만 해도 지금과 같은 상황은 상상하지 못했다. 8.6 합의에는 비정규직 노동자 19명을 10월 1일자로 복직시킨다는 내용이 있었다. 10월 1일자로 복귀시키겠다며 9월에 비정규직 복직 대상자 명단까지 요구했던 사측은 10월에 면접을 보라고 했다. 결과는 전원 불합격이었다. 면접 과정에서 사측은 "도장반에 들어가서 도장똥 제거하다가 깔려 죽을 수도 있다"는 등의 말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두 차례나 큰 상처를 주었다. 그 결과 연배가 있는 여성 노동자들이 큰 상처를 받고 복직을 포기하는 일도 있었다. 17명이었던 복직 대상자는 8명으로 줄었고, 이 중 생계 활동을 위해 나간 조합원을 제외하고 현재 4명의 조합원이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우리는 정규직으로 공장에 돌아갈 겁니다

쌍용자동차가 비정규직 19명을 복직시키기로 했던 8.6 합의를 이행하지 않자 비정규직지회는 곧바로 항의 기자회견을 하고, 평택공장 앞에서 복직을 요구하는 천막 농성에 들어갔다. 2010년 8월에는 비정규직 고용에 관한 노사 합의서 이행을 강제하기 위해 수원 지방법원 평택지원에 '확약서 이행 가처분신청'을 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해 겨울에는 쌍용자동차 이유일·박영태 공동 관리인의 서울 집 앞에서 1인시위를 진행했다. 당시, 베일에 쌓여 있던 공동 관리인의 집을 찾아냈던 이들이 바로 쌍용차 비정규직지회 조합원들이었다.

"그때 해결 못하고 4년을 이어가고 있다는 게 정말 말로 표현 못할 정도로 괴로워요. 슬픈 현실이지. 그렇게 치열하게 싸우고 내려왔는데도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고. 비정규직 단 한 명도 못 들어가 있고, 길거리에서 계속 싸움을 만들어가야 하니…."

▲ 2010년 12월 박영태 쌍용자동차 공동 관리인 집 앞에서 1인시위를 하고 있는 서맹섭 지회장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비정규직지회

비정규직지회는 인도 마힌드라&마힌드라 그룹이 쌍용자동차를 인수한 이후에는 인도대사관 앞에서 1인시위를 한다. 2011년 말에는 4.11 총선을 앞두고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촉구하기 위해 8. 6 노사 합의 과정에 참여했던 평택 지역 국회의원인 새누리당 원유철 의원과 민주통합당 정장선 의원 사무실 앞에서 6개월 동안 텐트 농성을 했다. 그 결과 쌍용차 평택공장 본관에서 쌍용차 사측과 교섭이 진행되었으나 사측은 "명분상 1~2명 정도 검토해볼 수 있다", "정치적인 상황과 맞물려 만들어지는 자리가 맞지 않다.", "지금의 만남 형태가 적절하지 않다"는 등 무성의하고 형식적인 태도를 보여 성과 없이 종료되었다. 쌍용자동차는 비정규직을 신규 채용하고 있음에도 2009년 노사 합의에서 약속했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복직을 이행하지 않았다.

그 사이 쌍용차는 분사를 진행하여 기존에 희망퇴직한 정규직 노동자들을 비정규직으로 고용해 일을 시켰다. 쌍용차는 분사업체에 들어온 노동자들에게 2013년까지 연봉3500만 원을 보전해주겠다고 약속하였으나 연봉은 해마다 감소하고 있다. '싫으면 나가라'는 태도에 분사업체 노동자들은 불만을 억누르고 근무를 하고 있다. 현재 쌍용자동차 안에서는 800명에 가까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다. 기존 하청업체 소속 비정규직 노동자가 약 420명이고, 분사업체 소속 노동자가 약 360명이다.

비정규직지회는 현재 불법 파견 집단소송 중이다. 2011년 4월 29일, 수원지방법원 평택지원에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 및 체불 임금 지급 소송'을 신청하여 2년에 가까운심리를 진행하고 있는 쌍용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곧 선고를 앞두고 있다.

"이미 회사가 복직 약속을 어겼기 때문에 8.6 합의는 실효성이 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비정규직으로 들어갈 수 없어요. 우리는 정규직으로 공장에 돌아갈 겁니다. 2006년도 쌍용자동차가 파견법을 위반해 우리는 이미 정규직이 됐어야 할 사람들인데, 비정규직으로 강제로 쫓겨난 거잖아요. 다들 2년이 경과했기 때문에 자동 정규직이 돼야 될 사람들인데, 또다시 비정규직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앞뒤가 안 맞는 얘기입니다."  비정규직지회는 정규직으로 복직하는 것을 목표로 투쟁하고 있다. 이 결정을 하기까지 쌍용자동차지부(정규직 노조)의 권유와 격려가 큰 힘이 되었다. 현재 지부에서도 이 요구안을 안고 함께 투쟁하고 있다. 서 지회장은 재판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비정규직 정규직화 투쟁을 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비정규직 투쟁을 넘어 정규직·비정규직 공동 투쟁으로 

2010년 2월 쌍용자동차 정규직-비정규직 노조 1사 1조직이 투표 조합원 97%의 찬성 속에서 이루어진다. 그 이전에도 같은 금속노조 소속으로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함께 투쟁을 했지만, 비정규직지회는 금속노조에 직접 가입했었다. 비정규직지회는 지난해 총선까지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해 여러 독자적인 투쟁을 했다.

대한문에 분향소를 설치할 즈음인 지난해 봄, 비정규직 문제를 안고 함께 싸우겠다는 현 4기 집행부(김정우 지부장)의 제안과 설득이 있었다. 이에 공감한 비정규직지회는 그 후 해고자 복직과 살인 진압 책임자 처벌, 회계 조작 진상 규명 등 5대 요구안을 바탕으로 하는 지부 투쟁의 큰 틀 속에서 평택역·대한문·평택 송전탑에서 정규직과 공동 투쟁을 하며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다만, 비정규직지회 조합원들이 서로 떨어져 있기 때문에 회의 한 번 하는 게 쉽지 않은 단점은 있다. 그나마 서로 눈빛만 봐도 알 정도의 관계를 맺고 있어 소통하는 데 별 어려움은 없는 게 다행이다.

▲ 2009년 6월 6일 쌍용자동차 옥쇄파업 당시, 평택공장 안에서 열린 '쌍용자동차 총파업 투쟁 승리 문화제' 상징 의식 장면 ⓒ연정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떠나 하나 된 노동자의 힘으로 함께 투쟁하는 것이 소중하다"며 서맹섭 지회장이 쌍용자동차 1사 1조직과 현재 진행되고 있는 쌍용차 정규직-비정규직 공동 투쟁의 의미를 설명한다. 서 지회장은 각자 맡은 자리와 역할 속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음에도 비정규직 얘기가 기대보다 많이 알려지지 않는 것이 아쉽다는 이야기도 한다. 또, 비정규직 요구 달성을 위한 투쟁의 길이 많이 열려 있지 않은 점도 안타깝다고 했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있는지도 잘 몰라요

"형님, 고생 많으시죠. 잠깐 통화돼요? 범대위 선전물 나오잖아요. 아까 내가 메일 들어가서 퍼갔는데요. 내일 아침 평택역에서 쓰려고. 앞면에 타이틀로 '쌍용차 해고자 복직과 정규직화'라는 글이 있어요. 이것은 약간 안 맞는 것 같아요. '쌍용차 해고자 및 비정규직 정규직화 복직'으로 쓰든지, 아니면 '정규직화'를 빼버리든지."

인터뷰가 진행되던 1월 20일, 서맹섭 지회장이 지역 범대위('살인 정권 규탄! 정리해고 철폐! 쌍용차 희생자 추모와 해고자 복직을 위한 범국민대책위원회') 관계자에서 전화를 한다. 새로 나온 범대위 선전물 헤드라인에 있는 '쌍용차 해고자 복직과 정규직화'라는 문구가 정확하게 의미를 전달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통 '비정규직 정규직화'라는 표현을 쓰기도 하거니와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함께 싸우는 쌍용차지부의 경우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복직해야 한다는 내용을 더 정확하게 전달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서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있는지도 잘 몰라요. 비정규직이 집회 사회를 보고, 발언하고, 송전탑에 올라가 있는데도 몰라요. 그런 게 답답한 거죠. 국회의원들이 여기 철탑에 왔는데도 쌍용차에 비정규직이 있는지도 모르고, 철탑에 비정규직이 올라갔는지도 몰라요." 

"느그 걸 왜 느그가 거냐?", 비정규직이 '비정규직 정규직화' 현수막 건 사연

쌍용자동차지부 철탑 고공농성 40일이 되어갈 즈음인 지난해 말, '비정규직 정규직화'라는 현수막이 걸렸다. 농성 초기에 걸린 '해고자 복직'과 '쌍용차 국정조사' 현수막 사이에 '비정규직 정규직화' 현수막을 건 사람이 바로 서맹섭 지회장이다.

"비정규직 동지가 저 철탑에 있는 한 비정규직의 요구안인 '비정규직 정규직화' 플래카드는 걸어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비정규직 목소리만 내겠다는 게 아니라 지부라는 큰 울타리에서 같이하면서 우리 목소리를 내겠다는 거였죠. 그래서 그 플래카드를 거는 문제로 논의를 해달라고 지부 임원들한테 요청을 했어요. 몇 번을 얘기했는데도 곳곳에서 투쟁을 하느라 논의할 여건이 안 되었는지 지부에서는 기다려달라는 말만 했어요. '해고자 복직 플래카드가 있는데, 굳이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걸어야 되냐? 우리 내부는 다 정규직화 투쟁을 알고 있다'고 하기에 또 한 번 설명을 해주면서 복기성 비정규직 동지가 있는 한 걸어야겠다고 했어요."

몇 차례에 걸쳐 '비정규직 정규직화' 현수막 거는 것과 관련해 지부 내 논의를 해달라고 요청했지만, 답변을 듣지는 못했다. 지역 단체에도 얘기를 했는데, 얘기해보겠다는 대답만 들었다. 결국 서맹섭 지회장은 직접 현수막을 제작하고, 단체 활동가 한 명과 같이 송전탑에 가서 현수막을 걸었다.

▲ 1월 20일,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 앞 송전탑 고공 농성장. 가운데 있는 '비정규직 정규직화' 현수막을 서맹섭 지회장이 걸었다. ⓒ연정

비정규직의 요구가 담긴 현수막을 직접 걸면서 서 지회장은 답답함을 느꼈다고 한다. 당시 송전탑 주변에 있던 경찰은 "느그 걸 왜 느그가 거냐?"고 했단다. 심지어는 경찰이 지부 조합원에게 "정규직, 비정규직 함께 싸운다더니 비정규직 건 다 빼버리고 당신들만 살라고 하냐? 이건 너무 잘못된 것 아니냐? 이건 당연히 걸어야 되는 건데, 정규직이 걸어야 되는 것 아니냐? 여기서도 차별하냐?"고 했다고 한다. 경찰은 앞으로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같이 걸고, 같이 얘기하라는 훈계까지 했다고 한다.

쌍용차 정규직-비정규직 아름다운 투쟁을 조금만 더 알아줬으면

범대위에서 마련한 쌍용차 문제 해결을 위한 5대 요구안에도 쌍용차 비정규직 문제는 들어 있지 않다. 다섯 번째 항목에 '정리해고-비정규직 철폐'가 들어 있긴 하지만, 이는 쌍용차 비정규직 문제라기보다는 전체 노동자 문제에 관한 요구안에 가깝다. 범대위에서 만든 선전물에는 비정규직 얘기가 언급조차 되어 있지 않다가 최근에 와서야 들어갔는데, 비정규직 350명이 해고되었다는 내용 정도에 불과하다. 범대위 서명 용지에 들어가 있던 '비정규직 350명 해고' 내용이 최근에는 빠지는 일도 있었다. 이 서명 용지에는 (비정규직을 포함한 3000명이 아니라) '노동자 2646명이 쫓겨나서'라는 문구가 들어 있다. '무신경이 불러일으킨 고의'로 보인다. 비정규직지회는 지속적으로 자신들의 요구를 전달하고 있다. 지부와 범대위에서 비정규직 문제를 이야기해주려고 하고 선전물에도 관련 내용을 넣으려는 노력은 하고 있기 때문에 점점 나아지고 있단다.

▲ 쌍용차 문제 해결을 위한 5대 요구안 관련 최근 범대위 서명 용지. 첫 번째 줄에 비정규직 해고 노동자를 포함한 3000명이 아니라 '2646명의 노동자들이 쫓겨나서'라는 문구가 있다. ⓒ연정

"저는 국회의원들 만나면 얘기해요. '내가 비정규직지회 지회장이고, 2009년 굴뚝에서 86일 동안 있었다. 그렇게 싸웠는데도 우리 비정규직 동지가 또다시 철탑에 올라갔다. 제일 먼저 해결할 수 있는 게 비정규직 문제였는데, 하나도 해결된 게 없다. 쌍용차 투쟁에는 정규직만 있는 게 아니라 비정규직이 함께 있다. 모든 게 다 정규직 중심으로만 부각되고 있는데, 이 안에도 약한 사람이 있다. 약자를 한 번 더 고민해주고 생각해주면 좋겠다.' 그렇게 이야기한다."

쌍용차 투쟁에 오는 국회의원들도 쌍용차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있고, 이들이 6년째 투쟁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모른다. 서 지회장은 그 이유가 각종 보고용 문서 자료나 선전물에 쌍용차 비정규직 이야기가 들어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쌍용차 안에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있다는 걸 정확하게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서울 대한문에서, 철탑 위아래에서, 평택역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공동의 목소리로 아름다운 쌍용차 투쟁을 하고 있다는 걸 조금만 더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될 것이다 될 것이다' 긍정적인 주문을 걸고 있는 날들

서맹섭 씨는 11세, 7세, 3세, 20개월 된 네 아이의 아빠다. 그나마 아직 애들이 어려서 큰돈이 안 들어가는 게 다행이란다. 태어나자마자 심장에 구멍이 생긴 선천성 심실 중격 결손증으로 많은 걱정을 하게 했던 막내는 엄마, 아빠의 정성과 민중가수 박준 씨 등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상태가 좋아지고 있다. 서 씨는 아이들 때문에 서울에 가지 못하고 평택역 천막 농성장을 맡게 되었는데, 일주일에 집에서 자는 날이 두 번 정도다. 그나마도 밤 9~10시에 들어가서 자고, 아침에 아이들을 학교와 유치원에 보내고 바로 농성장에 나오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서 씨에게 묻는 것 중 하나가 생계 문제다.

"지부에서 생계비 받는 걸로 살아요. 애기 기저귀나 분유는 주변에서 많이 도와주고 계세요. 제가 회사 다닐 때도 큰돈은 안 만졌기 때문에 부족하지만 거기에 맞춰서 살아요. 쓰는 것 좀 줄이고, 애들이 많아서 외식하는 것도 어렵기 때문에 집에서 자장면 시켜서 먹고요."

그는 주말이면 아빠와 놀이터에 가서 놀고 싶어 하는 아이들의 마음을 뿌리치고 나오는 게 힘들다고 한다. 고공 농성을 하고 천막에 있는 동료들을 생각하면 집에 있어도 마음이 편치가 않은 요즘이다. 그는 요즘 '안 된다'가 아니라 '될 것이다, 될 것이다'라고 자신에게 긍정적인 주문을 걸고 있다. 86일 간의 굴뚝 농성으로 살이 10kg 빠지고, 농성이 마무리된 이후에도 '두두두두' 헬기 소리 환청으로 인한 심리적 불안과 불면증의 고통과 싸우며 투쟁을 이어온 서맹섭 씨는 최근 많이 지친다고 했다.

"요즘 많이 힘들고 지쳐요. 하지만, 내가 해야 할 일이고, 우리 아이들 생각하면서 이 어둠을 뚫어보려고 나도 모르게 지금 힘을 내서 가고 있는 것 같아요. 애들이 있기 때문에 힘이 나는 것 아닌가 싶어요. 우리 애들이 컸을 때는 이 땅에 비정규직 차별이 없어야 하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이란 게 없어져야죠. 이런 삶을 또다시 물려준다는 건 부모로서 말이 안 되죠." 

▲ 평택 쌍용자동차 앞 송전탑 농성장 앞, 쌍용차지부 정규직·비정규직 조합원들. 첫째 줄 가장 오른쪽이 서맹섭 지회장.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비정규직지회

어떤 때는 '너무 지쳤다. 이거 정말 계속해야 되는 건가? 시골 가서 농사나 지을까?'하며 갈등할 때도 있지만, 아직까지 자신이 해야 할 일은 쌍용자동차 공장에 들어가는 것이란다. 서맹섭 씨는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서러움을 느끼지 않고 일터에서 평등하게 사는 날까지 먼저 싸우는 동지들이 좀 더 투쟁을 이어가야 하지 않겠냐고 이야기한다.

"평범한 직장에서 일하고, 우리 아이들 아프지 않고 잘 크고, 우리 아이들이 원하는 건 다 벌어서 해줄 수 있는 게 행복 아닌가. 로또라도 한 번 됐으면 좋겠는데, 그건 꿈에도 안 될 거고.(웃음) 나중에 시골 내려가서 농사나 지으면서 살고 싶은 소박한 꿈이 있어요. 우리가 지금 많이 힘들고 지쳐 있는데요. 함께하는 동지들이 있으니까 그 힘으로 조금만 힘내서 갔으면 좋겠어요. 올해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아니라 모두 정규직으로 공장에 들어가서 막걸리 파티를 꼭 하고 싶어요. 철탑에 있는 세 동지들이 무사히 내려올 수 있게 조금만 더 힘냈으면 좋겠습니다." 


- 쌍용차 희망버스 연속 기고
 ① "20년 전 신입사원 땐 이렇게 울게 될지 몰랐다"
 ② 철탑 위 아빠는 딸 입학식에 갈 수 있을까

/연정 르포작가 서맹섭

2013년 1월 4일 금요일

동지들이 숨을 쉴 수 있도록 하루라도 ...단 하루라도..


이글은 레디앙 2013-01-03일자 기사 '동지들이 숨을 쉴 수 있도록 하루라도 ...단 하루라도..'를 퍼왔습니다.
[기고] 1월 5일 희망버스로 다시 희망의 온기를 만들자

대한민국. 하루에도 몇십곡씩 신곡들이 쏟아져 나온다. 여기도 사랑, 저기도 사랑. 사랑이 참 중요한 것인가 보다. 사람의 감성 중 사람들의 마음을 지옥에서 저 하늘까지 끌어올리기도 하고 반대로 뚝 떨어뜨리기도 하는 그것, 사랑. 가요의 99%는 이 사랑을 노래한다.


나는 노래를 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 흔한 사랑노래는 부른 적이 없다 내 노래의 99%는 아마 동지애라는 이름으로 불리워지는 것들일 것이다.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자.’ 뭐 이러면서 동지애를 사랑보다 몇 단계 위쯤으로 얘기하며 노래를 해왔다.


그런데 나, 그리고 우리, 그렇게 살고 있는 건 맞나?


2012년의 끝자락. 눈 내리고 추운 날 마석 열사묘역에 갔다, 안 온 사이에 비어있던 묘자리가 또 다른 누군가로 채워져 있었다. ‘아…이 분!.. 아…이 사람!’ 아는 얼굴들이 늘어나고 먼저 누워있는 사람들은 나보다 나이가 어려지고 난 이제 그의 누나나 언니뻘이 돼서 또다시 동지애를 노래로 부르고 있었다.



용산참사 집회에서 노래를 부르는 지민주씨

많은 일들을 경험하면 익숙해진다고 하는데 왜 이렇듯 동지들이 떠나버리면 익숙하기는커녕 내 생명도 조금씩 단축되는 느낌이 드는 걸까? 진짜 드라마의 대사처럼 심장이 딱딱해지면 더 냉정해질텐데, 이놈의 눈물은 예전에도 한바가지 쏟아서 마를 줄 알았는데 오늘도 한바가지가 나오는 걸 보면 사람은 사랑도 있고 눈물도 많은 여린 존재인가보다.
‘왜 갔냐고, 왜 먼저 갔냐’고 수도 없이 물어봤다. ‘너만 힘드냐고, 나도 힘들다’고 ‘그렇게 아팠으면 얘기하면 되잖냐’고 물어보고 또 물어보았다.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포기하는 게 무엇 때문일까? 절망, 진짜 그거 밖에 없다. 그런데 그 절망은 누가 주는 걸까? 적어도 적들은 아닐 것이다 원래 그런 놈들이었으니까. 몇십년을 일했는데 지들 멋대로 쫒아내고 억울해서 농성이라도 할라치면 어디서 시커먼 깡패들 돈 바리바리 싸들여 모셔 놔두고 이리 패고 저리 패고 하는 그 놈들한테 절망감을 느끼진 않을 것이다. 그것은 분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우리에게 절망은 인간의 최고의 감성인 사랑, 그보다도 레벨이 높다고 자부하는 동지애로부터 오는 것이 아닐까? 동지가 희망이었는데 그 희망이 떠나버려 절망이 뒤이어 찾아온 것이다.
절망. 어쩌면 난 묘지안의 사람들에게 절망이었는지도 모른다. 손조차 내밀 수 없이 먼 곳에 있는… 연대란 것을 말로만 구호로만 내뱉다가 시간이 지나면 따듯한 내 집으로 들어가 내일 있을 약속을 생각하고, 아이들과 이번 방학엔 어디로 여행을 갈지 생각하는 내가 당신들에겐 절망일 수 있었던 거야… 그렇게 보낸 사람이 아니 동지가 얼마나 많은가.
대통령이 바뀌어야 한다고 발바닥에 땀나도록 뛰다가 뜻을 못 이뤄 ‘멘붕’이란 말로 며칠씩 술 퍼마시고 힘들어 죽네사네 할 때도 여전히 동지들은 철탑 위 또는 굴다리 위, 결코 사람이 있어선 안될 곳에 둥지를 틀고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말이다.
희망이라는 말 참 진부하다고 다른 말로 이 얼음장 같은 세상을 헤쳐나가자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그런데 사랑이 절대적이듯 희망도 절대적일 수밖에 없더라. 이순간 그것마저 말하지 못하고 안아주지 못하면 도대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 수 있겠는가.
한진중공업 김진숙 동지가 1년 가까이를 버티다 따낸 전원 원직복직. 그때 희망이 그녀에게로 갔고 우리에겐 김진숙은 희망의 또다른 이름이었다. 하지만 최강서는 복직되지 못했고 생활고라는 내용의 뉴스만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었다. 그 희망은 어디로 사라져버렸나…무엇이 절망으로 변해버린 거였나.
늦지 않았다. 아니 이제 우리의 시간이 다시 돌아왔다. 다시 달려갈 것이다. 조직되면 좋겠지만 그게 아니어도 된다. 천명이면 좋겠지만 하나 혹 둘이어도 된다. 그 자리에서 만나자. 울산의 등대지기로 70일 넘게, 돌아가야 할 공장을 망부석처럼 바라보는 동지들 곁으로, 열사들의 눈물과 동지들의 땀으로 빛바랜 하늘색 작업복이 푸른 바다처럼 싱싱하게 차오를 세상을 살아서 만나보자.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1월 5일. 체온이 닿지 않는 철탑 위지만, 바닷바람 강한 영도 조선소지만 우리가 가서 37도가 아닌 40도 정도는 너끈이 넘겨버릴 동지애라는 온기를 전해주자. 동지들이 조금 더 깊은 숨을 쉴 수 있도록. 하루라도… 단, 하루라도…

By 지민주/ 노동가수 

2012년 10월 8일 월요일

영화인들 ‘희망버스’에 시동...“정리해고자 복직 약속을 지켜라”


이글은 민중의소리 2012-10-07일자 기사 '영화인들 ‘희망버스’에 시동...“정리해고자 복직 약속을 지켜라”'를 퍼왔습니다.
[현장] ‘나는 네가 지난 가을에 한 일을 알고 있다’를 주제로 ‘영화인 희망버스 문화제’ 열려

ⓒ민중의 소리 6일 부산 영도구 한진중공업 정문 앞에서 '영화인 희망버스 문화제'가 열렸다.

“영화인 희망버스가 다시 한진중공업을 향합니다”

부산국제영화제 기간에 영화인들이 한진중공업 희망버스에 시동을 걸었다. 사측이 정리해고자들을 오는 11월까지 복직시키겠다는 약속을 했지만 어떤 답도 내놓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바라는 영화인들’, ‘희망버스 사법탄압에 맞서는 돌려차기’, 한진중공업 노조원, 각 지역 노조원 등 100여 명은 6일 부산 영도구 한진중공업 정문 앞에서 ‘영화인 희망버스 문화제’를 열고 “사측은 정리해고자를 복직하겠다는 약속을 지키라”고 주장했다.

앞서 이들은 오후 3시 30분경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리고 있는 영화의 전당 앞에서도 문화제를 열고 이 같은 약속 이행을 촉구했다.

부산 영화의 전당에서 문화제를 마친 뒤 122일간 천막농성이 진행 중인 한진중공업 정문으로 이동해 문화제를 이어갔다. 이곳에서 ‘나는 네가 지난 가을에 한 일을 알고 있다’는 주제로 ‘영화인 희망버스 문화제’를 열었다. 

ⓒ민중의 소리 6일 부산 영도구 한진중공업 정문 앞에서 '영화인 희망버스 문화제'가 열렸다.

ⓒ민중의소리 6일 부산 영도구 한진중공업 정문 앞에서 '영화인 희망버스 문화제'가 열렸다.

영화 ‘두결한장’의 김조광수 감독은 “오늘 문화제 제목은 ‘나는 네가 지난 가을에 한 일을 알고 있다’다. 이처럼 우리는 지난 가을 사측이 1년 안에 해고자를 복직하겠다는 약속을 한 것을 기억하고 있다. 이 문화제는 사측에게 그것을 환기시켜주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사측과의 약속뿐만 아니라 지난 가을 우리가 얻었던 해방을 잊지 않기 위해서 여기 다시 모였다고도 할 수 있다”며 “그때의 뜨거웠던 다짐과 희망을 잊지 말자”고 강조했다. 

영화인들이 희망버스에 시동을 건 것은 지난 부산국제영화제 이후로 두 번째다. 이들은 지난 해 해운대에서 ‘영화인 희망버스’를 타고 한진중공업으로 출발해 정리해고 철회를 지지한 바 있다. 그리고 당시 개막식에서 한진중공업 작업복을 입고 레드카펫을 밟는 등 다양한 방식의 투쟁으로 힘을 보탰다. 

이날 ‘영화인 문화제’에는 그룹 ‘킬라몬키즈’가 화려한 비보잉을 선보여 무대열기를 한층 뜨겁게 달궜다. 뿐만 아니라 지난해부터 희망버스를 지지하는 일본 문화예술인들이 한국까지 건너와 훈훈함을 더했다. 이밖에도 댄스가수와 노래패들의 공연이 이어졌다. 

공연이 끝난 뒤, 차해도 한진중공업 지회장은 사측의 약속불이행에 대한 발언을 이어나갔다. 그는 “약속한지 1년이 지났지만 사측은 158억 3천만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고 복수노조를 앞세워 한진중공업이 정상화 했다고 말해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고 있다”며 분개했다.

그러면서도 “영화인의 축제 부산국제영화제가 시작됐다. 시민은 혜택을 많이 받는다. 하지만 노동자와 민중은 아직 함께 할 수 없다. 비록 지금은 허리를 굽혔지만 절대 꺾이진 않겠다”고 투쟁 의지를 내비췄다. 

이날 문화제에는 한진중공업 노조원들을 비롯해 김조광수 감독, 연극배우 맹봉학, 문화예술인, 민중가수들이 참여했다. 

ⓒ민중의 소리 6일 부산 영도구 한진중공업 정문 앞에서 '영화인 희망버스 문화제'가 열렸다.

ⓒ민중의 소리 6일 부산 영도구 한진중공업 정문 앞에서 '영화인 희망버스 문화제'가 열렸다.

김세운 기자 ksw@vop.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