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블이 국민경제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레이블이 국민경제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2012년 7월 21일 토요일

엉터리 경제민주화


이글은 대자보 2012-07-20일자 기사 ' 엉터리 경제민주화'를 퍼왔습니다.
[김영호 칼럼] 경제민주화 본질은 민생복리, 재벌규제 여기서 해답 찾아야

경제민주화가 12월 대통령 선거를 관통하는 시대정신으로 떠올랐다. 새누리당이나 민주통합당이나 이 화두를 선점하려고 서두르는 모습이 경제민주화를 최대의 대선공약으로 삼을 공산이 크다. 문제는 양당의 방안이 재벌에 국한되어 전체적 의미를 파악하지 못한 데 있다. 새누리당은 단순히 재벌의 신규사업에 대해 순환출자를 규제하겠다는 정도이고 민주통합당은 경제민주화의 부분개념인 재벌개혁을 전체개념처럼 말한다. 논의의 방향이 틀렸다는 소리다. 

먼저 경제민주화가 무슨 뜻인지 성찰할 필요가 있다. 그것을 위해서는 헌법 제119조 2항의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는 규정을 음미해야 한다. 이 조항은 1항의 자유경쟁원칙의 부작용을 해소하기 위한 부차적 조항으로서 ‘할 수 있다’는 재량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런데 1987년 이후 역대정권이 이 헌법정신을 망각하고 경쟁적으로 각종 규제를 완화대상으로 삼았다. 경제적-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규제, 경제질서에 관한 규제, 경제력 남용 방지를 하기 위한 규제, 공공복리를 위한 규제, 환경보존을 위한 규제 등등은 마구 철폐해 버렸다. 모든 규제를 경제적 해악으로 보고 위원회까지 설치해 완화를 넘어 철폐니 혁파니 하는 따위의 단어를 쓰면서 무리하게 철폐했다. 이에 따른 부작용-후유증에 대한 검토는 없었고 존속할 가치가 있는 규제까지 없애버린 것이다. 

노동시장 규제완화에 따른 고용불안-임금격차, 부동산 규제완화로 인한 가격앙등-소득이전, 공적영역 민영화로 인한 가격상승, 산업-시장논리에 의한 교육비 증가 등등이 그것이다. 그 결과 한국사회는 극단적인 양극화 사회로 치닫고 있다. 계층-학력-지역간의 소득-발전격차로 반목과 갈등이 갈수록 증폭되고 있다. 산업간에도 대기업-중소기업, 수출기업-내수기업간의 발전격차가 균형 있는 발전을 저해한다. 재벌기업이 우월자적 지위를 남용하여 자영업자의 영역까지 수탈하는 상황이다. 맹목적적 규제완화가 자본-지식-기술-정보에서 열위에 있는 경제적 약자의 생존기반마저 와해시켜 버린 것이다. 

세계화 바람을 타고 대비책 없이 금융-자본시장의 급속하게 개방하는 바람에 외환위기를 촉발하는 단초를 제공했다. 그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신자유주의를 맹신한 결과 계층-부문간의 극단적인 양극화가 형성되었다. 그 간극을 좁히지 않고는 국가가 발전역량을 발휘하지 못할 단계에 이르렀다. 친재벌 정권임을 천명한 이명박 정권조차도 뒤늦게나마 양극화의 심각성을 깨달았는지 ‘공정사회’니 ‘동반성장’이니 하는 말을 꺼냈다. 실천의지가 없는 정치적 허사에 불과하지만 말이다. 따라서 경제민주화는 ‘양극화 완화를 통한 사회통합’을 지향해야 한다. 

경제력이 일부 재벌에 집중하다 보니 한국경제는 소유집중, 경영집중, 시장독점, 계열확장, 금융편중과 같은 구조적 난제를 안고 있다. 소수의 창업자 혈족이 시장을 균점하여 균형 있는 경제발전을 저해한다. 경제력의 집중에서 파생되는 폐해는 제한된 정책수단으로는 단시일 내에 교정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다. 그 방안으로 경영과 소유 분리, 내부거래의 차단, 상호지급보증 제한, 순환출자 금지, 출자총액 제한,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분리, 외부이사제 개선, 은행대출 출자전환 등이 거론되어 왔다.

정치적 변혁기마다 재벌규제론, 재벌해체론이 제기되어 과거정권들도 여러 차례 이런 방안을 정책에 반영하거나 시도했지만 재벌의 반발에 밀려 실패하고 말았다. 정치권력의 실천의자가 박약한데다 자본권력의 거대한 힘에 눌려 엄두를 못 내거나 손을 들었기 때문이다. 이번 경제민주화는 어떤 정치적 의도에 의해 제기되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경제적 약자를 약탈하는 행위가 용인의 단계를 넘어섰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었다는 뜻이다. 

정치권력이나 자본권력이나 지나치게 비대해지면 사회적 저항을 부르기 마련이다. 그것은 역사가 말한다. 정치권이 일과성 과제로 알고 안이하게 접근해서는 정치적 곤경에 처할 상황이다. 여기서 경계해야 할 대목이 있다. 이른바 보수세력이 경제민주화를 이념논쟁으로 몰고 간다는 점이다. 이념논쟁을 유발하여 본질은 증발되고 사상논쟁만 남을 공산이 크다. 성장론과 복지론 또한 비생산적인 이념논쟁으로 비화될 가능성이 짙다. 경제민주화의 본질은 민생복리이다. 재벌규제도 여기서 해답을 찾아야 한다. 

언론개혁시민연대 상임공동대표  
언론광장 공동대표
시사평론가  
(건달정치 개혁실패)의 저자  본지 고문  

2012년 3월 19일 월요일

"양 날개가 균형이 잡혀야 날 수 있다"


이글은 프레시안 2012-03-19일자 기사 '"양 날개가 균형이 잡혀야 날 수 있다"'를 퍼왔습니다.
[이정전 칼럼] "중산층은 국민경제의 허리"

금년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3% 대를 턱걸이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중국도 금년 경제성장률을 하향조정하였다. 2008년 세계경제 위기가 터진지 4년이 지났지만, 선진국 경제는 아직도 깊은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전망은 더욱 더 어둡다. 이런 가운데 각국 경제는 내수의 활성화에서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제 수출로 경제를 살리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왜 선진국의 경제가 침체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우리 경제도 침체상태인가? 소득과 부의 분배의 극심한 불평등이 그 원인이라고 라이시(R. B. Reich)교수는 분명히 못 박고 있다. 불평등은 그 자체가 정의의 차원에서도 문제지만, 또한 경제 위기와 민주주의 위기를 초래한다는 점에서도 심각한 문제다. 누구나 인정하듯이 자본주의 경제의 가장 큰 특징이자 자랑거리는 높은 생산력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물질적 풍요는바로 이 높은 생산력 덕분이라고 말한다. 그러다 보니 경제학자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이 생산력에만 관심을 집중한다. 그러나 충분한 구매력의 뒷받침이 없는 생산력은 소용이 없다. 기업이 생산한 것을 아무도 사주지 않는다면 그 기업이 망하듯이 한 나라에서 생산된 것들이 제대로 팔리지 않으면 그 나라 경제는 절단난다. 마치 새가 한쪽 날개로만 날 수 없듯이 생산력 하나만으로는 자본주의 경제가 날 수는 없다. 경제 전체로서 생산력(공급)과 구매력(수요)이 균형을 이룰 때 비로소 그 경제는 날아오를 수 있다. 공급과 수요는 자본주의 경제의 양 날개다. 아직도 보수성향의 경제학자들은 생산만 많이 해놓으면 구매력은 자동적으로 뒤따라온다고 믿고 있다. 다시 말해서 공급이 수요를 창출한다고 믿고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과거 수많은 불황이나 경기침체가 보여주듯이 자본주의 경제의 높은 생산력을 수요가 도저히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자본주의 경제의 양 날개가 균형을 이루지 못할 때가 아주 많다는 것이다. 한 쪽 날개의 힘이 빠진 새는 고꾸라질 수밖에 없다. 경제도 마찬가지다. 마르크스의 자본론 서문에서 엥겔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생산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데 수요는 산술급수적으로 늘어난다는 것, 이것이 자본주의의 구조적 모순이다." 바로 이 모순 때문에 자본주의 경제에서 불황과 경기침체가 무시로 찾아온다는 것이다.

그러면, 왜 이런 말이 나올까? 흔히 자본주의는 대량생산 체제라고 말하지만, 또한 대중소비 사회라고 말한다. 이 말은 일반대중의 소비가 자본주의 경제의 수요에서 절대적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대체로 보면, 가난한 사람들이나 중산층 사람들은 소득의 대부분을 소비에 지출한다. 따라서 이들의 소득이 늘어나면 이에 거의 비례해서 이들의 소비도 늘어난다. 하지만, 부자들의 경우에는 그렇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럴 수도 없다. 예를 들어서 세계 굴지의 투자은행이었던 리먼브라더스가 파산하기 직전 당시 CEO였던 리처드 필드는 5억 달러의 연봉을 받았다고 하는데, 정상적인 방법으로 이 돈을 몽땅 소비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보아야 한다. 실제로 부유층은 소득의 극히 일부만을 소비한다. 결국 국민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일반대중이 충분한 구매력을 갖추고 시장에 나온 상품을 사주어야 자본주의 경제가 날 수 있다. 일반대중의 소비가 양 날개의 균형을 잡아주는 버팀목이다.

일반대중의 대부분은 근로자다. 국민소득이 소수의 부유층의 손에 집중된 결과 근로자들의 몫이 감소해서 충분한 구매력을 가지지 못한다면, 시장에 나온 상품들이 잘 팔리지 않을 것이요, 결과적으로 수요가 공급을 따라가지 못하게 된다. 이런 상태가 오래 계속되면 경기침체가 오고 불황이 오게 되며 높은 실업률이 장기화된다. 경기가 나빠져도 부자들은 별 영향을 받지 않는다. 하지만, 근로자들은 큰 타격을 받는다. 그렇기 때문에 무시로 터지는 불황이나 경기침체가 근로자계층에게는 참으로 불공평한 시장의 변덕으로 느껴진다.

일반대중의 소비 중에서 특히 중산층의 소비가 큰 몫을 차지한다. 소득불평등이 심해진다는 것은 중산층이 몰락한다는 뜻이다. 실제로 지난 수년 간 우리나라에서도 빈부격차가 벌어지면서 중산층이 점차 엷어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중산층은 국민경제의 허리에 해당한다. 마치 허리가 약하면 사람이 힘을 못 쓰듯이 중산층이 엷어지면 국민경제가 힘을 쓰지 못한다. 요컨대, 극심한 빈부격차 그리고 이로 인한 중산층의 몰락이 미국의 경제위기를 초래한 근본적인 원인이며, 우리나라의 경기침체를 초래한 원인임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보수진영 인사들이나언론은 분배보다는 성장이 우선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성장이 분배에 발목 잡혀있는데 성장만 얘기하면 무슨 소용인가.

선거철이 닦아 오면서 여야 가릴 것 없이 정치권이 "경제민주화"를 외치고 있다. 경제민주화의 주된 내용은 경제정의이며, 경제정의의 핵심은 경제적 불평등의 해소다. 이런 점에서 경제정의를 바로 세우는 것이 내수를 늘리고 그럼으로써 우리 경제를 다시 날 수 있게 하는 길이라고 할 수 있다.



▲ 세계 굴지의 투자은행이었던 리먼브라더스가 파산하기 직전 당시 CEO였던 리처드 필드는 5억 달러의 연봉을 받았다고 하는데, 정상적인 방법으로 이 돈을 몽땅 소비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보아야 한다. ⓒ로이터=뉴시스

/이정전 서울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