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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1월 25일 일요일

“하느님 사랑과 이웃...


이글은 한겨레신문 종교전문 조현기자 블로그 휴심정 2012-11-20일자 기사 '“하느님 사랑과 이웃...'을 퍼왔습니다.

인도 캘커타의 빈민가에서 평생 이웃사랑을 실천한 마더 테레사 수녀. 지난 1988년 남아프리카를 방문해 한 보육원에서 아이를 안고 있다. 사진 <한겨레> 자료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마르 12,28~34).”

‘보수(保守)란 전통적 관습 안에 담겨있는 도덕과 윤리의 가치를 지키려는 신념과 태도’ 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도덕과 윤리를 인간의 도리로 여기고 중요한 가치로 삼고 보호하고 관습이나 전통으로 물려주려는 것이 보수주의 입니다.

도덕은 사물을 대하는 바른 마음입니다. 양심이고 내면의 법입니다. 도덕이 관계가 되면 윤리라고 합니다. 행위이고 태도입니다. 도덕은 인격이며 품성적 차원의 도(道)이고, 윤리는 공중(公衆)의 차원이며 공생의 도입니다.

밥을 굶고 있는 사람이 곁에 있을 때 혼자 배불리 먹는 것은 마음에 찔리게 되는데 그래서 조금만 먹자!로 판단함이 도덕적 행위입니다. 다음에 굶고 있는 사람에게 같이 먹자고 하거나 누룽지 한 조각이라도 나누는 것은 윤리입니다.

전철에 앉아서 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았다고 해서 죄가 되는 건 아닙니다. 그러나 사람의 도리가 아니고 그러면 못씁니다.

사람의 도리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위대한 존재를 공경하는 일입니다. 하늘과 조상과 위인의 삶을 기념하고 경신례와 지성과 예의를 갖추어야 합니다. 숭천경신(崇天敬神) 하는 것입니다.

두번째 도리는 인정(人情)입니다. 이웃과 사이좋음으로 지내고 특별히 약자에게 배려하는 것입니다. 경천애인(敬天愛人:하늘을 경외하고 사람을 사랑한다) 추식해의(推食解衣:밥을 내어주고 옷을 벗어준다) 하는 것입니다.

이런 도리를 예수님은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으로 하셨습니다. 사람의 도리를 전승받아 살고 가르쳐서 바른 성품을 만들고 관습을 따르게 하는 것이 가부장의 역할이고 사회적으로는 종교의 역할입니다.

“첫째가는 계명은 무엇입니까?”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 그것이 인간의 도리라는 뜻입니다. “경천애인(敬天愛人)이다!” “하느님과 맘몬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 원수를 사랑하고 약자를 섬기라.”

초월적인 대상, 하늘을 숭상하고 공동체적 질서와 예의를 강조하는 이념에서는 개인의 자유는 절제의 대상입니다. 그래서 ‘교육’이란 개념은 ‘본능적 욕구에 대한 자기 절제의 능력을 가르치는 것’으로 정의됩니다.

그러므로 젊은이들이 주변에 사람들이 있건 말건 상관 않고 애정 행위를 하는 것을 예의 없는 부당한 짓으로 단정합니다. 개인의 자유보다 관계적 삶의 절제, 이웃의 아픔에 배려하는 공동체적 의무를 강조하는 것을 인문학에서 말하는 보수(保守)의 가치입니다.

물질 숭배가 아닌 하느님 사랑, 이웃에 대한 무관심이 아닌 사랑의 실행을 강조하신 예수님은 보수주의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고 나아가 그 가르침을 유대교의 전통(레위기와 신명기)에서 끌어내시기 때문에 근본주의자로 볼 수도 있겠지요.

공동체 삶은 정직하고 생명과 자연의 섭리에 따르며 소유와 물질주의를 거절합니다. 모두를 사랑할 수 없다면 가까운 이웃을 가족으로 여기는 공동생활로 삽니다.

공동체는 현대에서 하느님의 법과 인간의 도리를 따라 사는 가장 원리적이고 도덕주의로 사는 삶이기 때문에 공동체는 근본주의이고 보수주의 삶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 시대에 정치적 입장에서 공박하는 보수니 진보니 하는 것은 개념의 짝퉁에 불과합니다. 자본과 권력을 절대시 하면서 사상과 이념이 다른 이를 적대시하고 타종교와 교파를 박멸의 대상으로 삼는 자들은 종교적 계명으로도 인간의 도리로도 잘못된 것입니다. 보수주의란 개념의 변질과 오염, 이념의 짝퉁이 진짜 너무 심하고 너무 많습니다.

오늘 주일미사에 입촌선서를 한 최석봉 데시데리오 형제에게 건강과 평화의 공동생활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박기호 신부1991년부터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1998년 ‘소비주의 시대의 그리스도 따르기’를 위해 예수살이공동체를 만들어 실천적 예수운동을 전개했다. 소비주의 시대에 주체적 젊은이를 양성하기 위한 배동교육 실시했고, 5년 전 충북 단양 소백산 산위의 마을에서 일반 신자 가족들과 함께 농사를 짓고 소를 키우며 살아가고 있다.
이메일 : sanimal@catholic.or.kr      

2012년 10월 28일 일요일

"조용기 목사, 한기총 전폭적 지지 발언"


이글은 한겨레신문 종교전 조현기자의 블로그 휴심정 벗님글방 2012-10-26일자 기사 '"조용기 목사, 한기총 전폭적 지지 발언"'을 퍼왔습니다.
19일 한기총 신임교단장 축하예배 자리에서 강조 .. "한기총 무너뜨려선 안돼"


보수 교단을 대표하는 지도자인 여의도순복음교회 조용기 원로목사가 한국기독교총연합회를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발언을 해복음주의권 교회연합운동에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한국교회 연합운동에 커다란영향을 미치는 조용기 목사가 한기총을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발언을 한 것이다.

19일 열린 한기총 신임교단장 취임 축하 자리에서다.

조용기 목사는 먼저 지도자들의 교만과 오만 때문에 한국교회가 분열하고 화합하지 못하고 있다고 운을 뗐다.

조 목사는 이어 한기총에 문제가 있으면 고치고 개혁하면 될 일을 나가서 따로 기구를 만들면 되겠느냐며 한국교회연합을 정면으로 겨냥했다.

조 목사는 한국교회 모두가 존경하는 한경직 목사님이 세운 한기총을 무너뜨려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조 목사는 또 한기총은 한국 보수신앙의 기수로써 한국교회에서 역할과 사명이 있다며한기총을 위해 기도하고 한기총을 지켜달라고 호소했다.

이같은 발언은 한기총과 한교연이 여의도순복음교회를 끌어안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고 있는 가운데 나온 발언이어서 주목된다.

또 조용기 목사와 이영훈 목사간에 최근WCC와 한기총 문제에 대한 미묘한 입장차이가 감지되는 가운데 조 목사가 잇따라 한기총을 강력하게 지지하는 발언 배경에 궁금증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어쨋든 이영훈 담임목사가 조용기 목사의 뜻을 거슬러가면서까지 한교연을 지지하기가 쉽지않게 됐다.

조 목사가 한기총에 힘을 실어줌으로써 보수측의 교회연합운동은 한 치 앞을 예측할 수 없게 됐다.

CBS TV보도부 박성석 기자 kehc1234@cbs.co.kr
  
본 글은 휴심정 벗님매체인 (크리스천 노컷뉴스 http://christian.nocutnews.co.kr)에 실린 것입니다.

2012년 9월 9일 일요일

백여 명의 수도자들, 밀양을 위로하다


이글은 한겨레신문 조현기자 블로그 휴심정 벗님글방 2012-09-05일자 기사 '백여 명의 수도자들, 밀양을 위로하다'를 퍼왔습니다.
여자수도자 장상연합회, '밀양 희망방문단' 꾸려..
"여생을 걸고 투쟁하시는 그분들 뵈면 우리 삶을 되돌아보게 됩니다"

9월 3일 정오, '전국 수도자 밀양 희망방문단'을 이름으로 여자수도자 100여 명이 밀양시청 앞에 모여 섰다. "살려 달라", "살던 대로 살게 해 달라”는 주민들의 애끓는 목소리에 응답하기 위해서다. 32일째, 송전탑 건설 반대를 위한 단식이 진행되고 있는 천막 앞에서 수도자들은 기도를 드렸다.

시청 앞 기도를 시작으로 수도자들은 한국전력 밀양지사, 경남 밀양 부북면 송전탑 건설 현장, 밀양댐 인근 공사자재 야적장을 거쳐, 밀양 가르멜 수녀원을 방문하고 '송전탑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을 지향으로 미사를 봉헌했다.



▲ 한국전력 밀양지사 앞에서 기도하는 참가자들 ©정현진 기자



▲ 한전이 주민, 지역과 함께한다는 것은…… ©정현진 기자

목숨 걸고 싸우는 밀양의 현장에 위로와 힘을 보태기 위해

"우리가 이 모든 일에 대해 너무나 모르고 있었습니다."

현장을 돌아보면서 주민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들은 수녀들은 놀라움과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밀양 주민의 호소에 눈물을 흘리고, 주민들에게 힘을 실어 주기 위해 앞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가는 곳마다 드리는 기도는 더욱 간절하고 구체적인 간구가 됐다.

"저희를 통해 이 땅에 정의와 평화가 바로 서게 하소서.
이 땅에서 국책사업이라는 이름으로 부당하게 행해지는
모든 공권력의 비리와 폭력에서 저희를 구원하소서.
이 나라의 귀중한 세금이 개발세력의 욕심을 채우는데 쓰이지 않게 하시고,
이 땅의 국민들에게 폭행을 행하기 위한 용역들을 고용하는데 쓰이지 않게 하소서.
이 나라의 모든 권리는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엄연한 진리가
폭력배들에 의해 무시당하지 않게 하소서."

수도자 희망방문단의 이번 밀양행은 '밀양 765㎸ 송전탑 반대 고(故) 이치우 열사 분신대책위원회'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김준한 신부(부산교구)의 요청으로 계획보다 앞당겨졌다. 지난 8월 13일 한국 천주교 여자수도회 장상연합회의 이름으로 방문한 수도자들은 송전탑 건설 반대 운동에 적극적으로 힘을 보탤 것이라 선언하며, 두 번째 방문을 계획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러나 급박하게 돌아가는 현장 상황에 김준한 신부의 간곡한 타전이 전해졌다.

김준한 신부는 "가난한 이들에 대한 우선적인 선택이라는 교회의 정신과 창조주 하느님께 대한 신앙고백을 공고히 하는 차원에서 전국 수도자들의 밀양 희망방문을 제안한다"면서 "지금 밀양의 싸움은 보상이나 지역 이기주의에 기반한 싸움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그는 "선한 눈빛을 가진 이들의 많은 도움의 와중에 종교인들의 결합도는 조금 미진한 것이 사실이며, 더 큰 틀의 연대사업이 절실하다"며 "전국 수도자들의 희망방문이 이루어진다면 실질적인 공사 저지를 포함한 어르신들의 얻게 되는 위로와 위안이 클 것"이라고 호소했다. 그리고 수도자들은 이에 기꺼이 응답했다.

"정부의 꼼수를 읽고 혈세를 낭비할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해서라도, 원전 없는 나라, 자연에너지로의 전환을 위해서라도 송전탑 건설은 반드시 중단되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 우리는 그분들께 힘을 실어드려야 합니다." (여자수도자 장상연합회 탈핵 자연에너지 위원장 오경길 수녀)



▲ 경남 밀양 부북면 현장에서 만난 주민을 한 수녀가 꼭 안아 주고 있다. ©정현진 기자



▲ 부북면 현장. 시공사에서 벌목한 흔적과 지난 탈핵 희망버스 참가자들이 심은 영산홍이 함께 있는 곳에서 기도를 올리고 있다.
©정현진 기자


김준한 신부 "송전탑은 생명을 끊어 내는 행위.. 생명을 지키는 싸움에 함께해 달라"

주민들의 투쟁 현장을 돌아본 수도자들은 현재 수녀원 인근 350m 거리로 송전선로가 지나가는 밀양 가르멜 수녀원을 찾았다. 가르멜 수녀원은 봉쇄 수도원인 탓에 대리인을 통해 송전탑 건설 저지를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중이다. 한전과 시공사 측은 최근 밤을 틈타 수녀원 뒷산을 몰래 벌목했다. 이 때문에 가르멜 수녀원 수녀들은 근심이 더욱 깊어졌다.

가르멜 수녀원 수도자들과 만난 후, 수녀원 성당에서는 '송전탑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을 위한 미사가 이어졌다. 가르멜 수녀원 수도자들과 주민들이 함께한 이 미사에서 '송전탑'이 이 시대에 의미하는 바에 대해 되새겼으며, 미사 후에는 밀양 주민들의 투쟁을 담은 영상물이 상영되기도 했다.

김준한 신부는 "송전탑은 핵발전에서 비롯된 것이며, 핵발전은 생명과의 소통, 생명간의 흐름을 끊고 자연을 적대시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규정하면서 "밀양의 어르신들은 금전적 보상이 아니라 생명을 끊어 내는 행위와 맞서 싸우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서 그는 "이 싸움이 대도시에서 시작됐다면 벌써 끝났을 일이다. 그러나 땅과 생명의 의미와 가치를 아는 어르신들이기에 10억 손배소에도 꿈쩍하지 않고, 밀양을 지키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준한 신부는 "사제로서 이 자리에 머무는 것은 단순히 가난한 이들에 대한 연민, 고통받는 이들 사이에 교회가 있어야 한다는 것 외에 생명을 지켜야 한다는 의지 때문"이라고 전했다.



▲ '765㎸ 신고리-북경남 송전선로 건설공사 4공구' 사무소는 송전탑 건설 자재를 적재하고 현장 직원들이 숙소와 사무실로 사용하는 곳이다. 얼마 전, 이곳에서 민주통합당 문정선 밀양시의원이 폭행을 당하기도 했다. 열흘 전부터 주민들은 이곳에 적재된 송전탑 건설 자재를 헬기로 운송하지 못하도록 철야 농성을 벌이고 있다. ©정현진 기자



▲ 적재된 송전탑 건설 자재 ©정현진 기자



▲ 주민들은 열흘 전부터 건설공사 4공구 사무소 앞에 천막을 치고, 자재를 적재한 헬기가 뜨지 못하도록 온몸으로 막고 있다. ©정현진 기자

"밀양 주민들은 이 시대의 예언자..
예수가 가르친 지헤로운 방법으로 밀양의 예언 알아들어야"

김준한 신부는 "밀양의 싸움이 중요한 것은 이후에 벌어질 수많은 송전탑 싸움의 본보기가 될 것이며, 밀양의 어르신들은 이 시대 예언자의 모습이기 때문"이며 "누가 대신 막아 주거나 싸움의 논리를 개발해 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깨닫고 몸으로 일어서는 것에서 예언자의 모습을 본다"고 말했다. 그는 "이처럼 평범하고 보잘것없는 곳에서 벌어지는 일에서 예언의 상황은 비롯된다"면서 "우리는 밀양에서 예수님이 가르쳤던 슬기로운 방식으로 예언을 알아듣고 마주해야 한다. 그것이 밀양이 갖는 마지막 힘”이라고 역설했다.

김준한 신부는 "밀양의 어르신들을 가장 힘들게 하고, 이치우 어르신을 죽음에 이르게 했던 것은 바로 '외로움'"이라며 "언제나 어디서나 밀양을 위해 기도해 달라. 또 시간이 되는 대로 밀양을 방문해 달라"고 호소했다.



▲ 김준한 신부는 미사를 통해, 밀양 싸움의 정당성과 당위성을 전하며, 모쪼록 더 많은 이들이 밀양과 함께하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정현진 기자


이번 방문은 여자수도자 장상연합회가 주관한 세 번째 공식 밀양 방문이다. 지난 4월 대표자 9명, 8월 13일 27명, 그리고 이번 '희망 방문단'은 100명이 넘는 수도자들이 밀양을 찾았다.

지난 2011년 제44차 총회에서 탈핵 활동에 집중할 것을 결의한 여자수도자 장상연합회는 현재 사회사목분과에 '탈핵 자연에너지 위원회'를 설치하고 핵발전 반대와 탈핵을 위한 교육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앞으로 밀양 송전탑 건설 반대를 위한 지지 방문과 활동은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한 수녀는 밀양의 성지와 연계해 되도록 많은 신자들이 밀양을 방문하도록 프로그램을 짜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 같다고 제안했다.

현재 장상연합회 탈핵 자연에너지 위원장을 맡고 있는 오경길 수녀(성 바오로 딸 수도회)는 이번 밀양 희망 방문단 초대 공문에 쓴 글에서 "여생을 걸고 투쟁하시는 그분들 뵈면 우리 삶을 되돌아보게 된다"고 적었다.

강정에서 어떤 시인은 말했습니다.
"경험한 것이 그대로 생명을 위한 기도가 되는 곳"이라고요.
마지막 남은 여생을 걸고 투쟁하시는 그분들 뵈면 우리 삶을 되돌아보게 됩니다.
우리는 얼마나 치열하게 주님을 갈망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너무 안일하게 살고 있지는 않는지,
이분들을 바라보시는 주님은 어떤 심정이실지,
투쟁의 현장에서 진리를 만나게 됩니다.
수녀님들 많이 성원해주시고
희망버스 한 번 아니라 여러 번
송전탑이 완전히 무산될 때까지 그렇게 희망을 해도 될까요?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정현진 기자
태그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밀양, 송전탑, 수도자, 정현진, 한전, 휴심정

2012년 7월 22일 일요일

가톨릭 양심 깨운 5·16장학회 깡패짓


이글은 한겨레신문 조현기자블로그 휴심정 벗님글방 2012-07-20일자 기사 '가톨릭 양심 깨운 5·16장학회 깡패짓'을 퍼왔습니다.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국기에 대한 맹세, 1972~2007)

'국민'학교 2학년 때였던가, 어머니는 미군 부대에서 나오는 종이뭉치를 받아와 집에서 봉투를 접었다. 종이를 재단하고 밀가루 풀을 쑤어 봉투를 만들면, 이게 싸전에선 쌀을 담아, 구멍가게에선 과일을 담았다. 요즘이라면 인형에 눈알을 박거나 구슬을 꿰는 일처럼 장당 얼마씩 수공을 받았다. 동네 아이들은 학교를 파하면 우리 집 마루에 앉아 옥수수 얻어먹을 요량으로 봉투를 붙이고, 여름에도 군불을 지피고 방바닥에 봉투를 깔아 말렸다. 풀칠이 잘 마른 봉투의 수량을 세어 100장씩 끈으로 묶는 일은 내 몫이었다. 

» 신동우 화백이 그린 <10월 유신의 미래상> 리플릿. 그 당시에는 길거리에 서서 '애국가'만 들어도 멀리 쭈삣하고 전기가 오르곤 했다.
어느 날 학교에서 '유신헌법' 홍보물을 주었다. 십년 후에는 '100억불 수출, 1000불 소득'과 더불어 마이카 시대가 열린다는 복음을 알리는 리플릿인데, 문화공보부에서 신동우 화백에게 그림을 맡겼다. "반공 민주 정신에 투철한 애국 애족이 우리의 삶의 길"이라는 국민교육헌장을 달달 외우며 초등학교에 입학한 나는 '애국자'가 되고 싶었을까? 아무도 시킨 사람이 없었건만, 그날부터 옆집 3학년 형과 신동우 화백의 그림을 도화지에 베끼기 시작했다. 그림에 재간이 있던 나는 포스터를 만들고, 10월 유신을 찬양하는 표어도 숱하게 만들었다. 집에는 종이도 많았고, 포스터와 표어를 붙일 풀은 언제나 잔뜩 남아 있었다. 

수줍은 탓이었을까, 아님 자랑하지 말고 숨어서 기도하라는 성경 말씀 때문이었을까, 그 '장한' 일을 숨어서 하느라 밤에만 동네 골목을 누볐다. 손으로 풀을 집어 남몰래 포스터와 표어를 붙이면서 얼마나 가슴이 조이면서도 설렜는지. 그러나 그때는 아무것도 몰랐다. 그저 우리를 잘 살게 해준다는 '미신'을 신앙처럼 간직했다. 그러나 우리집 살림은 별반 나아지지 않았고, 그게 독재정권의 시작임을 나는 몰랐다. 

이른바 '유신헌법'은 일본 메이지유신에서 이름을 따왔으며, 대통령이 국회의원의 3분의 1과 모든 법관을 임명하고, 긴급조치권과 국회 해산권을 가지며, 임기 6년에 연임할 수 있으며, 대통령도 직선제가 아니라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뽑는다는 내용이었다. 행정 · 입법 · 사법권을 모두 대통령에게 집중시킨 독재정권을 허용하는 법이었다. 유신헌법 아래서 중학교에 진학하고 고등학교에 진학했던 내게 성당에서는 '괴담' 같은 다른 이야기를 전해 주었다. '문학의 밤'이라 해서 가톨릭센터에 갔다가 김지하의 라는 시를 처음 접하고 무서워했던 중학생이었고, 주보와 함께 성당 입구에서 나눠주던 '가톨릭농민회 오원춘 사건'에 대한 등사본 유인물을 받아 들고 경악했던 고등학생이었다. 

» 지난 4월 30일 안동교구 정호경 신부의 장례미사에서 만났던 오원춘 씨. 그 선한 얼굴이 지금도 삼삼하다. 가톨릭농민회 오원춘 씨는 기관원에게 납치되었다고 양심선언한 뒤에 고문을 받고 허위사실유포죄로 1979년 10월 15일 법원에서 징역 2년이 선고받았으나, 그로부터 11일 뒤인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 사살사건이 발생하였고, 오원춘은 그해 12월 8일 형집행정지로 정호경 신부, 정재돈과 함께 석방되었다. 그러나 30년이 지난 지금도 고문후유증으로 시달리고 있다. ⓒ한상봉 기자

지난 4월 30일 안동교구 정호경 신부의 장례 미사에서 만났던 오원춘 씨의 모습은 그야말로 '착하고 선량한 농부'였다. 내가 '애국심'을 발휘했던 나라는 선량한 백성을 고문하고 회유하고 다시 협박하는 나라였다. '대통령을 반대하면 나라를 배신하는 것'이라고 강요하는 나라였다. 엄마 등에 업혀서 성당에 다니던 내게는 '주교님도 삐끗하면 감옥에 보내는' 나라였다. 

1974년 원주교구의 지학순 주교는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돼 연행 당했고, "소위 유신헌법이라는 것은 1972년 10월 27일에 민주 헌정을 배신적으로 파괴하고 국민의 의도와는 아무런 관계없이 폭력과 공갈과 국민투표라는 사기극에 의하여 조작된 것이기 때문에 무효이고 진리에 반대되는 것"이라는 을 발표해 구속됐다. 유신정권과 지학순 주교의 악연은 예고된 것이었다. 

최근 박근혜와 관련해 논란이 되고 있는 '정수장학회'의 전신이 '5·16장학회'인데, 1970년 원주 문화방송국 설립을 둘러싸고 5·16장학회와 천주교 원주교구가 함께 방송국을 만들기로 했을 때, 원주교구는 분담금과 방송국 건물까지 내주었지만 장학재단은 한 푼도 돈을 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회계장부도, 영수증도 없이 공금까지 유용했다. 이 사실을 박정희에게 진정했으나 전혀 반응이 없었고, 5·16장학회는 오히려 협박조로 나왔다. 급기야 지학순은 1971년 10월 5일 원주 원동성당에서 부정부패 규탄대회를 열고 천주교회 사상 최초로 가두시위에 나섰다.

'애국심'을 조롱하는 유신독재.. "누구를 위한 국가인가?"

초등학교도 아닌 '국민'학교에 다니면서 10월 유신 포스터를 붙이던 것은 '독재에 대한 예방주사'였을까? 그 뒤로 '애국가'와 '국민교육헌장'과 '국기에 대한 맹세'에 담긴 국가주의를 체질적으로 거부하기 시작했다. 광주항쟁 이후에 대학생이 되고 나서는 '준법정신'이라는 말이 제일 싫었다. 그래서 교통신호를 일부러 어기며 횡단보도를 건넜다. 

10월 유신이 예방주사라면 그리스도교 신앙은 내게 '국가주의에 대한 백신'으로 작동했다. 부족동맹의 자유롭고 평등한 삶에 익숙했던 이스라엘 백성이 주변국의 침략에 맞서기 위해 왕을 세워 달라고 요구했을 때 사무엘 선지자는 "왕이 너희를 어떻게 다스릴 것인지 알려주겠다"며 자녀들을 군대에 동원하고 "너희마저도 종으로 삼으리라"고 전한다. 그때에 가서 "스스로 뽑아 세운 왕에게 등을 돌리고 울부짖겠지만" 하느님은 들은 체도 하지 않을 것이라 전했다. 예수도 이른바 '국가보안법'에 걸려 십자가에서 죽어야 했으니, 이처럼 국가권력에 의해 밀려난 백성들에게 마음을 두는 게 예수의 제자 된 도리다. 

황지우 시인은 라는 시에서 예전에 영화관에서 듣던 '애국가' 감상문을 적었다. 삼천리 화려 강산의 을숙도에서 날아가는 흰 새떼들이 자기들끼리 끼룩거리면서 자기들끼리 낄낄대면서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가는데, "우리도 우리들끼리 낄낄대면서 깔쭉대면서 우리의 대열을 이루며 한 세상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갔으면 하는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로 각각 자기 자리에 앉는다. 주저앉는다"고 했다. 

유신 교육의 탓이었을까? 고등학생 시절까지는 하교 시간에 국기하강식을 하면서 스피커로 애국가가 흘러 나오거나 운동장에서 조회를 하며 애국가를 부를 때마다 머리가 쭈볏 하고 감전되었다. 그러나 대학에 들어가서 동료들과 이른바 '사회과학'을 공부하고 해방신학을 접하면서 달라졌다. 1994년 정월 한겨울에 문익환 목사님이 선종하셨을 때, 대학로에서 영결식을 하는데 눈이 펄펄 내렸던 장면은 지금도 가슴속을 묵직하게 만든다. 그날 가슴으로 불렀던 노래 이 어느새 애국가를 대체했다. 



1980년대 노래운동모임 '새벽'을 이끌었던 문승현이 작곡한

이 마당에 30년 이상 시공을 뛰어넘어서 또다시 박정희 시대를 사모하는 이들이 출몰하는 현실은 참으로 안타깝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경선 후보는 최근 신문방송편집인협회 초청 토론회에서 "5·16은 불가피한 최선의 바른 선택"이라고 말했다. "국민들이 초근목피로 보릿고개를 넘기면서 가난한 나라로 힘들게 살았고" "안보적으로도 굉장히 위기상황"이었다며 "오늘날 한국이 있기까지 5·16이 초석을 놓았다"고 평가했다. 허나, 그들이 재벌을 낳았으나, 노동자들은 '인간답게 살고 싶다'며 수없이 죽어갔다. GNP는 올라갔지만 민주주의는 참살 당했다. 그래서 묻게 된다. "누구를 위한 국가인가?" 

박근혜는 지난 7월 10일  대선 출마를 선언하면서 "이제 국정운영의 패러다임을 국가에서 국민으로, 개인의 삶과 행복 중심으로 확 바꿔야 합니다!"라고 했지만, 말만 조금 바뀌었을 뿐  유신 헌법 홍보 리플릿의 내용과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인다. 박근혜는 이번 선거를 (국가폭력의) 아버지인 박정희의 신원을 회복할 수 있는 기회로 삼을 모양인데, 박근혜는 '국가와 국민이라는 말의 순서만 바꾸어' 우리나라를 다시 '유신'하려는 것인가? 

그나저나 이 국가가 국책사업으로 해군기지 만든다고 나서는 바람에, 제주 강정 바닷가를 떠나지 못하시는 문정현 신부님의 안부가 궁금하다. 장마전선이 예고되고 태풍이 불현듯 엄습하는 제주에서 부디 안녕하시라 여쭈고 있다. 

한상봉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편집국장 isu@catholicnews.co.kr



본 글은 휴심정 벗님매체인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에 실린 것입니다.

2012년 7월 15일 일요일

자본의 편에 선 국가 사람을 죽이다


이글은 한겨레신문 조현기자 블로그 휴심정의 벗님글방 2012-0713일자 기사 '자본의 편에 선 국가 사람을 죽이다'를 퍼왔습니다.
[복음과상황 261호 커버스토리] 국가폭력 피해자 송경동 시인 인터뷰

 
» 송경동 시인

도심의 정오, 먹고살기 위해 일하는 노동자들이 ‘오늘은 뭘 먹을까’ 고민하며 거리로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그 틈, 송경동 시인이 등산용 지팡이를 짚고 저 굽은 골목을 돌아오는 게 보였다. 송경동, 작년 한진중공업 사태 때 ‘희망버스’를 기획했던 시인이다. 공장 노동자이기도 했던 그는 노동운동 현장에서 늘 노동자를 위해 싸우고 시를 쓰고, 노동자들과 함께 ‘사람’이 중요하다 외쳐 왔다. 그런데 그런 그가 지금은 희망버스를 기획했다는 이유로 재판을 받고 있고, 농성장에서 발목을 다쳐 지팡이를 짚고 다녀야 하는, 국가폭력의 피해자가 되었다. 

공권력으로 위장해 불법 체포와 불법 채증, 불법 폭행도 서슴지 않는 국가의 폭력이 노동 쟁의 현장에서 어떻게 노동자들의 숨통을 조이는지, 폭력의 실상이 어떻고 근본적인 문제가 무엇인지, 거리로 쏟아져 나오던 저 노동자들은 국가폭력을 어떻게 보고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송경동 시인에게 묻는 것이 왠지 미안했다. 폭력의 흔적들을 되짚어 보는 것이 그에게 아픔일 수도 있어서였다. 그러나 그는 그 아픔을 ‘평등하고 조화로운 사회에 대한 꿈꾸기’로 ‘사람에 대한 긍정과 믿음’으로 승화하는 능력이 있었다. 그렇게 꿈꾸기를 멈추지 않고 사는 시인 송경동을 5월 30일, 서울 정동에서 만났다. 

국가폭력을 얘기하자니 신체적 폭력을 당한 직접적인 피해자로서 아직도 치료를 받고 있는 송 시인에 관해 얘기를 안 할 수가 없습니다. 기륭전자 농성장에서 발목을 크게 다쳤고, 평택 대추리에서 벽돌로 머리를 가격당하기도 하셨는데요. 

2010년 10월, 기륭전자 농성1) 중 포클레인에서 떨어져 두 달간 병원 생활을 했어요. 퇴원하고 6개월을 요양하다가 간신히 목발을 짚을 때쯤 희망버스를 기획했는데, 그 일로 체포 영장이 발부돼 수배 생활을 하면서 치료를 더 못 했어요.2) 감옥에 다녀오고 나서 재수술하면서 박혀 있던 금속핀 14개를 제거했어요. 의사 말로는 약간의 장애가 남을 거라고 해요. 어느 정도일지는 좀 더 시간이 지나봐야 알 것 같아요. 

대추리3)에서는, 2006년이던가요. 평택 대추초등학교에 700명 정도 남아 있었는데, 전경 1만 5000명이 몰려 왔어요. 그 과정에서 우리는 초등학교 안으로 밀려들어 갔고, 어느 순간 저는 옥상까지 올라갔어요. “방패로 곤봉으로 치지 마라, 사람 죽는다”고 악을 쓰는데, 어느 순간 머리가 띵하며 힘이 쭉 빠졌어요. 반대편에서 전경들이 벽돌을 던지고 있었는데 거기에 맞은 거예요. 그러고는 병원에 실려 갔다가 치료하고 다시 대추리로 들어갔죠. 

몸의 상처뿐 아니라 마음의 상처, 공포, 트라우마 그런 것들로 힘들지 않을까 우려가 되네요. 그러면서도 늘 현장에 계시는데, 폭행에 대한 두려움이 있지는 않나요? 

두렵습니다. 무법천지인 현장에서 막무가내로 진압당하다 보면 저를 포함해 누가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요. 그 과정에서 사람도 많이 죽지 않았나요. 2004년 여의도에서 농민 집회할 때 대낮에 전경들이 농민들을 토끼몰이식으로 진압해 2명이 죽었습니다. 2006년에는 포항 형산강로터리에서 집회를 하던 건설 일용 노동자 하중근 씨가 뒷머리 세 군데가 열리고 갈비뼈가 부러지고 양팔에 피멍이 든 채 의문사를 당했습니다. 오늘처럼 비가 부슬부슬 오던 날이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도 공권력 타살을 인정했지만 아직 의문사로 남아 있습니다. 경찰의 폭력 이상으로 무서운 게 사재 용역이에요. 거의 폭력 기계들이거든요. 그런 사람들이 현장에서 린치를 가하면 정말 두려워요.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몰라요. 익히 기억하듯이 용산에서 철거민들이 너무 절박해 망루에 올랐는데 하루도 안 돼 경찰 특공대를 진입시켜서 6명이 희생됐잖아요. 어디서든 그런 가능성이 열려 있어요. 그런 점에서 두렵기도 하죠. 

작년에 제1회 구본주예술상4)을 받으셨죠. ‘희망버스’ 기획으로 사회적 연대를 이끌어 내, ‘노동과 자본의 경계를 매개하는 소통의 예술가’로 평가받으셨는데요. 그래서인지 희망버스는 정말 즐거웠습니다. 2차 희망버스를 탔는데 밤을 새우고 다음 날 봉래삼거리에서 노래하고 춤추고 그림을 그리는 풍경 너머로 차벽을 세우고 서 있는 새까만 전경들이 극한 대비를 이룬 모습을 보기도 했어요. 

그런 모습을 보면 안타깝죠. 평화로운 행진을 막고 불법화하고 탄압합니다. 그렇지만 경찰이 물리력으로 막을수록, 참가한 분들이 주눅 들지 않고 당당하고 건강한 공동체의 문화를 만들고자 많이 노력해 주셨어요. 절망적인 순간도 있었지만 그런 아름다운 사람들이 있기에 아름다운 모습이 나타나는 것 같아요. 

지금 말씀하신 내용도 그렇지만, 평소 송 시인의 시나 산문을 보면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세상’을 꿈꾸고 특히 ‘인간에 대한 긍정’이 무척 강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자본에 사로잡히고 포섭된 이들이나 폭력적인 권력에 무조건 복종하는 이들이 모두 같은 사람임을 생각하면, 인간됨의 의미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지 회의가 들 때가 있습니다. 

믿어야 하지 않을까요. 저는 인류 역사 속의 그 모든 것이 한 개인, 한 개인에게 들어 있다고 봐요. 비과학적인 얘기가 전혀 아니라고 생각해요. 아무리 악하고 인성이 파괴된 사람일지라도, 그 사람 안에는 본인이 찾지 못한 인간애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부분은 존중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어쨌든 수많은 사람의 힘에 의해 세상은 조금씩 나아지잖아요. 누구에게나 그런 인간애가 있다는 건 중요하다고 봐요. 현실이 아무리 왜곡돼 있더라도 말이에요. 그리고 그걸 안 믿으면 무엇을 믿을까 싶기도 하고…. 우리 전에도 많은 사람이 살았고, 앞으로도 수많은 사람이 태어나서 자기 시대를 살아갈 겁니다. 저는 어쩌다 보니 이런 시대에 태어난 거고요. 좀 더 불행한 시대도 있고, 좀 더 행복한 시대도 있어요. 그 속에는 한 개인이 넘을 수 없는 시대의 벽이 있잖아요. 그래서 저는 개인을 미워하는 편이 아니에요. 사람은 자신이 처해 있는 조건에서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어요. 개인을 책망해서 해결될 일은 아니에요. 누구나 한계가 있는 거예요. 구조나 당대의 역사적 한계를 고려하면서 개인을 얘기해야 하지 않나, 그렇게 생각해요. 또 그 한계를 넘어서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삶의 진실을 찾고자 하지 않을까요. 

그 한계 중 하나가 노동운동을 바라보는 대중의 무관심은 아닐까요. 노조의 투쟁이 장기화하는 데는 사측의 무시와 무성의한 태도 등이 크게 작용하고, 거기에 대중의 무관심이 더해지면, 그에 편승해서 자본과 국가가 무력(폭력)으로 사태를 해결하는 수순을 밟는 모습을 자주 목격하거든요. 그런 점에서 국가폭력은 자본의 폭력을 넘어 (대중의) 무관심이 낳은 폭력이라는 생각도 듭니다만. 

그럴 수 있어요. 나의 무관심이 어떤 측면에서든 어떤 사람에게 가해지는 폭력에 눈감아 주는 역할일 수도 있는 거잖아요. 눈앞에서 폭력이 버젓이 자행되는데,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생각에 체념하는 것일 수도 있고요. 보통은 ‘나는 정치적인 게 싫다’고 하는데, 그런 얘기조차 정치적일 수밖에 없죠. 그런 사람들조차 뭔가 느끼고는 있을 것 같아요. 나의 무관심이 어떤 정치적 자리에 서 있는 것인지 고민할 필요는 있다고 생각해요. 

» 2차 희망버스 때의 시민들. 사진 <복음과상황> 김은석 기자.

» 2차 희망버스 때의 경찰 모습. 사진 <복음과상황> 김은석 기자.

그간 목격하고 당했던 국가폭력 중, 가장 비난받아 마땅한 폭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용산이죠. 경찰 특공대의 ‘테러 진압 작전’에 시민 5명과 경찰 1명이 희생됐잖아요. 용산 사건은 ‘작은 광주’라고 생각해요. 그만큼 잔인했어요. 용산 재개발 지역은 5조 원의 개발 이익이 떨어지는 곳이었어요. 건설 자본은 무슨 일이 있어도 공사를 하고 싶었겠죠. 그럴 때 분쟁이 있다면 어떻게 평화적으로 해결할지 모색하는 게 최소한 국가가 할 역할이잖아요. 사장이나 대주주 몇 명은 이익을 챙기지만 나머지 다수는 피해를 보는 절대적 약자예요. 그러니 약자의 얘기에 귀를 기울여 줘야 하는데, 국가는 완전히 자본의 편에 섰어요. 평범한 국민을 하루 만에 테러범 잡듯이 잡아 죽였어요. 마음이 그토록 상해 있는 사람들에게 특공대를 투입해서 폭력을 자행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죠. 거기가 정말 심했어요. 

또 지금도 진행 중인 쌍용자동차 문제5)는 구조적 폭력이 극심하게 가해지고 있어요. 그 폭력에 의해서 근 3년 걸쳐 22명이…. 가공할 폭력이에요. 구조적 폭력이라는 건, 쌍용자동차가 상하이자동차로 넘어갈 때, 산업은행을 통해서 운영권을 국가가 갖고 있었거든요. 상하이자동차는 먹튀 기업이어서 핵심 기술만 빼서 튀었잖아요. 그때 국가는 아무런 조치도 안 했어요. 이후 법정 관리에 들어갔을 때도 쌍용자동차는 여전히 국가 소유였는데 안정적으로 운영할 생각은 하지 않고 대규모 정리 해고를 단행했어요. 이런 게 바로 구조적 폭력이죠. 

국가의 직접적 책임을 넘어서 사회구조적 폭력도 있어요. 지난 십수 년간 우리 사회는 수많은 노동자를 정리 해고하고, 비정규직 노동자 900만 명을 양산했어요. 게다가 쌍용자동차 출신이라고 하면 어디서도 취업이 안 돼요. 또 정규직으로 일하다가 해고당하고 비정규직이라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이 심리적 박탈감은 엄청난 거예요. 이런 구조적 모순 앞에서는 절망할 수밖에 없죠. 22명의 사망자가 자살이나 스트레스성 죽음으로 삶을 마감했지만, 사실 우리 사회가 이분들을 죽인 거예요. 정리 해고시키고 경찰 동원해서 때려잡고 사회에 나갔더니 비정규직밖에 없고…. 직접적인 폭력보다 이렇게 일상적인 구조적 폭력이 더 무서워요.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라는 것만 봐도 결국 구조적 학살임을 알 수 있잖아요. 안정되고 평화롭게 살 수 없는 사회에 절망해서 죽는 거니까요. 

국가폭력은 물리적 폭력이나 구조적 폭력 등 양태가 다양한데, 우리 사회에서 가장 심각한 폭력의 양태는 무엇이라고 보세요? 

구조적 폭력이죠. 직접적 폭력은 많은 사람이 동시에 당하지는 않지만, 구조적 폭력은 수많은 사람을 죽이고 힘들게 합니다. 저는 인류 사회의 가장 큰 구조적 폭력은 자본주의 체제라고 생각해요. 수많은 사람의 노동, 자원을 1%도 안 되는 개인이 독점해 버리니까요. 그래서 수많은 사람이 빈곤과 미래에 대한 불안, 갈등에 빠질 수밖에 없어요. 그게 가장 큰 폭력이죠. 

성공회대 한홍구 교수가 국가폭력에 맞서는 한국의 저항운동에 관해 쓴 글 중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어요. “국가권력의 폭압에 대해 저항 세력은 쇠 파이프를 드는 대신 자신의 몸에 불을 붙였다. 저항 세력의 폭력은 분노에서 나오는데 저항 폭력이 권력에 의해 길든 한국 사회에서는 그 폭력의 방향이 ‘적’보다는 ‘자신’을 향하곤 했다.” 안타까운 내용인데요. ‘저항 폭력’에는 어떤 입장이신가요. 

그건 폭력이 아니죠. 말 그대로 저항이고, 최소한의 인간다움과 자기 권리를 지키려는 안간힘이라고 봐야겠죠. 거기에 폭력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는 없을 것 같아요. 폭력에 저항하는 건 당연히 있을 수밖에 없어요. 어떤 인간이든 밟으면 꿈틀하잖아요. 그걸 폭력이라고 얘기하면 안 된다고 봐요. 노예사회에서 노예들이 봉기했던 역사가 있는데, 그걸 (저항) ‘폭력’이라고 해야 하나요? 그렇게 단순 비교를 할 수 없죠. 그건 안간힘이에요.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촛불집회 때 경찰이 컨테이너를 쌓았고, 시민이 이를 명박산성이라 부르며 그 앞에 스티로폼을 쌓은 일이 있지요. 그때 한편에서는 ‘비폭력’과 ‘쌓지 마’를 외치면서 새벽 늦게까지 ‘비폭력’에 대한 논쟁이 이어졌습니다. 

그때는 너무했죠. 당시 사람들이 그 벽이라도 넘어 보자, 그 정도라도 하자고 한 거잖아요. 그런데 거기서 ‘비폭력’ 논의가 된다면 그건 역사의식에 관한 고민이 덜한 것 아닌가 싶어요. 폭력, 비폭력 논의는 시대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고 봐요. 작년에 아랍 국가에서 민주화운동이 벌어졌고 그 과정에서 나라별로 수천 명이 죽기도 했어요. 그런 강한 희생과 헌신이 필요할 때도 있어요.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고 하잖아요. 원하지 않지만 사회적 갈등에서 피치 못하게 누군가 희생과 헌신을 해야 하는 역사가 있기도 한 거예요. 그게 참다운 자신, 참다운 역사를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그걸 희생과 헌신이라고 말할 것도 없어요. 그렇게 역사적 삶을 사는 거죠. 역사적 삶을 산다는 건 수많은 질문을 내포하고 있어요. 인간은 무엇인가, 사회적 불의 앞에서 어떻게 사는 게 인간답게 사는 것인가. 그런 질문 말이에요. 그러니 단선적으로 어떤 상황에 대해 옳고 그름을 평가하는 건 쉽지 않아요. 우선은 어떤 상황에서 시대적 요구가 생겨나는지를 봐야 하지 않을까요. 

이명박 정부가 ‘법치’ 운운합니다만, 그 경계를 넘는 폭력 행위가 다반사입니다. 혹 노동운동과 관련해서 어떤 경우에 국가폭력이 정당화될 수 있을까요. 

국가의 행위는 ‘공권력’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되기 일쑤예요. 그런데 사실 그런 공권력 행사의 내용은 오히려 반공공적일 경우가 많아요. 예를 들어 노동 현장에 분규가 있을 때 국가가 한 번도 사측을 때려잡아 본 적이 없어요. 늘 노동자가 잡혀가고 끌려가요. 그런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하기는 어렵죠. 공권력이라는 명목으로 폭력을 자행하지만 역사의 법정이 따로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늘 재평가되기 마련이에요. 광주 5·18 때 공권력을 투입했던 전두환을 국가내란 수괴로 바로잡기도 하잖아요. 이처럼 공권력이라고 해서 늘 정당하다고 생각해선 안 돼요. 정말로 공공적인 성격을 가졌는지가 평가 기준이 되어야죠. 

그 공공성이 언제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을까요. 

국가 공권력 전체를 부정할 수는 없겠죠. 그러나 일부에서는 국가 공권력 자체를 인정할 수 없다고도 해요. 이건 본질적인 문제인데요. 우리나라는 헌법에 기초를 둔 자유 민주주의 국가잖아요. 그건 사유재산을 인정한다는 것으로, 과도한 부를 개인이 독점하는 것을 용인한단 말이죠. 그런데 저는 사회적 자본은 개인이 과도하게 독점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봐요. 사회적 부 중에는 자연에서 빌려 온 자원도 있어요. 그것과 수많은 인간의 노동력이 결합함으로써 사회적 부가 창출되는 것인데, 그걸 특정 개인이 소유할 수 있나요? 타인의 노동을 개인이 소유할 수 있나요? 자본주의사회는 그런 이해할 수 없는 사회적 구조와 체계를 지키기 위한 형태로 조직돼 있어요. 그러니 국가는 본질적으로 가진 자들의 편에 설 수밖에 없죠. 즉 국가 공권력이 철저히 자본의 이해에 종속되어 있기 때문에 그 자체가 만인에게 폭력이 아닌가 하는 얘기까지 나오는 거죠. 본질적으로 이런 지점에 관하여 사회적 고민이 필요하지 않나 싶습니다. 

실제로 국가폭력의 정당화 및 심화가 자본주의의 심화와 맞물려 있다는 주장이 많이 제기되는데요, 최근 좌담에서 쌍용자동차 문제의 실질적 해결을 ‘공장의 사회화’라고 주장하신 것도 같은 맥락인 거죠? 

그렇죠. 

대화를 나누다 보니 노동운동 과제가 한둘이 아니네요. 대중성 확보를 비롯해 노동운동이 정치운동으로도 이어져야 하고, 최근 대선 이슈로 떠오른 경제 민주화에 관해서도 점검이 필요할 듯합니다. 시급히 해결해야 할 게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꿈이 커지면 좋겠어요. 사람들의 꿈이 너무 작아졌어요. 노동운동의 기본을 구호로 표현하자면 자본·소유로부터의 노동 해방, 존엄한 개인이 자유롭고 평등해지는 인간 해방 같은 것들이었어요. 그런 큰 꿈을 이루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그 안에서 각각의 사업이나 운동이 어떻게 일어나야 하는지 고민해야 하거든요. 그런데 자꾸 꿈을 잃고 체제 내화돼 버리는 모습을 봅니다. 그건 모두의 삶을 위해 바람직하지 않지요. 

프랑스 같은 나라에서는 초등학생들에게 ‘불의에 저항하라, 약자와 연대하라’고 가르칩니다. 폭력이 나에게 가해지든 혹은 타인에게 가해지든, 또 공동체 전체에 자행되는 이데올로기적 폭력이든지 간에 우리는 그런 것에 당연히 저항해야 해요. 그리고 좀 더 평화롭고 평등한 사회를 위해 필요한 것을 당당하게 요구해야 하고요. 실천적 연대를 통해 조화로운 사회 운영 원리를 만들기 위한 모색과 실천도 필요할 듯해요. 

손석춘 교수도 노동대학 강의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학습”이라는 얘기를 했죠. 이념적으로 ‘승리’하고 난 다음의 세상을 구체적으로 그리고 있는 이들이 없다는 지적이기도 했는데요. 

저는 희망버스 같은 실천적 공간이 사회적 학습 공간이 아닐까 싶어요. 그래서 우선 거리에서 사람들과 공감할 수 있는 만남을 이뤄내는 일에 주력하고 있어요. 사실 저 스스로 공부가 더 필요해요. 마르크스는 “인류 역사상 무지가 도움이 된 적은 한 번도 없다”고 했죠. 기생적 자본주의 체제가 유지되려면 우매한 대중이 가장 먼저 필요하거든요. 생각하는 기능을 잃어버린 멍청하고 일만 하는 기계가 필요할 뿐 역사적 의식을 대중이 갖추는 걸 자본주의 체제는 가장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사회가 바보를 만드는 체제라고 말하는 거죠. 자아를 찾고 공동체를 이루는 개인으로 거듭나는 길이 막혀 있거든요. 이 길을 뚫기 위해 역사의 진실, 사회의 진실을 찾으려는 부단한 노력과 학습이 필요합니다. 

바쁘신 중에 시간 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인터뷰를 마쳐야 할 시간인데요, 기획 중인 행사나 주요한 일정이 있다면 나눠 주세요. 

작년 희망버스 참가자 중 130명이 기소되어 벌금 폭탄을 맞고 있거든요. 이런 사법 탄압에 맞서 기소된 사람을 지원하기 위해 공동기금을 마련하는 일을 준비하고 있어요. 이건 좀 널리 알려 주세요. 쌍용자동차에서 22명의 사회적 죽음이 있었는데 이에 연대하고자 6월 16일 토요일 오후 1시부터 6시까지 여의도공원에서 시청까지 걷기대회를 해요. 저녁에는 난장이 있고요. 분향소를 하룻밤 동안 지키자는 건데요. 주변에 알려서 많이 좀 와 주세요. 밑도 끝도 없이 1만 명이 오리라고 예상하고 있습니다. 

» 인터뷰를 마치고 대한문 앞 쌍용차 분양소를 향하는 송경동 시인.

바쁜 틈에 잡힌 인터뷰를 끝내고 다시 일하러 가려다 대한문 쌍용차 분향소로 향하던 그 고운 마음을 기억하며, 6월 16일 토요일 오후, ‘함께 걷자, 함께 살자, 함께 웃자’ 행사에 갔다. 희망과 연대를 위해 모인 시민들이었건만, 여의도에서 대한문까지 평화로운 행진을 이어가던 시민들이었건만, 그날 역시 경찰은 마포대교 입구에서 차벽을 세우고 시민들을 막았다. 돌멩이 하나 들지 않았던 4명의 시민이 연행됐고, 참가자들은 지하철을 이용해 가며 대한문까지의 행진을 마쳤다. 언제쯤 국가 공권력은 시민의 시위를 ‘보호’해 줄까. 언제쯤 시위 없는 세상에서 살 수 있을까. 

1) 기륭전자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서울 금천구 기륭전자 구사옥 앞 컨테이너에서 2005년부터 6년간 농성했다. 한 달에 64만 1850원을 받고 일하던 그들은 대부분 파견 근로자였고 “내일부터 나오지 않아도 된다”는 문자를 받으면 그게 해고였다. 김소연 지회장은 농성하며 94일간 단식하기도 했다. 기륭전자 사태는 비정규직 문제의 절정판이었다. 2010년 10월, 농성장을 강제 진압하기 위해 회사가 포클레인으로 밀고 들어왔을 때 송경동 시인은 포클레인에 올라가 투쟁하던 중 아래로 떨어져 발뒤꿈치뼈가 으스러져 큰 수술을 받았다. 2010년 11월 1일, 1895일간의 최장기 투쟁을 끝으로 조합원 전원 10명(노조를 설립할 당시 200명이던 조합원이 6년 동안 10명으로 줄었다)이 정규직으로 복직했다. 

2) 2011년 11월 15일 송경동 시인은 기자회견을 하고 부산영도경찰서에 자진 출두했다. 그러자 검찰이 바로 구속영장을 청구해 구치소 생활을 하다가 12월에 구속 기소됐다. 송 시인은 올해 2월 보석으로 풀려났고 재판이 진행 중이다. 

3) 평택 대추리는 2004년 용산 미군기지 확장 이전지로 확정되면서 주민이 강제 추방당한 곳이다. 노무현 정부는 대치가 가장 격렬했던 2006년 5월 4일, 수천 명의 사설 용역과 군대를 동원 1만 5,000명의 공권력으로 524명을 강제 연행했고, 그 과정에서 300여 명이 부상했다. 935일간 1,000여 명이 연행됐고 특히 김지태 이장 구속 때는 국제엠네스티까지 나서 ‘양심수석방운동’을 하기도 했다. 송 시인은 그해 3월에도 강제 집행에 맞서 문화 예술인들과 항의하다가 폭행을 당했다. 송 시인의 목에 감겨 있던 펼침막을 경찰들이 양쪽에서 잡아당긴 것이다. 주위에서 ‘목 졸려 죽는다’고 항의했지만 막무가내로 “저 새끼들 연행해”라는 폭언을 들었고, 의식을 잃을 뻔했다. 대추리 사건은 2007년 4월 주민 전원이 이주함으로써 강제 퇴거가 마무리됐다. 

4) 미술가 구본주는 자본주의사회의 계급성을 주요 모티프로 삼아 작업하던 젊은 예술가였다. 서른일곱의 나이에 불의의 교통사고로 요절했다. 그의 작품 ‘갑오농민전쟁’ 동상은 평택 대추리 대추초등학교에 전시되기도 했다. 구본주예술상은 그의 예술정신을 잇고, 세대 간 소통과 공감을 확장하며, 자유·평등·노동·평화·인권·생명 등의 가치를 옹호하는 예술을 활성화하기 위해 2011년 제정됐다. 

5) 쌍용자동차는 재정 악화로 2005년 상하이차에 매각됐다. 매각 초기부터 핵심 기술만 빼 가는 이른바 ‘먹튀 논란’이 일었던 상하이차는 4년간 쌍용자동차에 전혀 투자하지 않았고, 후에 핵심 기술과 핵심 인력을 중국으로 빼돌린 사실이 드러났다. 결국 상하이차는 판매 부진과 경기 악화 등으로 2009년 1월 법정 관리를 신청했다. 이후 7000명 노동자 중 2600여 명의 정리 해고를 단행, 1500명은 희망 퇴직했고 1000명의 노조원은 5월부터 77일간 평택 공장을 점거하고 농성을 벌였다. 농성 진압을 위해 경찰이 대테러 장비인 테이저건과 고농도 최루액, 진압용 총기 등을 사용해 부상자가 속출했고, 사측이 수시로 단수·단전하고 식료품과 의료진 출입마저 막는 등 인권 침해도 극심했다. 이 사건으로 64명이 구속됐고, 지금까지 22명의 노동자 및 노동자의 가족이 목숨을 잃어 ‘정리 해고는 살인’이라는 말이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2010년 11월 인도의 마힌드라가 인수 합병 계약을 했지만, 해고 노동자들의 복직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글·사진 (복음과상황) 이종연 기자 limpid@goscon.co.kr

본 글은 휴심정 벗님매체인  http://www.goscon.co.kr>에 실린 것입니다. 

2012년 7월 8일 일요일

남한은 온통 빨갱이 천국


이글은 한겨레신문 조현 기자 블로그 밧님글방 휴심정 2012-07-06일자 기사 '남한은 온통 빨갱이 천국'을 퍼왔습니다.

빨갱이 논쟁 

저는 한국의 진보보수논쟁을 지켜 볼 때마다 "양측 다 전투를 이기려고 열심히 싸우는 사병들만 득실거리지 전쟁을 이기려는 장수들의 없구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논쟁들이 동네 골목대장 내지 군 분대장, 소대장급 수준을 못 벗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남북관계에 정작 필요한 것은 국지전투에 이기기 위한 전술이 아니라 전쟁을 이기기 위한 전략입니다. 전쟁에 이기기 위해서는 수십번씩  전투에서 져주기도하고, 중요한  고지를 포기하고 퇴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큰 지도를 읽을 수 있는 안목과 때를 알아 보는 통찰력과  기다릴 줄 아는 인내심이 필요합니다. 이것들이 지도자들이 필수적으로 갖추어야 할 자질이고 그릇입니다.  

전쟁에서 적의 큰 장점을 오히려 적의 큰 단점이 될 수가  있습니다. 

빨갱이 논쟁은 한국보수가 선거때 마다 사용해 온 보검입니다. 6.25 를 경험하고 기억하고 있는 한국인들의 정서에 가장 효과적으로 먹혀 들어가는 원자탄급 무기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이번 선거에도 틀림없이 사용할 것입니다. 아니 빨깽이 논쟁은 이미 극보수주의자들이 용의주도하게  문을 열었습니다. 불안한 중도세력들이 보수로 돌아서고, 진보세력은 방어적 수세로 몰리고 있습니다. 
내부 분열 조심도 보입니다.   

그러나 빨갱이 논쟁처럼 한국보수에게 치명적인 약점도 없을 것입니다. 한방 맞으면 쓰러질 한국보수세력의 정수리가 바로 빨갱이 논쟁입니다. 

한국의 보수는 김대중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 시절을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믿고, 또 그리 떠들고 있습니다. 이는 역사에 대한 무지의 소산이 아니라 상식에 대한 무지의 소치입니다. 어찌 인생에 잃어버린 시절이 있고, 역사에 잃어 버린 시대가 있을 수  있다는 말입니까 ?

세살 먹은 삼척동자도 그럴 수 없다는 것을 빤히 알고 있습니다. 설령 그동안 대한민국 사람들이 모두 잠을 자고 있었다고 해도 
잃어버린 세월일 수는 없습니다. 지난 역사는 가정이 아니라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그동안 대한민국이 오히려 세계경제 10 강국으로 성장하지 않았습니까? 

나는 개인적으로 보수도 아니고 진보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중도도 아닙니다. 그 이상입니다. 

다만 가끔씩 한국의 보수들이 보내오는 악성 이메일들을 읽으면서 분노를 느끼곤 합니다.  지나간 바람으로 풍차를 돌리려 하고 흘러간 물로 물래방아를 돌리려 하는 그들의 무지를 좀처럼 이해 할 수도 없습니다. 그들 보내준 이메일 주요 내용은 이렇습니다. 

"한국전직 두 대통령, 김대중, 노무현은 북한에 동조하는 빨갱이었다. (심지어는 북한 김일성의 유급간첩이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한국의 국민들 절반, 그리고 대부분 젊은이들은 친북, 종북세력이다." 

시골 동네 골목대장이나  군에서 분대장이라고 제대로 한 번 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감히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없습니다. 적어도 제 경험으로는 그렇습니다. 아무리 작은 조직이라도 일단 지도자가 되면 누구보다 그 조직을 사랑하고  애착을 갖게 되는 것이 인간입니다. 하물며 적과 싸우면서 자기편보다 약한 적에게 스스로 무릎을 꿇고 항복하는 지도자는 여지껏 본적이 없습니다. 

한국의 대통령 자리가 어떠한 자리입니까?  일국의 왕에 버금가는 명예와 권력을 누리는 영광스런 자리입니다. 그래서 사람이면 누구나 꿈에서라도 한번쯤 해 보고 싶어 하는 자리가 대통령입니다. 그런 대한민국 대통령이 어찌 북한 김정은의 똘만이를 스스로 자청한다는 말입니까?   

한국 젊은이들만 해도 그렇습니다. 국민소득 년 2만불에,  세계 어느나라 못지않게 풍요와 자유를 누리고 있는 한국젊은이들입니다. 
그들이 모두 정신병 환자들입니까? 국민소득이 겨우 몇천불도 되지 않는 북한사회를  그리워하게.

그렇게 열등의식과 패배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 한국의 보수세력입니까?  자신들의 자녀들, 후배, 형제자매들까지 믿고 신뢰하지 못 할 정도로... 10대 세계경제 대국의 신화를 이끌고 있는 사람들은 죽은 이승만, 박정희가 아니라 바로 당신들이 빨갱이로 몰고 있는 한국의 젊은이들입니다. 그들이 자랑스럽지 않습니까? 

아주 솔직하게  이야기 해 봅시다. 전직 대통령들, 남한 국민들 절반 이상, 한국의 젊은이들을 빨갱이, 친북, 종북세력으로 몰아서 가장 이익을 보는 세력이 과연 누구입니까? 두말할 것도 없이 김정은이 이끄는 북한독제정부입니다. 그들은  골치 아프게 굳이 북한주민들이나 남한국민들을 상대로 심리전같은 것을 할 필요도 없습니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남한의 보수세력들이 정성 스럽게 빨갱이 밥상를 차려 바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신있는 목소리로 이렇게 외치기만 하면 됩니다.  

"보라, 남한은 온통 우리들의 빨갱이 천국이다. 전직 두대통령들도 우리 빨갱이었다. 남한 국민들의 절반 이상, 대부분 남한 젊은이들은 우리 북한사회를 동경하고 그리워 하는 빨갱이들이다. 이것은 우리 억지 주장이 아니다. 남한 주요 일간지와 남한 정부가 인정하는 통계적 자료다  " 

물론 그 이전에, 한국보수세력은 공포와 두려움으로 떨고 있는 국민들의 지지로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겠지요. 전투에서. 

그러나 이 빨갱이 논쟁들이야 말로 북한을 이롭게 하는 이적행위가 아닙니까? 정권을 위해서 남한을 북한에 팔아먹는 매국행위가 아닙니까? 

한국의 현행 반공법으로 처벌되어야 할 사람들은 바로 빨갱이 논쟁을 벌여 북한을 이롭게 하고 있는 이들 보수세력들이 아닙니까? 
그리고 간첩행위로 일차적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할 사람은 그들의 수괴 조깝대기와 김똥통길 아닙니까? 김정일, 김정은을 가장 기쁘게 하는 기쁨조 명목으로 말입니다. 

(당당뉴스) 박평일 기자 bpark7@cox.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