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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2월 21일 목요일

한전 언론 플레이에 뿔난 밀양 주민 "보상 싫어!"


이글은 프레시안 2013-02-21일자 기사 '한전 언론 플레이에 뿔난 밀양 주민 "보상 싫어!"'를 퍼왔습니다.
18일 간담회 성과 없어…"송전탑 아닌 대안 찾아야"

송전탑 건설을 두고 갈등하는 경상남도 밀양 주민과한국전력 측의 갈등이 더욱 깊어지고 있다.

이날 국회 지식경제위원회 소속 조경태(민주통합당) 의원이 주선한 간담회에서 밀양 주민과 한국전력 측은 오전 11시부터 오후 6시까지 장장 7시간에 걸쳐 국회 지식경제위원회 소회의실에서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이에 밀양주민과 한국전력이 대화의 물꼬를 텄다는 보도가 이어졌으나 정작 대화에 임했던 주민들은 "기대가 무너졌다"며 큰 실망감을 드러냈다.

주민들 "'이중 플레이' 멈추라"


'밀양 765킬로볼트 송전탑 반대 대책 위원회'는 20일 보도 자료를 내고, 한국전력이 협약 체결의 대상이라 주장하는 '밀양시 5개면 주민 대표단'의 실체를 밝히라고 요구했다. 이들은 "대책 위원회는 밀양시 4개면 주민들의 대표 단체로 절대 다수 주민들의 지지를 받고 있으며 공개적으로 활동하고 있다"며 "그러나 '5개면 주민 대표단'은 실체를 알 수 없는 유령 조직"이라고 비판했다.

 
▲ 지난 1월 14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동 한국전력 본사 앞에서 밀양송전탑대책위원회 주민들이 송전탑 건설 반대 촉구 집회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이들은 줄곧 한국전력이 다원화된 대화 창구를 통해 마을 주민을 분열시키고 있다고 지적해 왔다. 지난 1월 9일에는 '주민 대표단'이 독단적으로 한국전력으로부터 10억원을 받은 사실이 폭로되며 논란이 일었다. 이들은 이러한 한국전력의 행위를 "주민매수"로 규정하고 "극소수 주민들과 협약을 체결하는 '이중 플레이'를 중단하라"고 강조했다.

이어서 이들은 "한국전력은 보상을 미끼로 주민들을 분열시키고, 임시방편의 대책으로 주민들을 기만하는 행태를 중단하라"며 직접, 간접 보상 모두 관심이 없다고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한국전력이 추진하는 대로 직접 보상 범위가 확대된다면 보상 범위는 현행 송전선로 좌우 34미터에서 94미터로 60미터가 늘어난다. 그러나 이들은 "765킬로볼트 송전탑은 높이만 100~140미터에 이르고 345킬로볼트 송전탑보다 4배 많은 대용량 전류가 흐른다"며 "이 때문에 최소 1킬로미터 이내의 주민들이 경관 피해, 위압감, 소음, 부동산 거래 중단, 재산권 행사 불가능 등 엄청난 피해를 보는데 보상 범위가 고작 60미터 늘어난다고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반문했다.

이들은 변전소와 송전선로 주변 지역에 매년 약 1000억 원을 보상해준다는 지식경제부의 안도 실효성이 없다고 평가했다. 이들은 "지식경제부가 제출한 소요 재원을 보면 2013~2024년까지 12년간 1조3639억 원을 345킬로볼트 이상 송전선로 지역과 발전소 인근 지역에 쓰게 된다"며 "이 돈이면 차라리 지중화(땅에 송전선로를 묻는 방식)를 통해 송전선로 갈등의 근본 원인을 없애는 것이 훨씬 지혜롭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이 보상은 실현될 가능성이 없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이들은 "지식경제부가 전력산업기반기금 신규 사업으로 내년도 예산에 송·변전 주변 지역 지원 사업 100억 원을 신청·요청했는데 기획재정부가 반대했다"며 "100억 원을 반대하는데 매년 1000억 원 이상씩 들어가는 일에 전력산업기반기금을 사용하는 것이 가능하냐"는 의문을 제기했다.

"협의체 구성하라"…"2차 간담회 때 논의 예정"

마지막으로 이들은 "한국전력은 주민들이 요청하는 지중화 혹은 대안 노선과의 병행 등의 기술적 쟁점을 논의할 전문가 협의체를 구성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국전력 관계자는 이들이 제기한 의문과 관련해 "반대쪽이든 찬성쪽이든 '대표'라는 주민 단체와는 모두 접촉하고 있다. 오는 3월에 열리는 2차 간담회 때 주민과의 대화 창구를 일원화하기 위해 논의해볼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서 그는 "전문가 협의체 구성도 2차 간담회에서 논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국전력과 밀양 주민 간의 갈등은 지난 200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정부의 전력 수급 기본 계획에 따라 울산시 울주군의 신고리 핵발전소에서 경상남도 창녕군 북경남 변전소까지 송전탑 161개의 건설이 결정됐다. 이 중 69개가 밀양시에 집중돼 있어 한국전력과 주민 사이에 극심한 갈등이 계속돼 왔다.


 /남빛나라 기자

2012년 12월 31일 월요일

정리해고는 어떻게 인간을 파괴하는가


이글은 시사IN 2012-12-31일자 기사 '정리해고는 어떻게 인간을 파괴하는가'를 퍼왔습니다.
2009년 쌍용차 사태 이후 23명이 숨졌다. 노조 간부들은 사태 해결을 촉구하며 곡기를 끊고, 송전탑에 올랐다. 하지만 쌍용차를 인수한 마힌드라 그룹 측은 정리해고자 복직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지난 3월30일 서른여섯 살 이윤형씨는 경기도 김포시 한 임대아파트 23층에서 몸을 날렸다. 투신자살. 유서는 없었다. 유족에게 부고를 알리기 위해 경찰이 들어간 집은 42.9㎡(13평) 크기 1인 가구였다. 빈 생수통 여러 개가 거실 가운데 놓여 있었고, 약봉지가 흩어져 있었다. 집안 한구석에 놓인 이력서가 눈에 띄었다. 경력 난에는 ‘쌍용차 재직’이라고 쓰여 있었다. 일찍 부모를 여의고 직계가족이 없던 그를 쌍용자동차 동료들은 충남 서산에 뿌렸다. 모친의 묘가 있는 곳이다. 쌍용차의 ‘22번째 죽음’의 흔적은 그렇게 사라졌다. 하지만 산 자들의 가슴에 깊이 박혔다. 

금속노조 쌍용자동차 지부는 4월 ‘얼굴 없는’ 영정 사진을 내걸고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 분향소를 차렸다. 대한문 농성촌의 시작이었다. 요구는 단순했다. ‘함께 살자.’ 2009년 쌍용차 사태 이후 해고자나 무급 휴직자, 그 가족 등 23명이 숨졌다. 단일 사업장 파업 사상 전무후무한 죽음의 행렬이었다. 어머니는 우울증으로 자살, 아버지는 과로사한 ‘쌍용자동차 남매’ 사연은 울림이 컸다. 

ⓒ시사IN 이명익 11월21일 쌍용차 노동자들이 경기도 평택 쌍용차 본사 인근 송전탑에서 고공시위에 나섰다.

법정관리에 들어간 쌍용차는 2009년 컨설팅 회사 삼정KPMG가 작성한 (쌍용자동차 경영 정상화 방안) 보고서를 토대로 정리해고 안을 발표했다. “인적구조의 혁신 없이는 생존이 불가능하다. 2646명의 구조조정을 단행해야 한다.” 당시 노동자의 절반(46.8%)에 가까운 수치였다. 회사를 망친 ‘먹튀 자본’ 상하이자동차의 책임은 거론조차 되지 않았다.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은 그동안 당연하게 받아들이던 ‘정리해고’에 대해 처음으로 제 목소리를 냈다. 그동안 구조조정과 정리해고는 불가피성 때문에 용인되어 왔다. 이들은 옥쇄파업 뒤에도 정리해고가 얼마나 한 가정을, 그리고 공동체를 파괴하는지 온몸으로 보여주었다. 

(의자놀이) 출간되며 공론화 바람

논란이 있기는 했지만, 소설가 공지영씨가 지난 8월 (의자놀이)를 출간하면서 쌍용자동차 사태는 공론화 바람을 탔다. 김정우 지부장은 국정조사를 요구하며 41일간 곡기를 끊었다. 3년 만기를 채우고 감옥에서 나온 한상균 전 지부장은 쌍용차 본사 인근의 송전탑에 올라 또다시 ‘하늘 감옥’에 스스로 갇혔다. 결국 박근혜 후보도 대한문 농성장 방문을 타진할 만큼 이들은 2012년 대한민국 해고 노동자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개별 사업장에 대한 개입을 반대해왔던 새누리당도 여론의 눈치를 살피며 결국 대선 뒤 국정조사를 약속해야 했다. 쌍용차 지부 이창근 기획실장은 “한진중공업 희망버스 이후 다양한 방식의 시민 연대가 이뤄졌다. 손수 지은 밥을 가져다주시는 분, 문화제에 나와 주시는 분, 현장을 기록해 주시는 분 등 모두 고맙다. 올해는 쌍용차가 시민들의 관심을 많이 누린 해였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가야 할 길은 멀다. 지난 10월, 회사는 2014년 12월까지 무급 휴직자 455명을 점진적으로 복직시키겠다는 조정안을 법원에 냈다. 2010년 8월까지 복직시키겠다는 노사합의를 4년 만에 지키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쌍용차를 인수한 인도 마힌드라 그룹 파완 고엔카 사장은 국회 국정감사에 출석해서 “정리해고자를 복직시킬 계획은 없다”라고 잘라 말했다. ‘함께 살자’는 쌍용자동차 식구들의 바람이 이뤄지는 게 그리도 어려울까. 

송지혜 기자  |  song@sisain.co.kr

2012년 12월 9일 일요일

쌍용차 노동자 “정치가 희망으로 고문했던 5년”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2-12-08일자 기사 '쌍용차 노동자 “정치가 희망으로 고문했던 5년”'을 퍼왔습니다.
[현장]쌍용차 해고노동자 송전탑 고공농성 18일째

“23명이 아니라 230명, 2300명이 이유 없이 우리 곁을 떠나도 꿈쩍도 안하는 파렴치한 세상, 모진 시기를 견뎌왔습니다. 4년이 흘러 이명박 정권이 보따리를 쌀 시간이 됐습니다. 노동자는 점점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다시 공장으로 돌아가는 꿈을 접을 수 없어 견딜 수 있었습니다. 2013년 달력에 소망을 적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의 소망은 가족과 함께 소박한 일상을 보내는 것입니다.” (한상균 전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장)
7일 밤 경기도 평택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의 송전탑 고공농성 현장에는 매서운 칼바람이 불고 있었다. 서해에서 불어오는 바람이다. 송전탑 아래에는 경찰 병력 100여명이 배치돼 있었다. 송전탑에는 ‘쌍용차 국정조사’, ‘해고자 복직’ 대형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쌍용차 해고노동자인 한상균 전 쌍용차지부장과 문기주 정비지회장·복기성 비정규직지회 수석부지회장은 송전탑 30미터 지점에서 국정조사와 해고자 복직을 요구하며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 7일로 18일째다. 송전탑에서는 쌍용차 평택공장이 내려다보인다. 농성 조합원들은 손전등을 흔들며 ‘나 여기 있소’라고 말하는 듯 했다. 
이들은 지난달 20일 새벽 널빤지 두 장을 가지고 송전탑에 올랐다. 김정우 쌍용차지부장이 41일 동안 단식을 벌인 후 병원으로 이송된 지 12시간 만이었다. 24번째 죽음을 막기 위해 해고노동자들은 목숨을 건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 7일 밤 경기도 평택 쌍용차 해고노동자의 송전탑 고공농성 현장. ⓒ조현미 기자

이날 하루 전면파업을 벌인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와 금속노조 확대간부들이 쌍용차 고공농성장을 찾았다. 7일 현대차 → 쌍용차, 8일 유성기업으로 이어지는 1박2일 노숙농성 투쟁이다. 땅 위에 있는 해고노동자들은 아래서 올려 보내준 무선 마이크로 농성장을 찾은 다른 노동자들과 대화했다.
울산 현대차에서 올라온 한 비정규직 노동자는 “세 분을 걱정하며 달려왔다”며 “어떻게 인사를 해야할 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복기성 수석부지회장은 “세 명 모두 건강하게 지내고 있다. 점심 저녁 하루 두 끼 먹으며 소량소식하고 있다”고 철탑소식을 전했다.
“울산에서도 걱정하고 있습니다. 웃으면서 지상에서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울산 현대차 인근 송전탑에서도 비정규직 노동자 두 명이 불법파견 인정과 사내하청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이날로 52일째 고공농성을 하고 있다. 송전탑에 있는 농성자들은 아침 저녁으로 카카오톡으로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고 했다.
“추위와 싸우고 있습니다. 오늘이 18일차인데 15일차까지 합판 4장으로 버티고 있다가 연대동지들이 올려준 철빔과 합판으로 두 평 남짓한 천막을 지어서 누울 수 있는 공간이 생겼습니다. 아침 저녁으로 영하 10도로 내려가지만 연대의 열기로 잘 견디고 있습니다.”(복기성 수석부지회장)
한 조합원은 문기주 정비지회장과 소주를 마셨던 기억을 떠올리며 “그 때가 그립다”고 말했다. 문 지회장은 “내려가면 소주 한 번 진하게 묵자”고 답했다.

▲ 금속노조 ‘쌍용차 정리해고 국정조사 실시, 해고자 복직, 고공농성 사수’ 결의대회에 참석한 조합원들. ⓒ조현미 기자

금속노조는 이날 밤 ‘쌍용차 정리해고 국정조사 실시, 해고자 복직, 고공농성 사수’ 결의대회를 열었다. 박상철 금속노조 위원장은 “한 사업장에서 무려 23명의 노동자와 가족이 죽었는데 잘못된 정리해고에 대해 어떤 누구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며 “41일 동안 김정우 지부장이 단식하고, 세 동지가 15만4000볼트의 전류가 흐르는 송전탑에서 목숨 건 고공농성을 하는 요구는 딱 하나, 잘못된 정리해고를 철회하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 위원장은 “비정규직 정규직화, 쌍용차 현장복직 그리고 노조 파괴가 더 이상 발붙이지 못하도록 비상한 각오로 싸워야 한다”며 “1월에 총파업을 할 수 있도록 힘을 모아내자”고 강조했다. 노조는 17일 임시대의원대회를 열고 내년 1월 총파업을 결의한다.   1년 전인 지난해 12월 7일 금속노조와 쌍용차지부는 서울역에서 19번째 희생자를 추모하는 추모제를 열고 평택 공장 앞에서 희망텐트를 시작했다. 세 차례 희망텐트, 네 차례 범국민대회, 국회 청문회까지 열렸지만 어느 것 하나 해결된 것이 없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새누리당 의원들은 지난 4일 대선 후 쌍용차 국정조사를 실시하겠다고 밝혔지만 대선 후보 TV토론회를 앞둔 ‘선거용’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한상균 전 쌍용차지부장은 “정리해고, 비정규직 문제가 정치적으로 해결되지 못할 것을 잘 알고 있다”며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바꿔낼 때 비정규직·정리해고 없는 세상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 8일 오전 쌍용차 해고노동자 3명이 송전탑에서 손을 흔들고 있다. ⓒ조현미 기자

농성을 마친 조합원들은 송전탑에 있는 노동자들에게 방수침낭을 올려 보냈다. 침낭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경찰과 일부 충돌이 있었지만 노동자들의 거센 항의로 30미터 송전탑으로 올려 보내는 데 성공했다.
결의대회 참가자들은 송전탑 농성장에 마련한 130여동의 천막에서 1박을 한 후 8일 오전 고공천막농성을 하고 있는 충남 아산 유성기업으로 향했다. 
한상균 전 쌍용차지부장은 지난 2009년 77일간의 옥쇄파업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3년 동안 교도소에서 징역형을 살고올해 8월 5일 출소했다. 다음은 송전탑에서 농성 중인 한상균 전 지부장과의 전화통화 일문일답.
- 날씨가 많이 추운데 생활하는 것은 괜찮은가.“추운데 적응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만만치는 않다.”
- 세 분의 건강상태는 어떤가.“처음 올라올 때보다는 조금씩 힘들어지고 있는데 지금 밑에 있는 동지들도 힘든 것은 매한가지이기 때문에 우리가 나약해질 수 없어서 정신 차리고 있다.”
- 얼마 전 새누리당에서 대선 후에 국정조사를 실시하겠다고 밝혔는데 어떻게 생각하나.“지부의 입장과 별 다르지 않다. 쌍용차 문제의 심각성 때문에 한 것 같지는 않고 민심의 동향도 있는 것이다. 연속적인 죽음 앞에 정치가 너무나 무기력했다. 그런 것에 대해 자기 반성이 좀 따라주는 결단이면 다행스럽다고 생각하는데 단순하게 대선만 앞둔 하나의 이벤트로 한다면 정말 오히려 희망으로 고문하는 격이다. 그렇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쌍용차지부는 4일 발표한 성명에서 새누리당에 △기자회견 내용이 박근혜 후보의 입장인지 명확히 밝히고 △쌍용차 국정조사 실시 시기도 구체적으로 밝혀야 하며 △정리해고자에 대한 입장과 △책임자 처벌 문제를 분명히 해야 할 뿐 아니라 △2009년 자행된 비정규직 해고 노동자들에 대한 입장과 함께 △중구청의 대한문 분향소 철거 예고에 대한 입장 등을 밝히라고 요구했다. 지부는 “요구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해야 쌍용차 비극에 대한 새누리의당 해결 의지에 진정성이 담긴 것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라며 “새누리당을 비롯한 모든 정치권은 쌍용차 문제를 정쟁 구도로 삼아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 얼마 전 국민일보 보도(12월 5일자 [朴,쌍용차 노조 만남 철탑농성 해제 조건] 기사)에 따르면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 측이 송전탑 농성 해제를 조건으로 만남을 제안했다고 하는데. “(기사를) 못 봤다. 이후 언론을 통해 몇 번 접하기만 했지 직접 들어본 적은 없다. 국민이 함께 살자고 하는데 함께 사는 대한민국을 말하는 사람이 조건을 가지고 오겠나. 진정성이 있으면 오면 되는 것이다. 이런 투쟁까지도 거래 대상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 금속노조 정리해고철회 공동투쟁단이 붙여놓은 현수막 뒤로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이 농성을 벌이고 있는 송전탑이 보인다. ⓒ조현미 기자

- 18대 대선 얼마 안 남았는데 어떤 결과가 나오길 바라는지. “지금까지 정치가 희망으로 우리를 고문만 했던 5년이었다. 얼마 안 있으면 새로운 대한민국의 권력이 등장한다. 노동과 경영은 서로 균형이 맞아야 나라가 정상적으로 희망과 비전을 가질 수 있는데 지금 현재는 일방적이고 완전히 불공정하다. 자본은 현금이 넘쳐서 주체를 못하고 있는데 노동은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인간의 영혼, 존엄성까지 짓밟히고 있다. 노동자가 가족과 함께 소박함을 나눌 수 있고, 노동자로 살다 죽어도 조금은 행복했다는 생각 가질 수 있는 국정철학을 가진 사람이 당선됐으면 좋겠다.”
- 언론에서 관심을 갖고 보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나.“쌍용차는 이미 노사관계의 폭을 넘어서 결국 정부 관련 기관들이 총체적으로 개입된 사건이다. 사회 상류층들이 어떻게 노동자들을 탄압하는지 보여준 백화점이었다. 이런 것들이 많이 이슈화되고 보도되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회사의 움직임을 언론에서 많이 다뤄져야 할 것 같다. 원죄가 있는 상하이차의 먹튀에 대해 잘못이 있는 경영진, 법정관리 잘못이 있는 경영진은 이해 당사자인 저희들의 문제를 정상적인 시각으로 볼 수 없다. 적극적으로 더 담을 쌓고 대화를 단절하고 그들의 잘못을 미화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물량도 그렇고 회사가 고용의 문제를 풀어갈 수 있는 조건이 얼마든지 있다. 그럼에도 탄압으로 일관하는 것은 스스로 이 회사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들의 범죄 사실을 합리화하기 위해 우리를 지속적으로 희생양으로 삼고 있다. 이런 스토리를 언론에서 풀어내지 못해 굉장히 안타깝다. 일부 기자간담회에서 얘기하기도 했는데 사실 언론에서 그 문제가 선을 넘기 쉽지 않나 보더라.”
-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해고는 살인이다’라는 구호가 이렇게까지 확장될지는 몰랐다. 그것을 염두해 놓고 외친 것은 아니었는데 아시다시피 현실화됐다. 외국에서도 수천 명, 수만 명이 해고되지만 이런 일은 없다. 우리나라도 언론 보도와 무관하게 상시적으로 해고가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렇게 불행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은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이것은(쌍용차 정리해고는) 억울하고 잘못되고 스스로도 용납할 수 없는 정리 살인 해고였기 때문에 그런 현상이 발생했다. 이런 부분을 치유하지 않으면 계속적으로 또 다른 피해, 상상하기 힘든 일이 발생할 것이다. 계속 살얼음판이다. 생과 사의 문턱에서 왔다갔다하는 조합원들이 너무 많다.그런 조합원들에게 희망을 줘야 하는데 투쟁을 이끌었던 입장에서 승리하지 못하고 조합원들을 고통에 빠지게 해서 너무나 죄송스럽다. 사회 문제로 이미 확장됐기 때문에 풀려야 한다. 조합원 동지들도 이 또한 지나간다는 생각으로 희망을 포기하지 말고 잘 견뎌줬으면 좋겠다. 잘못된 사람들이 스스로 잘못을 인정하고 상처를 치유하는 길에 나서든지 아니면 이 나라가 양심과 정의의 가치가 있어서 그 잣대로 잘못을 단죄하든지 해야 한다. 노동자가 있을 곳은 철탑이 아니라 공장이다. 함께 웃으며 공장으로 돌아가길 바란다. 그 때까지 잘 견뎌주길 매일 밤 기도하고 있다.”

조현미 기자 | ssal@mediatoday.co.kr  

2012년 11월 27일 화요일

평택 송전탑에서 울산 송전탑으로 고공농성 중 복기성 부지회장의 편지


 이글은 레디앙 2012-11-27일자 기사 '평택 송전탑에서 울산 송전탑으로 고공농성 중 복기성 부지회장의 편지'를 퍼왔습니다.

* 평택 송전탑 위에서 고공농성 8일째(27일)를 맞고 있는 복기성 쌍용차 비정규직지지회 수석부지회장이 울산 송전탑에서 42일째 고공농성을 하고 있는 최병승 소송 당사자와  천의봉 현대차 비정규직지회 사무국장에게 보내는 편지를 철탑 위에서 페이스북에 남겼다. 아래는 편지 글 내용이다.(편집자)
***
최병승, 천의봉 동지께! 동지들의 편지 잘 받았습니다.
현대차 비정규 노동자로 8년의 세월 이었다고요? 한 명의 동지가 세상을 떠나고 2명이 신나를 끼얹고, 160명의 동지가 일터를 떠나고, 1천명이 징계를 당했고요? 불법 파견이라고 보수적인 판결을 받았는데도, 현대차 자본은 시정은 하지 않고 조합비 조차 압류하는 만행을 저지르고 있다고요?
편지를 받고 동지들이 걸어온 험난한 길을 가늠해 보았습니다. 국내 최대 굴지의 자동차 회사에 하청노동자로 살아간다는 것, 하청 노동자의 인간선언으로 노동조합을 만들고 테러 당하고, 때로는 당연히 함께해야 할 정규직 노동조합으로부터 배척을 당하고 했던 동지들의 투쟁 말입니다.
저는 쌍용차 사내하청 노동자로 2003년 9월에 입사를 했습니다. 그러니까 현대차 아산에서 노동조합을 만들고 송성훈 동지가 아킬레스를 식칼로 테러를 당할 때 쌍용차에 들어왔던 것입니다.
라이에서 원청과 똑같은 일을 해도 받는 월급은 정규직의 절반밖에 안 되었고, 임금 차별 만큼이나 모든 근로환경은 차별 뿐 이었습니다. 2005년 이었습니다. 불법파견이 문제가 되니 정규직 노동조합과 사측은 진성도급이라며 합의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곧이어 쌍용차 경영이 위기라는 사측의 공세가 이어졌고, 2006년도에는 약 500명의 하청 노동자들이 짤려 나가게 됩니다. 이때 이미 상하이 먹튀 자본으로 인해 비정규 노동자 우선피해가 발생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2008년 말 정규직 노동조합 선거를 전후해서 본격적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임금체불, 강제휴업, 현장 출입금지 등 자행 됩니다. 이를 감지하고 저희들은 쌍용차 비정규직지회를 만들었습니다. 이때 비정규 노동자 350여명이 짤려 나가게 됩니다. 그리고 나서부터 쌍용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오늘날까지 쉼없는 투쟁을 전개해 왔던 것입니다.

평택 송전탑 고공농성장의 모습(사진=복기성님 페북)

2009년 쌍용차 사태와 77일 점거파업 내내 저희들 비정규직지회 동지들은 정규직 동지들과 함께 투쟁을 했습니다. 저희들은 늘 86일 동안 굴뚝농성을 통해 쌍용차 비정규 노동자들의 설움을 대변했고, 투쟁의 결기를 보여주었던 서맹섭 지회장 동지를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쌍용차 사태와 투쟁의 밑바닥에는 비정규 노동자들의 고용과 착취, 정규직과의 분리와 우선해고가 있었다는 것을 서맹섭동지를 통해 알려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숫자는 비록 적었을 지라도 사력을 다해 끝까지 공장사수를 위해 원하청 연대정신으로 투쟁 했다는 것을 늘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2009년 서맹섭 지회장 동지의 심정으로 저는 지금 철탑에 올라 있습니다. 함께 오르지 못한 한윤수, 유제선 동지의 심정은 저와 동일할 것입니다. 현대차의 불법파견은 기아차, 대우차, 쌍용차에서의 불법파견임이 분명합니다. 법이 정한대로 원청이 정규직화를 시켜야 합니다.
복기성 쌍용차 비정규직 노동자의 요구는 명확합니다. 쌍용차의 구조조정은 첫 단추부터 거짓과 조작이었습니다. 모든 피해자는 원상회복 되어야 합니다. 그렇기에 쌍용차 비정규직 노동자는 불법파견에 근거해서, 정규직으로 복직되어야 합니다.
최병승, 천의봉 동지! 할 수 있는데까지 연대를 강화합시다. 비록, 고압선을 따라 울산과 평택에서 서로가 위태롭게 연결되어 있으나, 우리 노동자들의 가슴에 흐르는 뜨거운 열정을 한겨울 추위를 녹여 낼수 있다고 봅니다.
최병승 대법 승소자만의 정규직화란 있을 수 없습니다. 불법파견을 인정하지 않는 신규채용이란 기만에 지나지 않습니다. 다가오는 12월 7일 불법파견 분쇄를 위한 양재동 현대 기아차 본사 집회는 동지들의 8년 울분이 조금이나마 해소되는 성과를 내왔으면 합니다. 이곳 철탑위에서 힘 닿는데 까지 응원하겠습니다.
최병승, 천의봉 동지를 올려 보내고 불철주야 투쟁하고 계신 현대차 비정규 3지회 동지들! 힘내시기 바랍니다. 그럼, 이만 줄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현대차, 쌍용차는 모든 비정규직 노동자를 즉각 정규직화 하라” “민주노조 사수! 정리해고 분쇄! 비정규직 철폐!!”

2012년 11월 27일 평택 송전탑농성 8일째 쌍용차 비정규직지회 수석부지회장 복기성 드림.

레디앙

2012년 11월 15일 목요일

15만 볼트 송전탑 위에서 ‘정몽구 회장’을 찾는 이유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2-11-14일자 기사 '15만 볼트 송전탑 위에서 ‘정몽구 회장’을 찾는 이유'를 퍼왔습니다.
[미디어 초대석] 이호 금속노조 미조직비정규부장

“죽기를 각오하고 끝까지 투쟁하겠습니다. 우리들이 요구한 것은 단지 법을 지키라는 것이었습니다. 불법파견 판정 이후 8년, 대법원 판결 2년, 그동안 현대차는 그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정당한 요구를 들고 투쟁하는 비정규노동자들에게 폭력과 징계, 고소고발, 손배·가압류 등 탄압으로 일관하였습니다. 조합원 한명이 목숨을 끊었습니다. 두 명의 조합원이 스스로 온몸에 시너를 붓고 불을 당겼습니다. 20여명의 조합원이 구속을 당했고 수많은 조합원이 해고를 당했습니다. (중략) 더 이상 물러 설 곳이 없습니다. 더 이상 비정규직으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불법파견 인정! 신규채용 중단! 정몽구 구속의 각오로 고공농성을 이어갈 것입니다.”
현대차 불법파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병승·천의봉 조합원이 10월17일 밤 현대자동차 중문 앞 송전탑 고공농성을 결행하며 쓴 글이다. 비정규직노동자 대한 차별과 설움, 탄압과 억압, 그리고 10년 비정규직 삶에 대한 트라우마를 확인하게 된다.
세계 자동차업계 5위의 현대자동차는 직접생산공정라인에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함께 투입해 왔다. 제조업체에 파견노동자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파견법을 위반한 것이다. ‘도급이냐 파견이냐’라는 지리한 법정공방 끝에 대법원은 2012년 2월23일, 현대자동차의 ‘불법파견’이라고 최종판결을 내렸다. 8년간의 법적 다툼에 종지부를 찍은 것이다.  
그러나 대법판결에 따라 불법파견-정규직 전환을 이행하라는 정당한 요구와는 달리 현대자동차는 불법파견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사회적·법적 책임을 외면하고 법위에 군림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대법판결은 존중한다면서도 ‘인정’은 못하겠다고 버티고 있다. 그렇게 나온 것이 기만적인 3000명 신규채용안이다. 이는 ‘정규직 전환’은 죽어도 못하겠다는 것으로 대법판결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법 위에 군림하는 현대자동차를 국민들이 용인할 수 있을까?

금속노조 현대자동차 비정규직지회의 최병승, 천의봉 조합원이 지난 17일 오후 9시부터 현대차 울산공장의 송전철탑 20m 지점에 밧줄로 몸을 묶고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 이들은 ‘불법파견 인정-정규직 전환 실시, 정몽구 회장 구속’을 요구하고 있다. ‘비정규직 없는 세상만들기 등의 단체는 오는 26일 울산 현대차공장에 집결해 연대투쟁할 것을 예고했다. ©연합뉴스

이러한 현대자동차의 행태에는 정부와 검찰의 수수방관도 한 몫하고 있다. 2004년 노동부는 불법파견 진정 사건에 대해 현대차 울산·아산·전주공장 9234개 공정을 불법파견으로 인정했다. 그러나 검찰은 2006년 현대차에 대해서 ‘불법파견 혐의 없음’, ‘불기소 처분’했다. 2010년 7월 22일 대법판결을 계기로 2010년 9월 금속노조는 재차 정몽구 회장 등을 상대로 고소·고발을 진행하고 불법 하청업체에 대한 폐쇄 진정을 접수한 바 있다. 그리고 벌써 2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 누구도 불법파견으로 처벌받았다는 소식도 없다.
불법에 항의해 싸웠던 노동자에게는 구속영장이 청구되고 불법을 자행한 현대자동차는 그 어떤 처벌도 받지 않는 현실이다. 이 기막힌 현실 앞에 법치와 정의구현은 누구를 위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현대자동차 입장을 대변하는 보수언론의 공세도 만만치 않다. 보수언론은 노동자 내부의 분열을 부추기는 태도를 취하면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과 전혀 관계가 없는 연봉문제를 거론하며 본질을 호도하고 있다.
올 대선의 최대 의제는 경제민주화와 복지다. 성장 중심·신자유주의 경제정책 등으로 심화된 사회·경제적 양극화에 대한 해결책이 시급하다는 시대정신의 반영이다. 그러나 대선후보들이 현안인 비정규직 대책, 노동시간 단축, 최저임금 확대 등을 공히 약속하고는 있지만 궁극적 해법보다는 단기적 대증요법에 치중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과거 독재정권에 항거해 정치민주화를 이루었던 역사가 있었다면, 경제민주화는 바로 900만 비정규직노동자들에 대한 차별과 소외, 객체화의 구조적 해결이다. 이런 의미에서 현대자동차 불법파견 정규직 전환문제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제조업뿐 아니라 공공, 금융, 병원, 서비스산업에서 용역, 외주, 도급의 다양한 고용형태로 종사하는 비정규노동자가 있다. 2~3차 하청까지 100만명으로 추정되는 사내하청노동자들이 위장·불법적 도급으로 고용되어 착취의 사슬에 얽혀있는 실정이다. 현대차 불법파견 문제는 하청인생, 차별인생의 소외와 박탈감을 해소하는데 커다란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경제민주화와 복지는 다른데 있지 않다. 바로 현대자동차 불법파견 인정을 외치는 철탑농성자의 피맺힌 절규에 있다. 사내하청문제는 현대자동차만의 문제가 아니라 산업계 전반에 미치는 사항이기 때문이다. 

이호·금속노조 미조직비정규부장 | media@mediatoday.co.kr  

2012년 10월 28일 일요일

34만 볼트 '벼락' 맞은 할머니..."개 끌듯 끌고와"


이글은 오마이뉴스 2012-10-27일자 기사 '34만 볼트 '벼락' 맞은 할머니..."개 끌듯 끌고와"'를 퍼왔습니다.
[기획- 원전을 버리자③] 송전탑 반대 시위 벌이는 청도군 삼평 1리

대선을 맞아 (오마이뉴스)와 녹색당은 원자력 발전 등 국가 에너지 정책 전환을 화두로 던집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세계적으로 원전 찬반 논란이 뜨겁습니다. 한국에서도 고리와 월성 원전에서 고장사고가 자주 발생해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기획 '원전을 버리자'를 통해 안전하면서도 지속가능한 에너지 정책을 함께 고민하고자 합니다. 원전 문제는 우리 일상, 그리고 미래와 관련이 깊습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제안 부탁드립니다. [편집자말]

▲ 경북 청도 삼평 1리 앞산에 세운 송전탑. ⓒ 김병기

정둣세 할머니(88)는 졸지에 34만5천 볼트 '벼락'을 맞았다. 20세 때 경북 청도군 삼평1리로 시집와서 한평생 농사만 지어온 그는 발을 동동 굴렀다. 주먹을 쥐고 허공으로 내뻗지만 손목은 초등학생처럼 가냘프다. 그래서일까? 황토 빛 주름살이 자글자글한 눈가에는 결기인지 서글픔인지 모를 물기가 잠시 내비쳤다 사라졌다. 

"나는 이거 붙들어놓고 죽을 거다. 우리 땅, 진짜로 지킬 거다. 지킬 수 있다. 우린 지켜야 한다."

할머니의 손짓발짓이 절규처럼 느껴진 건 불과 50m 앞에 세워질지도 모를 110m 송전탑과의 싸움 때문이다. 신고리 원전에서 생산할 전력을 대구 도심으로 공급하려고 세우고 있는 북경남 노선 송전탑 건설을 결사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분신사태까지 불러온 경남 밀양의 송전탑과 연결되는 노선이다.   

송전탑에 맞선 '할머니 부대'

정 할머니는 혼자가 아니었다. 그의 옆에서 "맞다" "우리도 지킬 거다"라고 추임새를 넣는 열 명의 할머니들이 있었다. 그들은 농산물을 저장할 때 쓰는 녹색 플라스틱 박스 위에 앉아서 기자와 마주한 정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데 평균 연령을 물어보니 75세다. 평생 농사만 짓던 사람들이다. 정 할머니의 맨손 전투력과 비교할 때 오십보백보다. 

▲ 송전탑 설치를 반대하는 경북 청도군 각북면 삼평1리 주민들과 주민들을 응원하러 온 청년녹색당 당원들이 사진을 찍었다. ⓒ 조정훈

이들은 경북 청도군 각북면 삼평1리를 지나는 902번 국도변에 농성천막을 쳤다. 2-3명의 할머니들이 번갈아가면서 불침번을 선다. 한 달 전부터 릴레이 단식도 벌인다.   

"한 끼 굶는 거? 그거 식은 죽 먹기지. 우린 밥 먹듯이 굶어.(웃음)"
 

삼평1리 할머니들을 만난 건 지난 19일 점심때다. 서울 양재역에서 기자를 태운 녹색당의 승용차는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추풍령을 넘었다. 10여m 높이의 전봇대가 차창 밖에서 무성영화 필름 돌리듯 지나갔다. 전봇대는 경부고속도로와 반대방향으로 치달리면서 울긋불긋한 가을산 단풍을 가로막았다.  

경북 김천쪽 도심을 통과하는 구간에 이르니 전봇대가 촘촘해졌다. 구미, 칠곡 구간에 접어들자 키가 훌쩍 큰 '괴물' 송전탑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먼 산을 바라보니 송전탑이 도깨비 뿔처럼 산 속에서 불쑥불쑥 고개를 내밀었다.   고속도로를 질주하면서 수없이 목격한 송전탑. 한 개의 괴물이 먹어치우는 산림 면적은 200여 평이다. 전국에 박힌 송전탑은 국가 기반시설이라는 이유로 그 숫자조차 모른다. 다만 2001년 이후에 건설하는 규모만 알 수 있다. 당시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르면 한전은 전국에 41개의 송전선로 사업을 추진했다. 그 길이를 모두 합치면 645㎞이다. 송전탑 개수만 1600개다. 얼마나 많은 산을 허물어야 할까? 이 괴물은 사람의 삶도 송두리째 삼키고 있었다. 

마사다 전투... "완전히 내 몸을 뿌셔버렸어"

▲ 삼평1리 주민인 이차연 할머니가 송전탑 건설에 반대하다 용역들에게 끌려나왔던 당시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 조정훈

5시간여를 달려 찾아간 삼평 1리. 마을 입구에 들어서니 아직 전선줄을 걸치지 않은 흉물스러운 송전탑 세 개가 도로 양쪽에 버티고 있다. 송전탑 아래를 보니 붉은색 황토 흙 맨살이 드러났다. 승용차는 도로 옆에 쳐진 허름한 천막 앞에 섰다. 

마중 나온 할머니들은 활짝 웃었다. 그런데 왕복 2차선 도로 앞쪽 논바닥에 널브러진 굴착기는 치열했던 전투를 말해줬다. 모세의 기적처럼 논바닥은 4-5m 넓이의 흙길로 두 동강 났다. 양쪽으로 야물게 익은 벼가 고개를 숙이고 있다. 송전탑을 건설하려고 강제 수용한 논이다. 시공사는 지난 7월 3일 아침에 굴착기를 몰고 벼를 짓밟으면서 기습작전을 벌였다.

    "바로 저기가 '마사다 전투'가 벌어지는 곳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로마에 항전해 최후까지 싸우다가……."

▲ 송전탑을 설치하기 위해 산을 파헤쳤다. 이곳에 345KV용 송전탑이 들어설 예정이다. 삼평1리 주민들은 송전탑 설치를 강력히 반대한다. ⓒ 조정훈

이곳 주민인 김미화 목사(47)는 손가락으로 송전탑 23호기 공사장을 가리켰다. 산사태를 막으려고 파란색 비닐 포장을 군데군데 덮어 놔서 볼썽사납다. 공사장에 함께 올라간 이차연 할머니(75)는 아직도 분이 풀리지 않았다.  

"그날 난 여기부터 저 아래 논바닥까지 질질 끌려 내려왔어. 개 끌듯 끌고 내려왔어. 얼마나 분한지. 완전히 내 몸을 뿌셔버렸어."

어림잡아 50m정도다. 가파른 산비탈이다. 지난 7월 5일 시공사인 (주)동부건설과 서광이엔씨 용역 50여명이 연좌농성을 하던 할머니 10여 명을 포위해 무력 진압했던 상황을 말하는 것이다. 그는 실신했고, 뇌출혈을 일으켜 단기기억상실증에 걸렸다. 

"다섯 명이고 여섯 명이고 우리 몸을 노끈으로 묶어서 그 놈들이 다시는 끌고 내려오지 못하도록 할 거여. 우린 굴착기 밑에도 들어갔어. 죽기살기로 여길 지켜야지."

"세상에! 무덤까지 파헤쳤다"

공사장 바로 밑에서 벼농사를 하고 있는 배성우(66)씨도 손가락으로 한 귀퉁이를 가리키며 거들었다.    

▲ 삼평1리 배성우씨가 훼손된 산소 위치를 가리키며 설명하고 있다. ⓒ 조정훈

"저 놈들은 여기 있던 무덤까지 파헤쳤어. 세상에! 추석 전에 3명의 사람들이 벌초하러 왔다가 산소를 못 찾고 돌아갔는데 확인해보니 남산 3리에 사는 최아무개 장모님 산소야. 그냥 뭉개버렸어." 

이와 관련 한전 대구지사 황성하 차장은 와의 전화통화에서 다른 말을 했다. "묘지 주인이 위치를 잘못알고 있다"는 것. 그런데 최아무개씨의 처초카인 도용훈씨는 "지난 추석 전에 벌초하러 왔다가 1시간동안 헤매고 돌아갔다"면서 "20년동안 벌초를 다녔는 데 산소 위치를 모른다는 게 말이 되냐"고 말했다.    

배씨는 이 동네에서 선하지(송전선이 지나가는 땅의 좌우 3m 지역) 보상 대상인 3명 중의 한명이기도 하다. 시공사 측은 그에게 300만원을 제시했다고 한다. 나중에는 700만원을 더 얹어주겠다고 회유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팔 수도 없고 농사를 지을 수도 없는 땅이 되었다"면서 "돈도 필요 없으니 자식들이 퇴직하면 이곳에 와서 농사를 지을 수 있게 해 달라"고 말했다. 

할머니들과 용역들의 전투가 벌어지는 삼평1리는 이미 7기의 송전탑으로 포위됐다. 뒷산의 23호기가 세워지면 앞산의 22호기에 초고압전선을 연결해 마을을 가로지를 수 있다. 송전선은 이 마을의 논과 밭, 과수원을 지나며, 심지어 30~40m 떨어진 곳에 가정집도 있다. 주민들의 반대가 극심한 이유이다.   

그래서 이곳은 한전이 청도군에 설치하려 했던 41개 송전탑 중 유일하게 공사를 하지 못한 구간이다. 한전으로 볼 때 여기를 함락하지 못하면 전선까지 얹은 일부 송전탑을 철거하고 송전선로도 변경해야 한다. 주민들은 고압선 700m를 땅 속으로 묻어달라고도 호소하기도 했다. 하지만 한전 대구지사 황 차장은 "하천과 논밭 밑을 터널식으로 뚫어야 하는 데 비용이 많이 들기도 하지만 지형적인 여건상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18장의 주민의견서 중 10장이 위조"         삼평1리에는 45가구가 산다. 이중 15가구가 송전탑 건설 반대 운동에 적극 뛰어들었다. 송전선로에서 가까운 지역의 사람들이다. 한전 측이 '떡고물'(1억7천만 원의 지역 지원 사업비)을 내밀자 사람들이 떨어져 나갔다. 김춘화(66)씨는 "한전이 돈으로 주민들을 이간질 하고 있다"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송전탑은 지역 공동체도 허물고 있다. 

이 마을 주민 13명은 지난 7월20일 (주)서광이엔씨 현장 소장으로부터 '통고서'를 받았다. '적법한 절차'에 따라 공사를 하는 데 주민들이 방해해서 작업이 늦어졌고 2억 9700만 원의 경제적 손실을 입었다는 것. 조만간 손해배상 등 구상권을 청구할 예정이라는 경고장이다. 정둣세 할머니는 "마을회관에서 한번 (통고서를) 쳐다보고 버렸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현장소장의 말처럼 이 사업은 적절한 절차를 거쳤을까? 한전 측은 2006년 1월에 주민설명회를 했고, 18장의 '주민의견서'를 받았다고 주장한다. 의견 수렴을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당시 열린 주민설명회에는 이 마을의 유지 3-5명 정도만 참석했다. 다른 주민들은 주민설명회가 열리는 것도 몰랐다. 그나마 18장의 주민 의견서도 논란거리다. 

"각북면에 15개 마을이 있는 데 다른 마을에서 낸 의견서는 없고 우리 동네에서만 18개의 의견서가 들어갔다. 이중 10장은 글씨체가 똑같아서 파악을 해보니 마을회관에 비치된 주민들의 도장을 도용한 것이었다. 이 사실은 당시 이장도 고백했다. 또 4장은 2009년에 공청회를 한다고 해서 동의한 주민들의 의견서인데 이를 2006년에 제출한 것으로 위조했다." (이은주 마을 부녀회장) 

주민들은 당시 의견서를 제출한 전 이장을 지난해 사문서 위조 혐의로 고발했다. 대구검찰청은 증거불충분으로 '혐의 없음'(공소권 없음) 처분을 했다. 고소인들은 대구고검에 항고했지만 기각했다. 그런데 대구검찰청이 불기소처분을 한 이유는 이 의견서의 위조 여부와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2006년 3월에 작성된 것이어서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것이었다. 

주민들은 또 당시 송전선로 도면 등을 주민들에게 보여줘야 하는 데 이 절차를 생략한 3명의 공무원을 직무유기 혐의로 고발했다. 이 역시도 검찰은 불기소 처분했다. '업무가 미숙해서 조치사항을 이행하지 않았을 뿐 고의적으로 업무를 포기, 방임한 사실을 인정할만한 증거가 없다'는 것이다. 주민들이 송선선로 결정의 원인무효를 주장하고, 검찰 처분을 불신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주민들은 이 건에 대해 재정신청을 했다. 

괴물 송전탑을 만든 건 '무소불위' 전원개발촉진법

▲ 수도권-원전단지 양극화와 765KV 초고압 송전 ⓒ 녹색당+

삼평1리에 난무하는 폭력과 고발, 회유와 경고장. 평화롭던 마을이 이처럼 극한으로 치닫는 직접적인 원인은 '전원개발촉진법' 때문이다. 이 법에 따르면 송-변전시설을 건설할 때 지식경제부의 허가만 얻으면 개인 토지를 강제 수용할 수 있다. 또 전기사업자가 산업자원부 장관의 승인만 받으면 환경법, 산림법 등 19개의 관련 법률들이 규정하는 허가 절차를 밟은 것으로 인정한다. 해당 지자체와는 상의 없이 송전탑을 세울 수 있다. 무소불위의 법인 셈이다. 

그래서 국민권익위원회도 지난해 12월 고압 송전선로가 지나면서 생기는 분쟁과 민원을 해결하려고 지식경제부와 국토해양부에 개선안을 권고했다. 송전선로 경과지역을 선정할 때 지방자치단체장도 협의 당사자로 인정하고, 지역 주민의 의견을 적극 반영하라는 것이다. 또 입지선정자문위원회를 구성하고 선하지 보상의 범위 등을 차등화하라고 제안했다. 

하지만 근본 처방은 아니다. 대형 원자력과 화력발전소 중심의 전기 공급 체계를 바꿔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분신사태까지 치달았던 밀양 사태 등 송전탑 싸움의 악순환이 반복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하승수 녹색당+공동운영위원장은 "신고리 원전에서 전기를 끌어가려고 청도와 밀양에 송전탑을 세우는 것"이라면서 "송전탑을 반대하던 주민들도 나중에는 원전 반대 입장으로 돌아서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재생 에너지 산업의 발전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전력 소비가 증가한다는 전제만으로 신고리 원전 3-4호기 공사가 진행 중이고, 이후에 5-6호기도 추가 건설할 계획을 하고 있다"면서 "추가 원전 공사를 중단하면 송전탑 문제는 저절로 풀린다"고 말했다.

대낮같은 밤에 떠오른 얼굴

청도 송전탑 취재를 마치고 경부고속도를 타고 밤 11시경 서울 시내로 진입했다. 졸음에 취했다가 깨어났더니, 차창 밖은 대낮같은 밤. 곳곳에서 휘황찬란한 네온사인이 번쩍였다. 한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도 형형색색으로 빛나고 있다. 청도 할머니들은 천막 속에서 불침번을 서려고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10년 전 삼평1리로 귀농해서 복숭아 농사를 짓고 있는 이은주 부녀회장의 말이 맴돌았다.     

"9살 난 딸이 얼마 전에 느닷없이 '난 포클레인 기사가 될 테야. 그래서 철탑을 허물어버릴거야'라고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조그만 게 얼마나 안다고……. 그런데 요즘에는 '나는 철탑을 갈아먹는 로봇을 만들 거야'라고 말해요. 나 원 참……."
 
할매 힘내요!

▲ 녹색당+가 청도 할머니들에게 전달한 손엽서 ⓒ 김병기

이날 녹색당+은 청도 삼평1리에 도착하자마자 조촐한 행사를 열었다. 천예지(25) 청년당원의 제안으로 만든 '응원 손엽서' 전달식. 녹색당 재창당 행사에 참석한 당원들과 일부 대학생들이 만든 50여장의 응원문구를 예쁘게 코팅해서 할머니들에게 전달했다. 

'할매 힘내요' '정작 전기는 저희가 다 쓰는 데 청도 주민 여러분들께서 이렇게 고생을 하셔야 되는군요... 죄송합니다. 엽서 나부랭이 한 장으로 힘내시란 말밖에 못 드려서 역시 죄송합니다. 힘내십시오!'

천씨는 "얼마 전에 밀양에 갔다가 청도를 방문한 적이 있는 데 자꾸 할머니들이 눈에 밟혀서 당원과 대학생들을 상대로 손엽서를 만들자고 제안했고 1차로 수거한 50여장을 가져왔다"면서 "제 고향 명물인 삼천포 쥐포 한 봉지도 가져왔다"고 말했다. 

잠시 현장 취재를 마치고 천막으로 돌아갔더니 그 사이에 고이지선 녹색당+ 탈핵탈토건본부 활동가, 이안홍빈 청년위원장 등이 달라붙어서 50여장의 손엽서를 가을운동회 만국기처럼 천막 주변에 주렁주렁 매달았다. 힘없는 할머니들만 '괴물' 송전탑에 맞서고 있는 게 아니었다.  

김병기(minifat)
조정훈(tghome)

2012년 10월 12일 금요일

"74세 노인의 분신 사진 속에 누워있는 건…"


이글은 프레시안 2012-10-12일자 기사 '"74세 노인의 분신 사진 속에 누워있는 건…"'를 퍼왔습니다.
[2012 생명평화대행진·③] 밀양 송전탑 현장에서

 
▲ 화악산자락. ⓒ이계삼

아름다운 산이다. 밀양시 부북면 평밭마을에서 바라본 화악산자락이다. 산을 바라보노라면 마음에 옅은 평화가 인다. 이 산자락으로 76만5천볼트 고압 송전탑이 지나가게 된다. 24시간 내내 끼익끼익하는 기계음이 울리고, 신고리핵발전소에서 만들어진 거대한 전류를 실어나른다. 이 산 아래는 '위양'이라는 아름다운 마을이 있고, 이 산 옆으로 속세를 떠나 병을 고치고, 마음의 평화를 얻고자 하는 노인들이 사는 '평밭'이라는 마을이 있다. 위양과 평밭을 가로지르는 40층 높이의 초고압 송전탑이 냉방병을 걱정해야 하는 한여름 에어컨과 반팔 티셔츠를 입고 다니는 한겨울 히터와 밤새 휘황한 네온사인과 번쩍이는 도시의 육체를 지탱할 혈액을 실어나른다.

 
▲ 128번 송전탑 공사현장 굴삭기. ⓒ이계삼

주민들이 막아서자 결국 놓고 간 128번 송전탑 공사 현장의 굴삭기다. 개발과 파괴를 상징하는 하나의 기계, 저 굴삭기에 들어가는 기름 마지막 한방울이 떨어지는 날, 이 파괴의 행렬이 멈추어질 것이다. 헬기가 산 정상으로 이 굴삭기를 떨어뜨려준다. 적진 깊숙이 침투하는 특전요원처럼 지상으로 내려온 굴삭기는 산을 파헤치고, 지하 15미터 암반층까지 거대한 구멍을 뚫는다. 그리고 거기에 쇳덩이로 조립된 둥근 거푸집을 쑤셔박고 그 안으로 헬기가 콘크리트를 들이붓는다. 그 다릿발 위로 거대한 쇠기둥들을 조립해서 40층 높이의 탑을 쌓고, 거기 다시 헬기가 초고압전선을 걸어 이어 붙인다.

그러나, 우라늄이 모두 없어질 60년 뒤, 이 구조물들은 어떻게 될까. 다시 헬기가 쇠기둥들을 해체하고, 다시 굴삭기를 떨어뜨려 15m 지하까지 교각들을 부숴 해체하고, 콘크리트더미를 치워 나르고, 그 자리에 다시 나무를 심어 원래 자리로 되돌려줄까. 송전탑 건설 공사 계획 속에 60년 뒤의 해체 계획은 들어있을까. 아닐 것 같다. 저 굴삭기처럼 계획도 성찰도 없는 '순간을 살아가는' 단세포적 무지막지함 말고는 다른 것은 없는 것 같다.

ⓒ이계삼

나의 2012년은 이 사진으로부터 시작한다. 1월 16일, 산외면 보라마을회관 앞 제방에서 휘발유를 끼얹고 제 몸에 불을 붙인 일흔 네 살의 할아버지. 분신이라니, 그것도 74세의 노인이…. 이 참혹한 사건이 바로 이곳 내가 사는 곳에서 벌어졌다는 엄중함이 나를 이곳으로 불렀다. 어르신은 당신의 몸을 불사르면서 나와 같은 청년들을 이 싸움으로 초대한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고 있다.

이 어르신의 주검에는 많은 것들이 뒤엉켜있다. 한평생 경찰서 근처에도 가보지 못한 어른들이 수없이 사진을 찍히고 고소와 고발을 당하고 아들뻘 수사관들에게 취조당해야 하는 치욕, 일생토록 지켜온 농토 주인의 지위에서 하루 아침에 내쫓겨 '채무인'으로 등재된 법원 계고장을 받아야 하는 황당함, 손자뻘 용역들과 맞서야 하는 나날, 그들에게 들었던 숱한 욕설, 그러나 세상 그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외로움까지. 이 사진을 보라. 여기에 이 시대가 드러누워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밀양은 보수적인 곳이다. 60대~80대 노인들이 도로를 점거하고 가두 행진을 했다. 저들의 손에 들려진 '핵발전소 반대', '살인마 한전', '이치우 열사'라는 구호는 어쩌면 해방 이후 밀양이라는 극보수의 도시에서는 처음 볼 수 있었던 것이리라. 그리고 그 보수성과 낯설음이 지금도 우리의 투쟁을 더욱 전면적으로 나아가게 하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음을 느낀다. 이길 수 있을까, 국가권력과 거대한 공기업을 어떻게 넘어설 수 있겠나, 하는 회의가 이 싸움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보수성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우리 삶의 오래된 관성, 국가의 위력과 일방독주를 숨죽여 지켜보아야 했던 우리의 오랜 역사가 각인시킨 패배감이 함께 엎드려 있는 것이다.

ⓒ이계삼

이 싸움의 중요한 분기점이 된 사건으로 3월 17일~18일에 걸쳐 있었던 탈핵희망버스행사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3월 7일, 유족의 일부가 장례에 합의하게 되어 장례가 치러졌다. 주민들끼리의 충돌을 우려한 수십명 경찰 병력이 여나믄명의 가족 행렬을 뒤따르는 기이한 모습이었다. '경찰장(葬)'이라고 누군가가 쓸쓸하게 말했다. 이렇게 이치우 어르신을 보내면서 눈물이 삼켜졌다. 제대로 애도하지도 못한 채, 이 죽음의 의미를 한번 새겨보지도 못한 채, 볼썽사나운 다툼만을 남기고서 장례가 치러졌다.

그리고 정말로 우리는 연대가 절실했다. 환경운동 진영의 주요한 단체들로부터 '탈핵희망버스'는 성공하기 힘들 것이라는 진단을 받았지만, 성공할지 여부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저 우리는 연대해야 했으므로. 그렇게 해서 준비된 행사였다. 다행히 많은 사람들이 왔고, 그들을 대접하기 위해 우리 지역의 시민·사회단체들이 모든 역량을 쏟아부었다.

감동적인 1박2일이었다. 영남루 앞 강변의 이치우 어르신 추모문화제에서 울고 웃으며, 마지막에 덩실덩실 어울리며 술과 음식을 나누던 밤을 잊을 수 없다. 송전탑 벌목지에 나무를 심고 할머니들의 고통스러운 증언을 들으며 눈물을 흘리던 시간을 또한 잊을 수 없다. 우리가 온 밀양 시내를 다니며 붙였던 전단지, 포스터, 그리고 그날 행사를 위해 우리가 부쳤던 전과 끓어낸 어묵탕, 커피와 대추차, 희망술독이라는 막걸리단지, 모두 우리 너른마당 식구들이 만들어낸 것이다.

어느 참가자는 지금까지 다녀본 그 어떤 행사, 집회보다 감동적이었고, 잘 준비된 행사였다고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그날 참여한 사람들은 정말로 연대의 전령사가 되어 다음 또 그 다음 밀양을 방문했다. 자신이 소속된 단체의 회원들, 가까운 친구들을 데리고서. 그렇게 해서 크고 작은 수많은 후속 행사들이 이어졌고 밀양은 조금씩 알려지게 되었다.

ⓒ이계삼

6월 7일, 한전의 공사재개를 규탄하는 집회에서 피켓을 들고 있는 여자분은 상동면의 은희씨다. 나는 종인이엄마라고 부른다. 내가 가르친 종인이의 어머니다. 의협심이 남다르고, 다른 아이들은 마다하는 입바른 소리를 할 줄 아는 종인이를 남달리 보았는데, 이 싸움에서 그 부모님을 알게 되었고, 종인이의 의협심과 바른 성정이 아이의 부모님으로부터 유래된 것임을 알게 되었다. 부산에서 남부럽지 않게 살다가 밀양으로 전원생활을 위해 들어왔다가 그들이 사는 여수마을 바로 코앞으로 송전탑이 지나가게 되어 이 싸움에 함께 하게 되었다.

의협심 하나로 시작했다가 이제는 발을 너무 깊이 담그게 되어 빠져나갈 수도 없다고 푸념하신다. 밀양시청앞에서 열흘 동안 단식을 하기도 했고, 신고리핵발전소 5~6호기 주민설명공청회에서는 막아서는 용역들과 대치하다 대리석 바닥에 머리를 크게 부딪쳐 쓰러지고 말았다.

현장에서 119구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가는 시간은 황망했다. 은희씨의 의식이 돌아올 때까지 곁에 있던 내 가슴이 얼마나 졸아들었는지는 상상에 맡긴다. 은희 씨는 깨어나는 순간, 눈물부터 흘렸다. 소리 없이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 내렸다. 그리고, 그 다음날 오전까지 하루 내내 말씀이 없으셨다.

그날 공권력이 보여준 말할 수 없이 비겁한 태도, 공청회장 진입을 막아서던 지역 청년회를 보호하고, 그들의 완력행사에 대해 항의하는 우리들에게는 일언반구도 없이 묵인하던 그들의 행태, 청년들의 폭행에 항의하자 '우리는 모르는 사람이다'며 발뺌하던 한수원 관계자들, 결국 온갖 욕설과 폭력 속에서 진입을 저지당했다가 끝내 쓰러지고 말았을 때, 그때의 육체적 고통(온 몸이 멍투성이였다)과 실신해서 깨어났을 때부터 다가온 인간적인 모멸감과 서글픔이 은희씨의 묵언과 소리없이 흐르는 눈물에 담겨 있었다.

ⓒ이계삼

이런 글을 읽으며 양심의 가책을 느낄 정치인, 관료들이 있을까. '이 나라가 이렇게 고통을 줍니까.' 이 말에 담긴 절망과 슬픔을 저들은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비뚤비뚤 흔들리는 글씨체로 쓰여진 저 말, '오직 이대로 살다가 죽을 수 있도록 해 달라'는 절규를 하느님의 말씀보다 무서운 '사람의 말'로 알아들을 귀가 있을까.

나는 처음 이 탄원서를 보았을 때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농민의 마음이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반 일리치라는 사상가는 전세계 토착 민중들의 삶에 대한 태도를 집약하는 하나의 표현으로 '지금 이대로'를 들었다. 이것은 근대적 진보의 문명관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성장과 진보의 근대적 신화는 '지금 이대로 가면 우리는 뒤처지고 죽는다, 더 나은 미래를 향해 달려가자'는 언술로써 세상 천지를 지금껏 엉망진창으로 개벽해왔다.

그러나, 저 가난한 할아버지 할머니, 겨우 밭에서 허리 굽혀 푸성귀를 가꿀 정도의 육체력만 남은 저 어르신들이 바라는 것은 정말로 '지금 이대로' 살도록 해달라는 것이다. '욕심 없다'는 저 말은 또 얼마나 묵직하게 들리는가. 송전탑이 들어서는 것이 '조상님에게 죄가 되는 것 같아 죽고 싶다'는 이 말을 저들은 이해할 수 있을까. 조상님이라니. 조상이 밥먹여주나, 웬 조상타령? 우리의 삶이 이 땅을 매개로 저 조상들, 조상의 조상들로부터 우리의 자식, 자식의 자식으로 이어진다는 연속성의 감각은 얼마나 황폐해져버린 것일까.

물려받은 땅을 더럽히게 되어 조상님에게 죄가 되어 죽고 싶다는 노파의 이야기를 알아들을 귀는 이 시대에는 없다. 이 허욕으로 가득 찬, 온 천지가 사기 도박판으로 변해버린 나라에서는 말이다.

ⓒ이계삼

이금자 할머니. 여든 한 살의 소녀같은 할머니다. 어느 자리든 150cm가 될까말까한 자그마한 체구, 30kg을 겨우 넘을 것 같은 가녀린 몸으로 이 싸움의 모든 자리에 함께 한다. 강원도 삼척, 경북 영덕으로 함께 했던 탈핵희망버스행사 1박2일, 국회 증언대회에서는 '너무 억울하고 분해서 오기가 난다, 이렇게 까지 했는데도 안 되면 어쩌란 말이냐, 나도 죽으라는 말이냐'고 절규하면서 그 자리에 함께한 문재인 민주당 예비후보를 울리신 분이다.

국회에서 내려오는 버스 안에서 내 옆자리에 앉아 내 손을 쥐며, '이렇게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은 어머니 아버지만 아니라 그 선대에서부터 기도를 많이 해서 그런 거요, 그래서 그 자식이 이렇게 좋은 일을 하는 거요'하며 나를 위로해주셨던 분이다.

여든 한 살 이금자 할머니는 잔명이 얼마 남지 않은 진단을 받았다. 몸을 운신조차 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을 때, 이곳저곳 요양지를 보러 다니다 화악산 자락 평밭마을을 알게 되었다. 수려한 산세와 맑은 시냇물, 속세와 단절된 해발 300미터의 작은 마을에 반한 할머니는 거처를 평밭마을로 옮겼고, 기적처럼 몸이 나아 행복한 여생을 즐기고 있었다.

그 마을 코앞으로 송전탑이 들어서게 된 것이다. 황혼도, 안개낀 새벽도, 구름에 실려가는 한낮의 산자락도 이제 40층 높이의 송전탑을 끼고 바라보게 되었다. 어떻게 되찾은 삶의 평화인데, 다시 빼앗겨야 한다는 말인가. 지난 1년간 마을 노인들과 함께 인부들에게 말할 수 없는 모욕을 당하며 아픈 무릎을 끌고 벌목을 저지하기 위해 산자락을 기어다녔다. 또다시 한전이 중장비를 앞장세워 밀고 들어온다면 당신은 이제 죽을 것이라며, 품에 유서를 넣고 다닌다.

힘든 계절을 지났다. 지난 여름, 폭염 속에서 세 사람이 쓰러졌다. 일흔 세 살 엄복이 할머니는 혈압과 당뇨가 있는 몸으로 37도의 폭염이 내리쬐는 산길을 올라 500미터 산정상에서 인부들과 대치하다 쓰러졌다. 예순 넷 양윤기 어르신은 산을 오르다 잠시 정신을 잃고 쓰러져 바위위로 굴러 떨어졌다. 뾰족한 바위에 등판을 부딪쳤는데, 배낭이 없었더라면 정말 아찔한 상황이 펼쳐질 뻔했다. 쉰 일곱 송루시아님은 헬기를 막기 위해 퇴약볕에 헬기 아래에 들어가 계시다가 쓰러졌다.

지금 우리는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하고 있다. 유지되고 있는 농성장만 무려 아홉곳. 주민들은 이리뛰고 저리뛰고 이 집회 저 행사, 이 손님 저 손님, 이 기자 저 정치인들을안내하기 위해 하루가 모자라도록 뛰고 또 뛴다. 한전은 아마도 9월 본격적인 대선 국면으로 접어들어가기 전에, 이 싸움에 승기를 잡겠다는 듯 주민들과 합의도 되지 않은 곳에 신고리핵발전소 3호기 완공 일정이 급박하다는 이유로 헬기와 중장비를 동원한 공사를 밀어붙인다.

ⓒ이계삼

주민 조직력이 느슨한 곳에는 어떻게 된 일인지 주민들간의 분쟁이 가시덤불처럼 자라오른다. 민주당에서 765송전탑 진상조사 특위가 꾸려졌지만, 한 차례 현장 방문과 한 차례 전체 회의만 했을 뿐, 별다른 움직임은 없다. 18대 국회에서 진상조사단이 꾸려졌지만, 총선이 바로 코앞이라는 이유로 의원들이 단 한번도 밀양을 방문하지 않았다. 그래서 A4 한 장짜리 문건조차 남기지 않고 주저앉았다. 이제, 19대 국회가 제 소임을 다하라는 것, 우리의 주장은 이것 뿐이다.

내일의 걱정은 내일에 맡겨라. 많은 이들이 이 싸움의 앞으로 어떻게 될지를 묻는다. 나는 정말 모르겠다고 답한다. 비관적이지 않냐고 묻는다. 나는 잘 모르겠다고 답한다. 다만, 하루 하루 주어진 일정들, 주어진 싸움에서 최선을 다할 뿐이다. 다만, 이 아름다운 산, 거기에 깃든 노년의평화가 지켜지기를, 배떼기로 기어가는 이 황망한 세상에 진실과 정의가 소박한 나래를 펼 수 있기를 소망할 따름이다. 나는, 그리고 우리들은 다만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싸울 것이다.

* 이 글은 '계간 생협평론 2012년 가을호'에 발표된 글을 일부 개고한 것입니다.

 /이계삼 765kV 송전탑 반대 故 이치우열사 분신대책위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