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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월 6일 일요일

회사를 증오한다 가진 자의 횡포에 졌다 5년 더… 어떻게…


이글은 한겨레21 2013-01-07일자 제943호 기사 '회사를 증오한다 가진 자의 횡포에 졌다 5년 더… 어떻게…'를 퍼왔습니다.
[표지이야기] 한진중공업 지회 조직차장 최강서씨현대중공업 사내하청 해고 노동자 이운남씨외대 노동조합 지부장 이호일씨…노동자로서 길고 지루한 싸움 겪다, 강자의 편인 시간 앞에 결국 무릎 꿇다

 
» 2012년 12월23일 부산 영도구 대교동 영도구민 장례식장에 마련된 한진중공업 노동자 최강서씨의 빈소를 찾은 한 조문객이 벽을 짚고 오열하고 있다. 최씨는 12월21일 노조 사무실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한겨레 박종식

2005년 5월, 부산 영도조선소 안에 금속노조 한진중공업 지회 사무실이 마련됐다. 1987년 노조가 설립되고 12년 만이었다. 2003년 85호 크레인에서 129일을 버티던 김주익 당시 지회장이 절망 끝에 목숨을 끊는 비극을 딛고서야 현실화된 일이었다. 김 전 지회장이 요구한 것은 회사가 노조에 청구한 손해배상과 재산 가압류, 구조조정안을 철회하라는 것이었다. 그로부터 7년 뒤인 2012년 12월21일 아침, 노조 사무실에서 지회 조직차장 최강서(34)씨가 목을 매 숨졌다. 회사는 12월26일까지 노조 사무실을 다시 회사 밖으로 옮기라고 통보했다.

김주익 전 지회장이 목숨을 끊었던 그해, 울산에 살던 32살의 노동자 이운남씨는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조 발기인에 참여했다. ‘비정규직도 사람답게 살아보자’는 소박한 일념에서였다. 어렵게 만들어진 노조에서 그가 맡은 직책은 조직부장이었다. 9년이 흘러 41살의 택시 기사가 된 이씨는 최강서씨가 숨진 다음날인 12월22일, 울산 방어동 자신의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세상을 등졌다.

12월25일 오후, 부산역에서 영도로 향하는 길목은 나들이 차량으로 북적거렸다. 영도구민 장례식장 4층에 마련된 최강서씨 빈소에는 아내 이선화(36)씨 등 넋이 반쯤 나간 유가족과 조합원 10여 명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침묵이 흐르던 빈소에 또 다른 비보가 날아들었다. 이호일(47) 전국대학노조 한국외국어대 지부장이 용인캠퍼스 노조 사무실에서 목을 맸다는 소식이었다. 이튿날엔 이 지부장의 빈소를 지키던 이기연(49) 수석부지부장이 호흡곤란으로 쓰러졌다는 뉴스가 들려왔다. 그도 결국 지부장 뒤를 따랐다.

2012년 겨울은 유난히 춥고 잔인했던 계절로 기억될 것 같다. 생때같은 30~40대 젊은 노동자들은 왜 스스로 삶을 마감해야 했을까. 최강서·이운남·이호일씨가 걸어온 삶의 궤적을 들여다보며 그들을 극단의 선택으로 몰아붙인 고통과 불안, 절망의 실체와 대면하고자 했다. _편집자

“나는 회사를 증오한다. 자본 아닌 가진 자들의 횡포에 졌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심장이 터지는 것 같다. 내가 못 가진 것이 한이 된다. 민주노조 사수하라, 손해배상 철회하라. 태어나 듣지도 보지도 못한 돈 158억. 죽어라고 밀어내는 한진 악질 자본. 박근혜가 대통령 되고 5년을 또…. 못하겠다 지회로 돌아오세요, 동지들. 여지껏 어떻게 지켜낸 민주노조입니까?”(최강서씨 유서 중)

따뜻한 두유를 주머니에 넣어주던 사람

최강서씨는 영도에서 나고 자란 부산 토박이다. 23살 되던 해인 2001년 한진중공업에 입사했다. 번듯한 곳에서 일한다고 그는 늘 자랑스러워했다. 입사한 지 얼마 안 돼 구조조정 바람이 불었다. 2002년, 회사는 나이가 많은 노동자 650명에게서 희망퇴직원을 받아냈다. 말이 좋아 희망이지 사실상 강압이었다. 퇴직자 대부분은 하청업체 노동자가 돼 회사로 돌아왔다. 신분이 바뀌니 노동조건은 열악해지고 일은 더 어려워졌다. 이듬해 노조 지회장 김주익, 조합원 곽재규가 연이어 목숨을 끊었다. 당시 파업 대열에는 최씨도 있었다.
노동자 2명의 죽음 이후 2008년 말 금융위기 전까지 회사는 호황이었다. 임금이 오르고 조합원 복지도 개선됐다. 그사이 최씨는 가정을 꾸려 두 아들(5살·6살)의 아빠가 됐다. 회사는 2006년 7천여억원을 단계적으로 투자해 필리핀 수비크에 231만4천㎡(70만 평) 규모의 조선소 건설을 시작했고, 2007년 1단계 공정을 완료해 수주를 받았다. 회사는 고용불안을 우려하는 노조와 ‘국외 공장이 운영되는한 정리해고 등 단체협약상 정년을 보장하지 못할 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합의서를 작성했다.
하지만 2009년 경기가 나빠지자 회사는 다시 구조조정의 칼을 빼들었다. 2010년 겨울, 회사는 400명에 대한 희망퇴직 계획을 노조에 통보했다.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최씨를 처음 본 것도 그 무렵이었다. “크레인에 오르기 전, 이른 아침 회사 앞에서 피켓을 들고 서 있을 때 강서가 두유를 주머니에 넣어주고 갔다. 그게 그렇게 따뜻했다.”
2011년 1월 김진숙 지도위원은 85호 크레인에 올랐다. 회사는 직장폐쇄 신고를 내고 정리해고를 단행했다. 해고자 명단에 최씨 이름이 있었다. 충격이었다. 예전엔 한 번도 구조조정 명단에 올라본 적이 없는 그였다. 아무도 이유를 설명해주지 않았다. 노조 대의원 활동이 빌미가 됐으리라 짐작할 뿐이었다. ‘회사가 생존하려면 정리해고가 불가피하다’는 사 쪽 주장을 그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활달하던 최씨의 성격이 조금씩 변했다. 건드리면 언제든 폭발할 뇌관 같았다고 아내 이선화씨는 회고했다. 희망버스를 타고 온 시민들과 정치권·노동계·시민사회의 노력으로 2011년 11월, 김진숙 지도위원이 땅으로 내려왔다. 정치권의 중재로 정리해고자 94명(1명은 정년퇴직)의 1년 내 재취업, 해고 기간 중 생계비 지급, 노사 간 민형사상 고소·고발 최소화 등의 내용을 담은 합의안에 노사가 서명했다.
그러나 회사는 노조를 상대로 ‘파업으로 인한 재산 손실을 변상하라’며 158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한진중공업은 합의 직후인 2011년 12월부터 순환휴직제를 시행했다. 작업 물량이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파업이 끝났지만 조합원들의 삶은 나아지지 않았다. 그러던 중 2012년 1월 새노조가 설립됐다. 기존 노조를 탈퇴하는 조합원이 늘어났다. 입사 동기인 이아무개(38) 조합원은 최씨가 이런 상황에 대해서도 힘들어했다고 전했다.

“잔뜩 기대를 품고 출근을 했는데, 회사가 무기한 휴직을 시켰다. 얼굴이 시커멓게 변해 집에 왔다.
그 실망한 표정을 잊을 수 없다.” -최강서씨의 아내

이력서의 사진이 영정사진으로

파업이 끝난 뒤 최씨는 누나와 작은 가게를 꾸려 일하며 복직을 기다렸다. 아내 이씨는 복직하던 날 남편의 모습을 생생히 기억한다. “잔뜩 기대를 품고 출근을 했는데, 회사가 무기한 휴직을 시켰다. 얼굴이 시커멓게 변해 집에 왔다. 그 실망한 표정을 잊을 수 없다.” 복직에 대한 희망이 사그라지자, 그는 더 이상 분노를 지탱할 힘조차 남아 있지 않은 듯했다.
한없이 가라앉았다. 11월 말부터는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했다. 대선 개표가 있던 12월19일 밤, 그는 스마트폰 메신저로 아내에게 말을 건넸다. 스스로에게 되뇌는 다짐 같았다. “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자나. 뭐든지 열심히 할게. 더 열심히 끝까지 덤벼보지 뭐.” 대선 결과에 대한 실망감을 비치기도 했다. “대선마저 날 배신해. 노동은 없다. 속이 속이 아니게 됐다. 힘든 5년 다시 시작.”
복직을 위해 찍은 이력서용 증명사진은 결국 영정사진이 됐다. 밤이 깊어지자 빈소를 지키던 조합원들은 하나둘 탁자 밑으로 들어가 눈을 붙였다. 한쪽 구석에서 맥주잔을 기울이던 김지훈(32)씨는 “그렇게 힘든 것도 모르고 형 앞에서 내 이야기만 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12월26일 아침 7시, 수은주가 영하 6℃를 가리켰다. 차해도 지회장 등 상복 차림의 조합원 20여 명이 영도조선소 앞에 길게 늘어섰다. “동지들, 최강서의 죽음을 돌아보십시오.” 어깨를 잔뜩 움츠린 채 공장으로 발걸음을 재촉하는 노동자들 등 뒤로 조합원들의 목소리가 맵찬 바닷바람에 흩어졌다. 동료의 죽음을 내놓고 함께 슬퍼하기엔 일자리가 급했기 때문일까, 차마 미안하다고 말할 수 없어서였을까. 출근하는 노동자들은 또 다른 노동자들의 눈길을 애써 외면했다.
비슷한 시각, 울산 동구 전하동 현대 중공업 정문 앞에서도 필사적인 외침이 이어지고 있었다. 이곳은 4만여 명의 정규직·사내하청업체 직원들이 일터로 향하는 길목이다. 정문 건너편에서 100여명의 사내들이 ‘해고는 살인이다’ ‘비정규직 철폐’ 등의 글귀가 적힌 20여 개의 만장을 펼쳐들었다.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해고노동자인 이운남씨의 영결식에 참석한 조합원들이었다. 이씨의 17년 지기인 강창원(41)씨가 단상에 올라 추모글을 읽어 내려갔다. “미안하다 운남아. 부디 편히 잘 가라. 결코 네 잘못이 아니야. 사랑한다 친구야.” 북받쳐오르는 설움을 애써 삼키는 기색이 역력했다.
전남 영암 출신인 이씨는 중학교를 마치고 곧장 서울로 올라왔다. 1990년 서울 성수동의 한 업체 노동자가 됐을 때 그는 19살이었다. 당시 학생운동권 출신 노동자였던 박성식(43) 민주노총 부대변인은 야학 교실에서 그를 처음 만났다. “여린 후배였다. 특히 시 쓰는 걸 좋아했다.” 1년 뒤 그는 박 부대변인과 함께 울산에 내려가 현대차 사내하청업체에 취직했다. 생계도 꾸리고 노동운동도 하겠다는 생각이었다.

심한 폭행당하며 끌려와 구속돼

» 2012년 12월26일 울산 동구 전하동 현대중공업 정문 앞에서 열린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조 초대 조직부장 이운남씨의 영결식. 탁기형

그는 4공장 트럭 공정에서 용접 일을 했다. 다른 라인에서 일하던 박 부대변인과 일주일에 두세 번 만나 사는 이야기를 했다. “정규직이 돼 야학에서 만난 여자친구를 울산에 데려오는 게 그때 운남이의 꿈이었다.” 그 꿈은 끝내 이뤄지지 않았다. 6년 뒤 현대중공업 직업훈련원에 들어간 그는 용접 일을 배워 정규직 입사 시험을 봤다. 함께 시험을 본 친구 강창원씨는 합격했지만, 그는 ‘허리뼈 탈골 가능성이 있다’는 진단을 이유로 신체검사에서 탈락했다. 그렇게 비정규직의 굴레를 벗지 못했다.
이씨가 마음의 병을 얻은 건 그 무렵이었다. 2003년 그는 사내하청 노조 결성에 앞장섰다가 해고를 당했다. 그와 함께 해고된 박일수(당시 50살)씨는 2004년 2월15일 회사 안에서 분신자살을 했다. 박씨가 남긴 유서에는 “하청노동자도 인간이다. 사람답게 살고 싶다.하청 비정규직 노동자가 착취당하는 구조가 개선되길 바란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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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 뒤 이씨는 다른 사내 하청업체 노조 조합원과 함께 선박건조장 1독 앞 크레인에 올라 사 쪽에 진상 규명 등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다. 그러나 그는 진압에 나선 현대중공업 경비대에게 심한 폭행을 당한 뒤 5시간 만에 끌려 내려와 구속됐다. 그날의 지옥 같은 경험은 이씨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병원에서는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라고 했다. 그는 크레인에 올랐던 기억 속에 갇혀 살아야 했다. 늘 노조를 제대로 이끌지 못했다는 자책감과 무력감에 시달렸다.
노조에 남아 복직 투쟁을 벌일까도 생각해봤지만 생계가 막막했다. 택배회사를 다니다 택시회사로 일터를 옮겼다. 노동자 출자 회사였던 택시회사 생활은 만족스러웠지만 곧 시련이 찾아왔다. 노동자들이 만든 회사에서도 부당 해고가 벌어지고, 복직 소송에서 이겨 복귀한 해고자를 집단적으로 괴롭히는 상황을 목격하고 일할 의욕을 상실한 것이다. 결국 사표를 냈다. 그의 자책감은 쌍용차·한진중공업 사태를 보며 더욱 심해졌다. “예전에 내가 열심히 싸우지 못해서 이런 일이 생겼다. 내 탓이다”라는 말을 자주 했다. 2011년 한진중공업으로가는 희망버스에 오르며 마음의 빚을 덜고자 했다. 하지만 그마저 쉽지 않았다. 동료 윤종길(44)씨는 “마음의 상처 때문인지 운남이는 가끔 (타는 목마름으로) 같은 노래를 부르다 울부짖곤 했다”고 전했다.
폭력의 상처도 갈수록 악화됐다. 이씨가 목숨을 끊기 하루 전인 12월21일, 그의 스마트폰 메신저에는 이날 현대차 사내하청 노조가 용역 직원들에게 폭행당하는 장면이 사진으로 올라왔다. 2004년의 악몽이 되살아났다. “힘들어 죽겠어. 손 떨려서 도저히 운전을 못하겠어.” 친구 강씨에게 전화해 도움을 청하며 “내가 이 사람들을 사지로 몰았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이씨의 머릿속에선 과거와 현재가 뒤섞여 있었다. 나아지지 않은 현실에 대한 절망이 현재의 시간 지평으로 암울한 과거를 거듭해 불러들인 것이다. 강씨와 통화하고 1시간이 지난 뒤 이씨는 결국 돌아올 수 없는 길로 떠났다.
이호일 전국대학노조 한국외대 지부장은 부당 해고의 덫에 걸렸다. 1992년 모교인 외대 행정지원처에서 근무를 시작한 그는 1998년 노조에 가입했다. 2006년 한국외대 노조는 대학 쪽이 단체협약을 해지하고 교섭을 거부하자 전면 파업에 들어갔다. 당시 그는 노조 정책국장이었다. 파업에 대응하는 대학의 태도는 강경했다. 7개월간 이어진 파업 기간 동안 임금은 전혀 지급되지 않았다. 끝까지 함께 버틴 조합원 160여 명이 대부분 3천만~4천만원의 빚을 질 만큼 생활고에 시달려야 했다. 언론에서는 노조를 ‘철밥통 파렴치 집단’으로 몰고 갔다.

“이호일 지부장은 부당한 원거리 발령에도 불구하고, 성실하게 일했다. 결과가 뻔해 보이는 소송을 끝까지 이어가는 대학의 대응이 이해가 되지 않기도 했다. 시간과 돈은 강자의 편이란 점을 과시하자는 것인지?” -김선수 변호사

대법원 판결로 복직 뒤 엉뚱한 곳 발령

» 대선 이후 연이어 세상을 등진 노동자·활동가들을 위로하는 추모제가 2012년 12월26일 서울 정동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열렸다. 추모제 참여자들은 고인들의 영정 앞에 국화꽃을 놓았다. 한겨레 이종근

대학은 파업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이 지부장을 비롯한 노조 간부 9명을 해고했다. 노조는 해고의 부당성을 주장하며 2007년 4월 소송을 냈고, 재판부는 그해 11월 노조의 손을 들어줬다. 대학은 불복했다. 2009년 2월 해고가 무효라는 대법원의 최종 판결이 나왔다. 그것으로 지루한 싸움이 끝난 게 아니었다. 학교에 돌아간 그는 정규직이 한 번도 배치된 적 없던 대천수련원으로 발령나 일하기도 했다. 소송 대리인이었던 김선수 변호사는 페이스북 글을 통해 그의 죽음을 비통해했다. “이 지부장은 부당한 원거리 발령에도 불구하고, 성실하게 일했다. 결과가 뻔해 보이는 소송을 끝까지 이어가는 대학의 대응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시간과 돈은 강자의 편이란 점을 과시하고자 했던 것일까.”
12월 대선은 꺼져가던 등불에 찬바람이 불어닥친 격이었다. 3명의 노동자가 고단한 삶을 극단적 방식으로 정리하는 분기점이 돼버렸다.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 박사는 진단했다. “탈진할 대로 탈진한 현장 투쟁 노동자들은, 약자에게 혹독했던 새누리당의 재집권을 지켜보며 더 이상 버틸 기력을 잃어버린 것이다.”
노동자들은 떠났다. 그러나 그들을 아득한 절망으로 내몰았던 손해배상 소송과 비정규직 차별, 무분별한 해고 행태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지금도 누군가의 몸뚱이를 천근의 무게로 짓누르고 있는, 아무리 몸을 뒤틀어도 꿈쩍할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 무거운 바윗돌이다.

부산=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울산=김성환 기자 hwany@hani.co.kr·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2012년 12월 25일 화요일

[사설]박 당선인은 노동자들의 절규를 듣고 있나


이글은 경향신문 2012-12-24일자 기사 '[사설]박 당선인은 노동자들의 절규를 듣고 있나'를 퍼왔습니다.

대통령 선거가 끝난 뒤 노동계의 기류가 심상찮다. 지난 21일 한진중공업 노동자 최모씨가 사무실에서 목을 매 자살했다. 다음날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해고 노동자 이모씨가 아파트에서 투신자살했다. 같은 날 민권연대 활동가인 또 다른 최모씨가 자취방에서 번개탄을 피워놓고 숨진 채 발견됐다. 이들이 죽음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한 배경에는 열악한 노동환경과 극심한 생활고, 외상 후 스트레스, 대선 결과에 따른 절망감 등이 자리잡고 있다고 한다. “가진 자들의 횡포에 졌다” “5년을 또… 못하겠다” “양심이 허물어진 삶은 의미 없다”는 그들의 마지막 말이 예리하게 가슴을 저민다.

이런 죽음의 행렬을 바라보며 애석함보다 더한 것은 산 사람들의 자괴감이다. 사지로 내몰린 그들의 절규에 귀를 막고 있는 현실 때문이다. 지난 10월8일 23번째 쌍용자동차 사태 희생자가 발생한 데 이어 지난 4일에는 노조파괴 사업장으로 알려진 유성기업에서 유모씨가 우울증으로 자살하는 등 노동자의 죽음이 최근까지도 이어졌지만 노동 현실의 개선은 지지부진했다. 지금도 최병승씨 등 현대자동차 노동자가 70일째, 홍종인씨 등 유성기업 노동자가 66일째, 한상균씨 등 쌍용차 노동자가 36일째 철탑 위에서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상황이 잘 말해준다. 

노동자들의 절규에 누구보다 귀를 기울여야 할 사람은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라고 본다. 그들의 절망을 희망으로 바꿀 힘이 박 당선인에게 있기 때문이다. “이 추운 겨울에 따뜻하고 편안한 잠자리에 드실 수 있도록 국민 한 분 한 분의 생활을 챙기겠다”는 것은 대선 후 박 당선인이 국민에게 한 첫 약속이기도 하다. 진정 국민통합을 원한다면 박 당선인에 대해 가장 절망하는 계층부터 먼저 보듬는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다. 지금 노동자들은 선거 결과에 절망하면서도 박 당선인의 입만 쳐다봐야 하는 처지가 됐다. 한번이라도 그들의 편에서 생각하고 그들을 위해 따뜻한 메시지를 보내는 데서 국민통합은 비로소 시작될 것이다.

우리는 시급한 노동현안에 대해서는 대선 전이라도 정치권이 진정성 있는 조치를 취할 것을 여러 차례 촉구한 바 있다. 새누리당도 쌍용차 국정조사의 대선 직후 실시를 약속한 바 있다. 이제 대선도 끝난 만큼 정치권은 노동현안 해결을 위한 긴급 행동에 나서야 한다. 정치권을 움직일 수 있는 실질적인 힘은 박 당선인에게 있다고 본다. 말 한마디가 희망의 씨앗이 될 수 있다. 새 정부 준비에 여념이 없겠지만 노동자들의 절망을 외면하지 말았으면 한다.

2012년 12월 12일 수요일

대한문 농성천막 12일 강제철거 위기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12-11일자 기사 '대한문 농성천막 12일 강제철거 위기'를 퍼왔습니다.

중구청 “오전에 3개동 해체” 통보
시의원들, 서울시에 철거보류 촉구

서울 중구가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천막농성중인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 등에게 ‘12일 천막을 철거하겠다’고 통보했다. 농성중인 해고 노동자 등은 철거를 강행하면 저항하겠다며 반발했다. 서울시의회 민주통합당 의원들은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강제 철거를 보류할 것을 촉구했다.서울 중구(구청장 최창식)는 11일 오전 덕수궁 대한문 앞 농성자들을 찾아가 ‘농성 천막 3동에 대해 12일 오전 10시 행정대집행(철거)을 하겠다’고 통보했다. 중구 쪽은 해고 노동자 등이 대한문 앞 인도에 설치한 농성 천막이 불법 시설물이고 자진 철거를 계고했지만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어 철거할 수밖에 없다는 태도다.4월5일부터 쌍용차 해고자들이 주로 지켰던 농성장은 지난달 12일 용산참사 유가족, 제주 해군기지 공사에 반대하는 강정마을 주민과 활동가 등도 합류해 밤샘농성을 벌여왔다. 김득중 전국금속노동조합 쌍용차지부 수석부지부장은 “구청 직원들이 찾아와 ‘대화로 풀자’면서도 일정대로 행정대집행을 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강제 철거에는 맞설 것”이라고 말했다.김명신 서울시의원 등 민주통합당 시의원 4명은 오후 박원순 시장을 방문해 “강제 철거를 보류하고, 추운 날씨를 감안해 인도적 차원에서 전기를 공급해달라”는 의견을 전했다. 박 시장은 “서울시에 (행정대집행) 결정권은 없지만 상황과 처지를 봐서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대답했다고 서왕진 시장 비서실장이 전했다. 도로법은 인도 등에 시설물을 설치하려면 구청 허가를 받도록 규정하고 있어 천막 단속권은 중구에 있다.중구는 지난달 일부 보수 성향 언론이 대한문 앞 농성을 문제삼은 즈음부터 철거 계고장, 공시 송달장 등을 발부하며 강제 철거를 하려는 행정절차를 밟아왔다. 김영수 중구 부구청장은 “농성장에 나가서 농성자들과 담판을 지으려고 한다. 적법하게 공무집행을 하겠다. 다만 한겨울이라는 점도 고려하겠다”고 말했다.중구가 물리력을 동원해 철거를 강행할 경우 농성자들과 충돌할 가능성도 있다. 이럴 경우에 대비한 경찰력을 배치하는 것을 두고 경찰은 ‘가용 경찰력 지원이 어렵다’는 태도를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농성자들의 반발이 거세고 서울시도 강제 철거에는 부정적인데다 대통령 선거일을 며칠 앞둔 시점이어서 물리적 충돌이 발생할 경우 파장이 예상된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2012년 12월 9일 일요일

쌍용차 노동자 “정치가 희망으로 고문했던 5년”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2-12-08일자 기사 '쌍용차 노동자 “정치가 희망으로 고문했던 5년”'을 퍼왔습니다.
[현장]쌍용차 해고노동자 송전탑 고공농성 18일째

“23명이 아니라 230명, 2300명이 이유 없이 우리 곁을 떠나도 꿈쩍도 안하는 파렴치한 세상, 모진 시기를 견뎌왔습니다. 4년이 흘러 이명박 정권이 보따리를 쌀 시간이 됐습니다. 노동자는 점점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다시 공장으로 돌아가는 꿈을 접을 수 없어 견딜 수 있었습니다. 2013년 달력에 소망을 적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의 소망은 가족과 함께 소박한 일상을 보내는 것입니다.” (한상균 전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장)
7일 밤 경기도 평택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의 송전탑 고공농성 현장에는 매서운 칼바람이 불고 있었다. 서해에서 불어오는 바람이다. 송전탑 아래에는 경찰 병력 100여명이 배치돼 있었다. 송전탑에는 ‘쌍용차 국정조사’, ‘해고자 복직’ 대형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쌍용차 해고노동자인 한상균 전 쌍용차지부장과 문기주 정비지회장·복기성 비정규직지회 수석부지회장은 송전탑 30미터 지점에서 국정조사와 해고자 복직을 요구하며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 7일로 18일째다. 송전탑에서는 쌍용차 평택공장이 내려다보인다. 농성 조합원들은 손전등을 흔들며 ‘나 여기 있소’라고 말하는 듯 했다. 
이들은 지난달 20일 새벽 널빤지 두 장을 가지고 송전탑에 올랐다. 김정우 쌍용차지부장이 41일 동안 단식을 벌인 후 병원으로 이송된 지 12시간 만이었다. 24번째 죽음을 막기 위해 해고노동자들은 목숨을 건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 7일 밤 경기도 평택 쌍용차 해고노동자의 송전탑 고공농성 현장. ⓒ조현미 기자

이날 하루 전면파업을 벌인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와 금속노조 확대간부들이 쌍용차 고공농성장을 찾았다. 7일 현대차 → 쌍용차, 8일 유성기업으로 이어지는 1박2일 노숙농성 투쟁이다. 땅 위에 있는 해고노동자들은 아래서 올려 보내준 무선 마이크로 농성장을 찾은 다른 노동자들과 대화했다.
울산 현대차에서 올라온 한 비정규직 노동자는 “세 분을 걱정하며 달려왔다”며 “어떻게 인사를 해야할 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복기성 수석부지회장은 “세 명 모두 건강하게 지내고 있다. 점심 저녁 하루 두 끼 먹으며 소량소식하고 있다”고 철탑소식을 전했다.
“울산에서도 걱정하고 있습니다. 웃으면서 지상에서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울산 현대차 인근 송전탑에서도 비정규직 노동자 두 명이 불법파견 인정과 사내하청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이날로 52일째 고공농성을 하고 있다. 송전탑에 있는 농성자들은 아침 저녁으로 카카오톡으로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고 했다.
“추위와 싸우고 있습니다. 오늘이 18일차인데 15일차까지 합판 4장으로 버티고 있다가 연대동지들이 올려준 철빔과 합판으로 두 평 남짓한 천막을 지어서 누울 수 있는 공간이 생겼습니다. 아침 저녁으로 영하 10도로 내려가지만 연대의 열기로 잘 견디고 있습니다.”(복기성 수석부지회장)
한 조합원은 문기주 정비지회장과 소주를 마셨던 기억을 떠올리며 “그 때가 그립다”고 말했다. 문 지회장은 “내려가면 소주 한 번 진하게 묵자”고 답했다.

▲ 금속노조 ‘쌍용차 정리해고 국정조사 실시, 해고자 복직, 고공농성 사수’ 결의대회에 참석한 조합원들. ⓒ조현미 기자

금속노조는 이날 밤 ‘쌍용차 정리해고 국정조사 실시, 해고자 복직, 고공농성 사수’ 결의대회를 열었다. 박상철 금속노조 위원장은 “한 사업장에서 무려 23명의 노동자와 가족이 죽었는데 잘못된 정리해고에 대해 어떤 누구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며 “41일 동안 김정우 지부장이 단식하고, 세 동지가 15만4000볼트의 전류가 흐르는 송전탑에서 목숨 건 고공농성을 하는 요구는 딱 하나, 잘못된 정리해고를 철회하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 위원장은 “비정규직 정규직화, 쌍용차 현장복직 그리고 노조 파괴가 더 이상 발붙이지 못하도록 비상한 각오로 싸워야 한다”며 “1월에 총파업을 할 수 있도록 힘을 모아내자”고 강조했다. 노조는 17일 임시대의원대회를 열고 내년 1월 총파업을 결의한다.   1년 전인 지난해 12월 7일 금속노조와 쌍용차지부는 서울역에서 19번째 희생자를 추모하는 추모제를 열고 평택 공장 앞에서 희망텐트를 시작했다. 세 차례 희망텐트, 네 차례 범국민대회, 국회 청문회까지 열렸지만 어느 것 하나 해결된 것이 없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새누리당 의원들은 지난 4일 대선 후 쌍용차 국정조사를 실시하겠다고 밝혔지만 대선 후보 TV토론회를 앞둔 ‘선거용’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한상균 전 쌍용차지부장은 “정리해고, 비정규직 문제가 정치적으로 해결되지 못할 것을 잘 알고 있다”며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바꿔낼 때 비정규직·정리해고 없는 세상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 8일 오전 쌍용차 해고노동자 3명이 송전탑에서 손을 흔들고 있다. ⓒ조현미 기자

농성을 마친 조합원들은 송전탑에 있는 노동자들에게 방수침낭을 올려 보냈다. 침낭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경찰과 일부 충돌이 있었지만 노동자들의 거센 항의로 30미터 송전탑으로 올려 보내는 데 성공했다.
결의대회 참가자들은 송전탑 농성장에 마련한 130여동의 천막에서 1박을 한 후 8일 오전 고공천막농성을 하고 있는 충남 아산 유성기업으로 향했다. 
한상균 전 쌍용차지부장은 지난 2009년 77일간의 옥쇄파업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3년 동안 교도소에서 징역형을 살고올해 8월 5일 출소했다. 다음은 송전탑에서 농성 중인 한상균 전 지부장과의 전화통화 일문일답.
- 날씨가 많이 추운데 생활하는 것은 괜찮은가.“추운데 적응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만만치는 않다.”
- 세 분의 건강상태는 어떤가.“처음 올라올 때보다는 조금씩 힘들어지고 있는데 지금 밑에 있는 동지들도 힘든 것은 매한가지이기 때문에 우리가 나약해질 수 없어서 정신 차리고 있다.”
- 얼마 전 새누리당에서 대선 후에 국정조사를 실시하겠다고 밝혔는데 어떻게 생각하나.“지부의 입장과 별 다르지 않다. 쌍용차 문제의 심각성 때문에 한 것 같지는 않고 민심의 동향도 있는 것이다. 연속적인 죽음 앞에 정치가 너무나 무기력했다. 그런 것에 대해 자기 반성이 좀 따라주는 결단이면 다행스럽다고 생각하는데 단순하게 대선만 앞둔 하나의 이벤트로 한다면 정말 오히려 희망으로 고문하는 격이다. 그렇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쌍용차지부는 4일 발표한 성명에서 새누리당에 △기자회견 내용이 박근혜 후보의 입장인지 명확히 밝히고 △쌍용차 국정조사 실시 시기도 구체적으로 밝혀야 하며 △정리해고자에 대한 입장과 △책임자 처벌 문제를 분명히 해야 할 뿐 아니라 △2009년 자행된 비정규직 해고 노동자들에 대한 입장과 함께 △중구청의 대한문 분향소 철거 예고에 대한 입장 등을 밝히라고 요구했다. 지부는 “요구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해야 쌍용차 비극에 대한 새누리의당 해결 의지에 진정성이 담긴 것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라며 “새누리당을 비롯한 모든 정치권은 쌍용차 문제를 정쟁 구도로 삼아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 얼마 전 국민일보 보도(12월 5일자 [朴,쌍용차 노조 만남 철탑농성 해제 조건] 기사)에 따르면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 측이 송전탑 농성 해제를 조건으로 만남을 제안했다고 하는데. “(기사를) 못 봤다. 이후 언론을 통해 몇 번 접하기만 했지 직접 들어본 적은 없다. 국민이 함께 살자고 하는데 함께 사는 대한민국을 말하는 사람이 조건을 가지고 오겠나. 진정성이 있으면 오면 되는 것이다. 이런 투쟁까지도 거래 대상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 금속노조 정리해고철회 공동투쟁단이 붙여놓은 현수막 뒤로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이 농성을 벌이고 있는 송전탑이 보인다. ⓒ조현미 기자

- 18대 대선 얼마 안 남았는데 어떤 결과가 나오길 바라는지. “지금까지 정치가 희망으로 우리를 고문만 했던 5년이었다. 얼마 안 있으면 새로운 대한민국의 권력이 등장한다. 노동과 경영은 서로 균형이 맞아야 나라가 정상적으로 희망과 비전을 가질 수 있는데 지금 현재는 일방적이고 완전히 불공정하다. 자본은 현금이 넘쳐서 주체를 못하고 있는데 노동은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인간의 영혼, 존엄성까지 짓밟히고 있다. 노동자가 가족과 함께 소박함을 나눌 수 있고, 노동자로 살다 죽어도 조금은 행복했다는 생각 가질 수 있는 국정철학을 가진 사람이 당선됐으면 좋겠다.”
- 언론에서 관심을 갖고 보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나.“쌍용차는 이미 노사관계의 폭을 넘어서 결국 정부 관련 기관들이 총체적으로 개입된 사건이다. 사회 상류층들이 어떻게 노동자들을 탄압하는지 보여준 백화점이었다. 이런 것들이 많이 이슈화되고 보도되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회사의 움직임을 언론에서 많이 다뤄져야 할 것 같다. 원죄가 있는 상하이차의 먹튀에 대해 잘못이 있는 경영진, 법정관리 잘못이 있는 경영진은 이해 당사자인 저희들의 문제를 정상적인 시각으로 볼 수 없다. 적극적으로 더 담을 쌓고 대화를 단절하고 그들의 잘못을 미화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물량도 그렇고 회사가 고용의 문제를 풀어갈 수 있는 조건이 얼마든지 있다. 그럼에도 탄압으로 일관하는 것은 스스로 이 회사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들의 범죄 사실을 합리화하기 위해 우리를 지속적으로 희생양으로 삼고 있다. 이런 스토리를 언론에서 풀어내지 못해 굉장히 안타깝다. 일부 기자간담회에서 얘기하기도 했는데 사실 언론에서 그 문제가 선을 넘기 쉽지 않나 보더라.”
-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해고는 살인이다’라는 구호가 이렇게까지 확장될지는 몰랐다. 그것을 염두해 놓고 외친 것은 아니었는데 아시다시피 현실화됐다. 외국에서도 수천 명, 수만 명이 해고되지만 이런 일은 없다. 우리나라도 언론 보도와 무관하게 상시적으로 해고가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렇게 불행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은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이것은(쌍용차 정리해고는) 억울하고 잘못되고 스스로도 용납할 수 없는 정리 살인 해고였기 때문에 그런 현상이 발생했다. 이런 부분을 치유하지 않으면 계속적으로 또 다른 피해, 상상하기 힘든 일이 발생할 것이다. 계속 살얼음판이다. 생과 사의 문턱에서 왔다갔다하는 조합원들이 너무 많다.그런 조합원들에게 희망을 줘야 하는데 투쟁을 이끌었던 입장에서 승리하지 못하고 조합원들을 고통에 빠지게 해서 너무나 죄송스럽다. 사회 문제로 이미 확장됐기 때문에 풀려야 한다. 조합원 동지들도 이 또한 지나간다는 생각으로 희망을 포기하지 말고 잘 견뎌줬으면 좋겠다. 잘못된 사람들이 스스로 잘못을 인정하고 상처를 치유하는 길에 나서든지 아니면 이 나라가 양심과 정의의 가치가 있어서 그 잣대로 잘못을 단죄하든지 해야 한다. 노동자가 있을 곳은 철탑이 아니라 공장이다. 함께 웃으며 공장으로 돌아가길 바란다. 그 때까지 잘 견뎌주길 매일 밤 기도하고 있다.”

조현미 기자 | ssal@mediatoday.co.kr  

2012년 11월 19일 월요일

[사설] ‘농성촌 천막’의 간절한 호소까지 틀어막을 텐가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11-18일자 사설 '[사설] ‘농성촌 천막’의 간절한 호소까지 틀어막을 텐가'를 퍼왔습니다.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과 용산참사 유가족 등이 농성중인 서울 대한문 앞 ‘농성촌’에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관할 서울 중구청과 남대문경찰서가 농성을 위해 쳐놓은 천막들을 강제철거하기로 방침을 정했기 때문이다. 중구청은 오는 29일이 최후시한이라고 농성자들에게 통보한 상황이다. 우리 사회의 소외와 불평등을 상징하는 이들의 “함께 살자”는 호소, 그리고 정의·평화를 실현하라는 각계의 목소리를 공권력은 끝내 틀어막기로 작정한 모양이다. 그 불통과 배려없음에 실망하지 않을 수 없다.중구청은 농성촌 천막이 도로교통법상 불법시설물이라 철거가 불가피하다고 설명한다. 7개월째 농성중인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의 천막 2동과 지난 12일 새롭게 농성을 시작한 용산참사 유가족, 강정마을 주민, 4대강 반대 운동가 등의 천막 1동이 허가 없이 설치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농성촌의 존재 이유를 외면한 형식논리에 지나지 않는다. 그 속내는 이명박 정부와 자본의 이해에 반하는 목소리를 더는 허용하지 않겠다는 것일 뿐이다.차가운 아스팔트에 천막을 치고 농성중인 이들은 누구인가. 이 땅에서 가장 억압받고 억울한 사람들이다. 쌍용차에선 2009년의 정리해고 이후 해고노동자와 가족 등 23명이 자살이나 돌연사로 세상을 떠났지만 달라진 것이 없다. 국회 청문회에서 나온 불법적 회계조작과 ‘기획 도산’의 증거들도 무용지물이다. 회사 쪽이 ‘정리해고 1년 뒤 복직’을 약속한 무급휴직자 450여명조차도 아직까지 제자리로 돌아가지 못했다. 용산참사는 경찰의 무리한 과잉진압이 참사의 근본 원인으로 드러났지만, 여전히 희생자가 생긴 모든 책임은 망루 농성을 벌인 세입자들에게 씌워져 있다.통행의 어려움이나 도시 미관 등을 이유로 농성촌을 막으려 할 게 아니라, 이들의 호소를 따뜻하게 보듬고 진정한 해결책을 찾으려는 노력을 게을리한 것을 반성해야 마땅하다. 김정우 쌍용차 노조지부장의 단식은 벌써 40일이 지났다. 지난 7월 서울행정법원은 경찰이 불허한 대한문 앞 쌍용차 추모집회를 허용하는 판결을 내렸다. 당시 법원은 “집회가 금지됨으로써 노조에 생길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예방하기 위한 긴급한 필요가 있고, 집회신청을 받아들여도 공공복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고 볼 수 없다”고 이유를 밝혔다. 농성촌에 대해서도 법원과 동일한 인식이 필요하다. 대한문 농성촌은 우리 사회가 더불어 사는 공동체를 유지할 능력과 자세가 있는지 판가름하는 시금석이다.

2012년 9월 21일 금요일

“쌍용차 네 식구 3년 동안 하루 한 끼로 버텼다”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2-09-20일자 기사 '“쌍용차 네 식구 3년 동안 하루 한 끼로 버텼다”'를 퍼왔습니다.
[쌍용차 청문회] 정혜신 박사, 쌍용차 해고노동자 가족 지원 대책 마련 촉구

“진압 당시 엄마랑 있으면서 헬기 소리를 들은 아이는 아직도 변기 물을 못 내립니다.”
20일 오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쌍용차 청문회에 참석한 정혜신 박사(정신과 전문의)의 증언은 참담했다. 그의 목소리는 때로는 떨렸고 때로는 간절했다.
정 박사는 ‘전문의로서 환노위 위원들이 참고해야할 추가 의견에 대해 말해 달라’는 신계륜 환노위 위원장(민주통합당)의 요청에 해고노동자들의 자녀들을 위한 대책 마련을 호소했다. 그는 “정신과 진료가 필요한 아이들이 많다”며 “와락에 소아정신과 의사들이 와서 심리평가를 하고 부모 면담을 한 후 상황을 평가하는데 해고자 아이들의 유병률이 서너배 높게 나타난다”고 말했다.
“아이들이 경찰만 보면 공포에 떱니다. 경찰서 앞을 지나지 못합니다. 학교에서 수업시간에 경찰에 대해 얘기하는데 아이 혼자 전혀 다른 얘기를 해서 이상한 취급을 받는 일도 있습니다.”
정 박사는 “어떤 아이는 아빠가 경찰특공대에 의해 짓밟히는 것을 봤다”며 “그 이후 경찰을 보면 아빠 대신 어떻게 해주겠다며 아직까지도 허리춤에 장난감 칼과 꼬챙이·젓가락·나무를 꽂고 다닌다”고 말했다.
청소년기에 접어든 자녀들 중에는 분노를 통제하지 못하고 가출로 연결되는 경우도 있는 것을 전해졌다. 정 박사는 “해고노동자들이 경제적으로 너무 힘들어 네 식구가 3년 동안 밥을 하루 한 끼 먹으며 버틴 사람도 있다”며 “경제적으로 많이 힘든 상황이라는 것을 사람들이 알고 있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그는 “왜람된 얘기지만 이런 일은 개인 자원활동가가 할 일은 아니다”며 정부의 지원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정리해고자 문제) 해법이 나오기 전까지 아이들은 보호가 돼야 하고 치료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이가 입은 상처를 책임질 수 있는 어른이 있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손길이 부족합니다.”
정 박사는 “지금 많은 분들이 쌍용차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수습할까 고민을 한다”며 “해법이 나올 것이라는 기대를 청문회 과정 중에 갖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국회 청문회를 계기로 가족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들이 시급하게 마련되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조현미 기자 | ssal@mediatoday.co.kr  

2012년 6월 4일 월요일

마이클 샌델, 쌍용차 분향소 깜짝방문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06-03일자 기사 '마이클 샌델, 쌍용차 분향소 깜짝방문'을 퍼왔습니다.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클 샌델 교수(왼쪽)와 만난 김정우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장(오른쪽)이 3일 트위터에 올린 사진.

박원순 시장과 함께 들러
22명 자살배경 듣고 숙연
선글라스 벗고 악수·격려

(정의란 무엇인가)로 국내에 ‘정의’ 열풍을 일으킨 마이클 샌델 미국 하버드대 교수가 3일 오전 박원순 서울시장과 함께 서울 중구 대한문 앞에 차려진 쌍용자동차 희생자 합동분향소를 찾았다. 새 책 홍보를 위해 방한한 샌델 교수는 이날 아침 박 시장과 서울시내 한 호텔에서 아침식사를 같이 한 뒤 오전 9시께 분향소에 들러 현장을 지키고 있던 7~8명의 해고노동자 등 관계자들을 만났다.
샌델 교수는 이 자리에서 박 시장으로부터 쌍용차 대량 정리해고 사태와 해고노동자 22명의 잇단 자살 등 분향소가 차려진 이유를 간략히 들었다. 박 시장과 샌델 교수의 현장방문을 수행한 서울시 관계자는 “박원순 시장으로부터 해고노동자들이 농성하는 배경에 대한 설명을 들은 뒤, 샌델 교수가 숙연한 표정으로 쓰고 있던 선글라스를 벗고 노조원들과 악수를 나누며 격려했다”고 전했다.
현장에서 샌델 교수를 만난 김정우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장은 이날 자신의 트위터(@kimjungwooSS)에 “일요일 아침 박원순 시장과 마이클 샌델 교수께서 분향소를 잠깐 방문하셨습니다. 아픔을 같이하는 마음 나누고 가셨습니다”라는 글과 함께 샌델 교수와 찍은 사진을 올렸다. 김 지부장은 “샌델 교수가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의 상황에 대해, 마음으로 같이 (위로)한다는 뜻을 전했다”고 말했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2012년 5월 28일 월요일

KBS 교향악단 거리에서 진실에 눈 뜨다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2-05-28일자 기사 'KBS 교향악단 거리에서 진실에 눈 뜨다'를 퍼왔습니다.
[김상수 칼럼] 쌍용차 희생자들을 위로한 가슴 뜨거웠던 거리 연주회

5월 26일 오후 7시 50분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와 함께 하는 KBS교향악단 연주회+시(詩)가 서울시청 대한문 앞 쌍용차 희생자 분향소 앞에서 열렸다. 이창형 KBS 노동조합 교향악단 단원 대표의 연대의 인사가 있고, 이어서 모차르트의 소야곡 (Mozart, Eine kleine Nachtmusik) 중 1악장 선율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서곡은 힘차게 연주됐다. 첼로와 바이올린 협주로 시작된 음악회는 운명한 쌍용자동차 22인을 추모했지만, 모차르트의 음악을 연주하는 첼로와 바이올린 활은 거침없고 당당했다. 

비록 이 지상에서는 다시 볼 수 없는 22명의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이지만 하늘나라에서는 힘차게 씩씩하게 생을 살겠다는 그들의 의지가 음악으로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곧이어 바하(Bach)의 현악 오케스트라를 위한 조곡 제 2번이 연주됐다.  22번째 희생자인 고 이윤형씨는 이제 36세였다. 지난 3월 30일 임대아파트 23층 꼭대기에서 몸을 던졌다. 유서는 없었다. 2009년 쌍용차 사태 때 끝까지 남아 파업투쟁을 했던 이씨는 해고된 뒤에 3년간 직장을 구하기 위해 면접을 봤지만 다시는 취직하지 못했다.

25일 서울광장 맞은 편 대한문 앞 광장에서 열린 KBS 교향악단의 거리 음악회. KBS 교향악단 제공.

이렇듯 쌍용차 노동자들 2600여명이 어느 날 갑자기 일터에서 쫓겨나 이후 많은 노동자들이 상처를 자기 가슴에 묻어두고 사회에 적응하려고 무던 애를 썼지만, 그 중에 22명은 이 세상에 막막한 벽을 느꼈다. 치유 받지도 못하고 죽음으로까지 이어졌다. 


지금 한국 사회에선 인간이 존중받지 못하고 사는 것이 일상화됐다. 많이 가진 자들은 여전히 허기(虛飢)져서 염치없이 지나치게 탐하는 걸신(乞身)이 들렸고, 거의 걸신(乞神)까지 됐다. 


반면에 착한사람들은 삶 자체가 여지없이 무너져 내렸다. 


정리해고는 없어져야 한다. 


정리해고는 약자에게 일방으로 일터를 떠날 것을 강박하는 폭력이다. 약자인 노동자는 힘이 없다. 상대가 힘이 세니 덤비지도 못하고 어떻게 닥친 상황을 풀어야 할지 난감해진다. 더군다나 가족이, 자식들이, 분하고 답답한 억울(抑鬱) 병에 걸린 자신을 바라보는 눈길은 차마, 참담하다.


지금 KBS에서는 교향악단을 졸속 법인화시켜 단원들을 KBS 밖으로 내치려하고 있다.  KBS교향악단의 경우도 바로 정리해고의 징후가 다분하다. KBS 김인규 사장체제부터 KBS 경영상태가 날로 망가지면서 KBS교향악단을 희생양 삼겠다는 얘기가 들려온다. KBS 자신들의 무능을 교향악단을 통해서 은폐하려는 듯하다.  


25일 서울광장 맞은 편 대한문 앞 광장에서 열린 KBS 교향악단의 거리 음악회. KBS 교향악단 제공.

마구잡이 무차별로 징계를 때려 벌써 단원들 중엔 월급도 안 나오는 단원도 있다. KBS 시청자사업부 부장 이재숙과 함신익이 공모, 이제 단원들 가정까지 파괴하겠단 작정인가? 이는 벌 받을 짓이다. 반드시 악행은 되돌아 자신들 정수리를 정통으로 겨눈다. 세상 이치(理致)다.    

진실에 눈을 뜬 KBS교향악단 지난 57년간 국립교향악단의 전통을 이어 온 KBS교향악단은 국내최고수준의 교향악단이다. 국내 최고의 오게스트라인 KBS교향악단은 지금의 세대뿐 아니라 다음의 세대에까지 물려주어야 할 우리시민들의 문화유산이기도 하다. 그동안 KBS교향악단은 아름다운 음악을  시민들께 들려드리는 일이 자신들의 소명이라고 생각하며 그 일에만 최선을 다하며 살아왔다. 

세상을 이롭게 하는 데는 아름다운 음악을 잘 연주하는 것이 자신들의 역할이라고 알았다. 그러나 단원 93%가 반대한 지휘자 함신익이 ‘낙하산상임지휘자’로 오면서 KBS교향악단은 절단나기 시작했다. 

개인의 음악권력을 탐하기 위해서 자신의 처지나 주제와는 전혀 무관한 국립교향악단의 현신인 KBS교향악단의 상임지휘자 자리를 부당하게 ‘낙하산 투하’로 침탈해 들어온 것이다. 

KBS교향악단 단원들은 2010년 초부터 함신익이 상임지휘자로 취임한다는 소문이 들려올 때 너무나 어처구니없어했다. 음악적 경력이나 이력을 볼 때 그는 국립교향악단의 현신인 KBS교향악단의 상임지휘자로 전혀 올 수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의 음악적 수준이나 이력 경력이 합당하지 못하다고 알고 있던 전 단원 절대다수의 반대투표로 그의 부임을 반대하였다. 

뚫고 들어온 ‘낙하산지휘자’ 함신익은 거칠게 없는 것처럼 마구 행동했다. 20년에서 30년, 40년 넘게 평생 음악을 연주해온 음악예술인들에게 자신의 부임을 반대했다는 이유로 자기 앞에 줄 세우기를 강요했고, 징계와 해촉(파면) 등으로 단원들을 겁박하기 시작했다. “단원들 기강을 잡아달라”고 KBS에서 자기한테 주문했다고 했다. 교향악단 운영부서인 KBS 시청자사업부는 덩달아 함신익 편에서 같이 ‘안달’하기 시작했다. 터무니없는 경우가 시작됐고 단원들의 몸과 마음이 다치기 시작했다. 

단원들은 말하기를, “탄압받으며 눈물 흘리고 난 후에야 세상이 보였습니다. 찢긴 가슴으로 매일같이 눈물 흘리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 곳곳에 넘친다는 현실에 비로소 눈이 떠졌습니다.”라고 했다.  

지금 전국의 교향악단 단원들 절대다수와 음악대학 교수 등 1224 명이 함신익 음악계퇴출과 KBS교향악단 징계철회에 서명했다.  

KBS교향악단은 시민의 국민여러분의 교향악단입니다.“저희는 이번 ‘낙하산 상임지휘자’와 그를 호위하는 KBS 시청자사업부의 횡포를 보면서, 보다 세상을 잘 들여다보아야 하고, 더 현명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 사회 어둠속에서 외치는 슬픈 소리들에 우리의 귀가 열렸고 대책 없는 고통들에 우리의 눈도 떠졌습니다. 

우리는 음악의 힘을 믿습니다. 우리 KBS교향악단은 시민의, 국민의 편에서 음악을 들려 드리는 교향악단으로 거듭나겠습니다.”

시민들의 환호성과 연이어 앵콜 요청, 그리고 합창, 마지막 연주가 끝나자 대한문 앞은 환호성이 일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차가운 바닥에 앉아 박수를 치던 백기완 선생과 정동영 의원의 모습도 보였다. 연주가 끝나고 L단원이 말했다. 

“아, 조금 더 일찍 찾아뵈어야 했었습니다. 너무 늦게 찾아 죄송합니다. 정말 좋은 관객 분들을 뵐 수 있어서 연주하는 저희들도 기뻤습니다.” 

서울대 대학원에 재학 중인 H여학생은 연주회가 끝나자 희생자 분향소에서 분향을 막 마치고 나오면서 말했다. 

“감동이었어요. 왜? KBS교향악단이 국립교향악단인지 알겠어요. 최고의 테크닉을 봤고요. 마음이 관객 모두와 만났어요. 인터넷으로 보니까 교향악단 단원 분들이 많은 어려움에 처해 계시더군요. 동영상은 끔찍하기도 했고요. 그런데도 쌍용자동차 노동자 분들을 위로하기 위해 연주를 해서 더 감동받았어요.” 

어제 밤에는 시인 신용목의 ‘학살 미사’, 유희경의 ‘봄밤’, ‘참담’, 김소연 시인의 ‘고통의 신비로부터’ 제목의 시낭송이 있었고 KBS교향악단의 연주곡목은 다음과 같다. Mozart - Eine kleine Nachtmusik, Vivaldi -‘사계’ 중 ‘여름’ 2,3악장, Franck - Panis Angelicus ‘생명의 양식’, Popper - Polonaise, Schindler's list (Flute 협연), Gabriel's Oboe (Oboe 협연), Kazabue (Oboe 협연), Warlock - Capriol Suite 중 1악장, Grieg -'Holberg' Suite 중 1악장

(계속)

김상수 작가·연출가 | media@media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