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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4월 8일 월요일

중구청 직원들의 '폭력'...대한민국이라 서럽다


이글은 오마이뉴스 2013-04-07일자 기사 '중구청 직원들의 '폭력'...대한민국이라 서럽다'를 퍼왔습니다.
강제철거 당한 쌍용차 분향소 그 후... "박근혜 약속은 언제쯤?"
▲ 2012년 4월, 대한문 앞 쌍용차 분향소의 모습. ⓒ 김혜승


"여기 무덤으로 내가 들어가야겠어요."

쌍용차 해고자들의 심리 치유센터 '와락'의 정혜신 박사가 트위터에 남긴 한 해고자의 말이다. 지난 4일 쌍용차 분향소가 강제 철거당했다. 이에 대해 대책회의를 하던 중 그는 멍하니 얼굴 근육을 떨며 이렇게 말했단다. 2009년 5월 시작된 쌍용차 사태로 지금까지 24명이 숨졌다. 주된 원인은 자살. 대다수가 유서조차 남기지 않았다. 

강제철거를 집행한 중구청은 시민들의 통행불편 방지뿐 아니라 지난달 화재로 덕수궁 돌담의 서까래가 그을리는 등 문화재 훼손 우려까지 제기돼 철거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입장이다. 중구청은 오전 5시 50분 직원과 경찰을 동원해 분향소를 기습 철거했다. 이후 철거된 땅 위로 40톤의 흙을 부어 꽃 화단을 만들었다. 이 모든 과정이 20여 분 만에 이루어졌다.

죽음·단식·고공농성 그리고 또 죽음... 쌍용차 해고자들의 1년 

지난해 4월 5일 서울 중구 태평로 덕수궁 대한문 앞에 분향소가 차려졌다. 쌍용차 해고자였던 이윤형씨의 죽음을 추모하기 위한 자리였다. 죽음 직전까지 구직 활동 중이었던 그는 23층 아파트에서 투신자살했다. 22번째 죽음이었다. 쌍용차 해고자들은 "더 이상의 죽음은 안 된다"고 생각해 지난해 4월 아무 준비도 없이 무작정 거리로 나왔다. 그게 시작이었다. 

처음에는 얼굴 없는 영정사진이 그려진 흰 전지가 전부였다. 이후 구호 물품이 하나둘씩 조달되고,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밥셔틀'이라는 새로운 문화도 생겨났다. 쌍용차 해고자들의 식사를 챙겨주는 '밥 연대'였다. 공지영 작가의 쌍용차 르포집 (의자놀이)도 발간됐다. '희망 지킴이'를 자처하고 나선 사람들도 늘어났다. 쌍용차 해고자들도 희망이 생겼던 걸까? 이 즈음에 만났던 쌍용차 해고자 고동민씨는 "대한문에 서니 비로소 희망이 보이는 것 같다"고 말했다. 
▲ 서울 중구청이 4일 새벽 대한문 쌍용자동차 분향소를 기습철거 했다. ⓒ 유성호


정리해고, 비정규직이란 신문사회면 한 귀퉁이에 써져 있는 활자로만 인식하던 평범한 삶을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화들짝 놀란 사람들, 이제는 어느 누구보다도 해고자들이 공장으로 돌아가 평범한 일상을 찾기를 소망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일주일에 한번 씩 없는 돈에, 밥과 반찬을 해서 해고자들에게 집 밥을 먹이던 사람들, 밤늦게까지 일하면서 그 늦은 시간 대한문을 꼭 들리고야만 하던 사람들, 정리해고는 원래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던 사장님에서 해고자들의 친근한 형, 누이가 되어 주던 사람들이 있었다. 음료수를 슬며시 놓아두기도, 허겁지겁 모금함에 지폐 몇 장을 쑤셔 넣으며 연신 미안하다 고개를 주억거리던 사람들이 있었다. - 고동민씨의 기고(출처 : [참세상])

지난해 9월 쌍용차 청문회가 열렸다. 4년 만이었다. 그 과정에서 회계법인의 '회계조작' 증거들이 제기됐다(관련기사 : ["쌍용차 정리해고,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조작"]). 10월 쌍용차 해고자 김정우씨는 23번째 죽음 소식을 듣고 단식농성에 나섰다. 곡기를 끊은 지 41일째, 그는 건강 악화로 병원에 호송됐다. 18대 대선에 모든 이목이 쏠려 있던 11월 20일 새벽, 쌍용차 해고자 3인(한상균, 문기주, 복기성)이 '해고자 전원 복직', '국정조사 실시'를 요구하며 쌍용자동차 평택공장 앞 30M 철탑에 올라 고공농성을 시작했다.

15만 볼트 전기가 흐르는 곳이다. 철탑 농성 116일차, 문기주씨는 건강상태가 악화돼 서울 녹색병원으로 긴급 후송됐다. 왼쪽 팔을 거의 쓸 수 없을 만큼 왼쪽 어깨 충돌증후군과 인대 부분 파열 증세를 보였다. 검진 결과 한상균씨는 저혈압과 동상 증세가, 복기성씨는 허리디스크 증세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 두 사람은 여전히 철탑 위에 올라 있다. 그 기간이 어느덧 140일을 넘었다.

올해 1월, 공장에서 자살을 시도한 후 뇌사 상태에 빠져 있던 쌍용차 노동자가 죽음을 맞았다. 24번째 죽음이었다. 3월 3일, 화제로 분향소가 홀딱 타버리기도 했다. 철거 전 분향소는 시민들과 연대해 다시 세운 것이었다.

박근혜 대통령, "쌍용차 사태 국정조사" 약속은 언제 지킬 겁니까 
▲ 철거 후 황폐해져버린 대한문 앞 쌍용차 분향소의 모습. ⓒ 양창권


지난 5일 찾은 대한문 앞에는 화단을 둘러싸고 펜스가 설치돼 있었다. 일부 중구청 직원들과 경찰들은 농성장 재설치를 우려해 대한문을 둘러싸고 감시 중이다. 펜스 앞 비닐 돗자리에는 10명도 채 안 되는 해고자와 시민들이 자리를 지켜내고 있었다. 정혜신 박사는 지난해 9월 쌍용차 청문회에 증인으로 참석했을 때 이렇게 말했다. 

"그동안 만난 쌍용차 조합원 중에 자살충동으로 자살시도를 한 조합원이 80%가 넘는다. 말하자면 둑이 무너지려고 하는데 시민들이 주먹으로 틀어막고 버티고 있는 상황이다. 더 이상 시민의 힘으로 버티기 어렵다."

박근혜 대통령은 후보 시절 "대통령이 되면 쌍용차 사태 국정조사를 실시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그 약속은 이행되지 않고 있다. 2월 국회 개원 합의 사항인 "쌍용차 여야 합의체를 통한 사태 해결" 또한 마찬가지다. 해고자들에게는 '희망 고문'이 되어버렸다.

분향소 기습 철거는 어떨까?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은 4일 성명서를 통해 "행정대집행과 관련해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가 중구청장과 면담을 조율 중인 상황이었음에도 중구청은 오늘 새벽 기습적으로 철거를 단행해버렸"으며 "행정대집행장의 대상물이었던 대한문 앞 천막 3개 동은 지난 3월 한 노숙인의 방화로 이미 없어져버렸고, 분향소는 그 후 새로 설치된 것이기에 중구청은 행정대집행 절차도 다시 진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쌍용차 사태 해결을 위한 범국민대책위원회'도 분향소와 주변 설치물이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제6조에 따라 신고된 집회 용품이므로, 헌법과 집시법으로 합법성을 보장받은 것이라고 반발했다.

중구청의 '화단 조성'도 문제가 제기됐다. 대한문 앞은 문화재보호법상 역사문화환경보존지역이라 화단 설치 전에 문화재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문화재보호법 제35조). 그러나 (경향신문)에 따르면 중구청은 문화재청에 현상변경허가를 신청하지 않았다. 중구청은 이에 대해 "천막농성장을 철거하기 위한 임시시설물이기 때문에 허가를 받을 사안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노조와 협의 도중 기습철거한 중구청... "행정권을 폭력적으로 남용"
▲ 대한문 앞에 설치된 펜스와 화단이다. 분향소의 면적보다 더 넓게 설치돼 있어 시민들의 통행은 더 불편해진 상황이다. ⓒ 김혜승


무엇보다 경찰들과 중구청 직원들의 행동은 '국가폭력'으로 보일 정도다. 협의를 조율하는 과정이었음에도 중구청은 '대화'가 아닌 일방적 철거를 단행했다. 새벽 기습철거로 인해 텐트 안에서 잠을 자고 있던 해고자 3명은 신발도 신지 못한 채 밖으로 떠밀려 나왔다. 이후 소식을 들은 해고자와 시민들이 모였고, 온몸으로 철거를 막았다. 장비로 무장한 경찰과 중구청 직원들은 이들을 힘과 공권력으로 끌어내렸다.

이 과정에서 부상자가 생겼다. 영정 사진 등의 물품이 빼앗기는 것에 항의하던 해고자와 시민 등 49명이 연행되기도 했다. '정당한 자기 방어'가 공권력 앞에서 방해가 되었다는 이유다. (참여연대)는 이를 "실정법 위반만을 재단하여 행정권을 폭력적으로 남용한 행위"라고 꼬집었다. 

만약, 중구청 직원 혹은 경찰 중 누군가 퇴거 명령을 거부했다면 어땠을까? 스페인은 주택시장 붕괴 이후 수십여만 명이 강제퇴거 상황에 놓여 있다. (아에프페)(AFP) 통신에 따르면 스페인 정부 집행관들은 열쇠수리공조합에게 대출금을 갚지 못한 이들을 집에서 쫓아내는 일을 도우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그들은 돕지 않기로 선언했다고 한다. 파산한 가정의 문을 강제로 따고 들어가는 일은 "우리들에게 심적 갈등을 일으키기 때문"이라는 것. 일부 지역에선 소방관들을 대신 투입했지만, 이는 더 큰 저항을 불러일으켰다. 카탈루니아 소방관조합은 "우리는 위험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을 돕는다, 사람들을 위험에 빠뜨리려는 은행을 돕는 것은 우리의 본래 업무와 모순된다"고 말했다.

대한문의 상황은 다르다. 다소 젊어 보이는 중구청 직원들에게 해고자들과 시민이 하소연하기도 했지만, 그들은 외면할 뿐이었다. 지난 6일, 토요일임에도 불구하고 공무원인 중구청 직원들은 경찰들과 함께 대한문을 둘러쌌다. 공권력의 감시는 1평 남짓한 돗자리 위에 앉아 있는 해고자와 시민을 압도했다. 조달되는 물품들도 모두 빼앗기고 있는 상황이다.

우려되는 것은 또 다시 시작될지도 모를 해고자들의 죽음이다. 쌍용차 해고자 이창근씨는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남겼다. 

우리는 탄압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죽음이 이어질까 두렵다, 우리는 구속과 연행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진실이 매장되는 것이 두려울 뿐이다.

"여기 무덤으로 내가 들어가야겠어요"라는 해고자의 말을 가벼이 넘기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서러운 자리에 다시 모인 사람들... 그게 '사람의 마음'이다"
▲ 지난해 5월, 연대 방문 온 시민들로 북적이는 쌍용차 분향소 모습. ⓒ 김혜승


그러나 해고자들과 시민들은 다시 일어섰다. 비 내리던 6일 열린 추모 미사에는 비옷을 입은 시민들이 모여 자리를 함께했다. 한진중공업 대량 해고 사태에 항의하며 85호 크레인에 올랐던 김진숙씨는 그들의 모습을 이렇게 설명한다. 

"사람을 몰아낸 자리에 흙을 붓고 황급히 사철나무를 꽂고 그 흙을 밟았다고 사람들을 잡아갔다. 휑하고 서러운 자리에 다시 모인 사람들. 어쩌면 잡혀갈 수도, 어쩌면 다칠 수도 있는 자리에 선뜻 달려간 사람들. 그게 사람의 마음이다."

쌍용차 해고자들의 '생사를 건 행동'은 늘 스러져가는 동료의 죽음에서 시작했다. 분향소, 단식, 철탑 농성 등. 부당한 해고로 인한 둉료들의 무력한 죽음이 그들을 거리로, 하늘로 나서게 했다. '생명'이 맞닿아 있는 싸움이다. 

8일부터는 대한문 앞에서 저녁 촛불 문화제를 이어갈 예정이다. '함께살자 희망 지킴이'에서는 'H-20000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십시일반 모은 2만 개의 부품으로 쌍용차 해고자들이 4년만에 자동차를 만든다고 한다. 2만 개의 부품에는 프로젝트에 참가한 사람들의 이름을 새긴다. 이 자동차는 6월 8일 모터쇼에서 공개한 후, 기부할 예정이다. 끝으로 2009년 쌍용차 파업에 참여한 이유로 구속돼 3년간의 복역을 마치고 출소한 후 철탑에 올라 농성 중인 한상균씨의 말을 덧붙인다. 

"공장에서 쫒겨나고 길거리서도 짓밟히는 '국민행복시대'는 어느 나라 얘긴가? 죽지 못해 살아온 4년, 혼자가 아님을 가르쳐준 4년, 시대의 아픔을 담은 연대의 꽃으로 대한문을 반드시 지킬 것이다. 사회적 경제적 약자들을 짓밟아 증폭될 사회 갈등은 돈으로 계산할 수도 없는 재앙임을 박근혜정부는 외면하고 있다."
김혜승(gptmd37)

2012년 11월 19일 월요일

[사설] ‘농성촌 천막’의 간절한 호소까지 틀어막을 텐가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11-18일자 사설 '[사설] ‘농성촌 천막’의 간절한 호소까지 틀어막을 텐가'를 퍼왔습니다.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과 용산참사 유가족 등이 농성중인 서울 대한문 앞 ‘농성촌’에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관할 서울 중구청과 남대문경찰서가 농성을 위해 쳐놓은 천막들을 강제철거하기로 방침을 정했기 때문이다. 중구청은 오는 29일이 최후시한이라고 농성자들에게 통보한 상황이다. 우리 사회의 소외와 불평등을 상징하는 이들의 “함께 살자”는 호소, 그리고 정의·평화를 실현하라는 각계의 목소리를 공권력은 끝내 틀어막기로 작정한 모양이다. 그 불통과 배려없음에 실망하지 않을 수 없다.중구청은 농성촌 천막이 도로교통법상 불법시설물이라 철거가 불가피하다고 설명한다. 7개월째 농성중인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의 천막 2동과 지난 12일 새롭게 농성을 시작한 용산참사 유가족, 강정마을 주민, 4대강 반대 운동가 등의 천막 1동이 허가 없이 설치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농성촌의 존재 이유를 외면한 형식논리에 지나지 않는다. 그 속내는 이명박 정부와 자본의 이해에 반하는 목소리를 더는 허용하지 않겠다는 것일 뿐이다.차가운 아스팔트에 천막을 치고 농성중인 이들은 누구인가. 이 땅에서 가장 억압받고 억울한 사람들이다. 쌍용차에선 2009년의 정리해고 이후 해고노동자와 가족 등 23명이 자살이나 돌연사로 세상을 떠났지만 달라진 것이 없다. 국회 청문회에서 나온 불법적 회계조작과 ‘기획 도산’의 증거들도 무용지물이다. 회사 쪽이 ‘정리해고 1년 뒤 복직’을 약속한 무급휴직자 450여명조차도 아직까지 제자리로 돌아가지 못했다. 용산참사는 경찰의 무리한 과잉진압이 참사의 근본 원인으로 드러났지만, 여전히 희생자가 생긴 모든 책임은 망루 농성을 벌인 세입자들에게 씌워져 있다.통행의 어려움이나 도시 미관 등을 이유로 농성촌을 막으려 할 게 아니라, 이들의 호소를 따뜻하게 보듬고 진정한 해결책을 찾으려는 노력을 게을리한 것을 반성해야 마땅하다. 김정우 쌍용차 노조지부장의 단식은 벌써 40일이 지났다. 지난 7월 서울행정법원은 경찰이 불허한 대한문 앞 쌍용차 추모집회를 허용하는 판결을 내렸다. 당시 법원은 “집회가 금지됨으로써 노조에 생길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예방하기 위한 긴급한 필요가 있고, 집회신청을 받아들여도 공공복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고 볼 수 없다”고 이유를 밝혔다. 농성촌에 대해서도 법원과 동일한 인식이 필요하다. 대한문 농성촌은 우리 사회가 더불어 사는 공동체를 유지할 능력과 자세가 있는지 판가름하는 시금석이다.

2012년 7월 28일 토요일

'신이 내린 땅' 두물머리…정부-농민 갈등 깊어간다


이글은 노컷뉴스 2012-07-28일자 기사 ''신이 내린 땅' 두물머리…정부-농민 갈등 깊어간다'를 퍼왔습니다.
마지막 4대강 공사현장…강제철거 앞두고 긴장감 팽배…농가 4곳 강제수용 거부

 

마지막 4대강 공사현장으로 알려진 경기도 양평의 두물머리. 국토해양부가 다음달 6일 이주를 거부한 4개 농가에 대해 행정대집행을 통보한 가운데, 두물머리 현장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26일 마을 입구에 들어서자 '두물지구 사업 외부인은 간섭말라!', '한강살리기 사업은 우리의 숙원이다' 등 현수막이 곳곳에 눈에 띄었다.

3년째 공사를 반대하는 시민·종교단체 등이 두물머리에 들어오면서 주민들은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취재진을 경계하는 눈빛도 보였다. 

5대째 거주한 주민 손기용(57) 씨는 "지역 주민들이 모두 환경사업을 반대하는 것처럼 오인돼 억울하고 정치판의 중심에 서는 느낌"이라며 불만을 감추지 못했다.

'신이 내린 땅'으로 불릴 만큼 비옥한 5만평 규모의 두물머리 유기농지에서 경작을 하던 농가는 11곳. 현재 7개 농가가대체부지와 저리 융자를 받고 떠났다. 남은 4개 농가는 정부와 대립하면서 농사일에 전념하지 못했다. 이에 일부 비닐하우스는 뼈대만 남거나 군데군데 찢겨진 채 잡초만 무성했다. 

12년차 두물머리 농민 서규섭(45) 씨는 "정부가 4대강 사업 때문에 철거를 하려고 하는데 두물머리는 가뭄이나 홍수가 나지 않는 곳"이라며 "영농법인 단체 등에게 맡겨 유기농업을 유지하자는 제안도 거절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이에 대해 사업시행자인 서울지방국토관리청 임광수 하천국장은 "유기농지라도 하천법상 영농행위가 금지돼 있다"며 "전국 4대강 사업지에 편입된 비닐하우스 3만 3,000동이 철거됐는데 두물머리만 봐줄 수 없다"고 말했다.

앞서 서규섭 씨 등 4명은 지난 24일 행정대집행 효력정지 신청과 행정대집행 계고처분 취소청구 소송을 서울행정법원에 제기했다. 

한편, 정부는 다음달 6일 오전 6시 비닐하우스 29개동에 대한 강제 철거를 진행할 방침이어서 두물머리를 둘러싼 갈등은 커질 전망이다.

CBS 고무성 기자

'신이 내린 땅' 두물머리…정부-농민 갈등 깊어간다


이글은 노컷뉴스 2012-07-28일자 기사 ''신이 내린 땅' 두물머리…정부-농민 갈등 깊어간다'를 퍼왔습니다.
마지막 4대강 공사현장…강제철거 앞두고 긴장감 팽배…농가 4곳 강제수용 거부

 

마지막 4대강 공사현장으로 알려진 경기도 양평의 두물머리. 국토해양부가 다음달 6일 이주를 거부한 4개 농가에 대해 행정대집행을 통보한 가운데, 두물머리 현장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26일 마을 입구에 들어서자 '두물지구 사업 외부인은 간섭말라!', '한강살리기 사업은 우리의 숙원이다' 등 현수막이 곳곳에 눈에 띄었다.

3년째 공사를 반대하는 시민·종교단체 등이 두물머리에 들어오면서 주민들은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취재진을 경계하는 눈빛도 보였다. 

5대째 거주한 주민 손기용(57) 씨는 "지역 주민들이 모두 환경사업을 반대하는 것처럼 오인돼 억울하고 정치판의 중심에 서는 느낌"이라며 불만을 감추지 못했다.

'신이 내린 땅'으로 불릴 만큼 비옥한 5만평 규모의 두물머리 유기농지에서 경작을 하던 농가는 11곳. 현재 7개 농가가대체부지와 저리 융자를 받고 떠났다. 남은 4개 농가는 정부와 대립하면서 농사일에 전념하지 못했다. 이에 일부 비닐하우스는 뼈대만 남거나 군데군데 찢겨진 채 잡초만 무성했다. 

12년차 두물머리 농민 서규섭(45) 씨는 "정부가 4대강 사업 때문에 철거를 하려고 하는데 두물머리는 가뭄이나 홍수가 나지 않는 곳"이라며 "영농법인 단체 등에게 맡겨 유기농업을 유지하자는 제안도 거절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이에 대해 사업시행자인 서울지방국토관리청 임광수 하천국장은 "유기농지라도 하천법상 영농행위가 금지돼 있다"며 "전국 4대강 사업지에 편입된 비닐하우스 3만 3,000동이 철거됐는데 두물머리만 봐줄 수 없다"고 말했다.

앞서 서규섭 씨 등 4명은 지난 24일 행정대집행 효력정지 신청과 행정대집행 계고처분 취소청구 소송을 서울행정법원에 제기했다. 

한편, 정부는 다음달 6일 오전 6시 비닐하우스 29개동에 대한 강제 철거를 진행할 방침이어서 두물머리를 둘러싼 갈등은 커질 전망이다.

CBS 고무성 기자

2012년 7월 2일 월요일

[사설] 박원순 시장의 강제철거 제동, 희망이 보인다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0701일자 기사 '[사설] 박원순 시장의 강제철거 제동, 희망이 보인다'를 퍼왔습니다.

지금도 우리 기억에 생생하고, 영화 으로 재조명을 받고 있는 용산참사는 강제철거가 낳은 끔찍한 비극이다. 용산참사가 일어난 지 3년여가 지났지만 이들처럼 삶이 뿌리째 뽑힐 처지에 놓인 이들이 제2, 제3의 용산에서 지난한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최소한의 이주대책마저 보호받지 못한 봉천동 세입자들이 강제철거의 위협을 받고 있고, 용산참사 현장인 남일당 건물의 도로 건너쪽 용산3구역도 강제철거가 예고돼 있다.서울시가 재개발·재건축 구역의 이러한 강제철거 현황에 대해 실태 조사를 벌인다고 한다. 서울에 봉천구역처럼 강제철거가 임박한 곳이 있는지 살펴보고, 조합과 세입자를 중재해 강제철거를 막아보자는 박원순 시장의 지시에 따른 것이다. 앞서 박 시장은 충돌이 예상되던 봉천동 재개발구역의 강제철거는 안 된다며 막고 나서 일단 제동을 걸었다.서울시의 강제철거 개입 방침은, 그동안 세입자 문제는 시행사와 조합이 알아서 할 일이라며 손 놓고 있던 행정기관이 사태 해결에 나섰다는 데 적지 않은 의미가 있다. 오세훈 시장 재임 때엔 세입자들이 시청이나 구청 앞에서 억울함을 호소하면, 당국은 ‘생떼거리를 쓰는 사람은 민주시민 대우를 받지 못하오니 제발 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는 펼침막을 내붙였다고 한다.서울시는 구역별로 갈등이 첨예하지 않은 단계엔 서울시 갈등조정담당관이 조합과 세입자 간 타협을 모색하고, 철거가 임박한 곳은 고위 책임자를 직접 협상 중재자로 내세울 계획이라고 한다. 강제철거는 법률에 따라 가능한 조처일 수 있으며, 이미 승인이 나고 관리처분이 이뤄진 이상 시가 할 수 있는 강제력은 한계가 있다. 하지만 수십년 살던 주민들이 하루아침에 길거리에 나앉게 됐는데도 강제철거라는 폭거에 행정편의적으로 눈을 감아온 관행은 바뀌어야 한다. 박 시장은 “겨울은 물론 여름에도 강제철거는 안 된다”며 “정 안되면 임대아파트 같은 걸 제시하면서 협상 폭을 넓히도록 하고 부탁이라도 하겠다”고 했는데 그런 자세가 중요하다.근본적인 문제는 재개발사업이 원주민을 폭력적으로 밀어내는 방식으로 진행돼온 데 있다. 개발이익은 정부, 관료, 건설회사에 돌아갔지 결코 주민이나 세입자에게 돌아오지 않았다. 더욱이 조합이 세입자들의 어려운 처지와 무지를 틈타 보상문제를 얼렁뚱땅 넘어가려 하는 바람에 갈등이 되풀이되고 있다. 관리감독 책임이 있는 행정기관마저 열악한 지위에 있는 세입자 보호에 적극 나서지 않는다면 용산참사는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2012년 7월 1일 일요일

박원순 시장, 예정됐던 봉천동 강제철거 막아


이글은 프레시안 2012-06-29일자 기사 '박원순 시장, 예정됐던 봉천동 강제철거 막아'를 퍼왔습니다.
"강제철거되면 일정 취소하고 현장 가겠다고 엄포"

박원순 서울시장이 철거가 예정된 서울 관악구 봉천동의 강제철거를 중단시켰다. 박 시장은 봉천 12-1 주택재개발구역 철거 예정 소식을 접하고 이를 중단시킨 과정을 29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

박 시장은 이 글에서 "그저께 오후에 귀국한 저의 트위터에 몇 개의 글이 내 눈을 사로잡았다"며 "봉천 12-1 주택재개발구역의 23가구 강제철거가 어제 예정되어 충돌이 예상되고 용산참사의 악몽이 상기된다는 것이었다"라고 썼다.

박 시장은 "비서실장에게 꼭두새벽에 전화를 걸어 현장의 상황을 점검하고 확인해 달라는 요청을 했다"며 "만약 강제철거가 개시될 예정이라면 내가 다른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현장을 가서 당사자들의 의견을 청취해 볼 것이라는 엄포까지 포함해서 강제철거 중단의 의지를 분명히 했다"고 전했다.

박 시장은 "곧바로 서울시의 주택문제를 총책임지고 있는 주택실장이 현장에 출동했고, 당장 철거조치가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는 보고를 해왔다"며 "일단 긴박한 상황은정리됐다"고 밝혔다.

박 시장은 "강제철거는 법률에 따라 가능한 조치일 수 있다"면서도 "그래도 강제철거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선을 그었다. 박 시장은 "우리는 이미 용산참사를 경험한 바 있다"며 "가능한 한 대화하고 그 과정이 아무리 지난하다고 한들 합의를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 적어도 서울시장으로서의 제 입장"이라고 말했다.

박 시장은 "수십 년 살던 주민들 입장에서 자신들의 삶의 뿌리가 뽑혀져 나가는데 행정의 편의라는 이름으로 강제철거라는 무기에 의지하던 과거의 행정 관행은 바뀌어야 한다"며 "외국에서 대규모 개발이 이루어지는데 수십 년이 걸리는 데에는 이런 온전한 합의를 중시하기 때문"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허환주 기자

2012년 4월 14일 토요일

KBS 김인규 사장, '새누리 압승' 총선으로 '기세등등'?


이글은 미디어스 2012-04-13일자 기사 'KBS 김인규 사장, '새누리 압승' 총선으로 '기세등등'?'을 퍼왔습니다.
침묵 깨고 "새노조 특정정당 편향" 공격…13일, 노조 농성천막 강제철거


▲ 김인규 KBS 사장 ⓒ연합뉴스
그동안 KBS 새 노조 파업에 대해 침묵해왔던 김인규 KBS사장이 4.11 총선의 '새누리당 압승' 결과가 나온 이후 전 직원들에게 메일을 보내는 등 적극 공세를 이어가고 있다. 서울 여의도 KBS본관 앞에 설치된 김인규 퇴진 촉구 농성 천막도 강제 철거됐다.
KBS 불공정 보도 문제를 불러온 당사자로 MB특보 출신인 김인규 사장을 지목한 KBS 새노조는 김 사장의 즉각적 퇴진을 요구하며 지난달 6일부터 총파업을 진행했으나, 김 사장은 한 달 넘게 이어지는 파업에 대해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었다. 
김 사장이 입을 연 것은 4.11 총선 다음날인 12일이다. 새 노조가 총파업에 돌입한 지 38일 되는 날이다.
김 사장은 12일 오전, 전 사원들에게 보낸 메일에서 "본부노조(새 노조)의 파업으로 어느 때보다 인력이 부족한 상태인데도 공정한 선거방송을 차질없이 치러낼 수 있었다"며 "노조의 이번 파업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억지파업이라는 점을 직시하고 하루속히 업무에 복귀할 것을 다시 한 번 촉구한다"고 밝혔다.
김 사장은 "본부노조는 출범 이후 줄곧 대화의 상대방을 향한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무분별한 공세를 계속했다"며 "총선을 앞두고 특정 정당에 노골적으로 편향된 모습을 보임으로써 공영방송인의 자세를 스스로 저버린 것은 매우 부적절하고 유감스러운 행태였다"고 공격했다.
이어 "공사 1기생으로 들어와 평생을 몸바쳤던 KBS에 사장으로 돌아온 제가 소원했던 것은 우리 KBS가 정치권력이나 자본으로부터 독립된 진정한 공영방송이 될 수 있도록 그 기틀을 마련해야겠다는 것이었다"며 "수신료 인상에 그토록 매진했던 것도 수신료가 현실화돼야 진정한 공영방송으로 우뚝 설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 때문이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김 사장의 이 같은 발언은 새 노조 파업에 대한 선전 포고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KBS 충주방송국의 한 기자는 KBS 사내게시판을 통해 "내용을 보면 메시지는 '격려'라기 보다는 'KBS본부 너네 졌으니까 이제 숙이고 들어와'라는 포고"라며 "편지 쓰시면서 입가에 아련히 맺히는 미소가, 그리고 행간에 스며있는 자신감이 자꾸 떠오르고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응대했다.
이 기자는 "KBS본부의 정치편향을 운운하시면서 (특보 출신의) KBS사장이 이런 편지를 보내다니 참으로 남 보기가, 바깥 사람들이 알까 부끄럽다. 이번 파업은 시작도 사장님이고, 끝도 사장님"이라며 "선거 다음날 아침에 자신감에 가득 찬 이런 편지를 보내시는 걸 보니 이번 총선에 큰 기대를 거셨던 모양이다. 결과에도 만족하신 듯 하다"고 꼬집었다.
이어 "'방송인 김인규의 공영방송 특강'이라는 대작도 쓰셨고, KBS가 정치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되도록 기틀을 마련하는 것이 평생 단 하나 소원이셨다는데, 대통령 후보 캠프에 몸담았던 사람이 KBS 사장 자리에 앉는 것이 KBS의 독립성을 순식간에, 결정적으로, 무참하게 망가뜨리는 사건이라는 것을 모르시지는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 13일 오전, 경찰의 강제 철거로 완전히 부서진 김인규 퇴진 촉구 농성 천막(오른쪽) ⓒ KBS새 노조 트위터

13일에는 새 노조가 KBS본관 앞에 설치한 농성 천막도 강제 철거됐다. 새 노조는 해당 천막을 집회 물품으로 사전에 신고했음에도 서울 영등포경찰서 측에서 강제철거한 것이다. 13일 오전 7시 20분경, 경찰이 강제 철거한 이후 새 노조 조합원들이 천막을 다시 세우려했으나, KBS 청경들이 이를 막아서면서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총선 하루 전날인 10일에는, 김현석 새 노조 위원장이 파업 현수막 철거에 항의하는 과정에서 KBS 청경에 의해 폭행당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KBS 새 노조 남철우 홍보국장은 "천막을 설치하려는 곳은 KBS 땅도 아닌 곳인데, 왜 청경들이 구사대처럼 우리를 막아서는지 모르겠다. 청경들이 단독으로 행동하겠느냐"며 "사측의 관리가 뒤에 있음을 방증한다. 일련의 조치에 대해 조합원들이 매우 분노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여성 조합원들도 많은 상황이었는데, 청경 50여 명이 천막을 못치게 막아서면서 몇몇 조합원들은 피를 흘리는 등 부상을 입었다"며 "오늘(13일) 오후 1시 쟁의대책위원회를 열어 향후 김인규 퇴진투쟁을 어떻게 가져갈 것인지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KBS사측은 "시비가 있었을 뿐 폭행은 전혀 없었다"며 "해당 지역은 KBS가 시설 사용료를 구청에 납부하고 있는 회사 관리지역으로, 노조에서 시설물을 설치할 경우 구청과는 별도로 회사측으로부터 허가를 받아야 하는 구역"이라고 해명했다. 이어 "사장메일 발송 계획은 임원회의에서 사전에 공표된 것으로 총선 결과와 무관하다"고 덧붙였다.

곽상아 기자

2012년 4월 10일 화요일

"용산을 기억한다면, 그를 뽑을 수 없다"


이글은 프레시안 2012-04-10일자 기사 '"용산을 기억한다면, 그를 뽑을 수 없다"'를 퍼왔습니다.
[인권오름] 김석기 후보, 지금이라도 사퇴하시라

4월 11일 치러지는 19대 국회의원 총선거에 923명이 후보 등록을 해 3.8:1의 경쟁률을 보이고 있다. 그런데 923명 중 눈에 띄는 전직 경찰 2명이 있었으니 바로 허준영, 김석기다. 각각 여의도 농민 시위진압과용산 철거민 농성 진압 과정에서 여러 명의 목숨을 앗아간 경찰 책임자였다. 국민의 생명을 앗아간 경찰폭력에 대해 아직도 정당한 공권력 운운하는 그들을 이대로 두고 볼 수 없어 기획했다.

용산을 제대로 기억하기 위한 싸움

2009년 1월 20일, 용산 남일당을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잊지 못하고 있다.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수많은 경찰병력이 건물 하나를 둘러싸고, 물대포를 수 시간째 쏘고 있었던 그 곳에, 경찰특공대가 진입하고 얼마 안 있어 화염이 치솟았다. 철거민들은 '여기 사람이 있다'고 외치면서 쓰러져갔고, 불길을 피해 건물 아래로 투신했다. 도심 재개발이라는 자본의 오래된 복마전이 끔찍한 국가폭력으로 재현되는 순간이었다.



▲ 김석기 전 청장. ⓒ인권오름
그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강제철거에 맞서 싸우다 죽고 다쳤지만, 그 날 용산에서처럼 망루에 올라간 지 하루 만에 대화나 협상 한 번 없이 경찰에 의해 죽임을 당한 적은 없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김석기 서울지방경찰청장이 있었다. 당시 현장을 직접 진두지휘하고 경찰 특공대 투입을 직접 결정한 게 김석기였다. 참사 이후 법정에 보낸 답변서에서 특공대 투입 후 무전기를 꺼놨다는 황당한 답을 했던 그 사람 말이다.

갓 3년이 지난 지금, 김석기는 너무나 당당하게 정당한 공권력의 집행자를 자처하며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다. 3년 전 그 날을 아련한 몇몇 장면으로만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김석기가 기억투쟁을 시작한 것이다. 고향인 경주에 새누리당 공천을 신청했다가 탈락하자 무소속 출마를 선언하며 이렇게 말한다. "이번 공천 탈락 원인이 용산사고 책임론에서 비롯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으며 새누리당 주요 당직자가 저에게 '용산 문제 때문에 공천을 줄 수 없다'고 직접 이야기했다. 경찰이 나라와 국민을 지키기 위해 정당한 법 집행을 한 건데, 그 탓에 공천을 줄 수 없다고 하면 대다수 국민은 납득할 수 없을 것이다."

용산 책임론에 따른 후보 사퇴는커녕, 경주 선거 승리로 용산 진압이 정당했다는 것을 증명하겠다는 호기까지 느껴진다. 그래서 경주 선거는 단지 부도덕하고 뻔뻔한 후보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용산을 제대로 기억하기 위한 싸움이다.

철거민은 집으로! 김석기는 감옥으로!

김석기가 오사카에서 잠시 쉬었다가 돌아와 국회에 입성하겠다고 하는 지금, 그날 망루에서 겨우 죽음을 모면한 철거민 8명은 아직도 감옥에 수감돼 있다. 오로지 살고 싶어서 망루에 올라갔던 평범한 사람들은 결국 죽어서 내려오고, 감옥에 갇혔다.

김석기는 서울지방경찰청장을 사퇴하면서 "극렬한 불법폭력행위에 대한 경찰의 정당한 공권력 행사과정에서 발생한 예기치 못한 사고였습니다"라고 말했지만, 국가인권위는 서울고등법원에 당시 경찰권 행사는 경찰이 주의의무를 다하지 못한 과잉조치였다는 의견서를 제출한다. 하지만 법원은 경찰의 책임은 묻지 않고, 오로지 철거민들에게 그날 농성의 책임을 물었다. 그 덕에 김석기가 유유히 오사카 총영사를 거쳐 국회의원 후보로 나설 수 있게 된 것이다.

용산참사와 같은 명백한 경찰 과잉진압에 대한 불처벌은 김석기의 다음과 같은 발언도 가능케 한다. "미국 경찰에게 수도 워싱턴 안에서 건물을 점거하고 화염병을 던지는 상황이 벌어졌다면 어떻게 하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답변은 아주 심플했다. 발포했을 것이라고 했다."(2010.3.22  인터뷰) 이런 황당한 말을 더 이상 듣고 싶지 않다면 낙선을 넘어 지금이라도 김석기를 감옥으로 보내야 한다.

(이 글은 "염치없다. 뻔뻔하다! 지금이라도 후보사퇴하시라!"라는 제목으로 주간인권신문 에도 실렸습니다. 기사들은 정보공유라이선스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정보공유라이선스에 대해 알려면, http://www.freeuse.or.kr 을 찾아가면 됩니다.)

  • - 관련사이트
  •  용산철거민사망사건 진상조사단 자료집(2009.1)
  •  [소책자]용산철거민 살인진압의 진실
  •  [소책자]용산참사의 진실- 여기사람이있다
-관련자료
 '용산사건 경찰 주의의무 위반했다', 국가인권위 의견서
  •  김석기 경찰청장 내정자 사퇴 기자회견 전문



/정록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