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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3월 30일 토요일

"용산 개발? 우리 좀 이제 놔주세요 계속하면 아파트 위에 망루 올릴 것"


이글은 오마이뉴스 2013-03-29일자 기사 '"용산 개발? 우리 좀 이제 놔주세요 계속하면 아파트 위에 망루 올릴 것"'을 퍼왔습니다.
[현장] '엎어진' 31조짜리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사업... 서부이촌동 민심

▲ 27일 서울 용산구 서부이촌동의 중산아파트. 아파트 벽면에 '한강수가 혈수가 되도 내집 사수한다'는 글귀가 적혀있다. ⓒ 김동환

"용산참사 당한 분들은 세입자지만 우리는 집주인들이잖아요. 평생 뼈빠지게 일해서 겨우 하나 마련한 집을 눈뜨고 뺏기게 생겼는데 지금 보이는 게 있겠어요? 개발이고 나발이고 강행하기만 해봐. 한강변에 있는 우리 아파트 옥상에 망루 올릴테니까."

27일 용산구 이촌2동(서부이촌동)의 중산 아파트. 이곳 주민 조안나씨는 벌개진 얼굴로 말릴 새도 없이 울분을 뭉텅뭉텅 쏟아냈다. '최후 대책이 뭐냐'는 질문에 그는 망설임 없이 '망루' 얘기를 꺼냈다. 그는 "요즘 통 보이지 않는 박원순 시장에게도 이 얘기를 똑똑히 전해달라"고 덧붙였다.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사업이 6년 만에 파산 위기를 맞으면서 사업 향방에 대해 이목이 쏠리고 있다. 20여 개 개발사 중 최다 지분을 가진 한국철도공사(코레일)가 사업정상화 방안을 내놓긴 했지만 원만한 사업 진행의 열쇠를 쥐고 있는 서부이촌동 주민들은 완강히 반대하고 있다.

개발사들의 증자를 통한 획기적인 주민 보상안이 제시되지 않을 경우 31조 규모의 개발 사업이 '엎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코레일은 이 사업에 추가로 돈을 더 넣을 생각이 없다는 입장이다.

▲ 27일 용산구 서부이촌동 시범아파트. 벽면에 '서민재산 강탈하는 개발사업 결사반대'라는 글자가 페인트칠로 쓰여져있다. ⓒ 김동환

주민들 "드림허브 보상 사기에 속았다"

4호선 신용산 역 5번 출구 앞에서 0017번 버스를 타고 10여 분 움직이면 서부이촌동 앞을 지난다. 버스 정류장으로 세 개, 어른 걸음으로 걸어서 15분 정도면 대각선으로 가로지를 수 있는 작은 크기의 동네다. 봄이 찾아왔지만 최근 이 지역 분위기는 과거 어느 때보다 을씨년스럽다. 이곳이 포함된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 사업이 흔들리면서 주민들 사이에 찬반 여론이 극도로 날카로워져 있는 상태기 때문이다.

이곳 주민들이 양분되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07년부터다. 오세훈 당시 서울시장이 코레일이 낸 부지 개발 사업에 주민 동의 없이 서부이촌동을 포함시키면서 이 지역 주민들은 찬성과 반대로 갈라지기 시작했다.

서부이촌동은 5개의 아파트가 주택지역을 감싸는 구조로 이뤄져 있다. 행정상으로도 이렇게 6개 구역으로 나뉜다. 주민들이 '지번'이라고 부르는 단독·연립·다세대주택(604가구)는 대체로 개발을 찬성하는 쪽이었다. 반대로 한강을 마주하고 있어 조망권 이점을 가진 대림아파트(638가구)와 성원아파트(340) 주민들과 대지가 시 소유로 되어 변변한 보상을 받기 어려운 중산(266가구)·시범아파트(228가구) 주민들은 개발 반대 입장이었다.

2011년 서부이촌동 주민조사에서는 개발에 찬성하는 주민들이 56%로 절반 이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 조사에서도 구역에 따른 개발 찬반은 뚜렷히 갈렸다. 대림아파트와 성원아파트의 찬성률은 39.6%와 32.4%에 불과했던 것. 중산아파트와 시범아파트는 땅 소유주가 아니라는 이유로 주민 조사에 포함되지 않았다.

전체 주민 중 56%의 찬성을 이끌었던 건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사인 드림허브가 제안했던 파격적인 보상이었다. 드림허브는 주민들에게 이주비로 최고 3억 원을 무이자로 제공하고 이사비로 최고 3500만 원을 지급하며 계약금 10%만 미리 내면 잔금 90%를 입주시에 치를 수 있게끔 하겠다면서 확약서를 작성했다.

▲ 27일 서울 용산구 서부이촌동 대림아파트 주민 서숙이씨가 주민 동의서를 구하며 드림허브측이 배포한 팜플렛을 들어보이고 있다. ⓒ 김동환

문제는 지난해 8월 터졌다. 보상을 약속하며 주민동의를 받았던 드림허브 측이 사업설명회에서 돌연 확약서 내용을 지킬 수 없다고 선언한 것이다. 이날 아파트 노인정에서 만난 대림아파트 주민 서숙이씨는 "드림허브가 아파트 33평을 통합개발하면 보상금으로 12억 2천만 원을 주고 각종 프리미엄을 합치면 30억 6925만 원으로 불려준다고 하더니 입을 딱 씻더라"고 설명했다.

서씨는 "국내에서 내노라하는 기업 30개가 모여서 개발을 하면서 변명이라고 하는 것도 기가 막혔다"면서 "용산국제업무지구가 도시개발이 아니라 재건축·재개발인줄 알았다고 하는데 도대체 말이 되느냐"고 분통을 터트렸다.

"재개발 알아서 할 테니 우리 풀어달라"

드림허브가 확약서를 뒤집으면서 동네 분위기도 뒤집혔다. 이날 만난 이 지역 주민 10여 명 중 개발 찬성은 2명 뿐이었다. 개발 찬성이라는 입장을 가진 주민도 '조건부' 였다. 한 주민은 "시간이 이렇게 지났으니 개발은 해야하지 않겠느냐"면서도 "확약서 내용을 지키지 않으면 사기범과 다를 게 없다"고 잘라 말했다.

찬성하는 주민들은 서부이촌동의 특수성을 이유로 꼽았다. 동네 자체가 만들어진 지 오랜 시간이 지났고 특히 지번쪽은 건축연한이 40년이 넘어가는 주택이 부지기수라는 것이다. 동네 면적이 좁아 단독 재개발은 어렵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지번 주민 최기종씨는 "어차피 개발을 해야 하는 동네인데 서부이촌동만 개발하기는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면서 "개발은 무조건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확약서 내용대로만 보상을 해준다면 반대하는 사람 없을 것"이라면서 "요즘 드림허브가 법정관리 들어가는 등 어지러워서 개발반대 의견이 나오는 것 같은데 정부에서 조금만 밀어주면 가능하지 않겠느냐"고 속내를 내비쳤다.

▲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을 맡은 드림허브측이 2009년 주민들과 맺은 확약서. ⓒ 김동환

개발 조건이 바뀌자 처음에는 압도적인 비율로 동의했던 지번 주민들 중에서도 상당수가 돌아섰다. 지번 주민인 이복순씨는 "처음에 보상을 보고 80%가 넘는 지번 주민이 동의를 했지만 보상이 바뀌자 그중 70%는 반대로 돌아섰다"면서 "반대로 돌아선 주민들이 즉시 동의 철회서를 만들어 시에 갖다 냈지만 이미 유효기한이 지난 후였다"고 말했다.

"드림허브 출자사 보면 코레일도 있고 삼성도 있고 그렇잖아요. 아니 아무렴 그 대기업들이 들어와서 거짓말 하겠어라는 생각들을 한 거죠. 지번에서도 동의했던 분들도 지금은 대부분 반대하고 있고 현재 동의하는 분들은 큰 평수를 가지고 있는 분들이에요."

재건축 여건이 안된다는 찬성론자들의 주장에 대해서도 이씨는 다른 입장을 보였다. 그는 "용산국제업무지구로 편입되기 이전에 이미 저희 나름대로 재개발을 추진하고 있었다"면서 "어차피 재개발을 해야 하는 건 맞는데 저희가 알아서 할 테니 구역 지정만 해제해줬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 27일 서울 용산구 서부이촌동 대림아파트. 강제수용을 반대하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 김동환

"이대로 가면 동네나 개발사나 모두 공멸"

이런 상황에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 사업의 총대를 맨 코레일은 최근 이 지역의 개발 여부 결정권을 서울시로 넘겼다. 보상 등 이 지역과 관련한 문제 때문에 개발이 지연되고 있으니 개발을 할 건지 말 건지를 서울시가 알아서 결정하라는 것이다.

코레일의 한 관계자는 "서부이촌동은 초기 사업계획에는 없었는데 서울시에서 한강르네상스 사업을 하면서 함께 하라고 해서 포함된 것"이라면서 "서울시에 6월 말까지 어떻게 할 건지 결정해달라고 요청했다"고 밝혔다.

주민들 사이에 흘러나오는 '6월 말 주민투표설'은 이런 코레일의 요청에서 비롯된 것이다. 당초 드림허브 측은 보상 지역에 대한 감정평가를 마친 후 주민 의견을 수렴하는 안을 고수해왔지만 채무불이행 사태 이후 코레일이 새로운 사업 정상화 방안을 내놓으면서 상황이 바뀐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서울시측은 "아직 결정된 바가 없다"고 말을 아꼈다.

주민 재투표 결과 6개 구역 모두가 개발을 반대할 경우 용산국제업무지구 사업 자체가 무산될 가능성도 점쳐진다. 용산국제업무지구 총 부지 중 서부이촌동의 비율은 약 12%. 개발사인 드림허브는 총 사업부지 중 변경 내역이 5%를 초과하면 서울시에 사업계획서를 다시 허가받아야 한다.

▲ 27일 서울 용산구 서부이촌동의 중산아파트. ⓒ 김동환

그러나 이미 한 차례 채무불이행이 있었기 때문에 현재와 같은 경기 상황에서 다시 대규모 부동산 개발 사업의 허가를 받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한강변 조망권을 가진 서부이촌동이 통째로 빠질 경우 전체 사업의 수익률이 낮아지는 것도 걸림돌로 지목된다.

상황이 이러니 서부이촌동 여론은 일촉즉발의 상황이다. 한 주민은 "의도적으로 이 화제는 올리지 않는다"면서 "동네가 온통 찬성파, 반대파로 나뉘면서 전부 말조심하는 분위기"라고 표현했다.

애초부터 개발을 반대해온 아파트 주민들은 행정 담당인 서울시 도시계획국 지구관리계획과에 항의 방문하는 횟수를 늘리고 주민투표 촉구를 요청하는 민원전화를 독려하고 있다. 6년 만에 찾아온 '개발 탈출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분위기다. 대림아파트 주민인 김진명씨는 "여기서 손절(손절매) 쳐주는 것이 코레일이나 드림허브가 할 일"이라면서 "이대로 가면 동네나 개발사나 모두 공멸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대출 이자에 허덕이다가 가장이 자살하는 일도..."

서부이촌동 주민들은 6년의 개발 과정을 거치면서 상당한 물적, 심적 고통을 함께 겪어야 했다.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서울시가 통합개발 방침을 정함과 동시에 이곳은 집을 팔 수도, 살 수도 없는 곳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미 지난해 기준으로 전체 2298가구 중 1250가구가 평균 3억 원이 넘는 빚을 지고 있는 상황. 이 지점에서 주민들은 서울시에 극도의 적대감을 드러냈다. 서울시가 멀쩡한 서부이촌동을 이 상황으로 몰아넣고서 책임을 지고있지 않다는 이유다.

일부 주민들은 "서울시도 개발사와 한통속"이라고 지적했다. 성원아파트 주민인 임통일씨는 "서울시가 적용한 도시개발은 논·밭만 있는 곳에 도시를 건설해서 사람을 유입시킬 때 쓰는 방식"이라면서 "여기 멀쩡히 아파트 다 있고 집 다 있는데 대책 없이 도시개발법으로 수용해서 강제로 밀어붙인다는 건 집 빼앗겠다는 말 아니냐"고 반문했다.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곳은 시가 땅 주인인 중산·시범 아파트였다. 도시개발을 할 경우 시유지는 동의절차 없이 강제 수용되며 보상비 협상도 어렵다. 주민들 사이에서 "서울시가 시유지를 코레일에 팔아먹으려 한다"는 원색적인 비난이 나오는 이유다.

중산아파트 주민 조안나씨는 "대출 받아서 4억 원 넘는 가격에 집을 샀는데 시에서 받을 수 있는 보상비는 다른데 가서 전세도 못 얻을 수준"이라면서 "서민 땅 빼앗아서 개발 참여한 기업들 배불리겠다는 것으로 밖에 안 보인다"고 분개했다.

"여기가 강변이라 전망이 정말 좋아요. 아파트는 40년 됐지만 우리 주민들 다 여기서 살고 싶어 해요. 대출받은 거 이자 다 갚고 있고 재개발은 우리끼리 하면 되요. 좀 놔달라고. 아무것도 모르는 서민들이 왜 맨날 시청에 데모하러 다녀야하고 도시개발법이 뭔지 생전 듣지도 보지도 못한 사람들이 왜 법 공부를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조씨는 "개발 결정 후 내내 마음 졸이며 지내느라 다들 불면증, 우울증, 두통 같은 스트레스성 질환은 기본으로 얻었다"면서 "강변에 있는 아파트 중 한 가구는 6년 동안 재산권 행사를 못하면서 대출 이자에 허덕이다가 가장이 자살하는 일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유가족들이 원하지 않아서 공개가 안 된 것 뿐 그런 식으로 파탄난 가정이 부지기수"라고 귀띔했다.

▲ 27일 서울 용산구 서부이촌동의 중산아파트. ⓒ 김동환

이곳 주민들 역시 주민투표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 등기상 아파트 땅은 시 소유지만 다른 곳이 개발구역에서 해제되면 이곳도 개발이 취소될 수 있다는 이유다.

중산아파트 주민 조아무개(78)씨는 "주민투표를 빨리 실시해야 하는데 서울시에서는 드림허브 편만 들면서 우선 감정평가부터 하자고 한다"면서 "우리도 이제 공부해서 감정평가 하면 법적으로 바로 강제집행이 가능하다는 것을 안다. 이젠 안 당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박원순 시장이 원주민 내쫓는 재개발 안 한다고 해서 기대했는데 지난해 8월에 낸 면담 신청을 아직도 안 받아주고 있다"면서 "(시장을) 만나게 되면 이게 어디가 원주민 위한 개발인지 꼭 묻고 싶다"고 덧붙였다.

용산국제업무지구 조성 사업이란? 용산국제업무지구 조성 사업은 용산구 한강로3가 40-1 코레일 부지와 용산구 서부이촌동 일대를 통합 개발해 용산역 인근에 국제업무 기능을 갖춘 서울의 부도심을 만들겠다는 목적으로 진행된 사업이다. 56만 6000㎡ 부지에 2017년까지 600미터가 넘는 랜드마크 빌딩을 포함한 67개 빌딩을 지어 국제업무 기능을 갖춘 대규모 복합단지를 건설하겠다는게 초기 계획이었다. 

당초 코레일 부지만 가지고 시작하려던 사업이었으나 오세훈 전 서울시장 2007년 7월 18일 개발 구역 안에 서부이촌동을 포함시키는 통합개발안을 발표하면서 확장됐다. 같은 해 12월 18일에 코레일 외 29개사가 합동으로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사업을 위한 법인인 드림허브프로젝트금융투자주식회사를 설립하면서 본격적인 사업이 시작됐다. 

그러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이어진 부동산 시장 침체로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이며 삽도 뜨지 못하던 개발사업은 거듭되는 자금난을 겪다가 올해 3월 13일 52억 원의 채권이자를 갚지 못해 최종부도 위기를 맞았다. 현재까지 용산국제업무지구에 투입된 자금은 총 4조 원으로 추산되며 사업이 최종 부도날 경우 피해액은 8조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드림허브의 2대주주인 롯데관광개발은 용산사업 부실로 인한 피해로 18일 법정관리 신청에 들어갔다. 

드림허브는 다음달 2일로 정해진 주주총회까지 법정관리와 법인 청산(부도)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드림허브 1대 주주인 코레일은 25일 용산국제업무지구의 랜드마크빌딩 시공권을 가지고 있던 삼성물산에서 시공권을 반납받고 코레일이 랜드마크 빌딩을 4조2000억 원에 선매입하기로 약속하는 사업정상화안을 내놨다. 빌딩 매입금과 랜드마크 빌딩 시공권을 바탕으로 투자처를 찾아 사업진행금을 마련하겠다는 계획이다. 

코레일은 다음달 2일 주주총회에서 이 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바로 청산 절차를 밟을 계획이다. 

김동환(heaneye)

2012년 12월 28일 금요일

"집 부수는 소리 무섭지만 여기서 죽을 수밖에..."


이글은 오마이뉴스 2012-12-28일자 기사 '"집 부수는 소리 무섭지만 여기서 죽을 수밖에..."'를 퍼왔습니다.
재개발로 94% 이주한 안양 덕천마을... 남은 주민들이 떠나지 못하는 이유


▲ 안양 덕천마을 ⓒ 유혜준

"그냥 돈 받고 나간다고 하는데 돈을 안 줘서 못 나가요. 집 부수는 소리 정말 무서워요. 나도 이곳에서 살기 싫어요, 오늘 이 집 부수고, 내일은 저 집 부수고, 유리 깨지는 소리도 들리고, 사람들도 없고, 텔레비전에서 재개발 때문에 싸우는 모습 보면 흉하다고 욕했는데 그게 이젠 내 얘기가 됐어요."

현재 재개발이 진행되고 있는 덕천마을 주민 김아무개(70·여)씨의 말이다.

"돈이 없어. 이주비 5400만 원 가지고 요즘 어디 가서 방을 얻어? 또 벌이가 없어서 이자도 못내. 자식들은 있지만 손 내밀기는 좀 그렇고. 걔들(자식들) 지 자식 공부시키기 바빠."


▲ 안양 덕천마을 ⓒ 유혜준

역시 덕천마을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 황아무개(77·남)씨는 한숨을 쉬면서 이렇게 말했다.


"지은 지 6년밖에 안 된 새 집이고, 방이 3개나 되는 28평형 빌라 감정평가액이 1억3천밖에 안 된대요. 2006년에 융자 1억 안은 상태에서 1억9천 주고 산 집이에요. 그러니 어떻게 나가요. 빚 갚고 나면 3천만 원밖에 안 남는데…. 왜 그렇게 보상금액이 적으냐고요? 땅 지분이 얼마 안 돼서 그런대요. 7평(23.1㎡)밖에 안돼요. 아파트 분양 할 때 땅 지분으로 하나요? 총 평수로 하잖아요. 근데 왜 보상할 때는 땅 지분으로 한대요? (이주비) 이자 내라는 것도 말이 안 되고요. 이주비 받아서 나간 다음에 5년이 걸릴 지 10년이 걸릴 지 어떻게 알아요. 그때까지 어떻게 이자를 내고 있냐고요."


이아무개(50대 중반·여)씨가 덕천마을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다.


폐허가 된 마을, 떠나지 못하는 주민들


▲ 안양 덕천마을 ⓒ 유혜준

지난 18일, 재개발이 진행되고 있는 안양시 덕천마을을 찾았다. 안양 덕천 재개발지구는 안양시 만안구 안양7동 148-1번지 일원(25만7590.19㎡)이다. 안양시는 지난 2006년 9월 7일, 사업시행자로 한국토지주택공사(LH)를 지정 고시했다. 2008년 12월, 사업 시행 인가를 받아 삼성물산·동부건설을 시공사로 결정했다.

덕천마을에는 59㎡ 1308가구, 84㎡ 1634가구, 114㎡ 384가구, 139㎡ 195 가구 등 아파트 4250가구가 들어설 예정으로 2009년에 분양신청(분양 신청률 92.1%)을 마감하고, 2011년 4월에 관리 처분 총회를 마친 상황이다.

지난해 12월부터 본격적인 이주가 시작, 현재 주민 94%가 이주해 마을 대부분이 빈 집 상태다. 하지만 주민 일부는 여전히 남아서 마을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남은 가구는 전체 가구의 6%로 300여 세대에 이르고 있다. LH공사는 12월에 철거업체를 선정, 내년 3월부터 본격적인 철거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밝히고 있다.

남은 300여 세대가 덕천마을을 나지 못하는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는 '돈'이다. 남은 이들 대부분은 소유가옥에 대한 감정평가금액이 너무 낮다는 불평을 하고 있다. 몇몇 가구들은 감정평가금액이 1억 원 이하의 영세가옥주로 그 돈으로 덕천마을을 벗어나면 이주할 곳이 없다는 하소연을 하고 있다. 황아무개씨가 대표적인 예다.

덕천마을이 재개발지구로 지정될 때만 해도 부동산 경기는 나쁘지 않았다. 마을 주민 대부분은 재개발에 대한 기본지식이 전혀 없이 "헌 집 주고 새 집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재개발에 찬성했던 것.

하지만 막상 재개발이 진행되면서 이들의 '꿈'은 현실의 벽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소유하고 있는 가옥이나 상가의 감정평가가 이들의 예상보다 낮게 나왔던 것. 뿐만 아니다. 이주비 문제도 이들의 발목을 잡았다. 감정평가액의 60%를 이주비로 지급한다는 것인데, 문제는 이주비에 대한 이자 부담이었다. 이주 후 6개월까지만 이자를 시행사에서 부담하고 그 이후에는 주민들이 부담한다는 불리한 조건이었다.

재개발이 예정대로 진행되지 않고 지체되면 될수록 주민들의 이자부담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지난해 12월부터 이주가 시작되었기 때문에, 현재 이주한 94%의 주민들은 이주비에 대한 이자를 부담하면서 재개발이 하루빨리 진행되기를 기다리는 상황이다.

남은 300여 세대는 6개월간의 이자부담 기한이 지나, 이주를 결정하고 이주비를 받는 순간부터 이자를 부담해야 한다. 다른 재개발 지역에 비해 상당히 불리한 조건일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 대해 LH공사는 주민들이 결정한 사안이라고 주장한다.

나갈 수도 없고, 돈도 없고, 소통도 안되고...


▲ 안양 덕천마을 ⓒ 유혜준

현재 덕천 지구는 공영개발 방식으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공영개발 방식이란 서울 난곡 지구 같은 대규모 재개발사업지구에 적용했던 방식으로, 주민협의체인 조합을 구성하는 민영재개발과 달리 LH공사가 시행자가 된다.

재건축 조합 대신, 전문성이 있는 LH공사가 추진하기 때문에 민영개발에 비해 투명성이 높고 사업진행도 빨라지는 이점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주민 의견조율 및 수렴은 주민대표회의가, 각종 인·허가 및 행정 절차, 공사 감독·감리 등은 LH공사가 맡아 진행하는 방식이다.

LH공사 측은 공영개발 방식이지만 모든 결정은 주민 참여하에 하기 때문에 실제로는 주민들이 추진하는 사업이라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주민들이 자신들의 의사가 전혀 전달되지 못하고 LH에서 일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고 느끼고 있다. 일부 주민들은 "LH공사에게 협박을 당했다"는 주장까지 하고 있다. 그러나 LH공사에서는 주민들이 결정한 대로 추진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덕천마을에 남은 300여 세대의 또 다른 문제는 그들 대부분이 '현금청산'을 원하고 있는데 이미 아파트 분양신청을 했다는 데 있다. LH공사는 일단 분양신청을 한 세대는 감정평가 금액을 전액 현금으로 받을 수 있는 '현금청산' 대상이 아니라고 못 박고 있다.

남은 주민들은 '현금청산'과 관련, "LH공사 담당자가 감정평가액을 여러 차례에 나눠 분할해 지급한다는 얘기를 했다"며 "분양신청을 안 하면 거지꼴로 내쫓길 수 있다고 협박해서 어쩔 수 없이 분양 신청을 했다"고 주장한다.

일부 주민들은 "감정평가액이 낮으니 일단 분양신청을 해서 프리미엄을 받고 분양권을 파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솔직히 털어놓기도 했다. 문제는 2009년 아파트 분양을 할 당시보다 현재의 부동산 경기가 더 나빠졌다는 것. 미분양 아파트가 속출하고 있는 상황에서 프리미엄은커녕 분양가 아래로도 매매가 되지 않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들 주민들 대부분이 평당 1천만 원이 넘는 아파트 분양대금을 부담할 능력이 없다는 것도 큰 걸림돌이다. 가장 작은 평수인 24평형의 경우 분양가가 2억4천만 원이 넘는다. 황아무개씨의 경우 소유가옥의 감정평가 금액이 9천만 원이다. 그가 분양받은 아파트는 24평형. 최소한 1억5천만 원을 더 부담해야 하는 상황인데, 현재 77세인 그에게 그런 능력이 있을 턱이 없다.

"일을 하고 싶지만 누가 나 같은 늙은이에게 일자리를 주나. 자식들에게도 손을 벌릴 수가 없다. 차라리 현금으로 받고 나가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분양신청을 해서 그것도 안 된다고 해."

이주비로 5400만 원을 받아도 이자를 부담할 수 없는 게 황씨의 현실이다. 당장 이자를 물지 않을 방법이 있기는 있다. 매월 이자를 낼 형편이 안 되는 주민들 이자는 LH공사가 대납해 주고 있다. 하지만 대납한 이자는 아파트 입주 전까지 갚아야 한다. 이자 부담은 주민들이 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결국 남은 주민들은 '부동산 평가 현실화 및 주거이전비, 영세민 이주대책 마련' 등을 요구하며 지난 9월부터 안양시청 정문에서 무기한 농성을 하고 있다.

현금청산을 요구하는 주민들은 LH공사를 상대로 소송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LH공사 담당자는 "현재 33세대가 현금청산을 요구하며 소송을 하고 있다. 판결여부에 따라 어떻게 할 것인지 결정이 될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분양신청을 받은 세대는 현금청산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남은 세대들에게 이주 대책을 마련해준다면 해결책이 있을 것 같지만, 이 또한 쉽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LH공사 담당자는 "1억 원 이하의 영세가옥주에게 국민임대주택 등을 알선해줄 계획"이라고 밝혔지만, 해당자는 극히 적을 것으로 예상된다. 기초생활수급권자 등이 대상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들이 제공하겠다고 나선 임대주택 등은 안양권이 아닌 수원, 오산, 안산, 화성 지역에 있다. LH공사 담당자는 몇 가구가 혜택을 받을 수 있을 것인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은 채 "대책이 있다"고만 거듭 강조했다.

안양7동사무소 관계자는 현재 남아 있는 주민 중 기초생활 수급자는 15세대 21명, 차상위 계층은 8세대 20명이라고 밝혔다.

덕천 지구 문제는 또 있다. 재개발의 주체가 되어 문제해결에 나서야 하는 '주민대표회의' 대표와 주민들이 전혀 소통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덕천 마을 주민들은 "지난 2009년 초, 감정평가 금액이 발표된 뒤 주민대표인 이아무개씨와 연락이 되지 않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감정평가 금액이 예상보다 낮게 나오자 주민들의 항의가 거세졌고, 이에 부담을 느낀 이아무개 대표는 주민들과 일체 접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답답한 주민들이 안양 시청에 중재를 요청, 이씨를 만나긴 했지만 아무 말도 듣지 못했다고 한다.

주민대표회의 사무실은 현재 문을 잠가놓은 상태로 전화를 받지 않고 있다. 지난 24일, 오전에 기자가 통화를 시도했으나 "고객님은 전화를 받을 수 없다"는 답변만 연거푸 들을 수 있었다. 통화를 시도한 뒤 나중에 휴대폰으로 다음과 같은 내용의 메시지가 왔다.

"주민대표회의 사무실입니다. 덕천재개발 사업의 시행권한이 LH 공사에 있어, 모든 업무는 LH공사만 할 수 있답니다. 주민 대표 회의가 할 업무가 없다고 하오니 LH공사로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LH공사 담당자 역시 "주민대표와 연락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시인했다. 또한 이런 사실은 안양7동사무소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답답해진 주민들은 '주민대책위원회'를 구성될 수밖에 없다. 주민대책위는 영세 가옥주 권리자 철거민 대책위원회와 주거 세입자 대책위원회, 주민 비상대책위원회 이렇게 3개의 단체가 구성돼 있다. 남은 300여 세대의 주민들은 처한 상황과 입장에 따라 각기 다른 3개의 단체에 가입해 있는 상황이다.

떠난 주민들 "하루하루가 돈...빨리 재개발 되어야"


▲ 안양 덕천마을 ⓒ 유혜준

남아 있는 이들도 문제지만 재개발이 진행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이주한 이들의 속도 시커멓게 타들어가고 있다.

25일, 김아무개(56·남)씨와 어렵게 통화를 할 수 있었다. 김씨는 24평형 아파트(땅 지분 11평)를 소유하고 있었다. 감정평가 금액은 1억2천만 원. 그는 33평형 아파트를 분양받았다. 아파트 평당 분양가는 1000만원~1300만 원 선. 그가 추가로 부담해야 하는 금액은 2억5천여만 원이다.

그 뿐이 아니다. 김씨는 이주비에 대한 이자를 부담하고 있는 상황이다. 만일 아파트 입주가 늦춰지면 늦춰질수록 김씨의 이자부담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김씨는 이와 같은 상황을 설명하면서 "(재개발을) 되돌릴 수 있다면 되돌리고 싶다"고 말했다. 김씨는 재개발을 멈추면 어떻겠느냐고 묻자 "너무 많이 와서 되돌리기 어렵다"며 "하루빨리 (재개발을) 추진해야 이자라도 덜 나가지 않겠느냐"고 대답했다. 김씨는 "혹시 뾰족한 수라도 있으면 얘기해 달라"고 답답한 심정을 밝히기도 했다.

주민대표가 손을 놓고 있는 상황에서 LH공사는 철거업체를 선정, 내년 3월부터 본격적인 철거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 때까지 남은 주민들이 이주하지 않을 경우 어떻게 할 것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대해 LH공사 담당자는 명확한 대답을 하지 않으면서 "재개발 사업은 예정대로 진행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담당자는 "남은 사람들도 문제지만 이주한 94%의 주민들을 위해서라도 사업은 예정대로 추진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되물었다. 하지만 뚜렷한 이주 대책이 없는 상황이라 이 과정에서 주민들과 충돌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남은 주민들은 "죽어도 떠날 수 없으니 여기에서 죽을 수밖에 없다"는 말을 되풀이 하고 있다. 이상은 주민비상대책위원장은 "폐허 같은 마을을 벗어나고 싶지만 이주대책이 나올 때까지 갈 수가 없다"고 말했다.

94%의 주민들이 이주한 덕천마을은 점점 폐허로 변해가고 있다. 빈집들은 대부분 창문과 문, 부엌가구 등이 깨어진 채로 방치되어 있다. 빈집 여기저기에는 이주한 주민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들이 쌓여 있어 을씨년스러운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이 지역은 특히 밤에 우범지대로 변할 것을 우려, 안양7동사무소에서 밤마다 순찰을 돌고 있다.

"덕천마을은 70년대에 난곡이 재개발이 되면서 이주해온 사람들이 만든 마을이다. 그 때는 비가 오면 허리까지 물이 찼던 동네를 사람이 살 수 있게 만들었는데, 이제 여기를 떠나면 대체 어디로 가야 한단 말인가. 우리는 갈 곳이 없다."

백발이 성성한 황아무개씨가 푸념하듯이 털어놓은 말이다.


▲ 안양 덕천마을 ⓒ 유혜준

유혜준(hjyu99)
이민선(doule10)

2012년 9월 4일 화요일

안철수, 26세때 재개발 ‘딱지’ 구매 논란 휩싸여


이글은 민중의소리 2012-09-03일자 기사 '안철수, 26세때 재개발 ‘딱지’ 구매 논란 휩싸여'를 퍼왔습니다.

ⓒ뉴시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30일 오후 부산대 실내체육관에서 마련된 강연에 참석,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을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24년 전 재개발 아파트 입주권(일명 '딱지')을 구매한 의혹이 제기돼 논란이 일고 있다. 

(문화일보)는 3일 "1988년부터 2000년까지 안 원장이 소유했던 서울 동작구 사당동 D아파트(84.91㎡) 폐쇄등기부 증명서와 등기부 등본을 분석한 결과, 안 원장은 1988년 4월 '사당2구역 제2지구주택 개량 재개발 조합'으로부터 아파트를 구입했다"고 보도했다. 

(문화일보)에 따르면 이 아파트는 1989년부터 입주가 시작됐고 안 원장 부부도 이 당시부터 이 곳에 살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곳은 1990년 12월 14일 준공 허가가 났고, 안 원장은 준공 허가가 난 이후인 12월 30일 본인 명의로 소유권 이전 등기를 마쳤다. 이후 안 원장은 2000년에 이 아파트를 매각했다. 

안 원장은 자신의 저서 '안철수의 생각'에서 "저도 오랫동안 전세살이를 해 봐서 집 없는 설움을 잘 안다"고 밝힌 바 있다. 의혹이 사실이라면 안 원장이 밝힌 내용과는 배치돼 '거짓말' 논란이 다시금 불거질 것으로 보인다. 

(문화일보)는 자금 출처 문제를 지적하며 증여서 탈루 의혹도 제기했다. 당시는 안 원장이 26세로 대학원생 신분이었던 만큼, 자금을 확보할 수 가 없는 조건이었고, 따라서 가족의 도움으로 집을 구매했다면 증여세 납부 여부가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딱지'가 투기의 수단으로 이용되던 시절 안 원장이 아파트 입주권을 재개발 조합으로부터 구매했다면 법적이나 도덕적으로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문화일보)는 지적했다. 

안 원장 측 유민영 대변인은 이번 의혹과 관련해 "24년 전 결혼할 때 신혼집이자 동생들도 함께 살도록 부모님이 장만해 준 집으로 안다"며 "당시 부모가 집을 구해줘 실제로 구체적인 내용을 잘 모른다"고 밝혔다. 유 대변인은 "이후 직장을 옮겼으며, 사당동이 거리가 멀어 다른 곳에서 전세를 살게 됐다"고 말했다.

최명규 기자 press@vop.co.kr

2012년 8월 16일 목요일

용역 깡패' 날뛰는 세상, 왜?


이글은 프레시안 2012-08-14일자 기사 '용역 깡패' 날뛰는 세상, 왜?'를 퍼왔습니다.
[토론회] "용역경비 폭력 시 사용자·경찰 책임 강화해야"

노동쟁의 현장과 재개발 현장에 용역경비직원의 투입을 원천 금지하도록 경비업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경비직원이 폭력을 휘둘렀을 경우사용자와 경찰의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임선아 금속노조 법률원 변호사, 김철호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변호사는 14일 국회 도서관 소회의실에서 민주통합당 임수경·진선미 의원실, 참여연대 주최로 열린 '경비업법 개정 토론회'에 참여해 이같이 주장했다.

최근 벌어진 'SJM 용역 폭력사태'에 대해 김철호 변호사는 "돈을 갚지 않는다는 이유로 채권자가 채무자를 폭행해서 돈을 받아올 수 있는가"라고 반문하며 "법치국가에서는 그 누구도 개인적 폭력을 통해 권리를 실현할 수 없다"고 운을 뗐다.

김 변호사는 "유독 노동쟁의 현장과 재개발 현장에서만은 불법이 행해진다"며 "경비업법상 경비용역의 노조원 해산, 퇴거집행은 불법인 만큼 노동쟁의 현장과 재개발 현장에 경비용역 투입을 원천적으로 금지하도록 경비업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용자나 경찰의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일었다. 임선아 변호사는 "SJM 사태에서 보듯 용역경비가 폭력을 통해 사용자의 이익에 복무하더라도 사용자는 현행 경비업법의 규제를 피할 수 있다"며 "경비업법은 경비업자를 제재할 뿐, 불법을 지시한 사용자(시설주)에 대해서는 아무 책임을 묻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임 변호사는 "경비업자와 소속 경비원이 제3자에게 가한 손해에 대해 경비업체를 고용한 사용자가 연대 배상 책임을 물어야한다"며 "폭력을 방치하는 경찰에 대해서도 경비가 물리력을 행사할 우려가 있을 경우 위해 발생을 방지할 의무를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비업 허가 요건을 강화해야 한다는 제안도 나왔다. 김남근 참여연대 부집행위원장은 "현행법에는 경비원에 대한 특정한 자격 요건도 없을 뿐만 아니라 자본금 5000만 원만 있으면 쉽게 업체를 세울 수 있는 등 경비업 허가요건이 지나치게 허술하다"고 지적했다.

김 부집행위원장은 "경비업체를 허가요건에서 자본금 규모를 늘리고, 경력 경비원을 정규직으로 일정 수 이상 보유하도록 하며, 경비업무로 제3자에게 피해를 입혔을 경우 피해배상을 할 수 있도록 책임 보험에 가입하는 것 등을 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원호 용산참사진상규명 및 재개발제도개선위원회 사무국장은 "용산참사 당시 폴리시아(POLICIA)라는 방패를 들었던 용역경비직원들은 집행유예와 벌금 200만 원을 선고받았지만, 철거민들은 지금도 3년 반째 감옥에 갇혀 있다"며 "재개발 지역에서 폭력적인 경비업무는 이권을 따내기 위한 서비스로 간주될 정도로 광범위하게 이뤄진다"고 말했다.

이 사무국장은 "불법을 저지른 경비업체를 제대로 처벌하지 못하다 보니 경비업체가이름만 바꿔서 껍데기 업체로 변신한 뒤 강정마을, 철거현장, 노동현장에서 폭력을 반복한다"며 "경비업법 개정으로 폭력이 완전히 근절될 수는 없지만, 경비업법 개정은 최소한의 요건"이라고 강조했다.

그 외에도 토론회에서는 △사업장에 경비원 배치 시 인적사항 명부 열람 허용 △폭력을 행사 경비원에 대해 5년 동안 재취업 불허 △경비원 명찰 패용 의무 △경비원 휴대장비 신고·임의 개조 금지 등의 대안이 제시됐다.

민윤기 경찰청 생활안전과 협력방범계장은 "용역경비업체 컨택터스가 허위신고를 했어도 경찰이 미리 대처해서 예방조치를 했어야 했는데 못해서 송구스럽다"면서도 "앞으로는 경비업체에 대한 신고의무, 준수사항, 처벌규정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폭력을 행사한 전력이 있는 자는 경비업무를 못 하게 하고, 분쟁지역에 물리적 충돌이 예상되면 경찰이 매뉴얼에 의해 사전예방조치를 취하겠다"고 약속했다.

박지원 민주통합당 원내대표는 "경비용역법 개정안을 반드시 국회에서 통과시킬 수 있도록 하겠다"며 "다시는 이러한 초헌법적 폭력사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막겠다"고 말했다.

 /김윤나영 기자

2012년 7월 2일 월요일

[사설] 박원순 시장의 강제철거 제동, 희망이 보인다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0701일자 기사 '[사설] 박원순 시장의 강제철거 제동, 희망이 보인다'를 퍼왔습니다.

지금도 우리 기억에 생생하고, 영화 으로 재조명을 받고 있는 용산참사는 강제철거가 낳은 끔찍한 비극이다. 용산참사가 일어난 지 3년여가 지났지만 이들처럼 삶이 뿌리째 뽑힐 처지에 놓인 이들이 제2, 제3의 용산에서 지난한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최소한의 이주대책마저 보호받지 못한 봉천동 세입자들이 강제철거의 위협을 받고 있고, 용산참사 현장인 남일당 건물의 도로 건너쪽 용산3구역도 강제철거가 예고돼 있다.서울시가 재개발·재건축 구역의 이러한 강제철거 현황에 대해 실태 조사를 벌인다고 한다. 서울에 봉천구역처럼 강제철거가 임박한 곳이 있는지 살펴보고, 조합과 세입자를 중재해 강제철거를 막아보자는 박원순 시장의 지시에 따른 것이다. 앞서 박 시장은 충돌이 예상되던 봉천동 재개발구역의 강제철거는 안 된다며 막고 나서 일단 제동을 걸었다.서울시의 강제철거 개입 방침은, 그동안 세입자 문제는 시행사와 조합이 알아서 할 일이라며 손 놓고 있던 행정기관이 사태 해결에 나섰다는 데 적지 않은 의미가 있다. 오세훈 시장 재임 때엔 세입자들이 시청이나 구청 앞에서 억울함을 호소하면, 당국은 ‘생떼거리를 쓰는 사람은 민주시민 대우를 받지 못하오니 제발 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는 펼침막을 내붙였다고 한다.서울시는 구역별로 갈등이 첨예하지 않은 단계엔 서울시 갈등조정담당관이 조합과 세입자 간 타협을 모색하고, 철거가 임박한 곳은 고위 책임자를 직접 협상 중재자로 내세울 계획이라고 한다. 강제철거는 법률에 따라 가능한 조처일 수 있으며, 이미 승인이 나고 관리처분이 이뤄진 이상 시가 할 수 있는 강제력은 한계가 있다. 하지만 수십년 살던 주민들이 하루아침에 길거리에 나앉게 됐는데도 강제철거라는 폭거에 행정편의적으로 눈을 감아온 관행은 바뀌어야 한다. 박 시장은 “겨울은 물론 여름에도 강제철거는 안 된다”며 “정 안되면 임대아파트 같은 걸 제시하면서 협상 폭을 넓히도록 하고 부탁이라도 하겠다”고 했는데 그런 자세가 중요하다.근본적인 문제는 재개발사업이 원주민을 폭력적으로 밀어내는 방식으로 진행돼온 데 있다. 개발이익은 정부, 관료, 건설회사에 돌아갔지 결코 주민이나 세입자에게 돌아오지 않았다. 더욱이 조합이 세입자들의 어려운 처지와 무지를 틈타 보상문제를 얼렁뚱땅 넘어가려 하는 바람에 갈등이 되풀이되고 있다. 관리감독 책임이 있는 행정기관마저 열악한 지위에 있는 세입자 보호에 적극 나서지 않는다면 용산참사는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2012년 5월 13일 일요일

국토부-서울시 부동산정책 '엇박자'에 소비자 혼선


이글은 프레스바이플 2012-05-12일자 기사 '국토부-서울시 부동산정책 '엇박자'에 소비자 혼선'을 퍼왔습니다.
국토부 "집사라" 서울시 "임대하라"…지난해 재개발 규제 완화 놓고도 부딪혀


▲ (과천 =뉴스1) 박세연 기자 = 권도엽 국토해양부 장관이 10일 오전 경기도 과천 국토해양부에서 '주택거래 정상화 및 서민-중산층 주거안정 지원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이번에 발표된 부동산 대책은 강남3구를 비롯한 투기지역-주택거래신고지역 해제, 분양권 전매제한기간 완화 등 시장과열기 도입된 규제 정상화와 1주택자 양도세 비과세 보유요건 완화와 일시적 2주택자 처분기한 연장 등 세부담 완화, 보금자리론 확대-생애최초 주택구입자금 추가 지원 등을 주요 내용으로 발표됐다. 2012.5.10/뉴스1
국토해양부와 서울시가 '주택정책'을 놓고 엇박자를 계속하고 있다.
국토부와 서울시는 지난 9일과 10일 이틀에 걸쳐 서로 상반되는 주택정책을 내놓으며 신경전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임대주택을 공급물량을 늘려 집을 사기보다 임대하는 쪽에 방점을 찍은 반면 국토해양부는 각종 규제 완화와 세제 혜택을 통해 주택 거래를 활성화하는, 즉 집을 사는 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
이같은 엇박자 행보는 지난해 12.7 부동산 대책 때도 한 차례 빚어졌다.
당시 국토부는 강남3구의 투기과열지구 해제를 꺼내며 재건축 규제완화 정책을 내놓았지만 서울시는 재건축에서 공공성을 강화하는 규제를 강화하는 쪽으로 움직였다.
◇ 국토부 "집사라" vs 서울시 "집 빌려라"
국토부와 서울시 주택정책은 주요 대상자를 '무주택자'로 보는 대목부터 충돌하고 있다.
국토부는 10일 '주택거래 정상화 및 서민·중산층 주거 안정 지원방안'을 내놓았다.  강남3구 투기지역 해제, 분양권 전매제한 기간완화 등 주택거래 규제의 장막을 모두 걷어내는 데에 초점을 맞췄다.
게다가 국토부는 1세대 1주택자 양도세 비과세 보유 요건 완화, 금리 우대 보금자리론 지원 대상 및 한도 확대, 생애 최초 주택구입자금 5000억원 추가지원 등 무주택자나 실수요자의 내집마련 기회를 활짝 열었다. 과거 다주택자 주택구매에 중심을 뒀던 국토부가 다주택자와 무주택자 모두의 거래를 촉진하는  부양책에 들어간 것이다.
하지만 이는 서울시 정책과는 다소 다르다.
서울시는 하루 전날인 9일 주택을 직접 소유하기 보다 저가-고품질 임대주택을 확대하는 '원순씨의 희망둥지 프로젝트'를 제시했다. 서울시는 '임대주택=저소득층 거주'라는 사회 인식을 수술하겠다며 임대주택-분양주택 차별화 계획을 원천 금지했다.
더욱이 임대주택 입주자 거주권과 생활권을 보장하기 위해 분양-임대주택 혼합단지에서 역세권이나 복지시설 인접 지역 등 입지 우수 지역에 임대주택을 우선 배치하겠다고 했다. 입주 대상도 저소득에만 초점을 두지 않고 청년, 여성 독신가구, 신혼부부 등으로 범위를 확대했다.
국토부는 구매력 있는 이들이 집을 사서 부동산 거래를 활성화하고 장기적으로는 집값을 띄우겠다는 것인데  서울시는 임대주택을 늘려 집값 잡기에 나서는 꼴이다.
소비자들과 업계에서 정책 엇박자가 빚어지고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 되고 있는 셈이다.
김주연 부동산 1번지 부동산연구소 팀장은 11일 뉴스1과의 통화에서 "서울시와 정부 정책이 충돌해 소비자 혼란을 부추길 것 같다"며 "국토부 발표로 집을 사려고 마음먹었다가 서울시 정책을 보고 마음을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뉴스1)  곽선미 기자

2012년 4월 7일 토요일

잊혀지지 않는 참사 '용산'..."MB, 주차장 하려고 사람 죽였나"


이글은 민중의소리 2012-04-07일자 기사 '잊혀지지 않는 참사 '용산'..."MB, 주차장 하려고 사람 죽였나"'를 퍼왔습니다.
[MB가 파괴한 한국] '용산학살'이 송두리째 흔들어놓은 삶...남은 건 분노와 오기


ⓒ빈곤사회연대 제공 용산참사 당일 아침 현장.

"여보, 나 오늘 용산에 갔다 올게. 별일 없을 테니 일찍 자. 금방 내려올 거야."자신 뿐 아니라 모든 철거민들의 일이라면 만사를 제쳐두고 뛰어갔던 故윤용헌 열사가 두툼하게 챙겨입고 집을 나서기 전 아내 유영숙씨와 대면하며 했던 마지막 말이다. 그게 남편의 생전 마지막 모습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2009년 1월 20일 새벽. 서울 용산구 남일당 건물 위 망루에는 그렇게 집을 나선 다섯명의 철거민이 올라섰다. 이유는 단 하나였다. 다른 곳에서도 장사를 하며 생존권을 지켜나갈 수 있게 보상 좀 해달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에게 철거민들의 외침은 그리 중요한 게 아니었다. 건설사들의 배를 어떻게든 빨리 채워줘야 했다. 시너를 비롯한 발화물질들이 망루에 있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경찰이 용역을 앞세워 무자비한 진압작전을 펼치기 시작했다. 

망루 쪽에서 갑자기 불길이 치솟기 시작하는 순간 남편 걱정에 잠을 설치던 영숙씨는 뭔가 심상찮은 느낌에 눈을 떴다. 영숙씨는 인태순 전국철거민연합 연대사업국장의 전화를 받았다. "언니, 걱정하지마. 승우 아빠(당시 순화동 철거민대책위 총무였던 지석준씨의 아들 이름) 말로는 오빠가 승우 아빠도 살려놓고 내려갔다고 그랬어. 살아서 어디 숨어있을 거래. 잠잠하면 나올 거라고 걱정하지 말래." 영숙씨는 인 국장의 말을 철썩같이 믿었다. 

그 말 대로만 됐다면 얼마나 다행이었을까? 하지만 영숙씨는 참혹한 현실과 마주해야 했다. 불에 탄 시신 다섯구가 순천향병원으로 옮겨졌다는 이야기를 전해듣고 미친듯이 달려갔다. 막는 경찰들을 온 힘으로 밀어가며 영안실로 들어갔다. 네번째 시신까지 확인했다. 남편은 없었다. 마지막 시신을 본 순간 영숙씨는 주저앉고 말았다. 어딘가 숨어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남편은 딱딱한 시신이 되어 영안실에 누워있었다. 복부와 다리 살이 잘려나간 채로...

그렇게 다섯명의 열사가 세상을 떠났다. 용산에서 벌어진 그때의 참극이 열사들의 가족들과 철거민들에게 남긴 건 정신적, 신체적 후유증이다. 

영숙씨는 여기저기 살이 잘려나간 채로 영안실에 누워있던 그때 남편의 모습을 아직도 본다. 연대투쟁을 다니느라 항상 늦은 시간 귀가하던 남편이 문을 열고 들어오는 소리를 가끔씩 생생하게 듣는다. 환각과 환청이라는 사실을 영숙씨 자신도 잘 알지만, 남편이 살아있을 때 그랬듯 문 소리가 들릴 때마다 방문을 열고 현관문 쪽을 살펴보곤 한다.

"영안실에 누워있던 애 아빠 모습이 지금도 막 보여요. 길을 걸어다닐 때도 보일 때가 있고...병원에서는 '그런 게 보이는 건 좋지 않다'고 말하더라고요. 그래도 집회 나가서 투쟁할 때는 애 아빠가 죽었다는 생각이 안 들어요. 내 가슴 속에 같이 있으면서 지켜준다는 기분이 들거든요."

남들이 보면 정신적 충격으로 인한 후유증이라고 여길 수도 있다. 가끔 영숙씨도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가슴 속에 살아 있는 남편의 존재는 영숙씨가 철거투쟁을 계속 해나갈 수 있는 원동력이다.


ⓒ민중의소리 故윤용헌 열사 부인 유영숙씨.

용산참사 진상 규명을 요구하며 1년 넘게 투쟁을 하던 과정에서 경찰과 용역들에게 당한 구타로 왼쪽 팔의 인대가 늘어났고, 대상포진은 어깨까지 퍼졌다. 시간이 갈수록 건강은 악화되어가고 있다. 작은아들은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한 충격으로 갑자기 찾아온 눈 출혈로 한쪽 시력을 잃었다. 나머지 한쪽 눈의 시력도 점점 약화되고 있다. 

그럼에도 영숙씨는 철거투쟁을 멈출 수 없다. 정신적, 신체적 후유증과 함께 생긴 건 분노와 오기다. 남편과 함께 지키려고 했던 순화동 지역의 투쟁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억울하게 죽은 남편을 생각한다면 반드시 제2의 용산참사를 막고, 철거민들이 생존권을 손에 쥐는 데 힘을 보태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용산참사는 정권이 경찰특공대를 이용해서 평범한 시민들을 학살한 거예요. 생각할 때마다 부들부들 떨려요. 용역이든 경찰이든 이젠 안 무서워요. 그들은 있는 사람들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되지만, 우리는 절박하거든요. 무엇이든 절박함을 이기진 못 해요."

마음은 더 단단해져 전철연과 유가협 활동을 병행하며 정신없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지만 가끔 영숙씨를 괴롭히는 건 남편 생전의 단란했던 가족생활에 대한 그리움이다. 얼마 전엔 군대에서 휴가를 나온 큰아들이 했던 말에는 가슴 한 구석이 쓰라렸다. '아빠와 함께 자주 갔던 빙어낚시를 가고 싶다'는 큰아들의 말에 그는 말없이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아이들은 아빠와의 추억이 지금도 생생한가 봐요. 주말이면 아빠가 일을 안 하니깐 애들이랑 나한테 아무것도 안 시키고 모든 살림을 도맡아서 했고, 놀러도 데리고 다녔거든요. 전국 방방곡곡을 차 타고 다녔어요. 제일 기억에 남는 게 겨울에 다녔던 빙어낚시예요. 가만히 생각해보면 애들 아빠는 가족들한테는 일등 아빠였고, 일등 남편이었던 것 같아요."

용산참사는 평범하게 살아가던 이들의 삶을 이처럼 송두리째 뒤흔들어놓았다. 소중한 일상을 빼앗아갔고, 그들을 투사로 만들었다. 그때 그 일로 남편을 떠나보내고, 살인 누명을 쓴 아들을 감옥에 보내야 했던 전재숙씨(故이상림 열사의 부인이자 이충연 전 용산철거민대책위원회 위원장의 모친)도 마찬가지였다. 


ⓒ민중의소리 고 이상림 열사 부인이자 징역 선고를 받고 복역 중인 이충연 위원장의 모친인 전재숙씨.

재숙씨는 남일당 뒷건물이자 용산참사 연대투쟁을 하던 이들의 아지트였던 카페 '레아'가 있던 자리에서 30년 동안 갈비집을 했었다. 별 탈 없이 장사를 했었고, 나이가 들면서 고기집을 더이상 운영하기 힘들어지자, 신혼인 아들 내외와 함께 카페 '레아'를 차렸다. 예쁘게 꾸며놓은 카페 '레아'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면서 유명해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 손님들로 들끓었다. 재숙씨는 아들 내외와 함께 장사를 하면서 행복에 겨워 지냈다. 하지만 세상이 재숙씨에게 준 행복한 시간은 8개월이 고작이었다. 

"지금도 2009년 1월 20일로 시간은 묶여져 있어요. 그날이, 그 시간이, 우리가 살아온 세월이에요. 여전히 진상은 밝혀지지 않고, 아들은 벌써 감옥에서 겨울을 세번이나 났어요."

신혼생활의 단맛을 느낄 새도 없이 결혼 후 8개월 만에 남편을 감옥에 보내야 했던 며느리 정영신씨를 생각하면 재숙씨는 가슴이 미어진다. 남편과 시부모의 아낌없는 사랑을 받으며 남부럽지 않은 결혼생활을 하던 정씨는 이제 전철연 회원이자 용산참사진상규명위원회 상임활동가로, 누구보다도 열심히 철거투쟁을 하고 있다.

"볼 때마다 애처로워요. 내 자식이죠. 얼마나 안타까워요. 감옥 간 남편 뒷바라지 하랴, 내 비위 맞추랴 고생스러운 데다 활동까지 하러 다니고 하니깐...아유, 뭐라 말을 할 수가 없네요. 오늘도 전화와서는 내일 면회 갈 수 있냐고 물어보더라고요. 내일 오전에 간다는데..."

참사 이후 1년여 동안 벌인 투쟁으로 이끌어낸 합의로 유족들은 남일당은 떠났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많다. 재숙씨의 아들 이충연 전 위원장 등 7명은 '가족을 불에 태워 죽인 살인자' 누명을 쓰고 징역 생활을 하고 있고, 사건의 진상은 규명되지 않고 있다. 진상규명을 위한 유일한 열쇠인 미공개 검찰 수사기록 3천쪽은 여전히 공개되지 않고 있다. 

대법원 판결은 잔인했다. 지난 2010년 11월 대법원(양승태 대법관. 현 대법원장)은 이충연 전 위원장에게 징역 5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용산 재판이 벌어지는 법정에선 눈물도, 상식도 없었다. 사실상 재판부는 철거민의 불법적 행동만을 두고 판단했고, 공권력의 과잉 진압에 대한 책임은 묻지 않았다.

3년이라는 세월이 지나는 동안 재숙씨는 일흔이 넘은 몸을 이끌고 다른 유족들과 함께 전국을 부지런히 돌아다녔다. 그해 여름 있었던 평택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의 옥쇄파업 현장, 2010년 충남 아산 유성기업 노동자 투쟁 현장, 지난해 부산에서 있었던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반대 투쟁, 올해까지 이어지고 있는 제주도 강정마을 해군기지 공사 반대 투쟁 현장까지. 용산참사 유족들의 투쟁현장에 함께 있어줬고, 아직 끝나지 않은 진상규명 투쟁에 힘을 보태줄 이들에 대한 의리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나 혼자 힘으로는 힘드니께. 그 사람들이 힘들 때 나도 찾아가주고, 그 사람들도 나 힘들 때 찾아와주는 게 '우리'잖아요. 정신없이 돌아다녔어요. 사람들이 왜 살이 안 찌냐고 물어보는데, 내 입장이 살 찔 입장이 아니잖아요. 지 아버지랑 동지들 죽였다고 잡혀들어간 아들이 저러고 있는디. 우리가 밝혀내야 할 진상은 아들이 나와야 밝혀질 거고, 구속돼 있는 동지들이 나와야 밝혀져요. 그 사람들 나오게 하는 게 첫째 목적이에요."

참극의 현장 남일당 인근은 지금...

다섯명의 목숨을 앗아간 참극의 현장 남일당 건물은 결국 철거됐다. 500평 남짓 돼 보이는 남일당 부지를 포함한 용산4구역 일부 부지는 주차장으로 쓰여지고 있었다. 3년 전 철거민들에게 쇠파이프를 휘둘러댄 용역 직원들을 관리했던 용역회사인 'O○건설'이 주차장을 운영하고 있었다. 다섯 목숨을 앗아가면서까지 허물어버려던 그곳이 고작 '용역깡패'들의 밥벌이용으로 쓰이고 있는 셈이다. 

그런 남일당만 생각하면 아직도 재숙씨의 입가는 파르르 떨린다. "지금도 물어보고싶은 게 있어요. 사람 죽여서 얻어낸 그 땅을 왜 빈터로 만들어놨냐고. 그 자리에서 용역들이 주차장 해서 돈 벌고 있응께. 그놈들 밥 먹일라고 이렇게 사람들 죽여서 빈터로 만든거냐고. 그게 그렇게 급한 일이었냐고요."


ⓒ민중의소리 철거 이후 주차장으로 변한 남일당 부지. 이곳은 용산 재개발 4구역이다.

용산참사는 주변 상권까지도 몰락시켰다. 용산역을 바라보고 남일당 오른쪽에 있는 5구역은 철거 예정 지역이지만, 아직도 상가는 영업을 하고 있다. 하지만 점심시간이 무색할 정도로 식당에는 파리만 날렸고, 카페에는 드문드문 손님이 들었다. 

남일당 부지에서 20여미터 떨어진 5구역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이주화(49)씨는 "재개발한다고 인근 상가도 빠지고 직장인들도 다 빠졌다. 그 사람들 보고 장사했었는데 지금은 80% 이상 손님이 줄었다"고 말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재개발 구역을 안내한 인태순 전철연 연대사업국장은 "구역별로 나눠서 순차적으로 철거를 하는 재개발 방식이 모든 상권을 몰락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철거 작업이 순차적으로 이뤄지는 탓에 인근 상인들이 받는 매출 피해 규모도 점차 누적되는 것이다. 남일당 부지를 기준으로 재개발 1구역이 용산참사 직전에 철거되면서 나머지 2,3,4,5구역 상권 매출에 영향을 미쳤고, 남일당 부지가 포함된 4구역과 2구역이 순차적으로 철거되면서 나머지 구역 상권에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철거작업이 완료된 4구역과 2구역 인근에 각각 위치한 5구역과 3구역 상권은 사실상 죽은 상태였다. 굳게 닫힌 셔터에 어지럽게 락카칠이 돼 있는 곳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었다.

3구역에서 옷가게를 하는 김인순(59)씨는 현재 상황을 '철거민 피 말리기 작전'이라고 표현했다. 

"구역별로 띄엄띄엄 철거를 하면서 상인들을 지치게 만들어요. 한구역씩 철거되면서 타격 받는 다른 구역 상인들이 하나둘씩 떠날 거 아니에요? 이곳에서 수십년 장사한 사람들은 어차피 이천만원 정도 쥐어주면 가게 접어버리고 웃으면서 나가요. 우리같은 사람들은 여기서 쫓겨나면 다른 데서도 비슷한 조건으로 장사하고 살아야 되니깐 남아 있으면서 보상금 투쟁을 하는데, 이 짓도 길어질 수록 지치거든요. 그러다가 하나 둘 떠나는 사람 생기고...결국 그게 목적이에요. 철거민 피 말리기 작전이죠."


ⓒ민중의소리 철거를 앞두고 있는 용산 3구역. 이곳 상인들 중 상당수가 2천만원 남짓 되는 보상금을 받고 떠났다.

적게는 1억, 많게는 3~5억원이라는 어마어마한 권리금을 내고 장사를 시작한 이들에게 처음 제시됐던 이주 보상금 감정평가액은 2천만원 안팎에 불과했다. 앞으로 수십년은 더 장사를 해야 하는 이들에게는 터무니 없는 금액이었다. 더군다나 권리금은 법적 보호를 받을 수조차 없다. 그들은 감정평가를 할 때마다 100~200만원씩 보상액을 올려가고 있지만, 권리금의 절반도 채 되지 않는다. 싸움이 길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김씨와 인 국장은 이번 싸움을 절대 포기할 수 없다고 했다. 이기는 것 만이 또다른 용산참사를 낳지 않는 길이라는 걸 이들은 잘 알고 있다. 재개발 문제를 해결하는 데엔 정치권의 역할도 중요하다. 무분별한 개발을 지양하고, 불가피한 개발이 이뤄질 경우 '수평이동'이 가능한 보상이 동반되도록 하는 법안이 만들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이들은 오는 4.11 총선에서도 제대로 이명박 정권을 심판할 수 있는 투표를 하겠다고 입을 모았다.

"우린 원래 정치인들 안 믿거든요. 우리가 스스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도 이번에는 꼭 투표 하려구요. 철거민들 다 데리고 투표하러 갈 거예요. 우리 문제 해결할 수 있는 사람, 정당 찍어서 떳떳하게 요구할 겁니다. '우리가 뽑아줬으니 우리 문제 반드시 해결해 달라'고."

강경훈 기자 qwereer@vop.co.kr

2012년 1월 19일 목요일

용산참사 3년, 국회가 속죄하는 마지막 방법은?


이글은 프레시안 2012-01-18일자 기사 '용산참사 3년, 국회가 속죄하는 마지막 방법은?'을 퍼왔습니다.
세입자 함부로 쫓아내지 못하게 하는 '용산참사 방지법' 발의

용산참사가 발생한 지 20일로 만3년이 된다. 변한 건 없다. 여전히 세입자는 아무런 대책 없이 길거리로 내몰린다. 재개발 지역에서 폭력사태는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철거민 5명과 경찰 1명이 죽었지만, 용산참사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셈이다. 이런 가운데 강제로 철거민을 쫓아내지 못하게 하는 일명 '용산참사 방지법'이 발의됐다.

민주통합당 정동영 의원실과 용산참사 진상규명위원회 등은 18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강제퇴거금지에 관한 법률제정안'을 발의한다고 밝혔다. 이 법이 국회를 통과하면 용역에 의해 고질적으로 반복되는 재개발 현장 폭력 행위가 사실상 금지된다. 이를 위반할 경우 형사 처벌을 받을 수 있는 조항을 신설했다.

또한 국가인권위원회가 권고한 퇴거 금지시기를 명시(일출 전과 일몰 후, 공휴일, 겨울철, 악천후)했다. 원주민 재정착 개념을 도입해 거주민이 개발사업 완료 후 전과 동등한 수준으로 거주하도록 재정착대책의 구체적 내용을 명시했다. 용산참사 진상규명위원회는 지난 2주기 때부터 강제퇴거금지법을 논의해 왔다.



▲ 용산참사가 일어난 남일당 건물. ⓒ프레시안(허환주)

이 법을 대표 발의한 정동영 민주당 의원은 "이 법은 여야를 뛰어넘는 법"이라며 "국민을 위해 국회의원이 됐다면 국민의 눈물을 닦아주길 바란다"고 법안 통과를 당부했다. 정 의원은 "18대 국회는 2월 한 달이면 막을 내린다"며 "18대 국회가 국민에게 속죄하는 길은 마지막 개혁 법안인 이 법을 통과시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나라당 박근혜 의원에게도 당부의 말을 전했다. 정 의원은 "박근혜 의원이 이 법을 반대하지 않으면 통과된다"며 "99% 서민의 눈물에 무심한 국회가 서민들에게 할 수 있는 마지막 민생 법안이 꼭 입법되길 바란다"고 부탁했다.

"개발도 안 하는 곳을 뭐가 그리 급해서…"

용산참사 유가족에게 '용산'은 여진히 현재진행형이다. 망루 위에서 농성을 했다는 이유로 7명의 철거민이 복역 중이다. 철거민들을 특별사면해달라고 정부에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반면, 당시 용산참사 진압 작전을 펼친 김석기 전 서울경찰청장은 4월 총선 출마를 준비 중이다.

시행사 측은 용산 재개발 지역 공사장 임시식당(함바) 운영권을 유가족에게 주기로 합의했지만 현재 공사가 진행되지 않고 있다. 생계 수단이 막막한 상황이다. 유가족 중에는 빚을 내서 다시 식당을 운영하는 이도 있다.

용산참사 직전까지 급속하게 진행됐던 용산 4구역 재개발사업은 참사 이후 여러 악재가 겹치며 사업 추진이 지체되고 있다. 재개발조합은 시공사와의 추가분담금 문제로 계약을 해지하고 시공업체를 재모집하고 있다. 지난해 8월 재입찰이 결렬되면서 이달 중 재공고를 낼 예정이다.

고 양회성 부인 김영덕 씨는 "용산참사가 일어난 지 3년이나 됐지만 남일당 건물이 있던 곳은 여전히 개발을 하지 못하고 있다"며 "뭐가 그리 급해서 그렇게 무리한 진압을 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김영덕 씨는 "유가족들은 하루하루 고통스럽게 지내고 있다"며 "더 이상 용산참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철거민이 쫓겨나지 않는 세상을 만들어 달라"고 당부했다.

고 이상림 부인 전재숙 씨도 "용산참사 현장은 주차장으로 변해 용역들의 배를 불리고 있다"며 "반면, 아무 죄 없는 철거민들은 중형을 받고 복역 중"이라고 비판했다.

조희주 용산참사 진상규명위원회 공동대표는 "용산참사의 근본원인은 마구잡이식 개발에도 있지만 개발 속에 강제로 철거민을 쫓아내는 것에도 있다"며 "3년 전 강제로 철거민을 퇴거만 하지 않았다면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 대표는 "더 이상 용산 같은 참사가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며 "그런 마음으로 법 제정을 촉구한다. 이번 국회에서 처리되길 간곡히 바란다"고 당부했다.

용산참사 진상규명위원회는 18일 저녁 7시 '떠날 수 없는 사람들-또 다른 용산 집을 잃은 사람들의 이야기'로 북콘서트를 연다. 19일 저녁에는 서울역 광장에서 용산참사 3주기 추모대회를 개최한다. 용산참사가 발생한 20일에는 마석모란공원 열사묘역에서 열사추모제를 진행한다.



/허환주 기자 

2012년 1월 6일 금요일

"용산참사 3년, 이번 설은 가족과 보내게 해주세요"


이글은 프레시안 2012-01-06일자 기사 '"용산참사 3년, 이번 설은 가족과 보내게 해주세요"'를 퍼왔습니다.
[기고] "감옥에 있는 남편을 가족의 품으로 돌려주길"

1월이 되면 모두들 행복한 새해를 맞이할 준비를 하지만 그날이후 나에게 1월은 아픈 기억으로 다가온다.

2009년 1월 20일, 온 세상을 뒤흔들어놨던 용산참사.재개발이란 거대한 괴물이 한강로2가가 아닌 용산4구역이라고 금을 그러놓더니 결국은 그 안에 살고 있던 주민들을 벼랑 끝으로 몰아 살고자 올라갔던 망루에서 다섯 명은 싸늘한 주검으로 일곱 명은 차가운 감옥으로 가뒀다.

그 후 나에겐 연말연시나 새해가 아닌 용산참사 2주기, 용산참사 3주기를 맞이하며 다시금 그날의 기억을 떠오른다. 너무도 추웠던 그날, 파란색 망루를 쳐다보며 그런 일들이 발생할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않았다. 예전처럼 온가족이 모여 행복한 미래를 꿈꾸리라 믿었는데, 모든 것은 물거품처럼 사라져버렸다.

2006년 12월, 30년 넘게 갈비집을 운영하시던 시아버님과 시어머님의 가게를 남편과 함께 "레아"라는 호프집으로 수리를 한 후 문을 열였다. 손님으로 꽉 찬 가게를 바라보며 너무도 행복했었다.

시아버님은 늦은 귀가로 아들과 며느리가 힘들진 않을까, 매일 새벽기도를 다녀오신 후 가게에 들려 청소를 해주셨다. 30년 넘게 갈비집 사장님으로 살아오셨던 어머님은 힘든주방 일을 하시면서도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남편은 가게 안 밖의 모든 일들을 해결해주며 누구보다 든든한 아들, 남편 이였다.


ⓒ뉴시스

1년도 되지 않아 사업시행인가, 그 뒤부터 지옥

매일이 행복했다. 3년만 열심히 살다보면 가게 수리할 때 얻은 빚도 갚고 작은 전셋집이라도 얻어 가게 내주시고 옥탑으로 이사하신 부모님들도 편히 살거라 믿었었다. 하지만 그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1년도 체 되지 않아 사업시행인가가 나더니 그때부터 지옥 그 자체였다. 물론 재개발이란 말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 몇 년 전부터 용산이 개발된다는 소리는 전해왔지만 그렇게 빠르게 진행 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다른 곳들을 보면 최하 4년~5년 정도는 걸리고 길면 10년도 넘게 걸릴 수 있다는 게 개발이라고 들었는데 용산4구역은 달랐다.

자고나면 달라지는 게 용산 이였다. 덩치 큰 남자들이 동네를 서성이며 이주를 종용하고 욕설과 폭력에 시달리다 결국 이사 가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이사한 빈집엔 죽은 짐승들의 사체, 오물들을 버리며 공포와 악취에 장사조차 할 수 없었다.

결국 시아버님과 남편은 투쟁 이라는 것을 시작했다. 처음엔 시아버님과 남편은 혼자 짐을 짊어지시려 서로를 못하게 말리기도 했다. 남편은 나이든 아버님이 혹시라도 용역들에게 당하지는 않으실까, 아버님은 아들이 젊은 얘들한테 두들겨 맞는 건 도저히 볼 수 없다며 서로가 서로를 걱정했다. 그런 아버님과 남편을 어머니와 나는 지켜만 봐야했다.

그날도 어머니와 나는 바라보고만 서있었다. 아버님과 남편이 저 멀리 파란색 망루에서 손을 흔들 때도, 경찰들과 용역들이 물대포를 쏘며 철거민들에게 위협을 할 때도, 특공대의 컨테이너가 하늘 끝 망루로 올라갈 때도, 망루가 화염에 휩싸여 쓸어 질 때도 그렇게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다. 단 한마디 말도 하지 못한 채 그렇게 아버님을 보내야만 했고 남편을 보내야만 했다.

장례조차 치르지 못하고 보냈던 355일은 또 다른 전쟁터였다. 건설사나 용역들과의 싸움과는 차원이 달랐다. 모든 집회 현장이나 기자회견, 1인 시위, 추모제마저도 경찰들이 가로막았다.

거리로 나와 억울한 죽음을 알릴 수밖에

유가족의 동의도 없이 강제부검을 하고, 화재의 원인이 모두 철거민들에게만 있다면서 경찰 한 명의 죽음을 놓고 일방적인 재판이 시작됐고, 결국 철거민들에게만 4년~5년의 중형이 선고됐다. 단 한 번도 철거민 다섯 명의 죽음에 대해선 물어본 적도 없었다. 경찰 책임자들은 법정에조차 서질 않았다.

결국 우리는 거리로 나와 억울한 죽음을 알려야만 했고 그 앞은 항상 공권력이 가로막았다. 그렇게 3년이 흘렀다.

시아버님은 살아생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용산구청에 "용산4구역엔 세입자들의 문제가 해결 되지 않아 어려움이 많으니 관리처분인가를 연기 해 달라" 고 애원도 해봤지만 대답은 역시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거였다. 그 구청의 공문을 가슴에 품고 사랑하는 아들과 함께 망루에 올랐지만 25시간 만에 한사람은 싸늘한 주검으로 한사람은 차가운 감옥으로 가고야 말았다.

그런데 2010년 11월 "용산4구역 관리처분인가는 절차상 심각한 문제가 있다"며 '무효판결'이 내려져 지금까지 빈터로, 레아가 있던 자리도 망루가 있었던 자리도 포클레인이 아닌 풀만 무성해져 있다.

며칠 전 박원순 서울시장도 도시재개발과 관련해 "용산에서 일어난 어마어마한 참사는 지금까지 해왔던 도시재개발의 현 주소였다"며 "자신이 뿌리 내리고 살던 집에서 쫓겨났는데 어떤 주민이 가만히 있겠나"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이렇듯 시간은 흘렀지만 달라진 건 하나도 없다. 무리한 개발로 인해 용산은 멈춰져버렸고 장례는 치렀지만 진실은 규명되지 않았고 참사 생존자인 철거민들은 경찰관을 죽였다는 오명을 쓰고 아직도 차가운 감옥에 있다.

그런데 법정에 서야할 참사 책임자인 김석기는 화려한 부활을 꿈꾸며 뻔뻔하게도 총선출마를 선언했고 아직도 개발현장에서는 무리한 강제철거가 자행되고 용역들의 폭력은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 정영신 씨. ⓒ프레시안(최형락)

이번 설만은 가족과 함께 보낼수 있기를

다만 달라진 게 있다면 내 인생일 것이다. 그날이후 용산참사 유가족으로, 구속자의 아내로 살았다. 경찰서 한번 가본 적 없던 내가 매일 지하철을 타고 법정으로 구치소로 향했다. 돌아가신 시아버님과 부상을 당한 채 구속이 된 남편을 위해 안 해본 게 없다. 바다건너 제주까지 가서 용산의 억울함을 호소하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진실은 묻어둔 채 장례를 치렀고 남편은 아직도 감옥에 있다. 분노가 치밀어서 참을 수가 없었다. 그대로 묻는다면 나뿐만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이 용산참사와 같은 일을 격을 것이고 수많은 개발현장에서 억울한 목소리는 계속 들릴 것임을 알기에용기 내어 활동가로 살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래서 이번 3주기는 추모만이 아닌 현재 진행되고 있는 무분별한 개발사업과 용산참사 재발방지를 위해 마련된 '강제퇴거금지법' 제정과 '구속철거민들의 석방'을 촉구하며, 매일 광화문광장에서 대표자들의 1인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더 이상 열사 분들과 구속된 철거민들을 위해 눈물만 흘리진 않을 것이다.

더 이상은 안 된다. 용산이 멈췄듯 그들도 멈춰야 한다. 개발로 인해 거리로 내쫒기는 사람이 생겨선 안 되고 벼랑 끝으로 내몰려 죽임을 당해서도 안 된다.

이제라도 참사 책임자들은 화려한 부활이 아닌 법정에 서서 무고한 시민의 목숨을 앗아간 책임을 져야 할이고, 참사 생존자인 구속철거민들을 감옥이 아닌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줘야 할 것이다. 2009년 그날 이후 네 번째 맞는 이번 설 명절은 가족과 함께 맞이하게 해 줘야 한다. 제발….

정영신 씨는 용산참사 유가족. 용산참사로 희생당한 고 이상림 열사의 며느리이자, 망루농성으로 5년형을 받고 구속된 용산4구역 철대위위원장 이충연의 아내이다. 현재 용산참사진상규명 및 재개발제도개선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정영신 용산참사 유가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