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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월 21일 월요일

"고작 주차장 만들려고 6명 죽였나"


이글은 프레시안 2013-01-19일자 기사 '"고작 주차장 만들려고 6명 죽였나"'를 퍼왔습니다.
[현장] 용산참사 4주기 추모대회…"구속자 석방하고 진상 규명하라"

철거민 5명과 경찰 1명의 목숨을 앗아간 용산참사 4주기를 하루 앞둔 19일, 용산참사 현장과 서울역 광장에서 대규모 집회가 열렸다.

노동·시민단체 143곳이 꾸린 '용산참사 4주기 범국민추모위원회'는 이날 참가자 20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구속자 석방과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범국민추모대회를 열었다.

참가자들은 대회에 앞서 서울 용산구 남일당 터에 모여 '구속 철거민 석방, 용산참사 진상 규명, 강제퇴거금지법 제정' 등의 문구가 적힌 손팻말을 들고 서울역 광장까지 행진했다.

오후 2시께 참가자들이 결집한 남일당 터는 텅 빈 주차장으로 변해 있었다. 이들은 "이 학살의 터는 4년이 넘도록 빈 터로 남아 있다"며 "고작 주차장을 만들려고 사람을 죽였나"라고 말했다. 유족들은 4년이 지나도 아픔이 가시지 않는 듯 말없이 눈물을 훔쳤다.(관련 기사 : "사람도 안 사는 저 아파트 때문에…사람이 죽었나")

참가자들은 "죽은 사람은 있는데 죽인 사람은 없다", "이명박 대통령은 비리 측근 인사들이 아니라 용산참사 구속자부터 특별 사면을 해야 한다"고 촉구하며 서울역 광장까지 걸었다.

▲ 남일당 터에서 서울역 광장으로 행진하는 유족들 ⓒ프레시안(최형락)

"용산참사 해결 없이 국민 대통합 없다"

이어 열린 본 대회에서, 용산참사 당시 구속됐다가 지난해 10월 3년 8개월간의 옥살이 끝에 가석방된 김재호 씨는 "마지막까지 망루에 있다가 내려온 죄로 징역 4년형을 받았다"며 "장사밖에 모르는 저희에게 무슨 큰 잘못이 있기에 4년이나 살게 했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고 말했다.

김 씨는 "추운 겨울 교도소에서 고생할 동료들을 생각하니 먼저 나와서 부끄럽다"며 "구속자가 사면되고 용산참사 문제가 해결돼서 하루빨리 함께 생활하고 싶다"고 말했다.

현재 징역형을 받고 수감 중인 철거민은 6명이다. 수감됐던 8명 중 김재호·김대원 씨는 지난해 10월 가석방됐으나, 나머지 6명은 짧게는 올해 10월, 길게는 2015년 1월까지 수감 생활을 해야 한다.

용산참사로 남편 이상림 씨를 잃고 아들 이충연 씨를 감옥에 보낸 전재숙 씨는 "철거민은 누구를 죽이거나 해치러 간 게 아니고 단지 살기 위해 망루에 올랐다"며 "용산참사 해결 없이는 (박근혜 당선인이 말하는) 100% 국민 대통합도 없다"고 말했다.

연대 발언에 나선 강동균 강정마을 회장은 "대통령 인수위원회 앞에서 용산참사, 쌍용자동차, 강정마을 사람들이 단 5분만 박근혜 당선인을 만나게 해달라고 했지만 거절당했다"며 "인수위 시절도 이런데 앞으로 5년간 한국이 어떻게 돌아갈지 생각하면 참담하다"고 말했다. (관련 기사 : [용산참사 유족들 "박근혜 당선인, 우리 만납시다"] [멈추지 않는 눈물…"박근혜 당선인 용산참사 해결하라"])

유가족들과 함께 희생자 영정에 분향한 문정현 신부는 유가족들을 향해 "이들이 2000년 전 가난한 이들을 위해 죽어간 예수의 어머니이고, 인혁당 사건으로 희생된 이들의 어머니"라며 "용산참사 유가족들은 이미 용산참사 희생자들만의 어머니를 넘어 쌍용과 강정과 한진에서 모든 탄압받는 이들을 위해 눈물 흘리는 어머니가 됐다"고 말했다.

▲ 희생자들의 영정에 분향하는 용산참사 유족들 ⓒ프레시안(최형락)

그밖에 추모대회에서는 이강서 신부와 김정우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장 등이 추모사를 했다. 용산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두 개의 문)을 만든 김일란 감독은 김선우 시인이 쓴 추모시를 낭송했다.

참가자들은 오후 5시 20분께 추모 대회를 마치고 6시까지 '정리해고·비정규직 철폐,노조 탄압 분쇄 비상시국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서울시청 광장으로 행진했다.

추모위원회는 참사 기일인 20일 경기도 남양주시 모란공원 희생자 묘역에서 추모제를 열 예정이다.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최형락)

/김윤나영 기자

2013년 1월 20일 일요일

"주차장으로 변한 용산 남일당, 속에서 천불 난다"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3-01-19일자 기사 '"주차장으로 변한 용산 남일당, 속에서 천불 난다"'를 퍼왔습니다.
[현장]눈물의 용산참사 4주기…"박근혜, 언제까지 용산 외면할 건가"

주차장으로 변한 남일당 터에 모인 용산참사 유가족들은 끝내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2009년 1월 20일 새벽 경찰의 살인적인 진압으로 고 이상림·양회성·한대성·이성수·윤용헌씨 등 5명의 철거민과 1명의 경찰관이 목숨을 잃은 용산참사를 기억하고 진상규명을 바라는 이들이 19일 오후 용산참사 현장에 모였다.
삼성물산과 경찰은 4년 전 주상복합건물을 짓겠다며 끝끝내 주거민들을 내몰고 그 과정에서 목숨까지 잃는 사태가 발생했다. 하지만 현재 남일당 터는 주차장으로 쓰이고 있다. 추모식 관계자는 "으리으리한 건물이라도 들어섰으면 덜 억울할 텐데 잡초만 무성하다"고 성토했다.
용산참사 영상 '우리가 왜 죽어야 했는지 알고 싶습니다' 가 나오자 참가자들은 침통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그러나 유가족들은 차마 보지 못했다. 약속이나 한 듯 고개를 떨궜다. 울먹거리던 고 이성수씨의 부인 권명숙씨는 취재진이 플래쉬를 터트리자 손피켓으로 얼굴을 가리고 흐느꼈다. 다른 유가족들도 휴지로 눈물을 훔쳤다.

▲ 19일 서울역광장에서 열린 용산참사 4주기 범국민추모대회에서 한 유족이 조화를 들고 참석해 있다.©연합뉴스

이어 서울역에서 열린 용산참사 4주기 범국민추모대회 '용산은 끝나지 않았다'에는 1000여명의 시민들이 모여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강제퇴거금지법 제정 등을 요구했다.
용산참사 이후 옛 남일당 터에서 미사를 올렸던 천주교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 이강성 신부는 추도사에서 "용산은 마르지 않은 눈물, 멈추지 않은 고통이었다"며 "유가족들이 우리 시대의 살아있는 힘이 됐던 것처럼 우리 각자가 희망이 될 때 우리 시대가 새 세상을 열어갈 것이란 사실을 다시금 함께 다짐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 19일 서울역 광장에서는 용산참사 4주기 범국민추모대회가 열렸다. (사진제공=언론노조)

용산참사·쌍용자동차·제주해군기지·밀양송전탑 싸움을 벌이는 '함께살자 농성촌' 촌장을 맡고 있는 문정현 신부는 함께 무대에 오른 유가족들에게 "경애의 박수 부탁드린다"며 따뜻한 격려의 말을 건넸다. 
"2000년 전 가난하고 고통 받고 빼앗긴 사람들을 대신해 골고타에서 요절한 한 청년의 주변에 어머니와 여인들이 있었다. 그 여인들이 여러분 앞에 서 있다.(…)2009년 1월20일 철거민을 대신해 공권력에 의해 맞아 죽고 불타 죽은 남성들의 여인들이 여러분 앞에 계신다. 이 어머니들은 용산참사 희생자의 어머니를 넘어섰다. 이분들은 강정으로, 쌍용자동차로, 한진중공업으로, 곳곳을 돌아다니며 탄압받는 사람들을 향해 울고 위로를 주고 있다."

범국민추모대회에 참석한 용산참사 유가족들과 문정현 신부. (사진제공=언론노조)

추모식에 온 이들은 '100% 국민대통합'을 약속한 박근혜 당선자에게 "용산참사를 외면하지 말라"고 입을 모았다. 4년 전 남일당 망루에 올랐던 일로 징역 4년형을 받고 지난해 10월 출소한 김재호(57)씨는 "장사밖에 모르는 저희가 무슨 큰 잘못을 했길래 4년 동안 이렇게 (징역을) 살게 됐는지 이해가 안 간다. 남아 있는 동지들도 빨리 석방돼서 이곳에 함게 했으면 좋겠다. 지금 이 추운 겨울에 마룻바닥에서 고생하고 지낼 동지들 생각할 때 먼저 나와 부끄럽다"고 말했다. 김씨는 "하루 빨리 용산 문제가 해결되고 구속자가 사면되고 모든 문제가 해결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김선우 시인의 추모시 '우리는 인간인가, 여기는 인간의 마을인가'를 대독한 영화 '두개의 문'의 김일란 감독. (사진제공=언론노조)

조희주 '용산참사 4주기 범국민추모위원회' 위원장은 "유가족들과 우리는 새로운 정부의 출범을 준비하는 박근혜 당선인과 인수위에 묻는다. 용산을 언제까지 외면할 것인가"라며 "당장이라도 이명박 정부에서 있었던 국가폭력의 상징인 용산참사의 진상규명을 위한 정부 조사위원회의 설치, 구속 철거민들의 즉각적인 사면 그리고 또 다른 용산참사의 재발을 막기 위한 강제퇴거금지법 제정 등 재발방지 대책 수립에 나설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 "살인진압 진상규명, 철거민을 사면하라." (사진제공=언론노조)

고 이상림씨의 부인 전재숙(여·71)씨는 미디어오늘과의 인터뷰에서 "철거민이 모든 죄를 뒤집어쓰고 옥살이하고 정말 경찰 책임자가 처벌받지 않는 것이 가장 억울하다"며 "우리가 장사하던 자리가 폐허로 바뀌고 용역들 배불리는 주차장으로 변한 것을 보면 속에서 천불이 난다"라고 심정을 털어놓았다.
전씨는 또 "박근혜 당선자는 대통합을 말했지만 무엇이 대통합인지 묻고 싶다. 용산참사를 해결하지 않으면 대통령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용산, 우리들의 십자가/용산, 고통 속에 잉태된 거룩한 슬픔의 성소/용산, 딛고 일어서야 할 절망과 포기할 수 없는 희망의 밑바닥/우리는 인간인가. 그렇다면/인간의 마을을 포기하지 않는 참된 용기를 주소서.(용산참사 4주기 추모시 '우리는 인간인가, 여기는 인간의 마을인가'/김선우)

▲ 추모식 참가자들은 이후 시청앞 광장으로 자리를 옮겨 '정리해고·비정규직 철폐! 노조탄압 분쇄! 비상시국대회'를 열었다. (사진제공=언론노조)

용산참사는…
2009년 1월 19일 용산4지구 철거민 20여 명이 철거반대 및 생존권 보장을 요구하며 서울 한강로변 남일당 건물에서 농성에 돌입하자 경찰특공대가 이를 강제진압하는 과정에서 철거민 5명과 경찰 1명이 사망했다.
용산참사 유족들은 이후 시신 안치된 순천향대병원에 합동 분향소를 설치했다. 유족들과 범국민대책위원회는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화재가 발생, 사망이 발생했다며 진상 규명을 요구했다. 또한 조현오 경찰청장, 김석기 서울경찰청장 등 책임자 처벌과 생계 보장을 요구하며 농성을 시작했다.
하지만 1심 법원은 이번 참사의 책임이 철거민들에게 있다며 이충연 용산철거민대책위원장 등 철거민 9명에게 각각 징역 5~6년의 중형을 구형했다.
10월 3일 정운찬 총리가 용산 참사 현장을 방문하는 등 정부가 유족들과 협상에 돌입, 12월 30일 극적으로 협상이 이뤄졌다. 그리고 2010년 1월9일 참사가 일어난 지 355일 만에 철거민 희생자들의 장례식이 진행됐다.
1월13일 서울 고법은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유족들과 시민사회의 요구에 따라 미공개 수사기록 열람·등사 허용을 결정했지만 검찰은 항소심 재판부에 반발해 기피 신청을 했다. 고법과 대법원은 검찰의 재항고를 잇달아 기각하지만 여전히 수사기록은 공개되지 않고 있다.
5월31일 서울고법은 이충연 위원장 등 7명에게 징역 4~5년, 나머지 2명에게는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유족들은 지금까지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고 있다.

조수경 기자 | jsk@mediatoday.co.kr  

2012년 4월 7일 토요일

잊혀지지 않는 참사 '용산'..."MB, 주차장 하려고 사람 죽였나"


이글은 민중의소리 2012-04-07일자 기사 '잊혀지지 않는 참사 '용산'..."MB, 주차장 하려고 사람 죽였나"'를 퍼왔습니다.
[MB가 파괴한 한국] '용산학살'이 송두리째 흔들어놓은 삶...남은 건 분노와 오기


ⓒ빈곤사회연대 제공 용산참사 당일 아침 현장.

"여보, 나 오늘 용산에 갔다 올게. 별일 없을 테니 일찍 자. 금방 내려올 거야."자신 뿐 아니라 모든 철거민들의 일이라면 만사를 제쳐두고 뛰어갔던 故윤용헌 열사가 두툼하게 챙겨입고 집을 나서기 전 아내 유영숙씨와 대면하며 했던 마지막 말이다. 그게 남편의 생전 마지막 모습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2009년 1월 20일 새벽. 서울 용산구 남일당 건물 위 망루에는 그렇게 집을 나선 다섯명의 철거민이 올라섰다. 이유는 단 하나였다. 다른 곳에서도 장사를 하며 생존권을 지켜나갈 수 있게 보상 좀 해달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에게 철거민들의 외침은 그리 중요한 게 아니었다. 건설사들의 배를 어떻게든 빨리 채워줘야 했다. 시너를 비롯한 발화물질들이 망루에 있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경찰이 용역을 앞세워 무자비한 진압작전을 펼치기 시작했다. 

망루 쪽에서 갑자기 불길이 치솟기 시작하는 순간 남편 걱정에 잠을 설치던 영숙씨는 뭔가 심상찮은 느낌에 눈을 떴다. 영숙씨는 인태순 전국철거민연합 연대사업국장의 전화를 받았다. "언니, 걱정하지마. 승우 아빠(당시 순화동 철거민대책위 총무였던 지석준씨의 아들 이름) 말로는 오빠가 승우 아빠도 살려놓고 내려갔다고 그랬어. 살아서 어디 숨어있을 거래. 잠잠하면 나올 거라고 걱정하지 말래." 영숙씨는 인 국장의 말을 철썩같이 믿었다. 

그 말 대로만 됐다면 얼마나 다행이었을까? 하지만 영숙씨는 참혹한 현실과 마주해야 했다. 불에 탄 시신 다섯구가 순천향병원으로 옮겨졌다는 이야기를 전해듣고 미친듯이 달려갔다. 막는 경찰들을 온 힘으로 밀어가며 영안실로 들어갔다. 네번째 시신까지 확인했다. 남편은 없었다. 마지막 시신을 본 순간 영숙씨는 주저앉고 말았다. 어딘가 숨어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남편은 딱딱한 시신이 되어 영안실에 누워있었다. 복부와 다리 살이 잘려나간 채로...

그렇게 다섯명의 열사가 세상을 떠났다. 용산에서 벌어진 그때의 참극이 열사들의 가족들과 철거민들에게 남긴 건 정신적, 신체적 후유증이다. 

영숙씨는 여기저기 살이 잘려나간 채로 영안실에 누워있던 그때 남편의 모습을 아직도 본다. 연대투쟁을 다니느라 항상 늦은 시간 귀가하던 남편이 문을 열고 들어오는 소리를 가끔씩 생생하게 듣는다. 환각과 환청이라는 사실을 영숙씨 자신도 잘 알지만, 남편이 살아있을 때 그랬듯 문 소리가 들릴 때마다 방문을 열고 현관문 쪽을 살펴보곤 한다.

"영안실에 누워있던 애 아빠 모습이 지금도 막 보여요. 길을 걸어다닐 때도 보일 때가 있고...병원에서는 '그런 게 보이는 건 좋지 않다'고 말하더라고요. 그래도 집회 나가서 투쟁할 때는 애 아빠가 죽었다는 생각이 안 들어요. 내 가슴 속에 같이 있으면서 지켜준다는 기분이 들거든요."

남들이 보면 정신적 충격으로 인한 후유증이라고 여길 수도 있다. 가끔 영숙씨도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가슴 속에 살아 있는 남편의 존재는 영숙씨가 철거투쟁을 계속 해나갈 수 있는 원동력이다.


ⓒ민중의소리 故윤용헌 열사 부인 유영숙씨.

용산참사 진상 규명을 요구하며 1년 넘게 투쟁을 하던 과정에서 경찰과 용역들에게 당한 구타로 왼쪽 팔의 인대가 늘어났고, 대상포진은 어깨까지 퍼졌다. 시간이 갈수록 건강은 악화되어가고 있다. 작은아들은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한 충격으로 갑자기 찾아온 눈 출혈로 한쪽 시력을 잃었다. 나머지 한쪽 눈의 시력도 점점 약화되고 있다. 

그럼에도 영숙씨는 철거투쟁을 멈출 수 없다. 정신적, 신체적 후유증과 함께 생긴 건 분노와 오기다. 남편과 함께 지키려고 했던 순화동 지역의 투쟁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억울하게 죽은 남편을 생각한다면 반드시 제2의 용산참사를 막고, 철거민들이 생존권을 손에 쥐는 데 힘을 보태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용산참사는 정권이 경찰특공대를 이용해서 평범한 시민들을 학살한 거예요. 생각할 때마다 부들부들 떨려요. 용역이든 경찰이든 이젠 안 무서워요. 그들은 있는 사람들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되지만, 우리는 절박하거든요. 무엇이든 절박함을 이기진 못 해요."

마음은 더 단단해져 전철연과 유가협 활동을 병행하며 정신없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지만 가끔 영숙씨를 괴롭히는 건 남편 생전의 단란했던 가족생활에 대한 그리움이다. 얼마 전엔 군대에서 휴가를 나온 큰아들이 했던 말에는 가슴 한 구석이 쓰라렸다. '아빠와 함께 자주 갔던 빙어낚시를 가고 싶다'는 큰아들의 말에 그는 말없이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아이들은 아빠와의 추억이 지금도 생생한가 봐요. 주말이면 아빠가 일을 안 하니깐 애들이랑 나한테 아무것도 안 시키고 모든 살림을 도맡아서 했고, 놀러도 데리고 다녔거든요. 전국 방방곡곡을 차 타고 다녔어요. 제일 기억에 남는 게 겨울에 다녔던 빙어낚시예요. 가만히 생각해보면 애들 아빠는 가족들한테는 일등 아빠였고, 일등 남편이었던 것 같아요."

용산참사는 평범하게 살아가던 이들의 삶을 이처럼 송두리째 뒤흔들어놓았다. 소중한 일상을 빼앗아갔고, 그들을 투사로 만들었다. 그때 그 일로 남편을 떠나보내고, 살인 누명을 쓴 아들을 감옥에 보내야 했던 전재숙씨(故이상림 열사의 부인이자 이충연 전 용산철거민대책위원회 위원장의 모친)도 마찬가지였다. 


ⓒ민중의소리 고 이상림 열사 부인이자 징역 선고를 받고 복역 중인 이충연 위원장의 모친인 전재숙씨.

재숙씨는 남일당 뒷건물이자 용산참사 연대투쟁을 하던 이들의 아지트였던 카페 '레아'가 있던 자리에서 30년 동안 갈비집을 했었다. 별 탈 없이 장사를 했었고, 나이가 들면서 고기집을 더이상 운영하기 힘들어지자, 신혼인 아들 내외와 함께 카페 '레아'를 차렸다. 예쁘게 꾸며놓은 카페 '레아'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면서 유명해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 손님들로 들끓었다. 재숙씨는 아들 내외와 함께 장사를 하면서 행복에 겨워 지냈다. 하지만 세상이 재숙씨에게 준 행복한 시간은 8개월이 고작이었다. 

"지금도 2009년 1월 20일로 시간은 묶여져 있어요. 그날이, 그 시간이, 우리가 살아온 세월이에요. 여전히 진상은 밝혀지지 않고, 아들은 벌써 감옥에서 겨울을 세번이나 났어요."

신혼생활의 단맛을 느낄 새도 없이 결혼 후 8개월 만에 남편을 감옥에 보내야 했던 며느리 정영신씨를 생각하면 재숙씨는 가슴이 미어진다. 남편과 시부모의 아낌없는 사랑을 받으며 남부럽지 않은 결혼생활을 하던 정씨는 이제 전철연 회원이자 용산참사진상규명위원회 상임활동가로, 누구보다도 열심히 철거투쟁을 하고 있다.

"볼 때마다 애처로워요. 내 자식이죠. 얼마나 안타까워요. 감옥 간 남편 뒷바라지 하랴, 내 비위 맞추랴 고생스러운 데다 활동까지 하러 다니고 하니깐...아유, 뭐라 말을 할 수가 없네요. 오늘도 전화와서는 내일 면회 갈 수 있냐고 물어보더라고요. 내일 오전에 간다는데..."

참사 이후 1년여 동안 벌인 투쟁으로 이끌어낸 합의로 유족들은 남일당은 떠났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많다. 재숙씨의 아들 이충연 전 위원장 등 7명은 '가족을 불에 태워 죽인 살인자' 누명을 쓰고 징역 생활을 하고 있고, 사건의 진상은 규명되지 않고 있다. 진상규명을 위한 유일한 열쇠인 미공개 검찰 수사기록 3천쪽은 여전히 공개되지 않고 있다. 

대법원 판결은 잔인했다. 지난 2010년 11월 대법원(양승태 대법관. 현 대법원장)은 이충연 전 위원장에게 징역 5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용산 재판이 벌어지는 법정에선 눈물도, 상식도 없었다. 사실상 재판부는 철거민의 불법적 행동만을 두고 판단했고, 공권력의 과잉 진압에 대한 책임은 묻지 않았다.

3년이라는 세월이 지나는 동안 재숙씨는 일흔이 넘은 몸을 이끌고 다른 유족들과 함께 전국을 부지런히 돌아다녔다. 그해 여름 있었던 평택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의 옥쇄파업 현장, 2010년 충남 아산 유성기업 노동자 투쟁 현장, 지난해 부산에서 있었던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반대 투쟁, 올해까지 이어지고 있는 제주도 강정마을 해군기지 공사 반대 투쟁 현장까지. 용산참사 유족들의 투쟁현장에 함께 있어줬고, 아직 끝나지 않은 진상규명 투쟁에 힘을 보태줄 이들에 대한 의리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나 혼자 힘으로는 힘드니께. 그 사람들이 힘들 때 나도 찾아가주고, 그 사람들도 나 힘들 때 찾아와주는 게 '우리'잖아요. 정신없이 돌아다녔어요. 사람들이 왜 살이 안 찌냐고 물어보는데, 내 입장이 살 찔 입장이 아니잖아요. 지 아버지랑 동지들 죽였다고 잡혀들어간 아들이 저러고 있는디. 우리가 밝혀내야 할 진상은 아들이 나와야 밝혀질 거고, 구속돼 있는 동지들이 나와야 밝혀져요. 그 사람들 나오게 하는 게 첫째 목적이에요."

참극의 현장 남일당 인근은 지금...

다섯명의 목숨을 앗아간 참극의 현장 남일당 건물은 결국 철거됐다. 500평 남짓 돼 보이는 남일당 부지를 포함한 용산4구역 일부 부지는 주차장으로 쓰여지고 있었다. 3년 전 철거민들에게 쇠파이프를 휘둘러댄 용역 직원들을 관리했던 용역회사인 'O○건설'이 주차장을 운영하고 있었다. 다섯 목숨을 앗아가면서까지 허물어버려던 그곳이 고작 '용역깡패'들의 밥벌이용으로 쓰이고 있는 셈이다. 

그런 남일당만 생각하면 아직도 재숙씨의 입가는 파르르 떨린다. "지금도 물어보고싶은 게 있어요. 사람 죽여서 얻어낸 그 땅을 왜 빈터로 만들어놨냐고. 그 자리에서 용역들이 주차장 해서 돈 벌고 있응께. 그놈들 밥 먹일라고 이렇게 사람들 죽여서 빈터로 만든거냐고. 그게 그렇게 급한 일이었냐고요."


ⓒ민중의소리 철거 이후 주차장으로 변한 남일당 부지. 이곳은 용산 재개발 4구역이다.

용산참사는 주변 상권까지도 몰락시켰다. 용산역을 바라보고 남일당 오른쪽에 있는 5구역은 철거 예정 지역이지만, 아직도 상가는 영업을 하고 있다. 하지만 점심시간이 무색할 정도로 식당에는 파리만 날렸고, 카페에는 드문드문 손님이 들었다. 

남일당 부지에서 20여미터 떨어진 5구역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이주화(49)씨는 "재개발한다고 인근 상가도 빠지고 직장인들도 다 빠졌다. 그 사람들 보고 장사했었는데 지금은 80% 이상 손님이 줄었다"고 말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재개발 구역을 안내한 인태순 전철연 연대사업국장은 "구역별로 나눠서 순차적으로 철거를 하는 재개발 방식이 모든 상권을 몰락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철거 작업이 순차적으로 이뤄지는 탓에 인근 상인들이 받는 매출 피해 규모도 점차 누적되는 것이다. 남일당 부지를 기준으로 재개발 1구역이 용산참사 직전에 철거되면서 나머지 2,3,4,5구역 상권 매출에 영향을 미쳤고, 남일당 부지가 포함된 4구역과 2구역이 순차적으로 철거되면서 나머지 구역 상권에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철거작업이 완료된 4구역과 2구역 인근에 각각 위치한 5구역과 3구역 상권은 사실상 죽은 상태였다. 굳게 닫힌 셔터에 어지럽게 락카칠이 돼 있는 곳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었다.

3구역에서 옷가게를 하는 김인순(59)씨는 현재 상황을 '철거민 피 말리기 작전'이라고 표현했다. 

"구역별로 띄엄띄엄 철거를 하면서 상인들을 지치게 만들어요. 한구역씩 철거되면서 타격 받는 다른 구역 상인들이 하나둘씩 떠날 거 아니에요? 이곳에서 수십년 장사한 사람들은 어차피 이천만원 정도 쥐어주면 가게 접어버리고 웃으면서 나가요. 우리같은 사람들은 여기서 쫓겨나면 다른 데서도 비슷한 조건으로 장사하고 살아야 되니깐 남아 있으면서 보상금 투쟁을 하는데, 이 짓도 길어질 수록 지치거든요. 그러다가 하나 둘 떠나는 사람 생기고...결국 그게 목적이에요. 철거민 피 말리기 작전이죠."


ⓒ민중의소리 철거를 앞두고 있는 용산 3구역. 이곳 상인들 중 상당수가 2천만원 남짓 되는 보상금을 받고 떠났다.

적게는 1억, 많게는 3~5억원이라는 어마어마한 권리금을 내고 장사를 시작한 이들에게 처음 제시됐던 이주 보상금 감정평가액은 2천만원 안팎에 불과했다. 앞으로 수십년은 더 장사를 해야 하는 이들에게는 터무니 없는 금액이었다. 더군다나 권리금은 법적 보호를 받을 수조차 없다. 그들은 감정평가를 할 때마다 100~200만원씩 보상액을 올려가고 있지만, 권리금의 절반도 채 되지 않는다. 싸움이 길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김씨와 인 국장은 이번 싸움을 절대 포기할 수 없다고 했다. 이기는 것 만이 또다른 용산참사를 낳지 않는 길이라는 걸 이들은 잘 알고 있다. 재개발 문제를 해결하는 데엔 정치권의 역할도 중요하다. 무분별한 개발을 지양하고, 불가피한 개발이 이뤄질 경우 '수평이동'이 가능한 보상이 동반되도록 하는 법안이 만들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이들은 오는 4.11 총선에서도 제대로 이명박 정권을 심판할 수 있는 투표를 하겠다고 입을 모았다.

"우린 원래 정치인들 안 믿거든요. 우리가 스스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도 이번에는 꼭 투표 하려구요. 철거민들 다 데리고 투표하러 갈 거예요. 우리 문제 해결할 수 있는 사람, 정당 찍어서 떳떳하게 요구할 겁니다. '우리가 뽑아줬으니 우리 문제 반드시 해결해 달라'고."

강경훈 기자 qwereer@vop.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