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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월 20일 일요일

"주차장으로 변한 용산 남일당, 속에서 천불 난다"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3-01-19일자 기사 '"주차장으로 변한 용산 남일당, 속에서 천불 난다"'를 퍼왔습니다.
[현장]눈물의 용산참사 4주기…"박근혜, 언제까지 용산 외면할 건가"

주차장으로 변한 남일당 터에 모인 용산참사 유가족들은 끝내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2009년 1월 20일 새벽 경찰의 살인적인 진압으로 고 이상림·양회성·한대성·이성수·윤용헌씨 등 5명의 철거민과 1명의 경찰관이 목숨을 잃은 용산참사를 기억하고 진상규명을 바라는 이들이 19일 오후 용산참사 현장에 모였다.
삼성물산과 경찰은 4년 전 주상복합건물을 짓겠다며 끝끝내 주거민들을 내몰고 그 과정에서 목숨까지 잃는 사태가 발생했다. 하지만 현재 남일당 터는 주차장으로 쓰이고 있다. 추모식 관계자는 "으리으리한 건물이라도 들어섰으면 덜 억울할 텐데 잡초만 무성하다"고 성토했다.
용산참사 영상 '우리가 왜 죽어야 했는지 알고 싶습니다' 가 나오자 참가자들은 침통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그러나 유가족들은 차마 보지 못했다. 약속이나 한 듯 고개를 떨궜다. 울먹거리던 고 이성수씨의 부인 권명숙씨는 취재진이 플래쉬를 터트리자 손피켓으로 얼굴을 가리고 흐느꼈다. 다른 유가족들도 휴지로 눈물을 훔쳤다.

▲ 19일 서울역광장에서 열린 용산참사 4주기 범국민추모대회에서 한 유족이 조화를 들고 참석해 있다.©연합뉴스

이어 서울역에서 열린 용산참사 4주기 범국민추모대회 '용산은 끝나지 않았다'에는 1000여명의 시민들이 모여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강제퇴거금지법 제정 등을 요구했다.
용산참사 이후 옛 남일당 터에서 미사를 올렸던 천주교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 이강성 신부는 추도사에서 "용산은 마르지 않은 눈물, 멈추지 않은 고통이었다"며 "유가족들이 우리 시대의 살아있는 힘이 됐던 것처럼 우리 각자가 희망이 될 때 우리 시대가 새 세상을 열어갈 것이란 사실을 다시금 함께 다짐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 19일 서울역 광장에서는 용산참사 4주기 범국민추모대회가 열렸다. (사진제공=언론노조)

용산참사·쌍용자동차·제주해군기지·밀양송전탑 싸움을 벌이는 '함께살자 농성촌' 촌장을 맡고 있는 문정현 신부는 함께 무대에 오른 유가족들에게 "경애의 박수 부탁드린다"며 따뜻한 격려의 말을 건넸다. 
"2000년 전 가난하고 고통 받고 빼앗긴 사람들을 대신해 골고타에서 요절한 한 청년의 주변에 어머니와 여인들이 있었다. 그 여인들이 여러분 앞에 서 있다.(…)2009년 1월20일 철거민을 대신해 공권력에 의해 맞아 죽고 불타 죽은 남성들의 여인들이 여러분 앞에 계신다. 이 어머니들은 용산참사 희생자의 어머니를 넘어섰다. 이분들은 강정으로, 쌍용자동차로, 한진중공업으로, 곳곳을 돌아다니며 탄압받는 사람들을 향해 울고 위로를 주고 있다."

범국민추모대회에 참석한 용산참사 유가족들과 문정현 신부. (사진제공=언론노조)

추모식에 온 이들은 '100% 국민대통합'을 약속한 박근혜 당선자에게 "용산참사를 외면하지 말라"고 입을 모았다. 4년 전 남일당 망루에 올랐던 일로 징역 4년형을 받고 지난해 10월 출소한 김재호(57)씨는 "장사밖에 모르는 저희가 무슨 큰 잘못을 했길래 4년 동안 이렇게 (징역을) 살게 됐는지 이해가 안 간다. 남아 있는 동지들도 빨리 석방돼서 이곳에 함게 했으면 좋겠다. 지금 이 추운 겨울에 마룻바닥에서 고생하고 지낼 동지들 생각할 때 먼저 나와 부끄럽다"고 말했다. 김씨는 "하루 빨리 용산 문제가 해결되고 구속자가 사면되고 모든 문제가 해결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김선우 시인의 추모시 '우리는 인간인가, 여기는 인간의 마을인가'를 대독한 영화 '두개의 문'의 김일란 감독. (사진제공=언론노조)

조희주 '용산참사 4주기 범국민추모위원회' 위원장은 "유가족들과 우리는 새로운 정부의 출범을 준비하는 박근혜 당선인과 인수위에 묻는다. 용산을 언제까지 외면할 것인가"라며 "당장이라도 이명박 정부에서 있었던 국가폭력의 상징인 용산참사의 진상규명을 위한 정부 조사위원회의 설치, 구속 철거민들의 즉각적인 사면 그리고 또 다른 용산참사의 재발을 막기 위한 강제퇴거금지법 제정 등 재발방지 대책 수립에 나설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 "살인진압 진상규명, 철거민을 사면하라." (사진제공=언론노조)

고 이상림씨의 부인 전재숙(여·71)씨는 미디어오늘과의 인터뷰에서 "철거민이 모든 죄를 뒤집어쓰고 옥살이하고 정말 경찰 책임자가 처벌받지 않는 것이 가장 억울하다"며 "우리가 장사하던 자리가 폐허로 바뀌고 용역들 배불리는 주차장으로 변한 것을 보면 속에서 천불이 난다"라고 심정을 털어놓았다.
전씨는 또 "박근혜 당선자는 대통합을 말했지만 무엇이 대통합인지 묻고 싶다. 용산참사를 해결하지 않으면 대통령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용산, 우리들의 십자가/용산, 고통 속에 잉태된 거룩한 슬픔의 성소/용산, 딛고 일어서야 할 절망과 포기할 수 없는 희망의 밑바닥/우리는 인간인가. 그렇다면/인간의 마을을 포기하지 않는 참된 용기를 주소서.(용산참사 4주기 추모시 '우리는 인간인가, 여기는 인간의 마을인가'/김선우)

▲ 추모식 참가자들은 이후 시청앞 광장으로 자리를 옮겨 '정리해고·비정규직 철폐! 노조탄압 분쇄! 비상시국대회'를 열었다. (사진제공=언론노조)

용산참사는…
2009년 1월 19일 용산4지구 철거민 20여 명이 철거반대 및 생존권 보장을 요구하며 서울 한강로변 남일당 건물에서 농성에 돌입하자 경찰특공대가 이를 강제진압하는 과정에서 철거민 5명과 경찰 1명이 사망했다.
용산참사 유족들은 이후 시신 안치된 순천향대병원에 합동 분향소를 설치했다. 유족들과 범국민대책위원회는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화재가 발생, 사망이 발생했다며 진상 규명을 요구했다. 또한 조현오 경찰청장, 김석기 서울경찰청장 등 책임자 처벌과 생계 보장을 요구하며 농성을 시작했다.
하지만 1심 법원은 이번 참사의 책임이 철거민들에게 있다며 이충연 용산철거민대책위원장 등 철거민 9명에게 각각 징역 5~6년의 중형을 구형했다.
10월 3일 정운찬 총리가 용산 참사 현장을 방문하는 등 정부가 유족들과 협상에 돌입, 12월 30일 극적으로 협상이 이뤄졌다. 그리고 2010년 1월9일 참사가 일어난 지 355일 만에 철거민 희생자들의 장례식이 진행됐다.
1월13일 서울 고법은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유족들과 시민사회의 요구에 따라 미공개 수사기록 열람·등사 허용을 결정했지만 검찰은 항소심 재판부에 반발해 기피 신청을 했다. 고법과 대법원은 검찰의 재항고를 잇달아 기각하지만 여전히 수사기록은 공개되지 않고 있다.
5월31일 서울고법은 이충연 위원장 등 7명에게 징역 4~5년, 나머지 2명에게는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유족들은 지금까지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고 있다.

조수경 기자 | jsk@mediatoday.co.kr  

2013년 1월 17일 목요일

"덕이, 신곡, 순화, 도대체 누굴 위해…"


이글은 프레시안 2013-01-16일자 기사 '"덕이, 신곡, 순화, 도대체 누굴 위해…"'를 퍼왔습니다.
[현장] 용산참사 유가족들, 참사 4주기 앞두고 개발지 돌며 '동병상련'

2009년 용산참사로 남편을 잃은 유영숙(53) 씨. 참사 4주기가 가까워진 요즘, 그는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한다. 낮에는 '진상 규명, 책임자 처벌'을 외치며 바쁘게 움직이지만, 밤이 되면 어두운 방에 홀로 남아답답한 가슴을 친다. 그는 "아직도 남편이 많이 보고 싶다"고 했다.

지난 15일 아침, 유 씨는 무거운 마음을 이끌고 집을 나섰다. 이날은 용산참사 4주기 추모위원회가 준비한 '강제 퇴거 현장 순회'의 날. 남편을 떠나보낸 용산 4구역 남일당 현장처럼, 재개발 광풍에 휩싸여 폐허가 된 지역들을 방문한다. 오전 10시 자욱한 아침 안갯속에서 유 씨는 중구 대한문 앞에 모습을 드러낸 사람들의 손을 부여잡았다.

이날 유 씨를 비롯한 현장 순회단 70여 명은 중구 순화동 재개발 지역, 경기도 일산 덕이 재개발 지역, 경기도 김포 신곡 재개발 지역을 순서대로 방문했다. 모두 한때 재개발 광풍이 불어 소지주와 세입자들이 터전을 잃은 곳이다. 또 지금은 각각의 이유로 재개발이 중단된 곳이기도 하다. 유 씨와 함께 순회단에 참가한 전재숙(69) 유가족 대표는 "이렇게 다 중단될 것을, 왜 그리 사람을 죽기 살기로 내쫓았나"라며 내내 가슴을 쳤다.

[중구 순화동] "남편과 오손도손 꾸려가던 식당 자리엔 무성한 잡초만…"

▲ 중구 순화동 재개발 지역. ⓒ프레시안(최하얀)

중구 순화동 재개발 지역은 유영숙 씨가 남편 고(故) 윤용헌 씨와 함께 식당을 했던 곳이다. 경찰본청 바로 맞은편 이곳에서 부부는 10여 년 전 한정식 가게 '미락정'을 열었다. 주변에 있던 40여 개 상가 주민과 함께 유 씨 부부는 매일 바쁘게 보냈다. 점심시간이면 인근의 공무원과 경찰들이 식당 앞에 긴 줄을 만들었다. 유 씨는 "열심히 살았고, 잘살 줄 알았다"고 했다.

그러나 청천벽력 같은 재개발 통보는 모든 것을 바꿔 놨다. 2005년 5월, 세입자들과 소지주들은 일방적인 재개발 통보를 받았다. 재개발 조합 측이 내놓은 보상은 약 1000만 원 수준의 영업보상금이 전부였다. 좋은 상권으로 들어오기 위해 대출까지 받아 만든 권리금은 되찾을 수 없었다.

시간이 흐르며 원주민들은 힘의 논리에 밀려갔다. 유 씨는 "조합의 회유·압박으로 소지주들은 땅을 헐값에 매매하고 하나씩 떠났다"라며 "떠나는 사람들을 보며 가슴이 아팠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리고 곧이어 2006년 명도집행이 들어왔다. 유 씨는 "100명은 훌쩍 넘어 보이는 새까만 철거 용역들이 집을 부수고, 주민들을 길바닥에 내동댕이쳤다"고 말했다. "입에 담을 수도 없는 상스러운 욕에 기겁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처럼 개발 사업이 이루어지는 곳에는 어김없이 철거 용역이 등장한다. 덩치가 크고 몸 이곳저곳에 문신을 새겨 넣은 이들은 폭행, 협박, 성희롱 등을 거침없이 하며 거주민을 위협한다.

유 씨는 "그래도 남편은 싸워보려는 의지가 있었다"고 말했다. 유 씨는 "처음에는 온 가족이 나서 남편의 투쟁 의지를 꺾어보려고 했지만, 남편은 굳건했다"며 "용산에 간 것도 비슷한 처지인 사람들을 지나칠 수 없어서"라고 말했다.

윤용헌 씨는 2009년 참사 당시 망루에서 목숨을 잃었다. 유 씨는 "남편이 용산으로 떠나기 직전, 나를 데리고 이곳(순화동)을 한 바퀴 둘러보며 천막 치기 좋은 장소를 알려줬다"며 "'내가 없을 때 순화동을 잘 지켜라'라고 당부했다"고 말했다.

유 씨는 지금도 한 달에 한 번꼴로 순화동을 방문한다. 2011년 이후 중단된 공사가 혹시라도 재개될까 걱정돼서다. 순화동 재개발 사업은 조합 비리가 터지고, 급기야 조합과 재개발 대책위원회 간의 소송에서 조합이 패소하며 중단된 것으로 알려졌다.

공사가 중단됐다고 해서 유 씨가 과거의 삶을 돌려받을 수 있는 건 아니다. 부부의 삶이 뿌리내렸던 '미락정' 자리는 이미 무성한 잡초가 차지했다. 이제는 모두 떠나고 다섯 가구만이 남은 이곳. 스산한 공터에 폐허처럼 서 있는 건물에서 나풀거리는 빨래 옷가지들이 "여기 사람이 있다"고 말하는 듯했다.

[일산 서구 덕이동] "사람도 살지 않는 저 아파트가 '집'이긴 한가"

▲ 일산 덕이동에 있는 김명자 씨의 천막. 순회단원들이 천막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있다. ⓒ프레시안(최하얀)

유영숙 씨는 순화동을 떠나 일산 덕이동으로 향했다. 전국에서 유명한 대규모 가구 상가 단지였던 이곳에선 2006년 5월, '주거지 인가'가 떨어지며 재개발이 시작됐다.

당시 세입자들은 재개발이 논의 중임을 사전에 알지 못했다. 개발 사업은 보통 막바지에 이르기 전까지는 대부분 거주민 모르게 구메구메 진행된다. 지방자치단체에서 처음 개발 사업 구역을 지정할 때, 이를 아는 거주민은 전체의 10%(보통 개발 찬성 주민)도 채 되지 않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다 어느 날 "경축, 정비사업구역으로 지정"이란 현수막이 동네 어귀에 내걸려야 비로소 세입자들은 "쫓겨날 처지"임을 깨닫게 된다.

덕이동에서 200평 규모의 가구점을 운영하던 김명자(52) 씨도 그랬다. 2001년 가구점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동네에서 잘나가던 여성 최고경영자(CEO)로 불렸"던 김 씨. 그러다 2008년 4월, 건물 주인이 재개발 업체에 땅을 팔면서 그는 한순간에 '철거민'이 됐다.

김 씨는 세 딸과 함께 천막을 치고 '이주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김 씨는 "물도 전기도 없는 천막에서 우리 네 모녀만 1960년대에 살고 있다"며 "툭하면 철거 용역이나 술 취한 행인이 한밤중에 천막에 들어와서 행패를 부린다"고 말했다. "이런 일이 하도 많아, 욕만 늘었다"는 말도 덧붙였다.

김 씨는 재개발 반대 투쟁을 하며 남편과 이혼했다. 하지만 세 딸은 김 씨를 떠나지 않았다. 천막을 처음 치던 당시 중학교 2학년이었던 막내딸은 올해 대학에 갔다. 원래 수의사가 꿈이었는데, 얼마 전에는 건축공학을 공부하겠단 포부를 밝혔다고 했다. "엄마한테 예쁜 집을 지어주고 싶어서라고 하더라"라며 김 씨는 정겹게 웃었다.

현재 김 씨의 가구점을 밀어낸 자리에는 고층 아파트들이 유령처럼 서 있다. 재작년에분양이 시작됐지만, 이제 겨우 입주가 30%가량 진행됐다고 김 씨는 전했다. 그러면서 "사람도 살지 않는 저게 집이야? 내 천막이 집이지"라고 김 씨는 말했다.

김 씨의 설명을 듣고 있던 유영숙 씨는 결국 북받쳐 울음을 터뜨렸다. "어떡해. 정말 어떡해"라는 말이 입에서 연달아 터져 나왔다. 멀찌감치 떨어져 순회단을 지켜보고 있던 전재숙 씨도 가슴을 쳤다. 전 씨는 "엄마(김 씨)를 지켜주는 (김 씨의) 딸들이 정말 기특하다"면서도 "이런 일을 후세대에게 물려주면 안 된다"고 말했다.

김 씨는 자신을 살린 건 2009년 용산에서 목숨을 잃은 다섯 철거민(이상림, 양회성, 한대성, 윤용헌, 이성수)이라고 말한다. 그는 "죽으려고 몇 번 했는데, 돌아가신 분들 보니 안 되겠더라고"라며 "억울해도 죽으면 말 못해. 살아야 해. 저 사람들 몫까지 내가 살아야 해"라고 말했다.

[스산한 유령도시 김포 신곡] "여기 사람이 있다"

▲ 김포 신곡동 재개발 지역에 마지막 하나 남은 주거 건물. 바람에 휘날리는 깃발이 "여기 사람이 있다"고 알린다. ⓒ프레시안(최하얀)

순회단을 실은 버스는 이번엔 김포 톨게이트 바로 옆에 있는 신곡동에 멈췄다. 참가자들은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충격'이란 표정을 지으며, 허공에 탄성을 쐈다.

115만 제곱미터에 달하는 넓디넓은 땅은 흡사 '전쟁터'와도 같았다. 쓱 보기만 해도, 반파된 공장 건물과 주택이 10여 개는 족히 돼 보였다. 길가에 자란 앙상한 나무들은 사람이 심은 것이 아니라 씨앗이 날아와 자란 것이라고 했다. 이곳 주민들은 "사람들이 목매러(자살하러) 여기에 오고 쓰레기를 무단 투척하러 온다"며 "밤이 되면 온 동네가 캄캄해 무섭다"고 말했다.

신곡동에선 2006년 재개발이 시작됐다. 그러다 자금난에 시달리던 시행사가 부도를 냈고, 재개발 조합도 해체됐다. 이미 철거 용역들이 거주민을 내쫓고, 여러 공장에 불을 지른 후였다.

이처럼 개발 사업으로 퇴거와 철거가 이루어지는 동네에 가보면, 한쪽 벽면이 무너져 있는 사이로 위협적인 낙서가 있거나 쓰레기가 잔뜩 쌓여 있는 광경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는 건물을 철거하기 전 철거 용역들이 거주 환경을 '일부러' 훼손한 것으로, '철거 예비 행위'라고 부른다.

이렇게 철거 예비 행위를 하면, 남아 있는 주민은 계속 거주하기 어렵다. 한밤중에 철거 용역들이 옆 건물에 불을 지르는데, 이를 버텨낼 수 있는 주민은 많지 않은 게 당연하다.

▲ 김포 신곡동 재개발 지역. ⓒ프레시안(최하얀)

신곡동 주민 조규승(58) 씨는 자신의 공장으로 순회단을 이끌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유영숙 씨는 조 씨의 공장에 발을 들여놓지 않고 밖을 서성였다. 유 씨는 "여기 있기 싫어"라고 말했다.

유 씨 부부는 2009년 이전에도 이곳을 방문한 적이 있다. 신곡동 주민들의 재개발 저지 싸움에 힘을 보태러 왔었던 게다. 신곡동을 방문했던 그날, 부부는 조 씨 공장에서음식을 해먹으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눴다고 전했다. 유 씨는 "이 공장에 오니 남편이 사무치게 그립다"며 "가슴이 무너진다"고 말했다.

유가족 전재숙 씨는 "2009년 참사 전에는 이런 곳이 있는 줄도 몰랐다"며 "내가 이렇게 재개발 지역들을 알게 돼서 악에 받치게 된 건 나 때문이 아니라 저들 때문"이라고 말했다. 재개발로 이득을 취하는 건설사들과 투기 자본, 그리고 이를 위해 국민의 주거권은 아랑곳하지 않는 정부 때문이란 얘기다.

전 씨는 "철거민이 되기 전에는 개발이 되면 좋은 건 줄 알았고, 세금 내고 열심히 살면 잘살게 되는 건 줄 알았다"며 "이 넓은 땅을 허허벌판으로 만들어놓을 것을, 대체 왜 내쫓은 건지 모르겠다"고 읊조렸다.

▲ 재개발 지역을 순회한 소감을 적는 용산참사 유가족 유영숙 씨. 오른쪽이 유가족 대표 전재숙 씨다. ⓒ프레시안(최하얀)

순회단의 모든 일정이 끝나고 참가자들은 각자 작은 종이에 자신의 소감을 남겼다. 작은 흰색 종이에 유영숙 씨는 이렇게 썼다.

"오늘 하루가 너무 힘든 날인 것 같네요. 순회 지역을 가보니깐 남편이 어디선가 날 부르면서 올 것 같았는데. 덕이, 신곡에 와보니 더욱더 남편의 발자취가 생각나네요. '현구 엄마' 하면서 불러줄 것만 같은 마음에 심정이 답답하네요."


 /최하얀 기자

2012년 12월 14일 금요일

대선후보들께 보내는 용산참사 유가족의 편지


이글은 미디어스 2012-12-13일자 기사 '대선후보들께 보내는 용산참사 유가족의 편지'를 퍼왔습니다.

이명박 대통령 취임 1년. 모든 걸 잃었습니다. 가족을 잃었고, 삶의 터전을 잃었고, 꿈을 잃었습니다.
용산참사로 시아버지를 잃었고, 남편은 아버지를 잃고도 그 죽음의 책임자가 되어 여전히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 후 용산유가족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시아버지와 남편을 위해 거리에서 살았습니다. 아버지를 잃고도 슬퍼하지도 못하는 남편을 지켜보며 살았습니다. 아버지와 동지들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고통스러워하는 남편의 쓸쓸한 눈을, 철창너머로 바라만보며 살았습니다.
시어머니는 남편의 죽음을 슬퍼할 겨를도 없이 억울한 옥살이를 하는 막내아들의 석방을 위해 오늘도 거리에서 눈물을 삼키며 다니십니다. 시어머니는 그날 이후 웃음을 잃었습니다. 가족의 행복만을 꿈꾸며 평생 살았던 어머니는 하루아침에 남편을 잃고 아들을 감옥으로 보낸 후 행복이란 글자를 잃어버렸습니다. 그렇게 4년을 보냈습니다.

▲ 지난 2009년 7월 11일 서울역 광장 앞에서 열린 '용산참사 범국민 추모대회'에 참여한 용산참사 유가족과 문정현 신부 ⓒ전국언론노동조합

내 나이 마흔 한 살. 마흔 한 살 여자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잠을 설치고 있습니다. 그동안 저는 정치가 뭔지, 대통령 공약이 뭔지, 관심도 없이 살았습니다. 다만 어떤 분이 대통령이 되던, 대통령은 국민을 위해 존재하고 국민 모두를 잘살게 만드는 분이라고만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그건 저의 착각이었습니다. 대통령은 국민을 위해 존재 하는 것이 아니라 힘있는 사람, 돈많은 이들을 위해 존재하는, 그들만의 대통령임을 몸으로 실감하며 지난 4년을 보냈습니다.
대통령 선거 유세 때마다 나오는 복지, 주거정책, 일자리창출……. 모두 거짓 이었습니다. “국민을 위해 살겠습니다”. 모두 거짓 이었습니다. 언제까지 말뿐인 공약. 말뿐인 약속을 하실 겁니까?
아무런 대책 없이 쫓겨나야 했던 철거민들을 공권력을 투입해 대형 참사가 발생하여 무고한 시민 여섯 명이 죽었습니다. 공장으로 돌아가고픈 노동자들을 또 다시 공권력을 투입해 무자비한 폭력으로 진압하여 그 후 스물 세 명의 노동자와 가족들을 죽음으로 내몰렸습니다.
삶터를 지키기 위해 오늘도 저 멀리 제주 강정마을에선 함께 살고 싶다고 목 놓아 외치고 있습니다. 노동자들이 목숨을 걸고 철탑에 오르고 있습니다. 막가파식의 개발로 집을 잃은 철거민들은 오늘도 거리에서 비닐 한 장 덮고 잠을 청합니다.
전기요금을 내지 못해 전기가 끊겨 촛불을 켜고 잠을 자던 할머니와 어린손녀가 죽음으로 내몰렸습니다. 장애인도 사람이다. 장애등급제 폐지하고 부양의무제 폐지하라고 외치는 장애인들의 노숙천막에는 오늘도 차가운 시선들 뿐입니다.
세상 어느 나라가 이처럼 모질단 말입니까? 세상 어느 나라가 국민들을 죽으라고 벼랑으로 내 몬단 말입니까?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나라, 장애인들을 1급, 2급 숫자로 나열하는 나라. 가진자들을 위해서라면 집을 빼앗고, 삶터를 빼앗고, 사람의 목숨도 빼앗는 나라. 이젠 바꿔야합니다. 더 이상 힘이 약하다고, 가진 것이 없다고 쓰레기 취급당하는 세상을 멈춰야 합니다.
당신들은 국민대통합을 이야기합니다. 사람이 먼저라고 말합니다. 진정으로 당신들이 국민대통합을 원한다면, 사람이 먼저라고 이야기를 한다면 부디 우리들의 목소리를 귀담아 들어주길 바랍니다. 거리에서 외치는 이들의 손을 잡아주길 바랍니다. “여기 사람이 있다. 함께 살자”는 외침을 외면하지 말아주십시요.
이제 대선이 끝나고 얼마 후면 용산참사 4주기가 다가옵니다. ‘용산참사’에 대해서 이야기 하지 않거나, 그저 과거의 사건 정도로만 언급하는 주요 후보들을 보면서, ‘철거민을 사면해 달라고, 진실을 밝혀달라고 외치는 우리들의 애타는 목소리가, 그 절규가 들리지 않는 것인가’라는 생각에 허탈해 지기도 합니다.

4년이 흘렀지만 우리의 삶은, 우리의 눈물은... 여전히 2009년 1월 20일 입니다. 대통령이 되시면 가장 먼저 참사 생존자인 철거민들을 사면해야 합니다. 국민의 생명과 인권을 지키는 국정의 최고 책임자로서, 국민을 죽음에 이르게한 그날의 참사에 대해, 이명박 정권이 결코 하지않는 사과를 해 주십시오. 그날의 진실을 밝히기위해 이제 새로운 정부, 국가가 사죄하는 심정으로 나서 주십시오.
다가 올 용산참사 4주기 때는 부디 늙은 노모와 막내아들이 함께 아버지 산소에 술 한 잔 올릴 수 있기를 간곡히 바래봅니다. 

* 정영신님은 용산참사로 돌아가신 고 이상림님의 며느리이자, 5년 4개월의 형을 받고 구속된 용산4구역 철거민 이충연님의 아내입니다.

정영신/용산참사 유가족  |  riverskim@mediaus.co.kr

2012년 11월 29일 목요일

평택 내려간 박근혜, 그러나 찾지않는 쌍용차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2-11-28일자 기사 '평택 내려간 박근혜, 그러나 찾지않는 쌍용차'를 퍼왔습니다.
[현장] 쌍용차 해고자 찾은 용산참사 유가족들에 박 후보 지지자가 욕설, 경찰 차단 당해

"박근혜는 용산참사 진상규명하라"
"박근혜는 쌍용자동차 국정조사 수용하라"

공식 선거운동 이틀째인 28일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는 수도권 첫 유세장인 경기 평택역에서 현 정권의 가장 큰 피해자들과 마주쳤다. 용산참사 유가족과 쌍용자동차 해고자들이다. 

이날 오전 충청지역을 방문한 박 후보는 오후 5시40분께 평택역을 찾아 유세를 벌였다. 유세장에는 박 후보가 오기 전부터 700여명의 새누리당 당원들과 지지자들이 모여 북새통을 이뤘다.

유세 분위기가 고조될 때쯤 박 후보가 나타났다. 박 후보는 "요즘 얼마나 살기 힘들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면서 "무엇보다 민생문제에 주목해 중산층을 재건하는 민생 대통령이 되겠다"고 말했다. 

서맹섭 쌍용차 비정규직지회장과 강상원 평택연대 집행위원장이 28일 오후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의 유세를 바라보며 피켓 시위를 하고있다. ⓒ김병철

이때 군중 속에서 소란이 일어났다. 쌍용자동차 평택공장 앞의 집회에 참석했다가 평택역을 지나가던 용산참사 유가족들이 박 후보의 발언을 듣고 항의를 한 것이다. 

용산참사 사망자인 고 양회성씨의 부인 김영덕씨는 "민생을 말하는 사람이 용산참사는 나몰라 하느냐"며 "용산참사의 진상규명을 밝혀라"고 소리쳤다. 그는 "박근혜 후보는 국가권력에 의해 고통 받은 사람들을 모른채 하고 면담도 거부했다"고 항의했다. 그러나 이들은 경찰의 차단으로 유세장에서 밀려나 박 후보 근처에는 가지도 못했다. 이 과정에서 박근혜 후보 지지자로 보이는 사람들이 용산 유가족들에게 '미친X' 등 욕설을 해 주변 사람들의 인상을 지뿌리게 했다.

▲ 경찰이 28일 경기 평택역 앞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의 유세에 항의하는 용산참사 유가족 김영덕씨를 막아서고 있다. ⓒ김병철

이날 평택역에는 새누리당 당원들만큼이나 박 후보를 기다렸던 이들도 있었다. 바로 6개월째 평택역 앞 광장에서 천막농성을 하고 있는 쌍용자동차 해고자들이다. 

서맹섭 쌍용차 비정규직지회장과 강상원 평택연대 집행위원장은 오후 5시께부터 유세가 끝날 때까지 각각 승합차와 버스 정류장 위에 올라가 피켓 시위를 했다.

박 후보의 유세를 모두 들은 후 서 지회장은 "말로는 서민을 위해 민생문제를 챙기겠다는 사람이 23명이 죽고 고공농성까지 하고 있는 쌍용자동차 해고문제를 외면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서 지회장은 또 "대표적인 노동, 민생문제인 쌍용자동차 문제에 관심 한 번 가지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대통령이 되겠다는 것이냐"며 박 후보의 '민생행보'를 질타했다. 

▲ 서맹섭 쌍용차 비정규직지회장이 28일 오후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의 유세를 바라보며 피켓 시위를 하고있다. ⓒ김병철

그러나 박 후보는 이들의 존재를 전혀 인식하지 못했다. 박 후보를 보좌한 조윤선 중앙선대위 대변인은 미디어오늘과 전화통화에서 "유세장이 하도 소란스러워서 저도 마찬가지고 후보도 (용산참사 유가족을)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쌍용자동차 천막농성에 대해서도 "평택역에 뭐가 있다고는 들었는데 주위가 어두워서 (후보가 해고자들의 피켓팅을) 보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경찰은 쌍용자동차 해고자들의 집회에 대비해 경찰병력 400여명을 유세장 인근에 배치했다. 또한 유세장의 경호를 담당하는 수십명의 사복 경찰들은 쌍용자동차 해고자들이 유세장 근처로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았다.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후보가 28일 오후 평택시 평택동 평택역광장에서 연설을 하던 중 한 유권자의 지지 발언에 활짝 웃고 있다.©연합뉴스

김병철 기자 | kbc@mediatoday.co.kr  

2012년 11월 19일 월요일

[사설] ‘농성촌 천막’의 간절한 호소까지 틀어막을 텐가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11-18일자 사설 '[사설] ‘농성촌 천막’의 간절한 호소까지 틀어막을 텐가'를 퍼왔습니다.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과 용산참사 유가족 등이 농성중인 서울 대한문 앞 ‘농성촌’에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관할 서울 중구청과 남대문경찰서가 농성을 위해 쳐놓은 천막들을 강제철거하기로 방침을 정했기 때문이다. 중구청은 오는 29일이 최후시한이라고 농성자들에게 통보한 상황이다. 우리 사회의 소외와 불평등을 상징하는 이들의 “함께 살자”는 호소, 그리고 정의·평화를 실현하라는 각계의 목소리를 공권력은 끝내 틀어막기로 작정한 모양이다. 그 불통과 배려없음에 실망하지 않을 수 없다.중구청은 농성촌 천막이 도로교통법상 불법시설물이라 철거가 불가피하다고 설명한다. 7개월째 농성중인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의 천막 2동과 지난 12일 새롭게 농성을 시작한 용산참사 유가족, 강정마을 주민, 4대강 반대 운동가 등의 천막 1동이 허가 없이 설치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농성촌의 존재 이유를 외면한 형식논리에 지나지 않는다. 그 속내는 이명박 정부와 자본의 이해에 반하는 목소리를 더는 허용하지 않겠다는 것일 뿐이다.차가운 아스팔트에 천막을 치고 농성중인 이들은 누구인가. 이 땅에서 가장 억압받고 억울한 사람들이다. 쌍용차에선 2009년의 정리해고 이후 해고노동자와 가족 등 23명이 자살이나 돌연사로 세상을 떠났지만 달라진 것이 없다. 국회 청문회에서 나온 불법적 회계조작과 ‘기획 도산’의 증거들도 무용지물이다. 회사 쪽이 ‘정리해고 1년 뒤 복직’을 약속한 무급휴직자 450여명조차도 아직까지 제자리로 돌아가지 못했다. 용산참사는 경찰의 무리한 과잉진압이 참사의 근본 원인으로 드러났지만, 여전히 희생자가 생긴 모든 책임은 망루 농성을 벌인 세입자들에게 씌워져 있다.통행의 어려움이나 도시 미관 등을 이유로 농성촌을 막으려 할 게 아니라, 이들의 호소를 따뜻하게 보듬고 진정한 해결책을 찾으려는 노력을 게을리한 것을 반성해야 마땅하다. 김정우 쌍용차 노조지부장의 단식은 벌써 40일이 지났다. 지난 7월 서울행정법원은 경찰이 불허한 대한문 앞 쌍용차 추모집회를 허용하는 판결을 내렸다. 당시 법원은 “집회가 금지됨으로써 노조에 생길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예방하기 위한 긴급한 필요가 있고, 집회신청을 받아들여도 공공복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고 볼 수 없다”고 이유를 밝혔다. 농성촌에 대해서도 법원과 동일한 인식이 필요하다. 대한문 농성촌은 우리 사회가 더불어 사는 공동체를 유지할 능력과 자세가 있는지 판가름하는 시금석이다.

2012년 9월 2일 일요일

서울대교구의 용산참사 유가족 면담 거부


이글은 한겨레신문 조현기자 블로그 휴심정 벗님글방 2012-08-30일자 기사 ' 서울대교구의 용산참사 유가족 면담 거부'를 퍼왔습니다.

이강서 신부, 8월 29일 용산 생명평화 미사에서 밝혀
유가족 면담은 거절…서울경찰청장은 만나 주폭 척결 MOU 체결

» ▲ 제317차 용산 생명평화 미사가 8월 29일 명동 가톨릭회관에서 봉헌됐다. ⓒ한수진 기자

용산참사 발생 1318일째 되는 날인 8월 29일 오후 7시 서울 명동 가톨릭회관에서 제317차 용산 생명평화 미사가 봉헌됐다. 미사에 참석한 사람들은 용산참사 희생자 고(故) 이상림 · 양회성 · 한대성 · 이성수 · 윤용헌 씨와 부상자, 구속자, 그리고 집 없이 철거 위기에 놓인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기도했다.

미사 강론에서 임용환 신부(천주교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장)는 "이번 주 복음에서 예수는 율법학자와 바리사이들이 얼마나 위선으로 가득찬 눈먼 인도자인지를 예로 들어 눈먼 인도자들이 사람들을 잘못된 길로 걷게 만든다고 가르치신다"면서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인도자의 역할을 하고 있는 우리가 진실되고 정의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임용환 신부는 특히 “자신의 욕심과 욕망 때문에 누군가가 희생 당하지 않도록 우리 자신을 돌아보자”고 당부했다.

» ▲ 이강서 신부 ⓒ한수진 기자
서울대교구, 유가족의 염수정 대주교 면담 요청 거절
유가족 유영숙 "아이들이 아빠를 보고 싶어 힘들어 하니 고통스럽다"

이에 관해 이강서 신부는 "교회 구성원으로서 부끄럽다. 교회가 먼저 만나야 할 사람과 나중에 만나야 할 사람을 거꾸로 생각하고 있다"고 비판하며 "교구장이 취임해 집 없이 쫓겨나는 사람들을 먼저 만나고 맨 나중에 포용의 의미로 경찰을 만나 주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발칙한 생각을 해본다"고 밝혔다.

용산참사 유가족 유영숙 씨는 "아이들이 아빠를 보고 싶어하고 힘들게 사는 걸 보면서 매일 고통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이명박 정권이 용산 철거민 구속자들을 특별사면하면 자신이 저지른 학살을 인정하게 되는 것이니 우리의 사면 요구를 들어주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한다"면서 "행복한 가정을 파괴한 잘못을 인정하고 싶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8월 15일 정부는 용산참사 구속자들의 8·15 특별사면을 촉구하는 시민 청원서와 정당의 사면촉구 결의안, 천주교(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이용훈 주교) · 개신교 · 불교 · 원불교 등 4대 종단 대표의 청원을 모두 거절했다.

한편, '용산참사 진상규명 및 재개발 제도 개선위원회'는 용산참사 당시 서울지방경찰청장이었던 김석기 씨에게 참사에 대한 책임을 묻는 고발운동을 7월 20일부터 한 달간 전개했고, 8월 20일 시민 고발장 760부를 서울중앙지방검찰청(서울중앙지검)에 제출했다. 서울중앙지검은 형사3부에 사건을 배당하고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용산 생명평화 미사는 매월 마지막 수요일 오후 7시 명동 가톨릭회관 2층 강당에서 봉헌된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한수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