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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2월 24일 일요일

김종훈 부인, 세입자에 “방 빼라” 법정 소송전 벌여


이글은 경향신문 2013-02-23일자 기사 '김종훈 부인, 세입자에 “방 빼라” 법정 소송전 벌여'를 퍼왔습니다.

ㆍ자신 소유 청담동 빌딩 재건축 추진 때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53)의 부인이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서울 강남구 청담동 소재 빌딩의 재건축을 추진하다 세입자들과 법정 다툼을 벌인 사실이 확인됐다.

22일 경향신문 취재 결과, 김 후보자의 부인 ㄱ씨(53)는 2005년 11월과 2006년 5월 자신의 빌딩 세입자들을 상대로 건물에서 나가달라는 명도소송을 법원에 냈다. ㄱ씨가 재건축을 추진하며 세입자들에게 임대계약 해지를 요구했지만 배상금을 요구하는 세입자들과 합의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소송은 ㄱ씨 이름으로 냈지만 실제 법정 다툼은 빌딩을 관리하던 ㄱ씨의 언니 ㄴ씨가 진행했다.

앞서 2005년 9월쯤 ㄴ씨는 세입자들에게 “건물 신축으로 임대차계약을 해지한다”는 내용증명을 보냈다. 당시 이 건물 3층에서 한의원을 하던 최모씨는 2004년 12월 5년 계약을 맺고 입주했으나 1년도 안돼 나가야 할 처지가 됐다.

당시 1층에서 쌀국수집을 하던 김모씨에게도 계약 해지 통보가 갔다. 김씨는 2004년 6월 쌀국수집을 열었지만 한 달 뒤 옆 건물에서 건물 철거공사가 벌어졌다. 옆 건물 주인은 당시 “건물 철거로 피해가 예상된다”고 양해를 구하며 “이 사항은 건물 주인에게도 지난달 통보했다”고 했다. 김씨의 식당은 철거공사로 인한 소음과 먼지 등으로 장사가 안돼 적자만 났다. 김씨는 “옆 건물 공사 사실을 알면서도 알리지 않고 임대계약을 맺었다”며 ㄴ씨를 사기 혐의로 고소하기도 했다. 김씨는 계약 해지에 따른 손해배상 비용을 산정해 ㄴ씨 측에 보냈다. 김씨는 그러나 “ㄴ씨 측에서 배상 금액을 상의하자고 해놓고 8개월가량 답변을 미루다 갑자기 액수가 과도하다며 명도소송을 걸었다”고 말했다. 최씨도 비슷한 과정을 거쳐 소송을 당했다.

이에 김씨는 당시 미국에 거주하고 있던 빌딩의 실소유자인 김 후보자의 부인 ㄱ씨에게 편지를 보내 이 같은 상황을 설명하고 문제 해결을 요청했다. 하지만 아무런 답변이 오지 않았다.

소송은 2007년 1월 법원의 화해·조정으로 마무리됐다. ㄱ씨가 “재건축을 하지 않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입자들은 소송 후 모두 건물을 떠났다. 최씨는 “소송이 끝난 직후 ㄴ씨 측이 임대료를 추가로 올려달라 했고, 아래층 공사로 영업을 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정희완 기자 roses@kyunghyang.com

2013년 1월 5일 토요일

장수마을 세입자들이 위태롭다


이글은 시사IN 2013-01-03일자 기사 '장수마을 세입자들이 위태롭다'를 퍼왔습니다.
서울시가 마을공동체에 예산을 편성했다는 보도를 보고 집주인들은 세입자를 내보내거나 임대료를 올리려고 했다. 내년이 더 걱정이다.

세입자이면서 기초생활수급자인 이씨 아저씨는 지난해 이맘때쯤 집주인이 집을 고치겠다며 그만 나가라고 해서 한겨울에 빈털터리로 집을 나와야했다. 다행히 근처의 송씨 할머니가 자신이 살던 방을 비워줘서 한데를 피할 수 있었다. 세입자 황씨 아저씨는 집주인이 바뀐 줄도 모르고 전 주인과 전세 계약을 했다가 집주인이라는 사람에게 집을 비워달라는 통보를 받았다. 마을기업 ㈜동네목수와 대책을 의논하던 중 다행히 새 주인과 전세 계약을 해서 계속 거주할 수 있게 되었다. 세입자 박씨는 평소에는 연락조차 되지 않던 집주인한테 앞으로 월세를 받아야겠으니 매달 30만원씩 내고 살든지 아니면 집에서 나가라는 통보를 받았다. 세입자 김씨 아주머니는 마을기업 ㈜동네목수가 집을 고치는 걸 아주 못마땅해 했다. 주인이 집을 고친다고 나가라고 하면 대책이 없어서다. ㈜동네목수 활동의 취지에 대해 설명을 듣고 아주머니의 마음이야 누그러졌지만 집주인이 언제 나가라고 할지 불안한 건 여전하다.

 
ⓒ뉴시스 장수마을 전경. 주택 개량이 활성화되면 집주인은 세입자를 쫓아내려 한다.

위 사례는 마을공동체, 주민 주도 마을재생의 성공 사례로 꼽히는 장수마을에서 벌어진 일들이다. 지난해 말과 올해 초, 성북구청과 서울시청이 마을 만들기의 성공 사례로 장수마을 마케팅에 열을 올릴 때, 세입자들의 주거는 오히려 더 불안해졌다. 서울시가 마을재생이나 마을공동체 활동에 몇 백억 원의 예산을 편성했다는 한 줄 보도에 집주인들은 즉각적으로 세입자를 내보내거나 임대료를 올리려고 했다. 뭐든지 기회가 됐을 때 주택을 처분하려고 세입자부터 내보내려는 것인데 투자에 실패한 처지에서는 당연한 행동일지도 모르겠다. 연락이 닿는 집주인에게는 서울시 정책의 허와 실을 설명하고 장기적인 안목으로 서로 협력할 것을 설득했고, 세입자들과는 각자가 처한 상황에 맞춰 현실적인 대책을 논의했다. 다행히 올 한 해는 큰 무리 없이 지나왔지만, 내년이 걱정이다. 도시가스가 들어오고 주택 개량이 활성화되면 집주인들의 마음이 들썩일 게 빤하기 때문이다. 

㈜동네목수를 시작한 초기에는 언론사의 인터뷰나 취재 요청이 오면 장수마을이 안고 있는 문제나 고민을 전달하려고 열심히 응했다. 하지만 거의 대다수 언론 매체가 이상적인 마을의 모습을 그려놓고 마치 장수마을이 그 이상향인 것처럼 짜 맞추려고 할 뿐, 개발에 대한 기대와 투기 광풍이 휩쓸고 지나간 동네의 복잡한 이해관계, 현실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런 경험이 반복되면서 이제는 취재를 요청하는 기자들에게 일일이 상황을 설명하며 실질적인 대책이 만들어질 때까지는 취재와 보도를 자제해달라고 당부하게 되었다. 

순환임대주택과 마을협정

주거 안정을 위한 실질적인 대책이 없는 상태에서는 이목을 안 끄는 것이 세입자들에게 더 안전할 수도 있다.  ㈜동네목수는 내년에 빈집을 고쳐서 집수리 기간에 임시로 거처할 순환임대주택으로 운영하고, 임대료의 급격한 인상을 제한하는 마을협정을 추진하려 한다. 순환임대주택이 있으면 집을 크게 고치더라도 사는 사람이 멀리 떠날 필요가 없다. 집주인이든 세입자든 더 적극적인 주택 개량이 가능해진다. 세입자에게는 갑작스러운 퇴거 위기에 몰렸을 때 안전판이 될 수 있다. 임대료의 수준도 더불어 살아가기 위한 조건이다. 우리 동네의 적정 임대료 수준이 있고, 불가피하게 임대료를 올리게 되더라도 세입자가 감당하고 준비할 시간과 속도가 필요하다. 마을협정은 집주인도 세입자도 정든 이웃으로 더불어 살아가기 위한 주민약속을 담아내려는 시도이다. 

그동안 (시사IN)을 통해 장수마을과 ㈜동네목수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전하고 싶었는데 욕심이 과했는지 모르겠다. 내용 없는 글인데도 관심을 기울여준 모든 분께 그저 감사드릴 뿐이다. 

박학룡 (동네목수 대표)

2012년 10월 22일 월요일

안방서 물 퍼내던 겨울날, 서러웠습니다


이글은 오마이뉴스 2012-10-21일자 기사 '안방서 물 퍼내던 겨울날, 서러웠습니다'를 퍼왔습니다.
[공모-나는 세입자다] 부모님 인생에 녹아있는 '집 없는 설움', 누가 알까요

(오마이뉴스)와 참여연대, 생활정치실천의원모임이 함께 '나는 세입자다' 기사 공모를 실시합니다. 가슴 아픈 혹은 깨알 같은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기사를 기다립니다. 세입자와 관련된 사례라면 어떤 것이라도 좋습니다. 반지하나 옥탑방 이야기도 좋고 해외에서 경험한 사례도 환영합니다. [편집자말] 

▲ 세입자들의 고달픈 삶, 집주인들은 알까요. 어느 재개발 지역의 모습. ⓒ 이인

아버지와 어머니가 사는 집, 부모님이 사는 집은 이사할 날을 2년씩 꼽으면서 지내는 전세입니다. 수없이 이사를 다니면서도 가끔은 1층 단독 주택을 내 집처럼 사용한 적도 있고, 때로는 널찍한 옥상에 흙을 날라다 텃밭을 만든 적도 있었습니다. 전세살이지만 그럴땐 집 있고 없고가 별 문제가 아닌 듯했습니다.

아들인 제가 부모님의 집에서 독립하게 된 것은 10년 전 결혼한 후부터입니다. 저 또한 다른 동네에서 전세를 살고 있습니다. 부모님 집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해 1시간 30분 걸리는 곳이라 그리 자주 찾아뵙지는 못합니다.

부모님 집은 다가구 주택이고 제가 사는 집은 30년도 더 된 낡은 아파트입니다. 두 집이 형태는 달라도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서울 여러 곳에서 볼 수 있는 재개발, 재건축 바람이 끊임없이 일렁이고, 사람 많이 다니는 담벼락에는 찬성, 반대가 크게 적힌 현수막이 어지럽게 붙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동네는 오랫동안 터 잡고 사는 토박이들 못지않게 개발이익을 보려고 집을 미리 사놓은 낯선 집주인들이 많이 드나듭니다. 이런 개발 기대로 잔뜩 부푼 동네에 세사는 사람들은 집이 없는 것에 더해 소외감과 상대적 박탈감을 짊어지고 삽니다.

어느 집이든 살다 보면 고쳐야 할 곳이 군데군데 발생하고 간혹 천재지변 등으로 크게 수리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경우 집주인들은 선뜻 나서서 처리해 주지 않습니다. 얼마 안 있으면 부수고 말 집에 괜히 돈 들인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가능하면 임기응변으로 땜질하고 마는 것으로 넘어가려 할 때가 많습니다.

더군다나 부모님 집의 집주인은 지방에 사는 사람이라 얼굴 보기도 어렵고 전화 통화 한 번 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주방에 천장이 내려앉은 것, 겨울에 오래된 보일러가 수명을 다하여 방바닥을 얼음바닥으로 만든 것 등을 의논하고 협조를 부탁하면, 그로부터 서너 달 지나야 겨우 손봐줍니다. 같은 서울에 살지만 떨어져 사는 아들로서는 연로하신 부모님의 건강과 안전이 걱정될 수밖에 없습니다.

새벽 어머니의 다급한 전화 "방에 물이 차서..."

▲ 한 부동산 공인중개사 사무소의 모습. 뉴타운, 재건축, 재개발이라는 문구가 눈에 띈다. ⓒ 오마이뉴스 선대식

몇 해 전, 겨울이 채 끝나지 않은 어느 새벽의 일입니다. 출근 30분 전으로 맞춰 놓은 알람이 울리기 한참 전에 휴대폰 벨소리가 먼저 울렸습니다. 액정에 뜬 '부모님집'을 보고서는 잠이 확 달아났습니다. '혹시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으신가'라는 생각이 먼저 떠오른 건 어쩔 수 없는가 봅니다.

어머니의 다급한 음성이었습니다. "큰일 났다"를 반복하시며 얼른 좀 와야겠다고 재촉하십니다. 방 바닥에서 물이 올라와 물바다가 됐다고 하십니다. 두 분이 자다가 크게 놀라 가구며 TV며 옷가지를 밖으로 내놨다는 소리가 불규칙한 한숨에 섞여 들려왔습니다. 평소 성격이 조용하고 말이 느긋하신 어머니가 그날 새벽엔 빠르고 정확한 발음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물론 더 안 좋은 징후로 느껴졌죠.

지하철과 버스를 번갈아 타고 부모님이 사시는 집에 도착해보니 정말 가관이었습니다. 보기가 딱한 풍경이었습니다. 안방의 반을 물이 차지하였고 물이 몰려있는 한쪽 구석에서 아버지가 쓰레받이로 물을 담아 양동이에 옮기는 모습이 꼭 수해를 당한 수재민 모습이었습니다.

출근은 포기했습니다. 회사에 사정을 이야기하고 오후에 나간다는 확실치 않은 약속을 덤으로 했습니다. 그때부터 물 퍼내는 작업을 했습니다. 내 집이든 남의 집이든 살면서 밖에 날씨는 매우 맑고 건조한데, 집 안방 깊숙한 곳에서 물 퍼내기 작업을 하리라고 누가 한 번이라도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기가 막혔습니다.

퍼내고 퍼내도 방바닥 밑에서 샘솟듯 계속 물이 올라왔습니다. 점심때가 지나서도 양동이에 철철 차고 넘치도록 물을 날랐지만 일이 마무리 되기에는 어림없는 일이었습니다. 

결국 집주인과 어렵게 통화해서 상황 얘기, 비용 얘기를 해 가면서 동네 설비공사를 의뢰했습니다. 방바닥을 뜯고 그 밑으로 가로질러 놓여진 물 파이프를 보강하고 나서야 더 이상 물이 솟아나지 않았습니다. 공사하는 분들이 방바닥 밑으로 물 파이프가 지나가는 것을 두고 신기한듯 얘기함과 동시에 혀를 차는 걸 들었습니다. 밖이 어둑해질 때가 돼서야 방바닥은 원래의 장판을 덮을 수 있었습니다.

공사가 끝난 뒤 이 황망한 일의 원인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일단 집을 지은 지 아주 오래되어 집 구조와 마감재 모두가 낡았다는 것과 처음 지을 당시 집 짓는 기술의 한계이거나, 또는 집 장사들에 의해 날림으로 지은 엉성함이 지금에서야 터진 것이라고. 그런 만큼 관리가 철저했어야 했는데, 언제부턴가 개발 소식을 타면서 오히려 대충 넘어가 버리는 게 이유였다는 것입니다.    

여러 세입자들이 들고 나가면서 불편사항이 있었고 대부분 부모님이 이사와서 겪은 일들과 동일했다는 '전래 이야기'가 하나 둘 보태졌습니다. 지방에 본가를 둔 주인의 입장에서는 재개발을 기다리는 와중에 세입자들의 불편, 불만이 볼멘소리로만 들렸을 것입니다.

집을 소유한 이유가 땅과 집들이 가져올 이익을 바란 것이었다 하더라도, 그 집들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저 임대차계약서 상의 삶으로 치부할 수 있는건가 하는 물음이 목에 가시 걸리듯 걸렸습니다. 하지만 그 물음을 새벽부터 놀라고 어리둥절하셨을 여든을 넘기신 아버지와 어느 때보다도 또렷한 음성으로 아들을 부르던 어머니를 보면서 툭 내뱉을 수 없었습니다. 우선 제대로 이바지 해드리지 못하는 죄송함이 날 짓눌렀습니다.  

부모님 인생에 녹아 들어있는 수많은 추억의 이삿날들을 반추할 때마다 입 밖으로 절로 나오던 '집없는 설움' 중 하나를 목격한 날이었습니다. 부모님 집을 나와 아내와 딸이 걱정하며 기다리고 있을 또 다른 전셋집으로 향했습니다.

양종운(yajowoo)

2012년 9월 9일 일요일

경매에서 만난 적대적 공생관계, 하우스푸어 vs 하우스리스


이글은 한겨레21 2012-09-10일자 제927호 기사 '경매에서 만난 적대적 공생관계, 하우스푸어 vs 하우스리스 '를 퍼왔습니다.
[표지이야기] 대출금 못갚는 하우스푸어가 절망한 경매시장에서 희망을 찾는 하우스리스, 그 사이에 끼인 세입자… 하우스푸어 급증으로 커진 경매시장에서 서로의 불행을 먹고 사는 이들의 어긋난 만남 속으로

철저하게 닫힌 세계였다. 아파트 경매시장에는 ‘시장’이란 말이 붙는 것도 어색했다. 막장인 이곳에까지 내몰린 이들은 사업에 망하거나 보증을 잘못 선 극소수 채무자였다. 어쩌다 시장에 나온 물건은 전문 경매꾼들에게로 떨어졌다. 가격이 저렴하다 해도 ‘재수 없는 집’을 사겠다고 나서는 이는 없었다. 그러던 경매시장이 2~3년 전 바뀌었다. 요즘엔 바짝 얼어붙은 부동산 시장에서 그나마 움직이는 건 경매시장뿐이라는 말도 나온다. 한쪽에선 무리하게 집을 샀다가 빚을 감당 못해 파산한 ‘하우스푸어’들이 시장으로 이끌려나온다. 다른 쪽에선 아직도 높은 집값에 발을 동동 구르는 ‘하우스리스’(무주택자)들이 값싼 아파트를 구하려고 시장을 찾는다. 이들의 도우미를 자처한 컨설턴트들도 시장 주변을 기웃거린다. 모두 부동산 광풍이 휩쓸고 간 흔적을 끌어안고 사는 이들이다. 경매시장에 타의 또는 자의로 참여하게 된 사연들을 들어봤다. 집을 잃은 쪽도, 얻으려는 쪽도 모두 가명을 원했다. _편집자

최정택(39)씨도 무리인 걸 알았다. 그의 눈에 들어온 경기도 일산의 105.6m²(32평) 아파트는 2008년 당시 4억5천만원이었다. 그가 가진 돈은 1억5천만원이 전부였다. 그래도 포기가 안 됐다. 자고 나면 주변 아파트 가격이 수백만원씩 뛰어 있었다. 손해 보는 것 같아 조급했다. 은행에서도 곧 대출 규제를 강화한다고 예고했다. 집을 장만할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다. 아이 셋을 번듯한 아파트에서 키우고 싶었다. 그는 결국 3억원의 대출을 받아 원하는 아파트를 손에 쥐었다. 그러나 그가 계약서에 서명한 가격이 꼭지였다. 그날 이후 아파트 가격은 계속 떨어졌다. 그래도 이자를 내는 날은 어김없이 돌아왔다. 한 달 300만원의 이자가 생활을 짓눌렀다. 수입이 모두 빚 갚는 데 들어갔다. 빚을 내 생활비를 댔다. 이자가 밀려도 더 비싼 빚을 내서 메꿨다. 날마다 여기저기서 빚 독촉을 했다. 가족들은 모르는 전화는 받지도 않았다.

전체 경매시장은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을 정점으로 정체하고 있는데도 수도권 아파트 경매시장만은 계속 커지고 있다. 경매정보업체 부동산태인의 자료를 보면, 올해 들어 지난 8월28일까지 수도권에서만 2만690채의 아파트가 경매에 부쳐졌다. 감정가로 따지면 9조원이 넘는 규모다.

하우스푸어에서 ‘하우스리스푸어’로

지긋지긋했다. 그래도 아파트는 팔리지도 않았다. 이자라도 감당하려고 아파트를 월세 110만원에 내주고 처가로 들어갔다. 눈치가 보였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나마 월세마저 제때 안 들어와 늘 속을 끓였다. 이자가 6개월 정도 연체되자 더 이상 참지 못한 은행은 아파트를 경매로 넘겼다. 지난 7월 아파트는 3억2천만원에 팔렸다. 경매가 악몽의 끝은 아니었다. 빚은 아직도 5천만원이나 남았다. “내 잘못된 판단으로 가족들만 고생시켰다. 정말 고통스러웠다. 은행에 여러 번 주택담보대출을 다른 신용대출로 돌려주거나 상환 기간을 연장해달라고 요청했다. 다 거절당했다. 모든 게 내 책임이니까 자책하다가도, 문득 억울한 마음이 든다. 10년의 시간을 아파트 하나로 다 빼앗겼다.”

» 부동산 광풍의 끄트머리였던 2008년 지금의 하우스푸어들은 아파트에 인생을 걸었다. 빚으로 손에 넣은 아파트는 결국 경매시장에서 빚잔치로 사라진다. 사진 한겨레 김정효

최씨는 집을 산 순간부터 4년을 하우스푸어로 살았다. 경매로 집을 잃고 나서야 그 꼬리표는 떨어져나갔다. 대신 그에겐 ‘하우스리스푸어’(집 없는 빈곤층)라는 더 참담한 딱지가 붙었다. 최씨처럼 극단적인 상황에 내몰린 하우스푸어가 얼마나 되는지를 파악할 수 있는 정부의 공식 통계는 없다. 2010년 기준으로 159만6천 가구(부채 원리금 상환으로 생계에 부담을 느끼는 주택 보유자)라는 현대경제연구원의 추정이 거의 유일하다. 10가구에 1가구꼴이다. 지난 2년간 부동산 경기 침체와 가계 부실화가 가속화해 지금은 200만 명이 넘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1천조원의 가계부채 가운데 절반 정도가 아파트 따위의 주택에 묶인 탓에 이들은 한국 경제를 수렁에 밀어넣을 원흉으로 지목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도 2~3년 전에는 중산층으로 불렸다. 수도권 지역의 아파트는 그 증거였다. 중산층으로 가는 급행열차를 타려고 그들은 빚도 마다하지 않았다. 성공을 의심하지 않았던 투자는 2009년부터 부동산 가격이 고꾸라지기 시작하자 비수가 돼 돌아왔다. 금리가 올라 빚을 감당할 수 없었지만 집을 내놔도 팔리지 않았다. 집이 가진 전부였던 이들은 곧바로 하우스푸어로 추락했다. 인심 좋게 대출해주던 금융회사들에 인내심은 없었다. 이자를 3~4개월만 밀려도 담보로 잡은 아파트를 경매로 넘겼다. 실제 전체 경매시장은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을 정점으로 정체하고 있는데도 수도권 아파트 경매시장만은 계속 커지고 있다. 경매정보업체 부동산태인의 자료를 보면, 올해 들어 지난 8월28일까지 수도권에서만 2만690채의 아파트가 경매에 부쳐졌다. 감정가로 따지면 9조원이 넘는 규모다. 수도권 아파트 경매는 부동산 활황기인 2007년 4조3천억원(1만5382건)에서 지난해엔 14조8천억원(3만779건)으로 4배 이상 급증했다. 빚을 갚지 못한 하우스푸어들이 은행 등 채권자에 이끌려 강제로 집을 처분당한 흔적이다.
화려한 투자 이력도 하우스푸어라는 신분 앞에선 전혀 쓸모없었다. 투자에 끌어다 쓴 빚이 많을수록 몰락은 빠르고, 깊었다. 인테리어 회사 직원이던 박승철(42)씨는 2005년 부동산 투자에 눈을 떴다. 우연하게 재개발 지역에 빌라 한 채를 낙찰받은 게 시작이었다. 그의 돈 700만원에 나머지는 대출을 받아 3500만원짜리 빌라를 손에 쥐었다. 석 달 만에 팔아 300만원을 남겼다. 한 달 수입이 100만~300만원으로 들쑥날쑥하던 그에겐 꽤 괜찮은 수입이었다. 그때부터 그는 부동산 투자에 올인했다. 재개발 지역에서 급매물로 시세보다 20~30% 싸게 나온 빌라나 아파트를 사들였다. 부동산 시장이 활활 타오를 때라 1년에 한 채만 제대로 팔아도 2500만원의 수익이 났다. 자기 돈 1억5천만원에 대출금 5억원을 종잣돈으로 굴리며 아파트나 빌라 서너채를 사고 팔았다. 위험한 곡예였다. 그러다 부동산 시장이 침체되자 보유하던 아파트 2채는 바로 애물단지가 됐다. 매달 이자만 450만원을 감당해야 했다. 아이가 셋이었지만 일을 그만둔 터라 수입이 없었다. 사채로도 빚을 감당할 수 없자 결혼 예물까지 팔았다. 결국 올해 초 아파트는 모두 경매로 넘겨졌다. “살던 집까지 경매에 부쳐질 때는 아파트에서 밑만 내려다보며 살았다. 돈 때문에 죽어야 하나 생각했다. 지금은 움켜줬던 미련을 놓아버리니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

그는 잔금을 치르는 날 주민센터에 가서 임대차 계약서에 확정일자를 받았다. 그러나 새 건물에 등기부등본이 만들어지기 전이라 전입신고는 나중으로 미뤘다. 보름 뒤 은행은 등기부등본이 생기자마자 근저당을 잡았다. 그는 뒤늦게 전입신고를 했지만 이미 임차인으로서 대항력을 잃은 뒤였다. 결국 집 주인의 빌라가 지난 2월 경매로 넘겨지자 그는 전세금 1억5천만원을 모두 잃게 됐다. 가족의 전 재산이었다.
경매의 또 다른 피해자, 세입자

경매는 불행의 도미노다. 하우스푸어의 집이 경매로 넘어가면 세 들어 살던 이들의 생활도 조각난다. 다만 불행의 깊이는 세입자가 전세 계약을 하기 전 대비한 정도에 따라 달라진다. 만약 선순위 세입자로 충분한 대항력을 갖춰놓았다면 전세금을 지킬 수도 있다. 가급적 근저당이 잡히지 않은 아파트를 고른 뒤 전입신고 때 확정일자를 동시에 받은 경우다. 물론 이때도 경매가 진행되는 수개월 동안 채권자와 경매 입찰자 등 낯선 이들이 집을 들락날락하고 법원 서류가 수시로 날아드는 번거로움을 감당해야 한다. 그러나 대항력이 없는 세입자라면 경매 앞에 속수무책이다.

고미영(32)씨는 2010년 11월 중순 서울 광진구의 전셋집으로 이사하면서도 내 집인 것처럼 기뻤다. 남의 손때를 타지 않은 신축 빌라였다. 곧 태어날 아이에게 좋은 선물이 될 터였다. 흠이 하나 있긴 했다. 집주인에겐 빚이 13억원 넘게 있었다. 찜찜했지만 곧 갚겠노라는 말을 믿었다. 그는 잔금을 치르는 날 주민센터에 가서 임대차 계약서에 확정일자를 받았다. 그러나 새 건물에 등기부등본이 만들어지기 전이라 전입신고는 나중으로 미뤘다. 보름 뒤 은행은 등기부등본이 생기자마자 근저당을 설정했다. 그는 뒤늦게 전입신고를 했지만 이미 임차인으로서 대항력을 잃은 뒤였다. 결국 집 주인의 빌라가 지난 2월 경매로 넘겨지자 그는 전세금 1억5천만원을 모두 잃게 됐다. 가족의 전 재산이었다. 그는 “올해 안에 집을 비워줘야 하는데 방법이 없다”며 “모든 일에 짜증만 난다”고 말했다.
하우스리스들은 하우스푸어가 절망한 경매시장에서 희망을 찾는다. 하우스푸어들을 끈질기게 괴롭히는 아파트는 하우스리스에겐 여전히 오랜 꿈을 이룰 희망봉이다. 경매시장까지 내몰린 하우스푸어가 많을수록 하우스리스는 더 좋은 기회를 잡는다. 반대의 공식도 성립한다. 경매시장에선 하우스리스가 많아야 하우스푸어에게도 도움이 된다. 계속 늘어나는 경매 아파트를 사줄 수요자가 필요한 탓이다. 하우스푸어들은 강제로 경매를 당하긴 했지만 일단 입찰이 흥행해야 아파트를 제값에 팔아 최대한 빚을 갚을 수 있다. 절망과 희망이 등을 맞댄 적대적 공생이다.
어찌 보면 잔인한 이 경매 사슬은 부동산 광풍이 만들어낸 결과다. 2000년대 중반 정부와 투기꾼이 만들어놓은 부동산 거품에 지금은 하우스푸어가 된 이들이 가세하자 아파트 가격이 천정부지로 뛰었다. 워낙 당시 꼭지가 높아 이후에 가격이 떨어졌다고 해도 하우스리스들이 넘볼 수준은 아니다. 아직도 직장인들이 수도권에 있는 아파트를 사려면 10∼20년은 허리띠 졸라매고 돈을 모아야 한다. 부동산 시장 널뛰기에 지친 하우스리스들은 하우스푸어들이 내놓은 아파트를 따라 경매시장으로 흘러들었다. 이들은 경매시장에서라면 아파트를 시세보다 10%라도 싸게 살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품고 있다. 올해는 그 꿈을 이룰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갈수록 공급은 늘어나고 수요는 줄어 경쟁률이 떨어진 덕분이다. 지난 8월28일 기준 수도권 아파트의 낙찰가율은 74.1%다. 평균적으로 감정가의 74.1% 가격에 아파트를 낙찰받았다는 뜻이다. 입찰 경쟁률이 낮아 경매가 한두 차례 유찰된 덕이다. 2007년 낙찰가율이 91.8%에 이르렀던 것과 비교하면 그만큼 아파트를 낮은 가격에 낙찰받을 가능성이 높은 셈이다. 서울 강남과 경기도 용인·분당 등 거품이 많이 낀 지역은 낙찰가율이 70% 선까지, 나머지 신도시 지역에선 50~60%까지 떨어진 곳도 있다.

하우스리스 딱지를 떼 이들도 있지만

보험회사에 다니는 박창훈(32)씨는 요즘 아파트 경매 입찰에 참여할 ‘때’를 엿보고 있다. 모든 준비는 끝났다. 2년 동안 꾸준히 경매 공부를 해온 덕에 경매의 기본인 등기부등본상 권리 분석에 자신이 있다. 최근엔 경매정보 사이트에 나온 아파트와 현장 시세를 비교하며 적당한 낙찰 가격을 추정해보는 연습을 하고 있다. 아직은 가격이 만만치 않다. 그가 찍어둔 서울 대방동의 중·소형 아파트는 경매시장에서도 4억원이 넘는다. 전세금 1억5천만원이 전 재산이라 3억원 가까이 대출을 받아야 하는 게 부담이다. 그는 원하는 아파트가 3억원대로 떨어지면 실행에 옮길 생각이다. 지금 5살인 아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집을 마련하는 게 목표다. “5년 전 결혼할 때 9천만원 전세에서 시작했다. 아이가 둘이라 1~2년 안에는 집을 마련하고 싶다. 남들처럼 일반 매매로 집을 사는 것은 엄두가 안 난다. 내 돈과 대출금을 반반으로 해서 아파트를 살 정도가 되면 입찰에 들어가려고 한다.”
경매로 하우스리스의 딱지를 뗀 이들도 적지 않다. 실수요자들이 선호하는 85m² 이하 소형 아파트는 경매시장에서도 인기다. 올해 들어 5월 말까지 경매 절차가 완료된 아파트에서 84.96m² 이하 아파트의 평균 낙찰가율은 91.77%에 이른다. 감정가에 낙찰되거나 한 차례 유찰된 뒤 곧바로 새 주인을 만난 셈이다. 2009년 73.68%에서 크게 높아졌다. 반면 실수요자들에게 부담스러운 중·대형 아파트의 낙찰가율은 몇 년째 70% 중반을 유지하고 있다. 지난 8월 중순 서울중앙지법 경매법정에서 만난 자영업자 김상수(43)씨는 막 서울 성북구의 108m² 아파트를 낙찰받고 나오는 길이었다. 그는 경매로 결혼 이후 17년간의 ‘전세 메뚜기’ 인생에 종지부를 찍게 됐다고 기뻐했다. 거저 얻은 행운이 아니었다. 2년 동안 독학으로 경매를 공부한 그는 올해 들어 경매로 나온 여러 아파트를 직접 돌아보며 지금의 아파트를 낙점했다. 현재 살고 있는 생활권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데다 아이들 교육 환경도 맘에 들었다. 감정가 3억4천만원에서 한 차례 유찰돼 2억7천만원까지 떨어지자 입찰에 들어갔다. 그는 그 가격에 35만원을 더 써 냈다. 경쟁자는 없었다. 그는 곧바로 아파트를 낙찰받았다. 전세금 2억원에 그동안 모은 돈을 보태면 빚을 지지 않고도 감당할 수 있는 규모다. 그는 “17년 동안 6번 이사를 다녔다. 이번 전세 기간은 오는 10월에 끝나는데 더 이상 이사를 다니기 싫었다”며 “올해 들어 3번 경매 입찰에 참여한 끝에 오늘 성공했다. 나는 담담한데 아이들이 무척 좋아할 것 같다”고 말했다.

“대부분 경매 브로커들은 전문 지식이 없고, 하자 있는 주택을 모르는 척 의뢰인에게 소개하기도 한다. 경매는 낙찰자가 위험부담을 떠안아야 하는 투자이기 때문에 손해를 보아도 사기죄로 고소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변호사법 위반 정도로 고소를 하고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정도다” -정충진 법무법인 열린 변호사

 
» 은행들은 부동산 경기가 고꾸라지기 직전까지도 공격적으로 주택담보대출 영업을 벌였다. 2009년 말 한 은행 창구에서 직원이 주택담보대출 상담을 하고 있다. 사진 한겨레 자료

경매에 성공한 기쁨도 잠시

경매에 참여한 하우스리스가 늘 해피엔드를 맞는 건 아니다. 섣불리 덤벼들었다가 거액을 손해 보는 ‘사고’도 종종 발생한다. 가장 큰 위험은 법원에서 아파트를 낙찰받은 뒤다. 한 달 안에 매각 대금을 치르고 소유권을 넘겨받더라도 채무자나 세입자로부터 아파트를 온전히 넘겨받지 못하면 경매에 실패하게 된다. 홍경숙(53)씨는 지난해 8월 서울 관악구의 145.5m²(44평) 아파트를 낙찰받았을 때만 해도 큰 행운을 얻었다고 생각했다. 4억8천만원 아파트를 반값도 안 되는 1억9600만원에 손에 쥐게 된 것이다. 부족한 1억3500만원은 경락잔금대출을 받아 충당했다. 은행의 근저당보다 앞에 선순위 세입자가 있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전입신고는 돼 있었지만 확정일자가 없어 대항력이 없는 위장 임차인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잔금을 모두 치를 때까지 세입자는 집을 떠나지 않았다. 그제야 그는 당시 임대차계약서 등 관련 서류들을 찾아보고 세입자에게 대항력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꼼짝없이 1억3500만원의 전세금을 물어주게 된 것이다. 법원에 인도명령 청구를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명도소송에서도 졌다. 그는 궁지에 몰렸다. 세입자는 전세금을 당장 돌려주지 않으면 아파트를 경매로 넘겨버리겠다고 최후통첩을 해왔다. 그는 “당시엔 위장 세입자라고 볼 만한 충분한 정황이 있었다”며 “세입자가 1년 넘게 내 집을 점유하고 있어서 항소심을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홍씨 같은 경매 초보에게 도우미를 자처하는 컨설팅 시장은 점점 커진다. 경매 물건 검색, 현장조사, 입찰 대리, 명도, 강제집행 등을 한꺼번에 처리해주는 원스톱 서비스라고 유혹한다. 이들은 아파트 낙찰을 도와주고 감정가의 1~1.5%나 낙찰가의 1.5~2%의 수수료를 받는다. 그러나 민사집행법에 따르면 입찰 대리를 할 수 있는 사람은 변호사, 법무사 혹은 매수신청 대리인 교육을 받고 법원에 신고된 공인중개사뿐이다. 공인중개사라고 하더라도 법원에 신고되지 않았으면 불법이다. 법무법인 열린의 정충진 변호사는 “대부분 경매 브로커들은 전문 지식이 없고, 하자 있는 주택을 모르는 척 의뢰인에게 소개하기도 한다. 경매는 낙찰자가 위험부담을 떠안아야 하는 투자이기 때문에 손해를 보아도 사기죄로 고소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변호사법 위반 정도로 고소를 하고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정도다”라고 했다.
실제 경매시장에선 무자격 브로커가 고객에게 손해를 끼치는 일이 흔하다. “지난달 한 업체에서 고객에게 아파트 1채를 낙찰받아줬다. 그런데 알고 보니 선순위 세입자가 있어서 고객이 추가로 1억원 넘게 떠안아야 했다. 업체에선 책임이 없다고 발을 빼고, 경매를 주선한 컨설턴트는 잠적했다. 컨설턴트는 기본급 없이 건당 수수료를 받은 뒤 업체와 ‘7 대 3’ 또는 ‘6 대 4’로 나누기 때문에 무리하게 일을 진행하게 된다.”(ㄱ업체 컨설턴트)

모두를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

아파트 경매시장에서 하우스푸어와 하우스리스의 어색한 만남은 이제 막 시작일 뿐이다. 하우스푸어들에게 더 큰 고난의 시기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갚아야 할 빚이 지금껏 갚은 빚보다 훨씬 많다. 주택담보대출이 급증한 2009년 3년 거치 방식으로 받았던 대출금 상환이 가장 급한 불이다. 올해 일시 상환 대출금만 60조원, 분할 상환 대출금은 19조원에 이른다. 게다가 금융회사들마저 위험관리 명목으로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을 초과한 대출을 적극 회수하고 나서 하우스푸어들을 압박하고 있다. 하우스푸어들에겐 선택지가 없다. 이들이 빚을 갚는 동안 기다려줄지, 경매로 넘길지는 채권자인 금융회사들이 결정한다. 하우스리스들이 경매시장을 기웃거릴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집값이 하강 추세라는데, 턱없이 비싼 값을 치르고 아파트를 살 의욕이 실수요자들에겐 별로 없다. 이들은 이미 부동산 매매 시장에서 발을 뺀 지 오래다.
정대홍 부동산태인 팀장의 조언은 이렇다. “하우스푸어들이 대출을 갈아탈 방법이 없기 때문에 이들이 보유한 아파트가 앞으로 1~2년간은 계속 경매시장에 나올 것이다. 낙찰 가격은 현 상태를 유지하거나 더 떨어질 가능성이 높아 실수요자들의 관심이 높아질 것 같다. 다만 부동산 매매 가격도 떨어지고 있는 만큼 매매차익을 노린 투자는 신중해야 한다.”
여러 정황은 당분간은 경매 시장의 규모가 커지리라고 예고한다. 팽창하는 경매시장은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의 반사경이다. 정부의 부동산·금융 정책이 망가질수록 하우스푸어와 하우스리스는 경매시장으로 내몰린다. 그곳엔 희망도 있지만, 절망과 위험이 더 많다. 하우스푸어와 하우스리스의 신분 교환이 있을 뿐 대안은 없다. 세입자들은 그 틈에서 전세금을 지키려 처절한 전쟁을 치러야 한다. 정부가 이 ‘불행한 만남’을 줄일 정책 대안을 시급하게 마련해야 하는 이유다.

서보미 기자 spring@hani.co.kr 

2012년 8월 30일 목요일

렌트푸어 위기'…전세금 대출 증가폭 역대 최대


이글은 프레시안 2012-08-29일자 기사 '렌트푸어 위기'…전세금 대출 증가폭 역대 최대'를 퍼왔습니다.
치솟는 전세금에 세입자 부담 `눈덩이'

은행 등에서 임차보증금을 빌리는 전세자금 대출이 올해 급증했다.

전세 시장의 수급 불균형과 주택가격 하락 등으로 전세금이 올랐기 때문이다.

29일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올해 5월 말 전세자금 대출 잔액은 22조5천억원으로 지난해 말보다 2조3천억원(10.2%) 증가했다.

1~5월을 기준으로 한 전세자금대출 증가액은 사상 최대치다. 2008~2010년 1조원 안팎인 증가액은 지난해 2조원으로 늘었고, 올해는 그보다 더 확대됐다.

금융위 관계자는 "전세 수요가 많아진 측면도 있지만, 무엇보다 전세가격 상승이 주요원인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국민은행이 집계한 `주택 전세가격 종합지수(기준치 100)'는 올해 7월 106.9로 역대 최고 수준이다.

2010년 7월의 전세가격과 비교하면 아파트는 24.3%, 일반 주택은 18.7% 올랐다. 2년 전 2억원짜리 아파트 전세에 들어갔다면 보증금을 약 5천만원 올려줘야 한다.

송파구 P공인중개사무소는 "소형아파트 전세는 한두 달 새 15~20% 뛰었다"며 "인상 폭을 놓고 주인과 밀고 당기기를 하느라 세입자가 무척 힘들어한다"고 전했다.

특히 가을 이사철을 앞두고 소득 증가율을 훌쩍 웃도는 수준으로 전세가격이 치솟자 세입자의 경제적 부담은 눈덩이처럼 커졌다.

자녀의 학교 문제 등으로 다른 곳에 전셋집을 얻기 어렵다 보니 `울며 겨자 먹기'로 보증금을 올려주거나 전세와 월세가 섞인 반(半)전세로 전환하는 사례가 많다.

현재 은행권의 전세자금대출 금리는 최고 연 6% 가까이 된다. 5천만원을 더 빌리면 연간 300만원의 이자 부담이 추가되는 셈이다.

박원갑 국민은행 부동산수석팀장은 "최근 업계에선 `렌트푸어(Rent Poorㆍ전세자금대출 원리금 상환에 벅찬 무주택 세입자)'란 신조어마저 돌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전세자금대출이 계속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최근의 전세금 상승은 매맷값 하락 예상과 저금리 기조가 반영된 구조적 문제라는 점에서다.

강남구 J공인중개사무소는 "은행 이자가 예전 같지 못해 전세 놓기를 꺼린다"며 "물건이 적은데다 다른 곳의 가격도 올라 세입자들이 그냥 주저앉는다"고 전했다.

박원갑 팀장은 "전세가격 상승이 매매 활성화로 이어진다는 통설은 이제 적용되지 않는다"며 경기 침체가 지속하는 한 전세자금 대출도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다만, 전세자금 대출은 대부분 주택금융공사가 보증하므로 부실해져도 금융회사가 입는 타격은 제한적이다.

주택금융공사 관계자는 "전세자금 대출을 갚지 못하면 구상권을 청구해 보증금을 받아가므로 금융회사가 부실해질 위험은 낮다"고 설명했다.

 /연합

2012년 8월 12일 일요일

대추리·강정·두물머리… 행정대집행이란 이름의 폭력대집행


이글은 한겨레21 201208-13일자 제923호 기사 '대추리·강정·두물머리… 행정대집행이란 이름의 폭력대집행'을 퍼왔습니다.
[특집] ‘제3자’ 용역업체 등이 철거 등 행정 대신하고 비용은 ‘원인 제공자’ 철거민 등에게 징수하는 행정대집행… 철거지역 경비, 이주 업무까지 맡는 용역업체들은 강제 철거 전에도 세입자 등에게 폭행·협박 자행

‘2230만원’.
지난해 9월 서울 강남구청이 판자촌인 일명 ‘포이동 재건마을’(현 개포동 1266번지) 주민대표 조철순씨에게 이런 비용을 청구했다. 그해 6월 화마로 인해 살 곳을 잃어버린 주민들이 직접 설치한 임시주택 세 채를 강제 철거하는 데 들어간 돈을 내놓으라는 것이다. 이른바 ‘행정대집행’ 비용이다. 행정대집행이란, 행정상 의무자가 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행정청이나 제3자가 이를 대행한 뒤 소요 비용을 의무자에게 징수하는 강제집행 제도다.

명도 소송 통한 철거, 계고장도 필요 없어

강제 철거가 있던 지난해 8월12일 새벽 6시, 강남구청 직원 60명과 철거용역업체 직원 80명이 포이동 재건마을로 들이닥쳤다. 주거 대책을 놓고 주민과 구청이 두 달째 갈등을 빚던 중이었다. 주민과 용역 간 충돌은 불 보듯 뻔했다. 아비규환 속에서 주민 3명이 다쳤다. 앞서 구청은 이재민들에게 서울시 7개 구에 위치한 임대주택 50가구를 마련해 거주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제안했으나 주민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임대료와 보증금조차 마련할 형편이 안 되는 어르신이 많았다. 더구나 구청이 1991년부터 ‘시유지 무단 점유’를 이유로 집집마다 수천만원에서 1억원까지 부과한 토지변상금을 떠안은 상태에서 섣불리 마을을 떠날 수 없었다. 재건마을은 1981년 도시빈민·부랑인 등으로 구성된 자활근로대 일부가 이 지역으로 강제 이주돼 형성된 가난한 동네다. 주민들은 지난 2월 서울행정법원에 행정대집행 비용 부과 처분이 부당하다며 무효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철거 현장에 집행 책임자가 나오지 않는 등 절차적 문제가 있었고, ‘공익을 해할 것으로 인정될 때’라는 행정대집행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구청은 절차상 하자가 없었으며, 공익을 해할 위험이 있는 ‘불법 건축물’을 방치할 수 없었다고 맞섰다.
취약 주거계층, 미군기지 건설 등 국가 정책에 반대하는 주민, 재개발 지역의 영세 세입자, 노점상 등의 집이나 가게를 합법적으로 철거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다. 1954년 제정된 뒤 거의 바뀐 부분이 없는 행정대집행 절차를 따르거나, 민사집행상 명도 소송을 제기하는 것이다. 지난 반세기 동안 공공의 이익, 또는 사적 재산권을 수호한다며 이뤄진 법 집행 과정에서 늘상 약자들에 대한 ‘폭력’이 방조돼왔다. 적절한 보상 대책이나 제대로 된 이주 합의가 없었다는 근원적인 문제는 고려 사항이 되지 못했다. 강제 철거는 효율적인 집행을 내세워 불시에 일어난다. 특히 명도 소송을 통한 강제 철거의 경우, 거주민에 계고장을 발부하는 등의 고지 의무조차 없다.
과거엔 하루라도 빨리 개발 이익을 보려는 시행사가 인력을 고용해 구청과 짜고 공권력인 양 위장해 현장에 투입시켰다. 지금은 철거용역업체라는 허울 좋은 외피를 쓴 외주화된 폭력이 그 자리를 꿰찮다. 이름을 밝히기 꺼린 서울시의 한 구청 공무원은 “정비 업무 때 대개 용역업체 인력을 쓰는데, 이 업계엔 조직폭력배 출신이 많이 들어가 있다”며 “이런 업체들 중에는 지방자치단체가 관리하는 주차장 경비 업무 등을 위탁받아 돈만 받은 뒤 사업장을 폐쇄하는 ‘먹튀’ 행각을 벌이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 서울중앙지법 민사1부 집행관과 철거용역업체 직원 등이 13일 오전 서울 동작구 상도4동 상도11구역 에서 빈 집을 대상으로 명도집행을 하고 있다. 사진 한겨레 김정효 기자

1980년대 이래 성장가도 달리는 철거용역회사
최근 물의를 일으킨 용역경비업체 컨택터스의 정관을 보면 사업 목적에 ‘행정대집행업’이나 ‘가로정비업’ 등이 명시돼 있다. 물리력을 필요로 하는 행정대집행 역시 이런 업체들엔 놓칠 수 없는 시장이다. 행정대집행을 수행한 용역업체들은 주먹구구식으로 비용을 청구하고, 지자체가 이를 집행해왔다. 이런 이유로 국가권익위원회는 지난 3월 행정대집행 비용 산정 기준 개선을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권고했다. 업무를 위탁받은 용역업체가 일방적으로 산정한 금액을 행정청이 별다른 검증 없이 부과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박정재 ‘민중주거 생활권 쟁취를 위한 철거민연합’(민철연) 연대사업국장은 이런 문제를 두고 “나라가 노점상에게서 돈을 걷어 용역업체에 주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합법적 강제 철거 및 퇴거에 이르지 않더라도, 개발을 반대하는 주민이나 세입자 등은 퇴거를 종용하는 폭력과 공포에 시달린다. 재개발조합 등과 계약을 맺은 철거용역업체들은 이주 업무까지 함께 수행한다. 이런 철거용역회사는 1980년대 중반부터 등장해 성장 가도를 달리고 있다. 이 업체들은 건설산업기본법에 의한 비계구조물해체공사업자로 규정되는데 동시에 경비업 허가를 보유한 경우도 있다. 2009년 1월20일 참사가 벌어진 서울 용산 남일당이 포함된 용산 4구역에도 시공사 및 조합과 ‘건설물 해체 및 잔재처리공사 도급계약’을 맺은 호람건설과 현암건설산업이라는 철거용역업체가 들어와 있었다. 이들이 맺은 계약서에는 ‘약정 기간 내에 철거를 끝내지 않으면 지체 1일에 대해 공사 금액의 1천분의 1을 보상금으로 배상한다’는 조항이 있었다. 2008년 2월께부터 철거용역업체는 강제 철거를 반대하는 세입자들을 대상으로 폭행·협박·영업방해 등을 통해 퇴거를 압박했다. 상가 세입자들은 철거용역업체의 폭력과 압박에 맞서 남일당 건물 옥상에 올랐다 참변을 당했다.
강제 철거 현장에서의 폭력과 충돌은 거주민뿐 아니라 용역들의 목숨도 위협한다. 2005년 경기도 오산시 수청동 세교택지개발지구 철거 현장에서 주민들과 대치하던 20대 용역 직원이 숨진 경우가 그렇다. 당시 (한겨레) 보도를 보면, 철거 현장에 거의 무방비로 투입된 용역 직원 43명 대부분이 단순 아르바이트생이었다. 이들은 경찰과 대한주택공사 직원들이 현장에 있었지만 위험한 상황을 통제하기는커녕 수수방관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인권위 개선 권고에도 변함없는 현실

용사 참사가 일어난 직후인 2009년 2월 국가인권위는 그동안 강제 철거 과정에서 심각한 인권침해 상황이 발생해왔는데도 이를 최소화하려는 적극적인 조처를 취하지 않았다며 △국토해양부 장관에게 충분한 사전고지·협상 및 적절한 보상 없는 강제 철거, 사람이 살고 있는 주택에 대한 강제 철거 등을 금지하도록 관련 법률 정비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행정대집행 과정에서 발생하는 폭력 예방·금지 규정 및 불이행시 처벌할 수 있는 규정 마련 △경찰청장에게 강제 철거 현장에서 발생하는 철거 및 경비업체 직원에 의한 폭력 문제, 법적 자격 없이 경비업체 업무를 수행하는 문제를 예방하기 위한 관리·감독 강화 등을 권고했다. 2012년 8월,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제주 강정마을 주민들은 해군기지 건설 현장에 들어온 공권력 및 용역경비업체 직원들의 폭력에 노출돼 있다. 서울국토관리청은 경기도 양평군 두물머리 농민들에게 농지를 비우지 않으면 8월6일 강제 철거하겠다는 행정대집행을 예고했다. 법이라는 방패막 뒤로 난무하는 폭력을 언제까지 두고 볼 것인가.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2012년 7월 27일 금요일

부동산 경매, 집주인은 '폭탄' 세입자는 '유탄'


이글은 프레시안 2012-07-27일자 기사 '부동산 경매, 집주인은 '폭탄' 세입자는 '유탄''을 퍼왔습니다.
[현장] 매물만 넘치는 경매 법정 가보니…

오전 9시 30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5계 경매법정. 경매가 시작되기 30분 전이지만 이미 법정 복도는 사람들로 빼곡했다. 모두가 경매에 참여하려는 사람은 아니었다. 제2금융권 대출영업 실장부터경매정보 무료 이용권과 부동산 투자 무료강의 전단을 뿌리는 50대 여성까지. 부동산 관련 '꾼'들의 '호객행위'가 한창이었다.

다른 한편에서는 10여 명이 부동산 경매 전문 강사에게 경매 절차에 관한 '팁'을 듣고 있었다. 양복을 입은 강사는 이날 경매 물건이 몇 건 나왔는지, 경매 신청서는 어떻게 작성하는지, 유의점은 무엇인지 등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었다.

인천에 사는 박명숙(가명·53) 씨는 "요즘 경매 물건이 많이 나온다는 이야기를 듣고 경매를 한 번 해봐야겠다고 생각해서 나왔다"며 "지금은 이래저래 공부하는 수준이다"고 말했다. 아이와 함께 부부동반으로 경매법정을 찾은 이기영(가명·37) 씨도 "틈틈이 경매 사이트에 들어가 부동산 정보를 살펴보고 있다"며 "그간 보아온 쓸 만한 부동산이 얼마에 팔리는지 알아보기 위해 나왔다"고 말했다.

불황기 때 호황인 사업 중 하나가 경매 사업이다. 300석 규모의 경매법정은 인산인해를 이뤘다. 미처 시간에 맞춰 오지 못한 사람들은 좌석 뒤편에 서서 경매 과정을 지켜봤다. 부동산 전문업체 직원부터 백발노인, 20대 여성, 아이와 함께 온 30대 여성까지 다양한 계층과 집단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 서울 송파구 잠실2단지 상가 내 공인중개업소에 내걸린 '급매매' 매물표. ⓒ연합뉴스

넘쳐나는 경매 물건, 하지만 낙찰 물건은 적어

부동산 시장의 침체로 빚에 허덕이는 '하우스푸어' 주택이 경매에 나오는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지난 5월 수도권에서 경매에 나온 아파트는 모두 2842건으로 월간 기준으로 연중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2202건)보다 29% 늘어난 수준이다.

1월 2406건이던 아파트 경매 건수는 2월 2455건, 3월 2750건 등 지속해서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이 영향으로 지난달 단독주택 등을 포함한 전체 경매물건 수도 올 들어 처음으로 1만 건을 넘어섰다. 경매 전문가들은 하우스푸어가 이자 상환과 원금 상환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한다.

24일 서울중앙지방법원 5계 경매법정에 나온 경매물건도 같은 이유였다. 경매에 나온 물건은 61건. 이 중 제2금융권이 채권자인 경우는 29건으로 절반을 차지했다. 그간 쌓인 부채로 은행권 대출이 힘드니 제2금융권으로 대출을 갈아탔지만 그마저도 어려워지면서 집을 경매에 내놓게 된 케이스다.

하지만 이날 경매가 진행된 물건은 단 10건에 불과했다. 나머지 51건엔 신청조차 없었다. 부동산 업체 관계자는 "경매 물건이 많이 나온다는 소식을 접한 사람들이 관심을 두는 건 맞지만, 이것이 입찰 참여와 연결되진 않는다"고 말했다. 부동산 시장이 침체기라 선뜻 경매에 참여하는 사람이 없다는 이야기다.

경매정보업체 부동산태인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지난달 20일까지 약 6개월간 전국 아파트 경매 응찰자 수는 4만1719명으로 집계됐다. 작년 상반기 6만281명에 비해 30.1%나 감소한 것으로 조사됐다.

반복되는 유찰, 결국 낙찰돼도 빚 청산 어려워

매물이 많은데 낙찰되는 물건이 없다는 건 유찰되는 물건이 많다는 의미다. 시세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감정가와 부동산 불황기가 그 이유다. 문제는 유찰되는 횟수가 많을수록 가격은 내려간다는 점이다.

실제 서울 강남 재건축의 상징인 대치동 은마아파트(84m²)는 두 차례 유찰 끝에 감정가 10억5000만 원보다 24% 낮은 7억9235만 원에 낙찰되기도 했다. 이 아파트가 경매시장에서 8억 원 밑으로 떨어진 것은 2004년 이후 8년 만이다. 매매가가 최고 14억 원까지 치솟았던 2006년과 비교하면 절반 가까이 떨어진 셈이다.

평균 낙찰가는 감정가의 78% 선이지만 이 수치는 지속해서 내려가고 있다. 올해 상반기 전국 평균 낙찰가율은 77.2%로 작년 동기 대비 84.8%에 비해 7.6%포인트 떨어졌다. 2008년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하지만 이날 진행된 경매 낙찰가는 이보다도 더 낮았다. 성북구에 있는 빌라는 세 차례 유찰 끝에 감정가의 절반 수준에서 낙찰됐고 동작구에 있는 빌라도 두 차례 유찰 끝에 감정가의 64% 수준에서 인수자가 나타났다. 다른 매물도 대동소이했다.

관악구 신림동에 있는 빌라의 경우, 이번에 유찰돼 다음 달에 다시 경매에 나온다. 4차례 유찰돼 입찰예정가는 감정가의 41%다.

▲ 강남 대치동 은마아파트. 이 아파트가 경매로 나와 7억 대에 팔렸다. ⓒ연합뉴스

집주인의 무리한 대출, 유탄 맞는 세입자들

유찰이 반복되면 가격이 내려가 나중에 낙찰된다 해도 가옥주 빚은 청산되기 어려워진다. 이날 유찰된 것 중에는 그런 조짐을 보이는 물건이 상당수 있었다. 경매에 나온 61건의 물건 중 유찰된 물건은 50건이었다.

서초구에 있는 아파트는 최저입찰가가 8억4000만 원, 즉 아파트의 총부채가 8억4000만 원이지만 이날 유찰되면서 아파트는 다음 달 경매로 넘어갔다. 이렇게 되면 입찰예정가는 감정가의 64%인 6억7200만 원이 된다. 결국, 경매로 집이 넘어가도 1억이 넘는 부채가 남는다.

낙찰가가 내려갈 경우, 고통은 세입자에게도 전가된다. 팔리는 금액보다 빚이 더 많으면, 채권자 후순위에 있는 세입자의 보증금이 떼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유찰된강남구 대치동 빌라의 경우, 빚을 청산하려면 집이 4억4800만 원에 팔려야 한다. 하지만 두 차례 유찰돼 다음 달 경매에선 3억5840만 원으로 입찰예정가가 정해졌다.

이 가격대로 낙찰되면 이 집에서 살고 있던 세입자 A씨의 보증금 3000만 원은 고스란히 날아 간다. 채권자 국민은행 대출금액이 4억2000만 원이기 때문이다.

성북구에 있는 빌라도 마찬가지다. 쌓인 빚을 다 갚으려면 빌라가 23억2200만 원에 팔려야 하지만 이 가격은 유찰됐다. 자연히 입찰예정가는 64%인 17억8669만 원으로 내려갔다. 이 금액에 팔리면 여기에 전세 들어 살던 B씨의 전세금 2억 원은 사라진다.

한몫 잡아보겠다고 무리하게 대출받아 투자한 부동산이 자신뿐만 아니라 세입자에게도 손해를 끼치고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세입자나 하우스푸어에 관한 구제 방안보다는 총부채상환비율(DTI)을 완화해 부동산 거래를 활성화한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빚에 허덕이는 구조임에도 또다시 빚을 내서 집을 사라고 종용하는 꼴이다.

 /허환주 기자 

2012년 1월 19일 목요일

용산참사 3년, 국회가 속죄하는 마지막 방법은?


이글은 프레시안 2012-01-18일자 기사 '용산참사 3년, 국회가 속죄하는 마지막 방법은?'을 퍼왔습니다.
세입자 함부로 쫓아내지 못하게 하는 '용산참사 방지법' 발의

용산참사가 발생한 지 20일로 만3년이 된다. 변한 건 없다. 여전히 세입자는 아무런 대책 없이 길거리로 내몰린다. 재개발 지역에서 폭력사태는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철거민 5명과 경찰 1명이 죽었지만, 용산참사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셈이다. 이런 가운데 강제로 철거민을 쫓아내지 못하게 하는 일명 '용산참사 방지법'이 발의됐다.

민주통합당 정동영 의원실과 용산참사 진상규명위원회 등은 18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강제퇴거금지에 관한 법률제정안'을 발의한다고 밝혔다. 이 법이 국회를 통과하면 용역에 의해 고질적으로 반복되는 재개발 현장 폭력 행위가 사실상 금지된다. 이를 위반할 경우 형사 처벌을 받을 수 있는 조항을 신설했다.

또한 국가인권위원회가 권고한 퇴거 금지시기를 명시(일출 전과 일몰 후, 공휴일, 겨울철, 악천후)했다. 원주민 재정착 개념을 도입해 거주민이 개발사업 완료 후 전과 동등한 수준으로 거주하도록 재정착대책의 구체적 내용을 명시했다. 용산참사 진상규명위원회는 지난 2주기 때부터 강제퇴거금지법을 논의해 왔다.



▲ 용산참사가 일어난 남일당 건물. ⓒ프레시안(허환주)

이 법을 대표 발의한 정동영 민주당 의원은 "이 법은 여야를 뛰어넘는 법"이라며 "국민을 위해 국회의원이 됐다면 국민의 눈물을 닦아주길 바란다"고 법안 통과를 당부했다. 정 의원은 "18대 국회는 2월 한 달이면 막을 내린다"며 "18대 국회가 국민에게 속죄하는 길은 마지막 개혁 법안인 이 법을 통과시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나라당 박근혜 의원에게도 당부의 말을 전했다. 정 의원은 "박근혜 의원이 이 법을 반대하지 않으면 통과된다"며 "99% 서민의 눈물에 무심한 국회가 서민들에게 할 수 있는 마지막 민생 법안이 꼭 입법되길 바란다"고 부탁했다.

"개발도 안 하는 곳을 뭐가 그리 급해서…"

용산참사 유가족에게 '용산'은 여진히 현재진행형이다. 망루 위에서 농성을 했다는 이유로 7명의 철거민이 복역 중이다. 철거민들을 특별사면해달라고 정부에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반면, 당시 용산참사 진압 작전을 펼친 김석기 전 서울경찰청장은 4월 총선 출마를 준비 중이다.

시행사 측은 용산 재개발 지역 공사장 임시식당(함바) 운영권을 유가족에게 주기로 합의했지만 현재 공사가 진행되지 않고 있다. 생계 수단이 막막한 상황이다. 유가족 중에는 빚을 내서 다시 식당을 운영하는 이도 있다.

용산참사 직전까지 급속하게 진행됐던 용산 4구역 재개발사업은 참사 이후 여러 악재가 겹치며 사업 추진이 지체되고 있다. 재개발조합은 시공사와의 추가분담금 문제로 계약을 해지하고 시공업체를 재모집하고 있다. 지난해 8월 재입찰이 결렬되면서 이달 중 재공고를 낼 예정이다.

고 양회성 부인 김영덕 씨는 "용산참사가 일어난 지 3년이나 됐지만 남일당 건물이 있던 곳은 여전히 개발을 하지 못하고 있다"며 "뭐가 그리 급해서 그렇게 무리한 진압을 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김영덕 씨는 "유가족들은 하루하루 고통스럽게 지내고 있다"며 "더 이상 용산참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철거민이 쫓겨나지 않는 세상을 만들어 달라"고 당부했다.

고 이상림 부인 전재숙 씨도 "용산참사 현장은 주차장으로 변해 용역들의 배를 불리고 있다"며 "반면, 아무 죄 없는 철거민들은 중형을 받고 복역 중"이라고 비판했다.

조희주 용산참사 진상규명위원회 공동대표는 "용산참사의 근본원인은 마구잡이식 개발에도 있지만 개발 속에 강제로 철거민을 쫓아내는 것에도 있다"며 "3년 전 강제로 철거민을 퇴거만 하지 않았다면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 대표는 "더 이상 용산 같은 참사가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며 "그런 마음으로 법 제정을 촉구한다. 이번 국회에서 처리되길 간곡히 바란다"고 당부했다.

용산참사 진상규명위원회는 18일 저녁 7시 '떠날 수 없는 사람들-또 다른 용산 집을 잃은 사람들의 이야기'로 북콘서트를 연다. 19일 저녁에는 서울역 광장에서 용산참사 3주기 추모대회를 개최한다. 용산참사가 발생한 20일에는 마석모란공원 열사묘역에서 열사추모제를 진행한다.



/허환주 기자